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6.09 장편소설 『표현형』
  2. 2013.01.16 단편 「일기」-『가로 사람 세로 인간』
  3. 2000.09.21 일기 - 어느 날
소설2014. 6. 9. 23:52

장편소설 『표현형』 

 

푸른사상사, 2014. 5. 31. 발행

변형국판 352쪽, 값 15,000원

 

 

 

 

 

    가공의 저자 '한금실'이 등장인물이면서 써나가는  느슨한 연결의 장편.

    한 꼭지 씩 따로 읽어도 되는......

   

- 차례 -

배달민족

한국어

일기

은실

파도소리

초혼장

포이동 266번지

쥐도 인간이다

삼포세대

표현형

 

 

  추신: 내용보다 멋진, 표지 전체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넘쳐나는 표지는

          아들 조윤기의 작품. 매달린 박쥐가 일품이다.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3. 1. 16. 21:39

일기

 

 

 

   2011년 11월 11일. 날씨, 흐리다가 부슬비.

 

 

   어느 하루가 깨어난다. 몇 십 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점점 밝아져야할 시간임에도 점점 더 어두워지는 창밖으로 눅눅한 시선을 내보낸다.

   말라가는 식빵조각을 커피 물에 적셔 뜯으며 오늘을 시작한다. 출입문 하나로 바깥세상과 면한 줄 알았더니 모니터 화면이 더 넓고 무섭다. 사람들은 백년 만에 맞는 11-11-11을 기념하기 위해서 떠들썩하다. 산부인과 병원에 제왕절개가 밀렸다는 뉴스까지다. 누가 힘이 세서 11시에 수술을 받게 될까? 필시 아기 아버지는 ‘사’자 돌림에, 산대에 누워있을 여자는 천진하고 예쁘기까지 한 부잣집 따님일 게다. 그 누군가의 드높은 경쟁력에 임신 경험도 없는 내가 쓸데없이 기가 죽는다. 임신 경험? 그럼 내가 은근히 엄마가 된 동창들을 부러워했더란 말이냐.

삐리리리. 구원은 느닷없는 전화벨 소리다.

  

   한샘, 안녕하쇼! 이박입니다.

   예?

   이박, 오얏리 이가, 이박임다.

   아니, 이샘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냐 되물으시면, 아니할 전화를 제가?

   어쩌자고 이 세월 지나 전화기 들고서도 뒤틀리세요?

   뒤틀리다뇨! 암튼 제가 지금 그리로 갑니다. 출발합니다. 기다려 주세요. 너덧 시간 후엔 도착합니다.

 

   그렇게 불쑥 나타난 이순규를 만나러 나가려는데 비가 질척거렸다. 은행잎들이 빗물에 젖어 떨어져 내려 발길에 짓밟히고 있었다. 보도는 차가운 회색의 물기였다. 찢긴 은행잎에서 흘러나오는 노란 물감이 회색을 따뜻하게 보완한다.

 

   이런 날 이런 시간에 어떻게?

   시간이 있느냐고요? 시간 있지요. 시간이 없어서요. 없어져서요. 시간 다 말아먹었어요.

   다섯 번 ‘시간’이 읊어졌는데 물론 뜻은 다르다. 첫 번째 시간은 시각, 또는 때. 두 번 째 세 번 째 시간은 여유다. 여가시간  말이다. 아무 소용없는, 시쳇말로 아무 영양가 없는 여자를 만날 시간 말이다. 마지막 두 번, 이때 시간은 수업시간이다. 시간강사가 수업시간이 없단다. 없어졌단다.

 

   역사철학 관련 수강생이 엄청 줄었어요. 10년 다 되가는 보따리장사 세월에 선배라는 게 외려 핸디캡이 되잖아요. 자리를 못 잡으면 너나 나나 동등한 것이 함께 간이역의 삶 아니던가요. 늘 추운 곳에서 지내다 보니 마음도 얼어붙더라고요. 먼저 떠나신 한샘 생각이 난 것은…….

   뭔 동병상련 정도 말입니까? 한국인, 비인기 인문학 전공, 비정규직 젊은이, 그밖에는 공통점은 적죠.

   예.

   뭐가 예? 공통점이 적다는?

   예.

   어째 목소리에 실망감이.

   예.

   공통점 적어 실망하실 일은 없지요. 남자 여자는 영원히 다른 동물인걸요. 이샘은 유난히 더듬이가 안쪽으로 휜 것도 또 다른 특징이죠.

   설마 더듬이라면.

   곤충으로 비하하냐고요? 비하라뇨. 곤충이 얼마나 위대한데. 특히 모기는. 연간 모기로 인한 사망자가 세계적으로 200만 명에 달한다는 뉴스 못 보셨나요? 킹코브라보다도 무섭다고요. 평균 몸길이 3m로 살아있는 모든 것을 한순간에 즉사시킬 수 있다는 코브라의 신경독 뺨쳐요. 치명적 촉수를 보유한 해파리, 백상어, 아프리카 사자, 악어, 코끼리, 북극곰, 아프리카 물소, 독개구리 보다도 더하죠.

   아니 뭘 외우세요? 모기, 코브라, 해파리 어쩌고. 제가 언젠가 배달은 백달의 음운변형이고, 박달은 백달의 모음변형이며, 백달은 백산의 다른 표기라 했을 때, 뭐 그런 걸 외우냐고 핀잔준 분 아니시던가?

   핀잔은요.

   핀잔이었지 그럼.

  

   나는 그런 대화들을 기억하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교양한국어 강의시간에 그것들이 되살아나서 나 혼자 떠들었을 때 스스로도 놀랐으니까. 그러자 뭔가 긴가민가했던 말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 났다.

   아니, 그 보다는 일본족도 동이족이라고 하시던 말이.

   그렇다니까요, 바로 그걸 잊지 말아야.

   일본인 1/4 정도에서 한국인 디엔에이를 찾아볼 수 있다던 말씀요?

   예. 그리고 지금 한국엔.

   지금 한국엔? 한국엔 뭐요?

   지금 배달의 원형인 한국인 중엔…….

  

   달변의 그가 오늘은 더듬거린다.

   아, 한국인 중에도 다른 민족의 디엔에이가 섞였다고요? 거야 당연하겠죠. 순정한 핏줄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 아닌가요?

 

   나는 벌써 그, 여기 이 이박이 아니라, 그, 배승한의 가족사에 젖어든다. 온 세상에 흩어져 핏줄을 지키거나 흩뜨려놓는 유대인 이야기는 삼가리라. 그것은 승한의 가족사에서 비밀 같은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에게 금기일 리 없지만 나도 모르게 삼가졌다. 그런데 이박은 기어코 그 금기를 건드린다.

   실제로 열린사회 치고, 예컨대 유럽처럼 애매한 경계의 이웃나라들 사이에선 더욱. 암튼 열린사회 치고 핏줄이 온전할 리 없지요. 열린사회라. 그냥 조금 열린사회, 아님 ‘베륵손’적 의미의 열린사회?

   이샘, 오늘은 그쯤 하시죠. 지금 프랑스어 발음 놓고 또 토 달려고?

   아니, 폴란드 태생이라 그래야 한다면서요. ‘베르흐손’인가?

   이샘, 제발 편하게 합시다. 어째 갑자기 베르그송인데요?

   거야 그는 유대인 순종이다 그 말이고. 유대인의 경우 순종이 문제되지는 않죠. 베르그송의 공헌이라면, 정지된 인식에서 운동, 변화, 진화의 가치로! 이 문외한이 맞게 이해하나요?

   문외한이라니, 철학도가 이 경우 문외한이란 말씀은 뭔가. 그런데 뭔 말씀을 하려고? 프랑스어 좀 한다고 베르그송 아는 척은 말라 그거죠? 당연한 말씀, 맞아요, 국어로 읽는다고 모든 책이 읽어지나요? 그보다 선생님의 역사철학은…….

아, 그거 아닙니다. 저 요새 역사고 철학이고 다 보따리 싸맸습니다. 꽁꽁 동여 매버렸죠. 제가 지금 순례 중인것 안 보이시나요?

