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10. 8. 15. 23:58

병든 고향

 

 아따 거 뉴스 한번 징허데.

징헌 뉴스 한 두 번가.

아 거 즈 각시 죽이고 목매단 놈 말여.

그런 놈 한 둘가.

그래도 이거는 참 험채, 으째 그랄 수가. 친딸 아니던가, 친딸. 친딸을 그래놓고 형살고 나와서는 각시를 차로 밀어?

무슨 일인데들 그러우?


마침내 미아리가 나설 때까지 공능과 월곡 두 여자가 뉴스가지고 죽일 놈 살릴 놈 재판을 한다. 이 청소아줌마들이 잠시 만나는 것은 점심시간이 고작이다. 지하 4층, 그것도 계단 아래. 퀴퀴한 냄새. 바닥은 물이 듬성듬성 고여 있다. 하지만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한 귀퉁이에 이불을 괴어놓았다가, 지난 번 대청소 때 어느 방에선가 내다버린 소파를 가져다 놓았으니 지금은 부러울 게 없다. 이곳은 대학교 평생대학원 건물. 누가 밖에서 들여다본다면 떡 하니 ‘접근엄금’이라는 푯말이 적힌 전기실 맞은편 이 계단아래가 섬뜩하겠지만 대순가.


어마 저거 또 쥐 아이가?

설마, 요샌 아니드만.

나가 그라므 헛소리라?

아니 뭐 헛소리라니. 그냥 당신 겁이 안 많소! 각시 죽인 놈 야그도 벌벌 떨고…….

그기사 암데 가치도 없는 거라서리.


거야 공능이 이해해요, 월곡 저이가 남정네 얘기람 원래……. 미아리가 끼어들어서야 둘은 입을 다물고 김치를 깨문다. 총각김치는 소파 아래 넣어둔 통속에서 익다 못해 쉰내가 나지만 맛있다.


요건 이래 뵈도 중국산 김친 아닌기라.

당신 어깨고 허리고 아파 죽겠다면서도 김친 꼭 해먹나 봐.

그거라도 해 줘야지 어메가 어디 해주는 거이 있어야 말제.

우린 덕분에 돈 안들이고도 웬만한 식당밥보단 낫게 묵네.

그럼 우리가 단돈 86만원 월급 챙기며 식당밥 묵겄어, 미쳤제.


다시 숨을 죽이고 사각사각 총각무우 깨무는 소리만 울려퍼지는 사이 월곡동아줌마는 눈을 감는다. 미쳤제, 하모 미쳤제. 결혼식을 해준다니까 미쳤었제.


친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는 연속극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자리가 국군이었는지 도망친 인민군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그 많았다는 피난민 중 하나였는지 가르쳐줄 수 있기도 전에 어머니를 잃기도 하니까. 그렇게 자란 여자애는 더러 밥이다. 남들의 밥이자, 그것이 내 밥이었다. 한 물 두 물 갔을 때서야 뜻밖에 배가 불러왔지만, 반가움 반. 미래가 깜깜한 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 것이 큰 잘못이었을까? 이리 키울 거라면 말이다.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던 나날. 정말 상처한 사람이 정말 구원처럼 다가왔었다. 처음으로 들어 앉아 살림이라고 차렸고, 처음으로 따뜻한 나날이었다. 따뜻한, 멍청한 나날은 짧게 끝났다. 무섭게 끝났다. 못된 의붓아비는 연속극 말고도 널렸다. 점잖게 생겨도 소용없다. 악마는 원래 여러 얼굴인 것을. 코앞의 홍당무에 팔렸던 내 발등을 찍고 싶었다. 세상 모든 귀신들에게 빌어서 그날 이전으로 땅덩어리를 돌려놓을 수는 없을지. 밤이면 밤마다 하도 용을 쓰다가 그것이 빠지고 말았다. 그것이 빠진 여자들은 원통한 여자들이다. 그것이 빠져도 내 딸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내사 외롭다 못해 불행을 자초했건만, 내 딸은 어밀 두고서도 요모양이라니. 죄인 어미한테 해죽이 웃으려고 애쓰며 시들어가는 내 딸을 어쩔꼬. 딸 데리고 시집가는 죽일 년! 딸 놓아두고 죽을 수도 없는 죽일 년!


고향을 멀리 떠나왔음 머하노.

밥 묵다말고 갑재기 무슨 소리요?

게서 고향 이야기가 왜 나와, 누구 울리고 싶으우?

고향이 어데면 머고. 그래, 고향이 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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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흐름 위에 멈춰 선 시간>  한국여성문학인회 6.25 60주년 기념 특집, 246-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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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