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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6.03.03 침묵13 - 해후 1
  2. 2024.01.15 침묵 4 - 투틸로
  3. 2023.01.03 페르소나
  4. 2020.11.05 순수에의 강요 - 한국작가교수회
소설2026. 3. 3. 17:58

침묵13 – 해후


 

 

그는 병난 시계같이 휘둥그래지며 멈칫 섰다.

- 박용철 「해후」 전문

 

 

     해후, 뜻밖의 만남을 그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남이라고. 그 순간 승욱은 ‘병난 시계같이 휘둥그래지며 멈칫 섰다.’ 숨이 멎었다. 뒷모습에서부터 순간 알아차렸다. 스칠 때였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에서 알았다. 세월이 흘렀다고 하면 흐른 시간임에도 그 찰랑거림은 눈을 유혹했다. 아니, 그 이전에 코를 습격해서 숨을 멎게 했다.

 

     좁은 길, 좁은 산길이었다. 백두산 한 귀퉁이가 갑작스럽게 드러난 것이 겨우 몇 분 전이었다. 너무나도 가까이에 솟아 있었다. 해발 한참 높은 자리에까지 차로 올라온 탓인지 뒷동산보다 미약해 보이는 언덕이었다. 모래와 자갈뿐인 산에서 신성은커녕 생명감마저 느끼려야 느낄 수 없어서 이상했다. 이렇게 평범할 수가. 산은 산이고 숲은 숲이잖여, 어디라도 바람 쐬러 다녀오자고 하면 늘 시들하게 대답하시는 어머니 말씀이 맞나 싶었다.

     아침에 호텔을 출발할 때는 고산의 환경을 견딜 수 있을까 염려스럽다고 미리 니트로글리세린을 혀 밑에 넣어 녹이는 일행도 있었다. 탤런트처럼 예쁘게 꾸민, 젊어 보이는 여자였다. 산 아래 주차장에 내리자 산정까지는 다른 정해진 차편들로 오른다고 했다. 두 장의 입장권(?)을 받았다. 사람마다 두 장씩이었다. 그 후로는 ‘우리 일행’의 개념도 없이 아무렇게나 숫자대로 태우고 끊고는 해서 난감했다. 마치 번호가 붙여진 짐짝이었다. 그렇게 반시간 정도를 달렸고, 다시 6인승 지프차로 바꿔 태워졌다. 미간이 실제로 찌푸려졌다. 곡예운전은 20분도 넘었다. 묘기 대행진에 나오는 것처럼 흔들흔들 덜컹거리며 올라갔다. 낯선 차창 밖 풍경에 저절로 눈이 갔다. 뾰족한 꼭대기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여러 마리 나란 나란히 서있는 소들의 허리나 엉덩이를 닮은 지형이었다.

 

     어디였지? 곰소였나, 서해 바닷가, 물 빠진 너른 바닷가의 사진이 떠올랐다. 음악 하는 친구, 한두 번 만난 불문과 손 선생의 친구가 어느 자리에서 곰소의 바닷가 사진을 들이밀면서 감탄했었다. 여기, 골골 물 빠진 길들로 패여 가지고, 푸짐한 아니 육중한 여자들의 엉덩이야. 늘어 엎어진, 아, 이 모습들···. 사진을 확대해가면서 들이밀었다. 와우, 놀라워. 동해와는 너무 다른 서해 바다들, 왜 이런 푸근한 바닷가를 묘사한 작품들이 없을까. - 직접 노래로 만들어 부르지 그래요? 하려다가 말았다. 사실 그런 바닷가를 본 적이 없었다. 승욱이 난생 처음 경험한 바다는 유럽 대륙붕에 위치한 북해였다. 가까운 바다를 멀리해온 긴 세월을 지나, 난데없이 천, 2천 ··· 8천 킬로미터쯤 떨어진 바닷가에 서서, 아, 바다가 이렇구나, 그 깨달음으로 모래밭이 멀리 멀리 뻗은 그냥 바다면 충분했었다.

     후훗, 산정에 오르면서 바닷가 생각이라니. 구름은 더 걷혔다. 지프에서 내리자 천지를 향하는 설렘이 다시 살아났고, 아직 오를 데가 조금 더 남아서 좁은 비탈길을 오르는 참이었다.

     야, 이렇게 맑은 날에 오다니!

     저쪽에서 우리 일행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이번 행사주관 학회의 회장님이셨다. 더 나이든 교수님을 향했다.

     교수님, 저는 세 번째라니까요. 그런데요, 처음으로 이렇게 맑은 날을 봅니다요.

     세 번 만에 맑은 날이 처음이라···.

     예에! 천지 물 못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 많아요. 오늘 오신 분들 아주 운 좋으신 겁니다.

     우리 일행인 서너 분 교수님들에 이어 여러 서로 다른 일행들이 뒤섞여 올라갔다. 앞선 회장님은 사뿐사뿐 뒷산 오르듯 했고, 소리들은 멀어졌다. 벌써 천지에 닿았을 것이었다. 한국어는 다른 소리들에 묻혀서 조용했다.

 

     노샘, 느리네요! 어서 어서! 우리가 먼저 올라야 했을 것을! 교수님들 기념사진도 찍어드리고.

     한눈팔던 승욱을 박 선생이 재촉했다. 박 선생은 영문과였다. 영문과 교수님 두 분과 명예교수님 한 분이 연길대학 프로그램에 참석하시는 길에 동반하는 길이었다. 영어교육관련 학회의 프로그램은 이틀이었고, 나머지 3일은 백두산 여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리가 남아서 가족이나 친지 동반이 가능하다고. 강사실에서 박 선생이 그 말을 흘렸을 때, 승욱으로서는 귀가 솔깃했다. 산, 백두산이라니. 사실 짧은 독일 체류 중에 바닷가만 떠돌며 공부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고, 결국 알프스 자락의 신학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터라, 백두산 여행은 괜스레 뭉클한 아이디어였다. 알 수 없는 감격 속에 멈칫거리는 승욱을 박 선생이 알아차렸다. 밀어붙였다.

     아, 노샘! 무조건 갑시다요! 백두산인데! 우리 과는 사실 다른 프로젝트 땜에 다들 못가요.

     예, 뭐. 자리가 있으려나 했지요. 신청할게요. 그렇게 나선 길이었다.

 

 

     익숙한 말소리들이 들리며 젊은 남녀들이 바짝 앞으로 추월해 나갔다. 그룹까지는 아니지만, 아니, 그룹여행으로 보였다. 커플룩도 보이고···. 그 뒷모습 하나가.

     그 높이 그 아득한 곳에서라니. 뜻밖이고 뜻밖이었다. 연두였다. 연두가 아닐 수 없었다. 연두를 연두의 뒷모습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승욱은 굳었다. 세상이 멈췄다. 2,000미터가 넘는 산길을 올라와서 세상이 멈췄다. 몇 발짝 천지를 앞두고 세상이 멈췄다. 그는 주저앉았다. 쓰러졌다.

     놀란 것은 박 선생이었다. 뒤돌아보던 그는 다 내버려두고 순간 승욱을 향했다. 다행히 승욱은 옆으로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느낌은 없었다. 그냥 아득했다.

 

     형, 쉿, 조용히!

     형? 여자애가 그를 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무엇인가에 감전된다. 여자애는 손끝으로 그의 팔을 가만히 누르면서 머리맡에 앉아 있다. ㄱ의 손끝과 ㄴ의 팔은 전류가 통하는가. 깜깜한 세상 속에서 가늘지만 번쩍번쩍하는 전류만 보인다. 소리 없는 마른번개다. 살살 간질거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다시 한 번 전류에 휩싸인다. 회색 장막이 덮친다···.

 

     노샘, 승욱 형! 형! 박 선생은 그를 흔들었다. 그는 다른 동작을 할 수 없었다.

     그게요, 전류가 흐르려면 전위차가···. 승욱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다가 눈을 떴다. 하늘뿐이었다. 하늘 속에 둥실 떠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눈이 감겼다.

     얌마, 사내새끼가 뭣이여! 꼴싸를 봉께 먹물쟁인갑네! ··· 아이고, 야가 또 실려왔네이. 불안장애여, 뭐여! 인자사 일병 달았고만, 이래 싸면 지대로 전역이나 하겄냐! 얌마! 털고 살어! 스톱이 뭔 말인가 알겄어? 알어 듣냐고! 사투리 군의관의 목소리가 어른거렸다. 서너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아이코, 다행이요! 노샘 뭔 일이요! 정신 들어요? 뒤로 넘어졌더라면 머리가···.

     저기 길 옆으로···, 나 옆길로. 사람들 방해···.

     치이, 이런 순간에 다른 사람들 걱정할 일이요!

     그 사이 그들 일행 중 몇이 합류해서 그는 길섶에서 더 안쪽으로 옮겨졌다. 잠깐이었기 망정이지 소동이 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물이며 이름 모를 음료들을 건넸다. 이마를 짚어 보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더위 먹었나 했더니 열은 없네요, 다행히. 젊은 사람이 왜 이리 부실해!

     잠깐만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의식 소실은 아니고··· 전에도 쓰러진 적 있나요? 어지러웠어요? 메슥거렸나? 하긴 그런 느낌 들기도 전에 쓰러지지 뭐. 피부는 창백해도 식은땀은 없네. 나, 간호사예요.

     아, 예. 감사합니다. 박 선생이 연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가끔 이런 일이, 미주신경···.

     에고, 알고 있으니 다행이고. 그치만 습관성 되면 안 되죠. 여긴 그늘도 없어서.

     별 일 아닙니다. 모두들 어서 천지를···.

     어머나, 살아났네. 우릴 걱정하는 것 보니까. 누군가 어깨를 흔들흔들해주더니 일어났다. 사람들은 안심했다. 흩어졌다.

     노샘, 어쩌다가. 우리가 순간 넘 속도를 냈나. 박 선생은 여전히 걱정인가 보았다.

     박샘, 나 괜찮아. 이유 없이 그럴 때가 있었어요. 군대 때도 여러 번, 그 전에도···. 천지 보고 와요! 쉬고 있을게.

     그건 아니지. 다 왔는데. 쫌만 더 쉬다가 함께 다녀옵시다!

     아, 완전히 민폐를 저지르고 있었다.

 

     조금 있다 보니 일행들이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간호사 아주머니는 다시 승욱 쪽으로 왔다. 천지, 요 바로 위예요, 다 왔어요. 얼굴 색 괜찮은데 웬만하면 올라가서 사진만 찍고라도 와요. 여길, 백두산 천지를 언제 또 오냐고요!

     정말이지 키만큼만 올라가면 될 듯 고지가 눈앞이었다.

     되겠어요? 가겠죠? 나 혼자는 안 올라갈 것이니. 박 선생이 졸랐다.

     앞서 올라갔던 일행들이 내려가는 것을 보면 문제의 그 일행들도, 연두가 함께 왔을 그 일행도 벌써 내려갔을 시간이었다.

 

     봤을까?

     나를 알아봤을까?

 

     짧은 시, 두 줄 뿐인 시가 떠올랐다. 미쳤구나, 너. 봤으면, 알아봤으면 어쩌려고! 승욱은 애써 사건(?)을 평이하게 정리했다. 다만, 오르막이라 앞쪽이 높았으므로 그 머리카락이 바로 그의 눈높이에서 찰랑거렸을 뿐이다.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는 강아지풀 냄새, 강아지풀 가루··· 이런 건 착각이다. 착각이야. 착각이어야 했다. 말도 안 돼. 하나, 두울~. 승욱은 애써 깊은 숨을 쉬면서 천천히 나머지 몇 미터를 올라갔다.

 

 

     호수, 깊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기슭이었다. 올라갈 때의 가벼운 경사면과는 비교가 안 될 가파른 깊이였다. 천지는 미궁이었다. 3, 4백 미터 깊이라더니 표면은 움직임도 없이 육중하다. 흑수라 불리 듯 정말 어두움에 쌓여있다. 순간 저 끝이 지구의 중심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 깊은 아래··· 더 아래··· 마그마가 끓고 있을 그곳은 지구의 중심, 지구의 자궁이었다. 아찔함에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이곳에를 어떻게. 승욱은 새삼스레 몸을 떨었다. 대학원 진학 전 이런저런 독서에 푹 빠져있을 때, 세계의 신과 신들에 대해서 무작정 읽고 있을 때, 하나의 소망을 품었었다. 그리스, 세계의 옴팔로스, 배꼽이라는 곳 델포이에 가보고 싶다. 헤브라이즘 이전의 역사, 헬레니즘의 매력에 파묻혔을 때였다.

