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4. 7. 6. 16:19

 

 

상품이 된 인간

 

화장실 변기통에 앉아서

콩팥을 팝니다 전화주세요,를 보다가

나도 내 장기를 팔아 노후를 준비하듯

우리나라를 조금씩 떼어서 해외로 수출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될 것이다

[……]

변기통의 물을 내리고

씩씩하게 지퍼를 올리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으로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면

화장실 벽에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제일 싼 血 팝니다,

자본주의 만세!

 

화장실이 아니라 미안하게도 쾌적한 책상에 앉아서 시를 읽었다. 1970년생 시인의 절규였다. 그들은 젊은 날 왜 아름다운 서정시를 쓰지 않는가, 쓸 수 없는가, 가슴 아파하면서 읽었다.

*

단기 4278년 여름 - 서기 1945년이겠지만 그때는 아직 단기였다 - 세상이 새로이 시작되었다. 세계사에서도 현대의 시작을 제2차세계대전의 종말로 보기도 하니 말이다. 엄청난 심적 물적 혼란에서 허우적대던 어느 날 하늘에서 해방이 떨어지고, 배달민족은 자유로운 대한민국(임정)의 국민이 되었다.

정말 새 세상이 열렸다. 원수의 왜놈 쪽발이가 가더니 기독교 천사 날개에 실려 서양 문물이 밀려왔다. 아, 그리웠던 자유. 신체의, 사상의, 표현의, 언론의, 양심의, 결사의, 무엇보다 종교의 자유……. 자유연애, 자유부인, 자유당, 자유주의……. ‘자유’자가 붙으면 무엇이든지 최선의 가치였다. 그렇게 자유를 마시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 젊은이들에게 자유를 제대로 넘겨주었는가.

자유라는 개념을 우리는 미국에서 배웠다. 케케묵은 삼강오륜이 낙하하는 속도에 신바람이 났다. 소위 아메리카정신은 청교도정신과 실용주의 그리고 개척정신을 말한다. 칼뱅주의를 신봉하는 개신교 신앙과 신의 소명이라는 직업에 따라 성실과 엄격함으로 임하는 경제관은 자본주의를 지원한다. 실용주의는 현실주의, 합리주의, 능력중심을 토대로 해서, 대중적인 것, 편한 것, 실속 있는 것으로 문화코드화 되어 현대 대중사회에 실용적인 ‘글로벌’ 문화로서 전 세계로 확산일로에 있다. 그 둘을 합한 화합물이 개척정신이다. 종교적 열정의 현실체인 미국중심 사고는 영광의 미국과 신의 소명을 받은 미국인으로서의 투지로 연결되어 서부를 개척하고 인디언을 몰아냈으며, 그 후로도 세계 도처로 무한정 진출하는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온 세상 저열한 국가들은 미국을 배워나가야 했다.

그렇게 해서 실용주의 철학, 특히 실용주의 교육이 우리나라 ‘새 교육’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서울대 총장 장이욱,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교육계 원로 오천석 등이 존 듀이의 실용주의 교육사상을 들여왔고,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과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교육의 가치는 작용의 능력, 즉 사용된 결과에 나타나는 유효성으로 매김 되었다.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은 결과로서 판단된다고, 오늘날 결과중심주의의 비극이 잉태된 순간이었다. 도덕 교과서에서는 ‘결과보다는 과정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실제 교육은 ‘모로 가도 서울(대)만 가면 된다.’고 가르쳐왔다. 사람들은 서울에 서울대에 최소한 그 비슷한 무게의 대학에 가서 성공했다, 돈과 권력의 합작 세상에서. 신화적으로 성공한 모두를 보라, 게으름부리지 않고 노력하면 다 그렇게 성공한다, 라고 믿고 살라고 가르치고 배웠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다. 끝나지 않은, 않을, 가난과 엄청난 자살률은 누구의 말대로 ‘민족적 게으름’ 때문만도, 열악한 환경 때문만도 아니라는 것을. 최고의 대학 카이스트에서 줄 이은 학생들과 교수의 자살이라는 비극은 시스템의 죄였다고. 인간을 자원으로만 간주한 결과중심주의의 경쟁시스템이 불러온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독일어에서는 경쟁사회라는 단어를 ‘팔꿈치사회’라고 쓴다. 팔꿈치로 양 옆 사람을 제치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인 사회에서, 정직하게 말하자면 승자가 누리는 모든 것은 수많은 ‘루저’들이 제 못나서(?) 누리지 못한 몫이 이동된 것들이다.

