침묵11 -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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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해바라기는 그 후 어머니와의 대화를 특징하는 서두가 되었다. 자, 해바라기 합시다! 해바라기가 되는 거예요! 어머니를 움직이게 하는 암호 같은 것, 요술의 말이었다. 50이 채 되지 않은 어머니가 노인들처럼 고관절 골절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러고서 생긴 일이었다. 그러니까 승욱이 1994년 초 독일에서 급히 일시 귀국했던 그 시점을 말한다. 급히, 예정에 없이, 정확히는 베네딕트 보이언 신학대학의 입학허가서를 기다리고 있던 철 이른 봄날이었다.
당시는 유학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승욱이 독일을 선택했던 것은 일단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던 점이 주요했다. 결과적으로는 예상 외로 좋은 선택이었다. 바다를 몰랐던, 바다라면 무심코 두려워했고 무서워했던 그가 북해의 바다들을 경험했고, 냉기를 내뿜는 바닷물을 두 손으로 만질 수 있었으니까. 무엇인가 바닷물과 연결된 체험은 그를 전율케 했으니까. 먼 먼 바다였지만, 어쩌면 바닷속 아버지와 닿을 수 있었다고 느끼게 되었으니까.
독일 행에서 그가 표면상 내세웠던, 스스로 그리 믿었던 이유는 이냐시오 신부님의 족적을 따라간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주의 연속일 뿐이었다. 도주 –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쳐야할 객관적 이유는 전혀 없었다. 88년 대학 새내기가 여차여차 군에 입대했고. 거기까지는 동료 대학생들과 어슷비슷한 인생 행로였다. 그렇게 제대 이후 서둘러 복학을 했더라면 평이한 일일 터였다. 다만 그는 표면적인 어떤 이유도 없이 복학을 미루고 있었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발작적으로 다른 어딘가를 향해서, 그러니까 독일로 향했다. 왜, 왜 복학을 미루었나. 왜 느닷없이 유학 핑계를 댔나. 그것은 군대로 도망치던 때와 비슷했다. 승욱의 입으로 뱉어낼 수 없는 단 하나의 단어가 목에 걸렸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아니, 누군가를 차마 만날 수 없어서.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물론 어떤 단어도 발설하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급히 돌아와야 했던 일은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돌아오자마자 향한 곳은 어머니의 시골집이 아닌 보훈병원이었다.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곳, 당숙이 일러주신 곳이었다.
공항에서 고속버스로, 터미널에서 바로 시내 외곽에 위치한 병원으로 내달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큰 환자복 때문에 더 작아 보였다. 수술 하루 전이었다. 아들을 기다리려고 수술이 늦은 것이면 어쩌나. 그것은 무식에서 온 기우였다. 원래 고관절 수술은 며칠을 기다리기도 하고, 잡혀진 수술 날짜 전에 그가 도착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 물기가 고였다. 반가움의 눈물임에 틀림없지만, 어머니는 입술을 올려서 미소를 지으려고 하셨다.
투틸···.
예, 엄니!
투틸로….
어머니는 그러고만 계셨다.
승욱은 눈을 더 크게 뜨고 귀를 뾰족 늘려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나 인자 덜 아프다이. 첨엔 잔 놀랬지만 괜찮아야. 느그 당숙 참, 그냥 냅두제 알려갖고는. 투틸로, 거가 어디라고 요만 일로 와부렀냐. 그런데 소리가 안 들렸다.
엄니, 투틸로 왔어요. 울 엄니 힘없어 말도 못하시네. 어쩌다가 이렇게. 아니 이만하면 다행, 다행. 글고 아들이 투틸로가 아님 누가 온다고.
그래, 투틸로, 좀 앙거. 오니라고 피곤흐겄다아. 그리 대꾸하실 것이었다. 그런데 소리가 안 들렸다. 아예 입술을 움직이시지도 않았다.
승욱아, 근간에 느그 엄니가 말이 더 줄어부렀어야. 욜로, 욜로 와 봐. 엄니 잔 보둠아 봐라이. 올체. 그라고는 대차 좀 앙거라. 엄니 어디 다치셨는가는 알제이? 엉덩뼈, 엉덩관절이랴. 다리랑 붙은 데가 글씨.
