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22. 7. 27. 17:50

    새순이 움트려나 보다. 텅 빈 나뭇가지들 끝에서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렇게 움틀 때를 알고 움을 틔울 준비를 할까 신기하다. 이 아파트에는 나무들이 꽤 많다. 옛날 아파트라서 동 사이가 넓다. 지상뿐인 주차 공간은 많지 않아 라인에서 먼 데다 차를 세운다. 그것도 그대로 좋은 것이, 낮 시간에는 그리 춥지도 않고 마스크 사이로 살짝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는 몇 미터가 시원하기까지 하다. 고층아파트 사이의 공기가 무에 대단할까만, 공기는 공기다. 공기가 그립다니.

    요즈음은 격리가 남의 일 아닌 것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죽 같다. 엊그제 설날 아침에 18,000명이던 확진자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다. 곧바로 20,000, 그리고 22,000을 훌쩍, 오늘 아침에는 27,000을 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대로 2주를 더 연장해서 사적 모임은 6인까지다. 거리두기 때문에 자영업자만 죽는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수당을 받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에게도 생계형 문제가 닥치고 있다. 우선 우리들이 확진되거나 밀접접촉자가 되어 일을 쉰다. 감염 위험 때문에 방문요양서비스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는 더 낭패다. 수급자들이 기저질환이 많다 보니 불안해서 그런다. 그렇다고 방문요양을 중단하면, 중단할 수 있다는 말은, 평소에도 반드시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는 말인가.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있는 수급자들도 있긴 하다. 몸은 좀 불편해도 정신은 말짱한 경우도 있다. 이런 할머니들은 시시콜콜 감독성 멘트를 날려서 힘들다. 우리 센터는 규모가 큰 편이고 시영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보니, 수급자 할머니들이랑 뭔가 한 동아리로 돌아간다. 일정한 수급자 숫자를 유지해야 하는 센터가 저자세이고, 수급자들의 투정도 각가지다. 따쑨 물 쓰지 말어, 한 데도 아니고 아파트 안에서. 이 정도는 기본이다. 심한 경우는 화장실도 막는단다. 여서 물 쓰고 휴지 쓰고 할 일 있당가, 얼릉 코앞에 복지관 갔다 올 일이제. 그런 묘안이 어디에서 나올까.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서 이런 요령이랄까 꼼수만 남은 것일까.

    센터의 어려움도 확실해 보인다. 방문요양을 끊는 집이 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사회복지사가 월 2회 상황을 점검하러 다니는 일도 월 1회로 바뀌었다. 모든 부분에서 감축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평상심을 유지하고 잘 살아간다. 이 상쾌한 공기를 느끼는 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따뜻한 밥 냄새도 좋다. 나를 위해 짓는 밥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지은 밥 같기도 하다. 들어서는 순간 준비되어있는 갓 지은 밥이라니! 훈훈한 냄새를 기대하며 계단을 오른다.

 

    어? 대문에 새 종이가 붙어있다. 오늘이 입춘인가 보다. 입춘대길은 알겠는데 다른 복잡한 한자가 왼쪽으로 붙어있다. 작년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번엔 무슨 글자인가 물어봐야지.

    우선 밥부터 먹고! 그런데 난데없는 달래무침이다. 통새우와 동그랑땡을 야채들과 볶아서 내놓는 이름 없는 이 접시는 어르신이 좋아하는 메뉴인데, 상치가 아니라 달래를 곁들여? 보호자 할머니한테 듣고 보니, 입춘에 영순위로 먹는 채소가 달래란다. 저녁에는 부추전을 부칠 거란다. 향 진한 채소가 입춘 음식이라고, 별것을 다 챙긴다. 하긴 노년의 일상이 밥 먹는 것 말고, 아니 약 먹는 것까지 해서 먹는 것 말고 더 있을까. 수급자 어르신이 식사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면서 함께 먹는 일이 이젠 일상 같이 느껴진다. 내가 아직 학생 때 돌아가셔서 내 먼 기억 속에 훨씬 젊게 남은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우리 아버지는 이 어르신처럼 완전히 흰머리가 되어보신 적이 없다. 흰머리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내 머리카락이 아버지를 닮아서 살짝 곱슬이라는데, 아직은 검고 윤기 나는 이 건강한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할까, 변하겠지. 아버지에게서 보지 못했던 하얀 곱슬머리는 어떤 느낌일까.

    보호자 할머니는 누룽지까지 내오고서야 자리에 앉는다. 누룽지도 어르신 몫이다. 할머니는 사실 대충 먹는 느낌인데, 점심 후에는 큰 잔으로 커피를 마신다. 나도 커피 잔을 들고 마주 앉는다.

