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22. 4. 12. 15:51

 침묵과 침묵 사이 

 

[가만보인다. / 산 것들나무들 꽃들 사람들, / 하나같이 햇빛 어딨어빈자리 어딨어목말라 목을 뺄 때 내색 않고 옆에서 태연히 식던 꽃이 누구였더라? / 삶이 뭐냐 따위는 묻지 않고. //
                         
                        황동규 누구였더라?」 중에서

 

 

    침묵이 수다로 바뀌는 일은 가끔은 생각 보다 쉬웠다. 오후 재가요양 ‘어르신’네 집 이야기다. 어떻게 된 게 이 집은 뭔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햇수로는 3년차이지만 속내를 잘 몰라서다. 그런데 여름 들어 이 보호자 할머니가 수다다.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이게 몇 번째 송이인 줄 아세요? 저 가느다란 첫 줄기에서 어쩜, 상상이나 되세요? 이건 확실히 어디서 날아온 꽃씨라니까요. 저쪽 내가 씨 뿌려놓은 나팔꽃은 푸르스름 보라, 애잔하게 몇 송이 피다 말더니. 요놈들은 완전 다른 진분홍, 분명 개량종이죠? 개량종이라 이리 튼실한가!

    이 줄기를 모두 합치면 몇 미터나 될까요? 베란다 천장까지 2미터, 거기서 창틀 위로 건너간 1미터, 또 뻗어나간 줄기는 3미터는 되죠. 그것이 두 줄이다가 한 줄은 다시 돌아왔으니, 10미터는 훨씬 넘죠. 한 줄기에 스무 송이 넘게 피었다니까요. 아니 또 중간에서 돋아난 줄기도 3미터 넘게 뻗었죠. 오고가고 그러다 만나서 이젠 엉클어져 버렸어요. 칠팔십, 아니 백 송이쯤 되나 봐요, 세상에나.

 

    나는 꽃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흘려들을 밖에. 그렇게 혼잣말이 된다. 혼잣말이 되더라도 이 답답한 할머니의 수다는 침묵보다는 낫다. 아니, 말해도 안 들으니 침묵과 뭐가 다른가. 아니, 수다가 훨 낫다. 아무 말 없이 가만있으면 혹시 내게, 요양보호사에게, 불만이 있어 어둡나 살짝 걱정도 된다. 물론 불만을 말한 적은 없다. 신기하게 한 번도 없다.

    아무튼 한두 번도 아니고 여름을 내내 나팔꽃 하나로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꽃이 밥 먹여주나 말이다. 꽃들은 보통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원래 화분 가꾸기를 좋아했었다는 어르신은 베란다로 나가면 닫힌 말문을 열게 하기가 쉬웠다. 어르신도 한번 침묵을 깨면 한참씩은 말을 하신다. 말 대접으로 또는 심부름으로 화분을 사다드리기도 하고, 또 집에서도 한두 개 가져다드리기도 했지만, 그건 나한테는 그냥 인사다.

    어느 날 내가 백장미 화분을 무겁게 사들고 들어갔을 때 보호자는 놀라워했다.

    아니, 무슨 화분이에요? 무겁기도 하겠구만!

    아, 어르신이 사다 달라고 하셨어요.

    예? 화분을 사다 달라고요?

    네, 지난번 산책하다가 동네 화원엘 가자고 하시더니, 거기 백장미가 없다고 낙담하시더라고요.

    백장미를? 백장미를 찾았다고요?

    네, 제일 좋아하시는 꽃이라고. 해서 제가 집 근처 큰 화원에서 사다드릴까 물었더니, 그러라고요. 돈도 주셨어요. 남으면 아무거나 더 사라고요. 이 제라늄도 샀…….

    재밌네. 뜬금없이 백장미라고? 하긴 요즘엔 호·불호가 사뭇 바뀌니까.

    할머니는 다시 혼잣말로 들어갔다, 말을 나누다 말고.

 

    그러고는 여름 내내 어르신은 백장미 화분만 지켜보곤 했다. 겨우 한 두 송이가 피어났을 땐 정말 백장미가 맞다고 좋아하셨다. 어르신에게 다른 화초들은 없었다. 나팔꽃 송이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피어나도 없는 꽃이다. 그러니까 단 두 사람이 살면서 나팔꽃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한 사람은 나팔꽃 보는 일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 다른 한쪽은 나팔꽃이 보이지도 않는지.

    두 분 신기하세요. 한 분은 나팔꽃만, 한 분은 백장미만 보시고!

    …….

    불리할 때 입을 닫는 것은 이 할머니의 특기다.

    두 분, 말씀이 너무 없으세요. 서로 말씀하시는 것 못 봤네요. 두 분만 있을 때도 그러세요?

     …….

    싸우지도 않으세요?

    그런 거죠, 뭐. 그저 길손들이니까.