     파르나소스 산정의 아폴론 신전, 깊은 신실에서 신탁을 받아 나오는 피티아, 정확히는 그 흔적들이 남아있는 델포이는 짙은 안개에 쌓여있었다. 승욱은 그 안개 속에 있었다. 세기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 또한 예로부터 신전 안쪽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니?! 누구의 말이면 어떤가. 그노티 세아우톤, 그노티···.

     그 안개 낀 산정이 왜 백두산 천지 앞에서 떠오르는가. 무슨 맥락이 없었다. 현상이 그랬을 뿐이었다. 파르나소스 산 높이 또한 백두만 하겠지. 너는 자신을 아느냐···. 고개를 젓던 승욱은 이곳이 백두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천지의 물에 발을 적셔보고 싶다는 충동에 내몰렸다. 유럽 끝 북해에서 난생 처음 바닷물에 발을 적셨던 그때처럼. 그 차가움, 각성, 바닷물의 정체를 느꼈던 그대로 이제 천지의 물을···.

     노샘, 노 선생니임!

     박 선생이 그를 낚아챘다. 거긴 위험해욧! 왜 그래요, 조금 아까 넘어지고도 또! 사람 놀래키는 재주 있어요.

     ···.

     자, 이쪽으로! 여기 사진 한 번! 아무캐도 사진은 남겨 가야지요.

     사진은, 그러네요.

     고개를 들고 보니 왜소한 청년의 옷 가슴팍에 006이라는 번호가 크게 붙어있었다. 수인도 아닌데 웬 번호일까.

     여기 사진 열두 장 4만원. 여기 내 번호 잘 봐두시오.

     청년은 유창하지 않으나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이었다. 관광객들의 카메라로는 도저히 잡히지 않는 호수 표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는 알바들이었다. 사진은 즉석에서 박 선생이 챙겼다.

     아, 까마귀는 한 마리 안 보이네. 백두산 까마귀 어쩌고 속담도 있던데.

     맑은 대낮에 까마귀 뭐요, 뭔 뻘소리. 오늘 진짜 이상하셔!

     시간 때문에 둘은 서둘러 내려왔다. 일부 일행들은 버스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더러는 기념품가게에 들렀거나 천지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거나. 다들 다가와 말을 거는 것으로 보아 승욱의 소식이 퍼졌나 보았다. 다시 지프에, 이어 친환경버스에 올랐다. 하산이었다.

 

 

     조선족 안내인이 부러 백두폭포라 부르는 장백폭포 앞에 이르자 버스가 멈췄다. 폭포관광은 도보였다. 비껴 옆 입구를 통해 오르면서 사람들은 벌써 멀리 하얗게 반짝이는 계곡에 놀라서 탄성을 질러댔다. ‘백두산에 걸린 두 필의 비단’이라더니, 말 그대로 그렇게나 은색으로 빛날 줄은 몰랐다. 입장료를 낸 뒤 그 지점부터는 길이 갑작스레 가팔라졌다. 더 가파른 층계를 오르자 폭포 물을 받아 고이는 듯 흐르는 물이 나왔다.

     누구라도 발을 담가보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 차가운 물에 살짝 씻어보았나, 그 정도였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라고 그리스 괴팍한 철학자 누군가 말했다더니. 나 또한 분명코 이 쏟아져 내려 흘러가는 물에 다시 발을 적시는 일은 없을 것이리라, 승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순간은 되풀이 되지 않는다. 연두는 연두의 머리카락은 내 생에서 되풀이 되지는 않는다. 정신 차리자. 그러다가 갑자기 철학사에서는 그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의 원인을 불이라고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 원소이다. 모든 것은 불의 교환물로서 희박과 농축에 의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대립에 따르고, 전체는 강처럼 흐르며··· 아, 이 대목에서 강물이 나왔었구나.

     뭐해요, 일어나요. 발 얼어불겄구만.

     한 번 뿐이라.

     뭣이 한 번요! 우와, 오늘 정말 이상하셔! 내가 돌겠네! 인자 노샘 옆에 바짝 붙어야겄소. 빨리 와요!

 

     서두르는 일행들을 따라 노천지수영지로 향했다. 로露자로 시작된 간판이었다. 더 큰 한글 간판에는 ‘세계 제일의 성산 백두산 자연유황온천수탕’이라고, 그 아래 한자로는 ‘세계 제일적 성산 장백산 천연유황온천욕’이라 했다. 83℃라고 소개된 탕의 온도를 보고는 의견이 갈렸다. 온천욕 하자 말자. 못 말리는 열성 일행들을 기다려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 한 시간 남짓, 길가에 붙어있는 ‘조선족 풍미’라는 냉면이며, ‘순 한국식 음식’이라거나 ‘원두커피’라는 팻말들이 남은 일행들을 불러갔다. 승욱은 그냥 그 집의 커피숍에 앉았다. 앉는 것만으로 10위안을 내는 것이 생경했다. 공항 내의 은행에서 133.90으로 환전을 했었지만 별로 쓸 일은 없었다. 물론 관광버스가 길목 마다 멈춰 선 매점에서 발칙한 상품들도 발견했지만. 정말 발칙했다. 백두산 가는 길 ‘만경관광상품유한공사’였나. 그 가게에는 ‘지저스 래핑’이라는 상품도 있었으니까. 순전히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아니 한국인들을 표적으로 한 상품들이었다. 아예 물건 값이 한화로 표기된. 점포 운영은 북한이라던가.

 

     우두커니 멋쩍기도 해서 커피를 시켰다. 먼저 받아갔던 자릿값을 빼주었다. 어쩌다 여기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고 있나.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있던 승욱은 아무도 모를 표정으로 먼 날들로 돌아가고 있었다. 좀 늦은 나이었지만 교육대학원 진학 후에는 예정대로 공부를 했고, 졸업하면서 한 번 더 선택의 기로가 있었다. 그때 중등교사 임용고시 대신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 지금의 진로가 되었다. 교육대학원 공부를 하다가 깨달은 중등교원의 한계, 특히 자율성이라고는 없는 직업군임을 확인하고서 흔들렸다. 또 다른 하나는 청소년의 인생에 미칠 수 있을 영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중고등학생들은 크든 작든 선생님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학생들의, 크게는 타인의 인생에 간섭하기도 영향을 미칠까도 관여하기도 싫은 무신경과 무관심이 한몫을 했다. 대학생들에게는 교수의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그 대신 수업의 자율성이 보장될 터였다. 타인을 덜 침해하고 그 나름 공부하면서 강의하는 자유가···. 그러는 동안, 더 이상 도망이 아닌 정주의 길을 걷게 된 이래 자신은 역마살이 없는 정주형이라고까지 믿었다. 더 이상 도망해야할 원점을 핑계대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떠날 욕구가 없다고 믿었다. 원점은 원래 연두가 아니라 애매모호한 자신이었다. 이제는 안정된.

     그런 의미에서 그날 백두산 여행에 설렜던 2005년, 서른일곱 나이에는 평범한 연구자들에게 막연한 가능성으로 보아 인생의 봄날인 셈이었다. 단 하나, 어머니의 다른 바람은, 많은 어머니들의 공통된 바람이었을 그것은 불편한 예외였다. 말 수 없으신 어머니가 별다른 채근은 하지 않으셨지만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투틸로, 왜 남들처럼 여친이 없냐이···.

 

 

     혼자, 여기 혼자 있었네, 노샘! 갑시다, 우리가 좀 늦었네요. 일단 탕에 들어가불면 그거이···. 붉게 상기된 얼굴의 박 선생이 머리를 털면서 다가왔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은 목욕탕에 들어갔나 안 들어갔나 확연히 구분되었다. 다시 출발한 버스 안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저녁에 소를 잡는다는 말도 안 되는 말 때문이었다. 송아지 값이 한국의 1/10, 겨우 50만원이라니! 버스 한 대 일행들 모두가 실컷 먹어도 남는다더라. 안 먹고 가면 손해지, 입맛들을 다셨다. 단체관광에 그런 것이 숨어 있었나, 박 선생도 몰랐다는데 기획 때 벌써 정해진 코스였다 했다.

     오늘 밤 송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위해서 죽는갑네.

     뜬금없기는. 송아지야 죽을라고 사는 것 아니요! 노샘 비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냥, 사람들 육식 과욕으로 덩달아 땅들이 숲들이 턱없이 사라져가니까.

     송아지는 뭐고 땅들은 숲들은 또···.

     얼마 전에 아마존 수목지역들 강탈이 심하다는 기사를 봤어요. 가축 사육 공간을 확보하려고 수림지대를 아예 불태워버리니. 수목들 연소 때문에 구름은 검게 혼탁해지고 강수량은 줄고.

    그런다고···.

    그 정도가 심각하다느만. 지난 반세기 아마존 우림 2/3가 사라졌다면 믿어지나, 축산업으로.

    에이, 사람 불편하게.

    그뿐 아니라니까. 콩이나 옥수수 그런 곡물 총생산량, 세계 총생산량에서 사료에 쓰는 곡물이 거의 절반, 45퍼센트라나. 그거면 인구 20억을 먹일 정도래, 현실에선 10억에 육박하는 인구가 기아에 시달리는데···.

    노샘. 고만, 고만해요. 앞뒤에서 누가 듣겠구만요.

    아, 오늘 송아지고기 맛 버릴 생각은 없고요. 놀라서, 통째로 한 마리를 잡는다니까 놀라서. 암튼 소고기 1킬로 생산에 들어가는 곡물이···.

     쉬잇!

     송아지가 죽기로 된 식당에 도착하면서 승욱은 겁이 와락 났다. 설마 그 일행들이 하필 이곳으로 따라오지는 않겠지. 소 잡아먹는 것, 이것은 대형사고(?)이니까. 안 올 거야, 맞아, 소그룹들이 송아지를 잡을 리는 없으니까.

 

     연두랑 단체로 짜장면을 먹은 적이 있었다. 건너 건너 자리였다.

     뭐 해! 짜장은 비벼야 맛이지. 옆자리 여학생이 참견이었다. 아아니. 나 안 비비고 먹어. 흰 것은 흰 대로, 까만 쪽은 반찬으로. 그러더니 짜장 쪽을 꽤 남기는데,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한쪽으로 치우는 것이 자잘한 고기들 같았다. 얼마나 된다고 저걸 못 먹나. 식성이 까다롭나. 성격도 까다로울까. 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 연두 일행이 송아지를 잡으러 올 리는 없었다. 그 누구도 승욱의 불안을 알 리 없는 그날 저녁은 어느 식사 때보다도 흥겨웠다. 특별한 부위를 욕심내는 사람들을 경탄하면서, 승욱도 송아지를 먹었다. 술들도 꽤 마셨다. 그러면 두말할 것 없이 가무다. 별명이 마이클 잭슨이라는 남자가 일행들이 원하는 노래는 다 불러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몇 곡을 잇다가, 맙소사, 뜬금없이 〈명태〉를 부르는 품이 대단했다. ···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쫙쫙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 지라도~~. 그 남자뿐 아니라 정말 다들 대단했다.

     박 선생도 한 곡조 불렀다. 당연히 팝송으로. 아이 워크트 어크로스 언 엠티 랜드~~. 멜로디는 들어봄직. 텅 빈 길을 걸었네, 너는 사라졌고, 쓰러진 나무들만··· 그런 내용 같았다. 승욱은 굳이 가수도 제목도 묻지 않았다.

     추억에 젖었네, 박샘.

     추억 없는 사람 있나.

     추억···. 추억은 아름다워라. 아니, 청춘은 아름다워라. 청춘은···.

     웬 멜랑콜리. 우리가 뭐 아직 청춘인가.

     청춘은 쉬이 가고, 추억은 켜켜이 쌓여있을 것이었다. 어디에서 살든 가무에 심취하는 민족이 맞다. 삶의 무게, 삶의 슬픔을 즐거운 가무로 뱉어내는지도 모른다. 속내를 토하는 말은 접는다. 이렇게 침묵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가지 않은 길, 연두. 돌이킬 수 없는 길, 연두. 침묵 속의 단어, 연두. 침묵 속의 단어들은 활성화 될 수 없다. 죽은 단어들이어야 한다.