  

   그랬다. 순례자 이박.

   배낭을 짊어졌지만 배낭족이 아닌 것이 개량한복 차림이다. 순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나그네 몰골이 선했다.

   그러고 보니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요?

   어디 다녀오는 길 아니면? 제가 한샘 찾아서 여기 왔다면 믿으실래요?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럴 리 없죠, 당연히. 참 그런데 이 고장엔 어쩐 일이세요. 원래 여행을 하시는 편인지?

   여행 안 좋아합니다. 안 좋아 했어요. 존재와 영속성의 가치에 파묻힌 동안은 정말 그랬지요. 그 다음 모든 실재를 역사적  성격으로 규정하려던 시절엔 운동과 에너지에 현혹되었지만, 그 운동은 이런 여행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 개념들이었죠.

   이샘, 저 오늘 머리가 무거운데요. 본원적 이야기 빼고, 오늘 이 고장엔 웬 일로?

   아 참. 거의 실직 상태인데 뭐 따로 할 일이 있나요. 먼저 서울 생활 털고 내려간 한샘이 부러웠다고나 할까. 한번 보고 싶었어요, 그냥.

   저요? 제가 부러워요?

   예, 진실로. 건 그렇고. 한샘은 식구가 단출하시다고?

   단출하다기보다, 아들 없는 집 큰딸이죠. 현상으로 말하면 오래 독신가족. 왜 난데없는 호구조사세요?

   제가 마음먹고 낙향을 할까 생각 중인데 동반자를 구하거든요.

   아뿔싸. 나는 숨을 죽였다. 그럼 지금 이순규가 하는 말이, 아니 내가 그 후보 중 하나라는 말을 지금?

 

 

   동반자 구함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창문너머를 바라보던 내가 서둘러 실없는 말을 시작했다.

   창밖엔 아직도 비가 내리나 봐요, 음, 가장 긴 노래제목이 뭔 줄 아세요, 창과 관련되는데?

   창밖의 여자? 무관하게 밖에 서있다 그 말?

   에이, 것도 모르시네!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나는 양쪽 손가락을 다 오므렸다 펴가면서 열여섯 글자를 헤아렸다.

   아, 그런 노래도 있었네요. 창문 넘어 어렴풋이…….

   그도 따라 손가락을 구부리며 세어보다가 놀란다. 정말 열여섯 자네요? 그보다 많기는 어렵겠어요.

  

   나는 가만 노래를 읊조린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가버린 날들이지만…….

   잠깐. 난 시를 외워보겠소. 염병헌다 시방,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것이 살을 다 내놓고 훤헌 대낮에 낮잠을 자다니 /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산골짜기 / 어지러워라 환장허것네 / 저 산 아래 내가 쓰러져불겄다 시방. 어떻소, 제목은.

   진달래, 김용택.

   아니 뭐 한샘은 시도 줄줄 외는 거요?

   아뇨, 제가 무슨. 이 ‘시방’ 땜에 알죠. 이샘이 만날 그렇게 했잖아요. 미처불겄다, 시방, 그렇게.

   그랬군요, 내가 그랬어요. 사투리 아무한테나 잘 안쓰는디.

   방금도 쓰시네요.

   그러니께 아무헌테나는 잘 안쓴다고라.

   에이, 치우세요. 이상합니다. 평소대로 하세요.

   그러지라.

   그만 하시래도요, 저 오늘 앉아있기가 좀 피곤하네요.

   그럼 좀 나가서 걸을까요?

   걷기는 더 힘들 것 같아서요. 이샘도 오늘 고향에 가시는 길이라 하셨잖아요. 너무 늦지 않게 시리.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군요. 예, 뭐. 그래도 제 고향 이야기나 좀. 오뎅 국물에 한잔 하면 피곤감도 풀릴 것이고.

 

 

   그렇게 이순규는 고향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두워지자 불조차 꺼진 농협인지 무슨 건물 앞 간이 튀김집에서. 튀김집에 어떻게 소주가 나오는지는 글쎄.

 

   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

   고흥군 봉래면. 거의 처음 들어본 지방이다. 아니다, 우주선 발사 때문에 몇 번 뉴스의 중심에 섰던 지방이다. 봉래면은 1996년 나로1대교와 나로2대교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고립되었던 섬 외나로도에 위치한단다. 군청에서 차로 달리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는 곳. 그러니까 지금은 연육교로 인해서 교통 상으로는 섬이 아니다. 물론 섬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니.

   면소재지라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있다고, 그는 장난말처럼 패밀리 마트도 들어왔고, 모텔도, 비치호텔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아직도 충무공 따라서 진터라고 부른다는 진기마을이 이웃해 있고, 나로도 항이 가깝고 유람선 선착장도 가까이 있다고. 무슨 빌라라나 아파트도 물론 있다고. 어차피 현대 사회는 방 한구석에서 인터넷으로 온 세상과 교류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

   그는 갑자기 머쓱해 한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도시여자라도 마음만 먹으면 살만 한 곳이라고?

   봉래면, 삼십 제곱킬로미터 쯤 면적에 인구가 이만이천 조금 더 될 뿐이랍니다. 어디나 처럼 여자가 조금 더 많고요. 경로인구가 팔백 이상. 노인들이 외롭지요. 우리 집은 좀 낫지만.

   그의 고향집은 그의 말대로 외로운 집은 아니란다. 아버지는 계시지 않으나, 동생이 결혼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단다. 바로 이웃에는 종형도, 조금 건너 또 둘째 종형도 결혼해서 살고 있다. 모두 생업에 열중해 있다. 제법 화기애애한 가족이다. 그는 어떻게 그리 멀리 빠져나올 수가 있었을까? 왜 이제서 돌아가려는 것일까? 스무 살에 떠나와서 스무 해를 떠돌다가.

지금의 OO고등학교가 봉래종합고등학교였을 때, 그곳 아이들은 모두 외나로도 내에서 진학을 했다. 고등학교가 생겼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집안일도 거들고 고등학교에도 가고. 그런 터에 그는 순천고로 진학하는 행운을 잡았다. 지금은 전교생이 50명도 안 되는 상황으로 학생들이 귀하지만, 봉래중은 6.25 후에 곧 개교한 유서 깊은 학교란다. 중학생 이순규가 유난히 수학에 두각을 나타냈으니, 시골에서 천재 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개천의 용은 합심해서 키우는 것이 시골 인심인지라, 교사와 학부모들이 힘을 합쳐서, 지역사회 전체가 힘을 합쳐서 일단 순천고 진학을 가능케 했다. 순고는 전국 어디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고등학교이다 보니, 특히 수학을 잘하던 학생의 미래는 밝았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조숙한 친구를 만난 탓에 공부는 철학이라고 방향을 돌려버린 것이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비극이 되었다. 그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는 기대를 충족시켜야할 사명과 의무를 저버렸다. 법대는 아무튼 고향의 소원이었다. 서울의 다른 괜찮은 대학 진학까지만 해도 모두에게 희망을 아직 남겨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법전을 파고들기도 전에 눈이 다른 곳을 향했고, 그는 배고픈 철학도가 되었다. 여전히 고향의 기대는 살아 있었다. 게다가 장학금으로 해외유학을 떠날 때는 고향은 다시 사그라지려던 꿈을 부풀렸다. 박사 공부라니! 박사가 되어 돌아올 고향의 아들. 교수직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고. 바로 그 지점에서 꿈과 현실이 엇갈렸다. 이제 그 철학박사님이 낙향을 하시려 든다?

 

   마침 군 전체가 지역 내 사회단체와 더불어 ‘고흥사람은 고흥에서 살자’는 캠페인을 들고 나온 터요.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구증가를 위해서라고. 인구를 늘리려면 우선.

   그렇겠다. 물론 그의 문제다. 난 가만 있었다.

   헤, 저 농담 잘 하잖아요. 맨 정신으로도. 아직 지칠 나인 아닌데, 어째 오순도순 사는 고향이 좀 그립더이다. 고흥. 뭘 아시요, 혹시?

   고흥 유자!

