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학2012. 8. 23. 23:45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하인리히 뵐 / 서용좌

  안팎으로 열렸다 닫치곤 하는 현관문의 통풍 속에서 성냥 한 개비가 꺼졌다. 두 번째는 마찰면에서 부러지고 말았다. 그녀의 변호사가 라이터를 대주었으니 친절했다, 보호하듯이 손을 그 앞에 대고서. 그래서 그녀는 드디어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둘 다 좋았다, 담배도 태양도. 그건 채 십 분이 걸리지 않았다. 영원, 어쩌면 끝없이 긴 마루의 영원성과 불변성이 시계바늘을 멈추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밀려닥치는 군중, 방 번호를 찾아든 사람들은 슈트뢰셀의 여름 바겐세일을 연상시켰다. 이혼과 여름 바겐세일에서 고르는 목욕수건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두 경우 모두 줄서기인데 - 그녀 생각에는 - 이혼의 경우에 마지막 결정이 더 빨리 고지되는 것이고, 그녀는 빨리 긍정적 답을 듣고 싶었다. 쉬뢰더 대 쉬뢰더. 이혼. 나우만 대 나우만. 이혼. 블루츠 대 블루츠. 이혼.

 

  이 친절한 변호사가 이제 정말 말할 것인가, 그가 말해야 하는 것을? 그가 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말을? 그는 그 말을 했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물론 그는 그녀가 전혀 힘들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 말을 친절하게 말했다. 그 말을 친절하게 한 것은 정말 친절한 일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다음 출두시간에 다시금 법정에, 다시금 줄을 서야 했으니까. 클로츠 대 클로츠. 이혼.

 

  여름 바겐세일에서도 그건 비슷했다. 참을성 있게, 점잖게, 밀치지 않고, 그렇지만 긴장해서 기다리기. 새 목욕수건을 한 장이나마 닳도록 쓰기에는 너무도 늙은 부인이 한 다스 모두를 집어들 때까지, 그리고 이어서 다음 고객이 목욕가운 셋을 집을 때까지. 결국 슈트뢰셀 상회에서는 그 나름대로 독창적인 방식이 있는 셈이다. 뭐든 금방 매진되어버리는 도떼기시장 같은 싸구려 가게는 절대 아니었다. 결국 변호사는 여러 시간을 그녀 곁에 머무를 수 없었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이외에는 다른 할 말도 없는 곳에서. 계단 맨 위쪽의 위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위치를 생각나게 했다. 7년 전에 있었던 시청 앞 맨 윗 계단에서의 위치를. 부모님, 들러리들, 시부모님, 사진사, 이름가르트네 사랑스런 두 꼬마, 드레스 자락을 잡고 있던 우테와 올리버. 꽃다발, 하얀 장미로 장식한 택시, 귀에는 여전히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소리가 남아 있는데, 그리고는 택시를 타고서 두 번째 예식장으로 갔었지,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때는 교회 식으로 했다,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신랑도 거기에 있었다. 계단 아래에서 그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적인 결과 때문에 빛을 발하면서, 약간은 당황해서. 그리고 이날의 두 번째 성공적인 결과 때문에 분명 자부심을 지녔다. 바로 이 계단 앞에서 이 도시의 가장 힘든 주차장들 중의 하나인 이곳에서 차를 세워둘 장소를 발견해냈다는 사실에서. 여러 다른 종류의 성공적인 결과들이 이혼소송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었다.

 

  이제 죽음이 아니라 법정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그것이 그렇다고 덜 엄숙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혼이 고지되는 법정이 죽음을 결정했다면 - 그렇담 왜 최소한 장례식이 거행되지 않았을까? 시신을 안치해놓은 단, 문상객들, 추도 연설은 왜 없었나? 아니면 최소한 결혼을 되감는 예식은? 사랑스런 작은 아이들, 이번에는 아마도 헤르베르트의 아이들일 테고, 그레고르와 마리카는 그녀에게서 드레스 옷자락을 떼어내고, 신부의 화관을 머리에서 벗겨내고, 하얀 옷을 평상복으로 바꿔주고. 장례식까지는 아닐지라도 공식적으로 결혼식 벗기기 같은 뭔가는 있어야 했다.

