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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026. 3. 3. 18:27

침묵14 순간, 순간들

영원은 - 지금들로 구성된 것 -
(Forever – is composed of Nows -)

- 에밀리 디킨슨 1830-1886

 

   

     순간 그리고 순간들, 무수한 순간들이 있었고 사라졌고 또···. 시간이라고 하는 영겁은 결국은 순간들로서 다다를 무엇이었다. 그 순간 무엇인가를 생각했거나 생각하지 않았고, 그 순간 무엇인가를 행했거나 행하지 않았고, 그렇게 순간들이 지나갔다. 그 순간 무엇을 말했거나 말하지 않았고, 그렇게 순간들이 지나갔다. 다시 순간에 와 있다고 느낀 그 시점에서 그것들은 사라져갔다. 과거라고 불리는 무수한 순간들은 그냥 과거에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달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은 있었고 없었다.

     가롤로 신부님이 새삼 그리웠다. 승욱이 신학을 포기했을 때 보내주신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미루던 답이랄까 감상평을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신부님은 벌써 과거 속에만 계셨다. 그러니까 그가 놓쳐버린 순간 속에 계셨다. 가지 않았던 무수한 길들에 대해서, 파티오라금 잎줄기처럼 가지 쳐 뻗어 올라갔을 무수한 길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아예 외면하고 살았더라 싶었다.

비효율적이지. 무슨 필요가 있어. 기껏 되새김질! 승욱은 단호했다.

 

 

     1989년 여름이었다. 한국의 대학생이, 여자대학생이 어마무시한 ‘경계’를 넘던 여름, 그 여름의 다른 미세한 한 순간은 그에게 영원이 되었다. 그 이후 지지부진 망쳐버린 2학기 그리고···. 군입대라는 도피의 결정 또한 순간의 일이었다. 머물 수 없으니 도주한다. 평범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굳이 객관적인 시간대로 말하자면, 1990년 1월 입대부터 1992년 여름까지의 군대살이는 크게 보면 맹탕이었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무반 동료들과 소통 없이 소통했던 순간들, 침상에서 깨어나 다시 들어 잠들기 전까지의 순간들은 오로지 승욱 그의 고유의 것이었다.

     집과 성당밖에 모르는 어머니, 오직 어머니와의 삶은 승욱을 사회적 정치적 관심의 언어들을 모르고 자라게 했다. 그러다가 그 쬐끄만 여학생 - 쬐끄맣다는 말은 키가 작다는 말 보다는 후배이면서 뭐 더 잘 알 것도 없을 것 같았던 인상의 연두에 대한 표현이다 - 그 쬐끄만한 여자애가 종알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언설들에 위축되고 혼란되었던 순간들. 그것이 그를 군대로 도망치게 했던 결정적 동인이었다. 뭔가 달라지고 싶은, 뭔가 더 괜찮아지고 싶은.

     그러나 군인이라고 쓰고 군바리라고 읽히는 시절, 땅개들의 인생은 고달팠다. 눈 뜨면 군번줄부터 확인! 관물대는 신성히! 옛! 군대 내에서의 민감 사안들을 아파했던 승욱은 그것들이 그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군대로의 도망은 그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폐하게 했다. 보안사에서 기밀문서들을 들고 도망쳤다는 Y이병의 탈영소식을 들은 순간만 해도 그를 평생 따라다녔다. 너라면 그런 사고를···. 그 행위를 남들 따라서 사고라고 표현하면서도 승욱은 가치관의 혼란 속에 있었다. 그 정도는 약과였다. 자대에 배치된 첫날 여럿이 먹을 빵과 음료수를 들고갔다가 목을 맸다는 N일병의 소식에 목이 메었던 순간의 혼란. 새벽교회는 무엇하러 갔을까. 의무반에서 간단한 상처를 치료 받고 감기약도 받아갔다면서 왜! 그런 뚜렷이 각인된 순간들은 사라질 수가 없다. 다른 의문의 순간들, 그 중에는 동계훈련 한밤중에 좁은 박스카 내부에서 혼자서 사고로(?) 목이 졸려 죽었다는 S일병도 있었다. 그 뒤에 떠다녔던 뜬구름 풍문들. 그런 순간들은 그에게 미주신경성 실신을 불러오거나, 아니면 그의 해마 속에 그대로 차갑게 굳어버렸다.

     하지만 크게 보면 군입대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결국은 필요한 선택이었다. 되뇔 가치가 별로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복학을 하지 않고 빈둥댄 순간들, 그것부터가 발칙한 짓거리의 시작이었다. 왜 냉큼 복학을 못했나. 미루었나. 이제 와서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 것도 오래 되었다. 비효율적이지. 무슨 필요가 있어.

일단 더 멀리 현실을 피한다. 그렇게 독일로 도망친 순간의 결과는 놀랍게도 신학대학 입학으로 예정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수술 소식에 돌아와야 했던 순간, 당연한 일시귀국이었다. 그때 그냥 눌러앉아버린 순간은 승욱의 생을 결정한 셈이었다. 신학대학을 포기하게 된 첫 번째 순간이었으니까. 그렇게 가지 않은 길로 남은 숱한 길들은 멀어져갔다.

 

     서른 살, 그러다 1999년 만 서른 살이 되었을 때는 심각한 내적 위기를 겪었다. 마침 사람들마다 새천년을 맞는다고 여러 뜻으로 들떠있을 때였다. 외부 요인을 떠나서 한 인간에게 시간은 대체 무엇인가. 아버지를 넘어서 살아간다는 것. 1943년 12월생 아버지는 1973년 1월 한성호 침몰사고로 떠나셨으니 만 30년을 못 살았다. 겨우 10,000일을 살았던 아버지의 시간을 생각했다. 1969년 3월생 승욱은 1999년 3월로 아버지의 시간들을 훌쩍 넘어섰다. 하루하루의 순간들이 너무도 이상했다. 그러고도 또 365일을 더, 또 365일··· 그렇게 또 어쩌면 3,650일이 더해질 것이었다. 하루하루 아버지를 초월해서 살아있다고 느끼는 매 순간들은 그 생경함 속에서 거의 압박감이었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될 수 없는, 침묵을 강요했다. 침묵 속에서 순간들을 살았다. 잊히거나 쌓여갔다.

 

 

     아들, 투틸로! 일타강사가 뭐여? 울 아들도 일타강사다냐?

     엄니, 무슨.

     일타강사 그런 소리들 허던디.

     대학에선 그냥 강사라 그래요. 학생들은 교수님이라 부르기도 하고요.

     일타강사는 어디 테레비 나오는 강사들 말여? 일타가 뭐여? 한 방 때리는 야구 같은가.

     스타를 말해요. 스타강사들, 그 중에도 일등 스타강사, 뭐 그런 것, 엄청 비싼 입시학원서 나온 말여요.

     으응, 일등가는 스타라고. 그래 봤자 학원강사구만. 울 아들은 대학강사니께.

 

     대학강사 노승욱, 어머니에게는 아들 투틸로, 그는 오늘에 충실했다. 겨우 내일까지에. 더는 주말까지에. 가능하면 어머니와 더불어 미사에 참석하는 주말까지는. 어머니, 주말에 뵈어요! - 어머니, 어쩌지요. 이번 주일에는 성당에 혼자 가셔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미사포도 챙겨드리면서 함께 성당에 가게 되는 날이면 마음은 더 부끄러웠다. 배신. 냉담이 곧 배신이다. 냉담을 숨기는 것은 배신에 거짓을 더한 짓거리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절망 속 어머니를 어쩌라고. 아들이, 단 하나의 핏줄이. 신부님을, 아예 하느님을 배신하는 편이 쉬웠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졸업논문이랍시고 유럽의 선교의 역사에 관한 글을 쓰고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가 도서관에서 손에 든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 계기였다. 분명했다. ‘이 빛나는 점을 보라···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점에 살았다···.’ 그 비슷한 글은 그의 두뇌를 깨뜨렸다.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던 젊은 카프카! 맞다, 그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았다. 『창백한 푸른 점』은 승욱을 깨뜨린, 깨나게한 도끼였다.

     ‘수천의 종교’라는 구절 - 종교, 종교들, 수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그 모든 것들이 이 작은 푸른 점 지구 위에서 명멸해 갔음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심지어 세이건은 기원전의 철학자 크세노파네스를 인용해서 우리의 ‘유일신’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그들의 신들을 검은 피부에 납작코로 만들었다고. 심지어 황소나 말이나 사자가 그림이나 예술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말은 말처럼, 황소는 황소처럼 신을 그렸을 것이라고! 신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 – 대단한 세이건은 대단한 볼테르와 상통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던 볼테르에 이어 세이건에 승욱은 설득되고 말았다.

     그는 졸업 후 한국에서라도 신학대학으로 진로를 바꾸려던 고려를 완전히 접었다. 그대로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었다. 사학에 대단한 의미를 두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랬다. 신학이 워낙 무서워서 그냥 코앞에 주어져있는 사학도의 길이라도. 길은 가야 하니까. 그 이후 독서는 『팡세』의 긍정이론을 던져버린 쪽으로 향했다. 인간이 ‘고민하는 갈대’라면, 잘 모르겠거든, 증명도 부정도 할 수 없거든, 신을 믿는 편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설득은 매력을 완전히 잃었다. 슬픈 사실 – 지구 상 모든 것이, 모든 종교들도, 따라서 모든 신들도 명멸한다는 사실만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유아세례자이면서 엄청난 배반과 위장의 딜레마 속에서 우물쭈물 보낸 순간들. 차츰 스스로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인식만으로 그 나름 평정을 얻어갔다.

