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08. 9. 1. 23:30

[한국소설 2008년 9월호]

번째의 죽음


                     

라우렌츠: 앉아서 써 봐. […]

여자는 질문을 받으면, 질문으로 대답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질문을 받으면, 즉시 대답해야 한다.

여자는 라우렌츠의 생각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자는 심한 말로 라우렌츠의 문장을 끊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적당한 장소에서 말할 줄 알고 또 침묵할 수 있어야 하고 라우렌츠를 사랑하고 착하게 대해야 한다, 그가 비록 거칠더라도 말이다.

이걸 자주 읽는 거야, 알았지.

 


이 글의 마지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극중의 라우렌츠(남자)와 여자는 작가죠. 집에 들어앉은 여자는 혼란과 무기력에 빠져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결국 여자는 “이젠 결코 다시는 잡아먹히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며 남자를 떠납니다. 글을 쓸 수 있었냐고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썼죠. 적어도 남자의 글보다는 훨씬 의미 있게 언급이 되는 작품들이었죠. 그러니 근 한 세기 전 서양의 이 작품이 여기에서 인용되겠죠. 


제 이야기를 할 차례군요.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얼핏 골빈 여자들에 속합니다. “적당한 장소에서 말할 줄 알고 또 침묵할 수 있어야 하는” 틀을 갖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죠. 더구나 순간의 감정에 잘 휩쓸려서 조급하다는 핀잔을 듣곤 하죠. 조급하다 - 그 말이 내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그것을 하필 나와 가장 가까운 그가 모릅니다. 그는 나랑 생일이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남성들의 전유물인 이성과 합리성과 또 모든 명철함을 가졌기 때문에 늘 잘난 체를 합니다. 우리의 관계는 일찍 서로를 발견한 셈이지만, 마찰은 자라면서였죠. 중학교 때, 여전히 잘 넘어져 팔꿈치와 무릎에 거즈와 반창고를 대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죠. 난생 처음으로 팔꿈치나 무릎이 아닌 속옷 깊은 곳에서도 피가 흐를 수 있다는 것에 놀란 어느 날, 그는 퍼렇게 날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비웃음을 머금은 채, 휑하니 돌아서 나가는 그는 문이 아니라 창문으로 빠져나가서 차가운 공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 여름날이었는데도 그가 떠난 자리로 창문을 통해 전해오는 공기는 얼음장 같았으니까요.


나: 이 첫 작품에 난 제목을 붙일 수가 없었어.

그: 제목이 없음 무슨 시. 제목이 없이 주제가 나오며, 주제가 없이 시를 쓸 수 있다고!

나: 처음이라서.

그: 넌 그냥 시를 쓴다는 폼을 사랑해서지! 생각부터 가다듬어야 했어. 생각이 있어야 글이 나오지. 글쓰기 과정은 단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문장구성과 단락 나누기 등에서…….


제목이 있을 자리에 “무제”가 뭐냐 라는 질책에서 시작하여 그는 정말로 내 첫 작품을 난도질했답니다. 그 버릇이 평생가게 된 거죠.


그: 자 시작해보자. 단어들을 준비해. 핵심단어들을.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을 것 아냐. 그것들을 문장으로 연결해 내는 거야. 문장의 유형을 결정해, 서사와 묘사를 구분해야지. 원인과 결과는 소설이라 해도 개연성을 위해 필수적이지.

나: 지금 시를…….

그: 담엔 소설도 쓰겠달 것 아냐! 개연성이라면 우연에서 필연을 볼 수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꼭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그러하리라고 생각되는 만큼의 가능성 말이야.

나: 참인 것 같은 거짓말?

그: 뭐 그 정도로 이해하든지. 논리학에서는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를 수량적으로 잴 수 있는 경우만을, 철학적으로는 확실성의 정도를 말하니까. 개연성은 어떤 논증의 전제와 결론 사이의 특별한 관계라…….


어렵사리 “개연성”의 고개를 넘었지만 아직 멀었죠. 그는 아는 것도 많았거든요. 문장들을 멋대로 자라게 내버려둬선 안 되지. 단락이라는 큰 그림을 구상해 둬. 섣불리 정의를 내는 것은 문학작품에선 금물……. 

그는 세계문학사에 남은 명작들을 독파하며 은근히 여유를 부렸죠. 그래도 난 그가 고시 쪽을 택할 것이라 믿었어요. 사법이건 행정이건 또는 외무이건. 어쩌자고 문과대학엘 진학했는지, 그건 지금도 모를 미궁이랍니다. 허영이었을까요? 뭐 정신적인 일에 탐닉한다는. 일직선의 성공을 얕잡아 보는 허영? 다음 몇 토막글은 우리의 숨 막히는 이야기랍니다.


*


독서


그: 독서로 우정을 깨긴 싫구나.

친구: 독서란 원래 우리 머리통을 깨부숴야 되는 거라며. 네 입으로 안 그랬어? 대단한 작가의 말이라고.

그: 건 지금 상관없고. 넌 그러니까 “반항적 인간”을 비난하는 거잖아.

친구: 그럼 넌 가차 없는 혁명제일주의를 단순무식하다고 내몰겠다?

그: 카뮈작품이 그런 말 아닌 것 너도 알잖아, 왜 억지야? 한 발 물렀다고 혁명 끝내자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 봐, 볼셰비키혁명의 정당성을 위해서도 그런 반항적 인간이 더욱 요청되는 것 아니었겠냐고.

친구: 언제부터 카뮈로 돌아섰나. 혁명 대신 반항? 부조리? 웃기시네. 극한상황에선 정당한 목적만이 정의로운 것.

그: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믿을 순 없어.


이건 『정의의 사람들』을 두고 벌어진 틈이었다. 이런 대화는 흔했다. 난 사실 대학시절만 해도 그를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충분히 지적이고 게다가 사려 깊었다. 섣불리 연애한다고 마음을 내놓지도 않았고, 이슈에 따라 확신이 서지 않는 한  데모에도 동참하지 않을 만큼 줏대도 있었다. 그가 정과 혈기에 넘치는 친구들을 잃어가는 동안에도 난 걱정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 친구란 원래 남이고, 남이란 다른 존재이고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이 없는 점에서는 우리는 무척 닮았다 싶었다.


독서목록에 스따브로긴이 등장했을 때 친구들과의 상황은 몹시 나빴다. 친구 하나가 그를 사실은 말 뿐인 퇴폐적 스따브로긴에 빗대어 비난했을 때, 독서회의 우정은 송두리째 위기에 처했다. 항상 굿이나 보던 나의 생각으로도 그 부분에선 친구들이 좀 심했다 싶었다. 그가 얼마나 금욕적인가를 친구들이 모르는 것 같았다. 그가 기름진 맛있는 음식을 죄스러워 하는 것, 그가 검소한 차림을 중시하는 것들을 다들 몰랐다. 스따브로긴은 그에겐 상처였다. 그는 한 동안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 그는 누구이어야 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오히려 무신론의 상태,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감행했던 끼릴로프에 가까운 결벽증의 인물이었다. 자아의지의 완성을 위해서라면 회복불능의 행위도 불사하리라 믿은 끼릴로프. 하긴 그것은 그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어떤 인간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 후 『악령』은 우리들의 터부가 되었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읽어치우는 소설들 모두를 어느 정도는 이해했냐고? 천만의 말이다. 줄리앙 소렐의 터무니없는 성공집착이나 애정행각은 물론, 레날 부인의 진정한 사랑도 도저히 알지 못했다. 에마 보바리의 충동은 차라리 저열하다고, 별 증오심도 없이 남편에게 비소를 먹인 테레즈 데께루의 무감각은 어불성설이라 간주했다. 난 소설들을 그저 읽어치우기에만 급급했다. 사람이 쓴 글을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못 참는 것에 불과했나? 책도 중독이 된다.


독서 때문에 그와 티격태격하는 것은 늘 일상에 속했다. 『죽음의 방식들』 3부작을 놓고는 한참 심각했다. 여자들이 남자들로 “인해서” 죽는다는 내 생각에 그는 화까지 냈다.


그: 뇌진탕과 폐렴이라는 사망진단은 뭔데! 세 번째 죽음은 죽음도 아니야, 승복일 따름이지.

나: “그것은 살인이었다.” - 이 마지막 문장은 뭔데?

그: 여자가 스스로 사라진 장면에서 어떻게 그 자구만을 고집해? 그만 왈가왈부하고 네 것을 써보라니까. 평생 주어 읽은 모든 것들을 버릴 때라야 네 글 한 줄 쓸 수 있을 걸.

나: 악담은.

그: 악담이면 어때서, 바른 말이면 바른 거지.

나: 바르고 바르지 않고, 그게 그리 쉽나?

그: 내 말이 아냐, 그건 정설이지.

나: 정설을 누가 만들었는데? 것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을 것 아냐?

그: 정설과 사설도 구별 못해? 사설, 사삿사람의 의견이나 중요시하는 버릇이 어쩌자고!

나: 나도 사삿사람이니 그렇겠지.

그: 글을 쓰겠노라 늘 꿈을 꾸는 건 뭔데? 마냥 읽어대기만 하고, 여차하면 이런 저런 글귀나 끄집어내고…….


그렇게 무작정 읽은 것은 사실이다. 세상의 이름 있는 소설들을 섭렵하고서야 내 글을 시작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막연한 준비심에 불과했을까? 부수적인 효과도 짭짤했는데, 그땐 책 좀 읽는 애라면 괜찮은 프리미엄이 따라붙는 시대였었다.


글쓰기


정작 글다운 글쓰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그는 신들린 듯이 진력을 다했다. 하지만 학보사에서 거절당했고, 신춘문예도 두어 번 탈락했다. 그러더니 또 후다닥 글쓰기를 중단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카프카도 아니라면 누구도 더는 글을 써서는 아니 된다고. 이 무슨 황당한 궤변인가. 그래서 내가 슬며시 끼어들기 시작했다. 박경리, 박완서는 왜 아냐? 수지와 수인(오목)의 이야기만으로도? 라고 반문하면서. 나는 어쩌면 그의 탈락을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데올로기에 충실했을 그의 글은 이 시대의 문단에서 한편으론 요청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두들기는 문은 정반대의 색깔이었으니 말이다.


색깔? 그런 것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아무런 빛도 아닌 회색이었을까? 그러는 동안에도 세월은 흘렀다. 밥을 해결할 직업도 갖게 되고, 연애(?)랑 결혼도 하고.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오늘 하려는 이야기와 무관하다. 생략법은 특히 그가 좋아한 화두였으니, 그 또한 이런 생략에 찬성일 것이다. 진부함으로 이루어진 일상의 보고를 생략한다는 것.


어쨌거나 생이 더 이상 진부해질 수 없을 만큼 아스팔트바닥 위를 맴돌고 있을 때, 내가 옛날의 종이들을 헤집어 내기 시작했다. 책상으로 썼던 낡은 교자상아래 밀려들어간 먼지투성이의 원고들은 가장자리가 열 번 백 번의 물걸레질에 밀려 짓이겨 졌지만, 용케도 누렇게 뜬 내용물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나 치기어린 글들인지 쑥스럽다 못해 우습기까지 한 것들. 누구라도 제 글을 읽는 것은 고문이다. 어쩌면 살인이다. 내 경우엔 심했다. 어떤 글에 비해 보아도 내겐 독창성이라곤 없었다. 너무 많이 읽은 탓에(?) 못 쓰는 나. 그가 옳은 것 같다.


처음엔 내가 빛바랜 원고지들을 넘겨보다 지쳐서 일이 그만 시작도 없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세상 따라서 완전히 생경한 원고지, 줄도 없고 마음대로 변하는 백지화면에 글을 “삽입/수정”하게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우선 원고지에 대고 훈수 놓던 일을 못하게 되었다. 내가 <내 글>을 암호로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신나는 세상.


그가 또 모르는 일로서 이 이야기를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고백할 것이 있답니다. 나는 누군가 내게 보낸 보배 같은 글귀들을 싸구려 감상적 픽션에 섞어 짜 넣고 있었죠. 곧 사라져버릴 듯이 연필로 쓰인 것, 또박또박 예쁜 팝글씨로 쓰인 것, 편지지도 아닌 화면으로 도착한 것, 더 작은 지우개만한 화면에 떠오른 것들까지, 순간 되살아나는 타인의 글들. 타인의 글을 내 글에 섞어 쓰는 짓거리. 그 짓에 대한 가능한 변명은 오직 하나,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그 몇 짧은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고픈, 내가 죽은 다음에까지도 세상에 흔적으로 남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악마다. 그 조각글들의 주인에게는 악마다. 나는 소설을 시작한다면서 마음 한 구석으론 기껏 일기를 쓰는 수준에 머물었나 보다. 픽션 또는 팩션에 관련한 괴로움은 여전하다. 나는 물론 내 주인공을 창조하여 실존인물과 섞어 놓는다든지 해서 실존인물을 모욕하는 일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실존인물의 한 작은 조각을 잘라내어 창작된 인물의 어느 부분에 끼워 넣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실존인물은 그렇게 됨으로써 생명 한 조각을 도난당하고, 창작된 인물을 독창성을 잃는다. 윈-윈 게임이란 말이 유행어가 된 세상에서, 둘 다 망하자는 싸움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싸움


너 죽고 나 죽자! - 그렇게 싸우는 사람들도 그건 그냥 하는 말이다. 마음속으론 ‘너 죽고 나 살자!’라고 싸운다. 그와 나는 죽자 사자 싸우는 사이는 아니다. 그저 그가 좀 잘난 체를 하는 편이라서, 내 우정이나 사랑의 장면에까지도 끼어들곤 한다. 그의 충고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의문이다. 이렇다 할 우정도 사랑도 쌓아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남편을 또는 아내를 버려두면서 까지도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달려갈 인사가 있는가? 세상 친구들의 우정을 다 버리고라도 아내 또는 남편의 사랑에 매달릴 것인가? 어느 쪽도 경우의 수에 해당하지 않으니 모순이다.


쪽지의 글자들이 춤을 추듯이 살아난다. 퍼즐조각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풍선처럼 바람을 먹은듯하다. 그것들이 다시 한꺼번에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검은 바늘들이 되어 내 가슴으로 향한다. 그렇게 무수히 쏘아져 내게 꽂혀버린 바늘 끝에는 독이 묻었을까? 헤집어 뒤집어 보아도 보이지는 않으나 녹아버린 내 가슴 한 자락.


그가 읽을 수 있었다면 당장에 태클을 걸 것이다. 네 이야기를 쓰라는 게 아니잖아. 네가 창안한 이야기라야 한다니까. 그런데 지금은 암호 때문에 읽지 못한다.


헤어지기 30초 전, 어두운 밤길. 차에 타려는 동작으로 몸을 구부리려는 찰나, 그 손이 내 팔을 잡는다. 가볍게도 아니고 너무 무겁게도 아니게. 알맞은 무게로 알맞은 온기로 팔을 잡는 손. 5초, 10초…… 나는 그대로 좌석으로 몸을 내린다. 아 아까운 10초. 또는, 그 오른 손 바닥 2/3쯤이 내 왼쪽 손등에 머문 3초, 언젠가의 3분을 30분을 불러내는 마술……


걱정할 일은 아닌 것이 손의 주인과 팔의 주인, 또는 오른손의 주인과 왼손의 주인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누가 15%쯤 실존인물이고 누가 30%쯤 창작인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그는 내 글을 보지 않고서도 내가 뭘 쓰고 있었는지 아는 게 참 희한하다.


그: 그 순간의 그 마음의 활자화를 당사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잊지 마. 넌 차라리 화석화될지라도 기념물을 원했으나, 마음이란 것이 살아서는 화석이 되는 게 아니지.

나: 알고 있어, 주어 담을 수 없는 물인 줄.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채로 누군가가 누군가의 산소가 된다면, 그게 그리 나쁜 일이겠어?

그: 아니지, 네가 산소라고 들여 마시는 그것이 네겐 일산화탄소야. 일산화탄소중독.

나: 연탄가스 중독?

그: 그래, 일산화탄소.


일산화탄소중독.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두통에서 시작하여 현기증과 이명.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누군가를 생각하면 두통이 일고 현기증이 인다. 희미한 한 두 마디가 귓속에서 웅얼거림이 되어 이명 현상이 생긴다. 무슨 말인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 그 사람의 면전에서 홍조가 생기지 않았으리라는 법이 없다. 내가 나를 보지 못할 뿐. 일산화탄소중독 증세 중엔 홍조에 이어 발적도 따른다고 했다. 마음처럼 축축한 날, 이 두드러기가 발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호흡은 가늘고 불규칙해진다.


누군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부정맥이신가요?

(속으로만) 부정맥이라고요? 그래요, 가슴이 제 템포에 맞춰 뛸 수 있을 리 없죠.


코를 골게 되는 증상을 제외하곤 영락없는 일산화탄소중독 그대로다. 저체온도 그렇다. 누군가 앞에서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피어난 홍조도 아무 소용없다. 누군가의 냉기는 상상을 절한다. 몇 미터 밖까지도 유효하다. 평소의 체온을 유지할 수도 없을 만큼 그 냉기는 사람을 얼리고 만다. 그러다가 호흡곤란이 오는 줄도 모르는 사이 호흡이 멈춘다. 일산화탄소중독에서처럼, 정지된 감정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다가…….



정신과 육신은 하나라고 한다. 평소에 의사는 연령에 비해 많이 촘촘한 젖이 오히려 약간 불안한 형국이라 그랬다. 의례적인 정기검진에서 젖이 아닌 갑상선에 문제가 발견되었다. 1㎝에 못 미친다지만 기분 나쁜 이상한 물체임엔 틀림없다.


의사: 조직검사 소견은 괜찮습니다. 콜로이드갑상샘종이라고.

나: 괜찮다면, 수술 그런 것…….

의사: 아 그 염려는 안하셔도 되겠습니다.


이듬해 봄엔 간헐적이지만 참을 수 없는 두통이 계속되었다. 고개를 숙여 밥상을 내려다볼 수도 없었다. 검사는 아프고 길어만 갔다. 접형골이상정체낭종. 두통은 간헐적이지만 멈추지 않는다. 또 한 해가 가도 통증은 여전하다. 서울로 검사를 옮겼다. 똑 같다. 곧 죽는 건 아니란다.


다시 이태만의 초봄, 무서운 꿈에 놀라 종합검진을 받기로 했다. 갑상선기능저하. 위가 가진 대여섯 가지 병적 증상. 담낭의 용종 두세 개. 간의 물혹. 왠지 불안했던 췌장은 아니었지만, 우와! PET 검사를 했다. 죽고 싶지 않구나. 두 해 봄이 지났지만 그 상태를 유지한다. 매번 검사 갈 때마다 알 수 없는 냉대를 받는다. 예약용지를 가져가지 않았거나 무턱대고 이름을 대려다가 그런다. 종합병원에선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몰라서다. 병원의 나는 여섯 자리인가 일곱 자리의 숫자다. 숫자가 인격적인 감정을 가지면 곧 불쾌한 일을 당한다. 서라면 서고 가라면 가고 기다리라면 기다려야 한다.


가장 금기는 왜? 라는 질문이다. 그 답은 미리 나 있다. 아프니까. 아픈 죄인이니까. 죽을지도 모르는 병에 걸린 죄인. 무엇보다 자신의 주인공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하는 죄인. 그는 병이란 건강을 해치는 생활습관 탓이라고 나를 나무라는 눈빛을 한다.


죽음


병의 다음 단계는 죽음이다. 물론 병과 관련 없는 죽음도 더러 있다. 대량죽음들이 그렇다. 예기치 못하기로는 교통사고가 가장 흔한 죽음이고, 아니 자연재해도 있다. 쓰나미와 지진들. 그건 내가 감히 기술할 범위를 넘는다. 그 의미와 무의미를, 그 우연성과 필연성을 기술할 위인들은 따로 있다. 글을 쓴다고 다 같지는 않은 법이다.


규칙들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는 인간은 몰취미하거나 질 나쁜 작품을 내놓지는 않겠지, 법규나 복지를 모델로 삼는 자가 참을 수 없을 이웃이나 특별한 악인이 될 리가 없듯이. 그렇지만 규칙이란 자연의 진실한 감정들과 그 진실한 표현을 망치고만다고 말해도 될 게야. 


그렇게 말한 위대한 작가가 있었다. 벌써 200년도 전에, 그것도 스물 몇 살에 쓴 작품 속에서 그런 말을 했다. 그러니 위대함의 크기는 글쟁이들 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이렇게 말한 주인공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실연과 자살이라는 세기적인 유행의 틀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정말 200년쯤 지나서도 지치지 않고 죽음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우리가 정말 심하게 싸운 건 앞에 말한 『죽음의 방식들』 때문이었다. 실제로 한 여자는 뇌의 부상으로, 다음 여자는 폐렴으로 죽는다. 처음 여자는 정신과의사인 남편과의 불화와 증오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웃음, 부드러움, 기쁨의 능력들을 박탈당한 채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을 받았다고 느낀다. 여자는 이전의 다른 여자들이 왜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을지 놀라워하면서, 자신이 세 번째 아내로서 자신을 수정해가는 일에 더욱 놀란다. 결혼은 양성간의 투쟁이다. 아랍 어딘가를 거치는 힘든 여행 중에 여자는 뇌를 심하게 다쳐서 죽는다.


나: 그건 단순한 뇌진탕이 아니야. 죽음으로 “밀려간” 것이지.

그: 그러니까 일부러 넘어져서 뇌를 다쳤다고?

나: 생각해봐, 이건 패러디야. 같이 살다 헤어진 유명작가의 유명작품에서도 아리따운 여자애가 그리스여행 중에 뇌를 다쳐서 죽지 아마? 여자는 어린애 같고 그러니 열등하고, 그리고 죽는 거야. 너흰 실제로도 작품에서도 여자를 죽인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그: 그럼 두 번째 여잔 어때? 폐병을 남편인가 애인이 옮겼어?

나: 그건 아니지만. 애인이란 작자가 여자를 발가벗겨 작품을 썼으니 그게 간접살인 아냐? 그것도 “영원히 고상하고 아름다운 여성”이길 바라는 남자들의 헛칭찬에 노심초사하는 미숙한 여자를. 여잔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주는데 남자들은 여자를 문자화한다면, 대상화된 여자는 연인에 의해 “도살된” 것처럼 느낄 밖에. 자기 고유의 역사를 박탈당한 채 한낱 소재가 되어 대중 앞에서 진열되고 있는 것처럼. 그 기분에 공감이 안 돼?

그: 그럼 처음 여잔 정신분석가인 남편이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 그것에 가장 상처를 입었단 말이야 참? 작품 이야기 말고 한번 가정해 봐, 여자들은 만일 피부과의사인 남편이 실험적으로 젊어지는 시술을 해줘도 그렇다 할 건가?

나: 난데없이 피부과는? 픽션과 사실을 혼동한다고 나를 나무랄 땐 언제고!

그: 그 부분 취소할게. 이제 넘어 가자.

나: (어라, 양보할 때도 있네!) 좋아, 세 번째 죽음을 “살인”이라고 인정한다면.

그: 또 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세 번째 여자는 M이라는 이름을 가진 확실한 제 자신 속으로 스며들었잖아. 이름도 없이 “나”라던 여자는 M에서 빠져나왔던, 비정상적으로 감수성이 많은 여성성이었을 뿐이야.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여자.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작가. 그런 여자가 이제 제 정신을 차리고 원래의 제 자신, 이성적인 M으로 되돌아갔을 뿐인 것. 여기서 살인이라? 게다가 네 진짜 문제는 뭔 줄 알아? 이 작가의 죽음마저 세 번째 소설의 죽음 넘어 네 번째 죽음이라 떠드는 것이지. 꼴페 나부랑이들!

나: 꼴페? 꼴통페미니스트는커녕 그냥 페미니스트도 못된다!


다만 내게서 창작이란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보상을 위해 외부에서 유발된 상처들을 속절없이 치유하는 과정이다. 나는 그 네 번째 죽음을 흉내 내기로 했다. 세 죽음의 작가가 그 세 번째 죽음을 실 인생에서 실연했듯이. 그가 끼어든다. 아니지, 그 여잔 골초였어. 침대에 누운 채 담배를 피우다 불을 낸 것이라니까!


나는 흉내보다는 패러디를 준비한다. 그렇담 그가 사라져야 한다. 그가 내 인생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는 나를 무시하면서 군림해 왔고, 나는 그에게 종속되어 그에게 결정권을 유보한 채 공존해왔다. 그를 사라지게 하는 일에 내가 실패한다면 남은 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죽음이다.


다른 이야기 하나. 교도소에 선행(?)을 하러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교도소에는 일반인의 예상대로 남자수인들이 훨씬 더 많단다. 그 친구가 이야기하기 전에도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데 살인 등 중죄인 비율은 예상을 뒤엎는단다. 남자죄수들이 살인자일 비율을 그냥 대충 10%도 안 된다고 한다면, 여자죄수들이 살인자인 경우는 그 몇 배란다. 살인자 수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도 예상과는 너무 다르다.


친구: 걸 여태 몰라? 여자들은 가정에서 대개는 억압을 당하는 관계에 놓여 있잖아. 부당한 일들, 억울한 일들을 참도록 길러졌으니까. 헌데 쥐가 완전한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지 않았어? 극한상황에 내몰리면, 억수 밀리던 여자가 상대를 죽이고 만다는 것이지. 평생 기세등등했던 강한 종족을, 자신의 남편을, 애인을, 아무튼 가까이서 그녀들을 억압해온 강한 남자를. 


나도 여자다. 내가 연출할 죽음의 패러디를 분류하자면 자살보다는 살인의 가능성이 높다. 그는 언제나 옳았고, 언제나 강했다. 멋모르고 피아노연주의 추상적 음체계에 빠져들려는 순간에는 타인의 체계를 답습하는 무의미성을 강조하여 제동을 걸었다. 지하의 미술실에서 바다그림을 연습하면서도 행복했던 순간에는 구경하지도 않은 바다를 모사한답시고 그것도 덕지덕지 물감을 발라서 바닷물을 더럽히는 맹목을 조롱하여 붓을 놓게 만들었다. 소설책을 읽고 또 읽어 외우다시피 하는 밤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긴 긴 남의 나라 이름들을 외우는 바보천치 같은 짓을 책망했다. 이름이 대수냐고. 실존한 적도 없고 그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태어났을 뿐인 인물들의 이름이 대체 뭐냐고.


그래도 나는 때때로 소설의 인물이 실제 사람들 보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 오래 살아? 오래 산다고 착각하는 너 때문이지. 그건 오래 산다기보다는 그냥 환영이야. 살아본 적이 없는 환영.

나: 환영은 무의미한 거야? 왜 내겐 그 환영이 실제로 살았을 많은 사람들보다 더 실제 같을까? 내가 쓰려는 이야기도 실제 같을까, 환영 같을까? 실제 같을 때 오래 사는 걸까, 환영 같을 때 오래 사는 걸까? 내 말은 이야기가…….

그: 넌 아니야. 넌 안 되겠어. 내가 할게. 네 이야기를 내가 쓸게. 약속해, 꼭 쓰겠다고. 아무리 글을 쓸 시간이 없어도. 글을 쓸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네 이야기를 쓸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네, 내가 쓰겠어.

나: 왜 그렇게 선선히 봐주려는데?

그: 봐주고 싶어서가 아냐. 넌 안 된다니까. 이거 보아. 여기 네가 써 놓은 글들은 기껏 세 죽음의 양상이 무슨 학습과정처럼 기술되어 있을 뿐이야. 여전히 독후감 수준이네, 안 그래?

나: 정리해 본 거야. 그 다음에 이어서 내가 쓰려고, 네 번째 죽음 이야기를.

그: 아니 수십 년을 두고 싸워도 우린 아직 여기야? 남의 글 읽는 건 그만 하라니까. 네 뜻 가는 대로 글 나오는 대로 네 이야기만 창작하는 거야. 그게 안 되면 그만 두든지. 아이, 애초에 너랑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넌 그냥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넌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것이 암호였다. 우린 상대에게 그 암호를 말하는 순간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다. 암호를 내뱉은 건 내가 아니었다. 여성성은 늘 도태된다. 네 번째 죽음의 패러디도 픽션에서와 같은 패턴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살인이었다.”


*


남편은 평상시처럼 늦은 저녁을 마치고 귀가한다. 아내가 저녁시간에 집에 없기는 드문 일이라서 의아했지만, 전혀 없는 일도 아니어서 그냥 씻고 쉬고 그러다가 시계를 본다. 메모도 연락도 없이? 한 밤이 되어도 소식이 없다. 희한한 일이로군. 별 일이야.


이튿날은 처형에게 전화를 한다. 꺼져있다. 둘이서 어딜 갔을까? 점심이 기운다. 서둘러 아내의 흔적을 뒤진다. 허나 아내의 뒷방문은 닫힌 채다. 쓰다 둔 메모지들, 원고지들 때문이라며, 아내는 외출하려면 늘 방문을 닫아건다. 연락이 된 처형이 흠칫 놀란다. 처형은 풀냄새와 흙냄새를 풍기며 들이 닥친다. 썬 캡에는 낮에 묻은 햇살이 아직 박혀 있다. 경쾌한 바지에 시원한 셔츠 차림이지만 귓불은 도톰한 풀빛 보석으로 묵직하다. 처형은 생각보다 덜 염려하는 표정이다. 얘가 또 병이 도진 거예요? 제부, 애초에 저런 작업을 말렸어야…….


다 저녁이 되어 방문이 안에서 열린다. 아내가 나타난 것이다. 한 5분 전에 방안에 들어갔다는 듯 당당한 표정이다. 왜들 그렇게 봐? 라고 묻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욕실로 간다. 외출해서 돌아왔을 때처럼 욕실로 직행한다. 그 버릇은 예외가 없다. 나설 땐 오히려 준비 시간이 짧지만, 귀가해선 화장실을 오래 쓴다. 한참 만에 말끔해진 얼굴로 소파를 기웃거리고는 곧 부엌으로 향할 태세다.


아내: 여보, 미안해요. 얼마나 잤는지. 언니, 공치다가 왔구나. 배고픈데 뭘 빨리 만들지?

처형: 나 일어서야 해, 이리 좀 와 앉아. 어쩌자고 제부 걱정하게 만들어?

남편: 어디 걱정 정도인가요? 어떻게 꼬박 하루를 게 박혀있어? 뭘 좀 먹기는?

아내: 그냥. 일은 진척이 안 되고, 주말이 되었나 싶고, 실컷 잠 좀 자려던 게. 사실 비몽사몽으로, 그래도 한결 개운해요.

처형: 그래도 그렇지, 방에 틀어박혀 있더라도 알리긴 해야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말없이 사라진 줄 알았지 모두.


*


내가 가끔 완전히 변덕인 것을 동기간의 정으로 언니가 제일 못 참아 한다. 혼란된 나와 그의 싸움을 어렴풋이나마 아는 건 사실 언니뿐이다. 언니는 부엌으로 향하는 내 꽁무니를 따르며 눈을 치켜뜨며 묻는다.


언니: 그런데 너 누구야? 어느 쪽으로 갔느냐구, 그 장난 때문에 내가 다 아슬아슬해 죽겠다. 네 남편 좀 그만 괴롭혀라.

그(나): 남편을 괴롭혀요? 직장 다니고 깔끔하게 의식주 마련하고, 틈틈이 내 일하는 것이 누굴 괴롭히는 건 아니죠.

언니: 아 또 논리 시작이구나. 그럼 그쪽으로 가버린 게야? 너 그럼 제발 그대로 살아. 더는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나도 그쪽이 훨씬 편타. 반듯하고 질서 있고…….

그(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염려마세요.

언니: 왜 염려가 안 돼? 너 보면 뻔해, 네가 어질러 놓은 것. 사람이 방구석에 들어서 그리 지내다니. 종이쪽지들에 벗어던진 옷가지에 슬리퍼는 또 왜 이리 짝으로 굴러. 아무리 너 혼자 쓰는 방이라지만.

그(나): 됐거든요. 그냥 택배 방쯤으로 해 둬. 택배 받은 것, 택배 보낼 것……. 아직 완전히 내 것이 되기 전의 물건들이 쌓여 있는 창고.

언니: 게서 네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노라고 눈물 글썽일 땐 언제고! 택배는 또 무슨 암호야?

그(나): 그게, 물질이란 게 나의 소유라는 것이 좀 애매하죠. 내게 온 선물도 상자를 열어서 내가 나와 관련시킬 때만 내 것이 되죠. 기차가 서울 부산을 아무리 오가도 서울 것도 부산 것도 아니듯이 말이야. 내 밖에 있는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택배처럼 왔다가 갔다가 그러는 것이죠.

언니: 뭐야, 그 궤변들 보니 정말 본업에만 충실하기로 작정한 것이구나. 잘 되었네.

그(나): 아니 뭐. 남아있는 저 작업들은 잘 마무리할 거요. 다음 일은 모르겠어, 저 창고를 저리 놔둘 일이 있을지. 회사일로도 벅찬 시간에, 저기 태반은 불필요한 일들이었고.

언니: 회사라고? (아니, 본업을 회사라고 에둘러 말하는 저 말투. 이 애가 이젠 그 애가 되었구나. 내가 걱정할 필요 없는 오달진 애.) 그래, 사람이 온갖 일을 다 할 순 없지. 너 좀 정신이 개운해진 듯하니, 하루 이틀 잠에 빠져도 좋은 구석이 있네.


뒷방 서랍 속에 갇혀버린 원래의 나는 사람들이 있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언니는 염려와 다르게 당찬 내 현재의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안심을 합니다. 그렇게 우리 집을 나서는 언니는 나의 네 번째의 죽음을 서러워해주지도 않습니다. 나이고 싶은 나는 다만 네 번이 아니라 열네 번을 스물네 번을 죽었지만, 언니는 물론 아무도 더는 알지 못합니다.(끝)

 


...................................


작가의 말 (창작노트)


글을 읽고 또 읽다가 겨우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부지중에 대선배 작가들의 글을 훔칩니다. 동서고금 위대한 작가들의 모범은 남성들이 태반입니다. 새내기가 만일 여자라면 더욱더 모범들에서 탈피하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형편없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것이고 싶어서죠. 그러나 오랜 관습의 눈에 비추어지는 자신이 초라해져서, 번번이 대부분의 남성작가들의 현란한 모범에 휘둘리고 맙니다. 언어의 구조조차도 합리적이거나 분석적인 가치로 해부된 세상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려는 일은 늘 좌절에 부딪습니다. 작가로 살자면 자칫 여성성을 포기해야할 위기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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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11. 1. 23:30
나물


 문학저널 2007

 

맛있겠다, 정말. 

뿌리도 채 덜 다듬어서 아무렇게나 무쳐낸 콩나물 그릇으로 젓가락을 길게 내뻗으며 은미가 말했었다. 나도 덩달아 콩나물 가닥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이 깔깔대고 웃었을 때야, 나는 은미가 순 장난으로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맛있다는 콩나물무침 쪽으로 몰릴 때, 혼자서 진짜 맛있는 것을 먹는 수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제일 하찮은 것이 콩나물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정말 그늘에 큰 콩나물이란 별명처럼 콩나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콩나물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맛을 좋아할 뿐이다. 맛있는 것, 맛없는 것의 차이를 배울 나이에 나는 귀한 것과 귀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가치를 혼동하게 된 것 같다. 많은 식구들이 좋아하지만 아끼는 음식접시가 할머니의 손을 거쳐 내 앞쪽으로 오면, 나는 그만 맛을 잃었다. 다져 구워서 다시 간장에 졸인 소고기처럼 진한 맛이나, 고기완자가 들어있는 버섯볶음 같은 기름진 것들은 왜곡된 애정의 표시이자 내게는 독이 되었다. 나는 비뚤게도 아무 것도 아닌 맛을 좋아할 의무를 느꼈다. 어린 시절의 의무는 습관이 되어 굳어버리나 보다. 사람들이 맛이 있다고 하는 것은 내게는 맛이 없는 것이고, 사람들이 맛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내게는 맛있는 것이다.

그래서 은미가 콩나물을 맛있다고 할 때 나는 동지를 만난 줄 알았다. 물론 그 장난기에 다들 깔깔대며 손을 놓고 주 메뉴를 기다렸다. 모처럼 섬진강변 나들이이다 보니, 둥근 그릇 속에서도 여전히 펄펄 뛰고 있는 은어쌈과 은어튀김이었다. 은미는 유난히도 펄펄 날며 날은어를 삼켰다. 난 정말 콩나물만 먹었다. 튀김은 먹을 것 같았지만 옆에서 퍼덕거리고 있는 날은어의 시체만 같아서 그것도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은미는 동지이기에는 사실 사뭇 달랐다. 우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여고 시절에는 - 아마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를 다녔겠지만 특별한 사건으로 부각되지 않는 한 어찌 동창들을 다 알고 지낸단 말인가 - 그 시절에는 은미가 단연 압권이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훔쳐보고서 곧 바로 흉을 낸다는 춤 솜씨. 원래부터 존 트라볼타의 엉덩이 같이 튀어나온 톡 튕기는 뒷모습과 그에 어울리는 발걸음은 바람소리를 일으켰다. 가발을 쓰고 디스코텍에 출입한다는 뜬소문에 놀랐던 우리들은 은미가 회장인지 이사장인지의 고명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때 아버지들은 잘해야 회사원 아니면 가게나 농업에 종사했으니까.

우리가 정말 놀란 것은 은미가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였다. 웬만큼 아파도 입원 같은 것은 드물던 시절이었다. 자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 땐 지금처럼 무감각한 세상이 아니었기에, 우리들은 감히 앞 음절은 발음도 하지 못하고 “미수래, 미수”라고만 입소문을 옮겼다. 병원에 입원한다는 그것만으로도 대 사건이었던 때였으니. “미수”의 원인을 두고서 (헛)소문은 바오밥나무처럼 부풀어만 갔다.

바오밥?

그래. 실제로 높이는 20미터도 넘고, 가지의 길이가 10미터도 넘는대. 구멍을 뚫으면 사람이 살 수도 있다니까.

지금 생물 시간이야?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말이지. 교회만큼 큰 바오밥나무는 별을 다 덮어버리고, 장미나무가 자랄 자리를 안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게 암적 존재라는 거지. 거대한 자본 같은 것. 지구의 외면을 깔아뭉개는 자본이 결국 지구의 내부까지도 좀 먹겠지. 환경 파괴로.

저애, 뭐야. 너도 그런 것 학습한거야? 야학에 다녀? 거대한 자본이 어때서. 난 기어코 열대를 구경하고 말거야. 거대한 바오밥나무의 숲, 거대한 풍요……


평소에 바오밥나무를 입에 걸고 다닌 것은 정작 은미였었다. 열대여행이라니, 특별한 집의 특별한 아버지들 말고는 그 당시에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감히 여자애 주제에 열대여행이라고? 말을 잘 섞지 못하는 나는 속으로만 은미를 비웃었다. 비웃으면서도,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부러울 것이란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부러웠다고 해야 정직하다. 나는 여행은커녕 움직임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움직임 속에는 은미의 걸음걸이며 그에 걸맞은 디스코라고 하는 춤도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몸치의 눈으로 은미를 관찰하는 것은 미움이자 경이였다.

아무튼 나는 병문안 친구들 틈에 끼어 가게 되었다. 우선 예쁜 과일과 통조림이 섞이어 담긴 바구니를 사서, 서로를 앞세우며 들어간 병실. 은미는 ‘슈미즈 차림으로’ 벌떡 일어났다. 지금처럼 환자복이었으면 더 놀랐을지, 그건 모른다. 우리는 학생 티가 아닌 ‘새색시’ 같은 야한 차림에 놀라고, 그것이 부잣집이나 아무튼 앞서 나가는 집의 여름 잠옷이라고 아는 대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하얀 속옷 위로 드러난 살빛은 얼굴처럼 가무잡잡했다. 그래서 이빨만 허연 얼굴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어쩌다 이러니. 왜 병이 난거야.

응 뭐, 유전이지. 울 엄마 일찍 돌아가셨잖냐.

어머니가 무슨 병인지를 오래 앓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초등학교부터 함께 다닌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집은 커도 침침하고, 그 애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했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계속 하거나 울거나 할까봐서. 다행하게도 은미는 침대에 앉은 채 몸을 흔들며 말했다. 난 좀 달라, 시집을 안갈 거니까.

시집을 안 가면 어머니와 다르다? 맞는 말일 성싶기도 했다. 어머니가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다 거친 뒤에 무슨 병인지 발병했다면. 그렇지만 처녀가 시집 안 가겠다는 말은 3대 거짓말이라던 걸. 그 말도 나는 삼켰다. 애매한 미소만 흘렸다. 말을 내뱉기에 언제나 알맞은 시점을 놓치기 때문이다. 기껏 생각해서 무슨 말을 하려 하면, 어느새 화제는 두어 걸음 앞으로 나가 있다. 그러니 뚱딴지 소리를 듣게 되거나 힐난의 눈빛을 받지 않으려면 함구다. 그냥 알지도 모르지도 않는 듯한 미소가 쉽다. 평판도 따라오니까 일석이조다.

넌 한상 열대지방을 여행하고 싶댔잖아, 바오밥나무 무성한. 그 힘으로 가겠어? 어서 나아.

그래. 우선 졸업을 해야지. 외국어대학에 진학할 거야. 여행을 하려면 외국어가 필수지.

은미, 또 너 말을 앞세워!? 다른 친구들이 놀렸다.

꿈은 자유야. 꿈이 있어야 실현이 되고 말고 하지. 난 적어도 서너 개 외국어를 마음대로 구사하며 세계 곳곳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삶을 살 거야. 정 안되면 스튜어디스가 있잖아! 키 되지, 이거 - 두 손을 펴서 얼굴을 가리켰다, 내가 똑똑히 보았다. - 되지! 아아, 날고 싶어.


그런 뒤 곧 우리는 명색 고3이 되었고, 그 나름대로 입시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정작 대학에 진학했던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급우들이 대학을 포기했는지, 그것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서울의’ 대학생활에 젖어들기에 어리둥절했다. 첫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 기차역에 내린 순간에야, 그 특권의 표시가 부끄러워 예컨대 배지나 가방 등에서 무슨 표지물들을 떼어내 감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 대학 친구들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아니 대학에 별 마음을 두지 않았다.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포기했었던 부모님을 위안해드려야 한다면, 졸업은 잘 할 계획이었다. 그 나머지는 대학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다보니 같은 서울의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 은미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가끔 통틀어 향우회 등이 있었겠지만, 내가 잘 안 나갔거나, 참석했더라도 구석 참이었던 내게 별 기억이 없던가 그랬다. 은미가 정말로 스와힐리어 - 이름도 외우기 힘든 어느 아프리카 언어를 공부한다는 사실에 우린 차라리 웃었다. 그 실력이면 영어과를 가고도 남았을 앤데, 정말 『어린왕자』를 읽고 바오밥나무를 보러 가겠다는 그건 치기였을까. 대충해도 있는 집 아이들의 사치나 기껏해야 응석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문이 밀려 다녔는지 모른다. 긴 겨울이 끝난 뒤엔 더했다. 한 번은 은미가 봄날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는데, 그것이 휴학을 하고서 “남자 집에서” 쉰다는 해괴망측한 소리로 되어 떠다녔다.

입소문의 상대는 시골에선 제법 내노라하는 집안이었다. 큰 먹칠의 과거로 실제보다 더 유명했는지도 모른다. 사건사고를 잘 기억하는 사람들은 딸의 비극적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없었던” 일이 벌어지긴 했더란다. 반도 남단 하잘 것 없는 해수욕장에 지금 같은 인파도 아닌 한가한 때, 땡볕의 낮 시간. 총성과 함께 쓰러진 남녀. 누구는 쓰러진 사람이 셋이라고도 했다. 누구는 그냥 다같이 바다로 떠내려갔다고도 했다. 신문보도도 간결하고, 말하거나 듣는 사람들도 스스로 쉬쉬한 일. 믿기 어려운. 믿고 싶지 않은. 괜히 부풀려진?

아무튼 그 집안의 외아들은, 죽은 누이도 미인박명이라 했었지만, 정말 미남이었다고 했다. 그는 위 아래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는데, 당당한 은미에게로 일단락이 되는가 싶었더란다. 그러던 차에 그 민망한 소문이 돌았다.

아서라, 세상에 그런 일이!

아니야, 그 애 엄마가 안 계시잖아.

그 애 엄마 돌아가신 것하고 이게 무슨 상관인데?

뭘 몰라요. 여대생이 갑작스레 휴학하고 몸을 추스르는 것이 뭔데? 누가 들을까 싶은 말이다 뭐.

그럼 왜 떠벌이는데?

떠벌이긴. 그게 정말……

소설 쓰지 마라 느들.

소설은 은미가 스스로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더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런 해괴한 소문의 실제 주인공은 다른 선배인가 후배이고, 은미는 다시 그 “미수”를 저질렀다고도 했다. 실연의 고통 때문이라고도, 떠난 남자를 위협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아니, 복수의 방법이랬다. 글쎄. 이 모두를 나는 직접은 들은 적이 없어서 어느 것도 다 소설만 같았다. 상상이 잘 안되는 일들을 왜 소설이라 했을까? 지어낸 이야기라는 뜻이었겠지만, 세상에 지어낼 것이 없어서 처녀가 총각 집에서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지어낼까? 요즘 같으면 악플로 사람을 죽음에까지 몰고 간다니 그렇다지만, 그 옛날엔 그리들 심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눈사람 붓듯 불어난 이야기 정도였을 것이다. 구를 때마다 엄청나게 커져버리는데, 처음 알갱이는 아예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어쨌거나 휴학으로 인해 은미는 우리보다 일 년 늦게 졸업을 했다. 그리고 곧 은행에 취직했다는 소식이었다. 은행은 은미완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동색조합으로도, 보색관계로도, 어떤 식으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얼음 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 대학 시절 학과별 합창 경연에서 우리가 슈베르트의 <숭어>를 연습하는 동안 갑자기 은미가 떠올랐던 때가 있었다. 숭어는 도약력이 뛰어나 수면 위 매우 높은 곳까지 뛰어오른다. 뛰어오를 때에는 꼬리로 수면을 치면 거의 수직으로 뛰어오르며 내려올 때는 몸을 한 번 돌려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진다는 날쌘 물고기다. 공으로 말하자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다. 이 곡의 경쾌한 멜로디와는 달리 노랫말은 권력자와 음모에 대한 아린 비판을 담고 있다. “얼음 같은 강물에 뛰노는” 이 날쌘 숭어를 낚시꾼이 영 낚을 길이 없자, 꾀를 내어 물을 흐리게 해서 낚아 올린다는 내용이다. 숭어는 주로 연안에 서식하다가 강물에도 들어간다지만, 이렇게 흙탕물이 된 강물에서 잡힌 숭어가 안쓰럽기만 했다. 우린 합창연습을 했던 4월 5월 내내 이 숭어를 불쌍타 하면서도, 일단 노래를 하게 되면 화음에 고개를 맞추며 즐거워했다. 나도 가끔 은미의 경쾌한 발걸음을 떠올렸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니까 은미가 제복을 입은 직장인이라는 영상은 아무래도 어색했다. 똑같은 디자인의 제복에 갇혀서, 그 톡톡 튀는 엉덩이를 의자에 죽치고 앉아 돈을 세고 있을 장면이 떠오르자, 퍼뜩 강물에 밀려올라와 파닥이는 숭어 생각이 떠올랐다.

그 펄펄 나는 애가 은행에? 그것도 좁디좁은 고향에서?

왜, 은행이 어때서? 미모도 한 몫 했겠지만, 집안도 한 몫 했겠지.

그래, 직장 내에서도 사람들 다 휘어잡고 웃기고 그럴까? 유머 하나는……

여자애들에겐 대학을 졸업하고도 교사 아니면 별로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던 때라서, 더러는 은미를 부러워했다. 은행원들은 보통 소심하고 단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은미는 이런 저런 내기로 남자직원들을 골탕 먹이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마침 친구의 친구가 같은 은행에 다니게 되어서였다. 그러다가 서로 전근이 되었던지 잠시 소식이 끊겼다. 다들 결혼으로 갑자기 연락이 안 되거나, 심심찮게는 이민으로 소식이 아예 없어지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은미의 결혼소식이 뒤늦게 날아왔다. 그냥 결혼을? 미모에 매력덩이 여행원에게 어떤 고객이 반하기라도 했담? 그러나 신랑은 서울의 어느 지점에서 동료 행원으로 만난, 너무도 평범한 상대였다. 뭔가 우리 보통 아이들에게 특별한 연애를, 특별한 인생을 보여줄 듯했던 은미의 수월한 결혼에 우리는 괜히 허탈했다. 평소에 은미의 기발한 행각에 실었던 우리의 일탈의 소망이 함께 사라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워낙 근엄하시니 별 수가 있었겠나, 그 정도로 이해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물며 신랑이 얼마나 근검절약형 행원인지, 그것도 뉴스거리였다. 사보에 싣는 토막글도 오직 원고료 때문에 쓴다는 위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비상한 머리에 통이 대통인, 재즈와 디스코의 여왕이자 유머의 고수가 푼돈에 쓰기 싫은 글을 쓰는 자린고비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단하고 미래를 걸 수 있을 남편감일지 모르나, 은미에겐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당시엔 여행원은 결혼과 동시에 퇴직이었다. 이제 은미가 시할머니 층층에서 시집살이를 한다? 해방의 선두주자를 놓친 우리들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그 신랑을 존경어린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인물이면 은미를 들여앉혀서 살림을 하게 하나, 것도 시집살이를?


우리들 중에 시집살이로선 가장 마지막 후보였던 은미가 소도시의 한옥지구에서 시커먼 가마솥에 물을 끓여 시할머니 목욕을 시키고, 밥상은 시할머니 따로 시아버지 따로 시어머니 따로, 그리고 나서야 아이들끼리.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다 한두 번 은미가 고향에 다니러 오면 급조한 동창모임에서, 콩나물무침에 젓가락을 쑤셔대며 우리를 놀리던 그런 자리에서, 드문드문 은미의 생활상이 내뱉어 나왔다. 몇 친구들이 펄펄 뛰는 은어를 어렵게 상추에 몰아넣으며 식당에서의 상추가 위생이 어쩌고 하던 때였다.

상추? 난 집에서도 다 안 씻어. 그걸 언제 다 씻냐고. 어른들 밥상엔 대충 해서 올리고, 아이들 줄 것만 제대로 씻는다니까.

상추를 다 안 씻어? 아니 너……

어때. 너희도 식당에서 그냥 잘들 먹잖아. 한 끼에 밥상이 몇 갠데, 그것 다하고 언제 우리 방에 들어가. 애들하곤 놀아야 하는데.

놀아?

그래. 문 닫아 걸고, 아이들 하고 디스코 추지 뭐. 갓 투비 데어…… 패러독스!

난데없이 패러독스는! 아무튼 너 몸매 하나 잘 가꾼 거구나. 얘 날은어 삼키며 파닥거리는 것 좀 보라니깐. 여전히 애들 똑 같네! 우린 모두 ‘배둘레햄’이야. 봐, 이 뱃살을 어쩌냐. 넌 우리 몇째 동생 같구나. 얘 또 이 옷 입는 것 좀 봐!

옷차림은. 총대처럼 붙은 청바지에 총대같이 붙은 청조끼라니. 그것도 아무리 보아도 작아질 대로 작아진, 아무리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고 또 날씬해 보이려고 꼭 끼게 입는다 해도 그건 아니었다. 이 옷차림은 그나마 골목 어귀의 구멍가게 주인여자에게 보관했다가 살짝 몰래 입는 것이랬다. 집에서나 보통 시장 출입 때에는 ‘월남치마’를 입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회장인가 이사장집 외동딸로, 반장, 부반장 뭐든 다 하고서, 뭐든지 입고, 누가 보든지 엉덩이를 제 마음대로 흔들고 다녔던 은미가. 우수한 인간의 뛰어난 적응력일까?


결국 은미 같은 날렵한 튀는 자태에서 왜소한 처량한 몰골로의 변화란 십년 남짓으로 족했다. 불쑥 나타나서 여전히 기발한 유머를 날릴 법한 은미의 표정이 점점 서늘해갔다. 우리들이 점점 덜 웃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세상에 코미디 프로가 퍼진 탓이었나? 우리들의 재미가 달라졌을까? 우리는 무엇을 향해 살았을까?

어쩌다 나타나도 항상 은미가 중앙무대의 상석을 휘어잡던 분위기가 언제부터인가 차츰 달라져 갔다. 아니 역전되었다. 말에 힘을 싣는 쪽은 새 귀족이었다. 혈통(?)귀족 대신 나타난 새 귀족. 그들은 아무래도 냄새를 풍겼지만 막강한 실세였다. 향수와 돈 냄새의 묘한 뒤범벅이었지만, 누구도 조금 고약한 그 냄새를 그리 탓하지 않았다. 우선 넉넉하고, 또 편했으니까. 가끔 새 귀족이 양반자리까지 넘보고 교양의 고지마저 점거하려들면 조금 마찰이 있긴 했다.

아니 와인 잔을 그렇게 들면 어떻게 하니. 여기 손잡이를 이렇게 들어야지! 다 마시는 법이……

우리가 움찔하면서 손을 고쳐 잡으려고 하면, 한 괴팍한 친구가 태클을 건다.

어디를 잡으면 어떻고. 내 잔 내 맘대로 들지 뭐. 서양 술 얼마나 마신다고 법석이야. 따지자면 와이트는 그래. 하지만 레드는 특별히 차갑게 할 필요가 없으니 아무래도 되는 것 아냐?

이도 저도 모르는 우리들은 머쓱해도 좋지만, 은미가 쥐죽은 듯해서 맘에 걸렸다. 이젠 은미가 확실히 마이크를 뺏겼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러고는 정말 더 멀어갔다. 그래도 일단 은미네가 다시 서울로 전근을 간 남편을 따라 분가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는 괜히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제 삶에 부대끼면서 동창의 삶쯤은 잊어갔다.

일찍 결혼 한 친구들은 벌써 아이들의 입시에 들어갔고, 그러자 우리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대입’이었다. 매일이다 싶게 차 마시며 오가는 같은 아파트 이웃들도 ‘자녀들의’ 학교에 관해서는 서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대화 자체가 멎었다. 잦은 이사들로 이웃이 자꾸 바뀐 때문이기도 했다. 동기 친구들도 신축 아파트 따라 이사하는 속도가 다르다 보니,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800미터 달리기 할 때 속도가 한참 달라서 누가 세 바퀴째인지 네 바퀴째인지 구별이 되지 않던 때처럼, 누가 어디쯤 서 있는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서로 모르게 되었다. 수준 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급격했다. 점심은 백배, 시계는 천배로 갈라졌다. 누군가의 연봉을 한 번에 통째로 입고 두르고 있는 명품 친구 앞에서, 은미의 여전히 총대 같은 청바지는 날씬한 몸매와 상관없이 초라했다. 이제는 민물고기같이 잽싼 몸놀림보다는 약간의 나른한 굼뜬 동작에 화려한 장신구가 더해지면 그대로 우아미를 발산했다. 어떻게 가꾼 것인지, 충분한 영양 탓인지, 피부들도 엄청 차이가 났다. 볼이 톡톡 튀던 은미의 표피는 앙상한 싸구려 파운데이션으로 뒤범벅되어 있었고, 속까지 비치는 부들부들한 살결들 사이에서 아무래도 이물질 같았다.