 

  물론 그녀는 그가 여기에서 그녀를 기다릴 것을 알았다. 죽음이 결정된 마당에 무의미한 토론의 하나일 뿐인데. 그녀가 아들애를 데리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나온 이후로는 그에게서 아무 것도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음을 그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미할 뿐이다. 돈도, “함께 취득한 재산”에 대한 그녀의 지분도, 심지어 명명백백히 그녀 소유였던, 친정 할머니의 유산인 루이 6세 - 몇 세인가는 똑같은 거지? - 때 의자들마저도 원치 않았다. 아마도 그는 어느 날 그녀의 대문 앞에다 그것들을 가져다 놓을 것이다, “불분명한 소유관계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그녀는 의자들은 물론 마이센 도자기 그릇들도 (서른여섯의 한 세트), 결코 어떤 “가치보상”도 원치 않았다. 아무 것도. 그녀는 참 아들애를 데리고 있지 않은가, 물론 잠정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서 다른 여자랑 - 로테였던가, 아니면 가비였던가? - 아무튼 동서생활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가 로테인가, 아니면 가비이던가 (아니면 코니였나?) 결혼식을 하게 되면, 그때 가서는 아들애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나누어야 할 아이 머리 위에 검을 들고 있는 솔로몬 왕도 없었다.) 양육권과 관련해서 이 구역질나는 세부사항들은 정리되고 결정되었다. 그러면 의무적인 방문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정 떼기로 내몰 것이다. (“정말로 생크림을 더 먹지 않으련, 그 새로 산 아노락은 정말 네 마음에 들 거야, 물론 모형비행기도 사주지.”) 하루 동안, 이틀, 아니면 하루 반, 그리고는 아이를 다시 데려다 준다. (“아니, 난 정말 네게 새 아노락을 사줄 수가 없구나, 첫 성찬식에도 안 돼 - 아니면 그게 입교식이었나? - 휴대용 텔레비전도 아냐, 안된다고.”)

 

  담배 한 대 더 피울까? 안 피우는 게 낫다. 이 반회전문이 야기하는 회전력은 그녀로 하여금 새 담배를 피우던 담배에 잇대어 불을 붙이고 싶게 만든다, 지금 예쁜 라이터를 든 이 친절한 변호사가 그녀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하지만 그러한 작은 사소한 일이 헤픈 인상을 강조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아이 문제에 이르면 분명히 탓을 입게 될 것이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 습관은 벌써 이혼 서류에도 기입되어 있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인정하듯이 그녀 자신이 간통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사람에 앞서서, 그 역시 인정해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이혼서류에 창부라고 기입되어 있었다. 여자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안 좋은가, 피울 수 없는가, 피우면 안 되는가, 왜 안 좋은가, 왜 할 수 없는가, 왜 안 되는가 등 헛소리는 반대편 변호사로부터 그녀의 “교육 수준”에도 합당하지 않는 “사이비 여성해방론자적” 야단법석이라고 탓을 입었다.

 

  그가 계단으로 올라오지 않고 초대하는 듯이 팔 흔드는 동작만 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녀가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피우던 담배에다 붙이지 않고 새 성냥으로, 이번에는 여름 바겐세일 (같은 법정의) 반회전문이 끊임없이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은 성냥불로 불을 붙였을 때,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목사님도 등록청 관리도 오지 않았다면, 눈물에 젖은 어머니들 시어머니들도, 사진사도, 사랑스런 꼬마들도 오지 않았다면, 최소한 장의사를 오라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장의사라면 무엇인가를 - 무엇을? - 관 속에 넣어 끌고 가 화장을 해서 어딘가에 - 어디에? - 은밀하게 흩뿌릴 것인데.

