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07. 12. 1. 01:55

 

멍난 옷

                                            내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2007 (이화에세이)

 

 

구멍이, 저기 이 옷에 구멍이 나버려서……


저물녘에 세탁소 아주머니가 느닷없이 초인종을 누르고서 어물거린다. 예고 없이 오가지 않는 것이 수년 간 이 세탁소와의 자연스런 일상인 터라 의아했다. 손에는 종이 가방을 꼬옥 움켜쥐고 있다. 부뚜막에는 국이 얹어져 있어서 나는 조금 성가셨다. 더듬거리는 말로는 옷에 아예 구멍이 나서 못쓰게 되었다는 말이고, 그 때서야 꺼낸 옷은 내 하얀 블라우스다.


그제야 감이 잡히면서 난감해졌다. 와이셔츠나 블라우스 정도는 세탁소에 보내지 않은 내가 하필 처음 보는 천이라서 드라이를 맡겼던 옷이다. 면섬유인줄 알고 샀는데, 그것도 상황 때문에 어쩌다 ‘비싼’ 옷 집에서 구입한 것인데, 잘 보니 순면이 아니라 뭔가가 코팅되어 재킷 대용으로도 될까 싶은, 아무튼 얼른 보아도 복잡한 천이라서 자신이 없어 세탁소에 보낸 것이다.


여자는 계속 중얼거렸다. 다른 집 와이셔츠들 다리고 나서 같은 것인 줄 알고 다리렸는데, 다리미 대자마자 눌어가지고 그만. 보니까 새 옷 같아서…… 대신 사보려고…… 그래서 텍에 붙은 전화번호를 돌렸는데. 그런데 폐업이라니까……


처음 빨아야 했던 블라우스가 어찌하여 폐업이 된 상표인가의 내력은 좀 그렇다. 단벌을 샀기 때문에 적당히 맞춰 입기도 그랬고, 또 일터에 나다니는 경우엔 모양만 갖춘 단출한 옷들을 입기 때문에 구입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선뜻 입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몇 년 사이 폐업이라니 의아했지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었다. 올 봄에는 아예 누렇게 헌 옷이 되는가 싶어서 몇 번 살짝 입은 것이다.


눋다 못해 구멍이 뻥 뚫려버린 옷을 받아들고 보니 짜증이 난다. 그러기에 과하게 비싼 옷은 내 것이 아니로구나! 부엌 쪽에서는 국물 냄새가 진동한다. 끓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럼 불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가만, 교양 있게 굴자. 이까짓 블라우스 하나가 뭔가. 나에게나 비싼 옷이지, 남편의 와이셔츠들을 줄줄이 세탁소에 보내는 여자들의 옷들에 견주면 이게 대술까. 기껏 블라우스는 블라우스지. 진정하자, 진정 해. 20년 넘게 살아온 아파트에서 이깟 일로 속보이면 되나…….


제가 지금 얼떨떨하네요. 일단 주세요, 주고 가세요. 불에 뭘 얹어 놓았고…… 좀 생각해볼게요.


다른 것으로 사시기라도 하라고……


아니, 그런 말은 아니고요. 뭘 어쩌겠어요. 일단 주고 가시라니까요.


빼앗다시피 옷을 들여오고 여자를 내몰았지만 마음은 양편으로 무겁다. 가진 것 중에서 가장 비싼 블라우스를 망친 내가 밉고, 저자세로 굽실거리는 여자가 밉다. 국은 벌써 끓어 넘치고 있다. 넘친다, 넘친다…… 그때 생각이 났다. 내 그릇에 넘치는 복은 됫박을 넘치면 굴러버리는 콩되모양 넘치게 마련이다. 이건 내 옷이 아니다. 저 여자는 하필 나 때문에 저자세가 되었다. 평생 해온 세탁 보조가 느닷없이 엉뚱한 실수를 한 건 보조 탓이 아니라 옷 주인 탓이다. 그러다 짜증이 일면 또 다른 이유를 댄다. 그런 것 때문에 옹졸함을 보인다면 자신이 짜잔해져서 안 된다. 애써 좋은 마음으로 생각하려니 그런대로 별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세탁소여자의 처지가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운명에서 궂은 역할을 내가 아니라 그 여자가 맡아 간 것이다.


*


엄마, 제가 꼭 S.대학을 들어가게 되면 우리나라 누군가 한 사람은 S.대학에 못 가게 되는 거네요! 큰 아이가 중 3 적에 했던 말이다. ― 아니 뭐, 숫자로 따지면 그렇기는 하다만, 그럼 넌 그 다른 한 사람을 위해서 S.대학을 갈 수 있어도 포기해야 된다 그 말? ― 아니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 너 그렇게 이타적인 건 좋다만, 매사를 그렇게 살자면 무진장 힘이 들게다. ― 엄마, 그게요, 이 세상에 전적으로 이타적인 사람을 드물걸요. 이타적 행동으로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이기적인 셈이지요 뭐.


기술시간의 숙제라나? 나무판자로 작은 책꽂이를 완성해 가는 숙제를 하느라 페이퍼 질에 팔려있던 아이는 대충 해가라는 이 어미의 말에 웃음기를 띠고 정색했다. 누가 알아요, 또 목수를 해먹고 살아야 될지도 모르니 미리 잘 배워둬야지요! 그것은 아이의 상투어였다. 누가 알아요, 또 양복장이를 해야 될지도 모르니 가위질도 잘 해야지요! 누가 알아요, 또……


아이들은 대강 물렁하게 자랐다. 남을 때리고 들어오면 나쁜 사람이고, 남에게 얻어맞고 오면 바보다! 나쁜 사람과 바보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형제간이라고 다툴 수도 없었겠다. 그래 겉보기엔 별 탈 없이 자랐다. 속으론 그렇게 한 말을 지키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니, 그런 걸 꼭 마음에 담아두어서라기 보다는 천성이 좀 무를 것이다. 해서 특별히 똑똑하게 자라진 못했지만, 이기적, 투쟁적으로 자라진 않았다. 어미인 내가 늙어간다고 자제심을 잃고 이기적인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 애들 보기 민망할 일이다.


*


세탁소 아주머니의 당황함에 빨리 면죄부를 주지 못하고 덩달아 곤혹스러워했던 몇 분간이 부끄러워진다. 서둘러 싱크대 아래 여닫이문을 열어본다. 거기 과일가게 전화 옆에 세탁소 전화 스티커가 붙어있다. 저 201홉니다. 지금 막……. ― 아 예……. 저쪽은 말을 잇지 못한다. 뭔가 호령을 기다리는 듯 숨마저 죽인다. 저, 그 옷 일 잊어버리시라고요. 생각 말고 편안히 주무세요. 그냥 걱정 마시라고요. ― 그래도 …….


아예 말을 잇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되풀이해서 걱정 말라고 말하고 나니까 내 맘이 비로소 편했다. 그런 일은 십여 분을 애탈 일이 아니다. 집에 처음 왔을 때 선뜻 걱정 말라 말하지 못한 내가 옹졸했다. 배웠다는 여자가 치졸했다. 다음 세상에 세탁소여자로 태어나서 다림질을 잘 못해서 누군가의 문간에서 고개를 숙이는 벌을 받을 일이다.


사실 누구라도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내 경우엔 이제 몇 번 입지 않은 새 옷은 오래 입어 내게 친숙한 그저 그런 옷보다 오히려 덜 아깝다. 작은 장신구 하나라도, 장신구라면 거창하지만, 실오라기로 짠 팔찌가 내게 소중한 만큼 진주귀걸이가 귀하지는 않다. 둘 다 각각 여행 기념으로 샀던 소품이긴 하지만, 특히 실오라기 팔찌는 해변의 포장집에서 산 싸구려 중에 싸구려다. 하지만 그 짙푸른 바닷물을 기억하며, 소금기 젖은 손과 입으로 ‘겨자’가 영어로 생각이 나질 않아서 순간 ‘섬씽 옐로’를 달라고 해서 핫도그를 사먹던 일을 추억한다. 나중에 특급호텔의 비치로비에서 마신 알 수 없는 음료와는 또 다른 맛을. 바가지나 쓰는 관광객이 아니라는 자존심과 굳이 핫도그를 들고 청승을 떠는 합리성의 속내에 대한 한심을.  


멀쩡한 블라우스가 못쓰게 되었지만 미련은 없다. 아무런 추억하나 없는 헝겊의 모임. 내가 좋아하는 연한 청록색의 한 줄 장식이 조금 아깝기는 하다. 소매 부분에 구멍이 났다면 반팔로 자르기라도 하지 싶다. 하지만 등 한 쪽이 아기 손 크기만큼이나 눌어붙고 아예 손바닥만큼은 구멍이니, 이제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좋은 기회가 온 것 같다. 너절한 옷걸이들이나 삼층장 속을 뒤져서 쓰레기들을 분류해 낼 일이다.


고등학교 때 가정과 선생님 한 분이 3년 째 입지 않는 옷은 죄다 버리라고 하셨다. 20년 넘게 같은 곳에서 사는 나는 이사 때면 저절로 살림이 정리되는 기회도 드물었다. 그러다보니 데이트 때 받은 스카프, 청혼 무렵 받은 머플러, 출장 다녀올 때 선물해준 핸드백들…… 30년에 몇 번 썼을까 말까 하는 소품들을 그냥 넣어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선물한 것들은 더욱 못 버린다. 유치원 때 만들어준 목걸이, 처음으로 접어준 여러 마리 종이학, 머리핀 세트, 손수건, 향수…… 손수건은 잃어버릴까 쓰지도 않고 보관하고, 향수는 빈 병이 되어도 포장지까지 간직한다. 합리적인 눈으로 보자면 포장지 정도는 이제는 버려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아이들이란 성장하여 갈수록 (정신적으로도)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수록 ― 내가 꼭 그랬으니까 ―, 작은 추억거리는 눈물겹게 귀하다. 이제는 여기저기 쌓이는 사진들까지, 갈무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내게는 그렇게나 소중한 것들로 넘친다. 어떤 우아한 옷을, 훌륭한 장신구를 걸쳐도 더 이상은 멋이 나올 수 없는 몸에게 이제 어떤 물건도 소중치 않다. 몸을 위한 물건들보다는 맘을 위한 추억들이 귀하다. 구멍 난 옷을 버려야 하듯이, 옷가지들 등속은 좀 솎아 내야겠다. 물건들이 비워진 자리에 더 소중한 추억들이 들어올 수 있게시리. 길어 내도 길어 내도 줄지 않는 샘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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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11. 1. 23:30
나물


 문학저널 2007

 

맛있겠다, 정말. 