은미 너! 몸매 하난 여전히 끝내 준다만 웬 파운데이션을 그리 발랐어! 논바닥처럼 갈라지네, 너무 두껍게 발라놓으니 말야.

아닌데, 나 파운데이션 많이 안 발라, 진짜 아껴. 여기 봐, 이마 쪽은 안 발라, 안 보이잖아. 그리고 볼도……

놀라워라. 단발처럼 눈썹까지 내린 앞머리를 걷어 올리니 정말로 위아래가 다른 이마가 나타났다. 우리들은 깔깔 웃었다. 못 말린다, 못 말려.


여고 때에도 이런저런 기발한 착상과 뉴스들로 우리를 웃기고 놀리던 은미였다. 어디서 그렇게 놀라운 뉴스들을 퍼왔었을까? 아무래도 덩치 크고 잘 나가던 오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갓 투비 데어, 갓 투비 데어, 인 더 모닝 웬 쉬 새즈 헬로 투 더 월드 / 갓 투비 데어, 갓 투비 데어, 빙 허 굿 타임즈 앤 쇼우 허 댓 쉬즈 마이 거얼 / 오 왓 어 필링 데얼 비 더 모우먼트 아 노우 쉬 럽스 미 / 코즈 웬 아 루크 인 허 아이즈 아 리얼라이즈 아 니드 ……

잘 들어야 겨우 알아들을 노래와 함께 문워크래나 뭐래나 뒤로 걷는 춤은 일품이었다. 독특한 것은 우리가 “아이”라고 발음해야한다고 믿는 것을 꼭 “아”로만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누구도 미국사람의 발음을 제대로 아는 일이 없었으니, 잘 나가는 은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은미는 학교도 가끔 불신했고, 특히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란 “콩글리쉬”라고 우겼다. 그것도 우리가 덩달아 “콩그리쉬”라고 하면, “콩글리쉬”라고 다잡았다.

페임 / 암 고나 리브 포레버 / 암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암 고나 메이크 잇 투 헤븐 / 라잇 업 더 스카이 라이크 어……

결혼들을 하고도 한 참 뒤였을까. 큰 동창회 행사에서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신곡’으로 혼자 목청을 뽑을 때에도 우리가 “아이”라고 발음해야한다고 믿는 것을 꼭 “아”로만 발음하는 건 여전했다. 알라뷰! - 요란한 박수소리에 깜짝 응답으로 손을 쳐들고 무대에서 뛰어내려오던 모습은 숭어든 망둥이든 이름 하여간에 펄펄 나는 물고기였다.


천천히 그러나 어느새 세월이 갔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아예 잊혀갔다. 이웃에 살아도 서로 다치지 않고서 말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나는 점점 서로 말 주고받음 없이 제 이야기만 하는 텔레비전에 익숙해갔다.

코미디. 난 코미디 프로를 가장 슬퍼한다. 그래서 싫다. 슬픈 영화는 괜찮지만 코미디가 슬픈 건 참지 못한다. 내가 틀리는 지도 모른다, 코미디가 우습지 않고 슬프다고 말하면.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우습다고 말하는 코미디가 제일 슬프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정말로 웃게 되고, 웃으면 그때마다 젊어진다고 해도 싫다. 나는 코미디를 보면 슬프고, 슬프기 때문에 더 늙을 것이다.

시트콤. 그것도 아니다. 단편집을 읽을 때처럼 지속적인 줄거리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웃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 방해가 된다. 무엇보다 웃음은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고, 관객이 따로 있고, 그 다음에 내가 그것들을 함께 보는 상황이 정리가 잘 안되는 것이다.

딱히 일정한 취향은 없었지만, 연속극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그 다음 장면 그 다음 발전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밉살스럽게 꼭 궁금증을 유발할 때쯤에 끝을 내고 다음 시간으로 넘기는 수작에 성가시지만, 가능하면 다음 시간에 눈을 대게 되었다.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이야기”에 정신을 판다고, 유익할 것이라곤 조금도 없는 프로나 기다린다는 식의 남편의 시선엔 익숙해졌다. 그가 보는 뉴스는 인생에 도움을 주는가? 하긴 날씨는 하루 일을 조금 편케 해줄지 모른다. 교양강좌 시간? 더 이상의 교양과 지식이라 해도 내 인생을 바꿀 리 없다. 업그레이드? 무엇을 향해서? 나는 그저 드라마라고 하는 남의 인생살이 모형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살아가는가, 살아 갈 가능성이 있는가 따라갈 뿐이다. 이웃이 있는 느낌이고,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착각에 든다. 나는 그냥 “어떤 다른” 인생들을 바라보면서, 이웃의 그렇게 서러운 더러는 힘든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기분에 빠지려는 것이다. 그러면 서러워지지 않고 진지해진다. 감정이입이라고, 어렵게는 그리 말한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여자인 내가, 드라마 속의 남자에게도 그런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자: 어머니가 나를 버렸다. 어머니가 버린 딸 -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어서 죽고 싶다.

남자: 너 살아 있는 것이 내 의미야. 이렇게 고운 네가 자학에 빠지다니. 내가 너를 지켜주겠어.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빠진다.

다른 남자: 아버지가 실수로 비천한 가운데 뿌린 씨앗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부정하는 아들 -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어서 죽고 싶다. 여자가 위로한다, 오빠 태어난 것이 기뻐요.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여자가 심장에 박힌다. 여자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있다.


어쩌냐. 원래 큐피트의 화살은 한 방향으로만 난다. 여자와 남자의 결속은 다른 남자가 여자를 심장에 박아두고 있는 한 온전치 못할 운명이다. 누군가의 심장 속에 박힌 여자는 언젠가는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가 여자와 남자의 행복을 위해한다. 행복은 깨진다. 여자는 남자를 가슴에 품고도 떠나야 하고, 그런데도 여자 시청자인 내가 극중의 다른 남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를 향해 연연하듯이 다른 남자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이해한다. 나도 덩달아 사랑을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물론 영화가 가장 편할 것이다. 후속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압축된 인생이 거기 있으니까. 그러나 영화관도 아니고 방에 박혀서 여기 저기 채널을 돌리다 보면 그것이 어차피 토막인 채다. 프로그램을 미리 찾아보고 특정 영화를 찾아 볼만큼 광도 못되고, 무엇보다 게으른 탓이다. 뒷부분 절반만 보았던 것을 조금 더 앞서부터 보게 되거나, 계속 그런 뒤쪽만 보다가 오래 지나서야 그 앞쪽을 보는 일도 있으니 뭔가. 시간이 나면 낮밤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이나 보고 사는 내 인생이 어찌 보면 더 한심하다. 사람이 실 인생에 무관심하고서 그리 픽션을 탐하게 될까? 저 거짓 타령에 눈을 떼지 못하고 사는 난 무엇인가. 무용지물. 남편 밥상 차려주고, 함께 먹고, 설거지하고, 손 씻고, 물기 닦고, 로션 바르고. 그것을 세 번 되풀이 한다. 그것을 두 번만 하는 날은 그 변형을 즐긴다. 아무렇게나 한 끼 먹고, 그릇을 조금만 씻고, 손 씻고, 물기 닦고, 로션 바르고. 하긴 그게 그거다. 안 먹고 건너뛰어야 진짜 변형일 텐데. 나는 굶거나 폭식을 싫어한다. 배고픈 것도, 배부른 것도 싫다. 이렇게 오직 적당히 먹기 위해서 사는 날이 부쩍 늘었다.


매형, 뉴스 시간이네요. 동생이 뉴스 쪽으로 채널을 바꾼다. 제 댁이 몸을 풀고 친정집에 가 있는 동안 아예 우리 집으로 - 우리 집은 무엇보다 빈 방과 밥이 있다 - 퇴근하는 막둥이가 말한다.

논픽션의 단골 메뉴, 중동에서의 폭탄 테러, 이미 벌어진 다음 어쩌란 말이냐. 이래서 난 뉴스를 싫어한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되풀이이다. 하긴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도 이미 낡은 이분법이 되었다지. 창조론을 믿는 유전과학자,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줄기세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특별한 신앙인-과학자 또는 과학자-신앙인이 그에 속하리라. 하지만 검고 흰 것이 따로 없다면? 기름과 물이 구별이 안 된다면? 모든 가치의 종말이리라. 가치, 가치.

지난여름엔 지상 최강대국 수장이 지적설계론 교육문제에 개입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미친 놈, 현대판 십자군전쟁의 주범이 실전이 모자라 이론영역까지 침범해? 남편이 난데없이 뉴스에 흥분했다.

뭘 먼 나라 뉴스 가지고 그래요?

힘을 가진 놈들의 맹신은 아주 무서운 거야. 히틀러의 반유대주의하고 한 개인의 반유대주의가 같냐고. 지적설계론이란 우회적이지만 분명 사기적인 표현이오. 신앙의 영역을 들고서 과학을 침범하겠다? 부시의 보수개신교가 문제라, 착한 늙은이가 보수개신교도라면 도덕적이고 선할 뿐이겠지마는.

것도 가부장제도만 빼고요? - 참, 애기아빠야, 너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그림 봤어? 그것으로……. 뇌관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 싶어서 얼른 말머리를 돌린다.

건 또 뭐라는 거요? 아니 그보다, 뉴튼도 창조론을 신봉했던 것 몰라요, 누님?

뉴튼이 신앙인이건 아니건 중력은 기적이 아니라 실체로서 살아있는 거지.

누난 참. 과학의 뭘 안다고 진화론 옹호자가 된 거요?

그보다, 넌 어떻게 초음파로 사람 들여다보며 사는 사람이 진화론을 의심해? 그러고도 자연과학자야?

누님, 그러네. 내가 내과라 그런가. 아니 외과 친구들 중에도 가톨릭의사모임에 열성인 경우가 많아. 확실히는 무엇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약을 처방해야 하고, 같은 약물로도 반응이 다르고, 한 알이냐 한 알 반이냐 정해야할 때 내가 무슨 수로 나를 의지한단 말이오. 나는 도구고 하느님이 역사하신다는 생각의 틀이 도움이 돼. 내가 훨씬 덜 힘들어.

자신이 없기는. 그건 네 영혼을 위한 네 신앙이지, 환자를 치료하는 과학적 사고는 아니다.

그래도, 내겐 힘이 되고 있어.

거야 좋은 일이겠다. 믿음이 널 지켜주는 한. 하지만 나 같은 무용지물은 전체 그림을 생각할 겨를이 없지. 우연적으로 발생한, 그러나 유일무이한 생명체, 그 자체로서 의미가 담겼다고 해야 겨우 살아가지. 생명 말고는 내가 무슨 가치가 있어 살아.


아니 잠깐, 이번엔 투신자살이다. 자살은 요사이 뉴스다운 뉴스도 아니다. 엽기적 연쇄살인에 밀려 제 죽는 것이 무슨 뉴스랴. 자살사이트가 어쩌고 젊은 연예인들이 어쩌고 하면서, 자살이 놀이처럼 번져가는 낌새도 수상쩍긴 하다. 열악한 환경에, 실연의 고통에…… 진부하다면 진부한 이유들. 보통 사람이라면 열 번을 죽었다 살아나도 못 만져볼 재산을 두고서 목을 맨, 보통 사람이라면 올라가보지도 못할 성공에 이르러서 죽은 …… 사치라면 사치스런 이유들.

사람들은 때론 악랄하리만치 잔인하다. 여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목을 매는 것은 약을 삼키는 것과 비교해서 의지가 얼마큼 강한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약을 삼키려다 말거나, 삼켰다가 토해내거나, 목을 맨 줄을 다시 풀 확률과, 풀려 했는데 못 푼 상태에서 발이 미끄러져버리는 비극적 경우까지 죄다 노닥거렸다. 칼로 베는 방식은 아예 제외였다. 웬만해선 죽게 베지는 못한다고. 가장 강력한 의지는 투신일걸, 누군가 그러면, 이번에는 다리 난간에서 강물에 투신하는 것과 옥상에서 투신하는 것에 대해서 왈가왈부였다. 제1의 강자 자리는 고층빌딩 옥상에서 추락하는 방식이 차지했다. 기울기가 잡힌 순간 되돌릴 수가 없다는 점. 누군가 함께 뛰어들어 구해줄 수도 없다는 점. 한 마디로, “쇼가 아닐 다름에야” 고층옥상이 가장 완벽한 선택이라고. 상처만 입고 병신 되어 살아날 가망도 없이. 그러니 얼마나 완벽한가. 하늘을 향해 한 번 비상하는 것. 그것으로 끝이다.

뉴스란 그러나 이래저래 소용이 없다. 이미 떨어져버린 사람에 대한 소식 - 그것으로 어쩌겠다는 말이냐. 떨어진?

그러니까 이번 소식이란 바로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진 여자에 관한 것이다. 한 때, 아이 엠 에프로 몰락한 한 가족이 고층 옥상에서 투신했는데, 다 고스란히 살아났더라는 우스개 뉴스가 있었다. 애비는 제비족, 어미는 날라리, 자식은 비행청소년이었으니까. 저 여잔 날라리가 아니었군! 잘 좀 날아 보시지! 나는 법을 안 배워뒀나? 갑자기 아이린 카라의 불타는 눈매가 떠오른다. 가무잡잡한 피부까지 닮은 은미의 불같은 눈매가 겹친다.

페임 / 아임 고나 리브 포레버 / 암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영원히 살겠다,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겠다? 갑자기 등줄기에 찬물이 인다. 설마.


하긴 은미는 한동안 조용했다. 아예 동창회 네트에서 사라진 것이다. 삼삼오오 필드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늘고, 산악회다, 해외여행이다 몰려다니기 시작할 때, 은미가 사라지고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누군가 오전 10시에 집에 전화했을 때 전화를 받는 여자는 병든 년, 돈 없는 년, 그리고 또 하나 성질 나쁜 년, 세 종류뿐이라는 우스개가 돌았다. 은미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나는 어디일까?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에 자존심을 건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 생각이 난다. 여름철 휴가를 못갈 형편이면, 앞문을 잘 잠그고서 휴가 떠난 빈집처럼 해놓고 뒷문으로 드나든다나. 그러다가 빈집털이 좀도둑에게 들키면, 제발 다 가져가도 좋은데, 휴가 못 떠난 사람이 있더라는 소문만 내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나. 그러니 나는 10시경에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으면 되겠다. 은미도 그럴까.


따르릉. 아침 정리가 대충 끝나고 막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는 참이다. 이 시간에 집에 있는 나를 사람들은 어떤 부류라 취급할건가. 몹쓸 병이 든 것도 아니고, 돈이 아주 없지도 않고, 그럼 성질이 나쁜? 나쁜 사람이 스스로 나쁜 줄을 알랴마는, 난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럼 그만 두자. 나도 나다니는 척 하자. 전화는 끊겼다가 곧 다시 요란스레 울렸다. 설마 중요한 일이?

나는 작정을 하고 윈덱스 병과 마른걸레를 들고 앞 베란다 쪽 유리창으로 향한다. 해가 비치는 오전 이른 시간이라야 창에 난 손자국들이 선명해서 잘 보이고, 또 자국들은 한낮보다는 아직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야 잘 닦인다. 몇 개의 화분들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풀냄새가 아련히 졸음을 불러온다. 따르릉 따르르릉. 이번에는 예사롭지 않게 끈질기게 울려댄다. 전화 숨이 긴 것이 조금 불안하다. 아서라, 양쪽 집안에 노인들 계시는데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배짱은 또 뭐람. 스스로를 나무라며 문을 젖히고 수화기 쪽으로 내닫는다.


*


서울에 올라갈 수야 있겠냐.

서울 친구들은 그럼 다들 가 봤대냐?

다들은 뭐. 요 근래엔 통 소통이 없었대. 애 유학 보내놓고 마찰이 많았었다네. 은미는 애 따라 나갈 계획이었고, 남편은 결사반대고.

조기유학도 아니었다며 애 따라 나갈 건 왜. 집에서 합의가 안 되면 못가는 거지 안 그래.

남편이 못 가게 한다고 못 떠나? 이 나이에?

이부자리 보고 발 뻗는다잖냐. 아예 손발이 묶이면 꼼짝 못하는 거지.

손발이 묶이다니. 옥상 그거 아니었어?

아니 뭐 손발이 묶였다는 게 그게 아니라.

아님 뭐?

경제권이 아예 없었단 얘기지. 평생 시장비 타 쓰는 형국을 참고 살았다는 거야. 몇 대째 있는 집에서 자라, 남편이 이재에 밝아 한 재산 해 놔두고 말야.

설마. 남편 통장 고스란히 받아 챙겨 관리하는 것이 한국형 경제 아냐? 처녀 때 성 쓰지, 통장 갖지, 선진국보다도 여권이 신장된 나라에서 웬 말!

훨훨 떠난 사람 두고 무슨 뒷말들이야. 결국 날아갔네 훨훨. 아임 고나 리브 포레버 아임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비보를 전해 들으며 어안이 벙벙했던 우리들은 일단 모였다. 어라? 급한 대로 연락이 잘 안된 모양인지 평소의 반도 안 되었다. 더구나 다들 제 형편 따라 문상 갈 처지가 아니고 보니, 대표로 누구에겐가 짐을 씌울 셈으로 모인 것이다.

밥이 벌써 나온다, 어쩌냐. 우리 아직……

어쩌긴, 산 사람은 먹어야지. 먹고 이야기 하자. 인생이 그리 녹녹하다더냐. 아무튼 우리 더 단단히 맘 다져먹고 살자. 아이들 어중간하게 참 어쩌라고. 짝들은 맞춰줘야 부모책임을 다하는 거지.

암 고나 리브 포레버 / 베비 리멤버 마 네임 ……

실팍한 친구의 다독거림 사이로, 어디선가 환청일까 ‘아이’를 ‘아’로 고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정말 날고 싶었던 거야? 날아서 바오밥나무를 보러 간 거야?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 애가 해외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지 않았다. 아프리카는커녕 아무데로도 못 떠났었나, 설마? 나가면 나가고 떠나면 떠나지, 뭣 하러. 논픽션에 등장하면 어떻게 해, 바보같이……. 어디라고 할 데 없는 곳을 향해서 속으로 뇌이고 있다.

뭐해, 어서 먹지 않고.

무심코 한 친구가 콩나물 그릇을 내 가까이로 옮겨준다. 풋마늘무침과 자반무침 사이에서 노란 콩나물이 오늘따라 애처롭다.

그래, 맛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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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6. 30. 23:30


조 사

 

                                  소설시대 2007

 


오늘 길 떠나시는 시인을 찾아 서둘러 날아온 ‘쑥국새 울음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봄날, 우리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하는, 존경해 마지않았던 OO OOO 선생님, 제자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가르침을 주신 스승을 잃은 마당에 감히 조사를 읊어 바치고자 하니, 서러운 마음 그지없어 눈앞이 깜깜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단발머리 소녀들로 스승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솔방울만 굴러도 깔깔 웃고, 낙엽이 떨어지면 눈물 떨군다는 소녀시절. 바로 이런 봄날, 뻣뻣한 검은 말총머리를 휘날리시며, 휘날리는 머리카락 따라 고개를 끄덕이시며 들어서신 국어 선생님. “아야!” 그렇게 정겨운 목소리로, 그러나 완벽하게 우리말 우리글 공부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 


우리가 이 영어 세상에서 우리말을 사랑하며, 이 글로벌 세상에서 우리 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음은 스승님께서 우리들 때 묻지 않은 영혼에 심어주신 ‘우선은 국어 사랑의 정신’과 나아가서는 ‘자중자애의 숭고한 가치’ 덕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친구들을 서로 사랑하고,  심지어 사투리까지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타인이 나보다는 자신을 사랑함을 이해하고, 행여 자신을 사랑하는 타인을 못해도 자신만큼은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자신에 걸맞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 외에는 세상살이에 달리 첩경이 없다고 깨우쳤습니다.


스승님은 우리의 꿈을 높게 이끄셨고, 많은 제자들이 보다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자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보람이 적다.” ― 세상을 아시기에 미리 한탄하셨던 스승님. 우리 “보람이 적은” 여자제자들의 삶 속에도 스승님의 가르침은 면면히 흐릅니다. 서울에 가서 살건 미국에 가서 살건 전라도 아낙인 것 부끄러워한 적 없고, “툭시발 갓의 된장 맛”이라고, 구수한 인생살이에서 가정과 자녀의 인생에 알뜰한 간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빛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소금은 될 양으로 ―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조사는 그런데 읽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지들의 조사 틈에 여자제자들의 차례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우리 쪽 차례가 오면!” 준비는 해두자고, 공인으로 활동하는 동창이 하룻밤을 조르는 데 못 이겨 난생 처음으로 써 본 조사였다. 그럴 일이 생긴다면 읽기는 목청도 담도 좋은 동창이 잘 읽을 터였다.


허옇게 서있는 키다리 조화들은 즐비했다. 막상 발인은 예상보다 조촐했고, 선생님 살아생전에 모이던 제자들 수만큼은 어림없는 인파였다. 


*


문학 월간지에서 무명의 나에게 청탁이 왔다. 청탁이다, 적어도. 등단 몇 년이라고는 하지만 고료를 받고 쓴 작품이 몇이던가. 그 동안 썼다가 구겨둔 원고들을 서둘러 훑어 볼 일이다. 그때마다 중단된 글들도 처음엔 절실한 심정으로 시작했었던 것들이니까. 그 옛날, 윗목의 낮은 교자상 앞에 구부려 앉아 쓰고 또 쓰다가 구겨둔 원고지들은 다 사라졌다. 버리고 또 버려도 쌓이는 파지들을 자꾸 치운 까닭이다. 그런데 컴퓨터 속은 도둑놈 계집 치마폭이다. 켜켜로 쌓아두면 버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미지 작업이나 사진 작업이 거의 없는 ‘우리의’ 노트북은 죄 한글문서들뿐이어서, 용량에선 넘칠 염려가 없다. 이런 무궁무진한 창고 덕에……


아니 그런 모든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미진한 몸이 청탁을 받으면 목욕재계를 하고 선을 하고 앉아서 명상에 잠겨도 모자랄 일인데, 대뜸 창고 속을 후비기 때문이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 도는 문서들도 없지 않다. 적게는 8KB짜리에서 많게는 1,126KB까지 분량 또한 제멋대로이다. 드물게는 ‘열려라 참깨!’를 잃어버려서 바윗돌처럼 닫혀버린 파일도 있다. 노트북을 공유한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파일들이 있고, 암호를 걸어두었다가 그리된 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트북에 대한 권리에서 함께 쓰는 그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는 밥을 벌고 나는 밥을 벌지 않는다. 그는 아무 시간이나 일을 하고, 나는 그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어서야 노트북을 연다. 그러니 항상 서두르는 버릇이 있다. 집히는 대로 작업을 하다말다 그러는 것이 버릇이 되고 말았다. 한심한 노릇이다.


바로 어젯밤에 쓴 「조사」가 들어있는 파일에 쓰기 시작하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싶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니 너무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글이다. 격식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데 글쟁이라니 한심하다. 상투적인 감상의 찌꺼기는 또 뭔가. 그러면서 엉뚱하게 사투리 배운 것을 감지덕지하다니, 듣는 이들이 황당하다 했을 것 같다. 읽혀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문자화 되어 마음만 여기에 남으면 되니까. 이렇게 잘 표현되지 못했더라도 속에 담긴 의미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보다도 크게 봐서 인생은 어느 구석을 돌아도 비슷한 쳇바퀴란 건방진 생각이 들 때면,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은 어차피 누군가가 살다가 죽는 이야기의 한 단면일 것 같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그 이상의 범위를 넘지 못할 것이고, 어떤 초라한 글쟁이도 그저 그 지평 안에서 몸살을 앓을 것이다.


파일들은 생각보다 분류가 되어 있질 않다. 어쩌다 눈에 띄는 파일 중에 마찬가지로 ‘옛 스승’과 관련된 짧은 글 토막이 있다. 모교 동창회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추억담을 올려달라는 성화에 적어두었던 모양이다.


모교의 OOO 선생님은 가정과 선생님에서 교감, 교장 선생님을 두루 다 거치셔서 동문 모두에게 잘 알려진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동기의 ‘홈커밍’ 행사에 불참하실 때 노환이 깊으시다는 소식에 마음들이 무거웠지만, 그것도 벌써 옛일, 이젠 이승을 떠나신지 오랩니다.


선생님은 떠나셔도 의미 있는 한 순간의 기억은 영원 속에 박힙니다. 저는 아직도 아주 적나라하게 목욕탕에서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비누에 엉키는 머리카락을 쉽게 떼어내는 방법은 그분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속옷 서랍을 정리하는 일 하나도 참 숙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너절하게 두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사소한 것에 감동하느냐고요? 인생은 사소한 것의 총계라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엄청난 목표 달성을 위해 사소한 행복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홈커밍 행사 날 한 친구가 유난히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친구는 모교에 부임한 초년 교사로 스승님은 교감선생님으로 잠시 함께 재직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젊은 ‘애 엄마’ 여교사들에게 교감선생님은 감시 대신 시원스레 말미를 주셨다고요. 가능하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재빨리 집에 가서 ‘아이를 잠깐이라도 꼬옥 껴안아주고 오라’는 충고. 당신께서 여덟 자녀를 기르시며 후줄근한 숙직실에서 젖을 물렸던 기억에 아파하시며, 젊은 여교사들에겐 가능하면 아이에게 밀착된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던


거기에서 중단된 이 글은 홈페이지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제 새삼스레 추억에 잠기면서 운명의 불공평한 대우에 분노가 인다. 그분이, 마지막 몇 년을 지독한 치매상태에서 고통 받아야 했다는 뒷소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평생을 교직에 종사하고 - 그저 단순한 가사노동이나 혹은 유한마담의 삶을 살아간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무엇을 그리 잘못 했다는 말인가? 치매를 행여 젊은 시절의 방만에 대한 벌이라고 하는 단순논리를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 삶을 살고서 그 마지막 몇 년이 치매라면, 이것은 뭔가 아니다 싶다.


“고매하신 창조자의 섭리 따위는 없다는 증거야.” 내가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잘라 말했다.

“그런 말은 심하다. 그 선생님 시절엔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양쪽에서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리 되셨겠어. 게서 창조주 이야기는 왜.”

“창조주란 말 안 썼다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 그게 그거다 원.”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내겐 항상 편이 적다. 그래도 우긴다.

“양심 없는 쪽이 양심 있는 쪽보다 훨씬 더 잘 산다면, 그게 이 세상에 고귀한 섭리 따윈 없고 우연이 지배한다는 것 아니냐고.”


다 말하지는 못했다. 실은 안팎으로 죽어라 일만 하시다가 치매로 고생 끝에 돌아가신 우리 선생님과 대비해서, 아파트 우리 라인에서 제일 멋있게 늙어가는 노부부 이야기를 할까 했었지만.


이런 이야기다. 남편은 겉은 영국신사에 속으로는 향교에서도 알아주는 식자에, 아내는 젊어 이래 폐백음식에 불려 다녔다는 솜씨를 자랑한다는 부인이다. 산보길이며 외출하는 양이며, 최고로 여유 있고 한가롭게 여생을 즐기는 모습이다. 할머니는 아예 노인 축에도 안가는 팽팽한 얼굴이다. 근심 걱정이라고는 평생 없었다고 말하는 피부. 고운 자태. 고운 옷.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내막은 주말 연속극 감이었다. 남자는 고향에 처자가 있는 유부남, 여자는 처녀 때 만났던 사이라는데, 내가 그것으로 놀랐다면 호들갑이다. 속내는 더 기가 막혔다. 처녀 쪽에서 마음 고쳐먹고 시집을 갔으니, 일은 제자리로 돌아간 듯 했더란다. 그런데 여자가 한두 해만에 딸을 하나 낳고서는 그걸 버리고 다시 이 남자에게로 왔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는 제 아들을, 어머니는 제 딸을 버리고서, 그렇게 다시 시작해서 ‘우리 자식’ 몇을 더 낳아 온갖 정성 다 쏟고 호의호식으로 키우면서 살아왔다니.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는 큰아들 선 자리를 말 그대로 백번도 더 보았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버린 자식들 ‘내 자식, 네 자식’이 잊혔을까? 요새 말로 그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있었을까? 마음속이 그러고서도 저리 화평한 노년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까지 모두 이야기 했더라면 친구들은 내 말을 믿었을까? 스트레스가 치매의 원인은 아니다. 양심의 고통으로 늙는 것도 아니다…… 라고 우기는 말을.


생․로․병․사는 정말 오로지 유전자 탓인가. 아니 유전자 더하기 우연이라는 장치의 역할일까. 그렇게 우연히 찾아든 치매 바이러스. 우연히 비껴간 혹은 우연히 침투한 박테리아. 우연히 고꾸라진 버스. 우연히 날아든 바윗돌. 우연히 심장을 뚫은 파편.


*


유난히 문상이 겹친 주간이었다. 아스라이 먼 시간에 끊어졌던 추억들을 불러오는 초상 자리. 대형화된 장례식장은 문상객들을 서로 부딪지 않게 할 만큼 넓어서, 사람 사이에 가면 노련치 못한 나 같은 부류에게는 다행스럽다.


검은 저고리 치마의 여자들은 조금 생소했고, 그런데 처량함을 덜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평상복 위에 대충 걸친 허연 상복의 구겨지고 초라한 몰골을 조금 더 단정하게 보여준다. 향년 OO세가 주는 이상한 안도감에 문상객들은 덜 미안해하며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바로 앞선 문상객이 ‘호상’이란 말을 써서 언짢은 일이 있었나 보다. ‘호’자와 ‘상’자는 이를테면 모순형용법에 속한다. 모든 상은 상이다. 상은 잃어버리는 것, 끝이고, 영영 이별이다. 그것이 어찌 좋을 것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주들이 영영 고아가 되는 것인데.


친구는 일찍이 반쪽 고아가 되었고, 집에는 단출하게 어머니만 계셨다. 어머니만 계시는 것이 특별나지 않기 때문에, 그때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어차피 아버지들은 낮 시간 동안에는 집에 계시지 않았으니까. 친구네가 특별히 더 조용한 것은 아마 적산가옥의 구조였을 것이다. 한 줄로 나란히 펼쳐진 한옥과는 다르게, 좁은 복도를 낀 여러 겹의 방들은 작은 네모들의 미로였다. 한옥에서처럼 줄줄이 햇빛 받는 툇마루가 없으니 더 침침하고, 어둑한 공기 따라 분위기도 더 가라앉았을까. 고즈넉한 집과 친구어머니의 단아한 자태는 서로 어울렸다. 우리 배달민족은 또한 백의민족이라고 책에는 쓰였지만, 우리 집에선 백의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인상은 하이얀 무명이었다. 우리들 교복의 풀기 선 칼라와 표백한 흰색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흰색. 함초롬히 옷감이 안기는 자태. 작고 고운, 무엇보다도 드문 말씨. 나는 어쩌면 그런 절간 같은 고요함에 이끌리어 친구 집엘 드나들었나 보다.


오늘 어머니를 여읜 친구는 그러니까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했다고 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 중 많은 아버지들이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엄청난 손실의 수치로 변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서 말하기로는 강제동원 피해자로 정부 당국에 신고한 사람은 22만 명 정도라 한다. 한국전쟁의 국군 피해자는 사망만 13만을 넘고, 부상과 실종 그리고 포로를 합쳐 62만 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그런데 수학적 통계나 확률은 큰 의미가 없다. 두 형제가 참전하기로 똑같았던 우리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살아남고 살아남지 못했다. 체감 확률은 해당자에겐 언제나 1/2이다.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한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살아남았다. 당시에 젊은 장교로 사단 참모장쯤 되었던 아버지는 군사혁명 때엔 별을 달고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30명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거나, 어느 부처의 장관이 되어 프랑스 혹은 서독을 방문, 한국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맺어 1억 마르크도 넘는 장기차관을 약속받는 성과를 올릴 수도 있었다. 실미도 사건 같은 때에 하필 책임 있는 위치에서 우왕좌왕 발표를 하다가 그날로 사임을 한다거나,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은 물론 나아가 의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총알이 하필 심장에 박히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일 아직까지 건강하다면……. 케네디가의 맏형 조셉 패트릭이 2차대전에서 실종된 것과 비슷하게, 형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동생은 그러니까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누구나 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하긴 대통령이 뭐 그리 좋은가. 케네디 대통령은 너무 높이 태양 가까이 날다가 짙푸른 에게해에 빠져버린 이카로스처럼 추락했다. 그러니까 살아남은 동생이 대통령이 아니라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로만 올라갔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일찍 최고에 이르러 죽느니보다는 최고 비슷한 데까지만 가고 사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대로만 된다면. 조금 아쉽지만, 대통령 처조카사위의 동생의 장인의 매제의 모함(?)으로 비리에 연루되어 퇴직을 해도 괜찮다. 넉넉히 평균수명을 넘기고 혹시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대회’ 같은 묘한 계제가 있다면, 대한민국이 이미 공산화 되었다고 걱정하는 원로들에 가담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런 예상은 너무도 픽션이다. 어쩌면 그 아버지는 휴전과 함께 그대로 군복을 벗어던지고, 상과대학 출신답게 경영으로 입신했을 것이다. 재벌총수에게 휘둘리지 않는 전문경영인의 길을 갔다. 코트라 초창기를 살려내고 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온 가족이 외국에 나가서 살았고…… 아니다, 내 친구로 미루어 학구적이었을 아버지는 군복을 벗자마자 계속 학문에 전념하여 경제학박사가 되어 경제학교수가 되어……


이것도 정말 아니다. 내가 지금 쓸데없이 젊은 채로 남은 많은 아버지들의 가상의 전기를 쓸 일이 아니다. 다만 인생은 냇물을 따라 사는 것인지 냇물을 건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생에 징검다리가 있는 것은 확실하고, 그 하나의 돌이 나에게는 그 어머니가 있는 집이었다. 다다미방 저 쪽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하건 별 간섭이 없으셨던 어머니. 사실 조용한 어머니가 먼저였는지, 다 반듯해 보인 언니 오빠들이 먼저였는지 모를 일이다. 동창들 가운데에서 지금도 최고로 요조숙녀가 바로 이 친구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좋을 일을 구별하고, 그 구별에 따라 행동하는 일. 그 어려운 일에 친구는 어려운 티를 모른다. 말도 조신하고 행동도 조신하다. 그렇다고 막힌 것도 아니다. 운동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모르겠다, 살사나 벨리댄스를 배우지나 않는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친구는 합창단에 들고 배드민턴인가 탁구인가를 선수만큼 잘 할 수 있어도, 춤 같은 건 외면할 수도 있다. 학창시절 모범생의 연속일 텐데, 우리의 학창시절엔 지덕체라고 말은 하면서도 지와 덕에만 치중했고, 체육까지는 몰라도 무용은 조금 색안경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끼가 발동하는 것이라고. 저급할 것까진 아니나 조금 위험한 어떤 끼가. 체육이나 무용을 못하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으니, 웰빙 세대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다. 내 글은 이렇게 「조사」에서 빗나가고 있다.


*


글쓰기는 무진장 어렵다. 사투리까지 사랑하게 가르쳐 주셨던 국어 선생님은 내 첫 작품을 받아 읽어보신 뒤 내게 단 한마디를 하셨다. “소설은 박완서처럼 쓰거라!” 그리고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겨우 보름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5미터 거리에서 보게 되었다. 음악과 문학이 어우러진, 꽤 유명한 분의 성대한 문학인생 기념회 비슷한 자리였다. 난생 처음 그런 자리에 끼게 되어 얼핏 주눅 든 내가 저 건너 테이블에 살며시 들어와 앉는 그 얼굴을 첫눈에 알아본 것도 용했다. 소설책에 나와 있는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던 덕일까? 작은 얼굴에 작은 체격 ― 거미줄 나오듯 누에가 털실 뽑듯 끊임없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짜내는 물레. 피란길 허기 속에서 동생 오목이의 손을 놓아버린 수지의 줄기찬 저항을, 함께 사랑하고도 혼자서 나락에 떨어진 문경과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혁주의 상을…… 내 기억 속에 박힌 작품만 해도 부지기수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즈음에는 헤쳐 모이는 얼굴 얼굴들.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하고 스쳤다. 박완서처럼 글쓰기.


글쓰기, 글 쓴다고 나서기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국문과 졸업도 더더구나 문창과 출신도 아닌 내가, 글쓰기공부를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도 가 본적 없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경한 길에 서 있었다. 무지가 용맹이라는 증거 하나가 내 첫 장편이다. 수필집 원고를 청탁받은 그가 정색을 하고 대신에 나를 들이밀며, ‘서랍을 위해 쓴’ 내 원고들을 가리켰다. 처녀림에서 무작정 베어낸 나무들은 그러나 품종에서나 영양에서나 밀렸다. 인생의 맛을 모르는 내 척박한 토양 때문이었으리라. 그나마 이름만 걸어 놓고 개점휴업 상태. 내놓은 물건들도 별 볼일 없는 태작들이지만, 팔릴 일은 없는 것이, 누가 이만한 원고를 사겠다고 덤비겠는가. 심지어 거간꾼도 없는 것이 이 바닥이다. 하긴 내가 발이 미치지 않아서이지, 거간꾼 없는 세계나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


왜 그리 스산한가. 기업의 냄새가 풍기는 장례식장은. 능률적으로 ‘치르는’ 영결의 장은 그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 평생에 한두 번 겪는 일일 것인데, 어느 초상에 가보아도 사람들은 놀랍도록 역할을 잘 수행한다. 슬퍼할 때 슬퍼하고, 곡을 할 때 곡을 하고, 대개는 밥을 먹을 때 밥을 먹는다. 밤샘을 위해 화투판도 벌인다, 아주 요절한 마당이 아니라면.


한 분 떠나시고 나니까 다시 한 사람 만나게 되네요…….


문상객들 틈으로 만난 그 사람의 말이었다. 한 열흘 후 쯤 전화가 왔다. 월요일이었다. 저 시간이 좀 나는지? 왜 아니라고 잘라 말하지 않았나? 해가 기울자 겁이 났다.


저녁엔 안 되겠어요. 저녁 외출이 일상적이 아니라서요. 연결된 것만 기뻐하지요.


그렇게 문자메시지 보내놓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마음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앓았다. 흔한 감기 몸살에 흔한 소화불량이지만 정도가 심했다. 머리 속에 맴도는 말. 미리 도망친 벌(?)로 24시간 앓고 있어요……


수요일, 다시 온 전화는 옛날을 생각나게 한 단어 때문에 길어졌다. 누가 먼저였을까, 아무 것도 아닌 옛 일을 끄집어 낸 것이? 아직도 손톱을 물어뜯는지? 지금도 노래를 잘 하는지? 그런 질문들은 애초에 어리석다. 어른이 되어 여전히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노래는 한번 잘하는 사람은 계속 잘한다. 


“들어봐요, 어머니가 남기신 메모예요. 머물을래야 머물 수 없고 붓잡을래야 붓잡을 수 없는 세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 시간 천금보다 귀하도다. ” 평생 간직할 소중한 글은 또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읽은 간단한 조사:


노인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어머님,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엿함을 보여주신 어머님, 첫 만남에서 저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어머님,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신 분이십니다.


이 아리도록 아름다운 글을 내가 들어도 되는가? 그리고는 전화 받기가 망설여졌다. 벌써 금요일이었다. 아니다, 이 사람은 상중이다. 상중이 아니면? 그것도 아니리라. 한참 시간이 흐른 듯 했지만 겨우 일주일이었다.


거짓말 실토하는 게 낫겠어요. 다음날 전화 알고서 선뜻 못 받은 건 빚이 늘 것만 같아서요.


메시지가 원래 더 편하다. 상대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서. 다시 금요일, 비슷한 번호라서 잘못 알고 받은 전화. 그 사람은 정말로 봄나들이 권유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까? 어떻게 그런? 전화를 받고나서 곧 바로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열을 동반한 몸살감기로 변했다. 그것은 바이러스성이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


현대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덕이 아닌 풍조다. 이를테면, 독서 중에 ‘웃기는’ 숫자를 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부부가 혹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있는 기간은 평균 3년하고 167일 2시간이란다. 그것도 도시 중심부 3,40대 남녀는 이 수치를 낮추지만, 다행스레 나이든 시골 사람들이 평균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주고 있단다. 물론 전문서적이 아닌 ‘소설책’에서 읽은 소리이니 신빙성 있는 자료는 아니다. 소설은 신빙성을 담보하고도 남을 위인 ― 예컨대 미국의 무시무시한 대학의 교수이자 무시무시한 학력의 소유자 ― 이 쓰더라도 신빙성과는 상관이 없다. 이름 하여 픽션이니까. 그래서 소설책에서는 융의 할아버지가 괴테의 손자라나 뭐라나 하는 대목이 나오더라도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괴테는 손자 대에서 확실하게 후손이 단절되었으니까. (그가 그렇다고 확인해주었다.)


한 주인공은 “소설이란 인생처럼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작가의 자만심을 죄는 말의 반죽”일 뿐이라고, “요설”뿐이거나.


내 주인공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할까? 우선 내 주인공은 박완서의 주인공들처럼 자연스러운 이름도 갖지 못한다. 아직 ‘ㅂ’자 첫 획에도 못 미친다. 내 소설은 며칠째 방치된다. 그가 노트북을 점령한 것이 변명으로 통할까?


*


뷔리당의 당나귀, 귄터 드 브로윈, 동베를린 1968년.

자서전적 분위기로 도서관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랑, 여성, 결혼, 도덕, 풍속, 현대, 동베를린이 결부된 소설로, 통상적인 삼각관계의 구도 속에서 실제로는 순응 메커니즘, 허위, 모순들의 가면을 벗기는 작업을 시도한다. ‘뷔리당의 당나귀’를 원용하여, 두 여자 사이에서 동일하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설명해보려는 시도 가운데, 60년대에 이혼율이 세계 최고였던 사생활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개인적 불행과 소외적 상황을 극복하게 해준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왜 개인들은 사적인 행복을 방해받고 있는가? 이러한 주제는 상당히 정치적일 수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당나귀보다는 조금 윗수이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필연에 지배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뷔리당이 말한 당나귀는 극심한 기아와 갈증에 허덕이다가 굶어죽는다. 귀리와 물통을 곁에 두고서도 말이다. 그 철학자의 설명은 하필 귀리와 물통 사이 한가운데에 당나귀가 위치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먹고 싶은 욕망과 마시고 싶은 욕망이 똑같은 크기일 경우, 당나귀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나귀가 필연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데, 인간은 자유의지의 덕으로 제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물부터 먹든지 귀리부터 먹든지 할 수 있다.


자유의지는 ‘원인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필연’에서의 해방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는 원인도 동기도 없는 성격에서 발원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어떤 행위를 수행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동기도 없고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행위를 수행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노트북에 그가 쓰고 있던 파일이 떠있다. 갑자기 그를 방해하고 싶다. 나는 그럴 때 문자메시지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한다. 한달에 100건까지는 무료이고, 무엇보다 저장이 된다. 


SOS: “인간과 동물을 구분지어 주는 건 다름 아닌 동기 없는 행위”라고 말한 게 지드?


맞아, 『잘못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인들 해석에서 자유롭겠나? 신들에게서 인류에게 불을 훔쳐다 준 공적이 기독교 세상 중세엔 철저히 잊혀졌다가, 차츰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이라거나 일체의 권위에 맞서 항거하는 양심의 상징으로 부활되더니, 루소쯤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 선구자로 해석된 것이지. 그러나 진보가 또 하나의 미망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여기 지드처럼. 진보가 필연이라면, 필연에서 해방된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여전히 동기도 없고 불합리한 행동을 자행할 일 아닌가.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 그는 글 숨이 길어서 E메일을 택한다.


한 세월 지나서 카뮈가 “동기 없는 행위”로서의 살인을 제시한 건 처음이 아니었네?


처음이라니. (가)설엔 처음도 끝도 없어. 언어를 소유한 태초의 인간들이 다 말해버렸거든. 누군가 그랬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캄파넬라? 태양 아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은 없다고, 보르헤스? 아니 이미 벌써 전도서에 있었던 말이야. 1장 9절: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지. 그러니까 지드와 달리 카뮈는 자유의지보다는 부조리 개념으로 설명한 것. 부조리 극복의 유일한 길은 간단없는 반항이라고. 오늘은 끝.

추신: ‘뷔리당의 당나귀’도 뷔리당이 처음이 아냐. 벌써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도 언급했던 개념.


그가 바쁘구나. 아님 피곤했을까? 그런데 간단없는 반항? 반응이 아니고 반항? 넌 매사에 행동이 아닌 반응뿐이라고 비난당하지. 반응에서 단 한 걸음 더 나가 행동하기에도 저어하는 주제에 반항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그런데 반항하는 인간이 우수하다 그건 맞는 말인가? 반응에 그치는 것이 저열한 인격이라면, 그러니까 나는 당나귀 수준인가?


참, 당나귀는 노새와 버새 사이에서 어떤 반응일까? 나중에 말해줘.


웬일로 계속 당나귀 타령! 헌데 너, 필요 없는 걱정이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암말이 당나귀 새끼를 낳긴 쉬운지 노새는 번성했지만, 암탕나귀가 말 새끼를 낳자면 난산이어서인지 버새는 드물거든. 그러니까 그건 이론적으로 기 싸움이다. 물이냐 귀리냐? 노새냐 버새냐? 아니, 노새․버새 틀은 순 네 상상이구나. 아내냐 연인이냐,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이지? 당나귀보다 월등히 지능이 높은 인간은 ― 도이치 말에서는 답답한 바보 멍청이를 당나귀라 그러는 것만 봐도 당나귀가 멍청한 것은 사실일 것이야. ―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두 유혹 사이에서 굶어죽는 대신 교묘히 둘 다를 누리려 들지.


연인과 아내 사이에서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죽는 인간은 더 이상 없다. 3년은커녕 일년도 못가서 거덜나는 경우가 희귀한 일도 아니다. 습관을 가치와 혼동하여 어정쩡 결혼에 이른, 그 나름대로 지적인 남녀가 있다고 치자! 누군들 결혼이 가치에 속한다고 확신하기까지 섣불리 자신을 결혼에 내놓겠는가.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춘 두 단독자의 삶. 그것도 영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라는 친절. 남편이나 아내는 아내나 남편의 결점 때문에 연인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장 에르프처럼 한 남편이 아름답고 경제적으로 배경을 지닌, 게다가 합당한 일에 충실한, 개성은 없지만 그냥 좋은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고 치자! 부족함이 없는 것도 부족함이다. 그에겐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 지적으로 단호하고 개성 있고 확고한 견해를 지닌 연인이면 족하다. 뭔가 정신적 에너지를 북돋우는 자극이면 그만이다. 브로더 양은 젊고 지적이다. 단호한 개성의 매력에 불안도 괴팍함도 멋스럽다, 잠시 동안. 그리고 자극성 향취의 단물은 쉽게 고갈난다. 무맛이라도 풍성한 온수에 푹 담기고 싶을 때 남편은 슬그머니 아내를 찾는 것이다.


그의 말투가 내게 향하는 2인칭이 아니고 3인칭을 향하기 시작하면 나는 침묵해야 한다. 이제 그의 장광설 논리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논리를 직업으로 산다. 30쪽 되는 작품에서 뭔가를 풀어내어 300쪽 가까운 책을 쓰기도 한다.


나는 다른 생각에 골몰한다.


4월이 산 너머로 지고 있네요. 실제였나? 꿈결 같이 짧았던 시간이 함께 지네요.


이 메시지를 그 사람에게 보내는가 아닌가, 문제는 그 자유의지이다. 휴대전화 멜로디와 함께 번호가 뜬다. 아아~ 여전히 조용한 시각 다시 소리가 부른다. 그 번호. 폴더를 열어본다. 부재중 전화, [화]10:39A, [화]12:05P.


전화 - 집어 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5월에도 6월에도 아름다운 꽃들과 즐겁게!


부재중 전화, [수]12:26P, [수]6:44P. 계속 전화를 받지 않으려면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야 하나? 


*


그 사이 가벼운 지인과 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


죄송. 4월의 초대장을 건너뛰었었죠. 죽어라 일해야 했거든요.


‘죽어라 일’하는 일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이었기를 바랍니다. 아니고 정말 죽어라 싫은 일이라면 미련 없이 때려치워야겠지요.


그런데 시만 쓰시는 게 아니고 노래를 잘하신다는 것을 몰랐네요. 저는 무반주로 노래하는 사람에게 무지 약한데, 해서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쬐끔 휘둘리고 있는데…….


*


휘둘린다고? 너 요새 휘둘린다는 단어를 쓰는 거냐?


그가 당장에 태클을 걸어왔다. 놀랐나 보다, 토막 글로 나무라는 것이. 나는 모처럼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무엇이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을 북돋아 주는 메일 탓이었는지 용기가 났다. 나는 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어쩌다가 완강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도 도리가 없음을 안다. 내 위에 있건 내 옆에 있건, 내 안에 있건, 나 보다 우선하는 건 없으리라.  


미안해요. 전화 받기가 뭘까 조금 부끄러운 느낌? 암튼 어려워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 그것이 내 심정이다. 감정이다. 감성이 크게 발동할 때면 이성은 숨죽인다. 때를 아는 것도 이성이다. 그는 이성이다. 그는 나를 내버려 두어야 할 순간을 안다. 나는 그에게 노트북을 내어주지 않고 내 젊은 날에 대한 「조사」를 쓴다.


잘 가라,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인생은 비록  만나는 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먼데나마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 땅에서 땅으로. 반환점을 훨씬 넘기고서야 네 청춘에 때늦은 조사를 쓰는구나. 머리는 허접 쓰레기 지식욕으로 천만근 무거웠고, 가슴은 송곳 자존심으로 외로웠던 너! 생각으로 들끓는 네 머리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을, 생각한 것과 말한 것과 행동한 것을 구별 못했구나. 반응은 행동이 아니라서 삼갔고, 행동은 행동이라서 삼갔다. 실 인생에 뛰어들어 본 적이 없었던 너. 못 이룰 꿈을 꾸지도 않았고, 아니, 아예 꿈을 몰랐구나. 못 이룰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시작도 하지 않는 비겁함의 덕으로. 두 개의 가치를 좆아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도 없었다.


잘 가라, 달지도 쓰지도 않았던, 맹물처럼 무맛의 청춘이여! 시리거나 뜨겁지도 않았던, 치열하지도 아리지도 않았던 청춘이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청춘도 아니었던 청춘……


*


봄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말처럼 행복한 주말되시길……


산인데요. 만산의 꽃들이 절규하듯 모양을 뽐내고 싱그런 연초록이 색상을 자랑하는 기를 보냅니다.


고맙게도 위로는 며칠 사이로 예상치 않았던 방향에서 왔다. 내 친구가 아니라 그의 친구에게서.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 그렇게 산뜻한 오늘이면 되나보다. 열린 창으로 어디선가 초록빛 기운이 밀려든다. 청춘에 대한 「조사」라니, 우선 관습에도 어긋나고 뒤돌아보는 관점 이란 비생산적이다. 어쩌나, 그런데 오늘의 나는 기억의 총계다. 망각은 나를 부인함이다. 하지만 생산이 최고의 가치인 이 세상을 살자면, 이번에는 픽션에 들리어 막무가내인 내가 숨을 죽이고 사라질 차례다. 이성적인 그에게 온 생을 양보하면 된다. 인간이라면, 감성과 이성 한가운데서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이 없다. 숨 쉬고 밥 먹고 태양 아래로 나가자. 태양 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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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5. 30. 23:30

마리아 막달레나

2007 월간문학 5월호


 

아직 이른 아침이다. 목소리가 행복으로 구르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딸 둘을 공주처럼 키워낸 친구는 인생에 단 하나 부족한 아들을 기어이 낳아, 할 일을 다 한 사람의 만족감으로 늦둥이의 돌잔치를 준비한다. 이런 저런 일에 나를 부르는데, 내가 솜씨나 안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겐 중학생이 된 아들아이 뿐, 다른 식구가 없어 종일 시간이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애처럼 생에 충일감으로 사는 사람들은 나처럼 뭔가 공연히 엇박자를 세느라 여가라곤 없이 들끓는 나날을 꿈에도 알지 못한다.


*


친구와 나는 기숙사에서 만났다. 알고 보니 같은 고향이라서 내내 단짝으로 지냈다. 그래 그녀는 내 비밀을 조금은 눈치 챘을 것이다. 비밀이라야 그저 통속적이지만. 여자대학 기숙사는 그 시절 많은 남학생들의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방문을 뭔가 진지한 감정이라 치부하고 깔깔대곤 했다. 모두의 관심인 오월 축제도 실은 싱거웠다. 메이퀸행사는 성의 상품화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없어진지 몇 해이고, 같은 방 3학년 언니 말로는 지난해엔 법대생들이 ‘OO민국 모의국회’를 열어 ‘여성부’의 탄생논의를 벌였단다. 그러면 4학년 언닌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들은 틈새에서 어리둥절했다.


그러던 시월의 마지막 날, 향우회 소풍이었다. 동향인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인 우리들은 행색만큼이나 초라한 교외선 열차를 타고 그만그만한 이름 모를 작은 역에서 내려서 푸르름이 사라져가는 산야를 어슬렁거렸다. 처음 머쓱하던 대화들도 서둘러 점심 보따리들을 풀어놓았을 쯤엔 제법 풀려 있었다. 누군가의 제의로 빙 돌아 소속과 이름 석 자를 대기 시작했고, 더러는 순간의 장기를 부리기도 했다. 유난히 소리가 흩어져서 오히려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람, 그가 그였다. 법학과 아무갭니다, 그렇게만 소개한 사람이. 옆의 친구가 “이 놈은 꼭 학교는 뺀답니다, 자명하다나 뭐라나….” 그 말에 그는 “아니, 학교는 무슨.”이라고 잘랐다. 굳이 명문을 감추려는 모양새에서, 내 첫인상은 그가 겸손하다 못해 조금 꼬였나 싶은 정도였다.


“잠깐만,” 부산히 나무젓가락들을 부러뜨리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기도를 자청했다. 서울 생활 반년 남짓에 배운 예절은, 물론 우리가 기독교학교를 다니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누군가 기도를 시작하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다. 덩달아서 기도를 하랄 법은 없었고, 그냥 남의 기도를 막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가 “아니, 그게 기도라는 것이…” 하고 나섰다. 기도란 강요할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는데, 모두가 어색하게 느낄 만큼 딱딱한 투였다. 그쯤은 대충 넘어가줘도 좋을 듯한 향우회 점심자리에서. 그 법대생은 법은 몰라도 상식에선 외려 부족한 부류인가 싶었다. 식사는 첫 순간에 흥을 잃었지만,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호기들을 번뜩이며 대화들은 씩씩했다. 내 귀에는 심심찮게 그가 “아니”라고 말하는 소리가 박혀왔다. 그럴 때면 모두가 썰렁하게 서로를 보곤 했다.