 

    아, 대문에 쓰인 한자를 물어야지. 입춘대길 옆엔 무슨 말이에요? 건양다경이라고 한다. 세울 건, 햇볕 양, 많을 다, 경사 경이니, 맑은 날 많고, 좋은 일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는 뜻이란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도 경사죠. 다른 말들도 있는데,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라고 써 붙이기도 해요.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라는 뜻인데, 노인들 집에는 욕심 사나워 보이죠.

    노인들이라고…….

    이제 창문을 자주 열고 해를 들여야죠! 겨우내 유리창 햇볕이라도 길게 들어와서 다행이었죠. 할머니는 말 돌리기 선수다. 말을 하면 그렇다.

    기다리는 마음에서나 말에서나 봄은 시늉이라도 오고 있다. 아니, 아파트 거실 안은 겨우내 봄이다. 어르신은 거실에 들인 화분들 중에서 좋아하는 딱 두 개만을 베란다 유리창 쪽으로 옮겨 놓는다. 둘은 오늘도 그렇게 해를 바라고 있다. 나무들은 흙에 심겨서 물을 받아먹으며 가끔 해를 맞는 것만으로도 새순을 낸다. 나는 화분들에 별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닌데, 덩굴 식물들을 보면 신기하다.

이 덩굴에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쁜지, 별사탕들을 한 움큼 쏟아놓은 것 같아요! 할머니는 은근 꽃을 기다리는 눈치인데, 내가 온 이후로 2년여, 꽃이 핀 것을 본 적이 없다. 상상이 가지 않는 꽃 모양에 슬그머니 폰에서 인터넷을 열어본다. 이름이 호야? 이렇게 엉뚱하게 예쁜 꽃이 덩굴 사이에서? 정말 꽃이 피어봤음 좋겠다.

 

 

    점심 후면 으레 소파에 앉아있는 어르신이 비스듬히 스르르 눈을 감고 낮잠에 빠진다. 딱히 할 일이 없다. 유난히 밝아진 베란다에 나가보니 대청소가 되어있다. 벽에 말라붙어 있던 팥죽 흔적도 말끔히 사라졌다. 팥죽은 지난번 동짓날 사건이었다. 베란다에 내어놓았던 죽을 거두어 오면서 벽에다 뿌렸다 했다. 정월 보름에 장독대나 대문 밖에 차려진 오곡밥을 먹으러 동네를 누빈 기억이 아스라했다. 밥은 집마다 달랐고 아이들은 그것을 재미있어 했다. 아파트 성냥갑 안에서 21세기에도? 웃긴다. 더구나 하얀 내벽에다 뿌릴 것까지야.

    그냥 재미죠. 할머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변명처럼 말했다. 그냥 괜찮은 습속이었다 싶어요. 팥이 귀신을 쫓는단다, 동지죽을 밖에다 퍼다 내어놓고 복을 빌어라! 그러니까 복을 비는 마음으로 죽을 내다 놓았겠지요. 죽을 내다 놓아야 먹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고. 요즘에야 밥이 귀하지 않으니까 미신으로 보이는 거라.

    하긴 누구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야 뭐 미신인들 어떠랴 싶었다. 이 시시콜콜 구식 할머니는 그때 동짓날 말이 옛날엔 동지를 새해의 시작이라고 했단다.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마음 든다는 것이니, 땅 밑에서 움트려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네요.

    아니, 푸성귀들이 꿈틀거려요? 겨울잠 자던 동물들도 아닌데?

    동물처럼 꿈틀거리기야 하겠어요, 어차피 붙박이들인데. 하지만 움직이는 다리가 없다고 해서 풀들을, 식물들을, 무시할 일은 아녜요, 뒤틀든 꼼지락거리든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씨앗도 껍질을 깨뜨려야 싹이든 움이든 틀 것 아니겠어요. 제 몸을 깨뜨리는 움직임을 시작해야 자라나죠. 가만있음 어떻게 살아나느냐고요. 봐요, 나뭇잎들. 이 시시한 덩굴들. 볕을 못 보면서도 날마다 자라잖아요. 초겨울 들여올 때는 고무나무 잎들도 텔레비전을 이렇게나 가리진 않았었는데.

    맞아요, 이거 작년 겨울에 비해서 엄청 자랐어요. 지난 봄 베란다에 내놓을 때는 몰랐었는데 이번 봄에는 못 나가요, 보세요, 두 팔 다 벌려도 모자라는데 베란다에 못 들어가요. 가지들 잘라야죠.

