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PEN한국본부가 주관한 <제1회 세계한글작가대회> 중, 한 파트의 참관기를 쓰라는 청탁을 받았다. 빠듯한 일정에 힘들었지만 맡은 부분의 "숙제"는 공부다 치고 열심히 하려고 했다. 2015년 9월15~18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
[17일 둘째 마당, 모국어 문학 활약상]
이민 현장에 대해서 쓰라뇨?
세계한글작가대회를 되새김질하고 있다. 세계에 흩어져 한글로 글을 쓰는 사람들 - 이민지에서 한글로 글을 쓴다면 그 소속은 어디인가. 그래서 예컨대 국제PEN한국본부 산하에 국제PEN한국본부캐나다지역위원회가 있다. 3년 전 78차 국제PEN대회가 경주에서 열렸을 때 왜 그 많은 교포문인들이 ‘Korean PEN’이란 이름표를 목에 걸고 다니는지, 그땐 의아했었다. 이름표의 주인이 ‘한글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표지인 줄을 미처 의식하지 못했으니까.
이번 세계한글작가대회는 바로 그런 작가들 중심의 대회였고, 특히 ‘모국어 문학 활약상’을 논하던 자리로 돌아가 본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이사를 좌장으로, 이중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민용태 명예교수가 시작을 열며, 자화자찬 같다는 전제로 스페인과 한국에서 종횡무진 시를 쓴 이야기를 했다. ‘하늘에 별들은 너보다 많아 / 땅에 꽃들은 너보다 많아 / 하지만 너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내가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네 이야기 밖에 할 이야기가 없어’로 끝나는 자작시를 스페인어로 이어서 한국어로 읊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이민자의 고독을 어떻게 승화할 것인가. 한글로 글을 쓰면 본국 한국과 접촉하라. 바람직하기는 이중언어로 써라. 더 낫게는 아예 그 나라 언어로, 영어권이라면 ‘여지없이 절대로’ 영어로 써라. - 누구들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민용태 교수의 이중언어 제안이란 실제로 어려운 것임을 전제로 시작한 정정호 교수는 비교문학 학계를 이끌었던 경험으로 ‘영어권에서의 한글문학 번역문제’에 집중했다. 영어권의 재외동포재단의 자료집을 기초로 문단의 현실을 방대하게 소개했고, ‘한글문학’이라고 정의할 때의 ‘문학’의 외연을 넓혀서, 문리가 있는 문자로 구성된 모든 것을 모두 문학으로 본 만해 선생의 견해를 지원했다. 이어서 이민1세의 경우에는 한글문학(만)이 가능할지라도, 2세와 3세는 다르다는 견해를 폈다. 영어로 써서 헤밍웨이 상을 받은 이창래 소설의 경우 미국문학 내 소수문학으로 분류된 것으로 미루어서도 그것이 한국문학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에서의 한글문학의 문제란 결국 번역의 문제인데, 문학이란 ‘구체적 보편’이고 보면, 번역만이 평등한 사회로의 진입에 공헌하며, 번역은 모국어가 다른 언어로 거듭나는 정도를 넘어서 세계문학의 생성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한글/한국문학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탁월한 최고 수준의 번역’이 없는 때문이라고, 번역에서의 완벽성을 강조했다.
질 메나주가 말했다는 번역에서의 ‘부정한 미녀’보다는 ‘정직한 추녀’를 지지하는 쪽이냐고 묻고 싶은 질문은 발화되지 못했다. 최홍규 시인 등의 열정에 넘치는 설명 조의 질의들에 ‘질의응답’은 어려웠다. 번역을 지원하라는 청중들의 일체감을 전달받은 좌장은 경주의 박목월 시인의 예를 들어 글을 발표할 수 없던 일제시대에 고향에 칩거해서 쓴 시들이 해방 이후 박두진 시인 등에 의해 『청록집』으로 태어났음을 강조하며 ‘글쓰기’에 집중하는 일이 우선임을 피력하며, 2부 외국에서의 활동상 소개로 차례를 넘겼다.
