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25. 6. 20. 15:50

 

 

 

 

 

해바라기

 

 

 

 

     해바라기는 그 후 어머니와의 대화를 특징하는 서두가 되었다. 자, 해바라기 합시다! 해바라기가 되는 거예요! 어머니를 움직이게 하는 암호 같은 것, 요술의 말이었다. 50이 채 되지 않은 어머니가 노인들처럼 고관절 골절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러고서 생긴 일이었다. 그러니까 승욱이 1994년 초 독일에서 급히 일시 귀국했던 그 시점을 말한다. 급히, 예정에 없이, 정확히는 베네딕트 보이언 신학대학의 입학허가서를 기다리고 있던 철 이른 봄날이었다.

 

     당시는 유학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승욱이 독일을 선택했던 것은 일단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던 점이 주요했다. 결과적으로는 예상 외로 좋은 선택이었다. 바다를 몰랐던, 바다라면 무심코 두려워했고 무서워했던 그가 북해의 바다들을 경험했고, 냉기를 내뿜는 바닷물을 두 손으로 만질 수 있었으니까. 무엇인가 바닷물과 연결된 체험은 그를 전율케 했으니까. 먼 먼 바다였지만, 어쩌면 바닷속 아버지와 닿을 수 있었다고 느끼게 되었으니까.

     독일 행에서 그가 표면상 내세웠던, 스스로 그리 믿었던 이유는 이냐시오 신부님의 족적을 따라간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주의 연속일 뿐이었다. 도주 –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쳐야할 객관적 이유는 전혀 없었다. 88년 대학 새내기가 여차여차 군에 입대했고. 거기까지는 동료 대학생들과 어슷비슷한 인생 행로였다. 그렇게 제대 이후 서둘러 복학을 했더라면 평이한 일일 터였다. 다만 그는 표면적인 어떤 이유도 없이 복학을 미루고 있었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거의 발작적으로 다른 어딘가를 향해서, 그러니까 독일로 향했다. 왜, 왜 복학을 미루었나. 왜 느닷없이 유학 핑계를 댔나. 그것은 군대로 도망치던 때와 비슷했다. 승욱의 입으로 뱉어낼 수 없는 단 하나의 단어가 목에 걸렸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아니, 누군가를 차마 만날 수 없어서.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 물론 어떤 단어도 발설하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급히 돌아와야 했던 일은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돌아오자마자 향한 곳은 어머니의 시골집이 아닌 보훈병원이었다.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곳, 당숙이 일러주신 곳이었다.

     공항에서 고속버스로, 터미널에서 바로 시내 외곽에 위치한 병원으로 내달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큰 환자복 때문에 더 작아 보였다. 수술 하루 전이었다. 아들을 기다리려고 수술이 늦은 것이면 어쩌나. 그것은 무식에서 온 기우였다. 원래 고관절 수술은 며칠을 기다리기도 하고, 잡혀진 수술 날짜 전에 그가 도착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 물기가 고였다. 반가움의 눈물임에 틀림없지만, 어머니는 입술을 올려서 미소를 지으려고 하셨다.

     투틸···.

     예, 엄니!

     투틸로….

     어머니는 그러고만 계셨다.

     승욱은 눈을 더 크게 뜨고 귀를 뾰족 늘려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나 인자 덜 아프다이. 첨엔 잔 놀랬지만 괜찮아야. 느그 당숙 참, 그냥 냅두제 알려갖고는. 투틸로, 거가 어디라고 요만 일로 와부렀냐. 그런데 소리가 안 들렸다.

     엄니, 투틸로 왔어요. 울 엄니 힘없어 말도 못하시네. 어쩌다가 이렇게. 아니 이만하면 다행, 다행. 글고 아들이 투틸로가 아님 누가 온다고.

     그래, 투틸로, 좀 앙거. 오니라고 피곤흐겄다아. 그리 대꾸하실 것이었다. 그런데 소리가 안 들렸다. 아예 입술을 움직이시지도 않았다.

     승욱아, 근간에 느그 엄니가 말이 더 줄어부렀어야. 욜로, 욜로 와 봐. 엄니 잔 보둠아 봐라이. 올체. 그라고는 대차 좀 앙거라. 엄니 어디 다치셨는가는 알제이? 엉덩뼈, 엉덩관절이랴. 다리랑 붙은 데가 글씨.

     아들은 어머니를, 어머니는 아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 좀 봐, 내가 인나야 승욱이 니가 앉제이! 인자 나는 바람 잔 쐬고 올께이. 말 더 혀 봐! 당숙모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참, 숙모님, 얼마나 놀래셨을까. 고생 많으셨네요. 저 왔으니까 이제 댁에 내려가셔서 쉬셔요. 당숙도 혼자 지내시느라고….

     아이고, 그래도 엄니 옆에는 우덜이 낫제. 어쯔고 니가···. 나 좀 나갔다가 올란다이.

 

     승욱은 늘 지니고 있던 어머니의 목걸이, ‘기적의 메달’을 꺼내서 어머니의 손에 쥐어드렸다. 눈에 촉촉한 물기가 스몄다. 목걸이를 승욱에게 건네주셨을 때의 말소리가 새롭게 들려왔다. 그냥 목걸이가 아니여, 투틸로, 이건 기적의 메달이다이. 신부님 말씀이,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는···.

     어머니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오면서 가늘어졌다. 아니, 물기가 목으로 어깨로까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잡고 있던 바슬바슬한 손까지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목걸이를 손에 쥔 채 어머니는 침대 머리 위쪽을 바라보셨다. 아차, 환자복을 입은 상태니까 있었던 목걸이도 풀어놓아야 할 터였다. 사물함을 열고 작은 가방을 찾아서 넣어두었다. 엄니, 가방 속에, 지퍼 안쪽에다가. 귓속에다 말을 했더니 어머니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고는 이튿날 아침에 수술이었다. 걱정에 비해서 수술 시간은 짧았다. 수술 후 여러 주의사항을 들었을 때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니는 병실로 옮겨오셨을 때도 아직 주무시는 듯 보였다. 듣기는 하실까. 말을 하기가 싫어서 입을 닫을 수는 있겠지만, 듣기 싫어서 귀를 닫을 수는 없을 것이니까. 그런데 안 듣는, 안 들리는 표정을 하고 계셨다. 듣고 싶은 말도 아예 없으실까.

     인간 해바라기요! – 담당 의사는 상당한 유머를 지녔다. 다음 날 일찍 병상에 오셔서는 큰 소리로 말했다. 환자분, 환자분! 눈 뜨세요. 깨어나신 것 압니다. 수술 잘 되었고요. 다른 고관절 환자들에 비해 젊으시고, 또 많이 안 다치셨어요. 곧 회복 되실 겁니다. 자, 이제는 인간 해바라기가 됩시다! 저랑 약속 하세요! 며칠만 빼고, 다음 주부터 물리치료 시작하시죠. 치료 끝나면 저 복도로 나가 햇빛 비치는 쪽으로! 해바라기를 해야 사는 겁니다!

     해바라기라는 단어는 담당 의사의 면허특허인 줄 알았더니 모두가 그리 말했다. 아시죠? 인간 해바라기! 해바라기가 되셔야 빨리 나으셔요! 간호사가 말했다. 환자분, 일어나세요. 연습하셔야죠! 해바라기 하시려면 우선 병실에서라도! 자아, 서 보시게요! 워커를 들고 온 물리치료사가 말했다.

     그렇게 워커에서 목발로 그리고 그냥 설 수 있게 되기까지 병원 근무자들은 일반인들보다는 참을성이 많아보였다. 의사는 목소리가 컸다. 높기도 했다. 노인들 수술을 많이 하다 보니, 노인들에게 말을 하려다 보니 목소리가 커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키가 상당히 컸는데 말을 할 때는 꼭 구부리고 말했다. 환자들 가까이에 대고 말하려고 했다. 참 괜찮은 의사였다.

     2주가 지났다. 이제 곧 집에 가시면 가족들 도움을 잘 받으세요, 영양공급도 철저히! 칼슘이 많이 든 우유, 멸치, 치즈, 콩, 고등어, 꽁치, 뭐냐 등푸른 생선들···. 다 외우기 힘들었다. 가족분들! 잘 들으세요! 환자를 보면서는요, 애기가 왔네, 잘 먹여서 키우자, 그런 심정으로 하세요. 회복기간 동안 관리가 엄청 중요해요, 가만 누워만 계시면 치명적임다. 근육도 평형감각도 잃게 되고, 인지능력도 감퇴해요. 계속 소통하시고···.

     어머니가 말씀을 잘 안하셔서···.