아들은 어머니를,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 좀 봐, 내가 인나야 승욱이 니가 앉제이! 인자 나는 바람 잔 쐬고 올께이. 말 더 혀 봐! 당숙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참, 숙모님, 얼마나 놀래셨을까. 고생 많으셨네요. 저 왔으니까 이제 댁에 내려가셔서 쉬셔요. 당숙도 혼자 지내시느라고….
아이고, 그래도 엄니 옆에는 우덜이 낫제. 어쯔고 니가···. 나 좀 나갔다가 올란다이.
승욱은 늘 지니고 있던 어머니의 목걸이, ‘기적의 메달’을 꺼내서 어머니의 손에 쥐어드렸다. 눈에 촉촉한 물기가 스몄다. 목걸이를 승욱에게 건네주셨을 때의 말소리가 새롭게 들려왔다. 그냥 목걸이가 아니여, 투틸로, 이건 기적의 메달이다이. 신부님 말씀이,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
어머니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오면서 가늘어졌다. 아니, 물기가 목으로 어깨로까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잡고 있던 바슬바슬한 손까지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목걸이를 손에 쥔 채 어머니는 침대 머리 위쪽을 바라보셨다. 아차, 환자복을 입은 상태니까 있었던 목걸이도 풀어놓아야 할 터였다. 사물함을 열고 작은 가방을 찾아서 넣어두었다. 엄니, 가방 속에, 지퍼 안쪽에다가. 귓속에다 말을 했더니 어머니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고는 이튿날 아침에 수술이었다. 걱정에 비해서 수술 시간은 짧았다. 수술 후 여러 주의사항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니는 병실로 옮겨오셨을 때도 아직 주무시는 듯 보였다. 듣기는 하실까. 말을 하기가 싫어서 입을 닫을 수는 있겠지만, 듣기 싫어서 귀를 닫을 수는 없을 것이니까. 그런데 안 듣는, 안 들리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듣고 싶은 말도 아예 없으실까.
인간 해바라기요! – 담당 의사는 상당한 유머를 지녔다. 다음 날 일찍 병상에 오셔서는 큰 소리로 말했다. 환자분, 환자분! 눈 뜨세요. 깨어나신 것 압니다. 수술 잘 되었고요. 다른 고관절 환자들에 비해 젊으시고, 또 많이 안 다치셨어요. 곧 회복 되실 겁니다. 자, 이제는 인간 해바라기가 됩시다! 저랑 약속 하세요! 며칠만 빼고, 다음 주부터 물리치료 시작하시죠. 치료 끝나면 저 복도로 나가 햇빛 비치는 쪽으로! 해바라기를 해야 사는 겁니다!
해바라기라는 단어는 담당 의사의 면허특허인 줄 알았더니 모두가 그리 말했다. 아시죠? 인간 해바라기! 해바라기가 되셔야 빨리 나으셔요! 간호사가 말했다. 환자분, 일어나세요. 연습하셔야죠! 해바라기 하시려면 우선 병실에서라도! 자아, 서 보시게요! 워커를 들고 온 물리치료사가 말했다.
그렇게 워커에서 목발로 그리고 그냥 설 수 있게 되기까지 병원 근무자들은 일반인들보다는 참을성이 많아보였다. 의사는 목소리가 컸다. 높기도 했다. 노인들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노인들에게 말을 하려다 보니 목소리가 커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키가 상당히 컸는데 말을 할 때는 꼭 구부리고 말했다. 환자들 가까이에 대고 말하려고 했다. 참 괜찮은 의사였다.
2주가 지났다. 이제 곧 집에 가시면 가족들 도움을 잘 받으세요, 영양공급도 철저히! 칼슘이 많이 든 우유, 멸치, 치즈, 콩, 고등어, 꽁치, 뭐냐 등푸른 생선들···. 다 외우기 힘들었다. 가족분들! 잘 들으세요! 환자를 보면서는요, 애기가 왔네, 잘 먹여서 키우자, 그런 심정으로 하세요. 회복기간 동안 관리가 엄청 중요해요, 가만 누워만 계시면 치명적임다. 근육도 평형감각도 잃게 되고, 인지능력도 감퇴해요. 계속 소통하시고···.