“자아, 그럼 일단 십팔번 노래를 한 곡조 씨익…” 누군가 노래라는 물꼬를 트자, 가무에 능한 민족성이 발휘되었다. “말없이 건네주고~ 너의 진실 알아내곤 난 그만 울어버렸네”에 이어, “남기고 간 뒹구는 낙엽에 난 그만 울어버렸네”라고 울음을 울더니만, “나 어떡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절규도 했다. 입만 열면 사랑타령들이다. “말 한번 붙여봤으면 손 한번 잡아봤으면~ ”하는 애교도 부렸다. 여학생들은 꽁무니를 빼다가 누군가 물색없이 “세모시 옥색치마~”를 불러서 좌중의 열기를 식혔다. ‘아니 씨’의 차례가 왔는데, 그건 노래도 뭣도 아닌 중얼거림이었다.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오래~.” 이번엔 다들 숨을 죽였다.


얼렁뚱땅 오페라 『순교자』 이야기가 나왔다. 초여름, 국립오페라단 창단 20주년에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공연이라고 떠들썩했던 터라 다들 아는 척 했다. 그러자 다시 ‘아니’가 끼어들었다. “아니, 그 작가가 오페라에 동의했단 말여? 그 양반 마침 영문과에 들어와서 강의한다더라고. 노벨상 후보지명이면 사건은 사건이제. 아니, 그 작품이 오페라에 가당해? 아니, 그 심오한 주제를 연극도 아니고 노래로 불러댄다고? 그것 희화아녀?”


밑도 끝도 없이 그가 사용하는 접속어는 모두 “아니”였고, 그는 그것 없이는 말을 시작하지도 이어가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오페라라는 그 어려운 것을 아는 체 하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허영이고, ‘아니 씨’가 정직한지도 몰랐다.


“녀석, 기독교라면 왜 흥분을 하냐? 너 불교야 뭐야 무신론자?”

“아니, 기독교를 진지한 주제라 하믄 무신론자냐? 난 분명 무신론자도 아니고, 교회 반대자도 아니야. 아니, 우리 동네 보면, 제사 안 지내려면 교회가면 되니 편리하고 좋제. 아니, 우리 집은 제사가 많진 않아도 우리 어무니도 은근히 교회에 솔깃하셨제, 할무니가 막으셨고. 할무니 이론이 재밌어. 당신은 천당 갈 날 얼마 안 남았으니 교회를 나가시겄대. 대신 젊은 사람들은 제사를 받들고 교회엔 얼씬 말라.”

“신소리들 집어치웁시다. 여그가 종교 논쟁자리도 아니고, 여그 기독교학교 학생분들도 계시고….”

“신소리, 그렇네요.” 엉뚱한 소리들을 듣자니, 기독교학교 학생으로서 한 마디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나섰다. “기독교학교 다닌다고 다 기독교인은 아니죠. 반대로….”


소용없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해 본다. 예컨대 야구원년의 스타들 이야기 도중에도 무슨 이유로 그 많은 “아니”가 쏟아져 나와야 했는가를. 그리고 바로 그 주술에 내가 걸려버렸다는 것을. 나는 그날 오후 내내, 아니 돌아오는 길에 태능역까지 갈 사람들도 함께 신촌역에 내려 근처에서 어중간히 마셔댄 알코올과 잡담들 사이에서도 그의 “아니” 소리를 변별해서 듣고 있었다. 어떤 질문 어떤 말을 해서 그에게서 “아니”가 나오지 않게 할까를 골몰하느라 다른 대화들은 건성으로 들었다. 점호시간이 가까워 오자 기숙사에 들어가야 할 친구들이 일어섰다. 한 친구는 조금 취기도 있고 해서 사감선생님 꾸지람이 겁난다고, 이모집에 가기로 눌러 앉았다. 아무튼 밤길을 동행해줄 남학생이 필요했고, 누군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하자, 그가 선뜻 나섰다. 어차피 술을 잘 안하는 그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 낫겠다고,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을 말렸다. “아니, 지금 짝짓기도 아닌데 두 사람씩 뭣하러.”


우리는 이미 반쯤 나서고 있었기 때문에 잘은 몰랐지만, 귓결에 들려오는 대로 ‘짝짓기’라는 단어는 너무도 격에 맞는 말이 아니었다. 아마 그는 그 단어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기껏 ‘짝을 맞추어 나갈 계제가 아니다’ 그런 뜻이었겠지만, 순간 불쾌감이 일었다. “무슨 그런 흉측한 말을 하세요?” - “예, 무슨?”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종일 기다렸던 반응을 하필 이제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옆의 친구도 까닭을 몰라 했는데, 내가 너무나 웃었나 보다. 그가 화를 버럭 내면서 내 웃음을 조롱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이건.’ 나는 속으로 답답했다. 친구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교문 쪽을 바라보고 종종걸음을 시작했고, 나는 그만 눈짓 손짓으로 먼저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씩씩거리고 있는 사람을 떨치고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간단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친구는 걱정보다는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자꾸 뒤돌아보며, 그러나 이내 교문 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저, 우리 맥주 한잔 더 할까요?” - “저, 맥주…” 이번에도 그가 나를 웃겼다. 그렇지만 웃지 않았다. ‘아니’코드가 잠시 빗나간 모양이다. “제가 웃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잖아요.”


“아니, 좀 걸읍시다.” 그는 앞장섰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휘돌아 따라 걸으니 곧 큰 나무들 사이로 오솔길이 나왔다. 이어 인근 대학의 캠퍼스에 들어가게 된 것 같았다. 어둠이 아니라 그의 침묵이 무서웠다. 나는 할 수없이 ‘아니’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 종일 ‘아니’가 아닌 다른 말머리가 나올까 귀를 쫑긋하고 들었노라고. 듣고나 있는지 그는 여전히 침묵이었다. 내가 그만 벤치에 앉아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슬그머니 무서워지기 시작했을 때 그가 돌아와 앉았다. 먼데 하늘을 보며 그가 말했다.


“우리 누난 YH 김OO의 친구였습니다. 야당당사에서 사흘을 농성하다가 죽은 김OO 말입니다. 누이들은 그때 칠팔월 더위에 200명이나 모여 있었답니다. 요구조건이 무엇이었냐, 그저 공장문만 닫지 말라. <배고파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 그렇게 써 붙여 놓고. 가발사업 - 끔찍하지요. 어무니들 누나들이 눈물을 머금고 내다판 긴 머리채, 가발을 만들었으면 수출로 부자가 되고 좀 좋은 일이요. 헌데 결과는 뭡니까, 죽은 누나 친군 말할 것도 없고, 병신되어 돌아온 우리 누난 또 뭐고. 죽은 친구가 한 살 더 어렸다던가, 꽃다워야 할 열아홉, 아부지는 일찍 돌아가, 어무니는 행상, 배곯아가며 일만 하다가 죽었대요. 국민학교 졸업도 못한 어린 나이부터 일판에 나섰더라요. 그러다간 죽어서도 순식간에 화장되어버렸다니, 불길과는 무슨 원한이라요? 어려서 화상으로 치마 한 번도 못 입어봤답니다. 우리누나도 그때 다친 허리를 제대로 치료만 받았어도 저 지경은 아닐 것을, 입원하면 체포될까 걱정,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이라서, 칼잠 자는 셋방서 견디다 못해 병신 되고서야 내려왔지 뭡니까. 집에 돌아온 누난 기독교 물이 들었다고 혼만 났지요.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어서지도 못하는 누나가 교회에 갈 일은 없지만요. 아무튼 누난 교회 쪽 인사들에게서 깨달음을 얻고 또 용기를 내어 노조를 만들고 하는 힘을 얻었다고 하대요. 나한테 이번 방학 내내도 설교를 해요. 그런데 난 누나의 신 같은 건 믿지 않아요. 그런 절대자가 있다면 이 세상을 이렇게 창조했을 리가 없지요, 또 실수로 그랬다면 곧 바로 잡았을 것 아니요? 희생자와 희생자를 내는 세상을 이리 버려두는 것이 누나가 말하는 신의 섭리라면 난 수긍할 수 없고요.”


그가 뜸을 들이며 힘들게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일종의 마비를 경험했다. 안개 속에 들어선 망망한 느낌. 누군가의 손을, 누군가의 아픔을, 분노를 보듬어 안고 싶은.


“내가 『순교자』이야기 때 정말 분노한 것은, 내겐 왜 두루마기 걸친 목사님들의 신앙과 배신의 정체는커녕 그 상도 떠오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나는 왜 예술에 대해선 그 이미지도 그리지 못하냐, 아니 진짜 분노하는 것은 바로 오늘의 나 자신이요. 인생관에도 생활원칙에도 어긋나고, 나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점은, 단지 죄짐 모르고 순수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그쪽의 인상에 흔들리어….”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어색해진 나는 얼결에 찬송가 구절을 읊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갖는 채플의 습관이었다.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예수의 품이라? 아니요, 그건 아니요. 지구상의 인간들을 죄다 품어주련다는 예수에게 무슨 품? 성육신이고 뭐고, 육신이란 원래 단 한 사람을 품을 품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


그것이 신호였다. ‘품’에 대한 언급은 그들의 서로 다른 머리의 아픔을 오직 몸으로 품고자하는 갈망의 폭발로 이어졌다. 연초에 고등학교 졸업식을 앞두고서 뜻도 모르고 대한민국의 통금해제를 환영했던 두 사람은 이번엔 그 실질적인 자유를 누렸다. 12시 바늘이 넘어가는 순간, 목양신 팬의 시간, 패닉의 시간이었다. 휘영청 둥근 달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은 밖에선 상당히 쌀쌀했다. 어색한 몸짓으로 서로의 얼굴을 비껴 안고서 오들오들 날 밝기를 기다린 그들은 엉뚱하게도 다음 일요일에 대학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약속으로 헤어졌다.


그 일요일, 며칠 전 소풍날의 벌판보다 더 싱싱해 보이는 교정의 나무들은 더러는 상록수들 사이에서 아름답게 색을 내고 있었다. 일요일마다 교회로 쓰이는 중강당 건물은 보기에도 육중한, 그래서 심오한 종교성을 풍기고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의 음악은 천장이 아닌 천상에서 내려앉는 아늑함이었다. 그는 누이가 말했던 신앙의 힘이 공기방울 속에 녹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난 내가 여기에 와 앉은 것을 상상이나 할까?’ 갑자기 그리움이 복받쳤다.


무오성 - 그날은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말씀이 있었다. ‘성경’과 ‘성서’의 차이도 모르는 그에게는 심오하면서도 난해한 말씀이었다. 목사님이 읽으신 요한복음은 정확히는 몰라도 이런 뜻이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 하심이요, 또 너희가 그 믿음에 힘을 입어서 생명을 얻게 함이다.’ 영혼을 구하려는 중차대한 목적이므로, 불확실하거나 오류투성일 수 없는 것!


‘아, 아니다.’ 그는 속으로 외쳤다. 목적이 숭고한 것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아직 논리학입문에도 가보지 못한 그의 논리로도 이건 아니었다. 세상에 숭고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오류투성이의 일들을 이 한 마디로 덮을 수 있다고? YH의, 수많은 공장의 숭고한 목적도 우선 제 굶주리는 가솔들을 먹이고 노동자를 고용해 그들의 굶주리는 가솔들을 먹이는 일 아니었나?


그러는 사이에 아름다운 선율의 찬송이 울려 퍼졌다. “아침 해가 돋을 때 모든 만물 신선해,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어둔 세상 지날 때… 아, 나는 여기에서 뭣하고 있는가? 못 배운 누나들이 여전히 어두운 세상을 헤맬 때.’ 그것은 부끄러움의 눈물이었다. 그는 영생을 갈구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무엇인가 지금 이승의 어두운 삶을 위해 살아야 할 각오가 틀어 올랐다. 그는 이 사람들과는 한참 격이 다른, 그저 척박한 땅, 열악한 현세의 사람이었다. 그의 예의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앉아서 그녀를 기다려주고, 그리고 기숙사 앞까지 동행해주는 일이었다. 걷다보니 지난 소풍 때와는 달리 깨끗하게 잘 차려 입은 옷매무새가 눈에 들어왔다. 참 어여쁜 여자구나. 그러나 그는 그 성장을 교회를 위한 의식으로 간주했다. 짧은 오솔길을 돌아 기숙사 앞 잔디밭에 이르렀을 때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가 고개가 떨어졌다. 두 번째 약속은 없었다.


잠시 뒤 그녀는 조금 과장된 당당한 발걸음으로 바로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선 기도시간이 막 끝난 참이었다. 그녀는 교회나들이 차림으로 단정한 얼굴을 하고서 점심을 먹었다. 어느 때 보다 열중하여.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리라. 숟가락으로 밥알을 모아서 퍼 올리고 얌전히 입으로. 국물은 숟가락의 2/3쯤 뜬다, 곱상하게. 반찬을 집어 들 땐 턱이 반찬을 향하지 않도록 시간적 여유를 둔다, 가능하면 미소와 함께. 주말 나들이로 여기저기 빈자리들 때문에 그녀의 꼿꼿한 자세가 더욱 돋보였다.


바로 그런 반듯한 얼굴로 그녀는 나머지 대학생활을 마쳤다. 절박한 조율이, 치유의 힘이 본능적으로 솟는 것에 자신도 놀랐다. 맑고 깨끗한,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보였고 스스로도 그리 믿을 만큼 단아한 젊은 나날이었다. 노력 끝에 성공한다는 말이 사실인 듯, 그녀는 졸업하면서 공립중학교에 부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슴 아리게 많은 것을 배웠다. 열서너 살 소녀시절엔 몰랐던 것들을. 그렇게나 철부지 얼굴 아래 가려진 그늘을 짐 지고 살아가는 아이들. 종일 깔깔 웃다가 지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누구는 왜 월요일이면 결석이나 지각을 해야 하는가, 누구는 왜 졸린 눈으로 멍하니 옆 사람을 지나쳐 보고 있는가.


*


그렇게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바로 손아래 여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문제가 거론되자, 집에서는 서둘러 언니인 내가 먼저 선을 보아야 한다는 성화가 일었다. 괜찮은 학교를 졸업하고 괜찮은 직업을 가진 남녀가 어색한 자리에서 만났다. 처음엔 매개에 대한 거부감으로 어색해했지만, 곧 교양 있는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온통 의사집안의 막둥이라는 그 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뚫고 신방과에 진학한 자유주의자였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호와 연극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직업적인 전문분야 탓도 있겠지만, 단 한 번도 지루할 수 없는 알찬 시간들을 만들어주었다.


곧 남부러울 것 없는 약혼식이 있었다. 그러나 순탄치 않은 행로는 어정쩡한 파혼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내 몸의 불발에서 비롯되었다. 약혼식 이후 서너 번째 데이트에서 약혼자가 약혼녀에게 할 수 있을 입맞춤을 해왔을 때 난 너무나도 놀랐고, 놀람은 심각했다. 왜 그리 혼쭐나게 놀랐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행동이 갑작스러워서였을까? 상황이 나빴을까? 그대로 굳어버린 내 몸은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약혼 행세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각각 집에다 “결혼 후의 계획에 의견이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대기로 했다. 집에선 동생이 먼저 결혼하기로 결정 났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선한다고, 비교적 유연한 사고를 지닌 어머니가 우기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일 년이 훨씬 넘었을 때, 옛 약혼자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엔 잘 될 것이, 그의 집안에서는 “의사공부만 하겠다면 어떤 여자라도” 된다 했다는 것. ‘파혼했더라도?’ - 이 말은 모욕적으로 들리기도 했는데, 아무튼 참 엉뚱한 발상이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 감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속으로 리처드 버튼과 두 번 결혼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떠올렸던 것 같다. 한 여자와 두 번의 약혼을 두 번의 파혼으로 끝낸 카프카 생각은 접어두었던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나이 들어 의사공부가 한국보다는 미국에서가 더 용이하다고 했을 때, 집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아버지의 반대는 “미국”보다도 “한 번 깨진 그릇”이라는 원칙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어머니는 대찬성이셨다. ‘아이들 하나쯤 미국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식의 유행 따라서. 결국 파혼을 되돌린다는 의미에서 다시 약혼식을 하고 이번엔 곧 이어 결혼식을 치렀다. 시댁에 걸맞은 격을 갖춘 서울에서의 결혼식을 어머니는 정말로 만족해하셨다. “둘째 먼저 시집보내믄 큰 딸은 어렵다더니 웬걸….” 그런데 그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누구나 결혼한 여자는 결혼 당일의 피로를 잊지 못하리라. 떠들썩하고 벅찬 긴 하루가 지나고, 다소 과장된 한 껍질의 미모를 지우고 제 얼굴로 돌아올 때, 그것은 몸도 마음도 나신을 의미한다. 비행시간을 멀미기운으로 보낸 나는 숙소에 들어서면서야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이 신혼여행지로구나. 우리는 밤이 되면 신혼부부가 하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 저녁 시간 내내 나는 우리가 영화나 텔레비전에서와 똑같이 서로 각각 샤워를 해야 하는 순간에 이를 것을 걱정했다. 누가 먼저? 나는 가장 덜 어색한 쪽으로, 그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기까지 가만히 내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자아, 신부님, 취침 시간이오. 레이디 퍼스트!” 하고 그가 가리키는 것은 욕실이었다. 순간 그 문제가 정해져버렸다. ‘신랑님 먼저…’라는 말은 목에 걸려버렸고, 나는 머뭇거리다 말고 욕실로 들어갔다. ‘밖에 있는 그는 그냥 의자에 앉아있을까? 설마 벌써 침대에 누었을까? 반쯤 벗고 와인을 마시고 있을까?’ 비누 거품을 내면서 별별 생각을 다했다. 갑자기 나는 나의 나신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불현듯 제대로 샤워도 하지 않은 알몸을 누구에게 온통 주어버렸다는 생각에 경기가 났다. 그런 기억이 왜 송두리째 사라졌었던 것일까? 신입생 때의 먼 기억. 어쩌면 불의의 사고와도 같았던 한 날 한 밤의 기억. 그것이 아리게 되살아났다. 욕실 문을 사이에 두고 내가 ‘신랑’과 함께 신혼의 첫날밤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신랑은 나에게 “침대에 누워서” 기다려주기를 청하고 욕실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서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는 그러나 더 이상 없었다. 그 대신 첫 남자를 배반하고 이제 간음을 행하려는 창녀만이 있을 뿐이었다. 안락한 미래의 결혼생활을 위해서 제 몸을 팔 준비를 갖춘 창녀. 누가 하루하루 몸을 팔아 살아가는 창녀만을 나무랄까? 이렇듯 마땅한 조건을 따라 결혼하는 여자는 모두가 창녀다. 그렇다 해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자신을 팔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가상키나 하다. 이날 밤, 과거의 첫 남자를 떠올리고 있는 것 자체가 참 악랄한 창녀성이다. 나는 그렇게 꼬옥 눈을 감고 있었다.


신랑이 점점 밀착되어 왔다. 그는 내 무감각을 그리 탓하지 않았다. 우리는 약혼-파혼-약혼-결혼의 대단원을 존중해야 했다. 나는 더 꼬옥 눈을 감았다. 내 몸을 잊고 먼 데 시간과 공간으로 날았다. 갑자기 그 옛날의 ‘그’가 내 몸 속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랜 망각 속의 그가 뜨겁게 내 몸 속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고,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밤새 나는 옛날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서투른 허영에 들뜬 철부지 여대생, “아니”를 연발하는 그의 무서운 실존의 고백을 듣고 당황한 어린 영혼이었다. 나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이상한 공존으로 시작되었다.


신혼의 우리는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시댁에서 마련해준 아파트는 의외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 가까웠다. LA 같진 않아도 사는 일엔 우리말만으로도 불편이 없지만, 공부를 하자면 영어를 수준급으로 습득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둘이서 같이 하면 잘 안된다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내가 운전을 못해서 그냥 같은 대학의 어학코스에 등록했다. 그러다 내가 결석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를 포기한 나는 집안의 일상으로 돌아와 무료함에 던져졌다.


신혼 기간을 사람들은 임신 전까지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기는 천천히 갖는 추세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적당한 몇 달이 흐른 뒤 아기가 생겼다. 어느 밤 ‘그’의 아스라이 그러나 불같이 뜨겁고 엄청난 압력이 온 몸을 꿰뚫는 희한한 느낌에 숨이 막히도록 떤 다음이었다.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난 나른한 봄날 나는 가만히 욕실로 들어가 배를 안았다. 나신은 차마 부끄러워 아랫배만을 드러내고 만져보았다.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엇이 일렁였다. 나는 그가 내 몸 속에 영원히 들어왔음을 느꼈다. 그날로 나는 남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임신이라고, 핑계는 그것이었다. 아기를 보호하고 싶다고. 남편은 기쁨과 혼란이 뒤범벅된 얼굴이었다. “어마 거참 잘 되었네. 병원 가서 확인해야지!” 친근하게 말하던 남편은 잠자리에서는 펄쩍 뛰었다. “아기를 보호해? 누구로부터? 제 아비가 누군데 보호 하느냐고!” 그러나 나는 창녀가 되는 느낌을 갖지 않고서는 남편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임신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그 동안 남편은 완전히 토라져 있었다. 처음엔 임신 히스테리치곤 별나다는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개를 저었다. “어떤 별난 자식을 가졌기에”라는 으름장에서 “어느 놈의 자식인지 두고 보겠다, 검둥이가 나올지 흰둥일지 두고 보고야 말겠다!”는 악담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는 회복할 수 없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주역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뱃속의 아기가 부모를 함께 원하지 않는 경우라 했을지. 배는 불러왔고, 만삭이 되었다. 고향 떠난 이역만리에서 참으로 외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나, 시간은 정지한 느낌으로 해가 지고 또 해가 떴다. 눈이 흩날리는 날, 아기가 태어나려고 했다. 한국에서와 달리 남편들을 산실에 들여보내는 관습인 나라에서, 나는 펄펄뛰며 남편의 입실을 거부했다. 하얀 강보의 아기는 눈밭에 파묻힌 듯 쌕쌕거렸다.


남편은 내 “병”이 심하기는 해도 해산과 더불어 끝날 것이라 기대했었다 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해산을 통해 아기 이외에 어떤 것도 생각할 저력을 잃었다. 이 새로운 꼬마신사와의 관계만으로도 버거웠다. 칠칠을 집는 관습대로라면 아직 큰 대문에 금줄이 걸릴 기간이었다. 결혼에 이른 “히스토리를 존중하는 의미에서라도” 이혼만은 보류하자는 남편의 논리에 특별히 반박할 이유도 나는 갖지 못했다. 남편은 여전히 약간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있는 집의 조금 신경질적인 사람이었다. 무엇도 아주 오래는 참지 못해했다. 남편은 내가 진자리에서 일어날 즈음에 말없이 아기의 여권을 만들어왔다. 떠날 수 있다는 신호였다.


아기와 함께 상당한 무게의 짐 가방을 찾아 들고 비행장을 나서는 기분은 이상하게도 안도감이었다. 늦은 봄, 하늘하늘 봄바람을 타고 소문이 빨리 흩어질까 걱정이었다. 우선은 친정나들이처럼 고향에 내려갔지만, 아기 주변의 부산함 속에서도 얼마큼 시간이 흐르자 이실직고를 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따로 나와서 직장을 갖고 아기를 기르는 삶을 생각하자면 고향에 머무를 고려도 해보았지만, 우선 어머니가 당신의 삶을 포기하고 딸네 집에서 아기젖병과 씨름하실 분이 아니었다. 나는 부지중에 어머니의 자존심을 좀먹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우선은 고향 멀리 서울 근교로 살 집을 찾았다. 언젠가 직장에 복귀할 궁리도 한 이유였다. 사표를 내고서 결혼했으니 새로 임용고사를 보아야 할 것이고,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 겁도 났다.


마침 남편이 여름방학이 되어 잠시 들어왔을 때, 함께 시댁에 불려갔다. 말없는 내게 시아버지는 아이이름의 통장을 건네주셨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끈이라는 것이구나. 시댁 근처로 이사하라는 ‘명령’에는 불복했지만, 대신 아이를 잠시 잠시 시댁에 데려다 주어야했다. 그것뿐이라면 내게는 과다한 행운이었다. 생활전선을 위해 내 아이를 다른 어머니에게 맡겨야하는 불행을 면했으니 말이다. 출입이 없는 생활, 종일 종알대는 아이와 보내는 많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길었다. 밤은 깊어지지를 않았다.


그러는 사이 추상적으로는 세기가 바뀌고, 구체적으로는 강산이 변하는 십년이 흘렀다. 나는 고운 태를 훌렁 벗은 사십 세가 되었다. 그러고서 후다닥 놀랐다. 나는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낭비해버렸다. 내 시간은 정지한 채로 세상이 휙휙 지나가버렸으니까.


아이는 4학년. 이른 봄날 펼친 책에서 ‘억’이라는 수의 개념을 보고 나도 함께 놀랐다. 혼합연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니 3학년 때 세 자릿수 곱셈 때부터인가 아이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아니, 아이는 대체로 시무룩했었다. 그제야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가 절실함을 깨달았다. 수학과 과학은 아빠가 챙긴다는 주변의 말들에도 신경이 쓰였다. 결국 아이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적지답사도 그렇다. 경복궁이야 데려 간다지만, 공주의 공산성이나 부여의 낙화암 등을 어찌 데려갈지. 『교과서를 만화로 공부해요』시리즈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빠의 역할과, 아빠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들아이를 이대로 어쩐다? 최소한 수학과 컴퓨터를 지도할 필요가 생겼다. 한참 큰 대학생선생님을 어려워하던 아이가 차츰 자연스럽게 ‘형’과 어울렸다. 아이가 배우는 틈에 나도 까마득한 기억을 되살려 컴퓨터 사용을 익혔다. 내 기호는 단연 ‘검색’이었다. 단순한 작동으로 이 무궁무진한 보물 길을 열면서, 가라앉았던 삶이 솜털처럼 부풀려 날았다. 하긴 내 관심이라야 기껏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폐부에 와 닿는 김현식도 임희숙도, 애절한 오현란도 몇 달을 넘기기 못했다. 영원한 것은 없었다.


그러다 옛 친구들의 이름을 검색 창에 쳐보았다. 동명이인이 줄줄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지만, 더러는 그 사이 시인이, 치과의사가, 그리고 또 무엇이 되어 있었다. 마흔 나이가 그런 것이었다. 가만히 그 이름이 떠올랐다. 무서운 유혹이었다. 그러기를 수십 번, 마침내 유혹에 굴했다. 서너 사이트가 떴다. 유전공학 전문, 혹은 근대영미소설 전공의 교수, 외국에서 활동하는 목사… 어느 누구도 그와의 관련성이 희미했다. 내과병원은 더더욱 아니리라. 뭘하고 살까, 그는?


그해 화창한 오월이었다. 컴선생이 약속을 미루었다가 왔다. 무슨 일인지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설명하고 있었다. “늦게서야 신부님이 되셨는데, 우리 신부님이 그만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요, 그래갖고 일주기 추모미사 끝나고 몸이 성찮은 누님을 고향에다 모셔다 드리느라고요. 저희 한 동네 분이셨어요.”


나는 순간 고향말투를 듣고 있었다. 평소엔 무심히 들었는데, 지금 이 학생은 내 고향 말을 했다. ‘몸이 성찮은 누님?’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여 그 이름을 물을 수가 없었다. “향년 몇이나?” “향년이랄 게, 40대 초반요. 성당에서 어버이날 행사로 함께 운동하시다가 쓰러졌고요, 알고 보니까 지병이 있으셨답니다. 운동권으로 잡혀가 고생….”


‘그만, 그만 해라.’ 나는 그가 분명 법대생이었다는 확실한 기억 쪽에 매달렸다. 혹시라도 세상과 화해할 수가 없어 미리 피안을 살고자 성직자가 되었다 쳐도, 꼭 그 사람이 그 사람일까? 아니다. 김대건 신부님 이래 사제서품 받은 신부의 숫자가 4000을 넘는다는 구절을 어디서 본 생각이 났다. 그럼 확률은 1/4000이다. ‘미쳤구나, 과거의 모든 신부님들과 함께 확률을 셈해?’ 마음속은 점점 지옥이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자리에 들지 못한 나는 무심코 ‘마리아 막달레나’를 자판으로 치고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창녀가 되었던 여자의 내면은 암흑이었다. 내 속의 일곱 마귀는 누가 있어 쫓아내줄까? 나는 누구의 발에 향유를 부어야 할까?


화면에 티치아노의 <막달레나> 초상화가 떴다. 광야에서 참회하는 막달레나라는데, 모습은 죄인의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염의 상징이다. 순 알몸에 늘어뜨린 긴 머리타래는 육욕을 증거할 뿐, 종교적 감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막달레나 시스터즈>라는 영화도 있다. 1960년대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수녀원의 일상. 거기 수용되는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위험한’ 여자들. 강간을 당한 뒤 아버지의 고발로, 얼굴이 예뻐서 남자들을 유혹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혹은 아기를 뺏기고 쫓겨난 미혼모 등이다. 수녀원부설 세탁소에서의 노동착취와 성희롱 - 왜 이런 것은 인종차별이 아닌가. 러시아의 수용소군도를,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애석해하고 비판하는 세력들은 뭘 했나?


막달레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찾는 강박관념은 어떤 욕망보다도 강했다. 나는 아메바의 세포분열과도 같이 거기서 파생된 단어들까지를 한없이 쫒아가는 중병에 걸렸다. 그것이 몇 년 째,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킨 적이 있다. 들켰다기보다는 의아심을 샀다. “너 갑자기 교회 다니기로 한 거야?” 그 다음해인가 『다빈치 코드』가 번역되었을 때는 일도 없이 『다빈치 코드의 진실』까지 사전편과 해설편 모두를 통독했다. 이상한 안도감으로 정신이 없던 몇 달, 친구는 또 걱정했다. “너 이제 반교회파야 뭐야?”


그 뒤로는 내가 말을 더 아낀다. 아직 누구도 모르는 자료들도 많다. 최근엔 프리드리히 헤벨이란 극작가의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작품을 찾아냈다. 표면적 도덕률 앞에서 파멸하는 인간들. 신부의 지참금에 대한 탐욕과 부도덕하다는 평가를 염려하여 약혼관계를 지속시키고 있는 약혼자, 그의 아이를 잉태하고서 유년시절의 연인을 사랑하는 클라라 - 옛 연인은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임신사실을 알고는 뒷걸음친다. “그것에 관한한 어떤 남자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남자의 변명이 당시에 유행어였다니, 남자들의 고전임에랴!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었다. 제목은 막달레나라 하고서 왜 막달레나가 나오지도 않는가? 작가의 전기라도 훔쳐보아야 했다. 1818년 생 작가는 스물두 살에 함부르크에 나와서 곧 8년 연상의 후원자이자 연인이 된 엘리제 렌징을 만났지만, 빈에 머무는 동안 연극배우 크리스티아네 엥하우스와 결혼했다. 아내가 데리고 온 아들은 엘리제가 양육했다. 게서 18년을 자란 아들은 엘리제가 죽자 칠레로 이민 갔고, 28년 뒤 친모를 만나고자 귀국 길에 빈의 중앙역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니, 진정 친모자간의 연은 없었던 것! - 아니 이런 것을 찾고자 한 건 아니다. 기막힌 인생들에 매료되어 헛것에 심취할 뿐이다.


물론 이런 특별한 자료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폴더에 모아두었다. 서툰 영어와 더 서툰 독일어 사이트에서 뒤져내서 몇날 며칠에 한 단락 씩 읽어 모은 정보다. 엉뚱한 제목의 유래는 겨우 찾았다. 원래는 주인공을 따라 “클라라”라고 명명될 예정이었는데, 독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출판사의 희망에 따라 성서의 문제적 인물을 가리키게 되었단다. 출판사들의 상업성, 그것은 서적출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로구나. 글쟁이도 아니면서 괜히 허탈하다.


*


“부우부우 부우우우.” 휴대폰이 돌다 돌면서 이쪽으로 흐른다. 폰을 집어 들며 고개를 드니 느릿한 햇살이 밀려든다. “아직도 집이냐고? 그래, 간다니까. 아니, 뭘 좀 하던걸 마저. 그래 알았어.”


일단 컴퓨터를 닫고 미궁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언젠가는 이 폴더를 아예 벗어나야 하리라. 서둘러 머리를 빗으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다. 왜소한, 마른 장작개비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교인도 아니다. 정염과 신성을 공유한 막달레나 증후군? 말도 아니다. 나는 그냥 죄인이다. 비뚠 결벽증으로 아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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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6. 10. 1. 23:30


오늘
이별하다



제법 따스한 기운이 스미는 시간, 낮이 겨워서야 깨어난 그녀는 우선 창가로 간다. 고목이 된 호야 줄기는 마른 등나무같이 완강했다. 창 아래 여린 연둣빛 봄이 지나도록 그는 새 순을 거부했다. 좁은 창으로 빨아먹는 햇볕에도 초록 잎을 나름대로 번득이던 지난 여름의 기세와는 사뭇 달랐다. 잎사귀 형상만을 간직한 채 드문드문 매달린 그것들은 플라스틱 모조 잎에 다름없었다. 아예 톡 부러지지 않을 만큼의 물기가 남아있기나 한 것인지, 겨울을 버티어낸 것만으로 고맙기도 했다.

그녀로서는 그렇게 식물 따위에 뭔가 주술을 걸어둔 자신이 야속했다. ‘해마다 꽃을 피워다오, 그러면 어쩜…….’ 막연한 기대요, 맹세였다. 혼자서 새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강아지도 금붕어도 없는 집에서, 그녀 말고 생명을 가진 것이라곤 이 작은 화분뿐이었다. 꽃은 없어도 맹목적으로 뻗어 나가는 줄기가 막연한 희망에 이르게 할 것처럼, 마치 누군가와의 수 미터 수백 미터의 거리를 단축해 줄 수 있을 것인 양 기분 좋은 식물. 그것이 그 초여름에 형언할 수 없는 귀한 꽃을 피워냈었다. 호야꽃이 피었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건 그저 덩굴식물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렇듯 화분에 갇혀 아무렇게나 자라는 식물에도 환상이 숨어 있었다니! 누군가를 집에 불러서 증인을 세워야 했을 일이다. 그 첫 해에, 그때는 도무지 안팎으로 흥분상태에서 꽃들이 지는 줄도 몰랐다. 간신히 매달린 잔 꽃대들 몇 개를 두고서 괜히 주술을 걸었을 뿐이다. ‘해마다 꽃을 피워다오, 그러면 어쩜…….’

천천히 씻고 아무 거나 요기를 한다. 그래도 시간은 남는다. 말을 나누지 않고 움직이다보면 시간이 참 많이 남는다. 문화센터에 가는 요일도 아니다. 그녀에게 일이 시작되는 저녁까지는 길다. 정사각형 작은 식탁 겸 책상에 앉아서 초소형 노트북을 펼친다. 그녀의 재산목록에 드는 품목이자 친구다. 여러 가지 물음에 꽤 친절한 응답을 해주는, 이만한 상대가 또 없다.

“호야. 용담목 박주가리과 호야속 식물. 덩굴성이며 늘푸른 여러해살이 풀. 줄기는 갈색이고,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고, 다육질이며 광택이 있다. 꽃은 5월에 잎겨드랑이에서 짧은 꽃자루가 나와 산형꽃차례를 이루고 반구상으로 달리며, 향기가 있다.”

‘것 봐, 꽃이 피잖아.’

“꽃잎은 흰색으로 별 모양이고, 중심부는 담홍색이며 광택이 있으므로 아름답다.”

‘아닌데, 연한 분홍색이었는데.’

상관할 바는 아니다. 백과사전을 어쩌지는 못한다. ‘책에 써 있다’ 하면 모든 근거가 되는 법인데, 하물며 백과사전의 글인데. 보통은 흰색 꽃이겠지만, 그녀의 호야는 연하디 연한 분홍빛일 수도 있다. 그렇게 큰 꽃대 끝에 잔 꽃대들이 살만 남은 우산대 모양으로 뻗어 내리고, 그 끝마다 별 사탕보다 작은 꽃들이 하나씩 붙어 피어나서 스물 서른씩이 어울려 한 송이를 이루는 것도 처음 보았다. 그것을 산형(繖形)이라 하는 것도 처음 듣는 소리다.

오늘의 걱정은 꽃이 아니다. 그 늘푸른 여러해살이 풀이라는 게 아예 새 잎 하나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식물이 땅속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소생하는 것을 그는 신비한 ‘오시리스의 신화’로 이야기 해 주었다. 식물의 동면은 여동생이자 아내인 이시스가 죽은 오빠이자 남편을 찾아 지하로 내려가는 기간으로 설명된다고. 난생 처음 듣는 먼데 신화 이야기에 감동한 그녀가 그만 호야꽃이 피는 것에 그 마음의 부활을 걸었나 보다.


*


“어쩌다 끝나는 거야, 언제 어쩌다가, 왜?”

불안에 들뜬 영혼들은 의심에 들려 허우적거린다. 내 가게에서 보게 되는 그녀들은 대개가 그런 의심에 들린 때쯤이다. 사람 사이를 의심하고 괴로워하기 시작할 때다. 언젠가 한두 번 그녀들은 내 가게에 남자와 함께 들렀을 것이다. 남녀가 그렇고 그렇게 다닐 때에는 내가 특별히 주시하지 않는다. 흔한 것이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사랑한다고 느끼며 팔짱을 끼고 혹은 팔짱을 끼지 않고 다니는 남녀이니까.

나는 그러니까 흔한 말로 카페 마담이다. 내 경험으로 보아, 언제부턴가 차를 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남녀는 흔치 않다. 대개가 옆자리를 선호한다. 그러다보니 가운데 오뚝한 테이블과 의자들은 멀쩡한데, 가장가리 쪽 소파들만 더러워지고 꺼지기 시작했다. 때 국물이 찌든 소파를 당목으로 대충 씌워놓아 허옇게 볼품 사나워도, 역시 그쪽이 인기였다. 등 뒤로 걸린 싸구려 액자 속의 그림들도 그들에겐 별반 트집잡히지 않았다. 연필로 확대해서 그린 얼굴 부분이나 아무렇게나 드로잉된 나체들의 곡선은 오히려 가끔 칭찬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것이 실제로 미대에 입학도 해보지 못한 내 솜씨라는 것을 안다면 어떨지? 그걸 밝힐 이유도 틈도 없이 날은 오고 날은 갔다. 대관절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 사람들은 관대하다. 마담이 평범할수록 드나드는 여자들이 좋아한다. 장사는 그런 틈에서 되어 간다. 물장사라니, 반찬 가짓수가 많은 밥장사보단 일단 편하다. 아니 나는 반찬냄새를 많이 싫어한다.

돈을 벌면서 내가 굳이 독한 취미를 가져서 그들의 속내나 들여다보려는 건 아니다. 그냥 오랜만에 나타난 그녀들이 처음엔 맥주 한 병 쯤으로 여자친구를 앞에 두고 시들해 한다. 짐짓 염려스런 표정의 친구는 기실은 반질반질한 눈빛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고통의 주인공이 이런 저런 것을 개의치 않고 있으면, 그때 난 알아차린다, 벌써 심각한 상태로구나. 앞에 앉아 귀 기울이는 친구나 건성으로 보이는 마담에게서, 그러니까 상대의 본성에서 비뚤한 기쁨을 읽어낼 여력이 없는 것이 그 시기의 특징이다. 아니 그들의 특징이다. 멍청한 것들!

“사랑? 그런 것에 들리거나 환상을 갖는 사람들은 열등하다.”

한번은 한 남자가 그런 섬뜩한 발언을 해댔다. 비슷한 또래 어중간한 남자들 셋에 여자가 하나 섞인 그런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추가 카프리를 들고 가던 참이었다.

“핑카라는 언어학자 말이, 우리의 심리적 모듈은 차에 치여 네 다리를 쑥 뻗고 나자빠져 있는 죽은 동물의 부어오르고 갈라진 뇌의 틈새보다 더 뒤죽박죽이라오.”

핑크, 또는 핑커 그 비슷한 이름이었지만 그건 대수가 아니다. 내가 들은 건, “나자빠져” 어쩌고 할 때부터야 분명했다. 어려운 단어 “모듈”도 나중에 채워 넣어 알게 된 단어다.

“그게 마인드라는 것인데, 왜 사내들은 서로 결투에 도전하는가, 왜 사내들은 전처를 살해하는가, 다 그 탓이라오.”

아니 이 남자가 웬 말을? 전처를 살해한 과거를 가졌을 리 없는, 아니 전처라는 단어를 모를 법한 이 남자가. 처와 마찰 중?

그러면서도 나는 실은 그 이상한 논리에 귀를 기울였다. ‘마인드’는 뭔가 어렵고 애매했지만, 일단 전체적으로 은근히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나는 사랑을 해본 적도 없고, 해볼 계획도 없기 때문이었다. 부서진 한 몸 멀쩡한 듯 살아가기도 힘들다. 사랑 같은 것은 시간 남고 배부른 사람들이 찾는 진한 양념이다. 밥냄새도 반찬냄새도 싫은 내게 자극적 양념은 더더욱 필요 없다.

나는 근처에서 얼쩡거리려고 옆 테이블의 냅킨그릇을 들었다 옮겼다 했다. 말하던 사람은 하이네켄을 마시고 있었다. 처음 그 상표를 들었을 때, 혹시 하이네 이름을 따서 지은 캔 맥주인가 생각했던 어리석은 기억이 늘 따라다녔다. <로렐라이> 같이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를 지었다는 하이네. 누군가 하이네켄을 찾으면 그 사람도 혹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게다가 제대로 못 배운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난 자꾸 이 유식한 남자에게로 신경이 쏠렸다. 아니다, 꼭 그건 아니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유식하기로 치면 너나 할 것 없으니까.

차츰 알게 된 것으로, 그 말을 내뱉은 사람도 언어학자라 했다. 언어학자라면 국문과 교수와 다른지, 국문과 교수는 소설가와 다른지, 어느 것도 잘 모르던 나에게는 그것이 그것이었다. 온통 유식한 사람들. 그들의 낮 세계와 동떨어진 나는 그들의 밤의 틈새를 훔치는 것으로 만족한다. 어쨌거나 인형가게에 들르는 호들갑스런 대학생들 보기보단 낫고, 왠지 영화나 브라운관이 내게 가까이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후후, 낄낄거리는 소리에 저 쪽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다. 근처에서 몇이 내는 소리였다. 비껴 옆의 여자를 흘끔거리는가 싶다. 여럿의 눈길이 머무는 쪽은 여기선 꽤 단골에 속한다. 동그란 얼굴에 단발머리를 고집하고 앞머리까지 동강 잘라서 내린 여자로, 사랑병에선 꽤 중증이다.

여자는 홀에 들어서면 곧 왼쪽으로 굽으면서 제 자리를 훔친다. 실은 ‘거기’로 출입하는 길목이라서 별 인기 없이 늘 비어있는 자리인데도. 여자는 앉으면 의자 등부터 쓰다듬는다. 등의자를 통째로 씌운 희멀건 당목은 몇 번이고 세탁한 나머지 제 남자의 체취는 온데간데없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가 행여 뭔가 호주머니의 먼지 부스러기라도 떨쳐놓고 갔다 해도, 내가 아직 세탁을 안했다 해도, 의자를 스쳐간 숱한 여자들의 머리카락도 함께 묻어있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슬며시 웃어주면, 여자는 자신을 알아주어 고맙다는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아니면 알아보는 것이 무색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그리곤 곧 멍하니 고개를 떨군다.

여자가 주문하는 것은 남자랑 마시던 버드와이저에서 이런 저런 칵테일로, 다시 데낄라로 바뀐 지 오래다. 앞자리에 앉아 고민을 들어 줄 친구도 있다 없다 한다. 친구의 수는 술잔과 반비례한다. 마스카라가 번진 한 쪽 눈두덩이 때문에 저쪽 테이블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나 보다. 여자는 아랑곳없다. 손등의 소금을 핥다가 뭉개진 검붉은 입술이 영 서글픈 정취를 발산한다.

“자 얼른 일어서지! 오늘은 더는 안 되겠어요. 알바들도 다 퇴근해야 하고, 이제 곧 셔터맨이 올 시간이야. 내 남자는 여자 이런 꼴 못 보는 신사거든요. 업어다주려다가 동티나게? 장군아, 아니 멍군 네가 이 손님 좀…….”

그녀들이 뜸한 날엔 장군과 멍군이 심심해한다. 알바 아이들이다. 하나는 장 뭐라는 아이가 맞다. 나중에 온 녀석이 내가 선임더러 “장군아” 부르는 소릴 듣더니 저는 멍군으로 부르라 해서 그냥 그리 되었다. 이곳에선 호적상의 이름 같은 건 아무도 관심 없다. 이런 곳 이런 시간에는 얄팍한 거짓이 일상이다. “내 남자는 신사”라고, 후후? 혼자 사는 여자 행색이 이런 곳 이런 시간에 어울리지 않아서 멋대로 창조된 남자일 뿐이다.


나는 카페에 오는 멍청한 남녀들의 어리석음을 적당히 비웃는다. 그리고는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은 나는 내 비밀을 푼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대숲에 나가 소리칠 데가 없는 세상에 살자면, 그런 세상을 미치지 않고 살자면, 이런 컴퓨터란 이름의 대숲 창고가 참으로 다행이다. 암호만 걸어두면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내 글〉. 그것은 내 고백성사요 어쩌면 종부성사가 될 것이다. 누구라도 열지 못하는. 물론 해커인지 뭔지 엄청 대단한 기술을 가진 아이들은 누구의 어떤 파일도 다 연다지만, 누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인재들을 동원해서 시답잖은 나의 〈내 글〉을 열어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안심이다.

나는 쓰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사는 것은 자유 그 자체다.’

‘거짓말, 그건 외로움이야.’

내가 한 마디 적을 때마다 허수가 토를 단다. 나는 정해수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있었지만, “해수애비”로 통하는 아버지 때문에 늘 ‘허수아비’라 놀림 받았다. 어렸을 때 나는 내 이름이 정말 허수인가 할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왜 ‘정 선생’도 ‘정 씨’도 못되고, 늘 그렇게만 불렸을까? “해준에미야” ― 할머니가 그렇게 부르는 엄마는 다른 아이들인 해정이 해은의 어머니였다.


나는 그냥 내 이야기만 하기로 한다. 허수도 조용하다.

내 처음 직업은 경리였다. 경리직원 정양이 사장님과 사모님에게서 도망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피스텔은 실제로 그들의 체모로는 슬그머니라도 나타날 수 없는 곳이었다. 빌라 아니면 대형 아파트 단지 또는 호화로운 호텔의 로비가 그들의 세계였으니까. 돈이 적은 대로 단독 2층을 세 들어 살 수도 있었겠지만, 제대로 된 살림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내 생활 또한 오피스텔의 생리에 맞았다. 어딘가에서 김치찌개나 감자 넣고 비릿한 생선 끓이는 냄새가 넘어 들어오지 않을 잠자리 ― 그건 건 바로 이런 종류였다.

내 자신의 몰골을 이곳에 맞추려고 무진 애를 쓴다. 어디에 살건, 누군가가 삽을 들고 나와서 퍼 내 버리고 싶은 개똥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물론 처음 바로 술집을 내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빵집을 내서 빵을 가져다 판다거나, 액세서리 집을 내어볼까 궁리에 궁리를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던 경리직원 생활을 접은 순간, 제발 아침엔 늦잠을 자고도 살 수 있기를 희망했었다. 어린 시절 이래 늦잠 한번 자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서 어머니, 그러니까 해준엄마를 거들어야 했던 건 순전히 할머니 때문이었다. 그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할머니가 참 고마웠다 싶었지. 붓기를 잘하는 해준엄만 조그만 내게 많은 것을 의지했고, 그래서 나를 미워하지 않았을 거야. 쓸모 있는 딸을 미워할 계모는 없어, 아주 심성이 비뚤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은 제 할 탓이다.”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아무데서고 조금은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 그랬다 난. 그렇지만 일찍 철들어 살림을 도맡았던 어린 시절은 내게 찌든 찬장냄새도 심지어 밥이 익어가는 냄새도 다 싫어하는 괴벽만을 남겼다. 난 정말 음식냄새가 싫다. 사람이 음식냄새를 싫어하면 뭔가, 반은 죽은 목숨이다.


야간 상고에 진학한 것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새벽부터 집안일과 아이들 챙기는 일 끝나고 나면 다시 집안일. 새엄마는 부성한 발등을 하고 겨우 앞마당 뒷마당으로 뒤뚱거리기 일쑤였고, 한낮이 겨워야 숨을 돌리고 마주 앉은 밥상에서 내겐 항상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학교엘 못 가 어쩐데냐, 야간이라면 또 모른데, 하긴 야간은 또 집이 멀어 통금되게 생겼고…….”

“늦는 건 안 무서운데,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렇게 해서 일년 늦게 야간 공부가 가능했다. 천장이 높고 썰렁한 교실은 참 고상했다. 우선 퀴퀴한 음식냄새와 멀었다. 누군가의 피아노 연습 소리도 서툰 대로 고상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짓고……. 그러다가 어두워진 저녁 시간 교실만 밝은데, 노래공부는 교실을 천상으로 바꾸었다. 영어를 읽어도 잘은 모르지만 무슨 신기한 노래 같았다. 그 대신 답이 확실한 산수와 수학시간이 즐거웠던 나는 정작 상고 시절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의무가 되고 수단이 되려니까 그랬을지.


그나마 제대로 졸업을 했더라면 이보다는 나은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새엄마는 내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새엄마가 인생에 썩 도움이 된다는 이야긴 들어 본적이 없으니 크게 억울할 거야 없다. 어쩌면 새엄마가 병만 처지지 않았어도……. 새엄마는 그 살림으로는 죽느니 비슷한 병을 앓았다. 살아서 피를 걸러내야 하는, 일주일분 온 식구의 생활비를 혼자서 다 써야 하는 병을.

남은 한 학기를 못 마치고 학교를 접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담임선생님이 알선해준 경리 자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듬해에 복학해서 남은 한 학기를 졸업하게 해주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졸업을 하고도 직장을 옮기는 배은망덕한 꿈은 감히 꾸지 않았다. 웬걸, 대학에는 내가 책임지고 보내주마 하던 사장님.

사장님은 친절했고 그리고 도둑이었다. 어려서 죽은 딸만 같다고, 공부하라고 마련해준 뒷방은 분에 넘치게 감사했지만, 수능시험 준비를 할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밤낮없이 일감을 들고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난 어느새 나쁜 여자가 되어 있었다. 몸도 마음도 나쁜. 머리는 썩지 않았다. 사모님과 결산을 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믿었다.

“절대로 나타나지 않겠어요, 마침 결혼하자는 남자친구가 있으니.”

거짓말은 서로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전 그냥 아무 내색 없이 시집가겠어요, 사모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나름대로 목돈을 가지고 궁리를 하면서 준비한 것은 봉제 인형들을 들여다 파는 작은 선물의 집이었다. 대학을 그렸던 마음이 대학동네를 흘끔거리게 했다. 그러나 대학가 길목은 너무 비쌌고, 한두 블록 떨어진 미용실과 PC방 사이, 딱 한 팔 너비의 가게는 장소를 잘못 고른 셈이었다. 미용실에서 내다 널어놓는 수건 빨래걸이와 PC방 앞의 두들겨 패는 놀이판들 사이에서, 내 흰곰들은 누렇게 변해갔다. 너무 심심하면 나는 그놈들을 스케치했다. 그도 심심하면 바깥에 스쳐가는 사람들을 그리곤 했다. 가끔 점심 먹으러 가는 떡볶이 아줌마는 차라리 소주방을 하라 했고, 미용실 아가씨들은 빠를 하라고 했다. 떡볶이 아줌마는 다시 새벽 해장국집을 권했다. 모두가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하는 세상이랬다.

“대학가에서 곰인형이 뭐야. 그런 건 요샌 초등 애들도 별로야.”

“생긴 것과는 참 다르네여…….”

이건 미용실 아가씨 말이었다.

“내 생긴 게 왜 어때서여?”

말꼬리를 흉내 내자 모두들 피식 웃었다.

“머리를 더 길러서 확 층을 내고, 앞과 옆은 과감히 흩트려서 볼륨을 넣고 좀 섹시하게 연출한다면!”

“한다면?”

“한다면, 영락없는 카페 마담 스타일이지여.” 젊은 것 같지만 나이 들어 보이는, 그런 분위기가 여러 층의 사람들을 사로잡는다고! 미용실 아가씨는 모처럼 전공을 살리게 되어서인지 말에 기운을 얻었다.


그들은 내가 인형들에 집착했던 이유를 알 리 없었다. 아버지 없는 아일 상상하기 무서워서,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내 스스로가 무서워서 미리 포기해버린 내 미래의 아기. 난 인형들에서 사라져간 아기의 영혼의 파편들을 만난다. 동그란 눈도, 찌그러진 눈도 가능했을 내 아기. 눈웃음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갈색 곰, 놀란 토끼 눈처럼 만들어진 아기 곰. 앞치마까지 차려 입은 엄마 곰. 곰 가족, 내 인생에는 있을 수 없을 가족, 엄마와 아빠와 아기.

할머니는 처음 집을 떠나 도시로 나가는 내게 당부하셨다.

“여자는 버스를 타거나 어쩌거나 항상 양 무릎을 떼어선 안 되느니.”

그 “어쩌거나”가 무슨 의미였는지는 이미 무릎이 젖혀진 뒤에서야 깨달았다. 강요가 있었지만 뭔가 자포자기적인 충동과 얼버무려진 혼돈. 누구든 치를 것에 대한 겁 없는 대처이기도 했다. 대학의 꿈을 접지 못한, 겨우 스물한 살 때였다. 가벼운 행동의 결과는 증폭되어 나타났다. 규칙적인 피흘림을 단 한 달 걸렀을 때, 난 미련 없이 아기의 가능성을 차단하기로 결심했다. 평상시 뭉클하게 쏟아지던 행사 정도에 그칠 그냥 피의 덩어리일 뿐일 그것을. 어디에서도 제대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 그것을.

“내참, 의사 생활 몇 년인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긴가민가 하는 상태에서 떼 달라 조르는 아가씨도 다 있구먼. 새파란 나이에 뭐야.”

“병적인 순결집착증 아닐까요, 원장선생님?”

“쉿, 들릴 지도 몰라. 대충 마취한 거잖아, 별 꺼낼 것이 있기나 한지 원.”

‘미친 것들! 순결집착증이 있는 여자가 이 모양 이 꼴로 여기 누워 있겠냐! 미친 것!’ 그렇게 속으로 속으로 이를 악물고 외쳤다. 치욕은 자진해서 다리를 벌린 그곳에서 더욱 심했다. 월급을 주는 남자와 월급을 받는 여자 사이를 통째로 의심하던 나에게 그들 또한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미친 것!’ ― 이 말은 내 입버릇이 되고 말았다. 저기 저렇게 술병을 앞에 두고 너덜거리는 군상들을 보면, 아무에게나 그렇게 내뱉었다, 미친 것!


오늘도 그녀다. 반듯한 외모에 강사씩이나 된다는데, 여기 와서 만날 넋두리다. 대학에서 선생을 하는 여자라니, 내 처지로 보면 하늘이다. 그런데 밤에 보면 별 것도 아니다.

“같이 보따리장사 시절 동병상련 가까워 졌었지…….”