     답답하시겠네요. 뭐, 그래도 투정 많으신 분들보다 낫지 않을까요. 평소 참을성 많으시다면 딱히 할 말 있으시겠어요? 암튼 계속 말 시키고, 뭣보다 계속 움직이시게! 불평 없다고 가만 누워있게 하다가는 큰일 남다. 욕창 하나라도 생겼다가는 폐렴, 요로감염, 뭐 다른 질병들도 병발하거든요.

 

     무서운 예언 같기도 했다. 친절한 설명에도 조금은 겁을 먹은 채로 우리는 시골집으로 퇴원했다. 도시 사는 이모는 병원엔 자주 들리셨지만, 집에서는 주로 당숙모가 어머니 곁을 돌보셨다. 언제 혼자서 걸으실 수 있을까. 한 달은 족히 걸렸다. 해바라기 갑시다! 해바라기 합시다! 그 신호에 일어도 나시고 방 밖으로도 나오셨다. 마당도 따라 걸으셨다. 자꾸 허공을 땅을 둘러보시는 것 같았다. 무엇을 찾으시는 것일까? 그때는 잘 몰랐었다. 돌보지 않은 마당에도 어느새 봄이 흐드러져 있었다.

 

     은방울 수선화 알아? 순수한 아름다움이래. 순수··· 아름다움이 뭣일끄나. 청정하고 순수한···. 앵두는 수줍음이고. 여기 연분홍 복사꽃 이쁘다아. 사랑의 노예란다. 사랑하면 노예가 된다고···.

     생각할 틈도 대답할 틈도 안 주고 혼잣말을 하시던 어머니, 승욱은 어린 시절의 어머니가 그리웠다. 그런 꽃 이야기가 그리웠다. 그럴 때의 어머니는 ‘저 집 말 수 적은 각시’가 아니었다. 하긴 그런 꽃 이야기들을 들은 것은 어머니의 아들 투틸로 뿐이었다.

     튤립들 이쁘제이, 투틸로! 어떤 색깔이 좋으냐? 빨강은 사랑의 고백이랴. 노랑은 슬퍼야, 헛된 사랑이라니. 흰색도 슬퍼야, 실연이랑께 힘들겄제. 우리 집 마당에 없는 보라색 튤립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그네. 그건 영원한 사랑이라여, 영원한.

     우리 집 마당에는 보라색 튤립도 없었지만, 영원한 사랑도 없었다. 영원한 사랑의 부재를 어머니는 일찍 깨달을 수밖에 없으셨겠다. 대상이 사라진 사랑,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라면서 승욱은 그것을 느꼈다. 부재하는 대상은 허상일까. 위로를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할머니 하나, 어머니 하나, 나 하나. 그렇게 살았던 집에는 다른 집에는 다 있는 아버지가 없었다. 훨씬 자라서야 느꼈지만, 자신이 기억하는 한 늘 혼자였던 어머니가 더할 수 없이 안쓰러웠다.

 

 

     재활의 봄에 어머니는 거의 말을 피하셨다. 알아듣고 싶으신 것은 알아들으셨다. 그것이 전부였다. 이비인후과로 입원을 더 했어야 했나. 아니지, 재활치료가 급했다. 말은 천천히 회복하시겠지. 입을 목을 다치신 것도 아닌데.

     당숙모는 가까이 사시는 죄로 어머니 식사를 계속 챙기시다 보니 걱정을 더 하셨다. 느그 엄니, 왜 밥을 못 묵을까이. 밥도 안 넘길라고 허지, 말도 안 허지. 목이 문젠가도 모르겄서야. 목뿐인가. 사람이 생기라곤 없어야. 얼굴 색 잔 봐라이.

 

     여름이 되어도 추위를 타시는지 몸을 웅크리셨을 때에야, 걷는 행동도 정상으로 회복될 조짐은커녕 손놀림까지 어눌해졌을 때에야, 다른 검사를 해볼 생각을 했다. 무슨 과로 가야하나, 상식이 없었다. 수술 때 기본 검사들을 했었는데, 그럼 내과는 아닌 것 같았고, 인지기능이 좀 떨어진다면 신경과인가. 젊은 나이에···. 잘 모르니 그냥 내과로 갔다.

     기본 검사에서 콜레스테롤이며 요산 수치가 이상하다고 했다. 요산 수치가 뭘까. 승욱은 자신의 무지에 놀랐다. 의사는 더 이상한 단어, 갑상선자극호르몬 수치를 측정해보자고 했다. 어머니는 갑상선저하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어려운 병은 아닙니다만, 긴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쩌다가 왜 걸렸을까요? 승욱의 질문에 의사는 ‘왜’라는 것은 없다고 했다. 하시모토갑상선염이라고 이름 좀 복잡한데, 암튼 만성 갑상선염으로 인한 저하증은 근본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어요. 외부 원인 없이도 오래 천천히 염증이 발생해서 호르몬 생성이 부족해진 경우라서요. 그런데 어쩌라고요, 라고 말하고 싶은 목소리였다.

    치료는 간단합니다. 레보티록신이라고 하는 합성 호르몬제를 투여하면 됩니다. 3개월마다 혈액검사 하러 오시고요! 의사는 기본은 했지만 덜 친절했다. 고관절 때 의사에 비해서 그랬다. 세상 의사들이 다 똑같이 친절할 수는 없는 법,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의사 공부를 시작했었을 것을! 의사공부 실력도 안 됐을 테지만, 아들이라면, 아들이라서, 그냥 그런 소리가 나왔다. 왜, 집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판검사 아들이 나오고 그런다는데.

 

     의대생도 법대생도 아닌 아들은, 노승욱 투틸로는, 우선 어머니 곁에 남기로 결정했다. 재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낙엽들 쓸다가, 낙엽을 쓸다 봉께, 먼지들 때문에야···. 독일에서 통화를 하다가 엿들은 어머니의 눈물 때문이었다. 유학이 뭣이라고! 신념도, 야심조차도 없는 주제에.

     베네딕트 보이언은 겨울학기도 포기해야 했다. 9,000km 10,000km를 멀리 떠나 있을 수는 없었다. 짐은, 슈베비슈 할의 짐은 로마에 계시는 가롤로 신부님께 부탁했다. 신부님은 크게 놀라지도 않으셨다. 인생 여정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라. 이상하게 통화 중에 말을 놓으셨다. 이제 제자가 된 것인가. 신학이 아닌 인생학의 제자. 로마에서 슈베비슈 할까지 열 시간 넘게 직접 가실 수는 없었지만, 신부님이 거기 괴테인스티투트 다니실 때 묵었던 집주인에게 일체를 부탁하실 수 있었다. 비용 송금만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해주셨다.

 

     짐이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 짐을 손으로 만졌을 때, 그 순간 무엇인가가 아득해짐을 느꼈다. 현기증 비슷하기도 했다. 눈물이 찔끔 났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승욱은 지금도 숨이 잠시 멎는다. 어딘가의 문을 열다가 만, 열려는 순간 닫혀버린 두꺼운 문의 이미지가 코를 깰 듯이 가까이 닥쳤다. 어쩌면 내밀던 오른쪽 아니면 왼쪽 발등 위로 방화벽 같은 것이 내려오는 느낌에 이 발 저 발을 뒤로 뺀다, 지금도.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어느 발부터 먼저 내딛나···.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아니다, 그런 순간은 오래 전에 지나가버린 과거였다. 과거는 과거였다.

     가롤로 신부님은 그 후 간헐적인 편지에서도 말을 놓으셨다.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기뻤다. 그렇지만 울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직접 말은 어렵더라도 글은 쉽지 않았을까. 글로도 어려웠다. 말이건 글이건 속내는 발화되지 않는다. 다른 스승도 없이 신부님과 소통하면서 지냈다.

    신부님과 편지로 나눈 이야기들 중 「가지 않은 길」에 관해서 했던 말이 늘 남았다. 원문을 보면 ‘두 갈래로 나뉜 길(TWO roads diverged)’에서 ‘둘’은 전체가 대문자로 되어 있다고, 둘은 이 시에서 너무 큰, 매우 중요한 숫자라고 하셨다.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승욱은 썼다. 자신을 위로하시려고 보내신 시니까 답을 드려야 했다. 저는 사람들이 많이 간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지겠지요.