 

     그렇게 무심탱탱한 사학도의 길에도 그에게 특별한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사실 정보로 터무니없게도 연길대학 영어학회의 여석에 관광팀(?)으로 따라갈 수 있었고, 헐, 그는 연두를, 연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백두산 정상에서 다시 한 번 짧은 의식소실을 겪으며, 스물한 살 어린 시절에 감전으로 다가왔었던 그 순간이 되살아났다. 그래, 순간들은 어딘가에 살아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침묵 속에서. 그리고 갑자기 깨달았다, 영원이라고 하는 시간은 이들 순간들의 집합임을. 시구가 떠올랐다. 영원은 - 지금들로 구성된 것 - 그건 다른 시간이 아니다 - 무한함 - 그리고 집이라는 위도 외에는 ···

 

     위도만 다를 뿐, 위도라면 쉬운 말로 장소였다. 경험하는 장소들만 달라질 뿐 언제나 순간이 영원이고, 그러니까 순간들의 집합체가 영원이라는. 그렇다, 영원이 이 순간과 분리되어 존재할 리가 없다. 웬일인가. 어떤 이름 없는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순간 ― 그것은 되풀이되지는 않아. 하지만 정말 어떤 순간은 바로 영원이 되는 거야. 되풀이되지는 않더라도 거기 그렇게 영원 속에 존재하는 순간, 난 그런 순간들 때문에 살아있다고 느끼는 것 같애. 예컨대···. 그 비슷한 구절이었다. 그러니까 순간을 영원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더러 있구나. 예컨대라는 말로 미루어 작가가 시니어려나, 아마.

 

     사람이 천지를 본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뉠 일은 없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두 눈에 들어왔던 부동의 검은 물 또한 그의 해마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었다. 그의 영원으로. 그 여행지에서 현지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발견한 순간, 급히 그것을 사들고 일행들을 따라갔던 순간, 그것은 예상 밖의 득탬이었다. 2005년 그때는 서른일곱, 스스로 더 이상 청춘은 아님을 깨닫고 있을 때였다. 취업도 결혼도 일찍 성취한 광식이가 아니더라도 또래들은 대부분 가정을 꾸렸다. 거의 무엇인가에 정착했다. 그가 이른 곳은, 이룬 것은··· 스스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승욱은 자신에게서 더 이상 젊은 시절이라는 미래지향적 단어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바보 같은 버릇이 생겼다. 그때 그랬었더라면··· 따위의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일까 아닐까 그 의미들을 깨닫는다면 이미 인간이 아니리라. 인간의 한계는 그 지점에서 드러난다. 한계이자 본질인 그 지점. 한계는 본질이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일 또한 괴로운 작업이었다. 그의 소양과 능력으로 신학공부보다는 나았을 것이라고 위안할 뿐이었다. 사실도 사실들도 혼재되어 있는 기록들, 인간들의 기록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우울해지는 길이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대학 강단에 서는, 흔히 말하는 정도를 걷기 시작했을 때조차 회의는 지속되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오히려 더했다. 다만 순명 대신 숙명이라고 받아들였다.

     큰 보람 없이도 세월은 갔다. 한창 강의에 열중했던 초창기, 여전히 학계 선배들은 E. H. 카를 떠받들었다. 사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역사학은 말 그대로 사실을 전제로 한다. 랑케의 실증주의는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 as it actually happened’를 표방했었지만 카는 인식 상 주체와 객체의 분리를 부정했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 중에 역사가가 평가하고 선택한 것만 역사적 사실이라는 입장이었다. 승욱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카의 이론에 설득되지 않았다. 누가 그 선택을 하는가? 자의적은 아닐까! 역사가와 사실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라거나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설명은 점점 아리송하기만 했다. 그는 어떤 것에도 몰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더구나 승욱 주변의 역사학자들은 결정적으로 카의 이론 안에서 사고하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상호작용을 믿는.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 이해되고, 동시에 현재는 과거에 비추어 좀 더 분명히 이해된다는 믿음. 믿음이라는 단어에서 그는 늘 흠칫거렸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학계에서도 주류에 속하지 못했다. 학문 계보로 보아서도 어쩌면 그의 전망은 흐렸다.

 

 

      그런 어느날 누군가의 한 순간의 선택은 여럿에게 큰 선물을 주기도 했다. 마침 인문대학장을 맡으셨던 ‘우리 사학과’ 교수님이 그 결정을 했다. 〈대한민국(남한) 국민 대상 북한 개성시 관광 프로그램〉에 참가한다는 엄청난 결정의 순간이라니. 명분은 매년 가을에 있던 인문대학교수세미나의 일환이었다. 2007년 12월 5일부터 시행되었으니까, 아직 채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설마 선죽교의 핏자국을 두 눈으로 본다고! 그 설마의 순간을 승욱은 다만 인문대학 사학과 강사였음으로 누리게 되었다. 개성방문은 당일코스라서 미리 서울에서 1박을 하고 깜깜 새벽에 임진각으로 가서 출발하는 코스였다. 사학과 강사들은 인문대 교수님들 신청에 이어 곧바로 끼어들 1순위였다. 승욱은 갈팡질팡 전공을 못 정해서 고심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 오늘로써 나는 ‘가지 못한 길’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밀려서 탈락한 불손 선생이 - 불문과 손 선생이 - 제일 볼멘소리를 했다.

 

     어머니에게는 개성방문의 ‘ㄱ’자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투틸로, 삼팔선을 넘어간다고야···. 아무리 대학교서 단체로 간다 해도 거가 어디라고. 걱정만 하실 것이 뻔했으니까. 더구나 그 여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때도 얼마나 놀라시던가. 암말 안 하는 것은 거짓말과는 다르니까. 주중에 연락을 드리지 않고 지내는 날도 더러 있었으니까. 그 뿐이냐. 말 없으면 무조건 믿고 아무것도 모르실 게다. 마음에서 떠난 하느님을 찾아 성당에도 동행하는 아들이니까.

 

     첫날은 일단 학교버스로 서울행이었다. 집을 나서려다가 다시 들어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가을 들면서 비를 기다렸지만, 하필 그 순간에! 하지만 여행 중 우산은 어쩌면 필수품일 것이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비는 그쳐있었다. 오후에는 거물급 인물과 통일문제에 관한 특별 행사를, 사적이면서 공적인 행사를 가졌다. 의미의 무게는 각자에게 달린 일, 개성에 몰입된 관심 때문에 승욱으로서는 어떤 감흥도 없는 요식행위였다. 단체, 사학과 그리고 다른 학과들도 더러 기념촬영을 했다. 디카 촬영을 어쩌다 승욱이 도맡았으므로 찍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시다아! 숙소는 생각보다 큰 방에 침대 두 개 그리고 덩그러니 텔레비전 밖에 없었다. 나갈 때 불온문서로 문제될까봐 미리 겁을 먹고서 책 한 권 가져오지 않아 심심했다. 룸메는 담배 때문에 들락거렸다. 멀뚱멀뚱한 눈으로 잠을 청했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자 시드는 해바라기들 옆에 선 어머니의 모습이 스쳤다. 고개를 흔들었다. 승욱아, 잠들자, 사학과 주관 행사나 다름없는데 늦으면 어쩌려고···.

 

     걱정은 그냥 기우였다. 간밤 조교의 말대로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웠다. 몇 분 간격으로 여러 번 울렸다. 서둘러 내려가 보니 교수님들도 참 대단하셨다. 정해진 출발 시간에 한 분도 늦지 않고, 다들 버스에 앉아계셨다.

     임진각에서는 학교버스 안에다 핸드폰도 뭐도 대충 놓아둔 채로 내리라더니 다른 셔틀로 갈아타고서 남북출입사무소로 행했다. 언뜻 단계 단계 짐짝처럼 백두산을 오르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국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 수속을 밟아야 했다. 출경이란 출국의 말만 다른 말이었다. 남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단어라 했다. 형식은 같았다. 짐은 X레이로, 몸만 통과한다. 카메라만큼은 까다로웠다. 배율을 확인한 다음에 디카만 허용되었다. 얼결에 ‘녀자출구’에 잘못 섰는데, 주황색 옷 현대아산 직원 말이 괜찮다고 그냥 서랬다. 관광 프로그램이 현대아산의 안내였다. 여권 대신 관광증에 사증을 찍고서 다른 출구로 나갔다. 이제 북한이련가? 아직 아니었다.

 

     깨끗하고 너른 출입소 건물의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아침을 먹었다. 새벽부터 하루를 다 살아버린 피로감에도 밥은 꿀맛이었다. 교직원식당 같은 분위기의 마지막은 셀프 서비스 커피였다. 다음 순간, 어라, 원두커피를 팔기도 했다. 아직 자본주의 세상이었다. 건물을 빠져나가야 드디어 북을 경험할 차례였다. 우리에게 할당된 차의 번호표는 10-10, 하루 관광이 총 10대인가 보았다. 군사분계선 통과 예정시각은 8시, 평소라면 겨우 일상이 시작될 시간인데 그 아침에는 벌써 많은 특별한 순간들이 지나갔다.

     예상 외로, 어쩌면 예상대로, 버스는 꼼짝하지 않았다. 군사분계선 통과 승인 절차가 아직 안 떨어졌다고, 버스에서 내려서 건물 내에서 기다려도 좋다는 통보가 왔다. 다시 한 인간의 시간이 왔다. 딱딱한 의자 위에서 눈 뜬 채 정지된 몸의 상념 속에 펼쳐진 순간들은 그 아침따라 현란했다. 앞으로 전개될 순간들까지 몰려왔다.

     회랑 안팎을 울리는 안내 목소리며 서둘러 다시 버스 쪽으로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들에야 깨어났다. 버스에 올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시계가 8시 43분을 가리키고 있을 때였다. 드디어 시작된 개성 관광. 10여분 만에 군사분계선에 도착했고 또 무엇인가를 대기했다. 북측 입경, 9시 7분, ‘평화를 다지는 길’이라고 새겨진 널찍한 바위를 지나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클린턴이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 (the scariest place on earth)’이라 했다던 비무장지대를 넘어서. 동서 155마일이라던가. 당연히 기대했던 베를린장벽 같은 담장이나 철조망을 보지 못했다. 다만 200m 간격의 황색 표지판이 있을 뿐.

     경계를 지나자마자 다른 세상에 왔음을 느꼈다. 순간에 나타난 개성이라는 간판, 초록색 바탕의 흰 글씨며, 다시 순간에 등장한 군 초소와 군인들도 스쳐 지나갔다. 얼마만큼 달리고 버스가 섰다. 북측 안내원 세 명이 승차하면서 드디어 개성관광이 시작되었다.

 

 

     달변의 안내원은 안내사업을 시작했다. 우선 경의선 봉동역에서부터 일대의 개성공단 소개에 놀랐다. 100만 평이나? 70개도 넘는 공장이? 3만5천 개성사람들의 출퇴근 버스가 자랑이라니. 한참 뒤 개성시로 진입하자 그 ‘푸른 버스’가 보였다. 56번 번호를 단 한 대만 보였다.