   아니 어떻게 그런 걸 다. 어쩌나 그런데, 그건 우리랑은, 우리 집이랑은 거리가 멀죠. 고흥 유자가 전국의 반에 반은 커버한대죠. 이천 가구 이상이 유자농에 종사하니까, 한집 건너 정도죠. 헌데 우린 아니어요. 우린 그냥 농사죠. 그냥 농사. 농군에게는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것도 섬에서. 큰아버지랑 아버지랑 함께, 함께 그렇게 풍랑만나 그리되신 뒤로 우리 집에선 배타는 것도 금기고. 우리 형제들이 그러니까 겨우.

   그는 너무 멀리 갔다. 너무 깊이. 아무래도 그의 가족사를 들을 계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말을 돌렸다.

   가만, 우애와 우정은 왜 다르게 쓰이게 되었을까요? 이샘은 우애와 우정 둘 다에 지극하신 편인가 봐요?

   왜 그 다음 애정이라고 묻지는 않나요? 우애와 우정 다음 애정은?

   와, 철학자의 궤변 앞에서 내 어찌 당하려고. 그만 둡니다. 이러다 없는 우정마저 떨어지겠어요.

   우정이라고요? 그럼 우정은 있다고?

   우정까지야. 우리 모두 피 마르는 동병상련에 동류항이라 느끼는 족속들 아녀요?

   동병상련.

   예, 뭐.

   동류항.

   …….

   동반자!

   오늘 그가 실제로 동반자를 구하고 있었는지 동반자 일반에 관해서 ‘설명’을 하고자 했는지는 조금 애매했다. 오늘은 애매했다. 그는 그러다 말고 아무튼 고향으로 향했다.

 

 

   누군가의 고향 집

 

   깊은 가을날에도 흐느적거리던 날씨가 오늘따라 저녁이 되자 급격히 추워졌다. 오뉴월 식혜처럼 변하는 것이 여자의 마음이 아니라 날씨다. 어떻게, 기승을 부리는 모기 소리가 아직 어딘가에 머무는데, 책상에서는 발이 시려온다. 이박과 함께 안주삼아 먹은 오뎅 국물과 떡볶이만으로 저녁을 셈 쳤더니 시장기인가. 시장기와 추위는 오면 함께 온다.

   밤이다. 춥고 배고픈 밤이다. 자판 위의 손이 덜덜거리기 시작했다. 말이 좀 안 되는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마침내 그일까? 독일 또는 어딘가에서 전화를 하는 거라면 시간을 잘 못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화는 독일엔가 어딘가에 있을 그가 아니라 고향으로 간 이박으로부터였다.

  

   오늘 불쑥 여름난 중의 꼴로 미안했수다. 고향으로 향하다보면 회까닥해요, 제가.

   웬 중?

   아, 여름내 입은 후줄근한 중의적삼 말이요.

   그는 딴청이다.

   이 시간에 전화하시면 제가 방해받아 발끈하는 것 모르세요?

   아 발끈 하셨구나, 허 참.

   그럼 담에!

   아 잠깐만. 오늘 아님 나 말 못해요. 잠시만, 아니.

  

   술김에, 그러고도 마주보고 말할 용기가 모자라서 밤늦게 전화를 했나? 무슨 고백이라도? 그것은 어리석은 여자의 지극히 상식적인 추측이었다. 우린 사실 그럴 수 있을 사이가 전혀 아니었으니까.

   그가 말을 더듬거리는 동안 내 손은 점점 더 떨렸다. 몸도 떨렸다. 내가 기억하는 한 한 시간 넘게 간헐적으로 쏟아낸 내용은 그의 늘상의 화두 ‘배달민족’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이론적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 인물들에 관한. 그의 고향 집에 관한.

   우리 집엔, 사촌들까지 다 이웃해서 우리 집은 시골치고는 북적거린다고 그랬죠, 아까.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골이 아니라. 무슨 조화냐고요? 배달민족의 확장이랄까, 아주 새로운 대처방식이 먹혔던 셈입니다.

  새로운 대처방식이라뇨?

  에이, 다 아시면서.

  뭘 안다고 하셔요. 설마?

  설마 뭐요! 예, 설마요. 설마 중국, 필리핀, 베트남여자들 이야기냐고 물으시는 거라면 엄청 머리 좋으신 거예요. 종형들, 덩달아 제 동생도.

  

   이순규가 횡설수설 내뱉은 이야기들은 간단히 정리될 수 있다.

   종형이 불행을 씻고 40을 훌쩍 넘겨서 새장가를 들었다. 동네사람 모두가 축하할 일이었다. 다만 말씨가 이상하여 사람들이 수군거리게 될 때 쯤, 조선족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얼마 안 있어 그의 동생이 필리핀의 호기심 많은 간호사를 아내로 맞았다. 어학연수를 필리핀으로 간 것이 발단이었다. 정말 씩씩한 이 필리핀 댁 때문에 국제결혼에 대한 선입견이 금세 사라질 무렵, 둘째 종형 또한 베트남 색시를 맞게 되었다. 각각 이름도 없이 중국, 필리핀, 베트남으로 불리는 세 여자들은 일곱 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고, 동네는 화목하고 떠들썩하다.

  

  고향 이야기들을 조금 더 자세한 버전으로 써둘 필요가 있지 싶다. 하도 길게 말한 내용을 단 몇 줄로 쓰는 것은 말한 사람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이순규는 어느 날 인천 공항으로 도착하는 종형을 마중 나가라는 고향의 전화에 많이 놀랐다. 외국 여행을 감행할 종형이 아니었으니까. 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동행은 놀랍게도 씩씩해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네 종형 말이다, 공항에서 고향 가는 길 잘 돌보아 주거라! 하시던 어머니의 전갈이 무색했다. 왜 보살펴주어야 하는지? 인사를 건네자마자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 형. 아, 축하합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고향으로 가는 금호고속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다행히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물론 고향까지 직행은 아니라 해도 거기선 문제없을 것이었다.

   공항에 혼자 남은 이순규.

   잇따라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들은 정신없이 들이닥쳤다. 이태 전 금의환향처럼 귀국할 때의 힘찼던 발걸음이 생각나서 서글퍼졌다. 책으로 꽉 채운 기내가방으로 쩔쩔매면서도 발걸음은 사뿐했던 그 순간이 그리웠다. 현실은 곧 냉엄하게 닥쳤다. 기회는 희박했다. 그런데 이 공항을 통해 살러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구나. 또 다른 희망을 안고.

얼른 정리가 안 되는 것이 종형의 반전이었다. 종형은 시골에서 동창생과 결혼한 행운아에 속했었다. 여자 동창생들은 숫자도 적었지만 왜 하나같이 외지로 나가서 게서 결혼들을 해버리는지. 종형과 중학교까지 함께 다닌 동창생이 종수가 되었을 때 젊은 사람들은 은근히 부러워들 했다. 상고를 나온 것도 아닌데 주판을 잘하고 똑똑해서 단위농협 사무실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똑똑한 아가씨였으니까. 홀어머니 모시고 연애도 한번 안하고. 사람들이 다 알아줄 만큼 착실한 아가씨가 종형과 오래 알고 지낸 친구였다가 마침내 혼인식을 올렸다. 당시에도 벌써 농촌 총각이 스물일곱에 제대로 장가드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종형이야 면소재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별 야심 없이 주저앉아 그 나름대로 버거운 집안일을 도맡고 있었다. 그러다 단위농협에 드나들면서 영농 후계자 문제도 있고. 드물게나마 꾸준한 만남이 옛 우정을 결혼으로 이끌었을 신실한 젊은이들. 두 사람이 결혼을 했을 때 정말 예쁜 신혼부부였다. 정말 오랜 만에 동네 처녀가 동네에 남아 시집을 갔으니까.

 

   종형이 결혼했을 때는 서울올림픽에 대한 열광으로 온 나라가 들끓던 때였다. 이순규는 아직 고향에 있을 때였지만, 그 다음엔 곧 순천으로 진학했기 때문에 나머지는 모두 들은 이야기다.