 

 

     용정이라니, 날이 밝자 이튿날도 엄청 설레는 일정이었다. 시인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밝아진 기분 때문인지 조선족 안내원의 너스레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중국에 오십 여섯 민족들이 삽네다. 여자는 그중 조선족을 젤로 치지요. - 엥? 아무리요?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들었다. 믿기 어려웠다. 진짭니더. 울 시댁 뿌리가 전라북도라, 남편이 밖에서는 큰 소리로 뻐김서 다녀도 집안에서는 짠돌이더라요. 여자는 잔소리 말고··· 그런 스타일예. 한데 한국은 계속 계속 발전을 해서는 어느 날, 이삼년 전엔가, 국회에서 여성의원이 남성의원 머리통을 쥐알리는 장면을 보았지요. - 에이, 한국서는 모르는 일이요. 일행 중 누군가가 반박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드라마였을까. 아무튼 그 장면을 본 다음에는 안내원이 남편에게 엇서기도 하는데, 남편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단다. 대중매체가 효과 만점이구나, 쿡쿡. 승욱이랑 박 선생은 웃기만 했다.

 

     용두레 우물이 있던 땅 용정에 터를 잡은 조선인들··· 비암산에는 신성한 천년수가 우뚝 서 있었다 했다. 〈선구자〉에서 노래되는 그 일송정, 그런데 왜소하게 터만 남았을 뿐이란다. ‘독립 사람들’ 모여든다고 파헤쳐진 일송정, 물도 말라버린 해란강, 지류라고 해도 두만강의 지류인데 믿을 수 없었다.

     두만강 아래쪽으로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 백두산 쪽으로 올라갈수록 중국인이 많음다. 지붕 모양만 봐도 압니다. 딱 구별이 됩니다. 사방기와가 조선족의 집이라요.

     맞다. 기와집 짓고 살면서 아들딸 많이 낳아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면 만족했던 우리 선조들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버지 덕에 기와집에서 살면서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승욱으로서는 머쓱해졌다. 어느 세월에 아들딸은···.

     차창 밖으로 인력거가 눈에 들어왔다. 대하극 《토지》에서 본 인력거를 용정 길거리에서 보게 되다니! 시간을 거스르는 실물이었다. 하루 종일 거리에 상관없이 1인당 1위안이라는 독특한 요금제라고 했다. 사람이 끄는 그것을 차마 타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머니는 인력거를 봤다는 말만 해드려도 신기해하실 것이었다. 사진을 찍어다 드려야지, 옛것들을 좋아하시니까. 하지만 동작이 느렸다. 카메라를 꺼내기 전에 인력거는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윤동주의 모교 대성중학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면서도 승욱은 또 다른 관광차들을 경계했다. 그 팀도 어제 백두산 일정이었던 코스였으니까 오늘은 용정일 수도 있었다. 다행히 사방에 다른 관광차량은 없었다. 휴우! 어쩌면 거꾸로 가는 일정도 있을 것이었다. 먼저 용정, 다음날 백두산 그렇게. 그러다가 백두산에서 우연히 딱!

     예상했던 대로 일행들은 맨 먼저 윤동주의 「서시」를 새긴 시비로 안내되었다. ‘사립대성중학교’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구관 건물 앞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라는 잔디의 말이 먼저 반겼다. 2층 기념전시관은 말 그대로 기념전시관이었다. 규모라 할 것 없이 초라한 편이었다. 아래층 내려가는 층계참에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책들이 있다니. 의아해하면서 둘러보다가, 앗,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보였다. 정말 있었다. 20위안짜리 소책자. 공간이 책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세라 서둘러 책을 사고는 앞선 일행들을 뒤쫓았다.

 

     다시 버스에 오르자마자 책을 펼쳤다. 어라, 파는 책이 있었어요? 옆자리 박 선생이 놀랐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2002년 흑룡강 조선민족출판사 발행이었다. 차례를 살펴보는데 「슬픈 족속」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오오라, 72쪽부터.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우고 /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우고··· 승욱이 되뇌는 사이 박 선생이 계속 책만 곁눈질했다. 일단 넘겨주었다. 슬픈 몸집을 가리우고··· 속으로 웅얼거렸다.

     박 선생은 읽으면서 말하기를 둘 다 하고 있었다. 원래 구상했던 책 제목은 『병원』이었다네, 신기하네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로 정한 것은 「서시」를 쓴 다음이었고, 것도 불발이었다니 새삼스레 애석하군요. 노샘 넋 놓고 있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 오늘 참으로 애석한 것은 윤동주 선생 묘소와 생가에를 못 가본다는 것. 승욱은 대답했다. 아니, 생각만 했었나···.

 

 

     이요, 진짜 곰들을 본다고! 떠드는 소리들에 고개를 드니, 버스는 정말 곰들의 사육지에서 멎었다. 고대 유럽에서는 경외의 대상이었다는 곰들을 현대 동양에서는 인간이 사육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무엇인가 기념품을 사라고 할 모양이었다. 사육장 앞에서 버스를 내릴 때에도 승욱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도주 중의 죄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몸통에 크게 번호를 써 붙인 버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저 버스들 중에 그쪽 일행들이 섞였을까. 그냥 버스에 남을까 하다가 차라리 모자를 깊숙이, 선글라스도 썼다. 고개를 숙인 채 승욱은 사람들 틈에 섞이는 쪽을 택했다.

     천 마리도 넘게 사육되고 있다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어가는 반달곰들을 보게 되었다. 어젯밤 죽은 송아지가 생각나서 목이 비릿해졌다. 인간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마주 바라보는 반달곰들의 흐릿한 검은 눈알은 영겁의 물, 천지의 표면과 같은 물기에 젖어있었다. 슬픔이 번져난 눈물, 울고 싶겠지. 곰들도 울 것이야. ‘질끈 동여맬 허리띠’도 없이. 승욱은 생각했다. 이들도 사람처럼 발바닥으로 걷는, 웬만한 지능의 포유동물이다, 백두산에서 뛰어놀던 유년시절에는 앞으로의 지난한 생을 예감이나 했겠는가. 서너 살인가 네댓 살이 되면 포획당해서 이 수용소로 끌려온다. 인간들에게 최고 건강식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주 1회 쓸개즙을 빼는 것은 다만 1년이랬다. 그리고는 20년 정도 자연수를 누린다고. 누린다면, 누릴 수 있다면, 왜 산으로 다시 돌려보내지 않을까. 성년의 반달곰들은, 산속의 반달곰들은 다만 위험스러운 존재일까. 지구는 반달곰들이나 송아지들이 아닌 인간들에게만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이다. 하느님은, 신은, 오직 인간들을 위해서 존재하신다. 공정한가, 그런 의문 대신에 인간들은 신의 선물에 기뻐했다. 선물을 사느라 바빴다.

 

 

     돌아오는 일정은 더욱 바빴다. 다만 돌아오는 일이었다, 다시 연길로, 다시 대련에서 일박, 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20층도 넘는 ‘완다구어지판디엔’, 대련만달국제호텔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경,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서두르지 않으려면 짐을 잘 꾸려두어야 한다. 바로 들고 나갈 수 있게. 이런, 여행가방 안에 있던 꿀병이, 어머니 드리려 샀던 꿀병이 깨져있었다. 백두산 가기 전에 들른 가게였다. 건물 주변으로는 ‘장백산정원’ 팻말이 있었고. 길가에는 봉숭아와 맨드라미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다. 아직 여름인데 고지라서 서늘했나, 코스모스도 있었다. 옛날 어릴 적의 뜰 그대로였다. 세상에나, 패랭이꽃들도···. 광식이 동생 광순의 러닝셔츠에 물든 꽃잎, 그 패랭이꽃이었다. 광순이 러닝셔츠 바람으로 오빠를 따라 승욱네 집으로 뛰어들 때였다. 가끔 그러듯이 광식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소란이 나면.

     휴우, 거기서 유리병에 들어있는 꿀을 샀구나. 그대로 버스 안에다 두었던 것을 연길 대련 사이 비행기를 탈 때 무심코 여행가방에다 옮긴 모양이었다. 어떤 바보가, 바로 승욱이 그랬다. 정신 차려, 노승욱 투틸로! 아무리 두꺼워 보여도 유리병인데, 아무리 따로 잘 포장했더라도 유리병인데, 그것을 여행가방 안에 넣어 비행기 짐칸에 싣다니. 꿀을 살 때까지는 멀쩡했던 승욱이 백두산 산정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뒤로는 아예 정신이 어딘가 밖에 있었나 보았다. 종일, 그 뒷날도 버스가 멈춰서는 곳마다에서 두리번거렸다. 겉으로는 멀쩡한 표정을 하고서는 마음의 동요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한국사람들 관광이라고 하는 것이 코스들이 정해져 있을 것이라서, 언제 어디서 그 소그룹과 다시 마주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승욱을 매 순간 옥죄고 있었다. 정면으로 맞닥뜨린다면, 그런 순간이 닥치면··· 아는 척, 모르는 척, 어떤 표정을, 무슨 말을, 상상만으로도 공포였다.

 

     연아, 대체 우리가 스친 것은 맞는 것이냐? 꿈이었을 리는 없어. 꿈이라도 그렇지, 하필 이역만리 산꼭대기에서 그것도 대낮에. 사실로는 눈을 감았다가 뜬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나를 못 본 것은 틀림없겠다. 봤는데 못 알아본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91, 92, 93, 94, 95, 96, 97, 98, 99 그러다가 새천년, 01, 02, 03, 04, 05. 새천년 아침에는 무엇이 새로워졌을까. 무엇이 결정적으로 변하였을까. 연두가 있다 없다. 그것도 맞다. 확실히 맞다. 연두는 승욱의 20세기에, 지나간 천년에 있었을 뿐이다. 바뀐 그 세월 동안, 그래 세월은 흘렀구나. 강산도 변했구나. 그런데 그 동안 나를, 형이라 부르던 나를, 생각은 한번이라도 해봤냐. 한번이라도. 아니, 미쳤구나, 너. 봤으면, 알아봤으면 어쩌려고!

 

     ···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그래, 차라리 숨죽일 시간이다. 서른 살 시인이 이런 시를 발표했었지. 서른 살에 대단해. 지금쯤 마흔은 되었겠다. 얼마나 더 많이 썼을까, 앵두가 익을 무렵, 연두가 익을 무렵. 승욱은 고개를 저었다. 정녕 미쳤나 보았다.

     깨어진 꿀병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아예 화장실로 옮겨앉아서, 난리도 아니었다. 깨진 유리병 주변의 소지품들하며 아예 트렁크 전체를 다 닦아내야했다. 낼 새벽 출발인데 어디서 어떻게 새 가방을 구한단 말인가. 빨랫감들이 된 것들은 따로, 물도 아닌 그냥 액체도 아닌 끈적끈적함의 대명사인 꿀을, 깨어진 유리 파편들을 처리해야 했다. 넋이 나갔는지 손도 손가락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몇 군데서 피가 흘렀다. 날밤을 샜다.

 

     노샘, 뭐해요! 잠을 못 잤으면 식사라도 제대로 해야지요. 이제 또 강행군인데. 박 선생은 좋은 사람이다. 걱정이 심했다. 눈을 거의 감은 채 집어 삼키기에는 너무 푸짐해서 아까운 아침 식사였다. 여느 아침 식사들에 비해도 대단했다. 한없이 길게 차려진 음식들은 접시에 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식당에서도 비행장에 내려서도 그 다른 일행들은커녕 자신의 일행들도 신경을 쓰지 못할 만큼 흔들거렸다. 비행기 안에서는 앉자마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인천 도착하면 깨워줄 것이다.

 

     검회색 하늘이 지붕처럼 내려앉는다. 세상은 온통 검다. 성긴 나무들 숲 사이로 검푸른 물기가 번져온다. 천지에서 퍼 올린 검은 물이 범람하고 있다. 앗, 호수가 바다닷! 그는 호수에 잠긴다. 바다에 잠긴다.

     순간적으로 온몸을 찌르는 전기다. 진원지는 손가락인가, 어디선가 번개 같은 전류가 흐른다. 어쩌자고 커다란 날개를 편 채 무작정 주위를 돌면서 한눈을 파는 거냐. 아직껏. 깃털 날개를 방향도 모르는 채 펄럭이기만 하면 어쩌라고. 전위차가··· 지면과 연결된 철탑이나 전봇대에 닿으면 참새든 황새든, 사람이라도 감전을 피할 수 없습니다아. 그 목소리! 연두는 감전으로 왔었다. 왔었다가 멈춘, 멀어진, 사라진···. 사라진 순간이었다. 때 아닌 시간, 느닷없는 곳의 연두는 다만 환상. 감춰진 벽을 뚫고 드러난···. 그것은 그냥 가지 않았던 순간, 침묵의 순간이어야 했다.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그는 이번에는 앞으로 고꾸라지는 느낌이 아니라 바다 위에 떠있는 느낌으로 가라앉는다. 가라앉고 있다. 소리 또한 사라진다. 검은 물은 부드럽다. 바닷물이 해안으로 밀려든다면 푸짐한 육중한 모래 언덕에 그를 내려놓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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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교수세계 통권 28호 2025년 12월, 144~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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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4. 1. 15. 18:59

 

 

 

 

 

 

 

 

 

 

 

 

 

 

 

 

 

 

 

 

 

 

 

 

 

 

 

하느님, 심판의 날에

저의 죄를 묻지 말아주소서!
- 교황 바오로 3세, 1541년 시스티나 성당

 

 

 

                                                                                   * * * 

 

투틸로 – 어머니가 그를 부르는 이름, 너는 오늘 너에게 빠진다.