     시내로 들어가면서는 차창 밖 푸른 풍경이 사라졌다. 야산들은 민둥산에, 순간 스쳐 지나가는 주택지의 집들은 왠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빈약한 창문들로 미루어 벽은, 설마, 마분지 정도의 두께일까 싶었다. 승욱은 자신의 편견, 제발 선입견이기를 바랐다.

     그래, 집은 두꺼운 벽이었을 거야. 가을 겨울 추위쯤이야. 사람의 그림자는 왜 없었을까. 맞아, 모두들 나와 있을 시간이지. 거리에도 사람은커녕 움직이는 차들도 없었다. 질리도록 매연을 뿜어대는 차량들의 횡포와 이별한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이었는데, 어느 것이 현실인가.

 

     상대적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안내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고속도로로 주욱 달리면 평양까지 두 시간이면 됩네다만, 우리는 첫 번째로 박연폭포로 갈 것입네다. 박연폭포는 화담 서경덕과 황진이와 함께 ‘송도 3절’이라 합네다. 주차장에 내리면 폭포까지 500메다 정도입네다. 10여 메다 왼쪽으로 위생실이 있습네다.

     아니, 이곳이 관광지가 맞나? 10대의 버스에서 내린 울긋불긋한 사람들 틈 어디에도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현지 주민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땅의 사람들이라고는 짙은 감청색 차림의 북측 안내원들뿐이었다.

     주민들은 평일이라서 모두 일터에만 있을···. 승욱이 말하려다 보니 짝꿍은 벌써 앞서 돌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무안해진 그는 눈을 내렸다. 작은 돌들을 일정하게 흩뜨려서 사각형 블록으로 찍어낸, 정교하면서도 깨끗한 계단 길이었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세트장 같은 느낌, 은행나무와 참나무 낙엽 사이로는 훔쳐갈 돌멩이 하나 구르지 않았다.

 

     이 폭포수가 지금은 갈수기라서 한 자 폭에 불과하나, 넘칠 때는 7, 8메다는 됩네다. 천마산 기슭에서 37메다의 낙차로 이 투명한 고모담姑母潭으로 떨어져 내리디요. 박 진사란 젊은이의 피리 소리에 반해버린 용녀가 그를 못 속으로 유혹하여시리···.

     그렇게 시작된 폭포 관광은 세트 촬영장을 보는 느낌으로 끝났다. 아슬아슬 위를 바라보니 위대한 조선의 어머니 예찬시구가 큰 바위에 새겨져있었다. 내용은 멀어서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 시뻘건 글씨하며··· 느닷없는 자연 훼손의 본보기였다. 맞다, 이곳은 북한 땅이지. 이런 폄하가 편견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평생 배운 것이 그랬으니.

 

     아, 다행히도 사람이 있었다. 매대의 점원들이었다. 개성모약과 여남 개가 담긴 비닐 도시락에 두 달러, 인삼차 한 잔에 한 달러, 생수는 두 병에 한 달러의 값이었다. 그러니까 그곳 관광지의 통화는 놀랍게도 미국 달러였다. 가장 적대적일 것이라 여겨졌던 북미관계가 돈에서는 통했다. 그렇게 ‘네 달러’로 차오른 숨을 달랜 후에 내려왔더니, 저만치 고모담 안에 둥실 뜬 널찍한 바위 위에 사람들이 북적댔다. 폭포자락에 반한 황진이가 머리를 풀어헤쳐 먹물로···. 설명을 듣는 순간 룸메가 팔을 이끌었다. 시간 됐네요, 내려갑시다. 마침 저 아래 단체사진 찍자고 외쳐대는 부름 때문에 서둘러 내려갔다.

 

     폭포 구경 하나로 오전 관광이 끝났다. 버스는 11첩 반상이라고 홍보된 어마무시한 점심상을 향했다. 통일관이었다. 화려 찬란한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 안내원들의 안내를 받고 들어선 연회장에는 둥근 식탁마다 10인조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리 반짝이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빛을 발하는 놋그릇이 반가웠다. 얼마만인가. 어린 시절 겨울 언젠가는 꼭 마당에서 여럿이서 시커먼 가루들로 부비고 닦던 그릇들, 수저들··· 그리고 더러는 눈물을 짓던 어른들. 여럿이 모여 앉으면 꼭 어머니를 울리고 마는 어른들이 미웠다. 놋그릇들도 미웠다. 개성에서의 그 순간에는 놋그릇이 반갑다니.

     아차, 상차림 사진을 찍어둬야 하는데···. 배낭을 버스에 두고 내렸더니 카메라가 없었다. 서둘러 뛰어갔지만 버스 문이 잠겨있었다! 삼엄한 이런 곳을 누가 범한다고? 터덜거리며 돌아섰다. 다른 일행들은 벌써 놋그릇 뚜껑을 열고 시작하고 있었다. 반찬그릇이 열한 개라더니, 밥그릇 국그릇 그리고 덤으로 나온 약식뚜껑까지 열네 개의 뚜껑을 열었다. 왼쪽 줄은 숙주나물 가지나물 등 숙채 일색이고, 묵무침 계란찜 감자조림, 거기다 다 마른 생선구이 조각으로는 글쎄. 밥과 국 이외엔 온기도 별로 없고 물기도 없는, 음식점 앞 유리진열장에 내어놓을 법한 모형 같은 반찬들. 장난감만한 술잔에 부어주는 맑은 술이 아니었다면 목에 넘어가지 않을 점심상이었다. 최고의 자랑이라는 점심상을 이렇게 차려 내놓는다면, 최고가 아닌 보통의 모두는 다들 어찌 먹을까. 괜한 걱정으로 목이 막혔다.

 

     점심으로 한 시간 정도 할당이 되었나. 1시 20분 승차시간 전에 근처 산책이 허용되었다. 언덕길 위 저만치에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주석’의 금빛 동상이 서있다. 폭포에서는 조선의 어머니, 광장에서는 아버지였다. 의례가 강요되거나 사진촬영이 금지되거나 하는 극단적인 제약은 없었다. 그러나 사진 속에서 동상이 일부분 가려지거나 잘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가 뒤따랐다. 돌아가는 길에 북측 출입소에서 사진을 삭제 당하기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많은 관광객들 중 동상께로 다가가는 사람이 없었다.

     북측 안내원에게 부탁하면 되겠네. 아주 좋게 찍어달라고! 혼잣말을 하는 승욱을 누군가가 듣고 말렸다.

     긁어부스럼 말아요!

     아니 경애하는 김일성주석을 안 찍으면 개성 증명사진이···.

     아서요!

     다른 누군가도 나섰다. 아, 이 부자유! 그 순간 승욱은 누구의 선택으로 그곳 그 자리에 서있는지 스스로 궁금해졌다.

 

 

     선죽교라니! 오후 관광의 첫 코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자잘한 불만을 거두어가기에 충분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갑자기 사람들이 술렁였다. 앞서 도착했던 버스들에서는 작은 앰뷸런스가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을 목격했더란다. 애타게 그 붉은 핏자국을 확인하려고 돌다리에 오르려던 관광객 한 사람이 비좁은 개울로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했다. 일본쯤에서 온, 나이 들어 보이는 키 작은 여자라고 했다.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오도록 끌었을까? 관광지라면 세상에 널려있는 것을, 포은의 핏자국이 뭣이라고!

     막상 선죽교 앞. 도랑물 같은 노계천에 걸쳐있는 이 돌다리는 그 명만큼 뛰어난 품은 아니었다. 크기도 상상에 비해 사뭇 작았다.

     캔 점프 오버 히어 홀 띵···

     바로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키 큰 서양인이었다. 뭐야, 뭘 뛰어넘어. 멀리뛰기 세계선수야 뭐야! 위아래를 훑어보았더니 그런 품새는 아니었다. 캔 홀 디스 윗 투 암즈, 라고 놀려볼까 하다가 웃고 말았다. 한국말도 잘 못하는 주제에 영어는 무슨. 아무튼 2, 3미터 폭이니까 그리 말한다고 완전 거짓은 아닐 것이었다. 6, 7미터를 뛰어넘겠다고 한 서양인이나, 2, 3미터를 보듬겠다고 하거나.

     크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역사의 순간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하여가」와 「단심가」로 남은 두 사람 그리고···. 죽음을 예감한 순간 포은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객들을 감지하고서도 친구 집에 들려 술을 마시고 집으로 향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부모가 주신 몸이라 맑은 정신으로 죽을 수 없어서 취했다라거나, 흉한이 눈앞에서 흉기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싶지 않아서 말을 거꾸로 타겠다고 했다던가. 숨진 자리에서 대나무가 자라기 시작해서 원래의 이름 선지교善地橋가 선죽교로 바뀌었다지만, 2008년 10월 개성의 기후에 그 대나무가 자라고 있을 리 없었다. 갑작스레 다가오는 ‘··· 어떠하리’에서  ‘··· 가실 줄이 있으랴.’ 사이 생과 사의 거리. 영과 욕의 거리. 포은의 순간, 방원의 순간.

     역사의 아이러니는 극에 달할 때가 많다. 그 방원이 즉위 원년에 포은을 영의정으로 추증했음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역사학의 기본적 한계가 그런 것이다. 조선 개국 반대자 포은을 조선건국의 영웅 방원이 신원을 결정하다니.

 

     지금의 돌다리는 사람이 건널 수 없도록 아예 돌난간으로 둘러있었다. 후손인 유수留守 호인이 세운 별교에 해당하는 난간이었다. 돌다리 동쪽 한석봉의 글씨 ‘선죽교’가 뚜렷한 비석도, 돌다리 서쪽 비각 안에 있는 영조의 어제어필인 포충비褒忠碑와 고종의 어제어필인 표충비表忠碑도 소용없었다. 핏자국만이 중요했다. 방문객들은 간신히 난간을 붙잡고서 안내원이 가리키는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 한 지점에서 불그레한 핏자국을 상상(?)해 내야 했다. 정말 핏자국을 보아야 했다.

     해방 후 백범 선생이 선죽교를 찾았을 때까지는 핏자국이 실제로 보였다고 전해진다. 선죽교두혈善竹橋頭血 인비아불비人悲我不悲 충신당국위忠臣當國危 불사갱하위不死更何爲 - 충신이 나라의 위기를 당해 죽지 않고 또 무엇을 하리요··· 라면서 마땅한 포은의 죽음을 마땅히 슬퍼하지 않았다는 백범의 순간을 생각했다.