뿌리도 채 덜 다듬어서 아무렇게나 무쳐낸 콩나물 그릇으로 젓가락을 길게 내뻗으며 은미가 말했었다. 나도 덩달아 콩나물 가닥을 집어 들었다. 친구들이 깔깔대고 웃었을 때야, 나는 은미가 순 장난으로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맛있다는 콩나물무침 쪽으로 몰릴 때, 혼자서 진짜 맛있는 것을 먹는 수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제일 하찮은 것이 콩나물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정말 그늘에 큰 콩나물이란 별명처럼 콩나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콩나물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맛을 좋아할 뿐이다. 맛있는 것, 맛없는 것의 차이를 배울 나이에 나는 귀한 것과 귀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가 가치를 혼동하게 된 것 같다. 많은 식구들이 좋아하지만 아끼는 음식접시가 할머니의 손을 거쳐 내 앞쪽으로 오면, 나는 그만 맛을 잃었다. 다져 구워서 다시 간장에 졸인 소고기처럼 진한 맛이나, 고기완자가 들어있는 버섯볶음 같은 기름진 것들은 왜곡된 애정의 표시이자 내게는 독이 되었다. 나는 비뚤게도 아무 것도 아닌 맛을 좋아할 의무를 느꼈다. 어린 시절의 의무는 습관이 되어 굳어버리나 보다. 사람들이 맛이 있다고 하는 것은 내게는 맛이 없는 것이고, 사람들이 맛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내게는 맛있는 것이다.

그래서 은미가 콩나물을 맛있다고 할 때 나는 동지를 만난 줄 알았다. 물론 그 장난기에 다들 깔깔대며 손을 놓고 주 메뉴를 기다렸다. 모처럼 섬진강변 나들이이다 보니, 둥근 그릇 속에서도 여전히 펄펄 뛰고 있는 은어쌈과 은어튀김이었다. 은미는 유난히도 펄펄 날며 날은어를 삼켰다. 난 정말 콩나물만 먹었다. 튀김은 먹을 것 같았지만 옆에서 퍼덕거리고 있는 날은어의 시체만 같아서 그것도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은미는 동지이기에는 사실 사뭇 달랐다. 우선 우리가 처음 만났던 여고 시절에는 - 아마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를 다녔겠지만 특별한 사건으로 부각되지 않는 한 어찌 동창들을 다 알고 지낸단 말인가 - 그 시절에는 은미가 단연 압권이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훔쳐보고서 곧 바로 흉을 낸다는 춤 솜씨. 원래부터 존 트라볼타의 엉덩이 같이 튀어나온 톡 튕기는 뒷모습과 그에 어울리는 발걸음은 바람소리를 일으켰다. 가발을 쓰고 디스코텍에 출입한다는 뜬소문에 놀랐던 우리들은 은미가 회장인지 이사장인지의 고명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때 아버지들은 잘해야 회사원 아니면 가게나 농업에 종사했으니까.

우리가 정말 놀란 것은 은미가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였다. 웬만큼 아파도 입원 같은 것은 드물던 시절이었다. 자살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 땐 지금처럼 무감각한 세상이 아니었기에, 우리들은 감히 앞 음절은 발음도 하지 못하고 “미수래, 미수”라고만 입소문을 옮겼다. 병원에 입원한다는 그것만으로도 대 사건이었던 때였으니. “미수”의 원인을 두고서 (헛)소문은 바오밥나무처럼 부풀어만 갔다.

바오밥?

그래. 실제로 높이는 20미터도 넘고, 가지의 길이가 10미터도 넘는대. 구멍을 뚫으면 사람이 살 수도 있다니까.

지금 생물 시간이야?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 말이지. 교회만큼 큰 바오밥나무는 별을 다 덮어버리고, 장미나무가 자랄 자리를 안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게 암적 존재라는 거지. 거대한 자본 같은 것. 지구의 외면을 깔아뭉개는 자본이 결국 지구의 내부까지도 좀 먹겠지. 환경 파괴로.

저애, 뭐야. 너도 그런 것 학습한거야? 야학에 다녀? 거대한 자본이 어때서. 난 기어코 열대를 구경하고 말거야. 거대한 바오밥나무의 숲, 거대한 풍요……


평소에 바오밥나무를 입에 걸고 다닌 것은 정작 은미였었다. 열대여행이라니, 특별한 집의 특별한 아버지들 말고는 그 당시에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감히 여자애 주제에 열대여행이라고? 말을 잘 섞지 못하는 나는 속으로만 은미를 비웃었다. 비웃으면서도,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부러울 것이란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부러웠다고 해야 정직하다. 나는 여행은커녕 움직임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움직임 속에는 은미의 걸음걸이며 그에 걸맞은 디스코라고 하는 춤도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몸치의 눈으로 은미를 관찰하는 것은 미움이자 경이였다.

아무튼 나는 병문안 친구들 틈에 끼어 가게 되었다. 우선 예쁜 과일과 통조림이 섞이어 담긴 바구니를 사서, 서로를 앞세우며 들어간 병실. 은미는 ‘슈미즈 차림으로’ 벌떡 일어났다. 지금처럼 환자복이었으면 더 놀랐을지, 그건 모른다. 우리는 학생 티가 아닌 ‘새색시’ 같은 야한 차림에 놀라고, 그것이 부잣집이나 아무튼 앞서 나가는 집의 여름 잠옷이라고 아는 대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하얀 속옷 위로 드러난 살빛은 얼굴처럼 가무잡잡했다. 그래서 이빨만 허연 얼굴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어쩌다 이러니. 왜 병이 난거야.

응 뭐, 유전이지. 울 엄마 일찍 돌아가셨잖냐.

어머니가 무슨 병인지를 오래 앓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초등학교부터 함께 다닌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집은 커도 침침하고, 그 애 엄마를 본 적이 없었다 했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 이야기를 계속 하거나 울거나 할까봐서. 다행하게도 은미는 침대에 앉은 채 몸을 흔들며 말했다. 난 좀 달라, 시집을 안갈 거니까.

시집을 안 가면 어머니와 다르다? 맞는 말일 성싶기도 했다. 어머니가 결혼과 출산의 과정을 다 거친 뒤에 무슨 병인지 발병했다면. 그렇지만 처녀가 시집 안 가겠다는 말은 3대 거짓말이라던 걸. 그 말도 나는 삼켰다. 애매한 미소만 흘렸다. 말을 내뱉기에 언제나 알맞은 시점을 놓치기 때문이다. 기껏 생각해서 무슨 말을 하려 하면, 어느새 화제는 두어 걸음 앞으로 나가 있다. 그러니 뚱딴지 소리를 듣게 되거나 힐난의 눈빛을 받지 않으려면 함구다. 그냥 알지도 모르지도 않는 듯한 미소가 쉽다. 평판도 따라오니까 일석이조다.

넌 한상 열대지방을 여행하고 싶댔잖아, 바오밥나무 무성한. 그 힘으로 가겠어? 어서 나아.

그래. 우선 졸업을 해야지. 외국어대학에 진학할 거야. 여행을 하려면 외국어가 필수지.

은미, 또 너 말을 앞세워!? 다른 친구들이 놀렸다.

꿈은 자유야. 꿈이 있어야 실현이 되고 말고 하지. 난 적어도 서너 개 외국어를 마음대로 구사하며 세계 곳곳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삶을 살 거야. 정 안되면 스튜어디스가 있잖아! 키 되지, 이거 - 두 손을 펴서 얼굴을 가리켰다, 내가 똑똑히 보았다. - 되지! 아아, 날고 싶어.


그런 뒤 곧 우리는 명색 고3이 되었고, 그 나름대로 입시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정작 대학에 진학했던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급우들이 대학을 포기했는지, 그것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서울의’ 대학생활에 젖어들기에 어리둥절했다. 첫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 기차역에 내린 순간에야, 그 특권의 표시가 부끄러워 예컨대 배지나 가방 등에서 무슨 표지물들을 떼어내 감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 대학 친구들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아니 대학에 별 마음을 두지 않았다.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포기했었던 부모님을 위안해드려야 한다면, 졸업은 잘 할 계획이었다. 그 나머지는 대학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다보니 같은 서울의 대학에 다니는 4년 동안 은미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가끔 통틀어 향우회 등이 있었겠지만, 내가 잘 안 나갔거나, 참석했더라도 구석 참이었던 내게 별 기억이 없던가 그랬다. 은미가 정말로 스와힐리어 - 이름도 외우기 힘든 어느 아프리카 언어를 공부한다는 사실에 우린 차라리 웃었다. 그 실력이면 영어과를 가고도 남았을 앤데, 정말 『어린왕자』를 읽고 바오밥나무를 보러 가겠다는 그건 치기였을까. 대충해도 있는 집 아이들의 사치나 기껏해야 응석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문이 밀려 다녔는지 모른다. 긴 겨울이 끝난 뒤엔 더했다. 한 번은 은미가 봄날 아지랑이처럼 사라졌는데, 그것이 휴학을 하고서 “남자 집에서” 쉰다는 해괴망측한 소리로 되어 떠다녔다.

입소문의 상대는 시골에선 제법 내노라하는 집안이었다. 큰 먹칠의 과거로 실제보다 더 유명했는지도 모른다. 사건사고를 잘 기억하는 사람들은 딸의 비극적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없었던” 일이 벌어지긴 했더란다. 반도 남단 하잘 것 없는 해수욕장에 지금 같은 인파도 아닌 한가한 때, 땡볕의 낮 시간. 총성과 함께 쓰러진 남녀. 누구는 쓰러진 사람이 셋이라고도 했다. 누구는 그냥 다같이 바다로 떠내려갔다고도 했다. 신문보도도 간결하고, 말하거나 듣는 사람들도 스스로 쉬쉬한 일. 믿기 어려운. 믿고 싶지 않은. 괜히 부풀려진?

아무튼 그 집안의 외아들은, 죽은 누이도 미인박명이라 했었지만, 정말 미남이었다고 했다. 그는 위 아래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는데, 당당한 은미에게로 일단락이 되는가 싶었더란다. 그러던 차에 그 민망한 소문이 돌았다.

아서라, 세상에 그런 일이!

아니야, 그 애 엄마가 안 계시잖아.

그 애 엄마 돌아가신 것하고 이게 무슨 상관인데?

뭘 몰라요. 여대생이 갑작스레 휴학하고 몸을 추스르는 것이 뭔데? 누가 들을까 싶은 말이다 뭐.

그럼 왜 떠벌이는데?

떠벌이긴. 그게 정말……

소설 쓰지 마라 느들.