 

1969년 3월 28일, 교황 바오로 6세가 한국의 김 스테파노 수환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신 바로 그날 세상에 나온 그는 바로 그것으로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유아세례 때 어머니는 그에게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받게 하고 싶어 했더란다. 아니면 이그나시오, 주임신부님을 따라서 이그나시오라고. 하지만 신부님은 생일의 성인을 따라 투틸로라 이름지어주셨다.

성 투틸로는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은 자라면서야 풀렸는데,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었단다. 지혜와 웅변술로 수도원 학교에서 학장을 역임한 시인이며, 회화, 조각, 공예를 두루 섭렵한 미술가이자 음악에도 일가견을 가졌다는 만능 예술가였단다. 베네딕토는 우리나라 가톨릭에서는 베네딕도라고 쓴다. 대구수녀원이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소속이다. 바른 표기라면 툿칭일까, 아무튼 뮌헨 근교의 지역이름이니까 의미는 없다. 어쩌다 베네딕도수녀원의 긴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일가 수녀님 때문이다. 평생을 미국 중부 어디 오마하의 수녀원에 있는 그 수녀님은 일가이니까 한국인인데, 법적으로는 미국인이겠지만, 한국에 피정을 오면 매번 대구를 방문한다. 같은 베네딕도수녀회라서 그런다 했다. 수녀님은 그곳을 다녀오면 꼭 들려주는 말이 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요한1서 어쩌고 한다. 그의 특기는 ‘예’도 아닌 침묵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영원히, 어디에 남아, 뭣 하러?

 

다른 이야기로 갈 것은 없고, 그 투틸로 수도승 같은 만능 예술인의 이름을 받은 기분은 희망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유전이 아닌 만큼 불행하게도 그가 예술적 감각과 관련해서 유전자를 갖지 못한 것이 분명해졌다. 웅변, 글쓰기, 음악, 미술 어느 것에서도 소질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겁이 많은 사내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머나 먼 성 투틸로 대신에 그는 그에게 투틸로라는 이름을 주신 이그나시오 신부님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신부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로는 큰 도시의 성당으로 나가셨다고 했다. 자라면서 괜스레 궁금해진 그는 이그나시오 신부님을 찾아보았고, 로마 유학을 떠나셨고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수학하셨다는 것까지, 그리고 돌아오셔서 곧 세상을 떠나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모른 체 했다. 침묵은 말보다 편한 도구였다. 다만 마음속에 만일 로마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레고리오 대학과 성 이그나시오 디 로욜라 성당에는 꼭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170㎡가 넘는다는 성당의 천장화 <성 이그나시오의 영광>을 꼭 보고 싶었다. 그 성당을 완공할 즈음 재정난으로 돔을 만들 수 없었을 때 – 돔이 없는 성당이라니! - 포초라는 화가가 실제로는 평평한 천장에 돔을 그려넣었다는 것 아닌가. 착시현상을 이용해서 돔과 하늘을 드높고 드높게, 그러니까 다만 시각적으로 공간을 무한 확장했단다. 하늘에서 떨어져내릴 것 같은 사람들의 형상들도 함께 그려넣었다니. 두 눈으로 보면서 눈속임에 빠져보고 싶다. 물론 로마에 갈 수 있다면 그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놓칠 수야 없겠지.

천장화 – 그런 것들을 새들이 그린다면 또 몰라, 어떻게 사람이 그릴 수 있었을까. 4년을 천장화에 매달린 미켈란젤로, 이런 것만으로도 옛날 사람들은 그에게서 경이를 자아낸다. <최후의 심판>은 어떻고. 167.14㎡의 벽면에 391명의 온갖 모습을 7,8년의 세월에 걸쳐 그렸다니. 당시 교황님의 김탄사가 의아하면서도 이해가 된다.

하긴 모든 예술이 그렇다. 로댕은 <지옥의 문>을 석고형으로 구체화하는 데에 꼬박 37년을 보냈다잖은가. 서울에 있는 No7/8 청동작품 제작만도 2년 반이나 걸렸다는데, 대중이 관람할 수가 없다니 애석하다. 작품을 전시하던 로댕갤러리는 폐업을 했고, 해서 지금은 다른 미술관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니, 혼도 따라서 수장고로 들어가 잠을 자고 있을까. 그의 내면은 멀리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채워졌다.

 

왜 현대에는 지독한 완벽한 일꾼이 없을까. 우리는 현대인은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그는 단정했다. 어느 부분 발전을 말하지만 능력 면에서 퇴보가 더 드러난다. 혹시나 기록되지 않은 태고의 역사 속에서는 인간에게 날개도 있었을까. 그 감각으로 천장화를 그릴 수 있었을까. 창세기의 인물들처럼 몇 백 년을 살 수 있었을까. 최초의 인간 아담이 930세를 살았다지만, 그 기록을 노아가 950세로 므두셀라가 969세로 깬다. 현대인에게 평생의 작업이 무슨 의미일까.

몸은 그렇다 치고 머릿속은 어떻게 그렇게 심오했을까.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의 이름을 그는 수학 시간에 알게 되었다. ‘두 직선이 만나면 마주보는 두 각은 같은 각을 이룬다.’ 라거나 ‘임의의 원은 지름에 의해서 이등분 된다.’ 이런 간단해 보이지만 완벽한 정리를 할 수 있었다니, 공책에 그것들을 눌러 쓰면서 그는 어지러움을 느낄만큼 감탄했다. 현대의 심오한 지식이라는 것들은 파편적일 뿐, 전체적으로는 위축된 인간들. 그는 자랄수록 배울수록 과거라는 시공간이 무한 매력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역사를 공부하자, 그랬다.

 

 

투틸로, 학교 이름으로는 노승욱, 그가 택한 사학자의 길은 수월한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전 대학강사에게 미래는커녕 현재도 없었다, 없다. 남사스럽다, 라고 부끄러워할밖에. 어머니의 속뜻대로 그는 신학대학으로 진학을 했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종신서원까지도. 극단적으로는 카르투시오회의 모토처럼 오직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길도 있었겠다. 천 년 전에 주교직도 마다하고 엄격한 은수 수도생활을 시작한 성 브루노의 후예들, 봉쇄수도원은 영화 〈위대한 침묵〉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들 봉쇄수사의 삶은 기본적으로 은둔 지향, 그렇다고 현대에 와서는 완전한 은수 개념은 불가능하고 반쯤 숨어서 생활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세상에는 스물도 넘지만 우리나라에는 두 곳, 20년 전쯤 세워진 상주시에 있는 남자 수도원에는 한국인 봉쇄수사 두 분과 외국인 몇 분이 계신다. 평수 사님들은 몇 분 더 계시고. 아, 그곳에 관한 한국영화도 있다. 그리고 수녀회는 보은에 있다던가. 믿거나 말거나 거친 빵과 밥 중 선택해서 먹는 것이 전부라니, 그로서는 그런 절제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살아있는 생물체로서 인간의 기본 욕구, 그러니까 생리적 욕구인 의식주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안전에 대한, 소속감에 대한, 설마 존중에 대한, 자아실현에 대한 고차원적 욕구들이 채워진들 진정일까. 영화를 본 다른 누구는 봉쇄수사들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미래를 버렸으므로 이미 천국에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로서는 선뜻 동의는 못했다. 그러므로 너는 속세가 맞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미 천국인 그곳에서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마저 초월할 것이다. 봉쇄수도원이 아니더라도 특정 종교에서는 죽음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에 수혈을 거부하는 사례가, 그래서 기쁨으로 죽음을 맞는 사례가 있다. 〈위대한 침묵〉에서의 드문 인터뷰도 생각났다. 한 장님수사가 말하기를, 하느님께서 자신을 장님으로 만드신 것에 감사한다고, 그것이 영혼에 더 이로울 것이기 때문이랬다. 이 무한 신앙도 한 인간의 것이다. 다른 인간은 그런 상태를 도취라고, 마취라고, 마약이라고 할 게다. 묵상과 기도와 독서와 노동이 전부인 삶을, 그 자발적 선택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만, 20년에 걸쳐 인내하면서 영화를 찍은 감독 또한 수사 못지않다. 옛날만은 못하지만 세상은 대단한 사람들 천지다.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존재들 또한 현실이건만. 그러니까 살아서 벌써 천국과 지옥이 있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 속을 끓이면서 그는 답을 몰랐다. 아스팔트에 둘러싸인 방, 열린 또는 닫힌 창문 하나, 이 침묵은 봉쇄수도원의 그것과 비슷하려나. 그의 그것은 헌신도 외경도 없이, 부끄러움만 더한, 그래서 더욱 소외된 침묵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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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  『작가교수세계』, 한국작가교수회, 474~4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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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3. 1. 3. 11:48

 

 

     페르소나, 두 번째의 나에 대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사과나무를 심던 날이었다. 시작은 단순 명쾌한 멋진 날이었다.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린애 같은 결심이 실제 이루어지다니. 예상보다 잘된 일이었다. 예상보다? 그것은 내 생각이 늘 관철되지는 못하는 일상에 비추어 나오는 말이다.

     사과나무 묘목은 가까이에도 있었다. 옥천까지 가자고 했으면 남편이 나섰을까. 모를 일이다. 200킬로가 안 된다지만 두 시간은 걸릴 것이고, 왕복이면 기름이다 통행료다 해서 10만 원은 족히 든다. 사과나무 묘목 값과 점심을 더하면 큰 지출이 될 터다. 자랄지 말지도 모를 사과나무 묘목을 사러 가자고? 왜, 뭣 하러? 그런 반응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를 의심에 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나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남편은 웬일로 넉넉했다. 막상 다섯 그루씩이나 어린 사과나무 묘목을 사들고 오는 기쁨은 컸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옛날의 이 격언을 말 그대로 실행하다니. 세상에 얼마나 좋은 말씀들이 많은가. 하지만 누가 그런 격언들을 실행하는가 말이다. 모범생도 아닌 평범한 내가.

 

     내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 먹는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떨린다. 유기농 어쩌고 뽐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먹을 것을 가지고 유난 떠는 것을 남편은 제일 싫어한다.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 ‘득시글거린다’는 이유에서다. 아니, 어린 시절의 고픔을 몸서리치는 것이라 짐작해 본다. 형제자매가 많았던 시절, 넉넉지 못했던 살림에 대한 절망의 말을 내비치기도 했다. 자라서 독립을 해 나가서는 다들 밥걱정은 안 하고 살게 된 것, 둘씩이나 공무원이 된 것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오죽하면 딸애에게도 공무원만을 강조했을까. 딸애를 예뻐하다가도 그 일로 해서 찡그린다. 지금도, 딸애가 결혼을 했고 애 엄마가 된 후에도 가끔씩 투덜거린다. 둘 다 합격했음 좀 좋아…….

     뭐해? 사과나무 안 고를 거요? 남편이 웬일로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우리가, 남편이 고른 것은 부사 품종이었다. 3년생 분달이로 다섯 그루, 25,000원씩인데 120,000원에 샀다. 분털이는 값은 좋아도 10개씩 묶음으로 사야하고, 무엇보다 잘 심을 수 있을지 걱정이기도 했다. 분달이 묘목에는 흙이 두툼히 묶여있었지만, 그래도 비닐로 잘 덮어서 뒷자리에 싣고 출발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밭으로 향하던 나는 언덕배기 아래쪽으로 저만큼 미리 드문드문 파 둔 구덩이들에 놀랐다. 남편은 일을 너무 완벽하게 해서 질리게 한다. 스스로 완벽함을 알아서, 농막의 일에 관한 일만이 아니라 어떤 일에서건 어떤 의견도 듣지 않는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배추 농사! 하지만 그것은 약과다. 언제 어떻게 집을 사는가, 심지어는 고향으로 내려오는 것도 난데없는 결정이었다. 그의 고향은 나에게는 아스라한 시골이었고, 결국 고향 가까운 이곳으로 왔다. 너무나도 갑자기.