     또한 선생의 마지막 순간의 피를 생각했다. 경교장에 흩어진 피, 핏자국. 집무실에 흘린 피는 스며들자마자 곧 청소되었을 것이다. 명색 국가유산으로 남아있는 경교장을 피의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나님이 소원을 물으시면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했다던 선생이 흘린 피, 핏자국. 그런데 승욱은 담임신부님이 언젠가 ‘베드로 백범 선생’이라고 말해서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가 종부성사를 받았고 명동성당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청년 시절 동학에, 사찰에 피신 시절 원종이라는 법명까지 받고서 불교에, 궁극적으로 기독교, 그러니까 개신교에 귀의했다는 백범 선생이 종부성사를 받으셨다고? 놀라운 종교의 힘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종교에, 여러 종교들에 머리를 숙이며 돌다리에서 내려왔다.

 

     위대한 인간들의 죽음의 핏자국은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보존된다. 승욱은 언젠가 그리스를 여행하게 된다면, 델포이에 이어 꼭 미케네에도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 낮은 산정에서 아가멤논의 피로 물들었다는 붉은 돌무덤의 잔훼를 보리라. 10년 트로이 전쟁의 영웅으로서 드디어 돌아온 자신의 성에서 맞은 죽음은 아이러니의 극치였다. 느긋한 목욕탕에서 아내(와 그 정부)에게 살해당하며 ‘단도처럼 날카롭게 피를 내뿜으며 그 피 이슬의 검은 소나기로 아내를 치며’ 죽어갔다는 마지막 순간, 그 핏자국이 바위에 녹아들었을 순간을 떠올렸다. 길 건너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바라보니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표충비 마당의 웅대한 은행나무가 역사를 시위하고 있었다. 그 아래 지나간 그 수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들의 그 수를 가늠할 수 없는 순간들을 간직한 채로.

 

 

     다음은 4차선 시멘트 길가 주차장에서 빙 돌아 올라간 숭양서원을 거쳐서 마지막 코스 고려박물관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고려성균관에 자리했고, 마당에는 500살이 넘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늘한 기운을 드리우고 있었다. 4개의 전시관에 나누어진 1,000여점의 유물을 관람하려면 최소 일주일은 개성에 머물러야 할 일이었다.

     승욱은 그 중 하나는 도저히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고려시대 〈노비를 팔고 사는 값〉이라는 도표를 마주했던 순간의 놀라움이었다, 어른 녀자종(15세~50세) 120필, 남자종 100필, 노령이나 어린 녀자종 각각 60필과 50필이라 그려져 있었다. 노비들이 실제로 사고 팔리는 물건이었다는 확고부동한 증거였다. 그런 사실을 사료로서 알고 있던 것과 막상 두 눈으로 도표를 보는 순간은 사뭇 달랐다.

     그런데 어떻게 여자종이 더 비쌌데요?

     관광객들 중 누군가가 물었다. 잘 차려입은 한복에 하이힐을 신은 안내원의 대답은 그럴싸했다.

     녀자는 많은 노비를 생산할 수 있어서 그런 겁네다.

     북에서도 자본주의 논리라니. 그 순간 군집한 사람들 중 누군가 남자 목소리가 북한 말투를 흉내 내면서 킥킥거렸다.

     녀자는 밤낮으로 부리니까리 그렇습네다!

     아, 이 무슨 논리가! 자본주의 논리보다 더 저열한 발상이었다. 남쪽에서 온, 너절한.

 

     하지만 정말 숨 멎을 일은 따로 있었다. 그 옆 나란히 올라간 막대그래프에서 가장 높은 것은 400필이라는 소 한 마리 값이었다. 소만도 훨씬 못한 노비의 인생! 하긴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자유를 잠식당하고서 살아간다면, 인간이면 뭣하고 소면 뭣하겠는가. 헉! 너는 지금 몇 퍼센트의 자유를 침식당하고서 살아가느냐. 신, 신들에, 가치, 가치들에, 시금석, 시금석들에 얼마만큼을. 명상에 들어가야 할 순간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어지는 토기와 자기의 전시실에 들어갔다. 순간 처녀청자 총각청자들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스쳤다. 좀 전의 녀자종 형상인가. 아니, 간다라풍 청동불상이 모셔진 작은 전시실에 불쑥 나타난 것은 남자종이었다. 그는 승욱에게 익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더라···.

     휴우, 따라올세라 고개를 내저으며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왔더니 바로 야외박물관이었다. 1,020년에 지었다는 현화사 7층탑이며 고려 초에 세운 개국사에서 옮겨왔다는 석등 등 볼 것들이 엄청 많았다. 해는 역광이 되어 들었다 났다 하면서 독특한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했다. 구름 속에서도 비치는 예의 그 그림자에 휘둘려 우표전시관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 대신 왠지 북한의 풍물을 조금은 사가지고 와야지 싶었다. 백두산 때 깨져서 실패했던 꿀병은 쳐다볼 생각도 없었다. 말린 나물들, 어머니가 좋아하실 나물감들은 부피는 컸지만 가벼웠다.

 

     시간이 빠듯한 듯 버스는 덜컹거리며 시가지를 달렸다. 멀리에서 거무스레한 복장들에 검붉은 스카프를 두른 아이들 무리가 보였다. 아이들은 목에 나라를 걸고 다녔다.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아이들, 배드민턴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 더 큰 학생들도 보였다. 놀이의 낄낄댐보다는 훈련의 진지함이 하늘 끝까지 뻗어나는 듯 했다. 그밖에는 조용했다. ‘식료품상점’, ‘과실남새상점’, ‘전기기구수리’ 등 상호가 눈에 띄었다. 어라, 상호에 고유명사가 없었다. 판자에 쓰인 ‘종합편의’나 ‘아동백화점’ 입구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이 모든 회색의 그림자며, 미동도 없어 보이는 정적은 승욱 자신의 눈 탓이라 믿고 싶었다. 선입견의 렌즈.

     마지막으로 돌아본 개성공단 내부 지역에서 ‘로만손시계’나 ‘GS용인전자’ 등 우리가 흔히 보던 간판에 가슴이 찡했다. 남과 북의 우리들이 함께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공장 안의 순간들을 상상했다. 수박 겉핥기라도 개성공단을 돌아보는 것은 참 좋았다.

    아차, ‘참 좋았다’를 인간이 함부로 써도 되나 싶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손수 만드신 것이 참 좋았다고 하셨지.(창세 1: 2,4 ···) 하지만 좋은 것은 좋은 것이리라. 사람들이 섞이어 일하고 그것으로 살림살이에 도움이 된다면, 한솥밥 먹는 것이 별 것인가. 그렇게 섞이다 보면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 엷어질 것이고, 우리도 머지않아 독일처럼…. 낮꿈을 꾸는 것만큼은 자유다. 평상시 미래에 무심하던 승욱으로서 스스로도 놀라운 생각이었다.

 

     버스는 다시 군사분계선으로 향했고, 마침내 북측 안내원들이 하차하고 현대아산이 마이크를 잡았다. 문상-개성 간 수송해야 할 물자가 있건 없건 날마다 정한 시간에 열차를 운행한다는 멘트에 가슴이 메었다. 철길이 끊기지 말라고, 조금씩 조금씩 더 길게 이어질 미래를 위해서.

     저녁을 향하는 비무장지대 안의 풍경은 다시 대결의 모습이었다. 얼핏 보아도 더 높은 깃발을 휘날리고 있는 쪽은 북이다. ‘평화의 마을’ 귀성동에 자리한 붉은 인공기는 165m, 우리 ‘자유의 마을’ 대성동에 위치한 태극기는 100m 높이라 했다. 처음엔 며칠 자고나면 북쪽에서, 또 며칠 자고나면 남쪽에서 깃발 높이 올리기 경주가 벌어지곤 했었는데, 우리가 멈췄기 때문이랬다. 멈추기를 잘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도보로 건널 때 방송에서 보았던 샛노란 횡단선도 거무스름 변해있었다. 페인트를 태워버렸다는 설명이었다. 정치적 마인드란 허무했다.

     정치적··· 아, 그 여학생, 날으는 황새! 이 길은 아닌, 판문점이었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행하게도 문 바오로 신부님과 함께였지. 일행을 기다린 것은 동지들의 환영인파 대신, 유엔군과 안기부 수사관들이었다지, 경찰 헬기와 더불어. 놀라웠다. 세상은 기이한 일들로 넘친다. 그 어느 것도 주목받을 행동이라고는 시도해본 적 없는 승욱은 세상을 앞서나가는 사람들 사건들을 이해하기도 늘 힘들었다.

 

     5시 정각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시간이었다. 북측 통행검사소 - 우리 측 남북한출입소 통과로 개성방문이 끝났다. 처음 안내대로 카메라들을 하나하나 검사 당했다. 노비 도표 사진이 걸릴까 걱정이었지만 괜찮았다. 잡동사니 속에 밀어 넣어둔 박연폭포의 돌멩이도 X레이에 걸리지 않았다. 일찍이 독일에서 배운 것, 괴테 인스티투트에서 만났던 영국 학생의 말이었다. 여행지 기념으로 지방마크가 그려진 은 티스푼들을 사 모은다고 했다. 승욱은 그저 작은 돌멩이를 호주머니에 넣어오곤 했다. 그것이 실은 자연훼손으로, 큰 불법인지는 모르는 채로.

     누군가는 묵주를 돌려받는다. 종교 관련이라서 맡겨야했었나. 저쪽에서는 아예 반입불가 품목이라고 압류되었을 소니SR12 카메라도 돌려받는다. 엄격하다, 참. 어둑한 출입사무소를 빠져나온 뒤 일행은 다시 임진각행 셔틀을 기다렸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에 왔다.

 

     그로부터 정확히 35일 뒤 북한 길은 막혔다. 개성에서의 순간들은 다시 완전한 장막 속 과거가 되었다. 개성관광 중단 뉴스가 나온 날 강사실도 술렁였다.

     어라, 우리 거기, 아슬아슬했구만.

     불과 한 달 전이라니.

     그러니까 2008년 가을, 그날까지는 분홍빛 미래가 있었네, 연회색을 띤.