 

  아마도 그는 그녀 때문에 약속시간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호커 대 호커와의 합병협상들 말이다, 거기서는 인사문제들을 들어야 했을 것인데). 그러나 그는 정말로 의자 몇 개 때문에 호커 대 호커 협상들을 놓치려들까? 그는 이해를 못했다, 그녀가 그를 증오하는 것이 아님을, 그에게서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음을, 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져버린 것이 아님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낯설어진 것을, 그녀가 잘 알았었고 결혼까지 했던 누군가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모든 것이 성공적이었다, 승진에, 집도 지었다. 다만 한 가지, 죽음을 유예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죽었다는 것 뿐 아니라 그녀도 죽었다는 것, 심지어 그에 대한 추억마저도 실패했다. 그리고 아마도 교회들도 - 또 관리들도 이해 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을 일이었다, 이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이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육신의 죽음 이전의 죽음이라는 것 말이다. 그것은 다만 완전히 낯선 사람이 혼인관계의 침실로 들어오는 것이니, 더 이상 소유하지 않은 권리를 끄집어내려는 낯선 이가. 이 사망증명서를 발급하고 그것을 이혼이라고 명명한 법정의 역할은 목사님의 역할이나 등록청 관리의 역할처럼 그렇게 부차적이었다. 그 누구도 망자들을 되살려 놓거나 죽음을 되돌려 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담배를 던져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눈짓으로 그를 궁극적으로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더 이상 토론할 말이라고는 없었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데리고 어디로 갈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이든파크에 있는 야외 카페로 갈 것이다. 이 시간쯤이면 터키인 여종업원이 막 튤립이거나 히아신스 한 송이가 꽂혀있는 왜소한 청동 꽃병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식탁보를 가지런히 펴고 있을 것이었다. 그곳 - 이 시간쯤이면 - 어딘가 뒤쪽에서는 진공청소기가 돌아가고. 그는 그곳을 늘 “추억의 카페”라 말하곤 하며, 생색내는 듯한 표현으로“섬세하지도 그렇다고 세련되지도 않았지만, 아주 좋았다”고 확인했다. 아니야, 하고 그녀는 다시금 궁극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반복했다, 한 번, 두 번, 마침내 그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실제로 빨간 자동차에 올라탈 때까지. 그는 그렇게 주차장에서 빠져나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눈길을 주는 일도 없이 떠나갔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녀가 늘 보아왔듯이 그렇게.

아직 아홉시 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계단을 내려와 신문을 한 장 사들고 건너편 카페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계단을 비우고 가버렸으니 그 얼마나 홀가분했던지. 그녀는 시간이 있었다, 생각해 봐야할 일이 좀 있었다. 열두시에 아들애가 학교에서 오면, 아이에게 설탕에 절인 체리를 넣은 팬케이크를 만들고 구운 토마토를 곁들여 줄 것이다, 그리도 잘 먹는 것이니까. 함께 놀아도 주고, 숙제도 하고, 어쩌면 영화관에 갈지도, 어쩌면 심지어 추억의 궁극적 죽음을 확인시켜줄 하이든파크에 갈지도 모른다. 아이는 설탕에 절인 체리며 팬케이크며 구운 토마토를 보며 물론 질문을 할 것이다, 엄마가 재혼을 하려는지. 그녀는 아니라고 말하리라, 아니라고. 그녀에게는 죽음은 하나면 충분하다. 다시 또 슈트뢰셀 상회에서 일할 것이냐고도 물을 것이다. 거기 뒷방에서 아이는 과제를 하거나 원단샘플들을 가지고 놀 수도 있었다. 또 그 슈트뢰셀 아저씨가 그의 머리를 친절하게 쓰다듬어 주곤 했던 곳이다. 아니다. 아니다.

