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반석 위의 벽?
오늘 36도의 바깥 온도는 신기한 숫자이다. 체온이라서다. 이 여름 폭염 속 모든 것은 태양열에 녹아내린다. 인간은 에어컨으로 무장했노라고 자만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늘 순간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더위와 벽을 쌓고 냉방으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우리를 열기에서 지켜줄 벽은 반석이 아닌 전기 위에 세워져 있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 버스는 정차하고 한 겹 비닐포장 뒤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의 벽은 버스를 덮친다. 굵은 플라타너스가 서있던 아래는 플라타너스가 살려내지만, 누가 플라타너스 아래 멈출지는 하늘이 정하는가.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 플라타너스 …… /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 플라타너스 /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 있느냐? / - 더러는 시를 외우고 있음을, 플라타너스, 너는 알더냐.
한탄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멀리 플로리다 해변의 풍광 좋은 12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인간에게 안전한 벽이란 정말이지 없는가 보다. “건물이 상당 부분이 무너졌어요. 싱크홀로 빨려 들어갔어요.” 911 구조대에 그 순간 걸려온 SOS신호들! 한 순간에 함께 레테의 강을 건넌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갇혔던 벽의 배신에 스러진 것이리라.
문명사회 속 인간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줄 벽은 온전하지 못하다. 견고한 반석이라고 믿었던 문명은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지마할의, 가우디의 아름다움이 영원하리라 믿어도 될까. 반석 위에 주춧돌을 놓고 벽을 쌓아야 한다고 배우지만, 인생에서 반석은 대체 무엇일까. 하물며 마음의 피난처가 되어줄 벽은 있기나 한 것일까.
____________________
2021 - 한국여성문학인회 대표선집 『섬, 길, 벽 』 2021 코드미디어, 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