     앗! 연회색을 띤 분홍빛! 이런 표현은 분명 표절이지. 승욱은 말하다말고 고개를 저었다. 오래전 동서독 시대에 어떤 서독 작가가 미래의 희망으로서 사회주의라는 분홍빛을 말했다는 글을 본적이 있었다. 분홍빛 미래이지만, 희망이 적어서 회색을 띈 것이라고. 누구였더라···. 독문과 수업듣다가. 연두가 이끌었던 수업. 혹시나 고개를 돌려 찾았지만 독문 강선생은 보이지 않았다.

 

 

     특별한 그런 순간들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다른 순간들을 살았다, 살아냈다. 속앓이 연두 또한 아스라이 먼 옛 순간으로 멀어져갔다. 비효율적이지. 무슨 필요가 있어.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어떤 사람은 변치 않고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 지나간 순간들에 의미는 없었다. 순간을 살면서 어떤 의미인지 깨닫기는 쉽지 않다. 선택의 순간인 것을 깨닫는 것은 더욱 어렵다. 깨닫고도 그 선택을 망설이던 순간들···. 얼마나 괜찮은 선택들이었는지 또는 얼마나 어리석은 결정들이었는지···. 인생이 순간이라는 파편들의 합인 것을, 연관이 있건 없건 파편들이 섞인 어떤 것임을 깨닫기는 어려웠었다.

 

     많이 익숙해진 캠퍼스, 새내기 시절부터 치면 어느덧 스무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타강사 아닌 그냥 대학강사 십여 년, 아리송한 기대를 품은 비슷비슷한 젊은이들과 가까이에서 무수한 순간들이 지나갔다. 외형적으로는 또래들도 학과에 따라 전임이 되어갔다. 전임강사가 된다는 의미는 방을, 자신의 연구실을 소유한다는 의미였다. 개성을 존중받는 연구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구별은 너무도 확연했다. 미래가 있기도 없기도 달랐다. 가끔은 수호천사를 지닌 젊은 학자들이 사뿐 내려앉았다. 천사의 날개를 숨겼겠지. 타과 교수라고는 해도, 직접은 만날 일이 아예 없다 해도, 얻어들은 대로 또는 그들의 저서들을 맞닥뜨리며 받는 충격은 그대로 충격이었다.

     나머지는 자긍심은커녕 점점 우거지상들이 되어갔다. 불혹의 우거지! 승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 ‘우리 강사들’은 문교부의 교원 분류체계에 정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강사로 이루어진 분류의 마지막을 담당했다. 최말단이지만 공식 체계 안의 존재가 되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인가 싶었다. 강의료 (인상)규정도 있었다. 반면에 계약의 조건들이 탄탄 또는 깐깐해지는 부수적 문제도 생겨났다. 차츰, 다음 단계에 오르지 못하리라는 판결을 받은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그런 위기의식은 확실한 무엇으로 굳었다.

     다음 닥쳐올 순간이 그려졌다. 냇물을 흘러가다가 가벼운 언덕을 찾아 어미를 형제들을 따라 오르지 못하고 번번이 떨어지곤 하는 오리새끼의 이미지였다. 결국에는 쓸려가 버릴지도 몰라, 물길에 쓸려···. 그런 밤이면 어스름 천장에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표정의 남자종이 나타난다. 두 눈과 코가 자신을 닮은 종, 다른 삶을 찾을 수 있거나.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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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광주,  vol. 23, 2025년 12월, 325~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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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6. 3. 3. 17:58

침묵13 – 해후


 

 

그는 병난 시계같이 휘둥그래지며 멈칫 섰다.

- 박용철 「해후」 전문

 

 

     해후, 뜻밖의 만남을 그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남이라고. 그 순간 승욱은 ‘병난 시계같이 휘둥그래지며 멈칫 섰다.’ 숨이 멎었다. 뒷모습에서부터 순간 알아차렸다. 스칠 때였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에서 알았다. 세월이 흘렀다고 하면 흐른 시간임에도 그 찰랑거림은 눈을 유혹했다. 아니, 그 이전에 코를 습격해서 숨을 멎게 했다.

 

     좁은 길, 좁은 산길이었다. 백두산 한 귀퉁이가 갑작스럽게 드러난 것이 겨우 몇 분 전이었다. 너무나도 가까이에 솟아 있었다. 해발 한참 높은 자리에까지 차로 올라온 탓인지 뒷동산보다 미약해 보이는 언덕이었다. 모래와 자갈뿐인 산에서 신성은커녕 생명감마저 느끼려야 느낄 수 없어서 이상했다. 이렇게 평범할 수가. 산은 산이고 숲은 숲이잖여, 어디라도 바람 쐬러 다녀오자고 하면 늘 시들하게 대답하시는 어머니 말씀이 맞나 싶었다.

     아침에 호텔을 출발할 때는 고산의 환경을 견딜 수 있을까 염려스럽다고 미리 니트로글리세린을 혀 밑에 넣어 녹이는 일행도 있었다. 탤런트처럼 예쁘게 꾸민, 젊어 보이는 여자였다. 산 아래 주차장에 내리자 산정까지는 다른 정해진 차편들로 오른다고 했다. 두 장의 입장권(?)을 받았다. 사람마다 두 장씩이었다. 그 후로는 ‘우리 일행’의 개념도 없이 아무렇게나 숫자대로 태우고 끊고는 해서 난감했다. 마치 번호가 붙여진 짐짝이었다. 그렇게 반시간 정도를 달렸고, 다시 6인승 지프차로 바꿔 태워졌다. 미간이 실제로 찌푸려졌다. 곡예운전은 20분도 넘었다. 묘기 대행진에 나오는 것처럼 흔들흔들 덜컹거리며 올라갔다. 낯선 차창 밖 풍경에 저절로 눈이 갔다. 뾰족한 꼭대기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여러 마리 나란 나란히 서있는 소들의 허리나 엉덩이를 닮은 지형이었다.

 

     어디였지? 곰소였나, 서해 바닷가, 물 빠진 너른 바닷가의 사진이 떠올랐다. 음악 하는 친구, 한두 번 만난 불문과 손 선생의 친구가 어느 자리에서 곰소의 바닷가 사진을 들이밀면서 감탄했었다. 여기, 골골 물 빠진 길들로 패여 가지고, 푸짐한 아니 육중한 여자들의 엉덩이야. 늘어 엎어진, 아, 이 모습들···. 사진을 확대해가면서 들이밀었다. 와우, 놀라워. 동해와는 너무 다른 서해 바다들, 왜 이런 푸근한 바닷가를 묘사한 작품들이 없을까. - 직접 노래로 만들어 부르지 그래요? 하려다가 말았다. 사실 그런 바닷가를 본 적이 없었다. 승욱이 난생 처음 경험한 바다는 유럽 대륙붕에 위치한 북해였다. 가까운 바다를 멀리해온 긴 세월을 지나, 난데없이 천, 2천 ··· 8천 킬로미터쯤 떨어진 바닷가에 서서, 아, 바다가 이렇구나, 그 깨달음으로 모래밭이 멀리 멀리 뻗은 그냥 바다면 충분했었다.

     후훗, 산정에 오르면서 바닷가 생각이라니. 구름은 더 걷혔다. 지프에서 내리자 천지를 향하는 설렘이 다시 살아났고, 아직 오를 데가 조금 더 남아서 좁은 비탈길을 오르는 참이었다.

     야, 이렇게 맑은 날에 오다니!

     저쪽에서 우리 일행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이번 행사주관 학회의 회장님이셨다. 더 나이든 교수님을 향했다.

     교수님, 저는 세 번째라니까요. 그런데요, 처음으로 이렇게 맑은 날을 봅니다요.

     세 번 만에 맑은 날이 처음이라···.

     예에! 천지 물 못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 많아요. 오늘 오신 분들 아주 운 좋으신 겁니다.

     우리 일행인 서너 분 교수님들에 이어 여러 서로 다른 일행들이 뒤섞여 올라갔다. 앞선 회장님은 사뿐사뿐 뒷산 오르듯 했고, 소리들은 멀어졌다. 벌써 천지에 닿았을 것이었다. 한국어는 다른 소리들에 묻혀서 조용했다.

 

     노샘, 느리네요! 어서 어서! 우리가 먼저 올라야 했을 것을! 교수님들 기념사진도 찍어드리고.

     한눈팔던 승욱을 박 선생이 재촉했다. 박 선생은 영문과였다. 영문과 교수님 두 분과 명예교수님 한 분이 연길대학 프로그램에 참석하시는 길에 동반하는 길이었다. 영어교육관련 학회의 프로그램은 이틀이었고, 나머지 3일은 백두산 여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리가 남아서 가족이나 친지 동반이 가능하다고. 강사실에서 박 선생이 그 말을 흘렸을 때, 승욱으로서는 귀가 솔깃했다. 산, 백두산이라니. 사실 짧은 독일 체류 중에 바닷가만 떠돌며 공부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고, 결국 알프스 자락의 신학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터라, 백두산 여행은 괜스레 뭉클한 아이디어였다. 알 수 없는 감격 속에 멈칫거리는 승욱을 박 선생이 알아차렸다. 밀어붙였다.

     아, 노샘! 무조건 갑시다요! 백두산인데! 우리 과는 사실 다른 프로젝트 땜에 다들 못가요.

     예, 뭐. 자리가 있으려나 했지요. 신청할게요. 그렇게 나선 길이었다.

 

 

     익숙한 말소리들이 들리며 젊은 남녀들이 바짝 앞으로 추월해 나갔다. 그룹까지는 아니지만, 아니, 그룹여행으로 보였다. 커플룩도 보이고···. 그 뒷모습 하나가.

     그 높이 그 아득한 곳에서라니. 뜻밖이고 뜻밖이었다. 연두였다. 연두가 아닐 수 없었다. 연두를 연두의 뒷모습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승욱은 굳었다. 세상이 멈췄다. 2,000미터가 넘는 산길을 올라와서 세상이 멈췄다. 몇 발짝 천지를 앞두고 세상이 멈췄다. 그는 주저앉았다. 쓰러졌다.

     놀란 것은 박 선생이었다. 뒤돌아보던 그는 다 내버려두고 순간 승욱을 향했다. 다행히 승욱은 옆으로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느낌은 없었다. 그냥 아득했다.

 

     형, 쉿, 조용히!

