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강좌2018. 9. 13. 00:10

 

 

2주 정도, 날밤 샜다.

포스터가 너무 멋있다고, 며칠 붙였다가 버리기에 너무 아깝다고들 해서 좋았다.

늘 하던 대로 둘째 작품. 포스터에도 격이 있다. 시간과 노력과 마음이 격을 만든다.
강연 자체는 - 모르겠다.

"유창하지 않은데 괜찮은(?)" 이라는 평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느낌] 
         * 여러 상황 속에서도 참석한 스승, 제자 제자들, 친구들, 문학동아리 선후배, 

            독문과 교수들 ........ 과분한 대접을 받은 느낌.

            또 놀랍게도 강연 첫장에 나오는 주인공도 ........        
        ** 장소를 선뜻 내어준 인문대학 학장님, 전체를 도와준 독문과,

            또 놀랍게도 참가자들 어른들 중심으로 몇 십명 점심을 대접해준
            독문과 교수님들에 놀라움과 이상한 뿌듯함?

            친정 참 따뜻한 곳이구나 ....... 문단이 더 냉랭(?)

 

 

 

 

 

 

 

 

 

 

   강 현수막:

   소설가협회에서 보내온 것인데,
   시간, 장소, 초청강사 이름 다

   있는데, 강연 제목만 빠져있음.

 

 

 

 

 

 

 

 

 

 

 원고와 PPT에 집중한 청중들 -

 

 이런 이유로, 청중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나는

 밤새워 원고와 PPT를 준비한다.

 

 

 

 

Posted by 서용좌
강연-강좌2014. 7. 6. 16:02

인류의 지적 진화와 사회의 발전 단계

무등도서관 201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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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인간에게서 물질에게로 - 실증주의에서 신자유주의까지

 

1. 무신론의 탄생

 

언어는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다. 개념들 또한 인간이 만들었다. ‘신’이란 낱말도 우리 인간이 만들었다. 그러면 이 낱말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사람들이 ‘신’ 또는 ‘신들’이라는 말로 누구를 또는 무엇을 뜻하였는가?

신은 언제나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마침내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인간이 주인이 되는 듯한 착각은 착각이었다. 이성은 이성해방의 단계에서도 이신론적인 신의 증명을 시도했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 도 영혼이 특별한 실체라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이신론자였고, 앙시앵레짐 타도의 사상적 무기가 된 『백과전서』(1751~1780)의 편집자 디드로(Denis Dideror, 1713~84)의 유물론적 무신론적 경향은 위험시 배척되었다.

인간 이성이 고개를 들고 신의 역사하심을 회의하기 시작할 때조차 신의 존재는 위대했고 그럴수록 존재 증명이 중요했다. 세계는 무수히 많은 불가분의 ‘단자(monade)’로 구성된다고 한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도 예외는 아니었다. 악의 존재도 세계 전체의 선한 질서를 위해 필요한 전제라고 설명하는 그의 변신론에 따르면 도덕적 세계질서와 이 세계질서를 보장 하는 선한 신이 반드시 존재한다. 현세는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의 최고의 세계’로 간주되었다. 이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의 최고의 세계’는 곧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베클린(Wilhelm Ludwig von Wekhrlin, 1739~1792)이 쓴 「에담치즈의 8층에 사는 진드기의 독백」(1784)은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 치즈의 향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맛은 낙원과 같구나! 얼마나 영양가 있는 음식인가! 내 집은 편안하기도 하다! 헤아릴 수 없이 온통 먹을 것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여! 치즈를 만드신 그분, 우리 진드기를 위해 치즈를 창조하신 그분은 얼마나 전능하고 훌륭하신지! 우리의 존재는 그분의 의지요. 우리의 행복이 그분의 목적이다. […] 더욱이 이 치즈 세계는 가능한 한 최상의 세계다(치즈 주인은 치즈가 너무 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증명하기는 쉽다. 창조주가 더 좋은 치즈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그것을 만드셨을 테니까. 어째서 창조주께서 완전한 것을 뒤로 미루고 평범한 것을 만드셨겠는가! […]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진드기는 한 예일 뿐이다. 모든 생물이 철학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들 모두가 라이프니치 철학의 추종자가 될 것이다. 사자는 사슴을 만들어 준 창조주께 감사하고, 개구리는 메뚜기를 주신 것을 감사할 것이다. 모기는 심지어 인간을 주신 것을 감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생물을 위해서 이 세계가 가능한 한 최선의 것일까? 분명히 모두를 위해서이다. 모든 생물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 세계는 특별히 인간이거나 어떤 생물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앞 강의에서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도와 육체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불과 지능을 마련했다는 신화를 들었다. 현대적 해석은 인간을 ‘결함이 있는 존재’로 이해하며, 인간의 기술적, 조직적 능력들을 인체의 열등함에 대한 보완으로 파악한다. 결론은 이 세상의 생명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다른 생명을 소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낙원에서라면 생계유지를 위하여 이기주의자가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낙원은 없다.

 

고대와 중세의 신앙

 

돌이켜 보면 그리스 철학자들은 올림포스의 신들을 무시하면서 그들을 인간의 작품이라고 선언하였다. 쾌락주의와 견유학파처럼 전혀 다른 행복론에서도 철저히 현세의 삶을 극복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에피쿠로스학파가 말하는 ‘아타락시아(ataraxia, 쾌락)’나 스토아 철학자들이 소망했던 ‘아파테이아(apatheia, 냉담)’의 상태도 현세의 삶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몰두였다.

중세의 중심사상은 현세의 삶에 대한 염려가 아닌 의 존재였다. 최고의 입법자인 신이 존재하므로 도덕적 세계질서도 마땅히 존재한다. 이런 생각이 확고했을 때 인간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은 인간의 모든 노고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불행들과 마지막에 치러야할 죽음이 그 너머 내세에 있는 ‘영원한 삶’, 다시 말해서 모든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통해서 보상된다고 믿음으로써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근대 이후의 종교

 

근대에 들어와서 종교의 위치는 크게 변화하였다. 도덕과 예술이 종교로부터 분화되고, 정치, 경제, 교육 등의 사회제도에서의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신앙의 자유, 철저한 정교분리의 원칙이 대두되었다. 계몽사상과 과학의 발전이 종교의 진리성과 존재의식을 위협하고 있고, 따라서 종교비판도 활발해졌다. 종교는 끊임없이 존재 의의 자체가 문제로 제기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철학은 전능하고 정의로운 유일자로서의 신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왜 선한 신이 악과 불행을 허락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대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도덕적인 이유에서 그런 신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인간이 신을 폐지해 버린다면, 그것이 무신론이었다.

 

● 신의 존재는 헛된 환상

신이 있다면, 나는 그 신이 되고 싶지 않다. 세상의 비극이 내 가슴을 찢을 것이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헤겔의 낭만주의 철학이 여전히 정신생활을 규정하고 있는 동안, 과격한 염세주의자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의 노예라고 보았다. 의지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을 결국 아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사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심적 이성이 아니라, 영원히 만족치 못하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이다. 끝없는 괴로움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전 자연이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 이 근원적인 맹목적 의지는 자제와 동정심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으면 역사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고난을 유발한다.

경험적 현상의 세계는 주관의 여러 형식(시간, 공간 및 인과의 법칙)에 의존하는 단순한 표상에 불과하고, ‘물’자체에 해당하는 것은 의지, 맹목적인 생존의지라고 본다. 무기적 자연에서 동식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전체는 이러한 의지의 객체화와 개별화의 여러 단계일 뿐이다. 따라서 세계는 보편적으로 근거도 원리도 없고, 부단한 욕망에 쫓기어 만족할 수 없는 생은 고통이라고 했다.

 

인간이 자신의 소망들의 이상에 따라 그의 신들을 상상한 것!

구약성서에서는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고 말한다.(창세기 1:27)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시금석이다. 이 말은 인간으로 하여금 거꾸로 신이 인간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의 『기독교의 본질』(1841)은 신학을 인간학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신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소망들의 이상에 따라 그의 신들을 상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멸성이란 개인의 영혼이 불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유적 본질이 불멸함을 의미한다는 주장 때문에 교수직을 포기한 뒤였다.

 

신은 기체로 된 척추동물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헤켈(Ernst Heinrich Haeckel, 1834~1919)은 ‘신은 기체로 된 척추동물’이라고 희화적으로 말했다. ‘생물의 개체발생은 그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생물발생법칙을 제창했고, 환경과의 관계에서의 생물학을 생태학이라고 명명한 그로서는 보이지 않는 인격신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의 등장을 바라노라.

프로테스탄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기독교가 순종과 겸손 등 노예의 도덕을 강조한다고 비판하기에 이른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쇼펜하우어에 심취했고, 그의 사상을 계승하여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 철학을 선도하게 된다.

특히 『그러므로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1883~1885)는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주의에 의한 평등권에 반발하기 위해서 쓰인 글로, 기원전 6, 7세기 최초의 종교설립자로서 ‘선’을 수단으로 하는 인간의 해탈을 설교했던 조로아스터(차라투스트라)를 불러들여, 시대의 오류를 청산하는 자신의 현자를 창조했다. 산속 10년의 고독 이후 차라투스트라는 하산하여, 현세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인 나라를 약속한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의 등장을 바라노라.’ 신들이 죽었으므로, 인간은 스스로 비상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은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아이로 비상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이고 당찬 인간, 즉 초인이 된다고 역설한다. 아이가 순수하다는 것도 기성의 가치체계를 따르지 않아 신선함이 있고 자연본성에 대해서는 절대 긍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자처럼 부정만 해서도 자유로울 수 없고 낙타처럼 맹목적 긍정만 해서도 안 된다. 사자보다 더 부정적이고 낙타보다 더 긍정적이어야 한다. 강력한 부정은 그대로 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절대적 자기 긍정도 도전과 모험을 감행하게 하는 원천이다.

 

 

2. ‘물질’ 인간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기술과 산업은 점점 강하게 생활영역을 침범했다. 과학은 이전에 종교가 행했던 것과 같은 정신적 힘이 되었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종의 기원』(1859)에서 가르쳐준 적자생존의 법칙은 신학적 인간관의 천재지변이었다.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된 개체들은 ‘실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자연적이며 종족적인 도태를 겪는데, 이 도태가 그 종의 생활 능력을 신장한다는 것이었다. 생물로서의 인간도 유용한 것의 선택법칙에 따라 단순한 형태에서 발전해온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제 인간도 물질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음이 추론되었고, 포이어바흐를 거쳐 마르크스에 이르면서 물질주의 철학이 유포되었다. 신적 창조주와 이 세상에 내재하는 정신적 원칙에 대한 믿음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으며, 그 자리에 과학과 물질에 대한 믿음이 등장했다.

 

물질’ 인간은 분석될 대로 분석되는 대상이 되었다. 빈의 심리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의 『히스테리 연구』(1895), 『꿈의 해석』(1900) 같은 저술들은 성적 충동과 공격충동이 모든 인간적인 사유와 행동을 규정하는 기본력이라는 이론을 충격적으로 유포시켰다.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수세기 동안의 개념이 마침내 환상이라고 폭로되면서, 기독교와 인문주의 인간상은 파괴되었다.

 

실증주의

무신론과 더불어서 서유럽에서 형이상학적 사변을 배격하고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강조하는 철학적 경향이 등장했다. 실증주의는 실증적으로 주어진 사실만을 타당하다고 하고, 모든 형이상학적 사변을 거부한다. 실증주의자들이 ‘신’은 무의미한 낱말이라고 선언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실험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대상들 가운데는 이 낱말에 부합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가상의 존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도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험과학들은 순수한 사실의 과학으로 이해되었다.

현실의 모든 것은 물질적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구성물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고 모든 사태가 야기되는 합법칙성들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의 임무다. 유물론 철학은 실증적인 것, 다시 말해서 물질로 주어진 것만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실증주의자들에게 ‘정신적인 것’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 때에만 존재했다.

 

실증주의라는 말은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생시몽(Comte de Saint-Simon, 1760~1825)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근대 과학이 가져다준 실증적 지식을 인간이 도달한 최고단계의 지식으로서 역사적으로 위치 짓고, 사회현상을 실증적 방법에 의해서 통일적으로 설명했다. 그 구상을 물려받아 실증주의를 사회학으로서 체계적으로 완성시킨 것은 제자 콩트(August Comte, 1798~1857)였다. 콩트는 『실증철학강의』(1830~1842)에서 실증주의의 핵심 내용들을 제시했고, ‘실증적’이라는 말에 현실적인, 유용한, 확실한, 정확한, 건설적인, 상대적인 등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인간의 인지(지식과 지성)를 동적 발전과정 아래 파악하여 3단계 발전설을 내놓았다. 1) 신학이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신학적 단계’, 2) 회의하는 이성의 ‘형이상학적 단계’, 3) 마침내 ‘실증적 단계’에서는 사물이나 사건의 관찰ㆍ가설ㆍ실험ㆍ추리ㆍ검증 등 근대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참된 과학적ㆍ실증적 지식이 획득된다. 이제 과학이 새로운 종교요 우상이 되었다.

 

환경론

여기에 환경론이 새로이 무게를 갖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이나 역사를 생리적이고 직접적인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생물 및 인간의 구조 내지 행동에서 환경의 영향을 중요하게 보는 학설이 환경론이다. 특히 지리적 환경에 중점을 두고 인간과 역사의 영향을 강조하는 이른바 지리적 환경론의 사고방식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460?~377? BC) 등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하였다. 그것이 중세의 신학적 목적론적인 세계관에 지배되어 일단 자취를 감추었다가 르네상스 이후 합리적 사고의 부흥과 함께 부활하였다.

