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2. 12. 7. 22:56

 

마지막 책

 

 

  오래 살았다, 라고 말해야 옳다. 그러면서도 지난 세월의 무게가 두께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시간은 늘 지나가기 때문일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일이 무엇일까. 과거를 반추하는 일을 시작해보려 해도 화면은 현재에 멈추어 있다. 너무 아득해서일까. 믿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한 기억이라해도 너무 멀리 와서는 희미하다. 내 머리는 아마 현재밖에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녹슬었는지도 모른다.

 

  청춘은 아름다워라, 라고 누가 그랬던가.

  헤르만 헤세가 중년의 대작들인 『데미안』과 『싯다르타』 그리고 『황야의 이리』를 쓰기에 앞서 쓴, 어찌 보면 가벼운 단편 제목이 그것이다. 「청춘은 아름다워라」를 내었을 때가 40을 바라보는 나이. 이미 청년이 아니었다. 부친의 사망, 갓 세 살 난 막내아들의 뇌수막염, 아내와의 파경이 드러나던 무렵이다. 아내의 정신병은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했고, 그 자신도 청소년기에 정신요양원 신세를 진 경험이 있었다. 기숙신학교를 탈출해 짝사랑의 절망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결과였다. 일반 김나지움으로 옮겨서도 학교는 망쳤다. 그의 청춘은 일상에서의 탈출로 점철된 ‘찢긴’ 상처투성이였다. 자전적인 『황야의 이리』에서도 주인공의 우울과 분열의 원인은 청소년의 ‘의지의 분쇄’를 기본으로 하는 교육 탓이다. 작품마다 아팠던 청춘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청춘에 대한 그리움은 원초적 인간본능의 하나일까.

 

  현대문명은, 물론 교육을 포함하여, 자연과 유리될수록 성공적이라 간주되고 있다. 개인은 거대 문명의 주변인으로 밀려나서 소외는 점정에 이르렀다. 어찌 제정신으로 살랴. 멘붕의 시대 - 우울과 정신적 불안 속에서 청춘은 아름답다고 외치면서도 헤세는 놀랍게도 노년에 이르는 삶을 누렸다. 생애 후반에 더욱 빛나는 책들을 썼고, 충분히 인식되고.

 

  왼손에 책을 펼쳐든 채로 고꾸라진 그의 마지막 모습은 경이롭다 못해 섬뜩하다. 그래서 잊지 못하는 것 목록에 든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많은 책 가운데에서도 하필 『고백록』이라니. ‘이는, 우리가 당신을 향하여 살도록, 당신이 우리를 창조하신 까닭이오니, 우리 심령은 당신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 평안할 수 없나이다.’ - 이 구절 때문에? 평생 달아나고자 했던 신앙으로? 아이러니다.

 

  책으로 지새운 수많은 밤들. 우연히 마지막 밤을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할애했을까. 헤세에게 가장 잊지 못할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였다고 가정한다면, 나에게는 누구일까, 어떤 책이 될까, 마지막으로 읽게 될 것이. 혹은 쓰게 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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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그가 있다』, 한국여성문학인회, 2012, 책만드는집, 196-197쪽.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