소설은 은미가 스스로 쓰고 있었는지 모른다. 더 나중에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런 해괴한 소문의 실제 주인공은 다른 선배인가 후배이고, 은미는 다시 그 “미수”를 저질렀다고도 했다. 실연의 고통 때문이라고도, 떠난 남자를 위협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아니, 복수의 방법이랬다. 글쎄. 이 모두를 나는 직접은 들은 적이 없어서 어느 것도 다 소설만 같았다. 상상이 잘 안되는 일들을 왜 소설이라 했을까? 지어낸 이야기라는 뜻이었겠지만, 세상에 지어낼 것이 없어서 처녀가 총각 집에서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지어낼까? 요즘 같으면 악플로 사람을 죽음에까지 몰고 간다니 그렇다지만, 그 옛날엔 그리들 심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눈사람 붓듯 불어난 이야기 정도였을 것이다. 구를 때마다 엄청나게 커져버리는데, 처음 알갱이는 아예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어쨌거나 휴학으로 인해 은미는 우리보다 일 년 늦게 졸업을 했다. 그리고 곧 은행에 취직했다는 소식이었다. 은행은 은미완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동색조합으로도, 보색관계로도, 어떤 식으로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얼음 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 대학 시절 학과별 합창 경연에서 우리가 슈베르트의 <숭어>를 연습하는 동안 갑자기 은미가 떠올랐던 때가 있었다. 숭어는 도약력이 뛰어나 수면 위 매우 높은 곳까지 뛰어오른다. 뛰어오를 때에는 꼬리로 수면을 치면 거의 수직으로 뛰어오르며 내려올 때는 몸을 한 번 돌려 머리를 아래로 하고 떨어진다는 날쌘 물고기다. 공으로 말하자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다. 이 곡의 경쾌한 멜로디와는 달리 노랫말은 권력자와 음모에 대한 아린 비판을 담고 있다. “얼음 같은 강물에 뛰노는” 이 날쌘 숭어를 낚시꾼이 영 낚을 길이 없자, 꾀를 내어 물을 흐리게 해서 낚아 올린다는 내용이다. 숭어는 주로 연안에 서식하다가 강물에도 들어간다지만, 이렇게 흙탕물이 된 강물에서 잡힌 숭어가 안쓰럽기만 했다. 우린 합창연습을 했던 4월 5월 내내 이 숭어를 불쌍타 하면서도, 일단 노래를 하게 되면 화음에 고개를 맞추며 즐거워했다. 나도 가끔 은미의 경쾌한 발걸음을 떠올렸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니까 은미가 제복을 입은 직장인이라는 영상은 아무래도 어색했다. 똑같은 디자인의 제복에 갇혀서, 그 톡톡 튀는 엉덩이를 의자에 죽치고 앉아 돈을 세고 있을 장면이 떠오르자, 퍼뜩 강물에 밀려올라와 파닥이는 숭어 생각이 떠올랐다.

그 펄펄 나는 애가 은행에? 그것도 좁디좁은 고향에서?

왜, 은행이 어때서? 미모도 한 몫 했겠지만, 집안도 한 몫 했겠지.

그래, 직장 내에서도 사람들 다 휘어잡고 웃기고 그럴까? 유머 하나는……

여자애들에겐 대학을 졸업하고도 교사 아니면 별로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던 때라서, 더러는 은미를 부러워했다. 은행원들은 보통 소심하고 단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은미는 이런 저런 내기로 남자직원들을 골탕 먹이고 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마침 친구의 친구가 같은 은행에 다니게 되어서였다. 그러다가 서로 전근이 되었던지 잠시 소식이 끊겼다. 다들 결혼으로 갑자기 연락이 안 되거나, 심심찮게는 이민으로 소식이 아예 없어지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은미의 결혼소식이 뒤늦게 날아왔다. 그냥 결혼을? 미모에 매력덩이 여행원에게 어떤 고객이 반하기라도 했담? 그러나 신랑은 서울의 어느 지점에서 동료 행원으로 만난, 너무도 평범한 상대였다. 뭔가 우리 보통 아이들에게 특별한 연애를, 특별한 인생을 보여줄 듯했던 은미의 수월한 결혼에 우리는 괜히 허탈했다. 평소에 은미의 기발한 행각에 실었던 우리의 일탈의 소망이 함께 사라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워낙 근엄하시니 별 수가 있었겠나, 그 정도로 이해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물며 신랑이 얼마나 근검절약형 행원인지, 그것도 뉴스거리였다. 사보에 싣는 토막글도 오직 원고료 때문에 쓴다는 위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비상한 머리에 통이 대통인, 재즈와 디스코의 여왕이자 유머의 고수가 푼돈에 쓰기 싫은 글을 쓰는 자린고비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단하고 미래를 걸 수 있을 남편감일지 모르나, 은미에겐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당시엔 여행원은 결혼과 동시에 퇴직이었다. 이제 은미가 시할머니 층층에서 시집살이를 한다? 해방의 선두주자를 놓친 우리들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그 신랑을 존경어린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인물이면 은미를 들여앉혀서 살림을 하게 하나, 것도 시집살이를?


우리들 중에 시집살이로선 가장 마지막 후보였던 은미가 소도시의 한옥지구에서 시커먼 가마솥에 물을 끓여 시할머니 목욕을 시키고, 밥상은 시할머니 따로 시아버지 따로 시어머니 따로, 그리고 나서야 아이들끼리. 정말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어쩌다 한두 번 은미가 고향에 다니러 오면 급조한 동창모임에서, 콩나물무침에 젓가락을 쑤셔대며 우리를 놀리던 그런 자리에서, 드문드문 은미의 생활상이 내뱉어 나왔다. 몇 친구들이 펄펄 뛰는 은어를 어렵게 상추에 몰아넣으며 식당에서의 상추가 위생이 어쩌고 하던 때였다.

상추? 난 집에서도 다 안 씻어. 그걸 언제 다 씻냐고. 어른들 밥상엔 대충 해서 올리고, 아이들 줄 것만 제대로 씻는다니까.

상추를 다 안 씻어? 아니 너……

어때. 너희도 식당에서 그냥 잘들 먹잖아. 한 끼에 밥상이 몇 갠데, 그것 다하고 언제 우리 방에 들어가. 애들하곤 놀아야 하는데.

놀아?

그래. 문 닫아 걸고, 아이들 하고 디스코 추지 뭐. 갓 투비 데어…… 패러독스!

난데없이 패러독스는! 아무튼 너 몸매 하나 잘 가꾼 거구나. 얘 날은어 삼키며 파닥거리는 것 좀 보라니깐. 여전히 애들 똑 같네! 우린 모두 ‘배둘레햄’이야. 봐, 이 뱃살을 어쩌냐. 넌 우리 몇째 동생 같구나. 얘 또 이 옷 입는 것 좀 봐!

옷차림은. 총대처럼 붙은 청바지에 총대같이 붙은 청조끼라니. 그것도 아무리 보아도 작아질 대로 작아진, 아무리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고 또 날씬해 보이려고 꼭 끼게 입는다 해도 그건 아니었다. 이 옷차림은 그나마 골목 어귀의 구멍가게 주인여자에게 보관했다가 살짝 몰래 입는 것이랬다. 집에서나 보통 시장 출입 때에는 ‘월남치마’를 입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회장인가 이사장집 외동딸로, 반장, 부반장 뭐든 다 하고서, 뭐든지 입고, 누가 보든지 엉덩이를 제 마음대로 흔들고 다녔던 은미가. 우수한 인간의 뛰어난 적응력일까?


결국 은미 같은 날렵한 튀는 자태에서 왜소한 처량한 몰골로의 변화란 십년 남짓으로 족했다. 불쑥 나타나서 여전히 기발한 유머를 날릴 법한 은미의 표정이 점점 서늘해갔다. 우리들이 점점 덜 웃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세상에 코미디 프로가 퍼진 탓이었나? 우리들의 재미가 달라졌을까? 우리는 무엇을 향해 살았을까?

어쩌다 나타나도 항상 은미가 중앙무대의 상석을 휘어잡던 분위기가 언제부터인가 차츰 달라져 갔다. 아니 역전되었다. 말에 힘을 싣는 쪽은 새 귀족이었다. 혈통(?)귀족 대신 나타난 새 귀족. 그들은 아무래도 냄새를 풍겼지만 막강한 실세였다. 향수와 돈 냄새의 묘한 뒤범벅이었지만, 누구도 조금 고약한 그 냄새를 그리 탓하지 않았다. 우선 넉넉하고, 또 편했으니까. 가끔 새 귀족이 양반자리까지 넘보고 교양의 고지마저 점거하려들면 조금 마찰이 있긴 했다.

아니 와인 잔을 그렇게 들면 어떻게 하니. 여기 손잡이를 이렇게 들어야지! 다 마시는 법이……

우리가 움찔하면서 손을 고쳐 잡으려고 하면, 한 괴팍한 친구가 태클을 건다.

어디를 잡으면 어떻고. 내 잔 내 맘대로 들지 뭐. 서양 술 얼마나 마신다고 법석이야. 따지자면 와이트는 그래. 하지만 레드는 특별히 차갑게 할 필요가 없으니 아무래도 되는 것 아냐?

이도 저도 모르는 우리들은 머쓱해도 좋지만, 은미가 쥐죽은 듯해서 맘에 걸렸다. 이젠 은미가 확실히 마이크를 뺏겼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러고는 정말 더 멀어갔다. 그래도 일단 은미네가 다시 서울로 전근을 간 남편을 따라 분가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는 괜히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는 제 삶에 부대끼면서 동창의 삶쯤은 잊어갔다.

일찍 결혼 한 친구들은 벌써 아이들의 입시에 들어갔고, 그러자 우리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대입’이었다. 매일이다 싶게 차 마시며 오가는 같은 아파트 이웃들도 ‘자녀들의’ 학교에 관해서는 서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대화 자체가 멎었다. 잦은 이사들로 이웃이 자꾸 바뀐 때문이기도 했다. 동기 친구들도 신축 아파트 따라 이사하는 속도가 다르다 보니,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800미터 달리기 할 때 속도가 한참 달라서 누가 세 바퀴째인지 네 바퀴째인지 구별이 되지 않던 때처럼, 누가 어디쯤 서 있는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서로 모르게 되었다. 수준 차가 벌어지는 속도가 급격했다. 점심은 백배, 시계는 천배로 갈라졌다. 누군가의 연봉을 한 번에 통째로 입고 두르고 있는 명품 친구 앞에서, 은미의 여전히 총대 같은 청바지는 날씬한 몸매와 상관없이 초라했다. 이제는 민물고기같이 잽싼 몸놀림보다는 약간의 나른한 굼뜬 동작에 화려한 장신구가 더해지면 그대로 우아미를 발산했다. 어떻게 가꾼 것인지, 충분한 영양 탓인지, 피부들도 엄청 차이가 났다. 볼이 톡톡 튀던 은미의 표피는 앙상한 싸구려 파운데이션으로 뒤범벅되어 있었고, 속까지 비치는 부들부들한 살결들 사이에서 아무래도 이물질 같았다.

은미 너! 몸매 하난 여전히 끝내 준다만 웬 파운데이션을 그리 발랐어! 논바닥처럼 갈라지네, 너무 두껍게 발라놓으니 말야.