어머니가 말씀을 잘 안하셔서···.
답답하시겠네요. 뭐, 그래도 투정 많으신 분들보다 낫지 않을까요. 평소 참을성 많으시다면 딱히 할 말 있으시겠어요? 암튼 계속 말 시키고, 뭣보다 계속 움직이시게! 불평 없다고 가만 누워있게 하다가는 큰일 남다. 욕창 하나라도 생겼다가는 폐렴, 요로감염, 뭐 다른 질병들도 병발하거든요.
무서운 예언 같기도 했다. 친절한 설명에도 조금은 겁을 먹은 채로 우리는 시골집으로 퇴원했다. 도시 사는 이모는 병원엔 자주 들리셨지만, 집에서는 주로 당숙모가 어머니 곁을 돌보셨다. 언제 혼자서 걸으실 수 있을까. 한 달은 족히 걸렸다. 해바라기 갑시다! 해바라기 합시다! 그 신호에 일어도 나시고 방 밖으로도 나오셨다. 마당도 따라 걸으셨다. 자꾸 허공을 땅을 둘러보시는 것 같았다. 무엇을 찾으시는 것일까? 그때는 잘 몰랐었다. 돌보지 않은 마당에도 어느새 봄이 흐드러져 있었다.
은방울 수선화 알아? 순수한 아름다움이래. 순수··· 아름다움이 뭣일끄나. 청정하고 순수한···. 앵두는 수줍음이고. 여기 연분홍 복사꽃 이쁘다아. 사랑의 노예란다. 사랑하면 노예가 된다고···.
생각할 틈도 대답할 틈도 안 주고 혼잣말을 하시던 어머니, 승욱은 어린 시절의 어머니가 그리웠다. 그런 꽃 이야기가 그리웠다. 그럴 때의 어머니는 ‘저 집 말 수 적은 각시’가 아니었다. 하긴 그런 꽃 이야기들을 들은 것은 어머니의 아들 투틸로 뿐이었다.
튤립들 이쁘제이, 투틸로! 어떤 색깔이 좋으냐? 빨강은 사랑의 고백이랴. 노랑은 슬퍼야, 헛된 사랑이라니. 흰색도 슬퍼야, 실연이랑께 힘들겄제. 우리 집 마당에 없는 보라색 튤립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그네. 그건 영원한 사랑이라여, 영원한.
우리 집 마당에는 보라색 튤립도 없었지만, 영원한 사랑도 없었다. 영원한 사랑의 부재를 어머니는 일찍 깨달을 수밖에 없으셨겠다. 대상이 사라진 사랑,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라면서 승욱은 그것을 느꼈다. 부재하는 대상은 허상일까. 위로를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할머니 하나, 어머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살았던 집에는 다른 집에는 다 있는 아버지가 없었다. 훨씬 자라서야 느꼈지만, 자신이 기억하는 한 늘 혼자였던 어머니가 더할 수 없이 안쓰러웠다.
재활의 봄에 어머니는 거의 말을 피하셨다. 알아듣고 싶으신 것은 알아들으셨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비인후과로 입원을 더 했어야 했나. 아니지, 재활치료가 급했다. 말은 천천히 회복하시겠지. 입을 목을 다치신 것도 아닌데.
당숙모는 가까이 사시는 죄로 어머니 식사를 계속 챙기시다 보니 걱정을 더 하셨다. 느그 엄니, 왜 밥을 못 묵을까이. 밥도 안 넘길라고 허지, 말도 안 허지. 목이 문젠가도 모르겄서야. 목뿐인가. 사람이 생기라곤 없어야. 얼굴 색 잔 봐라이.
여름이 되어도 추위를 타시는지 몸을 웅크리셨을 때에야, 걷는 행동도 정상으로 회복될 조짐은커녕 손놀림까지 어눌해졌을 때에야, 다른 검사를 해볼 생각을 했다. 무슨 과로 가야하나, 상식이 없었다. 수술 때 기본 검사들을 했었는데, 그럼 내과는 아닌 것 같았고, 인지기능이 좀 떨어진다면 신경과인가. 젊은 나이에···. 잘 모르니 그냥 내과로 갔다.