     신부님은 썼다. 지금 말고 훗날에 훗날에 이야기해라. 참, 그 시를 번역한 피천득 씨가 서울대 영문과 교수였던 시절 프로스트를 직접 알고 지냈더래. 프로스트가 한 세대 윗사람이지만 피 교수가 유학했을 때까지 장수했거든. 교수 말년에 쓴 『수필』도 읽어 둘 만한 글이다. 수필 작품이 아니라 수필론. 수필이 문학인가 아닌가 의심이 분분했을 때, 수필문학의 본질을 정의했다고나 할까. 마음의 산책, 독백,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 그런 식으로 수필에 문학성을 부여했으니까.

     박학다식한 신부님! 감탄은 하면서도 수필론에 관한 부분은 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인지 아리송하기도 했고, 수필론 같은 것이 그때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가만, 세월은 흘렀다. 흐르고 흘러서 세기가 바뀌고 강산도 변하자 승욱은 수필이니 뭐니 문학 형식에 관해서도 생각하는 잡학인이 되어 있었다.

 

 

     그해 가을에는 아무튼 복학을 했어야 했다. 독일을 마음속으로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었다.

     투틸로, 유학은 어쩌고··· 한 살이라도 젊어.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계속 함께 있는 아들이 걱정되셨나.

     예, 하지만 어머니는···.

     승욱은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다가 곧 어머니를 생각했다. 스물여섯, 그맘때 아버지와 사별했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오싹해졌다.

복학 마감 날에야 승욱은 등록을 했다. 다시 집을 알아 봐야 했다. 터미널도 보훈병원도 학교도 가까운 곳이라야 했다. 학교에서는 좀 더 멀어졌다.

     어머니, 저 복학하더라도, 저 여기 없더라도 해바라기는 꼭 하셔야 해요, 숙모님이랑, 이모님이랑. 약속 안 하시면 저 복학 못해요.

     근데, 해바라기가 없어야, 투틸로.

     예? 해바라기요?

     왜 해바라기가 없어야.

     그때서야 어머니가 해바라기를 해바라기로 혼동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 나가면 늘 두리번거리시는 품이 잡초처럼 피어 시들시들한 꽃들 사이에서 해바라기를 찾고 계셨나 보았다. 둔감한 아들! 승욱은 해바라기를 심으리라 마음먹었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은방울 수선화도 튤립도 아닌 해바라기를 심었어야 했다. 씨를 심나? 모종을 사오나? 일단 이듬해 봄을 기다려야 했다.

아, 그러네요. 엄니, 봄 되면 투틸로가 해바라기 심을게요, 꼭 심을게요.

 

     가을이 지나가는 속도는 불규칙했다. 주중에는 느리게 주말에는 빨리 가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규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간 캠퍼스가 그냥 예비역도 아닌 늦깎이 예비역에게는 생경했다. 이상하게도 군필 대학생들에게는 복학생이 아니라 예비역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학내 예비군 연대에 편입 신청을 했다고 해서 출결에 지장도 없었다. 군인 성분이라고는 물 한 컵에 잉크 한 방울도 못 되는 사람을 예비역이라고 부르는 관행은 어디서 왔을까. 대학에서 군대로 도망쳐, 다시 외국으로 도망쳐, 그러다가 학교로 돌아온 그로서는 군 시절의 토막이 잊힐 듯도 한데 새삼 예비역이라니!

     지독한 사투리의 여단 의무대 군의관이 문득 떠올랐다. 얌마! 털고 살어라이. 스톱이 뭔 말인가 알겄어? 알아 듣냐고! 미주신경성실신 때의 일이었다. 한글날 느닷없이 한글에 대해 ‘연설’해보라던 문 병장님 생각도 났다. 군 시절이 그립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88학번이면 예비역들도 94년 봄이면 졸업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2학년 2학기로 복학을 했으니 늦깎이는 늦깎이였다. 그냥 예비역 형이 아닌 예비역 형의 형 대우였다.

     승욱 스스로는 또다시 신입생 같다고 느꼈다. 태반은 거의 모르는 얼굴들에 섞이어 무엇이든 낯설었다. 수강신청은 입대 전에 망쳤던 과목들 이수를 우선으로 했다. 나머지 강의과목들을 살피며 갈팡질팡했다. 내가 뭘 알아, 학년 따라 추천된 대로 하지, 뭐. 승욱은 늘 주관이 없었다. 복학을 해서도 2학년 2학기는 뒤죽박죽이었다. 가롤로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둘, 2라는 숫자의 덫이 생각났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 둘, 두 사람 사이가 문제다. 금요일이면 고향집으로 내달았고, 월요일 첫새벽에 학교로 돌아올 때까지 사흘 밤은 사학과 학생 노승욱이 아닌 그냥 아들 투틸로였다.

 

     밤이면 무엇을 하나. 또다시 천장을 바라보는 어두운 밤이 이어졌다. 북해의 바다들이, 바닷물들이 밀려들었다. 바닷물은 천장에서 휘돌다 떨어져내렸고, 승욱은 밤을 새고 나면 흠씬 젖어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바다로 나가 보리라던 북해에서의 기특한 결심은 실현 가능성이 멀어졌다. 밤을 보내려면 전공이 아닌 편한 책들이라도 필요했다. 유럽을 떠돌 때 꽂혔던 이름이··· 맞다! 캉디드!

     헛생각들에 들떠 있다가 캉디드 생각이 났다. 서둘러 책을 주문했다. 이런 소설이 왜 명작일까. 필명 볼테르, 원 이름이 중요하지는 않겠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예수회가 설립한, 웬 예수회가 여기서도, 암튼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그런데 20대, 30대에 필화사건으로 투옥 또는 추방을 당했다고? 50대에도 또? 그런 그가 팡테옹에 안치되어 있고 - 파헤쳐지지도 않고 – 심지어 프랑스를 ‘볼테르의 나라’라고 부른다니. 수상한 위인이었다.

     『캉디드 또는 낙관주의』라 하는 제목은 이름 뜻대로 순진무구한 젊은이가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보인다. 막연히 제정러시아 시절의 대하소설 같은 것을 기대했던 승욱으로서는 기껏 3쪽 또는 5쪽의 짧은 콩트 모음집 같은 구성에 첫눈에 시큰둥해졌다.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온순한 젊은이’가 베스트팔렌 어느 남작의 성에서 조카라는 신분으로 살고 있다. 가문의 교사는 팡글로스, ‘모든 언어’라는 의미의 박식함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세상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가장 좋은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고로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 팡글로스의 이런 가르침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능한 세계들 중 최고의 세계’라는 라이프니츠의 논리 그대로다. 뭐야,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라더니, 철학 에세이인가.

     읽을수록 난감했다. 이런 캐릭터답지도 않은 인물이 왜 필요한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1장부터 등장하는 황당한 광경들은 유럽 소설들에서 기대했던 – 그것은 프랑스문학에 완전 문외한이어서 그랬었지만 - 심각성 같은 것과는 아예 멀었다. 게다가 사학과 학생이 부끄럽게도 듣도 보도 못한 역사적(?) 인물들과 사실들이 수없이 등장하곤 했다. 일단 메모를 해가면서 읽기로 했다.

     그렇게 주말이면 이런저런 독서로 밤을 보냈다. 겨울방학이 되자 아예 어머니 곁에서 지냈다. 어머니는 정해진 대로 병원에 다니면서 다소 회복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 기일에, 설에, 대보름에, 일들이 많고 친척들도 오곤 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봄을 기다렸다.

 

 

     봄날이 되었다. 1995년 봄, 3학년이 되었다. 2라는 글자를 피했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긴 주말을 고향집에서 보내는 대신 하룻밤만 보내고 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서둘러 해바라기를 심어야했다. 모종을 기다리기도 바빴다. 씨를 어디에서 구하나. 4월 어느 주말 이른 아침 불려두었던 씨를 심었다. 담벼락 쪽으로 넓게 1cm 깊이로 씨를 심고는 물을 뿌렸다. 대학으로 돌아온 주중이면 날마다 마당에를 나갈 수 없어서 불안했다. 금요일, 그러니까 5일 후에 집에 가자마자 씨 뿌린 곳으로 내달았다. 슬쩍 눈길을 주니 떡잎들이 나 있었다. 쏜살같이 어머니의 방으로 내달았다.

     엄니, 싹이, 잎이 나왔네요, 해바라기 잎들이.

     투틸로, 파란 그거이 해바라기 잎이었구나. 엊그저께 뭣인가 파란 것들이 올라왔드라. 물을 줬제이, 어쩐지 목이 마를 것 같아서야.

     예, 엄니. 잘 하셨어요. 이제 해바라기 하시면 되겠네요.

     응, 해바라기. 해바라기 하자. 근디 해바라기 꽃말은 뭣일까이.

     꽃말? 엄니, 꽃말 생각이 나셨어? 꽃에 말이 있는 것?