    네?

    길가다 만난 사람들, 길손 몰라요?

    부부를 어떻게…….

    길손이라 해서 섭해요? 어떤 인연이더라도 서로에게 손님, 함께 걸어가는 길손 맞지요. 삶이 뭐냐 따위는 묻지 않고. 목말라도 그냥.

    갑자기 삶은 무슨 말씀?

    아, 어떤 시 구절.

    무슨 시씩이나! 머쓱해진 내가 입을 닫았다. 그럴 때가 많다.

    할머니는 에코백을 들고 나간다. 어르신은 아까부터 고개를 비뚠 채 잠들어 있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다. 뭔가 모를 답답함에 움직이지 않아도 덥다.

 

 

    여름이라지만 왜 이리 더울까. 참을 수 없는 더위는 없다고, 그리 알고 살았다. 그에 비해서 참을 수 없는 추위는 확실히 안다. 안다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 겨울 허허벌판 서울까지 올라가서는. 그때 구들장 따뜻한 엄마의 방을 그리며 눈물이라도 한 방울 찔끔거리면 더 추웠다. 빌딩의 숲은 추운 여자아이에게는 전혀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바람 쌩한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름이 되면 서러움이 덜했다. 원래 더위를 잘 견디었나 보다. 그런데 이 여름에는 덥다. 다이어트를 못해서 살이 찐 때문일까, 추운 방을 떠나 산 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일까.

 

    바깥세상이 코로나로 어지러운 데 비하면 개인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지냈었다. 그러다가 덜컥 큰 걱정이 생겼다. 지는 알아서 갈 테니께 아프지만 말게 해주셔유, 라고 기도하신다고, 딸도 수녀님인데 내 기도 안들어주시겄어, 라며 여유를 부리시던 어머니! 다른 어머니들처럼 고향에 홀로 살고 계셨다. 당숙의 오랜 친구가 70대인데도 시골에서 개인병원을 열고 있으니까, 어머니는 그 병원에 들락날락하시며 이런저런 영양제도 맞으시면서 큰 불평이 없으셨던 터였다. 4월에 시작된 백신접종도 일 없이 마치셨는데 그런 일이 터졌다니. 어버이날 즈음에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소화가 잘 안되아야, 하시는 말씀 따라서 위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별일 없었다. 연세에 비해서는 깨끗하신 편입니다! - 네, 감사합니다. 다음 날엔 버섯전골 집에도 갔었다. 부드러운 팽이를 골라가며 드셨다.

    그러다가, 막상 그러다가 정말로 큰일이 터졌다. 식사를 점점 못하시고 몸은 이상해진다고, 무엇보다 배가 많이 아프시다고. 암튼 가까이 사는 큰언니가 서둘렀고, 오빠랑 대학병원으로 모셔갔단다. 황달기도 있고, 벌써 복수가 생기기 시작하셨다니. 혹시라도 5월에 뵐 때도 황달기? 기억을 해보려 해도 그건 아니었다. 피부가 가렵다고도, 열감도 말씀이 없으셨다. 무엇보다 위내시경에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다들 안심을 한 터였다. 혼자 사는 노인의 전형적인 스토리다. 어제 괜찮으셨으니 오늘도 괜찮으시리라…… 자녀들이란, 나부터도 전화 목소리로 괜찮으시면 괜찮으시다고 생각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오히려 수년 동안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는 시아버님이 걱정 일 순위였다. 관으로 미음을 드시는데도 몇 년을 버티시는데, 받아놓은 날이려니 했지만 그렇게 지내고 계시는 터다. 시어머님도 함께 요양병원에 계신다. 경증이라서 시아버님 간병도 되고 동무도 되고 그러신다. 거기에 비하면 엄마는 마실도 나다니고, 성당과 병원에 혼자 잘 다니고 계셨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대학병원에서는 깜짝이나 놀랄 결과가 나왔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복부초음파 검사며 씨티며 엠알아이를 하면 뭣하나. 담도조영술이며 종양표지자 검사도 마찬가지. 처음에 씨티만 찍었어도 침윤 정도를 알았을 것을. 담도암이라니! 담도! 담도!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담도를 통해서 십이지장까지 가는데, 어쩌자고 담낭을 지나서 십이지장으로 가는 담도에 암세포가 생긴 것이냐고! 후회막급이지만, 후회란 때 늦어서 후회다. 간호보조사가 가진 의학상식이 별 것일까만, 일단은 의료계통 자격을 가진 자식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담석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담도염을 앓으신 적도 없는데. 평생을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사셨으니 간디스토마 그런 병에 걸리신 적도 없는데.