    우리가 훨씬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든가.

하하, 봄 되기 전에 이사를 가요? 이사 같은 건 완전 접었다 하시더니만. 이제 와 고무나무 내놓을 넓은 베란다를 찾아서 이사를 가시게요?

    말이라도, 자르기 아까우니까 말이라도 그냥 그렇게.

 

 

    이사 말을 꺼낸 건 살짝 놀라웠다. 노인들에게 이사란 쉬운 일이 아닌, 어쩌면 금기다. 십여 년 전엔가는 이분들도 이사 맘을 먹은 적이 있었더란다. 어르신 은퇴 후 무료한 도시생활에 염증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다들 그런다. 요즘엔 은퇴 후 농막을 갖는 것이 로망이라고들 한다. 일찌감치 농가주택을 가진 우리를 부러워하는 이웃들이 참 많다. 남편은 생각이 앞서는 사람 같다. 아무튼 어르신네는 새 환경에서 적응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어 차일피일, 그러다가 기회는 아예 사라졌단다. 할아버지한테 갑자기 인지문제가 생길 것을 예감이나 했을까. 이미 크고 작은 혼동을 겪게 된 노인들이 언감생심 무슨 이사인가.

    이 할머니는 안전안내 문자가 오면 실종신고만 본단다. 나는 수급자 어르신들 집에 가면 습관적인 인사처럼 확진자 숫자를 말해준다. 근년 들어 그게 뉴스 일 순위다. 좀 보세요, 광주 오늘 800명을 넘었어요, 829명이라고요, 라고 해도 이 할머니는 신청도 안 한다. 설날만 해도 500명이던 것이 하루에 100명씩도 더 넘게 계속 계속 올라간다니까요, 금방 두 배예요, 라고 해도, 전염성을 어쩌겠어요, 그러고 만다. 대신 실종신고 문자를 보면 숨이 멎는단다.

    여기 보세요! 경찰청 안내, 서구에서 실종된 김oo씨(여, 79세)를 찾습니다. 157cm, 57kg, 분홍색 내복, 꽃무늬 조끼, 검정바지. 그러니까 이 겨울에 겉옷도 잠바도 안 입었네! 여기 또, 북구에서 실종된 이oo(남, 82세)를 찾습니다. 162cm, 53kg, 파랑색 잠바, 검정 바지. 뭐야, 남자가 키도 작네, 마르기도 하고……. 지 선샘, 정말 내가 왜 이럴까. 실종신고를 계속 계속 모아두거든요, 찾았다는 후속 소식이 올라올까 싶어서. 그게 꼭 한 번, 일 년 내내 두고 보아도 찾았다는 소식은 단 한 번뿐이었어요. 다들 어디로 사라져서 어떻게 끝나는 걸까.

    실은 온 나라가 마스크를 배급처럼 요일별로 사러 다니던 시절, 그때는 내가 이 댁에 다닐 때가 아니었다. 이분들이야 외출할 일들이 별로 없으니까 몇 번은 요일을 지나치다가, 할머니가 큰맘을 먹고 약국에 가려다가 진짜 난리가 났었단다. 아파트 마당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관리실 쪽에서 큰 소란이 나서 돌아다보았더니, 경비아저씨가 바로 이 어르신을 붙잡고 있었단다. 어르신이 비틀 걸음으로 뒤따라 나왔던 모양인데, 외투도 안 걸친 모습을 경비아저씨가 곧바로 보고 붙들었으니 망정이지……. 사고는 순간에 일어난다. 대문 안쪽에는 ‘집에서 기다리세요!’라는 문구와 예쁜 집 그림이 붙어있다.

 

