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2010. 3. 17. 23:30

      광주일보                                 

獨문학자 서용좌씨 소설·논문집 동시 출간

2010년 03월 17일(수) 00:00

독일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소설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용좌(64 ·전 전남대 독문과 교수)씨가 소설집 ‘반대말 비슷한말’(전남대학교출판부 펴냄)과 논문집 ‘창작과 사실’을 동시에 출간했다.

소설집 ‘반대말 비슷한 말’은 늦깎이 소설가의 십 년에 걸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단편‘쪽지 붙였음’, ‘네번째의 죽음’, ‘마리아 막달레나’, 중편 ‘부나비’, ‘태양은’ 등 12편의 중·단편을 엮었다.

표제작 ‘반대말 비슷한 말’은 명예퇴직을 고려하는 교사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제자를 통해 옛 동료와 시공을 뛰어넘어 펼치는 감성과 지적유희를 다룬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논문집 ‘창작과 사실-양심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 1983∼2009’은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서씨가 그간 교수로 재직하면서 발표한 연구성과를 엮은 것이다. 서씨의 전공분야인 하인리히 뵐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페터 슈나이더, 파울 첼란 작품연구 등 학회지와 잡지 등에 발표한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독일어 원문 논문도 실렸다.

광주 출신인 서씨는 전남여중고와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 독어교육과, 전남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독어독문학회 부회장, 한국하인리히뵐학회장을 역임했다.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과 연작소설 ‘희미한 인(생)’, 중편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이번 소설집과 논문집은 서 교수의 갑작스런 명예퇴임을 맞아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간행위원회를 꾸려 석별의 정으로 펴낸 것이다.

/김대성기자 bigkim@kwangju.co.kr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0. 2. 25. 23:00

 

반대말 • 비슷한말

전남대학교출판부 2010

 

 

 

 

  차례 

머리글 ―――――4

반대말•비슷한말 ―――――8

쪽지 붙였음 ―――――31

네 번째의 죽음 ―――――55

콩나물 ―――――76

조사 ―――――97

마리아 막달레나 ―――――119

오늘과 이별하다 ―――――140

행복한 수요일 아침 ―――――167

춤꾼 ―――――194

건들장마 ―――――214

부나비 ―――――236

태양은 ―――――263

새롭고 낯선, 그래서 신선한 세계 ―――――315
   - 서용좌 소설의 특성 / 유금호

 

머리글


소설쓰기는 이 정보오락의 시대에 무엇일까요?

유명한 정도가 매년 한국의 노벨문학상 예상 인물들 중의 하나로 꼽히는 한 소설가가 학교에 초빙된 적이 있었습니다. 소강당 강연 중에 그는 시를 못 쓰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 하고, 소설도 못 쓰는 사람이 평론한답시고 하고,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교수한다고 공언하더군요. 물론 유머였겠지만 가슴이 막혔습니다. 별 볼일 없는 문학 강의 시간 줄여서라도 학생들에게 유명작가를 만나게 하려던 저는 하릴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렇다고 그제서 분발해서 소설을 쓰기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얼떨결에 소설가가 되긴 했지만, 아무도 저를 소설가라 불러주지 않은 때였습니다.


기자본주의사회에서 교수는 허위의식의 극치의 하나입니다. 어설픈 존경이라는 것도 허울 뿐, 그에 전혀 걸맞지 않게 그들이 하는 노동의 양을 생각해보십시오. 취미 하나 개발하기는커녕 마음 편히 밤잠을 자보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더 많은 시간 글에 매달려도 더 알아주는 사람 없는 소설가의 길에 빠져든 것은 저로서는 실존적 선택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소설들을 파먹느라 밤을 지새우는 하이에나이기를 멈추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친 하이에나는 완전히 생경한 글쟁이의 길로 접어들자 표범은커녕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박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늘 선택 앞에 깜깜한 채 내팽겨진 우리들의 무력감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앞을 향하고 걸어도 불안한 걸음을 계속 뒤돌아보느라 터덕거리는 어리석음을. 가끔은 먼 데 하늘을 바라며 전혀 다른 상황을 꿈꾸는 우리들의 모습을.


