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2. 2. 28. 16:12


파리하고 세상사 번거롭고 권태로워 보인 그대 - 마그마로!


‘미리 쓰는 묘비명’ 원고청탁은 내게 독특한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죽음이 생경한 것은 아니었다. 죽음은 삶의 동반자. 살아오는 동안 그놈 또한 늘 뒤를 옆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 어느 가을날 문자를 받았다.
파리하고 조금은 세상사가 번거롭고 권태로워 보이는 그대 -
결정적인 묘비명 한 줄이 하늘로부터 온 셈이었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 - 나무의 속성으로 태어났다는 나는 왠지 늦가을을 마감으로 느낀다.
다시 생명의 겨울이 오기 전에.

어느 늦가을, 유난히 빗물에 젖어 쌓이는, 쌓이다가 찢기는 은행잎들의 미래가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고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뿔뿔이 흩어지는 작은 알갱이. 더 작아지면 먼지가, 액체가 되거나, 기화해서 우주를 떠돌 것이다. 아니면 지표를 뚫고 들어가 마그마가 되어 한데 엉켜 흐를 수도, 다만 스치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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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스프리> 2012 봄 창간호, 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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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