    이거 좀 보세요, 여기! 할머니는 여전히 실종신고에 가 있다. 광주경찰청, 광산구에서 실종된 김oo씨(여, 91세)를 찾습니다. 150cm, 45kg, 티셔츠, 몸배바지, 밤색 슬리퍼. 이 정도면 그냥 울고 싶어. 추운 겨울이에요. 입춘이라 해도 밤엔 영하의 날씨가 며칠째 계속인데. 밤을 잘 이겨낼까? 어려서, 우리가 아주 어려서는 거의 아버지 혼자서 신문을 보셨지요. 밥상에서 한마디씩 하시는데, 어느 겨울날, 저런 저런,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하시는가, 어젯밤에도 다리 밑에서 행려병자가……. 우리는 그다음 말을 듣지 않았지요. 잽싸게 자리에서 피해버리거나, 그러지 못하면 머리를 쥐가 날 만큼 경직시켜요. 그럼 아무 소리도 안 들리죠. 그렇게 소리를 듣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기술은 학교에서도 써먹기 좋았어요. 듣기 싫은 수업 시간 있잖아요. 가끔이지만 어떤 싫은 말들, 애들이 조른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들도 있었어요. 그럴 땐 머리를 쥐가 나도록 웅크리는 거예요. 그럼 소리들을 안 듣고 지나가죠. 그냥 멀쩡하게 앉아서요. 나중에는 책에 쓰여 있는 것을 대충 그대로 말해주는 선생님 앞에서도 귀를 닫았죠. 심심해서요. 대신 다른 나라에 가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라니. 이 할머니는 가끔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귀를 닫고 소리를 일부러 안 듣는다고? 소리라는 게 저절로 들리는 것인데 그걸 안 들을 수도 있다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흘려듣는 학생들이야 많지만, 일부러 안 듣는다고? 그건 말도 안 된다고 내가 우긴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를 어떻게 닫느냐고. 할머니는 웃고 만다.

 

    어르신은 미동도 없다. 깨워야 할 시간이다. 다 같이 거실로 자리를 옮긴다. 텔레비전은 거의 소리가 없는 채로 늘 켜져 있다. 오늘은 어제의 대선후보들 토론에 관한 이야기로 뒤범벅이다. 앗, 속보다. 화재다. 내 고향 충청도다! ‘충’자만 봐도 고향 생각인가, 아니, 화재란 이곳 현장이 공포다.

    생활 쓰레기 처리장이니 주택 동네보담 훨 낫네요. 나는 안심해서 말한다.

    그러네. 새벽이라 사람도 안 다쳤고! 불이 꼭 나야 한다면 참 다행이네요! 아니, ‘꼭 나야 한다면’이란 말 참 우습네. 오늘은 죽는 뉴스가 아니어서 넘 고맙네요. 아침에 일하러 나갔다가 일터에서 죽어 돌아오는 젊은이들, 아, 그런 뉴스 나오면 안타깝지, 거의 살해당한 거니까 정말 원통하지. 어디서더라, 일 년이면 일터에서 죽는 사람이 몇이라 했는데. 하루에도 다섯 여섯 사람이 죽는다던가. 일터에서 죽어 퇴근을 무덤으로. 지 선샘, 인터넷 한번 찾아봐요!

    뭣 하러요, 맘 아프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가만히 네이버를 열어본다. 2021년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숫자…… 아, 설마, 설마가 사람 죽인다더니, 설마 2,146명이다. 사람으로 200을 넘으면 상상이 안 가는 숫자다. 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운 숫자?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죽는다. 병도 아니고 그냥 사고로, 교통사고도 아니고 일터에서 일하다가. 추락사만 305건이라고 나온다. 날마다 한 사람이 추락하여 죽는다. 아뿔싸! 이 숫자를 말해? 말해서 뭐 해? 모르는 척하자.

    휴우, 그나마 산재사고에는 보상금이 있긴 하다. 그래봤자 보상금도 차별이 너무 심한 나라다. 하지만 케이 팝, 케이 문화에 케이 방역까지. 수출도 잘 되고, 심지어 수출 강국 운운하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맞잖아. 모르겠다.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니까 상황이 바뀐다. 산책 나가실까요? 오늘 바람 안 불어요. 그리 춥지도 않고요, 네? 어르신은 살짝 웃을까 말까 하는 표정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낸다. 이런 순간에는 말보다 표정이 더 중요한 소통이 되는 것 같다. 잘 듣지 못하면 말 대신 표정이 발달하나? 일단 산책이다. 할머니로부터 도망가자. 오늘은 입춘대길 좋은 날이라면서 계속 우울한 이야기에 빠져있다.

 

 

   에는 언제나처럼 몇 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나란히 앉아있기도 걷고 있기도 하다.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이 할아버지는 무관심이다. 우선 청력이 안 되신다. 천천히 걷는 걸음을 함께 걷다 보니 온갖 것이 눈에 들어온다. 새순들이 정말 보인다. 망울들이다. 어떻게 공기 중의 온도를 알고 반응을 할까. 나는 아직 추운데, 내가 추위를 좀 타는 편이긴 하다. 더러는 오래된 나무들인데, 나무껍질로 보아서는 죽어 보이는 나무들에게서조차 새순들이, 새순의 징후들이 보인다. 금목서는 늘푸른잎을 지니고 있지만 오히려 푸석해져 있고 봄 준비가 늦다. 눈비가 적어서인지 지난해 직박구리가 깃들어 살며 배설해놓았던 흔적들까지 말라붙어 있다. 황홀한 향기를 주던 꽃을 피우던 시절이 아득하다. 하지만 곧 변화를 탈 것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일는지.