 

● 모든 인간은 종족, 역사 그리고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

콩트의 실증주의적 방법을 써서 과학적으로 환경론적 입장에서 문학을 연구한 것이 Hippolyte Taine(1828~1893)이다. 그의 환경론에 의하면 인간은 환경과 인종 내지는 유전 소양이나 (나중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사회적 여러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이다. ‘인간의 개체란 사회 속에 그리고 사회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모든 인간은 종족, 역사 그리고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 때문에 도덕적으로 완전히 책임이 있지는 않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에 촉발되어 움직이는 기계

19세기 문학에 있어서도 실증주의는 절대적인 세력을 떨쳤다. 졸라 Émile Zola(1840~1902)는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의 『실험의학서설』(1865)을 본보기로 하여 『실험소설론』(1879)을 썼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실험적 방법은 ‘선천적으로 […] 어떤 개념을 실험적 연구를 근거로 성립된 해석으로 후천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를 갖는다. 졸라는 같은 의미에서 소설작가는 실험실의 박물학자와 같은 정확한 관찰과 엄밀한 실험에 의해 문예작품을 제작 할 것을 선언했다. 그는 인간을 가리켜 ‘유전과 환경에 촉발되어 움직이는 기계’라 했고, 소설가란 ‘인간이란 기계’를 환경 조건 밑에서 작동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실험가일 뿐이었다. 이제 ‘형이상학적 인간’이 ‘동물적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졸라는 텐의 『영국문화사』(1864)의 서문에 쓰인 ‘악덕과 미덕은 다 같이 황산이나 설탕처럼 화합물이다.’라는 구절을 소설 『테레즈 라켕』(1867)의 서문에서 인용했다. 정부와 공모한 남편 살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며, 일단 소설적 성공을 거둔 그는 적나라한 인생의 해부라는 방침 하에 『루공-마카르 총서』(1871~1893)를 썼다.

 

과학적 사회주의

기독교 교리가 휴머니즘적 가치를 갖출 때만 존재 의의가 있다고 선언된 이후, 그 뒤에 남은 것은 철학에서는 유물론이었다. 포이어바흐의 기치 아래 모인 세력은 사회적 혁신세력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간학이나 도덕에 기초하여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을 ‘공상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이 도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이론의 발견이 자신들의 사회주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흡수했다.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이되, ‘신의 이성’도 ‘인간의 맹목적 의지’도 아닌, ‘물질적 상태’가 인간을 인도하며, 그러므로 역사란 일련의 계급투쟁일 뿐이다.(변증법적 유물론)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물질세계 곧 경제적 상황이 본질적이며, 바로 그것이 한 시대의 사유와 이념을 규정짓는다는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에서는 사회의 물질적 생산관계와 생산력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임을 규명하고, 이데올로기나 정치는 물질적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역)사적 유물론을 제시했다. 물질은 곧 정신이다. 이제 관념론뿐 아니라 포이어바흐의 사회의식 없는 유물론적 휴머니즘까지도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옮아갔으며, 그것이 엥겔스와 쓴 『공산당 선언』(1848) -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그리고 『자본론』(1867, 1885, 1894) 등에 담겨 있다.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 변증법적 및 사적 유물론의 창시자이자 국제노동자계급운동의 지도자였던 엥겔(Friedrich Engels, 1820∼1895)는 베를린 체류 중에 청년헤겔학파의 일원이 되었고, 셸링의 신비적 철학과 헤겔의 보수적 결론, 그 관념론적 변증법의 모순을 비판했다.

엥겔스가 영국의 노동계층의 실태에 대해서 서술한 것을 보면, 탄갱과 철광산에는 4살, 5살의 어린아이들이 일했고, 노동시간은 열 시간을 훨씬 넘었다. 모든 노동자들이 24시간에서 심지어 36시간을 연속적으로 땅 밑에 있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이것은 중부유럽의 임금노동자에게도 해당했다. 공장주와 자본가에게는 산업과 기술이 부의 원천이 되었지만, 반대로 급격하게 팽창하는 노동자와 무산자의 집단에게 그것은 여러 모로 빈곤과 곤궁의 원인이었다.

 

 

공리주의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독일에서는 교수가 학자이고,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교수였지만, 영국에서는 의사나 법률가 등 일반직의 대표적 학자들이 있었다.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과 친구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저명한 학자였고, 제임스 밀은 아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을 학자로 키웠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은 벤담의 제창이었다. 벤담의 저술들이 공리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정립하고 이를 법률에 적용시키기 위한 의도였다면, 윤리이론과 관련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1863)는 공리주의의 개념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다. 이들의 사회이론은 전통적 종교관을 경시하고 합리적인 가치관을 강조했다. 문제는 행복의 질적 양적 측량이었다. 밀은 벤담의 양적 행복에 이의를 달고, 질적 공리주의로 응수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천치보다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취하고 불행은 피하고 싶어 하므로 대다수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호 계약을 맺은 그런 사회를 꾸려보자는 주장이면서, 밀은 경제적 이익 뿐 아니라, 복지, 자유, 평등, 개성, 정치적 권리, 마음의 습관과 도덕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취해질 것을 주문했다. 또한 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어떤 선을 베풀기 보다는 오히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불완전한 권리’를 주장하여, ‘소극적 정의론’을 폈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정치와 사회, 그리고 윤리적 방향설정에 기여했다. 정치에 있어서 의회민주주의, 경제에 있어서 복지체제로의 길을 마련했다.

 

실용주의

여기에 비해서 미국은 영국의 보수적인 지도와 체제를 개척적이며 창의적 방향으로 발전시켜 아메리카 정신을 창안해냈다고 볼 수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가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인간의 지적인 활동이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의심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설을 생각해 내고, 그 가설을 실제로 검증해 봄으로써 문제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천적 과정을 거쳐 문제가 해결되고 전보다 더 나은 상황을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지식이 가지고 있는 실천적 유용성을 중시하는 철학적 태도이다. 이처럼 영미의 정신사적 전통은 경험주의 - 공리주의 - 실증주의의 과정을 밟아왔다.

생물학 등을 연구하던 퍼스(Charles Sandes Peirce, 1839~1914)는 현실에 입각한 논리를 추구하다가 개념의 경험성, 현실성, 실용적 가치를 물었다. 그에 대해 미국적 철학적 해답을 내린 이가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였다.

제임스는 관념주의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과제들은 무의미한 공론에 불과하다고 배척했다. 우리에게 경험되는 현상적 사실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보며, 합리론은 순수하기는 하나 비현실적이라고 보았다. 주지주의적 합리적 사고는 삶을 바꿀 수 없고, 일원론, 유심론, 유물론 등은 망상이며 현실적 실재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은 현실에 입각한 경험에서 과제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진리는 논리적인 이론 체계가 아니다. 열매가 곧 진리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값있는 무엇, 태환권이다. 생활에서 현금 구실을 할 수 있는 지식이 진리다. 철학자라면 ‘실천적 경험에 있어 그 신념의 현금가치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했을 때, ‘실천적’이나 ‘현금가치’와 같은 용어들은 제임스를 유물론과 과학의 옹호자로 보이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에 실용주의를 도입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지나치게 유물론적이며 과학적이라고 그가 간주했던 시대에 오히려 신에 대한 믿음의 창문을 열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신의 존재가 과연 증명될 수 있을지 여부는 물을 필요가 없다. 단지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차이를 초래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 인간의 본질은 행위에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 철학을 가장 미국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킨 철학자는 듀이(John Dewey, 1859~1952)였다. 특히 실용주의 교육사상은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는 지식은 진리이기를 바라며, 진리로서의 지식은 그 자체가 목적인 듯 생각해왔었다. 듀이는 전통을 뒤집었다. 인간의 본질은 행위에 있다. 알기보다 행하는 것이 숨김없는 삶의 본성이다. 행동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삶이다. 보다 나은 행동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묻는다. 그 과정에서 지식이 필요할 뿐이다.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과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듀이의 철학을 도구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의 지식은 도구다. 모든 도구가 그러하듯이 그 가치는 도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의 능력, 즉 사용된 결과에 있어서 나타나는 유효성에 있는 것이다.’ - 지식은 의도하고 소망했던 목적에 접근할 때 가치를 인정받고, 그렇지 못하면 유효성과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미국의 정치와 경제, 심지어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이러한 행동주의 원칙이 크게 기여했다.

 

 

3. ‘상품’ 인간

 

자유주의 - 신자유주의

인간이 기본적으로 갈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이다. 자유란 다름 아닌 개인의 자유를 지칭한다. 이때 개인이란 개체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개인 주체의 개념이 없는 곳에서 자유 개념은 형성될 수 없다. 오늘날 개인은 개체로서의 인간이자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영국 유물론의 창시자인 베이컨의 유물론 철학을 계승하여 체계화시킨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보다 더 다양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만큼 더 자유롭다.’는 생각에서 인간이 신체적 존재자인 한 그가 시민이든 노예이든 단지 그의 자유로움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홉스의 생각을 잇는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감성적인, 정념적인 존재자로 파악하고,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음’이라고 이해했다. 오늘날 자유는 ‘무엇인가부터 벗어남’이라는 소극적 의미 외에 ‘스스로에서 비롯함’이라는 적극적인 뜻 아래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함’이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이 세운 법칙에 자신을 종속시킴, 곧 자율적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자유주의

자유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봉건적 공동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사상 및 운동인 한에서 인간의 최고의 지향점이 된다. 자유주의의 원리는 1) 보편적 인권의 원리 - 정신적·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원리이다. 2) 보편적 시민권의 원리 - 시민적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정치제도와 정책과 기관을 비판하고,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인정하는 원리이다. 로크(John Locke, 1632~1704)에게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 시민의 자유를 극대화하자는 것이었다.

자유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단면에 걸쳐 자유와 윤리,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 사이의 팽팽한 대립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해방’이거나, ‘자유=강제의 배제’라는 입장은 자유를 중요 관점으로 내세우지만, 자유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자유에 대한 이해가 그 말을 쓰는 사람 각자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1859)에서 ‘다수의 횡포’에 의한 ‘비주류 소수’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경고했다. 다수는 소수에게 여론과 관습을 내세워 ‘대세에 순종’할 것을 강요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도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 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사회는 이런 방법을 통해 모든 사람의 성격과 개성을 사회의 어떤 한 표준에 맞게 획일화하려 한다. 자유에 관한 매우 간단명료한 하나의 원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절대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영향을 주는 행위에 한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민, 즉, 신흥 중산계급인 부르주아를 위한 것으로, 토지귀족이나 왕권에 반대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상을 이상화했지만, 무교육의 빈곤한 계층의 이해와는 무관했다. 노동자에게 있어서 경제적 자유는 부자유의 강제일 뿐, 그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하에서도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도를 제약하고 소득의 평등화, 약자 구제, 노동자의 권리(단결권), 의무교육제도 등을 요구했다. 자유를 인격의 전면적 발전이라는 점에서 옹호하고 그것을 위한 경제적 조건을 계획경제와 복지정책에서 찾고자 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가들은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의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였는데, -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는 1914년 8월에 끝났다.’(1919) - 그 요체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소득평준화와 완전고용을 이룸으로써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신자유주의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불황이 다가오면서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이론이 대두되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세계 경제가 자본주의로 통합되면서 국제적 경쟁은 가열되었고, 많은 복지국가에서 시장경제의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복지정책을 점차 감소시키는 경제 현상이 대두했다. 신자유주의는 비대화한 정부조직의 재정적자에 대한 비판으로 정부권력의 축소를 요구한다. 대표주자는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이며, 철저한 자유주의시장경제 옹호자로서 『자본주의와 자유』(1962)에서 정치적·사회적 자유의 창조의 수단으로 자유시장 내에서 정부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고 했다. 프리드먼은 케인즈가 주장했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정부지출 확대)으로 인하여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통화정책(중앙은행의 통화량 감소정책)을 촉구했다. 소비분석, 통화의 이론과 역사 그리고 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에 관한 논증 등의 업적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1976)했다. 그러나 생산성, 경제적 효율성이 감소하여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30년대 영국에서 경제침체 원인과 극복 방안을 놓고 케인즈와 대결했던 하이에크(Frei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는 사회계약론에 반대하여 비계약논리를 내세우며, 외부의 힘으로 창조된 ‘인공적 질서’에 맞서서 스스로 성장한 ‘자생적 질서’를 옹호했다. 사람들의 목적이 다수이며, 그 모두가 원리상 양립할 수 없다면 갈등이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자유)은 불가피한 조건이다. 이처럼 비계약적 의지론에서 자유원리는 사회진보를 성취하는데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본 것이다. 자생적 질서가 보호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인류의 번영을 약속하는 지식의 분업을 지속적으로 활성화시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역기능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한다.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은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하며, 소극적인 통화정책과 국제금융의 자유화를 통하여 안정된 경제성장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공복지 제도의 확대는 정부의 재정을 팽창시키고, 근로의욕을 감퇴시키는 소위 ‘복지병’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부 선진국에서 복지의 역기능을 줄이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리즘은 공기업 등 일부 기업의 효율화라는 부분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약한 성장률 속에 기업 도산과 실업률을 높였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유럽 각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 부여와 근로 조건 악화를 무릅썼다. 대기업의 합병, 기업의 해외 이전 가속화와 외국인 노동자 증가는 기업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이라는 이른바 세계화나 자유화라는 용어를 동원하여 세계무역기구(WTO)나 우루과이라운드(UR) 같은 다자간 협상을 통한 시장개방의 압력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을 초래했고, 빈부 격차는 무한대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무한대의 경쟁, 정글의 법칙에 내던져진 것이다.