 

  카페의 식탁보가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손의 감촉에 좋았다. 그건 정말로 순면이었고, 은색 스트라이프 무늬가 있는 어스레한 분홍빛이었다. 그녀는 하이든파크에 있는 카페의 식탁보를 생각했다. 그때 칠년 전, 처음 것들은 옥수수빛 노랑으로 상당히 거칠었다. 그 다음 에는 데이지 꽃무늬가 프린트 된 초록색, 그러다 마지막으로는 샛노란 단색으로, 한쪽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다. 그는 닳은 부분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녀가 정말로 보상받을, 적어도 만 오천, 어쩌면 이만 마르크쯤의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을 설득하려고 했고, 오늘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 정도는 흠 없는 집에 대한 저당으로 간주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최종적으로 그녀는 그에게 늘 “좋은 아내, 분별 있고, 절약하면서도 인색하지 않은 아내였다고, 비록 불충한 아내”였지만. 또한 “그들의 생계를 구축하는 데 있어 전적으로 적극적이었고 생산적으로” 동참했었고, 루이왕조 때의 의자들과 마이센 도자기 세트는 실제로 그녀의 자산이라고 설득하려 들었다. 그녀가 이 모든 것들 중 어느 것도 가지려 하지 않는 데 대한 그의 분노는 그녀가 슈트뢰셀과 저지른 불륜에 대한 분노보다 더 격렬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싸구려 식탁보 닳은 부분을 조각조각 뜯어서 (아마 오늘도 그랬을 것이다.) 바닥에 팽개쳤다. 마침 차와 커피를, 그에게는 차를 그리고 그녀에게는 커피를 가져오던 터키인 종업원의 의심쩍은 눈길하며 - 그건 그녀의 건강에 대한 위협적인 발언과 비웃듯이 재떨이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재떨이는 말하자면 흉물스러웠다, 어두운 갈색으로, 마룻바닥 색깔에다 - 실제로 벌써 세 개비의 꽁초가 들어있었으니.)

 

  네. 커피요. 그녀는 벌써 다시 한 잔을 마시고는 신문을 넘겼다. 여기 카페에서 그녀는 방해받지 않고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무례하게 건네다 보는 눈길이나 아예 떠밀리는 일 없이. 법원 건물의 끝없는 통로 속으로 우르르 몰려가던 일을 생각했다. 그들은 모욕적이라 느꼈던 것 불쾌했던 것 일체를,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았거나 받지 않았던 것 일체를 가지고 그리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곤 했다. 그곳에서는 죽음을 유예할 수 없었던 상냥한 변호사들과 상냥한 판사들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아무 것도 설명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을 이혼시킨 죽음의 시점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며 미소를 흘리다가 스스로 들켰다. 그건 일 년 전 그들이 그의 사장네 집에서 저녁을 했을 때 시작되었었다. 그가 갑자기 그녀에 관해서 “섬유” 관련업 출신이라고 말했을 때, 그게 꼭 마치 그녀가 카펫 짜는 직공이거나, 베틀 직공, 아니면 일러스트레이터나 된 것처럼 들렸고, 실은 다만 섬유상회의 점원이었지만 그랬다. 그녀는 그 일을 너무도 좋아했다. 두 손으로 모든 것들을 펼쳤다가 다시 개켰다가 하면서, 그건 손에도 눈에도 좋았다. 그리고 구매고객이 뜸한 시간에는 타월들, 침대시트들, 손수건들, 속옷들이며 양말들을 다시금 정돈을 하고, 선반이며 서랍 또는 간에 맞춰서 다시 집어넣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이 상냥한 젊은이가 들어와서는, 그는 이제 사망하고 없지만, 속옷들을 보여주라고 했다. 속옷을 살 계획도 아니었고 (돈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서), 다만 그의 성공체험에 관해서 따끈따끈할 때 이야기할 누군가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야간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치른 뒤 3년 만에 (“저는 전기공학 출신입니다.”라고 했는데 - 그는 다만 전공이었을 따름이었다.) 디플롬 증서를 땄고, 벌써 학위논문 테마를 받았노라고. 그리고 바로 “제 아내는 섬유업 출신입니다”라는 표현은 직접 미술까지는 아니라 해도 공예미술 정도의 느낌을 줄 것이었고, 그녀가 “예, 저는 섬유상회의 점원이에요, 때로는 파트타임으로 돕기도 하고요.”라고 말했을 때 그가 얼마나 심하게 화가 충천해서 거의 병이 날 지경에 이르렀던지. 돌아오는 길 내내 차속에서 그는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단 한 음절도. 다만 핸들만 경련적으로 붙들고 있던 그 얼음장 같은 침묵.