보따리장사란 여기 오는 사람들 용어로 시간강사다. 남자가 신임교수가 되자마자 여자가 채였단다. 어지간히 뻔한 일이다. 박식한 박사들이 널린 세상에서 결정적인 것은 ‘전임’이라고들 했다. 첨엔 나도, 시간강사는 하루 한두 시간만 하고 전임강사는 온종일 하는 강사인줄 알았었다. 대학가 근처에선 배워지는 것도 많다. 또 강사와 교수가 무엇이 다른지, 다같이 대학교의 선생님들 아닌가. 한번은 두 비슷한 남자 둘이 앉아서,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교수님”이라 호칭하고, 다른 한쪽은 상대에게 꼭 “선생님”이라고 해서 의아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 쪽은 시간강사이고 교수님 쪽은 전임강사란다. ‘선생님’이 가장 높여 부르는 것인 줄 알았던 나는 매번 놀랬다. 어느 고장에선 ‘전(前)대통령’보다 ‘선생님’이라고 해야 존경심을 나타내는 줄 알기도 하는데.

아무튼 “결정적인 순간에 이 남자가 좋은 혼처에 안착해버렸다”는 것이다. 남자는 결혼 후로도 “마음만은…… 이런 대화를 나눌 상대는 오직……” 하면서 여자에게 기댔더란다. 습관에서 탈피하지 못하듯이 꼭 그렇게 그녀는 그의 곁에 남았고. 그가 원하면 달려갔고. 완벽하지 못한 그의 결혼에 마지막 화룡점정이 되어도 좋다고 느껴질 만큼 그는 그녀를 간절하게 원했었다고. 그러더니 코가 비뚤게 술을 마신 어느 날 느닷없이 그러더란다, 날 좀 놔주지 왜 이러느냐고, 알고 보니 여잔 다 같은 수준이더라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 ― 자식, 논리가 대단했어. 그는 나를 사랑한다. 내가 그를 원한다, 유부남을.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는 자신을 나에게 내어주느라 죽을 지경이다. 반대로,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하지 않겠는가.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원이니 내가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그것도 술 핑계로 그런 논전을 걸어왔다니까.”

‘그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겠구나, 너, 미친 것아!’

밖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소리가 나온다.

“어마 그럴 리가……. 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요. 어쩜 예민한 아내 쪽에서…….”

나는 마음에 없는 말로 사회적 웃음기를 흘린다.

“야아 그놈의 말장사, 보따리장사. 누가 그 말장사를 따라가겠어. 나요? 나도 강사 아니냐구요? 그래요, 저나 나나 같이 보따리장사였죠. 하지만 난 화학이요. 우린 말장사라기보다는…….”

알만 하다. 마담 퀴리가 되려는 듯이 화학과에 진학하는 여학생들. 공부는 잘 해도 인간미 없을 확률이 높은 똑똑한 부류. 보아하니 땅딸보도 아니고. 공부도 잘하고 예뻐서 같은 반 친구들 꽤나 마음 다치게 했었겠다!

그런 여자들은 죄 없이도 좀 당해도 싸다. 왜, 공부도 잘하고 예쁜 부잣집 딸이면 더욱 뒤틀린다. 그 중 하나도 갖지 못한 열여섯 살짜리 여자애들을 그들은 모른다. 중학교 졸업 후 희망이 끊어진. 갈아입을 여러 벌을 다 포기하고서도 제대로 된 옷 한 벌을 만져보지도 못하는 열여섯 살 여자애를. 함부로 청바지를 입고 싶지 않고,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서 무통 다리에 스커트를 입고 싶어 하는 스무 살짜리를. 애매한 미소 속에 술을 팔아 살아가느라 겉 나이 먹어가는 여자를. 서른도 전에 마음 닫아 건 여자를.

어쩌나, 난 그 병을 지금도 못 버렸다. 대학가 가까이 집을 구하고, 요조숙녀에 가까운 대학원생쯤으로 보이기 위해서 살짝 긴 컷을 고수하는 것 하며, 향수도 레이스 치장도 피하고, 가능하면 직선 라인을 선호하여 몸매의 곡선이 드러나는 것을 감추며……. 올빼미족을 상대로 술을 팔아서 먹고사는 여자가 사무실 분위기의 오피스텔에는 어떻게 맞추느냐고? 그건 간단했다. 오후 출근길에 노출 없는 깔끔한 옷과 맨얼굴이면 통과였다. 밤늦은 시간에는 보는 사람들이 적다. 또 술을 팔되 술은 아예 하지 않는 원칙이다. 바보들이 사랑에 빠지듯이, 바보들이 술을 마시니까. 난 바보가 되고 싶지 않다.


‘저 바보는 또 왜 이리로 오는 것일까?’

이번엔 굵은 웨이브의 긴 머리. 어디선가 술에 젖어 온 그녀는 들어오면서 바로 주인인 내가 왜 그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따졌다.

“이 그림 아래, 여기서 그가 나를 무릎에 뉘인 적도 있었는데.”

그때 실은 많이 취해서는 아니고, 그들은 술은 많이 하지 않고 토론을 즐겼다고 했다.

“유럽 사람들은…….”

그녀가 말끝마다 내뱉는 유럽 사람들 마냥, 그 둘은 한 잔 놓고 앉아서 오래 떠드는 부류였다고 기억된다. 그녀의 남자 또한 기억한다. 왜, 무처럼 희멀건 얼굴에 안경테는 검은, 상투적 샌님. 다만 잘 코디도 안 된 채 입는 캐주얼한 복장이 얼핏 자유의 냄새를 풍겼을 뿐이다. 그 정도 자유의 냄새를 풍기는 인물은 실로 널려 있다. 그녀가, 사랑에 빠졌다는 그녀가 사랑에 빠졌을 뿐이다. 멍청한 것!


나는 멍청한 남녀들의 어리석음을 한껏 비웃어준다. 지열이 가시면서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은 나는 내 비밀을 푼다.

비밀? 비밀이라 할 밖에 없는 것은, 세상에서 알 리 없고, 그 사람마저 알 수 없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다. 일층 편의점에서 햇반을 집어 들다가 만난 사람을 스물 네 시간 안에 다시 마주치면 누구라도 일순간 가슴이 움직인다. 역시 일층 문방구 계산대에서 부딪친 그의 바구니에는 말갛게 비치는 홀더 뭉치와 작은 집게 한 통, 그리고 연둣빛 형광펜 옆에는 놀랍게도 연필과 지우개가 들어 있었다. 연필? 요새도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딱풀과 크레용 그리고 작은 가위. 그 사람 역시 나를 따라서 내 바구니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어쩌나, 나를 초등학교 학부형쯤으로 보았으면 어쩌나? 내 가능한 아기가 만일 태어났다면 초등학생쯤일까?’

무슨 대수였을까? 어떤 남자가 연필로 연애편지를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곤 하거나 말거나. 처음으로 마주친 그가 그 가벼운 차림의 몰골로 미루어 같은 오피스텔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오피스텔의 생리가 무엇인가? 옆방에서 통절한 싸움이 나도 모르도록 되어있는 구조를 즐기려는 것 아니었나? 홀더와 작은 집게들,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를 사서 햇반을 먹으며 일하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나 또한 딱풀을 사서 얇은 화장지로 부챗살을 덧바르고, 종이가 완전히 마르면 파스텔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 넣을 참이었지만, 낡은 부채를 버리지 않고 붙이려는 나를 누가 관여한단 말인가. ‘어머나, 대단하다, 말끔히 새것이 되었네!’ 혹은, ‘처음보다 더 예쁜데!’ 하고 감탄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괜한 짓 하고 있구나, 거 뭐한다고 헌 부채를 가지고 몸살이냐!’ 그렇게 핀잔할 사람마저도 없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대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혼자다. 혼자라서 이곳에 산다. 이렇게 좁은 공간을 선택한 것이 돈이 적은 이유에 겹쳐서, 마치 사람들이 싫어서 반드시 혼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시위하려는 몸짓들 같다.


난 정말이지 다시 집으로 갈 순 없었다. 떠나올 때와 너무 달라진 나 자신 때문이기도 했고, 생모도 생부도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집이 집은 아닌 것 같았다. 독립을 위해서 야멸차게 받아낸 큰 돈도 있었다. 물론 내 경우로 큰 돈. 그 돈으로 수고로운 몸을 뉘일 작은 집과 밥을 벌어먹을 가게를 꾸린다.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내가 이쯤이면 스스로 대견하다. 그 나름대로 대도시, 이런 곳에서 누군가에게 생활을 의탁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난 혼자서 잘 산다. 무엇을 특별히 기대하지 않으며, 그래서 무엇을 서러워하지 않는다.

야간에서 만난 친구들이 보통 그랬다. 기쁨과 슬픔의 표현이란 인문계 고교로 진학한 순진한 아이들, 있는 집 아이들의 것이었다. 우리에겐 미래의 꿈은 먼 것이었다. 우리에겐 우선 현실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 또한 지독한 현실에 내팽겨졌다가, 겨우 이리로 숨어들었다. 상의할 형제도 없이, 친구도 없이, 난 한 격랑을 탈출했다. 내가 만일 이제와 그들을 찾는다면, 만일 그런다면, 그들 중 누구라도 내 이상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나를 반길 것이다. 더한 불행들이 부도덕한 소문쯤을 가볍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내 불행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정말 힘들어지면 누군가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나만큼 외롭고 무미한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다들 성공(?)해서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면, 그것 또한 가슴 아플까?

나에게 더 아플 가슴은 없다. 처음부터 잘 발달되지 못한 내 정서다. 애정 없이, 아니 증오심과 함께, 상당기간 몸을 버렸고, 내 몸은 굳었다. 피기 시작하지도 않고 시드는 꽃.

“솔밭사이 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감동적인 안치환의 목소리로 들은 노래가 가슴을 저몄다. 고향의 옛 시인이 쓴 가사라 해서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내 고향엔 내 이른 죽음을 서러워할 사람도 없다.

꽃봉오리들이 다 피는가? 다 못 필 수도 있기 때문에 피어난 꽃들을 아름답다고 할 게다. 연거푸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갓난애조차 업은 채 강에 뛰어들었다는 내 어머니. 누가 크게 구박도 안했는데 무엇이 혼자 서러워서였는지, 스물두 해도 넘기지 못한 여자. 그 주검이 달구지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고서도 그 자리에 시집온 새엄마. 반은 넋 나간 남편과 아이들과 병마와 얽혀 들어간 여자. 누구도 피어본 적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할밖에.

내 생채기? 회오리바람은 도처에 있는 법이다. 그만하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산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잘 안배하며 산다. 내 어머니처럼 돌아버리지 않게, 새엄마처럼 병들어 처지지 않게. 그냥 할 수 있는 일로 밥을 벌고…….


그러다 그 스물네 시간 안에 누군가를 세 번째 조우하기에 이르면, 누구라도 뭔가 운명적이라는 환상에 빠지기 쉽다. 내가 5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천천히 문 쪽을 향할 때, 서둘러 계단에서 올라온 걸음걸이가 나를 지나쳐 내 방문을 잽싸게 열고 들어갔고, 그것이 그였다. 곁을 밀치듯이 지나친 뒤에도 나를 별 의식하지 않던 그가 방문을 닫기 전엔 살짝 돌아다보았다. 내가 어처구니없어 하며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나 보다. 그래도 조금 고개를 까닥하고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그 순간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속도로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은. 누가 내 면전에서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문을 닫아거는가? 한두 발 더 걸어가서 확인한 방문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 4층이었다. 5층에서 내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아닌 우연한 실수에 멍해진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기가 멋쩍어 계단으로 5층을 향했다.

‘아차, 그러니까 4층에 사는 남자였구나! 내가 잘못 내린 거네 뭐!’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그를 스물네 시간 안에 세 번씩 만나려고? 그런데 어디서 보았더라? 홀더와 작은 집게들,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를 사서 햇반을 먹으며, 나와 천장두께만큼 떨어져서 일하고 있을 이 사람을?

그것은 경이이자 슬픔이었다. 인생의 시작부터 망가진 채, 이제는 사람 사이를 초월해서 살리라, 그렇게 마음 단단히 먹고 살기 시작한 그때, 하필 그때 그 무심한 맑은 시선과 마주친 것은.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깨끗한 눈빛. 그것이 다른 사람의 원과 소망을 자아낼 수 있음을 그땐 사실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무려나 일상은 계속되었다. 다시 하이네켄을 찾는 언어학자가 나타나는 일도 일상에 속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로 그였다. 언어학자라던 그 남자, 그 남자가 그였다. 그 남자의 일행은 갑자기 자주 들렀고, 온갖 외국어에서 비슷한 공통점인가를 찾아 연구하는 팀이라 알려졌다.

‘혹시 하이네도 강의하시나요?’

하이네켄을 계속 들고 가면서 묻고 싶은 말이었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 그럴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슈퍼에서 문방구에서 오피스텔에서 마주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핑계가 되어 가까이 앉으면 알아볼까? 알아보는 것이 좋을까 아닐까? 그래서 망설였다.


그쪽 테이블에서 돌연 큰 소리가 들려왔다.

“글의 주제? 아니, 난 그저 인생의 주제를 말하는 거요. 내 인생에 주제가 뭔가……”

나는 그의 목소리만을 크게 듣는다. 내 귀의 기능에는 최신 디지털 보청기들처럼 그의 목소리만 가려서 크게 듣는 장치가 되었나 보다.

‘인생의 주제? 주제라는 게 대체 뭐라는 것일까?’

그렇게 나도 덩달아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주제’가 들어간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주제도 모르고…….’ ‘옷주제가 뭐다냐?’ ― 그런 뜻과는 다른 무엇인 듯했다. 하지만 ‘인생의 주제라…….’ 아무래도 ‘중심’이 아닐까 생각했다. 중심을 가지고 사는 일, 그런 것을 말했을 것도 같았다. 인생의 주제를 두고 논할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술파는 여자는.


나는 술을 팔아 살아가는 내 신세를 비웃게 되었다. 새벽이 오는 시간 책상에 앉으면, 나는 내 멍청하고 슬픈 비밀을 푼다. 들킬세라.

나는 당신을 향해 오감을 열었습니다. 여럿이서, 그것도 드물게 나타나시는 당신은 나를 별로 의식하지 않으십니다. 하이네켄을 파는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병을 들고 테이블 주위를 도는 여자를. 그러다 당신은 마침내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공휴일이 끼어서 한가한 오후였지요. 진한 커피도 듣지 않고, 아스피린도 한 알 밖에 남지 않아 약국을 향하던 나를 알아보셨습니다. 단화를 신고, 그러나 옷은 산보 차림은 아니었던 저에게 그랬습니다. “산보 가십니까?”

나는 아스피린도 잊고, “예”라고 말했습니다. 유식하고 멋스러운 당신과 산보길이라면 어떤 것도 접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가 물장사 몇 년 만에 대학 내를 산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빠른 산보 걸음을 쫒아가지 못하는 나를 위해 당신은 벤치에 함께 앉았습니다. 감히 옆에 앉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거의 땅바닥에 앉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메마른 땅바닥에 섞여 있는 돌과 돌가루 틈새로 풀잎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풀잎으로 보아 오월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이름을 묻고는, “해수 또는 허수”라는 말에 너무 통쾌하게 웃었습니다. “허수라고요, 시니컬합니다. 좋습니다.” 그리고는 술자리에서 내가 한두 번 대화에 낄 때 속으로 놀랐다고, 산문적 현대에서 뭔가 시적인 세계 같은 순수를 보았다고. “특히 그 분위기에 맞지 않게.”

“그” 분위기는 술집 분위기겠지요. 그러니까 오피스텔에서 마주친 여자하고 술집여자하고를 동일시하기가 어려웠었다는……, 그런 고백이어도 좋았습니다. 한껏 높은 세계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것이면 되었습니다. 대학에 가보지도 못하고 대학가에서 술을 파는 나에게. 대학생도 과한 나에게 모든 것을 졸업한 대학교수라니. 알게 모르게 유린당한 내 몸뚱이가 부끄러웠을 뿐입니다. 실전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뚫린 방패, 꺾인 창.


며칠 후 다시 일행과 함께 온 당신의 모습. 그 며칠 후. 그 며칠 후. 그러나 곧 긴 여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가의 여름이 그렇지만, 그해 여름은 참 길었습니다. 여전히 가시지 않은 더위 속에, 그러나 저녁이면 시원해지는 어느 날 밤, 당신이 다시 가까이 있음에 나는 돌아버릴 만큼 행복했습니다. 사람 마음이 붕 뜬 것, 아니 어지러운 멀미 같은 이것을 무어라 한답니까?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려 가게 문을 못 열면 어쩌나 걱정되었습니다. 혹시 폐렴에 걸려 죽을까 더욱 겁났습니다. 더는 당신을 못 보고 죽을까 겁났습니다. 절대로 날마다 오실 리 없는 당신을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오신 것은 두 학기의 공동프로젝트 때문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8개월, 7개월…… 3개월. 줄어드는 숫자의 의미를 당신은 모르십니다. 어차피 당신이 한시적으로 있습니다. 멀찌감치라고 해도 공기를 통해 섞일 수 있는 시간을 탐하는 내 욕망이 꿈틀거렸습니다. 그것을 오래지 않아 들켰습니다. 죽을 죄였습니다. 당신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왜냐하면 당신이 곧 멈췄으니까요. 아니 찬물을 끼얹으셨던 것, 압니다.

“어련히 알아서 마실까봐서요.”

어느 날 저녁, 그날도 자꾸 당신의 테이블을 맴도는 나를 향해서, 바라보지도 않고 내뱉으신 말. 퍼뜩, 부끄러워서, 카운터 뒤로 도망쳤습니다. 아예 두통을 핑계로 알바들에게 뒤를 맡긴 채 가게를 뛰쳐나왔습니다. 콧물 핑계로 계속 울었습니다. 마음에선 어쩌면 그렇게 차갑지 못하실 것이라 생각도 해봅니다. 어쩌다 일행들과 오시면, 이제는 내가 없는 것처럼 완전히 무시하시는 당신. 당신의 무심함에 죽어갑니다. 더 빨리 죽고 싶습니다. 이사를 떠날 수는 없어, 아니 떠나지 못합니다. 떠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당신의 시간이 정해졌으니까요. 시간이 가면서 나는 점점 미치는 게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한 계단 내려가서 오른 쪽으로 굽는다. 정확히 열네 걸음이면 손에 잡히는 손잡이.’

몇 번씩 초인종을 눌러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나를 미치게 합니다. 수돗물을 밤새 틀어 놓아 물이 넘치고 넘쳐서, 당신의 천장을 스며, 혹은 당신의 창문으로 흘러내리는 상상을 합니다. 물은 쉽게 당신에게 이릅니다. 이 바보는, 정신 나간 바보는, 수돗물을 부러워합니다. 속을 썩힐 대로 썩혀 다 녹으면, 그게 물이 될까요?

일에 빠지자는 처방도 잘 듣지 않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야 가게 문을 여니, 긴긴 낮 시간을 잠이라도 자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수면제를 먹었다가는 가게 문을 열고서 졸게 되어 안 됩니다. 시간을 보내려고 문화센터를 기웃거립니다. 초상화반에 등록도 했습니다.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되려고. 당신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되려고. 떠나신 뒤에 그리는 초상을 보고서 누가 뭐라겠습니까? 떠나신 뒤 걸려있는 초상화를 보고서 누가 뭐라겠습니까? 그러나 아주 떠나시기 전에, 몇 분간만 함께 있을 수는 없겠습니까? 한번만 버스 정류장 혹은 기차역까지 함께 가면 안 될까요? 당신은 나를 살게 하는 약이고, 나를 살 수 없게 하는 독이십니다. 나의 독, 나의 약이시여! 몇 분만 함께 할 수는 없나요? 몇 분의 약이면 몇 년은 버틸 것 같습니다. 아니 영원히 간직해 두고 조금씩 꺼내보겠습니다. 알사탕은 보기만 해도 그 단맛을 느끼듯이. 사탕이 닳을세라 그렇게 보기만 하면서, 달콤함을 조금씩 핥아가면서.

호야의 스물 서른 작은 꽃봉오리들처럼 수없이 매달려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당신의 마음 한 조각은 귀한 만큼 그러나 여렸습니다. 애당초 열정이었을 리도 없습니다. 그저 나락에 빠졌던 내가 그 여린 줄기를 구원의 밧줄로 믿어버렸던, 초여름의 마파람 한 번이면 흩어져버릴 만큼 가벼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당신에게서 들었던 말을, 뜻도 모르고 되뇝니다. 그것이 다였습니다.


끝은 언제 오느냐고? 그것은 처음부터 병행이다. 다만 너흰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에서야 화들짝 놀랄 뿐이다. 예컨대 CD 같은 하찮은 네 선물을 되돌려 받을 때, 그때도 넌 사실을 믿지 않고 다른 핑계를 댄다. 너를 위해서, 너의 필요를 위해서 돌려준 것이리라고. 그러다 혹시 조금 취한 말로 “너 때문에 힘들어” 라고 중얼거리면 다시 전부를 건다. 그러나 마침내 너는 알게 된다. 예컨대 작은 보시기에 귀한 음식을, 네 생각으로 귀한 음식을 그에게 몰래 두고 나왔을 때, 급해서 네 손가방도 문 밖에 두고, 물론 그 문을 닫는 것도 잊고 네 방안으로 숨어들었을 때. 그때 그가 그것을 거부할 때. 그것을 다시 들고 와서 고개만 내민 채, “저, 많이 있습니다.”라고 정중하게 혹은 정중하지도 않게 말할 때. 손에 닿는 현관 어디 첫 번째 가구 신발장 같은 위에 아무렇게나 두고 나갈 때. 나가려다 말고 친절하게 혹은 별 친절하지도 않게, 오히려 칠칠맞음을 나무라듯이, “여기 가방을 이렇게 밖에 놔두고 그래요!?” 하면서, 네가 밖에 잊어버리고 있던 지갑을 디밀어 넣어주고 나갈 때. 문을 닫고 아주 나갈 때.


일상은 평온했다. 사람들이 줄어든 느낌이었을 뿐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좋은 것을 찾으니 술은 덜 마시는 것이다. 아니, 그가 보이지 않는 날은 홀이 텅 빈 것만 같았다.

그 무렵 자살과 타살이 나오는 책을 읽었다. 순전히 그의 테이블에서 얻어들은 때문에 읽었다. 주인공이 남자냐 여자냐, 뭔가 대단해보여서 읽었지만 오리무중이다. “이반과 함께 행복하게”로 시작해서 “그것은 타살이었다.”로 끝난다. 실제로 죽은 시체는 없다. 실제로 죽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남자 이반이 떠나기 전에 떠나는 여자가 스스로 살해되었다고 규정한다. 사랑에 목숨 건 자신을 죽이고서, 난 죽고 싶지 않았는데, 죽임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이제 남은 사람은 그 여자의 반쪽 아니무스다. 여자는 남자로 살기로 한다. 그는 남자 이반이 걸어온 전화를 ― 아마 이별을 고하고자 ― 받으면서, “이곳엔 여자가 없(었)다.”고 답한다.

남자만이 인간이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벌써 알았어야 한다. 남자가 인간이다. 인간은 남자다. 책 속의 여자는 똑똑하다. 다행히 똑똑하다. 그녀가 온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되어 살면 그만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자였는데 죽었다. 실화인지 방화인지 화재로 죽었다. 책 속에서는 절반 아니마만 죽였는데, 책 밖에서는 통째로 죽었다. 혹시 이별이 아파서 죽었을까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내 검색 실력으로는 ‘1926년생, 1973년 사망’ 정도 겉핥기만 나왔다. 같이 살다가 이별한 남자는 역시 유명한 작가였는데, 15년 연상이었고, 전에도 후에도 여자들을 만났고, 20년 쯤 더 살았다. 하긴 서양의 이야기이니, 서양에선 남자가 더 장수하는지도 모른다. 그쯤이면 되었다. 내가 그런 것들을 찾아서 또 무얼 할 것인가.

그를 알았던 8개월 동안 평생에 읽었던 만큼보다 더 많은 소설책을 읽었다. 그가 떠난 뒤 다시 책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슨 책이 읽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없기 때문에 모른다. 그는 일 따라서 어김없이 한 겨울에 떠났다. 떠났을 것이다. 봄이 되어 대학가가 웅성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보이지 않았다.


*


그를 처음 보았던 5월은 해마다 다시 돌아온다. 4월 뒤에 온다. 그런데 5월이 되도록 호야는 새 순을 낼 줄 모른다. 스물 한 개의 호야 잎이 겨울을 살아남았다. 쌍떡잎이 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살아남기는 했다. 화분들에 물을 주려고 안경을 찾아든다. 스물한 개의 잎들이 조금이라도 푸른 기운을 띠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아,” 하고 어느 날 너는 혼자서 탄성을 지른다. 저 아래 밑둥치 부분에 스물둘 그리고 스물세 번째 쌍떡잎이 나란히 올라와 있다! 그 둘은 옛 줄기에서가 아니라 아예 새 순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둘을 밀어 올리는 새 줄기는 그 작은 잎들마저 무거운지 비틀거리며, 애써 그들을 위쪽으로 볕이 비치는 창쪽으로 들이밀고 있다.

다음 날이다. 물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순전히 조금이라도 자라났을 모양새를 보기 위해서 기어간다. 기어간다기보다는 기듯이 간다. 다가가는 속도의 에너지만으로도 놀라서 가녀린 줄기가 다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시작의 위치가 좋지 않아서인지 볕을 탐해서인지 큰 잎들 쪽으로 너무 기운다. 플라스틱처럼 완강한 늙은 잎들에 다치면 정말 굽을지도 모른다. 줄기인지 잎인지도 아직 구분이 가지 않은 연한 살이 굽다 못해서 아예 찌그러들지도 모른다. 너는 새끼손가락으로 가만히 여린 줄기를 밀어본다. 큰 늙은 잎에서 멀어지도록.

또 다음날 아침이다. 여전히 물을 주는 날이 아니다. 그래도 화분 쪽으로 향한다. 어제보다 더 자란 느낌인데 잎을 펼치는 기세는 그대로다. 해가 덜 나서 그럴까? 종일 창가를 서성댄다. 오후 늦게 방을 나서려다말고 또 한번 창가로 간다. 해는 반대쪽에서 비치고 있고 그리 맑은 날도 아니어서 앞쪽 창가는 어스름하기까지 하다. 너는 새끼손가락을 뻗어 가느다란 줄기를 바로 잡는다.

“조금만 더 바로 자라거라……, 조금만 더 바르게…….”

가만히 주문을 왼다. 아차, 그 순간 미세한 떨림이 네 손끝을 통해 온몸에 전해진다. 무언가 동강나는 움직임이다. 그것이 잘려 나동그라져 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인가. 그것이 끊어졌다. 그 여린 줄기에 좁쌀만도 못한 크기의 수액으로 눈물을 뚝뚝 흘린다.

너는 운다, 여린 줄기와 함께 작은 희망이 잘려나갔음을. ‘바르게’에 사로잡혀서, 네가 그것의 방향을 틀다가 그것을 죽였구나. 그렇다. 그의 방향을 ‘쪼끔’ 고쳐 잡고자 했을 때, 언감생심 네 쪽으로 인위적으로 정향코자했을 때, 아니 그런 소망이 꿈틀거렸을 때, 그때 벌써 그가 ‘절단났다’는 것을 너는 불현듯 깨닫는다.


너는 서둘러 가게로 향한다. 저녁에서 밤사이, 너털거리는 불행한 군상들을 서둘러 위로하고 싶다. 조용히 바라보아줄 사람이라도 그리워하는 안쓰러운 그들. 너는 그 얼굴들을 향해서 되뇌고 싶다. “인생은 끊임없는 이별하기다. 우리는 저녁마다 하루와 이별한다. 가끔은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그러나 가끔은 고통을 느끼며.” 어떤 시인의 글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구절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리카르다 뭐라는 이름으로 보아 여자다.

‘그에게서라면 한두 마디 이 시인에 관해서도 들었을 것을.’

너는 순간 자동적으로 그를 떠올린다. 아차, 네 마인드는 여전히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그러나 고통과 함께라도 너는 결국 오늘과 이별하게 된다.

예전에 녹아 굳어버린 네 몸의 층 위로 네 맘이 녹아내린다. 몸과 맘이 함께 상실 속에서 용광로에 든다. 이 소용돌이를 지나면 너는 오히려 단단해진 상처의 유약으로 치장한 어른이 될까? 너는 여태 변방에만 있었고, 네 인생의 무대는 아직 비어있음을 느낀다. 중심이 비어있다. 주제가 비어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죽은 자의 신 오시리스에 덜컥 홀려있었다. 너는 이제 비뚤어진 밤의 관찰자 역할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 느낀다.

‘할머니, 다시 밥 짓기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느닷없이 먼데 할머니를 속으로 부르면서, 삶의 중심에 놓인 것이 설마 밥일까 생각해 본다. 따뜻하게 지은 밥 한 그릇이 너의 버려진 듯 초라한 삶과의 이별식이 되어줄까? 너의 발걸음은 정상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어디로일까? 확연하지는 않지만 가게가 종착역이 아닌, 그 너머인 것을 너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끝.
                                           
<PEN 문학> 200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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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6. 5. 30. 23:30

 

행복한 수요일 아침

                                                  <소설시대 10호> 2006


수요일 아침이면 인희는 눈물을 머금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곤 한다. 남편의 출근이 일정해진 이 근년에 생긴 버릇이다. 눈물을 머금고 앉아서 주문처럼 되뇐다, 넌 참 행복한 삶을 살았구나! 세상에 저리도 많은 생이별 가족들이라니! 보고 싶은 사람 그리워하면서 사무친 세월의 대가들 앞에서, 누군가를 이별한 기분에 빠진 자신을, 상대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이별을 이별이라는 자신을 나무란다.


그런 인희가 오늘 절대적으로 행복하다. 세상에 진정 행복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요일도 아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무 것도 아닌 어느 평범한 날이다.


인희는 편집자에게서 받아온 A4 원고뭉치와 원전을 나란히 놓고 앉아있다. 얼마만인가. 제목과 번역자 이름만 인쇄된 겉장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다. 왼손을 들어 종이뭉치 위를 쓰다듬다가 그대로 안아본다. 그의 원고 교정 작업을 처음 시작했던 때의 막연한 불안감이 되살아난다.


환영, 환상, 유령 - 그게 어디 쉬운 구별입니까?

상상, 상상력, 표상, 표상력, 공상, 몽상, 망상, 환상, 환영, 환각 - 그 구별은 어떻고요?


처음 그를 만난 자리는 언쟁에서 언쟁으로 끝났다. 편집자는 불을 붙여놓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비교적 큰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번역 교정에 외주자들을 사용한다. 번역자가 다소 불쾌해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우리 인간은 실로 나약한 존재지요. 한 줄을 통째로 지나치거나 단어를 잘못 보는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실력 여하에 관계없이요. 비슷한 단어만 혼동하는 게 아니지요, 엉뚱한 단어로 튀는 수가 많아요. 편집자의 융통성 있는 발언은 번역자들의 인격에 흠을 줄 필요가 없다.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번역이란 어차피 없는 것이고, 그럴 바엔 이름이 교수라야 그냥 애송이 강사들보다 책에 무게가 실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번역자로서 교수를 선호한다. 교수의 원고를 외주자에게 줄 때는 직접 현직 강사들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 누가 누구의 원고를 보았는데....... 하는 것도 좁은 세상에서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교수의 원고가 ‘아무것도 아닌’ 인희에게 왔던 것이다.


인희로서는 그의 원고가 처음 작업은 아니었다. 남편이 그녀의 무기력에 질린 표정으로 아예 둔감증을 운운하던 시절, 그녀는 뭐라도 일감을 찾아 출판사를 기웃거린 터였다. 아직 어린 아이가 조기유학을 떠난 직후였다. 아이는 아이 큰아버지의 소망대로 빈의 음악원 입학을 목표로 호된 훈련 길을 떠났다.


큰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의학박사의 기로에서 의학을 선택해야 했고, 어딘가에서 그 보상을 찾아야했던 모양이다. 큰아버지의 아이들, 그러니까 아이의 사촌남매는 바이올린에서 멀었다. 음악의 고장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은 완벽한 언어 정복을 위해 표준 독일어와 표준 프랑스어를 듣기에 진력을 하는 동안 음악적 귀가 닫힌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버지가 말했다. 처음 보았을 때 조카애들은 둘이 너무도 달라서 이상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가까운 아들은 노랑 곱슬머리고, 아버지를 닮은 딸은 밤갈색 생머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정식으로 한국어코스 강좌를 받겠다고 이곳에 오래 머문 적이 있었다. 생머리가 긴 딸아이는 먹을거리부터 서울풍경에 섞여들었지만, 아들애는 낯설었다. 아이들은 “제3국에 산다”는 부모의 결정대로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살지 않기 때문에 세 나라 말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의 말, 어머니의 말, 제 3국의 말, 그러니까 그들의 모국어 독일어. 그 중에서 가장 잘 하는 말이 당연히 그들의 모국어이다. 다음으로 어머니의 말이란다. 긴 여름 방학을 프랑스 남단으로 휴가 떠나거나 외가에 머무르는 동안에 저절로 얻은 수확일 것이다. 세계어라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저녁, 아이들은 “숙부”와 “숙모”만은 열심히 한글로 말했는데, 발음은 “죽부”와 “죽모”였다. 아버지의 말에 서툰 아이들은 아버지의 바이올린과도 서툴러 아버지를 서운케 했다.


그런 터에 인희의 아들은 음악을 가깝게 하면서 자라났다. 남편이 아끼는 재산은 LP판들을 포함한 CD무더기다. 형이 유학 떠날 때 남겨둔 것들도 함께 고이 보관중이다. 다른 집들처럼 거실에 오디오를 두지 않고 “아빠 방”에서 음악을 들었다. 보통 서재라고 할 방에 책보다 많은 음악들. 그래서 아빠 방이다. 아들아이는 아빠 방에서 어린 시절의 저녁을 보내곤 했다. 제 엄마가 두 번째에도 자연 유산을 계속하던 시절이라서, 엄마 근처를 보호하던 몇 년 말이다. 네댓 살짜리 사내아이가 엄마에게 와락 달려드는 자연스러운 동작에도 엄마는 가능한 동생을 잃곤 했으니까. 달려와서 덜컥 보듬기는 일이 뭔가 금지된 일이라 알게 되었는지, 조금 철이 들면서 아이는 저라서 엄마 곁을 뱅뱅 돌다가 아빠 방으로 향했다. 남편 또한 “아내 보호차원에서” 밖으로 돌았다. 음악회들도 날로 수준급이랬다.


처음엔 보통으로 시작한 유치원 시절의 피아노교습이 어느 새 바이올린으로 바뀌었고, 아들애는 제 방의 책상에 앉기 보다는 바이올린을 들고 아빠 방으로 향했다. 그 동안 아빠 방은 방음벽으로 바뀌었다. 방음벽은 부자를 결속시켰겠지만, 이상한 단절감이 존재했다. 인희는 늘 혼자였다.


인희의 기억 속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따로 사랑채 남자들이었다. 안채의 마당을 빙 돌아 기웃거리면 사랑채 뒤쪽이 나오고, 세월에 무거워진 문짝을 다 걷어 올린 대청마루는 교교했다. 사람 소리는 멀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낀 남동생은 낮에는 안채에 저녁이면 사랑채에 속했다. 왜 난 저기에 가면 안 되는가.


인희는 언니들 따라하기 보다는 동생 인석이 가진 것들을 부러워했다. 쪼끄만 아이가 따로 책상을 가진 것, 따로 서랍을 가진 것이 가장 그랬다. 퇴락한 안채에는 어디에도 책상이 없었다. 교자상이 늘 방 가운데 있었고, 밥상이고 책상이었다. 밥을 먹을 때에는 어른들을 끼어서 여럿이 되는데, 왜 공부할 때는 아이들만 해도 안 되는가. 이 책과 저책을 다 꺼내놓을 수 없게 되자, 인희는 하루에 한 가지씩만 책을 보기로 했다. 숙제가 여러 과목이어도 그냥 한과목만 하기로. 책을 펼쳐 놓아야하는 과목보다는 그냥 들고 있을 수 있는 과목으로. 중학교에 가자 언니들 방으로 옮겼지만,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언니들의 짐 속에서 인희는 귀퉁이 참이었다. 묘안이 떠올랐다. 여자이면서 유일하게 사랑채에 속하는 사람, 할머니였다. 사랑채 옆쪽으로 달린 상하 방이었다.


어머니는 안 될 말이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알고는 인희를 데려갔다. 비밀들이 드러나선 안 된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할머니의 작은 책상은 인희로서는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다. 인희는 이제 작지만 진짜 책상에서 숙제를 했다. 강경애라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빛바래고 닳은 책이 꽂혀 있었던 판자 책꽂이. 『예술과 인생』이란 표지는 한 뼘을 넘은 두께였다. 세로줄로 쓰인 윤곤강의 시집 『살어리』, 두꺼운 시집이었다. “모오파썅”이라고 이상하게 적힌 시선집은 50년대의 번역이었고, 그보다 더 오랜 『이희승 시집 박꽃』은 붉은 물주전자가 붉은 대접에 얹혀진 누런 표지였다. 하지만 문청 기질은 할머니의 방을 나오면 곧 집안의 모두에게 철저히 금기였다. 하나 뿐인 고모가 역시 “글이나 끌쩍거리던” 문학청년에 홀려 시집갔다가 영 이별이 되었기 때문인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분단 때문보다는 문청기질이 그 이별의 원흉이라고 믿는 때문이었다.


인희 또한 글쓰기와 관련된 “병든” 이상을 싹틔우지는 않았다. “소용없는” 할머니와 “소용있는” 어머니 사이의 낯설음은 조금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안방에 끼이면 해소되었다. 어머니에게서는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는 자연스러움이 자질구레한 불협화음쯤은 흩날려버리곤 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인희의 “무난한” 몰개성적 성격의 근원일 게다. 어머니는 셋째 딸이 “하필이면 독문과”에 지원하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을 때에도, “좋은 대학에 가려는” 이유 정도면 통과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하필 독문과를 진학한 것은 순전히 영문과에 못 미치는 성적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이 소일과 자긍심을 좀 더해 준다. 영문과였더라면 단순 대졸의 주부에게 번역교정일이 들어올 차례가 아닐 것이다. 하긴 독일어 분야도 만만치 않지만, 오스트리아라는 거점을 배경에 지닌 덕일까? 그 배경 또한 순전히 “대학 간판으로 건져 올린” 결혼 때문 아니겠는가? 평범한 결혼 생활 16년 째 나선 일이 기껏 번역교정일이나 받아오는 것이었지만, 뭔가 책과 더불어 하는 일은 예상보다 더 정서적인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할머니의 책상이 허전하지 않아서 안도감도 느끼면서. 초고층 아파트엔 참 어울리지 않은 낡은 책상을 그녀는 아직 간직하고 있다. 결혼 전에 병석에 있던 할머니가 굳이 물려주신 몇 권의 책과 책상이다. 어머니는 한두 번 이사 때 도와주러 오셔서는 그때마다 것 좀 치우지 않느냐고 성화셨다. 어머니는 큰 소용이 안 되는 옛 물건에 집착하거나 그러시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명색이 일을 시작한 이래로는 별말씀 없으시다. “할머니 피가 섞인 건 확실한거라......”


인희는 처음 그의 원고를 받아들면서, 철학자가 쓴 문예 이론서를 번역한 사람은 당연히 철학과이거니 했다. 철학과 교수였다면 철학용어에 대한 확고한 개념이 있어서 양보를 위한 자리는 필요 없었겠다. 그런데 철학과가 아니라 문예창작과라 했다. 문창과 교수라면 작가가 먼저일까, 그냥 교수일까? 초벌교정을 들고 나간 날, 젊은 편집자는 비좁고 북적대는 사무실을 피해 근처 커피숍에 나이든 교수와 나이든 외주자를 간단히 대질시켜놓고 사라졌다. “번역물이 효자죠, 나름대로 바빠 죽겠어요. 제발 좀 직접 조정해 주세요.” 그러니 남은 둘의 입씨름이 시작되었을 밖에.


환영, 환상, 유령 - 그게 어디 쉬운 구별입니까?

상상, 상상력, 표상, 표상력, 공상, 몽상, 망상, 환상, 환영, 환각 - 그 구별은 또 어떻고요?


어설픈 외주자의 의문에 자존심을 다쳤을 전문가를 너무 의식하지 못했었나 보다. 독일어에서 같은 어원은 우리말에서도 같은 어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억지에 가까운 현학적 고집은 일을 점점 뒤엉키게 했다. 몇 번의 씨름 속에서도 일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더구나 그는 워드 작업을 겨우 해낼 뿐, 이메일은 물론 그때 벌써 꽤 흔한 휴대전화도 불통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만나야하는 일이 늘어났다. ‘시간 많은’ 그녀를 고르고 골라 일을 맡긴 편집국장은 공동작업의 불편함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시간 없는’ 교수 때문에 작업은 터덕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오월이었다. 그는 그동안의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종일이라도” 시간을 내준다면 좋겠다고 했다. 스승의 날 행사로 여유가 생겼노라고, 변명을 덧붙이면서. 그 수요일 아침이 되자 인희는 명치 아래가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 간헐적으로 올라왔다. 막상 그를 만나서, 그가 “오늘은” 일 대신 다른 무엇을, 그런데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동안에는 위경련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율리시즈의 시선》같은 영화에 대해 뭐라 말하기 시작했지만, 어두운 영화관 같은 곳에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둘이서 들어갈 용기를 가진 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어딘가로 무작정 차를 타고 나가게 되었다. 차가 한참을 달려 나가자 고통은 서서히 줄었다. 대신 아스라이 멀미가 일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마침내 산자락의 풀을 밟았다. 그는 진지한 어조로, 그러나 내용은 참으로 애매모호한 몇 마디의 말을 흘렸다. 예상 밖의, 소년들 사이에서나 가능할 비현실적인 단어들은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청각기관을 지나서 폐부로 들어가자면 해석이 필요할 단어들....... 그냥 남편 또는 아내 아닌 사람과의 드라이브가 낯설었던 만큼, 그만큼 낯선 일탈은 꼭 그만큼의 긴장을 묻혀왔을까? 차가 시내로 들어오면서 다시 일상의 공기가 밀려왔다.


일은 차차 순조로웠다. 인희로서는 단어에 토를 다는 일이 줄었다. 그의 진지함에 압도되어서, 그가 심각한 고투를 겪어서 내놓았을 우리말 단어를 빨간 펜으로 칠할 수 없어서. 속내를 알지 못하는 편집자는 예상보다 빠른 탈고에 대해 그녀 쪽에 고마워했다. 나중에 <옮긴이>에 보니, 그는 철학과 졸업 후 대학원을 국문과로 옮겼다고 되어 있었다. 문학은 철학보다 한 수 아래라고 배웠던 인희는 그런 경력이 특이해 보였다. 그의 우리말을 긁어놓은 교정자 인희에게 처음에 그가 그렇게 적대적이었음이 이해되었다. 교수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가 아니라, 국문학 전공자가 비전공자에게 갖는 적대적 우월감.


여름 방학에는 아들 애 곁에 다녀오느라 일을 쉬었다. 학교는 쉬지만 독일어도, 바이올린 레슨도 쉴 수 없는 것이 아이의 상황이었다. 남편은 처음 동반길만 함께 했다. 일주일 이상을 비울 수 없어 한다. 대리의사를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서라도. 아들 곁에 남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고국의 음식을 먹이려 애쓰지만, 아들은 생각 보다 서양식에 잘 적응해 있다. 부엌의 주인, 서양인 형님은 요리에 능하고 힘차다. 인희는 별 할 일이 없었다.


여름이 고비를 넘길 때야 돌아와서 출판사에 들렀을 때, 그녀 앞으로 작은 책이 든 봉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공동번역을 제안하며 검토해보라고 맡겨둔 책이라는, 편집국장의 말이었다. 봉해진 봉투를 일부러 뜯을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 집안일들은 겹치면 겹친다.


첫가을 날이었다. 아직은 햇볕이 따가운 오후, 밝은 창문 밖을 바라보며 인희는 할머니의 작은 책상에 앉았다. 그와 공동번역을? 작가 이름을 얼핏 편집국장에게 들었는데, 잘 모르는 이름이었다. 봉투를 열어보아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산도르 마래, 마라이? 독문과 졸업이 부끄러우리만치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인데, 표지는 귀족 저택의 초상화에 나옴직한 미녀 초상에 초록 옷자락이 살짝 풀잎처럼 내비치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작은 쪽지가 떨어졌다. 대략 5㎝ 크기의 정방향의 종이에 희미한 글씨의 토막글. “그 동안........” 그 동안이라니? 대체 왜? 그렇지만 그런 글을 읽고서도 곧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정의할 수 없는 애매함으로 뒤덮인, 그런데다 지나치게 짧은 글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해에 골몰하려는 동안, 일은 완전히 뒷전이었다. 아예 잊혀졌다.


대신 믿기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인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혹시 “메디슨카운티 증후군”이라 할 상태일까 걱정이었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어머니, 그의 아내, 그의 딸, 그렇게 가능한 모두를 시샘할 정도였다. 인희는 아무리 앞서도 그의 네 번째 여자였다. 쓸쓸했다. 아니 네 번째라도 좋았다. 희미한 글 한 조각에 온갖 의미를 걸게 되다니. 평온한 나날들이 혼란의 시간들로 바뀌었다. 안과 밖의 불일치에 초점이 흐려갔다. 그런가하면 폐부로부터 밀려 올라오는 열감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입술의 열감은 영화 속에서나 보는 불가항력적인 입맞춤의 뒤끝처럼 스멀거렸다. 선문답 같은 대화의 파편이 구슬처럼 입안을 맴돌았다. 눈과 귀, 귀와 입들이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하더니, 본 것과 들은 것, 들은 것과 말한 것, 나중에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들이 혼동되어서 함께 떠 있었다.


계속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다. 너무 많이 상상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말로 그와 바다여행을 다녀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지중해, 알함브라, 지브랄탈 해협에서부터 북해까지 온갖 바다를 유영했다. 섬이 연결된 ‘질트’나 ‘퇴닝’ 같은 지명은 그가 더욱 꿰뚫고 있었다. 전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그러나 실재하는 오두막을 빌릴 수 있는 곳.


바다는 많이 광활하고 그 광활한 만큼 바람을 몰고 와서 그들을 내몬다. 적어도 환영은 아니다. 해가 곧 질 것이었으므로, 아니 이미 지고 있다. 바람은 지는 해를 두고서 무섭게 폭풍을 동반해 왔다. 십분 전의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변해 버린다. 바람은 그들을 매우 세차게 내몰아서 발을 떼어도 밀려 나갈 정도가 된다. 도망치듯 그것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한없이 서운하다. 그녀는 그에게 ‘증명사진’을 부탁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 한 장의 사진을 추억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인가. 체험은 길이가 중요하지 않지요, 순간이 영원할 수도 영원이 순간일 수도 있음을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것을. 몰아치는 장대비를 맞으면서 이리저리 헤매며 따뜻한 불빛을 찾는다. 그가 담배 가게를 찾아 갔다가 모퉁이를 돌아올 때까지의 15분에서 20분 사이가 영원처럼 길다. 그를 다시 보기 전까지는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균열이 생긴다. 그것은 그들이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어떻게 그들이 그들의 바다를 정당화할 것인가!


그러다가 그가 떠났다. 충전기간이 필수적이라 했다. 그동안 동독이 개방된 후로 유럽에 가보지 못한 것을 그는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곳을 통로로 동유럽을 그리워했다. 쾨니히스베르크 때문이냐고, 그녀가 물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일곱 다리 건너기 문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논리를 지나 수학적 사고를 주제로 대화가 되는 것에 그녀는 조금 흥분하곤 했다. 자신이 무기력한 존재가 아닌 것이 증명되기나 하는 듯이. 아무튼 지금은 리투아니아에 속한다지만 그가 전공했던 이성중심 철학의 본고장인 그곳에 가보고 싶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그의 대답은 달랐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어딘지 모르게 처녀지인 곳, 동유럽에 몰려 있다고 했다. 잘 알려진 카프카도 그렇지만, 산도르 마라이도 그 하나라 했다.


“파스칼과 횔덜린 그리고 니체를 파괴했듯이, 고독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를 무덤 속에 내던질 이 세상에 아첨하는 것보다는 이런 실패나 붕괴가 사색하는 인간에게 더 어울린다.” 그것이 마라이의 생각이라고 말했는데, 그는 그 말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잠시 두려웠다. 절대 고독을 꿈꾸는 사람, 그런 그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구하는가? “혼자 남아서 대답하는” 조용히 들어주는 친구를? 상대적으로 넓어서 더 높은 아파트 벽 속에 갇혀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타던 그녀로서는 그런 지적 대화는 듣는 것만으로도 신비했다. 생은 더 이상 진부한 것도,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인희는 그가 가려는 곳이 혹시 빈에서 가까운 남쪽이기를 바랐다. 그녀 또한 아이를 만나러 한두 번 갈 것이니까.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머물기, 그것이면 될 것 같았다.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지중해, 그 동쪽 소아시아 반도와 크레타 섬들에 얽힌 숱한 신화들은 그들의 단골 화제였다. 다이달로스가 추락한 짙푸른 바닷물, 그런 바다에도 그들은 벌써 몇 번을 다녀온 터다. 하지만 실제로 그 물살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그가 구동독 깊숙한 대학도시로 간다고 했을 때 인희는 조금 실망했다. 떠날 날을 정한 뒤로는 뭔가 슬며시 엷어지는 기운마저 돌았다. 그는 시간이 없어했다. 작은 눈을 반짝이는 통통한 여학생이 대신 원고 심부름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별은, 이별이란 말도 가당찮은 이별은 벌써 서러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떠났다. 추운 겨울이었다.


인희는 현실에서 숨을 쉬면서 상념은 다른 궤도로 흐를 수 있는 인간의 불가해성에 머리를 내저었다. 멀리 떨어진 거리와 관계없이 치열한 교감 속에서, 분류되지 않는, 정의되지 않는 상태에 혼란해하면서, 아리지만 풍요로운 순간들을 부여안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오월, 풀냄새에 놀라 봄을 탄식했다. 그는 어쩌면 오월을 피하기 위해서 떠나야 했구나! 곧 그녀는 균형을 잃어 갔다.


그의 철 이른 카드가 출판사로 날아들었다. 편집국장 친구에게 보낸 카드와 똑같은 카드였다. 그쪽에는 그렇다 치고, 다들 외주자인 인희에게까지 카드를 보낸 교수를 예의바른 사람으로 치부했다. 미려한 외관을 유지하는 것까지도 그다운 일이었을까? 인희는 그의 마음이 어딘지 부담감으로 차있음을 행간에서 느꼈다. 여름에 합류한 대가족과 함께 휴가여행을 떠난다는 그에게 지중해 혹은 그리스로는 가지 말기를 바랐던 인희의 마음을 그는 과잉으로 읽었을까? 두꺼운 카드 사이에 접어 넣은 얇은 종이는 글씨마저 얇게 느끼게 했다. 내용은 더욱 얇았다.


돌아온 그를 다시 만난 것 역시 출판사에서였다. 그가 번역 가능한 책 몇 권을 가져오기로 한 날, 편집국장이 인희에게도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그를 바라보면서 인희는 갈비뼈가 금갔을 때처럼 아픈 것을 느꼈다. 너무도 큰 숨을 내어쉬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안 좋으신가요? 저 다시 안 들어가도 되니까 데려다 드리지요. 가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도 할 겸.” 인희는 편하게 기댈 양으로 뒷좌석에 탔다. 다음 블록에서 그가 차를 세웠다. 앞자리로 옮겨 탔다. 그는 오른 손을 가만히 내밀어 인희의 왼손을 잡았다. 괜스레 상처입고 오므라들었던 가슴이 펴질 새도 없이 아프기만 했다. 아픈 가슴으로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아니 제 안의 마음이 커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공간이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행여 열정 같은 것을 알 수가 없다. 그것이 정석이다.


이번 작품들도 마라이였다. 그녀는 처음에 받았던 작품을 여전히 읽고 있었다. 제목부터 “열정”과 “정열” 중 선택하기가 어려웠기에 내버려둔 채 그냥 독서에 빠져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형제처럼 붙어 지냈던 두 친구가 헤어져야 했고, 그 후 40년도 더 지나서야 만나서 하룻밤 동안 나누는 대화형식”이라는 그의 설명은 정말 궁금증을 자아냈다. 실제 독서는 사전을 찾느라 더듬거렸지만, 부분 부분이 몇 곱절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일부나 다름없던 우리 두 남자의 침묵으로 그녀가 죽었네. 여자로서 참아낼 수 있는 이상으로 비열하고 거만하고 비겁하고 오만하게 침묵했기 때문이지.”


“여자가 참아낼 수 있는 그 이상의 침묵”이란 무얼까? 구절구절에 빠져있는 동안 번역 작업은 멈췄다. 대신 편지 같은 것을 쓰고 또 썼다. 전달될 가능성이 없는, 그래서 뒤틀려도 좋은 글을 무작정 써내려갔다. 마음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캠퍼스로 가서 서성이며 전화를 할까 말까 궁리하다가 지쳐 돌아온다. 난생 가보지 못한 그의 학교가 상상으로는 완벽에 가깝게 지어져있다. 돌바닥의 현관, 그가 오르는 층계, 걸어가는 복도, 오른쪽으로 휘면서 연구실 문을 열고, 방문이 열리면 순간 바람이 세게 밀려온다. 10cm 쯤 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밀리는 거야. 상상이 발광 직전에 이른 날엔 미장원으로 내닫곤 했다. 혼자서 들어가도 좋은 곳, 오랜 시간 혹사당하며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되는 곳.


그는 차츰 멀어져갔다. 그러나 뭔가 시작당한(?) 사람은 끝을 당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당황하게 된다. 억울했다. 마음 흔들렸던 마음이, 눈을 바라보았던 눈이, 손바닥에 닿았던 손바닥이. 배반을 배반당했음이.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계속 겨울이 왔다. 마침 세상은 21세기를 향해 막연한 환호를 보내는 중이었다. 인희는 책상에 앉아 또 편지를 썼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싶은, 그래야 할 것 같은, 이 늦은 마물음의 시간, 저에게도 한 가지 소원은 있습니다. 다음 날에는, 다음 봄에는, 다음 해에는, 다음 세기에는 저 같은 사람 다시는 만나는 일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쉽게 깊게 상처 입어서, 스스로의 고통은 그렇다 치고, 당신께 배가된 고통을, 배가된 짐을 드렸었던 저 같은 사람일랑 다시는, 행여 비슷한 사람이라도 다시는 만나시지 않기를....... 물론 쓰기만 했다.


송구영신의 모임들은 어느 해보다도 떠들썩했다. 남편은 겨울 골프를 떠나는 일행에 합류했다. 방콕은 일교차는 커도 겨울 평온이 25도나 되는 따뜻한 곳이라고. 겨우 며칠의 휴가를 따로 쓰는 것을 미안해하는 남편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다. 약간의 휴가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남편도 알면서 하는 소리일까. 아들아이도 집에 올 겨를이 없다 했다. 학업과 연주와 그곳 생활에 열중하여, 집에 연락하는 일도 잊는다. “형님이 당신 아이들보다 듬뿍 관심을 부어주니 그 녀석 참 복이지.” 그렇게 해서 200년 역사의 음악학교에 입학하는 외국인들이 많을까? 여러 사람의 걱정을 잠식시키고, 아이는 특히 큰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성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희는 깊이 침잠했다. 여러 의미의 반성과 더불어, 제발 자신을 어여삐 여길 수 있을 다가오는 새 봄을 소망하면서.