최근의 통계들은 믿을 수 없는 수치를 믿으라고 한다. 상위 1% 부자들이 전 세계 부의 46%를, 상위 10% 부자들이 86%를 보유하고 있다.(크레디트스위스) 우리나라도 상위 1%인 50만 명이 전체 토지의 55.2%를 소유하고 있다.(국토교통부) 세계 최상위 부자 85명이 소유한 부가 소득 하위 절반에 달하는 35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다. 세계 부자 상위 1%의 재산은 전 세계 최빈층 절반의 재산을 더한 것보다 무려 65배나 많은 규모다.(옥스팸)

이 수치들은 우리를 슬프다 못해 절망케 한다. 절망타 못해 돌게 만든다. 이 탐욕이라는 이름의 바윗돌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윗돌은 무거운 채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머피의 법칙은 절대적이다. 멈출 수 있는 도를 넘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탐욕의 결과는 행복이 아닌 그 정반대의 참사임을. 진도 앞바다의 비극은 무대극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어느 대학교 교수들은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을 ‘물질적 탐욕에 젖은 나머지 생명의 가치를 내팽개친 황금만능주의, 편법과 탈법의 관행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온 결과중심주의에 있음’이라고 선언했다. 우리 사회를 ‘삶과 생명에 대한 철학 및 성찰이 빈곤한 반인간적 사회’라고 규정했다. 왜? 경쟁적으로 한 줄 서기만을 가르쳐왔으니까. 우리가 가르쳐 낸 것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적자원’, 나아가서 품질 좋은 ‘상품’이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설마 ‘상품 인간’이 성장하고 있었다니! 사실이었다.

자유는 처음 황홀하게 맞이하던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단면에 걸쳐 자유와 윤리, 개인과 국가 사이의 팽팽한 대립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밀은 『자유론』(1859)에서 ‘다수의 횡포’에 의한 ‘비주류 소수’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경고했다. 다수가 소수에게 여론과 관습을 내세워 ‘대세에 순종’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51%의 득표율로 오불관 100% 전횡을 휘두를 수 있는 양당 구도에서의 대통령 권한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와 연대감이란 소수에 대한 이해’(하인리히 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절대적 자유를 누려야 하는 개인 또는 단체의 자유라 하더라도, 그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영향을 주는 행위에 한해서는 사회가 간섭할 수 있어야 한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라면 더더욱 사회와 국가의 간섭이, 규제가 있어야 한다.

화두는 어쩔 수 없이 - 아니 당연히 - 다시 참사로 돌아간다. 1,000명이 넘는 재외학자들도 참담한 성명을 발표했고, 제목은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울리는 경종’이고, 부제는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 문제’라고 적시했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국정철학의 전환이 없이 새로운 대한민국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국가 - 살아있는 생명체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다른 생명을 소모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운명을 부여 받았고, 자급자족보다는 공동체 속에서 그 수고로움이나 위험부담이 줄어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인간은 국가사회를 만들어냈다. 국가는 부여받은 권능으로 욕구의 조정이라는 어려운 역할을 해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어렵사리 끼어든 세계경제 속에서 세계적인 불황이 닥쳤고, 때맞춰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세계 경제가 자본주의로 통합되면서 국제적 경쟁이 가열되자 복지국가들도 흔들렸다. 이때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비대해진 재정적자를 비판하면서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에 반대했다. 시장의 기능과 민간(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경제적 자유방임주의가 세력을 얻은 것이다.

곧 그 역기능이 들어났다.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그리고 재산권을 중시하다보니, 개인과 기업의 무한대의 자유경쟁이 보장되는 가운데, 빈부 격차는 날로 커갔다.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이라는 이른바 세계화나 자유화라는 미명의 예컨대 우루과이라운드 같은 다자간 협상이란 곧 시장개방의 압력이었고, 결과적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개인 또한 무한대의 경쟁이라는 정글의 법칙에 내던져진 상태에선 적나라한 투쟁만이 살 길이 되었다. 사람 가치는 땅으로 땅으로 떨어져가더니, 아예 상품이 되고 말았다.