     형? 여자애가 그를 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무엇인가에 감전된다. 여자애는 손끝으로 그의 팔을 가만히 누르면서 머리맡에 앉아 있다. ㄱ의 손끝과 ㄴ의 팔은 전류가 통하는가. 깜깜한 세상 속에서 가늘지만 번쩍번쩍하는 전류만 보인다. 소리 없는 마른번개다. 살살 간질거리는 머리카락 때문에 다시 한 번 전류에 휩싸인다. 회색 장막이 덮친다···.

 

     노샘, 승욱 형! 형! 박 선생은 그를 흔들었다. 그는 다른 동작을 할 수 없었다.

     그게요, 전류가 흐르려면 전위차가···. 승욱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다가 눈을 떴다. 하늘뿐이었다. 하늘 속에 둥실 떠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눈이 감겼다.

     얌마, 사내새끼가 뭣이여! 꼴싸를 봉께 먹물쟁인갑네! ··· 아이고, 야가 또 실려왔네이. 불안장애여, 뭐여! 인자사 일병 달았고만, 이래 싸면 지대로 전역이나 하겄냐! 얌마! 털고 살어! 스톱이 뭔 말인가 알겄어? 알어 듣냐고! 사투리 군의관의 목소리가 어른거렸다. 서너 사람 실루엣이 보였다.

 

     아이코, 다행이요! 노샘 뭔 일이요! 정신 들어요? 뒤로 넘어졌더라면 머리가···.

     저기 길 옆으로···, 나 옆길로. 사람들 방해···.

     치이, 이런 순간에 다른 사람들 걱정할 일이요!

     그 사이 그들 일행 중 몇이 합류해서 그는 길섶에서 더 안쪽으로 옮겨졌다. 잠깐이었기 망정이지 소동이 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물이며 이름 모를 음료들을 건넸다. 이마를 짚어 보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더위 먹었나 했더니 열은 없네요, 다행히. 젊은 사람이 왜 이리 부실해!

     잠깐만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의식 소실은 아니고··· 전에도 쓰러진 적 있나요? 어지러웠어요? 메슥거렸나? 하긴 그런 느낌 들기도 전에 쓰러지지 뭐. 피부는 창백해도 식은땀은 없네. 나, 간호사예요.

     아, 예. 감사합니다. 박 선생이 연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가끔 이런 일이, 미주신경···.

     에고, 알고 있으니 다행이고. 그치만 습관성 되면 안 되죠. 여긴 그늘도 없어서.

     별 일 아닙니다. 모두들 어서 천지를···.

     어머나, 살아났네. 우릴 걱정하는 것 보니까. 누군가 어깨를 흔들흔들해주더니 일어났다. 사람들은 안심했다. 흩어졌다.

     노샘, 어쩌다가. 우리가 순간 넘 속도를 냈나. 박 선생은 여전히 걱정인가 보았다.

     박샘, 나 괜찮아. 이유 없이 그럴 때가 있었어요. 군대 때도 여러 번, 그 전에도···. 천지 보고 와요! 쉬고 있을게.

     그건 아니지. 다 왔는데. 쫌만 더 쉬다가 함께 다녀옵시다!

     아, 완전히 민폐를 저지르고 있었다.

 

     조금 있다 보니 일행들이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간호사 아주머니는 다시 승욱 쪽으로 왔다. 천지, 요 바로 위예요, 다 왔어요. 얼굴 색 괜찮은데 웬만하면 올라가서 사진만 찍고라도 와요. 여길, 백두산 천지를 언제 또 오냐고요!

     정말이지 키만큼만 올라가면 될 듯 고지가 눈앞이었다.

     되겠어요? 가겠죠? 나 혼자는 안 올라갈 것이니. 박 선생이 졸랐다.

     앞서 올라갔던 일행들이 내려가는 것을 보면 문제의 그 일행들도, 연두가 함께 왔을 그 일행도 벌써 내려갔을 시간이었다.

 

     봤을까?

     나를 알아봤을까?

 

     짧은 시, 두 줄 뿐인 시가 떠올랐다. 미쳤구나, 너. 봤으면, 알아봤으면 어쩌려고! 승욱은 애써 사건(?)을 평이하게 정리했다. 다만, 오르막이라 앞쪽이 높았으므로 그 머리카락이 바로 그의 눈높이에서 찰랑거렸을 뿐이다.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는 강아지풀 냄새, 강아지풀 가루··· 이런 건 착각이다. 착각이야. 착각이어야 했다. 말도 안 돼. 하나, 두울~. 승욱은 애써 깊은 숨을 쉬면서 천천히 나머지 몇 미터를 올라갔다.

 

 

     호수, 깊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기슭이었다. 올라갈 때의 가벼운 경사면과는 비교가 안 될 가파른 깊이였다. 천지는 미궁이었다. 3, 4백 미터 깊이라더니 표면은 움직임도 없이 육중하다. 흑수라 불리 듯 정말 어두움에 쌓여있다. 순간 저 끝이 지구의 중심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 깊은 아래··· 더 아래··· 마그마가 끓고 있을 그곳은 지구의 중심, 지구의 자궁이었다. 아찔함에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이곳에를 어떻게. 승욱은 새삼스레 몸을 떨었다. 대학원 진학 전 이런저런 독서에 푹 빠져있을 때, 세계의 신과 신들에 대해서 무작정 읽고 있을 때, 하나의 소망을 품었었다. 그리스, 세계의 옴팔로스, 배꼽이라는 곳 델포이에 가보고 싶다. 헤브라이즘 이전의 역사, 헬레니즘의 매력에 파묻혔을 때였다.

     파르나소스 산정의 아폴론 신전, 깊은 신실에서 신탁을 받아 나오는 피티아, 정확히는 그 흔적들이 남아있는 델포이는 짙은 안개에 쌓여있었다. 승욱은 그 안개 속에 있었다. 세기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 또한 예로부터 신전 안쪽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니?! 누구의 말이면 어떤가. 그노티 세아우톤, 그노티···.

     그 안개 낀 산정이 왜 백두산 천지 앞에서 떠오르는가. 무슨 맥락이 없었다. 현상이 그랬을 뿐이었다. 파르나소스 산 높이 또한 백두만 하겠지. 너는 자신을 아느냐···. 고개를 젓던 승욱은 이곳이 백두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천지의 물에 발을 적셔보고 싶다는 충동에 내몰렸다. 유럽 끝 북해에서 난생 처음 바닷물에 발을 적셨던 그때처럼. 그 차가움, 각성, 바닷물의 정체를 느꼈던 그대로 이제 천지의 물을···.

     노샘, 노 선생니임!

     박 선생이 그를 낚아챘다. 거긴 위험해욧! 왜 그래요, 조금 아까 넘어지고도 또! 사람 놀래키는 재주 있어요.

     ···.

     자, 이쪽으로! 여기 사진 한 번! 아무캐도 사진은 남겨 가야지요.

     사진은, 그러네요.

     고개를 들고 보니 왜소한 청년의 옷 가슴팍에 006이라는 번호가 크게 붙어있었다. 수인도 아닌데 웬 번호일까.

     여기 사진 열두 장 4만원. 여기 내 번호 잘 봐두시오.

     청년은 유창하지 않으나 한국말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이었다. 관광객들의 카메라로는 도저히 잡히지 않는 호수 표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는 알바들이었다. 사진은 즉석에서 박 선생이 챙겼다.

     아, 까마귀는 한 마리 안 보이네. 백두산 까마귀 어쩌고 속담도 있던데.

     맑은 대낮에 까마귀 뭐요, 뭔 뻘소리. 오늘 진짜 이상하셔!

     시간 때문에 둘은 서둘러 내려왔다. 일부 일행들은 버스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더러는 기념품가게에 들렀거나 천지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거나. 다들 다가와 말을 거는 것으로 보아 승욱의 소식이 퍼졌나 보았다. 다시 지프에, 이어 친환경버스에 올랐다. 하산이었다.

 

 

     조선족 안내인이 부러 백두폭포라 부르는 장백폭포 앞에 이르자 버스가 멈췄다. 폭포관광은 도보였다. 비껴 옆 입구를 통해 오르면서 사람들은 벌써 멀리 하얗게 반짝이는 계곡에 놀라서 탄성을 질러댔다. ‘백두산에 걸린 두 필의 비단’이라더니, 말 그대로 그렇게나 은색으로 빛날 줄은 몰랐다. 입장료를 낸 뒤 그 지점부터는 길이 갑작스레 가팔라졌다. 더 가파른 층계를 오르자 폭포 물을 받아 고이는 듯 흐르는 물이 나왔다.

     누구라도 발을 담가보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 차가운 물에 살짝 씻어보았나, 그 정도였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라고 그리스 괴팍한 철학자 누군가 말했다더니. 나 또한 분명코 이 쏟아져 내려 흘러가는 물에 다시 발을 적시는 일은 없을 것이리라, 승욱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순간은 되풀이 되지 않는다. 연두는 연두의 머리카락은 내 생에서 되풀이 되지는 않는다. 정신 차리자. 그러다가 갑자기 철학사에서는 그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의 원인을 불이라고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 원소이다. 모든 것은 불의 교환물로서 희박과 농축에 의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대립에 따르고, 전체는 강처럼 흐르며··· 아, 이 대목에서 강물이 나왔었구나.

     뭐해요, 일어나요. 발 얼어불겄구만.

     한 번 뿐이라.

     뭣이 한 번요! 우와, 오늘 정말 이상하셔! 내가 돌겠네! 인자 노샘 옆에 바짝 붙어야겄소. 빨리 와요!

 

     서두르는 일행들을 따라 노천지수영지로 향했다. 로露자로 시작된 간판이었다. 더 큰 한글 간판에는 ‘세계 제일의 성산 백두산 자연유황온천수탕’이라고, 그 아래 한자로는 ‘세계 제일적 성산 장백산 천연유황온천욕’이라 했다. 83℃라고 소개된 탕의 온도를 보고는 의견이 갈렸다. 온천욕 하자 말자. 못 말리는 열성 일행들을 기다려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 한 시간 남짓, 길가에 붙어있는 ‘조선족 풍미’라는 냉면이며, ‘순 한국식 음식’이라거나 ‘원두커피’라는 팻말들이 남은 일행들을 불러갔다. 승욱은 그냥 그 집의 커피숍에 앉았다. 앉는 것만으로 10위안을 내는 것이 생경했다. 공항 내의 은행에서 133.90으로 환전을 했었지만 별로 쓸 일은 없었다. 물론 관광버스가 길목 마다 멈춰 선 매점에서 발칙한 상품들도 발견했지만. 정말 발칙했다. 백두산 가는 길 ‘만경관광상품유한공사’였나. 그 가게에는 ‘지저스 래핑’이라는 상품도 있었으니까. 순전히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아니 한국인들을 표적으로 한 상품들이었다. 아예 물건 값이 한화로 표기된. 점포 운영은 북한이라던가.