아닌데, 나 파운데이션 많이 안 발라, 진짜 아껴. 여기 봐, 이마 쪽은 안 발라, 안 보이잖아. 그리고 볼도……

놀라워라. 단발처럼 눈썹까지 내린 앞머리를 걷어 올리니 정말로 위아래가 다른 이마가 나타났다. 우리들은 깔깔 웃었다. 못 말린다, 못 말려.


여고 때에도 이런저런 기발한 착상과 뉴스들로 우리를 웃기고 놀리던 은미였다. 어디서 그렇게 놀라운 뉴스들을 퍼왔었을까? 아무래도 덩치 크고 잘 나가던 오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갓 투비 데어, 갓 투비 데어, 인 더 모닝 웬 쉬 새즈 헬로 투 더 월드 / 갓 투비 데어, 갓 투비 데어, 빙 허 굿 타임즈 앤 쇼우 허 댓 쉬즈 마이 거얼 / 오 왓 어 필링 데얼 비 더 모우먼트 아 노우 쉬 럽스 미 / 코즈 웬 아 루크 인 허 아이즈 아 리얼라이즈 아 니드 ……

잘 들어야 겨우 알아들을 노래와 함께 문워크래나 뭐래나 뒤로 걷는 춤은 일품이었다. 독특한 것은 우리가 “아이”라고 발음해야한다고 믿는 것을 꼭 “아”로만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누구도 미국사람의 발음을 제대로 아는 일이 없었으니, 잘 나가는 은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었다. 은미는 학교도 가끔 불신했고, 특히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란 “콩글리쉬”라고 우겼다. 그것도 우리가 덩달아 “콩그리쉬”라고 하면, “콩글리쉬”라고 다잡았다.

페임 / 암 고나 리브 포레버 / 암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암 고나 메이크 잇 투 헤븐 / 라잇 업 더 스카이 라이크 어……

결혼들을 하고도 한 참 뒤였을까. 큰 동창회 행사에서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신곡’으로 혼자 목청을 뽑을 때에도 우리가 “아이”라고 발음해야한다고 믿는 것을 꼭 “아”로만 발음하는 건 여전했다. 알라뷰! - 요란한 박수소리에 깜짝 응답으로 손을 쳐들고 무대에서 뛰어내려오던 모습은 숭어든 망둥이든 이름 하여간에 펄펄 나는 물고기였다.


천천히 그러나 어느새 세월이 갔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아예 잊혀갔다. 이웃에 살아도 서로 다치지 않고서 말하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나는 점점 서로 말 주고받음 없이 제 이야기만 하는 텔레비전에 익숙해갔다.

코미디. 난 코미디 프로를 가장 슬퍼한다. 그래서 싫다. 슬픈 영화는 괜찮지만 코미디가 슬픈 건 참지 못한다. 내가 틀리는 지도 모른다, 코미디가 우습지 않고 슬프다고 말하면.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우습다고 말하는 코미디가 제일 슬프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정말로 웃게 되고, 웃으면 그때마다 젊어진다고 해도 싫다. 나는 코미디를 보면 슬프고, 슬프기 때문에 더 늙을 것이다.

시트콤. 그것도 아니다. 단편집을 읽을 때처럼 지속적인 줄거리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웃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 방해가 된다. 무엇보다 웃음은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고, 관객이 따로 있고, 그 다음에 내가 그것들을 함께 보는 상황이 정리가 잘 안되는 것이다.

딱히 일정한 취향은 없었지만, 연속극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그 다음 장면 그 다음 발전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밉살스럽게 꼭 궁금증을 유발할 때쯤에 끝을 내고 다음 시간으로 넘기는 수작에 성가시지만, 가능하면 다음 시간에 눈을 대게 되었다.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이야기”에 정신을 판다고, 유익할 것이라곤 조금도 없는 프로나 기다린다는 식의 남편의 시선엔 익숙해졌다. 그가 보는 뉴스는 인생에 도움을 주는가? 하긴 날씨는 하루 일을 조금 편케 해줄지 모른다. 교양강좌 시간? 더 이상의 교양과 지식이라 해도 내 인생을 바꿀 리 없다. 업그레이드? 무엇을 향해서? 나는 그저 드라마라고 하는 남의 인생살이 모형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살아가는가, 살아 갈 가능성이 있는가 따라갈 뿐이다. 이웃이 있는 느낌이고,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착각에 든다. 나는 그냥 “어떤 다른” 인생들을 바라보면서, 이웃의 그렇게 서러운 더러는 힘든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기분에 빠지려는 것이다. 그러면 서러워지지 않고 진지해진다. 감정이입이라고, 어렵게는 그리 말한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여자인 내가, 드라마 속의 남자에게도 그런 감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자: 어머니가 나를 버렸다. 어머니가 버린 딸 -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어서 죽고 싶다.

남자: 너 살아 있는 것이 내 의미야. 이렇게 고운 네가 자학에 빠지다니. 내가 너를 지켜주겠어.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빠진다.

다른 남자: 아버지가 실수로 비천한 가운데 뿌린 씨앗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부정하는 아들 -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어서 죽고 싶다. 여자가 위로한다, 오빠 태어난 것이 기뻐요.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여자가 심장에 박힌다. 여자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있다.


어쩌냐. 원래 큐피트의 화살은 한 방향으로만 난다. 여자와 남자의 결속은 다른 남자가 여자를 심장에 박아두고 있는 한 온전치 못할 운명이다. 누군가의 심장 속에 박힌 여자는 언젠가는 튀어 나오기 때문이다. 다른 남자가 여자와 남자의 행복을 위해한다. 행복은 깨진다. 여자는 남자를 가슴에 품고도 떠나야 하고, 그런데도 여자 시청자인 내가 극중의 다른 남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를 향해 연연하듯이 다른 남자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이해한다. 나도 덩달아 사랑을 이해하는 마음이 된다.

물론 영화가 가장 편할 것이다. 후속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압축된 인생이 거기 있으니까. 그러나 영화관도 아니고 방에 박혀서 여기 저기 채널을 돌리다 보면 그것이 어차피 토막인 채다. 프로그램을 미리 찾아보고 특정 영화를 찾아 볼만큼 광도 못되고, 무엇보다 게으른 탓이다. 뒷부분 절반만 보았던 것을 조금 더 앞서부터 보게 되거나, 계속 그런 뒤쪽만 보다가 오래 지나서야 그 앞쪽을 보는 일도 있으니 뭔가. 시간이 나면 낮밤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이나 보고 사는 내 인생이 어찌 보면 더 한심하다. 사람이 실 인생에 무관심하고서 그리 픽션을 탐하게 될까? 저 거짓 타령에 눈을 떼지 못하고 사는 난 무엇인가. 무용지물. 남편 밥상 차려주고, 함께 먹고, 설거지하고, 손 씻고, 물기 닦고, 로션 바르고. 그것을 세 번 되풀이 한다. 그것을 두 번만 하는 날은 그 변형을 즐긴다. 아무렇게나 한 끼 먹고, 그릇을 조금만 씻고, 손 씻고, 물기 닦고, 로션 바르고. 하긴 그게 그거다. 안 먹고 건너뛰어야 진짜 변형일 텐데. 나는 굶거나 폭식을 싫어한다. 배고픈 것도, 배부른 것도 싫다. 이렇게 오직 적당히 먹기 위해서 사는 날이 부쩍 늘었다.


매형, 뉴스 시간이네요. 동생이 뉴스 쪽으로 채널을 바꾼다. 제 댁이 몸을 풀고 친정집에 가 있는 동안 아예 우리 집으로 - 우리 집은 무엇보다 빈 방과 밥이 있다 - 퇴근하는 막둥이가 말한다.

논픽션의 단골 메뉴, 중동에서의 폭탄 테러, 이미 벌어진 다음 어쩌란 말이냐. 이래서 난 뉴스를 싫어한다. 잘잘못을 따지자면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되풀이이다. 하긴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도 이미 낡은 이분법이 되었다지. 창조론을 믿는 유전과학자,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줄기세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특별한 신앙인-과학자 또는 과학자-신앙인이 그에 속하리라. 하지만 검고 흰 것이 따로 없다면? 기름과 물이 구별이 안 된다면? 모든 가치의 종말이리라. 가치, 가치.

지난여름엔 지상 최강대국 수장이 지적설계론 교육문제에 개입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미친 놈, 현대판 십자군전쟁의 주범이 실전이 모자라 이론영역까지 침범해? 남편이 난데없이 뉴스에 흥분했다.

뭘 먼 나라 뉴스 가지고 그래요?

힘을 가진 놈들의 맹신은 아주 무서운 거야. 히틀러의 반유대주의하고 한 개인의 반유대주의가 같냐고. 지적설계론이란 우회적이지만 분명 사기적인 표현이오. 신앙의 영역을 들고서 과학을 침범하겠다? 부시의 보수개신교가 문제라, 착한 늙은이가 보수개신교도라면 도덕적이고 선할 뿐이겠지마는.

것도 가부장제도만 빼고요? - 참, 애기아빠야, 너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그림 봤어? 그것으로……. 뇌관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 싶어서 얼른 말머리를 돌린다.

건 또 뭐라는 거요? 아니 그보다, 뉴튼도 창조론을 신봉했던 것 몰라요, 누님?

뉴튼이 신앙인이건 아니건 중력은 기적이 아니라 실체로서 살아있는 거지.

누난 참. 과학의 뭘 안다고 진화론 옹호자가 된 거요?

그보다, 넌 어떻게 초음파로 사람 들여다보며 사는 사람이 진화론을 의심해? 그러고도 자연과학자야?

누님, 그러네. 내가 내과라 그런가. 아니 외과 친구들 중에도 가톨릭의사모임에 열성인 경우가 많아. 확실히는 무엇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약을 처방해야 하고, 같은 약물로도 반응이 다르고, 한 알이냐 한 알 반이냐 정해야할 때 내가 무슨 수로 나를 의지한단 말이오. 나는 도구고 하느님이 역사하신다는 생각의 틀이 도움이 돼. 내가 훨씬 덜 힘들어.

자신이 없기는. 그건 네 영혼을 위한 네 신앙이지, 환자를 치료하는 과학적 사고는 아니다.

그래도, 내겐 힘이 되고 있어.

거야 좋은 일이겠다. 믿음이 널 지켜주는 한. 하지만 나 같은 무용지물은 전체 그림을 생각할 겨를이 없지. 우연적으로 발생한, 그러나 유일무이한 생명체, 그 자체로서 의미가 담겼다고 해야 겨우 살아가지. 생명 말고는 내가 무슨 가치가 있어 살아.


