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03. 11. 20. 21:57

와의 만남

『꿈꾸던 것들은 아직도 꿈인가』2003 (이화에세이)

1.

해방의 떠들썩한 열기가 식어버린 새해 혹독한 겨울 지방도시에서 태어난 그녀는 바다 구경 한 번 못한 우물 안 개구리로 상경하여, 이화여자대학에 입학시험을 치르는 겨울 또한 혹독한 추위를 실감했다. 합격 통지에 한껏 누그러진 봄이라 해도 서울은 여전히 추웠다. 돌 벽으로 된 기숙사 건물만큼이나 이질감으로 추운 방은 마찬가지로 썰렁한 교회당과 더불어 냉랭한 서울 시대를 열었다.


손이 시린 봄은 마음도 시리게 한다. 왜 그래야 되는지도 모르게 대의원이 되어서, 칸막이 교수실로 학생-교수간 심부름을 다니던 걸음걸음이 얼마나 가시밭이었을지……. 유창한 독일어로 일년생 기를 죽이는 교수님 ― 나중에야 그 유명한 천재이자 당시 신분은 강사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 서슬에, 그녀는 아예 아무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다. 사투리건 표준말이건 우리말을 아예 더듬는, 독일어는 주눅 든 꺽다리 신세. 큰 키는 당시 그리 탄성의 대상도 아니었고, 쥐구멍을 찾고 싶을 땐 오히려 단점이 되었다. 그때 주눅 든 버릇으로 지금도 등이 남달리 일찍 구부정한 것이리라.


천재 교수님은 검은 스카프를 즐기셨다. 첫 봄의 기억은 그것뿐이었다. 그분이 그녀들에게 친칭을 썼는지 경칭을 썼는지도 들리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문법은 충분히 마스터했노라’ 자부했던 독일어 실력(?)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과외로 학원에서 단편소설까지도 읽었던 독해력이 적어도 대화하기에는 제로였다.


문제는 그녀가 ‘남녀칠세부동석’의 원칙으로 키워진 시골학생이라는 데 있었다. 남자 교수님들 보다는 친근해야할 대상으로서 여성만을 찾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여자는 드물고, 서양 선생님도 영화에서처럼 낭만적이 아니라, 새의 부리 같은 날카로운 느낌만을 받았다. 자연히 천재 선생님이 오시는 요일에만 교수실에 갈 핑계를 찾았다. 그러나 말로는, 그 천재 선생님이 왠지 싫어서 그 분 오시는 날엔 교수실 들르는 일을 피한다고 광고했다. 이율배반의 감정으로 못난 시골티를 감추며 그 선생님만을 의식하고 있었던 사실은 너무도 훗날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럴 것이 곧 이어 ‘진짜 독일어 목소리’를 가진 여교수가 부임하셨고, 너나 할 것 없이 이성적인 교수의 표상인 독일어 목소리에 빠져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들 몇몇은 그 시냇물 구르듯이 읽는 독일어 목소리에 반해서 독일어로 “시냇물”이란 이름의 스터디 그룹으로 성장했다. 스터디 그룹은 생존의 방법이기도 했다. 상당한 분량의 원서를 한 학기에 읽어야 했지만, 그녀들은 터무니없이 실력이 부족했고, 교수님들은 더러 나머지 부분을 숙제로 내주시기 때문이었다. 번역본? 그런 것이 있었다면 그렇게 공부만 하느라 세월 보내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일단 나머지 분량을 몇 등분해도, 불안한 소심증의 그녀는 소설작품이건 드라마건 전체를 보아야했고, 밤샘이 습관이 되었다. 천재 선생님은 어느 새 다른 대학으로 옮겨 가셨고, 그녀들은, 적어도 그녀는 그분을 잊었다. 무수한 밤샘의 나날에서 잊었다고 생각했다.


검은 스카프는 사실 첫 학기가 끝나가는 여름까지도 여전했다. 자세히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지만, 검은 스카프는 앞쪽으로 당겨져서 턱 끝에서 묶여 있었고, 그러면 삼각형 얼굴이 드러났다. 오월 말 메이데이 행사 때면 성급한 민소매 원피스도 등장하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서 학기말까지 검은 스카프라면 조금은 섬뜩했다.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동기생이 있었는데, 그애 또한 놀랍게도 선생님 따라서인지 시커먼 눈매를 하고 검은 색 옷을 즐겨 입었다. 그 아인 사업가인가 장차관인가 아무튼 엄청 (돈)귀족에 미스 코리아 같은 몸매를 지닌 부족할 것 없는 친구였지만, 대개는, 그리고 그녀도, 일부러 못 본채 했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 혹은 신포도의 경우였다. 그리고 천재를 잊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에겐 보다 지적이며 시냇물 구르듯이 독일어를 읽어주는 새로운 우상이 나타났으니까.

 

2.