    그렇게 어머니는 담도암 선고를 받으셨고, 반년은 버티실 것이라는 의사의 예상과 달리 두어 달을 겨우 넘기고 가셨다. 첨에 큰언니가 언니네로 모셔갔는데, 우리 모두가 아무래도 미안해서 요양병원으로 모실 채비를 하려는 찰나였다. 나 거그는 안 갈텨! 하시던 말씀 그대로 요양병원을 알아보려던 중에 일이 터졌다. 그렇게 마지막에 가까울 때까지 자녀들이 몰랐다니. 선고 이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아무 소용없었다. 닥친 일은 닥친 일이고,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었고, 이제 와 철 좀 나니까 어머니가 가셨다.

 

    피를 나누는 것이 무엇일까. 형제자매들이 앉아서 우두커니 장례식장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물게라도 화분들도 도착하고, 또 나가서 조문객을 받고, 옆에서들 감사도 하고……. 놀랍게도 육개장에 밥들도 말아먹었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 맞다. 슬퍼도 배는 고프다. 나도 밥을 먹었다. 먹고 나서 울었다. 울고 나서도 먹었다.

    엄마아, 잉잉.

    우리 어무이는 우덜헌티 잔소리 별로 안하셨어!

    그렸나.

    맞어, 잉잉.

    자 좀 달개라.

    아서 엥간히 울어. 울어싸면 못 올라가신댜!

    근디, 잉잉, 천당 가시겄져?

    암만, 수녀님 어무니신데여.

 

    코로나로 옴짝달싹 못하는 통이라지만, 드물게라도 문상객을 맞이했다. 입관하기 전에는 아직 살아계시는 것으로 치고 절을 한 번만 할 때까진 나았다. 염을 하는 중간에 사촌오빠가 등을 돌리고 서 있더니, 누군가 오빠를 아예 밖으로 내보냈다. 나중에 들으니 무슨 회도살이라나, 어머니는 물론 우리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들인데도, 집안 어른들이 그리 시키시는 것 같았다.

    다음날 발인제를 마치고는 잠깐 집에 들러서 간단한 제사를 드리고 나니 정말 끝이었다. 어머니가 산으로 행했다. 사토제니 위령제니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 어른이 계셨지만 뭐가 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막상 갓 파헤쳐진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앞에서 딸들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울음을 땅 속으로 가시기 전에 실컷 들으시라는 것인지. 어머니는 듣지도 못하시지만, 고만 울어라 달래시지도 못한다. 영원한 침묵에 들어가신 것이다. 삶의 끝은 침묵이었다.

    세거지라서 일가친척들이 대부분인지라 지관도 계시고 해서, 사실 우리들은 하릴없이 울다 쉬다가를 반복하기만 했다. 관장을 할지 탈관을 할지는 벌써 결정했다고 했다. 흠결이라고는 없으신 어머니지만, 아버지 때도 관장을 했다고 그대로 결정했단다. 우리는 괜스레 위안이 되었다. 집을 지닌 채 들어가시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을 서로 슬쩍 나누었다. 그래도 막상 흙을 올리는 때는 정말 무서웠다. 취토 중간 중간에 왜 노래를 부르는지, 왜 빙빙 도는지 의아했지만 가만있을밖에.

    오호 ~ 에헤야, 산이 높아야 물도 깊지 ~

    그러다가 붉은 천이 내려갈 때는 정말 떨렸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은 무엇인가가 뻥 뚫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집에 가도 어머니가 안 계신다고?

 

    문경댁 무르팍 말고는 원체 암말 읎더만 속절없이 갔슈!

    그 구녁으로 간겨? 참말, 독새나 만나지 말어.

    인저 가조로니 누어 잘랑가 물러.

    엥간히 집 배까티 좋아혔으니 인저 원 없겄슈.

    우덜 몸뎅이도 얼매 안 남았제만…….

    뒷산이라서 함께 올라왔던 동네 분들이 한마디씩 탄식을 하셨다. 우리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삼우까지 지낸 다음날에는 다들 흩어졌다.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엄청 허전했다. 어머니랑 함께 살던 집이 아닌데도 집이 쓸쓸했다. 고향집에 간다…… 는 생각에 어머니가 안 계실 것이라는 상상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주 5일 근무는 요일만 세다 보면 금세 지난다. 아직도 숨 막히게 덥다. 세상은 어머니를 잃은 다섯 형제들과 무관하게 여전하다. 여름이라서 덥고, 더워도 날마다 뉴스다. 어디선가는 무슨 일인가 터진다. 무더위 못지않게 숨 막히는 뉴스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이 열리자 세상의 눈들은 그리로 향했다. 양궁 하나만 해도 사람들을 들뜨게 하기 족했다. 이 고장에서 양궁 천재가 나왔으니 더했다. 한참 더울 때 선수들을 향한 애정으로 더욱 달아오른 시간들, 그 시간도 곧 지나갔다.