처음 발언자인 재독 서정희 시인은 구상 시선집 『드레퓌스의 벤치에서』를 시작으로 김남조 시선집 『바람세례』 등 12권을 독역한 경력을 지닌 분이라서 앞서 말한 ‘탁월한 최고 수준의 번역’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심정이 들게 했다. 시인은 한국통상 우호항해조약 이후 1893년 첫 『전래동화』가 독역되기 시작한 이래, 1950년 이전에 겨우 7종이던 사례가 2013년 말을 기준으로 291종에 이른 번역의 현실도 소개했다. 1968년 일본에 최초 노벨상수상자가 난 이후 한국의 현존 작가들을 독일에 소개하고 있는 《Han》과《Hören》문학지도 소개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과 독일의 문화적 차이가 번역에서도 문제점으로 작용하는 점을 들췄다. ‘착한 배달민족’이라는 굴레 안에서 쓴 작품들이 경쟁적이고 진취적 독일인들에게 수용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서부를 대표하여 발표한 LA의 이승희 시인은 올해로 28회째를 연 ‘해변문학제’ 이야기는 접어두고, 오직 이민1세와 2세의 한글문학 계승 문제에 집중했다. 본국에서 초청된 강연자들이 ‘현장에 대해서 써라’고 할 때는 야속했지만, 사실 이민1세대에게는 향수문학이 전부였다고. 30년이 되어도 언어는 멈춰있어 영어문학은 불가능하지만, 문학지와 단체들도 많아지고 안정되어간다고 한다. PEN 연간집은 한글과 영문 50%씩 낼 수 있게 되었단다. 그러나 2세와 3세에게 한글문학의 전수는 어렵고, 이중언어가 가능한 그들이 이민한글문학의 희망이라고, 미주중앙일보에서 ‘미래신인한글문학상’을 제정했는데 응모 열기가 뜨겁다고 했다.
PEN한국본부캐나다 지회장 이정순 시인의 캐나다 현황 소개에 따르면 약 300명 문인들이 PEN과 캐나다한인문인협회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 2세의 한글문학 계승은 난제이며, 보다 활발한 번역을 모색하는 점에서 이민사회에서의 한글문학의 고민은 고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아베마리아’ 선율에 담긴 캐나다 한국문인들의 활약상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는데, 김양식 시인은 캐나다 현지 문인들과의 교류에 대해서 물었고, 100개가 넘는 언어와 150개 인종으로 이루어진 나라에서 마음과는 달리 실제 교류가 어렵다는 답이 되돌아 왔다.
마지막 사례발표는 본론과는 좀 다른 이야기로, 인도네시아 소수부족인 찌아찌아족이 한글문자를 가져다가 그들의 말을 표기하는 문제였다. 라틴문자 등이 아니고 왜 한글이었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바우바우 지역의 아비딘 교사는 한국유학 시절에 이호영 서울대언어학과 교수의 추천으로 부족회의를 거쳐서 ‘부족의 문자’로 허가 받은 과정을 사진 자료로 보여주었다. 인구 10만명이 안 되는 찌아찌아족의 언어에는 문자가 없다가 한글자모가 들어간 것인데, 처음 반응들은 한국문화의 혼입에 대한 염려였지만, 부족의 지도자들을 이해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한글이 ‘소리의 기록’에 쉽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학교간판도 ‘세쿨다’ 등으로 쓰는데, 한글을 아는 우리가 소리로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가 한글로 교과서를 써서 최근에 출판했다는 소식에 박수를 쳤지만, 정작 한국어 교육의 산실 세종학당은 철수한 지 몇 해라는 이율배반에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마지막 질의응답 중에도 이중언어 창작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편파주의의 희생이 될 수 있다는 민 교수의 염려는 이어졌다. 한편 이민2세대가 영어로 쓴 작품들은 미국문학에 속하더라도 한국의 정체성과 혼이 들어 있으므로 한글로 번역되기를 바란다는 정 교수의 발언으로 둘째마당이 끝났다. 필자는 이민자로서 ‘모국어 문학’의 고민은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국내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일 터, 한글 창제의 과학적 우수성에 우쭐하는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는 것, 자신이 쓰는 한글에 인류가 공유하는 문학어로서의 보편적 문법을 갖추어 작품으로서 문학성이 넘칠 때라야 세계의 독자를 얻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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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PEN한국본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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