     남편은 묘목들을 내려서 펌프가 있는 쪽으로 가져가더니 커다란 물통에 나누어 담고 있었다. 사과나무는 햇빛과 양분보다도 유독 물을 좋아한단다. 그러고서 창고로 향하더니 농약 포대를 가지고 나왔다. 고추 탄저병 때 썼던 톱신엠인가 그런 살균제다. 두 시간 정도 소독 겸 물통에 그대로 둘 것이니 점심을 먼저 먹자며, 아뿔싸, 집안으로 향했다. 쉬기도 하고!

     뭐야, 나무 심고 나서 밥 먹으러 가는 것 아니었어? 냉장고에 뭐가 있을까, 아찔했다. 어쨌거나 바깥 샤워장에서 손을 씻고 들어갔더니, 남편은 놀랍게도 삼겹살을 꺼내고 있었다. 언제 사다가 넣어 두었을까. 혼자서도 너끈히 살 사람이다. 익어가는 삼겹살에 봄이 되면서 시들해졌던 김장김치가 그리 맛있을 줄이야. 순쌀밥 햇반도 스르르 녹았다.

     배가 불러서 커피 잔을 들고 느릿느릿 밭으로 나갔다. 미리 파놓은 구덩이는 양동이를 묻었다가 파낸 만큼의 깊이였다. 깊이로도 살짝 더, 넓이로도 더 넓게 파더니, 상토를 서너 삽 부어넣었다. 마사토 같은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구나 싶었다. 막상 묘목을 세우는 것은 절대로 혼자서는 안 되는 작업이었다. 남편이 삽질을 더 하려고 한 손을 놓으면 중심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지대를 세워둘 걸! 어차피 박아야지, 뭐. 남편은 중얼거렸고, 내가 묘목을 힘껏 잡고 있는 동안 뿌리와 흙을 뭉쳐 둔 끈을 조심스레 풀었다. 뭉툭한 접목 부분을 조심조심 땅 위로 한 뼘 길이 되게 올려놓고는 나머지 흙을 덮었다.

     어라, 흉측한 접목 부분을 왜 완전히 묻지 않을까. 멍청하긴! 거기까지 다 묻으려면 처음부터 통째로 심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렇게 뿌리와 발목만 남은 나무 동강, 지금도 나무라고 해야 할까, 그 몸통은 어디로 갔을까.

     과실수의 뿌리와 몸통을 잇는 데 성공한 인간들이 머리 이식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일까. 머리카락이 아닌 머리통 이식이라는 생체이식 프로젝트는 끔찍한 뉴스였는데, 다행히도, 다행인가, 아무튼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 머리 따로 몸통 따로면, 대체 누구란 말일까. 심겨진 뿌리는 그냥 대목이란 이름으로 남고, 그것은 이름도 아니다. 몸통 부분 접수가 부사니까, 내 사과나무는 후지도 홍로도 아닌 부사 품종이다. 뿌리는 살아서 무엇을 하는가. 살아있기는 하지만.

     어느새 남편은 물을 가지러 갔다. 길게 길게 호스째 가져온 물줄기, 호스를 아예 흙 속에 묻다시피 하고 물을 틀었다. 아주 천천히 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리면서 다른 나무들로 옮겨 다니는 동안 물은 정말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 틈에 양동이를 들고 저만치 갔던 남편이 흙을 수북이 퍼 담아 온다. 정작 땅 위로 북돋는 작업도 한참 걸렸다. 두툼히 올라온 흙을 신호로 그제야 마무리다.

     언제부터 사과가 열릴까. 이삼 년 안에 죽는 경우가 많다는 글들도 있었다. 뿌리가 잘 내린 뒤에, 잘린 가지에서 순이 나올 것이고, 어린 나뭇가지들을 잘라주어야 한단다. 순이 정말로 자라나올까. 수형을 잡아줘야 한다는 말은 지금은 사치다. 일단 자라기만 해라! 이삼 년을 기다려 어느 해 이른 봄이 되면, 그러니까 날이 풀리자마자 적과를 해야 한단다. 꽃눈적과도 있고 꽃적과도 있다니, 외국어 같은 말이다. 꽃눈이 가지에 생길 때부터, 아니면 꽃눈에서 생겨나는 꽃도 따버린단다. 애당초 버림받는 꽃눈들이 애석하다. 하지만 인간들도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하는데, 뭘. 사람들이 참 비정한 동물이다.

 

 

     정말로 내가 사과나무를 심다니, 행복감을 느꼈다. 사실 남편은 돈을 쓰는 일에는 많이 민감하다. 근검절약도 좋은 말이지만, 빨래 줄이자고 하얀 옷도 입지 말자던 사람이다. 옛날 같으면 자린고비라 했을 것이다. 같이 살기는 어려운 사람 같다고, 친한 사람들은 아예 그렇게 말한다. 요구하는 것, 기대하는 것이 많고 높기 때문이다. 내가 거기에 충족될 리도 없지만, 나는 그냥 산다. 또 주변 사람들이 나더러 어떻게 참고 사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좋아서, 좋아하니까 산다고 말한다. 좋아한다, 뭘까. 정말 잘 모르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그에게로 이끌었을까. 한참을 멀리 온 이제 와서는 살짝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투잡이 아니라 쓰리잡을 마다 않던 젊은 남자에 대한 신뢰감, 그것은 변함이 없다. 나는 나를 지켜줄 수 있을 누군가를 원했던 것 같다. 아버지의 빈 공간 때문이었을까. 집이, 어머니만의 집이 믿음직스럽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청원군 남일면 은행리, 시골 태생이지만,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고등학교까지는 당연히 다녔으니까.

     남편 저이는 왜 내게로 왔을까. 여리여리한 여자애들에게 모든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그때, 새로 온 직원, 임상병리사 겸 원무과 직원이었던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스카라 가루가 날리는 속눈썹에 새빨간 립스틱, 어리광 목소리만으로도 접수부 김양은 사람들을 홀렸다. 삐삐 마른 손가락들에 그 요란한 손톱이라니! 쌀이나 씻을 수 있으려나, 그것은 여자들의 생각이었다. 남자들에게는 깨질 새라 살포시 잡아주고 싶은 손이었겠다. 높다란 뾰쪽 슬리퍼는 어쩌고! 매 순간 넘어질까 불안하게 만들었고, 보듬어주고픈 남자들로 줄을 세웠다. 나이는 내가 더 어렸지만 덩치 큰 여자, 지금 생각하면 나는 매력이라고는 1도 없었다. 그냥 매사에 열심히, 되려던 간호사가 못 되었지만 병원은 내 직장이니까 즐겁게 일하려고 했다. 이상한 억지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이래, 집 떠난 외로움도 있었겠다.

     아무튼 놀랍게도 우리는 어느덧 함께 어울렸고, 함께 어울리는 우리를 어머니는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서둘러 결혼 날을 받으셨다. 작은언니처럼 어느 순간 폭탄선언으로 결혼에서 도망칠까 걱정하셨을 지도 모른다. 수녀님 작은언니는 남들 눈에는 자랑이겠지만, 어머니 맘속으로는 아픈 손가락이었겠다. 딸의 성스러운 삶을 이해하기에는 어머니의 삶은 너무 작았다.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그중에서도 순 산골 석달마을에서 태어난 여자애, 해방 몇 년 어느 날, 스무 여 가구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곳의 비극, 그 끔찍했던 상실감을 안고 엄마와 평지로 평지로 도망치듯 멀리멀리 떠나와서 정착한 여자애 – 울 어머니의 삶은 단순 소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무탈하게 자라서 어른 되어 시집가고, 부부가 함께 애들 낳아서 튼실하게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고, 떡두꺼비 같은 손주들을 안아 보고 죽는 것, 그것이면 될 일이었다. 아부지도 안 계시넌데 느들 식이라도 빨리 혀야……. 작은언니의 결혼 불발이 아버지가 안 계신 탓이었다고 생각하셨을까? 어머니의 걱정 때문에 우리의 결혼은 빨랐다. 좋은 일이었다.

 

     사과나무를 심다가 웬 결혼 이야기?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라던가. 나무를 심으면서 열매가 벌써 눈에 보였나 보다. 언젠가 열릴 탐스런 사과에도 벌레는 있을 것 아닌가. 우리의 결혼생활은 크게는 벌레에 먹히지 않고 잘 자란 사과다. 살짝 색 바랜 부분이나 반점들은 있겠지만 온전한 사과다, 맞다. 한 명이라서 조금은 아쉽지만 자식도 낳았고, 딸애가 자라서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딸의 딸, 외손녀다. 태명을 동백이라 하더니만 순백이라니. 순백이 할머니, 민지 엄마다. 만족스러운 일들이다. 우리가 옮겨 심은 이 사과나무들도 벌레를 아예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섯 그루 달랑, 그것도 아마추어 밭에서 자라다 보면, 탐스런 사과가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 벌레가 사과를 온통 다 먹는 일만 없으면 성공이겠지. 매사에 내가 너무 낙관적일까.

 

      자 자, 이만하면 되었겄제? 마눌님 비위 맞추기 힘드네. 사과나무는 당신 나무니까 알아서 잘 돌봐! 지지대까진 내가 세워줄 테니까. 아, 다른 작목들도 잘 좀 봐주고. 저 많은 작약 꽃들, 곧 피어날 거구만.

여보 당신은! 작약만인가! 내가 뭐 다 사랑하잖아. 배추만 빼고!

이 마지막 배추 말은 속으로만 했다. 배추는 정말 싫다. 김장을 많이 해야 하니까. 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다. 작약은 꽃만 예쁜 것이 아니라 그 뿌리를 말리면 얼마나 좋은지. 마를 때의 향기며, 차를 끓일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여름에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면 일품이다. 민지가 결혼 후 곧바로 아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에도 작약뿌리 차를 진하게 마시게 했다. 위에도 좋지만 특히 여성 건강에 좋다니까. 내가 따뜻한 점심을 함께 먹는 오후 수급자 어르신 집에도 가끔 이것저것 갖다 드린다. 작약뿌리는 물론, 뇌 건강에 좋은 초석잠은 처음 본다면서 엄청 좋아하셨다. 부지런한 남편 덕에 인기가 올라간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앗, 말하려다보니 낯간지러워서 갑자기 목에 뭔가 걸린다.

 

 

     때마침 핸폰이 울었다. 왜 방정맞게 우는 소리로 들었을까. 폰에서는 정말로 우는 소리가 났다. 젓가락 언니였다.

     어쯔끄나. 어째야 쓰겄냐. 야들 코로나 포도시 지나가고 낭께 참말로 더 난리다. 전에 말했잖여, 사우가 신장이식할라 근다고. 둘이 앞서고 뒤서고 서울 올라가부렀다. 첨에는 즈그 동생이 딱 맞응께 띠어준다등만, 멋헌다고 각시헌티.

     언니, 어쩌나, 나 지금 밖에요, 신랑이랑. 좀 있다가 내가 전화할게, 네?

     우선 피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 40살 된 애들이 신장 이식이란다. 일단 투석으로 좀 버텨 볼 것이지. 나중에는 어쩌려고. 아니, 무슨 나중 생각. 젓가락 언니는 지금 당장 딸애가 문제인 것을. 생체 신이식이라니!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의학적으로는 신장 하나로 살아가는 일이 문제가 없다지만, 만일…….

 

 

     사람은 어쩌면 직업적으로 병원 근무를 하지 않는 것이 더 행복하리라. 초짜 간호조무사 시절은 아득히 깊게 남아있다. 조무래기 월급쟁이로 반지하를 탈출하는 꿈을 키우는 일상은 힘들어도 뿌듯했지만, 병원의 인상은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방망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금에는 주인이 따로 있었고.

     어떤 기억들은 어떤 뜻에서는 지우고 싶을 지경이었다. 90년대 초 산부인과는 탄생의 축복을 앞세운 한편, 뒤로는 지옥의 문턱이기도 했다. 그런 일들로 병원들은 건물을 높일 수 있었겠지만, 그 와중에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간호조무사 학원에서는 초음파 감별법이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배웠는데, 병원 현장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우리 병원장이 장로님 사위이고, 직원들에게 교회 다닐 것을 권장하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태아의 생명권이냐, 낙태를 희망하는 여성의 권리냐. 창과 방패의 싸움은 늘 한쪽으로 기울었다. 성 감별을 확인하고 나서 낙태를 원하면 상황은 더 끔찍했다. 거기 깊은 안에다 미리 작은 막대를 둘씩 셋씩 박아두고 억지로 늘려서 문이 열리기를 며칠씩! 거의 완력으로 태아를 꺼냈다. 남안교? 우야노! 무조건 장손을 원하는 풍토에 죄의식 같은 단어는 설 자리가 없었다. 지금에 비해 의료 상식이 낮아서도 그랬겠지만, 태아도 생명체라는 의식이 아예 없었다. 수술대와 여러 도구들 사이에서 태아는 생명줄에서 끊겨 나왔다. 심하면 7개월이 넘은 경우도 있었다. 그런 때면 적출물들을 함께 받아내는 검은 비닐봉투 안에서 아기가 울면 어쩌나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물고 귀를 닫았다. 다행히 울음소리는 없었다. 울지 않았으므로 생명이 아니었고, 부분부분 긁어낸 조각조각들과 마찬가지로 비닐봉지째로 냉동실에 넣어지면, 나중에 적출물 폐기 때 함께 버려졌다. 하루에도 몇 개씩 늘어나는 검은 봉지들은 그 숫자가 열 개가 넘을 때도 있었다. 이제 농막 주인의 아내가 되어 흙을 파다가 호미에 끊긴 지렁이나 벌레들에도 놀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혹독한 경험으로 훈련이 된 탓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토악질이 나오려 할 때도 있다. 그때 참 소중하고 귀했던 돈을 벌려고 참았던 어지럼증이 오랜 세월 동안 어느 구석엔가 똬리를 틀고 있었나 싶었다.