    그러다 보면 할아버지는 집 쪽을 향한다. 산책은 시늉이다. 시늉도 다행이다. 바깥옷을 챙겨 입는 것도 운동이고, 덧입는 순서가 문제랴. 장갑이며 마스크는 물론, 머플러며 모자까지도 둘렀다 벗었다 그 자체도 운동이다. 노인들에게는 움직임이 그대로 운동이다.

 

    텔레비전도 꺼져있는 거실에 할머니가 그대로 앉아있다. 시장에라도 나갔나 싶었는데 아니다.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손을 꼼꼼히 씻고 옷을 다시 갈아입고는 그대로 방에서 쉬겠다고 침대에 눕는다. 간식은 좀 있다 챙기기로 하고 다시 거실로 나간다. 오늘 살짝 좀 많이 걸으셨는지 방에서 쉬겠다시네요. 근데 뭐 하셨어요? 티비도 안 보시고, 그렇게 그냥.

    또 들어왔어요. 안전 문자! 영하에 티셔츠 바람으로 사라지는 노인들 너무 불쌍해요. 사망은 사망인 줄 알기나 하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사라지느냐 말이에요. 근데 60대도 있었어요. 60대에도 치매가 있나? 집에 혼자 있다가 사라지는 거겠죠? 어떻게 살던 동네에서도 길을 잃나.

    다시 또 걱정은 길 잃는 노인들로 옮아간다. 과민할 정도이다. 어떻게 달랠까. 하긴 이 할머니는 수급자가 아니라 수급자의 보호자일 뿐이다. 내 소관이 아니다. 내게 좀 친절한 할머니라고 해서 내가 어쩔 도리도 의무도 없다. 아니다, 걱정을 좀 덜어주자는 묘안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노인들은 어쨌거나 집에서 사라지는 것이니까, 요양원에 보내져서 갇혀있는 노인들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말해줄까 보다. 남편 친구들만 봐도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 경우가 꽤 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근무하는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판검사도 심지어 의사도 부모를 시설에 의탁한단다. 누구라도 자신의 일상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데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볼 수 있는가 말이다. 요양원에 있으면 적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잘 재운다는 말도 있다. 코로나 시절이 되어서 요양원은 출입금지 시설이니까 감옥 그대로다. 오래 사는 것이 감옥 갈 일이다. 감옥 갈 일이면 죄다. 무기수. 먹을 것이 있고 깨끗한 잠자리가 있는 것만 다를 뿐, 고려장이다. 산속에 버려져 빨리 끝나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다. 요양원 이야기는 상황을 더 나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이 할머니는 요양원 노인들까지 걱정할 것이니까. 하등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들, 산재사고며 아무튼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에까지 목을 맨다. 실질적인, 뭔가 해결 가능한 염려가 아니다.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걱정을 해도 올 것은 오고, 걱정을 안 해도 올 것은 온다. 평을 하긴 좀 그렇지만, 굳이 말하자면 뭔가 생산적인 것이라곤 없다. 아파트 생활 몇 십 년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살고 있으니 재테크도 꽝이었겠고. 이제 와서는 온전치 않은 남편에 대한 배려 때문에 이 낡은 집을 고수한다니.