아니 잠깐, 이번엔 투신자살이다. 자살은 요사이 뉴스다운 뉴스도 아니다. 엽기적 연쇄살인에 밀려 제 죽는 것이 무슨 뉴스랴. 자살사이트가 어쩌고 젊은 연예인들이 어쩌고 하면서, 자살이 놀이처럼 번져가는 낌새도 수상쩍긴 하다. 열악한 환경에, 실연의 고통에…… 진부하다면 진부한 이유들. 보통 사람이라면 열 번을 죽었다 살아나도 못 만져볼 재산을 두고서 목을 맨, 보통 사람이라면 올라가보지도 못할 성공에 이르러서 죽은 …… 사치라면 사치스런 이유들.

사람들은 때론 악랄하리만치 잔인하다. 여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목을 매는 것은 약을 삼키는 것과 비교해서 의지가 얼마큼 강한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약을 삼키려다 말거나, 삼켰다가 토해내거나, 목을 맨 줄을 다시 풀 확률과, 풀려 했는데 못 푼 상태에서 발이 미끄러져버리는 비극적 경우까지 죄다 노닥거렸다. 칼로 베는 방식은 아예 제외였다. 웬만해선 죽게 베지는 못한다고. 가장 강력한 의지는 투신일걸, 누군가 그러면, 이번에는 다리 난간에서 강물에 투신하는 것과 옥상에서 투신하는 것에 대해서 왈가왈부였다. 제1의 강자 자리는 고층빌딩 옥상에서 추락하는 방식이 차지했다. 기울기가 잡힌 순간 되돌릴 수가 없다는 점. 누군가 함께 뛰어들어 구해줄 수도 없다는 점. 한 마디로, “쇼가 아닐 다름에야” 고층옥상이 가장 완벽한 선택이라고. 상처만 입고 병신 되어 살아날 가망도 없이. 그러니 얼마나 완벽한가. 하늘을 향해 한 번 비상하는 것. 그것으로 끝이다.

뉴스란 그러나 이래저래 소용이 없다. 이미 떨어져버린 사람에 대한 소식 - 그것으로 어쩌겠다는 말이냐. 떨어진?

그러니까 이번 소식이란 바로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진 여자에 관한 것이다. 한 때, 아이 엠 에프로 몰락한 한 가족이 고층 옥상에서 투신했는데, 다 고스란히 살아났더라는 우스개 뉴스가 있었다. 애비는 제비족, 어미는 날라리, 자식은 비행청소년이었으니까. 저 여잔 날라리가 아니었군! 잘 좀 날아 보시지! 나는 법을 안 배워뒀나? 갑자기 아이린 카라의 불타는 눈매가 떠오른다. 가무잡잡한 피부까지 닮은 은미의 불같은 눈매가 겹친다.

페임 / 아임 고나 리브 포레버 / 암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영원히 살겠다,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겠다? 갑자기 등줄기에 찬물이 인다. 설마.


하긴 은미는 한동안 조용했다. 아예 동창회 네트에서 사라진 것이다. 삼삼오오 필드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늘고, 산악회다, 해외여행이다 몰려다니기 시작할 때, 은미가 사라지고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누군가 오전 10시에 집에 전화했을 때 전화를 받는 여자는 병든 년, 돈 없는 년, 그리고 또 하나 성질 나쁜 년, 세 종류뿐이라는 우스개가 돌았다. 은미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나는 어디일까?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에 자존심을 건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 생각이 난다. 여름철 휴가를 못갈 형편이면, 앞문을 잘 잠그고서 휴가 떠난 빈집처럼 해놓고 뒷문으로 드나든다나. 그러다가 빈집털이 좀도둑에게 들키면, 제발 다 가져가도 좋은데, 휴가 못 떠난 사람이 있더라는 소문만 내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나. 그러니 나는 10시경에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으면 되겠다. 은미도 그럴까.


따르릉. 아침 정리가 대충 끝나고 막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는 참이다. 이 시간에 집에 있는 나를 사람들은 어떤 부류라 취급할건가. 몹쓸 병이 든 것도 아니고, 돈이 아주 없지도 않고, 그럼 성질이 나쁜? 나쁜 사람이 스스로 나쁜 줄을 알랴마는, 난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럼 그만 두자. 나도 나다니는 척 하자. 전화는 끊겼다가 곧 다시 요란스레 울렸다. 설마 중요한 일이?

나는 작정을 하고 윈덱스 병과 마른걸레를 들고 앞 베란다 쪽 유리창으로 향한다. 해가 비치는 오전 이른 시간이라야 창에 난 손자국들이 선명해서 잘 보이고, 또 자국들은 한낮보다는 아직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야 잘 닦인다. 몇 개의 화분들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풀냄새가 아련히 졸음을 불러온다. 따르릉 따르르릉. 이번에는 예사롭지 않게 끈질기게 울려댄다. 전화 숨이 긴 것이 조금 불안하다. 아서라, 양쪽 집안에 노인들 계시는데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배짱은 또 뭐람. 스스로를 나무라며 문을 젖히고 수화기 쪽으로 내닫는다.


*


서울에 올라갈 수야 있겠냐.

서울 친구들은 그럼 다들 가 봤대냐?

다들은 뭐. 요 근래엔 통 소통이 없었대. 애 유학 보내놓고 마찰이 많았었다네. 은미는 애 따라 나갈 계획이었고, 남편은 결사반대고.

조기유학도 아니었다며 애 따라 나갈 건 왜. 집에서 합의가 안 되면 못가는 거지 안 그래.

남편이 못 가게 한다고 못 떠나? 이 나이에?

이부자리 보고 발 뻗는다잖냐. 아예 손발이 묶이면 꼼짝 못하는 거지.

손발이 묶이다니. 옥상 그거 아니었어?

아니 뭐 손발이 묶였다는 게 그게 아니라.

아님 뭐?

경제권이 아예 없었단 얘기지. 평생 시장비 타 쓰는 형국을 참고 살았다는 거야. 몇 대째 있는 집에서 자라, 남편이 이재에 밝아 한 재산 해 놔두고 말야.

설마. 남편 통장 고스란히 받아 챙겨 관리하는 것이 한국형 경제 아냐? 처녀 때 성 쓰지, 통장 갖지, 선진국보다도 여권이 신장된 나라에서 웬 말!

훨훨 떠난 사람 두고 무슨 뒷말들이야. 결국 날아갔네 훨훨. 아임 고나 리브 포레버 아임 고나 런 하우 투 플라이……

비보를 전해 들으며 어안이 벙벙했던 우리들은 일단 모였다. 어라? 급한 대로 연락이 잘 안된 모양인지 평소의 반도 안 되었다. 더구나 다들 제 형편 따라 문상 갈 처지가 아니고 보니, 대표로 누구에겐가 짐을 씌울 셈으로 모인 것이다.

밥이 벌써 나온다, 어쩌냐. 우리 아직……

어쩌긴, 산 사람은 먹어야지. 먹고 이야기 하자. 인생이 그리 녹녹하다더냐. 아무튼 우리 더 단단히 맘 다져먹고 살자. 아이들 어중간하게 참 어쩌라고. 짝들은 맞춰줘야 부모책임을 다하는 거지.

암 고나 리브 포레버 / 베비 리멤버 마 네임 ……

실팍한 친구의 다독거림 사이로, 어디선가 환청일까 ‘아이’를 ‘아’로 고집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정말 날고 싶었던 거야? 날아서 바오밥나무를 보러 간 거야?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 애가 해외 어딘가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지 않았다. 아프리카는커녕 아무데로도 못 떠났었나, 설마? 나가면 나가고 떠나면 떠나지, 뭣 하러. 논픽션에 등장하면 어떻게 해, 바보같이……. 어디라고 할 데 없는 곳을 향해서 속으로 뇌이고 있다.

뭐해, 어서 먹지 않고.

무심코 한 친구가 콩나물 그릇을 내 가까이로 옮겨준다. 풋마늘무침과 자반무침 사이에서 노란 콩나물이 오늘따라 애처롭다.

그래, 맛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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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07. 6. 30. 23:30


조 사

 

                                  소설시대 2007

 


오늘 길 떠나시는 시인을 찾아 서둘러 날아온 ‘쑥국새 울음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봄날, 우리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하는, 존경해 마지않았던 OO OOO 선생님, 제자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가르침을 주신 스승을 잃은 마당에 감히 조사를 읊어 바치고자 하니, 서러운 마음 그지없어 눈앞이 깜깜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단발머리 소녀들로 스승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솔방울만 굴러도 깔깔 웃고, 낙엽이 떨어지면 눈물 떨군다는 소녀시절. 바로 이런 봄날, 뻣뻣한 검은 말총머리를 휘날리시며, 휘날리는 머리카락 따라 고개를 끄덕이시며 들어서신 국어 선생님. “아야!” 그렇게 정겨운 목소리로, 그러나 완벽하게 우리말 우리글 공부를 가르쳐 주셨던 스승님! 


우리가 이 영어 세상에서 우리말을 사랑하며, 이 글로벌 세상에서 우리 것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음은 스승님께서 우리들 때 묻지 않은 영혼에 심어주신 ‘우선은 국어 사랑의 정신’과 나아가서는 ‘자중자애의 숭고한 가치’ 덕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친구들을 서로 사랑하고,  심지어 사투리까지도 사랑하고, 그 중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타인이 나보다는 자신을 사랑함을 이해하고, 행여 자신을 사랑하는 타인을 못해도 자신만큼은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을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자신에 걸맞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 외에는 세상살이에 달리 첩경이 없다고 깨우쳤습니다.


스승님은 우리의 꿈을 높게 이끄셨고, 많은 제자들이 보다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여자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보람이 적다.” ― 세상을 아시기에 미리 한탄하셨던 스승님. 우리 “보람이 적은” 여자제자들의 삶 속에도 스승님의 가르침은 면면히 흐릅니다. 서울에 가서 살건 미국에 가서 살건 전라도 아낙인 것 부끄러워한 적 없고, “툭시발 갓의 된장 맛”이라고, 구수한 인생살이에서 가정과 자녀의 인생에 알뜰한 간을 맞추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빛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소금은 될 양으로 ―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 조사는 그런데 읽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지들의 조사 틈에 여자제자들의 차례는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우리 쪽 차례가 오면!” 준비는 해두자고, 공인으로 활동하는 동창이 하룻밤을 조르는 데 못 이겨 난생 처음으로 써 본 조사였다. 그럴 일이 생긴다면 읽기는 목청도 담도 좋은 동창이 잘 읽을 터였다.


허옇게 서있는 키다리 조화들은 즐비했다. 막상 발인은 예상보다 조촐했고, 선생님 살아생전에 모이던 제자들 수만큼은 어림없는 인파였다. 