인연은 길고 길어서 그녀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한 가지 공부를 위해 이화 터전에서 살았다. 이제와 본업은 지방대학 독문학과 교수, 현대독일소설을 중심으로 강의한다. 그녀들의 ‘독일어 목소리’ 우상에게서 받은 영향으로 여성문학 강의도 시작했다. 잉에보르크 바흐만을 새삼 경탄하며, 바흐만의 환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심지어 작품만이 아닌, 막스 프리쉬와의 좌절된 사랑에, 좌절된 공동생활에, 의미부여를 하기도 안하기도 하면서.


그러나 깊은 밤중이면 그녀는 글을 썼다. 여중 시절 교지에 「무제」라는 시 한편을 발표한 것 이외에는 불모로, 여태 남의 글 읽는데 비겁함을 소진하고 있는 자신이 안쓰러워서였다. 마침내 어느 날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으로 소설계의 문턱을 넘보았을 때, 그때 그녀는 옛 사랑을 다 들켜 버리고 말았다. 인용된 시는 물론, 많은 지면이 오직 그 천재 선생님을 위해 바쳐졌기 때문이다. 물론 숨겨진 사랑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변신되어 나타났지만, 누군들 이화에서 함께한 사람이라면 천재 선생님을 읽을 수밖에 없다.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시 중에서 「배반」은 이름조차 거명하며 인용했고, “나는 왜 이렇게 너를 좋아할까? 비길 수 없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너를 좋아해.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도 죽음을 택하겠어.”라는 구절도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인용했으니. 그녀는 첫 애증의 대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화의 첫 학기 천재와의 만남은 쟝 아제바도를 나누어 품게 했으며, 오늘 밤새워 글을 쓰게 한다. 그녀에게는 습작이란 없다. 글쓰기가 의식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그냥 살아있는 표식이니까.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게 도와 줘…… 나를 살게 해 줘…….” 적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천재의 목소리가 환영으로 다가온다. 목소리는 어스름 글씨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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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3. 4. 19. 22:20
 

어머니가 되세요!


 

<Friends> 2003년 5월호


 

고생 많았소, 아이들 이렇게 자라도록 보살펴 기르고.

그리고 저 ……, 나 또한 불편 없이 살아온 세월이었소.


큰 아이가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의 어색한 감사 표시다. 함께 부모이면서 감사라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과묵한 남편의 그만한 말은 큰 의미이리라.


‘아이들 이렇게 자라도록’ 살아온 세월이 믿기지 않았다. 이 많은 날들, 사랑이 지속되고 결혼해 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한 결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한 청사진의 미래를 꿈꾸며 결혼한다. 그러나 더러는 크게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서도 결혼을 한다. 절실한 현재 때문일지……. 사람은 생각보다 근시안적이다.


그녀는 후자에 속했다. 아직 통금이 있던 시절, 통금 때문에 헤어지는 연인들은 차라리 결혼을 했다. 상대적 빈곤감이 덜한 시절이라 결혼에 조건은 그리 없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얼떨결에 아기 엄마가 되는 일이다.


그녀는 엄청난 사태 앞에 세워졌다. 만삭에도 걱정은 설마였고 여전히 책방이나 영화관을 쏘다니며 맹렬한 기세를 부렸었건만, 새로 태어난 아기는 경이 그 자체이자 어쩌면 공포였다. 손가락을 차마 만져보기도 두려운 존재, 온전할까 깨어질까 두렵기만한 존재였다. 아기는 어미보다 훨씬 용감했다. 어미와 눈을 맞추기도 전에 가슴을 파고들며 양식을 찾았고, 눈을 맞추게 된 이래로는 모든 것을 어미에게 의탁하고 물어왔다. 20대 어머니가 되는 여자들은 미숙하기 그지없다. 학교를 오래 다닐수록 상대적으로 생을 몰라서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불완전한 인간에게 더 불안한 작은 생명이 의심 없이 다가올 때,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을 움츠렸다. 긴 겨울밤의 몽상도,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잊혀져가고, 봄가을 들판을 헤맬, 혹은 여름 바다의 일렁이는 황혼을 그리겠다는 치기도 사라졌다. ‘네가 찾을 때’ 그 자리에 있자,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내버려두지는 않겠다는 다짐으로.


아기는 목욕시킬 때면 앙앙 울다가도 곧 젖을 물고 새근새근 잠든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만으로도 어미를 행복하게 했다. 쏘옥 삐져나오는 앞니만으로도, 뒤집는 엉덩이만으로도 기쁨을 주었다. 그녀는 아기를 따라서 말을 배웠다, 아기처럼 좋은 말들만 골라서 배웠다. 세상에는 좋은 말들만 있었다. 아장아장 아기 따라 걸음을 배웠다, 위험한 행보가 아닌 가장 안전한 길을 익혔다. 아기가 둘이 되자 둘을 똑같이 사랑하기를 배웠다. 두 아기를 보면서 서로 사랑하기를 배웠다. 세상에서 여럿을 똑같이 사랑하기를 배웠다. 아이들은 날로 새롭게 모든 사물을 향해 호기심에 넘쳤고, 그녀 또한 생에 호기심을 더해갔다. 아이들의 눈을 따라 세상을 보면서 순수한 긍정을 배우고, 아이들의 필요로 살아있는 의미를 느꼈다.