통계를 보자.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는 <2013 세계 부 보고서>에서 상위 1% 부자들이 전 세계 부의 46%를, 상위 10% 부자들이 86%를 보유하는 등, 부의 집중 현상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인 50만 명이 전체 토지의 55.2%를 소유하고 있다.(국토교통부 2013) 국제구호단체 옥스팸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세계 최상위 부자 85명이 소유한 부가 소득 하위 절반에 달하는 35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다. 세계 부자 상위 1%의 재산은 전 세계 최빈층 절반의 재산을 더한 것보다 무려 65배나 많은 규모다.

오늘날 세계화의 추세는 국가 간 상호 의존과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국민국가의 자율성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국가 내부에서도 다원화와 지방자치, 분권화 경향은 주권의 대내적 최고성에 대한 의미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올림픽의 후발 주자로서 선발 주자들의 성공을 과신하고 실패를 외면하면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 일단 내가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보니……

  ‘일단 내가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보니 평소 과잉보호가 있어서 나도 사실 신경이 많이 쓰였었고…….’(동아, 2014.3.28)

 

이것은 최근 어느 날 스타 OOO의 반성문 중에서 옮긴 말이다. 데뷔 5년 째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탤런트인 그(녀)가 공항에서 선물을 들이미는 팬에게 서운한 대접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서 공식 팬카페에 반성문을 올렸다. 다행이다. 문제는 자신을 ‘회사의 주력 상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성공을 해보았자 값나가는 상품에 불과하다. 성공하지 못하면 불량 상품에 그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임금노동자를 옥죄는 ‘보이지 않은 수갑’이 되어버렸다.(패럴먼 Michael Perelman) 개인은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적 이익과 경제적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국부론』(1776)에서의 주장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막강 이론으로 자본주의를 지원해왔다. 이제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시장에서 선한 보이지 않은 손은 없다. 노동과 노동자는 상품에 과정으로 참여해있는 부품에 불과하고, 그가 임금을 소비하는 소비자일 때만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상품이면서 상품을 소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4. 미래의 길

 

● 새로운 돈의 우상숭배에 반대함

프란체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2013)에서 새로운 돈의 우상숭배에 반대함을 역설했다. ‘이러한 상황의 한 가지 원인은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게나 사회에 미치는 돈의 지배를 조용히 받아들인 이래 우리가 돈에 대해 지니고 있는 관계에서 엿볼 수 있다. 현재의 재정위기는 기 제기된 인간 위기 - 인간 인격의 최고성의 부인이라고 하는 - 안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게 한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창조했다. 태고의 금송아지 숭배(출애굽기 32:1-35)는 진실로 인간적인 목적을 결여한 돈의 우상숭배와 비인간적인 경제의 독재에서 새롭고 무자비한 외형으로 돌아왔다. 재정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범세계적인 위기는 순전히 그것들의 불균형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를 위한 관심의 결여에 있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필요, 소비의 단위로 축소되었다.’

‘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반면에 그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으로부터 다수를 가르는 격차는 마찬가지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이 불균형은 시장과 재정 투기의 절대적 자주권을 방어하는 이데올로기의 결과이다. […] 새로운 독재가 그렇게 탄생했다, 보이지 않게 때로는 보이게, 일방적으로 가차없이 자신의 법과 규칙을 도입하여 시행하는 독재가. 빚과 이익의 누적은 각 나라들로 하여금 자신들 고유의 경제의 잠재성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고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진정한 구매력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치유는 가능한가.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가. 교황은 ‘교회는 야전병원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부상자들을 돌보는 것이다. 피 흘리는 사람에게 콜레스테롤 수치를 묻지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타임, 2013.12.23.)

 

공정무역

지구상 어느 한 곳에서 콜레스테롤 수치에 연연하고, 한국에서처럼 성형수술이라는 ‘미의 열풍에 휘몰린’(BBC, 2005.2.3.) 동안, 다른 여러 곳에서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노동자들이 숨져간다. 방글라데시에서는 2012년 11월에 의류 공장 화재로 112명이 사망했고, 이어 2013년 4월에는 8층짜리 의류공장 건물이 무너져 1,129명이 사망했다. 다국적 의류업체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도 협의했고, 상당수 유럽계 의류업체들은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월마트, 시어스, 칠드런스 플레이스 등 미국계 업체들은 지원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연합뉴스, 2013.11.24.)

이런 것을 구하자는 운동이 공정무역 운동이다. 국가 간에 이뤄지는 무역에서 불공정무역행위를 규제하여 상호 간에 동등한 입장에서 교역을 한다는 것이 공정무역의 기본원칙이다. 다국적기업들이 정작 커피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등을 제3세계와 같은 저개발국가들에게서 제공받지만,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낮은 임금만을 지급하고 있(었)다. 공정무역은 직접 제품 생산에 기여한 이들이 가져야 할 몫을 다국적기업들이 가로채고 있다는 인식이 나타난 195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커피ㆍ초콜릿ㆍ설탕ㆍ수공예품 등이 대표적인데, 공정무역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기회 제공, 투명성 및 신뢰 확보, 공정한 가격 지불, 성 평등, 건강한 노동환경 제공, 친환경 등을 원칙으로 한다. 2000년대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공정무역 운동은 아름다운가게, 에코생활협동조합, 두레생활협동조합, 한국YMCA, iCOOP생협연합회,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등 1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윤리적(착한) 소비’소비라는 개념은 공정무역운동을 포함한 소비자운동의 일환으로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자연환경에 해를 끼치는 상품은 사지 않고, 공정무역에 의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을 뜻한다.

 

기아 근절

공정무역은 절대적 기아를 구하자는 운동이기도 하다. 말리는 면화를, 세네갈은 땅콩을 수출하고, 아프리카 최빈국 에티오피아는 커피를 수출한다. 하지만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하루 평균임금이 1달러도 안 된다. 커피농장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무리 높게 잡더라도 소비자 가격의 1%도 되지 않는다. 한국은 식량주권을 획득한 나라이지만, 유엔 194개 주권국 가운데 121개국은 식량주권이 없다고 한다. 지글러(Jean Ziegler) 제네바대학 교수는 오늘날의 기아를 일상적 대량학살이라 했고, 이 문제의 핵심이 초국가적 기업들 간의 경쟁에 있다고 집어냈다. 유엔식량기구(FAO) 발표에 의하면 오늘날의 농업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일일 성인 기준 2200칼로리로 계산해서 120억 인구가 먹고살 수 있는 양인데 - 식량이 남아도는데 - 매일 기아로 5만7000명이 죽고 세계 71억 인구 중에서 8억4200만 명이 기아상태라고 한다. 기아로 죽는 사람은 암살당하는 것이고, 살인자는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적인 세계 질서다.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결코 문명이 없어서, 열등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농부였고 가정을 책임져온 부모들이었다. 다국적기업에 의해 산업화된 농토에서는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고 비싸게 수입된 식량을 구할 돈이 없는 것이다. 기아는 인간의 탐욕이 만든 시스템의 희생자일 뿐이다.

 

미래?

식량주권이 확보되었다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행복도는 높지 않다. 유럽 신경제재단(NEF)의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43개국 중 68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2년 36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하위권인 24위를 차지했다. 세계적 자유방임시장경제의 틀 안에 갇혀있는 한,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한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것은 삶의 ‘희소성(인위적 결핍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와 욕망의 경계를 망각한 인식의 오류와 가치의 혼돈에 있다.(식량이 남아도는데 아사자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는 공부를 경쟁적으로 많이 한다. 유용한 지식을 얻기 위함이라고 착각한다. 미국의 문명평론가 토플러(Alvin Toffler, 1928~ )는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된 형태의 정보화 사회를 일컬어 ‘제3의 물결’이라고 정의 내렸다. 『제3의 물결』(1980)에서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은 300년 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제3의 물결인 정보화혁명은 20~30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 우리는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는 『부의 미래』(2006) 에서 부와 혁명을 촉발하는 세 핵심적 원동력으로 시간, 공간과 더불어 지식을 말했다. 그러나 지식은 어느 시점에서 ‘쓸모없는 지식(obsoledge)’이 된다. 제4의 물결인 지식혁명에 미래를 건다. 토플러의 미래 프랙토피아(practopia)는 적극적이고 도달 가능한 세계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르되, 무용지식을 버려야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이다.

 

우리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긴 수준이다. 스위스의 노동시간이 1,636시간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다. 노동시간은 삶을 위한 정도로 규제되어 마땅하다. 생명과 안전 그리고 환경 관련 규제는 강화되어도 모자라다. 필립 제닝스 국제사무직노조연합(UNI) 사무총장은 ‘규제완화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올드 버전이며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친다. […] 규제 완화가 아니라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봉건 피라미드 위에 신 대신 돈이 자리한 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은 절대빈곤 못지않게 사람을 절망하게 한다. 인구 10만 명 당 33명,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연속 8년간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 -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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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도서:

- 레슬리 스티븐슨 외, 박중서 옮김,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갈라파고스 2006.

- 빌헬름 바이셰델, 안인희 옮김, 『철학의 에스프레소』, 프라하 2011.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정명진 옮김, 청미래 2011.

- 이와타 야오스, 서주지 옮김, 『유럽사상사 산책』, 옥당 2014.

 

 

 

 

Posted by 서용좌
강연-강좌2014. 7. 6. 15:49

인류의 지적 진화와 사회의 발전 단계

무등도서관 201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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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 인문주의와 계몽주의의 발흥

 

1. 고대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

 

호모 사피엔스 - 이 말은 고인류를 분류할 때 사용하는 명칭으로, 현생 인류를 ‘생각하는 사람’ 또는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데 있다고 하는 인간관이다. 인간에게 특질적인 것은 언어와 사고(사유)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한 인식의 한계는 유한성의 인식에 있었다. 이 지식, 인간의 절대적 유한성을 초극하고자 하는 열망이 어느 문화에서나 상대적 무한성이라는 개념으로 정착한 것이 초월적 존재이다. 유사 이래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를 열망해왔다. 그 초월적 권능의 존재에 인격을 부여한 것이 종교 - 신과 인간의 결합 내지 교감으로서의 종교가 발생했다. 서양의 원류,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 수호신의 숭배는 중심 문화의 하나였다.

에게 문명(3650~1100 BC)을 이루어낸 그리스 신화도 다른 민족의 신화들처럼 많은 초자연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미토스(mythos: 이야기)에서 신들의 이야기나 영웅전설 등을 이야기했다.

기원전 7세기에 헤시오도스(Hesiodos)의 『신통기』는 세계의 시초를 제일 먼저 질서정연하게 서술한 작품이었다. 만물은 자연히 이루어져 각기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들도 인간처럼 나중에 생겨난 것이었다. 주신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신들의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인류의 시초는 신들과 마찬가지로 가이아[대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신들과 동족이라는 생각이었다.

동물과 인간의 창조 신화가 있다. 에피메테우스가 각 생물들에게 저마다의 특성을 부여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맹수들에게는 강한 이빨과 발톱을, 약한 동물들에게는 다양한 의사소통과 온갖 도주의 능력들을 주었다. 인간의 차례가 되었을 때는 남은 것이 없었다. 인간은 벌거숭이에다가 허약한 채로 남겨졌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도와 육체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지능을 마련해주었다. 물론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네가 관장하던 기술의 능력과 불, 그리고 제우스의 정치술을 신들로부터 훔쳐 인간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은 신들의 자손인 영웅들의 이야기였다. 황금양털에 얽힌 이아손의 이야기, 오이디푸스왕(王)의 기구한 운명, 트로이 전설 등은 가장 총애받는 아이템이었고,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800∼750 BC)가 복합적으로 탄생했다.

 

이어서 그리스 비극 시인들이 나타났다. 비극은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아테네에서 시작된 디오니소스 축제의 연극 경연대회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던 합창이 변형되어 연극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스킬로스(Aeschylos, 525~456 BC)의 경우는 ‘오레스테스 3부작’으로 유명하다. 인간의 정념의 가공할 작용을 주제로 하며 특히 여성심리 묘사에 뛰어났던 에우리피데스 Euripides(484?~406? BC), 그리고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식견을 지니고 국가에 공헌했던 소포클레스(Sophokles, 496~406 BC)의 『안티고네』 등은 현대극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무엇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공연이 고대 문화의 꽃이었다. 작품 속의 세계관에서 자연과 인간과 신은 같은 질서 속에서 관계를 이룬다. 절대적인 질서는 운명이고, 운명의 종말은 비극이다.

 

철학의 탄생: 자연 연구 - 자연을 따라서

 

신의 계보를 정리하고, 신화 속의 정신과 사상을 통해 공통

된 세계관을 얻어보고자 한 의미에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이미 신화와 철학의 중간에 와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세계와 만물의 현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철학이라고 부른다면 과제는 자연 연구였다. 인간은 자연을 따라서 생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와 만물의 원질(arehé)은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탈레스(Thales, BC 6세기)였다. 그의 결론은 이 원질은 ‘물’이라는 것이었다. 답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8~524 BC)는 지구는 둥글다는 생각을 했다. 만물의 원질은 프시케(Psyché, 숨, 호흡, 공기, 영혼, 생명)라고 생각했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490~430 BC)는 그것이 불, 물, 땅, 공기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생각은 소박한 실재론으로, 그들에게 철학의 과제는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460~370 BC)는 백과전서적인 박학자로, 동일하면서도 불가분, 불변적인 자립성을 갖는 물질의 단위 ‘아토마(atoma)’를 상정했다. 아토마는 형, 배열, 위치에 따라 서로 구별될 뿐이라 했다. 이는 이후의 물리학 상의 ‘원자’에 해당한다.