*


문학 월간지에서 무명의 나에게 청탁이 왔다. 청탁이다, 적어도. 등단 몇 년이라고는 하지만 고료를 받고 쓴 작품이 몇이던가. 그 동안 썼다가 구겨둔 원고들을 서둘러 훑어 볼 일이다. 그때마다 중단된 글들도 처음엔 절실한 심정으로 시작했었던 것들이니까. 그 옛날, 윗목의 낮은 교자상 앞에 구부려 앉아 쓰고 또 쓰다가 구겨둔 원고지들은 다 사라졌다. 버리고 또 버려도 쌓이는 파지들을 자꾸 치운 까닭이다. 그런데 컴퓨터 속은 도둑놈 계집 치마폭이다. 켜켜로 쌓아두면 버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미지 작업이나 사진 작업이 거의 없는 ‘우리의’ 노트북은 죄 한글문서들뿐이어서, 용량에선 넘칠 염려가 없다. 이런 무궁무진한 창고 덕에……


아니 그런 모든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미진한 몸이 청탁을 받으면 목욕재계를 하고 선을 하고 앉아서 명상에 잠겨도 모자랄 일인데, 대뜸 창고 속을 후비기 때문이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 도는 문서들도 없지 않다. 적게는 8KB짜리에서 많게는 1,126KB까지 분량 또한 제멋대로이다. 드물게는 ‘열려라 참깨!’를 잃어버려서 바윗돌처럼 닫혀버린 파일도 있다. 노트북을 공유한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파일들이 있고, 암호를 걸어두었다가 그리된 다.


또 하나의 문제는 노트북에 대한 권리에서 함께 쓰는 그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는 밥을 벌고 나는 밥을 벌지 않는다. 그는 아무 시간이나 일을 하고, 나는 그가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들어서야 노트북을 연다. 그러니 항상 서두르는 버릇이 있다. 집히는 대로 작업을 하다말다 그러는 것이 버릇이 되고 말았다. 한심한 노릇이다.


바로 어젯밤에 쓴 「조사」가 들어있는 파일에 쓰기 시작하는 것도 나쁠 것 없다 싶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니 너무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 글이다. 격식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데 글쟁이라니 한심하다. 상투적인 감상의 찌꺼기는 또 뭔가. 그러면서 엉뚱하게 사투리 배운 것을 감지덕지하다니, 듣는 이들이 황당하다 했을 것 같다. 읽혀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문자화 되어 마음만 여기에 남으면 되니까. 이렇게 잘 표현되지 못했더라도 속에 담긴 의미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보다도 크게 봐서 인생은 어느 구석을 돌아도 비슷한 쳇바퀴란 건방진 생각이 들 때면,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은 어차피 누군가가 살다가 죽는 이야기의 한 단면일 것 같다. 어떤 위대한 작가도 그 이상의 범위를 넘지 못할 것이고, 어떤 초라한 글쟁이도 그저 그 지평 안에서 몸살을 앓을 것이다.


파일들은 생각보다 분류가 되어 있질 않다. 어쩌다 눈에 띄는 파일 중에 마찬가지로 ‘옛 스승’과 관련된 짧은 글 토막이 있다. 모교 동창회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추억담을 올려달라는 성화에 적어두었던 모양이다.


모교의 OOO 선생님은 가정과 선생님에서 교감, 교장 선생님을 두루 다 거치셔서 동문 모두에게 잘 알려진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동기의 ‘홈커밍’ 행사에 불참하실 때 노환이 깊으시다는 소식에 마음들이 무거웠지만, 그것도 벌써 옛일, 이젠 이승을 떠나신지 오랩니다.


선생님은 떠나셔도 의미 있는 한 순간의 기억은 영원 속에 박힙니다. 저는 아직도 아주 적나라하게 목욕탕에서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비누에 엉키는 머리카락을 쉽게 떼어내는 방법은 그분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속옷 서랍을 정리하는 일 하나도 참 숙연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너절하게 두고 떠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사소한 것에 감동하느냐고요? 인생은 사소한 것의 총계라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엄청난 목표 달성을 위해 사소한 행복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배웠고 그렇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때 홈커밍 행사 날 한 친구가 유난히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친구는 모교에 부임한 초년 교사로 스승님은 교감선생님으로 잠시 함께 재직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젊은 ‘애 엄마’ 여교사들에게 교감선생님은 감시 대신 시원스레 말미를 주셨다고요. 가능하다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재빨리 집에 가서 ‘아이를 잠깐이라도 꼬옥 껴안아주고 오라’는 충고. 당신께서 여덟 자녀를 기르시며 후줄근한 숙직실에서 젖을 물렸던 기억에 아파하시며, 젊은 여교사들에겐 가능하면 아이에게 밀착된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던


거기에서 중단된 이 글은 홈페이지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제 새삼스레 추억에 잠기면서 운명의 불공평한 대우에 분노가 인다. 그분이, 마지막 몇 년을 지독한 치매상태에서 고통 받아야 했다는 뒷소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평생을 교직에 종사하고 - 그저 단순한 가사노동이나 혹은 유한마담의 삶을 살아간 비슷한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무엇을 그리 잘못 했다는 말인가? 치매를 행여 젊은 시절의 방만에 대한 벌이라고 하는 단순논리를 반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 삶을 살고서 그 마지막 몇 년이 치매라면, 이것은 뭔가 아니다 싶다.


“고매하신 창조자의 섭리 따위는 없다는 증거야.” 내가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잘라 말했다.

“그런 말은 심하다. 그 선생님 시절엔 가정생활과 직장생활 양쪽에서 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리 되셨겠어. 게서 창조주 이야기는 왜.”

“창조주란 말 안 썼다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 그게 그거다 원.” 다른 친구가 거들었다.

내겐 항상 편이 적다. 그래도 우긴다.

“양심 없는 쪽이 양심 있는 쪽보다 훨씬 더 잘 산다면, 그게 이 세상에 고귀한 섭리 따윈 없고 우연이 지배한다는 것 아니냐고.”


다 말하지는 못했다. 실은 안팎으로 죽어라 일만 하시다가 치매로 고생 끝에 돌아가신 우리 선생님과 대비해서, 아파트 우리 라인에서 제일 멋있게 늙어가는 노부부 이야기를 할까 했었지만.


이런 이야기다. 남편은 겉은 영국신사에 속으로는 향교에서도 알아주는 식자에, 아내는 젊어 이래 폐백음식에 불려 다녔다는 솜씨를 자랑한다는 부인이다. 산보길이며 외출하는 양이며, 최고로 여유 있고 한가롭게 여생을 즐기는 모습이다. 할머니는 아예 노인 축에도 안가는 팽팽한 얼굴이다. 근심 걱정이라고는 평생 없었다고 말하는 피부. 고운 자태. 고운 옷.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내막은 주말 연속극 감이었다. 남자는 고향에 처자가 있는 유부남, 여자는 처녀 때 만났던 사이라는데, 내가 그것으로 놀랐다면 호들갑이다. 속내는 더 기가 막혔다. 처녀 쪽에서 마음 고쳐먹고 시집을 갔으니, 일은 제자리로 돌아간 듯 했더란다. 그런데 여자가 한두 해만에 딸을 하나 낳고서는 그걸 버리고 다시 이 남자에게로 왔다는 것. 그러니까 아버지는 제 아들을, 어머니는 제 딸을 버리고서, 그렇게 다시 시작해서 ‘우리 자식’ 몇을 더 낳아 온갖 정성 다 쏟고 호의호식으로 키우면서 살아왔다니.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는 큰아들 선 자리를 말 그대로 백번도 더 보았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버린 자식들 ‘내 자식, 네 자식’이 잊혔을까? 요새 말로 그보다 더한 스트레스가 있었을까? 마음속이 그러고서도 저리 화평한 노년이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까지 모두 이야기 했더라면 친구들은 내 말을 믿었을까? 스트레스가 치매의 원인은 아니다. 양심의 고통으로 늙는 것도 아니다…… 라고 우기는 말을.


생․로․병․사는 정말 오로지 유전자 탓인가. 아니 유전자 더하기 우연이라는 장치의 역할일까. 그렇게 우연히 찾아든 치매 바이러스. 우연히 비껴간 혹은 우연히 침투한 박테리아. 우연히 고꾸라진 버스. 우연히 날아든 바윗돌. 우연히 심장을 뚫은 파편.


*


유난히 문상이 겹친 주간이었다. 아스라이 먼 시간에 끊어졌던 추억들을 불러오는 초상 자리. 대형화된 장례식장은 문상객들을 서로 부딪지 않게 할 만큼 넓어서, 사람 사이에 가면 노련치 못한 나 같은 부류에게는 다행스럽다.


검은 저고리 치마의 여자들은 조금 생소했고, 그런데 처량함을 덜해주는 효과도 있었다. 평상복 위에 대충 걸친 허연 상복의 구겨지고 초라한 몰골을 조금 더 단정하게 보여준다. 향년 OO세가 주는 이상한 안도감에 문상객들은 덜 미안해하며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 바로 앞선 문상객이 ‘호상’이란 말을 써서 언짢은 일이 있었나 보다. ‘호’자와 ‘상’자는 이를테면 모순형용법에 속한다. 모든 상은 상이다. 상은 잃어버리는 것, 끝이고, 영영 이별이다. 그것이 어찌 좋을 것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상주들이 영영 고아가 되는 것인데.


친구는 일찍이 반쪽 고아가 되었고, 집에는 단출하게 어머니만 계셨다. 어머니만 계시는 것이 특별나지 않기 때문에, 그때는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어차피 아버지들은 낮 시간 동안에는 집에 계시지 않았으니까. 친구네가 특별히 더 조용한 것은 아마 적산가옥의 구조였을 것이다. 한 줄로 나란히 펼쳐진 한옥과는 다르게, 좁은 복도를 낀 여러 겹의 방들은 작은 네모들의 미로였다. 한옥에서처럼 줄줄이 햇빛 받는 툇마루가 없으니 더 침침하고, 어둑한 공기 따라 분위기도 더 가라앉았을까. 고즈넉한 집과 친구어머니의 단아한 자태는 서로 어울렸다. 우리 배달민족은 또한 백의민족이라고 책에는 쓰였지만, 우리 집에선 백의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인상은 하이얀 무명이었다. 우리들 교복의 풀기 선 칼라와 표백한 흰색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흰색. 함초롬히 옷감이 안기는 자태. 작고 고운, 무엇보다도 드문 말씨. 나는 어쩌면 그런 절간 같은 고요함에 이끌리어 친구 집엘 드나들었나 보다.