꿈을 꾸는 한, 인생은 늘 불발입니다. 유토피아는 아무데도 없는 곳이니까. 그런데 삶이 점점 녹록치가 않습니다. 한 겨울에도 반쯤 벗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라고는 하나, 우리들 어디에도 온기라고는 없습니다. 행여 내일 실패하지 않으려고 뇌세포는 주판알로 피범벅입니다. 그러나 그냥 살아있는 것은 모든 생물체에게 주어진 우연한 권리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나에게만 주어진 한 가닥 미미한 권리로서, 나는 나로서 살기를 망설이고 싶지 않습니다. 지식산업의 대열에서 살아남느라 정신에 대한 죄악이라고 홀대했던 이미지 - 이제서 이미지에 들려 나로서 상상하기는 어떤가요.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오래 망설이며 겁냈던 글쟁이로서의 실존 -

어딘지 산만한듯하면서도 응집력을 지닌 소설쓰기에 몰입하고 싶습니다. 서사텍스트란 겉보기에만 하나의 통일체일 뿐, 실제로는 사건의 객관적 세계와 서술자의 주관적 세계가 씨줄날줄처럼 얽힌  꿰뚫어보기 어려운 혼재의 장입니다. 등장인물이 느끼는 불평등, 장애 또는 결핍은 서술자를 긴장시키는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여기에 또 작가의 유희충동에 의한 개입이 의도적으로 시도된다면? 소설을 쓸 때면 저는 거의 전율을 느낍니다, 길은 멀지만 박쥐도 아무튼 날개는 있으니까요.


                                                              ※

 

새롭고 낯선, 그래서 신선한 세계

                         - 서용좌 소설의 특성


           유금호 (소설가 / 한국작가교수회 전 회장)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문학 표현 양식에 대한 슈클로프스키(Shklovky)의 괘묵은 이 이론은 지금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작가입장이 아니라 독자입장에서도 낯설게 표현된 언어구조물을 통해 원래의 작가 심상에 접근해가는 그 과정 자체를 ‘예술행위’로 파악하는 데 묘미가 있다.

솔직히 서용좌의 소설들을 처음 대하는 일반 독자라면 부분적으로 당혹해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 서사물에 길들여진 독자에게 시도 때도 없이 문맥 속에 끼워드는 작가의 맨 얼굴의 언술과 현학적 수사들이 불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소설들이 작가 메시지를 객관적 서사 속에 용해, 육화시켜 내보여왔다면 서용좌 소설에서는 서사의 행간 속, 작가의 자유로운 사유와 분석, 예증들이 ‘바슐라르’ 이상의 상상력을 가지고 풍요롭게 부유한다.


소설이 꼭 객관화된 서사 속에서 작가의 영혼을 간접적으로 표출해야 하는가,는 현재로도 얼마든지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근래 소설 이론서들 목차에 과거 앞자리를 차지하던 ‘주제’ 항목이 뒤로 밀리거나 삭제된 경우를 본다. 그만큼 소설양식 자체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잘 빚어진 찻잔 같던 19세기 식 단편들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 속에 용좌의 소설이 놓인다는 것은 현재의 한국문단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


사소한 것에서 의미 찾기


아주 작은 사물이 특정한 작가의 촉수에 잡혀 엄청난 질량으로 확대 생산되는 현상을 가끔 볼 수 있다. 영민한 작가일수록 그 사소함에 의미를 확장시키는 능력을 지녔다고 하면 조금 과장된 주관일까. 이 소설집을 읽어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서용좌의 촉수는 그런 면에서 매우 민감하다. […]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대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쓴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나의 심장에서 이웃들의 심장에서 일렁이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왜 우리는 저 혼자서 제 삶을 생경해하는 것일까. 가을 비 차갑게 내리면 더욱.>

      

이 글은 작가가 한국소설가협회에서 발간되는 잡지에 처음 소설을 발표하면서 쓴 글의 일부이다.

이 작가가 소설쓰기 보다 독일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교수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자기감정의 글쓰기보다 판단하고, 분석, 비교하는 위치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독일 철학자와 문학가들의 삶과 사상 속에 깊이 천착해 온 작가의 소설쓰기는 그래서 서두에서 언급했듯 서사 안에서 때로 현학적 사유들이 출몰하고, 서사의 행간에 직접 언술의 흔적까지 많이 들어난다. 그렇지만 시험 삼아 서용좌 이름을 지워도 서용좌 소설은 서용좌라는 작가를 떠 올리게 할 것임에랴.


분명한 것은 모든 예술이 그렇듯 과거는 늘 새로운 시도들에 의해 파괴되고 창조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한국소설의 영역 확대를 위해서도 신선하고 개성 있는 이 작가의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되고 그런 의미, 과감한 도전들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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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4. 5. 15. 21:53

희 미 한 인(생) 
글 서용좌, 그림 조윤기/도서출판 이유, 256쪽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밖에 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교집합을 갖게 되는
마지막 하나 남은 공간을 상정한다면
그것은 가정이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특별할 리 없는 6인 핵가족이다.
희미한 인물들의 희미한 인생이 펼쳐진다.
이상한 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웬지 이 가족이 실재하는 느낌이 드는 일이었다.

- 작가수첩 중에서-
 


시놉시스 (혹은 초상)


나이 스물다섯, 연말 분위기에 나이를 의식하는 것을 보면 벌써 노처녀인가. 아직 개밥을 마구 퍼주지는 않는다. 우선은 퍼줄 개가 없다. 우리는 대부분의 도시인들처럼 아파트 닭장에서 산다.


