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1. 3. 1. 22:00
                                                                        
                                                                           중독

 

건강한 사람들은 늘 환한 꿈을 꾼다. 꿈은 꾸는 사람은 열정에 사로잡히고, 꿈을 실현하려는 욕망에 밤낮을 잊는다. 나태는 물론 잠조차 죄악일 것만 같아서 제대로 편안한 잠에 들지도 못한다. 더러는 생의 무의미 때문에, 생각을 하는 대신 일만을 택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부정적인 말로 일중독이라고 걱정했을 때조차 나는 그것을 다만 하나의 특징, 그것도 부지런하고 일에 정직한 특성인 줄로 알았다. 중독은 나쁜 것에 중독일 때가 문제라고 믿었다. 자신의 육신을 조금 홀대하면서 그저 조금이라도 더 일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랴. 그렇게 미련스럽게 된 데는 선친의 말씀에도 원인이 있었다. 무슨 일에 몸을 사리는 것을 저열한 짓이라고 하시던 말씀 중에, 편하게 살고서 보람을 찾는 것은 도둑심보라셨다. 그러다보니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늘 덜 편한 길이 마음에 더 편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무엇이든 탈이다.

이태 전 여름의 끝자락, 방학이 끝나는 주말이었다. 힘든 외출 끝에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온통 파도소리 바람소리가 넘실거리는 이상한 현상에 들렸다. 가스가 새는 소리도 수돗물이 흐르는 소리도 아닌데 세상천지가 알 수 없는 소리로 그득했다. 샤워를 하고 진정을 해봐도 소리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또 이상하게도 걸려오는 전화마다 거의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만큼 아득했다. 그날따라 전화도 많았다. 월요일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전화기 고치러가야 할 일이 짜증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것은 전혀 다른 일의 시작이었다. 월요일 새벽에는 전화소리가 갑자기 정상으로 돌아왔으므로 전화통 문제는 간단히 끝난 것 같았다. 아니, 통한 것은 잠결에 왼손으로 받은 전화였고, 일상 오른손으로 든 전화는 거의 불통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토요일 오후부터 고장이 난 것은 전화기가 아니라 내 오른쪽 귀였다.

그렇게 해서 대학병원을 찾게 되었다. 안과나 이비인후과 등은 1차 진료병원을 거치지 않고서도 대학병원에서 진료가 가능하다는 상식(?)덕택이었다. 당장 개학이고 화요일 오전부터 강의가 있는 입장이라 치료가 급했다. 수십 년을 강의하면서도 강의 전날이면 늘 안절부절못하는 나로서는 진료대기 중에도 첫 시간 매력 있는 강의를 위해서는 준비내용을 다시 점검해야 할 일만 걱정하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러셨나요?”

“엊그제요, 갑자기 귀에서 파도소리가…… 전화소리도 통 못 알아듣고.”

“저, 이 병은 응급상황입니다.”

“병이요? 응급상황이라뇨?”

이해할 수 없기는 이렇게 사지육신 멀쩡한 사람을 두고 병이라는 말도 그랬지만, 응급상황이라니! 젊은 의사의 친절한 설명은 이어졌다. “이 상태에서 별 일 아니겠지 하고서 두어 주 지난 다음에야 병원을 찾으면 복구가 거의 불가능한 병입니다. 돌발성난청이라고, 병이 오는 것도 돌발적이지만 치료도 그만큼 즉각 대처해야 합니다. 바로 입원해서 12일간 스케줄 따라 스테로이드 주사요법을 쓰고, 그렇게 해도 1/3 정도만 완치 가능성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일 첫 시간 강의를 어떻게 하고! 그래서 입원치료 대신 제2의 방법을 택했다. 열흘간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귓속에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는 방식. 그런데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고막을 통해서? 그런 전문적인 것은 잘 몰랐지만, 귓속에서 나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가족들의 성화도 거셌다. 울며 겨자 먹기로 화요일 아침엔 학교를 포기하고 병원으로 짐을 쌌다.

그렇게 개강 첫 2주간을 희생하고 입원치료를 감행했지만 쉽지 않은 병원생활이었다. 우선 몸은 멀쩡한데 환자로 적응하기는 중증환자이면서 포기해야할 때보다 더 나빴다. 한밤중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들을 실제인지 이명인지 환청인지 어떻게 구별하겠는가. 내가 이러다가 미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불안에, 소리의 진원지를 알기 위해서 몽유병환자처럼 병실 안팎을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밤 근무 간호사선생님이라도 마주쳐 숨으면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밤새 분한 마음에 떨었다. 내가 왜? 마치 선한 의지로 살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순진무구한 옛날사람들처럼 천지신명을 한탄했다. 부지중에 지었을 죄를 생각해내며 손가락으로 세어보기도…….

돌발성난청이라는 부분청력상실은 나에게 큰 위기가 될 수 있었지만, 전남대학교병원은 내 청력을 70, 80% 회복시켜냈다. 병은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결국 나는 평생의 일을 놓게 되었다. 그 학기말시험지 보퉁이들을 안고 어둑어둑해진 연구실계단을 내려오면서 퇴직을 결심한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강박중독을 벗으면 훨씬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사람이 나이 들면서 현명해진다는 말은 여전히 의심스럽다. 오히려 일상에서 내팽개쳐진 병중의 성찰이 그에 한발 다가가는 것이리라. 굳이 병이 나서 입원을 하지 않더라도 템플스테이나 어디 한적한 곳으로 한 일주일 정도의 혼자만의 휴식여행 같은, 생의 중독을 깨닫는 계기가 필요하다. 건강할 때 사람들은 환한 꿈에 중독되어 그늘을 망각한다. 하지만 빛은 늘 그늘을 드리우고, 그늘도 때로는 그윽하다.


* <푸른 무등>, 2011년 봄호 (통권 165호), 10-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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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