 

형이상학 - 자연을 넘어서

 

형이상학은 자연학(천문, 기상, 동식물, 심리 등에 관한 연구)을 넘어서 관념적 사유로서의 학문이 된다. 형이상학은 사물의 본질,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 없는 것, 초경험적인 것을 직관으로 탐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동양적으로 말하자면 기(器)에 대해 도(道)에 대한 학문이라 하겠다.

에게 해의 섬 사모스에서 심오한 종교성과 음악에 심취했던 피타고라스(Pythagoras, 572~495 BC)는 무엇이 만물의 원질인가에 대한 물음보다 어떤 원리와 법칙에서 존재하는 세계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했다. 수학자답게 그는 세계의 원리와 질서는 수의 조화법칙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 조화의 질서가 생활과 세계의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윤리적 스승이었다.

그 이후 엘레아(이탈리아) 학파에 속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00년 경)는 감각 세계, 변화, 유전하는 만물은 지식의 대상도, 학문과 진리의 내용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존재는 그 본질로서 자기동일성인 것이다. 이렇게 본질의 불변의 실재성을 주장하여, 이어 플라톤의 이데아, 즉 관념적 논리주의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와는 다르게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35~475 BC)는 우주의 만물을 지배하는 원리로서의 로고스(logos)는 오직 세계 내에 있는 모든 사물과 인간 내부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본질이란 사유의 조작에 불과하며, 만물은 쉴 새 없이 유전한다고 생각했다. 동일성 대신 모순이 만물의 변화와 생성을 가능하게 하며, 특히 절대적인 진리란 없고 모든 진리는 상대적일 뿐이라고 간주했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는 회의적 가치관은 후일 헤겔을 위시한 변증론의 기초를 놓았다고 간주된다. 이렇게 해서 관념론과 실재론의 기나 긴 싸움의 시대가 열렸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소피스트의 등장

소피스트란 흔히 궤변론자라고 하는데, 소피아는 ‘지혜’이므로,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사람’이란 의미였다. 이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토양 속에서 변론술과 출세의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었다.

궤변의 금메달은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2~411 BC)에게 수여되어 마땅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는 것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이다. 이 명제는 철학과 학문의 주체를 자연에서 인간으로 정향한 인간 표준론이자, 지식과 진리는 상대적일 뿐이라는 진리 상대주의를 드러냄으로써 학문과 진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소피스트들은 우리가 간단히 알고 있듯이 단순히 궤변론자들이 아니었다. 소피스트들에 의해 인간은 역사의 주관자로 작동할 수 있었으니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의 한 마디에 이 철학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할 것이다. 제우스도 아니고, 헤라도 아니며, 헤라클레스도 아닌 인간이 만물의 척도요, 따라서 개별적 인간의 시각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는 프로타고라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들의 주장은 역사 속에서 인간 해방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피스트의 진행은 허무주의로 귀결되었다. 고르기아스(Gorgias, ? ~380 BC)는 보편적인 덕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개별적인 덕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해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말로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극도의 허무를 가르쳤다.

 

너 자신을 알라. - 그리스 철학의 정점

극도의 회의주의 속에서 ‘참 지혜와 진리로 이끌어 주는 스승’이 아테네의 철학을 꽃피우게 되었다. 소크라테스(Socrates, 469~399 BC)는 자연 연구에 몰두해있던 철학을 인간성찰의 방향으로 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간의 사고와 가장 가까운 개념은 이성이다. 이성을 통한 진리로의 길은 대화와 토론, 즉 사유의 변증법이다.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어진 확실한 개념의 상태가 공통성이자 보편성이다.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은 신전에 쓰인 글이었다고 한다. 그에 앞서 소크라테스는 ‘무지에 대한 지’를 강조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고 있다.’의 상태가 철학의 출발점이 된다. ‘아는 것이 선의 출발’이라고 믿었던 그는 ‘도덕적 신’을 강조하여 신화의 주인공들을 배제함으로써 종교계에 피해를 입혔다.

 

● 현실 세계는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

이상주의의 대명사 플라톤(Platon, 428~347 BC)은 20대에 소크라테스 수학했고, 최초의 자유대학에 해당하는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삼각형은 많다, 원형은 근본적으로 하나다. 정의의 상황과 모습은 여러 개다. 이상적인 정의의 원 모습은 하나다.’ - 이것이 이데아의 출발점이었다.

동굴 안에서 평생 그림자만 쳐다보고 살아 온 사람들의 비유에서, 동굴 안의 눈에 보이는 것이 현상 세계요, 동굴 밖은 지성으로 알 수 있는 실재 세계이다. 즉,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데아 중에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이다. 현상의 세계는 변함으로 참다운 세계가 아니고 이데아만이 변하지 않는 절대 이성의 참된 세계이다.

모든 인간의 의지와 행위는 선의 이데아에 의하여 지배되는 ‘참 실재’의 세계를 목적삼고 있다. 즉, 불완전하고 변화하는 감성계의 경험적 존재를 목적삼지 않고, 세계 전체의 최고이상의 의미와 목적을 뜻한다. 현인은 영혼의 순화에 의하여 감성계를 벗어나 영혼의 실재화와 이데아 계를 바라는 철학적 진리를 직관코자 한다. 정의 사회, 즉 이상 국가는 4주덕[지혜, 용기, 절제, 정의]이 실현된 상태에 가능하다. 인격과 지혜를 갖춘 철인(철학자)이 통치자가 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기 본분에 해당하는 덕을 발휘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정의로운 국가인 이상 국가가 된다.

 

● 참다운 행복이 진정한 선이며, 선으로 가는 과정에 덕이 있다.

필리포스 2세 주치의를 부친으로 두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3~322 BC)는 20년간 플라톤에게서 수학했고,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기도 했다. 아테네 돌아와 소요학파를 이루었는데, 이데아의 실재성을 의심한 점에서 플라톤과 구별되었다. 경험과학적 사유를 통해, 존재하는 것은 현실세계 뿐, 학문적 대상이 되는 것도 현실계라고 생각했다. 이데아는 존재의 ‘원형’[플라톤]이 아니라 현실사물의 형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목적을 가졌는데,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덕을 쌓아야 하는데 이성에 알맞은 덕스러운 활동을 통해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윤리사상의 핵심은 ‘참다운 행복이 진정한 선’이라는 입장이었다.

방법론으로서 중용의 덕을 찬미했다. 중용은 지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상태이다. ‘오만 / 긍지/ 비굴’이나 ‘아첨/ 친절 / 퉁명’은 각각 ‘지나침 / 중용 / 부족함’을 의미한다.

 

헬레니즘 시대

 

헬레니즘(Hellenism)은 그리스인을 의미하는 ‘헬렌(Hellēn)’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그리스 문화를 말한다. 굳이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를 때는 헬레니즘이 그리스 안에서 밖을 향해 전파되어 세계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던 시대를 이른다.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인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이집트, 시리아 등 예전의 페르시아제국의 영토 전역을 포괄하는 지역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었고, 그 문화는 후일의 로마제국과 기독교의 성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에 있어서의 철학으로는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회의학파 등이 나타났지만 공통점은 무사안일을 지향하는 개인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 밖으로부터 오는 장애에 극도로 민감했고 자기의 내면에 파묻혀 욕망을 최소한도로 줄이려 하였다. 빵과 물만 있으면 제우스와 부를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은둔주의를 내세운 에피쿠로스(Epikuros, 342?~271 BC)는 이 방면의 전형적인 현자였다. 안티테네스(Antisthenes, 4세기 초)가 창설한 견유학파역시 참 행복은 외부에서 주는 세속적 관심을 떠나 정신적 단순성과 정직한 노동에서 얻어진다고 믿었다. 덕은 행복의 원천이요, 덕에 따른 행위는 무욕과 자기억제를 전제로한다. 내면적 자기만족과 정신적인 자유를 행복으로 간주하여, 윤리적 귀착점은 자연상태로의 복귀이므로, 무욕, 현실과 가정 및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소외성, 반문명, 현실회피, 기성사상 절연을 목표로 한다. 디오게네스(Diogenes, ? ~ 323? BC)는 ‘쾌락에 속하기보다는 차라리 광인이 되겠다.’는 말로써 극단의 청빈과 무욕을 선언했다.

 

스토아철학

이 시기에 동양의 도학정신과도 상통하는 스토아철학(BC 4~2세기)이 이성주의의 기치로서 윤리적 인생관을 펼쳤다. 헤라클레이토스와 견유학파를 계승한 이들의 세계관의 근거는 자연이었다. 자연은 로고스(세계를 합목적으로 지배하는 법칙)와 일치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 질서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로고스적인 질서의 특수성을 부여받았다. 그것이 이성이고, 인간 이성은 자연의 로고스와 통하며 자연의 질서는 인간적 사유와 삶의 기반을 만든다. 욕망, 격정 등 자기보존의 본능을 극복하여야만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자연에 따른 생활이고 아파테이아(apatheia, 냉담)라고 불리는 현자의 생활이다.

 

로마 시대

기원전 700년 티베르 강변에서인구 1000명의 농촌 마을로 시작된 로마의 팽창은 헬레니즘 강대국들과 몇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착실하게 세력을 넓혀갔고, 기원전 270년경에는 이탈리아 반도 거의 전부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이르러 대부분의 헬레니즘 세계를 장악하거나, 그 영향권 아래 두게 되었다.

로마의 속주가 된 이후 그리스는 독립과 자유를 상실한 대가로 평화를 유지하며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 시대가 계속된다. 신흥국 로마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었지만, 철학의 빈곤으로 아테네의 철학, 예술, 사상이 그대로 유입되었다. 로마인들은 지중해 지역과 유럽에 그리스 문화를 발전하여 퍼뜨렸고, 고대 그리스 문명은 언어, 정치, 교육 제도, 철학, 과학, 예술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 옥타비아누스가 제정을 시작한 기원전 27년 이후 200년 동안 로마 세계는 국내외적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을 ‘팍스 로마나’라 한다.

초기 로마에서는 네로황제의 스승이었지만 그에게 자살을 강요당한 세네카(Seneca, 4 BC~ 65 AD)가 군주아래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는 논지를 전개하여, 제정체제의 이념적 좌표를 마련했다.

달은 차면 기울듯이 로마 또한 기울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306~337)는 전통의 다신교 대신 기독교를 로마의 사실상의 국교로 정립했고, 전통의 로마 대신 비잔티움, 즉 콘스탄티노플을 제국의 새로운 중심지로 세웠다. 그때부터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나뉜 제국은 다시는 하나를 이루지 못하였다.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인 용병대장 오도아케르(Odoacer, 435~493)에 의해 멸망했다. 헬레니즘 문화는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세력을 잃어갔다.

 

 

2. 중세의 헤브라이즘

 

기독교의 융성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고대의 막이 내리고, 1000년을 계속할 중세(476~1453)가 시작된다. 5현제(96~180) 시대에 벌써 신흥 기독교는 100년 경 순교의 극치를 이루면서 성장해갔다. 이 제국에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313년)에 의한 기독교 승인은 문화적인 대변혁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헤브라이즘 문화로 바뀌는 계기가 되고, 기독교는 국교로 정해졌다.(394년) 또한 민족대이동(4세기 말~ 6세기 말) 시기에 게르만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정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유럽역사의 신기원인 중세가 시작된 것이다.

게르만족이 이룬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는 서부, 중부유럽의 대부분으로 영토를 넓혔고, 이탈리아까지 정복하여 800년 교황 레오 3세에게 비잔티움제국과 대비되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직을 수여 받았으며, 황제가 된 후 교회를 통해 예술, 종교, 문화를 크게 발전시켰다. 비잔티움제국에 헬레니즘이 잔류하고 있는 동안, 신성로마제국에서는 기독교의 문화, 즉 헤브라이즘의 꽃이 핀 것이다.

 

헤브라이즘(Hebraism)의 원형은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 즉 구약성서에 기초한 유대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기반을 둔 현세부정의 사상이다. 고대의 시대에는 타계 관념은 있었어도 현세의 가치는 부정되지 않았는데, 이 시기의 종교는 인간은 영원히 이 세상에 전생하며 고통을 경험하여야만 된다든지, 타고난 죄(원죄)의 관념 등을 가르쳤다. 헤브라이즘은 신에 대한 복종과 윤리적 행동을 위하여 다른 모든 이상들을 포기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헤브라이즘의 본질은 ‘양심의 엄격함’으로 규정된다.(매튜 아놀드) 헤브라이즘의 중심에는 절대자인 신이 존재하며 신은 언제나 도덕적인 존재로 상정된다.

 

유대교는 고대 이스라엘 왕조가 바빌론 유수(597~538 BC) 후 모세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정립된 것이고, 다른 뿌리로는 고난의 종복이 구제받는 구제관이 강해지고 나사렛 예수에 의해 구제가 실현되었다는 믿음이 기독교를 탄생시켰다. 기독교는 헤브라이즘의 전통과 깊은 관계에서 출발하여 그 형성기에 헬레니즘과 접촉하면서 이에 영향을 받아 이론적 · 철학적 성격을 얻게 되고, 이른바 기독교 신학을 형성하였다.

 

중세의 세계상은 기독교와 봉건제도의 두 축으로 안정되어 폐쇄 응집된 계급으로 분류된 조화된(것처럼 보이는) 질서의 상을 보여준다. 신은 존재의 피라미드에서 최정상이며, 최고의 존재하는 자, 모든 사물의 최초의 운동자이다. 모든 제한, 예외, 이단운동 같은 경계현상을 포함해서 지상적인 것은 최종 목적으로서의 신적인 표상에 따라 정돈된다.