    아무튼 재테크는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해둔다는 것이 남편과 나의 원칙이다. 그래서 기어코 건물주가 되었고, 편한 아파트 대신 3층 한편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또 집에서 3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농가주택은 너른 밭이 주무기이다. 처음 그 밭에 서 있던 감격, 감격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코와 눈은 정직한 기억을 알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대한 실망감보다 더한 것은 축사가 있었던 자리에서 넘실대는 지독한 냄새였다. 냄새만이 아니었다. 발아래 땅은, 그 흙은 짐승들의 배설물 흔적으로 뒤범벅이었다. 환경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사람이라, 이제는 곧 감자 도랑을 골라주고, 계란껍질이며 좋다는 것 다 가져다 쌓아둔 비료도 흩뿌려야 할 때임을 안다. 멋대로 자란 봄동이라도 캐오면 이집 저집 나누어서 좋다. 집은 며칠 잠을 자도 좋을 만큼 보수되었고, 무엇보다 큰길에서 멀지 않은 지리적 조건은 언젠가는 크건 작건 복덩이가 될 것이 확실하다. 지금이야 불편한 것이 많지만, 참자, 견디자. 아직은 베이스를 넓히는 데에 몰두하는 거다! 최소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노인이 어떻게 살든 흉볼 일은 아니다. 나도 우리도 노인들이 되어가는 것을 어쩌지는 못한다. 노인이 되어 죽는다, 그것이 진리다. 그것도 다행스러운 코스일까. 갑자기 닥치는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일 것이다. 간호사의 남편도 또는 부모님도, 의사의 아내도 또는 부모님도 코로나를 이기지 못하고, 더러는 의사 자신도 세상을 뜬다. 엄마의 담도암도 엄마나 우리들 탓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미리 절망을 말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라는 철학자의 이 말은 여러 선생님들한테서 들었다. 특히 고2 때 담임 선생님 말로는 ‘종말이 온다 해도’ 안 올 수도 있으니까 계속된다고 믿고 사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고! 이익! 종말을 믿고 탕진해버리면 종말이 오지 않았을 때 어떡하느냐고! 수긍이 가는 말씀이었고, 우리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그리 알고 살아간다. 그런데 최근에 잠깐 그 해석이 너무 시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익이란 결과를 말하는데, 어쩐지 이 격언은 태도를 말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멋있는 철학적 문장이 세속적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명언은 명언이지만.

    게다가 그 사과나무 명언은 낭패감을 불러온 적이 있다. 내가 언젠가, 무슨 경우였더라? 아무튼 내가 좀 아는 척을 하고 싶었을 때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슬쩍 말했다가 딱 걸렸다. 이 집 할머니가 다른 말을 했다. 그게 스피노자가 아니라 루터의 말일걸요. - 루터요? - 예, 그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가톨릭에서 파문당한 사제요!

   아는 것이 병이다! 이 할머니는 가끔 그것을, 아는 것이 병임을 상기시켜 준다. 사과나무가 스피노자의 말이면 어떻고 루터면 어떤가.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 루터라는 이름을 콕 짚어서 알려줘야 했는가 말이다. 나는 순간 반박할 말을 찾았다. 사과나무를 루터가 말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누가 말했거나 좋은 말은 좋은 말이죠. 하지만 루터는……. 얼른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계속했다. 그래요, 누구면 어떤가. 루터가 직접 그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도 없잖아요. 다만 고향에, 독일 어디 시골 ‘루터의 집’에 그리 새겨져 있다고 하니까. 애초에 엄청 인기 있던 신부였잖아요. 성서 강독 교수로서도 완벽했었고, 무엇보다 어려운 라틴어 대신 쉬운 독일어로, 우리나라 같으면 한문이나 영어를 안 쓰고 순 우리말로 설교를 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신부님이 어찌 결혼을 하고, 그것도 파계한 수녀님과…….

    결혼, 그거야 나중 일이었죠. 세속의 아버지에게 손자들을 안겨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대요. 파계했더라도, 파계했으니까, 수녀들도 인간적 권리는 있는 것이고. 어쨌거나 루터가 하느님의 구원을 의심한 적은 없었으니까. 임종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되뇌었다는 성경 구절 아세요? 하느님께서 세상에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으리라, 그런 비슷한 구절인데, 난 잘은 모르잖아요.

    네, 그거 있어요, 요한복음에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그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다, 비슷하게라도 어떻게 아세요? 신자도 아니라면서요.

    성경 공부야 젊었을 때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기억에 남은 구절도 있는 것이고.

    맞아요,  신자 다 되셨네여.

    말을 하다 보니 부끄러워졌다. 내가 신자라서, 신자라고, 이 할머니를 좀 아래로 보며 말한 것 같았다. 고백하지만 나는 C학점도 받기 어려운 신자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나도 모르게 성호가 그어지곤 했다. 늘 반성의 마음은 있다. 수녀님의 형제자매이면서 게을러터졌음에 부끄럽다. 알면 무엇 하는가.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을 때, 돌아가셨을 때, 그런 때나 기도에 매달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도 작은언니가 수녀님이니까 기도를 잘하실 테지, 하는 의타심이 컸다. 그러다가 곧이어 막상 우리 수녀님이 아팠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늘 실천이 부족하다. 밥을 먹을 때,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정도다.

