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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86.02.25 <강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 번역
독문학1986. 2. 25. 14:37

 

삼성출판사 1986.2.25


― 라인강변의 호화로운 별장지대를 무대로한 권력층 부유층 그러나 매우 서러운  여자들의  이야기 ―

이 작품은 1985년 여름에  타계한 하인리히 뵐에게는 그가  탈고하고 출판사에 넘긴 마지막 작품이다.


원제 Frauen vor Flusslandschaft


 "라인강의 기적"의 결과를 흠뻑 누리며 살고있는(?) 정치가 혹은 사업가의 아내들의 이야기


이런 여자들의 서러움과 고통이 무엇일까? 고통을 알기나 한가? 기껏해야 풍요의 권태가 주는 실존적 위기감 또는 잘해야 예술적 또는 정신적 일에 관계된 사치스러운 고민이겠지 …

그러나 그러한 기우는 첫 장면에서 사라진다. 이들의 고뇌는 보지 말아야 했던 것을 보았던, 듣지 말아야 했던 것을  들었던자의 매우 인간적 고통이다. 제 1장이 시작되면 라인강을 바라보는 별장 발코니에서 우수 속에 잠겨 일생을  회고하는 에리카 부플러가 등장한다. 그녀의 성공한 남편 헤르만, 그는 쿤트를 축으로 하는 정당의 기획자로서,  그의 두뇌 속에서   40년간의 연방독일의 정치가 요리되어 왔다. 이 정객들의 권모술수의 <연극>에 얽혀든 여인들은 일종의 배우들이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득표를 위한 행동이다, 그들은 체제의 긍정적 산물인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대신 공허한 내면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불안신경증적인 상태에 빠지기 쉽다. 이들은 그 <연극>에서 이탈하면, 치유할 수 없는 우울이나 절망, 자살에 이른다. 종전 직후 옛 나치들이 민주주의자로 둔갑하여 정치의 일선에 뛰어들 무렵, 그들에 의해 영도되는 연방공화국의 땅 대신 차가운 라인강물을 택한 여인이 그런 경우이다. […]

그녀는 이 죽음을 통해서 당시 다섯 살 난 아들에게 결코 군복(유니폼)을 입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갔다. 그 아들은 당연히 군복무 거부자에 합류한다. 이 백작가문의 <빗나간> 황태자는 아버지의 칭호인 "백작"을 거부한다. "민주주의자 백작 ooo", 예컨대 이러한 불협화음을 간파한 것이다. 이야기는 호화판 요양소에 감금되어 살고 있는 정치가의 아내, 엘리자베트의 죽음에서 정점을 이룬다. 그녀는 "결혼의 파기"와 더불어 정신병원에 유폐되어 있다. 남편 역시 쿤트 주변의 인물이다. 그는 한 귀족의 딸을 아내로 원했기에 그녀와 결혼했다. 당시, 아버지를 소련군에게 잃고 자신은 그들에게 겁탈당한 귀족의 딸은 매우 값진 액세서리였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였다. 전쟁 말기  나치당 남작이었던 아버지는 극렬당원이던 누군가  - 작품 내에서 "피의  사냥개"라고만 불 린다 - 의 사주에 의해서 남자 아이들을 다 목매달고 자신도 목을 맨 애국적 군인들 중의 하나였고,  남겨진 딸 그녀의 처녀성은   "하등인간" 소련군의 겁탈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랑에 바쳐진 것이었다. 그녀는 그 디미트리를 평생 사랑했고, 남편은 오히려 그녀를 겁탈해야 했다. 그녀는 결국 출산은 거부했지만, 표밭을 모으는 연극에는 동참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피의 사냥개가 변성명해서 복권되어 나타났을 때, 그를 알아본 그녀는 자제심을 잃고 광기에 내맡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본의 정치사회를 깡그리 부정하는 듯한 비판의 안목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비판서가 아닌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는 예를 들면 제 4장의 에파의 독백에서 넋을 읽게 된다:


 

     에파:  […] 저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빨강이건 초록이건 배의 각등들 하나 없구나.

             정박 금지인 봐 .

             아마 여기 어느 곳엔가는 니벨룽겐의 보물이 발견될지도 모르지 ― 라인강 기슭으로

             떠밀려 올라와, 찌그러진 왕관들, 황금쪼가리가 라인의 강물과 자갈에 오랫동안

             씻겨서, 구르는 잔돌에 맞아, 뭔가 사육제의 휘장처럼 시달려서 […]

             오오, 크림힐트와 브룬힐트, 그대들의 팔찌들, 구르는 돌에 쇠잔하여 강의 해초들이

             머리카락처럼 붙어 있겠지, 아마 미국의 장갑차가 진압했을 대 놀란 어느 시민이 급히
             떼내서 내버린 나치의 
표장과 비슷하겠지. 거기 초록빛 수렁 속에서 사라져버렸을 모든 것들 ― 

 

바로 그것이다. 니벨룽겐의 흥망성쇠를 태고의 유산처럼 음미하다가 갑자기 섞이는 "미군 장갑차", 그리고 어느  놀란 시민이 황급히 떼서 내버린 나치의 표장  ― 이렇게 인류의 속성과 원죄적 약점에 대한 평이한 고백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하인리히 뵐의 작품을 찾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