‘일단 내가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보니 평소 과잉보호가 있어서…….’ 1990년쯤에 태어났을 한 스타급 젊은이가 공항에서 팬에 대한 불손한 매너로 비난을 받자 반성문과 함께 내놓은 변명이 그랬다. 쭉정이들이야 공손하겠지만 주력 상품이다 보니…… 그런 뜻은 제발 아닐 것이다. 인간이 상품이라는 인식에는 애어른 구별이 없다. 지난 지자체선거에서 중후한 정치인 한 사람도 자당의 후보를 가리켜 ‘그 이상 더 좋은 상품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데일리언 5.27.) ‘상품 인간’은 명품이 되어야만 대접을 받는다. 시장만능주의자들에게 노동과 노동자는 상품생산에 과정으로 참여해있는 부품에 불과하다. 온전한 상품이 못된 불량품 인간은 장기라도 부품으로 내다 팔아야 산다.

이 살인적 경쟁사회에서 인류에게 미래가 있을까? 경쟁은 이익과 승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상호배타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것이기 때문에 강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 하지만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것은 물질과 대상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필요와 욕망의 경계를 망각한 인식의 오류 때문이다. 가치의 혼돈 때문이다. 이제도 우리는 젊은이들을 비싼 상품이 되기 위해서 공부만하라고 내몰아야 하는가?

다석 유영모 선생이 한글로 풀어쓴 노자 『늙은이』 20장 첫 말이 떠오른다. ‘써먹기 부터하려는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을 것이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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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프리즘>에 기고

 

 


 

다른 그러나 같은 PEN 문인들

                                                  2014.6.28.~29.

                               제16회 영호남문학인교류에 다녀와서

 

 

열여섯 번 째 영호남문학인교류 한마당 -

어언 대여섯 번 참가하는 행사이지만, 이번엔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부터 스멀거리는 것은 기대감이 아니라 아랫입술이었다. 출발 전날부터 흉하게 부풀어 오른 입술은 이 부산 나들이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으리라.

 

처음 이 교류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 1999년이라는데, 그때 무슨 심정에서 이런 행사를 시작한 것일까?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대가 열렸다고는 하나 신한국당과 민주당 합당으로 태어난 한나라당의 견제 속에 편치 않는 세월 아니었던가. 어쩌면 금강산 관광의 시작으로 남북문제가 더 절실하게 다가온 그때, 요원한 남북통일에 앞서 가능한 동서화합이 더욱 그리웠을까? 아무튼 최소한의 이해의 숨통을 트는 일을 문학이 문학인이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이 밑뿌리였을 것이다.

 

이번에도 틀림없이 PEN부산의 회원들과 문인들이 우리를 기다려 줄 것이었다. 6월 28일 토요일 정오가 지나 모인 참가자들을 확인하고 출발 신호를 날렸다. 귀찮을 것을 알고서도 주민등록번호며 주소를 수합하여 여행자보험에도 들었고, 걱정할 일은 없었다. 열성 회원들의 열과 성으로 녹두시루떡도 찰밥도 노랗게 익은 참외도 실렸다. 수육에 머리고기에 결정적으로 알싸한 홍어무침까지 실은 버스는 주암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대충하고 나왔을 참가자들의 기운을 돋우었다. 마침 곡성에서 나오는 소설가 한 분도 함께 합류하여 간식을 즐기고 버스에 오르니 서른다섯 명 예정인원이 꽉 찼다. 늘 그러면서도 외지에 가면 길은 서툴러 해운대 학생수련원을 학생수련관으로 찍은 내비게이션 때문에 엉뚱한 곳에 도착하여 PEN부산 회원들을 오래 지치게 했다.

 