   종형은 농협대학 진학을 고려하고 있었어요. 집안의 장손인데, 아이도 태어날 것인데, 아부지 노릇 잘하려면 조금은 더 배워야겄제, 그랬답니다. 종수님이 적극 권하기도 했고. 그때 농협대학에 농업조합학과 말고 농공기술과가 생긴다고 해서 좀 편하게 준비해도 된다 했었고. 그 사고 이후로 결국 다 깨어졌지만. 그러니까 그 사고라는 것이. 제가 어찌 자세히 안답니까. 맘 찢어지니 집안에서도 쉬쉬하는 것인걸. 만삭은 아니지만 아무튼 임신 후기에 시멘트로 된 바깥층계에서 실족한 것이 그만. 그렇게만 알죠. 고흥으로 나오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 아녀요. 수술도 못해보고. 지금이야 바로 내나로도로 이어서 포두면으로 연육교들이 개통되어 있으니 일도 없지만요, 그땐 보건소 여직원이, 대개 간호사죠, 발을 동동 구르며 함께 이송 중이었지만 사람을 영 놓쳤다는 것 아닙니까. 종형의 인생이요? 더 말해서 뭐해요. 남들 장가도 안 든 나이에 상처라니, 것도 거의 두 생명을 함께.

   그러니 어떻게?

   전설이랑 같지요. 외나라도의 절경 중 하나인데, 곡두여 이야기 모르시죠. 당연히 모르시겠지요, 서울 양반이니.

   서울은 무슨, 저도 서울 촌사람이죠.

   곡두여 전설이 그냥 전설이 아니라요. 그곳 바다 밑이 고르지 않아서 지금도 비바람 모진 날에는 위험하죠. 가끔 항해주의보가 떠요. 그러니까 바닷길 건너 시집 장가가다 풍랑 만나서 빠져죽은 신랑신부의 원혼이죠. 거기 신부가 탄 가마가 벌러덩 누워있는 형상의 작은 섬, 그 반대로 뾰쪽하니 솟아 신랑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섬, 암튼 두 개의 무인도이지요. 거기 도시에서 낚시꾼들이 찾아들곤 하는데, 강성돔인가 그런 것 철 따라 잘들 온다는군요, 그런 낚시꾼들이랑 어울리지 않으려고 이상한 곳으로 낚시만 다녀서 큰어머니 애간장 좀 녹였었나 봅디다. 그러기를 십년 넘어, 그래요, 근 십오 년, 겨우 마음을 잡고 생전에 종수씨가 권했던 농협대학 일로 알아보려고 서울에 갔다가.

   그러니까 서울서 만난 조선족이었군요. 결혼소개소가 아니라?

   그게 마찬가지요. 둘이가 서로 결혼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누군들 필요에 의해서 결혼을 하지, 안 그런가요?

   아니, 종형은 재혼 권유에 시달리고 있었고, 지금 종수가 된 조선족아가씨는 한국 사람과의 결혼이 꼭 필요했겠죠. 하북성 천진에서라던가, 사촌언니 한 사람이 암튼 중국 업체와 한국 무역상들을 연계하는 가이드로 일하면서 꽤 잘나가는 또순이였던 모양입디다. 그런 걸 괜히 한국 무역상들이 바람을 넣어가지고 한국으로 왔는데. 중국어 하나로 충분했던 사업이 한국에 오니까 조금 달랐겠지요, 한국어도 배워야 했고, 그래도 다시 돌아가기에는 한국물이 좀 들었겠어요? 양고기 구이 식당을 낸 언니는 사촌동생을 어찌어찌 초청해 와서 데리고 있는데, 이 동생은 장사 체질이 아니라 힘들어 하고. 암튼 종형 입장에서는 초혼도 아닌데, 결혼이 필요하다는 사람하고 결혼해보자, 뭐 그런 심정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조선족도 민족은 같으니까 국제결혼은 아니다 싶기도 하고. 예상 밖으로 튼실한 사람이었던 거죠. 서울에서도 북쪽에서 만나서 한반도 남쪽 끝까지 따라나선 걸 보면, 그리고 지금 이렇게 살아낸 걸 보면. 서울에, 그러니까 고양시에 사촌이 살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위안이겠죠. 어쨌거나 한국에 혈혈단신 시집오는 동남아 등지의 여성에 비하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산에 올라갔던 길이라지요, 삼송역인가 무슨 역에서 갈아탈 버스를 잘 못 타서, 몇 정거장 다음에 분명 농협대학이 나와야 하는데, 한참을 가도 안 나오니까 두리번거리던 참이었나 봐요. 그러다가 ‘필리핀참전비’라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정류장 말이 들려서 무조건 내렸더래요. 농협대학 길이 아니니까 일단 빨리 내리려고. 거기 그 이상한 지명에 내려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그만 하세요, 슬쩍 무서워지는데요. 으슬으슬 비 내리는 오후는 아니었겠지요?

   왜 아뇨. 암튼 처녀 한 사람이 달랑 눈에 뜨여서 길을 물으려고. 그런데 그 처녀가 잽싸게 어떤 식당으로 들어가더래요, 혼자서. 종형의 입장에서는 혼자서 식당으로 들어가는 처녀도 이상하려니와 간판에 양고기라 적힌 것이 희한해서 자기도 모르게 따라 들어 갔더라나. 자세히는 모르죠. 암튼 그 조선족 처녀가 종수가 되었으니.

   그럼 농협대학은 그대로 잠잠해졌고요?

   예, 아무래도 종형은 학교하고는. 허나 이번엔 행운의 기회가 된 거죠. 자세한 건 몰라요. 우리 집 남자들 내력이기도 하고, 뭔 말을 안 하지요. 누군들 속내를 아나요. 지금은 묵묵히 가업을 이어가죠.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났죠. 종수네 친정엔 딸들만 줄줄이 있었다는데, 그래서 슬펐고, 종수는 아들을 먼저 낳아서 겁 없이 아이들을 낳았더래요. 애들 씩씩하게 낳아서 씩씩하게 기르고, 씩씩하게 일하고, 무서운 것이 없다느만요. 흔히 말하는 결혼이민자의 문제 같은 건.

   웬 사설을 오늘 이렇게.

   한샘, 좀 들어 봐요.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가 한정 없어요. 그러던 차, 내 동생 놈이 말이오, 내가 서들어 필리핀으로 연수를 보내놓았더니.

   설마, 이번에도?

   예. 이 녀석이 군대를 연기하고 또 연기하고 그러다가 졸업을 딱 한 학기 남겨 놓고 군대를 간 거예요. 군대를 마치고는 명색은 짝 학기 복학하면 취업문제가 복잡하다는 핑계인데, 복학을 안 하고 놀고 있는 거예요. 서울에 데리고 있을 처지도 아니고, 강의 맡기 시작한 첫해인데 고시방 생활일 때라. 그래도 형이 대학 강사인데 싶어서 필리핀으로 단기 연수를 보냈죠, 그랬더니…….

   아, 이번에도 결혼정보회사 그건 아니네요 뭐.

   그게 그리 다른 건 아닙니다. 국제결혼은 국제결혼이에요. 피가 섞이는 겁니다. 아무튼 거기 병원에서 간호대학 실습생을 만났다는데, 어떻게 가톨릭 신자라더군요. 필리핀에 가톨릭 신자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우리 선입견으로는 우리만 못한 곳 아닌가요. 그런데 참 개화된 여성이죠, 동생이 한국에 돌아와 복학해서 나머지 한 한기 마치고도 계속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이 필리핀 처녀가 한국으로 쫒아 온 겁니다. 그렇게 개방된 곳이 필리핀이더라고요. 그곳은 흔히 국제결혼 때 신부집에 주는 거금을 요구하는 부모들도 없고, 딸만 행복하면 된다는 식이라더군요. 모르죠, 그 집만 그랬는지. 결혼 후에 이곳 간호사 자격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잘 몰라도, 아무튼 보건소에서 보조원으로 일도 하고, 우리말도 엄청 잘 한다네요, 결혼이민자 대상 한국어 강사노릇도 한다니 뭐. 면에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무료강의이지만, 듣는 사람이 무료고, 강사료는 제법 받는대요. 큰어머니가 자랑삼아 하시는 말씀 얼핏 들으니, 우리들 강의료나 별반 차이가 없어요.