창조의 핵으로서 인간은 정신적-영적이자 선한 세계와 물질적이자 악한 세계를 연결하는 부분이다. 인간은 선과 악, 신과 악마, 구원과 원죄 사이에서 투쟁하는 현신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 또한 신의 창조물이며, 신에 의해 영도된다. 역사는 구세사이며, 낙원의 추방에서 시작되어 최후의 심판일까지 계속되며, 그 이후에 비로소 신의 왕국이 이 땅에 도래할 것이다. 왕국들과 황제국은 신의 왕국이 우선 지상에서 잠정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이해된다. 개개인은 이 신의 질서 속의 작은 한 부분이며, 그에게는 이 질서 속에 특정한 확고부동한 자리가 점지되어 있다. 개인은 ― 오늘날 현대에서와는 반대로 ― 결코 개인이라고 느끼지 않으며,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느낀다.

 

●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카르타고 출신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0~222)는 기독교 신앙은 이성을 포함하고도 초월하는 신앙적 계시에 의한 것이므로, 때로는 초이성적이며 반이성적 진리적 인식을 호소했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는 명제로, 예루살렘과 아테네는 다른 차원임을, 신앙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어떤 평신도도 플라톤 보다 우위에 있다, 신앙은 철학을 포함하며, 계시는 이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고대와 중세의 인간관에 현저한 차이가 발생했다. 고대 헬레니즘에서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영육의 구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세 기독교의 인간은 영은 신에게 육체는 자연물질에 속하는 양분법으로 나뉘었다. 육에 이르는 길은 타락의 길이며 죄의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생각하여 신학교를 중심으로 금욕주의가 발생했다.

최초의 신학원(교리학교)이 180년 경 알렉산드리아에 설립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신학원의 클레멘스(Clemens, 150~211)는 이교도로서 그리스 철학을 섭렵한 뒤에 기독교를 신봉하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 세계관의 철학적 이해와 인식을 위해서 플라톤이나 스토아 철학적 방법을 도입했다. 신의 뜻은 유대인에게는 율법으로, 그리스인에게는 철학으로 나타났는데, 둘이 완성된 것이 그리스도의 진리이라고 생각했다.

 

클레멘스를 이은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는 스스로 거세한 금욕주의자로 신을 향한 인간의 질서에 관해 깊이 사색했다. 세계는 신의 피조물이고, 신은 만물의 영원한 근원, 영원, 불변, 전능, 전지이다. 피조물은 완전자에 대한 동경을 갖는데, 그것이 신앙의 원천이고, 구원에의 갈망이다. 주어진 자유를 오용하여 태만과 과오, 타락의 시계로 떨어진 인간의 지상의 삶은 훈련과 징계의 연속이므로 세속적인 욕망, 결혼, 병역, 관직 등을 버리고 초연한 신과의 일치와 안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교육했다.

 

● 신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진정한 자유

초기 기독교 교회의 대표적인 교부이자 가장 영향력을 가졌던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뒤늦게 기독교에 귀의하여 고대철학을 극복하고 중세철학을 세우게 되었다. 그는 신앙과 지식의 관계에 대해, 신앙이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신학과 철학, 그리고 신학과 일반 학문을 함께 연구하는 중세의 스콜라 학풍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요한 신학적 공헌은 은총론으로, 세계는 신의 이데아에 따라 그 의지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원죄를 짊어진 인간은 악을 행하는 자유를 가지되, 구원은 오로지 신의 은총에 의해 가능하며 교회가 이 은총을 매개한다. 누가 구원의 대상이 되는가는 신의 영원한 예정에 의한 것이라는 예정설을 세웠다. 그의 결론은 『고백록』(400년)의 유명한 구절 ‘주여, 당신께서는 나를 당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드셨나이다. 내 영혼은 당신 품에서 휴식을 취할 때까지 편안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신을 사랑하는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신을 사랑하려면 신을 알아야 함은 물론, 신이 잠재해 있는 우리의 영혼도 알아야만 한다. ‘신은 우리 영혼에 내재하는 진리의 근원’이므로, 신을 찾고자 한다면 굳이 외계로 눈을 돌리려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 속으로 통찰의 눈을 돌려야 한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너 자신에게로 돌아가라, 인간의 내부야말로 진리가 머무는 집이다.’ ‘믿으라, 그러면 인식하리라.’ ‘믿기 위하여 인식하라.’라고 가르쳤다. 인식보다는 진리 자체가 중요하고, 윤리보다 신앙적 구원이 절실한 것이었다.

 

스콜라철학

중세 전반부는 교부철학의 시대라고 한다면, 9세기경에는 교단과 신학원(대학)에서 스콜라철학의 융성을 보게 된다.

 

●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캔터베리 대주교 안젤무스 (Anselmus, 1033~1109)는 신은 실재이며 완전한 보편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스콜라철학의 본질과 위상, 신의 존재에 관한 본체론적 증명을 시도했다. ‘존재가 있는 이상 최고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최고가 아닌 존재는 최고의 존재에 그 존재성을 의뢰한다. 최고의 존재는 스스로의 본질에 의뢰한다. 그렇지 않으면 최고가 되지 못하는 때문이다. 즉, 최고의 존재인 신의 본질은 그 존재성을 포함한다.’ 즉, 본질이 실재를 포함한다는 입장이었다. ‘신이 만일 형이상학적 존재를 가기지 않고 의식 내용에 그친다면, 형이상학적 준재와 의식 내용을 아울러 가지는 자는 신보다도 완전한 것이 되며, 따라서 신의 최고 완전성과 모순된다. 그러므로 신은 형이상학적 존재도 가진다.’

 

프란체스코 교단

영국 출생으로 프란체스코 교단의 창시자였던 알렉산더(Alexander, ? ~1245)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교회철학으로 도입한 장본인이었다. 그에게 스콜라철학의 특징은 ‘범론(summa)’ 즉, 많은 저서를 통해 학자로서 인정받는 관습이었다. 현대적 의미로 논문의 형식이라 할 수 있게, 신학 및 철학적 문제를 제시하고, 답은 성서나 교부들의 말에서 전승되거나, 철학자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서 인용되어야 한다. 마지막은 자신의 생각으로 결론짓는다는 것이다.

 

도미니크 교단

프란체스코 교단이 신앙생활에 더 큰 뜻을 두었다면 도미니크 교단은 학문연구에 더욱 몰두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인 알베르투스(Abertus Magnus, 1206~1280)는 ‘보편적 학자(Doctor Universalis)’답게 모든 것을 인용했고, 자연은 아리스토텔레스, 신앙은 아우구스티누스, 의학은 히포크라테스 의존하면 된다고 말했다.

경험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동식물과 광물계의 관찰과 천문학적 연구를 하였는데, 이 영역에서는 경험만이 확실성을 부여한다고 주장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관찰 결과에 근거하여 주저 없이 정정하면서도, 교육을 위해서는 세계와 인간에 관한 학문, 즉, 철학이 불가결하며 이 같은 세속적 학문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선의 교사라고 확신하였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나폴리 귀족 가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기독교 신학과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종합하여 스콜라철학을 대성했다. 근본 사상은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은 엄밀히 구별되지만, 이것들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닌 신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필연적인 조화라고 생각하였다. 철학과 신학의 조화에서 신학은 내용, 철학은 방법이 된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인 한에서 진실한 것이다.

또한 자연이 은총에 의해 버림을 받지 않고 완성되는 것처럼, 자연적 이성은 신앙의 전단계로 신앙에 봉사하는 것이라 하였다. 신앙과 이성(은총과 자연의 빛)을 조화시키는 데에 있어 이성에 의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으며 종교적 진리에 대한 반대를 논박할 수 있다. ‘보편은 개체 중에 존재한다.’는 확신에서 이성과 신앙의 통일을 주장하게에 되었음은 중세신앙의 중요한 변화의 전기가 되었다.

 

● 영혼의 불꽃

다음 세기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1260~1327)는 도미니크교단 소속이었지만 정통 기독교신학과 신앙의 정통성을 바꾸어 놓은, 신비학의 창시자에 해당한다. 신비적 체험을 설교하되, 그의 신비주의는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합일을 설교하는 정감어린 것이 아니라 지적이며 사변적인 색채가 강하다.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은 ‘영혼의 불꽃’이란 개념이다. 사람이 순수하게 신을 생각하고 자기를 벗겨 버리면 마침내 신이 항상 마음에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영혼의 근저에 있어서의 신(신의 자식)의 탄생’이다.

완전히 개성적인 것을 향하는 경향 때문에 신비주의적 경건성은 점차 루터의 종교개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종교 자체가 전통적인 신앙에서 이탈되었다는 것은 중세의 종말을 의미하며 무신론에의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들은 또한 인문주의자들로서 르네상스시대에도 활동한다.

 

 

3.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계몽주의

 

인문주의(Humanism)의 어의는 다양하며, 인간주의, 인본주의, 인도주의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로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인간 또는 인간에 관한 것에서 가장 중시하는 정신태도’로 정의된다.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특정의 체계적 사상을 가리키기보다도 오히려 인간을 존중하는 윤리적 태도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특히 개별 인간의 이해와 가치 그리고 위엄을 지향하는 철학이자 세계관이다. 관대함,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양심의 자유 등이 인간 공동생활의 중요한 원칙으로 간주된다. 일반적 의미에서는 휴머니즘이라고 하고, 좁은 의미의 역사적 개념을 말할 때는 인문주의라고 한다. 특히 15세기의 이탈리아를 정점으로써 개화한 서구 르네상스와 관련하여 르네상스 인문주의라고도 한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유럽 공통의 문화시대를 지칭한다. 프랑스어로서 ‘재탄생’을 의미하며, 재생이란 한 번 사멸한 고대 문화가 그 시대에 소생한 것을 의미했다. 넓게는 고대의 문화적 재생, 예술과 사상의 재활이라는 범 유럽적 운동을 지칭한다. 특징은 인간 긍정의 지적운동으로, 고대의 재발견과 중세적 정신형태로부터의 탈피를 지향한다. 그것은 지상적 인간의 활동과 인격을 재평가한다는 의미였다. 중세적인 세계상과 인간상을 극복하고, 전래(고전시대)의 국가질서와 사회질서를 극복한다는 것은 전권신앙의 자리에 비판적인 연구의 정신이 자리하고, 인간은 모든 사물의 척도가 되며, 국가의 이성이 정치의 원칙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단적으로는 인문주의 정신에서 고전적인 고대가 재탄생한다는 뜻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핵심에는 휴머니타스 연구의 정신이 존재한다. 이는 고전적 인간교양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고전 고대의 문학적 연구라는 측면과 보다 좋은 인간을 형성하기 위한 지식추구라는 측면을 겸비하고 있다. 휴머니타스 연구는 과거의 신성연구에 대신해 새로운 시대정신의 모체가 되고, 그것은 피렌체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각지에 공명을 부르고, 르네상스 문화의 번영시대를 실현하게 된다. 여기에 새로운 진보적인 원칙들이 도입되었다. 핵심은 인간성 회복이 중심 과제로, 인간 중심의 학문과 사상의 탄생한 것이다.

 

중세는 종교의 시대였고, 기독교 신앙이 모든 사상계를 좌우, 은총과 조화의 질서가 가장 충만하게 채워진 기간이었다. 철학과 사상은 신학의 그늘 아래, 학문과 예술은 종교적 목적에 봉사, 인간은 신의 뜻과 질서에 순응하면 그만이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준비된 신의 선물이다. 인간의 영적 실재인 정신의 신에게 속하고, 육신은 물질과 통하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이제 중세의 신비적-정신적 경향의 형식언어가 세속적, 수학적-과학적 명증성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비잔틴에서 이탈리아로 온 그리스 학자들의 몫도 컸다. 1400년만 해도 비잔틴에는 서로마가 망한 뒤 여전히 천년의 고대문화를 간직했던 학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예를 들어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정신이 그대로 활발히 살아 있었다. 1453년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이 터키에 정복당한 뒤, 많은 그리스 학자들이 침략자 터키인들로부터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곳에 있던 그리스-로마 작가들의 원고를 들고 베네치아며 다른 이탈리아의 도시들로 이주했다. 유럽 전역에 예술의 재활과 고대 정신의 재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연원으로 돌아가라!

인문주의자들은 고대의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헤브라이어와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가능하면 새로운 언어로 전달하고자 했다. 성서의 신학적 해석에서도 또 철학적 논의들에서도 가능하면 고대의 원천에서 그 기초를 끌어내고자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문주의자들의 구호는 ‘연원으로 돌아가라 Ad fontes’(에라스무스, 1511)였다.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Erasmus von Rotterdam, 1469~1536)는 초기 근대의 가장 저명하고 영향력 많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로 꼽힌다. 유명한 저서 『우신예찬』(1509/1511)은 영국인 친구 토머스 모어 Thomas More(1478~1535)에게 헌정한 라틴어로 쓴 아이러니적 교훈서로서, 이탈리아와 영국 체류에서 얻은 경험들을 다루었다. 의인화된 ‘우매’는 ‘자애’, ‘아첨’, ‘건망증’, ‘나태’ 그리고 ‘쾌락’이라는, 소위 치명적 죄악의 이름을 가진 딸들과 더불어 세상을 비굴하게 만들어간다. 철학자와 신학자들의 쓸데없는 논쟁,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의 위선, 칼과 불을 가지고 기독교도의 피를 흘리게 하는 고위 성직자들, 이런 것들이 모두 ‘우매’의 승리라고 비웃었다.

