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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20 움직이는 긴 그림자 - <문학공간>
수필-기고2006. 9. 20. 20:52

직이는 림자

 

<문학공간> 2006, 9월호 (202호)


“너는 왜 쓰는가? 너는 왜 쓰지 않을 수 없는가?” ― 젊어서든 아니든, 글을 쓰는 세계로 ‘떨어진’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첫 질문이다. “글이 밥 먹여 주느냐? 글이라는 것이 대체 인간사에 무엇이냐?” 말로 하지 않더라도, 의심은 눈길에서 눈길로 아프게 찔러온다. 선뜻 대꾸할 말이 없다. 곰곰 생각해 봐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들여놓는’ 것이 없어 보인다. 글은 홍수로 고립된 계곡 마을에 식수 하나 건네지 못한다. 쓸려 무더기진 쓰레기더밀랑 까딱도 못한다. 커피잔 늘어놓고 줄담배 입에 물고서 책상에 죽치고 있는 문사들이라니, 장맛비 피해를 외면하고 골프나 친 위인들보다 한 치도 더 낫지 않다.

그런데 왜? 인류가 있고 문자가 아직 없던 시대까지 거슬러 가도 ‘문학’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그리고 다시 휴머니즘 ― 도도히 흐르는 인류의 정신사 어느 시대에도 문학은 우리를 동반했다. 제대로 학문도 아닌 그것이, 제대로 예술도 아닌 그것이.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은, 문학이 현실과 꿈 사이의 매개체와도 같은 존재인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은 고달팠고 여전히 고달프다. 방탕에 이르는 부패한 황제 아래서도 고달팠고, 금욕적 수도사가 지배하는 신정정치 아래에서는 신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에도 고달팠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기치 아래 신분제가 철폐되었어도 고달프다. 언제나 다시 태어나는 귀족들. 혈통귀족 양반님네가 사라지기도 전에 돈귀족이 새 양반님 행세다. 지배하는 일부가 있는 한 지배당하는 일부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결핍으로 고통당하는 일부가.

그러나 결핍은 외부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바람직한 사회화는 본래 다양한 개성의 인간을 위축시켰다. 개인은 인류역사의 진보를 위해 본성의 충족을 포기(당)해왔다. 그래서 내면은 늘 ‘다른 현실’을 꿈꾼다. 이 꿈이 언어예술작품으로 빚어나온 것, 그것이 문학작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지리 밥도 못 먹여주는” 문학이 이 첨단과학의 세상에서 명줄이나마 보전하겠는가?

이때 행여 우리는 문학의 효용성 논란에 풀이 죽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쓸데 있고 없는 것이 따로 없음을 성현들은 벌써 알았다. “있는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은 없는 것을 씀으로서라.” 혹은 “땅이라는 것은 턱없이 넓고 크지만 사람이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기껏해야 발이 닿는 지면뿐이요,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재어가지고 그 둘레는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 버린다면 사람들에게 그 땅이 그래도 쓸모가 있겠소?”라고. 디디고 선 땅을 디디고 설 수 있기 위해 무수한 땅이 필요하듯이,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겐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공간이 절실하다. 아니면 우리는 질식하거나 로봇으로 전락할 것이다. 결핍과 갈등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더욱 깊어지게 하고, 이 내면을 끌어내는 것은 상상력의 힘으로서만 가능하다. 상상력은 자신조차도 공감하기 어려운 내면을 개연성으로 설명해낼 줄 아는 힘이다. 상상력이 우연과 혼돈을 필연성으로 바꿔낼 때, 작품세계는 리얼리티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나, 문학에게 이 시대는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글쓰는 이의 열악한 생존조건이 문학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위협은 우리가 현실에 순응하고 꿈을 꾸지 않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더 이상 깊은 내면의 샘을 퍼 올리지 못할 때, 그 파국이다. 상상력은 꼬마아이가 움직이는 긴 제 그림자를 발견하고서 신명이 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문학을 놓아선 안 된다. 읽건 쓰건, 그 차이는 그림자를 몸 앞에 두는가 뒤에 두는가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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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