   설마.

   대학 강의료가 어디 문화원 같은데 강의료만 못하기도 하니까요. 비문해자 대상 국어강의 같은 것들. 우리들 상태라고 하는 것이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소득자이면서 방문판매자나 우유배달인과 동급의 자영업자죠.

   설마 자영업?

   한탄할 것 없소이다, 자영업이죠, 교육자로 분류되고 싶으시다? 알아서 하시지요. 오늘은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라니까.  동반자 구함.

   동반자?

   아니, 종형이나 암튼 고향 식구들 이야기요. 종수씨나 제수씨가 그렇게 행운을 가져오니, 마을 사람들은 단번에 국제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우려를 걷어냈죠. 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잘 살고 있는 국제결혼 짝들 이야기가 매주 나오고 그러잖아요. 우리 동네에선 아주 다 같이 반기는 프로그램이 되었답니다. 전에 일용엄니 나오는 프로그램 마냥.

   전원일기요?

   그게 무슨 전원이라요! 전원이라고 하면 어디 그냥 단어 그대로 논과 밭이라는 뜻으로 들리나요? 비록 청빈하다 할지라도 한가롭고 어딘지 낭만이 묻어나잖아요? 실제 논두렁 밭두렁 사이의 삶은 전원과는 별개요. 말 그래도 흙탕이지, 두엄 속, 아니 그 보다도 못한 화학비료와 싸한 농약냄새. 어머니들은, 아니 여자들은 향기가 따로 없지요. 향기는커녕 형태도 없지만요.

   형태가 없다뇨?

   형태가 없지 그럼. 농어촌 여자들이 형태가 있소? 킬힐은 아니더라도 일단 굽이 있는 신발에 달라붙은 내복 같은 걸로 다리를 가리면 형태가 쫘악 나오질 않소. 농어촌 여자 누가 굽이 있는 신발을 신는단 말이오. 그러니 여자는 아니지요.

이샘, 참 이상한 분이시네. 기껏 고향 이야기라서 참고 있었더니, 여자들 킬힐 이야기시라면.

   아, 물론 죄송합니다. 헌데 고향 여자들도 여자들인데, 여자들 이야기를 할라치면 하이힐은 빼고서는 어찌. 단도직입적으로 여자는 하이힐에서 탄생된다 이거 아닙니까!

   치우세요, 그만. 이샘과 여자들 형태 이야기를 할 군번은 아니외다.

 

   이 사람이! 하고 전화를 끊으려다, 우선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숨을 죽이고 듣고 있으려니 수화기를 놓은 줄 아는 모양이다. 한참 타령인데, 이쪽에서 듣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어조다. 에이, 한금실, 이렇게 쌀쌀 맞으면 내가 어떻게…….

   그쯤에서 정말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살짝 후회했다. 내가 어떻게…… 다음을 들어둘 걸 그랬나 싶어졌기 때문이다. 어쩜 그 다음을 속단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에 필시 이 사람이 내게 조금 기대려는가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서면서 생각하니까 다만 이야기를 계속할 사람이 없어져서 답답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누구라도 한번 빗장을 열면 그 속의 전부를 털어내고픈 순간이 있지 않겠는가. 정말 뜨거운 물이라도 마셔야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왜요, 한샘! 왜 하루 저녁 전화를 못 받아주시는 거죠?

   아예 시비조에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정말 수화기를 내려놓든지 해야 할 터인데, 나는 가만있었다. 하고 싶은 말은 해버려야 한다, 누구라도.

   이샘, 또 웬일이세요. 아직 이야기가 남았어요?

   예, 아직. 아까 말처럼 종수씨와 제수씨가 잘 살아주니까.

   그럼 좋은 일이겠죠.

   아니, 그게 다가 아니라, 둘째 종형이 마저. 마저 국결을 선택한 겁니다, 이번에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그게 그리 무서울 것이 아니니까요. 헌데 그냥 조선족이나 필리핀 누구 하나를 더 알아보든지 할 것을. 첨엔 그리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 두 사람이 되면 저울이 안 맞다고.

   저울?

   아, 그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혼자인 사람이 더 외롭다고. 그러니까 조선족 둘, 필리핀 하나, 그렇게 되어도 그렇고, 그 반대도 그렇고. 그러니 공평하게 다른 나라 사람으로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답니다. 그렇게 해서 베트남 아가씨가 시집을 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동네사람들이 사람 이름을 부를 생각은 않고 중국, 필리핀, 베트남 그렇게 부르는 것이오. 시집온 순서대로, 결과적으로 나이대로. 그런데 베트남이…….

 

 

   이름

 

   아닌 밤중에 이순규가 토해내는 이야기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이해한대로 정리해 두고 싶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 핵심은 정리해 놓은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 알게 되지 않겠는가. 아무튼 베트남 신부의 경우를 이야기할 때쯤엔 이야기하기가 좀 힘들었었던 모양이다. 이야기가 자꾸 끊어졌고, 그것은 그가 전화 저편에서 소주잔을 홀짝거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베트남 신부가 시집을 올 때에는 결혼정보회사에서는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조차 가르쳐주지 않았다. 응우엔 티 탄죽 - 그렇게 써서 혼인신고를 마쳤지만, 어느 것이 성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응우엔이 성이고 나머지가 이름이라 해서, 티 탄죽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아니고 탄죽이면 되는 모양이었다. 티는 여자이름이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나 붙어있는 이름이라 했다.  그러니까 그냥 탄죽.

   탄죽이 뭐냐. 그 여동생 이름이 죽느안인 걸 감안하면 그보다는 나은지 모르겠지만, 탄죽이라니. 왜 트엉, 완 또는 람 등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이름도 아니고. 하필 탄죽? 죽이 타면 뭐가 될까?

   아무튼 탄죽은 그나마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긴 손위 동서도 사람들이 이름을 무시했다. 명화는 분명 한국식 이름이었고, 조선족인 그녀를 굳이 중국식 발음인 밍화라 부를 필요가 없는 데에도 그랬다.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저 ‘중국’이 이름이었다. 탄죽의 이름은 ‘베트남’일 뿐. 그녀들은 그냥 중국, 필리핀, 베트남이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베트남이 무척 힘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겉보기엔 조용했더라도. 조용하더라도.

   베트남은 무엇보다 나이가 어렸고, 어린 사람은 확실히 의지보다는 감정이 성하다는 것이 드러났단다. 외로움을 타고, 다른 여자들, 중국과 필리핀에 비해 말 수가 너무 없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으로 전화를 해대지도 않았고, 베트남의 어머니를 초청하겠다고 조르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아주 어려서 떠나버렸단다. 베트남도 남자가 가정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릴 수 있는 나라인가? 아무튼 어머니뿐이었고, 어머니는 여행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병을 얻은 어머니의 병원비만 송금하면 그것으로 참았다. 어머니가 걱정이겠지만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내색도 없었다. 다만 갑자기 겉늙은 아주머니 꼴이 되어가는 것이 이상했다.

   어메, 베트남은 밥도 안 묵나? 한국 음석이 안 받는당가?

   어메, 베트남은 언제 애기 갖는당가?

   참말로, 살이 좀 붙어야 애도 서는 거인디. 애가 생겨야 확실히 살겄제.

   확실히 살다니? 젊은 새댁이 아이가 얼른 생기지도 않자 불쑥 의심들도 튀어나왔단다. 아주머니 몰골인데 미숙아 같은 것. 미숙아 상태에서 아주머니가 된 듯. 형님네가 낳아놓은 세 아이들, 그리고 한 해 전에 결혼한 사촌동서가 연년생으로 낳은 두 아이들 틈에서 베트남은 그냥 덜 자라고 늙어버린 아이 같았다. 아이들은 앞집으로 뒷집으로 깔깔거리고 다녔고, 형님과 동서는 아이들 따라 소리 지르며 달려 다니며 부산했다. 소리를 다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는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아무도 그러는 줄 몰랐다.