기본 검사에서 콜레스테롤이며 요산 수치가 이상하다고 했다. 요산 수치가 뭘까. 승욱은 자신의 무지에 놀랐다. 의사는 더 이상한 단어, 갑상선자극호르몬 수치를 측정해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갑상선저하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어려운 병은 아닙니다만, 긴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쩌다가 왜 걸렸을까요? 승욱의 질문에 의사는 ‘왜’라는 것은 없다고 했다. 하시모토갑상선염이라고 이름 좀 복잡한데, 암튼 만성 갑상선염으로 인한 저하증은 근본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어요. 외부 원인 없이도 오래 천천히 염증이 발생해서 호르몬 생성이 부족해진 경우라서요. 그런데 어쩌라고요, 라고 말하고 싶은 목소리였다.
치료는 간단합니다. 레보티록신이라고 하는 합성 호르몬제를 투여하면 됩니다. 3개월마다 혈액검사 하러 오시고요! 의사는 기본은 했지만 덜 친절했다. 고관절 때 의사에 비해서 그랬다. 세상 의사들이 다 똑같이 친절할 수는 없는 법,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의사 공부를 시작했었을 것을! 의사공부 실력도 안 됐을 테지만, 아들이라면, 아들이라서, 그냥 그런 소리가 나왔다. 왜, 집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판검사 아들이 나오고 그런다는데.
의대생도 법대생도 아닌 아들은, 노승욱 투틸로는, 우선 어머니 곁에 남기로 결정했다. 재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낙엽들 쓸다가, 낙엽을 쓸다 봉께, 먼지들 때문에야···. 독일에서 통화를 하다가 엿들은 어머니의 눈물 때문이었다. 유학이 뭣이라고! 신념도, 야심조차도 없는 주제에.
베네딕트 보이언은 겨울학기도 포기해야 했다. 9,000km 10,000km를 멀리 떠나 있을 수는 없었다. 짐은, 슈베비슈 할의 짐은 로마에 계시는 가롤로 신부님께 부탁했다. 신부님은 크게 놀라지도 않으셨다. 인생 여정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라. 이상하게 통화 중에 말을 놓으셨다. 이제 제자가 된 것인가. 신학이 아닌 인생학의 제자. 로마에서 슈베비슈 할까지 열 시간 넘게 직접 가실 수는 없었지만, 신부님이 거기 괴테인스티투트 다니실 때 묵었던 집주인에게 일체를 부탁하실 수 있었다. 비용 송금만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해주셨다.
짐이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 짐을 손으로 만졌을 때, 그 순간 무엇인가가 아득해짐을 느꼈다. 현기증 비슷하기도 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승욱은 지금도 숨이 잠시 멎는다. 어딘가의 문을 열다가 만, 열려는 순간 닫혀버린 두꺼운 문의 이미지가 코를 깰 듯이 가까이 닥쳤다. 어쩌면 내밀던 오른쪽 아니면 왼쪽 발등 위로 방화벽 같은 것이 내려오는 느낌에 이 발 저 발을 뒤로 뺀다, 지금도.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어느 발부터 먼저 내딛나···.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아니다, 그런 순간은 오래 전에 지나가버린 과거였다. 과거는 과거였다.
가롤로 신부님은 그 후 간헐적인 편지에서도 말을 놓으셨다.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기뻤다. 그렇지만 울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직접 말은 어렵더라도 글은 쉽지 않았을까. 글로도 어려웠다. 말이건 글이건 속내는 발화되지 않는다. 다른 스승도 없이 신부님과 소통하면서 지냈다.
신부님과 편지로 나눈 이야기들 중 「가지 않은 길」에 관해서 했던 말이 늘 남았다. 원문을 보면 ‘두 갈래로 나뉜 길(TWO roads diverged)’에서 ‘둘’은 전체가 대문자로 되어 있다고, 둘은 이 시에서 너무 큰, 매우 중요한 숫자라고 하셨다.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승욱은 썼다. 자신을 위로하시려고 보내신 시니까 답을 드려야 했다. 저는 사람들이 많이 간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지겠지요.