    그 사이 미얀마 쿠데타가 군부의 과도정부 수립으로 막을 내렸다고, 그 뉴스는 오후 보호자의 입으로 들었다. 거기도 전**이 정권을 잡았네요. 군인들이 그렇지 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최근엔 보통 그랬다.

    거실에 어르신과 둘만 남는다. 어르신은 늘 그렇듯 말이 없다. 못 들어서 말을 안 하시는 것인지, 당연히 대답도 없다. 지난겨울 인지검사 때도 – 등급 조정을 위한 의무적인 검사다 - 결과 수치는 더 낮아졌다. 가끔의 환시와 환각을 제외하면 실제로 심각한 증상들은 없어 보이는데. 건망증도 나이 따라서 다들 그런 정도이고. 하기야 하루 세 시간을 보는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

    날마다 텔레비전은 작은 소리로 돌아가고 있다. 어르신이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도, 살짝 잠이 들 때도 그대로 켜져 있다. 올림픽이 끝난 뒤로는 코로나 뉴스가 다시 화면을 독차지한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서 1차는 40%를 넘었고 2차까지도 20% 가까이 되는데도, 아침마다 불어나는 확진자는 계속 4자리 숫자이고, 누계가 20만 명이라니 놀랄밖에. 거리두기는 수도권은 4단계, 여기도 3단계가 계속된다고. 아니, 이제 이런 발표는 뉴스가 아니고 일상인가 싶다.

 

    어느 날, 재벌 1위 삼성 소유자가 광복절에 사면될 것이라는 뉴스가 떴다. 또 찬반이 엇갈릴 것이고, 양쪽 다 옳은 말이겠지.

    기업이 돌아가야죠, 뭐?

    내가 다른 할 말도 없고 해서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할머니에게 한 마디 했다.

    들은 체 만 체다.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뜬금없었나? 그래도 했던 말인데 뭐라고 대꾸하는지 들어보고 싶어서 재차 말했다.

    다들 경제가 안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삼성, 그래서 내 주려나 봐요!

    …….

    광복절에는 어차피 사면도 있으니까요.

    아, 지 선샘, 나 정치 경제 어쩌고 하면 정말 잘 모르는데. 누구라도 감옥 나오면 좋겠지만, 누구라도 가벼운 처벌을 받으면 좋겠지만, 거 형평성도 문제요.

    형평성이요?

    무슨 형평성 말일까. 나는 왜 이리 생각이 왔다 갔다 할까. 말을 걸어놓고는 이을 말이 없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계속했다.

    그냥,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누구에게라도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 그거 저 절대 찬성이에요. 짧은 인생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죠.

    어라? 인생 어쩌고 말을 해놓고는 참 쑥스러웠다. 난 이분들에 비하면 애들 아닌가. 크게 거슬리진 않았는지, 할머니가 대꾸를 했다.

    맞아요, 남에게 도움은 되지 못해도 해는 되지 말자, 그런 정도. 그게 좋은 거죠. 하지만 뉴스를 보다 보면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이 문제지요. 남을 해치는 바이러스들, 해치면서도 그걸 느끼지도 못하는 중증 바이러스들…….

    아차, 괜히 말을 잘못 시작했나? 이 할머니가 또 이상한 수다를 시작하면 어쩌나 싶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또 사람이 아니라 책처럼 어려운 말들을 시작했다.

    사는 차이도 너무 나서 그 이질감은 더욱 벌어질 테고.

    이질감이요?

    설이라고 추석이라고 1,000만원을 주는 할아버지가 있다잖아요. 유치원도 안 간 아이가 주택 스무 채를 가진 세상이라니. 뼛속까지 다르게 태어나서 그렇게 다르게 자라니까 함께 살기가 점점 더 어려운 세상이 될까 무서워요.

    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전체가 훨 잘 사는데 뭐가 문제인가. 우리나라 경제가 50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세계가 대충 60배 성장 할 때 우리나라는 400배나 성장했다고, 남편이 으쓱 말해준 적이 있다. 나도 할 말이 있다. 해야겠다 싶었다.

    저 있잖아요, 우리나라 전체 성장률이 높으면 좋은 것 아녜요? 50년 동안에요, 세계가 60배 성장할 동안에 우리나란 400배 넘게 성장했다고. 작년엔가 그랬다던데요. 미국은 30배, 일본은 100배인가 대충.

     …….

    뭐야, 왜 또 대답이 없어? 이런 성장 발전이 대단한 것 아냐? 전체가 잘 살게 되어서 뭐가 나쁜데? 그러니 엊그젠가 아이돌 가수가 130억 아파트를 샀다는 뉴스도 있었지. 그 청담동 아파트니 펜트하우스니 하는 집들은 집값이 상상도 못할 정도다. 150평 복층 펜트하우스는 300억, 그러니까 평당 2억이라 했다. 내 소유 건물 따위는 건물도 아니다. 이 할머니는 무감각인가?