   탄죽이 시집왔을 때 사람들은 외톨이 외국인이 아니라서 쉽게 적응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녀 자신은 오히려 힘들었다는 것. 집안사람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아무래도 별로 배려를 하지 않았다는 것. 왜 다들 알아서 잘 적응하고 사는 조선족 며느리와 필리핀 며느리를 봐왔기 때문에, 무엇이 어려운지, 심지어 말을 잘 못하는 것조차 고려를 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 살이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드디어 아기 소식이 생겼다. 삼 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엄마보다 더 까무잡잡한 여자아기가 태어났다. 웃음기 가득한 실눈인 아버지를 닮아서 눈이 퀭한 엄마 모습은 없었다. 퀭한 눈에는 실망의 빛이 어른거렸다. 아들을 원했을까? 사람들이 아들을 원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아들을 원했을까? 그래서 지금 둘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자식 사랑이 애틋한 것이 베트남 사람이라고 하니, 아들이고 딸이고 더 바랄 것이다. 더구나 형제자매가 단출했던 서러움으로 아이를 더 많이 원할 것이다. 죽느안, 그 여동생 하나가 어머니 곁에서 병든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을 뿐이니까. 어쩌면 형제자매들이 많았다면 한국에 시집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국으로 시집오는 것은 결정적으로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이었으니까. 안쓰럽게도.

   그러면 정말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심정이었겠지. 너무 흔한 비유다, 사실은. 얼마나 많은 인접국가의 여자들이 이곳 한국의 농촌이라는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가? 농촌에는 용왕이란 없는데.

  

   나는 교양한국어 강의에서 만나는 외국학생들의 얼굴에서 청운의 뜻만 읽었다. 체류외국인이 140만을 넘어선 지금의 한국 땅. 여기에 얼마나 많은 심청이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부모가 한국으로 흘러들어 고국의 자녀들을 부양하고 있을까. 만주의 조선족들의 경우 절반도 넘는 가정에서 사람들이 한국으로 떠나와 있다고 한다. 떠난 한쪽 부모가 결국 한국의 양풍에 젖다보니…… 불륜에 이혼에, 남겨진 아이들은 어머니를 그리며 고모나 이모집으로 떠돌다 결국 기숙사 학교로 보내지고. 부모들이 떠나는 경우보다는 명화 씨처럼 처녀가 한국에 시집오는 경우가 훨씬 바람직하다. 조선족 형님에 비해, 용감한 필리핀 동서에 비해, 베트남 사람 탄죽의 경우는 사뭇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말이 우선 서툴렀으니.

   그런데 말을 잘 못하는 것도 고려를 하지 않았다?

   무슨 뜻인가 들어보았더니, 별로 말을 걸지도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의 고향 사람들이 원래도 여자이름을 그리 챙겨서 부르는 습성이 아닌 탓도 있었을 것이란다. 시집온 새색시에게는 새댁이라면 통하고, 동네에 새댁이 겹쳐 들어오면 아무개네 새댁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아이를 낳으면 여자들 이름은 아예 아이엄마이니까. 이제는 딸아이의 이름 따라 진주엄마다.

 

   그거야 이순규네 고향만 그러는 건 아니다. 한국 어딜 가도 맞대놓고 사람 이름 부르는 일이 적다. 어릴 적 기억을 해 봐도 어머니조차 ‘금실아’ 하고 이름을 많이 불러주진 않았던 것 같다.

   울 애기, 잘 다녀왔어?

   아가, 너 그렇게 꽁하면 못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말을 하실 적에도 그랬다. ‘우리 금실이가’ 라고 하는 대신에 ‘우리 큰애는’ 이라고 하실 때가 대부분이었다. 학교에 가서야 이름 석 자로 불렸다. 한금실. 발음 때문에 황금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어려선 그런 뜻인 줄 알았다. 금실. 금빛이 나는 실. 그런데 한자로 쓰면 달라진다. 금으로 된 방, 최고로 좋은 방이다. 동생들이 줄줄이 은실과 옥실이다. 그 다음에도 여동생이 있었으면 어떤 이름이었을까. 설마 청실홍실이었을까. 그보다 어차피 시집가면 시댁 성씨 따라 김실이 박실이 등으로 불릴 우리들에게 왜 미리 ‘실’자를 붙여 이름을 지으셨을까? 나는 금씨에게 동생들은 은씨 옥씨에게 시집을 간다면 이름이 그대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시집을 안가서 여전히 금실인데, 둘째 은실이는 김실이 되었다. 금실이 김실이 소리가 헷갈릴 즈음해서 나는 한박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한박사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한박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김실이 우세해서다. 그 대신 은실인 사라졌다.

 

 

   한박사

 

   나는 한박사라 불리자마자 곧 하현달로 접어들었다. 초승달에서 반달까지, 그 반달에서 보름달까지는 누구나처럼 꽃피어나는 시기이다. 내게도 화려하지는 않으나 어쨌거나 한 작은 꽃에 비유하더라도 괜찮을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굳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라고 읊지 않더라도, 꽃 한 송이는 많은 눈물겨운 양분들로 피어난다.

   그 나름대로 힘든 세월에 대한 대가가 박사라는 이름이면 나쁠 것이 없었다. 그러다 그것 또한 한쪽의 시각이란 것을 깨달았다. 한번은 모교에서 정반대 편 다른 대학까지 급히 택시를 타고 가야할 일이 생겼다. 그때 운전기사의 질문이 삐딱하게 나왔다.

   거, 학생은 아니시겄고, 강사요 교수요?

   아니, 그거야.

   아, 거 강사든 교수든 하니까 대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택시를 탈 것 아니요! 그러니까 외국서들 박사까정 해 오시고. 이런 말 좀 뭐 하지만서도, 그런데 우린 영 맘에 안든 것이 있거덩요. 내가 지금 한국 들어온 것은 얼마 안 되고, 배를 타던 사람 아니오. 원양선박 말이오. 안 돌아다녀 본 데가 없는데 그게 참. 한국선원들이 항구에 내리면, 어딜 가나 한국여자들이 나온단 말이오. 그런데 니스 항에서는 - 그 말을 듣는 나는 얼마나 놀랐었던가, 하필 프랑스라니 - 놀라운 세상입디다. 그때 나온 야무진 여자가 하는 말이, 자긴 원래 그런 여자가 아니라 유학생이라요. 내 그 말에 더욱 놀랐거덩요. 아니 그런 데 돈 벌라고 내놓고 나간 여자라믄 그렇다 치지, 한국서 나갈 때는 유학갑네 해 놓고서 그런 델 나오니, 거기 놈들하고는 그런 짓 안 하겄소 어디. 유학 가서 박사 따왔다 하면 누가 그런 상상이나 하겄소. 내 딸은 절대 유학 못 보낸다! 우리 다들 그러고 왔거덩요.

   아니 뭐 그런 심한 말씀을.

   그러다 운 좋게 거기 놈 꼬셔서 박사 대충 해가지고 나오는지 누가 알겄소.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녀요.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사람이니까. 아니, 그보다 그 유학생입네 했다는 사람이 정말 유학생인지 기사님이 아셔요? 아무도 모를 일이죠. 괜스레 죽어라 공부하는 유학생들…….

아, 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그 여자 똑똑한 폼이 유학생 맞아보였어요. 프랑스말로 거기 사람들이랑 똑같이 야무지게 허덩걸요. 박사 아니라 뭔가라도 헐만 헌 여자여서.

   그렇다고 그리 다 뭉뚱그려서 말씀하시면.

   그냥 말이 그렇다 그 말이요. 한국 돌아와서 박사님! 소릴 듣고 있을 사람 중에 행여라도…….

   그런 걱정일랑 마셔요. 그렇게 한가하게 돈 벌어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 공부가 아니니까요.

   허긴, 그런 사람이 박사 따기까지야 허겄소만.

