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2. 6. 13. 16:28

 


채 알기도 전에 떠난 선배소설가

  채 알기도 전에, 첫눈에 소설가 같았던 소설가가 떠났다. 나눈 말을, 한 말과 들은 말 조각들을 다 합쳐도 5분도 채 되지 않은 채로.

 

  그를 처음 보게 된 자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감하게 단 한 사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소설가들을 보는 자리였다. 내가 찾아본 한 분도 이메일이라는 통신 수단으로 두어 번 연락이 있었을 뿐인, 그러나 매우 고마운 분이었다. 소설책을 내어 펜 사인회를 하는, (초짜가 생각하기론) 정말 대단한 사건의 뒤풀이 자리. 난 그때 소설가라는 신분의 사람들과는 대면한 적이 없었던 진짜 새내기였다. 그것도 늦깎이.

 

  나는 소설 같은 황당한 세계보다는 교양 있어 보이는 학문의 세계를 탐했다. 어린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선 어린 나이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 물론 반전과 돌발을 시행하는 천재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세대의 여자들에게 반전이나 돌발, 더구나 천재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다 참다 참다 못해 글도 되도 않은 글을 들고 소설가들의 세계를 기웃거렸을 때.

 

  나는 지금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여름, 아니 벌써 몇 해 전 여름이었나, 아무튼 어떤 여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여름 날.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조금 어색한 채로 그와 둘이서 사진을 찍었다. 옛 성벽을 바탕으로. 50㎝쯤 서로 떨어져서 50㎝쯤 엉거주춤, 붉은 셔츠에 어두운 등산조끼는 그의 얼굴을 더 검게 했나보다. 하필 여학생처럼 하얀 반소매의 버튼다운 와이셔츠를 입은 내 꼴은 얼굴과는 부조화로 어려보이기만 한다. 어린, 그러니까 어리석은.

 

  어리석게도, 왜 부끄러운 줄 몰랐을까? 왜 둘이서 사진을 찍으라 했을까? 그건 아마 소설가들의 행사에 잘 참석하지 못하는 내가 언젠가 영민하고 내게 참 친절한 후배 소설가에게 “그를 만나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깜짝 놀랄 부탁을 한 일 때문이었나 싶다. 그 사이 소문이라도? 설마. 소문날 건더기가 있어야 말이지. “만나보고 싶은 사람 없어요?”라고 짓궂게 묻는 친절한 말에 그만 덥석.

 

  부끄러울 일은 없다. 평생 다해서 3, 4분쯤 말을 나누고 무엇이 부끄러울까.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부끄럽다. 처음 그렇게 여럿이서 이름도 성도 모르게 이렇게 저렇게 끼어서 만났던 그날 이후, 뜻밖에 상, 하권짜리 정말 무게있는 그의 소설작품이 내게 우송되었다. 신분을 뛰어 넘는, 격동기의 사랑이랄 수도 없는 사랑. 어설픈 한 주인공의 내면의 이야기나 겨우 끄적거리기 시작한 내게 무등산보다 더 크게 짓눌러오던 그 작품의 무게. 기억하건대 작품보다는 훨씬 가벼운 몸무게. 길고 마르고 어두운 얼굴. 옆에 있으면 소설 쓰는 비법이라도 전달될 것 같았던……. 그런 말은 내색해볼 기회도 숫기도 없었던 몇 해. 그 비겁함이 부끄럽다.

 

  비겁한 나는 더는 누구에게도 그의 안부를 묻지 않았고, 굳이 말하자면 나는 평생 성취원칙의 노예가 되어 일중독에 들려 있었다. 난 일을 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내 미미한 능력을 증거해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일에 파묻혀 잘 지낸다는 역설을 증거하기 위해서.

 

  나는 온전하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감성보다는 이성을, 이성보다는 양심을 키우며 살아가는 지성인이고자 하는 자기암시에 들린. 인문학이 학문의 중심이고, 모든 분야에 영향한다는 믿음으로. 오랫동안 뭔가를 쌓아올려야 했지만, 세계수준은커녕 국내수준에도 못 미쳤다. 타인의 눈으로 그 나름대로 모든 것을 이룬 어떤 물리학자가 “더 이상 목표를 믿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 속에 개미가 있는 것처럼 계속 일만 하는 것은 모종의 비극이다.”라고 외쳤던 말이 떠오른다. 개미처럼, 아니면 땅을 파는 두더지처럼 일만하면서, 나는 그가 깊은 병으로 앓고 있었던 줄도 모른 채로, 그를 채 알기도 전에 잃었다. 앓고 있음을 알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병문안을 가서 가장 존경하는 소설가라고 말했을까? 그것이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그에게 눈곱만치의 위안이 되었을까? 어림없다. 설사 존경을 더해 흠모하는 소설가 상이라고 했더라도 그에게 티끌만치의 위안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엇갈림이 운명의 실체다.

  나는 이렇게 그의 뒤통수도 볼 수 없는 지금 책상에 앉아서 비겁하게도 뒷북을 치고 있다.

 

- 『아름다운 인연』, 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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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