    우리나라 수준 엄청나다구요. 저, 어떤 아이돌 가수가 최근에 산 아파트가 130억이라고, 혹시 들으셨어요?

    아이돌도 모르고 아파트도 모르요.

    아**라고, 눈 예쁜 여자애, 서른 안 됐을걸요. 십대부터 엄청 잘 나가는 가수죠. 거기 청담동에는 평당 2억 가는 펜트하우스도 있대요, 150평이라니까 300억.

    무슨? 달나라 이야기에요?

    아니, 우리나라요, 서울요.

    평당 2억이라니, 그게 가능이나 하나?

    그게요, 30가구 이상만 안 지으면 분양가 상한제 그런 것 안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29가구만 지으면 집값을 마음대로.

    상한선 없이 마음대로?

    네, 상한선 없이 마음대로!

    별나라네. 별난 나라네.

    맞아요. 차이가 넘 벌어지져? 세상 요지경이에요. 도쿄에는 평당 3억이 훨씬 넘는 600억짜리도 있대요, 홍콩은 6억이 넘는 아파트도 있고, 평당.

    지 선샘은 역시 건물주답다. 건물들을 쫙 꿰고 있네요.

    세계 최고급 아파트는 2,200억이라고 하는 뉴스도 봤어요. 2,200만원이 아니라 2,200억.

    고만, 고만! 어디에나 최고는 있겠지요. 모든 노력과 운과, 암튼 그런 성공들에 박수를 쳐 줄 일인지.

    당연하죠. 성공이 미덕이라고 하잖아요.

    미덕…….

    미덕이 그런 것은 아니죠! 라고 말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내뱉은 말은 더 썰렁했다.

    헌데, 집은 그냥 집이죠. 작은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크고 넓은 집에서 잠 못 드는 사람도 있겠지요. 둘 다 죽을 것이고.

    죽는 이야기는 왜요.

 

    나는 토라지고 말았다. 이 할머니 밉다. 하필 여기에서 죽는 이야기라니.

    나는 근무 시간인데 아무 것도 않고 가만 앉아있기 뭣해서, 뭔가, 정말 그냥 한 말이었다. 아무리 아이돌이라 해도 애들이 100억도 넘는 아파트에 산다고 하는 것이 뉴스 아니면 뭐가 뉴스인가. 터무니없이 잘 사는 데에 눈이 뒤집혀서 한 말도 아니고.

    나도 살만큼은 산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남편은 공무원이고 퇴직하면 연금을 받을 것이고, 나는 국민연금 제대로 들어있고 내 건물 있으니 기본은 되고 남을 터. 농가주택은 어떤가. 일단 기분 좋은 뜰이고 밭이다.

    어머나, 애호박이 저절로 벌어져 버렸네!

    아무리, 설마.

    설마라고 말하며 다가오던 남편이 놀란다.

    정말이네. 넘 더워서 그런가. 이런 건 첨 보는데? 애호박이 쩍 벌어지다니. 온난화 문제인가…….

    저 그런데, 올해도 까만 나비 날아올까?

    남편이 지구 어쩌고 할까 봐서 나는 얼른 말을 바꾼다. 머리 아픈 건 정말 싫다.

    아녀. 더 있다가 저쪽 방아꽃이 필 때야 날아올 걸. 왜 하필…….

    나는 냉큼 넝쿨콩 쪽으로 향한다. 도망치는 것이다. 남편은 연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방아꽃은 맥문동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게 계속할지도 모른다. 말도 잘 하지만, 실은 훤칠하고 잘 생겨서 예능에도 어울릴 것이다.

아무튼 비타민 넘친다는 풋고추는 여름 내내, 상치, 깻잎, 오이 뿐인가. 양파, 감자, 고구마, 깨, 김장 배추……        남편은 귀한 초석잠이나 마도 심는다. 부지런한 사람이랑 함께 살면 좋기도 나쁘기도 하지만, 일단 마트 갈 일도 줄이는 것이 남편의 살림이다. 물론 김장까지는 좀 심하다고 느끼지만, 어쩌랴. 보람도 있다. 여기저기 퍼 나르면 다들 고마워한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다. 시댁에서 반찬 싸주면 가다가 버린다는 젊은 며느리들 이야기는 말로는 들어보았지만, 내 주변에는 없는 것 같다. 내 땅에서 나는 것들, 이 모두가 평생 노력한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좋다. 그래, 조금만 더 열심히 인내하고 모으자. 내 이름은 지은이, 요양보호사!

    예쁜 배우가 요양보호사 공익광고에도 나왔다. 복지센터 이름이 적힌 앞치마를 입고 근무하는 우리들 실정을 모르는지, 빨간 투피스에 긴 긴 머리를 휘날리는 것이 우습기는 했다. 어쨌거나 ‘아줌마 아니에요. 요양보호사예요.’ 라는 문구로 사기를 북돋아준다. 좋은 나라다. 요양보호사에게도 좋은 나라.