  

   그래도 그런 엉뚱한 험담까지 들어가며 이 대학 저 대학을 오가던 시절이 행복한 만월의 시절인 것을 그땐 몰랐다. 조금 있으면 전임이 되어, 아니 강사 경력을 인정받으면 바로 조교수에 임용이 되어서……. 정말 보름달 같은 세월을 누릴 것으로 알았다. 그러니까 누구도 자신이 자신의 생에서 보름달에 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보름달에 이른 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 나름대로 보름달인 것이다, 한 번은. 짧게라도. 내 경우는 해외파 박사로 귀국하여 안정적인 미래를 바라보며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쏟아내어 강의를 준비했던 그 시절. 밤이면 얼마나 정성스럽게 강의안을 준비했던가. 50분이면 50분, 75분이면 75분을 단 일이 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서.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다는 것은 옛말이다. 50분 강의면 낙타 등은 하나면 된다. 75분의 경우에는 쌍봉낙타의 등을 그린다. 하나의 초점으로는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전공강의를 준비할 수 있었던 시절은 갔다. 나는 물론 다른 강의를 시작했다. 걸음마 단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이것이 다른 보름달을 그릴 수 있을지는 완전히 미지수다. 거의 불가능이다. 이것도 비정규직이니까. 언제라도 그쳐야 할. 그러므로 보름달일 수 있는 시절은 갔다.

   그런 나날 가운데 우리가 그냥 서로 편하게 이박이라고 부르던 이순규는 실로 엉뚱한 하루를 선사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가정을 꾸린 형제들이 부러운 사람. 우린 말은 통했을까. 둘 다 멋모르고 죽어라 공부했고, 설 곳이 마땅찮은 어중간한 세대로서.

   이런 현상은 시쳇말로 글로벌한 듯, 유럽 어느 작가는 이를 ‘연구직 세대’라 부르며 그들의 비애를 소설로 써냈다. 많이 읽혔다. 『서른 살 제시카』인가 『예시카』인가…… 이름이 중요할 리는 없다. 한 마디로 좋은 학벌에 최고의 능력을 지녔고, 게다가 잘 빠진 서른 살 독신녀의 이야기. 그러고도 무보수나 작은 보수로 불확실한 직업에 종사해야 하는 젊은이들. 우리 사회의 스터디 룸펜족은 넘어섰을까. ‘고급두뇌 비정규직’과 비슷한 개념이다. 나라를 불문하고 인문사회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연구직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정식으로 취업되기가 어렵다. 주인공은 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여성주의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마쳤다. 대도시의 원룸에 살면서 자원 형식으로 여성신문에 <섹스와 유행>이라는 테마의 기고를 연재하고 있다. 전통적인 표상으로는 벌써 가족을 꾸렸어야 할 나이이지만, 학위와 실습에 외국여행 경험까지 두루 갖춘 그녀가 경제적으로는 부모에 의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실패자 모습. 이 젊고 예쁜 여자는 교육의 결과로서의 확고한 지성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신의 일상이 주는 통속성에 굴한다. 이상적 몸매를 잃을까 걱정하는 피트니광이고, 유행을 따르는 경박함에, 마스카라를 떡칠하는 여자.

   그래, 나는 적어도 마스카라를 떡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 년을 기다려 전임자리가 났을 때 마스카라를 떡칠한 후배에게 덜컥 고배를 마셨다. 이 나라에선 마스카라가 통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다. 유연성 없는 답답한 내 좁은 소견이 나를 제자리걸음하게 하는 것이리라. 전임 경쟁에서 밀려 모교를 떠난 이후로도 제자리걸음은 여전하다. 아니 거의 후퇴의 지경 아닌가. 해마다 신진 박사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강의시간 지키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내가 누군가의 메모 쪽지들에 붙들려 그것을 소설화 하려고 고심했던 일도 결국 또 한 번의 자발적 후퇴인지도 몰랐다. 그 일을 마치 과제인 것처럼, 아니 나의 절대적 과업인 것처럼 착각하는 동안 제법 치열한 작업에 바깥 세월을 잊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업을 마치거나 내 화면은 늘 바닥으로 돌아간다. 배승한의 메모들. 그에게서 더 이상 소식이 없는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은 멈춰버렸다. 하지만 폐부는커녕 머리에서도 나오지 않은 글을 어찌 쓴단 말인가.

 

*

 

   마치 외도처럼 일기를 한 장 쓰는 데 실은 한 달이 넘었다. 그러니까 일기가 아니다. 다만 정확성에 더해서 글의 리듬감과 독창성을 꾀한답시고 이 파일을 완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를 넘길 수는 없다. 섣달그믐에는 이 파일을 닫으려고 한다.

   또 하나 열려있던 화면에는 아직 김용택의 시들이 떠 있다.

   밥풀 같은 눈이 내립니다. / 빈 들판 가득 내립니다 / 그러나 나는 아직도 / 당신으로밖에는 채울 수 없는 / 하얀 빈 들을 거머쥐고 서서 / 배고파 웁니다.

  

   빈 들 - 빈 화면이 오버랩된다.

   실제로 눈이 내릴 겨울이지만, 근래에 눈을 본 적이 없다. 베란다 쪽 삐걱대는 유리문을 칸칸이 창호지로 발라 버렸기 때문이다. 세탁기와 가스레인지가 한꺼번에 들어있는 그곳을 통해 세상으로 향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너머 창밖이 보일 리가 없다. 희멀건 빛으로 또 하나의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느낄 뿐이다.

 

...........................................

「일기」『가로 사람 세로 인간』, 한국작가교수회, 2013, 29-57쪽

 

* 투고에서 출간까지 좀 시간이 걸렸다.

Posted by 서용좌
낙서2000. 9. 21. 23:30
2000년 9월 21일 목요일, 흐림.
 


 
 부산한 일과:

 
 알람을 해 놓았지만, 7시 일어나기는 무리였든지 다시 잠들어 허둥지둥.
  강의 시간 10분 전에야 연구실에 도착했는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항상 있어야 하는 그곳에 열쇠가 없었다. 큰 작은 가방을 털어 보아도 없었다.
  과실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 3170 무응답 - 다시 아래 층 수위실에 가서
  열쇠를 얻어오기는 숨이 이미 막힌 상태. 다행히 대학원실에 올라오던 윤재를
  만나서 절그렁 거리는 열쇠꾸러미가 올라왔다. 그건 곧 반환해야 하는 비상 키.
  
  1교시 끝나고 과실에 들러서 과실용 전체 키에서 326방 열쇠를 빌렸다. 하루 쓰기.
  불안한 마음에 집에 전화를 해서 열쇠의 행방을 탐지하려다 발견 한 일!
  어제 우체국과 외환은행에 갔어야 했는데, 그만 외환은행에서 독일에 보낼 책값
  수표를 만들었는데 오리무중, 기억이 안나는 것. 집에다는 열쇠와 봉투? 찾는
  숙제를 남겨 놓고. 문제는 문제였다. 사실 어제도 우체국에 핸드폰 두고 왔던 것을
  외환은행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다시 우체국으로 지하도를 건너야 했지 않았는가.
  우체국에는 핸드폰 두고 오고, 외환은행 수표는 오리무중. 또 열쇠.......
  이 심란한 일상을 어찌 견디나. 그래도 3교시 수업, 그리고 5교시 수업.
 
  말썽났던 컴퓨터를 하나 새로 조립해서 집에 두고, 집의 컴퓨터를 몸체만 가져왔는데,
  수업 후 성호가 연구실로 옮겼고 - 3교시 때 옮기자고 차에 갔을 때는 차열쇠를 연구실
  책상에 놓고 온 상태였었다 -, 뭔가를 확인하다가 시간은 7시를 지나고 있었다.
  모처럼 찾은 00학번 홍모도 길게 이야기할 틈이 없어서 그냥 보낸 것이 참 서운했다.
  행운목을 들고 함께 온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끝나고 집에 다시 갔다가 온
  모양이었는데...
  아차! 빌린 열쇠를 돌려줄 시간이 지나버렸구나! 3170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임시로 열쇠 두 개를 묶은 까만 철끈은 내 손가락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어쩐다지?
  방법은 일단 가방을 챙겨서 집에 갈 차비를 하고 나간 뒤, 복도 어딘가 불켜진 방을
  찾아서 맡기면 되겠구나!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난데 없는 노크소리는
  반갑지 않겠지만 다른 방법이...