오늘 어머니를 여읜 친구는 그러니까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했다고 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 중 많은 아버지들이 태평양전쟁과 6·25전쟁에서 두 번씩이나 엄청난 손실의 수치로 변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에서 말하기로는 강제동원 피해자로 정부 당국에 신고한 사람은 22만 명 정도라 한다. 한국전쟁의 국군 피해자는 사망만 13만을 넘고, 부상과 실종 그리고 포로를 합쳐 62만 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를 보았다. 그런데 수학적 통계나 확률은 큰 의미가 없다. 두 형제가 참전하기로 똑같았던 우리 아버지와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에서 살아남고 살아남지 못했다. 체감 확률은 해당자에겐 언제나 1/2이다.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형제가 참전한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살아남았다. 당시에 젊은 장교로 사단 참모장쯤 되었던 아버지는 군사혁명 때엔 별을 달고 군사혁명위원회 위원 30명 명단에 들어갈 수 있었거나, 어느 부처의 장관이 되어 프랑스 혹은 서독을 방문, 한국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맺어 1억 마르크도 넘는 장기차관을 약속받는 성과를 올릴 수도 있었다. 실미도 사건 같은 때에 하필 책임 있는 위치에서 우왕좌왕 발표를 하다가 그날로 사임을 한다거나,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은 물론 나아가 의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총알이 하필 심장에 박히지만 않았더라면.


그리고 만일 아직까지 건강하다면……. 케네디가의 맏형 조셉 패트릭이 2차대전에서 실종된 것과 비슷하게, 형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동생은 그러니까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누구나 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하긴 대통령이 뭐 그리 좋은가. 케네디 대통령은 너무 높이 태양 가까이 날다가 짙푸른 에게해에 빠져버린 이카로스처럼 추락했다. 그러니까 살아남은 동생이 대통령이 아니라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로만 올라갔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일찍 최고에 이르러 죽느니보다는 최고 비슷한 데까지만 가고 사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마음대로만 된다면. 조금 아쉽지만, 대통령 처조카사위의 동생의 장인의 매제의 모함(?)으로 비리에 연루되어 퇴직을 해도 괜찮다. 넉넉히 평균수명을 넘기고 혹시 ‘대한민국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대회’ 같은 묘한 계제가 있다면, 대한민국이 이미 공산화 되었다고 걱정하는 원로들에 가담할 수도 있다.


아니다, 이런 예상은 너무도 픽션이다. 어쩌면 그 아버지는 휴전과 함께 그대로 군복을 벗어던지고, 상과대학 출신답게 경영으로 입신했을 것이다. 재벌총수에게 휘둘리지 않는 전문경영인의 길을 갔다. 코트라 초창기를 살려내고 본부장을 역임하면서 온 가족이 외국에 나가서 살았고…… 아니다, 내 친구로 미루어 학구적이었을 아버지는 군복을 벗자마자 계속 학문에 전념하여 경제학박사가 되어 경제학교수가 되어……


이것도 정말 아니다. 내가 지금 쓸데없이 젊은 채로 남은 많은 아버지들의 가상의 전기를 쓸 일이 아니다. 다만 인생은 냇물을 따라 사는 것인지 냇물을 건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생에 징검다리가 있는 것은 확실하고, 그 하나의 돌이 나에게는 그 어머니가 있는 집이었다. 다다미방 저 쪽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하건 별 간섭이 없으셨던 어머니. 사실 조용한 어머니가 먼저였는지, 다 반듯해 보인 언니 오빠들이 먼저였는지 모를 일이다. 동창들 가운데에서 지금도 최고로 요조숙녀가 바로 이 친구다. 해야 할 일과 하면 좋을 일을 구별하고, 그 구별에 따라 행동하는 일. 그 어려운 일에 친구는 어려운 티를 모른다. 말도 조신하고 행동도 조신하다. 그렇다고 막힌 것도 아니다. 운동도 잘 하고 노래도 잘 하고, 모르겠다, 살사나 벨리댄스를 배우지나 않는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친구는 합창단에 들고 배드민턴인가 탁구인가를 선수만큼 잘 할 수 있어도, 춤 같은 건 외면할 수도 있다. 학창시절 모범생의 연속일 텐데, 우리의 학창시절엔 지덕체라고 말은 하면서도 지와 덕에만 치중했고, 체육까지는 몰라도 무용은 조금 색안경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끼가 발동하는 것이라고. 저급할 것까진 아니나 조금 위험한 어떤 끼가. 체육이나 무용을 못하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으니, 웰빙 세대가 들으면 코웃음 칠 일이다. 내 글은 이렇게 「조사」에서 빗나가고 있다.


*


글쓰기는 무진장 어렵다. 사투리까지 사랑하게 가르쳐 주셨던 국어 선생님은 내 첫 작품을 받아 읽어보신 뒤 내게 단 한마디를 하셨다. “소설은 박완서처럼 쓰거라!” 그리고 선생님이 타계하시고 겨우 보름이 지났을까, 우연히도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5미터 거리에서 보게 되었다. 음악과 문학이 어우러진, 꽤 유명한 분의 성대한 문학인생 기념회 비슷한 자리였다. 난생 처음 그런 자리에 끼게 되어 얼핏 주눅 든 내가 저 건너 테이블에 살며시 들어와 앉는 그 얼굴을 첫눈에 알아본 것도 용했다. 소설책에 나와 있는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던 덕일까? 작은 얼굴에 작은 체격 ― 거미줄 나오듯 누에가 털실 뽑듯 끊임없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짜내는 물레. 피란길 허기 속에서 동생 오목이의 손을 놓아버린 수지의 줄기찬 저항을, 함께 사랑하고도 혼자서 나락에 떨어진 문경과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혁주의 상을…… 내 기억 속에 박힌 작품만 해도 부지기수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즈음에는 헤쳐 모이는 얼굴 얼굴들. 가까이 가 보지도 못하고 스쳤다. 박완서처럼 글쓰기.


글쓰기, 글 쓴다고 나서기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국문과 졸업도 더더구나 문창과 출신도 아닌 내가, 글쓰기공부를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에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도 가 본적 없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생경한 길에 서 있었다. 무지가 용맹이라는 증거 하나가 내 첫 장편이다. 수필집 원고를 청탁받은 그가 정색을 하고 대신에 나를 들이밀며, ‘서랍을 위해 쓴’ 내 원고들을 가리켰다. 처녀림에서 무작정 베어낸 나무들은 그러나 품종에서나 영양에서나 밀렸다. 인생의 맛을 모르는 내 척박한 토양 때문이었으리라. 그나마 이름만 걸어 놓고 개점휴업 상태. 내놓은 물건들도 별 볼일 없는 태작들이지만, 팔릴 일은 없는 것이, 누가 이만한 원고를 사겠다고 덤비겠는가. 심지어 거간꾼도 없는 것이 이 바닥이다. 하긴 내가 발이 미치지 않아서이지, 거간꾼 없는 세계나 있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


왜 그리 스산한가. 기업의 냄새가 풍기는 장례식장은. 능률적으로 ‘치르는’ 영결의 장은 그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 평생에 한두 번 겪는 일일 것인데, 어느 초상에 가보아도 사람들은 놀랍도록 역할을 잘 수행한다. 슬퍼할 때 슬퍼하고, 곡을 할 때 곡을 하고, 대개는 밥을 먹을 때 밥을 먹는다. 밤샘을 위해 화투판도 벌인다, 아주 요절한 마당이 아니라면.


한 분 떠나시고 나니까 다시 한 사람 만나게 되네요…….


문상객들 틈으로 만난 그 사람의 말이었다. 한 열흘 후 쯤 전화가 왔다. 월요일이었다. 저 시간이 좀 나는지? 왜 아니라고 잘라 말하지 않았나? 해가 기울자 겁이 났다.


저녁엔 안 되겠어요. 저녁 외출이 일상적이 아니라서요. 연결된 것만 기뻐하지요.


그렇게 문자메시지 보내놓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마음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앓았다. 흔한 감기 몸살에 흔한 소화불량이지만 정도가 심했다. 머리 속에 맴도는 말. 미리 도망친 벌(?)로 24시간 앓고 있어요……


수요일, 다시 온 전화는 옛날을 생각나게 한 단어 때문에 길어졌다. 누가 먼저였을까, 아무 것도 아닌 옛 일을 끄집어 낸 것이? 아직도 손톱을 물어뜯는지? 지금도 노래를 잘 하는지? 그런 질문들은 애초에 어리석다. 어른이 되어 여전히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노래는 한번 잘하는 사람은 계속 잘한다. 


“들어봐요, 어머니가 남기신 메모예요. 머물을래야 머물 수 없고 붓잡을래야 붓잡을 수 없는 세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 시간 천금보다 귀하도다. ” 평생 간직할 소중한 글은 또 있다고 했다. 누군가가 읽은 간단한 조사:


노인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어머님, 아무리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엿함을 보여주신 어머님, 첫 만남에서 저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어머님,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신 분이십니다.


이 아리도록 아름다운 글을 내가 들어도 되는가? 그리고는 전화 받기가 망설여졌다. 벌써 금요일이었다. 아니다, 이 사람은 상중이다. 상중이 아니면? 그것도 아니리라. 한참 시간이 흐른 듯 했지만 겨우 일주일이었다.


거짓말 실토하는 게 낫겠어요. 다음날 전화 알고서 선뜻 못 받은 건 빚이 늘 것만 같아서요.


메시지가 원래 더 편하다. 상대와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서. 다시 금요일, 비슷한 번호라서 잘못 알고 받은 전화. 그 사람은 정말로 봄나들이 권유를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까? 어떻게 그런? 전화를 받고나서 곧 바로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열을 동반한 몸살감기로 변했다. 그것은 바이러스성이었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


현대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덕이 아닌 풍조다. 이를테면, 독서 중에 ‘웃기는’ 숫자를 보았다. 현대 사회에서 부부가 혹은 남녀가 사랑에 빠져있는 기간은 평균 3년하고 167일 2시간이란다. 그것도 도시 중심부 3,40대 남녀는 이 수치를 낮추지만, 다행스레 나이든 시골 사람들이 평균치를 높이는 데 기여해주고 있단다. 물론 전문서적이 아닌 ‘소설책’에서 읽은 소리이니 신빙성 있는 자료는 아니다. 소설은 신빙성을 담보하고도 남을 위인 ― 예컨대 미국의 무시무시한 대학의 교수이자 무시무시한 학력의 소유자 ― 이 쓰더라도 신빙성과는 상관이 없다. 이름 하여 픽션이니까. 그래서 소설책에서는 융의 할아버지가 괴테의 손자라나 뭐라나 하는 대목이 나오더라도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괴테는 손자 대에서 확실하게 후손이 단절되었으니까. (그가 그렇다고 확인해주었다.)


한 주인공은 “소설이란 인생처럼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작가의 자만심을 죄는 말의 반죽”일 뿐이라고, “요설”뿐이거나.


내 주인공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할까? 우선 내 주인공은 박완서의 주인공들처럼 자연스러운 이름도 갖지 못한다. 아직 ‘ㅂ’자 첫 획에도 못 미친다. 내 소설은 며칠째 방치된다. 그가 노트북을 점령한 것이 변명으로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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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리당의 당나귀, 귄터 드 브로윈, 동베를린 1968년.