늦었지만 서둘러 상견례를 치른다. 밥보다 금강산이 먼저다. 환영사, 답사, 축사, 축사……. 기념품 교환. 무엇보다 부산의 ‘거리 詩’ 축제에 참여했던 PEN광주 회원들의 시화작품을 전달받으면서 문인으로서의 동질성 그 이상의 정을 느꼈다. 부산의 시 축제엔 늘 광주의 시인들을 초청하고 있고, 매년 발행되는 『부산펜문학』과 『국제펜광주』에는 상호 문학작품들을 싣는다. 영어로 쓰는 영미문학도 하나로 이해하고 강의하는데, 하물며 같은 한글로 쓰는 영남문학과 호남문학이 얼마나 다를 것인가 말이다. 오늘 <희곡의 이해>를 강의한 김영관 교수(PEN광주 명예회장)도, <김수영 시인과의 추억>을 들려 준 PEN부산의 시인 김철 교수도 한 올만큼도 동과 서를 나누어 말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올해의 행사는 무엇을 막론하고 편히 즐길 수 없는 마음이다. 너도 나도 아픈 가슴으로 그것을 느낀다. 외람된 말이지만 답사에서 오늘을 사는, 살아야 할 인연을 논했다.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유순’ 그 40리 평방의 바위를 1,000년에 한 번 떨어지는 물방울이 뚫어내는 시간이 ‘겁’이라는데, 법륜 스님 말씀 가운데, 지구 안의 같은 나라에서 동시에 태어나려면 1,000겁의 인연이, 하루 정도 같은 일을 하려면 2,000겁의 인연이 있는 것이라 하더이다. 그런 우리가 만났으니, 통한의 4월, 달력을 넘겨 찢고 또 찢어도 찢어도 아픈 봄을 두고도, 한숨을 내쉬다가 깜빡 들숨을 들이쉼으로써 살기로 결정해버렸으니 살기로 합시다. 그 비슷한 너스레는 편한 시간들을 갖자는 부탁의 다른 변형이었다.

우리는 함께 식판을 들고 섞이어 앉아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니 사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술이 빠지랴. 술술 넘어가는 술에 술 못하는 모범생들은 분위기를 마신다. 이어지는 멋진 자작시 낭송들, 아름다운 노래도, 다른 장끼자랑도 빠질 수 없다. 전문 음악인을 능가하는 기타리스트를 내놓는 부산, 뒤질세라 전문 성악가를 놀라게 할 가수를 내세우는 광주……. 그렇게 따뜻한 저녁시간이 흐르고 흐르고…….

 

송정, 밤이 내려앉은 검은 바닷가에선 바다가 없어 늘 바다를 그리는 광주사람도, 바다에 물린 부산사람도 구별이 없었다. 젖은 모래 위에 저녁상에서 남겨온 비닐봉지 속의 안주도, 이름 할 것 없이 섞인, 모래까지 섞여 마시는 술도 달콤하기만 했다. 남자가 부르는 이미자도 명가수의 소프라노도 바리톤도 환영이었다. 기계음에서 해방되어, 파도 소리 반주더러도 ‘시끄러봐’라고 우쭐대면서.

 

날이 밝자 짙은 바다내음의 미역국에 도시락반찬이 울컥 생각나는 계란말이에 아침을 먹고 ‘공부’를 떠났다. 친히, 만기침람의 의미가 아니라 그저 넘치는 친절함으로 광주 버스에 오른 부산 회장은 아뿔싸 안내원이 된다.

 

욜로 가입시더, 욜로 욜로.

부산 회장님이 아저씨, 기사님 하다가 기사 선생님까지를 들먹이며 안내해 간 곳은 수많은 멋진 다리들을 지나 감천문화마을과 부산민주공원이었다.

 

 

감천문화마을 -

얼마나 대단한 문화가 숨 쉬고 있는 곳일까. 부러움 반 호기심 반 찾아간 곳에는 문화가 아니라 아픔이 있었다. 그곳이 간직한 역사는 아픔이었다. 관광 상품으로 알록달록 포장되어 있을지라도 베어나는 것은 슬픔이었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에 빼곡히 늘어선 계단식 집단거주지. 산비탈을 이용하여 절대로 뒷집에 해가 가리지 않도록 지어진 주택들에는 굳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 벌써 한 세기 전 1918년 조철제 선생이 증산사상을 기반으로 시작한 태극도 신자들 수천 명이 고개 주변에 집단촌을 이루었던 것이 시발이라고 하니 특수한 종교심에서 서로의 해님을 배려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살아 있는 마을이 전시장이 되었다는 생각은 마음 한편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시작부터 특이한 모습들이 외지인을 반긴다. 전영진 작가가 올려놓은 <사람 그리고 새>라는 작품은 추녀 끝에 새들인지 사람들인지 고개를 내밀고 앉아있다. 그래, 사람도 때론 날고 싶어……. 주민들은 개성 있는 색채감각으로 집단장을 했고, 멀리서 보면 색종이로 접었거나 고무지우개를 알록달록 맞춰서 가지런히 세워둔 집에서 산다. 가까이에서 보면 빨래 줄에 널린 빨래들 하며 배시시 살아있는 화분들이 삶을 말해준다. 용두산과 도심이며 항구가 다 내려다보이는 <하늘머리> 전망대에 오르니, 아, 따가운 햇살에도 상쾌한 바람이 맞아준다. <한지의 집>에서는 수공예품을 사느라 한눈을 팔고. <평화의 집> 등의 이름을 가진 골목길 프로젝트를 따라 가노라면 몸을 틀어야 통과할 수 있는 길이, 누군가는 정말 통과할 수 없을 길이 나온다. 전체가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 때문에 PEN부산 사무국장은 아예 혼자서는 다니지 마라, 끝까지 가보려고 하지마라, 미리 경고를 준다.