 

 

    요양보호사가 실제로 병원과 싸워서 이기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그러니까 큰 병원들의 꼼수를 요양보호사들이 이겨낸 일이 있었다. 이른 봄이었다. 요양보호사 4명이 병원 상대로 임금체불 소송에서 이겼다는 뉴스에 센터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문제된 요양병원은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근무방식이라 했다. 깨어서 24시간을? 말도 안 되는 조건이지만 그런 3교대제도 실은 많다. 그 24시간 근무 중에 명색 야간 휴게시간이 5시간 있었다 했다. 하지만 실상으로는 비상상황에 대응하려고 병실 근처에 있었다고 하니까, 그게 무슨 휴게시간이냐고! 야간 휴게시간이란 임금에서 5시간씩을 제하는 꼼수였다고 판결난 것이란다.

    휴우, 간호조무사 3교대 시절 생각이 새삼스럽다. 일일 8시간 교대도 힘든데,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근무방식은 살인적 아닐까. 어떻게 24시간을 버틴단 말인가. 나는 확실히 그건 못한다. 더구나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는 계급으로 말하면, 계층인가, 아무튼 바닥이다. 나는 간호보조원 시절부터 사다리가 너무 뚜렷하게 심장에 박혀서인지, 무슨 위치를 설명하려면 사다리가 먼저 떠오른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당연히 맨 아랫자리다. 더구나 ‘선생님’ 아닌 ‘여사님’이라 불린다. 특히 간호사들이 꼭 ‘여사니~임’ 하고 부른다. 그렇다고 내가 뭐 ‘지 여사님’ 보다 ‘지 선생님’ 소리를 듣고자 요양병원 근무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들처럼 집으로 서비스 나가는 재가방문요양의 경우는 내 생각에는 자유가 있다. 수급자 측에서 우리를 ‘자를’ 수도 있지만, 우리도 불편한 수급자의 경우 서비스를 거절할 수 있다. 나도 지난번 오전 고엽제 어르신을 곧 그만두겠다고 센터에다 말했고, 그만 두었다.

    물론 수입 면에서는 약하다. 그러니까 요양병원 근무와 재가방문요양 또는 주간보호센터 근무 등을 우리가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다. 알아서 하는 것은 작은 일이라도 기분이 좋다. 나는 간호조무사 평생 직업을 마치고 일을 쉬기로 결정했을 때도, 아니, 얼마큼 쉰 뒤에 다시 이 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순전한 자유 결정이었다. 그래서 맘 편하다. 그리고 간호조무사 때처럼 전문학원에서가 아니라,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야간이었지만 대학에서 딴 탓에 스스로 뿌듯하기까지 하다. 사회복지과에서 이론강의, 실습연습, 현장실습 각 40시간의 정식 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크다. 문제는 그래보았자 근년 들어 간단히 자격증을 딴 사람이건 누구건 임금이나 대우에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또 이상한 것은 5년 차인 나와 신입의 시급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전히 알바 개념인 것이다.

    아무튼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요양보호사들의 결기가 대단했다. 4명이 한 뜻으로 뭉쳐서 가능했겠지. 나 같으면 뭉치자 해도 피했을 것이다. 나는 불평보다는 침묵으로 삭히는 쪽,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식이다. 제도나 현상을 굳이 고치려 힘 빼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그냥 내가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일을 찾는다.

    그런데 어디에나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눈꼴사나운 일도 보게 된다. 누구나 다 꼼수를 쓰기 때문이다. 편의점 등 알바들에게도 주인들의 꼼수가 애를 먹인다. 내 첫 알바의 경험은 - 참 옛날 일이다 - 기억 속에서라도 되돌리기 싫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그때는 확실히 옛날이었다. 친척집이라는 어정쩡한 관계는 정확하게 시간 수당을 따질 처지도 안 되었고, 그냥 주는 대로 용돈만 받은 셈이었다. 그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두 번째 알바부터 혹은 그 다음 어떤 직장에 들어갈 때도 일단 조건부터 분명히 따지고 확인하고 그러기 전에는 일을 시작을 안했다. 그런데 몇 십 년을 지나도 꼼수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간호보조사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일을 쉬었을 때, 그러니까 전업주부가 되려는 찰나, 그때도 한 두주 쉬고는 왠지 좀이 쑤셔서 일단 간단한 알바라도 해보자 했었다. 그때 나는 동네 편의점에서 12시부터 4시라는 점심시간대를 부탁받고, 잠시니까 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4시에 교대하는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로, 자기는 4시부터 11시까지, 그 다음 대학생이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그리고 이른 아침 세 시간을 주인이 직접 챙기고 다시 9시부터 4시까지 다른 여자가 7시간 그렇게 돌아갔었더란다. 그러다가 웬일인지 주인이 오전시간을 더 하고 오후 네 시간만 남겨 놓은 거라고.