 

  커피는 놀랍게도 맛이 좋았지만, 신문은 지루했다. (“기업가의 이윤은 너무 낮고, 임금은 너무 높다”라니.) 게다가 그녀가 우연히 엿듣게 되는 것들은 모두 법원 냄새를 풍겼다. ( “사실왜곡.” “소파는 분명히 내 것인데.” “아이는 못 빼앗아가게 할 테요.”) 변호사 예복, 변호사 서류가방. 사무실의 급사 한 사람이 서류들을 가져왔다. 서류는 신중하게 펼쳐졌고, 페이지들은 조심스럽게 넘겨졌다. 그리고 정말로, 이제 두 번째 커피를 그녀에게 가져온 젊은 종업원은 손을 그녀의 어깨에 대면서 말했다.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다 지나간답니다. 저는 일주일 내내 울었다고요, 다시 말씀드리죠, 일주일 내내요.” 처음에는 그녀가 화를 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벌써 다 지났는걸요.” 그러자 종업원이 말했다. “그리고 저 역시나 잘못한 쪽이었답니다.” 역시나라니? 무슨 말인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잘못을 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사람들이 내게서 어떻게 그런 것을 아는 걸까? 어쩌면 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그럴까?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으며 미소를 짓고 있어서? 물론 그녀가 잘못을 했다. 이 죽음을 일찌감치 결정하기를 거부했고, 이 치명적인 몇 달을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살았으니. 그가 어느 날 저녁 새 야회복을 가져와서는, 그건 새빨간, 어깨를 깊이 드러낸 스타일이었는데, “회사 파티에 오늘 저녁에 입어요, 우리 회사 사장님과 춤도 추고, 사장님한테 당신이 지닌 모든 매력을 보여주었음 싶네.”라고 말했을 때까지도, 그런데 그녀는 그날 예쁜 유리구슬 장식이 달린 은회색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슈트뢰셀과의 사건이 알려지자 그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당신이 우리네 사장님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을 당신네 사장에겐 죄다 보여주었구먼.”이라고 소리쳤다.

 

  그랬다, 그녀는 그런 짓을 했다. 그가 침실에서 손님방으로 나가고 난 뒤, 그리고 그가 포르노 잡동사니와 채찍을 들고 다시 침실로 되돌아와서는 그의 성적인 성공체험들에 대해서 끔찍한 논쟁을 시작했던 다음날 아침에, 그것들을 그녀는 그에게서 거부했지만 그는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고, 그들은 그의 직업상의 성공체험들이라는 것에 대한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었다. 그가 노이로제에 빠져있다는 것, 거의 정신병이라는 것. 그녀는 그를 그러한 성공체험에 빠지게 둘 수는 없었다, 그에게서 채찍을 빼앗았고, 그를 내몰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 물건은 그녀를 얼음장처럼 차갑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여전히 죽음을 결정하지 않은 것, 아들애를 데리고서 택시를 불러서 떠나버리지 않은 것은 그녀의 잘못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집의 확장에도 동참하고 있었다니. 손님방, 손님욕실, 텔레비전 방, 서재, 사우나, 아동실, 그리고 목욕 타월, 타월, 침대시트, 쿠션용 솜이나 커튼 천들 때문에 슈트뢰셀에게 가서 할인가격을 부탁해보자고 한 것은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슈트뢰셀이 그녀의 눈 속을 깊이 꿰뚫어보며 할인 비율을 20에서 40퍼센트로 올렸을 때, 물론 그것은 그녀로서는 약간 불편해졌다. 그의 눈이 게슴츠레해지며 진열대 너머로 그녀를 잡으려고 했을 때 그녀는 중얼거렸다, “맙소사, 여기서는 안돼요, 여긴 안돼요.” 그리고 슈트뢰셀은 그 말을 잘 못 (혹은 제대로) 알아듣고는 어디 다른 데는 그녀가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그와 더불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 뚱뚱한 대머리 아저씨,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이 남자랑. 그리고 그와 함께 누웠을 때 그는 지극히 행복해했다. 그는 그러는 동안 상점을 활짝 열어놓았고, 계산대도 감시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옷가지를 벗고 입는 동작마저도 그녀에게는 창피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아래층 계산대에서 물건들을 포장해줄 때, 그는 할인가격을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소매가격 그대로 지불하게 했고, 그녀가 문을 잡고 서있을 때에도 입맞춤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확증된 호감에도 불구하고 할인가격을 적용하지 않음”이라는 이 주장을 상대측 변호사는 실제로 슈트뢰셀에게 증언하게 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녀 쪽 상냥한 변호사가 슈트뢰셀이 빠질 수 있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랬다, 그녀는 그 뒤로 여러 번 슈트뢰셀에게 갔었다. “물건을 사려고 간 것이 아니고요?” “아니요.” “얼마나 자주 갔죠?” 그것은 그녀가 알지 못했다, 정말로 몰랐다. 그것을 세어보지 않았다.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장밋빛 방석에 가라앉아버릴 것 같은 불안을 만들어준 것은 슈트뢰셀에게서의 이 부드럽고 감동되고 감동적인 기쁨이었다.

