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02. 9. 1. 23:30

<완료추천사>


실험 정신과 사색적 언어가 돋보인 작품



홍  성  암


   서용좌의 단편소설 <태양은>을 완료추천 작품으로 선정했다. 서용좌는 이미 장편 <열 하나 조각그림>(도서출판 이유, 2001)으로 그의 작품적 역량을 들어낸 바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문단 데뷔 관행상, 단행본 출간도 문단 등단의 절차로 인정 할 수 있는 입장이지만 본인의 겸손으로 다시 한번 등단의 절차를 거친 것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장편 단행본 출간을 1차 추천 작품으로 인정하고 이번에 응모된 단편 <태양은>을 완료추천 작품으로 선정하게 된 것이다.


   서용좌는 이미 출간된 장편 <열 하나 조각그림>에서 인칭의 문제나 시점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실험적인 태도를 보인 바가 있다. 이 작품은 등장 인물에 일정한 이름이 주어지기보다는 ‘남1’, ‘남2’, ‘여1’, ‘여2’ 하는 식으로 기호화한다. 그리고 상호관계도 ‘선배’, ‘후배’, ‘친구’ 등으로 관계화시키고 또 더러는 상징체계로 ‘청바지’, ‘솜털’, ‘나팔꽃’, ‘달님’식으로 익명화한다. 그리고 매 장이 바뀔 때마다, 또는 같은 장에서도 시점이 바뀌면서 3인칭, 또는 1인칭으로 넘나들며 사건의 어느 측면을 조명한다.


   이렇게 서술시점을 옮기면서 서술자는 등장인물의 시점에 한정되어 사건과 심리를 인지할 뿐 텍스트 전체를 조망하지는 않는다. 이는 화자가 서술하는 세계는 텍스트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뜻으로서 인생과 세계에 대한 작가의 현실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텍스트 밖에 존재하며, 화자를 통해서 부분밖에 인지할 수 없다. 그리고 총체적인 사건의 종합과 의미화는 독자의 몫이 된다.


   단편 <태양>에서도 그런 실험성의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앞의 장편에서처럼 사건을 이끄는 몇 개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고난과 슬픔의 상징인 ‘눈물방울’, 불구성을 의미하는 ‘맨발’과 ‘발가락’ 그리고 과거 단절의 의미로 ‘잘린 머리칼’, 그녀의 불행을 키운 ‘삼색 가위’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등장인물에 동정적인 유일한 시집식구인 숙모를 화자로 해서 질부, 남편, 계모, 아버지,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딸과의 관계양상을 때로는 1인칭, 때로는 3인칭의 시점으로 여자와의 관계를 조명한다. 그들의 조명은 자신의 한계 속에서 서술되는 것이어서 매우 단편적이지만 독자는 그것의 종합화를 통해서(화자의 도움을 받지만) 주인공 여자의 공고한 생애의 실체와 접맥하게 된다.


   이 작품의 서술구조를 보면 주인공인 여자는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슬하에서 살게되는데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버지를 의식하게 되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와 미장원의 미용사가 된다. 그러던 차에 아직 대학생이던 남편을 만나게 되고, 배운 것이 없다는 이유로 시집에서 냉대를 받는다. 딸만 하나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해서 기죽어서 시집살이를 하게된다. 그렇게 낳은 딸도 할머니와 시누의 손에서 자라며 무식한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입장이다. 그러다 대학진학에 실패한 딸이 가출을 하게되고, 여자는 무시된 자신의 생애를 극복하고자 술을 마시게 되어 마침내는 알콜 중독자가 된다. 그리고 끝내는 밀폐된 방안에 감금된 상태에서 죽게된다.


   이런 서술구조는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으로 역경 속에 살아야 하는 운명적 플롯의 전형으로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등장인물의 익명화와 시점 이동의 다양성, 그리고 사건을 이끄는 몇 개의 상징체계가 남기는 강한 인상 등으로 하여 작가의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런 실험성이 하나의 시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화자의 관찰을 통해서 드러나는 사색의 깊이와 접맥되어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역할 유희에 서툰 그녀는 확실히 조금 맹해 보였다” 라든지 “컴퓨터 자판 모양으로 일정하게 배열된 묘표” 같은 서술 표현은 매우 신선하고 또 깊이를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의 기법은 단순한 기법으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등장 인물의 삶의 본질로 접근하는 지름길이 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기존적인 작품의 통속, 또는 통념화에서 벗어나 새로움의 시도로 인식되는 것이다. 특히 시의 적절한 삽입은 작품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여기서 기법이 곧 내용이 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작가의 강한 실험정신에 토대를 둔 만큼 사건 전개나 사색적 언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신인들이 항용 빠지기 쉬운 몇 가지의 단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첫째가 친절하지 못한 서술이다. 작가의 관념에 의해 대충 넘어가는 식의 서술은 그 작품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지 못한 독자로 하여금 작품 이해에 큰 장애가 된다. 둘째는 자주 발견되는 비문(非文)이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적 언어 습관에 의해서 서술하지만 독자는 제각기 자기식의 어법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바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객관화된 문법체계를 따라야 한다. 셋째, 어휘의 정확하고 적절한 선택이다. 뛰어난 사색적 언어가 때로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적절치 못한 어휘선택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단점의 지적은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지엽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문학작품은 언어의 예술이고, 언어로 사색하고, 언어로 사물을 존재케 한다는 면에서 파악한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서용좌의 추천 완료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특히 우리 문학의 세계화가 절실히 필요한 현실에 비추어서 외국문학을 전공한 분들의 소설창작 참여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외국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우리 소설의 소재적, 주제적 영역 확장에 기여하고 동시에 문학적 수준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매우 크다. 그런 점에서 서용좌의 신인 등단은 더욱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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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료추천 소감


소나기 금방 들어 닥치는 무더운 한여름의 오후,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감히 하늘이라면 신성모독일까, 은총처럼 어디에선가 내려온 부름이라면 변명이 될까. 서당개 3년 풍월이라고, 하세월 하이에나처럼 남의 글 파먹고 산 나머지이리라. 기껏 교실 크기의 낡은 중학교 도서실에서 시작된 긴 긴 유혹에 굴해버린 지금, 제 5막에서야 등장한 한 조역의 역할처럼, 기대되지 않고 슬그머니 나선 밤길 걷기에 거창한 욕심은 없다.

예컨대 「태양은」이란 제목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인생에 주제가 없거늘 글쓰기에 무슨 주제냐 싶은데, 이름은 있어야 해서 첫 단어가 내걸렸을 뿐이니까. 이런 초라한 글을 빌미로 멍석을 깔아준 《소설시대》에 다만 고개 숙인다.

있어도 없는 엄마-아내-딸, 나를 참아주는 가족이 내 글의 온상이다. 까다롭다는, 괴팍하다는 나와 더불어 이웃해 사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모두를 사랑하나 보다.

                                                        2002년 여름
                                                          서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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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