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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1.03 침묵 - 짧은 소설
소설2023. 1. 3. 11:29

사랑, 지나고 나면....... 김윤아


침묵

 

 

 

     침묵만이 위대하다. 다른 모든 것은 유약함이다. ‘유약하다’도 아니고 ‘유약함’이라고 한다. 했다. 「늑대의 죽음」이라는 시다. 죽어가는 늑대가 말한다, 쉼 없는 사유와 노력을 통해 영혼이 스토아적인 긍지의 드높은 경지에 이르라.

    스토아 좋아하네! 알프레드 드 비니, 잘 모르는 시인이다. 비니인가. 드 비니가 더 프랑스 사람 같은……

 

    띵똥. 띵똥 소리가 난다. 이제 막 집중했는데, . 그는 일어서려다가 앉는다. 무슨 상관, 침묵을 깰 수는 없다.

 

    뭐더라, 드 비니 - 그의 일생은 환멸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정열 때문에 이상을 단념할 수 없었고, 그 이상을 믿기에는 너무도 투명한 의식을 가졌다. 절망의 딜레마 속에서…….

어딘가에서 읽은 누군가의 글이다. 하도 여러 곳을 서핑했었기 때문에 누가 어디에 썼던 글인지 알 수가 없다. 양심이 찔린다. 표절이니 도용이니 얼마나 무거운 단어인가. 기껏 잡문이지만 글은 글이다. 드 비니가 침묵을 예찬했다면 그것으로 끝이지, 일생까지 곁들여야 할까. 신빙성을 높이려면 그 정도는 필수려나.

     환멸의 연속 – 친가 외가 모두 귀족이자 군인 가문이었으되, 어라, 1797년생, 귀족으로 태어나려거든 한 세기 전에 태어날 일이지. 운은 운이다. 부르봉 왕가는 곧 권좌에 복귀했고,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의 젊은이는 스무 살도 안 되어 근위대 소위가 되었다. 군인이면서 시를 쓰던 드 비니는 위고가 발행하는 문학지 《뮈즈 프랑세즈》에 기고했다. 하지만 차츰 위고와는 다른 길로 갔다. 그는 상아탑으로, 위고는 민중 속으로.

     그때 1852년, 어떻게 혁명으로 추대된 대통령이 셀프쿠데타로 황제가 되나. 어머니가 남긴 장원에 은거해 있던 드 비니는 상아탑에서 살아갔다. 가난을 감내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유로울 능력이 없다! 라던 위고는 쿠데타를 공공연히 반대하여 추방되었다. 근 20년을 섬으로 떠돌던 망명자는 『레 미제라블』 같은 엄청난 보따리를 안고…….

     그는 위대함에 압도당하는 자신의 속물성을 반성한다. 너는 시인의 위대성에 관해서가 아니라 침묵에 관하여 쓰고 있는 거야! 침묵은 위대한 위고가 아니라 잊힌 드 비니의 몫!

     사는 것은 하인들도 한다. 사실 그는 이 시건방진 말 때문에 드 비니를 피하고자 했었다. 정치적 염세주의는 이해가 되었다. 신념으로 충성을 바치려던 왕정의 무가치성을 목도했으니 그럴 밖에. 드 비니는 심지어 자살에 관한 명상을 쓰기도 했다. ‘엘레바시옹’이라던 시 작품들에서다.

     솟구쳐 올라 죽으라? 자살하라고? 인생이 발레라면 자살이 상위 동작이네. 아니, 침묵 속에 죽으라? 자연은 무정하다. 신은 존재하지 않거나 침묵할 뿐이다. 침묵하는 신에게 애원하지 말고 너도 침묵하라. 운명을 감수하라. 말없이. 결정적 순간의 고독을 받아들이라.

 

     아니, 고독은 처음부터였다. 침묵도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우리 애가 글쎄 우리나라에 처음 추기경이 임명되신 날 태어났어요! 터무니없이 그의 탄생을 축복으로 여겼다던 어머니 루시아는 지쳐갔다. 신에게 애원하다 지쳤을까. 말을 잃어갔다. 사람들은 귀머거리라서 그러는 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서는 침묵했지만, 다른 말들은 했다. 그의 말도 알아들었다. 아버지를 모르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알랴. 침묵은 그런 뜻이었을까.

     어린 시절도 시국을 탄다.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서 칭찬받는 짝꿍 계집애 때문에 속상했지만, 그는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 약진이 뭔가는 설명을 들어서 좀 알았지만, 우리의 처지는 뭘까. 담임 선생님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 자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권리는 또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자유라면 광덕 아제가 목을 매단, 봉덕 아제가 저수지로 들어가 버린 그런 것일까. 자유로 땡볕에서 땅을 파고 자유로 소똥과 씨름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그리 생각했다. 아제들 얼굴은 온통 시퍼렇게 흙빛으로 그을렸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구릿빛으로 익은 보람에 찬 자랑스러운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삶은 글이 아니다. 다시 쓰자.

     어딘가 서핑 동안에 인간은 자신이 나왔던 침묵의 세계와 자신이 들어갈 또 하나의 침묵의 세계, 곧 죽음의 세계 사이에서 살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되므로,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이라고. 왜냐. 침묵은 말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은 침묵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어렵다. 많은 독서는 혼란을 준다. 잠깐, 글은 말이 아닌가. 말이다. 말 안에 글이 있다. 글은 정지되어 있는 말이다. 침묵에 우선권을 주려면 침묵에 관해서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 글은 더더욱……

 

    띵똥. 아니 무슨 띵똥 소리야. 짜증이 그를 압도한다. 뭡니까? 라고 소리치며 문을 열려다가 멈춘다. 이 시각 대낮에 무위도식자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 글값이 쌀값에 미치지 못함에 부끄럽다. 시인 축에 들기는커녕 강의 시간마저 달랑거린다.

 

     ‘내 주장, 그것은 세상이 시인에게 주지 않는 빵이다. 내 주장, 그것은 시인이 부득이 할 수밖에 없는 자살이다.’ 귀족 시인 알프레드 드 비니의 주장이었다.

     내 주장은, 그는 단호하다, 사람은 직업을 가진, 직업을 못 가진 부류로 나뉜다. 돈으로 말해도 같다. 돈을 가진, 돈을 못 가진 부류. 아니, 권력으로 말해야 한다. 권력을 가진, 권력을 못 가진. 권력이 가장 센 단어다. 직업도 돈도 있더라도 비굴해 지는 것은 순간일 터.

     늑대는 말한다. 탄식하고, 눈물 흘리고, 간청하는 것은 한결같이 비겁하다. 운명이 그대를 부른 길 위에서…… 나처럼, 아무 말 없이 고통을 견디며 죽으라.

 

     띵똥! 소리는 고집스럽다. 대문께가 아니라 머릿속인가. 그가 반응이 없자 다른 소리가 되어 들려온다.

사랑 빛나던 이름 그리운 멜로디 아련히 남은 상처~~ 빨간색 여자가 빨갛지 않은 서늘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웬 사랑! 침묵이라니까! 그는 고개를 젖는다. 소리는 계속된다. 아무것도 아닐 그 마음의 사치에 가진 모든 것을 다 소모해버리고 그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

남지 않았지, 그는 되뇐다. 멜로디 없이. 그날 이후 나는 죽었소. 눈물대신 말을 그는 토하고 피도 살도 영혼도 내겐 남지 않았소. 죽지 않은 것은 나의 허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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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22 가을호 69,  248-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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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