봄은 왔다. 여전히 “잔인한 사월”이란 구절이 맴돌았다. 다시 오는 오월이 매번 두려웠다. 그날의 산자락으로 가서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오자고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 자리, 그 무심하게 다른 풀이 자라고 있을, 어중간한 돌들이 구르고 있을 그 자리에 가서, 풀은 풀일 뿐, 나무로 자라지 않음을 확인하고 오자! 드라이브를 즐기는 친구를 불러내면 탄성을 지르며 와줄 것이다. 그러나 끝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 돌멩이들을 바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수줍게 그러나 단호하게 무엇인가의 시작을 신호했던 그 목소리를 망각 속에 묻을 수가 없다. 밥 딜런의 노랫말이 맴돌았다. “잇 에인트 미, 베이브, 아임 낫 디 원 유 원트, 아임 낫 디 원 유 니드.......” 그의 입술에서는 다른 버전으로 흘러나올 것이다. “우리의 한계는 이것입니다.” 밥 딜런을 들으면, 그는 딜런 토머스를 앞세운다. “녹색 퓨즈를 타고 꽃을 몰아가는 그 힘이 / 내 푸른 시대를 몰아간다....... 나는 시든 장미에게 바보처럼 말한다 / 내 청춘이 똑같이 차가운 열병으로 시들었다고.” 인희가 난해한 시에 고개를 갸우뚱하면,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열여덟 잔을 마시고 다음 날 죽어간 시인을 누군들 이해하겠소, 하고 그는 말끝을 흐린다. 흐린 말끝 따라 인희의 마음도 흐려지곤 했다.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친밀함에 대한 그리움을 덮는다. 이 사회의 구조가, 관습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존재”하게 한다. 관습에 굴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 세상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밖에 존재한다.”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사무친다. 그렇구나. 세상에 ‘혹시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예외는 없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다. 달도 차면 기운다.


밥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자고, 목욕을 같이 하고 ― 사람 사이 친해지는 비결로 통했는데. 그건 구식이다. 현대생활은 가족끼리도 밥을 같이 먹기 어렵게 한다. 단출한 아침식사에 굼뜬 그녀가 식탁과 싱크대 사이에서 어물거리다보면, 남편은 벌써 일어선다. 남편의 점심 저녁은 밖에서가 대부분이다. 산부인과의 사양길을 일찍 예감하고서 건강관리협회로 옮겨 앉은 이래, 저녁 시간이 더 바쁘다. 더 한가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 아이는 먼 데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군대 문제로 한번은 들어와야 한다는데, 염려 말라고, 잘 하고 있다고, 큰아버지는 한껏 만족스런 기별만 보내온다. 가만히 숨쉬고 숨쉬는 동안 세월은 간다. 20세기가 그녀에게 유수와 같았다면, 21세기는 쏜살같다. 다른 유수한 출판사에서 마라이의 전집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열정』을 위시해서 줄줄이.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가 권했던 작품들의 번역일랑 몇 년을 아예 손도 대지 않고 있다. 단순한 교정 외주자의 일이 맘 편했다. 것도 겨우 간헐적으로.


책상에 앉는다고 잡념이 줄지는 않는다. 가끔은 긴 버스 혹은 기차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옆자리에 앉아서 멀미에 시달리며 잠시 잠들었다 깨곤 하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 밤바다의 바람을 막아 그녀를 감싸주던 그. 그런 그가 정말 존재했을까? 그냥 꿈이었을까? 상상과 회상이 뒤범벅되는 나날들.


그렇게 가을이 오고 또 가을이 왔다. 구월이 가고 시월이었다. 출판사는 외빈내화, 불경기 중에도 하나 둘 히트가 나왔다. 문광부 선정도서에 인희가 교정에 참가한 책도 하나 걸렸다. 그런 저런 이유로 인희도 단합대회에 끼었다. 문청들에 애증으로 얽힌 출판사 사람들의 술자리엔 문청들이 밥이다. 모두들 혼 빠지게 매운 낙지볶음에 소주들을 들이 붓고 나서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했다. 2차는 맥주 집이었지만 사람들은 소주를 섞어 마셨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묘령의 아줌마까지 엮여든 것으로 보아 썩 마셨다 싶었다. 그는 실로 오랜 만에 합류했다. 그러니까 모처럼 초벌원고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친구인 편집국장과 더불어 저쪽으로 섞여 앉았다. 그녀는 그런 그를 차라리 존중했다. 그는 그녀의 아무것도, 그녀는 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먼발치로도 약간의 무게가 느껴졌던 그의 원고뭉치는 아직 출판사 책상에 놓여 있었다. 뭔가 하긴 했구나. 하기야 친구에게 졸려서 하는 번역일이 전업이 아닌 담에야 몇 년 걸려 내어놓는 원고도 미진한 것은 아니리라. 그렇다고 그는 작가도 아니다. “시를 못 쓰면 소설을 쓰고, 소설을 못 쓰면 평론을 쓰지요. 것도 못쓰는 사람들이 교수하구요.” 이 시대 최고의 대우를 받는 소설가 ㅈ씨가 어느 강연에서 했다던 그의 말이 생각났다. 문창과 교수인데 창작대신 문예이론가라고? 위대한 소설가 ㅈ씨는 그의 직업을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녀에게 그는 진지함의 대명사일 따름이다. 사람을 눈앞에 두고서 그에게로만 상념이 흐르는 것이 들킬까 문득 겁이 났다.


그 순간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봄엔가, 또 『이혼전야』도 출판되었더군요. 대 출판사답게 확실한 번역권을 가졌으니 그랬겠지만, 박인희씨, 제가 드린 원전을 펼쳐보기는 했나요? 게으름 때문에, 아니 망상 속을 헤매느라고 좋은 기회를 다 놓친 그녀에게 대한 힐난일까? 하긴,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하지만 마음을 얻지 못하는 남자들이 어디 소설 속뿐이던가요? 그는 다시 말꼬리를 내렸다. 말 적은 그가 갑작스런 돌출 발언이라니. 주인공에 대한 연민일까? 혹은 남자로서의 동일시일까?


교수님이 다 읽으신 줄은 몰랐어요. 그럼 직접 번역 하시지 그랬어요. 남편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으면서 이혼 직전에 이르러서야 그 사랑이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아내 또한 그림자 인생의 표본 아닐까요?


그건 남편이나 아내의 문제가 아닐 것 같소. “사랑한다는 건 단지 안다는 것 이상일 것. 우주에서 똑같은 궤도를 도는 두 개의 별이 존재하는 것처럼 엄청난 우연일 것. 그런 우연은 결코 없을 것. 삶도 사랑도 모두 동일한 박자로 움직이는 우연! 그런 만남은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비한 환영 같은 것....... ” 그 왜 약간 뒷부분에 나오던데, 게까진 읽지 않았나요? 책 내용과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녀만을 향해 뱉는 말이었다.


뭐라 대꾸하려고 입술을 연 인희는 단어를 얼른 토해내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 탓이기도 했다. 그렇겠지요. 한쪽이 빠르면 다른 쪽은 느리고, 한쪽이 소심하면 다른 쪽은 용감하고, 한쪽은 뜨거운 반면 다른 쪽은 미지근....... 속으로만 어느 구절을 외울 뿐이었다.


대강 파하고, 더러는 노래방으로 향했고, 누구는 대리운전을 불렀고, 우왕좌왕이었다. 그녀는 사무실로 그의 초벌원고를 챙기러 돌아왔다. 상당한 부피였다. 원고를 만지려니 왼손이 먼저 나아갔다. 여기서 그의 오른손이 느껴질까? 순간 소스라쳐 놀랐다. 다시 꿈인가? 정신없이 방을 빠져나오는 그녀의 등 위에 그가 있었다. 현관께로 다른 아무도 없는 찰라. 그가 그녀를 안았다. 그녀를 등 뒤에서 안았다. 갑작스런 몸짓이었다, 놀랐을까? 의외라서 놀랐을까? 너무도 기다렸던 일이어서 놀랐을까? 기다리다 못해 지쳤고 절대로 더 이상은 꿈도 꾸지 않아서 놀랐을까? 아, 인희씨, 제가 정말, 아 이렇게 참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그 비슷한 말, 흉내 낼 수도 더 이상 기억해 낼 수도 없는 단어들, 단어 몇 개. 그런 단어들은 왜 허공 속으로 빨려 흩어지는지 모르겠다. 높지도 않은 천정에 붙어있다 어느 순간 다시 내려오면 안 되는가. 어두운 밤 시간에, 몇 시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시간에, 단어들은 빛처럼 빠르게 사라져갔다. 다시 깜깜했다.


왜 뒤돌아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까? 뒤돌아보기에도 짧은 시간이었을까? 뒤돌아 볼 수 없을 만큼 온갖 동작이 정지된 순간이었나? 자동적으로 발을 내디디면 앞으로 나간다. 인희는 바보같이 발을 움직였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떻게 그에게서 멀어질 수 있었을까? 인희는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마음은 더욱 더 뒤로 빨려가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인희는 앞으로 발을 움직였고, 그렇게 멀어졌다. 그 현관에 그가 일이초간 더 서있었을지, 인희로선 알지 못한다.


*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면서 알았다. 해가 환히 비쳤다. 제법 가을인데도 이중 커튼 사이로 햇살이 깊이 박혀왔다. 머리카락부터 따듯함이 베어나서 발아래로 스쳤다. 그렇게 상쾌한 아침을 언제 기억하는가. 수요일도 아닌데 충분히 행복한 아침이었다. 세상에 진정 행복한 날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A4 원고뭉치와 원전을 펼쳐놓고 앉아서, 제목과 번역자 이름만 인쇄된 겉장만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왼손을 들어 종이 위를 가만히 쓰다듬다가 그대로 안는다.


그의 원고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을까? 출판사에 별 일이 없었는데도 자꾸 들렀다. 뭔가를 핑계 삼으면 핑계는 있었다. 번역물 팀장 쪽에 영어담당 외주자가 우연히 와 있었다. 그 여자는 약간 들린 턱에 상당한 자존심이 고여 있는 유형인데, 사회적 미소를 한껏 띠면서 말했다. 웬 좋은 일이세여, 별안간에 환해지셨네여. 제가 눈치가 좀 되거든여.


눈치가 된다니 무슨 말인가. 눈치에도 급이 있나요, 좀 되시게? 그렇게 말하려다 말고 미소가 번지는 데는 스스로도 놀랐다. 나도 침묵이 좀 되거든요? 그런 말도 다 침묵했다. 행복하면 말하는 일도 아깝게 된다. 열린 입을 통해서 순간 행복감이 새 나갈지도 모른다.


순간 눈앞 여자의 얼굴이 살짝 가렸다. 이마 한쪽이 가려졌다. 놀라서 고개를 돌렸지만 다시 어딘가 막히는 영상이었다. 일정하게 왼쪽 윗부분에 물체가 고정된 것 같았다. 왼쪽 위라면 혹시라도 그의 차를 얻어 탈 때에 그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이다. 계속 그의 머리를 의식하는가? 글씨는커녕 책이 통째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둥근 물체는 아예 눈꺼풀의 안쪽에 있는 듯 시야를 가렸다. 사물이 일그러져 보인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슬그머니 겁이 났다. 신체검사 때마다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상한 점들이 아무렇게나 모인 검사용 그림책은 항상 두려웠었다. 색맹이라는 판정이 나올까 하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우선 그 어른거리는 색의 잔치들 속에서 무엇인가를 추상해 내야하는 그 일 자체, 그 순간의 길이가 두려웠었다. 게다가 수년 전 너무도 완벽한 건강한 모습의, 그러나 멍한 눈의 노인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깨끗한 차림, 무엇보다도 깨끗한 표정, 거의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도, 눈꺼풀 하나로 세상과 단절되어버린 삶의 한 순간을 목격한 기억이 오싹했다.


시력이 떨어져서 오셨나요? 가볍게 시작된 안과의의 질문은 어느 특정 병원으로 소개받은 후엔 집요해졌다. 글자체가 흔들려 보입니까? 직선이 굽어 보인가요? 시야 가운데가 흐릿하거나, 시야 중심에 검은 부분이나 반대로 텅 빈 부분이 있나요? 한쪽 눈을 가리고 바둑판 가운데 점을 보세요. 점 주위의 선이 물결치거나 휘어져 보이면, 황반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어디, 아직 변색증은 안 보이지만, 변시증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새 혈관이 생성되어 망막 후극부 황반에 변성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진행? 행진처럼 들리는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가 계속 나빠진다는 뜻인가. 조만간 시력을 잃게 된다는 말인가? 그녀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변성? 망막이 목소린가, 변성기가 오게?


이어지는 온갖 검사들. 확대 렌즈는 기본에, 약을 넣겠다, 바둑판 검사지를 보며 이리 저리 답하랬다, 종당에는 형광색소를 주사하고서 안저를 촬영한대나. 알아듣고 싶지도 않은 검사들이 쏟아졌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구나.


사람들은 흔히 비싼 검사비용 내면서 고생고생하며 검사를 하더라도,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기대하며 검사에 임한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기를 바라고 시작했던 초심을 망각하고는 괜히 검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더러 “신경과민에서 오는”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좀 부끄럽기도 해서, 뭔가 조금 나왔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어 웃고 만다.


아무튼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가 나왔다. 역시 황반변성에 의한 신종혈관이 문제입니다. 겁을 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시행하고 있는 광역학 치료법은 종전의 방사선치료법과는 차원이 달라서.......


확실하게 치료는 됩니까?


확실하다는 말씀은....... 그러니까 완치에 재발이 안 되는 것을 물어보신다면, 솔직히 대답은 “노우”입니다. 재발률은 높은 편이지만, 사모님은 마침 황반 주변부에만 신생혈관이 나타나 있어서, 조기에 치료를 실시하면 진행속도를 늦춥니다. 시술 시간도 극히 짧아서 고통스럽지 않은데다, 미리 염색된 비정상조직만 골라서 파괴하는 것입니다. 베르테포르피린이라고, 광자극 물질이죠. 이 물질을 팔뚝 정맥에 투입하면, 얘가 몸을 돌다가 잘못 생겨난 신생혈관만 염색시키고 나머지는 배설되어버리거든요. 그런 다음 빛을 쪼이면 되는데, 얘는 에너지가 약해서 정상조직엔 전혀 손상이 없죠. 미리 염색시켜놓은 딱 고 부분만을 얘가 파괴하는 겁니다. 딱 83초 동안에 끝나죠. 입원요? 그냥 이렇게 여기 앉으신 채로, 안압 검사 같은 것 할 때처럼 앉아서 합니다. 그러나 생활 중에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증상들이 다소 더 악화될 수도 있으며, 재발의 가능성도 높은 것이....... 지금 저의 병원에선 일년에 4회를 시술하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물론 일회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만.


말씨는 다시 엄숙하게 바뀌어 있었다. “얘는” 어쩌고 하는 식의, 텔레비전에 나오는 수다스런 패널들의 수다처럼 변하던 말씨가 다시 엄숙해진 것이다. 이제 비용을 말할 차례가 된 것이리라.


우선 인희 자신의 결심이 서지 않았다. 의사들 가운데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의학에 관한 무조건적 신뢰형, 그리고 제 식구들은 병원에 잘 보내지 않고 아이들이 감기가 들어 콧물이 줄줄 흘러도 내버려두게 하는 회의형. 남편은 긍정적 부류다. 기본이 선량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온갖 정보를 찾아서 보여주었다. 정보는 겁을 몇 제곱했을 뿐이다. 섬세한 그물과 같은 신경조직 망막 중에서도 황반부는 중심 약 0.5cm정도, 겨우 녹두알 아님 완두콩 크기란다. 하지만 글을 읽거나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고, 색을 구별할 수 있었던 모든 일이 바로 이 꼬맹이 덕이었다니.


이제 글 읽기나 근거리 작업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고? 불가능할 수도?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치료의 일년이 시작되었다. 그 후론 수요일 아침이 되어도 눈물을 머금고 행복해 할 수 없게 되었다. 텔레비전처럼 눈으로 함께 보는 대신 귀로 듣는 행복을 구해야 했지만, 남편의 차원높은 음악은 처음부터 인희에게 멀었다.


예약된 병원 복도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통계에도 65세 이상의 노인 10% 이상이 걸린다는 높은 유병률이었다. 그녀 또래는 드물었다. 눈을 혹사한 탓일까? 그녀의 망막이 상대적으로 많이 혹사당했을까? 혹사의 역사는 절로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간다. 재래식 화장실의 침침한 불빛 아래 쭈그린 채 동화책을 넘기던 시절로. 언니들은 왜 하필 그곳에 책을 들고 가느냐고 의아해 하곤 했다. 할 수만 있음 빨리 나오고 싶은 데가 아니냐고. 하지만 그곳의 시간을 참기에 읽을거리만한 것도 없음을 그녀는 알았다.


남편의 눈 꼬리가 조금 치켜 올라갔다. 누가 당신 눈을 혹사하라고 해서 이런 일이....... 그렇게 말하는 눈이었다. 당장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었지만, 하던 작업을 중단하기는 어려웠다. 바로 그의 원고였다. 그의 원고를 설명 없이 중간에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습관적으로는 책상의 스탠드만 켜는 것이 집중을 위해 좋았었지만, 이제 천정의 등도 함께 켰다. 모니터를 19인치로 바꿀까 했다 말았다. 이 작업이 끝난 뒤 더는 글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 것이 뻔했으니까. 대신 글꼴 기본을 12폰트로 올렸다. 곧 14포인트로 넘어갔다. 13을 쓰지 않은 것은 13징크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10-12-14 그런 습관 때문이었다.


이게 황반이 산화되는 것 비슷하다니까. 남편은 드디어 한 마디 했다. 당신은 인스턴트 음식도 안 먹고 술 담배도 안 하지, 대체 어디서 유해산소가 나온 걸까? 골프는 힘드니까 그렇다 치고, 음악회 한번 따라 나서지 않을 만큼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뭐요 대체?


그냥 고도근시 때문에 올 수도 있다 했잖아요?


글쎄, 당신이 원래 허약체질이라 해도, 스스로 몸을 돌보는 데 소홀한 건 틀림없어. 뭐 다른 일에 시달릴 것도 없이 이런....... 남편은 뒷방 쪽을 흘겼다. 할머니 책상이 놓인 곳이다. “쓸데없이” 눈을 혹사하는 짓거리에 파묻혀 그리되었다는 힐난을 담아서. 아이 입시문제로 시달릴 일 없겠다, 시댁문제로 힘든 것도 아닌 안락한 세월을, 어디 걸맞은 일 없어서 “남의 글 교정이나” 하겠다는 여자라니, 남편의 평상시 지론이다. 아들이 음악가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도통 음악회도 마다하는 어미라니. 정작 의사 남편이 아내가 사람 북적대는 곳에서는 숨쉬기도 힘들어하는 것을 성격 탓으로만 돌린다.


인희는 가슴으로 운다. 미안해요, “쓸데없이” 혹사한 것은 눈만이 아니었어요. 좋은 남편의 보통 아내이기에도 벅찬 그녀의 속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쓸데없이” 한 곳으로만 향하는 좁아터진 그녀의 시야를 비웃듯이, 정말 시야가 가리기 시작한 것이니까.


일년. 그 일년 사이에 그를 만난 적이 없다. 두 번째 시술 날을 잡아 놓고 일차 교정 분을 단번에 다 넘겼을 뿐이다. 그 사이 그가 유비쿼터스 세상으로 한 발을 들여 놓았기 때문에 꼭 만나지 않아도 일의 전달에는 충분했다. 아니 무서워서 못 만났다. 그 후론 교정도 번역도 완전 중단이다. 그가 원전을 건네준 『결혼의 변화』도 다른 곳에서 출판되었다. 말로는 감정을 강조하지만 현실적인 아내, 욕망을 피하려는 구실로 경직된 규율로 도피한 이성적인 남편, 그런 가운데 “내레이터의 시각이 일품일 것”이라 추천했던가? 이제는 다 옛말이다.  번역서로나 읽을 수 있을지, 단순한 독서도 겁난다. 먼 데 초록을 보며 눈을 쉬자고, 한 친구는 나인 홀이라도 한번 따라나서 보라지만, 골프장의 햇빛인들 좋겠는가. 두더지처럼 아파트의 서늘한 그림자 안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뿐. 행복한 수요일 아침도 외면한다. 대신 눈을 반쯤만 뜨고 지내는 연습을 한다.


눈을 내리 감으면 감을수록 상념은 높이 높이 나른다. 파스칼도 횔덜린도 그리고 니체의 독서도 힘든 평범한 누구라도, 고독이 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는 데서 예외가 아니겠지, 그녀는 생각한다. 그가 마라이의 말을 인용했을 때, 렌츠의 이름을 거기에 추가하지 않은 것이 느닷없이 후회스럽다. 그 말을 들려줄 일도 영 없을 것이다. 괴테의 친구로, 친구의 그늘에 가린 채, 10년도 채 못 되는 창작기간, 그보다 훨씬 긴 정신착란의 세월 속, 모스크바의 길거리에 쓰러진 천재. 그 일생만으로도 가슴을 울렸던 렌츠가 갑자기 생각난 건 마음에 와 닿은 한 작가 때문이다. 일면식은 있는 사이다. 그와 더불어 이 작가에 관해서도 이야기 할 틈이 없었다. 아니, 그와 더불어 나눈 시간 자체가, 그와 나눈 대화를 통째로 녹음해서 편집했더라도 몇 시간의 길이나 될까? 그 시간이 내 수십 년 인생에 무슨 영향을 준다는 거야? 인희는 허망한 정답을 깨닫고는 숨을 죽인다.


오늘은 일년에서 마지막이라는 네 번째 시술 약속이 된 날이다. 세 번째부터는 남편 대신 큰 언니가 동행한다. 시술 자체엔 위험부담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아는 때문이다. 하지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았나. 처음 83초를 견딜 때 작정을 했었다, 뭔가 꿈을 꾸리라고. 83초에 그러나 긴 꿈을 꾸리라고. 봉숭아 손톱물을 첫 눈송이에 대고서 소원 빌던 길이보다 훨씬 짧은 동안에. 흐르는 별똥별에 대고 소원을 비는 일에 비하면 엄청 긴 시간 동안에.


이제 한두 시간 후면 하염없이 82초, 81초 ....... 하고 헤아리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다이달로스가 다다르고 싶어 했던 태양이 통째로 눈앞에 다가올 것이다. 형언할 수 없이 눈부신 83초 동안 어둡게 꿈틀거리며 되풀이될 꿈속에서, 여전히 그의 네 번째 여자이기를 소원할 것인가? 바로 그 부정한 소망 때문에 계속 병변이 재발되는 것은 아닐까? 흠칫 오한이 인다. 그녀의 오른손을 잡고 있던, 아무 것도 모르는 넉넉한 언니의 얼굴이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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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5. 3. 25. 23:30

펼쳐두기..

 

                                                                                                        소설시대 2005

 

춤꾼을 말해 춤을 업으로 하는 인사렷다, 장사꾼이 장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듯이. 춤이란 곡조에 맞추거나 흥에 겨워서 팔다리와 온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말한다, 사전적 정의다. 그날 밤 그 사람은 그러니까 춤꾼인가 싶었다.


처음 그 사람이 눈에 띈 것은 한 사람이 통기타를 치고 누군가가 드럼을 했다가 말다가 하면서 노래만 부르는 사람 합해서 서너 명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맥주가 있는 그런 곳에서였다. 눈에 선 것은 한 손님이 그룹의 멤버이기나 하듯이 딱 달라붙어 앉아서 그들의 연주를 바라보는 모양새였고, 그런데 얼굴은 해맑은 미소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추운 겨울 밤, 손 한 마디도 안 되는 짧은 머리카락을 하고서 노래패 옆에 달라붙어 앉아있는 모습은 교교했다. 홈쇼핑에서 두어 벌 함께 샀음직한 그저 그런 체크무늬 셔츠는 그냥 몸을 가리는 일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냥 가리개였고, 그것도 엉성한 크기 때문에 형님이거나 좀더 크고 뚱뚱한 사람에게서 얻어 입은 몰골로, 멜로디 하나하나에 그저 감탄을 하고 있는 표정은 혹시 이 사람이 정말로 교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세상 노래 스타일에 온통 감탄하고 있나 싶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


그날 정식은 오랜만에 동창생 몇 만나서 송년의 술을 했다. 만으로 쳐도 40이 넘어가는 송년의 밤은 숨이 막혔다. 40년 세월, 누가 인생은 40부터란 실소를 하게 하는가. 이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통기타 음악을 들으며,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보는 밤, 그것이 사십인 게다. 그들 중 하나는 대학에 있는데, 그 친구가 젊은 선생님들하고 몇 번 와보았던 소위 “7080 문화를 만끽하지” 하면서 이끌었던 곳이다.


처음 그 대충 까까머리를 보면서는 거의 불안한 느낌에 맥주를 마셔도 몸이 풀리기는커녕 오도카니 앉아 그 모양새를 관찰해야 했었다. 그래, 나잇살 들어 보이는 얼굴로 미루어 제대한 군번은 아니었고, 교도소가 아닌 다음에야 다른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감정은 여전히 풍부하다 그건가 참. 쪽지들이 가끔 건네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청곡들을 적는 모양이었다. 정식네 팀에서도 뭔가 말하라는데 정식은 여전히 건성이었다. 저 진지한 얼굴, 악사들이 클래식도 또 유별나게 감동적인 그룹사운드도 아니련만, 저 진지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주객이 전도라더니, 정식은 음악보다는 그를 구경하고 있었다. 볼수록 어디에선가 만난 적이 있었을까 하는 착각이 드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어떤 특징도 없는 얼굴이 더욱 기이했다. 적당히 작은 눈, 적당히 낮은 코, 적당히 누런 얼굴 색, 무엇보다 적당히 나이든 얼굴이 오히려 이상했다. 저쯤 행동하는 사람이면 뭔가 좀 눈빛이라도 달라야 하지 않은가.


연주자들이 쉴 시간이 오자 그는 덩달아 가운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건너편에는 여자 둘이 있었다. 여자들은 화장기도 제법 있고 유행하는 모자도 얹어놓고 있었다. 발을 꼬고서. 이상한 트리오다. 이들을 찾아 나선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고서 마음을 돌린 그들은 제 이야기에 빠졌다. 아따, 그 선생 운도 되게 나쁘네.


이야기의 중심은 이번에도 대학에 있는 동창이 몰고 다녔다. 전공들이 다른 사람들의 느슨한 결합체이다 보니, 흉을 보아도 흉이 되어 돌아갈 리 없는 독특한 환경 때문이었을까? 그날도 한 ‘불운한’ 초임 교수에 대한 성토와 동정이 주제였다. 봄 학기에 발령을 받아서 머슴에서 왕이 된 기분의 전임강사. 그 봄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동티가 나다니.


선생은 그 동안 뒷바라지에 힘든 아내와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둔 가장. 그의 나이 불혹을 넘긴 뒤에서야 시간 딱지를 떼고 전임이 되었다 했다. 거기까지의 고생은 누구나 거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막스 베버가 그랬다던가, 교수가 되고 못되고는 만원인 전철 타고 가다가 앞자리 사람이 내리면 앉을 수 있고 아니면 아닌, 바로 그만큼의 확률과 우연이라고, 대학에 있는 동창은 제법 겸손한 멘트를 섞어서 자신을 지키면서, 그 신임교수의 운명을 보고했다. 3학년 여학생과 동티가 났다는 사건. 기숙사에 들어있는 여학생이 기숙사 통금 넘어서 이상한 카페에서 어떤 ‘교수님’과 단둘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이 노출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여학생은 인터넷에 하소연했고, 교수님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는데, 이는 순전히 성적 등을 담보로 뭔가 상납을 요구하는 성폭력이었으니 처벌해달라는 요지였다나. 알고 보니 둘의 이메일 교환에서도 증거가 여실했는데, 교수는 늑대라는 ID를 사용했으므로 노골적으로 한창 물오른 양을 잡아먹었다 등등.


그럼 당시 상황은 살벌했겠네? 세 번째 녀석의 말이다. 종합병원에 근무하며 조신하게 살고 있지만 가끔 속모를 친구였다. X조교 사건보다 더했네, 그렇제?


뭐야, “정 뗄 칼 없고, 임 잊을 약 없다”는 사랑이야긴가? 그래, 사랑 빼고 뭔 이야기가 있겠나?

 

뒷이야기를 풀어내는 교수는 한참 맥 빠진 소리였다. 그야 살벌했지, 한 동료 교수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부인은 탄원서를 들고 학장실을 찾아와 눈물로 호소했지만, 실상 대학사회라는 게, 한 동료의 고통과 한 학생의 상처에 무력한 개인들뿐이더군. 사실 스승과 제자라는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우리 중 누가 과연 이런 남녀 문제에 완전 자유로울 수 있겠나? 헌데 어찌되었든 한 지붕 밑에 사는 사람들로서 불행에 빠진 당사자들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아니 뭔가. 자넨 그럼 그런 불한당을 가만 둬야 된다는 거야 뭐야. 이 사람 대학교수 되더니, 가재는 게 편이야 뭐야!


아니 내 이런 말의 관점은 그 잘못된 행위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아쉬웠다는 것이지. 한 인간의 영혼을 구하면 전 우주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잖나. 교수 만들기 뒷바라지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아내는 어떻겠나. 사실인즉, 매력하나로 사는 여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성적 협상차 연구실 찾아들었다가, 거절당하면 스스로 옷을 찢고 고함치며 뛰쳐나가서 성폭행 뒤집어씌우기는 미국에선 벌써 60년대 고전이라지 않은가. 도통 미스 뷰티에 미스 스트롱이야 요새 여자들은.


하긴. 역정을 추스른 종합병원 친구가 딴청을 부렸다. 하긴 요새 여자들 말이야, 계모임에서 며칠씩 여행가기는 일도 아니거든. 전에는 뭐 큰 솥에 곰국 끓이면 마누라쟁이 며칠 나갈 까 안다더니만, 요샌 그것도 아니래 글쎄. 냉장고에 “까불지마” 그렇게 써 붙여 놓으면 그만이라나.


까불지마? 그거 만우절 이야기 같네.


아니 영화제목 아냐, 오지명 최불암 나오는? 참 그런 것도 한다네, 누가 볼 거라고.


내가 봤네 왜. 첫 장면부터 찢어진 청바지에 짧은 잠바 날리며, 터프하게 지프차를 몰고 나타나는데, 믿을 수 없으리만큼 원시적인 수컷 본능을 뽐내고 싶어 하지만, 누군들 그들의 카리스마를 알아줄까? 공격에는 도피가, 위협에는 복종이, 게다가 회유와 텃세 등 갖가지 동물적인 행동들이 난무해 보았자, 글쎄, 덜 떨어지고 늙어버린 건달들은 그저 돌아가신 후에야 찾게 될 애절한 그리움의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메일 뿐. 코너에 내몰린 중년이 외쳐 봤자 뭐, “까불지마.”


참 그런 영화도 보나. 그런데 아내들은 그들에게 먼저 외친다고, “까불지마!”


그런 말 아닐세. 그냥 우스개야. 까스조심, 불조심 시리즈야. 그런데 정말 우스운 것은 마지막 “마”를 두고서 버전이 두 가지라는군. “마누라만 생각 해!” 그것이 하나고, 다른 것은 “마누라 찾지 마!”라네. 우리 집사람 동창들이 모여서 한다는 이야기가 거기서 두 패로 갈렸다는군. “생각 해!” 쪽을 고집하는 부류는 어쨌거나 아내는 자유를 갖되 남편들은 조심시켜야 한다는 이기적 유형이고, “찾지 마!” 쪽은 개인주의 형인데, 어이, 우리 입장에선 어느 쪽이 더 나은가?


참 별난 선택도 다 있네, 이왕 그리된다면 거야 자유방임주의가 낫지.


무슨 소리야, 그래도 “생각 해!” 쪽은 관심은 있다는 증거 아냐. 요사이 평균 수명 발표를 보면 우리가 살 날도 한참 긴데, 그나마도 무관심이면 어찌 버티나.


이 한심들아, 우린 아직 그런 처지는 아니잖아. 알콩달콩 아이들 귀염 속에서, 아내들 애교도 아직은 괜찮잖아?


이 한심한 가운데 악사들이 돌아왔다. 귀에 익은 〈화〉가 첫 번째 곡이었다. 그들의 팀에서 넣어준 것이 분명했다. 동창 하나가 다른 친구들의 욕구를 언제나 잘 기억하는 장점을 지닌 덕이다.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 또 하루를 보냈다 /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애달픈 노래를 흐느끼는 친구가 바로 대학교수다. 국사전공이라서 특별히 유학 갈 시간 돈 투자하지도 않고 일찍 교수가 되어 선망의 대상인데, 노래는 꼭 사연 있는 것으로만 불렀다. 어느 새 다들 알게 된 노래를 정식도 한껏 따라 불렀다. 오늘도 애 태우며 / 또 너를 생각했다 / 오늘도 애 태우며~~ 홀의 누구라도 함께 부르는 분위기 탓이다. 화 안 된다 떠나지 마 / 이대로 이별일 순 없다 /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안된다” 할 때는 반쯤 서서 양팔로 허공을 안았다.


젖은 짚단이 타더라도 다시 불꽃이 인다는 말인가? 그런 상념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그날따라. 예의 반 까까머리가 서서 나오더니 묘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공옥진의 병신춤 비슷한 것이 도통 묘했다. 어이어 어이어~ 벌릴 듯 말 듯한 입에서 소리라도 나는 듯 했다. 물론 음악소리에 묻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교도소가 아니라 정신병동 출소인가?


정식은 공옥진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무슨 행사장이었다. 여흥으로 불려 나오기는 대단한 분인 줄 알았는데 그때가 대단한 행사였는가 싶다. 그때 우리가 본 것은 왠지 ‘부끄러운’ 병신춤이었다. 상당히 노골적인 본능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느껴져 거북스럽기도 했다. 덩달아 박수를 치면서도 단 한번에 이해할 수 있기에는 그의 예술적 감각은 평범 이하였다. 과장은 있으나 교만하지 않는, 꾸밈은 있으나 거짓스럽지 않았다고 느낀 것은 비로소 훨씬 뒤 그 장면이 우연히 되새김될 때였다. 소리꾼의 딸로 태어났으니 손잡고 걸음마 뗄 무렵부터도 머리맡에 장고와 북소리가 끊이질 않아 귀 장단을 익혔을 것인데, 살풀이춤을 배우면서도 어쩐지 발 디딤새가 엇나갔다는 것이 잘 한 일이었을까. 장단 역시 신무용을 먼저 배운 뒤끝이라 엇나갔다는 것이 잘 한 일이었을까. 배운 대로 잘하는 사람은 밥벌이는 할지 모르겠으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그것을 가르쳐 준 이가 공옥진이다. 배운 대로만 했으면 창무극에서 천재가 나타났을까. 천재는 다름 아닌 진실이다 싶었다. 그런 기억이 왜 그 순간 되살아났는지.


홀은 다시 안개로 자욱해졌다. 들어 올 때 본 “하루만 참아주세요!”라던 금연 표시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굴뚝을 밖으로 세우는 연통 난로 때문인지도 몰랐다. 고구마를 얹지 않아도 이런 저런 땔감 때문에 피어오르는 연기, 아마 그런 때문일 것이다.


연기 사이로 그가 다시 설렁거렸다. 오른쪽 어깨가 들리면 왼쪽은 밖으로 삐지는 기묘한 어긋남. 어긋남과 어긋남 사이 미묘한 조화가 피어올랐다. 괭이가 드러나는 기둥에 원숭이 매달리듯 휘어 감겼다. 그 전에는 그런 기둥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기둥에 감긴 네 발은 각기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나 싶더니 하나씩 다시 풀렸다. 감길 때에도 물론 한꺼번에 감긴 것이 아니라 어느 것 할 것 차례 없이 이렇게 저렇게 감겼었다. 요란한 스트리퍼들이 등장하는 컬트 영화장면의 칙칙한 관능이 묶이는 막대와는 달랐다. 엄마 품에 안기는 아기처럼 천연한 얼굴은 나이도 성별도 없었다. 그 짧은 머리모양에도 그는 열 살 소녀 같은 인상으로 고왔다. 기다란 두 팔은 덜 자란 소녀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부조화였다. 안개는 동양화처럼 피어오르고, <라이언의 딸>에 나오는 사라 마일즈처럼, 린치를 당하고서도 온갖 수치와 고통을 극복한 빛나는 얼굴이 되어 있는 그는 이젠 자긍심 강한 처녀였다. 남자들, 더러는 여자들이 섞이어 앉은 테이블 사이로 진출한 처녀는 조금 유혹적인 표정도 지었다. 아무렇게나 입은 헐렁한 체크무늬 남방은 등산복처럼 뻣뻣해서 상체는 옷밖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렇게나 입은 짙은 색 바지도 그저 옷일 뿐이었다. 육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육신이 아닌 춤? 그것으로 타인들 사이에서 무엇을 유혹하는 것일까. 보통 남자 하나가 일어나서 박자를 맞추려고 시도했다. 동지애를 발휘하려는 인간적 남자인 것은 틀림없었으나 춤은 아니 되었다. 그러고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누구라도 그 춤사위에 박자를 섞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도지방의 곰춤을 아니 설사 용두춤을 추었더라도 그 유일무이한 동작은 그의 것일 뿐이었다. 긴 팔과 막대 같은 다리의 엉성한 조화, 곡이 바뀌면 바뀐 대로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 그의 춤을 위한 것인 양 했다. 그 순간 음악이 멎었다.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그때서야 느꼈다. 그의 가슴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때서야 뚫렸다.


막 끝나서 여운을 남긴 가사 말이 그때서야 귓가에서 맴돈다.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춤꾼이 멈추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는 노래를 헛듣고 있었나 보다. 뭐였더라, 그래,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 홀로 가슴 태우다 흙 속으로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묻혀갈 나의 인생아 ~


홀로 가슴 태우다 죽어간 가수를 두고, 그의 불행에 대한 뒷소문도 많았었지. 정식은 서른 두해를 채우지 못하고 가버린 그 작자 생각이 났다. 비슷한 또래였기에 그 죽음은 충격이 더했었다. 노래꾼이 “노래가 안 된다고” 갔다는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 특별히 슬럼프도 아니었다던데? 정식은 갑자기 저 춤꾼의 무엇인가가 의심스러웠다. 저치는 키도 고만하고 몸매도 고만한 것이 꼭 죽은 가수만 했다. 실제로 가수를 보진 못했지만, “반토막”이라던가, 별명만 들어봐도 그럴싸했다. 춤사위가 바람에 날리는 풀 같고 나뭇가지 사이의 새 같은 사람이, 그래도 혹시 “춤이 안 된다고” 죽어버릴까? 누굴까, 무엇 하는 사람일까? 대체 뭘까? 진짜 춤꾼일까? 긴가민가하면서 정식은 혼자처럼 우물거렸다,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뭘 하는 사람일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 또래 같구먼. 아닌데, 다른 누가 말했다.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하나가 그쪽으로 향했다. 연속 내지르는 그의 다그침 때문인가 싶었다. 놀랍다. 더 짙게 피어오르는 안개는 분명 그 쪽에서 시작되었다. 안개 자욱한 속 잘 보이지 않는 거리였지만 분명 그의 손가락 사이로 담배가 삐죽 보였다. 왼손이었다. 테이블에는 사람들 사이로 세워진 맥주병들이 보였다. 그래 목도 마르겠지. 격렬한 춤은 아니라 해도 온 홀의 시선을 받으며 나중에는 손뼉에 맞추어 몇 곡이나 춤을 추었으니 목이 마를 것이다. 잔을 들었다 곧 놓는다. 정식은 대신 마시려는 듯이 무심코 맥주를 들이킨다. 미지근한 무맛이다. 진작 따라 놓고 넋 나간 듯 춤만 바라보았었나 보다. 저쪽이 친구의 어깨에 가려진다. 정작 입매는 보이지 않는데, 고개를 갸우뚱 끄덕 하는 모양새가 뭔가 말을 하고 있나 보다. 짙은 눈썹과 역시 짙은 눈매가 검정으로 검게 그렸을까 할 정도로 뚜렷했다. 이상하다, 나무토막 같은 얼굴에 화장을 했을 리가.


정식이 기억하는 아내의 처음 얼굴은 분홍빛 그 자체였다. 흔히 도화색 가진 여자를 팔자 사납다고  비하하지만, 첫인상에 도화색 뺨이 예쁜 것은 누구나 안다. 겨울이었지만, 병원이라는 온실에서 쉽지 않은 실습과정을 보내고 있었던 처녀에게서는 홍조가 기본이었을 것이다. 결혼 후 한 지붕 아래서 아내의 얼굴은 누런빛으로 변해갔다. 낮 동안의 화장을 지우는 경대에서 돌아 나오는 얼굴은 쌀뒤주에서 닳은 바가지 색이었다. 고운 가루가 묻어난 바가지를 어머니가 왼손바닥으로 곱게 모셔 닦아 주면 순간 반질반질한 얼굴을 내보였다. 그러면 다시 뒤주에 넣곤 하셨다. 탱탱한 황인종 얼굴이 크림의 여운으로 번득이면 흑인의 표정이 되어 나오는 것이 기이했다. 얼굴색이란 낮밤이 다른 것이구나,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뱃속의 아기를 이기지 못해서 겨우내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밤낮으로 누렇게 변해갔었다. 얼굴색이란 시절 따라 다른 것이구나, 그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또 다시 복사빛 볼을 하고서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겠지....... 그런데 몸을 추스른 아내가 다시 분홍빛 립스틱을 바르는 일은 쉬 오지 않았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학교 때 배운 <승무>에서 유일하게 외어 남은 구절. 허나 아내의 복사꽃 고운 뺨은 그 어디멘가.


정식의 아내는 바빴다. 바빠 버렸다. 아이를 들쳐 업고부터 뭔가 ‘벌어들이자’는 맞벌이 작전에 들어간 이래 아내는 시간이 모자랐다. 변하지 않은 것은 화장을 지우는 경대 앞 5분인데, 돌아선 얼굴엔 옛날의 번들거림이었다. 그밖에는 많은 것이 달랐다. 짙은 눈썹과 눈매는 크림으로 지워도 지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바빠서 덜 지우는 것일까? 또한 번들거림은 같아도, 얼굴은 쌀뒤주 속 작은 바가지처럼 탱탱했었던 기색을 잃어갔다. 쪽박이 점점 빨간 호박석을 닮아 간 것과는 다르게, 얼굴은 해 넘긴 밤 껍질을 닮아갔다. 오뉴월 제사에 쓰려고 밤을 칠 때면 물기 말라버린 밤 껍질은 참 고약하다. 달라진 것은 그것 말고도 많아졌다. 분홍 립스틱은 기억에도 없는지, 으깨진 대추 빛을 선호했다. 아내로서는 분홍빛에 대한 정식의 설레임을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말이야, 도예 하는 분이라는구먼. 우리보다도 한참 위라네. 친구가 자리로 돌아와서 간략하게 보고했다. 그래 그렇겠어. 뭐야, 더 위라고? 도예라니, 도자기? 다도 뭐? 느닷없는 질문까지, 서로 다른 기대치 때문에 조용히 듣는 대신 웅성거렸다. 이 지방 사람이 아니고, 태백산 너머에서 이쪽으로 여행 중이라는데. 그럼 춤은? 전문 춤꾼이 아니라고?


춤꾼이 아니라는 말에 서운한 건 누구보다도 정식이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고깔에 감추오고~~ 첫 구절이 갑자기 떠올라 그렇게 내뱉고 보니, 저 짧은 머리는 고깔에 딱 이었다. 그럼 파계승? 그 소리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절제된 승무를 전문적으로 추는 춤꾼일까 상상했는데....... 정식의 말에 다들 끄르르 웃었다. 이 보게 너, 요새도 헛꿈이냐? 너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 그 왜, 시인선생님이 신용 좀 준 것 가지고 한 때 시 쓴다고 매달린 것은 알지만. 뭐 짧은 머리 보면 당장 <승무>가 입에서 튀어나오니, 그런 거야? - 아니 그건. 저 사람 춤이 좀 곱고도 서럽지 않았냐, 빛나는 듯 서글픈 저 얼굴. - 사람 참, 저게 무슨 빛나고 서럽고야, 그냥 무표정이구만. 자자, 우리 사람 저만치 놔두고 그만들 하자. - 춤꾼이 아닌 건 확실한데, 공방인지 작업실인지 아무튼 맘 맞은 사람들 모이면 춤도 추고 그런다 하드만. - 그럼 그렇지, 예사 솜씬 아니지. - 혼자 사는 남잘까? 남자들이랑 어울릴까? - 아니 이사람, 혼잔가 아닌가는 아직 못 물어 보았고, 남자라니, 여자야 여자. 한참 누님뻘이라니까. 저기 여자들 일행 셋이 안보이나?


다를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춤꾼이 남자가 아니었어? 멀쩡한 중년 남자들의 눈으로 춤추는 여자를 바라보면서 남자일거라고 느꼈다니. 그것도 춤을 감탄하면서 동작마다를 따라 보아놓고서. 다음엔 서로 비식거렸다. 남자가 남자보는 눈 있다더니만, 남자라서 여자를 잘 못 보았나? 갑자기 홀 안의 안개도 걷히고 테이블들이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었다. 건너 좌석들을 흘끔거리는 짓은 계속하기 무안해졌다. 다른 화제가 급했다.


나사의 한 연구원 주장이, 이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강진으로 지구가 작아졌다데, 자전 주기도 미세하지만 영구적으로 짧아졌다 하고. 정식은 신문기사를 떠올려 화제를 바꿨다. 그래, 구들장 하나가 다른 구들장 아래로 끼워졌대나 뭐라나.


우연히 이과 출신이 하나 끼었다. 일행은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글쎄, 그건 그저 계산상의 이론이지, 실제 측정결과가 나오기는 시일이 걸리고 또 그것을 증명하기엔....... 아니 그보다는 이번 방학엔 혜성 구경 가자는 딸아이 때문에 그냥 못 넘어갈 것 같아. 그는 말을 바꾸었다. 맥홀츠혜성인가 그놈은 쌍안경으로도 바로 볼 수 있을 만큼이라니, 1월 내내 이삼일짜리 캠프를 여는 곳도 있다네. 아버지들이 이삼일 나가기가 쉬운가. 서울 근교들일 텐데 지방 사람들은 더 힘들지. 아이들만 보내는 곳 알아보았는데, 데려다주기라도 하려고 목금토, 토일월 반을 인터넷에서 찾자마자 마감되었더라. 이 아버지 통도 크시네, 애들만 어찌 보네. 한국서 애들 살기 무서운 것 모르시나. 아니 그럼 사는 것이 다 그렇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화제는 이리 저리 흐르고, 정식은 고개는 일행 속에서 정중심을 향한 채 오른 어깨 너머 비스듬히 춤꾼의 테이블을 흘끔거렸다. 앞머리를 갸우뚱 내리고서 시선의 방향을 숨겼다. 다시 태워 문 담배가 반짝 불빛을 보였다. 그 ‘여자’가 빠끔거리는 것이리라. 벽에 걸린 “오늘 하루만 금연합시다!”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글씨는 색색으로 분명한 만큼 무안했다. 한글도 못 읽나? 타지사람이라고 안면몰수인가? 다시 아래쪽 시선을 이용해서 바라보니 길게 뻗은 다리가 앙상하다. 상박 하박이 그저 나무젓가락이었던 팔이나 막대 같은 다리나. 우리보다 위라고? 여자도 나이가 들면 성을 초월하나? 어느 나이가 되면 그러나? 하긴 옛날의 어머니들은 그렇다. 아니 그 반대다. 어머니들은 젊어서도 나이 들어서도 한결같은 어머니다, 여성이다. 더 할 수 없이 푸근한, 마르고 작은 체구에도 장작개비 같지 않고 부드러운. 늘상 같은 어머니. 헌데 소녀와 처녀와 심지어 아저씨를 다 아우르는 저 사람은 대체 뭔가. 절대로 어머니는 아닌, 그래도 여자?


그 여자에게서 어머니를 볼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자라 했으면. 밤톨처럼 단단한 아내에게서도 어머니는 있다. 어머니가 전부다. 아내는 송이를 위해 산다. 송이의 행복을 위해 산다. 송이의 성공을 위해 산다. 아내는 어머니로서 산다. 저 여자는 무엇으로서 살까.


정식은 이시자키 어쩌고 하는 일본인이 내놓은 독특한 서적명이 떠올랐다. 인터넷서점에서 책 검색하다가 튕겨져 나온 특이한 책이라서 제목만 목차만 대강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가히 성의 세기였다고 할 20세기 말에 <똑똑한 여자는 SEX를 하지 않는다> 그 비슷한 책이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똑똑한 여자? 색에 빠져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아예 성의 특징을 무시한다? 하긴 섹스가 남자와 여자를,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최고의 요소는 아니라는 것에는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가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 송년의 밤을 남자들끼리 모여 앉은 그들도 하나의 예다. 그때 그 책제목을 보면서 잘 팔릴까도 의아했었다.


그 뭐더라, <똑똑한 여자는 SEX를 하지 않는다> 그런 책 있더구먼. 또 다시 정식의 돌연한 말에 이야기는 새로 어수선해졌다. 스스로 똑똑함을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면 만족할 책일까? 뭐 그런 책이 다 있어? 남자들 다 죽겠네. 아니지, 여성들이라 해도 똑똑하면 섹시하지 않다고 들려서 화내지 않을까? 정식은 바로 옆 테이블의 남녀 팀이 들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떤 여자가 학문적 관심을 가지면 보통 그녀의 성적인 면은 뭔가 정상이 아니다고 했다던가, 그것으로 니체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얼마나 욕을 먹는지 아나 이사람. 대학친구의 말에 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니까 가슴이 크면 머리가 나쁘다, 그 속설이 맞다는 거여 뭐여? 답을 손에 쥐어야만 하는 친구 하나는 갑자기 정색이었다. 내 말은 저 여자, 아니 저 여자 분은 삐쩍 마른 나무토막 같으니까 머리가 좋고 예술가이고 춤도 잘 춘다 그거야 뭐야. 아니 춤추는 것 하고 머리 좋은 것하고 무슨 상관? 야 이부장 목소리 좀 낮춰. 시작은 해놓고 말리는 형국이 된 정식은 도리어 좀이 쑤셨다. 흔한 삼차에 예까지 들른 것인데, 술이 좀 들어갔기로서니 말들이 거칠어진다 싶어 걱정이었다. 엉뚱한 화두를 내놓은 것이 자신이고 보니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허탈한 밤이었다.


하기는, 밤은 대개는 허탈하다. 남보다 이른 결혼으로 딸이 봄이면 벌써 고등학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어디만큼 흘러가버린 세월이 아득하다. 아내는 궁리도 많고 튼실해서 남편에게 의존하는 체질이 아니다. 세상을 따라 살며 크게 불평도 없다. 바가지를 앞세우는 형도 아니다. 그런데 왜 밤은 허탈한가.


아이들 알콩달콩 속에서 - 아까 누가 그랬나? 그것이다. 집에 아이들이 없어서일까? 달랑 혼자 크는 송이가 어릴 적은 괜찮았다 싶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뭔가를 열심히 시키는 엄마를 피해서 아빠한테 응석부리느라 깔깔대곤 했다. 요즈음엔 중학생이면 표정이 어른으로 바뀌고 마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에 시달려서일까? 송이 뿐 아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더 큰 처녀인지, 길가는 여자아이들이 구별이 안 될 때가 많다. 아내도 할 일이 많다. 집안 일 틈 새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낮엔 사업차, 늦은 저녁에도 컴퓨터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신년을 맞는 그의 계획 속에 근년 들어서 꼭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아내와 대화하기>, <송이와 대화하기>, <가족여행>, 그런 것 들이다. 몇 년 째 잘 안되는 재탕이다.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가정이 왜 문제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기실 아무 문제도 없다. 일감이 줄고  당연히 수입이 기울지만, 다른 건설업자들 사정에 비하면 현상유지는 되는데.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밥벌이 되면서 고민하는 놈 사치라 하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겨우 땅 파먹는 두더지 신세인 것이 대순가. 제 식구 잠 잘 지붕 있고 밥 먹고 살면 그만인가. 이 친구들 마음들도 허탈한 구석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순간 파렴치한이 되어 공든 탑을 떠나야했던 동료교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던 친구의 넋두리가 공감이 갔다. 고향을 돌아다보면, 아니 거기까지 아니어도, 힘든 사촌에 재종, 종매........ 아니다.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은 내민 손조차 잡아줄 수 없었던 무능 때문이렷다. 형제고 친구고 빚보증은 안 된다. 단출한 가정의 살아남기 작전은 이렇게 야속함에서 출발한다. 반석위에 집짓기. 문제의 씨앗은 싹부터 뽑아버리기. 그래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도태된다. 어쩌다 TV화면에서 걸리는 동물의 세계가 어른거린다. 영양이건 코뿔소건 무리에서 처지는 놈이 천적의 먹이가 된다. 무리는 생의 법칙,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한다. 인간이라는 동물 또한 그러하다. 송년의 밤을 보내며 일년간 다 못한 일들을 쬐끔 후회할지 모르지만, 날이 새면 다 잊고 희망을 운운하며 새해를 맞는다. 닭띠 해가 밝을 것이다. 고향의 수탉은 여전히 아침을 깨우리라.


정식은 갑자기 일어나서 노래를 불렀다. 아니 소리를 쳤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 옹기종기 둘러앉아 꽁당보리밥 / 꿀보다도 더 맛좋은 꽁당보리밥~~


저쪽에서 여자가, 그 춤꾼이 맞일어났다. 보오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정식이 질세라 얼른 받았다. 보오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애 - 애


와글와글 박수가 터졌다. 악사들이 다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벌써 무엇인가를 마친 것인가? 아니 ‘꼬꼬댁 꼬꼬 먼동’은 무엇이었나? 내가 노래를 부른 것이 아니었어? 내가 노래를 불렀어? 알 수 없는 상황에 정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앉아 있는 모양새가 좀 전과 다를 바 없었고, 들었던 잔이 왼손에 그냥 있었다. 이상하다. 아니 지금 내가 어찌 된 것일까? 예서 가수들이 때 넘어간 캐럴도 아닌 동요를 했을 리가 없다. 그럼 내가 노래를 했단 말인가? 틈이 없었다. 음악은 서글프면서도 중후한 “그곳이 꿈엔들 잊힐 리이야”로 넘어가 있었다. 정식은 두 손을 펴서 머리에 얹었다, 언젠가처럼 왼쪽 뚜껑만 뜨겁게 달아오르고 오른 쪽은 냉랭한 상태를 느껴서였다. 정말 그랬다. 구들장이 따뜻해졌나. 만져 보듯이 오른쪽 왼쪽을 만져보다가 겁이 났었다. 신경과 전문의는 내로라하는 평판이었는데 말은 의외로 간단했다. 검사 결과는 뭐 괜찮습니다. 죽을 병 아니고요. 통풍을 좀 해야 됩니다. 무슨 못하고 살 말 있어요? 여기 와서라도 뭔가 해버리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친구나 직장동료 뭐라 아내 흉을 본다거나 뭐 그런 것. 속내 단속 못해서 발광난 사람 취급하는 데는 오히려 기가 죽었다. 첫 마디에 알 수 없이 눈물이 돌았던 것이 좀 분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반쪽만 뜨거운 머리 뚜껑이 겁나서 몇 번 더 찾아 갔다. 아내 흉보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뭔가 말 해 봐요,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삐딱이 하고 앉아 있는 의사 앞에서 아내 흉보러 오는 환자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아내 흉보러 오는 환자들 더러 있나요? 그렇게 묻고 싶은 충동을 참는 방법은 그만 가는 것이었다. 생각한 말과 말한 것 구별이 혼란스러울 때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한 행동과 행동을 했는지 구분이 안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정작 의사를 보았으면 묻고 싶었던 말들도 다 담고 돌아섰다. 흉보러 오는 대신 막춤을 추러 오라 했으면 계속 갔었을까? 혼자서 추는 춤, 춤을. 


