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멸의 길 앞당기는 비이성적 반목 … 무차별 테러 속 인간의 미래는? | |||||||||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28. 테러에 갇힌 호모 사피엔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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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름다운 신록의 푸르름도 슬픔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이렇게 좋은 계절, 아직 인류에게 온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지구상에서 무차별 살인이 난무하고 있다. 맨체스터 팝 공연장 테러는 무해한 청소년들을 겨냥했고, 카블 외교단지는 라마단인데도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외침으로 피로 물들었다.
역사책에서 ‘테러’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프랑스대혁명의 ‘공포’정치였던 것 같다. 혁명이 9월의 학살과 더불어 폭력으로 치달았을 때, 이 국가적 테러에 직면해서 혁명에 대한 유럽의 전반적인 공감대는 수그러들었다고 배웠다.
일반적으로 테러는 특정 목적을 지니고 특정 목표인물에 한정돼 왔다. 기원 후 1세기 유대인 저항집단은 로마군의 주둔에 반발해 대제사장 요나단을 암살하는 등 단검 공격을 자행했고, 그래서 시카리(shikari)라고 불렸다. ‘자객’이라는 뜻이다. 중세 페르시아 지방의 이슬람 종교단체들은 ‘암살자’를 고용해 종교적 목적달성을 꾀했으니, 테러는 중동지역의 정치적 종교적 혼란 속에서 오랜 역사를 지녀왔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정치사회적으로 혁명적 변화의 효과적 달성을 위해 유력 정치인을 암살하는 방식이었고,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은 제1차 세계대전을 유발했다.
테러는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그 범위를 놓고 의미심장한 논쟁이 있었다. 사르트르와 카뮈의 결별이 5막극 『정의의 사람들 Les justes』(1949) 때문이었다. 카뮈는 이 작품에서 1905년 러시아 사회혁명당 소속 테러단에 의한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암살사건을 다루었다. 볼쇼이극장 앞에 내리는 목표물의 마차에 폭탄을 투척하는 계획은 실패한다. 행동대원 칼리아예프가 순간 망설임으로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아니, 대공비와 어린 조카들이 마차에 함께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계획을 거둔 것이다.
작품의 의미내용은 ‘망설임’에 있었다. 카뮈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혁명가들과는 달리 폭군을 암살하는 경우에도 아이들과 같은 죄 없는 사람이 말려들 위험이 있으면 그 행동을 단념하는 망설임을 변호했다. 사르트르 측은 ‘반항적 태도’란 자기기만이며 소극적인 것이라고 비판했고, 카뮈는 정치철학적 에세이 『반항인 L’ Homme revolte』(1951)에서 사르트르의 ‘혁명적 인간’과 대립되는 ‘반항적 인간’을 제시함으로써 10년 가까운 우정에 파탄이 갔다. 카뮈가 옹호하는 것은 혁명적인 행동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을 지향하는 반항이었다. 극좌와 극우의 절대주의에 굴하지 않고, 폭력을 부정하며 중용을 터득한 수단을 사용하는 끈질긴 저항 말이다. 카뮈에게는 내일의 정의를 위해서 오늘의 불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한편 자본주의의 억압성과 폐해가 확인되면서 마르쿠제나 사르트르의 입장은 제3세계에서 민중의 저항을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한 폭력’이라는 의미로 정당화하는 쪽이었다. 화약고는 여전히 중동지역이었고, 서구 열강의 책임을 지적하는 논리도 있었다. 중세 십자군의 부활과도 같이 산업혁명을 통해 강력해진 서구 열강들이 중동지역을 분할 지배하는 구조가 갈등의 발단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격화는 6일전쟁·6월전쟁의 충격적 결과로 이어졌고, 고향땅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어쩌면 테러행위 뿐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은 뒤에도 반목과 테러는 확산 일로에 있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테러는 인간성의 ‘ㅇ’자도 언급할 수 없을 악의 수준에 달했다. 아니, 오늘의 종교적 정치적 반목은 전면전도 불사하는 양태로 발전돼, 테러는 대리전쟁 또는 보이지 않는 전쟁 수준으로 변모했으니, 미증유의 9·11 테러사건은 전쟁 그 자체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운집하는 비정치적 공간에 무차별 테러를 감행해 무엇을 노릴까. 무슨 이득을 얻어낼까. 성서와 코란의 가르침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우위를 점령하라 이르는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탈바꿈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용도 폐기 직전으로 몰락했고, 인간은 더 이상 신의 총아가 아닌 듯 했다. 다행하게도 인간에게 남은 인지능력으로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났고, 인간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효용성을 증명해 보였다. 인간이 신의 가장 특별한 창조물이로서의 자부심을 가까스로 지닐 수 있었던 동안, 성서와 코란은 위안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라는 전대미문의 기술은 인간의 인지능력마저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내동댕이쳤다. 최근 불패의 기록으로 은퇴한 알파고를 보라.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앞지르고 있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닥터 왓슨(Watson for Oncology)’은 미국 유명 암센터 전문의가 진료한 1천명의 환자 기록을 분석해 30%의 환자에서 의사들이 놓친 치료방법을 찾아냈다고 알려져 있다. 날마다 업데이트 되는 닥터왓슨의 정보량을 어떤 인간의사가 따라가겠는가. 정보라면 그 범위는 무한대다. 어떤 펀드매니저가 인공지능을 추월한 금융지식을 갖겠는가.
그래도 예술의 영역을 말하겠는가. 그것도 희망사항일 뿐이다. 완벽한 연주는 물론 특정 생물학적 패턴과 수학적 패턴의 조합이면 작곡이 가능하며, 주제어의 입력만으로 미문을 만들어 낼 알고리즘이 탄생되고 있다. 유발 노아 하라리의 최신작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에는 ‘신과는 별 관계없고 기술과 관계있는,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나고 있는 용감한 신흥종교… 데이터敎’가 등장한다. 인지능력을 추월당한 호모 사피엔스를 용도폐기할지 말지, 이 새로운 신이 심판할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이건 이슬람 원리주의이건 또 무엇이건 우리가 가진 모든 가치와 모든 능력을 동원해 합심해서 총력으로 대비해도 유기체로서의 인간은 새로운 신에 맞서지 못한다. 주어진 현상을 논리적으로 질서 짓는 자연 인식을 넘어 의미-인식(Sinn-Erkenntniß)이 가능했던 ‘멋진’ 호모 사피엔스는 이쯤해서 끝이 날 모양이다. 닥터 왓슨도 우리의 분노를 치유하지는 못할 텐데, 인간은 비이성적 반목과 불특정 테러 속에서 스스로 자멸의 길을 앞당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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