‘인문주의자의 영주’요, 지적인 자유를 위한 투사는 중세의 구조에 대항해 싸웠고, 유럽의 자유를 위해, 시대정신에 대항해 싸웠다. 교회의 타락을 준열하게 비판하고, 성서의 복음정신으로의 복귀를 역설하였으므로 제자들 중에서 많은 종교개혁자가 나왔다. 인문주의란 ‘보다 인간적인 학예’를 초래하려는 운동인데, 가톨릭교회에 속하는 에라스무스가 ‘기독교의 복원’을 원하여 가톨릭교회 제도를 비판하고, 성서의 교정을 시도하고, 고대 학예를 소개함으로써 경화된 사고방식과 견해를 시정하려고 한 것은 바로 인문주의의 정도를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역할

원래 고대의 예지와 기독교적 윤리의 연결을 수단으로 내면의 개혁을 추구해갔던 학교와 대학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후일의 종교개혁의 선구가 되었다. 교육기관은 처음에 교회나 수도원의 부속학교가 교육을 담당하는 동안에는 스콜라철학 위주였지만, 12세기 이후 설립되기 시작한 대학의 특색은 성직자의 양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학문의 기틀을 다지는 데 있었다. 대학은 교회의 전래된 스콜라 사상과 결별하고, 교회의 저항에 대항했다. 많은 인물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운동은 마지막에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서 촉발된 종교개혁의 성립에 기여한 부분이 크다. 루터와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1497~1560) 뿐 아니라 에라스무스도 초기에 여기에 속했다.

 

절대주의 사회

17세기 유럽은 정치적으로 왕이나 영주의 무제한의 통치권을 의미하는 절대주의가 폭넓게 각인되었다. 절대국가는 각자가 특정한 계급으로 태어나며 거기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사회위에 군림했다. 이 신분사회 최상부에 귀족이 자리하는데, 그 또한 절대적인 통치자에 의해 많은 부분 권력을 거세당했지만, 그 대신 면세의 특권과 토지소유권을 확보했다. 시민계급은 한편으로는 국가적으로 경영되는 중상주의 경제의 담당자이자 이용자이었고, 그러나 귀족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어떤 영향력도 없었고 특권 또한 전무했다. 가장 큰 고통은 농부의 몫이었으니, 국가에 대한 세금과 땅을 갈아먹는 지주에 대한 공납이었다.

신성로마제국 독일을 예를 들면 주민의 75%는 농업으로 생계를 삼고 있었다. 이 대부분의 시골주민들에게 가톨릭과 신교는 왕과 영주들과 결탁하여 소위 ‘신의 뜻’인 그들의 운명에 순명할 것을 설교했다. 무지와 미신(마녀 광신), 편견, 깊은 회의가 널리 확산되었다.

 

계몽주의

18세기가 되면서 세계상은 달라졌다. ‘종교’라는 오랜 화두 대신 이제는 새 이념인 계몽주의(+고전주의)가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럽으로 확대되어 갔다. 미합중국과 서유럽의 대국들이 점차 강해지고 국가와 사회생활에서 발전의 담당자가 되어간다. 유럽 전역의 의미에서는 산업자본주의와 자본소유 시민계급의 출현으로 귀족계급과 시민계급의 대결이 현실로 닥쳤다.

절대주의의 권위는 도전받기 시작했다. 우선 프랑스에서 시민계급의 일부 특히 지식인들과 몇몇 귀족들이 이 상태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성적인 사고의 명령에 준해서 그것을 평가했다. 절대주의 대신 자유를, 신분질서 대신 평등을, 편견 대신 경험과 학문적 인식을, 교의주의 대신 관용을 ― 이것이 새로운 이상이었다.

피안에 대한 희망 대신에 낙관주의의 인간은 그의 생의 감각을 차안에서 보아야 했다. 그들은 선을 행해야 했고, 그들의 덕성은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처럼 후일의 형벌(지옥, 불)에 대한 공포에서가 아니라 그 정당성과 유용성에 대한 인식에서 전개되었다. 인간은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정신적 억압에 대해 ‘계몽’되어야 했다. 인간이 우선 이 억압의 원인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그들에게 정당한 목표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고 스스로 해방될 것이라고 계몽주의자들은 생각했다. 이 경우 계몽주의는 ‘인간은 생득적으로 선하고, 그러므로 올바른 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신학관의 세계는 자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의 합리성과 과학적 세계관을 부각시켰다. 근대 자연관에서 사용된 방법론은 사유와 지식의 근원을 경험으로 보고, 경험적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공통점을 추출함으로써 어떤 일반적인 원리를 발견하려는 경험론으로 발전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구호로 유명한 영국의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은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우상을 타파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연 과학적 지식의 유용성을 강조하였고, (이는 후세에 공리주의와 실용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 지성의 방법을 통한 참다운 지식으로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고자 하였다. (정복지향적 자연관)

베이컨은 『신기관』(1622)에서 낡은 우상의 파괴를 요청하고 낡은 스콜라식 삼단논법을 비판했다. 파괴해야할 우상으로는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등 네 개의 우상을 들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투렌 지방의 귀족 출신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지식 연구의 목적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원인ㆍ결과의 연관을 취하여 인간 본질을 개선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가 염두에 둔 보편학이란 엄밀한 논증적인 지식인 수학에 근거하여 형이상학, 의학, 역학, 도덕 등을 포함하는 학문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그의 성과는 무엇보다 방법적 회의에 있다 하겠다. 방법적 회의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의심하여 더 이상 의심하려야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진리에 도달하자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 없다고 한다. 사유의 내용은 의심할 수 있어도 사유한다는 사실과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존재는 틀림없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제1원리로 내놓았다. 이 명제는 신으로부터 출발한 객관적 근거가 없는 주장을 신앙으로 강요하는 중세적 스콜라철학에 대항한다. ‘생각하는 나’, 즉 ‘인간의 의식’이 우선한다.

 

● 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지라!

30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국토 전체가 크게 황폐화된 독일은 근대화 물결에서 다른 유럽 여러 나라보다 낙후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영국의 경험주의자들과 프랑스의 합리주의자들의 철학은 독일에서도 점차로 정신생활에 대한 교조주의적인 신학자들의 영향을 감소시켜 갔다. 루터 이래로 넓게 퍼진 영혼의 공포와 종교전쟁에 의하여 뒷받침된 비판적인 현세부정을 수반한 이원론적으로 분열된 세계상, 그리고 신앙인들 사이에 여전했던 기적신앙과 유령신앙은 이성의 광명과 새로운 낙관주의 앞에서 후퇴해 갔다.

비판철학의 창시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게서 계몽주의의 개념 규정이 나왔다.

‘계몽주의란 자신의 잘못으로 된 미성숙상태로부터의 인간의 탈출이다. 미성숙상태는 다른 사람의 인도 없이 자기의 이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을 말한다. 만일 이 미성숙의 원인이 이성의 결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인도가 없이 스스로 이용하겠다는 결심과 용기의 결핍에 있다면, 이 미성숙상태는 자신의 잘못으로 된 것이다. 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용기를 가지라! 이것이 바로 계몽주의의 표어이다.’(1784)

그 외에도 칸트의 ‘정언 명령’ 개념은 현대에까지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정언명령의 2가지 원리 중 보편주의 원리는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것이고, 인격주의 원리는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하라.’는 것이다.

 

●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일이다.

인간의 이성이 꽃을 피우는 계몽의 시대에 계몽사상가의 좌익을 이루며 계몽주의조차 비판한 루소(J. J. Rousseau, 1712~1778)에게는 ‘모순적’이라는 형용사가 따라 붙는다. 인간은 출신에 관계없이 평등한데 불평등은 사유재산에 기인한다고 하면서도, 작은 소유를 인정하고, 노동을 높이 평가하는 소시민(쁘띠 부르주아)적, 수공업자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물질과 정신은 함께 영원히 존재하는 원리라고 보는 이원론에 서서 영혼은 불멸하다고 보면서 이신론(理神論)의 입장을 취했다.

그는 도덕적 관념은 생득적이며, 모든 사람의 판단은 이성에 의해서이고, 개인에게는 자유가, 사회에서는 평등이 보장되는 삶과 국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회학적으로는 봉건적 전제 지배를 격렬하게 공격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시민의 자유를 강조했다.

『사회계약론』(1762)에서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인데, 지금은 어디에서나 사슬에 얽매여 있다.’고 주장했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그에게 인간의 자연적 충동은 건전하고 선량하다. 사회가 인간을 사악하게 만드는 장소이다. 인간은 한때 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지만, 이제는 겉꾸밈과 경쟁, 과시적 소비 속에서 살고 있다. 각종 제도는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인간을 소외시킨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의 부르주아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작용을 했다.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의 계몽주의 자유사상이 정신적 원인이 되었고, 이성적인 힘과 자유의 정신이 프랑스의 정신세계를 일깨워 혁명적 민중봉기를 낳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자유, 평등, 박애 - 여기서 박애정신은 기독교 전통의 사랑이 아니라 휴머니즘 결실로서의 박애정신이다.

 

● 역사는 자유의 전개과정이다.

독일관념론 철학을 완성시킨 체계적 형이상학자 헤겔(Friedrich Hegel, 1770~1831)에게 세계는 ‘정신(Geist)’이다, 그리고 변증적으로 발전한다. 그의 입장은 절대적 관념론으로,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Friedrich Wilhelm Schelling, 1775~1854)의 객관적 관념론의 모순 대립을 매개하여 통일한 것이자 이 두 입장을 관념론의 웅대한 하나의 철학체계로 종합하여 완성시킨 것이다.

『정신현상학』(1807)에서는 절대자의 자기인식, 곧 절대지의 생성 과정의 역사를 기술했다. ‘사고와 존재의 완전한 동일성’의 주장은 이성적인 것만이 진실로 현실적일 수 있으며 현실적인 것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할 것이라는 근본적 전제를 말한다. 이성개념(절대자)이 정립ㆍ반정립ㆍ종합의 3단계를 거치는 자각의 과정이 변증법이다.

세계정신의 화신인 인류는 역사의 과정에서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점점 더 큰 자유와 완성으로 신적 이성의 확대로 점점 더 크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세계사를 신의 이성의 단계적인 구현이라고 간주했다. 변증법적 과정에서 객관적 정신의 최고의 형태로서 이성적인 인간은 현대적인 국가를 창출한다고 믿은 것이다.(『정신현상학』)

헤겔 철학에서 인간은 신의 전지에 맡겨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셸링은 개개의 현실적 인간으로서의 실존의 입장에서,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 1804~1872) 등 헤겔 좌파는 사회적 현실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각각 그들 나름대로 날카로운 비판을 했다. 셸링에서 후일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 1813~1855)에 의해서 실존주의로, 후자의 입장은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주의로 각각 계승된다. 독일관념론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시작되어 헤겔의 사망(1831)으로 끝났다고 간주된다.

 

☞ 2강으로 계속

Posted by 서용좌
강연-강좌2010. 10. 9. 00:00

말과 글, 그리고 경계인


“프로메테우스 - 그 의미는 선각자이다 - 는 하늘에서 불을 가져오기를, 그것으로 오직 소시지 구이들이 장사나 할 수 있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 그는 그것을 땅이 불타도록 가져온 것이었다. […] 만일 이 금기위반이 […] 부르주아들이 점점 좋아하고 점점 더 돈을 버는 데나 쓰인다면 - 문학은 되돌아가야 한다. 아니, 불을 하늘로 다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 모든 선각자들처럼 지략을 써서 문학은 어떤 길을 찾아야 하고 찾아내야 한다.”


이런, 평생 하이에나가 되어 남의 나라 남의 글 뜯어먹고 사는데 진력이 나서 도망쳤는데, 기어코 마침표를 찍으라 하니 또 그 짓을 되풀이하며 하인리히 뵐의 말과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군요. “오직 소시지 구이들이 장사나 할 수 있게?” 이 말은 자본주의에 완전히 강점된 이 세상, 이 지구를 향해 통탄의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이 말을 저는 마침 한글날에 즈음하여 이렇게 변형해보고 싶습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면서, 훗날 남북으로 갈려 살면서 남쪽 대통령이 대북제안을 내놓을 때 하필이면 외국말로 ‘그랜드 바겐’이라고 하고, 우리 땅 멀쩡한 이름 놓아두고 새 이름 짓겠다고 총리실에서 ‘새만금 글로벌 네이밍 공모’를 하라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우리가 기적 같은 문자를 누린 600년도 채 못 되는 세월을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 ‘훈민정음’으로 반포된 글자가 그 조선시대에 ‘언문’이라 해서 한문을 숭상하는 사대부들에게 경시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갑오개혁에서야 공식적인 나라 글자가 되었지만, 곧 닥쳐온 국권피탈은 다시 극한의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가, 말과 글이 푸대접 받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한글’은 그 이름을 얻고 ‘맞춤법통일안’이 나왔습니다. 세계문학에서의 근대적 사조들인 낭만 · 자연 · 상징주의 등이 한꺼번에 들이 닥치면서 신문학운동이 폭발했던 것도 그 즈음이었죠. 그런가 하면 우리의 신문학이 서구의 문학장르를 채용하면서부터 형성되고 문학사의 모든 시대가 외국문학의 자극과 영향과 모방으로 일관되었다는 ‘이식문학론’은  ‘조선문학’의 정체성을 화두로 심각하게 고민했던 증거입니다.