한쪽이 조금 수선스러워 눈을 드니 바로 춤꾼 일행이 일어서고 있었고 친구가 따라 나가고 있었다. 노래 도중이었다. 이상하다. 노래 도중에 일어설 무례한 같지는 않았는데. 문간의 망설임이 한참 걸렸고 친구는 으쓱으쓱 돌아와 앉았다. 명함은 없고, 주인장 하나 줬다는데 나중에 보지 뭐. 내일은 또 더 남쪽으로 갈 거라네, 영 독특했는데 참.


하긴 노총각이야 관심 가져도 되겠지만, 저쪽은 뭐 싱글 이래? 아무래도 도저히 유부녀 같진 않던걸. 우리 모두 첨엔 남자라고 생각했잖아? 하긴 거 누구의 견해대로라면 머리 좋은 여자겠네? 뭐 우리 생각이 다는 아니겠지만. 아니 저쪽이 훨씬 위 같더라며? 앞서가기 잘하는 친구가 나서 떠드는 동안 왠지 다른 사람들은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연주가 끝난 다음 정식네도 다같이 일어섰다. 한 친구는 정말 주인에게서 명함을 받아서 읽어보느라 입구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렸다. 노총각에게 정보라도 주겠다는 몸짓이었다. 정식은 일부러 관심을 끊었다. 춤이 다 뭐라고.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을, 또 그게 무슨 춤이라고. 춤꾼 생전 안 보았나.


한 시가 넘어 귀가할 때면 아내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늘은’ 귀가해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내지만, 근년 들어서 더 늦는 남편을 교육하려는 일은 포기한 것 같았다. 그나마 공존의 미덕이다. 초저녁에 집에 있어 둘이서 할 일이 무엇인가. 관심사가 교집합처럼 작은 것을 무시하고 합집합의 크기로 보는 것이 신혼이다. 어긋난 각도는 미미하게 보이는 것이 신혼이다. 어느 날인가는 교집합이 커지는 일보다 어긋난 작은 각도가 벌어지는 일이 꾸준해짐을 알게 된다. 교집합은 불려야 자라는 것이라서 가만있으면 그대로지만, 어긋난 각도는 가만있어도 그냥 벌어진 땅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늘상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조금은 하고 싶어 하는 정식과, 하고 싶은 것 다하려는 사람을 일반화하여 얕잡아 보는 아내는 참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다. 아니, 다른 별을 바라고 살아버린 결과일까?


샤워꼭지의 물소리가 미안하다. 아래 집도 미안하고, 가까이 아내도 미안하다. 스킨로션이 욕실에 없는 것이, 아침에 또 들고 나갔나 보다. 욕실에 있어야 할 것이 안방 어딘가에 있는 것을 아내는 싫어한다. 그 반대도 당연히 싫어한다. 무엇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아내가 정하기 때문에 정식으로서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욕실에서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하나 손에 따르니 향기가 짙게 올라오며 끈적거린다. 하는 수 없이 손에다만 비비고 만다. 깜깜한 방을 거쳐서 거실로 나온다. 커튼 틈새로 비쳐오는 빛, 달빛인가 하지만 하현달인데 이리 밝을 리도 없고, 바깥 방범등인 것을 벌써 알고 있다. 희미하게 비치는 실루엣을 따라 소파에 주저앉는다. 순간 다시 일어난다. 커튼을 조금 젖히자 곧 냉기와 함께 어스름 빛이 따라 들어온다.


달밤에 체조라더니, 어깨를 들먹거려 본다. 팔을 내뻗는다. 무슨 곡조를 떠올려야 하는가? 하나 두울 하나 두울. 아니다. 한 둘 셋 한 둘 셋. 그건 더더욱 아니다. 자다가 봉창 뚫는다? 뚫으려면 뚫으라지. 검게 반사하는 TV 화면을 맞대하고서 자신의 몸을 비춘다. 어깨 팔꿈치 팔목을 차례로 꺾어 본다. 꺾었다 편다. 왼쪽도 똑같이 해보려고 뒤튼다. 춤은 전염성인가. 흥이 없더라도 일단 곡조에 맞춰서 팔다리와 온몸을 움직이면 춤이지. 율동적으로? 그건 알 바 없다. 춤꾼이 따로 있나? 좀 전의 춤꾼 아닌 춤꾼이 생각난다. 안개처럼 피어올랐던 아까의 연기 냄새가 코끝에 남아있다. 영락없이 내 마신 고양이 상으로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니다, 활짝 웃자. 웃어야 한다. 신경과 전문의가 변죽으로 말한 것이 이런 것 아니겠냐. 통풍이다, 통풍. 더구나 희망의 새해가 아니냐.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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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4. 11. 1. 21:36

건들장마
한국소설 64호

                                                                         

  - 작가의 말 -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쓴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나의 심장에서 이웃들의 심장에서 일렁이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왜 우리는 저 혼자서 제 삶을 생경해하는 것일까. 가을 비 차갑게 내리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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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4. 3. 1. 22:15
부나비

   

 

소설시대 2003 

부나비 한 마리가 겨울밤을 마주하고 있다. 9월에야 성충이 된 이놈은 늦둥이에 속한다. 날개를 길이대로 다 늘여 보아야 3, 4 센티미터. 그것으로는 추위에 얼어붙는 몸을 가릴 만큼 넉넉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방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일정한 길이도 넓이도 아닌데, 그로서는 안의 사람들이 커튼이라는 아름답고 따뜻한 장치로 여러 겹 추위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그래도 새어나오는 빛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나아간다. 미끄러운 유리창은 얼음처럼 차갑고 아린다. 유리가 얼음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이제서 알게 되다니, 이러한 지식이 별 소용없음에, 그것으로 슬퍼할 시간도 모자란다.  

 

                                                    *

넌 그 집착 때문에 망할 거야… 꼭 그렇게 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는 말한다. 내가 사모하는 그는 통상적인 부류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가 들은 야단이다. 그것은 통상적인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라고 내지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모하는 그에 대한 어떤 것도 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의 견해를 의식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러니까 내가 사모하는 그와 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 사이에서 몸 둘 바를 모른 채 살고 있다.

누군가가 어떤 상황에서이건 몸둘 바를 모른다고 하면 요새 세상에서는 엄살이라고 할 것이다. 모두가 당차게 살아간다. 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만 해도 확실히 매사에 단호하며, 말도 엄살도 적다. 사람이 말이 적으면 분명 손해가 적을 것이다. 말이 많으면 써먹을 말이 적다고,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웠는데도, 나는 말을 많이 한다. 결코 사람을 무시하지는 않아요… 라는 표시로서 이런저런 말을 한다. 사실은 신문에 났거나 TV에서 떠도는 말을 또 되풀이하고 있는 얼간이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난 그냥 얼간이 편을 택한다. 내가 사모하는 그의 말없음에 상처받아, 보상심리로 말의 홍수 속에서 안정을 찾아보려고 안간힘인지도 모른다.

나와 그 ― '내가 사모하는 그'라는 말을 그냥 '그'로 단축하기 위해서 상용구를 써야 된다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상용구란 한 글자를 여러 글자로 나타내기 위한 수단인 것을, 나는 어떻게 된 게 입만 열면 '내가 사모하는 그'가 튀어 나와서 그것을 '그'로 줄이느라 상용구를 써야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런데 나와 그는(바로 이곳에서 상용구 단축이 필요했다) 아무 사이도 아니다. 친구('내게 충고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친구'도 '친구'로 단축한다), 친구는 다만 내가 행여 이번에도 마법에라도 걸린 듯 빠져버릴까 걱정하는 눈치다. 아니 노골적으로 경계한다. 사람이 행여 사람에 빠진다는 것은 친구에겐 실수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열아홉 금값일 때 혼이 나갔던 그일 이후 내내 혹독하다. 게다가 이번에도 눈과 입술이 가느다란 남자라면 무정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라고. 우린 이제 서른 하고도 넷을 넘겼으니 ― 그녀는 절대로 다섯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우리 또래 남자들도 이미 다 혼자는 아닐텐데, 잘못하다간 임자까지 있는 덧에 걸리게 되어있단다.

너 이런 병 처음 아니야, 옛날 그 일을 생각해 봐. 완전히 넋빠진 애, 무슨 핑계로 어떻게든 전화라도 하려고 리포트도 안냈고, 너 정말 기말시험도 안쳤잖아? 지금 돌이켜봐도 그는 널 염두에나 두었어? 이것저것 함량미달, 큰 인심으로 변명 기회를 주어도 아무 말 못하고 지나친 어떤 여학생. 그것말고 너를 알기나 해? 그때가 언제야, 그 봄학기, 넌 왜 봄에 약한 거냐?  

그 후 언제였을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영화관에 가서 보던 날, 친구는 갑자기 "너 혜완아" 라고 나를 불러 세웠다. 너 또한 혼자서 가라. 우리, 책을 직접 사서 읽자. 우리가 돈을 주고 소설책을 산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대학을 그만 두고서도 일이년은 몰래 책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했었지만, 그 뒤로는 이런저런 여유가 없어 책을 사 본 적이 희미했다. 그런데 우린 책을 샀고, 친구는 아예 어디에선가 원래의 경전까지를 찾아냈다. 하긴 내가 지쳐 잠든 밤사이 그 애는 컴퓨터에서 밤을 샌다, 뭔가를 쓰거나 찾거나.

숫타니파아타… 한참 열을 올려서 외웠던 옛 구절을 친구는 새삼 다시 꺼낸다. 비밀스럽기도 하고 또 정말 그냥 염불이라 생각해라. 어쩌자고 넌 또 시작이냐구. 날 따라 해 봐, 물속의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 (침묵) ― 어서 ― 물속의 물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 또한 이미 불이 탄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아니 다시 하자, 좀 더 네가 좋아했던 구절로. 또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넌 그런데 번뇌를 끊는 가르침 중에서도 바람이니 연꽃이니 나오는 구절은 좀 외우고, 냉철한 단어는 다 잊었구나. 넌 아주 물고기 수준이야.

새대가리는 몰라도 물고긴 아냐. 또 물고기가 왜? 물고기가 자전거도 타는데 뭐. 여자는 물고기가 자전거가 필요한 만큼만 남자를 필요로 한다고 큰 소리하던 여자도 어쨌든 결혼했잖아.  

너, 스타이넘이 이제와 결혼을 했다고 그 인생철학이 바뀐 거라 속단하지는 마. 결코 결혼이 필수가 된 건 아니니까. 남편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고 파트너랬어.

파트너? 무슨 다이 하드 시리즈 경찰이냐?. 남편 아닌 파트너랑 결혼하면 물고기보다 나아?

적어도 체로키족 식으로 했다는 거지. 진정 남녀를 평등하게 대접한다는…

그럼 아무나 체로키가 되냐구? 보호구역 오클라호마에 아니 미 전역을 통틀어 만 명 남짓, 그들의 언어가 살아있기나 해? 200년전 다트머스 대학 설립해준 백인들 교육 덕에 그 문화는 끝장났다며? 그런걸 어떻게 아느냐구? 거야 간단하지, 언젠가 컴퓨터 화면 살리니까 떠있던 걸 뭐. 넌 찾고, 난 심심하면 읽고. 너 맨날 PC 켜놓을 땐 나더러 읽으라고 그렇게 두는 것 아니었어?

그랬다 치자, 그게 결코 노선수정이 아냐. 저번 제주에 왔을 때 인터뷰기사도 못봤어? "자궁이 있는 모든 여성이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명제는 성대를 가진 모든 사람이 오페라 가수가 돼야 한다는 말과 같다"해서 좌중이 웃음바다였다구!

웃음? 대중은 명사에겐 관대해, 논리적 비약에도 웃어주고. 성대가 정말 오페라 하라고 있는 거냐, 말하라고 있는 거지. 성대로는 말하고, 자궁으론 애 낳고, 그러는 거야. 늦기 전에.

뭐야, 네 자궁으로 애를 낳겠다? 그저 그 남자 바라만 보면 자궁에 애가 들어오니? 자궁이 원초적 충동으로 애를 낳고 싶다고 쳐, 그게 그리 쉬운 일이야? 이 시대에 어떤 남자가 애나 낳고 싶어하는 바보에게 애를 낳으라 하냐. 거기까지 상상이나 되는 거야? 어떻게 그의 눈에 띄는가… 어떻게 그 눈길을 받을까… 언제 어떻게 해서 마침내 그가 말을 걸고, 데이트를 신청하고, 고백을, 청혼을 하고. 아니 그런 것 생략하는 신세기 인간들이라고 쳐, 어떻게 그에게 다가가며, 어떻게 그 손을 잡으며, 아니 어떻게 그가 손을 잡게, 입맞추게, 그 생명을 네게 주게 만드는데? 네 입 몇 마디 말로서 되는 일이, 언제 어느 세월에 일어나느냔 말야. 그거 그 옛날에 한번 졸업하지 않았어?

하긴 옛 일이지. 올림픽 전의 한국은 옛날이 맞아. 네 말대로 난 마음을 다 퍼주어 버려서 남아있는 조각도 없는 줄 알았지. 알 수 없는 원망도 슬며시 잦아들 지경이었으니. 이상해,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쿵쾅거리지? 넌 뭐 항상 정답을 가지고 있고, 난 항상 틀렸으니 얘기 해 봐.

뭐 그렇게 빗나갈 일이 아냐. 그때 그 일을 잊진 못하지, 자꾸 거치적거리는 네게 상대는 째진 눈 한번 바로 떠보지 않더라고? 참 희한도 해, 그 연보라빛 편지지에 봉투 묶음 사서 또 쓰고 또 쓴 편지들. 그거 한번 봉투에 넣고 이름이나 적어 봤어? 꼬박 일년은 그렇게 썼을 것이야, 날이나 날마다. 하긴 일년은 안되는 구나, 다음 봄학기 휴학하고는 그냥 접었으니까. 그래도 그 아까운 글들, 지금 같았으면 하드에라도 들어 있겠지. 알다가도 모를 애야, 쳐다보면 피하고, 말을 걸면 아예 대꾸도 없거나 엉뚱한 대답만 하니.

그랬었다. 열아홉 첫 자유의 봄에, 우린 정말 그것이 자유의 봄이라고 믿었다, 우선은 멋있어 보이는 과목만 수강신청을 마쳤다. 영어도 《대학영어》는 얼마나 다른가. 모옴의 수필도 들어있을 지경이니 "달과 육펜스"를 영어로 읽는 느낌에, 거기다 갑자기 승격됨을 만끽하는 《인간과 가치》, 막연한 동경의 《글쓰기 기초》… 얼마나 떨리는 시간이었나. 제목부터 수상쩍은 "악의 꽃"의 시인은 우리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신에게의 상승과 악마에게로의 하강의 기원을 함께 품고있는 인간존재의 영원한 모순, 모순 속의 우울, 파리의 우울… 시인은, 나의 그가 말했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라고 배운 우리에게 "유용한 인간이란 언제나 무척 야비한 것으로만 보였다"고 말합니다. 유용한 인간, 야비한 인간…

그 시간이면 나도 모르게 쿵쿵거리던 가슴을, 친구는 죄다 안다. 무슨 단어도 그의 목소리로 들으면 아우라에 쌓여 숭고해졌다. 바로 그 아우라 같은 고귀한 단어를 내 가슴에 심어준 그는 그러나 강의가 끝나면 교실 문을 채 나서기도 전에 일자로 째진 입에 자물쇠가 잠긴다. 액자유리 뒤에서 입을 꼭 다무신 아버지나 똑 같다. 일부러 지각을 해서 출석부 고쳐달라며 이름을 각인시키기를 되풀이하고 ― 각인이라는 단어도 그로부터였다 ― 리포트는 기일을 넘겨서 교수실로 간다. 교수실이라야 젊은 강사들이 함께 쓰는 곳, 여고 때 교무실에 비하면 널부러져  쌓인 책들하며 꾀죄죄하기도 했지만, 뭔가 개성적인 바로 이것이 고차원이구나 믿었다. 강인하게 일자로 다물어진 입은 그러나 3cm 정도의 가벼운 고개끄덕임으로 대신했다. 한 페이지가 빠졌노라고 다시 가져간다, 그럼 아무 말 없이 받아 아무 책 위에나 놓는다. 저기요 지난 시간에 01반 리포트… 이번엔 2cm 끄덕임. 한번도, 왜라거나 자꾸 늦으면 안되어요, 그런 핀잔도 없는, 강의실 밖에서는 도통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있는 표정으로 빗장을 내걸고 있었다. 바로 그 빗장에 매료되어… 아니 속이 상해서, 나는 달아올랐다. 부글부글 끓었다.

한번은 바싹 지나치는 시도를 감행했다. 검푸른 잉크냄새와 함께 검푸른 바닷물처럼 냉기가 건너왔다. 오싹했다. 차가운 유리 속 아버지 냄새도 그랬다. 어버이날 다음은 스승의 날이었다. 꽃을 보내고 싶었다. 이름을 쓰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을 것이다. 5월의 저녁은 알맞게 부드럽다. 카네이션은 무슨, 내 마음은 순 장미였다. 장미 열송이는 큰 모험이었다. 빨강색은 부끄러워서 참았다. 바깥에서 보이는 창문에는 불빛이 별로 없었다. 4, 5층엔 몇 개 켜져 있었지만, 그것이 다 꺼지도록 기다릴 수는 없었다. 마악 어두워진 복도를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가 불빛이 새어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 문 앞에 다발을 가만히 놓았다. 아차, 내일 아침 출근길에는 조금 시들겠지. 하지만 지금 직접 부딪친다면 고개를 3cm 끄덕일까, 아님, 장미라니 이게 뭡니까 하고 모처럼의 변형을? 상상만으로도 무서웠다, 이게 뭡니까? 이게 뭐임?

도망치려던 나는 곧 다시 돌아가 다발을 집어들고는 뛰었다. 크게 흔들리는 통에 꽃잎은 벌써 시들했다. 움켜쥔 왼손바닥에선 풀 냄새가 났다. 오른 손으로 꽃잎을 흩뜨렸다. 부드럽고 촉촉한 온기가 달라붙었다. 열송이 꽃잎을 그렇게 뜯었다. 향기가 서러운 아우라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아우라의 독에 빠져들었다. 그때 내가 몇 시간을 밖에서 서성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갔던 날, 친구는 현관 문지방에서 갑자기 튀어 나왔다. 어찌나 갑자기 들이대는지 둘의 코가 맞닿는 줄 알았다. 그녀의 냉기가 아리도록 내 볼을 때렸다.

친구는 꼬박 일년을 나를 힐난했었다, 마침내 내가 제풀에 꺾일 때까지. 나는 그를 폄하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젠가 노교수가 된다… 책 속에 묻히면 좀벌레들과 함께 살리라. 아버지의 누런 콘사이스와 몇 권 남은 동아세계문학전집에도 그런 하얀 벌레가 기어다녔다. 0.3mm 샤프로 찍은 점보다도 더 작은 하얀 벌레들이. 축축한 벌레들과 살아가는 그의 이미지에 내 발등이 다 스물거리며 시려왔다. 나는 그를 지웠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그 뒤로도 나를 홀대했고, 그 냉기는 지금도 줄지 않고 나를 채근하며 따라다닌다.

가장 심했을 때는 몇 년 전 유치원에서 한 아이에 빠졌을 때이다. 천방지축 말썽꾸러기 아이들 천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당연히 제일 안움직이는 녀석이다. 반일반 아이들이 더 심하게 딩구는 데 비해, 아이들 절반 이상이 떠나고 난 종일반의 오후는 시무룩해지는 표정이 번지는 게 보통이긴 하다. 그 아인 그런데 아침부터 혼자만 논다. 종이찢기, 마음대로 그리기 시간에는 괜찮다가, 인사하기, 이야기하기, 동시화 외우기 시간에는 입을 다문다. 활발하고 예쁜 달님반 선생님이 달래도 끄덕없다. 달래면 달랠 수록 입만 다무는 게 아니라 아예 긴 눈을 질끈 감는다. 이마가 유난히 넓어서 눈은 얼굴중심 저 아래로 내려간다. 입술과 평행선을 이루며 완강한 수평선 두 개가 그려진다. 눈물이라도 날까 무섭게 질끈 감은 눈에선 정말 파도가 일렁이는 느낌이 온다. 소리내어 울지 않는 아이가 정말 두렵다. 가끔 들르는 외할머니는 손자를 떼놓고 갈 때도 참 교양있지만, 특히 화려한 미소와 알파로 원장을 격려한다. 그땐 내가 아직 보육교사 양성과정에 다니기 전이었고, 그냥 원장의 햇님반 보조였다. 오전 에어로빅에 사우나를 거친 원장이 출근하는 것은 12시 점심식사 시간 직전, 종일반 아이들 식사를 챙기려 온다. 그러나 잦은 점심약속으로 그 또한 내 몫이었다. 그리고 나서 반일반 아이들 물품 정리하는 등 일을 마치면 결국 4시나 되었고, 그때서야 다른 아르바이트를 향하곤 했다. 뒤돌아보면 유리창은 마침 반사되는 빛으로 내부를 비추지 않고 그저 반짝인다. 남겨두고 오는 아이얼굴 아래쪽의 두개의 완강한 직선은 괜히 내 가슴을 두 번 갈라놓는다. 누구의 애일까? 전혀 닮지 않은 외할머니, 그렇담 아빠의 얼굴일까? 혹시 유창한 수사학의 세계에서 갑자기 입을 꼭 다물던 그 선생님?

친구는 그때 내 미친 상상을 어찌나 혹독하게 비난했는지, 난 그만 친구와 이별을 시도했었다.  넌 어떻게 일자 눈만 보면 무조건이야? 조금도 나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친구와 더불어 사는 것은 고문이었다. 이 진드기를 떼어 내려면 내가 죽는 수밖에 없지 싶었다. 아르바이트 카페에서 퇴근 시간을 넘기고 술에 잔뜩 취하기도 했다. 카페가 다 끝나고 주인 언니네가 퇴근할 때서야 나를 데려다 주면 새벽이 다 된다. 놀랍게도 그 시간에 이미 새 날을 시작한 사람들이 거리를 깨우고 있다. 그런 날 초인종을 누르면 어머니는 기겁을 하시는데, 친구는 내색도 없다. 술에 취하면 친구가 나를 상대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취하는 날이 잦아졌다. 난 낮의 일자리를 잃었고, 밤의 카페주방이 전업이 되었다.

순한 영어교사의 딸은 분명 계급하강을 계속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로 나를 달래셨고, 답은 보육교사 양성과정이었다. 어머니의 꿈처럼 멋있는 국어선생도 초등교사도 못된 딸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것이었다. 일년 과정을 졸업하고는 겨우 낮생활로 돌아왔다. 그러나 식당보조와 정식교사 사이, 그것이 실제 내 직업이었다. 규정에 따르면 소규모 유치원을 운영할 자격이 되었는데, 그만한 돈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저녁시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보태도 어림없었다. 게다가 2월 말이면 이동이 잦았다. 폼으로 대학을 다녔던 정식 유아교육과 출신들도 직업 얻기에 관심이 커지자, 양성과정 출신은 밀려나기 십상이었다.

그러다 이런 변화가 왔다. "대우도 못받는" 남의 유치원 보육교사 자리 알아볼 수고말고, 여기 동생네 치과병원 우선 돌보라는… 이모는 원하는 것이면 다 하신다. 동생, 그러니까 이종동생은 모교에 남으려고 "시간만 버렸고", 이제와 개업하는데  진료밖에 모르니 병원 살림을 좀 맡으라고, 이모는 반 강제셨다. 나더러 아예 간호조무사 자격을 따라시며, 후일 산후조리원과 영아원 유치원을 연결하는 비젼 속에 나를 집어 넣으셨다.

아직은 낯선 오피스텔의 아침, 눈을 떴을 때 친구를 발견하지 않은 잠시 순간을 느긋이 즐기고자 난 이불 속으로 더욱 기어 들어간다. 출근이 바빴던 보조 때나 보육교사 시절에도 그랬다. 깨어나지 않아야 친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이 되는 안도감을 느낀다.

우유 한잔 마시자! 친구는 곧 목소리를 높혀 우리의 하루를 시작한다. 제발 흰쌀밥에 조선간장 찍어 김을 덮어먹고 싶어하는 내 기분은 뒷전이다. 요즈음엔 사시사철 구운 김이 있는데도 말이다. 아침부터 간장 된장 김치 같은 무식한 냄새를 풍기면 직장 나가는 여자의 하루는 끝난다는 것이다. 옷에만 베니? 그렇담 갈아입고 나가지. 하지만 머리카락 켜켜에 깊숙이 스며든 냄새는 어쩔 도리가 없어 응?

그렇게 시작하는 잘난 채는 우유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식탁에 놓는 2, 3분 동안에 두서너 가지 뒤따른다. 저런, 그 긴 컵은 안되지, 넌 또 우유처럼 기름진 게 없다고, 아니 우유도 꼭 된장국그릇만큼 씻어야 한다고, 한 나절 컵 씻느라 싱크대 손 담그고 있을 것 아냐! 나는 유리컵이 길고 좁을 수록 예쁘기도 해서 집어 들지만, 좁은 컵에 따라야 우유를 덜 먹을 수 있는 계산이다. 그것을 이젠 잊었나? 엄마 젖꼭지가 우유꼭지로 바뀐 것을 참지 못해 울어대던 그 옛날을?

우유 알레르기에도 내 유년시절은 따뜻한 보호 아래 있었다. 다만 그 시절은 꿈처럼 빨리 지나가 버렸다. 우유를 치즈를 좋아하고 싫어할 계제가 못되는 웅크린 사춘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사진으로만 남은 아버지는 속수무책이셨다. 천장쯤 높이에, 그것도 유리액자 안에 갇혀있는 아버지 얼굴로는 방바닥의 우리를, 길거리의 우리를, 교실의 우리를 어쩌시지 못했다. 해마다 봄빛을 받아도 후줄근한 살은 여전히 피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친어머니 슬하에서도 질펀한 흙덩이 사이를 바지 가랑이 젖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야하는 계모의 아이들처럼 구부정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우리의 등이 미리 굽는 것을 가장 가슴아파 하셨다. 말끝마다, 아가, 등 좀 펴어라 하셨으니까. 한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에 가난과 수치라는 이상한 쌍둥이가 들어왔다. 이제 가난에 조금씩 적응되는가 싶으니, 수치심이 빠져나간 자리에 상대적 박탈감이 들어왔다. 박탈감보다 무서운 것은 무력감이었다.

하얀 눈 내리는 아름다운 날도 행복하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손이 시려 털장갑을 사러 상점을 기웃거리더라도 속없이 백화점까지 가면 안된다. 그 날은 어쩌다 스포츠센터가 있는 백화점 까지 걸어가게 되었고, 장갑 쪽을 기웃거리다보니 매장은 밝기도 했다. 은은한 눈처럼 하얀 목도리 위에 다소곳이 얹힌 하얀 털모자… 장갑까지 있을까? 가까이 들여다보는 내게 점원이 다가왔다, 뭘 찾으세요? 비싸서 안 사는구나 들킬 새라 실눈으로 안보는 척 들여다본 값은 8천원 남짓, 그까짓 나도 살 수 있겠다. 예상보다는 싼 느낌이었다. 용기를 내어서 이거 좀… 하면서 거의 다 살 뻔했을 때였다. 세트 상품이지만 따로도 되거든요, 처음보다 훨씬 친절해진 목소리가 말했다, 목도리만은 5만… 다음 말은 들을 수가 없었다. 동그라미를 잘 못 본 나는 부끄러움에 달아 그렇게 도망쳤다. 그 뒤로는 하얀 목도리가 아닌 아이보리도 베이지도 무턱대고 밝고 깨끗한 옷가지는 무서워졌다.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무섭다. 연한 빛깔  깨끗한  빛깔은 부이고 선이며, 후줄근한 내 살은 어두운 빛깔 속에서야 겨우 안심이 되었다.

병원을 처음 둘러보던 날부터 내벽 전체가 하얗게 칠해진 공간은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여기저기 낙서도 있는 알록달록한 유치원들과는 사뭇 달랐다. 드디어 건물 사회 내에 우리병원을 소개하는 날이 왔다. 그런 일은 정서적으로 가까운 피부과 쪽에서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여기에도 동창이라야 통하는지, 동생은 피부과와는 누가 봐도 경쟁관계인 대학 출신이었고, 하긴 같은 대학이라도 치의대와 의대는 그렇고 그렇다나? 동생은 이과에 문외한인 내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무조건 위아래 층 할 것 없이 문마다 노크했다. 문이 열리면 매번 주춤하는 나. 속으로는 안열리기를 기대하는 나. 그는 바로 그날 청소년연구소인지 심리개발연구소인지 그 쪽 사무실이 줄줄이 붙어 있는 어느 방 하나에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른 나무껍질 같은 어두운 얼굴색에 셔츠도 검게 입은 우울한 어깨너머로 잠깐. 우리를 보고 잠시 일어서는가 했지만, 문까지 인사차 따라 나서지도 않았다. 대개는 그랬다. 졸업하고도 대학병원에 남아서 온갖 경쟁을 겪은 동생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월하게 해 넘기고 있었지만, 거절에 쉽게 상처입는 나는 미간이 찡그려지는 것을 애써 참았다. 내가 의사동생을 축하해 줄 수 있는 건 접수창구 유리창 앞에 레이스로 뜬 작은 커튼을 만들어 꾸며준 것이 전부였고, 이제부터 나는 무조건 동생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울고 웃기도 주인 따라 해야 한다. 몇 층을 그렇게 다니던 동생은 OO여자고등학교 동창회 간판을 보더니, 훗훗, 우리도 여기에 동창회사무실 낼까 언니, 하고 웃었다. 언제적 같은 학교? 속으로 의아해도 겉으로는 얼른 따라 웃었다, 그때 내 앞에는, 들어선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입술을 열지도 않고서 냉랭하게, 뭡니까, 네, 알았슴… 정도를 말하던 굳은 얼굴이 다가왔다. 동생을 따라 웃는 내 웃음은 펼친 채 멎어서 한 동안 미키마우스 인상이었을 것이다.

왜, 정말 그러자니까, 여기 치과간판과 나란히.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날, 생글거리며 명함집을 들고 서있는 의사동생과 기정떡 쟁반을 들고 서있는 아무 것도 아닌 나말고는 아무도 없는 어스름 복도에서 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알 수 없는 사람의 알 수 없는 싸늘함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덩달아 싸늘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제 적 기억 끝간데 묻어둔 얼음덩이가 순간 되살아 난 때문일까? 그리고 추우면 사람은 뜨거움을 찾아 갈망한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혼란 가운데 나는 먼 데 기억 속의 차가움과 그때의 혼란을 함께 찾아 헤매며 달아올랐다. 그는 누군가 이기도하고 아니기도 했다. 나는 부지런히 복도들을 기웃거리며, 그의 사무실을 확인했다. 사람들이 뜸한 시간대에 가면 간판은 잘 볼 수 있으나, 대신 안 풍경이 보이지 않아서 긴가민가했다. 처음엔  그의 직업은 출판과 관련되는 무엇이었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으로 출판사 간판 쪽을 기웃거렸다가, 코너에서의 발걸음 수 등을 생각해서 그 옆의 연구소 쪽이 더 맞다고 생각되었다. 결국 그가 있었던 곳은 무슨 연구소이긴 하지만, 특히 그가 책임자가 아님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는 이 건물 상근은 아니라 했다. 방통대 나간다던가, 어디 겸임이라던가? 나는 미아동캠퍼스와 성수동캠퍼스 싸이트에 들어가 그럴싸한 과목들 교수명을 다 찾아 기웃거렸다. 몇날 밤을 새어도 과목명도 교수명도 모르는 어떤 것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언젠가부터는 눈을 들면 사방으로 거기에 있는 마른 나무가지 같은 그의 모습이 색유리처럼 내 시야를 가렸다. 병원 접수실 1평방미터 하얀 벽 사방에 그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겨우내 마른 나무 가지는 이제 조금만 껍질을 벗겨내면 아직 살아 물이 흐르는 연녹색으로 드러날 것이다.

초근목피를 이야기해주시던 아버지는 초근과 목피를 직접 보여주시기도 했었다. 칡넝쿨은 지금은 아카시아만큼이나 아니면 더 심한 숲의 원수가 되어 있지만, "그땐 이게 밥이었단다, 이 보아라, 밥칡을." 추석성묘 다녀오는 길의 칡넝쿨은 그냥 너울너울 푸른 잎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꼭 "그땐 이게 밥이었단다" 하셨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사오신 밥칡은 밥이 아니라 칡이었고, 그 자체로서도 그리 깨끗치도 못한 것이 뭔지 상급은 아니었다. 칼로는 잘 안되어 작은 톱으로 살금살금 썰어 놓으면 금새 누렇다 못해 시커멓게 되고, 치마 자락에라도 묻으면 영 버리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단 하나, 흥부의 호박도 이런 톱으로, 물론 대톱으로 켰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 있어서였다. 칡은 톱으로 아무리 썰어도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여기 저기 밥은 빨아먹고 칡만 뱉어놓은 몰골은 흉하기만 했다. 나중에 아버지는 안계셨지만, 하얀 천에 품어놓은 비밀스런 핏자국이 마르면 칡색깔이 떠올라 더 이상 칡을 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럴 때면 친구는 유난스럽다고 눈을 흘기고는 칡그릇을 제 앞으로 당긴다. 밥이야, 밥. 밥.

밥칡은 밥이라 하는 사람과 칡이라 하는 사람으로 사람을 갈라놓았다. 나는 이상하게도 아버지 딸이면서 아버지의 밥 대신 칡을 택했다. 밥칡을 칡이라고 하는 세계는 엉뚱하게도 이모의 세계였다. 어머니는 이모의 손 위 언니이므로 어머니의 세계 또한 그럴 것이나, 어머니는 부실임을 지켰다. 부실? 말장난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어머니를 부실이라 부르시면 웃음이 나곤 했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제주 부을나의 자손이었다.

아버진 4월 10월 삼성전 앞의 춘추제를 한번 다녀오시고 싶어하셨단다… 나중에 어머닌 왜 그 말을 하셨을까. 잔디로 덮혀 무슨 구멍인지 모를 띄엄띄엄 세 구멍에서 사람 선조가 나오셨다니. 그땐 아버지의 여름방학이었지만 날은 서늘했고, 오른 쪽 구멍 언저리에선 정말 안개 같은 속에서 무언가 우리에게 손짓한다는 섬뜩한 기운도 느껴졌다. 나는 하필 원숭이띠인데, 저기 풀 밑에서 신인이 아닌 원숭이가 손을 내미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아빠, 나 저어기 원숭이 안할래, 그거 대신 나비하면 안돼?

아가야, 그래 나비야, 누가 널더러 원숭이 하래? 나는 그 풀 밭에서 유일하게 사랑스런 작은 노랑나비에 빠졌다. 별명이라도 나비가 되어 기뻤다. 실제로는 움직이기를 너무 싫어하는 나는 어떤 양란에 피어난 노오란 꽃잎처럼 줄기 끝에 붙어 흔들거려도 떠오르지 않는 붙박이 나비였다. 그러다 중학교에 가서 난데없이 사전찾기 병에 빠졌을 땐 실망이 너무 컸다. 나비목 불나방과의 곤충. 날개를 편 길이 약 40mm. 온몸에 암갈색 털이 촘촘히 덮여 있으며, 앞날개는 흑갈색, 뒷날개는 오렌지색 바탕에 무늬가 있음. 콩·뽕나무·머위 등의 해충임. 그러니까 부나비는 기분 나쁜 불나방과 똑같이 엄청 나쁜 의미였기 때문이다. 성씨 때문에 나는 화려한 나비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감수성 따라 내 운명에 대한 예감에 무서워 떨었다. 별명을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고 2때 인구조사 통계가 발표되었다. 우리 성씨는 인구 8,565명으로, 순위는 274성씨 중에 108위였다. 이런 기억은 순전히 오기로 일기장에 적어둔 덕이다. 나중에 명부의 강 저편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 그게 가능할까 ― 뭔가 중요한 보고라도 될 듯이 난 그렇게 적어 두고 외웠다. 성씨가 운명이면 하는 수 없다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발음만 같을 뿐 아무 상관없이 간쑤성 지방에 살았다는 티베트계 부씨마저도 남 같지 않다.

하긴 부씨말고도 사람은 어디에나 넘쳤다. 막상 아주 대도시로 나온 뒤, 사람들은 어디에고 꽉꽉 들어찼음을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앞쪽은 높은 건물의 연속이고, 삼겹살 냉면집 실내포장마차와 카페들이 가끔 노래방과 섞여 자리한 도시. 거기에 크고 작은 병원 머리방 드물게 목욕탕도 끼어있으니 아무 구분이 가지 않았다. 밤에 조금 어두운 공간이 있으면 그곳은 은행이거나 관청이거나 그랬다.

그런 어느 한 구석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건물은 평범한 현대식 건물답게 고층에 장방형 구조로, 독특한 점은 돌아가는 층계가 한 귀퉁이에 있다는 것 정도이다. 뉴욕 같은 곳을 영화로 볼 때 밖에 나 있는 비상층계를 건물 안에다 넣어서 지은, 그렇게 해서 지그재그가 아닌 계속 타원형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느낌을 준다. 그의 사무실은 몇 개월이 지나서야 우리 치과 층에서 두 층 위 다른 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내가 들어있는 주거용보다는 한참 아래층인데, 5층까지와 6층 이상은 서로 다른 엘리베이터를 쓰기 때문에 만날 확률이 거의 없다. 내가 우연히 사무실로 올라가는 그의 뒤를 따라 치과에 가는 척 그 쪽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고 해서, 미리 내리면서 그가 어디에서 내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려야할 치과 층을 지나쳐 더 올라갈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내 주변머리이다. 누구라도 믿지 못해 할지 모르지만, 이론상으로 위층 사람의 정보를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아니면 다른 엘리베이터로 사는 형편이니 말이다.

그런데 어디서 그를 다시 만날까? 사무실 건물의 좁은 복도란 최소한의 이동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층 입주자들이 스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히려 꼭두새벽에 집을 나선 사람들이  영어학원이나 헬스클럽을 거쳐 황급히 아침을 먹으러 몰리는 지하 음식백화점에서 붐비기 마련이다. 아니면 다시 점심을 먹으러 흩어지는 근처 식당가에서나. 나는 그러나 이런저런 출근행렬과 마주치지 않는다. 건물 중간층 이상은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이라서 나처럼 거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X기획 또는 Y출판사 또는 Z칼라인쇄가 사주 철학원과 함께 섞인, 시체말로 주상복합 퓨전이다보니, 드나드는 사람 또한 각양각색이다. 나이로 어림 잡아도 20대에서 60대가 드나든다. 하기야 조금 낮은 층에 들어선 치과와 피부과에 중국한의원까지를 생각하면 한 현대판 면소재지의 축약과도 흡사하다.

결혼을 할 수 있기까지 얌전히 동생네 병원 살림 맡아서 하다 보면… 그것이 내 노처녀시절에 대한 이모의 현명한 처방이었다. 어머니는 속수 무책으로 이모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심약하신 아버지가 살아계셨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심약'은 그저 정서적으로 쓸 때는 미덕이 될 수도 있는 형태소다. 형태소 같은 단어는 내가 일년간 국문과를 전공한 이래 넓어진 내 어휘에 속한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심약은 신체적 심장의 약함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심장판막증인 채 가정을 가지셨지만, 남들 보다 성큼 큰 키로 미국사람이나 되는 듯이 멋진 영어선생님을 하셨다는 아버지. 아버지의 영어는 기억할 수 없지만, 긴 그림자는 기억의 끝에서 아물거린다. 겨우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설까 말까, 그렇게 일찍부터 어머닌 미망인답게 겸손했다. 겸손은 외할아버지의 미덕이었고, 어머닌 다른 방도를 모르는 분이다.

어머니 손아래 이모는 당차고 밝아서, 의대생과 연애라는 어려운 관문을 뚫고 결혼에 돌입하시고, 그래도 처음엔 너무도 조촐한 시댁 살림 탓에 고생도 많으셨다 했다. 그러나 이재에도 훤해서 대처에 자리잡자마자 적당한 크기의 종합병원을 내셨단다. 누군가 그런 것은 생각도 못할 시절이었다 했다. 지금은 시댁과 친정 온통을 좌지우지하는 실세다. 자녀 또한 계획표대로 잘 되었다. 의대생 아버지에게서 생산된 딸답게 소꼽놀이에서도 의사 역만 했다는 큰언니도 의사다. 내리 딸만 셋을 낳아 슬그머니 겁도 났었지만… 이라고 가끔 입버릇처럼 말하시는 이모는 기필코 아들을 보셨고, 그 모두가 의과대학 아니면 최소한 치과다. 나더러도 약대나 간호과를 가는 한에서 등록금 전액을 제의하셨지만, 어머니는 딸이 의사같은 것 못할 줄 미리 알고 계셨는지 욕심내지 않으셨다. 거기서 약사나 간호사는 이모네 의사자녀들과 너무도 확실한 일직선상의 비교이고 보니, 제하고 싶은 데로 나 둬라 좀, 하는 무덤덤한 반대로 딸 손을 들어 주셨다. 그러니까 학교 신문에 시 한편이 뽑혔던 나는 속없이 국문과에 진학했다. 국어교육과 아니면 교육대학을 갔어야 어머니 체면이 서는 선생님이 되었을 것을, 아니 그보단 대학 자체를 마칠 수나 있었을 것을. 인문대학은 등록금이 사범대학과 비교가 되지 않게 비쌌다. 그런 차이를 알 수 없었던 우리모녀는 이모의 눈총을 받았고, 그 대신 눈총과 함께 오는 돈은 받지 않았다. 첫사랑을 앓던 나는 1학년 성적이 시들했고, 10% 교직 이수자 신청에서 탈락하자 2학년을 포기했다. 물론 처음엔 휴학이었다. 봄날을 을씨년스럽다고 표현하는 작가를 이해하게 되었던 그런 봄날이었다. 을씨년스럼은 계절을 타지 않으리라는 것도 함께 배운 봄, 그 봄에 꿈은 접혔다. 그리고 여름이 가을이 지났다. 겨울에는 아예 두문불출, 이듬해 봄의 재생을 믿기 어려운 긴긴 잠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역시 심약해진 ― 이번에는 통상적인 의미에서 심약한 ― 어머니랑 조촐하게 사는 데 진력을 다했다. 우리에게는 결정적으로 에너지가 부족했고, 그래서 늘 돈이 부족했다. 돈 없이 돈 가진 자 무시하기, 그것 또한 우리의 놀이요 자존심이었다. 가까이는 이모네… 멀리는… 하지만 꿈도 없는 십여년의 세월은 아무 것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 내가 치과에 따라 들어온 것은 어머니가 더 이상 내 밤낮의 일을 참지 못해서 이모의 돈에 굴한 셈이었다. 너도 좀 쉬면서 결혼문제는 이모에게 맡기자, 자신이 없어진 어머니가 안쓰러워 더는 고집을 못했다. 그리고 병원 이삿날… 나는 그를 그렇게 만났다.

누군가의 조금 찡그린 닫힌 얼굴이 왜 그리 떠나지 않는지 모르는 동안, 처량한 신세도 잊은 채 나는 행복했다. 밤중에도 깜깜한 천장에 퍼지는 얼굴에 몰두했다. 천장이 뚫리면 더그매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 건물에서 24시간을 산다. 그런데 그를 마주칠 확률이 그리 없다니.

그를 가까이 오래 보게 될 때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갑작스런 가을 바람에 어깨가 움츠리던 아침, 난데없이 함께 아침 못 먹었다고 지하로 불러낸 동생을 보러 들어갔을 때였다. 해장국과 설렁탕만을 파는 저쪽 코너에 그가 숟가락을 쥔 모습이었다. 유난히 각도를 안으로 구부려 쥔 숟가락은 몸과 평행이었고, 그러자니 고개를 숙인 자세였다. 고개를 숙이고 아침 해장국인지 설렁탕을 먹는 남자. 아 센 머리가 보이던 그가 아직 미혼의 그러니까 확실히 독신이었어?

커피자판기 쪽으로 움직이는 그를 따라, 동생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내 고갯짓은 영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따뜻한 아침을 주는 어머니나 아내가 없는, 그러니까 소유자가 없는 자유인으로 다가온다. 그는 자유인이다. 내 또래 약간 위로 보일까 말까, 그 옆얼굴엔 분명 나이테가 없다. 나 또한 자유인으로서, 조건에 관계없이 적어도 한 남자를 사랑해도 되는 처녀다. 처녀의 자유, 이 자유는 오직 그를 향한 집념이 되어갔다.

이제 그가 내 주문에 걸려 내 코트에 들어오면 된다. 그는 우선 치통을 알아야 한다. 그의 치아가 그 얼굴 생긴 만큼이나 강단있고 영 상하지 않는다면, 그렇담 식당에서 뼈다귀를 잘 못 깨물든, 뭔가 사금파리 조각이라도 들어간 음식을 잘 못 먹다가 이가 부러지든, 아니면 누군가랑 층계에서 냅다 부딪쳐 앞니라도 어긋나야 한다. 살아가노라면 별별 일에 부딪치게 마련 아닌가. 가장 좋기는 퇴근 길 나서다말고 바로 이 근처에서 날깡패에게라도 걸려 쥐어 박히고서 이가 부러지든지. 그는 어쨌거나 치과에 나타나면 되었다. 그 다음 속수무책으로 누워있는 그를 관찰하는 것은 내 일이다. 그가 치과에 나타날 확률이라면 악담도 서슴치 않았다. 속으로 하는 악담이야 누군들 못해.  

어느 날 난 그의 아침 식탁 곁으로 다가간다.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손바닥 안에는 스태플러 침 하나가 구겨진 채 숨어 있다. 그는 너무 가까이 지나가는 사람에 놀라서 고개를 든다. 그 사이 슬쩍 그의 시래기 해장국그릇 속에 쇳부스러기가 떨어진다. 나는 그냥 죄송하다는 투의 우물우물 말을 더듬고 만다. 계속 숟갈질을 하는 그의 입안에서 딸그락 소리와 함께 송곳니가 망가진다. 송곳니가 아니래도 좋다, 어딘가 스태플러 침은 그의 치아를 손상한다. 그는 치과에 올라온다. 그가 올라오기 전에 난 부지런히 접수부를 닦고, 작은 커튼에 살짝 향수를 뿌린다. 짜증난 그가 더욱 찡그린 얼굴로 유리창문을 밀기도 전에 내가 안쪽에서 열어준다. 많이 아프셔요?

아니 어떻게 제가 아픈 걸? ― 아프시니까 오셨겠지요. 우선 등록 하셔야지요. 원장선생님은 아직 커피 마시는 중이네요.

그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나는 조신하게 말한다. 성함은요? 아니 보험 카드를 주셔요. 안가지고 오셨다구요? 그럼 다음에 가져다 주셔도 되어요. 성함이?

그의 이름을 나는 여기 말할 수 없다. 물론 그렇게 병원을 찾아온 적도, 이름을 기록한 적도 없으니까. 하긴 알더라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에 단 하나  '그'는 그냥 ㄱ이어도 좋다. 더구나  내 별명의 ㄴ자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ㄱ자와 ㄴ자가 얼마나 오묘하게 어울리는가 너 알고 있어?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친구에게 묻는다. ― 그거야 ㄱ과 ㄴ이지, 뭐 위 아래로 쓰면 ㅁ자가 되어서 얼마나 안정감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지, 그런 걸 너만 섬세하게 안다고 생각하진 마. 그 위에 ㅅ자를 놓아서 아예 집을 짓지 그러니?

친구는 모르고 있다. ㄱ자와 ㄴ자를 그냥 위아래로 두지 않고 가까이 밀어 놓으면 어떤 형상이 되는지를. 동서남북 어느 편에서 보아서도 완벽하게 끼이는 그 적나라한 포개진 자세를 그녀는 알 리가 없다. 콜비츠의 《사랑하는 사람들》어때? 심오한 의식의 작가에게서 하필 가장 식상한 포즈의 작품을 인용하면 그녀의 표정이 어떨까? 그녀에게 내가 침묵하는 건 내숭이 아니다. 자존심이다. 나의 그를 지키는 자존심. 만에 하나 나의 외설스런 생각을 눈치챘다가는 그녀는 당장에 그를 형이하학적 존재로 단정지을 것이 뻔하다. 그녀는 어떤 경우에는 단견에 가깝게 철저히 속단하고 확고하다. 그는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의 사무실, 그가 있던 사무실 문 위에는 A4 평으로 크기 정도의 작고 위엄있는 간판으로  XX심리문제연구소 라는 간판이 있다. 수 십번 바라본 간판이지만, 그것도 다들 퇴근하고 난 밤중 시간에 올려다보고 가곤 했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로 사람들이 돈을 버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하는 일이 그밖에도 무슨 대학의 무슨 강의를 한다는 것, 그 정도면 내숭을 가장한 채 알아낸 정보치고는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심리학연구소가 아니라 심리문제연구소니까, 간판으로 미루어 대학의 학문보다는 조금 낮은 연구소라 다행이라고 내가 말했을 때, 친구는 정말 깔깔 웃어버렸다. "무슨 학"자가 붙어야 높은 학문이라구? 그래 뭐, 학문연구소가 아니고 문제연구소니까 조금 더 낮다고 치자, 그럼 너하고 되는 수준이라고 상상하니? 방통댄가 어디 겸임교수라 안했어? 꿈도 야물다! 우리가 요샌 소설이라도 읽느냔 말이야. 영화나 뜨면 그런 책 사볼까, 하긴 그 짓도 이젠 안하잖아?

사실은 내 젊은 시절 전부를 테트리스 화면과 살아왔다. 아무 것도 투자하지 않고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시간만 죽는 절대가 마음 편했다. 업보처럼 쌓이는 색색의 조각들, 전사처럼 수평선을 평정하는 내 오기, 다른 게임은 유희요, 다른 취미는 사치였다. 살아 숨쉬는 상대가 없어 비교가 안되는, 비교가 안되어 상처가 없는 화면. 그 추상세계에 매달려 살아온 밤들, 밤들.

하긴 저녁 아르바이트 땐 그것도 어려웠지. 기계적인 시간 배분, 6시 50분쯤 집을 나서서 유치원 7시 반에서 40분 도착 - 5시 반 출발, 레스토카페 6시 반 도착 - 1시 출발, 집에 도착하면 1시 20분. 퇴근은 주인언니 남자가 시켜주니까 빠르다. 하루에 접하는 두 세계는 너무 달라서 처음엔 상쾌했다. 유년에서 성년으로, 천사에서 속물로.

이건 나만이 아는 비밀이라고 생각하는데, 낮에 만나는 눈동자들은 얼굴 절반쯤에 있는데, 저녁에 마주치는 눈들은 이마 쪽으로 훌쩍 올라가 버린다. 하루에 한번씩 그렇게 자주 인간의 눈의 위치가 변하면 어지럼증을 타게 된다, 그래서 야위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 일욕심과 돈욕심 때문으로 생각하시고 '살 안 빠질' 제안을 받아들이셨을 것이다. 출퇴근도 안하는 조건, 하지만 이 치과병원에서 덩달아 가운만 입고 있는 직원신분은 애매하다. 내 나이 때문에 위생사도 보조사도 나를 그냥 언니라 한다, 기공사도 누나 대신 언니라 한다. 또 원장의 손위라는 부가가치가 있으니까 다들 친절한 것 같다. 하지만 유치원 보육교사 자격 외엔 운전면허증도 없는 순 무자격자가 치과접수에 앉아 있기 힘든 실상이 곧 드러났다. 첫 환자와 상담을 잘해야하는 간판인데, 내 하얀 이의 유혹만으로는 부족하다. 난 다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런 내게 무슨 꿈이 소용될까. ― 넌 꿈을 꿀 가치에 미달 아니냐? 나는 훽 친구를 겨냥하고 고개를 돌린다. 친구는 내 반박을 아예 무시할 양으로 그새 어디로 물러났는지 조용하다. 그럼 참 오랜만에 나 혼자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꿈이라면 나는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생에 꿈 같은 것을 믿기에는 너무도 생의 왜소함에 길들어 왔다. 누군가를 그리는 것? 그런 것은 꿈 축에 들지 않는다. 그건 정말 테트리스나 같다. 테트리스 화면도 나를 인식한 적이 없다. 그냥 내 삶 죽이기 상대로 적당할 뿐이다. 그 무미에 돌아버릴 것 같을 즈음, 어쩌다 살아있는 대상이 의식되었고, 그것에 추상적으로 목숨을 건다. 친구는 집착이라고, 나는 사랑이라고 우긴다.

아니, 사랑은 알 수 없는 말이다. 그의 그림자 그의 뒷모습 혹은 옆모습이 오피스텔 건물의 좁은 복도를 돌아 지나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아려온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그의 앞모습은 기억할 수도 없는 것이, 단 한번도 그를 바로 쳐다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 그를 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그의 앞모습을 모르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모르는 앞모습에 꿈을 담아서 전혀 다른 얼굴을 숭배하는 것, 혹은 옛날 한번 박혀버린 얼굴을 대체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좁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단 한번 가까이 섰던 날, 후다닥 자세를 옆으로 틀어서 그의 헐렁한 양복 옆구리만을, 더 헐렁한 주머니만을, 주머니에 반쯤 들어간 손등만을 바라보았음,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내려야할 층에서 내리지도 않고 계속 그러고 있다가 손등과 양복주머니와 양복이 함께 멀어지는 동작을 덜덜 떨며 바라본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문이 다시 닫히자 후우 긴 한숨을 쉬어, 아직 안데 남아있던 한 두 사람을 놀래키고도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함, 그것이 사랑이라면 또 모른다.

어쨌거나 열심히 바라는 건 순간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럴 경우 우리는 그 대신 무엇을 잃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된다.