 

  아니다, 그녀는 그에게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지만 그의 구식 풍의 상점은 그녀에게는 제대로 된 상점이었다. 모든 박스들, 상자들, 서랍들 그리고 실제로 오직 모직과 면제품만을 넣어두었던 창고를 알고 있었다. 틀림이 없는 두 손으로 아주 조금 섞여 들어간 인조섬유 올들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일이라면. 아니다, 그녀는 슈트뢰셀이 늘 그렇게 말하곤 했던 도떼기시장 같은 싸구려 가게들에서는 일할 수 없었다.

 

  아니다,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다시는 그 자리에 있지 않는다, 지금은 살아있는 누군가가 죽으면, 그리고 또 다시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으면. 어쩌면 기혼 남자들이 잔인한 방식으로 음란해지는 시대가 온 것이리라. 그리고 연인들은 구식으로 너무도 장밋빛이라고 할 방식으로 부드럽고 행복해 하는 시대가.

 

  “이 보세요,” 그녀가 계산을 할 때 여종업원이 말했다, “이젠 우리가 더 잘 지내게 되는 거예요. 당신은 아직 젊고 예쁜 여자고,” -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 “생이 아직 당신 앞에 놓여있어요, 그리고 아이가 당신을 붙잡아 줄 거예요.” 그녀는 카페를 나서면서 종업원에게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아들애에게 또 호두케이크를 구어 줄 것이다, 가는 길에 재료를 사가지고 가서.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묻는다면, “내가 정말로 이 여자에게 가야하냐고?”(코니, 가비, 로테?) 묻는다면, 그녀는 “아니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틀림없이 정확한 손을 갈망하고 있을 하운쉬더 크렘 주식회사가 있었다, 슈트뢰셀의 오랜 경쟁사였다. 그리고 또 배송회사도 있었다. 거기라면 그녀는 속옷을 펴거나 매끄럽게 펼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때 막 디플롬을 끝내고 학위논문 테마를 받았던 그 호감이 가는 젊은이 곁에서처럼은. 그녀는 설탕에 절인 체리 대신 훈제청어를 집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그것도 좋아하니까. 청어가 프라이팬 안에서 바삭바삭해지고 반죽이 그걸 감아 돌며 갈색이 될 때, 아이는 엄마 곁에 서 있을 것이다. 아마 그녀는 하운쉬더 크렘 주식회사에서 점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정말로 두 손에 의존할 수 있었다. 어떤 섞여 들어간 인조섬유 올들도 그녀의 손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 

원전 : Bis daß der Tod Euch scheidet, in: Heinrich Böll Werke, Romane und Erzählungen 5 1971-1977, hrsg. von Bernd Balzer, Kiepenheuer & Witsch, 1978, S. 504-512. (L 76, Frankfurt/M-Köln, H. 2, 1976)

『하인리히 뵐 Heinrich Boell』, 제11집, 157-167쪽.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