     투틸로, 뭔 말이여? 엄니가 꽃말이 뭣인지도 모르가니. 봐라, 앵두는 수줍음이제. 복사꽃은 사랑의 노예···. 근디 노예라니.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그 옛날의 꽃말들을 다 기억하고 계셨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 입을 닫으셨나, 어머니는 이 초여름 해바라기 밭에서는 말을 제법 하셨다.

     글면 해바라기도 꽃말이···.

     해바라기는 해만 보니까··· 일변단심, 동경 그런 것 아닐까요? 알아볼게요.

     그러네, 일편단심.

     예, 어쩌면 일편단심.

     투틸로 우리 아들, 그새 박사님 다 되셨네. 모르는 것이 없어야.

 

     그렇게 한 여름을 잘 보낼 것이었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6월 하순부터는 맘 편하게 고향집에 있었다. 그때 놀라운 사고가 터졌다. 천재지변도 아닌, 서울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처음엔 말이 백화점이지 작은 열악한 건물이거니 했다. 하, 며칠을 붕괴 장면과 발굴 소식만 틀어대니 결국 어머니도 알게 되었다. 눈물만 흘리셨다.

     그럼 그 수가 다 그 속에 있다냐? 묻혔다냐? 다 찾아내기는 한다냐? 찾아는 내겄구나이.

     순간 『캉디드』의 구절이 떠올랐다. ‘지금 이것이 가능한 세계들 중 최고의 세계’라는 말인가. 작품에서 분명 볼테르는 라이프니츠를 비웃고 있었다. 최고의 세계는 어디에도 없었다. 봄에 해바라기 잎들이 나는 데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도 대구에선가 폭발사고가 났었다. 100명도 넘게 사망한 그 사고를 어머니는 다행히 모르고 지나가셨다. 그때도 백화점 짓다가 그리되었다던가. 암튼 그때는 금요일 사고였고, 곧바로 어머니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릴 수 있었다. 그에 앞서 그 지난 가을 한강다리가 무너져 내렸을 때도 어머니의 걱정은 한참을 갔다.

     한강으로 떨어졌네이. 버스가 통째로이. 그럼 다들 건졌다냐? 어디로 흘러간 사람은 없다냐? 강물은 바다로 가겄제? 어디 바다로 갈끄나? 바다는 다 같을끄나?

     사람들은 다 구했어요. 누구도 흘러간 사람은 없다고요.

     그때도 곧 주말이라서 이리저리 둘러대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고, 사고들에 어머니는 아프고 만다. 어머니를 어쩔꼬! 겉으로는 단정해도 속으로는 심약한 어머니인가 싶었지만, 병약을 더하니 단정함마저도 흐트러지셨다. 성당에 함께 갈 때 보면 미사포를 잊고 가셨다가 놀라시기도 했고, 오른쪽 왼쪽 길이를 다르게 늘어뜨리기도 했다.

 

     해바라기 꽃들이 그때 벌써 피기 시작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다시 해바라기에 열중하셨다. 봉오리가 맺힐 때까지 해를 향해서 고개를 돌리곤 하다가, 꽃들이 피면 그냥 있는 것을 발견한 것도 어머니였다.

     다 자라면 배신한다이.

     엄니, 무슨 배신?

     요놈들이 키가 더 큼서는, 꽃이 다 피어불먼, 해를 안 따라다녀야.

     아, 정말 그래요? 엄니, 해바라기 박사되시겄네요.

     요 줄기들이 뚱뚱해져 갖고는 둔해서 그랑가 모르겄다이.

     엄니, 요놈들 훌라후프 시킬까요? 도로 날씬해져 갖고 계속 해님 따라 돌게.

     투틸로, 니가 농담도 한다이. 엄니 웃길라고 그라냐. 그나 꽃들 참 이뻐. 키가 큰께 기대고 싶어질라그래.

     엄니, 넘어지실라고.

     말이 그라제.

     엄니, 씨앗도 맛있고 건강에도 좋대요. 잘 익으면 볕 좋으니 말리게요!

     그라자이. 투틸로가 묵은다믄 말려사제, 말리고말고.

     줄기를 말리면 가볍고도 질겨서 구명조끼를 만들기도 했대요. 타이타닉 때도 입었다고요, 그런 말은 행여나 튀어나와선 안 된다. 입을 꾹 닫았다. 말을 해서 탈일 때 말을 하지 않는 것의 힘, 위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입안에서 바로 무덤으로 가는가.

 

 

     해바라기 밭에서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엉뚱하게 『캉디드』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리스본 땅을 밟은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대재앙, 그러니까 지진에 휩쓸렸을 때다. 팡글로스 박사는 캉디드가 돌덩이에 다쳐도, 겨우 죽음을 모면한 주민들의 비참상을 보고도 이 모든 일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라며 그들을 위로한다. 인간의 타락과 하느님의 벌이라는 원죄를 믿지 않으시냐는 구급대원의 질문에도, 그것들마저도 가능한 세계 중 가장 좋은 세계에 이미 필연적으로 담겨있다고 응수한다. 인간의 자유를 믿지 않으신다는 말이냐는 질문에는 ‘자유는 절대적인 필연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역시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인용했을 뿐이다.

     그렇게 읽고 읽은 『캉디드』의 독서는 실은 결론을 모르는 상태로 끝났다. 방학 내내 읽고도 모르는 채로 책을 덮었다. 결론을 찾아야 할 마지막 장면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온갖 모험을 온갖 불행들을 겪고 몇 해가 흘러 소박하게 정착한 그들은 터키의 최고승이라는 이슬람 수도승을 찾는다. 인간이라는 이 괴이한 동물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 세상에는 끔찍한 악이 너무 많아서 의문이라는 팡글로스의 질문에 수도승이 말한다. ‘선이 있건 악이 있건 그것이 뭐가 중요해? 술탄께서 이집트로 배를 보내실 때 그 배에 타고 있는 쥐들이 편안한지 아닌지 신경 쓰시더냐?’

     여기에서 무엇을 읽으라는 말일까.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해도, 인간의 행불행은 인간의 몫이라? 하느님이 그것까지 신경을 쓰시지는 않는다? 신의 섭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결정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승욱의 독서능력, 아니 인지능력으로는 그가 읽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부님, 후미에가 『캉디드』에도 나옵니다. 일본을 다녀왔다는 어느 선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놀라운 일 아닌가요? 가롤로 신부님에게 쓰려던 편지도 중단하고 말았다. 그만한 책을 읽었으면 무엇인가 생각 같은 것을, 무엇인가 배움 같은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실망한 승욱은 침묵을 선택했다. 머릿속일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들을 표현할 단어들이 없었다.

 

    볼테르를 더 읽어야할까. 굳이 볼테르가 아니어도 된다. 무엇인가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읽어야 할까. 그러니까 『캉디드』에서는 지금 이것이 최고의 좋은 세계라는 팡글로스 박사를 통해 라이프니츠의 신정론神正論을 통째로 조롱했었나 보다, 그 정도를 읽었다. 그것을 비웃는 볼테르도 따로 좋은 세계를 말하지는 않았다. 인간에게 좋은 세계란 결코 없다는, 있더라도 우연의 산물, 찰나의 것이라는 말이었을까.

    비교를 해서는 절대로, 감히, 안 되겠지만, 그때 당시의 승욱에게 있어서는 좋은 세계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발설되지 않는 세계였다. 누구에게도 발견될 리 없는 혼자만의 세계, 그것은 침묵의 세계였다. 그냥 머릿속 아니면 입 안의 단어들, 그러니까 많은 단어들은 발설되지 않는 것이 좋다. 중요한 단어들은 더더욱 발설되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가 해바라기를 말없이 좋아하시듯,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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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25 여름 80호, 220-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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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강연-강좌2014. 7. 6. 16:02

인류의 지적 진화와 사회의 발전 단계

무등도서관 201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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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인간에게서 물질에게로 - 실증주의에서 신자유주의까지

 

1. 무신론의 탄생

 

언어는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다. 개념들 또한 인간이 만들었다. ‘신’이란 낱말도 우리 인간이 만들었다. 그러면 이 낱말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사람들이 ‘신’ 또는 ‘신들’이라는 말로 누구를 또는 무엇을 뜻하였는가?

신은 언제나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마침내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인간이 주인이 되는 듯한 착각은 착각이었다. 이성은 이성해방의 단계에서도 이신론적인 신의 증명을 시도했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 도 영혼이 특별한 실체라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이신론자였고, 앙시앵레짐 타도의 사상적 무기가 된 『백과전서』(1751~1780)의 편집자 디드로(Denis Dideror, 1713~84)의 유물론적 무신론적 경향은 위험시 배척되었다.