자서전적 분위기로 도서관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랑, 여성, 결혼, 도덕, 풍속, 현대, 동베를린이 결부된 소설로, 통상적인 삼각관계의 구도 속에서 실제로는 순응 메커니즘, 허위, 모순들의 가면을 벗기는 작업을 시도한다. ‘뷔리당의 당나귀’를 원용하여, 두 여자 사이에서 동일하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설명해보려는 시도 가운데, 60년대에 이혼율이 세계 최고였던 사생활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개인적 불행과 소외적 상황을 극복하게 해준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왜 개인들은 사적인 행복을 방해받고 있는가? 이러한 주제는 상당히 정치적일 수 있다. 어쨌거나 인간은 당나귀보다는 조금 윗수이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필연에 지배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뷔리당이 말한 당나귀는 극심한 기아와 갈증에 허덕이다가 굶어죽는다. 귀리와 물통을 곁에 두고서도 말이다. 그 철학자의 설명은 하필 귀리와 물통 사이 한가운데에 당나귀가 위치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먹고 싶은 욕망과 마시고 싶은 욕망이 똑같은 크기일 경우, 당나귀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나귀가 필연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데, 인간은 자유의지의 덕으로 제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물부터 먹든지 귀리부터 먹든지 할 수 있다.


자유의지는 ‘원인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필연’에서의 해방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는 원인도 동기도 없는 성격에서 발원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어떤 행위를 수행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동기도 없고 불합리하기 그지없는 행위를 수행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노트북에 그가 쓰고 있던 파일이 떠있다. 갑자기 그를 방해하고 싶다. 나는 그럴 때 문자메시지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한다. 한달에 100건까지는 무료이고, 무엇보다 저장이 된다. 


SOS: “인간과 동물을 구분지어 주는 건 다름 아닌 동기 없는 행위”라고 말한 게 지드?


맞아, 『잘못 묶인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인들 해석에서 자유롭겠나? 신들에게서 인류에게 불을 훔쳐다 준 공적이 기독교 세상 중세엔 철저히 잊혀졌다가, 차츰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이라거나 일체의 권위에 맞서 항거하는 양심의 상징으로 부활되더니, 루소쯤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한 선구자로 해석된 것이지. 그러나 진보가 또 하나의 미망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여기 지드처럼. 진보가 필연이라면, 필연에서 해방된 자유의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여전히 동기도 없고 불합리한 행동을 자행할 일 아닌가.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 그는 글 숨이 길어서 E메일을 택한다.


한 세월 지나서 카뮈가 “동기 없는 행위”로서의 살인을 제시한 건 처음이 아니었네?


처음이라니. (가)설엔 처음도 끝도 없어. 언어를 소유한 태초의 인간들이 다 말해버렸거든. 누군가 그랬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캄파넬라? 태양 아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은 없다고, 보르헤스? 아니 이미 벌써 전도서에 있었던 말이야. 1장 9절:  이미 있었던 것이 앞으로 있을 것이며 이미 된 것이 앞으로도 될 것이니, 해 아래 새 것이 없도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지. 그러니까 지드와 달리 카뮈는 자유의지보다는 부조리 개념으로 설명한 것. 부조리 극복의 유일한 길은 간단없는 반항이라고. 오늘은 끝.

추신: ‘뷔리당의 당나귀’도 뷔리당이 처음이 아냐. 벌써 아리스토텔레스와 단테도 언급했던 개념.


그가 바쁘구나. 아님 피곤했을까? 그런데 간단없는 반항? 반응이 아니고 반항? 넌 매사에 행동이 아닌 반응뿐이라고 비난당하지. 반응에서 단 한 걸음 더 나가 행동하기에도 저어하는 주제에 반항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그런데 반항하는 인간이 우수하다 그건 맞는 말인가? 반응에 그치는 것이 저열한 인격이라면, 그러니까 나는 당나귀 수준인가?


참, 당나귀는 노새와 버새 사이에서 어떤 반응일까? 나중에 말해줘.


웬일로 계속 당나귀 타령! 헌데 너, 필요 없는 걱정이구나.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암말이 당나귀 새끼를 낳긴 쉬운지 노새는 번성했지만, 암탕나귀가 말 새끼를 낳자면 난산이어서인지 버새는 드물거든. 그러니까 그건 이론적으로 기 싸움이다. 물이냐 귀리냐? 노새냐 버새냐? 아니, 노새․버새 틀은 순 네 상상이구나. 아내냐 연인이냐, 그렇게 묻고 싶은 것이지? 당나귀보다 월등히 지능이 높은 인간은 ― 도이치 말에서는 답답한 바보 멍청이를 당나귀라 그러는 것만 봐도 당나귀가 멍청한 것은 사실일 것이야. ―  ‘자유의지의 이름으로’ 두 유혹 사이에서 굶어죽는 대신 교묘히 둘 다를 누리려 들지.


연인과 아내 사이에서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죽는 인간은 더 이상 없다. 3년은커녕 일년도 못가서 거덜나는 경우가 희귀한 일도 아니다. 습관을 가치와 혼동하여 어정쩡 결혼에 이른, 그 나름대로 지적인 남녀가 있다고 치자! 누군들 결혼이 가치에 속한다고 확신하기까지 섣불리 자신을 결혼에 내놓겠는가.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춘 두 단독자의 삶. 그것도 영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라는 친절. 남편이나 아내는 아내나 남편의 결점 때문에 연인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장 에르프처럼 한 남편이 아름답고 경제적으로 배경을 지닌, 게다가 합당한 일에 충실한, 개성은 없지만 그냥 좋은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고 치자! 부족함이 없는 것도 부족함이다. 그에겐 프롤레타리아 출신으로 지적으로 단호하고 개성 있고 확고한 견해를 지닌 연인이면 족하다. 뭔가 정신적 에너지를 북돋우는 자극이면 그만이다. 브로더 양은 젊고 지적이다. 단호한 개성의 매력에 불안도 괴팍함도 멋스럽다, 잠시 동안. 그리고 자극성 향취의 단물은 쉽게 고갈난다. 무맛이라도 풍성한 온수에 푹 담기고 싶을 때 남편은 슬그머니 아내를 찾는 것이다.


그의 말투가 내게 향하는 2인칭이 아니고 3인칭을 향하기 시작하면 나는 침묵해야 한다. 이제 그의 장광설 논리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논리를 직업으로 산다. 30쪽 되는 작품에서 뭔가를 풀어내어 300쪽 가까운 책을 쓰기도 한다.


나는 다른 생각에 골몰한다.


4월이 산 너머로 지고 있네요. 실제였나? 꿈결 같이 짧았던 시간이 함께 지네요.


이 메시지를 그 사람에게 보내는가 아닌가, 문제는 그 자유의지이다. 휴대전화 멜로디와 함께 번호가 뜬다. 아아~ 여전히 조용한 시각 다시 소리가 부른다. 그 번호. 폴더를 열어본다. 부재중 전화, [화]10:39A, [화]12:05P.


전화 - 집어 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5월에도 6월에도 아름다운 꽃들과 즐겁게!


부재중 전화, [수]12:26P, [수]6:44P. 계속 전화를 받지 않으려면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야 하나? 


*


그 사이 가벼운 지인과 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


죄송. 4월의 초대장을 건너뛰었었죠. 죽어라 일해야 했거든요.


‘죽어라 일’하는 일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이었기를 바랍니다. 아니고 정말 죽어라 싫은 일이라면 미련 없이 때려치워야겠지요.


그런데 시만 쓰시는 게 아니고 노래를 잘하신다는 것을 몰랐네요. 저는 무반주로 노래하는 사람에게 무지 약한데, 해서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쬐끔 휘둘리고 있는데…….


*


휘둘린다고? 너 요새 휘둘린다는 단어를 쓰는 거냐?


그가 당장에 태클을 걸어왔다. 놀랐나 보다, 토막 글로 나무라는 것이. 나는 모처럼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무엇이건 죽어라 사랑하는 일을 북돋아 주는 메일 탓이었는지 용기가 났다. 나는 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어쩌다가 완강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도 도리가 없음을 안다. 내 위에 있건 내 옆에 있건, 내 안에 있건, 나 보다 우선하는 건 없으리라.  


미안해요. 전화 받기가 뭘까 조금 부끄러운 느낌? 암튼 어려워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잘 지내요! 그냥! ― 그것이 내 심정이다. 감정이다. 감성이 크게 발동할 때면 이성은 숨죽인다. 때를 아는 것도 이성이다. 그는 이성이다. 그는 나를 내버려 두어야 할 순간을 안다. 나는 그에게 노트북을 내어주지 않고 내 젊은 날에 대한 「조사」를 쓴다.


잘 가라,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인생은 비록  만나는 지점이 없다는 점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먼데나마 출발점으로 되돌아간다. 땅에서 땅으로. 반환점을 훨씬 넘기고서야 네 청춘에 때늦은 조사를 쓰는구나. 머리는 허접 쓰레기 지식욕으로 천만근 무거웠고, 가슴은 송곳 자존심으로 외로웠던 너! 생각으로 들끓는 네 머리는 생각한 것과 말한 것을, 생각한 것과 말한 것과 행동한 것을 구별 못했구나. 반응은 행동이 아니라서 삼갔고, 행동은 행동이라서 삼갔다. 실 인생에 뛰어들어 본 적이 없었던 너. 못 이룰 꿈을 꾸지도 않았고, 아니, 아예 꿈을 몰랐구나. 못 이룰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시작도 하지 않는 비겁함의 덕으로. 두 개의 가치를 좆아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도 없었다.


잘 가라, 달지도 쓰지도 않았던, 맹물처럼 무맛의 청춘이여! 시리거나 뜨겁지도 않았던, 치열하지도 아리지도 않았던 청춘이여!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아! 청춘도 아니었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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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는 말처럼 행복한 주말되시길……


산인데요. 만산의 꽃들이 절규하듯 모양을 뽐내고 싱그런 연초록이 색상을 자랑하는 기를 보냅니다.


고맙게도 위로는 며칠 사이로 예상치 않았던 방향에서 왔다. 내 친구가 아니라 그의 친구에게서.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라, 그렇게 산뜻한 오늘이면 되나보다. 열린 창으로 어디선가 초록빛 기운이 밀려든다. 청춘에 대한 「조사」라니, 우선 관습에도 어긋나고 뒤돌아보는 관점 이란 비생산적이다. 어쩌나, 그런데 오늘의 나는 기억의 총계다. 망각은 나를 부인함이다. 하지만 생산이 최고의 가치인 이 세상을 살자면, 이번에는 픽션에 들리어 막무가내인 내가 숨을 죽이고 사라질 차례다. 이성적인 그에게 온 생을 양보하면 된다. 인간이라면, 감성과 이성 한가운데서 당나귀처럼 말라죽을 일이 없다. 숨 쉬고 밥 먹고 태양 아래로 나가자. 태양 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이 없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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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