 

     우두커니 멋쩍기도 해서 커피를 시켰다. 먼저 받아갔던 자릿값을 빼주었다. 어쩌다 여기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고 있나.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있던 승욱은 아무도 모를 표정으로 먼 날들로 돌아가고 있었다. 좀 늦은 나이었지만 교육대학원 진학 후에는 예정대로 공부를 했고, 졸업하면서 한 번 더 선택의 기로가 있었다. 그때 중등교사 임용고시 대신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 지금의 진로가 되었다. 교육대학원 공부를 하다가 깨달은 중등교원의 한계, 특히 자율성이라고는 없는 직업군임을 확인하고서 흔들렸다. 또 다른 하나는 청소년의 인생에 미칠 수 있을 영향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중고등학생들은 크든 작든 선생님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학생들의, 크게는 타인의 인생에 간섭하기도 영향을 미칠까도 관여하기도 싫은 무신경과 무관심이 한몫을 했다. 대학생들에게는 교수의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그 대신 수업의 자율성이 보장될 터였다. 타인을 덜 침해하고 그 나름 공부하면서 강의하는 자유가···. 그러는 동안, 더 이상 도망이 아닌 정주의 길을 걷게 된 이래 자신은 역마살이 없는 정주형이라고까지 믿었다. 더 이상 도망해야할 원점을 핑계대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떠날 욕구가 없다고 믿었다. 원점은 원래 연두가 아니라 애매모호한 자신이었다. 이제는 안정된.

     그런 의미에서 그날 백두산 여행에 설렜던 2005년, 서른일곱 나이에는 평범한 연구자들에게 막연한 가능성으로 보아 인생의 봄날인 셈이었다. 단 하나, 어머니의 다른 바람은, 많은 어머니들의 공통된 바람이었을 그것은 불편한 예외였다. 말 수 없으신 어머니가 별다른 채근은 하지 않으셨지만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투틸로, 왜 남들처럼 여친이 없냐이···.

 

 

     혼자, 여기 혼자 있었네, 노샘! 갑시다, 우리가 좀 늦었네요. 일단 탕에 들어가불면 그거이···. 붉게 상기된 얼굴의 박 선생이 머리를 털면서 다가왔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은 목욕탕에 들어갔나 안 들어갔나 확연히 구분되었다. 다시 출발한 버스 안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저녁에 소를 잡는다는 말도 안 되는 말 때문이었다. 송아지 값이 한국의 1/10, 겨우 50만원이라니! 버스 한 대 일행들 모두가 실컷 먹어도 남는다더라. 안 먹고 가면 손해지, 입맛들을 다셨다. 단체관광에 그런 것이 숨어 있었나, 박 선생도 몰랐다는데 기획 때 벌써 정해진 코스였다 했다.

     오늘 밤 송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위해서 죽는갑네.

     뜬금없기는. 송아지야 죽을라고 사는 것 아니요! 노샘 비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냥, 사람들 육식 과욕으로 덩달아 땅들이 숲들이 턱없이 사라져가니까.

     송아지는 뭐고 땅들은 숲들은 또···.

     얼마 전에 아마존 수목지역들 강탈이 심하다는 기사를 봤어요. 가축 사육 공간을 확보하려고 수림지대를 아예 불태워버리니. 수목들 연소 때문에 구름은 검게 혼탁해지고 강수량은 줄고.

    그런다고···.

    그 정도가 심각하다느만. 지난 반세기 아마존 우림 2/3가 사라졌다면 믿어지나, 축산업으로.

    에이, 사람 불편하게.

    그뿐 아니라니까. 콩이나 옥수수 그런 곡물 총생산량, 세계 총생산량에서 사료에 쓰는 곡물이 거의 절반, 45퍼센트라나. 그거면 인구 20억을 먹일 정도래, 현실에선 10억에 육박하는 인구가 기아에 시달리는데···.

    노샘. 고만, 고만해요. 앞뒤에서 누가 듣겠구만요.

    아, 오늘 송아지고기 맛 버릴 생각은 없고요. 놀라서, 통째로 한 마리를 잡는다니까 놀라서. 암튼 소고기 1킬로 생산에 들어가는 곡물이···.

     쉬잇!

     송아지가 죽기로 된 식당에 도착하면서 승욱은 겁이 와락 났다. 설마 그 일행들이 하필 이곳으로 따라오지는 않겠지. 소 잡아먹는 것, 이것은 대형사고(?)이니까. 안 올 거야, 맞아, 소그룹들이 송아지를 잡을 리는 없으니까.

 

     연두랑 단체로 짜장면을 먹은 적이 있었다. 건너 건너 자리였다.

     뭐 해! 짜장은 비벼야 맛이지. 옆자리 여학생이 참견이었다. 아아니. 나 안 비비고 먹어. 흰 것은 흰 대로, 까만 쪽은 반찬으로. 그러더니 짜장 쪽을 꽤 남기는데,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한쪽으로 치우는 것이 자잘한 고기들 같았다. 얼마나 된다고 저걸 못 먹나. 식성이 까다롭나. 성격도 까다로울까. 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 연두 일행이 송아지를 잡으러 올 리는 없었다. 그 누구도 승욱의 불안을 알 리 없는 그날 저녁은 어느 식사 때보다도 흥겨웠다. 특별한 부위를 욕심내는 사람들을 경탄하면서, 승욱도 송아지를 먹었다. 술들도 꽤 마셨다. 그러면 두말할 것 없이 가무다. 별명이 마이클 잭슨이라는 남자가 일행들이 원하는 노래는 다 불러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몇 곡을 잇다가, 맙소사, 뜬금없이 〈명태〉를 부르는 품이 대단했다. ···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쫙쫙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 지라도~~. 그 남자뿐 아니라 정말 다들 대단했다.

     박 선생도 한 곡조 불렀다. 당연히 팝송으로. 아이 워크트 어크로스 언 엠티 랜드~~. 멜로디는 들어봄직. 텅 빈 길을 걸었네, 너는 사라졌고, 쓰러진 나무들만··· 그런 내용 같았다. 승욱은 굳이 가수도 제목도 묻지 않았다.

     추억에 젖었네, 박샘.

     추억 없는 사람 있나.

     추억···. 추억은 아름다워라. 아니, 청춘은 아름다워라. 청춘은···.

     웬 멜랑콜리. 우리가 뭐 아직 청춘인가.

     청춘은 쉬이 가고, 추억은 켜켜이 쌓여있을 것이었다. 어디에서 살든 가무에 심취하는 민족이 맞다. 삶의 무게, 삶의 슬픔을 즐거운 가무로 뱉어내는지도 모른다. 속내를 토하는 말은 접는다. 이렇게 침묵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가지 않은 길, 연두. 돌이킬 수 없는 길, 연두. 침묵 속의 단어, 연두. 침묵 속의 단어들은 활성화 될 수 없다. 죽은 단어들이어야 한다.

 

 

     용정이라니, 날이 밝자 이튿날도 엄청 설레는 일정이었다. 시인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밝아진 기분 때문인지 조선족 안내원의 너스레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중국에 오십 여섯 민족들이 삽네다. 여자는 그중 조선족을 젤로 치지요. - 엥? 아무리요?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들었다. 믿기 어려웠다. 진짭니더. 울 시댁 뿌리가 전라북도라, 남편이 밖에서는 큰 소리로 뻐김서 다녀도 집안에서는 짠돌이더라요. 여자는 잔소리 말고··· 그런 스타일예. 한데 한국은 계속 계속 발전을 해서는 어느 날, 이삼년 전엔가, 국회에서 여성의원이 남성의원 머리통을 쥐알리는 장면을 보았지요. - 에이, 한국서는 모르는 일이요. 일행 중 누군가가 반박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드라마였을까. 아무튼 그 장면을 본 다음에는 안내원이 남편에게 엇서기도 하는데, 남편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단다. 대중매체가 효과 만점이구나, 쿡쿡. 승욱이랑 박 선생은 웃기만 했다.

 

     용두레 우물이 있던 땅 용정에 터를 잡은 조선인들··· 비암산에는 신성한 천년수가 우뚝 서 있었다 했다. 〈선구자〉에서 노래되는 그 일송정, 그런데 왜소하게 터만 남았을 뿐이란다. ‘독립 사람들’ 모여든다고 파헤쳐진 일송정, 물도 말라버린 해란강, 지류라고 해도 두만강의 지류인데 믿을 수 없었다.

     두만강 아래쪽으로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 백두산 쪽으로 올라갈수록 중국인이 많음다. 지붕 모양만 봐도 압니다. 딱 구별이 됩니다. 사방기와가 조선족의 집이라요.

     맞다. 기와집 짓고 살면서 아들딸 많이 낳아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면 만족했던 우리 선조들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버지 덕에 기와집에서 살면서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승욱으로서는 머쓱해졌다. 어느 세월에 아들딸은···.

     차창 밖으로 인력거가 눈에 들어왔다. 대하극 《토지》에서 본 인력거를 용정 길거리에서 보게 되다니! 시간을 거스르는 실물이었다. 하루 종일 거리에 상관없이 1인당 1위안이라는 독특한 요금제라고 했다. 사람이 끄는 그것을 차마 타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머니는 인력거를 봤다는 말만 해드려도 신기해하실 것이었다. 사진을 찍어다 드려야지, 옛것들을 좋아하시니까. 하지만 동작이 느렸다. 카메라를 꺼내기 전에 인력거는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윤동주의 모교 대성중학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면서도 승욱은 또 다른 관광차들을 경계했다. 그 팀도 어제 백두산 일정이었던 코스였으니까 오늘은 용정일 수도 있었다. 다행히 사방에 다른 관광차량은 없었다. 휴우! 어쩌면 거꾸로 가는 일정도 있을 것이었다. 먼저 용정, 다음날 백두산 그렇게. 그러다가 백두산에서 우연히 딱!