인간 이성이 고개를 들고 신의 역사하심을 회의하기 시작할 때조차 신의 존재는 위대했고 그럴수록 존재 증명이 중요했다. 세계는 무수히 많은 불가분의 ‘단자(monade)’로 구성된다고 한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도 예외는 아니었다. 악의 존재도 세계 전체의 선한 질서를 위해 필요한 전제라고 설명하는 그의 변신론에 따르면 도덕적 세계질서와 이 세계질서를 보장 하는 선한 신이 반드시 존재한다. 현세는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의 최고의 세계’로 간주되었다. 이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의 최고의 세계’는 곧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베클린(Wilhelm Ludwig von Wekhrlin, 1739~1792)이 쓴 「에담치즈의 8층에 사는 진드기의 독백」(1784)은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 치즈의 향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맛은 낙원과 같구나! 얼마나 영양가 있는 음식인가! 내 집은 편안하기도 하다! 헤아릴 수 없이 온통 먹을 것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여! 치즈를 만드신 그분, 우리 진드기를 위해 치즈를 창조하신 그분은 얼마나 전능하고 훌륭하신지! 우리의 존재는 그분의 의지요. 우리의 행복이 그분의 목적이다. […] 더욱이 이 치즈 세계는 가능한 한 최상의 세계다(치즈 주인은 치즈가 너무 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증명하기는 쉽다. 창조주가 더 좋은 치즈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그것을 만드셨을 테니까. 어째서 창조주께서 완전한 것을 뒤로 미루고 평범한 것을 만드셨겠는가! […]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진드기는 한 예일 뿐이다. 모든 생물이 철학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들 모두가 라이프니치 철학의 추종자가 될 것이다. 사자는 사슴을 만들어 준 창조주께 감사하고, 개구리는 메뚜기를 주신 것을 감사할 것이다. 모기는 심지어 인간을 주신 것을 감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생물을 위해서 이 세계가 가능한 한 최선의 것일까? 분명히 모두를 위해서이다. 모든 생물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 세계는 특별히 인간이거나 어떤 생물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앞 강의에서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도와 육체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불과 지능을 마련했다는 신화를 들었다. 현대적 해석은 인간을 ‘결함이 있는 존재’로 이해하며, 인간의 기술적, 조직적 능력들을 인체의 열등함에 대한 보완으로 파악한다. 결론은 이 세상의 생명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다른 생명을 소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낙원에서라면 생계유지를 위하여 이기주의자가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낙원은 없다.

 

고대와 중세의 신앙

 

돌이켜 보면 그리스 철학자들은 올림포스의 신들을 무시하면서 그들을 인간의 작품이라고 선언하였다. 쾌락주의와 견유학파처럼 전혀 다른 행복론에서도 철저히 현세의 삶을 극복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에피쿠로스학파가 말하는 ‘아타락시아(ataraxia, 쾌락)’나 스토아 철학자들이 소망했던 ‘아파테이아(apatheia, 냉담)’의 상태도 현세의 삶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몰두였다.

중세의 중심사상은 현세의 삶에 대한 염려가 아닌 의 존재였다. 최고의 입법자인 신이 존재하므로 도덕적 세계질서도 마땅히 존재한다. 이런 생각이 확고했을 때 인간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은 인간의 모든 노고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불행들과 마지막에 치러야할 죽음이 그 너머 내세에 있는 ‘영원한 삶’, 다시 말해서 모든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통해서 보상된다고 믿음으로써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근대 이후의 종교

 

근대에 들어와서 종교의 위치는 크게 변화하였다. 도덕과 예술이 종교로부터 분화되고, 정치, 경제, 교육 등의 사회제도에서의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신앙의 자유, 철저한 정교분리의 원칙이 대두되었다. 계몽사상과 과학의 발전이 종교의 진리성과 존재의식을 위협하고 있고, 따라서 종교비판도 활발해졌다. 종교는 끊임없이 존재 의의 자체가 문제로 제기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철학은 전능하고 정의로운 유일자로서의 신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왜 선한 신이 악과 불행을 허락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대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도덕적인 이유에서 그런 신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인간이 신을 폐지해 버린다면, 그것이 무신론이었다.

 

● 신의 존재는 헛된 환상

신이 있다면, 나는 그 신이 되고 싶지 않다. 세상의 비극이 내 가슴을 찢을 것이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헤겔의 낭만주의 철학이 여전히 정신생활을 규정하고 있는 동안, 과격한 염세주의자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의 노예라고 보았다. 의지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을 결국 아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사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심적 이성이 아니라, 영원히 만족치 못하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이다. 끝없는 괴로움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전 자연이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 이 근원적인 맹목적 의지는 자제와 동정심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으면 역사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고난을 유발한다.

경험적 현상의 세계는 주관의 여러 형식(시간, 공간 및 인과의 법칙)에 의존하는 단순한 표상에 불과하고, ‘물’자체에 해당하는 것은 의지, 맹목적인 생존의지라고 본다. 무기적 자연에서 동식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전체는 이러한 의지의 객체화와 개별화의 여러 단계일 뿐이다. 따라서 세계는 보편적으로 근거도 원리도 없고, 부단한 욕망에 쫓기어 만족할 수 없는 생은 고통이라고 했다.

 

인간이 자신의 소망들의 이상에 따라 그의 신들을 상상한 것!

구약성서에서는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고 말한다.(창세기 1:27)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시금석이다. 이 말은 인간으로 하여금 거꾸로 신이 인간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의 『기독교의 본질』(1841)은 신학을 인간학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신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소망들의 이상에 따라 그의 신들을 상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멸성이란 개인의 영혼이 불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유적 본질이 불멸함을 의미한다는 주장 때문에 교수직을 포기한 뒤였다.

 

신은 기체로 된 척추동물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헤켈(Ernst Heinrich Haeckel, 1834~1919)은 ‘신은 기체로 된 척추동물’이라고 희화적으로 말했다. ‘생물의 개체발생은 그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생물발생법칙을 제창했고, 환경과의 관계에서의 생물학을 생태학이라고 명명한 그로서는 보이지 않는 인격신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의 등장을 바라노라.

프로테스탄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기독교가 순종과 겸손 등 노예의 도덕을 강조한다고 비판하기에 이른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쇼펜하우어에 심취했고, 그의 사상을 계승하여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 철학을 선도하게 된다.

특히 『그러므로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1883~1885)는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주의에 의한 평등권에 반발하기 위해서 쓰인 글로, 기원전 6, 7세기 최초의 종교설립자로서 ‘선’을 수단으로 하는 인간의 해탈을 설교했던 조로아스터(차라투스트라)를 불러들여, 시대의 오류를 청산하는 자신의 현자를 창조했다. 산속 10년의 고독 이후 차라투스트라는 하산하여, 현세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인 나라를 약속한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의 등장을 바라노라.’ 신들이 죽었으므로, 인간은 스스로 비상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은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아이로 비상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이고 당찬 인간, 즉 초인이 된다고 역설한다. 아이가 순수하다는 것도 기성의 가치체계를 따르지 않아 신선함이 있고 자연본성에 대해서는 절대 긍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자처럼 부정만 해서도 자유로울 수 없고 낙타처럼 맹목적 긍정만 해서도 안 된다. 사자보다 더 부정적이고 낙타보다 더 긍정적이어야 한다. 강력한 부정은 그대로 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절대적 자기 긍정도 도전과 모험을 감행하게 하는 원천이다.

 

 

2. ‘물질’ 인간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기술과 산업은 점점 강하게 생활영역을 침범했다. 과학은 이전에 종교가 행했던 것과 같은 정신적 힘이 되었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종의 기원』(1859)에서 가르쳐준 적자생존의 법칙은 신학적 인간관의 천재지변이었다.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된 개체들은 ‘실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자연적이며 종족적인 도태를 겪는데, 이 도태가 그 종의 생활 능력을 신장한다는 것이었다. 생물로서의 인간도 유용한 것의 선택법칙에 따라 단순한 형태에서 발전해온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제 인간도 물질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음이 추론되었고, 포이어바흐를 거쳐 마르크스에 이르면서 물질주의 철학이 유포되었다. 신적 창조주와 이 세상에 내재하는 정신적 원칙에 대한 믿음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으며, 그 자리에 과학과 물질에 대한 믿음이 등장했다.