     돌이켜보면 벌써 그 무렵에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에 눌리기도 했다. 성남의 끝자락, 그래도 수도권의 주공아파트에 입주한 뒤였다. 반지하를 떠나 온 우리에게 42㎡ 공간은 넓기만 했고, 낙원이었다. 24시간 놀이방에 보내면서 키웠지만 민지가 어느 정도 자라는 동안 동생을 더 가져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잘 키우려면 하나만! 완강한 남편을 졸라서 잠시 뜸을 들였는데, 일 년이 다 되어가도 소식이 없었다. 그때 나는 그 무시무시한 살생을 거들었던 죄로 불임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했다. 병원에서도 죄를 안 짓는 임상병리에 사무를 겸했던 남편이 부러웠다. 남편은 그 사이 공무원으로 계급을 바꾼 뒤였지만 말이다. 계급? 맞다. 계급이다. 남편은 최소한 개인에게, 돈 많은 개인에게 종속될 필요는 없었다. 병원들은 주인 마음 대로였다. 그때 우리 병원은 원장이 장로님 사위라서 일요일을 다 찾아서 쉬었지만, 일요일도 격주만 휴무인 곳도 있었다. 나는 우리 민지가 자라서 절대로 간호조무사 그런 것은 되지 말았으면 했다. 간호사도, 의사도 말고! 뭔가 생명과 직접은 관계없는 고상한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랐다.

 

     어쨌거나 그 병원이 더 큰 병원과 합치려고 폐원하자 나는 직장을 옮겼고, 교회에는 출입을 끊었다. 너무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었겠지만, 우리에게 십일조는 거의 상처였다. 물론 독실한 신앙을 갖지 못한 것이 십일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선 게을렀다. 나중에 작은언니가 수녀님이 된 후에는 가족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가 되는 길을 걸었지만, 게으른 것은 여전하다. 주중에 죽어라 일을 하는 우리들이 주말에 따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형체가 없으시다면 어디에서 어느 시간에건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느님 아버지, 오늘 저희가 심은 이 사과나무들 푸르게 자라도록 밤낮으로 함께 지켜주시고, 바람에 비를 내리시어 뿌리에 물을 주소서.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다가 눈이 떠졌는지 내 발이 보였다. 운동화 속에 들어있지만 예쁜 발, 내 생각에 내 발은 예쁘다. 안 예쁜 얼굴에 무거운 몸통을 힘들게 싣고 다니는 발. 그래도 여기 밭두렁까지 온 것은 발이 아니라, 애초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생각이 한 일이었다. 내 머리로 생각한……. 순간 내 생각 속에는 젓가락 언니가 있었다. 전화를…….

 

     여보, 뭐해요. 오늘 아주 사과나무에 빠졌네.

     여전히 엉거주춤 앉아있는 내게 남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무슨 이 생각 저 생각! 말만 하면 내가 다 들어주잖아. 사람이 생각이 많음 못 써요. 할 일이 태산 같은데 무슨 생각! 생각을 하지 말란다. 남편은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사과나무를 심었으면 되었지, 사과나무 생각을 하면 뭐하느냐! 늘 그런 이유였다.

 

 

     생각이 많은 게 사람이죠. 어차피 불안한 거지만.

     그래, 생각이 많은 게 사람이야. 생각을 편드는 사람도 있었다. 언제가 오후 수급자 어르신네 보호자 할머니의 말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눈을 껌뻑거리지도 않고 앞만 보고 말했었다. 말을 하지 않거나 말을 많이 하거나,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생각을 한다고 한다고 해 봐야 다람쥐 쳇바퀴고. 지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고방식, 인식의 문제거든요. 어차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니.

     생각을 하란 말이야, 하지 말란 말이야. 어렵다. 가끔, 아니 늘 어렵게 말했다.

마음에 빗장을 걸어놓았으니, 생각이라고 해 봐야 아집? 내 틀 안에 갇히는 거 당연하죠. 틀 안에서 생각하면 뭣하나요. 어차피 고집이 발목을 잡는 것이고, 결국엔 …….

     그럼 남편은 고집쟁이일까? 주장이 늘 너무도 확실하다. 어렵게 생각 말어, 내가 다 준비하고 분석하고 결론 낸 것이야, 라는 투로 나에게 말해놓고는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렇게 딴 생각에 빠져도 이 할머니와의 대화는 상관없다. 나를 내버려 두고 혼잣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이 아예 둘 또는 셋인 사람도 있죠.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페르소나?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원래의 인격으로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거죠.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니까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를 만들어 그 얼굴로 사는 것이죠. 사람들 사이에서 필요한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쓴 가면 같은 것, 변신한 또 다른 인격이죠. 집에서도, 그래요, 남편 역할 아내 역할도 페르소나로 버티는 거죠. 다만 페르소나가 원래의 인격에서 멀어지면……

     멀어지면……, 그 뒷말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너무 멀어지면 분열이랄까, 무너지는 거죠. 옛날에야 무자기(無自欺)를 삶의 철학으로도 여겼다니까 편했겠죠.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 홀로 있는 곳에서 자신을 속이지 마라. 불기자심(不欺自心),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마라! 같은 말이죠.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속이지 말고 살아라! 실은 너무도 어려운 주문이죠. 지금 우리를 봐요! 도처에서 요구하는 인격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필요하고, 상황 따라 얼굴들마다 그것들에 맞는 행동을 매번 생각해 내야하니까 생각도 힘들어요. 어떤 내가 나인가, 그 나에 맞추어서 생각을 지어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꾹꾹 참으면서 내보낸 얼굴이 가면으로 굳어지고 말테니. 이 가면, 가짜 자아가 인격으로 굳어져…….

     무자기? 자기가 없어? 그 대목에서 아리송했지만 그냥 듣고 있었다. 듣다 보니까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랬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속이고 시시때때로 다른 얼굴들을 만들어 내느라 생각 자체가 힘들어 진다고. 마치 거짓말하기가 힘들다는 말로도 들렸다. 아니, 쉽다는 말인가. 내가 제대로 알아들었나 헛갈렸다.

 

     인격에 거짓 꾸밈이 들어 있을 밖에. 마음을 열고 햇빛을 받아들여야 해. 너 자신을 폐쇄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필요하다면 거절도 하고. 아니,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출발이지. 마음에 거부감 있는 채로 무언가를 받아들여서는 안 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 듣고, 다 무의미하지. 세상이 너 아닌 다른 너를 칭찬하면 뭐해. 네가 너를 칭찬 할 수 있어야지. 못났으면 못난 대로 너는 너다. 못난 너를 그대로 인정해 다독여줘. 안 되는 것을 세상을 향하여 얼굴 바꿔가면서 가면을 쓰고서 애쓸 필요는 없는 거다.

     아니, 이 대목에서는 말투까지 바뀌니까 살짝 무서웠다. 그때의 장면, 그때의 생각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때의 의심까지 함께. 남의 말처럼 저렇게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할머니는 정체가 뭘까 하는 의심 말이다. 저 아리송한 혼잣말을 왜 할까. 단 하나의 얼굴로 살겠다는 다짐인가, 그것이 어렵다는 말일까. 남편에게 올인하는 모습은 마치 사람이 아닌 기계인데, 원래의 하나의 인격일까.

     맨날 새 밥에 새 반찬 만들고, 시간도 식재료도 엄청 드시겠어요, 내가 말하면, 환자잖아요, 또 둘이니까 가성비 괜찮아요, 라고 한다. 주간보호를 보내면 보호자는 좀 쉴 수 있어요, 그래도 고개를 흔든다. 청력장애라 단체생활 하루도 못해요, 그뿐이다. 환자를 혼자 두면 안 됩니다, 신경과 의사가 그렇게 말했어요. 그랬다고 24시간을 지킨다. 외출은 내가 있는 동안에만 한다. 사는 일이 숙제인가, 단순한 초등학생들이 숙제니까 숙제하듯이.

 

     한번은 내가 어르신한테 물었다. 할머니가 병원에 약 처방전 받으러 갔을 때였다.

     사모님은 젊어서 뭘 하셨나요? 혹시 한문 선생님?

     그 사람은 하기 싫음 안 해요. 사표 냈어요. 공부도 사표 냈지.

     공부를 어떻게 사표 낼까 의아해 하는데, 어르신이 계속했다.

논문 막바지에 지도교수 면전에다 뭘 다 던져버리고 나왔다고들 하더라. 본인은 암 말 안했어. 옆에 사람들이 술렁댔지. 에피소드로 넘기고 계속할 줄 알았었는데. 저 사람은 싫으면 안 해요, 암 것도 못 해. 결혼도 안 할걸, 아무 때고.

     말이 참 애매했다. 결혼을 안 하다니, 무슨 말일까. 아하, 싫으면 결혼생활을 그만 둘 것이라는 말인가 보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아내 편에서 싫어하지 않아서라고 믿는, 후훗, 근자감인가. 그런데 무엇이든 싫으면 안 하는 그것이 가능할까. 학교 사표야 그렇다 치고, 다 쓴 논문을 포기하고 망쳤다니. 믿어지지 않지만 믿는다. 헛소리를 하실 어르신이 아니니까. 어쨌거나 그 이후로 나는 사람들에게 인격이 몇 개씩일까 하는 의심을 갖는 버릇이 생겼다.

 

 

     맞다, 젓가락 언니네 딸, 남편에게 신장을 주기로 한 40살 여자는 오직 진심이었을까. 거절을 안했을까, 못했을까. 아직 어린 아이들의 엄마니까 살아야할 의무. 만에 하나 죽어서 없는 엄마는 엄마도 아닐 것. 신장이식 가능성일랑 모른 척하고서 투석환자의 아내로 살아갈 얼굴. 남편 얼굴을 계속 보려면 신장을 떼어주고서야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얼굴. 장기를 사랑과 바꾸려는 얼굴. 얼굴들.

     남편이라면,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남편에게 신장을 떼어줄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남편이라면 내게? 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도록 A형과 B형으로 만나게 하셨도다! 인생에 가정은 없다! 가정이라면, 남편은 나에게……아니, 가정을 해서 괴로울 필요도, 가정을 해서 행복을 과장할 필요도 없다.

 

     남편이 부르건 말건 핸드폰을 꺼내들고 일어났다. 위로가 될지 말지, 전화는 해야 될 것 같았다.

     언니, 나예요, 3층. 아까 밭에서 뭘 하고 있어서. 언니, 어떻게 해요. 그런 결정은 본인에게 맡길 밖에요.

     아니, 긍께, 첨에 지가 꼭 띠준다던 친동생도 물러나 부렀는디. 그 집 아덜은 더 어링께 쉽잖겄제. 허기사 우선 투석함서 살믄 됭께, 쌔고 쌨잖여. 그람 될 일을 기연치 가시나가 나서등마는. 초등학생 중학생 놔두고 엄마가 되갖고, 그라다 지가 덜컥 죽기라도 허먼 어짤라고. 얼굴 수술 하다가 죽기도 허는디, 세상에나 쌍까풀 허다가도 갔잖여.

     무슨 소리! 사실 신장 이식쯤은 옛날 맹장수술 같은 정도래요. 요즘에는 일 년이면 2,000건도 넘게 하는 수술이래요. 이식을 하면 받은 사람도 80, 90퍼센트는 다 건강하게 살고……

     뭔 소용!

준 사람도 신장 둘 다 갖고 사는 사람들이랑 비교해서 건강에 별반 차이 없대요. 사랑에 넘치는 정말 용감한 사람들인데 무슨 일 있을라구요.