    습관적으로 판에 박은 기도문이 튀어나온다고 해서 내가 그리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흔한 보통 사람, 현실적인 사람이다. 스스로 현실적이라고 말하다 보면 삭막한 느낌도 든다. 현실의 반대는 꿈인데, 꿈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내 꿈은 현실적이었던가. 남편에게 홀렸을 때 무엇보다 그의 무한 생활력을 보고 매력이라 느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기도 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한에서 현실적으로 유불리를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 그것이 어때서. 그런데 남이 말하면 이기적이라고 흉보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말은 어렵다. 말의 뜻은 말하기에 따라 듣기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때문에 느닷없이 가벼운 다툼도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설 며칠 전이었다. 남편이 저녁에 늦는대서 게으름을 부리고 뭐 적당히 사 먹고 말지 싶어 편의점에 갔다가 세탁소 언니를 만났다. 웬일로 안쪽 한편의 옹색한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서 누구랑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더니만, 핫바만 들고나오려던 나를 불러 앉혔다. 웬 맥주, 추운데, 하면서도 나도 의자를 당겨 앉았다.

    동네 사람이 아닌지, 처음 보는 아줌마는 이런 시절에 화장기가 좀 과했다. 그런데 그 빨간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라는 게 가관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지 그럼. 세상사 안 그래? 당근 제 식구들 감싸게 되는 거지! 아무려나, 집값이 고공행진이야. 세금 폭탄은 어쩌구…….

    먼 말이 그래? 집값 올라서 누가 싫어하간디? 가만 안거서 5억이 10억 돼서 나쁘달 사람 누구여? 집값은 올라라 올라라, 세금은 아깝다, 건 아닌겨. 세금 덕에 늘그막에 가용돈 걱정 줄잖여. 기초 받는 노인들 은근 많더만. 우리도 곧 노인이여! 세탁소는 지원금을 편들었다.

    어느새 내가 끼어들고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거라니, 좀 어폐가 있소. 힘 가진 사람덜이 팔이 굽는 대로 즈그 편 부자덜만 감싸불먼 된다요? 힘없는 가난뱅이덜은 어짜라고! 긍께 우덜은 부정식품이라도 묵어야제이. 여그 편의점에 부정식품 싼 놈으로 조까 없으까?

    3층, 왜 그래, 그만 혀! 가난하도 안한 사람이 왜 흥분혀! 세탁소가 달랬다. 둘 다 놀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바 아줌마도 힐끗거렸다. 머쓱해진 나는 냉큼 일어났다.

 

    한 블록도 안 되는 거리, 바깥바람이 찼다. 그나저나 내가 세탁소와 편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순 전라도 말이 튀어나온 것이 신기했다. 사람들은 말 때문에 나를 서울 출신으로 아는데 웬일이었을까. 이제 서울 가면 순 전라도 아짐씨라 하게 생겼다.

    보도의 돌멩이가 발끝에 걸렸다. 엄지발가락이 아팠다. 구르는 돌멩이 같은 인생, 밑바닥 인생이 최근의 화두였다. 극빈에다 못 배운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그런 게 필요한지 그조차 모른다고, 티비에서 그런 말 때문에 한 며칠 술렁였다. 어쩐지 불편했다. 고졸 간호조무사로 사회 첫발을 내딛던 시절, 못 배운 채 극빈했던 나는 자유를 알았을까. 24시간 돌봄 놀이방에 백일 된 아기를 맡기고 출근하던 가난한 엄마는 자유를 알았나. 중간에 야간이라도 대학을 다녔고 경차라도 내 차를 끌고 다니는 지금은 자유를 알까. 자유가 뭘까. 아리송했다. 가난한 자는 모르는 자유! 맞다, 이것이 명언이다. 밤중에 무지개 타령을 말자. 애꿎은 보도블록을 쿡쿡 찼다. 쓸쓸한 마음으로 집에 올라오니 빈 방이 유난히 텅 비어있었다.

 

    남편은 그리 늦지는 않았고, 오도카니 앉아있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왜 저녁도 안 먹은 폼으로 그러고 있어, 좋아하는 티비도 안 보고? 그리 묻는 남편이 그날따라 맹맹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여보 당신은 자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뜬금없이 대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둘이 함께 일했던 병원의 원장이 큰 병원으로 들어가는 통에 순간 실직을 맞았었다. 첫 직장에서 그리 쉽게 실직이라니, 엄청 충격이었다. 곧 다른 병원에 취직을 했지만, 남편은 투잡 대신 저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해냈다. 철밥통으로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니까 자유로울까. 직장에는 사다리가 있잖은가. 남편은 기껏 집에서 채널 독점이나 하면서 자유를 누리는지도 몰랐다. 퇴근할 때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 프로라도 보고 있으면 남편은 화들짝 채널을 바꾸곤 했다. 그런 델 왜 보냐고! 신문 방송이란 대중이 비판적 생각을 못 하도록 서커스를, 예능이다 트로트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입만 열면 ‘정치에, 공공의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더 악한 놈들한테 지배당한다고’, 누구랬더라, 난 참 외국사람들 이름에 약하다, 암튼 고대부터 내려온 불변의 진리라고 했다. 둘이 사는 집안에서도 자유는 구겨지기 십상이었다. 남편은 이런 내 기분을 모르는 거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모른다. 밖에서고 안에서고 구겨진 밤이었다.

