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02. 8. 19. 22:30

전일시론 2002년            

우리의 골목대장들

 

어느 시기나 어느 동네나 골목대장은 있기 마련이다. “동네 골목에서 아이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아이”, 국어 사전도 마지막 설명을 “아이”라고 규정한다. 아이들은 동네 골목대장을 두려워하고, 커서도 지금처럼 힘이 세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한다. 두려움과 불안은 부지중에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다. 그것이 문제이다.


옛날엔 어린 시절의 골목대장은 어미의 걱정이었다 ― 하긴 요즈음엔 그것도 대장이라고 대장하기를 바라는 어미도 있다 하지만. 골목대장에도 두 가지 형이 있다. 좋은 의미에서는 다른 아이들의 선두에서 놀이의 지도자가 되거나 통솔하는 역할을 하는, 좋은 성격과 능력의 소유자임을 엿보게 하는 경우이다. 문제는 아무 데서나 폭력성을 드러내고 약한 친구들을 못살게 굴며, 혼자서 대장이 된 기분을 독차지하려는 경향이다. 골목대장을 자처하는 아이들은 대개 지적으로 미숙한데 완력이 강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약한 아이들도 마음속으로는 완력에 대한 저항심을 갖게 된다. 더구나 골목 밖으로부터 위협이 닥쳐올 때는 놀랍게도 이러한 골목대장형이 제일 먼저 몸을 사린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비겁성이 그 속성인 것이다. 그나마 어린 시절의 골목대장을 귀엽게 봐 주며 그 긍정적인 면을 살리고자 함은, 그들이 아직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골목대장이 자라서 한 가락한 경우가 적지 않다. 동학의 전봉준이 고창 당촌 마을에서 훈장의 외아들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을 적에, 아이들의 골목대장으로 패싸움에선 늘 앞장을 섰다는 일화도 있다. 더 거슬러 가면 오성 이항복의 어린 시절 악동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동네 골목대장을 하던 그가 어머니의 책망을 듣고 학문에 힘쓴 일이며, 16세에 어머니가 타계하자 제복하고 아예 학궁(學宮)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임진왜란에서 선조왕을 호위하여 임진강을 건너는 충신이 되었음이며, 장인 권율장군의 행주대첩과 더불어 난세의 귀감이 된 일을 두고 말함이다. 요즈음 베스트셀러에 이른 김훈의 『소설 이순신』에도 어김없이 “골목대장으로 범상치 않았던” 어린 시절이야기가 등장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당파싸움이 심했던 사실을 두고도, 우리에겐 골목대장을 선호하는 기질이 대대손손 있어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골목대장을 졸업해야 함을 뜻한다. 그러니까 예컨대 어른들의 정치세계에서는 미숙함이 면죄부도 아니고, 더더구나 골목대장의 행태가 칭송될 수는 없다.


요즈음 정치계 인사들을 둘러싼 거짓말 공방은 골목대장의 목소리 다툼과 꼭 같아 우울하다. 아웃이야 ― 아니야, 싸움은 공이 아웃인가 아닌가에 따라 결판나지 않고, 골목대장이 아웃이라고 외치면 아웃이 된다. 정치인 도덕성 문제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있는 “병역 비리” 운운 테이프의 진위, 테이프의 목소리의 진위, 물론 그 내용의 진위, 그런 판단이 꼭 골목대장의 큰 목소리 따라 결판이 날까 걱정이다. 완전 조작이다 ― 천만에 진실이다, 공이 아웃인지 아닌지, 다음엔 또 어느 쪽으로 튀어나갈지, 보통 사람은 골목대장들 등쌀에 어지럽기만 하다. 국회위원 재보선 때에도, 거물급 인사가 겨우 동네 골목에서 재기했다고 큰 소리였다. 거물급이면 누구라도 정치 1번지 종로에서 “마빡 터지는” 싸움을 붙어보기라도 했어야 한다. 동네 골목은 전장에 차마 내보내기 여린 동지에게 맡겨두고, 쉬운 산술로 좌석 하나라도 바깥 전장에 나가서 챙겨야 했지 않은가. 동네 골목에서는 소인배에게도 너그러운 것이 인심이다. 그러다 보니 골목대장들은 골목만을 맴돌며 큰 소리다.

90년대 후반 한국의 개혁실패 이유를 진단하는 어느 책에서, 개혁세력이 군사독재의 그림자에 몸을 적신 나머지 국민대중을 개혁의 길로 동참시키지 못한 채 골목대장의 오만함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라는 논지를 폈던 생각이 난다. 골목대장들의 큰 목소리 정치로는 우리에게 개혁은 요원할 것이다. (2002년 8월 19일)

Posted by 서용좌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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