     사우 고놈이사 지가 아파서 긍께 어쪄! 해필 AB형이여 갖고, 누구 것이등가 다 맞다고 띠어간당께 도둑놈 따로 없제. 기연치 이식을 한다고만 항께, 생때같은 내 자석이 먼 죄여!

     언니, 진짜로 둘 중에서 더 튼튼한 신장을 남겨 둔다니까요. 아마 복강경으로 할 거예요. 웬만한 수술은 배에 칼 안 댄다니까요. 일주일 안에 퇴원해요. 딸애가 원래 튼튼하다며, 이번에 온갖 정밀검사 다 했을 거고, 완전 건강하니까 결정 났을 거고, 맘 편하게 더 행복하게 살 거예요. 병원에서 일러준 대로 조심할 것 있음 조심하면 되죠. 아무 일 없어요.

     그래도…….

     언니, 내가 병원 근무 오래 해서 좀 알잖아요. 정말 우리나라 의료실력 대단해. 미국에서도 신장이식 하러 온다구요. 나 아는 사람 친척 언니, 벌써 몇 년 전인데 거꾸로 형부가 언니한테 준 거래요. 미국에선 형부 나이 많다고 수술 못 한댔는데, 서울 나와서 잘 하고 갔대요. 그 형부는 세스나기라던가 뭐라던가 몇 억짜리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완전 멋쟁이라는데, 수술 후에도 조종이고 뭐고 끄떡도 없대요.

     그래도…….

뭐야, 언니. 왜 그래. 신장 하나로 살아도 비행기 조종도 한다니까요. 언니가 마음을 다잡아야지. 서울 병원서야 빨리 퇴원시킬 것이고, 집에 오면 못 쉬는데. 내려오면 한 2주 쉴 병원을 알아보던가, 바이탈 체크도 매일매일 하고…….

     그래, 그럴까. 언니는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민지 엄마, 근디 정말 괜찮겄제? 신장 하나 갖고 살아도 암시랑 않다는 말 도저히 못 믿겄는디. 어떻게 똑같이 괜찮냐고. 하나로도 괜찮으먼 하느님이 왜 둘씩 만드셨겄냐고. 둘이 필요항께 둘을 만드신 것 아녀?

     급할 때 하나 선물해도 좋다고 둘 주신 것이지 뭐. 언니가 맘 단단히 먹어요. 당분간은 딸애를 봐 줘야잖아. 아버지가 딸 뭐라 하는 것도 이제 좀 말려요. 사는 게 매 순간 선택이잖아. 연애결혼 했겠지,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어쩌고 맹세하고 결혼들 했잖아요. 신장 하나 주고나면 대신 더 많은 것들을 받겠죠. 뭘 받으려고 준단 말은 아니고. 딸애한테 자부심 같은 것 생기겠죠, 할 일을 다 했다고. 아니, 다른 사람이라면 못할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 몸은 손해 보고 맘은 이익 보는 것이야. 딸이 현명한 결정을 했어, 언니! 딸 그냥 안아주기만 해요.

 

     언니는 그예 훌쩍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하니 내가 너무 너스레를 떨었다 싶었다. 어떻게든 위로해주고 싶어서. 참, 이식수술하면 검사나 수술 비용 일부를 환급 받을 수 있는데, 그런 걸 알까. 젓가락 언니 그런 쪽으론 은근 바보던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당장 수술하는 것을 반대했던 장인을 대하는 사위의 꼬락서니다. 고생 되더라도 몇 년 만 투석을 하면서 기다리라고, 애들이나 좀 더 키워 놓고 하라고, 충분히 그런 말을 하고도 남을 장인 생각은 1도 않고, 믿었던 처가에 대해 서운하다고 실망했다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는 사위. 그게 가능한 일일까. 딸의 신장을 받아가면서, 그 부모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 근데 좀 괘씸하네요. 사위 진짜 밉네요, 닫았다는 마음의 문에다 못질해버리겠다고 하세요. 이 말은 차마 못했다. 남의 사위지만 정말 괘씸하다. 무릎을 꿇고 이해를,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그 뻔뻔함은 자신의 인격만을 주장하는 똑똑함일까. 뻔뻔하더라도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이 이기는 걸까. 이 생각 저 생각하면 패자가 되나.

 

 

     아니, 다른 사람 생각을 말자. 나는, 나 자신은 어떤가. 나라면 신장을 달라고 말할 수 있고, 신장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또 신장을 주겠다는 생각이나 했을까. 결정적인 순간에 내 생각이 있고, 생각을 말하고, 말 한대로 행동하는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고 그 나름 사람들의 호감을 받고 살아간다고 치자. 그것들은 그냥 지나쳐 가는 것들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직접 내 삶과 관련된 일이다. 우선 남편과 단둘이 있을 때, 확실히 내 생각으로 의견을 내고 존중받는가. 나 혼자 있을 때, 그때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나에게도 친절한가. 마음이 느슨해지고 몸이 풀리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렇게나 어질어진 것도 내버려 두고, 흐트러진 소파에 벌렁 눕는다. 안 예쁜 모양새면 어떤가. 예쁘려고 태어났나. 남편과 있을 때 긴장하는 나와 혼자 있을 때 펑퍼짐하게 풀어진 나, 어느 것이 나인가. 이 무슨 잡념인가.

 

     지금도 남편을 좋아하죠, 당근 좋아하니까 함께 살죠, 라고 말하는 너. 너는 진정 남편을 지금도 100퍼 좋아하고, 좋아하니까 함께 사는 것이냐. 은이 씨, 함께 살기 힘들고 살기 싫으면 그만 살아도 좋아! 남편은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뭔가 콕 짚는 말을 장난쯤으로 흘려듣고 마는 너. 남편에게 네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그 말, 당신 없음 못 살아! 라고 말해도 시원찮을 때. 떠나고 싶음 떠나라? 깊이 따지면 무서우니까 지나쳐버리는 너. 늘 진지한 생각을 피하고, 대신 모두가 편한 방향으로 그렇게 모서리를 갈고 닦아온 얼굴. 둥근 얼굴.

 

     백일 산후 휴가 끝에 아기를 24시간 놀이방에 맡기고 출근했던 너, 물론 퇴근 때는 아기를 데려와서 보살폈고, 밤새 아기 케어를 잘 해주던 남편이 고맙기만 했어. 아기를 좀 더 오래 품어 키우고 젖도 먹이고 싶었던 너의 본능은 남편과의 인생계획과 늘어나는 잔고로 덮였던 게야. 간호조무사 생활 30년쯤 되어갈 때 3층 건물 주인이 되었고, 이쯤이면 임대료로 생활하고 병원 그만두라던 남편의 말에 무한 감동했던 너. 너무 갑작스런 말이라서 놀랍기도 했지만, 좋기만 했지, 그만두라는데!

     하지만 막상 퇴직했을 때 너는 쉬지 못했어. 편하게 실업수당을 받던 기간에도 맘은 켕겼지. 사지육신 멀쩡한데! 너는 곧장 알바를 시작했어. 가정을 일으키려고 애쓰는 남편을 거들어야지, 암! 착한 은이 콤플렉스! 남들처럼 좀 쉬고, 문화센터도 나가고, 다이어트 운동도 하러 다니고. 무엇보다 가끔 청주 가서 엄마랑 버섯탕 먹으러도 가고. 그런 느긋한 생활은 생각만으로도 죄로 갈 일이었어. 마침, 아주 마침, 야간으로 다녔던 사회복지과에서 따 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생각났어. 실업급여 기간 끝나자마자 그걸 들고 노인복지센터를 찾았지. 다시 주말에만 쉬는 직장인이 된 너. 너의 결정들은 언제나 너의 것이었는지. 무심코 남편의 희망들에 맞춘 것 아냐!

 

     사실 나는 어떤 결정 앞에서건 늘 흔들린다. 학위논문을 버렸다는 사람, 신장을 떼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다니. 나는 결정 앞에만 서면 흔들렸다. 이건 경솔한 생각일 수도 있어. 오랫동안 고민을 한 다음에 결정해야 해. 고민을 하면서 두리번거린다. 나는 또한 의심에도 빠진다.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면 차라리 낫겠다. 나는 나 자신을 많이 의심한다. 자신이 없으니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얼굴로 사는가 보다. 착한, 좋은 사람이고자. 남편 앞에서는 남편이 원하는 얼굴……

 

     은아, 뭐해! 불러도 모르네!

     내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를 남편이 아예 다가와서 나를 불렀다. 이름만으로 불렀다. 사과나무를 잘 심어주었으니 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을 하기 싫다. 무슨 일인가. 이상하게 아무 말도 하기 싫다. 내가 말을 하면 내 말일까. 내 생각일까. 나에게 생각이란 것이 있을까. 틀려도 내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 그것을 생각해 보았을까. 갓 심은 사과나무 아래서 일어난 혼란, 갑작스러운 이 불편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뭉툭한 접목 부위가 계속 눈에 밟힌다. 발목에서 잘린 대목은 얹혀살고 있는 접수를 온전히 제 몸으로 받아들일까. 얹혀사는 놈이 주인 행세일 텐데. 평생 한 뼘 남짓으로 햇살과 공기를 느끼며 토막으로서만 사는 삶, 죽어라 빨아들인 물이며 양분을 다 올려주는데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이름 없는 존재. 아뿔사, 내 발목은 괜찮나. 두 손은 무사한가.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으며 내 손 같은 느낌이 아닌 이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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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작가교수세계 25호, 5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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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논단 - 기고2020. 11. 5. 21:39

[논단] * 36개의 각주가 따라오지 않아서 내릴까 고민 중 -

 

순수에의 강요

 

순수에의 강요 - 라는 구절은 표절은 아닐지라도 전염의 산물이다. 누구든 쥐스킨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를 떠올릴 것이다. 소묘를 잘 그리는 젊은 여인이 초대전에서 나름 우호적인 평을 받는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흔한(?) 격려성 비평이 비극의 단초가 된다. 자신에게 깊이가 없음을 한탄한 그는 작업을 접고, 미술서적을 섭렵하고 화랑과 박물관을 돌며 미술작품에서의 깊이를 탐구한다. 마침내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가 139미터 아래로’ 깊이를 향해 뛰어내린다.

 

쥐스킨트의 이름은 무엇보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1985)로 기억될 것이다. 발간 직후 49개 언어로 번역되어 곧 2천만 권을 팔았고, 세계판타지문학상(1987)을 받더니, 독일 미국 등 합작 영화(2006)로 폭발적으로 알려졌다. 영화 장르로는 드라마와 스릴러를 표방한다. 스릴러인지 판타지인지 그저 엽기인지, 산문문학에서 장르의 구분선은 녹아버린 지 오래다. 소설의 성공은 백만 천만 ‘관객’을 의미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컨대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1955/ 영화 1960)의 원작자 하이스미스는 서스펜스소설의 가장 성공한 작가답게 발칙하게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책 대부분이 만약 오늘 날 발표된다면 서스펜스소설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작가는 예능인’이라고도 단언한다. 쥐스킨트 또한 깊이에의 강요 때문에 몰락한 예술가를 그림으로써, 자신은 깊이에의 강요를, 정통 또는 순수에의 강요를 벗어난다.

 

정통 또는 순수 논란

 

오늘날에는 유서 깊은 가톨릭에서도 새삼스럽게 미사의 정통방식이 논란된다면, 문학에서의 정통이라는 개념이 온전히 존재하는지는 미지수다. ‘예술의 완벽성은 유익함과 즐거움을 결합시키는 것’이라는 호라티우스의 시학적 입장이 정통일까. 이는 거칠게 말해도 프랑스대혁명에서는 뒤집혔다. ‘굶주린 배로는 이상적인 예술작품을 들을 귀도, 볼 눈도 가질 수 없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으니까. 그러나 문학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욕구는 하이네의 ‘책들을 불태우는 그 자리에 결국에는 인간들도 불태운다.’라는 경고로 고조되었고, 그럼에도 100년 뒤 나치는 책도 사람도 불태웠다. 그 어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후에 사르트르는 다시 한 번 혁명을 선언했다. ‘문학은 그 본질상 영구 혁명 중에 있는 사회의 주관성이다.’라고.

 

참여문학, 그렇게 우리가 경험한 일종의 사명감으로서의 문학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저물고, 다시 문학의 자율성과 미적 근대성 개념이 고개를 드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문학의 위상 또한 하락한 것은 아이러니다. 크게는 문학을 포함한 인문(humanities, liberal arts) 의식이 신에게서 탈취한 권능을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기계’에게 내주는 세상이 도래한 탓이며, 작게는 실효 중에 있는 글로벌자본의 통치 때문이다. 하여 우선 살아남기에 전전긍긍하는 현실 속에서 순수에의 ‘강요’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의 의식은 이미 ‘순수’에서 떠나고 있다.