 

물질’ 인간은 분석될 대로 분석되는 대상이 되었다. 빈의 심리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의 『히스테리 연구』(1895), 『꿈의 해석』(1900) 같은 저술들은 성적 충동과 공격충동이 모든 인간적인 사유와 행동을 규정하는 기본력이라는 이론을 충격적으로 유포시켰다.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수세기 동안의 개념이 마침내 환상이라고 폭로되면서, 기독교와 인문주의 인간상은 파괴되었다.

 

실증주의

무신론과 더불어서 서유럽에서 형이상학적 사변을 배격하고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강조하는 철학적 경향이 등장했다. 실증주의는 실증적으로 주어진 사실만을 타당하다고 하고, 모든 형이상학적 사변을 거부한다. 실증주의자들이 ‘신’은 무의미한 낱말이라고 선언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실험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대상들 가운데는 이 낱말에 부합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가상의 존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도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험과학들은 순수한 사실의 과학으로 이해되었다.

현실의 모든 것은 물질적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구성물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고 모든 사태가 야기되는 합법칙성들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의 임무다. 유물론 철학은 실증적인 것, 다시 말해서 물질로 주어진 것만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실증주의자들에게 ‘정신적인 것’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 때에만 존재했다.

 

실증주의라는 말은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생시몽(Comte de Saint-Simon, 1760~1825)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근대 과학이 가져다준 실증적 지식을 인간이 도달한 최고단계의 지식으로서 역사적으로 위치 짓고, 사회현상을 실증적 방법에 의해서 통일적으로 설명했다. 그 구상을 물려받아 실증주의를 사회학으로서 체계적으로 완성시킨 것은 제자 콩트(August Comte, 1798~1857)였다. 콩트는 『실증철학강의』(1830~1842)에서 실증주의의 핵심 내용들을 제시했고, ‘실증적’이라는 말에 현실적인, 유용한, 확실한, 정확한, 건설적인, 상대적인 등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인간의 인지(지식과 지성)를 동적 발전과정 아래 파악하여 3단계 발전설을 내놓았다. 1) 신학이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신학적 단계’, 2) 회의하는 이성의 ‘형이상학적 단계’, 3) 마침내 ‘실증적 단계’에서는 사물이나 사건의 관찰ㆍ가설ㆍ실험ㆍ추리ㆍ검증 등 근대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참된 과학적ㆍ실증적 지식이 획득된다. 이제 과학이 새로운 종교요 우상이 되었다.

 

환경론

여기에 환경론이 새로이 무게를 갖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이나 역사를 생리적이고 직접적인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생물 및 인간의 구조 내지 행동에서 환경의 영향을 중요하게 보는 학설이 환경론이다. 특히 지리적 환경에 중점을 두고 인간과 역사의 영향을 강조하는 이른바 지리적 환경론의 사고방식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460?~377? BC) 등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하였다. 그것이 중세의 신학적 목적론적인 세계관에 지배되어 일단 자취를 감추었다가 르네상스 이후 합리적 사고의 부흥과 함께 부활하였다.

 

● 모든 인간은 종족, 역사 그리고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

콩트의 실증주의적 방법을 써서 과학적으로 환경론적 입장에서 문학을 연구한 것이 Hippolyte Taine(1828~1893)이다. 그의 환경론에 의하면 인간은 환경과 인종 내지는 유전 소양이나 (나중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사회적 여러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이다. ‘인간의 개체란 사회 속에 그리고 사회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모든 인간은 종족, 역사 그리고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 때문에 도덕적으로 완전히 책임이 있지는 않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에 촉발되어 움직이는 기계

19세기 문학에 있어서도 실증주의는 절대적인 세력을 떨쳤다. 졸라 Émile Zola(1840~1902)는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의 『실험의학서설』(1865)을 본보기로 하여 『실험소설론』(1879)을 썼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실험적 방법은 ‘선천적으로 […] 어떤 개념을 실험적 연구를 근거로 성립된 해석으로 후천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를 갖는다. 졸라는 같은 의미에서 소설작가는 실험실의 박물학자와 같은 정확한 관찰과 엄밀한 실험에 의해 문예작품을 제작 할 것을 선언했다. 그는 인간을 가리켜 ‘유전과 환경에 촉발되어 움직이는 기계’라 했고, 소설가란 ‘인간이란 기계’를 환경 조건 밑에서 작동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실험가일 뿐이었다. 이제 ‘형이상학적 인간’이 ‘동물적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졸라는 텐의 『영국문화사』(1864)의 서문에 쓰인 ‘악덕과 미덕은 다 같이 황산이나 설탕처럼 화합물이다.’라는 구절을 소설 『테레즈 라켕』(1867)의 서문에서 인용했다. 정부와 공모한 남편 살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며, 일단 소설적 성공을 거둔 그는 적나라한 인생의 해부라는 방침 하에 『루공-마카르 총서』(1871~1893)를 썼다.

 

과학적 사회주의

기독교 교리가 휴머니즘적 가치를 갖출 때만 존재 의의가 있다고 선언된 이후, 그 뒤에 남은 것은 철학에서는 유물론이었다. 포이어바흐의 기치 아래 모인 세력은 사회적 혁신세력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간학이나 도덕에 기초하여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을 ‘공상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이 도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이론의 발견이 자신들의 사회주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흡수했다.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이되, ‘신의 이성’도 ‘인간의 맹목적 의지’도 아닌, ‘물질적 상태’가 인간을 인도하며, 그러므로 역사란 일련의 계급투쟁일 뿐이다.(변증법적 유물론)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물질세계 곧 경제적 상황이 본질적이며, 바로 그것이 한 시대의 사유와 이념을 규정짓는다는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에서는 사회의 물질적 생산관계와 생산력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임을 규명하고, 이데올로기나 정치는 물질적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역)사적 유물론을 제시했다. 물질은 곧 정신이다. 이제 관념론뿐 아니라 포이어바흐의 사회의식 없는 유물론적 휴머니즘까지도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옮아갔으며, 그것이 엥겔스와 쓴 『공산당 선언』(1848) -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그리고 『자본론』(1867, 1885, 1894) 등에 담겨 있다.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 변증법적 및 사적 유물론의 창시자이자 국제노동자계급운동의 지도자였던 엥겔(Friedrich Engels, 1820∼1895)는 베를린 체류 중에 청년헤겔학파의 일원이 되었고, 셸링의 신비적 철학과 헤겔의 보수적 결론, 그 관념론적 변증법의 모순을 비판했다.

엥겔스가 영국의 노동계층의 실태에 대해서 서술한 것을 보면, 탄갱과 철광산에는 4살, 5살의 어린아이들이 일했고, 노동시간은 열 시간을 훨씬 넘었다. 모든 노동자들이 24시간에서 심지어 36시간을 연속적으로 땅 밑에 있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이것은 중부유럽의 임금노동자에게도 해당했다. 공장주와 자본가에게는 산업과 기술이 부의 원천이 되었지만, 반대로 급격하게 팽창하는 노동자와 무산자의 집단에게 그것은 여러 모로 빈곤과 곤궁의 원인이었다.

 

 

공리주의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독일에서는 교수가 학자이고,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교수였지만, 영국에서는 의사나 법률가 등 일반직의 대표적 학자들이 있었다.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과 친구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저명한 학자였고, 제임스 밀은 아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을 학자로 키웠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은 벤담의 제창이었다. 벤담의 저술들이 공리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정립하고 이를 법률에 적용시키기 위한 의도였다면, 윤리이론과 관련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1863)는 공리주의의 개념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다. 이들의 사회이론은 전통적 종교관을 경시하고 합리적인 가치관을 강조했다. 문제는 행복의 질적 양적 측량이었다. 밀은 벤담의 양적 행복에 이의를 달고, 질적 공리주의로 응수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천치보다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취하고 불행은 피하고 싶어 하므로 대다수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호 계약을 맺은 그런 사회를 꾸려보자는 주장이면서, 밀은 경제적 이익 뿐 아니라, 복지, 자유, 평등, 개성, 정치적 권리, 마음의 습관과 도덕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취해질 것을 주문했다. 또한 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어떤 선을 베풀기 보다는 오히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불완전한 권리’를 주장하여, ‘소극적 정의론’을 폈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정치와 사회, 그리고 윤리적 방향설정에 기여했다. 정치에 있어서 의회민주주의, 경제에 있어서 복지체제로의 길을 마련했다.

 

실용주의

여기에 비해서 미국은 영국의 보수적인 지도와 체제를 개척적이며 창의적 방향으로 발전시켜 아메리카 정신을 창안해냈다고 볼 수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가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인간의 지적인 활동이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의심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설을 생각해 내고, 그 가설을 실제로 검증해 봄으로써 문제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천적 과정을 거쳐 문제가 해결되고 전보다 더 나은 상황을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지식이 가지고 있는 실천적 유용성을 중시하는 철학적 태도이다. 이처럼 영미의 정신사적 전통은 경험주의 - 공리주의 - 실증주의의 과정을 밟아왔다.