그런 기겁할 일이 갑자기 닥쳤다. 불사우나라는 이름의 섬뜩한 목욕탕이 옆 건물의 꼭대기 바로 아래층에 새로 생겼는데, 겨울 시즌에 맞춰 개장한 전략에도 불구하고 겨울 초입은 따뜻하기만 했다. 그러자 공짜표들이 이웃에 돌았다. 그러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입시철이 된 것이다. 병원식구들은 퇴근을 서둘러 구경을 나섰다. 불기운은 이상한 돌무더기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옷을 반쯤 입은 채라고는 하지만 남녀가 한 동아리가 되어 멋대로 퍼져있는 공간들이 쉽게 편해지지가 않았다. 차라리 풍덩 함께 들어가는 수영장만 못한 것이, 몸뚱이들은 엉기적 드러나고, 이글거리는 불 때문에 기분 나쁜 배음이 살덩어리 주위를 감돌고 있었다. 우리 병원 식구들이라야, 위생사는 조무사보다 더 젊고 더 날씬하지만 미용체조인지 몸을 잘 움직여가며 불 곁에도 잘 견뎠고, 조무사는 몸매랄 수도 없는 퍼진 꼴로도 적극적으로 살을 빼려한다거나 땀을 내려는 동작을 하지 않았다. 우리 둘이서는 그저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자리조차 밀리고 있었다. 그 인간이 글쎄… 라는 난데없는 타령들도 정말 들어야할 옆 사람에게서만 멈추지 않고, 몇 사람씩을 건너서 뭉근 김 속에 섞여 들어가 멀리까지 떠다닌다. 좋으면 무릉도원이지만 나삐 보자면 연옥의 풍경만 같았다. 뜨거운 불기운에도 뼈마디가 늘어나기는커녕 잔뜩 긴장한 옹색해진 어깨는 앞으로 쏠리기만 했다. 핸드폰이 없는 나는 좋은 핑계가 되어 전화 올 데가 있다고 먼저 샤워실로 물러났다. 겨우 서서 뜨거운 몸을 식히기도 어려운 공간이었지만 찬물이 상쾌했다.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도 구원이었다. 젖은 머리를 손으로 대강 쓸고 유리문을 나서 두어 개 층계를 내려 밟던 나는 그만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가 여자와 함께 바로 코앞에 나타난 것이다, 풋풋한 지성적인 여자와.

젊다 못해 어린아이 인상의 여자는 설마 애인일까? 그새 깜깜해진 사방 속에 뾰얀 얼굴은 창백한 달처럼 빛났고, 몇 발짝 앞이었지만 검은 머리와 어울리는 분홍빛 입술이 도톰했다. 그의 일자 입술과는 전혀 닮지 않은, 그러니까 사람은 자신과 닮지 않은 형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스쳐 지나지 않고 머뭇거릴 수도 없는 터라 아까운 걸음을 떼었다. 뒤돌아 보니 운동화스타일로 젊음을 과시한 여자는 풋풋함이 넘실대는 아예 아이였다. 연구소와 관련될까? 아님 방통대 학생인가?

나도 모르게 나는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도심이 아닌 외곽으로 빠져나가려는지 전철을 이용해서 나로선 다행이었다. 1미터쯤 거리로 가까이에 가 섰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대화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재잘거리며 흔들어대는 머리카락이 그의 코트앞자락에서 뭉개지고 있었다. 그를 올려보는 코는 그의 턱수염 자리에 닿을 듯 했다. 수염이 있었다면 닿을 거리였다. 아니 그냥도 닿았다. 외설스런 감동으로 소름이 끼쳤다. 얼마를 가다 내린 역은 완전히 주택가 가운데였다. 불빛 어두운 한적한 빌라들의 숲 속에 이르자 두 사람의 발소리는 더욱 활기를 띈다. 손을 잡고 거의 뛴다. 사방이 조용하니, 크로스로 맨 가방에서 절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학생이구나, 틀림없이 방통대. 그럼 제자인데 어쩌면? 더 빨리 달려간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누나, 추카추카, 얘야 어서 온, 여보오…

누나 축하해, 내가 만들었다, "축"자 여기 ㄱ자는 엄마가 쬐끔 고쳤다. "하"자는 완전 내가 했어, 엄마 그치? 추카추카! 아빠, 재수하면 두 번씩 말해줘야지? 누나야, 추카추카!

자 우리 딸, 고생했다. 그렇다고 아빠 오늘 차도 안가져 가셨는데 아빠한테 들른 거야? 자 어서 손만 닦아, 저녁부터 먹자, 요 돼지녀석도 배고픈지 귤을 몇 개나 집어다 먹으면서도 누나 기다리자는 구나, 기특하게.

엄마, 아빠, 우리 돼지야… 모두모두 감사해요, 이번에도 수능 모자라 떨어지면 어쩌나 너무 겁났어. 엄마 아빠 때는…

내 사랑은 환상이었다. 대상의 허상. 그가 내 소중했던 대학 초년 때 보들레르를 읽어준 풋나기 강사였을지, 나는 모르고 떠날 것이다. 그 뒤로도 십 수년씩 대학을 몇곱 다닌 엄청난 지식의 소위 해외파에게도 뿌리내리기 어려운 슬픈 현실이 있는지, 나는 모르고 떠날 것이다. 남자에게 아내의 돈은 살 속에 가시인지, 나는 모르고 떠날 것이다. 대도시 현대인의 사랑은 평균 3년하고 167일 두시간 지속된다는 어느 소설책에서 읽은 신빙성 있는 통계도 무색하다. 내 사랑의 봄은 겨울 초입에 산산조각이 났다. 시작도 없던 일, 끝이라는 단어도 우습다. 무엇인가를 쳐다보기만 한 내 젊은 날, 열아홉에서 오늘까지 육천 밤이다.

사랑이 아무리 부실해도, 아무리 속절없어도, 한번 쏜 화살은 그곳을 향해 날아간다, 일직선으로. 그곳에 아무도 없으면 그냥 지나칠 것이다. 지구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둥글다면 내 등뒤에 와서 다시 꽂힐 때까지. 그 살촉에 내가 쓰러지더라도 한 가닥 희망은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늘 쏘아보면서 밀어냈던, 나를 위해 충고만으로 살아가던 내 친구 차례다. 그녀는 아예 내 삶을 ― 원래 그녀의 삶이기도 했던 ― 혼자 통틀어 살기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코멘트만 이 아니라 생으로 뛰어들어, 이성적인 그녀의 방식으로, 이제는 안쪽을 향하여.  

 

                                              *

채찍 모양으로 끝쪽이 가늘어지는 나의 더듬이는 우선 아름다움에서 확실히 나비만 못하다. 끝을 여왕의 가늘게 떠는 황금관 장식처럼 부풀린 호랑나비의 더듬이를 가졌다면 행여 그가 나를 바라보았을까? 굵은 몸은 아니나 몸에 비해 날개가 작다 보니, 화려한 색깔을 뽐내려도 나비에 댈 수 없는 운명이다. 앞 뒷날개 사이의 날개가시도 얼음짱에서 미끌어지는 나를 더는 지켜주지 못한다.

내일 아침해가 떠오르면 늦잠을 자지 않는 그가 커튼을 열어젖히고 하늘을 우러른다. 바닥에 떨어진 나방 하나가 썩은 잎 모양처럼 얼어붙어 있다. 그는 행여 글감 하나를 발견하여 나방의 생태를 생각할까? 어젠 달밤이 아니었던가, 첫눈이 내리기 십상인 음력 시월보름밤? 밤에 나방이 등불에 모이는 것은 온도나 습도 등 조건 따라 빛에 반응하여 날아드는 것이라지만, 이상하군, 달밤에?

그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에 대해서는 정리가 필요한 학자다운 사람이다. 짚신벌레가 열자극에서 물러나며,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 가려하는 것 따위, 그래, 외적인 자극으로 촉발되어 생기는 수동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아니 그건 반사보다는 전신적 반응으로서 주성적 행동이라 했지. 그는 자신의 간단명료한 코멘트에 만족하며 메모를 위해 책상으로 향한다. 그가 PC를 켜기도 전에 나는 벌써 유령이 되어 〈새 글〉에 '부나비'를 올린다. 날개를 편 길이 약 40mm. 온몸에 암갈색 털이 촘촘히 덮여 있으며, 앞날개는 흑갈색…

커튼을 열고 밖으로 나온 사람은 그의 우아한 아내일 수도 있다. 어머나 깜짝이야, 이 겨울에 무슨 벌레지? 난 또, 썩은 껍질이잖아.

그는 오늘 따라 늦잠이다. 밤새 꿈이 뒤숭숭했고, 이상하게도 가슴이 결린다. 가슴을 오므릴대로 오므리다가 갑작스런 후회가 온다. 요사이 담밸 너무 피웠나, 이건 아닌데… 아내를 부르려해도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만지려해도 곁에서 숨소리가 느껴지지 않는다. 텅 빈 침상은 나무숲 공터의 밤공기처럼 축축하다. 엉뚱하게도 언젠가처럼 그 낯선 여자가 먼데서 손을 내밀고 있는 것 같다. 찢겨진 젖은 은행잎들 사이에서 연기처럼 솟은 듯, 멀리 펼친 망토 자락은 그물날개의 아늑한 유혹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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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  (0) 2001.05.15
Posted by 서용좌
소설2002. 9. 1. 23:00

    태양은   

 소설시대 4호

 

 태양은 바람을 타고 둥실 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따가운 등뒤로 그것을 느낀다. 나보다 한참 젊어서 떠난 여자가 매장되고 있다. 말하자면 토장(土葬) 절차가 냉랭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자들이 장지까지 따라나서는 일은 좀 뭣해도, 나 어린 질부의 장례에 발인만 보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꽃상여 대신 장의차와 혼백이 도착했을 때는 멀리에서 보아도 천광(穿壙)은 끝나 있었다. 광상(壙上)에 차일을 친 흔적도 없이 쨍쨍 햇빛이 광내에 내려꽂히고 있었다. 구덩이는 붉은 흙이 드러나 보일 뿐, 선입관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차가운 느낌을 발한다. 벌써 윗통을 벗다 시피 번들거리는 신체를 드러낸 건장한 체격 서넛이 노동 후의 쾌감을 즐기는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쉬고 있다가 상주들을 맞는다. 산역을 업으로 하다보면 그것 또한 일상이 되는 것인지, 건강 이온 음료수 선전 같은 데에 나오는 땀과 성취의 희열에 젖은 운동 선수 폼은 화덕처럼 이글거리는 열기로 인해 내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했다. 다행으로 나는 일찌감치 정지했으므로, 공동에서 멀리 서있게 되었다. 혼백이 도착하자마자 제물 진설이 부산하다. 특별히 오열하는 사람도, 숨어서 훌쩍거리는 사람도 그저 그렇다. 그저 숨을 죽이고 절차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숨을 거두면 이렇게 버려지는구나… 


삼일장이라지만 저녁 늦게 숨을 거둔 경우에는 만 이틀이 채 못된다. 이번 경우는 저녁 늦게 죽음이 확인되었다고나 할까. 응급실은 거쳤지만, DOA, 데드 온 어라이벌, 그러니까 도착 시 이미 사망이라는 진단으로 곧바로 영안실 행이었다니. 죽은 시각도 서로들 모른 채 그렇게 엉거주춤 장례절차가 있었고, 이제 그 마지막 과정이 냉랭하게 진행되고 있다. 매장 풍습은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던가, 세상 어딘가는 몰라도 우리 나라에선 고인돌로 미루어 선사시대에도 벌써…


이런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어른 축에 끼이는 내 역할이었다. 늘상 그랬다. 시댁이란 공간에서 여자들은 대개 그랬다. 지금 정중하게 버려지고 있는 자는 새장의 새, 집 속의 여자였다. 나는 새장의 새, 집 속의 여자… 누구라도 들을세라, 그녀는 그런 구절을 외곤 했다. 라디오 프로에서 딱 한번 들었는데 외어졌다고 했다. 그 시의 제목이 「새에 대한 생각」 인지도 모르면서. 숙모님댁에는 시집들이 많은가요,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숙부님 외국출장 가셨을 때나…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이 생일이라도 처음엔 큰집에서 챙겨주었고, 나중엔 괜찮은 식당에서 기분을 내는 편이었다. 내가 직장나가는 핑계로 음식장만을 못해서 그렇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그편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집안 행사는 항상 큰집에서였다. 어떤 며느리도 그런 큰집 시집살이는 어렵다. 단촐하게 살다 시집온 사람이면 더하다. 단촐하다 못해 외로움밖에 모르던 그녀는 어리둥절도 했으리라. 어리기도 헤서 더욱 안쓰러웠다.

바깥생활 하시니까 "새장의 새" 그런 시는 모르시지요. 엄청 가슴이 찡한 걸요, 날개는 부러지고 주둥이만 뾰쪽한 새… 

왜 몰라, 꾀 유명한 시인걸. 날개는 퇴화되고 부리만 뾰족하다,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아니 어떻게?

그래 여기 어디 시집이 있을 것이야.


저 어려운 책도 좀 주세요… 그녀는 책들을 그리워했다. 처음엔 그렇게나 짧은 학력인지 몰랐다. 학력에 대한 보상으로 어려운 책을 탐했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소설도 수필도 건성으로 가지고만 있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세상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한 두 권 골라주기가 쉽진 않았다. 사실 그녀에게는 거의 모든 책이 어렵다. 다행히 그녀는 시집이라야 가장 어려운 책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 마음으로는 시집 몇 권 골라주기는 부담이 없었다. 내용이라는 것이 무게가 모두 달라서 권해준 부담이 날아가 버리니까. 시집을 좋아해도, 사람들은 그녀를 조금 맹한 것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모르는 그녀가 시 몇 편에 탐닉한다고 아무도 그녀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상황에 맞는 모습을 주문했지만, 역할 유희에 서툰 그녀는 확실히 조금 맹해 보였다. 적대적이지는 않은, 그러나 확실한 계급사회를 의식하지 못한 그녀는 당연히 벽에 부딪곤 했다. 더러는 사람에, 어깨에, 아주 더러는 가슴에 부딪는 것이었다. 그녀의 가장 험준한 벽은 예상대로 시댁 식구들이었다. 걱정 말라던 기사 같았던 남편은 결혼과 더불어 차츰 적진으로 넘어갔다. 남편은 눈을 아래로 내려 뜨고 굴릴 뿐이었고, 마루 바닥과 그녀를 제외하곤 남편의 그런 내색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폄이 시작되었나 보다. 여자의 남편이 조금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옆의 딸은 고개를 더 깊게 떨구기만 한다. 어른들이 일러준 대로 하관을 잘 지켜보아야 한다. 곡을 그치거라…  누군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말해도 곡을 그칠 사람이 누구인가. 목놓아 울던 사람이 없다. 말은 떠다니고만 있다. 굄목 위에 관이 가볍게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가는 길에도 어딘가에 부딪고 가는구나… 붉은 명정을 덮는 동작이 보인다. 곡이 잠깐 시작되다 만다. 형식적인 곡이다. 그게 아니다. 사람들은 곧 차렷 자세로 합창단들처럼 노래를 부른다. 곡을 하려는 사람, 그것을 말리고 예배의식을 질서 있게 도입하려는 사람이 잠시 엇갈린 것이다. 외가로는 일찍 깬 기독교 집안이지만 친가는 구식이고, 자식들은 점차 인텔리화하면서 기독교도가 되어가는 과정이라서, 그러니까 골수 정통 기독교인 가정이 아니어서 생긴 일화였을 것이다. 나는 노래를 알지도 못하고 입만 따라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또한 꼭 가까이 다가갈 계제도 아니라서 어딘가 엉거주춤 머문다. 한 자리에 그냥 서 있으려니 근처의 묘표들만 키가 자라오듯 눈 속으로 파고들어 온다. 어딘가에 이 여자를 위한 묘표도 준비되어 있겠지…


컴퓨터 자판 모양으로 일정하게 배열된 묘표에는 대충 궁서로 여러 자손들의 이름이 보조되어 음각의 성명자가 적혀있다. 동네의 환경정리는 자유민주주의로 각양각색 서로가 서로를 흠집내는 것이 우리의 주택문화이지만, 묘표는 이웃 눈치를 보는 셈인지 하나 같이 일정한 크기이다. 망자는 묘표에 적힌 글씨가 아무리 달라도 계급이 없어진다. 이삼일 장례 기간 중에는 망자가 무슨 회장님이나 지방 유지라 해도 누구도 그의 그녀의 묘표 따위에는 별다른 신경을 쓸 리 없고, 관리소 측에서 그냥 주는 대로 묘표를 받아오기 때문이다. 이 바쁜 세상에 죽은 자를 위해 취향을 고려해줄 산 자는 아마 없는가 보다. 물론 선산이라는 제 2매장지로 승격될 때는 문중의 장식품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녀의 묘석에는 무엇이라 적힐 것인가. 무엇이라 적어야 할까. 아니 너는 무엇이라 적고 싶어 그러느냐? 서로 시댁에서 만난 사이인 나는 그녀의 처녀 적을 전혀 모른다. 어린 나이에 학생남편 따라 시집에 들어와 오늘에 이른 여자, 그것이 외형의 전부다. 돌이켜 생각하자면, 멋모르고 대졸 인텔리 혹은 기독교인, 혹은 대졸 인텔리 기독교인 등으로 둘러싸인 환경에 표류하여, 크지도 않은 눈을 높이 치켜들고 저 하나의 공간을 움켜쥐느라 소진해 버린 세월이 그녀의 인생의 총계였다. 서양이라면, 대졸 인텔리 기독교인들의 섬에 표류하여 애써 살다간 아무개여, 저 세상에선 아무도 아닌 섬에 이르러 숲 속의 새가 되거라… 라고 위로의 문구를 새겨 넣을 지도 모른다.


     날개는 퇴화되고 부리만 뾰죽하다

     사는 게 이게 아닌데

     몰래 중얼거렸다…


원래 시의 "중얼거린다"만 과거형으로 바꿔 묘비명으로 써도 족하리라. 그녀의 입에서와 다르게 무심코 과거형으로 내뱉은 내 마음은 벌써 그녀를 지우려 하는 것일까? 이 따가운 태양에 머리를 어지럽히면서 여기 왜 서 있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 여자를 매장하는 것인가? 어떻든 저승이 있다면 지하에 있을 것이기에 묻으려 하는가? 이들 가족이 기독교인들이라면 망자를 왜 하늘에 묻지 않는가? 하느님 가까이, 저 하늘 속에. 하긴 그래서 요즈음엔 망자를 연기로 만들기도 한다지… 아니면 사자를 겁내어서 이승에서의 관계를 끊기 위하여 매장하려는 것일까? 일종의 확인사살로서? 옛날 어디선가의 풍습으로는 시체 위에 무거운 돌을 눌러 놓는 매장법도 있었다고 했다. 시신을 염할 때 튼튼한 삼베로 12마디씩이나 묶는 것으로 보아도, 확인사살을 아니라 해도 확인이별 쪽은 확실하다. 목관에는 못을 박아, 석관은 말할 것도 없이 무거운 중량으로,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을 갈라놓는다.


그래요, 그랬어요. 전 사실 이만큼만 살다가 떠나게 될 줄 예감했어요. 딸아이가 영 등돌린 다음부턴 마음이 먼 데 하늘 보듯이 내 지나온 삶을 바라보기만 했어요. 미안해하실 것 없어요… 혹시 제 이름을 알기나 하세요? 어차피 객식구처럼 가끔 만난 처지에. 게다가 숙모님이야 무슨 걱정이 있었나요? 눈물나게 고마운 것은 저에게 한 두권 시집을 선물해주신 일이었지요. 제게, 누구도 시집 같은 것을 선물해준 적이 없는 제게. 딸아이도 마찬가지였지요. 무식한 엄마, 거칠은 엄마라고 부끄러워했으니까. 무식하기야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딘가로 사라진 저는 뭐 유식쟁이에 끼이게 되었나요? 머리 나쁜 엄마 탓에 딸아이 성적이 그 모양이라고… 말로는 차마 안하면서 바라보는 눈길 눈길들… 그런 것이 독이 되어 들어갔지요. 그런 것은 독이 아니고 내가 삼켜온 술이 독이라구요? 녹아버린 것이 내장부터인지 마음부터인지 누가 안답니까? 차가운 땅속에 아주 단단히 갇히기 전에 내뱉는 소리가 으스스 귓가에 어린다.


그녀가 속앓이를 시작한 것은 아직 어린 나이로 아이를 가졌던 그때부터였다. 그녀의 인생관으로는 아이는 제 아버지를 가져야 했고, 그 일을 위해 그녀는 다른 많은 것을 버렸다. 아이는 태어날 때 제 아버지를 가졌다. 대신 제 어머니는 세상의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딸아이의 잇몸에 싹트는 하얀 이빨 조각만으로 행복했다. 달리 행복을 구할 데가 없었고, 그냥 그것이면 되었다. 남편은 아내를 조금 부끄러워했다. 그것이었다. 시댁에선 시어머니도 어렵고, 공부하느라 미혼인 손위 시누이도 어렵기만 했다.


어찌 저렇게 아무 것도 못하고 애 하나에 매어서도 쩔쩔 맨다니. 어쩌다 그리 순해 빠져서는. 순한 건지 모자라는 건지 원.

시어머니의 혼자 말에 시누이는 짜증이다. 엄마, 그러게 왜 양보할 걸 양보해야지. 엄마 이제 어떡할 건데?

얘야, 너도. 이제 뭘 어떻게 해. 네 동생이 책임진다는 걸 누가 말리며, 또 사람이 책임은 져야지. 여자가 집에서 뭐 별 자본가지고 산 대니, 인물 어지간하고 조용하면 되었지. 다음에 아들만 낳으면 되었지 뭘 그러니. 너도 곧 시집갈 것이면 그러는 것 아니다. 아 누나가 어서 가야지. 어서 어서 잘 들 골라 봐. 네 형부들 오죽 잘났냐? 


그 시어머니는 내게는 큰형님이었다. 큰형님네 가족은 평범 무탈했다. 시아주버님은 농협에 잠시 있었던 경험으로 작지만 탄탄한 사업을 지니고 있었다. 군수 살았던 개화된 장인 덕에 지방 유지들과의 교제 범위도 넓었다. 지방일수록 기독교는 개화된 특권 비슷했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러움을 샀다. 위로 세 딸을 낳았지만 늦게 본 막둥이 아들 하나로 기쁨을 더했다. 아들 딸 모두 대학을 보냈으니, 그 시절로서는 성공한 어머니였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큰딸은 부부교사로 부족한 듯 건실하게 살고 있고, 피아노를 전공한 둘째는 졸업 전부터 졸라대는 고교동창생을 따돌리고 중매자리를 놓아서 일찍 시집 보냈다. 어찌어찌 지방분교로 내려가 의과대학을 나온 사윗감에 걸맞게, 집안에 의사 하나는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무리를 했다. 셋째는 대학원까지 진학했으니, 자식들이 점차로 성공하는 기미에 내심 즐겁기만 했다. 그 아이 공부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온갖 정성을 들이지만, 노상 막둥이만 걱정이었다. 썩 양에 차지 않은 대학에 진학한 것도 그랬지만, 우직하게 남들 따라 일찌감치 군대에 들어간 후는 걱정이 더했다. 그러나 딸들 덕분에 시간은 빨리 흘렀다. 명절 때에도 어떻게 휴가를 맞췄다. 참 좋은 세상이었다. 제대만 남았다.


아들 문제는 뜻밖에 시작되고 있었다. 학교 앞 미장원에서 얽히기 시작한 인연, 물론 처음에는 그냥 아무 일도 아니었다. 대학 입학 후엔 머리를 짧게 자를 필요는 없었고, 스타일도 자유로워서 이발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이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들이랑 어울려 미장원에 들어갔다. 남학생들도 이발소 대신 미장원엘 가는 모양이었다. 이발소들이 이상하게 변질되고 있었고, 고등학교의 구내이발소를 찾아가는 것은 좀스런 짓이었다. 그날 서너 명 남학생이 몰려들어간 미장원에는 겉보다는 안이 사뭇 작아서 주인 아주머니 외에는 어려 보이는 잔심부름꾼 하나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미용사 한 사람이 머리를 깎자면 시간이 너무 걸릴 수밖에, 그런데 그들은 젊은이답게 마음이 급했다. 처음엔 그냥 천장을 향하고 기다렸지만, 다음에 여자 손님도 들어오니까 더 급했다. 조금 있으려니 머리에 보자기를 쓴 아주머니/할머니도 들어왔다. 할머니는 대뜸 애송이 처녀 쪽으로 가서 앉았다. 보자기가 풀리자 분홍색 뼈들이 나타났다. 동글동글한 뼈는 플라스틱 기구였다. 플라스틱이 풀리자 곱슬머리가 나타났고, 그 속으로는 허연 머리통이 비췄다. 처녀가 머리를 감기고 나니 아까 보단 나은 머리가 되었다. 손질을 하자 점점 더 나아졌다. 아하?


저 우리 다 한 줄로 기다려야 하나요?

아 저기도 미용사예요. 오래 되진 않았지만 분명 미용사니까 일하지요.

야 우리, 가위바위보 하자.  


그렇게 해서 초보미용사에게 걸린 그는 어색해 고개를 비뚜름히 그쪽 의자에로 엉거주춤 앉았다. 보자기 할머니가 앉던 모습을 흉내내었다. 그런데 미용사는 눈을 들지도 않았다. 거울 속에서도 눈을 주지 않은 채, 어떻게요? 하고 묻는 말이 입도 벌린둥 만둥 했다. 대충 약간만 짧게 라고 말하며 괜히 주눅든 그는 거울 대신 무릎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은 천으로 덮혔으니까 무릎이 있는 근처였다. 어딘지 스물거렸다. 머리카락이라도 등으로 들어간 것일까? 무심코 오른손을 움직여 가려운 쪽으로 뻗으려 했다. 그때 손목쪽 팔에 물방울이 살짝 스쳤다. 그때 그는 그것을 지나쳐야 했을 것이다. 물방울 일까말까 하는 작은 습기, 그것을 지나치지 못한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그 작은 물방울의 출처를 올려다 본 그는 무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누가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처녀의 눈에 소리 없는 눈물이 한 방울 넘쳐서 떨어진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본 십분의 일초, 그 다음 계속된 것은 영겁의 시간 같았다. 그는 처녀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본 죄인이 되어서 괜스레 고개만 쳐 박았다. 머리 깎이는 소리도 의식되지 않았다. 밖은 어느새 어두워 있었고, 무심한 발걸음으로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밥 먹으러 가자는 친구들의 말에 어째 목이 마르다며 맥주집을 고집한 것은 그였다. 여자의 얼굴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올려다보았는데도 그랬다. 잔을 든 오른 손 팔목에 아니 조금 위쪽에 그 눈물방울이 말라있었다. 혀끝으로 가만히 대어보니 조금 짭짤한 느낌이었다.


야, 눈물의 농도는? 내 소나기 퀴즈 낼께.

이 자식이, 갑자기 맥주 타령이더니 웬 눈물?

아 또 눈물이라 하면, 육상에 사는 척추동물의 누선에서 나오는 분비액으로, 사람의 경우는 외안각 윗눈꺼풀 근처의 눈물샘에서 분비하는 투명한 액체로서…

야 집어 쳐, 너 그 암기법 고시공부나 시작해라 뭐.

어 그런데 육상에 사는 척추동물이라니, 그럼 육상에 살지 않는 척추동물도 있냐.

나 참,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는 척추동물 아니냐? 포유류의 눈물이야 그렇다지만, 악어의 눈물이란 말이 왜 있게!


여자는 남자보다 눈물이 많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런 순간에 울고 있었을까? 여자는 그의 생각 속에 들어가 버렸다. 그는 소가 되새김하듯이 그 일을 되생각했다.


머리카락 무더기가 구르는 차가운 바닥, 비질을 하면 머리카락은 솜사탕뭉치처럼 그녀의 슬리퍼 위로 기어오른다. 그리 깨끗치 않은 흰 양말 위로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더러 그녀의 발등을 간지른다. 머리를 깎는 내내 그냥 그곳만 보고 있으려니 더러운 흰 양말 앞 엄지 쪽엔 구멍이 날듯 헤진 부분이 더욱 시커멓게 드러났다. 좁디좁은 볼에 유난히 엄지 쪽만 튀어나와 망가뜨렸으리라. 그러고 보니 슬리퍼가 너무 넓어서 발 앞쪽이 자꾸 앞으로 쏠렸다. 민망해서 눈을 감자니 그것 또한 어색했다. 자는 줄 알면 좀 그렇다. 실눈을 뜨면 다시 헐렁한 슬리퍼 속의 메마른 발, 더러운 양말. 가늘게 구멍난 엄지발가락. 설마 하고 정신을 가다듬자니 그는 그녀의 발을 발가락을 그리고 있었다. 제 주인 아닌 것 같은 헐렁한 슬리퍼도 지저분한 양말도 벗긴 채. 발등은 파르스름 핏줄이 돋고 발등에는 가녀린 뼈 줄기가 드러났다. 더러운 희색 양말이 가렸던 발은 대조적으로 깨끗했다. 그럴 것이다. 하얗고 긴 발가락을 가진 외로운 발, 다 커서 홍역을 치르는가 뭔가 말라비틀어진 발을 움찍거리던 막내고모의 맨발이 떠올랐다.


그의 기억 속 막내 고모는 큰누나보다도 작은 체구로 방안과 마루 끝만을 오갔다. 왜 누나처럼 학교에 안 가는지, 왜 같은 밥상에도 오지 않는지, 고모니까 그러리라, 그것이 전부였다. 햇볕이 드는 오후에도 막내 고모는 조각 누비이불을 덮고 마루 끝에 눕다시피 앉아 있곤 했다. 고모가 움찔거리면 놀랍게도 맨발이 드러났다. 누어있는 특권이 맨발인가? 나중에 고모는 하늘 나라에 갔다고 했다. 하늘나라에는 맨발로 가는가?


남아있는 사람들은 정말 아무도 맨발이 아니었다. 어려서 본 할머니와 어머니의 것은 찌그러진 양말, 알고 보니 버선이었다. 고모들의 하얀 양말은 사시사철 남성여성 공용이었다. 누이들의 것은 색도 있었고 줄무늬도 있었다. 뒤뜰 빨래 줄에 걸린 양말들은 많은 식구 수를 고려해도 많고 많았다. 그것들은 바람에 날려 철봉대에 걸리거나 나뭇가지에도 걸렸다. 장작더미까지 날아가 있기도 했다. 둥그런 전구 알에서 여러 바늘땀으로 새로 고쳐지는 것들 중 단연 양말이 으뜸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일 말고도 여러 일을 모여 앉아 하기 좋아했다. 여자들은 많아도 대개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대평원의 동물들이 뭔가에 대한 보호 본능으로 뭉쳐 이동하는 것과 비슷했다. 혼자 사색에 잠겨있는 것은 남자였다. 그는 남자아이였으므로 아이 때부터 혼자 사색에 잠겼다. 사색에 잠겼다는 것은 순전히 그의 착상인데, 예컨대 응접실 의자에 앉아있는 아버지 모습이었다. 응접실은 ― 그것이 왜 응접실로 불렸는지는 이상하다, 별로 손님대접을 하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 아버지 전용이라기 보다는 남자가 혼자 있고 싶으면 들어가는 방이거니 했다. 큰고모가 고모부이랑 오는 날이면 고모는 어머니에게로 고모부는 응접실로 갔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도 혼자서 그리로 갔다. 그는 아무도 없는 응접실에 가만히 가서 앉아보곤 했다. 자연히 그곳은 사색하는 곳이라 생각되었다. 혼자 있으면 무엇인가 모를 가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사색이었다. 실생활에서 잠시 떠나기, 그렇게 구원을 주는 것이 따로 없었다. 학생이 되어 할 일의 짐이 많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머리가 아프면 그곳에 들었다. 그는 응접실 단골이 되었다. 아버지는 대개 늦으셔서 빈 응접실을 차지할 수 있는 시간은 넉넉했다. 어떤 때에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대로 해가 저물고 불을 켜지 않고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는 그 시간이 가장 좋았다. 천천히 날이 저물고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자신의 존재 이외에는 아무런 초점이 사라지는 순간. 그가 어둠을 좋


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절대적인 고독감은 근사했다. 아버지 또한 그러신다는 생각에, 기이하면서도 동질감을 느꼈다. 아버지는 아마도 새벽녘의 날이 밝는 순간 홀로 이곳에서 유아독존의 느낌을 가지실 수 있을 것이라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혼자 쓰는 방에서 누군가가 깨우러 와야 일어나던 버릇으로 아침의 여유는 그림의 떡이었으니까. 대신 그 혼자만의 세계는 그에게 나머지 시간을 잘 견딜 수 있게 해주었다. 어머니랑 여자들이 집에서 그러하듯, 공동으로 이끌려 다니는 것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이라면, 그 정도야 참을 수 있었다. 어느 때고 혼자 만의 시공간 속에서 혼자 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으니까. 그곳은 완벽히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말하는 법을 터득해 나아갔고, 가만히 앉아서 허공에 수없는 문장들을 써나갔다. 만일 종이에 옮겨졌더라면 고교졸업반 문예지에라도 실려 다른 친구들의 세상 속으로 날아갔겠지만, 머리 속에서 쓰는 글은 한없이 쌓여만 갔다. 그는 풍요로웠고, 더는 욕심이 없는 얌전한 학생이었다. 그는 얌전한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결혼으로 신식 문물에 빨리 적응한 경우셨다. 외할아버지는 을미사변 이듬해 태어나서 어려서 동학을 기억한다 하셨고, 이상한 반작용으로 서학을 받아들이셨다 했다. 외할아버지의 서학은 기독교였고, 있는 땅 바쳐서 교회하나쯤 개척해서 목사님을 모시는 일은 선진 가문의 영광일 터였다. 아버지는 그런 집안의 사위가 되는 행운이자 의무로서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친가에서는 외톨이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다음 차츰 아버지가 가족들을 다 돌보신 이후 가정은 기독교 쪽으로 쏠렸다지만, 아이들은 예전 일은 모르니 그런 아버지만을 알고 자라났다. 아버지는 대범한 큰아들을 원했을 것이나 아들은 늦게 서야 태어났다. 누이들 밑의 아들은 대가 세지 못하다는 공식이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를 위시한 여자들의 세계에서 과잉보호 받는 때문이라 했다. 그도 과잉보호를 받았다. 여자들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아니 여자들은 남자들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다만 막둥이를 챙긴 것은 느린 그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를 목사관과 같은 가까운 좋은 환경으로 이끄는 어머니에게 이끌려 슈바이처같은 의사가 되어 의료선교에 몸바치는 미래를 꿈꾸기도 했었다. 소년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뭔가 남자는 대들보 같아야 한다고 하시며, 의사같은 것은 은근히 얕잡아 보셨다. 그러나 그가 겨우 서울소재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상담 결과가 나온 뒤에, 아버지는 법관쯤의 기대를 접었다. 한 집안에는 그저 가업을 이을 아들로 족했으니까. 딸만 셋이었을 상황에 비하면 무척 다행스런 일이었다. 키는 다 자란 아들이 군대에 시달려서인지 힘들어하는 그 즈음 아버지는 더욱 사색에 잠겼다. 얼굴이 점점 길어졌다. 근심들이 슬며시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했을까?     


그런데 맨발이 문제였다. 오직 뼈가 드러난 병든 고모에게서 흘끗 보았던 맨발의 기억. 그는 그것을 더러운 흰 양말 속 맨발에 대한 상상으로 엄청난 환상에 빠져버렸다. 무엇엔가 쫓기듯 곧 군대에 입대했지만, 군막사에는 그에게 안정감을 주던 아버지의 응접실을 대신해서 그의 사색을 담을 공간이 없었다. 일찍 눈을 감고 누워서 소등 시간이 지나 칠흑같이 어두워진 넓은 막사 내에서나 사색의 자리를 찾았다. 4차원의 공간, 앉아있는 대신 드러누워서요, 점점 어두워지는 대신 아주 어두워진 다음에 시작하는 변화만 빼고는 괜찮았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잠이 들기 전에 생각을 하면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맨발이 문제였다.


어떤 다른 여자의 맨발들을 문득 보게 된 것은 면회소에서였다. 젊은 남자들에게는 젊은 여자들이 심심찮게 면회를 왔다. 처음에는 젊은 남자들의 우악스런 군화와 대비되는 젊은 여자들의 작은 신발이 신기했다. 전엔 집안 여자들의 작은 신발들을 왜 의식하지 않았었는지, 생각해 보니 참 의아했다. 캠퍼스 여학생들의 신발이 기억나지 않은 것 또한 의아했다. 여자들의 신발이 왜 하필 면회소에서만 돋보이는가. 당연히 그 대비로서 군화 때문이었으니, 그냥 그렇게 지나갈 일이었다. 매형과 함께 그를 면회 온 누이는 펑퍼짐한 단화였다. 하긴 설악산 여행중이라 했으니 그럴 밖에. 하지만 맨발 아닌 발이 이상했다. 그는 아무튼 그 다음에는 면회소 여자들의 작은 신발만이 바깥 세상의 상징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얇아지는 옷차림을 주시했을지 모르나, 그는 맨발이었다. 발뒤꿈치가 드러나는가 싶더니 점차 앞은 물론 끈만 남는 아슬아슬한 노출에 몸이 뒤틀리곤 했다. 어쨌거나 쌀 반가마는 넘을 몸무게를 저 가느다란 굽에 끈만을 달고서 싣고 다니는 것이 신기하다못해 신기(神氣)라 느껴졌다. 여자들은 신선이었다. 구름 위도 떠놀 수 있을. 그 1cm도 못될 끈을 벗기면 맨발이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어쩐다? 바닥만을 붙여서 구두가 되는 일은 없나? 발바닥에 본드풀을 붙인다 해도 불가능할 일이었다. 아하, 맨발로는 보도를 걸을 수 없구나. 다른 말로, 보도를 걷는 맨발을 볼 수는 없구나. 여자의 맨발은 그럼 영 볼 수 없는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려 이젠 사라진 막내고모의 맨발처럼?


그는 여전히 맨발의 기억을 찾고 있었다. 어디선가 보았던, 고모의 그것보다 더 뾰쪽하고 앙상한. 기억의 끝에 얻어낸 답은 잘려나간 머리카락들 보송이 사이에 드러난 살색이다 못해 허옇게 바랜 맨발이었다. 희검은 솜사탕 사이로 내비친 때묻은 발가락. 더러워진 흰 양말을 투과해 비추던 앙상한 맨발의 주인은 그가 눈물 맛까지 기억하는 그녀였다. 불이 켜져있어도 어두운 쓸쓸한 작은 미장원 차가운 바닥 위의 초라한 맨발. 뜨겁지도 않은 눈물 한 방울을 선사한 그녀. 그러다 현란해진 맨발들이 차츰 줄기 시작해서 조바심은 더했다. 여름이 끝나가기 전에 그는 마침내 휴가를 받았고, 곧장 그의 맨발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의 그녀를 향했다.


대학가는 빠르게 변한다. 딱 한번 갔었던 미장원은 위치만 기억날 뿐이었다. 그 사이 늘어난 큰 건물들은 우선 치장부터가 달랐다. 원색의 강렬한 구호와 시커먼 간판의 대조가 그랬다. 못 보던 없는 검은 궁서체의 서점 간판과 스테인드 글래스의 소주집과 분식집이 그랬다. 뭔가 억눌린 분위기는 애써 찾아낸 미장원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했다. 주인 여자는 여전히 은회색 비닐 앞치마였다. 뒷머리를 더 올려 빗었어도 한 번은 보았던 얼굴일 터였다.


저 여기 미스 아가씨 미용사…

아가씨 미용사요? 아니 이게, 아니 어떻게 걔를 찾아온 사람도 있나으? 

"있나요"라고 하기 싫어서 그러는지 이상하게 말꼬리를 흘렸다. 저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인가 저쪽에서 이발하고…

아니 그러니까, 걔하고 무슨 일있어으?

아니 그건 아니구요, 뭔가 하면 저…

참 우습네으, 알기는 아는 사람이으?


어렵게 더듬거려서 핑계를 대고 물은 끝이었다. 그래도 미용학원선생이 미용실 지점을 내면서 "걔를 스카웃 해갔다니까으" 라는 푸념을 드러냈다. 대학가는 아무 것도 안된다고, 사람들이 소주집에 모여 뭘하는지, 그런 덴 장사가 된다고, 바로 옆집 안 보았냐고.


학원선생이 낸 미장원 지점이라는 곳은 시내 쪽에 있었고, 그는 무작정 시내를 향해 걸었다. 시내에 이르러서도 어쩔 줄 몰라서, 다시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곳은 모르는 곳이니 일단 손님처럼 들어가 본다? 그 다음은… 시간이 어중간해서 중간에 함께 나올 수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럼 넌 그 여자를 만나서 데이트라도 하려는 것이더냐? 그냥 이 여름의 맨발만 보려는 것 아니었어?


그는 아직 한낮인데 그 곳 간판을 찾았다. 대학가와는 전혀 다른 따뜻한 기운이 넘치는 거리 한 복판 4층 건물 2, 3층이 미장원이라 쓰여있었다. 그는 무턱대고 2층부터 투시해본다. 사람들은 똑같은 멋진 앞치마를 입고 이상한 소음 속에서 똑같은 동작으로 팔을 치껴든 채 사각사각 머리를 자르고 있을 것이다. 평균보다 작은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3층은 더욱 뿌연 공기 가운데 또 다시 똑같은 동작의 무엇인가에 열중한 사람들 뿐이다. 급히 눈을 거두어 다른 간판들을 읽어보았다. OO호프, 레스토카페OOO? 그는 아직 계단은커녕 입구에도 들어가지 않고 서 있었구나 싶었다. 다방은 없나? 그는 어슬렁거렸다. 가슴을 추스리고 정리를 해야 할 판이었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제가 저쪽 대학정문 앞에서 이발을…

그래서요? 어디 손님이 한 두분…


그녀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은 그녀를 말해준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제가 저쪽 대학정문 앞에서 이발을…

글쎄요. 전 그런 곳에서 일한 적이 없는데요. 손님이 뭔가 착각… 


그녀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은 그녀를 말해준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은 나만이 아는 비밀이거늘. 그래도 나를 부정한다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제가 저쪽 대학정문 앞에서 이발을… 그런데 그게 제가 처음이라고…


아니다, 그 말은 과장이거나 내 상상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나는 그때 내가 그녀의 첫 손님이라고 믿어버렸던 것이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제가 저쪽 대학정문 앞에서 이발을… 그런데 사실 제가 놀랐던 것이 있었는데 묻지 못했습니다. 그 궁금증 때문에… 


아니다, 이건 그녀를 놀라게 할 것이다. 나는 그녀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맨발을 아니 나의 그녀의 맨발을 보는 것만을 원했지 않은가.


계단을 올랐다. 기대했던 향수가 아닌 독한 약냄새가 풍겨왔다. 각도를 달리한 수많은 거울들 틈에서 희멀건 까운 대신 늘씬한 제복의 여자들이 겹쳤다. 기억 속의 그런 왜소한 처녀의 모습은 없었다. 3층 그곳에도 더 활발한 움직임뿐이었다. 엉거주춤 느린 동작의 동그란 그녀는 없었다. 화려한 얼굴들을 주시할 수는 없는 일, 그 얼굴들에 대고 건넬 말도 없었다. 그는 돌아섰다. 문간은 한 발짝 앞이었다.


무슨 일이셔요?


아, 누군가 "무슨 일로 오셨죠?" 라고 야무지게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손님, 뭐하시게요?" 라고 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무슨 일인가 하면 그것이, 저기 O대 앞 미장원에서…


사각사각 연기 냄새 속에서 가만히 움직여 오는 여자. 이제도 소녀만큼한 몸으로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머리를 하고 고개를 내민다. 숙인 채 내민다. 입은 열지도 않는다. 그는 서둘러 제가 좀 전할 말이 있어서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고는 돌아서 나온다. 그는 그렇게 기다릴 양이다. 그가 머뭇거리기만 하고 실제로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음을 그는 알지 못한다.


아직 거리는 환하다. 길 건너편으로 도망치듯 달린다. 전봇대에 살짝 부딪힌다. 군복이 전봇대에 부딪히다니, 민간의 눈으로 보면 한심한 놈이다. 문, 아니 문이 있어야 할 열린 공간은 일미터 넓이도 안되어 보인다. 그 속에서 그녀가 고개를 내밀면 그에게 들키지 않고 나갈 수는 없다. 쳐다보는 눈에 힘을 싣자 그녀가 나올 구멍이 점점 커진다. 시커멓게 뚫려서인지 막혀 보였던 그곳이 뿌연 안개처럼 넓어만 간다. 이제나저제나, 숫기 없어 보이는 그녀가 근무시간을 쪼개어 나올 리는 없다. 그러나 퇴근시간은 있기 마련이고, 그녀는 날이 어두워지면 나올 것이다. 어색해지면 그럴 수록 쳐다보는 눈에 그리고 이마에 힘을 실었다. 그녀가 나올 구멍이 점점 커진다. 점점 밝아진다. 제법 크고 따뜻해 보이는 저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희미하다. 그가 그녀의 얼굴을 눈여겨본 적이 있었던가? 그녀가 그나마 앞모습으로 나올 것이 다행이다. 적어도 인상만은 지니고 있으니까. 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 희한했다. 뒷모습은 아예 셈에 넣지 않았나? 아무튼 앞모습으로 드디어는 그녀가 걸어 나올 것이었다. 밖이 어두워지면서 구멍이 상대적으로 점점 밝아졌음은 그가 알 리 없다. 그렇게 시간이 갔다. 주저앉고 싶을 만큼 시간이 흘렀을 때 요란한 머리복색의 여자 둘이 나타났다. 미장원 여자답게 부풀린 컬이 멀리에서도 돋보였다. 이번에도 역시 부푼 머리에 유난히 어깨가 강조된 의상의 여자 실루엣이었다. 조금 간격으로 그런 여러 사람들이 나갔다. 그녀는 아직 아니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청소담당인가? 그리고도 한참 동안 더 이상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눈을 비껴 그 문을 나갔을 리는 없다. 그러고도 한참만에 마침내 까운을 입지 않은 그녀가 나타났다. 고개를 숙이고서 무엇인가를 회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숙인 고개만 아니었다면 작업복을 벗은 그녀의 차림은 오히려 생소했다. 좁지도 넓지도 않은 적당한 치마의 실루엣은 참 생소했다. 일터를 벗


어나는 차림은 청바지 정도의 발랄한 모습이거나 날리는 짧은 치마여야 했다. 나름대로 시내 쪽의 훤칠한 미장원이 아니던가? 수더분한 아줌마 모양새는 다시 그 처음의 기억을 강하게 확인시켰다. 발을 보았다. 하루 종일 더러워진 흰 양말이 아닌 지금, 이번에 그녀의 발은 구두에 덮혀 있었다. 아직 여름이었으나 여름 같지 않은 구두 속에. 고등학생 같거나 아님 할머니 같은 구두 속에. 낭패였다. 정말 낭패였다. 그는 맨발을 원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막무가내로 졸랐다. 우선 배가 고팠고, 뭔가 먹을 것이 절실했다. 아무 데고 김밥이 보이는 집으로 끌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김밥을 싫어하는 여자아이, 참 드문 일이었다. 다음 보이는 국밥 집, 국밥을 시켜 놓고도, 어중간한 국물을 떠먹으면서도 그리 할 말은 없었다. 그는 그저 한번 꼭 보고 싶었다, 그냥 꼭 보고 싶었다, 믿지 못하겠지만… 그런 정도의 말을 중얼거렸고, 어색할수록 맥주 좀 마셔도 되겠냐 그래놓고서 한 두잔 맥주를 마셨다. 여자가 국밥을 다 먹도록 아무 말도 못하던 그는 불어터진 국밥을 밀어 놓았다. 저 보시다시피 휴가 나왔는데요… 그 다음은 다시 막혔다. 저 소주 한 잔 해도 되겠습니까… 알코올은 안된다, 다짐하는 마음과 마시는 행동은 반대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튿날 새벽이 무섭도록 늦게 찾아오는 데 놀랐다. 그렇게 여자의 방에서 새벽을 맞고, 동이 트기도 전에 길을 나섰다. 더는 중얼거릴 말도 없이 고개만 떨구고 발을 옮겼다. 하루 종일 걸려서 생각해 낸 것은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뿐이었다. 하루 온종일 길에 있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뭔가 말은 해야 하지 않는가. 늦은 시각 그렇게 여자의 집을 다시 찾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려주는 밥을 먹고 아무렇지도 않게 잠들고, 그렇게 다시 긴 긴 새벽이 오는 것을 지새고 새벽길을 나섰다. 여전히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어머니는 다행히 아무 것도 모르셨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막내 누이가 그를 살필 쯤에는 3박4일 짧은 휴가가 지난 뒤였다. 그는 그렇게 돌아왔다.


뚜벅뚜벅… 무거운 걸음걸이로 시작되는 남자들만의 공동체 생활은 차라리 그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는 휴가의 기억이 꿈인가 싶었다. 그것도 며칠, 맨발들이 완전히 사라진 만추가 되어도 그는 여전히 맨발 하나를 찾고 있었다. 맨발이 그를 쫓고 있었다. 눈길이 막혀 아예 면회소가 앙상해지자 온 천지가 맨발자국이었다. 이상하리 만치 맨발은 반쪽의 모양으로 박히었고, 그가 찾는 맨발은 온 천지에 널린 맨발들과 구별되었다. 그는 한 겨울에 열병을 앓았다. 그는 사색으로 밤을 지샜다. 그는 다른 막사 입구 안쪽에서 발견되어 두개의 막사 뿐 아니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막사의 동지는 상관으로부터 그 상관은 그 상관으로부터 심한 조사를 받았다. 어떻게 막사를 걸어 나갔는지 어떻게 다른 막사를 찾아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부끄러움이 그를 단속했다. 그는 조용해졌다. 미소도 더 잘 지었다.     


남겨진 여자는 놀라움 반 행복감 반으로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을 지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아주 가까이, 아예 체내에서 숨을 쉬고 있는 느낌은 훈훈하기까지 했다. 겁은 나지 않았다. 말없이 찾아온 그는 말없이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그는 다시 올 것이고, 아이는 몸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제 그녀로서는 거의 가족을 다 갖춘 셈이었다.

그녀가 여중을 졸업하는둥 마는둥 여고진학을 포기한 것은 꼭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숨막히는 아버지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불쌍한 아버지는 그녀가 보지 않으면 덜 불쌍할 것이었다. 새 어머니와 네 동생들… 그것으로도 벅찬 아버지는 그녀를 돌볼 기력도 없이 미안해하고만 있었다. 생모를 잃은 아이답게 그녀는 일찍 철이 들었고, 아버지의 고통을 보았다. 예, 또는 아니오, 그 중에서도 보통 예 라고 말하는 딸이 미안한 아버지는, 그러나 아버지라서 딸에게 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긴 머리를 빗겨주는 일도, 리본을 매주는 일도 하지 못했다. 머리를 빗다가 지각을 하곤 하는 그녀를 보다 못해 새어머니가 머리를 싹둑 잘라버린 날, 딸은 처음으로 드러내고 울었다. 겨우 훌쩍거리는 것이었지만 그랬다. 눈물을 덜 닦은 채 잠든 딸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아버지가 울었다는 것을 그녀는 꿈에서 기억한다. 꿈에서 아버지가 흘린 눈물도 느낀다. 팔뚝에 스친 눈물, 눈물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눈을 감고 있었으니, 아니 어쩌면 꿈을 꾸고 있었으니까 색깔을 보지는 못했다. 눈물에 색깔은 없는 것으로 기억되었다. 눈물은 따뜻하다. 아버지가 불을 껐는지 방이 어두워지고 아직도 팔에 남은 눈물자국을 볼에 대어 보았다. 깜깜하다보니 볼 대신 입술에 스쳤다. 눈물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소금에서 나는 냄새였다. 더 이상 외갓집에 가지 않는 동안 가끔은 밥상의 소금을 가만히 손가락에 묻혀가지고 나왔던 생각이 났다. 어머니냄새는 외갓집 냄새랑 다 이 비릿 찝찝한 소금 맛이었다. 그런데 아빠의 눈물도 그런 맛


이다.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는 소금 맛이다… 그녀에게 부모는 소금이었다. 더운 여름날, 키 높이 자란 학교 뜰에서 늑장부리고 놀다가 뛰어 돌아오면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걷어올리다 가만히 그 팔뚝을 핥아보면 여전히 엄마 냄새가 나는 것이 신기했다. 아빠의 눈물 자국이 엄마 냄새라니… 팔뚝에서는 항상 아빠의 눈물 맛과 엄마 냄새가 함께 났다. 아버지는 더는 울지 않으셨다. 그녀도 더는 울지 않았다.


몇 해후 아버지의 얼굴에서 눈물 대신 마른 잎 소리가 나는듯 하던 겨울을 나면서, 그녀는 상급학교에 진학할 마음을 접었다. 대신 머리카락이 잘라 버려지고 다듬어지는 미용실을 마음으로 택했다. 그건 나름대로 신기한 경험이 될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못보낼 상황은 아닌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불만이 뭐라서 그러느냐… 고향에서는 아무 것도 안될 것이었다. 책꽂이에서 사회과 부도를 꺼내 지도를 폈다. 날마다 지도를 뒤졌다. 집에서 대각선으로 가장 먼 곳으로 강원도지방을 생각했고, 고성, 속초, 양양, 강릉을 찾아보았다. 일단 어머니 냄새가 날지도 모르는 바다 가까운 곳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릉도 너무 멀었다. 무슨 능 같아서 싫기도 했다. 아버지를 설득하기도 어려웠다. 고향이 아니지만 살아갈 수 있는 곳, 또 친이모가 서울 근교에 있으니, 서울에는 아버지도 조금은 안심하셨다. 이모도 서울을 권했다. 그렇게 대학생들 넘치는 신촌 마포 가까운 곳에서 중졸 인생이 시작되었다. 졸업도 하기 전 겨울부터였다. 눈물은 첫날부터 그녀의 친구였다. 눈물 한 방울에다 대고, 그래 난 바보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모는 실기와 이론을 병행하는 1대 1 교육코스를 추천하셨지만, 그것 또한 숨통 막히는 일이었다. 심부름할 미장원은 널려 있었다. 야간반 코스라야 집에서 용돈을 갖다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때 처음 미용실 바닥을 쓸고 또 쓸면서,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땀을 많이 흘리고 잘 감지 않는다고 새어머니가 긴 머리를 싹둑 잘랐을 때, 그때는 조금 울었지만 시원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머리는 또 자랐다. 그렇지만 그 때 잘려나간 머리와 함께 엄마의 손길이 묻었던 과거가 잘려나갔다는 것을 몇 년이 지난 미용실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깨달았다. 과거는 머리카락 잘려나가듯 사라지는구나. 과거를 잃지 않으려면 머리카락처럼 세심하게 간수해야 하는구나… 그녀에게서 어머니는 그렇게 잘려 나갔다. 머리카락 청소만 하며 짬짬이 학원을 다니다보니 반년 훨씬 더 걸려서야


 자격증이 나왔다. 뒷머리를 길게 세칭 거지컷이 유행이었고, 커트 오는 손님은 죄다 퍼머를 시켰고, 드라이 손님을 위해서 앞머리는 드라이해야 예쁜 것으로 고정된 그런 때였다. 학원에서 졸면서 열심히 배운 업스타일이나 아이롱은 벌써 퇴물이었다. 그 전에 있던 미용사언니는 그녀가 일을 거드는 중에 벌써 독립해 나갔고, 주인은 다른 미용사를 고용하지도 않았다. 자격증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녀를 시다 취급했다. 그런 어느 날 늦은 시간이었다, 여럿이서 그가 들어온 것이…  


만일 다음해 여름, 난데없는 그의 출현이 없었더라면 그는 기억에 없을 수많은 손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정말 난데없이 찾아와서 그녀를 기다렸다. 어두워진 거리에서 그는 그녀를 졸랐다. 너무 진지해서 그녀가 차마 거부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그로서는 어느 어두운 길을 따라 그녀를 안내할 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길들여진 밤의 통제와 제한 앞에서 그들은 무력했다. 그 해 따라 3,40년간의 통금이 해제된 자유의 밤이었지만 밤 새 걸을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4각의 공간을 찾아들어야 했다. 군복 그대로의 군인이 여자와 더불어 한밤을 어슬렁거리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신의 맨발을…  맨발을 보지 않고서는 부대에 돌아가지 않겠어.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유행가가 폐부에 와 닿았다.