신부님은 썼다. 지금 말고 훗날에 훗날에 이야기해라. 참, 그 시를 번역한 피천득 씨가 서울대 영문과 교수였던 시절 프로스트를 직접 알고 지냈더래. 프로스트가 한 세대 윗사람이지만 피 교수가 유학했을 때까지 장수했거든. 교수 말년에 쓴 『수필』도 읽어 둘 만한 글이다. 수필 작품이 아니라 수필론. 수필이 문학인가 아닌가 의심이 분분했을 때, 수필문학의 본질을 정의했다고나 할까. 마음의 산책, 독백,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 그런 식으로 수필에 문학성을 부여했으니까.
박학다식한 신부님! 감탄은 하면서도 수필론에 관한 부분은 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아리송하기도 했고, 수필론 같은 것이 그때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가만, 세월은 흘렀다. 흐르고 흘러서 세기가 바뀌고 강산도 변하자 승욱은 수필이니 뭐니 문학 형식에 관해서도 생각하는 잡학인이 되어 있었다.
그해 가을에는 아무튼 복학을 했어야 했다. 독일을 마음속으로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투틸로, 유학은 어쩌고··· 한 살이라도 젊어.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계속 함께 있는 아들이 걱정되셨나.
예, 하지만 어머니는···.
승욱은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다가 곧 어머니를 생각했다. 스물여섯, 그맘때 아버지와 사별했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오싹해졌다.
복학 마감 날에야 승욱은 등록을 했다. 다시 집을 알아 봐야 했다. 터미널도 보훈병원도 학교도 가까운 곳이라야 했다. 학교에서는 좀 더 멀어졌다.
어머니, 저 복학하더라도, 저 여기 없더라도 해바라기는 꼭 하셔야 해요, 숙모님이랑, 이모님이랑. 약속 안 하시면 저 복학 못해요.
근데, 해바라기가 없어야, 투틸로.
예? 해바라기요?
왜 해바라기가 없어야.
그때서야 어머니가 해바라기를 해바라기로 혼동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나가면 늘 두리번거리시는 품이 잡초처럼 피어 시들시들한 꽃들 사이에서 해바라기를 찾고 계셨나 보았다. 둔감한 아들! 승욱은 해바라기를 심으리라 마음먹었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은방울 수선화도 튤립도 아닌 해바라기를 심었어야 했다. 씨를 심나? 모종을 사오나? 일단 이듬해 봄을 기다려야 했다.
아, 그러네요. 엄니, 봄 되면 투틸로가 해바라기 심을게요, 꼭 심을게요.
가을이 지나가는 속도는 불규칙했다. 주중에는 느리게 주말에는 빨리 가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규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간 캠퍼스가 그냥 예비역도 아닌 늦깎이 예비역에게는 생경했다. 이상하게도 군필 대학생들에게는 복학생이 아니라 예비역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학내 예비군 연대에 편입 신청을 했다고 해서 출결에 지장도 없었다. 군인 성분이라고는 물 한 컵에 잉크 한 방울도 못 되는 사람을 예비역이라고 부르는 관행은 어디서 왔을까. 대학에서 군대로 도망쳐, 다시 외국으로 도망쳐, 그러다가 학교로 돌아온 그로서는 군 시절의 토막이 잊힐 듯도 한데 새삼 예비역이라니!
지독한 사투리의 여단 의무대 군의관이 문득 떠올랐다. 얌마! 털고 살어라이. 스톱이 뭔 말인가 알겄어? 알아 듣냐고! 미주신경성실신 때의 일이었다. 한글날 느닷없이 한글에 대해 ‘연설’해보라던 문 병장님 생각도 났다. 군 시절이 그립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88학번이면 예비역들도 94년 봄이면 졸업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2학년 2학기로 복학을 했으니 늦깎이는 늦깎이였다. 그냥 예비역 형이 아닌 예비역 형의 형 대우였다.