  문제는 다시 생겼다. 가방을 들고 나서려는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 열쇠. 방문을 열고,
  그렇다고 더 밝아질 것도 아닌데, 아무리 해도 열쇠는 없고, 집에는 이미 곧 출발한다는
  전화를 해버렸으니 차 걱정할 사람은 또 어쩌고... 혼란한 머리로는 어쩔 수가 없어서
  일단 복도로 나가는데 000교수의 등이 보였다. 방문 앞을 지나가던 참. SOS에 들어온
  그도 열쇠를 찾지 못했다. 다시 한번 가방을 쏟아보고... 사실 내게 필요한 것은 알리비.
  누군가와 함께 생각하고 그냥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무슨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 요새 뭐 생각에 빠진 일이라도... 뭐 그런 말로 의아해하며, 아무튼
  열쇠 문제 해결을 살짝 미루어 버리고 내려올 수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친절한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이 허둥지둥한 환경에서 어서 도망치고 싶었다. 가능하면
  누구에게라도 작은 일이라도 의존하고 싶지 않은데...

  실수는 오늘만해도 또 있었다. 수업시간 중 핸드폰이 울리면 벌금내기로 한 것이 지난
  시간. 오늘 들어가면서 핸드폰을 책상에 놓아두고 가려다가, 예컨대 또 과실에라도
  전화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싶어서 꾹꾹 눌러서 전원을 껐다. 자꾸 무슨 글자가 나오길래
  아차 <통화>를 눌렀구나 싶어서 재차 꾹꾹 눌러서 껐었다. 그런데 그만 커다랗고 우렁차게
  폰이 울린 것이다. 기운차게 꾹꾹 눌렀어도 계속 <통화>를 눌러서 켜둔 것이라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희안한 것은 이런 머리로도 수업 시간 중에는 나름대로 살아나는 것 -
  오늘은 수퍼우먼 코드가 나오자 조금 흥분하여 무심코 앞 책상 위로 올라가 앉기도 하는
  정열은 어디에서 나왔을지. 교실을 나오면 <tot müde> - 문자 그대로 그 자리에 가라
  앉을만큼 피곤하다. 다음 순간을 예상하기 어렵다. 건물을 빠져 나오기 전에 벌써 어딘가
  벽 속으로 스며들고 말 것 같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큰 소리다.

  요즈음 빠져있는 노래 - <헤어진 다음 날>을 들으면서 차를 조심조심 운전했다. 더 이상
  실수는 말아야지. 돌아온 시간은 8시가 다 되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어서 나선 하루이니
  열 두 시간이 거의 되었다. 그 열 두 시간 내내 쉰 것은 몇 분인가. 일 아니고서는 얼굴 본
  사람도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하나 없다. 열 두 시간을 일로서 보낸 것이다.
  8시면 이미 저녁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손발만 씻고서 저녁 상을 차렸다.
  아무리 다 준비해 둔 것이라지만, 상 차리기 만으로도 지쳤다. 샤워를 했어야 하는데,
  함께 식탁에 앉기를 원하는 아빠 - 우리 집에서는 "아빠"와 "엄마"가 고유명사이다 - 의
  속을 알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냥 세수만 하고 와서 앉았다. 아무래도 목이 열리지 않으니
  와인을 한잔 물 컵으로 따랐다. 항상 그런다. 물 컵이 내 와인 잔이다.
  둘째한테서 벨이 울렸다. 아침에 눈 떠서 하는 전화라 했다. 형은 그 동안 나일 강 위에
  있었기 때문에 통화가 되지 않았었다고. 이제 카이로에 도착해서 친구의 약혼식인가
  결혼식을 사흘 낮 사흘 밤 참석하게 될 것이라고. 세 끼 챙겨 먹는 일상이 성가시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 놀랍고 선선히 "아뇨"라고 대답하는 아이. 원래 걱정을 끼치지 않는
  아이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먼저 식사를 끝냈고, 막 먹기 시작했던 난 숟가락을 놓았다.
  이것이라도 말자. 해야 할 일들이 넘친다. 생략할 수 있는 것, 하다 말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다 싶은 생각이었다. 다시 샤워를  하러 갔다. 그렇게라도 해야 일상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온 식탁에서는 먹으려던 음식을 모아서 < 버렸다>.  하느님은
  아셔도 어쩌시지 못하지만,  아침에 와서 알게 될 아주머니가 부끄러워서 음식물 쓰레기
  바구니 안쪽에 몰래 버렸다. 와인을 한 잔 더 따라서 마시고 - 서서 - 설거지를 끝냈다.
  벌써 서재로 돌아가 소리 없이 일하고 있는 남편을 부러워하며, 그러나 바로 책상에 앉을
  기운이 없어서 소파에 파묻혔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곧 다시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차! 꼭 읽어야 할 책이, 또 가져와야지 하고 생각했었던 책이 빠졌다. 주말 안에 다시
  연구실에 가서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목록: 아침에 열쇠와 송금수표 부칠 것 안가져 갔고, 둘 다 어디 두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강의실에 휴대폰 그냥 가지고 들어갔고, 차에 열쇠없이 컴퓨터 가지러 갔고, 과실용 열쇠
  마저 잃어 버렸고, 필요한 책 안들고 왔다.

  이게 무엇인가! 이렇게 실수를 연발하면서 일상이 계속 될까. 새로 쓰기 시작한 컴퓨터는
  새 기능을 한다. 자판도 좋아졌고, 속도 또한 엄청 좋다. 홈페이지에 어느 한정 공간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Upload가 절대로 되지 않아서 살펴보니 공간부족이라는 것이다.
  옛 문서들을 지워서 공간을 만들었는데, 옛 이미지들도 지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들을 지워야 충분한 공간이 생길 것이다. 메일박스도 지우다 보니 답장해야 할
  안부해야 할 곳도 있었다.

  은사님께:
  
잘 돌아 오셨겠지요. 어찌 해서 ... 통화 시도해 보았는데...잘 안되었어요.
  ... 그냥 잘 다녀 오셨겠지 하면서  인사가 늦었어요. 전 생각보다 일상이 짐스러워요.
  ... 왜 이렇게 <일>이 많아요, 사는 데.  너무 귀찮아서, 조금 전에는 밥을 먹다가 말았
  어요. 그것이라도 생략하고 싶어서요. 마음대로 생략할 수 있는 것, 거의 유일한 것!
  그렇다고 식욕부진의 히스테리 증후라고는 여기지는 마셔요.....
  요즈음에는 어떠셔요?  사방이 살벌해서.... 너무 재미가 없어요. 사방에 모임이지요,
  단 한군데도 가기 싫은. 그러나 정말 나를, 나만을 위한 자리는 아무 데도 없어요. 해서
  사람들하고 점심도 같이 안하는지가 오래 되었어요.  <끈>이 성가셔지니 어떡해요.
  안부 메일한다는게 넋두리가 되었네요. 말할 사람이 없었나 봐요.  의사소통은 시렁에
  얹힌, 그런 나날을 언제 다 사나요?
  여기까지를 지우느니 그냥 보내겠어요. 선생님, 그저 안부가 진하다 보니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하셔요. 두어 번 연락 시도하다가 이렇게 앉으니 그리 되는걸요.  아무 뜻 없는 안부
  이니 그냥 인사만 받으셔요.
  안녕히 계셔요, 어디선가 곧 뵙게 되겠지요
.

  안부가 너무 무례했을까? 심했을까? <최근파일>에서 단골 글마당에 들렸다.  편하지
  않은 안으로의 여행.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책상을 일어설 것이다.

  따뜻한 아빠. 따뜻한 손. 손의 힘찬 감각은 뼛 속까지는 아니라 해도 피부 깊숙이 들어
  올 것이다.  따뜻함 속에서 잠을 청하리라. 아직 꿈도 아닌데 꿈 같은 영상들이 밀려올
  것이며, 그 속에는 어김없이 그 회색 빛 형체가 북해의 저녁 비바람처럼 서성일 것이다.
  차갑고 암울하게. 어깨는 따스하고 꿈 속은 차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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