생물학 등을 연구하던 퍼스(Charles Sandes Peirce, 1839~1914)는 현실에 입각한 논리를 추구하다가 개념의 경험성, 현실성, 실용적 가치를 물었다. 그에 대해 미국적 철학적 해답을 내린 이가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였다.

제임스는 관념주의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과제들은 무의미한 공론에 불과하다고 배척했다. 우리에게 경험되는 현상적 사실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보며, 합리론은 순수하기는 하나 비현실적이라고 보았다. 주지주의적 합리적 사고는 삶을 바꿀 수 없고, 일원론, 유심론, 유물론 등은 망상이며 현실적 실재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은 현실에 입각한 경험에서 과제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진리는 논리적인 이론 체계가 아니다. 열매가 곧 진리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값있는 무엇, 태환권이다. 생활에서 현금 구실을 할 수 있는 지식이 진리다. 철학자라면 ‘실천적 경험에 있어 그 신념의 현금가치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했을 때, ‘실천적’이나 ‘현금가치’와 같은 용어들은 제임스를 유물론과 과학의 옹호자로 보이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에 실용주의를 도입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지나치게 유물론적이며 과학적이라고 그가 간주했던 시대에 오히려 신에 대한 믿음의 창문을 열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신의 존재가 과연 증명될 수 있을지 여부는 물을 필요가 없다. 단지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차이를 초래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 인간의 본질은 행위에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 철학을 가장 미국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킨 철학자는 듀이(John Dewey, 1859~1952)였다. 특히 실용주의 교육사상은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는 지식은 진리이기를 바라며, 진리로서의 지식은 그 자체가 목적인 듯 생각해왔었다. 듀이는 전통을 뒤집었다. 인간의 본질은 행위에 있다. 알기보다 행하는 것이 숨김없는 삶의 본성이다. 행동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삶이다. 보다 나은 행동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묻는다. 그 과정에서 지식이 필요할 뿐이다.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과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듀이의 철학을 도구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의 지식은 도구다. 모든 도구가 그러하듯이 그 가치는 도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의 능력, 즉 사용된 결과에 있어서 나타나는 유효성에 있는 것이다.’ - 지식은 의도하고 소망했던 목적에 접근할 때 가치를 인정받고, 그렇지 못하면 유효성과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미국의 정치와 경제, 심지어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이러한 행동주의 원칙이 크게 기여했다.

 

 

3. ‘상품’ 인간

 

자유주의 - 신자유주의

인간이 기본적으로 갈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이다. 자유란 다름 아닌 개인의 자유를 지칭한다. 이때 개인이란 개체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개인 주체의 개념이 없는 곳에서 자유 개념은 형성될 수 없다. 오늘날 개인은 개체로서의 인간이자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영국 유물론의 창시자인 베이컨의 유물론 철학을 계승하여 체계화시킨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보다 더 다양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만큼 더 자유롭다.’는 생각에서 인간이 신체적 존재자인 한 그가 시민이든 노예이든 단지 그의 자유로움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홉스의 생각을 잇는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감성적인, 정념적인 존재자로 파악하고,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음’이라고 이해했다. 오늘날 자유는 ‘무엇인가부터 벗어남’이라는 소극적 의미 외에 ‘스스로에서 비롯함’이라는 적극적인 뜻 아래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함’이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이 세운 법칙에 자신을 종속시킴, 곧 자율적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자유주의

자유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봉건적 공동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사상 및 운동인 한에서 인간의 최고의 지향점이 된다. 자유주의의 원리는 1) 보편적 인권의 원리 - 정신적·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원리이다. 2) 보편적 시민권의 원리 - 시민적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정치제도와 정책과 기관을 비판하고,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인정하는 원리이다. 로크(John Locke, 1632~1704)에게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 시민의 자유를 극대화하자는 것이었다.

자유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단면에 걸쳐 자유와 윤리,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 사이의 팽팽한 대립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해방’이거나, ‘자유=강제의 배제’라는 입장은 자유를 중요 관점으로 내세우지만, 자유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자유에 대한 이해가 그 말을 쓰는 사람 각자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1859)에서 ‘다수의 횡포’에 의한 ‘비주류 소수’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경고했다. 다수는 소수에게 여론과 관습을 내세워 ‘대세에 순종’할 것을 강요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도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 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사회는 이런 방법을 통해 모든 사람의 성격과 개성을 사회의 어떤 한 표준에 맞게 획일화하려 한다. 자유에 관한 매우 간단명료한 하나의 원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절대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영향을 주는 행위에 한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민, 즉, 신흥 중산계급인 부르주아를 위한 것으로, 토지귀족이나 왕권에 반대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상을 이상화했지만, 무교육의 빈곤한 계층의 이해와는 무관했다. 노동자에게 있어서 경제적 자유는 부자유의 강제일 뿐, 그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하에서도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도를 제약하고 소득의 평등화, 약자 구제, 노동자의 권리(단결권), 의무교육제도 등을 요구했다. 자유를 인격의 전면적 발전이라는 점에서 옹호하고 그것을 위한 경제적 조건을 계획경제와 복지정책에서 찾고자 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가들은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의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였는데, -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는 1914년 8월에 끝났다.’(1919) - 그 요체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소득평준화와 완전고용을 이룸으로써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신자유주의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불황이 다가오면서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이론이 대두되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세계 경제가 자본주의로 통합되면서 국제적 경쟁은 가열되었고, 많은 복지국가에서 시장경제의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복지정책을 점차 감소시키는 경제 현상이 대두했다. 신자유주의는 비대화한 정부조직의 재정적자에 대한 비판으로 정부권력의 축소를 요구한다. 대표주자는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이며, 철저한 자유주의시장경제 옹호자로서 『자본주의와 자유』(1962)에서 정치적·사회적 자유의 창조의 수단으로 자유시장 내에서 정부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고 했다. 프리드먼은 케인즈가 주장했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정부지출 확대)으로 인하여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통화정책(중앙은행의 통화량 감소정책)을 촉구했다. 소비분석, 통화의 이론과 역사 그리고 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에 관한 논증 등의 업적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1976)했다. 그러나 생산성, 경제적 효율성이 감소하여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30년대 영국에서 경제침체 원인과 극복 방안을 놓고 케인즈와 대결했던 하이에크(Frei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는 사회계약론에 반대하여 비계약논리를 내세우며, 외부의 힘으로 창조된 ‘인공적 질서’에 맞서서 스스로 성장한 ‘자생적 질서’를 옹호했다. 사람들의 목적이 다수이며, 그 모두가 원리상 양립할 수 없다면 갈등이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자유)은 불가피한 조건이다. 이처럼 비계약적 의지론에서 자유원리는 사회진보를 성취하는데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본 것이다. 자생적 질서가 보호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인류의 번영을 약속하는 지식의 분업을 지속적으로 활성화시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역기능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한다.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은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하며, 소극적인 통화정책과 국제금융의 자유화를 통하여 안정된 경제성장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공복지 제도의 확대는 정부의 재정을 팽창시키고, 근로의욕을 감퇴시키는 소위 ‘복지병’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부 선진국에서 복지의 역기능을 줄이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리즘은 공기업 등 일부 기업의 효율화라는 부분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약한 성장률 속에 기업 도산과 실업률을 높였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유럽 각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 부여와 근로 조건 악화를 무릅썼다. 대기업의 합병, 기업의 해외 이전 가속화와 외국인 노동자 증가는 기업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이라는 이른바 세계화나 자유화라는 용어를 동원하여 세계무역기구(WTO)나 우루과이라운드(UR) 같은 다자간 협상을 통한 시장개방의 압력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을 초래했고, 빈부 격차는 무한대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무한대의 경쟁, 정글의 법칙에 내던져진 것이다.

통계를 보자.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는 <2013 세계 부 보고서>에서 상위 1% 부자들이 전 세계 부의 46%를, 상위 10% 부자들이 86%를 보유하는 등, 부의 집중 현상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인 50만 명이 전체 토지의 55.2%를 소유하고 있다.(국토교통부 2013) 국제구호단체 옥스팸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세계 최상위 부자 85명이 소유한 부가 소득 하위 절반에 달하는 35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다. 세계 부자 상위 1%의 재산은 전 세계 최빈층 절반의 재산을 더한 것보다 무려 65배나 많은 규모다.