 

이어진 부산민주공원 -

공원 입구 비스듬한 잔디광장에는 ‘민족통일대장부’와 ‘민족평화여장부’라는 이름의 장승들이 서있다. 이 장승은 진도군민들이 부산시민의 민주정신을 기리며 만들어 보낸 것이라 하니, 영호남 교류는 여기에도 있구나……. 흐뭇한 마음으로 <추모조형물>을 보러간다. 50미터가 넘는 대형 조형물로, 민주항쟁의 연속성과 현재성을 부각하는 상징물이자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열사들을 기리며 분향하는 곳이란다. 한참을 더 올라 <민주횃불>이 있는 곳, 그곳엔 수많은 반사 재질의 작디작은 조각들을 내부에 넣어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이름 없는 별들을 형상화 해냈다고 한다.

 

거짓말. 거기엔 가지 못했다. 설명만 들었을 뿐으로, 몇몇은 ‘분수’를 지키기로 했다. 초등학교에서 산수를 배웠으면 ‘분수’를 아는 것이 사람 도리라고 쿡쿡 핑계대면서. 게까지 올라갈 여력이 없는 몇 회원들을 벗 삼아 힘들다고 아우성인 심장을 쉬게 했다. 일행은 한참 만에 내려왔고, 살며시 음과 식이 그리워질 즈음 버스는 밥집으로 향했다.

 

헤어지는 마당, 건배사 - 초청 측 PEN부산 회장의 건배사에 이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긴장을 풀자고 우스개를 했다. 열여섯 해면 남자 여자가 만나서 부부가 되었다가도 못살고 헤어지기도 하는 세월인데, 우리는 부디 이혼 생각 말고 끝까지 가봅시다. 갈 데까지 가입시더. 양 도시 문인들의 우정을, 행복을, 무엇보다 문운을…… 여러 건배사가 이어지면서 <초원의 집> 점심이 무르익어 갔다. 실제로 오리고기가 익고 있었다. 그곳은 텔레비전에 ‘대통령들이 다녀간 집’ 소개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소개되었다고 한다. 몇몇은 깡소주를 노무현식 건배를 하자고 확 비우고 잔을 머리 위로 털기도 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했는지는 아무도 잘 알지 못하면서. 낮술에 취하면 어쩌려고?

 

어이없는 사족 하나.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어떤 휴게소에서 회원들을 놓쳤다. 휴식 후 5분 정도를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고, 가벼운 식곤증으로 눈을 감던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깼다. 잠시 후 버스를 따라잡은 검은 차에서 내린 둘은 별 계면쩍음도 없이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금의환향하는 월드컵 선수라도 되는 양 박수로 환영을 하면서 갑작스레 하나가 되어 깔깔댔다. 사고는 전화위복이 되어 우리는 느닷없는 판소리공부를 하게 되었다. 임방울의 <쑥대머리>를 기가 막히게, 임방울보다도 더 임방울 같은 목청으로 내놓는 ‘김싸부’ 덕택이었다. 쑥대머리 구신형용 / 적막 옥방으 찬 자리어 /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거기까지만. 헤어질 시간이 다 되도록 우리는 배웠다, 불렀다. 쑥대머리 구신형용……. 내년에 우리가 부산 문인들을 초청하는 자리에서 이 구절을 합창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우리가 영호남 화합에 눈곱만치라도 기여했을까? 의로운 질문은 접어두고, 보고지고 보고지고……. 아련히 머릿속에서 도돌이표마냥 되풀이되는 가락은 우리가 정녕 남도사람임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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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 기고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4. 7. 6. 16:14

 제16회 영호남 문학인 교류 한마당 (부산, 2014.6.28.~29.)

                  by  PEN광주 박판석 부회장님, PEN부산 이영수 시인님

 

 

 

 

 

 

 

 

 

 

 

 

 

 

 

 

 

 

 

 

 

 

 

Posted by 서용좌
강연-강좌2014. 7. 6. 16:02

인류의 지적 진화와 사회의 발전 단계

무등도서관 201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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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인간에게서 물질에게로 - 실증주의에서 신자유주의까지

 

1. 무신론의 탄생

 

언어는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다. 개념들 또한 인간이 만들었다. ‘신’이란 낱말도 우리 인간이 만들었다. 그러면 이 낱말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사람들이 ‘신’ 또는 ‘신들’이라는 말로 누구를 또는 무엇을 뜻하였는가?