    아니, 세 사람 쓰면서 각 8시간이 아니고 7시간씩? 복잡하네요.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저녁시간 여자는 내게 알바 한다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시선을 던졌다. 시급 계산에서 복잡해지는 풀타임 8시간은 절대로 주지 않는 것을 모르냐고! 모든 편의점이며 그 비슷한 알바들이 다 그렇다는 것. 그게 주인들의 꼼수라고. 모르면 바보고.

    옛날에는 꼼수를 쓴다고 하면 일단 쩨쩨하게 군다는 형편없는 뜻이었는데, 이제는 애교 정도인가 보다. 살려면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말에 비해서, 살려면 꼼수도 알아야지, 라고 하면 훨씬 낫지 않은가. 마치 사회생활에서 줄다리기나 숨바꼭질 같은 것, 죄를 짓는 건 아니고도 잘하면 이득을 볼 수 있는 행동들을 꼼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묘수 같은 셈이다. 그런데 대형 병원들조차? 내가 편의점 주인이 된다면? 모르겠다. 어느 만큼의 꼼수부터 죄가 되는지 세상엔 모르는 일 천지다.

 

 

    세상이 어떠하든 나는 열심히 잘 지낸다. 어머니는 청주에 계시다가 하늘나라에 계신다. 아니 지금도 청주에 계신다. 톡 프사에 올려놓고 영상 통화하듯 들여다본다. 소리만 없다. 침묵의 영상통화.

우리 은이는 잘 웃어서 이뻐. 어여, 웃어봐. 이빨도 가조로니 얼마나 이뻐. 노상 그러고 살어. - 주문처럼 어머니의 말이 들린다. 침묵의 말이다.

 

    요즘에는 오전 일도 다시 시작했다. ‘고엽제 어르신’ 집을 그만 둔 한참 뒤부터다. 혼자 계시는 이 까칠한 ‘할머니 어르신’은 까칠한 성격 좀 참아주면 된다. 이 할머니도 그러고 보니 암환자였다. 항암치료 중이었는데, 암 전문병원에 가는 날은 딸이 모셔가므로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저절로 쉰다. 받아온 주사약을 가지고 중간급 병원에 맞으러 갈 때는 내가 모시고 가는데, 택시비 때문에는 매번 불편하다. 택시 값이 들쭉날쭉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기사에게 불평을 늘어놓으신다. 그러면 젊은 내가 무안해지는 것이다. 이럴 땐 수급자를 차에 태워 다니지 않는 내 원칙이 조금 흔들린다. 하지만 아니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같은 센터 요양보호사들의 경우 수급자를 태우고 다니다가 접촉사고도 내고 그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수리비나 합의금은 누가 주어야 맞는가. 그런 복잡한 일을 왜 하는지 모를 일이다. 매번 기름 값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데 또 이해 못할 일이 있다. 이 오전 할머니는 따뜻한 물도 못 쓰게 할 만큼 절약형인데, 미장원에 가서 염색도 하고 오고, 은근히 이런저런 물건들도 사들인다. 나이로 보면 오전 ‘수급자 할머니’가 오후 ‘보호자 할머니’보다 좀 많아 보인다. 아니, 상당히. 그런데 오후 보호자는 거의 아무 것도 사지 않는다. 나도 웬만하면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지 않는 편인데, 나보다도 더한 것 같다. 근처 시장이나 슈퍼 갈 때도 입던 그대로 겉에만 아무 거나 걸치고 나간다. 마스크를 쓰기 때문이겠지만 화장도 없다. 하루에 두 집을 다니니까 나도 모르게 비교가 된다.

 

    오후 ‘할아버지 어르신’은 지금 독서에 열중해 있다. 독서는 그 자체로서는 뇌 활동에 좋지만, 더더욱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다. 거실이 너무 조용해서인지 보호자가 나온다.

    오늘은 어르신이 책이 재미있으신가 봐요.

    그래도 뭔가 말을 하도록 해야…….

    입 닫으시면 어려워요.

    알아요, 내가 더 잘 알죠. 우린 서로 하는 말이 별로 없어요. 오래 함께 살다 보니까 할 말을 다 해버렸나, 뭐 그런 것. 우물을 다 퍼내서 말라버린……. 그보다, 말 해도 모르는 것은 모르고, 안 해도 아는 것은 알고.

    뭐예요? 말을 해야 알죠. 나팔꽃 이야기를 나한테만 하시니까, 어르신은 완전 모르시잖아요.

    알고도 말 안할 수도 있어요. 말을 꼭 해야 하나요?