알 수 없는 건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그이는 다시 군대로 돌아가는 연인의 심리로 전이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전 떠나는 연인으로부터 미래를 약속받는 소녀의 심정이 아니었어요. 전 그를 알지도 못했어요. 그는 우선 어렵게 말을 했어요. 장미나무인가를 주고 떠나면서 그 나무의 성장에 자신의 존재를 걸었다는 서양 단편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첫 학기 교양과목 시간에 어떤 교수님이 들려준 이야기였더래요. 꼭 시인 같은 표정으로  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그렇지만 저는 그 주인공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어요, 영어도 어려운데, 영어도 아니고 어려운 단어라서… 참, 그는 나무를 주지도 않았구요. 그가 말하는 대부분이 생소했을 뿐이었죠. 약속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이 처음 약속은 지킨다고 했던 그 말만 이해했어요. 그는 약속했어요, 다시 한번 온다고. 여름 이전에 오겠다고. 늦어도 여름엔 오겠다고.


그리고 그녀는 이른 봄 딸을 낳았다. 겨울 들어 눈길에 움직임이 어려워진 때, 그 보다도 날씬한 몸매가 유난히 강조되는 직장은 눈총 때문이라도 그만 두어야 했었다.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소한의 영양과 온기로 겨울을 나면서 그녀는 행복했을까? 애 아버지는 여름에는 올 것이므로 겁은 없었다. 그는 여름에는 올 것이었다. 저축금은 씀씀이가 적은 그녀로서는 몇 달은 버틸만했다. 최소실존비용도 개인차가 심하다. 오랜만에 군고구마가 익어가는 양철통 곁에 서서 불 속을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군고구마도 먹었다. 어려서 먹었던 기억으로 포장마차에서 쌈지를 찾았으나 어딜 가나 오뎅뿐이었다. 여자 혼자서 포장마차에 다니는 경우도 흔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아이와 더불어서가 아니면 부끄러워했을 판이었다. 아이는 그녀에게 둘이라는 안도를 나중에는 셋이 될 것이라는 행복감을 심어주었다. 시간이 남은 그녀는 쌈지를 직접 만들어볼 생각도 했지만, 유부는 생선 덴뿌라에 밀려서 시장에서도 귀했다. 무우와 섞여 있을 때 골라 먹고자 동생들과 다투었던 덴뿌라는 이상하게 메스꺼웠다. 그런 정도를 제외하면 그녀는 아기를 위해서 아낌없이 잘 먹었다. 동생들과 어머니가 떠올랐지만, 동생들을 감싸던 어머니가 갑자기 이해되었다. 자신을 홀대하던 어머니 아닌 어머니. 그녀가 용서되는 것은 어머니의 아기가 아니었던 자신의 운명을 이해한 탓이었다. 자신의 친어머니, 그녀는 참으로 불쌍하게 느껴졌다.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함께 죽은 어머니. 어머니는 그녀가 엄마를 불러보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녀는 이 아이를 두고 죽는다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다. 아이를 보지 못하고 산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아이는 봄이면 태어날 것이고, 아버지는 어쩌면 여름이면 올 것이었다. 그녀는 나 여기 있어요, 그곳은 많이 춥나요? 하는 식의 편지를 쓰는 데에도 무척 힘이 들었지만, 아버지와의 끈은 필요했기 때문에 참았다. 그의 편지는 길기도 했지만, 많이 어려웠다. 어려운 것은 세상의 말들이 다 그러했다. 신년 벽두에 라디오에서 들려온 어려운


 말.


보람도 많고 아쉬움도 많았던 임술년 한 해를 보내고, 이제 우리는 희망찬 계해년의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지난 한해 동안 여러분들은 나라와 사회, 그리고 가정과 스스로의 발전을 위하여 모두가 무척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나라 바깥의 여러 가지 사정이 우리의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으나, 우리는 조금도 좌초하거나 머뭇거림이 없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진의 발걸음을 더욱 힘차게 내디뎠습니다…

당초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모두가 생각했던 한자리수 물가를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달성하였으며, 또한 세계적인 불황과 경기침체 속에서도 우리는 6%성장이라는 매우 값진 성과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82년은 그를 만난 역사적 사건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를 만났고, 처음으로 누군가를 믿으며 불안에서 벗어나 행복했던 한해였다. 세상이 불확실했거나 불안했거나 그건 그리 큰 일이 아니었다. 점점 더 어려운 말.


우리의 의지는 단단했고 슬기는 빛났으며 단합은 튼튼했습니다… 오늘의 굳은 의지를 믿고 내일의 빛나는 결실을 믿으며, 또한 스스로가 하는 일을 믿을 때 우리에게는 밝은 미래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한 미래를 위해 1983년이 우리 모두 자신을 가지고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해가 될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또 기대하면서,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금년에도 행운이 언제나 함께 할 것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행운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도 가정이 있다. 가정이 바야흐로 탄생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의지가 내게서 작용하는 듯한 신비, 언제였을까? 아득하기만 하다. 꿈처럼 지나갔던 며칠이었기에 현실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다만 태동을 주는 생명체만이 내 가정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다. 아득한 그날, 어디선가 배워 온 대로 처음의 완강한 거부,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슬그머니 끌려갔던 그의 세계? 그리고 또 언제 그가 찾아올 것인가? 이상하게도 그는 여름이 오면 오겠다는 말만 했었다. 방을 옮긴 건 몸매가 이상해지면서 일을 쉬게 될 때였다. 시내 나갈 일이 없으니 좀 더 넓은 방, 좀 더 환한 공기가 필요했다. 고향 같은 집, 그런 집을 원했다. 왜 가을은 아닌가? 겨울엔 왜 아닌가? 가을 겨울의 휴가에는 왜 올 수 없는지 말하지 않았다. 물을 상황도 아니었었다. 그렇지만 그의 아이가 자라기 시작하자 그를 향한 궁금증은 아메바처럼 번식했다. 겨울에 불쑥 찾으면 어쩌나? 달라진 모습에서 놀라면 어쩌나? 주소만으로 찾아올 수 있을지… 미리 편지로 아이를 알려야 할까?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건 그녀로서는 당연한 긍정이었다.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의 두려움 같은 것을 아는 어머니는 없다. 여자는 남자가 아니다. 다만 그녀가 그 모든 것을 알리지 못한 것은 어떤 글로서 시작할 것인가, 그 첫 말을 찾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은 갔다. 아이의 존재를 어떻게 알릴까? 정말 오는 것이지요? 제대하기 전이라도 여름이면 오는 것이지요? 왜 겨울엔 오지 않는 건가요? 그렇게 편지를 쓸까 말까 하면서 보낸 이백 날 낮과 밤은 길었다. 이제서야 모든 것을 편지로 알릴 수는 없을 것 같았고, 막상 닥쳐올 만남의 자리가 불안해졌다. 그녀가 잠을 설치는 것은 아이와의 씨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대통령의 신년사가 저리 거창한 것에 놀라서, 진짜 거창한 '우리의 미래'를 그에게 들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을 만난 것이 82년의 가장 큰 행복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하자 생각보다 알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이 봄에 꼭 만나야 해요. 여름이 오기 전에 말이예요. 


그리고 봄이 뾰쪽 움트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빨리 그녀의 첫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급히 병원에서 연락받은 이모는 울먹이기만 했다. 아이 아버지를 물을 계제가 아니었다. 이모 모르게 시집갔을 조카딸이 아니었으니까. 어찌 된게냐? 그렇게도 묻지 않았다. 언니 일찍 떠나 보낸 뒤 마음 고생 뻔한 조카딸을 챙겨줄 수 없었던 자책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필 서울로 부른 것도 후회되었다. 오랜 온갖 일로 퉁퉁 불어터진, 그러나 온기가 남은 손으로 어깨를 만져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머리카락이 유난히도 헤실헤실한 아이를 보더니만 다시 눈물기. 이모 왜? 저기 지금 군대에 있어서… 다 알고 있어, 출산 때 연락하라고 했는데, 여름이면 오니까 뭐. 이모는 나흘을 있다 가시면서 연신 울먹거렸다. 닷새 째부터는 문간방 색씨가 들락거렸다. 골목 수퍼 아줌마를 꼬셔서 제 밥까지 짓게 했다. 사람 좋은 수퍼 아줌마는 자기 가게의 부식 등을 확실히 계산하면서 밥은 넉넉히 따뜻하게 지어 주었다. 문간방 색씨는 갈거시랑이 같은 손으로 놀랍게도 기저귀 빨래도 한번씩 해주었다. 이런 아기 갖는 것이 소원이었드랬는데… 하면서 찔끔거리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남편 군대가고 아이 낳는 여자는 행복한 여자였다. 그것도 아직 이렇게 어린 여자가 복도 많지. 세상에 많은 남자들을 보면서 남편을 꿈도 못꾸는 처지가 되고 보니, 새삼스레 그 나이가 그리웠다. 그때 처음 이웃집 동갑나기와 서울 행 밤차를 탔던 봄. 그만한 나이로서 아이를 낳은 이 여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친구랑 둘이서 걸어온 웃음 팔기 십년 세월, 친구년은 이 생활 접는다고 운전자격 따서 택시를 모는 억척이었다. 억척을 가로막는 것도 있다. 개인택시 갖기가 소원이었던 친구가 흔하디 흔한 사고로 병신되어 상하방 전세값도 다 잃고 시골로 내려간 뒤, 여전히 문간방 신세인 그녀로서는 이 어린 애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었다. 이제 남편만 제대하면… 


아이는 낮밤을 몰랐고, 엄마도 따라서 낮밤 없이 힘들었다. 날이 풀리고 담벼락이나 마당 가 잡풀에서 여름 기색이 돌자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다시 오지 않으면? 주소가 바뀌고 일을 쉰다는 편지에서도 그는 별반 의심은 하지 않았는데.


문간방 여자의 희망대로 우리는 결혼을 해야 했다. 결혼을 하기까지는 한참 망설임과 기다림이 있었다. 그리고 정말 여름이 왔다. 아이는 막 고개를 들거나 이빨 없는 잇몸을 드러내며 키득거릴 수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어서 제 자식을 보러 와야 한다. 그에게는 주소를 다시 한번 꼼꼼히 알렸고, 다방 같은 데 나가는 것을 피했다. 그녀에게 다방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만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제 자식과 제 아내를 집에서 보아야 한다. 그렇게 그가 멈칫거리며 집으로 들어왔다. 마당의 기저귀를 피해 그녀의 반쯤 닫힌 방문 앞마루에 앉을 때까지 그는 아이 소리를 분간못했다. 혹시 들었더라도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이런 ㅁ자형 서민 주택의 어딘가에서 항상 들려올 법한 소리였다. 주인인 듯한 아낙이 가리켜주는 방문 앞에서 그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상한 모양으로 헝클어진 듯 변해있는 여자는 마루에 고개를 내밀었고, 나오지도 않았다. 방안은 어두웠다. 일부러 조명을 낮추었을까? 아이는 제 아버지를 아직 알아보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여자를 위로할 생각도 안아 줄 생각도 못했다. 봄 사월에 우리 아기가… 우리 아기? 그는 처음엔 놀라움을 미처 표현할 길도 없이 멍한 표정이었다. 엘리엇의 탄식처럼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나. 잠든 뿌리를 깨우듯이 봄비 내리는 날 여자는 아이를 낳았다지. 아버지는 아이를 여자의 초라한 방에서 만났다. 이상한 일은 아이 울음소리와 더불어 방이 깨어났고, 방은 갑자기 아늑했고, 따뜻한 만큼 밝아졌으며, 여기 저기 박힌 하얀 기저귀며 아기 용품이 방을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엉거주춤하게 윗목에 앉아만 있던 그는 밤이 되자 일어섰다. 놀람은 들키지 않았고, 문간방 색씨나 수퍼집 아줌마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전했다. 집으로 어머니에게로 향했다. 집에서 기다리는 어머니가 우선 핑계였고, 실은 아기 아버지가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그는 어머니의 곁을 택했을 것이다. 집에 들린 그를 어머니와 누나들은 의아해 했다. 좀처럼 얼굴을 펼 수 없는 아들과 그 곤한 아들을 달래려는 어머니. 어머니… 세상 아무 것도 모르시고, 갑작스런 휴가를 어슬렁거리는 아들을 도닥거려주시는. 그 사이에서 아버지는 괜스레 한 번 큰기침도 하시고, 자 이제 우리 아들이… 어쩌고 빈 말도 하셨다. 휴가란 말도 안 하더니만… 그는 그렇게 이틀을 더 버티다가 귀대에 대서 들어갔다. 어떻게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 아니 아내 그리고 아이, 아이는 정말 내게 태어난 것일까?


그렇게 그는 다시 군대에 돌아갔고, 제대 날은 아직도 멀었다. 전혀 홀가분하지 않은 마음으로… 그가 군대 3년에 얻은 것은 놀랍게도 여자와 딸아이였다. 그 하나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여자와 딸. 잔인한 사월의 황무지에서 얻은 딸, 그런 이미지였다. 딸아이는 놀랍게도 시뻘겋기만 하고 눈은 실눈이다 못해 뜨지도 못했다. 이 아이와 에미는 핏줄의 인연을 구하고 있었다. 제발 부모 다 있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것만이 소원인 여자, 그는 낭패감을 느꼈지만, 성실했다. 



여름은 쉬 가고 아들은 가을 들어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아들은 멍에를 벗을 날이 가까운,  날아갈 기분이 아니라서 집에서는 이상히 여겼다. 처음 며칠을 아무 말 없이 멍하게 보냈다. 저녁때만 슬쩍 나갔다가 다들 잠이 든 후에야 들어오곤 했다. 복학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그리 할 일은 없을 것이고… 친구들 만나느라 그러겠지… 그러다 아들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잠깐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하구요… 꼭 그렇게 말했다. 중요한 일을 처리한다? 그의 성실성으로는 자신의 아이를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도 며칠이 갔다. 그는 난데없이 부모님께, 먼저 결혼을 하겠다고 터놓았다.


그것이 그럴 일이 좀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 뭐 너 혹 군대있을 때 사고라도 친 거냐?

사고요?

그래 사고 말이다.

사고는 아니었어요. 그냥 꼭 그렇게 될 일이었나 봐요. 착한 여자이고, 들어와 살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또… 

그리도 또 뭐냐, 임신이라도?

사실은 딸아이를… 

뭐야, 딸까지 있는 여자라고?

그게 제 아이라서…


그보다 더 수선스러운 일은 세상에선 없을 것이다. 비슷한 중매결혼이라도 제 자식만 푸르러 뵌다. 이런 경우는 아예 전쟁이다. 처음엔 아이를 떼어놓고 인사를 갔다. 노발대발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더한 아연실색의 무표정을 좀 더 일찍 무서워했어야 했다. 온갖 수선스러운 과정을 겪은 뒤, 이빨도 제법 나고 이제는 하얘진 얼굴로 잘 웃기도 하는 딸아이와 애 엄마가 집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그렇게 남편이 가져온 가방 두 개에 아이 옷가지, 제 옷가지와 묻어서 시집에 들어왔다. 처음 며칠 동안 숨도 못 죽인 다음, 처음 나들이는 사진관이었다. 돌사진 보다는 먼저 결혼사진이 있어야 했다. 사진은 정식 같았지만 가짜였다. 딸아이도 자라면서 이 사진의 을씨년스러운 교과서적 분위기를 간파했다. 제 고모들의 축제 사진들과 다른 분위기를 사춘기 되면서까지 이해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의 불행은 그런 데에서 싹텄을까?


아무래도 그이가 결혼을 해준 건 미지수였어요. 그인 바로 그런 말을 했어요. 어떤 때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이는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을 이해할 수 없어 했어요. 나중에 가서는 그이가 결혼 한 것이 이해할 수 없더라구요. 설명이 안되지요, 너무 쉽게 나를 데려간 것 말이어요… 사는 게 별것 아니다, 그런 생각이었을까요? 우리 사진에다 "1983년 겨울" 이라고 쓰는 대신, 년도만 쓴 스티커를 붙여서 접이 사진첩에 꽂았지요. 액자에도 똑같은 사진을 넣었구요. 하긴 사진첩이나 액자나 둘 다 상자 속으로 들어가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아래채에는 그가 책상을 옮기지 않아서 서랍 같은 것이 없었어요. 나중에 어머님이 장롱과 문갑을 물려주셔서 그 서랍에다 넣어 두었어요. 신랑 신부만 달랑 둘이 서있는 결혼식 사진, 꽃은 두고두고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미용실의 신부화장 때 본 사랑스런 부케들 대신 사진관 꽃이라서요. 부케는 아무래도 흰장미가 최고라는데, 숙모님, 전 분홍장미를 더 좋아했어요. 그럴 수 있기를 바랬는데… 아무튼 사진은 훌륭한 삶의 시작이었어요. 결혼하여 아이 낳고, 아니 아이 낳고 결혼하고, 약간 바뀐 순서는 밝히지만 않는다면 그리 큰 흠은 아니잖아요… 아버지도 이해하셨구요, 어머니는 좋은 사람 만나서 얼마나 잘 된 것이냐며, 글쎄 어머니도 쪼끔은 울어주시데요…


그래 그게 뭐 그리 흠이더냐. 그렇게 아쉬워하던 분홍 장미 대신 들고 찍은 카네이션에 섞인 그 황국 두 송이 때문에 미리 철 이른 죽음이 준비되었을까. 자네 살아온 내력이 왜 이리 내 가슴을 짓누르는지 몰라…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라고.


남편은 봄학기에 짝학기 복학을 했다. 그는 여전히 안채에 있는 공부방에서 밤늦기 마련이었고, 아래채의 초저녁 잠 없는 그녀는 아이가 잠들어버린 뒤 머리는 잠들지 않고 몸은 파김치가 되어 알 수 없는 혼돈을 헤맸다. 어렴풋이 잠들며 가위눌리는 일이 반복되자, 몇 달 걸려서 어렵게 시골장터에서나 있을 법한 삼색가위를 구했다. 실은 알록달록한 가위, 그것이면 가위눌리는 병을 잡는다 했었다. 이불 밑에서 가위가 발견된 것은 그러나 그녀에게는 큰 빌미 잡히기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단숨에 정신상태를 의심받았다. 아이가 자라는 방 이불 밑에 소름끼치게 큰 가위라니, 그 색깔하며 여기가 무당집도 아니고… 가장 가슴아픈 단어, 비수같은 단어가 시작되었다. 수준은 별 수 없네 뭐. 대학원생 시누이의 야멸찬 비난이었다. 대학원에 다니는 여자는 그녀 주변에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였다. 대학도 가뭄에 콩 나듯이, 그것도 고향집에선 동네 복판 이태리식 양옥집 둘째딸만 다니지 않았던가. 그렇게나 높고 이질적인 것이 대학인데, 대학원생이라니. 그래도 너무했다. 어디 병 아니냐, 정녕 큰 병이다 하시는 시어머니의 더 무서운 말보다도, 수준이란 핀잔이 더 아팠다. 그런데 병은 병이었다. 가위 사건 이후로 안채로 옮겨간 아이는 다행히 잘 지냈다. 젖을 뗄 때가 훨씬 지났으니 자연스레 젖을 떼었고, 우유도 잘 받아먹었다. 다시금 혼자가 되어 이내 잠들지 못하는 병으로 수척해가던 여자는 낮에도 한참 바쁜 살림 중에 멍하니 앉아있었고, 그런 일은 제 방이고 시어머니 안방이고  대청이고 구분치 않게 되었다. 그냥 차라리 네 방에서 쉬거라… 제발 네 방안에서… 그렇게 그녀는 아래채 방안으로 방안으로 밀려들어갔다. 함께 먹지도 않고 집안 일을 잘 거들지도 못하면, 그러면 뭣 하러 함께 볼 일이 있겠는가.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는 온통 분위기가 삼엄했다. 에미 저러는데, 에미는 병원에든지, 혹은 심하면 이혼해야지. 한창 때 멀쩡한 대학생이 저게 뭐야. 애는 처음부터 입양이나 했어야지… 그런 소리도 들렸다.


직접 들은 것인지 확신은 없으나 맨날 그런 눈치라 느꼈다. TV에서도 툭하면 입양아 통계가 들먹거려졌고, 마치 국력을 다른 데 모으기 위해서라도 키우기 어려운 아이를 수출하는 것은 계산에 맞는다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러는 사이엔 어디 뉴스 소리가 날까 봐서, 아이가 알아들을까 봐서 아이를 데리고 방안에만 더욱 틀어박혔다. 그러나 저녁엔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려갔다. 긴 긴 저녁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딸아이는 어느 새 통통통 발걸음을 했고, 헤헤거리며 종일 안채에서 놀았다. 할머니 방문턱이 무서운 줄 모르는 아이로서는 아무 걱정도 아니었다. 하미야 하미야… 느닷없이 미소에 녹은 할머니가 슬쩍 누그러졌다. 오오냐 요놈아에서 오오냐 내 새끼로 변해갔다. 자아 이쁜 짓 할려면 니 에미에게 동생 하나 낳아 달래라, 너같은 놈 말고 네 아빠 닮은.


그렇게 딸은 할머니 방으로 아주 옮겨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작 막내시누이가 시집을 가자 그 방은 아이 방이 되었고, 마침 할머니 방 이웃이었다. 점차 할머니 세계로 가까이 가는 딸에게 엄마는 낯선 사람이었다. 낮에도 잠이 들락말락, 앉아서도 잠이 들락말락, 서서도 잠이 들락말락… 엄마는 나를 미워 해! 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차례대로 들락거리면서, 저를 끔찍히 반겨주길 깜박 잊는 엄마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유치원에서 모두 엄마랑 모여 머리에 종이왕관을 쓰고 찍은 사진에도 그녀 대신 애 고모가 올랐다. 가까운 데 사는 둘째 고모가 제 아이와 함께 엄마 노릇을 다 했고, 덕분에 그녀는 집에서 쉴 수 있었다. 그래 너처럼 에미 노릇 편하게 하는 에미가 어디 있다드냐. 너처럼 시에미 시누가 애 다 키워주는 경우가 어데 있는 줄 아냐.


    삶이 덜컥, 새장을 열어 젖히는 것 같아

    솔직히 겁이 난다 

    시작이란 그래,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지


딸아이는 갸름하고 수려한 제 아버지를 닮았다. 많이 닮았다. 함께 9개월을 산 것도 아닌데, 군대에 가 있는 제 아비를 닮는 아기라니. 그 닮은 모습은 할머니를 얻을 수 있게 했지만, 어머니를 잃게 했다. 할머니는 연신 이왕 그럴 바엔 아들로 낳지… 하는 푸념을 대놓고 했다. "이왕 그럴 바엔", 그러니까 이왕 사고를 쳤다 해도 아들이 귀한 집이니 아들이라도 낳았으면 에미는 대순가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며느리로 들어와 사는 동안 곧 바로 아들을 낳았으면, 혹은 딸이라도 더 낳았으면 가능성을 보았을 터인데, 어떻게 더는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다. 집안에서 위축될 대로 위축된 그녀는 몸도 마음도 열리지 않았고, 모든 것이 움츠렸을 것이다. 새벽녘에 살짝 잠들어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버릇이 되었고, 하루 종일 졸리다 말다 하면서도 동작은 되고 있었다. 아침 준비, 설거지, 오전엔 빨래와 청소, 하루는 안채, 하루는 아래채, 바깥 욕탕과 장독대, 부엌 대청소, 마당청소… 끝이 없었다. 점심 준비 설거지, 다림이질, 장보기, 저녁준비, 설거지, 꼬마 TV… 기계적인 일상에서 특이한 것은 딸아이의 존재가 희미해져 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할머니방 출입이 기특했더니만, 밥을 먹을 때에도 할머니, 숙제를 할 때에도 할머니였다. 여전 가사과 졸업의 유식한 할머니는 초등학교 숙제까지 다 거들어 주셨다. 받아쓰기라도 시킬 때에는 목소리가 우렁찼다. 혹시 처녀 적에 선생님을 하셨나 싶을 정도였다. 어딘지 사람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풍채도 그랬다. 그러니까 남편은 어머니를 닮은 점이 없었다. 아버지 모습은 조금 남았다. 길쭉하고 뾰쪽한 이마랑 푸르스름한 눈동자랑. 딱 그 푸르스름한 눈동자 때문에 가끔 들여다보는 제 아이의 평범한 둥근 눈은 생소하기만 했다. 그늘로 드러나는 눈동자. 예민해져 가는 눈동자. 게다가 남편은 아직 학생이었다. 아이가 제 아빠를 찾을 동안에도 여전히 학생이었다.

 

딸아이와의 문제는 건망증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잘 챙겨주지 못하는 에미에 대한 불만은 당연한 것이었다. 제 할머니가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어도 가슴에 못을 밖을 때, 그러니까 갑자기, "이왕이면"으로 시작하는 한탄에서 제가 딸인 것이 불만일 때, 딸은 꼭 할머니처럼 에미를 원망했다. 몇대 독자 집안에서 아들이 없는 것, 그것이 제가 딸아이로 태어난 잘못인 것처럼 여겨질 때, 아니 그 에미가 괜스레 미울 때, 딸은 혹독했다. 사실 딸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삶보다 TV를 더욱 사실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온갖 사람들이 온갖 관계로 얽혀있는 TV 속의 삶은 정말 사람 사는 삶 같았다. 집이라야 남편은 공부방 혹은 응접실에, 시부모는 안채에, 딸아이는 제 방에, 그렇게 각자 숨어지내는 절간인지라, 그녀의 작은 TV는 온갖 정보와 교감을 다 뿜어내고 있었다. 남편은 처음 예정과는 다르게 계속 진학을 했다. 세상이 달라져서 미래를 보려면 대학원은 다녀야 중간이라 했다. 점점 멀어지는 학력 격차는 별 문제가 안되었다. 약간의 경우가 차별이 나는 법이지, 아예 다른 차원에서는 비교도 안되는가 보다. 아이는 학교에 들어갔고, 신입생 등하교에는 물론 젊은 할머니가 따라 다녔다. 그 해에는 KBS에서 방영된 《울밑에 선 봉선화》서러움 보면서 그럭저럭 제 시름은 잊고 지냈다. 시에미 노릇은 저쯤 해야지 뭐. 끔직한 말들이 안채에서 오갈세라 그녀는 제 방 속 퇴물 TV앞에 꼼짝않고 앉아 있었다. 이야기 속 그 옛날 순천지방 이야기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생생하게만 느껴졌고, 배역을 따라서 찔끔거렸다. 철물점이름, 서점 이름도 진짜만 같았고, 하긴 작가가 고향의 일가족 주변 이야기라고 하니 진짜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간은 희한하게도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딸아이는 할머니랑 넓은 화면을 보고 있을 것이었다. 심지어 어린이용 《까치》씨리즈를 볼 때도 아이는 옆에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엄지도 서럽고 까치는 까치대로 불쌍하고, 왜 사람들이 마음을 닫아거는지, 아이들 이야기라는 생각도 없이, 《캔디》며 다른 순정 만화들도 혼자서 보고 있었다. 방에 갇히어 조금씩 기운나는 약을 마셨다. 처음에는 상에서 남아 나오는 노름한 음료수, 그것은 알코올 성분이었고, 일시적인 효험이 있었다. 부족하면 수퍼로 달렸다. 마알간 알코올병이 있었다. 아직 어렸다할 나이에 사이다 남은 것인 줄 알고 마셨다 죽을 뻔했던 그런 병이었다. 어딘가 아버지 냄새도 났다. 그리운 약은 성인인 그녀에게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여자는, 지금 땅 속에 뉘인, 여자였던 시신은, 그런 몸으로 나를 만났다. 나는 뒤늦게 그 집안에 들어간 더 잘 배운 어른. 결혼이 늦은 삼촌의 아내였으니, 숙모라 불렸다. 명절에나 가족 행사에나 만나는 터이지만, 어쩌다 보면 아이는 제 에미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가 작은 할머니께 인사해야지… 하면, 함무니 아니야! 라고 쏘아붙였다. 제 할머니가 색씨 할머니 그래라… 하시면, 그래 색찌 함무니이… 했다. 똘똘한 딸 아이 앞에서 주눅든 에미는 대강 음식 만지는 일로 물러서며, 아니면 찬장 청소, 부엌 바닥 청소, 어디 담벼락 청소, 청소에만 매달렸다. 식구들 눈에는 그것 또한 병적으로 보였다. 뭘 저렇게 닦고만 다니는지, 옛적에 온통 굴뚝까지 닦고 다녀서 굴뚝이란 아낙이 있었다잖나. 요새도 굴뚝이 있었음 닦고 말았겄제… 그 말이 옳았다. 할 일 없으면 시름달래는 여자들이 자개농 닦으며 세월 보낸다는 이야긴 들어보았지만, 변변한 농도 없이 시어머니가 거한 자개농 새로 들일 때 물려받은 농짝에는 애정이 가지 않는 것인지, 아무튼 어딘가 담벼락을 잘 문지르고 있었다. 당연히 먼지가 앉게 된 외벽까지를 닦고 다니니 이상한 결벽증에 온갖 병명을 들이대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담벼락 닦고 있는 엄마를 마주치면 질겁이었다. 친구들하고 어울려 돌아오는 길에는 더욱 그랬다. 너네 엄마야? 너네 엄마 뭘 하시니? 이상스레 온갖 담벼락을 닦고 다니던 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젠 마지못해 부엌에 나올 때도 술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우리야 어쩌다 보는 모습이지만 들킬 정도였다. 물그릇도 출렁거리고, 고르지 못한 부엌 바닥에선 근들거리고… 아차 큰일이다 싶게 어두운 것은 그녀의 눈빛이었다. 이 아이가 왜 그럴까? 그런 생각은 명절의 번잡한 분위기 속에서 곧 흘러가 버리고, 쉬이 잊혀졌다. 다시 만나면 다시 놀라고, 흐트러진 눈빛으로 차라리 포악이나 했으면 덜 가슴아팠으리라. 할말이 그렇게 없는지, 냄새 들킬세라 아예 입을 닫아거는지, 무표정하게 다문 입, 그것이 그녀의 굳은


인상이었다. 어디에 서 있어도 어울리지 않는, 온 식구들이 치부까진 아니라 해도 조금은 군더더기로 느낄 만도 했다.


그렇게 버틴 세월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은 딸아이의 가출 소동 직전이었다. 아이가 적당한 입시에 실패하자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때 그녀는 울부짖지도 못했다. 그냥 우연히 그 집에 들린 나를 따라 나섰을 때의 놀라움. 저 잠깐 저하고… 십여년 넘게 한 집안 여자로 살았다지만, 핏줄은 무관한, 아니 어느 것도 무관한 우리가 무슨 말은 나누었겠는가. 그날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죽어버린 오늘까지 두 여자가 나눈 말이 몇 분이나 될까? 평생 한 집안 사람으로서 살았다지만, 나눈 말을 녹음했다가 편집한다면, 그게 몇 분이나 될까? 끔찍한 느낌이었다.


숙모님, 그게 제 탓이라는데요. 제 탓이었다구요. 그냥 그런 아무 말도 없이 애를 낳고 그런 것이요. 군대가서 사고친걸루 애를 낳는 여자가 어디있냐구요. 앞길 창창한 남자 발목 잡아 앉혔으면 되었지, 왜 애는 또 망쳐 놓았느냐구요. 애를 제가 망쳐요? 제 딸을요? 전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었어요, 도망도 안치고, 죽지도 않고, 밉건 곱건 제 에미 자리에요. 그 자리요, 그것 때문에요. 세상 모든 엄마는 살아야지요, 안그러나요. 우리 엄마는, 울 엄마는 못 버텼으니까요. 동생 낳다 죽을라믄 왜 날 낳다 죽지 그랬을까요. 그럼 깨끗했는데. 전 엄마라구요, 엄마니까 살구요. 엄마니까 살았지요. 너무 어려웠어요, 도통 알 수가 없었어요. 애 아버지는 참 심지가 있어요, 나 버리지 않고, 나 받아주고, 이렇게 살았지요. 속마음 그런 것이 뭐 중하대요. 저 이렇게 여기서 살고 우리 딸 잘 크고, 속마음 같은 것은 욕심이지요. 속마음까지 다 바란다면 정말 욕심이구요. 기가 막힌 때도 많았지요, 아니 내내 어지러웠나.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도 모르고 세월만 흘렀네요. 애 자라는 보람으루요. 그런데 이젠 그게, 이 애가 날 버리다니. 이 애가 날 못 참는다 막 나간단 말이지요. 집에선 숨이 막혀 죽는다고 대드네요, 그게 바로 대학을 갔으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을. 재수 시작하자 시간이 좀 들쭉날쭉, 집에 있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진 거지요. 아니 시험 봐 놓고, 웬만한데 붙었다 하고 쉴 때 그랬어요. 이게 어느 날 소리를 꽥 질렀어요. 아무 일도 아닌데. 엄마, 왜 이래. 엄마 정신 차려. 제발 엄마, 이게 뭐야! 난 그냥 힘이 없어서, 저 좋아하는 삼색말이 해서 점심 줄려는 참에, 힘도 부치고, 또 뭔가 기름 냄새가 메스껍고 그래서 살짝 한 모금 먹고, 계란말이를 접시에 옮겨 담는데 이 애가 부엌으로 온 거예요. 대낮부터 이게 웬일이냐며 날뛰는데, 겉잡을 수가 없더라니까요. 할머니 나오셔서, 이게 무슨 짓이냐, 할아버지도 계신데 이 무슨 해괴한 짓들이냐, 참 불쌍한 모녀들 거뒀더


니 이젠… 


참 불쌍한 모녀, 그 말에 그 애가 그렇게 상처받았을까요? 그랬나 봐요. 그 뒤론 애가 웃지도 않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더니, 제 아버지가 돌아오니 물었드래요. 왜 엄마랑 제가 불쌍한 거냐고? 불쌍한 자식, 그렇지요. 불쌍하지요. 제 엄마가 조금 못나고, 그러니까 기껏 시집살이 순종형이라 발언권 없고 착해빠진데 몸까지 망가진… 그 정도로 가족 내에서 랭킹 꼴찌다, 그런 건 싫어도 참을 밖에요. 하지만 불쌍한 엄마는 정말 싫었나 봐요, 덩달아서 불쌍한 제 자신도. 고종사촌들, 남자아이들에 비해서 크게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었다 해도, 그래도 좀 차별은 으레 할아버지 다르고 할머니 다른 정도로 생각했었겠지요. 그러니까 아버지 다르고 엄마 다른 정도가 심해도 그럴 수 있나 보다. 시집살이는 그 애도 어려서부터 연속극에서 다 보며 컸을 걸요, 왜 《울밑에 선 봉선화》 뭐 《갈대》, 별의 별 것 다 보며 자랐으니까요. 그땐 그만큼 모질지 않은 시어머니는 다 천사쯤 되는 줄 알았잖아요. 그런걸 할머니 무릎에서 보며 자란 애니까. 딸애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난 슬며시 겁이 났어요. 애한테 걱정을 끼쳐줄까 봐 겁이 났고, 바로 부딪히면 말문이 다 막혔으니 말이예요. 왜 어머님 앞보다 더 그랬을까요. 난 그냥 죽고 싶었어요. 그래도 엄마는 살아야지요. 그렇다고 술이냐구요? 효력이 적을 걸요. 술병 들여오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우리 시댁 참 양반들이지요, 아니 참 우리 시댁 양반 맞지요, 살아 보시니까 그런가요. 장바구니 같은 건 아무도 안챙겨요. 너그러운 집안이지요… 나같은 것을 애초에… 


아니 숙모님, 좋은 이야기. 제가 마음을 달래면서 읽은 시여요. 일어나 멀리 날 때… 너는 너… 기어코 너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너… 이 애가 너른 세상에 나가야 하겠지요. 시는 가르침이 많더라구요. 저는〈풀이 눕는다〉그런 걸 외이며 살았는데. 우리 애한텐 〈새〉가 좋겠지요?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아니 다시요,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먼저 일어난다… 그런데 바람이 정말 눕나요? 풀 그런 것 말구요, 새, 새가 좋지요… 태양까지도 날아가게… 귀싸대기 새파란 참새가 안돼 안돼 바람 속에 날개를 털어야 해…


난 새삼스레 놀랐었다. 질부가 이렇게 속말을 하다니. 아니 언제 이렇게 술에 절었나, 그것 또한 무서웠다. 얼마큼 속이 타면 술로 속을 더 태웠을까. 나도 남편 따라 외식할 때면 한 두잔 마셔본 와인이 새콤달콤 맛이 있구나… 하던 참에, 알코올중독이란 무서움과 추함으로 다가왔다. 하긴 여자가 늙어가면서 두 가지 악습에만 빠지지 않으면 된다고 누가 그랬더라? TV 중독, 알코올 중독, 가장 심한 건 그 두 가지를 겸하는 것, TV 앞에 앉아서 줄창 술잔 입에 대는 것.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들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가장 심한 것은 군대에서 축구하는 것, 그런 식으로 웃어 넘겼던 이야기가 이젠 끔찍했다. 이 여자는 완전히 두 가지 다로구나, 아직은 젊은 나이에. 아직은 젊다… 아직은 TV 앞에 앉아서 술잔 입에 대기에도 너무 젊지만, 죽기엔 말해 무엇하랴. 아직은 너무 젊다, 아직은. 물론 그 때도 젊은 나이에 술에 절은 여자가 안쓰럽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이상했고, 이해가 되었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눈물방울로 시작된 두 젊은이의 만남이 이렇게 술로 마감될 줄은 몰랐다. 짠 눈물에는 미미한 온기가 남아 있지만, 술은 화끈해도 냉랭한 물일뿐이다. 얼굴을 달게 하는 만큼 심장을 얼리는. 그날 제 시어머님께 집에서 재워 보낸다고 허락받고서 하룻밤 말동무를 해준 것이 전부인데, 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은 몰랐다. 혹은 그렇게라도 말을 들어준 것이 덜 후회될까?


숙모님, 그때 왜 제가 눈물을 흘렸게요. 저도 몰라요. 긴 얼굴에 어른스러워 보여서 언뜻 어려서 본 아버지 모습의 대학생이 들어와서요… 제게서 머리를 깎겠다지 뭐예요. 물론 여럿이 들어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었지요. 전 한 번도 손님 같은 건 의식해 본적이 없어서 그냥 아무렇게나 하고 있는데, 바닥이나 쓸고. 그때 그이가 내 앞 의자에 와서 앉은 거예요. 웬일인지 가슴은 뛰는데 내 모습은 꾀죄죄하기만, 그의 뒤통수는 다행히 눈도 코도 없어서 날 보지 못하겠지만, 그 머리카락은 자르기도 아까운, 손도 대기 아까운 찰랑거리는 건강함… 제가 그때 눈물을 떨구었나 봐요. 어려서 갑자기 긴 머리를 통째로 자른 날, 잠든 베개 밑으로 가만히 뒤통수를 쓸어주던 아버지 손도 느껴지고, 왜 그의 뒤통수에서 내 뒤통수 생각을 했겠어요. 그러느라 어물거리고 있는데… 제 자신이 머리카락 무더기 속에 서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제 자신이 초라하기만 하고… 도망치고 싶어도 손님이고… 아무튼 그날 이후 저는 정신을 차려서 커트도 하고 본격적으로 머리를 했지요. 열심히 해서 단골도 늘고. 이듬해 봄에는 더 시내 쪽으로 옮겼고. 2, 3층을 다 쓰는, 꽤 되는 가게였어요. 점장님도 잘해주고… 그러던 여름 그이가 갑자기 가게로 찾아와서는…  


그게 그랬었구나.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아니예요. 전 어차피 아무 것도 못해요. 시댁 들어와서는 단란하게 꿈을 꾸었죠. 일단 시부모님 마음에 드는 며느리가 되자… 그러려니 뭐든 어머님 시키시는 대로… 어머님은 그런데 아무 것도 안 시키셨어요. 세상에 김치찌개 하나 된장국하나 못 끓이는 여자도 시집을 온다시며… 사실 제가 중학 졸업 못하고 집 떠나서 언제 반찬 만드는 걸 보았겠어요. 세상엔 라면과 햄버거가 전부였는데, 기껏 가게에서 배달시켜 먹는 짜장면 아니면 김밥. 전요 김밥 먹다가 일어서고 하다보면 어찌 목이 메이든지 절대 김밥을 싫어해요. 김밥말이를 할 줄이나 알겠어요? 그래요, 결국 고깃국이 있어도 생선토막구이나 닭찜이 있어야 되는 시댁 밥상을 무슨 수로 잘 차려요… 맨날 파나 양파 다듬고 마늘 까고… 애 김밥 한 번 못 싸준 엄마, 그런게 무슨 자격이 있겠어요. 애를 낳으면 다더냐. 저의 어머님 늘상 두고 쓰시는 말씀이지요. 몇 살이면 무슨 그림책으로 무슨 공부를 시작하는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저 뿐 아니라, 우리 집에선 어머니가 낳은 동생들도 그렇게 뭐 갖춰 가며 컸나요. 시댁은 엄청 달라요. 뭐 잘산다 그런게 아니라요. 뭣이 그렇게 법이 많은지, 법이라기 보다는 암튼 이럴 땐 이렇고 저럴 땐 저렇고… 나중엔 남편이 저를 문화센터에 보내더군요. 상차리기. 궁중요리 코스. 그런 사이에 꽃꽂이 교실이라니… 저는 꽃이 아깝기만 했어요. 불쌍하기도 했고. 아이가 중학교 가니까, 엄마가 영어 좀 더 해라… 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지요. 일찌감치 시장으로 길을 돌려서 순대에 소주 한 잔 하고, 그 온통 소금에 고춧가루 넣은 고소한 소금 맛에 기막혔지요. 집에서는 그런 소금은 구경도 못해요. 그런 흰 소금은 건강비상 일호지요, 미원이랑 흰 설탕도. 여름이면 시원한 물에 설탕 타서 먹으면 얼마나 개운한지… 그런 것은 모르는 사람들이예요. 노랑 설탕을 그냥 타서 먹어 봤지요, 어찌나 찝찌름해서 집에선 설탕물도 못타 먹지요. 밖에 나와선 고춧가루 소금에 비닐 순대도 맛만 있는데. 왜 비닐 순대


냐구요? 집에선 그런 순대는 비닐로 만들었다고 구경도 못하게 하지요. 진짜 순대라는 걸 역겨워서 못 먹으면, 못 먹는 저만 병신이구요. 시장서 소주 마시고 다니다 들켜서 이젠 시장도 안 내보내세요. 담벽 안에 꽉 갇힌 거지요. 새장 속의 새, 집 속의 여자. 숙모님, 저 그거 몰라서 참았나요. 까짓 것 넘으려면 넘을 담벼락, 왜 참았겠어요, 애엄마니까. 내가 딸을 낳았으니까, 엄마다 하고. 못나도 엄마, 잘나도 엄마. 그런 것 아니어요? 난 사실 앉은뱅이 엄마라도 있었으면 했으니까. 사실이예요. 그런데 정말 앉은뱅이 엄마면 챙피해서 차라리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했을까요? 설마, 제 엄마를 죽어버렸으면 했을까요?


나중에 듣고 보니, 그때 상황이 매우 나빴다. 딸아이가 명문입시에 실패하자, 모두가 애 엄마를 흘끗거렸고, 대체 엄마가 저러니 교육이… 하는 눈으로, 이젠 외가의 내력까지 들먹였더란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에미가 보배운데 없으니 애를 무슨 수로 제대로 교육을 시키냐, 아들도 없이 저것 딸 하나를 대체 어디다 쓰느냐. 아들 타령은 새삼스러운 것으로, 그렇게 원하던 아들을 더 이상 조르지 않더니만, 일이 그렇게 꼬였더란다. 딸아이는 그 "아들" 소리에 히스테리가 되어가고, 아무 것도 못할 바엔 남동생이라도 낳아서 저 편하게 해줄 것이지, 아무 것도 못해주는 엄마가 야속했을 것이고, 또 무엇보다 어려서 이래 챙피한 껍질처럼 느껴졌던 엄마에 대한 미움이 봇물처럼 터졌겠지. 대개들 자신이 미우면 누군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혹독하게 미워하게 되는 법이니.

그 날도 저녁에 추도식 모임을 위해 일찍부터 집안 여자들이 모였다. 그녀는 두엇이서 전을 부치다 말고 슬그머니 사라졌는데, 막상 상을 차릴 때까지 여전히 모습이 없었다. 사람들은 수군대기 시작했고, 딸아이는 속이 상해 아래채로 달려가더니, 멍하니 술에 취해 있는 제 엄마더러 그냥 죽어버려라 그랬다는 것이다. 엄마는 챙피해, 챙피해서 내가 죽겠단 말이야…  


그런 에피소드는 쉬쉬하면서도 다반사였었나 보다. 그렇다고 이렇게 떠나갈 줄은 정말 몰랐다. 딸아이는 할머니 품에서 할머니 사람답게 자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속내는 에미였을까? 셈에서 약한가 싶었지만 아이는 학교에서 나름대로 최고를 해내고 있었다. 할머니가 가끔, 이 애가 제 애빌 닮아서 공부는 잘 한다오… 하면서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그랬다. 우리가 가끔 큰집에 들렸을 때면, 어려서도 방안에 박혀 있고 잘 나서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오랜 시간 한 곳에서 견디기를 잘하는 것 같았고, 그런 아이들은 대개 학교를 잘 견딘다. 그러나 어쩌다 만나면 표정은 시무룩했다. 자라면서는 더했다. 할머니 약은 효력이 떨어져 갔던가 보다. 엄마가 그리운데 엄마는 없었겠지. 이상하게 겁먹은 바보같은 여자만 있었겠지. 여전히 훤한 모습의 할머니, 화려한 고모들에 비해 어처구니없는 엄마. 왜 하필 엄마가 엄마인가 하는 눈빛, 그런 건 여자들이, 또 우리처럼 가끔 들리는 여자들이 더 날쌔게 느낀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몸을 떨었다. 어딘가 구석으로 그림자처럼 밀려버린 엄마를 견디지 못했다. 엄마 딸인 것을 부끄러워했다면, 엄마를 더욱 더 방안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딸이 돌아올 시간이면 겁이 나기도 했겠다. 첨엔 잘 듣던 약도 효력이 떨어졌겠지. 술을 늘리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시장에도 가끔 나갔고, 동네엔 수퍼가 흔하다. 살림살이에 너그러운 집안 탓도 있었다. 그러나 독은 쉬이 퍼진다. 놀란 식구들이 감시를 시작할 때쯤엔 속수무책이 되어 있었다 했다. 그렇게 그녀는 중독이 되었다. 입원 치료가 불가피했다. 입원한 그녀를, 돌아온 그녀를,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두어번 반복되는 입원 퇴원을 거치다 보니, 명색 어른들이 문병이나 가느냐고, 우리들 오는 것도 금하셨다. 무슨 자랑이라고 그런 문병을 다닌다냐고. 딸은 치를 떨었겠지. 위 아래로 피를 쏟는 엄마를, 그것도 제 스스로 중독이 되어간 엄마를 이해할 딸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행여 엄마를 닮아서 인생에 낙오


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겹칠 때면…


그 다음엔가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리 노환도 아니고 그저 조금 신장 문제로 부기 때문에 잠시 입원했을 때, 그 때 나타난 며느리 몰골을 보고 다시 한번 끔찍히 놀랐을 때에도, 설마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쾌적하다 못해 호흡기 등 부착되어 있는 기기들만 아니라면 작은 호텔같은 병실에, 깔끔한 딸들은 스타킹까지 갖춘 화사한 정장 풍으로 남의 집 병문안 오듯이 와 있었다. 중환이 아니고 보니, 잘 정리된 병실은 아늑했다. 그 틈새에 추한 며느리 꼴이라니, 대충 신은 신발에, 치마는 따로 돌고… 차림새는 그렇다 해도, 해골처럼 굳은 얼굴로, 희한하게 미소는 띄우고 ― 그것이 그저 취한의 홍조였을까? ― 이리 저리 발걸음을 놀리며 병수발을 자청하던 모습이 그냥 오싹하기만 했다. 정말 안쓰러워서, 그냥 우리 모두의 치부를 드러내주는 모양새 같아서.

 

딸은 그러니까 엄마를 치를 떨다가, 스스로가 두려웠던 모양이다. 스스로 알코올중독인 엄마를 이해할 힘도 없었겠지만, 아버지 또한 모녀를 도와줄 수 없을 때, 딸은 폭발했다.


딸이 가출했다고 알려진 이래 그녀는 완전히 술에 절었다. 술 속에서 흐느적거렸다. 공급을 끊으려고 낮에는 사람들이 지켰지만, 밤이면 방문이 밖에서 잠겼다. 그러면 그녀는 창살 칸막이가 있는 길가 쪽 봉창을 열고 아는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건너편 집 아이들이 드나드는가 살폈고, 지나는 수퍼집 아줌마가 보이면 사정을 했다. 나중에는 아저씨에게도 사정을 했다. 나 죽어요… 이애 아빠만 오면 해결 나요… 지금 이애 아빠가 없으니 날 이렇게 못 나가게 하네요… 우선 숨 넘어가기 전에 한 병만…  


가게 아저씨와 아줌마는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나자 서로를 욕했다. 그러게 왜 술을 가져다 주었느냐고… 서로 아니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이것은 비겁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젊은 여자의 죽음에 조금이라고 끼이고 싶을까. 아무 소리 없이, 신음소리도 절망소리도 들리지 않은 하루 낮 하루 밤이 지나고 방문이 열렸다. 무심코 며늘아기가 안보인 며칠을 이상하다 하다가, 늦게 귀가면서 흘끔 잠긴 방문을 본 시아버지는 안채에다 친정에라도 보냈냐 물었다. 사실을 알고는 안사람더러 야멸차다며 호통을 쳤다.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살려야지… 불쌍한 여자는 합리적인 아버님 덕분에 아직 미미한 온기가 남아 있을 때 발견되었다. 아니 누구라도 사람 사는 집에 그렇게 아무 소리 안나는 잠긴 방문을 오래 방치했을 리는 없다.


딸을 잉태시킨, 딸과 그녀를 보호해주었던 하늘같은 남자도 형체뿐이었겠지. 긴 세월동안 중간자리의 남편 또한 분열 직전이었을지 모른다. 참을성이 덜한 그녀가 먼저 무너져 내렸다. 부모형제 누구라도 뒷받침이 덜한 그녀가 먼저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 뿐이다. 가출했던 딸이 실제로는 곧 고모집으로 돌아와서 잘 견디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남편도 며칠 딸에게로 퇴근하며 아이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여자는 슬슬 치사량의 술을 마셨다. 술 속에 익사한 것이다.


저만치 새삼 조카의 단정하지만 어딘지 너무 부드러운 긴 모습이 어른거렸다. 검은 양복에 오뉴월 뜨거운 태양도 잘 참는 무던한 남자. 내 친정동생이라면 나무랄 바 없을, 내 동료라 해도 나무랄 바 없을, 참을성 있고 과묵한 남자. 아직 한창 나이의 저 남자는 그러나 40 초입에 상처를 했구나. 얼마큼 참기 힘들면 죽도록 술에 절기도 하는가. 남편이 출근하는 지 돌아오는지, 딸아이가 가출한 것도 아는지 모르는지, 어디 딴 세상을 헤매는 아내를 참기에는 너무 단정한 남자, 저 남자도 불행했구나. 이제 곧 여름이 오면 세상은 맨발 천지가 될 것이고, 제 맨발을 찾아 어디로 헤매려나. 참 불행했구나. 아니 불행이구나, 어디 "화근이었던" 아내가 죽었다고 불행한 과거의 시간이 함께 사라지는가. 저 남자의 새장 안에서 죽어간 여자를 누가 쉬이 잊을 수 있겠는가. 누구라도 다 잊는다 한들 새장이야 새를 잊겠는가, 날지 못해 그 안에서 죽어간 새를. 죽어서 날아간 새를. 날지는 못했지만, 죽은 것은 하늘로 간다 하지 않는가. 그럼 날아간 것이지. 태양까지라도.     


     새 중에서 제일 작은 벌새들도

     이름없는 잡새들도

     하늘 속으로 몸을 들이미는데

     귀싸대기 새파란 참새가

     아, 안된다. 바람 속에 날개를 털어야 한다


     일어나 멀리 날 때 너는 너인 것이다

     기어코 너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너인 것이다.


살랑거리는 잎새들이 마침내 숨을 쉬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입에서 무엇인가 안도의 느낌, 할 일을 무사히 다 했다는 큰 숨이 나오는 것과 시간을 맞춘다. 바람이 한 번 더 크게 불어와 등어리 검은 옷 속에 꽂혀있던 태양의 살촉을 걷어간다. 그제서야 조금 움직여서 하늘을 본다. 예상처럼 밝아 터진 태양은 간 데 없고 흐린 잿빛의 하늘, 그녀는 순간 놀란다. 자신이 남의 눈에 설게도 어느 새 썬글라스를 걸쳐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탓이다. 사실 태양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어리는 눈물에 눈화장 지워졌을까 들키기 싫어서였다.


"작은 어머니이, 외수욱모오니임… 가세요. 저기 벤치 아래 점심이 준비되어 있어요오." 상냥하게 팔을 잡아 흔드는 질녀, 질부. 이렇게 삶이 세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검노란 호랑나비 한 마리가 어느 봉분 사이에선가 날아올라 그들의 옆을 스쳐 태양을 향하려는 듯 높이 사라진다. 벌써 다음 세상에 나비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원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니 꼭 새가 되란 법도 없지. 꼭 한번 말을 나누고 떠난 여자, 나보다 훨씬 젊어서 땅에 묻힌 여자, 이제 그 여자와 나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도대체 하늘이 어디까지 갔기에

     가도 가도 따라갈 수 없다 하는지


반혼(反魂)의 절차가 있는지 없는지, 우선 아침을 거른 상제들이며 손들에 대한 음식제공이 으뜸이다. 산 사람은 살어야제… 젊디젊은 남편을 위로하는 말들이 당연하고 또 매정하기 그지없다. 젊기야 젊지… 삼촌처럼이면 이제 장가들 나이네 뭐… 세상에 박한 것이 인심이라고, 산사람 걱정에는 서로 앞을 다툰다. 하긴 일가친척 모여 앉아 하는 말들이다 보니, 젊은 놈 하나 여자 잘못 만나 족쇄 채워졌다가 해방이라는 느낌도 무리는 아닐 게다. 미리 떠난 아내는 저 속에서 버선발로 영원할 것이었다.


초췌해진 당사자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깝다. 그를 힘들게 한 그녀의 반생동안, 그 맨발의 상념을 이젠 떨구는가? 고개를 들어 따가운 태양을 맞는 시선이 물기로 반짝인다. 태양은 아랑곳없다.



소설시대  4호, 한국작가교수회, 평민사 2002, 24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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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