 

장르소설의 세상?

 

그 살아남는 소설들이 오늘날 소위 장르소설들로, 이미 출판계 및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2004년 『문학과 사회』에서 「장르문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장르 특집을 내었으니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문화적 환경을 보다 섬세하게 고찰하기 위한다는 기획의도만 보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줄기로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은 범주적으로는 대립적이나 실제적으로는 순수문학작품들에서 장르문학적인 설정과 문법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원래 장르(genre)는 예술에서 작품을 양식에 따라 구분할 때 사용되며, 문학예술에서는 서정과 서사 그리고 극문학 정도의 갈래를 말한다. 진부하게 헤아려 보자면, 서사문학의 경우 자서전, 전기, 일기, 우화 등과 구별하여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고, 소설 장르가 더 세분되어, 모험 소설, 아동문학, 판타지, 공포소설, 역사소설, 추리소설, 로맨스소설/연애소설, 과학소설, 스릴러, 무협소설, 라이트노벨, 게임소설, 사극소설 장르로 분류된다.

 

그런데 ‘장르소설’이라고 하면 ‘소설 장르’ 중 그 어느 하나의 장르에만 깊이 집중한 소설을 일컫는다고 한다. 영미권에서는 장르소설을 문학소설과 대비되는 말로 사용하는데, 문학적 픽션과 상업적 픽션(= 장르픽션 또는 대중픽션)으로 나눈다. 그 특징은 플롯 중심으로 넓은 독자를 매료시키는데, 주로 미스터리나 로맨스물, 과학소설 등의 장르에 깊이 빠진,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 소설들을 일컫는다.

그동안 주류 문학에서는 소위 순수소설이 암묵적인 권위를 얻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형이다. 현재는 출판사와 서점의 사업방침이 상업지향적 소설들을 장르문학으로 표방하면서 그 영향력은 날로 커간다. 아예 석박사급 연구자와 장르문학 창작자들로 구성된 텍스트릿이라는 연구모임 등도 활발한 옹호에 나선다. 핑계라면 ‘문장구조적 부검’이라도 동원해야 읽어낼 수 있는 난해하거나 심지어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순수문학에 대한 절연이다. 뿐만 아니라 웹소설의 시장 규모는 3,000억을 넘어 2019년에는 4,300억 원에 이른다고 했다. 당연히 웹소설에 대한 편견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나선다. 여전히 가난하게 살면서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무시하는 위선(?)을 비난, 아니 비판한다.

 

장르소설의 성공은 세계적 추세이다. 무거운 교양소설이 지배했던 독일에서도 2010년에는 무명작가의 미스터리가 알라딘을 강타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30주 넘게 판매 순위 1위에 올랐고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2011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계속 신선한 충격의 미스터리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지만, 그의 장편소설은 불발이다. 아무튼 더 과격한 장르의 관습을 따라서 더 충격적으로 사랑하고 더 충격적으로 살인하고 더 충격적으로 독서대중을 자극하는 일이 성공의 열쇠가 되는가 보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장르소설에서 말하는 ‘관습에의 강요’이다.

 

관습과 이단

 

관습이 무엇인가. 문학적 관습도 역사적 산물이다. 기술적으로 문학 내적인 요인과 사회적으로 문학 외적인 요인이 상호작용을 거듭하면서, 관습은 그 자체로서 생성과 소멸을 거치며 변모를 겪는다. 그런데 그 관습에 충실하게 집요하게 매달리라니! 오히려 예술의 본성은 관습과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니었던가.

모든 관습에는 반항이 따른다. 관습과 반항은 원천적으로 상호보완적이다. 틀을 거부하려는 작가는 독창성으로써 이에 저항하며 관습에 도전한다. 문학은 스스로 낡고 자동화된 관습의 틀을 거부하려는 내적 동력을 통해 낡은 관습의 쇄신을 유도해 나감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머리가 심지어 심장이 터질 때까지 무조건적 예술혼을 불태우며 창출해나가는 새로운 문법, 새로운 관습이 기대되고 심지어 요청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이래 모든 가능한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장르 관습을 철저히 따르는 것을 목표로, 그로 인해서 두각을 나타내련다는 장르문학은 예술로서의 문학의 대열에 합류할 생각이 없는 것일까.

 

장르, 그들은 소위 머리 아픈 글을 쓰지 않는다. 독서대중의 입맛을 취향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다. 결과적으로 자본시장의 상업성에 편승하는 현실적 결정을 한 것이리라. 그렇다고 장르소설이 독서시장의 전권을 장악한 것도 아니다. 2019년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종합은 『여행의 이유』(김영하) 등 에세이 열풍이 지속되고, 실용도서의 판매량은 큰 폭으로 증가했고, 2020년 상반기는 『더 해빙 -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이 세계를 강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장르소설도 소설인 한에서 베스트셀러 진입은 힘들다.

그러나 분명 소설계에서는 장르가 상업적 우위를 점하고 있고, 최근에는 문학상까지도 장르의 물(?)이 짙게 들었다. 그 한 종류라는 오토픽션 쪽만 보아도 그렇다. 예컨대 일본문단에서 누군가가 스무 살에 『뱀에게 피어싱』같은, 제목부터 무한대로 자극적인 작품으로 무슨 상을 업고 문단을 출렁이게 했다고 치자. 바로 영화도 되었다. 착란과 자해 등, 선을 넘은 가학성과 폭력성으로 독자의 무의식적 가학성에 부응했다고 치자. 그가 『오토픽션』으로 자전과 소설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데, 그 새 바람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상륙하면, 여기도 오토픽션 아류(?)를 써서 ‘젊은작가상’을 흔든다. 하지만 장르 로봇이 되어 독자의 취향에 부응하고 상도 받는다는 성공 신화는 간혹 혼란의 나락이 되기도 한다. 사실이다.

그러니까 성공이 아쉽다고 해서 글쓰는 사람이 글읽는 사람들 즐거워하라고 봉사하는 일로 살 수는 없다. 그 보다는 무엇인가 예컨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난해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을 공유하련다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어떠한가, 살 만한가. 어찌 살까. 그러다 보면 ‘관습 지킴이’와는 정반대로 살게 된다. 김수영 시인의 ‘문학의 불온성’이 떠오르지 않는가.

모든 실험적인 문학은 필연적으로는 완전한 세계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학이 문학이면 무엇을 왜 쓰느냐가 관건이다. 따로 순수소설 또는 장르소설이라는 갈래(장르)는 없다. 다만 ‘문화적 교환가치’라는 포괄적인 문화현상은 소설 영역을 확대하여 영화로 성공을 거두게 하기도 한다. 또는 종이책이 아닌 웹소설의 성황, 또 이제는 읽는 문학에서 듣는 문학으로 소화의 패턴이 급변하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소위 본격문학, 순수문학, 순문학, 그러니까 원래의 문학은 풍전등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아니 인간의 모든 행동은, 타자에 대한 구애로서는 그 존재의 의미를 훼손시킨다. ‘나쁜 소설이란 독자에게 아첨하여 그의 환심을 사려는 소설이며, 좋은 소설이란 독자에 대한 요청이며 신뢰이다.’ 그뿐이 아니다. 유투브가 삼켜버린 문학 - 아니 문화, 아니 인생, 과한 말도 아니다 - 에서 장르라고 영원히 살아남겠는가.

 

살아남기 - 이단 예찬

 

앞서 말한 대로 호모사피엔스의 미래는 어차피 어둡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라는 양대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문학적 낭만과 순수를 찾는 것은 유아적 사고일 수 있다. 개인의 느낌과 자유 선택에 대한 믿음으로 신에게서 우위를 뽐내고자 했던 인간이 미래에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에게 모든 권위를 양보하게 될 것이다. 일자리는커녕 할 일조차 없어질 무용지물의 인간이 문학을 소설을 탐하겠는가.

그 전까지, 아직 문학이라는 이름의 무엇인가가 살아 숨을 쉬고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독자의 취향에 굴하지 않으며 숨이 끊길 듯 살아남은 예술의 흔적들을 살펴보자. ‘예술이란 맛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예술을 맛을 본다면 예술은 거기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조건이 생명이다. 어떤 강요에도 유혹당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독단, 이단. 그것 아닐 수 없는 무엇, 다른 것일 수 없는 무엇이 바탕이라야 한다. 치환불능성의 어떤 것, <살롱전>의 주문도 그 어떤 세속적 유혹에도 구부러질 수 없는 솟대처럼 솟는, 이름할 수 없는 정체성의 무엇이 새로운 유파를 창출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낙선전>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 문외한이면서도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낙선이 시작이었다.

 

문학도 마찬가지, 기존의 가치에 대한 진지하고도 집요한 이단이 아니고서는 생명력을 지닐 수 없다. ‘도끼로 머리를 깨는 작품을’ 쓰고자했던 카프카가 살아남은 것은 이단성이다. ‘벗이여, 이제 나는 詩를 폐업처분하겠다. 나는 作者未詳이다. 나는 용의자이거나 잉여인간이 될 것이다. […] 아아, 나는 詩의 무정부주의를 겪었고 詩는 더이상 나의 聖所가 아니다.’ 때론 이렇게 폐업을 선언한 시인이 시인으로 남아서, 시집이 많이 팔려서 걱정도 한다. ‘시로서 존재하기 위한 형식화의 조건을 하나도 갖추고 있지 않아도’ 세계관으로서 현실을 반영하는 시인이 시인이다.

 

어떻게? ‘선택할 출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출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자신의 출구를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는 존재이다.’라던 사르트르의 말 - 여기에서 ‘출구’를 ‘소설’로 바꾸어 읽자. ‘소설가마다 자신의 소설을 씀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든다.’ 수많은 작가들이 ‘나는 글을 쓴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데카르트를 빗대어 존재를 정의한다.

그러므로 소설가가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작가의 ‘메시지란 결국 대상화된 영혼’이며, 작가는 ‘항의가 아니라 비명, 부패에 반하는 비명’을 지른다. 그러니까 결국 막스 프리쉬의 말처럼 ‘모든 예술작품은 인식되기를 원한다.’ 아무리 독백처럼 보일지라도 알아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슈틸러가 아니오.’ - 막상 프리쉬는 『슈틸러』(1953)의 첫 문장을 이렇게 내뱉는다. 그 처음 문장으로 슈틸러는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프리슈는 독자들에게 언어유희의 첫 장을 연다. 독자들은 낚이는가? 낚였는가?

그 말을 거는 방식으로서의 이단은 예로부터 존재해왔다. 이단은 전통이나 권위, 세속적인 상식에 반항하여 자기 개성을 강하게 주장하여 거의 고립되어 있는 경우를 이른다. 현존 질서에 대한 반항, 그것은 가끔은 살아생전의 성공도 보장한다.

 

한 이단아의 경우 - 노벨문학상 수상

 

최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가 누구인가? 1966년 스물넷의 그가 ‘47그룹’ 회동에 초대된 자체가 놀라웠던, 그의 독설은 더욱 놀라웠던 이단아다. 동시대 독문학에 대해 통틀어 서술 불능뿐이라고, 언어와 의식에서의 상투성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하여 주체와 세상 간의 소외에 매달린 그는 같은 해 『관객모독』을 내놓았다. 말 그대로 관객을 모독하는, 관객들의 관습적인 관람 형식 자체를 고발하는, 연기는 없고 말만하는, 그것도 험담과 모욕뿐인 극작품이었다. 이어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1970)을 빔 벤더스가 영화로 만들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단아였다.

그런 그에게도 전형이나 표준이 전무하지는 않은 듯, ‘카프카는 나에게 내 글써온 삶 내내 한 문장 한 문장마다 표준이었다.’고 말했다. 적어도 두 작가가 공유하는 점은 개인과 외부세계와의 관계에서 광년만큼 떨어진 거리에 대한 인식이다. 또 하나는 세류와 무관했던 이단아라는 공통점이다. 다만 형식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되, ‘내용에 관해서는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계속 지껄이라’ 했던 김수영, 그런 불온성을 지닌 이단아들이 살아남는다.

‘허구를 말하기 시작한’ 너 글쟁이는 외면당하고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칭찬을 받든 비난을 받든 너 그리고 너의 작품은 그냥 그만큼이다. 순수에의 강요는 누구로부터 또는 어디에서 오는가? 언감생심 장르 관습에의 강요? 너는 미망으로 이끌린다. 하지만 삶도 글도 ‘안녕보다는 진리를 향하여’ 나아갈 뿐이라. 세상 속에서 그러나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너는 너의 독자에게 말을 건다. ‘모깃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할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할 말을, 그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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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 작가교수세계, 통권 23호, 4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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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