 

 

    오늘따라 세 시간이 좀 지루하다. 잠깐의 산책이 움직임의 전부였다. 땅 위를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연둣빛 기운들을 바라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새순이 꿈틀거리는 봄날들엔 일단 대문을 열어야 한다. 나야 정해진 시간이 되면 훌쩍 일어서서 나가면 끝이다. 몸조심하세여! 낼 봬요! 아님, 담 주에 봬요! 그다음은 정적일 것이다. 집안에 활기라곤 없는 노년. 보도 듣도 않는 텔레비전이나 틀어져 있는 답답함을 어쩌고 살까. 코로나도 일상이 되어가면서 무디어지고 있고, 무디어진 만큼 무서움이 덜해간다. 무서워져 가는 것은 정치판 뉴스들이다.

    요즘 참 어지럽네. 하늘 높은 거드럭거림에 업신여김에 이런 저런 분노에. 하지만 이것은 내 생각인데요, 분노는 힘이 되지 못해요. 자조에 빠지게 되거든. 지금 머릿속에서 맴도는 시, 옛날 시인데, 눈이 컸던 김수영, 들어볼래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이 할머니는 심심하면(?) 시다. 눈 큰 옛 시인을 내가 어찌 알아. 근데 시가 뭐 이러나. 왕궁, 왕궁의 음탕함? 난데없이 왕궁?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다. 아까처럼 길 잃은 노인들 걱정이 백번 낫겠다. 할머니에게 들킬세라 속으로 기도문을 왼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하느님은 우리를 유혹과 악에서 지켜주실지 모르나, 뉴스는 구덩이로 도배된다. 단순한 불운으로 무너지는 건물 아래에, 아님 필연적인 일, 밥벌이를 하던 중에 느닷없이 펄펄 끓는 용액 속으로, 기계의 소용돌이 속으로. 뉴스를 바꿀 수 있는 기도가 있다면 좋겠다. ‘야훼여, 모르는 체 마소서. 나의 힘이여, 빨리 도와주소서.’

    그렇게 억울하게 속절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저절로 여물어 내린 토지에서와는 딴판으로 양분이 없어요. 울분만 쌓여있을 걸요.

    울분만 쌓여있는 땅이라고? 그럼 어떻게 새순이 나랴. 가슴이 덜커덩, 이내 의기소침해짐을 느낄밖에. 이건 내가 아니다. 어려움을 참고 노력하면 분명히 대가는 온다고 믿으며, 단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내가 왜 흔들리는지. 나는 현실에 뿌리내린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가르침은…… 이제는 무용지물인가.

    아냐, 울분보다는 분뇨, 그래 소똥이 쌓인 게 백 번 천 번 낫다. 올봄엔 우리 소똥 밭에 사과나무를 심자고 해야지. 웬 사과나무? 남편이 물으면, 아침마다 사과를 따먹는 상상이 즐거워, 라고 말해야겠다. 산림조합에 사과나무 묘목이 나올까. 옥천 묘목시장까지 가야 하려나.

 

    드디어 태그 시간이다. 몸조심하세여! 담 주에 봬요! - 주말 잘 지내요, 지 선샘!

아, 이 신선한 바깥 공기. 차로 바로 가지 않고 큰 나무 둥치에 기대어 본다. 나무 아래는 달콤한 수액의 향기가 섞여 코끝이 촉촉해진다. 눈이 사르르 감기며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온통 연두다. 이 봄에 우리 농막에는 새 식구들이 늘 것이다. 사과나무 묘목은 두서너 그루 흙 많이 붙은 분달이로 사다가 돋아놓을 테다. 덩달아 고목나무에서도 새순이 날 것이다. 죽은 나무에서는 어떤 순도 움틀 수 없다는 너무 확실한 사실을 비껴가는 달콤함. 그래, 그 달콤함에 기대어 살아가는 거야. 누가 뭐래도 봄에는 새순이 움트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백목련은 우아한 자태로 시선을 모을 것이고, 개불알꽃들은 그 푸르스름 작은 몸으로 여럿이 함께 마른 풀잎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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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 『월간문학』 641호 (2022년 7월호), 183~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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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