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5. 12. 9. 18:14

 

끊임없이 지배하려 ‘세뇌’ … 자신 위해 ‘맞설 용기’ 가져야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⑧ ‘사페레 아우데’ 감히 알려고 하라
2015년 12월 09일 (수) 14:05:05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유난히도 빨리 가을이 저물었다. 사라져가는 가을 꼬리를 잡고 매달리면 수많은 가을들이 딸려 나온다. 1968년 베를린의 늦가을, 서른 살짜리 여성이 공식 석상의 단상에 걸어 올라가서 현직 수상의 뺨을 때리는 장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만세 삼창처럼 ‘나치, 나치, 나치’를 외쳤다. 숨은 나치 전력자들을 찾아내어 진상규명(?)에 전력을 기울이는 활동가였다. 

당시 독일의 수상은 나치 12년 통치기간에 당원이자 전쟁 중엔 외무부 라디오 정책국 부국장으로 활동했었고, 패전과 더불어 체포돼 18개월간 수감된 전력이 있었다. 전후 독일, 서방측의 온건한 탈나치화 프로그램에서 4급 ‘단순 가담자(Mitlaufer)’ 판정을 받아 면책증명서를 지니고 새 인생을 시작한 식자층은 넘쳐났다. 

변호사, 기민연 연방의원을 거쳐 수상 직에 오른 65세의 거물 정치인에게 모욕을 가한 동기는 간단했다. 독일민족 일부는(특히 청년층은) 나치가 독일의 정상에 서있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함이었다고. 순간 세상이 들끓었다. 

오늘 이 이야기는 그 정치적 동기와 파장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작가가 그 여성에게 파리까지 붉은 장미다발을 보냈고, 다른 한 작가는 그 일을 비난했던 일을 말하고자 함이다. 꽃다발을 보낸 이유는 “작가로서의 행동의 철저한 연속선상에서, 1944년 공습에서 죽은 어머니, 나에게 나치를 증오하라고 심어주셨던 어머니 때문에, 또한 나의 세대, 살아남았지만 교사, TV편집자, 출판편집자 등의 직을 잃을까 염려해서 ‘꽃의 힘’으로 그 여성에게 공감을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세대 때문”이었다고 했다.(하인리히 뵐, <Zeit> 196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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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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