승욱 스스로는 또다시 신입생 같다고 느꼈다. 태반은 거의 모르는 얼굴들에 섞이어 무엇이든 낯설었다. 수강신청은 입대 전에 망쳤던 과목들 이수를 우선으로 했다. 나머지 강의과목들을 살피며 갈팡질팡했다. 내가 뭘 알아, 학년 따라 추천된 대로 하지, 뭐. 승욱은 늘 주관이 없었다. 복학을 해서도 2학년 2학기는 뒤죽박죽이었다. 가롤로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둘, 2라는 숫자의 덫이 생각났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 둘, 두 사람 사이가 문제다. 금요일이면 고향집으로 내달았고, 월요일 첫새벽에 학교로 돌아올 때까지 사흘 밤은 사학과 학생 노승욱이 아닌 그냥 아들 투틸로였다.
밤이면 무엇을 하나. 또다시 천장을 바라보는 어두운 밤이 이어졌다. 북해의 바다들이, 바닷물들이 밀려들었다. 바닷물은 천장에서 휘돌다 떨어져내렸고, 승욱은 밤을 새고 나면 흠씬 젖어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바다로 나가 보리라던 북해에서의 기특한 결심은 실현 가능성이 멀어졌다. 밤을 보내려면 전공이 아닌 편한 책들이라도 필요했다. 유럽을 떠돌 때 꽂혔던 이름이··· 맞다! 캉디드!
헛생각들에 들떠 있다가 캉디드 생각이 났다. 서둘러 책을 주문했다. 이런 소설이 왜 명작일까. 필명 볼테르, 원 이름이 중요하지는 않겠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예수회가 설립한, 웬 예수회가 여기서도, 암튼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런데 20대, 30대에 필화사건으로 투옥 또는 추방을 당했다고? 50대에도 또? 그런 그가 팡테옹에 안치되어 있고 - 파헤쳐지지도 않고 – 심지어 프랑스를 ‘볼테르의 나라’라고 부른다니. 수상한 위인이었다.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라 하는 제목은 이름 뜻대로 순진무구한 젊은이가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보인다. 막연히 제정러시아 시절의 대하소설 같은 것을 기대했던 승욱으로서는 기껏 3쪽 또는 5쪽의 짧은 콩트 모음집 같은 구성에 첫눈에 시큰둥해졌다.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온순한 젊은이’가 베스트팔렌 어느 남작의 성에서 조카라는 신분으로 살고 있다. 가문의 교사는 팡글로스, ‘모든 언어’라는 의미의 박식함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세상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가장 좋은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고로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팡글로스의 이런 가르침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능한 세계들 중 최고의 세계’라는 라이프니츠의 논리 그대로다. 뭐야,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라더니, 철학 에세이인가.
읽을수록 난감했다. 이런 캐릭터답지도 않은 인물이 왜 필요한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1장부터 등장하는 황당한 광경들은 유럽 소설들에서 기대했던 – 그것은 프랑스문학에 완전 문외한이어서 그랬었지만 - 심각성 같은 것과는 아예 멀었다. 게다가 사학과 학생이 부끄럽게도 듣도 보도 못한 역사적(?) 인물들과 사실들이 수없이 등장하곤 했다. 일단 메모를 해가면서 읽기로 했다.
그렇게 주말이면 이런저런 독서로 밤을 보냈다. 겨울방학이 되자 아예 어머니 곁에서 지냈다. 어머니는 정해진 대로 병원에 다니면서 다소 회복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 기일에, 설에, 대보름에, 일들이 많고 친척들도 오곤 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봄을 기다렸다.
봄날이 되었다. 1995년 봄, 3학년이 되었다. 2라는 글자를 피했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긴 주말을 고향집에서 보내는 대신 하룻밤만 보내고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서둘러 해바라기를 심어야했다. 모종을 기다리기도 바빴다. 씨를 어디에서 구하나. 4월 어느 주말 이른 아침 불려두었던 씨를 심었다. 담벼락 쪽으로 넓게 1cm 깊이로 씨를 심고는 물을 뿌렸다. 대학으로 돌아온 주중이면 날마다 마당에를 나갈 수 없어서 불안했다. 금요일, 그러니까 5일 후에 집에 가자마자 씨 뿌린 곳으로 내달았다. 슬쩍 눈길을 주니 떡잎들이 나 있었다. 쏜살같이 어머니의 방으로 내달았다.