신은 언제나 인간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마침내 르네상스 인문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인간이 주인이 되는 듯한 착각은 착각이었다. 이성은 이성해방의 단계에서도 이신론적인 신의 증명을 시도했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 도 영혼이 특별한 실체라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이신론자였고, 앙시앵레짐 타도의 사상적 무기가 된 『백과전서』(1751~1780)의 편집자 디드로(Denis Dideror, 1713~84)의 유물론적 무신론적 경향은 위험시 배척되었다.

인간 이성이 고개를 들고 신의 역사하심을 회의하기 시작할 때조차 신의 존재는 위대했고 그럴수록 존재 증명이 중요했다. 세계는 무수히 많은 불가분의 ‘단자(monade)’로 구성된다고 한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도 예외는 아니었다. 악의 존재도 세계 전체의 선한 질서를 위해 필요한 전제라고 설명하는 그의 변신론에 따르면 도덕적 세계질서와 이 세계질서를 보장 하는 선한 신이 반드시 존재한다. 현세는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의 최고의 세계’로 간주되었다. 이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의 최고의 세계’는 곧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베클린(Wilhelm Ludwig von Wekhrlin, 1739~1792)이 쓴 「에담치즈의 8층에 사는 진드기의 독백」(1784)은 웃음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 치즈의 향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맛은 낙원과 같구나! 얼마나 영양가 있는 음식인가! 내 집은 편안하기도 하다! 헤아릴 수 없이 온통 먹을 것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여! 치즈를 만드신 그분, 우리 진드기를 위해 치즈를 창조하신 그분은 얼마나 전능하고 훌륭하신지! 우리의 존재는 그분의 의지요. 우리의 행복이 그분의 목적이다. […] 더욱이 이 치즈 세계는 가능한 한 최상의 세계다(치즈 주인은 치즈가 너무 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증명하기는 쉽다. 창조주가 더 좋은 치즈를 만들 수 있었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그것을 만드셨을 테니까. 어째서 창조주께서 완전한 것을 뒤로 미루고 평범한 것을 만드셨겠는가! […]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진드기는 한 예일 뿐이다. 모든 생물이 철학을 한다고 가정하면, 그들 모두가 라이프니치 철학의 추종자가 될 것이다. 사자는 사슴을 만들어 준 창조주께 감사하고, 개구리는 메뚜기를 주신 것을 감사할 것이다. 모기는 심지어 인간을 주신 것을 감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생물을 위해서 이 세계가 가능한 한 최선의 것일까? 분명히 모두를 위해서이다. 모든 생물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 세계는 특별히 인간이거나 어떤 생물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앞 강의에서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도와 육체적 약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불과 지능을 마련했다는 신화를 들었다. 현대적 해석은 인간을 ‘결함이 있는 존재’로 이해하며, 인간의 기술적, 조직적 능력들을 인체의 열등함에 대한 보완으로 파악한다. 결론은 이 세상의 생명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다른 생명을 소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낙원에서라면 생계유지를 위하여 이기주의자가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낙원은 없다.

 

고대와 중세의 신앙

 

돌이켜 보면 그리스 철학자들은 올림포스의 신들을 무시하면서 그들을 인간의 작품이라고 선언하였다. 쾌락주의와 견유학파처럼 전혀 다른 행복론에서도 철저히 현세의 삶을 극복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에피쿠로스학파가 말하는 ‘아타락시아(ataraxia, 쾌락)’나 스토아 철학자들이 소망했던 ‘아파테이아(apatheia, 냉담)’의 상태도 현세의 삶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한 몰두였다.