말과 글의 예술, 문학의 속성은 바로 그러한 불모지에서 더욱 꿈틀거리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배고픈 천사”의 친구 레오를 주인공으로 한 『숨그네』의 헤르타 뮐러에게 노벨문학상이 결정되었을 때 독일문단에서도 예상작은 아니었던 것이, 바로 그가 ‘아무것도 아닌’ 경계인이었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주변인, 경계인들의 가슴에서 나오는 작품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일까 - 그런 이야기를 쬐끔 해보겠습니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강연(?)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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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까지가 팸플릿을 위한 글이었다.

  강연은 2010년 10월 8일, 한글날을 하루 앞두고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103호실에서.

Posted by 서용좌
강연-강좌2004. 11. 4. 21:41

, 상상력의 힘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2004. 11.4.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

왜 어른들은 자라는 청소년이 이야기에 빠지는 것을 저어했을까?

아침형 인간이 떠오르는 건전한 세계 속에서

   - 밤새 책을 쓰거나 읽는 비생산적인 인간의 무용성

   - 순수문화 영역의 자생력 상실


궁핍의 시대의 시인들

“어찌하여 시인은 궁핍한 시대를 살아야 하는가?”

... wozu Dichter in dürftiger Zeit? - 횔덜린의 「빵과 포도주」7연

  [직역] 궁핍의 시대에 시인은 무슨 목적/필요가 있는가?

 

화평이 깨어지고 정신이 퇴락하는 시대를 궁핍한 시대라 했고, 그때 시인은 “영웅들이 강심장으로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시인은 차라리 잠을 자고 싶다는, 어떤 행동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인의 곤혹스러운 입장, 다만 성스러운 밤을 떠돌았던 주신 디오니소스의 성스러운 사제들일 것”

이라고 정의. 횔덜린은 사회 변화와 경제 발전에 따른 전통 가치의 와해를 퇴행으로 보았다.

그래서 사회의 도덕적 가치의 재건이 시급하다고 보았다.[복고적]

횔덜린이 추구한 근원적 의지는 생과 자연의 합일이며 영혼의 순수함을 구하는 데 있고, 기독교의

유일신과 그리스의 다신론을 총괄하는 신의 세계이다. 


“이 끝없이 풍요로울 것 같은 세상에서 시인은 얼마나 더 궁핍해야 하는가?”

삶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바로 궁핍.

인간에게서 조화의 감정은 지속이 아니다. 부단히 무언가 결핍에서 도피하고자 몰두한다!

1904년 - 100년 전에 비해 우리는 분명 잘 살고 있다.

가히 전무후무한 풍요의 시대, 빈곤으로부터 상대적인 해방, 진정으로 잘 살고 있는가?

얼핏 보아서 개인과 사회의 욕망은 오래 전에 비인문적 방향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것 같다.

무한의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로서의 인간은 한계 앞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하고

-- 범세계적으로 인문주의 정신의 부활을 논하는 것. 인간의 자기치유 능력?


왜 쓰는가?

조정래 - 자본주의의 자기 최면 속, 인생은 무엇인가? 문학적으로 가치있는 삶을 쓴다.

          문학성: 감동, 영혼의 떨림. 민족통일에 문학이 기여할 수 있다.

서정인 -  세상은 혼돈 … 캄캄한 미로 벗어나기 위해 쓴다.

“나는 지금도 욕심이 목에까지 꽉 차서 동서남북 천지현황을 모른다. 이 세상은 나에게 혼돈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결코 그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거기에 분명히 있을 원칙도 질서도

정의도 볼 수 없다. 한 사건과 딴 사건 사이의 관계가 내게는 안 보인다. 틀림없이 별들의

운행처럼 필연일 많은 일들이 내게는 우발적인 사고들이다. 나는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왜 쓰느냐는 이 캄캄한 미로를 벗어나기 위해서고, 어떻게 쓰느냐는 그 길을 찾는 것과

같다.”


카프카: 갑충으로 변한 현대인의 자화상.

「단식 광대」(1924): 단식하는 광대에서 예술의 정신성, 비생산성, 인간의 무능력.


괴테 『파우스트』:

인간으로서 모든 한계를 지닌 자, 한계를 의식하지 못하고 “절대적 진리”를 찾아...

“파우스트적 충동” : 다양한 인생을 편력, 체험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 대하려는

 충동. 영원의 여성에 의해 이상의 궁극으로 향상하려는 욕망.
 집필원칙: “모순들을 통합하는 대신 더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겠다.”


독서의 나라 동독

- 괴테에게로 전진 Vorwärts zu Goethe!(J. Becher)

-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가에게 진리에 충실하고, 현실의 구체적으로 역사적인 표현을

  그 혁명적 발전 속에서 하도록 요구, 노동자들의 이념적인 변형을 위한 기여와 이들을

  사회주의의 궤도 속에서 교육해야 하는 과업을 함께.

- 문화연맹 / 국민 Nation 개념, 사회주의적 독일 국민문화 Nationalkultur

- 형식주의 반대운동: Inhalt, Idee, Gedanke 중시

                     데카당스, 세계시민주의, 자연주의, 모더니즘, 형식주의 거부

- SED 인민재판: 모더니즘, 회의주의, 무정부주의, 허무주의, 자유주의, 외설 추방


① 패러다임의 변화

- 테마도 아닌 테마 Un-Thema 서방 도주, 자살기도 : Ch. Wolf

- 의미내용, 서술방식에서 무정부주의 요구: F. R. Fries

- 예술의 자율성 요구: G. Kunert

- 시의 실험적 성격을 고집하면서, 신경제체제의 문화정책에서 요구했던 직접적인 사회적

   유용성에 거부하는 자세: V. Braun


*고전주의, 특히 괴테의 상을 반대, 특히 낭만주의자들에게로 방향 선회 →패러다임의 변화

- 신화수용 변화: 아폴론, 아프로디테, 프로메테우스, 헤라클레스

                → 마르시아스와 오르페우스, 다이달로스, 이카루스, 카산드라, 니오베...

- 다른 해석:

『필록테투스』 H. Müller (58년에서 64년 사이에 집필, 77년에야 동독에서 상연됨)

오디세우스를 영웅도 명장도 아닌, 거짓 술수에 능한 마키아벨리 같은 현실정치가로서 그려냄

으로써, 스탈린주의에서 정점을 이룬 공산주의의 실제 역사를 전술과 테러의 역사로, 휴머니즘의

몰락에 대한 암호로

『카산드라 Kassandra』Ch. Wolf (1983)

그리스 문명의 남성적, 전투적, 합목적적 성격 고발.

“카산드라의 운명은 그 후 삼천년간 여성들에게 일어날 것을 미리 마련하고 있다. 즉 여인은

 대상으로 되고 만다는 것... 여성들의 내면적 역사는 자율성을 얻기 위한 투쟁이다.”


② 상상력/환상을 권좌로!

70년대 문학의 구호: “상상력을 권좌로! Phantasie an die Macht!”

     남성지배, 폭력, 전쟁, 오로지 기술적 합리성에서 나온 공포의 연합에 대항하여,

     생생한 상상력과 비유적 사고의 새로운 결실들이 등장 한 것.


“삶의 무한정 뒤얽힌 평면”(Musil)인 사회의 실제적 조직관계 속으로 들어온 문학 -

유일하게 유용하고 현실주의적인 세계관이라고 주장하는 도구적 이성의 독재에 대한 저항.

일차적인, 이미 규정된 현실 → 상상물, 환상들, 허구들로 구성된 2차적인 다른 현실로 설정

(Adorno)

“전혀 다른 것에 대한 동경”(Bloch): 다른 세계를 그리고자 하는 욕망은 가없다.


가능성감각

“가능성감각이란 마찬가지로 좋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는 가능성감각, 존재하는 것을 존재

하지 않은 것보다 더 중요하게 간주하지 않는 것.”  “정신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 어떤 결론

에도 도달하지 않는, 샘솟아나고 꽃피어나는 그 무엇으로서 파악하는 것, 그것은 궁극적으로

다른 삶의 유토피아로 이끌어간다.”(Musil)


전면만을 그린 그림에서 나무 전체를, 아예 푸르름으로만 그려진 화폭에서 숲 전체를, 그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들을, 무생물이라고 생각하는 바위와 돌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믿을 수 있게

하는 것 - 상상력

기록된 숲 - 비문학

 

※ 독일의 (철저)자연주의는 “하나의 막간극 (H. Bahr)

“최초의 현대 modern” 또는 “문학 혁명”

종족, 환경, 계기가 예술작품을 결정한다.(Taine)

3E: 타고난 천성이란 상속된 것, 교육이란 학습된 것, 생활이란 체험된 것(Scherer)

인간 역시 물질적, 육체적인 현상이므로, 영적이고 정신적인 면은 생리적으로 이해

      →“신경과민의 낭만주의, 신경의 신비주의에 의해서 자연주의 극복"(Bahr, 1891)

          비일상적인 것, 비밀스러운, 매직, 경이로운 것 등장. 

 

문학이란 실증될 수 없었던 것, 픽션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듯이 구상하는 것. 허구 또는

가구(架構). 픽션은 흔히 산문으로 된 소설·이야기 등. 작가는 대상을 보고 분석하는데, 원칙적

으로는 그 중에서 우연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적인 것을 선택해야 한다.


한편 문학의 개연성이나 논리성을 강조하는 견해. 철학과 문화 즉 과학과 문학을 구별하여 시의

독자성을 제시했을 때에도, 문학은 진실성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가는 사실을 진실로서 기술

하지만) 시인은 진실처럼 보이게 모방한다. 소설이 사회의 거울이요 시대의 그림이라 하여 대상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이론: 현실과 시대의 반영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 소설이 현실의 복사이거나

시대의 기록일 수는 없다.

 

독자 여러분! 소설이란 큰 길을 가면서 주위의 풍경을 비치는 거울이라 볼 수 없을까. 여러분은

거울 속에서 푸른 하늘이라든가 혹은 진흙탕 등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그런 거울을 들고

니는 사람들은 여러분으로부터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의 거울은 진흙탕을 비친다.

그래서 여러분은 거울을 비난하게 된다. 그러니 여러분은 차라리 진흙탕이 된 한길을 비난해야,

아니 그보다도 차라리 진흙탕 그래도 내버려둔 도로 감독을 비난해야 마땅하다.  --  스땅달


소설은 진흙탕이라는 사실(fact) 그 자체가 아닌, 인간성의 진실(truth)을 그리는 것이 목적.

리얼리티(실재성)는 실은 논리성이고 논리성으로 하여 전체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작품은 설득

력이 있고, 만들어진 가공의 세계이지만 나름대로 독자적인 실재성을 획득한다.


작품, 상상의 세계

실재성은 작품의 존재가치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그것의 작가가 창조해낸 [그럴싸한, 설득력

있는] 상상의 세계일뿐이다. 상상의 세계, 즉 작가에 의해 해석된 세계에는 그 밑바닥에 욕망(꿈)

이 자리한다. 현실 원칙에 억압받은 내면의 욕망은 창작할 때 작용을 한다. 외부의 현실세계와

내부의 욕망과의 갈등의 폭에 따라서 순응적 혹은 혁명적 세계가 창조된다.

 

소설 속에는 세 개의 욕망이 들끓고 있다. 하나는 소설가의 욕망이다. 소설가의 욕망은 세계를

변형시키려는 욕망이다. 자기 욕망의 소리에 따라 세계를 자기 식으로 변모시키려고 소설가는

애를 쓴다. 두 번째의 욕망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욕망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 역시 소설가의

욕망에 따라, 혹은 그 욕망에 반대하여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세계를

변형하려 한다. 주인공, 아니 인물들의 욕망은 서로 부딪쳐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의 욕망은 소설을 읽는 독자의 욕망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소설 속의 인물들은

무슨 욕망에 시달리고 있는가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나아가 소설가의 욕망까지를 느낀다.

독자의 무의식적인 욕망은 그 욕망들과 부딪쳐, 때로 소설 속의 인물들을 부인하기도 하고,

나아가 소설까지를 부인하기도 하고, 때로 소설 속의 인물들에 빠져 그들을 모방하려 하기도

하고, 나아가 소설까지를 모방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읽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욕망은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 자기가 세계를 어떻게 변형시키려 하는가를 깨닫게 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그 괴로움은 나도 느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소설 속의 인물들은 왜 즐거워하는가, 그 즐거움에 나도 참여할 수 있는가, 그것들을

따지는 것이 독자가 자기의 욕망을 드러내는 양식이다.

그 질문은 이 세계는 살 만한 세계인가, 이 세계의 현실 원칙은 쾌락 원칙을 어떻게 억누르고

있는가 하는 질문과도 같다. 그 질문을 통해, 여기 내 욕망이 만든 세계가 있다는 소설가의

존재론(存在論)이, 이 세계는 살 만한 세계인가 하는 읽는 사람의 윤리학과 겹쳐진다.

소설은 소설가의 욕망의 존재론이 읽는 사람의 욕망의 윤리학과 만나는 자리이다.

모든 예술 중에서, 소설은 가장 재미있게, 내가 사는 세계는 살 만한 세계인가 아닌가를 반성케

한다. 일상성 속에 매몰된 의식에 그 반성은 채찍과도 같은 역할을 맡아 한다. 이 세계는 과연

살 만한 세계인가.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 김현 『분석과 해석. 보이는 심연과 안 보이는 역사 전망』중에서

                           김현문학전집 제7권, 문학과 지성사, 1993년.

 

 상상력

여기에서 이 가공의 세계, 다른 상황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드러내주는 것”.