     예상했던 대로 일행들은 맨 먼저 윤동주의 「서시」를 새긴 시비로 안내되었다. ‘사립대성중학교’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구관 건물 앞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라는 잔디의 말이 먼저 반겼다. 2층 기념전시관은 말 그대로 기념전시관이었다. 규모라 할 것 없이 초라한 편이었다. 아래층 내려가는 층계참에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책들이 있다니. 의아해하면서 둘러보다가, 앗,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보였다. 정말 있었다. 20위안짜리 소책자. 공간이 책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질세라 서둘러 책을 사고는 앞선 일행들을 뒤쫓았다.

 

     다시 버스에 오르자마자 책을 펼쳤다. 어라, 파는 책이 있었어요? 옆자리 박 선생이 놀랐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2002년 흑룡강 조선민족출판사 발행이었다. 차례를 살펴보는데 「슬픈 족속」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오오라, 72쪽부터.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우고 /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우고··· 승욱이 되뇌는 사이 박 선생이 계속 책만 곁눈질했다. 일단 넘겨주었다. 슬픈 몸집을 가리우고··· 속으로 웅얼거렸다.

     박 선생은 읽으면서 말하기를 둘 다 하고 있었다. 원래 구상했던 책 제목은 『병원』이었다네, 신기하네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로 정한 것은 「서시」를 쓴 다음이었고, 것도 불발이었다니 새삼스레 애석하군요. 노샘 넋 놓고 있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 오늘 참으로 애석한 것은 윤동주 선생 묘소와 생가에를 못 가본다는 것. 승욱은 대답했다. 아니, 생각만 했었나···.

 

 

     이요, 진짜 곰들을 본다고! 떠드는 소리들에 고개를 드니, 버스는 정말 곰들의 사육지에서 멎었다. 고대 유럽에서는 경외의 대상이었다는 곰들을 현대 동양에서는 인간이 사육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무엇인가 기념품을 사라고 할 모양이었다. 사육장 앞에서 버스를 내릴 때에도 승욱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도주 중의 죄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몸통에 크게 번호를 써 붙인 버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저 버스들 중에 그쪽 일행들이 섞였을까. 그냥 버스에 남을까 하다가 차라리 모자를 깊숙이, 선글라스도 썼다. 고개를 숙인 채 승욱은 사람들 틈에 섞이는 쪽을 택했다.

     천 마리도 넘게 사육되고 있다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어가는 반달곰들을 보게 되었다. 어젯밤 죽은 송아지가 생각나서 목이 비릿해졌다. 인간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마주 바라보는 반달곰들의 흐릿한 검은 눈알은 영겁의 물, 천지의 표면과 같은 물기에 젖어있었다. 슬픔이 번져난 눈물, 울고 싶겠지. 곰들도 울 것이야. ‘질끈 동여맬 허리띠’도 없이. 승욱은 생각했다. 이들도 사람처럼 발바닥으로 걷는, 웬만한 지능의 포유동물이다, 백두산에서 뛰어놀던 유년시절에는 앞으로의 지난한 생을 예감이나 했겠는가. 서너 살인가 네댓 살이 되면 포획당해서 이 수용소로 끌려온다. 인간들에게 최고 건강식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안내인의 설명으로는 주 1회 쓸개즙을 빼는 것은 다만 1년이랬다. 그리고는 20년 정도 자연수를 누린다고. 누린다면, 누릴 수 있다면, 왜 산으로 다시 돌려보내지 않을까. 성년의 반달곰들은, 산속의 반달곰들은 다만 위험스러운 존재일까. 지구는 반달곰들이나 송아지들이 아닌 인간들에게만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이다. 하느님은, 신은, 오직 인간들을 위해서 존재하신다. 공정한가, 그런 의문 대신에 인간들은 신의 선물에 기뻐했다. 선물을 사느라 바빴다.

 

 

     돌아오는 일정은 더욱 바빴다. 다만 돌아오는 일이었다, 다시 연길로, 다시 대련에서 일박, 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20층도 넘는 ‘완다구어지판디엔’, 대련만달국제호텔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경, 너무 빠듯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서두르지 않으려면 짐을 잘 꾸려두어야 한다. 바로 들고 나갈 수 있게. 이런, 여행가방 안에 있던 꿀병이, 어머니 드리려 샀던 꿀병이 깨져있었다. 백두산 가기 전에 들른 가게였다. 건물 주변으로는 ‘장백산정원’ 팻말이 있었고. 길가에는 봉숭아와 맨드라미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다. 아직 여름인데 고지라서 서늘했나, 코스모스도 있었다. 옛날 어릴 적의 뜰 그대로였다. 세상에나, 패랭이꽃들도···. 광식이 동생 광순의 러닝셔츠에 물든 꽃잎, 그 패랭이꽃이었다. 광순이 러닝셔츠 바람으로 오빠를 따라 승욱네 집으로 뛰어들 때였다. 가끔 그러듯이 광식이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소란이 나면.

     휴우, 거기서 유리병에 들어있는 꿀을 샀구나. 그대로 버스 안에다 두었던 것을 연길 대련 사이 비행기를 탈 때 무심코 여행가방에다 옮긴 모양이었다. 어떤 바보가, 바로 승욱이 그랬다. 정신 차려, 노승욱 투틸로! 아무리 두꺼워 보여도 유리병인데, 아무리 따로 잘 포장했더라도 유리병인데, 그것을 여행가방 안에 넣어 비행기 짐칸에 싣다니. 꿀을 살 때까지는 멀쩡했던 승욱이 백두산 산정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뒤로는 아예 정신이 어딘가 밖에 있었나 보았다. 종일, 그 뒷날도 버스가 멈춰서는 곳마다에서 두리번거렸다. 겉으로는 멀쩡한 표정을 하고서는 마음의 동요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한국사람들 관광이라고 하는 것이 코스들이 정해져 있을 것이라서, 언제 어디서 그 소그룹과 다시 마주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승욱을 매 순간 옥죄고 있었다. 정면으로 맞닥뜨린다면, 그런 순간이 닥치면··· 아는 척, 모르는 척, 어떤 표정을, 무슨 말을, 상상만으로도 공포였다.

 

     연아, 대체 우리가 스친 것은 맞는 것이냐? 꿈이었을 리는 없어. 꿈이라도 그렇지, 하필 이역만리 산꼭대기에서 그것도 대낮에. 사실로는 눈을 감았다가 뜬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나를 못 본 것은 틀림없겠다. 봤는데 못 알아본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91, 92, 93, 94, 95, 96, 97, 98, 99 그러다가 새천년, 01, 02, 03, 04, 05. 새천년 아침에는 무엇이 새로워졌을까. 무엇이 결정적으로 변하였을까. 연두가 있다 없다. 그것도 맞다. 확실히 맞다. 연두는 승욱의 20세기에, 지나간 천년에 있었을 뿐이다. 바뀐 그 세월 동안, 그래 세월은 흘렀구나. 강산도 변했구나. 그런데 그 동안 나를, 형이라 부르던 나를, 생각은 한번이라도 해봤냐. 한번이라도. 아니, 미쳤구나, 너. 봤으면, 알아봤으면 어쩌려고!

 

     ···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그래, 차라리 숨죽일 시간이다. 서른 살 시인이 이런 시를 발표했었지. 서른 살에 대단해. 지금쯤 마흔은 되었겠다. 얼마나 더 많이 썼을까, 앵두가 익을 무렵, 연두가 익을 무렵. 승욱은 고개를 저었다. 정녕 미쳤나 보았다.

     깨어진 꿀병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아예 화장실로 옮겨앉아서, 난리도 아니었다. 깨진 유리병 주변의 소지품들하며 아예 트렁크 전체를 다 닦아내야했다. 낼 새벽 출발인데 어디서 어떻게 새 가방을 구한단 말인가. 빨랫감들이 된 것들은 따로, 물도 아닌 그냥 액체도 아닌 끈적끈적함의 대명사인 꿀을, 깨어진 유리 파편들을 처리해야 했다. 넋이 나갔는지 손도 손가락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몇 군데서 피가 흘렀다. 날밤을 샜다.

 

     노샘, 뭐해요! 잠을 못 잤으면 식사라도 제대로 해야지요. 이제 또 강행군인데. 박 선생은 좋은 사람이다. 걱정이 심했다. 눈을 거의 감은 채 집어 삼키기에는 너무 푸짐해서 아까운 아침 식사였다. 여느 아침 식사들에 비해도 대단했다. 한없이 길게 차려진 음식들은 접시에 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식당에서도 비행장에 내려서도 그 다른 일행들은커녕 자신의 일행들도 신경을 쓰지 못할 만큼 흔들거렸다. 비행기 안에서는 앉자마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인천 도착하면 깨워줄 것이다.

 

     검회색 하늘이 지붕처럼 내려앉는다. 세상은 온통 검다. 성긴 나무들 숲 사이로 검푸른 물기가 번져온다. 천지에서 퍼 올린 검은 물이 범람하고 있다. 앗, 호수가 바다닷! 그는 호수에 잠긴다. 바다에 잠긴다.

     순간적으로 온몸을 찌르는 전기다. 진원지는 손가락인가, 어디선가 번개 같은 전류가 흐른다. 어쩌자고 커다란 날개를 편 채 무작정 주위를 돌면서 한눈을 파는 거냐. 아직껏. 깃털 날개를 방향도 모르는 채 펄럭이기만 하면 어쩌라고. 전위차가··· 지면과 연결된 철탑이나 전봇대에 닿으면 참새든 황새든, 사람이라도 감전을 피할 수 없습니다아. 그 목소리! 연두는 감전으로 왔었다. 왔었다가 멈춘, 멀어진, 사라진···. 사라진 순간이었다. 때 아닌 시간, 느닷없는 곳의 연두는 다만 환상. 감춰진 벽을 뚫고 드러난···. 그것은 그냥 가지 않았던 순간, 침묵의 순간이어야 했다.

     고개가 뒤로 젖혀진다. 그는 이번에는 앞으로 고꾸라지는 느낌이 아니라 바다 위에 떠있는 느낌으로 가라앉는다. 가라앉고 있다. 소리 또한 사라진다. 검은 물은 부드럽다. 바닷물이 해안으로 밀려든다면 푸짐한 육중한 모래 언덕에 그를 내려놓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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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교수세계 통권 28호 2025년 12월, 144~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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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