오늘날 세계화의 추세는 국가 간 상호 의존과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국민국가의 자율성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국가 내부에서도 다원화와 지방자치, 분권화 경향은 주권의 대내적 최고성에 대한 의미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올림픽의 후발 주자로서 선발 주자들의 성공을 과신하고 실패를 외면하면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 일단 내가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보니……

  ‘일단 내가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보니 평소 과잉보호가 있어서 나도 사실 신경이 많이 쓰였었고…….’(동아, 2014.3.28)

 

이것은 최근 어느 날 스타 OOO의 반성문 중에서 옮긴 말이다. 데뷔 5년 째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탤런트인 그(녀)가 공항에서 선물을 들이미는 팬에게 서운한 대접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서 공식 팬카페에 반성문을 올렸다. 다행이다. 문제는 자신을 ‘회사의 주력 상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성공을 해보았자 값나가는 상품에 불과하다. 성공하지 못하면 불량 상품에 그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임금노동자를 옥죄는 ‘보이지 않은 수갑’이 되어버렸다.(패럴먼 Michael Perelman) 개인은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적 이익과 경제적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국부론』(1776)에서의 주장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막강 이론으로 자본주의를 지원해왔다. 이제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시장에서 선한 보이지 않은 손은 없다. 노동과 노동자는 상품에 과정으로 참여해있는 부품에 불과하고, 그가 임금을 소비하는 소비자일 때만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상품이면서 상품을 소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4. 미래의 길

 

● 새로운 돈의 우상숭배에 반대함

프란체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2013)에서 새로운 돈의 우상숭배에 반대함을 역설했다. ‘이러한 상황의 한 가지 원인은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게나 사회에 미치는 돈의 지배를 조용히 받아들인 이래 우리가 돈에 대해 지니고 있는 관계에서 엿볼 수 있다. 현재의 재정위기는 기 제기된 인간 위기 - 인간 인격의 최고성의 부인이라고 하는 - 안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게 한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창조했다. 태고의 금송아지 숭배(출애굽기 32:1-35)는 진실로 인간적인 목적을 결여한 돈의 우상숭배와 비인간적인 경제의 독재에서 새롭고 무자비한 외형으로 돌아왔다. 재정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범세계적인 위기는 순전히 그것들의 불균형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를 위한 관심의 결여에 있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필요, 소비의 단위로 축소되었다.’

‘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반면에 그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으로부터 다수를 가르는 격차는 마찬가지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이 불균형은 시장과 재정 투기의 절대적 자주권을 방어하는 이데올로기의 결과이다. […] 새로운 독재가 그렇게 탄생했다, 보이지 않게 때로는 보이게, 일방적으로 가차없이 자신의 법과 규칙을 도입하여 시행하는 독재가. 빚과 이익의 누적은 각 나라들로 하여금 자신들 고유의 경제의 잠재성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고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진정한 구매력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치유는 가능한가.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가. 교황은 ‘교회는 야전병원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부상자들을 돌보는 것이다. 피 흘리는 사람에게 콜레스테롤 수치를 묻지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타임, 2013.12.23.)

 

공정무역

지구상 어느 한 곳에서 콜레스테롤 수치에 연연하고, 한국에서처럼 성형수술이라는 ‘미의 열풍에 휘몰린’(BBC, 2005.2.3.) 동안, 다른 여러 곳에서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노동자들이 숨져간다. 방글라데시에서는 2012년 11월에 의류 공장 화재로 112명이 사망했고, 이어 2013년 4월에는 8층짜리 의류공장 건물이 무너져 1,129명이 사망했다. 다국적 의류업체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도 협의했고, 상당수 유럽계 의류업체들은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월마트, 시어스, 칠드런스 플레이스 등 미국계 업체들은 지원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연합뉴스, 2013.11.24.)

이런 것을 구하자는 운동이 공정무역 운동이다. 국가 간에 이뤄지는 무역에서 불공정무역행위를 규제하여 상호 간에 동등한 입장에서 교역을 한다는 것이 공정무역의 기본원칙이다. 다국적기업들이 정작 커피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등을 제3세계와 같은 저개발국가들에게서 제공받지만,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낮은 임금만을 지급하고 있(었)다. 공정무역은 직접 제품 생산에 기여한 이들이 가져야 할 몫을 다국적기업들이 가로채고 있다는 인식이 나타난 195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커피ㆍ초콜릿ㆍ설탕ㆍ수공예품 등이 대표적인데, 공정무역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기회 제공, 투명성 및 신뢰 확보, 공정한 가격 지불, 성 평등, 건강한 노동환경 제공, 친환경 등을 원칙으로 한다. 2000년대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공정무역 운동은 아름다운가게, 에코생활협동조합, 두레생활협동조합, 한국YMCA, iCOOP생협연합회,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등 1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윤리적(착한) 소비’소비라는 개념은 공정무역운동을 포함한 소비자운동의 일환으로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자연환경에 해를 끼치는 상품은 사지 않고, 공정무역에 의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을 뜻한다.

 

기아 근절

공정무역은 절대적 기아를 구하자는 운동이기도 하다. 말리는 면화를, 세네갈은 땅콩을 수출하고, 아프리카 최빈국 에티오피아는 커피를 수출한다. 하지만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하루 평균임금이 1달러도 안 된다. 커피농장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무리 높게 잡더라도 소비자 가격의 1%도 되지 않는다. 한국은 식량주권을 획득한 나라이지만, 유엔 194개 주권국 가운데 121개국은 식량주권이 없다고 한다. 지글러(Jean Ziegler) 제네바대학 교수는 오늘날의 기아를 일상적 대량학살이라 했고, 이 문제의 핵심이 초국가적 기업들 간의 경쟁에 있다고 집어냈다. 유엔식량기구(FAO) 발표에 의하면 오늘날의 농업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일일 성인 기준 2200칼로리로 계산해서 120억 인구가 먹고살 수 있는 양인데 - 식량이 남아도는데 - 매일 기아로 5만7000명이 죽고 세계 71억 인구 중에서 8억4200만 명이 기아상태라고 한다. 기아로 죽는 사람은 암살당하는 것이고, 살인자는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적인 세계 질서다.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결코 문명이 없어서, 열등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농부였고 가정을 책임져온 부모들이었다. 다국적기업에 의해 산업화된 농토에서는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고 비싸게 수입된 식량을 구할 돈이 없는 것이다. 기아는 인간의 탐욕이 만든 시스템의 희생자일 뿐이다.

 

미래?

식량주권이 확보되었다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행복도는 높지 않다. 유럽 신경제재단(NEF)의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43개국 중 68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2년 36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하위권인 24위를 차지했다. 세계적 자유방임시장경제의 틀 안에 갇혀있는 한,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한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것은 삶의 ‘희소성(인위적 결핍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와 욕망의 경계를 망각한 인식의 오류와 가치의 혼돈에 있다.(식량이 남아도는데 아사자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는 공부를 경쟁적으로 많이 한다. 유용한 지식을 얻기 위함이라고 착각한다. 미국의 문명평론가 토플러(Alvin Toffler, 1928~ )는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된 형태의 정보화 사회를 일컬어 ‘제3의 물결’이라고 정의 내렸다. 『제3의 물결』(1980)에서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은 300년 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제3의 물결인 정보화혁명은 20~30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 우리는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는 『부의 미래』(2006) 에서 부와 혁명을 촉발하는 세 핵심적 원동력으로 시간, 공간과 더불어 지식을 말했다. 그러나 지식은 어느 시점에서 ‘쓸모없는 지식(obsoledge)’이 된다. 제4의 물결인 지식혁명에 미래를 건다. 토플러의 미래 프랙토피아(practopia)는 적극적이고 도달 가능한 세계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르되, 무용지식을 버려야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이다.

 

우리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긴 수준이다. 스위스의 노동시간이 1,636시간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다. 노동시간은 삶을 위한 정도로 규제되어 마땅하다. 생명과 안전 그리고 환경 관련 규제는 강화되어도 모자라다. 필립 제닝스 국제사무직노조연합(UNI) 사무총장은 ‘규제완화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올드 버전이며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친다. […] 규제 완화가 아니라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봉건 피라미드 위에 신 대신 돈이 자리한 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은 절대빈곤 못지않게 사람을 절망하게 한다. 인구 10만 명 당 33명,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연속 8년간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 -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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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도서:

- 레슬리 스티븐슨 외, 박중서 옮김,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갈라파고스 2006.

- 빌헬름 바이셰델, 안인희 옮김, 『철학의 에스프레소』, 프라하 2011.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정명진 옮김, 청미래 2011.

- 이와타 야오스, 서주지 옮김, 『유럽사상사 산책』, 옥당 2014.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