의미가 생기자 그녀는 새삼 생기가 돌고 진정한 의욕이 생겼다. 세상엔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이 많았다. 그것을 왜 몰랐을까, 알 수 없는 불안과 허망과 좌절로 애태우던 날들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토론을 하면 할수록 아득한 안개 속 미궁을 헤맸던 시절이 정말 있었던가?


그녀는 아이들 따라서 사람이 해서 즐겁고 좋을 일들을 골라서 하는 법을 배웠다. 온통 세상을 다시 배웠다. 마치 처음 배우듯이 조심조심 배워 나갔다. 이번엔 훨씬 신중하고 안전한 선택들이었다. 그 모든 일은 아이들이 그녀를 인도하는 그대로였다. 아이들이 고개 들어 쳐다보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아니 최소한의 능력으로나마 그저 어머니이고자 했다.


고생이라구요? 아니지요. 어미가 아이들을 키운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어미를 살게 했지요. 아이들이 있어 진정 웃음을, 행복을 알았고, 아이들이 있어 건강한 나날을 꿈꾸어 왔지요. 아이들 아니었음, 무엇이 생에 이만큼 나를 매어놓을 가치가 있었겠어요?


그렇게 대답하려던 그녀는 남편에게 아무 말 없이 미소만 보낸다. 남편은 어쩌다 술이 거나해진 날이면 차갑고 참을성 없어 보인다는 그녀가 살아온 방식을 슬쩍 건드려보곤 했었다. 예상보다 나았다는 의미인지, 그러나 믿기지 않는다는 투를 감추지 않았다. 오늘 같은 표현을 하리라고는 조금 의외다.


정체성? 그녀는 순간 생각한다. 정체성은 불변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가 그 본질은 변치 않더라도, 누구이어야 하는가를 포함시키면 조금 변화가 생긴다. 어머니인 사람은 ‘어머니’가 큰 비중이 된다. ‘비중’이라고 하는 말에서 나이 따라 점점 무거워진다는 여자들의 희화적 상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남편은 감사 표시에 웃음기를 흘리는 그녀가 의아스럽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모처럼의 덕담이 쑥스러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말한다, 그냥 다른 말인데, 웃으세요. 아내 칭찬일랑 마시구려, 여자들은 나이 들어가면서 너무 무거워진다는군요. 늘어나는 체중에다, 머리는 석두요, 얼굴은 철판이 아줌마 상이랍디다. 그러게 올려주려 해도 무거워서 절로 가라앉는답니다.


사람 참. 그렇게 자조적이라면 여자들이 상당히 지적 유머에 능하구려.


되려 적나라한 말이지요 뭐. 아무튼 우리 애들은 당신을 더 닮아 참을성도 어미보다 낫고, 내차기도 덜하니 다행 아닌가요.


그렇게 대꾸하면서 오늘따라 어색한 표정의 남편 곁을 슬쩍 일어난다. 그녀는 속으로 되뇐다, 다음 생에서는 그럼 당신도 어머니가 되어 보세요!                                        (2003. 4. 19.)

Posted by 서용좌
낙서2002. 12. 5. 23:30

bestmail 2002, 아니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
                        


Subject: 예비 03이 인사드립니다.
     Date: Thu, 05 Dec 2002 21:33:31 +0900 (KST)
     From:
                 

  안녕 하십니까.
  저는 수시모집에 합격한 예비 03학번이된 000 입니다.
  예전부터 교수님 홈피에 자주 들러서 독문학도의 꿈을 키워 왔는데,
  이제 저도 당당히 교수님 밑에서 공부할 수 있다니 몹시 기쁩니다.

  이렇게 저같은 새내기가 교수님께 메일을 보낸다는 것이 조금은
  건방지게 비쳐질것이 두렵지만서도 하루라도 빨리 독문학을 배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실은 제가 독문학을 하겠다고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선언했을 때
  다들 힘들고 외로운길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이런말을 꺼내서 송구스럽습니다만 인문학, 특히 독문학은 위기의 과목이고
  사양과목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수님 홈피에
  자주 들러 자칫 흔들릴 뻔한 저의 결심을 굳혀나갔습니다. 결국 저는
  수시 면접에 참가를 했고 이렇게 당당히 독문학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수능 성적상 흔히 서울에 괜찮다는 학교의 학과를 지원하고픈 욕망이
  끓었던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교수님 홈피에 독문학강의란을 읽어보면서 느꼈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런말이 떠오르더군요. '위기는 곧 좋은 기회가 될수 있다'
  분명 한국 사회는 미국, 일본 문화의 영향이 주류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 주류의 문화는 결국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 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서 유럽문화, 특히 독일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많이 소개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펼쳐질 유럽과의 육로 직교역시대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다시말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제가 두서가 없는 말은 너무 많이 늘어 놓은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p.s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겨울방학기간 교수님께서 권장하고
        싶으신 독일문학 도서를 추천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또 제가 정말 부족하지만 허락해 주신다면 앞으로 교수님과 자주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하고 싶습니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이란 하나의 착오일 것이다 - 니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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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