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23. 1. 30. 07:30

 

글은 독백이다

 

 

 

    글은 독백이다. 듣는 사람 없이 홀로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행 하는 영혼들,* 그 누군가가 홀로 말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소통의 균형이 깨어져서다. 들려오는 소리의 범람 속에서 말하기가 어렵다. 생각을 소리로 내는 일, 그것이 어렵다. 아주 어렵다.

 

     누구에게 말하는가, 어디에서 말하는가. 어디에서 누구에게 맘 편하게 말 할 수 있는가. 한국 평균인, 나이는 대강 45세, 그가 남자 또는 여자라고 가정하자. 173센티미터 또는 160센티미터쯤 되는 키를 하고, 직장에 다니기도 안 다니기도, 결혼을 하기도 혼자이기도 한 어떤 사람. 그는 못해도 하루 여남은 시간을 어디에선가 누군가와 부딪고 살아 갈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서 말을 하는가. 세상은 말의 대양이고, 그의 뇌는 포만감으로 이미 멍하다. 그는 실패적 순간들에 맞닥뜨린다. 다행히 머리가 좀 좋고 이성적이라면 그는 페르소나를 만들어 낸다. 페르소나는 상대가 희망하는 말을 할 줄도 알고 그만큼 행복하게 하루를 산다. 그의 페르소나가 열심히 말을 하는 동안, 그러나 그, 그의 인격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의 인격은 벽에 갇힌다.

 

     언어에 관해서라면 아직 읽기와 쓰기가 남아있다. 읽기에 몰입할 수도 있다. 동서고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 글들을 쏟아내었는지, 인쇄되어 남아있는 서책들을 한꺼번에 모아놓는 일은 상상을 불허한다. 온라인 시대가 되고 보니 손바닥만 한 화면에서 열리는 글들의 세계는 망망대해 아니 블랙홀, 과문한 나는 설명할 표현을 찾지 못한다. 꼭 물병자리 사람이 아니더라도, 무작정 단호하고 확고해서 한번 무엇인가에 빠지면 귀를 베어가도 모른다는 단점투성이 물병자리 사람이 아니더라도, 읽기만큼 사람을 훼손하기도 어렵다. 읽기는 시간을 죽이고 몸과 머리를 감염시킨다. 책에 쓰인 것은 진리요, 책이 삶일 것이라는 부실한 맹신으로 자라난 탓이리라.

 

     이제 하나 남은 쓰기, 그것은 우리를 구할까. 심장에서 스멀스멀 또는 쿵쾅쿵쾅 시작된 말이 긴 긴 핏줄을 돌고 돌아, 믿거나말거나 지구를 세 바퀴를 다 돌아 입술 끝에 매달려도 뱉어낼 수 없을 때, 글이다. 그때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쓰기 시작할 수 있다.

 

     누구에게 쓰는가. 그건 말을 못하는 사정과 다르지 않다. 그는, 나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글을 쓸 수 없다. 홀로 쓴다. 그것이 어쩌다 지면에 얹히면 작품 발표가 되고, 그는, 나는, 작가라고 불린다. 독자, 언감생심 독자를 향하여? 진심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아니다. 독자는 허상일 뿐이다.

     안도현이 「땅」 이란 시를 썼다. 내게 땅이 있다면 /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 [……]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 다만 [……]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 아들에게 땅 대신 꽃씨를? 누구는 감동해서 눈물 젖은 눈으로 나팔꽃을 심으리라 한다. 누구는 설마 진정일까 반문한다.

 

     보라! 글은 독백, 홀로 쓰는 것이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는 외로움에 잠겨서, 마침내 외로움을 벗 삼아 홀로 쓰는 것이다. 바보같이 어떤 사명감으로, 또는 예술의 길이라는 착각으로, 그러다가 다 놓고 그냥 쓴다. 토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그냥 내놓을 뿐이다. 글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나선 글은 무심코 제 갈 길을 간다. 행여 많은 독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글은 그대로일 뿐, 더 중해지지 않는다. 외면당한다 하더라도 헐해지는 것도 아니다. 글은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잠시 누군가의 기억에, 서가에, 그러다가 잊히고 휴지조각으로 소멸되기까지. 그렇게 글은 독백으로 시작되어 독백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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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광주문학 제 104호 특집 <나의 문학> 46~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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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