    말도 그리 안 하시면, 하루 종일 뭘 하세요, 그럼? 제가 와 있는 시간에나 좀 나가시고 그러세요. 산책이라도 다녀오시고.

    맨날 시장 가잖아요, 병원도 다니고.

    아니, 먹거리 시장 말고요. 산책하신다 하고 시장 줄줄이 상점들 구경이라도.

    살 일이 있어야 말이죠. 지금 있는 것들, 글쎄, 못 다 쓰고 죽을 걸요.

    에이, 또 죽는다는 소리!

    어느 순간 돌아보니까 버릴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오래 살았고 많이 샀다 싶네요. 옷이며 뭐며, 이게 다 쓰레기인데.

    옷은 따로 버리잖아요, 관급봉투 안 쓰고. 무슨 걱정이세요!

    봉툿값 그 말이 아니라. 길어지는데.

    길어도 괜찮아요, 듣고 싶어요. 다들 새 옷을 좀 사잖아요, 요즘은 비싸지도 않고.

    그러게요.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연간 68벌을 산다는 통계도 있던걸요. 그 중 10퍼센트 이상을 입어 보지도 않고 버린다고.

    설마요, 저는 6벌도 안 사는데…….

    알지요, 그래서 내가 ‘이쁜 지 선샘’이라 그러죠. 들어보세요, 재미있는 이야기.

    뭘요?

    동생네 딸 말인데요, 웃지 마세요! 그러니까 조카딸이 엄마랑 쇼핑을 갔는데, 제 엄마가 자잘한 것들 재미로 사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엄마, 또 예쁜 쓰레기 사려고? 그랬다네요. 살 때는 가볍게 사니까 과잉소비라고 생각 안하죠. 하지만 별로 쓰지도 않고 또 한철 지나면 버리고, 그러니까 예쁜 물건이기는 해도 결국은 쓰레기를 사는 셈이라는 거죠.

    예쁜 쓰레기?

    맞아요. 우리가 재활용수거함에 옷들을 버리면 다 누가 재사용하는 줄 알지요? 그런데 5퍼센트 겨우 쓰고, 나머지는 수출이라네요. 인도나 캄보디아 등 그런 데로, 아프리카로도. 가나라던가, 거기 어디 이야기를 봤는데요. 인구 3,000만에 일주일에 1,500만 벌이 들어오면 절반은 쓰레기고, 처리만 곤란하다고. 70억 명 사람들이 지구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옷을,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 내게요?

    상상이…….

    상상 안 갈 걸요. 일 년이면 만드는 옷이 1,000억 벌이래요. 시간 당 1,000만 벌을 생산하고 그 중 300만 벌은 버려진다네요. 연 330억 벌을 버린다고요.

    설마요.

    나 이 숫자 잘 외웠는지, 뭐 틀릴 수도 있겠지만, 암튼 엄청난 숫자의 옷들이 생산되고 버려지고, 지구는 그 쓰레기를 감당할 수가 없고…….

 

    핸폰이 울린다. 넘 다행이다. 머리 복잡해지는 이야기에서 구해준다. 침묵이 답답해서 말을 시키면 이 할머니는 엉뚱하게 해골 아픈 이야기를 하곤 한다. 침묵이 나으려나. 모르겠다.

    퇴근 후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 출발했나 채근하는 친구가 꼭 있다. 사회복지학과 시절 친구들은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야간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나이도 서로 다르지만, 몇몇은 계속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 모두들 열심히 사는 일에서라면 우승컵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다. 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친한, 사랑하는 남편과가 아니라, 이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면 왜 그리 즐거울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말들, 말들.

    어서 가 보세요!

    네, 뭐! 지금 가면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아직…….

    그러게요, 조금 일찍 나갈 수가 없다면서요.

    네, 태그 찍는 것, 칼이에요.

    앞치마를 벗어 두고 핸드폰을 챙긴다. 마지막 3분 4분이 엄청 길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몸조심하세요! - 이런 인사말은 노인들에게 환자들에게 알맞은 말 같다. 나로서는 습관이다. 한번은 이 할머니가, 예, 밤새 몸조심할게요! 라고 대답해서 조금 이상했다. 하루 사이 몸조심 할 일은 아닌가? 얼핏 놀리는 것 같았지만 알게 뭐냐. 몸조심보다 좋은 인사말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우렁차게, 두 번은 어떠랴.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예, 내일 봐요.

    판에 박은 인사말을 들으며 계단을 향한다. 

 

----------------------------------------------
「침묵과 침묵 사이」, 『국제PEN광주』 19호 2021.12. 168~183쪽.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순  (2) 2022.07.27
놀이터  (0) 2022.06.14
먼지  (0) 2022.02.18
낮꿈  (2) 2021.09.07
초겨울  (0) 2021.07.10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