우리 식구는, 곧 알게 되겠지만, 이야기를 내놓으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남동생 다시 여동생 해서 6인 가족이다. 아버지의 고향인 섬에는 아직 할머니가, 우리랑 같은 도시에는 외할머니가 계시지만 우리 애들이랑은 잘 소통하지는 않는다.


이야기 중에 아버지는 남선생님, 어머니는 여여사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남씨인지 여씨인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누차 말하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이시다. 성이 그렇게 우연이라면 이름은 어떨까? 아버지는 우리를 수희, 수미, 수한, 수인으로 지으셨다. 그것도 우연이었으면 좋겠다. 우연히 - ‘우연’이라는 단어를 너무 자주 쓰면 아버지가 화 내실지도 모르겠다, 젊은 애들은 필연을 믿어야 한다고, 우연이란 다 살아버린 사람들의 푸념이라고 - 정말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들의 이름을 한 줄로 부르면 “희미한인”이 된다. 아직도 감이 오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풀어 쓰자면, “희미한 인(생)”에서 하나가 부족할 뿐이다. 나는 아버지가 설마 우리들의 인생에서 희미한 인생을 미리 보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연히도 - 나는 정말 이 우연을 너무 자주 쓰는가 보다 - 우리들의 인생은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희미하다. 아니면 모든 인생이란 것이 희미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우리는 딸 둘 아들 하나 적당한 터울로 태어났지만 그저 그렇게 자랐고, 신동하나 없이 지방대학이나 겨우 들어갔거나 그것도 못해서 수한은 재수하고서도 별 기대가 안 되는 모양이다. 꼬맹이 수인은 아직은 상류가 될 희망은 있지만, 내가 추측하기에는 그 애 또한 그저 그럴 것이다. 특출한 과외라곤 없는 가정에서 신동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21세기 한국의 정답이니까.


아버지는 사람들이 그냥 선생님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교사이시다. 섬에서 중학은 뭍에서 고등학교를, 아슬아슬하게 2년제 교육대학에, 그러다가 4년제 대학에 편입해서 국어교사에 이르신 입지전적인 분이다. 물론 중등학교 국어교사가 입지전적 인물이냐 웃을 사람이 있어도 할 수 없다. 우리 아버지는 적어도 고향 섬에서는 특출 난 분이시다.


어머니는 원래는 사람들이 여사라 부르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실제로 누가 여사라고 부를 일도 없는 분이다. 다만 존중해서 부를 따로 다른 이름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딸들까지는 대학진학이 어려운 상황에 따라” 서울로 직장을 찾아갔다면 직종은 물을 것이 없다. 단순노동이지만 정직한 노동에서 착실히 저축을 했던 70년대의 처녀들을 생각하면 된다. 어머니의 손은 그 시절부터 마법의 손이다. 들어가는 것은 적은 데 나오는 것은 많다. 나는 어머니 보다 더 많이 배운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고 요즘 세상에 딸들이 대학진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머니에게 상처일게 분명했다. 좋지 않은 대학, 잘 나갈 것 같지 않는 학과의 입학이지만, 입학식 때 어머니의 눈에 묻어나던 눈물을 난 잊을 수 없다, 잊어서도 안 된다. 영문과로 전과에 실패했을 때, 그때도 어머니는 내 소원을 들어주셨다. 일년간의 호주 영어 연수, 어머니로서는 출혈이셨음을 안다. 그런데…….


식만 남은 졸업을 앞두고 나는 가슴이 무겁다. 설마 영어가 좀 되니까 취업이야 되겠지만,  이렇게 세상이 불안한지. 하필 조촐한 사은회 때의 교수님말씀도 격려가 아니라 겁으로 다가왔다. “여러분 앞에 펼쳐져있는 인생은 하얀 도화지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도화지에 색칠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 이후 줄곧 나는 마땅한 색연필 하나 갖추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겨우 일년 몇 개월 차이 나는 수미랑은 곧잘 수다를 떨기도 했었는데. 이게 그냥 달라졌다. 수희가 통 말을 끊은 것이다. 뭔가 궁리하는 표정에서, 그래 너라도 잘 나가 봐라, 하는 마음과, 언니로서 켕기는 마음, 그런 두 가지 마음으로 소원해진다. 수한이 - 그 앤 도통 엄마가 챙긴다. 재수생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막내는 한참 어리다. 처음에 그 애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인형 같았다. 정말 인형 같은 꼬맹이다. 엄마는 그래서 다른 엄마들 보다 젊은가? 아니 솔직히 말해서 퍼진 몸매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아이 같은 순진한 구석이 많다. 어찌 보면 유치하달까, 세상 물정에 조금은 느리게 반응한다. 이것이 계미년 우리들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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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