엄니, 싹이, 잎이 나왔네요, 해바라기 잎들이.
투틸로, 파란 그거이 해바라기 잎이었구나. 엊그저께 뭣인가 파란 것들이 올라왔드라. 물을 줬제이, 어쩐지 목이 마를 것 같아서야.
예, 엄니. 잘 하셨어요. 이제 해바라기 하시면 되겠네요.
응, 해바라기. 해바라기 하자. 근디 해바라기 꽃말은 뭣일까이.
꽃말? 엄니, 꽃말 생각이 나셨어? 꽃에 말이 있는 것?
투틸로, 뭔 말이여? 엄니가 꽃말이 뭣인지도 모르가니. 봐라, 앵두는 수줍음이제. 복사꽃은 사랑의 노예···. 근디 노예라니.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그 옛날의 꽃말들을 다 기억하고 계셨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입을 닫으셨나, 어머니는 이 초여름 해바라기 밭에서는 말을 제법 하셨다.
글면 해바라기도 꽃말이···.
해바라기는 해만 보니까··· 일변단심, 동경 그런 것 아닐까요? 알아볼게요.
그러네, 일편단심.
예, 어쩌면 일편단심.
투틸로 우리 아들, 그새 박사님 다 되셨네. 모르는 것이 없어야.
그렇게 한 여름을 잘 보낼 것이었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6월 하순부터는 맘 편하게 고향집에 있었다. 그때 놀라운 사고가 터졌다. 천재지변도 아닌, 서울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처음엔 말이 백화점이지 작은 열악한 건물이거니 했다. 하, 며칠을 붕괴 장면과 발굴 소식만 틀어대니 결국 어머니도 알게 되었다. 눈물만 흘리셨다.
그럼 그 수가 다 그 속에 있다냐? 묻혔다냐? 다 찾아내기는 한다냐? 찾아는 내겄구나이.
순간 『캉디드』의 구절이 떠올랐다. ‘지금 이것이 가능한 세계들 중 최고의 세계’라는 말인가. 작품에서 분명 볼테르는 라이프니츠를 비웃고 있었다. 최고의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다. 봄에 해바라기 잎들이 나는 데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도 대구에선가 폭발사고가 났었다. 100명도 넘게 사망한 그 사고를 어머니는 다행히 모르고 지나가셨다. 그때도 백화점 짓다가 그리되었다던가. 암튼 그때는 금요일 사고였고, 곧바로 어머니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었다. 그에 앞서 그 지난 가을 한강다리가 무너져 내렸을 때도 어머니의 걱정은 한참을 갔다.
한강으로 떨어졌네이. 버스가 통째로이. 그럼 다들 건졌다냐? 어디로 흘러간 사람은 없다냐? 강물은 바다로 가겄제? 어디 바다로 갈끄나? 바다는 다 같을끄나?
사람들은 다 구했어요. 누구도 흘러간 사람은 없다고요.
그때도 곧 주말이라서 이리저리 둘러대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고, 사고들에 어머니는 아프고 만다. 어머니를 어쩔꼬! 겉으로는 단정해도 속으로는 심약한 어머니인가 싶었지만, 병약을 더하니 단정함마저도 흐트러지셨다. 성당에 함께 갈 때 보면 미사포를 잊고 가셨다가 놀라시기도 했고, 오른쪽 왼쪽 길이를 다르게 늘어뜨리기도 했다.
해바라기 꽃들이 그때 벌써 피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해바라기에 열중하셨다. 봉오리가 맺힐 때까지 해를 향해서 고개를 돌리곤 하다가, 꽃들이 피면 그냥 있는 것을 발견한 것도 어머니였다.
다 자라면 배신한다이.
엄니, 무슨 배신?
요놈들이 키가 더 큼서는, 꽃이 다 피어불먼, 해를 안 따라다녀야.
아, 정말 그래요? 엄니, 해바라기 박사되시겄네요.
요 줄기들이 뚱뚱해져 갖고는 둔해서 그랑가 모르겄다이.
엄니, 요놈들 훌라후프 시킬까요? 도로 날씬해져 갖고 계속 해님 따라 돌게.