상상력은 Imagenation 그리스어 Fantasia와 관련. 공상 Fancy에서 유래, 공상이 곧 상상력은

아니다. 예술적 상상력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힘이다.(Coleridge) 일상적인 인식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차원으로 승화된 세계를 창조해 내는 힘. 예술적

독립은 콜리지 등 낭만주의 시인들의 중요한 주장. 이 독립된 세계, 제 2의 세계는 그러니까

상상력이 창조한 세계.


상상력: “의식의 개념과 지각을 매개하는 작용”[사전적]

의식이 대상을 개념적으로 취하는 작용/ 지각으로 받아들이는 작용 사이 매개 작용(Sartre)

‘비실재물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가까이 끌어당기는 능력 * 가능성감각


칸트: ‘아름다움’, 상상력의 자유로운 놀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은 다양한 표상들을 만들어내도록

상상력을 촉발함으로써 주관으로 하여금 연상법칙들에서 풀려난 자유를 느끼게 한다. 상상력이

자유롭게 만들어낸 표상들, 즉 미적 이념(asthetische Idee)은 특정 개념으로 담아낼 수 없는

풍부함을 지니게 되고, 주관은 그러한 표상들을 통해 “언표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미전개된”

방식으로지만 사유하면서 인식능력의 활기를 얻는다.[판단력비판]


사르트르:- 상상력의 본질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세계와 관계를 맺으려고 함으로써 현실에                           결여되어 있는 부분을 의식에서 보충하려고 하는 노력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 인간이 상상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선험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확장?

“아시아의 별 보아”의 인터뷰:

여가 시간에 “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냉정과 열정 사이』, 『향수』

학교라는 울타리 바깥에도 공부할 것이 정말 많았다고,

소설책과 영화는 학교 이외에서 배우는 것....

학교는 상상력을 죽이는 곳이라고 하는 역설이 가능?


마녀의 이야기

인류가 가진 신화와 모든 문학작품을 통틀어서 최고의 악녀로 각인된 메데이아 이야기 -

Euripides: Medea

Obid: Medea (분실)

Seneca: Medea

Pierre Corneille: Medée  (1634~5)

Franz Grillparzer: Medea (1821)

Hans Henny Jahnn: Medea (1926, 1959)

Jean Anouilh: Médée (1821)

Christa Wolf: Medea: Stimmen (1996)

Heiner Müller: Verkommenes Ufer. Medeamaterial. Landschaft mit Argonauten


메데이아 신화:

가을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 양자리가 생긴 신화에서부터 시작. 황금 양피를 가진 숫양은

테살리아의 왕자 프릭소스를 흑해변의 코르키스까지 도피시켰고, 프릭소스는 제우스 신전에

양을 바쳤고, 제우스는 양을 기리고자 양자리를 만들었고, 황금양피는 코르키스의 왕에게

선물로. 왕은 황금양피를 신성한 숲 속에서 잠을 모르는 용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을 만큼의

보물이었는데....

테살리아의 이웃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는 적통의 이아손이 왕위의 반환을 요구하게 되자,

황금 양피를 찾아오라는 영광스러운 모험을 권유했고, 이 제안에 따라 유명한 아르고호의

용사들이 신화에 등장. 50여명의 대선단의 무용담은 간담을 서늘하게. 코르키스에 당도하여

황금 양피의 반환을 요구하는 이아손에게는 다시 엄청난 시험이. 그러나 마력을 지닌 공주

메데이아 - 우리의 낙랑공주처럼 - 의 도움으로 이아손은 황금양피를 찾아 고향으로.

이 과정에서 메데아의 동생살해라는 악명이 시작된다.

이올코스에서도 비극: 원정 동안 일가족이 모두 죽은 것을 알게 된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도움

으로 왕에게 복수. 펠리아스가 죽은 뒤 이아손은 아버지의 왕국에서 왕이 되지 못하고

펠리아스의 아들 아카스토스가 왕위를 계승한다.

메데이아와 이아손은 코린토스로 망명의 길: 이아손과 크레온 왕의 딸 글라우케와의 결혼이

결정되었을 때 메데이아의 유명한 복수가 시작된다. 그 결혼을 저지시키고자 크레온과

글라우케 모녀를 불태워 죽이고, 이아손에 대한 복수로(?) 둘 사이 태어난 자식들까지 죽인 후,

날개가 달린 용(뱀)이 끄는 수레를 타고 아테네로 도망쳤다는.


에우리피데스: 흔히 민주적 시민 사회라고 알려진 폴리스에서 행해진 사회적 차별, 즉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의 구분은 물론 남성과 여성의 사이에서도 존재했던 차별을 드러내

준다. 차별이 원한이 되어 복수의 회신이 된다.(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현실)

세네카: 스토아 철학자로서 세네카가 가졌던 여성 일반에 대한 인식?

당시 로마 사회의 분위기가 여권 옹호의 풍토와는 거리가 있었는지?

소아시아 출신의 이방인으로 그리스 반도의 이올코스에서 군주 살해까지 저지르고 피신한

정치적 곤혹성, 이방인과의 결혼의 합법성,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은 자신의 딸을 이아손과 결혼시킴으로써 그리스인 이아손의 목숨을

보전하는 한편, 소아시아 출신의 이방인 메데이아를 추방한다.

꼬르네이유: 1630년대의 파리 무대에서는 잔혹한 장면이 다수 등장, 꼬르네이유는 세네카

류의 잔혹 비극(tragédie de la cruauté) 시도. 여성 옹호적인 메시지가 없고, 이후 발표되는

꼬르네이유 비극의 일반적 경향이 국가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으로, 감정에 대하여 이성을

중시하는 남성적, 극기주의를 강조하는 영웅주의를 옹호.


아버지를 배신, 사랑을 택했던 메데이아는 그 사랑의 배신 때문에 복수의 화신이 되어 제

아들들을 살해하여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 이 이야기는 많은 허구에 의해서 덮여 있다

하더라도 그 근저에는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에게 믿게 하는 이유를 가짐.

신화들의 매력은 “전혀 다른 환경 하에서 같은 것들이 되풀이된다는 것. 그럼으로써 역시

같은 것의 되풀이가 아주 다른 것으로 된다는 점.” (H. Müller)

신화의 가공작업에서는 배제되고 청산되지 못한, 단지 미뤄지기만 한 상처의 회귀가 표명

된다.(Hans Blumenberg)

       지상의 행복은 무엇이련가 - 그것은 그림자!

       지상의 명성은 무엇이련가 - 그것은 꿈!

       그림자를 꿈꾸었던 너 가엾은 자여!

       꿈은 사라졌노라. 밤만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

       Was ist der Erde Glück? - Schatten!

Was ist der Erde Ruhm? - Ein Traum!

Du Armer! der von Schatten du geträumt!

Der Traum ist aus, allein die Nacht noch nicht. 

                                         -- Grillparzer


비더마이어의 염세주의적 사상, 바로크 시대의 현세거부를 연상하게.

그러나 부단히 꿈을 쫒는 인간족속의 운명은 오늘 날에 그대로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

하인리히 뵐은 현대사회를 “소비가 자유를 주노라”는 현판을 내건 거대한 수용소에 비유.

경쟁적으로 성취업적을 만들어 내야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사회 창살 없는 감옥?

“인간은, 이 말의 완전한 의미로서의 인간일 때에만 놀 수 있으며, 놀 때만 완전한

인간이다.”(Schiller)

그리고 통독 이후에도 계속되는 악녀 메데이아 소재의 작품들 - 크리스타 볼프는 아예

메데이아의 혈육살애, 군주살해, 이어지는 자식살해 등을 ‘뼈를 깍는 아픔의’ 정치적 사회적

희생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시대에 따라 작가 자신의 시대적 문제점에 따라 같은 신화를 재해석해내는 것 - 여기에,

작가의 욕망은 사회적 산물이며, 그렇다면 상상력의 무궁한 힘이라는 것도 욕망의 사회적

필요요, 토로하고자하는 그 내면에 의존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이른다.

무엇이 결핍되었는가?


결핍의 토로

그래서 문학을 보는 표현론적 관점의 출발은, 문학이란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입장. 한편의 시는 시인의 내면세계의 구현. 이것은 문학을, 한편의 시를

거울이라고 보는 모방론과 대비되는 것으로, 시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등불이 된다.

- 시인이란 신령한 힘에 접신된 상태에서 말하는, 시를 토해내는 것이다. (플라톤)

- 우주의 근본적 창조 정신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이 그 자체를 나타내려고 하는데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 예술이다. (Schelling)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가? 그의 내면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창조적 개성, 독창성 등의 자유분방한 낭만주의와 더불어 다른 한편 민족의식, 사회의식이

성장했다. 문학을 한 시대의 정신과 한 민족의 성격을 표현하는 가장 뚜렷하고도 특출한

산물로 생각하여 문학의 사회 표현성이 강조됨. 개인이건 민족이건, 결핍에 반응하는 태도,

그것이 정신의 반영이라는 부분. 최소한 문제적 개인의 자기실현. 인간의 내면이 상상력으로

확장되어 반영된 것. 상상력의 진정한 힘은 인간의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는 것.

내면이 깊을수록 상상력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세계는 무한대로 확장될 것.

- 예술의 본질은 “진리의 작품 속으로의 자기 정립”(Heidegger)

 

한국문학

이광수의 「문학이란 하(何)오」(1917) :

“특정한 형식 하에 인(人)의 사상과 감정을 발표한 자”

“문학은 정(情)의 기초 상에 입(立)하였나니...”


리터래처 - 하면 학문과 문장력을 의미했듯이, 글월文 - 하면 한문을 연상했던 전통.

영어의 novel이나 불어의 roman과 같은, 근대문학의 한 양식으로서의 소설은

과거의 이야기나 당대의 이야기나 작자가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야 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반드시 작자가 전제되며, 작자가 없는 이야기는 소설이 될 수 없다.


내면의 교감

특히 우리의 근대문학이란 내면을 근거로 해서 예술적 가치를 주장. 엄정한 시학의 규칙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진자운동과도 같은 시간들을 통해서 형성된 서양문학에 비해,

20세기 초 모든 사조를 한꺼번에 경험한 우리의 경우 문학은 정적이고 내적인 인간을 발견

함으로써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문학에서 개인: 고유한 사연과 정신을 간직한 존재,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드러내는 존재

문학에서라면 누군가와 완전한 교감을? 내면을 노출할 수 있지 않을까?


내면의 결핍과 외향적인 현실의 속박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상상물, 환상들, 허구들로

구성된 2차적인 다른 현실에서는 보도와 평가를 위한 글쓰기에서처럼 이성의 논리가 중요

하지 않다. 이해와 공감을 꾀하는 문학의 글쓰기는 내면의 토로에서 비롯된다. 자신조차도

공감하기 어려운 내면을 있을 수 있는 개연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우연과 혼돈을 필연성으로 대체해서 제공하므로, 작품세계는 진정한 현실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외면세계의 고통은 내면세계를 더욱 깊어지게 할 것이다. 이 내면을 끌어내는 것,

그것은 상상력의 힘으로서만 가능하다. 문학의 현상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인생 또한 그리

우호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확산된 저 너머 유토피아를 꿈꿀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구를 읽는가?

언론의 자유, 결사에 관한 법, 선거조사의 문제 대신 “먹고 사는 빵문제”를 거론했던 뷔히너를,

감히 타락한 그리스도교를 배제하고 원시 그리스도교에 복귀, 근로․채식·금주·금연을 표방하고

간소한 생활의 영위와 악에 대한 무저항주의를 지향했던 톨스토이를,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집단에 참가하여 러시아정교회 비판에 동참했다가 총살형을 언도받았던 도스토예프스키를,

노골적인 묘사 때문에 풍속문란죄로 기소되었던 플로베르를,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재심파로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던 에밀 졸라를 - 하필 그들을 우리는 읽는다.

예술가의, 글쓰는 이의 열악한 생존조건이 문학을 위태롭게 하지는 않는다. 문학의 진정한 위협은

우리가 현실에 순응하고 꿈을 꾸지 않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더 이상 우리의 깊은 내면의 샘을

퍼 올리지 못할 때, 그때가 파국이다. 문학의 파국 - 우리를 꿈꾸게 하는, 다른 상황을 상상하는

문학이 사라진, 있는 그대로만의 현실은 우리를 질식하게 하거나 기계로 전락시킬 것이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면, 문학을 놓지 마시오. 읽건 쓰건, 그 차이는 그림자를

앞에 두는가 뒤에 두는가 그 차이일 뿐이다. 


무용지용

우리가 문학을 여전히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 중의 하나로 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욕망이다.

이때 행여 우리는 문학의 효용성 논란에 풀이 죽어서는 안된다. 고띠에 등의 예술지상주의를

흉내 내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쓸데 있고 없는 것이 절대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을

성현의 말들을 빌어서 하고 싶을 뿐이다. 노자 제 11장의 무용(無用)은 말해준다. “있는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은 없는 것을 씀으로서라”고. 장자는 혜자에게, “땅이라는 것은 턱없이

넓고 크지만 사람이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기껏해야 발이 닿는 지면뿐이요,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재어 가지고 그 둘레를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 버린다면 사람들에게 그래도

쓸모가 있겠소?”라고 했다.


디디고 선 땅을 디디고 설 수 있기 위해 무수한 땅이 필요하듯이, 우리는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공간이 없이는 현실의 삶을 ‘아마도’ 살아 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7-28)


밥 먹여 주지 않으므로 쓸모없는 이야기여!

세상에 쓸모있는 것들로 하여금 조금만 부끄럽게 하라!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