투틸로, 니가 농담도 한다이. 엄니 웃길라고 그라냐. 그나 꽃들 참 이뻐. 키가 큰께 기대고 싶어질라그래.
엄니, 넘어지실라고.
말이 그라제.
엄니, 씨앗도 맛있고 건강에도 좋대요. 잘 익으면 볕 좋으니 말리게요!
그라자이. 투틸로가 묵은다믄 말려사제, 말리고말고.
줄기를 말리면 가볍고도 질겨서 구명조끼를 만들기도 했대요. 타이타닉 때도 입었다고요, 그런 말은 행여나 튀어나와선 안 된다. 입을 꾹 닫았다. 말을 해서 탈일 때 말을 하지 않는 것의 힘, 위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입안에서 바로 무덤으로 가는가.
해바라기 밭에서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엉뚱하게 『캉디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리스본 땅을 밟은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대재앙, 그러니까 지진에 휩쓸렸을 때다. 팡글로스 박사는 캉디드가 돌덩이에 다쳐도, 겨우 죽음을 모면한 주민들의 비참상을 보고도 이 모든 일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라며 그들을 위로한다. 인간의 타락과 하느님의 벌이라는 원죄를 믿지 않으시냐는 구급대원의 질문에도, 그것들마저도 가능한 세계 중 가장 좋은 세계에 이미 필연적으로 담겨있다고 응수한다. 인간의 자유를 믿지 않으신다는 말이냐는 질문에는 ‘자유는 절대적인 필연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역시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인용했을 뿐이다.
그렇게 읽고 읽은 『캉디드』의 독서는 실은 결론을 모르는 상태로 끝났다. 방학 내내 읽고도 모르는 채로 책을 덮었다. 결론을 찾아야 할 마지막 장면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온갖 모험을 온갖 불행들을 겪고 몇 해가 흘러 소박하게 정착한 그들은 터키의 최고승이라는 이슬람 수도승을 찾는다. 인간이라는 이 괴이한 동물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 세상에는 끔찍한 악이 너무 많아서 의문이라는 팡글로스의 질문에 수도승이 말한다. ‘선이 있건 악이 있건 그것이 뭐가 중요해? 술탄께서 이집트로 배를 보내실 때 그 배에 타고 있는 쥐들이 편안한지 아닌지 신경 쓰시더냐?’
여기에서 무엇을 읽으라는 말일까.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해도, 인간의 행불행은 인간의 몫이라? 하느님이 그것까지 신경을 쓰시지는 않는다? 신의 섭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결정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승욱의 독서능력, 아니 인지능력으로는 그가 읽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부님, 후미에가 『캉디드』에도 나옵니다. 일본을 다녀왔다는 어느 선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놀라운 일 아닌가요? 가롤로 신부님에게 쓰려던 편지도 중단하고 말았다. 그만한 책을 읽었으면 무엇인가 생각 같은 것을, 무엇인가 배움 같은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실망한 승욱은 침묵을 선택했다. 머릿속일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들을 표현할 단어들이 없었다.
볼테르를 더 읽어야할까. 굳이 볼테르가 아니어도 된다. 무엇인가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읽어야 할까. 그러니까 『캉디드』에서는 지금 이것이 최고의 좋은 세계라는 팡글로스 박사를 통해 라이프니츠의 신정론神正論을 통째로 조롱했었나 보다, 그 정도를 읽었다. 그것을 비웃는 볼테르도 따로 좋은 세계를 말하지는 않았다. 인간에게 좋은 세계란 결코 없다는, 있더라도 우연의 산물, 찰나의 것이라는 말이었을까.
비교를 해서는 절대로, 감히, 안 되겠지만, 그때 당시의 승욱에게 있어서는 좋은 세계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발설되지 않는 세계였다. 누구에게도 발견될 리 없는 혼자만의 세계, 그것은 침묵의 세계였다. 그냥 머릿속 아니면 입 안의 단어들, 그러니까 많은 단어들은 발설되지 않는 것이 좋다. 중요한 단어들은 더더욱 발설되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가 해바라기를 말없이 좋아하시듯,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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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25 여름 80호, 220-2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