중세의 중심사상은 현세의 삶에 대한 염려가 아닌 의 존재였다. 최고의 입법자인 신이 존재하므로 도덕적 세계질서도 마땅히 존재한다. 이런 생각이 확고했을 때 인간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은 인간의 모든 노고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불행들과 마지막에 치러야할 죽음이 그 너머 내세에 있는 ‘영원한 삶’, 다시 말해서 모든 근심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통해서 보상된다고 믿음으로써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근대 이후의 종교

 

근대에 들어와서 종교의 위치는 크게 변화하였다. 도덕과 예술이 종교로부터 분화되고, 정치, 경제, 교육 등의 사회제도에서의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신앙의 자유, 철저한 정교분리의 원칙이 대두되었다. 계몽사상과 과학의 발전이 종교의 진리성과 존재의식을 위협하고 있고, 따라서 종교비판도 활발해졌다. 종교는 끊임없이 존재 의의 자체가 문제로 제기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철학은 전능하고 정의로운 유일자로서의 신을 두고 논란을 벌였다. 왜 선한 신이 악과 불행을 허락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대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도덕적인 이유에서 그런 신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인간이 신을 폐지해 버린다면, 그것이 무신론이었다.

 

● 신의 존재는 헛된 환상

신이 있다면, 나는 그 신이 되고 싶지 않다. 세상의 비극이 내 가슴을 찢을 것이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헤겔의 낭만주의 철학이 여전히 정신생활을 규정하고 있는 동안, 과격한 염세주의자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의 노예라고 보았다. 의지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을 결국 아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사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심적 이성이 아니라, 영원히 만족치 못하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이다. 끝없는 괴로움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전 자연이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 이 근원적인 맹목적 의지는 자제와 동정심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으면 역사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고난을 유발한다.

경험적 현상의 세계는 주관의 여러 형식(시간, 공간 및 인과의 법칙)에 의존하는 단순한 표상에 불과하고, ‘물’자체에 해당하는 것은 의지, 맹목적인 생존의지라고 본다. 무기적 자연에서 동식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전체는 이러한 의지의 객체화와 개별화의 여러 단계일 뿐이다. 따라서 세계는 보편적으로 근거도 원리도 없고, 부단한 욕망에 쫓기어 만족할 수 없는 생은 고통이라고 했다.

 

인간이 자신의 소망들의 이상에 따라 그의 신들을 상상한 것!

구약성서에서는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고 말한다.(창세기 1:27)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시금석이다. 이 말은 인간으로 하여금 거꾸로 신이 인간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의 『기독교의 본질』(1841)은 신학을 인간학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신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소망들의 이상에 따라 그의 신들을 상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멸성이란 개인의 영혼이 불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유적 본질이 불멸함을 의미한다는 주장 때문에 교수직을 포기한 뒤였다.

 

신은 기체로 된 척추동물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헤켈(Ernst Heinrich Haeckel, 1834~1919)은 ‘신은 기체로 된 척추동물’이라고 희화적으로 말했다. ‘생물의 개체발생은 그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는 생물발생법칙을 제창했고, 환경과의 관계에서의 생물학을 생태학이라고 명명한 그로서는 보이지 않는 인격신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의 등장을 바라노라.

프로테스탄트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기독교가 순종과 겸손 등 노예의 도덕을 강조한다고 비판하기에 이른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쇼펜하우어에 심취했고, 그의 사상을 계승하여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 철학을 선도하게 된다.

특히 『그러므로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1883~1885)는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주의에 의한 평등권에 반발하기 위해서 쓰인 글로, 기원전 6, 7세기 최초의 종교설립자로서 ‘선’을 수단으로 하는 인간의 해탈을 설교했던 조로아스터(차라투스트라)를 불러들여, 시대의 오류를 청산하는 자신의 현자를 창조했다. 산속 10년의 고독 이후 차라투스트라는 하산하여, 현세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인 나라를 약속한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의 등장을 바라노라.’ 신들이 죽었으므로, 인간은 스스로 비상을 추구해야 한다. 인간은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아이로 비상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이고 당찬 인간, 즉 초인이 된다고 역설한다. 아이가 순수하다는 것도 기성의 가치체계를 따르지 않아 신선함이 있고 자연본성에 대해서는 절대 긍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자처럼 부정만 해서도 자유로울 수 없고 낙타처럼 맹목적 긍정만 해서도 안 된다. 사자보다 더 부정적이고 낙타보다 더 긍정적이어야 한다. 강력한 부정은 그대로 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절대적 자기 긍정도 도전과 모험을 감행하게 하는 원천이다.

 

 

2. ‘물질’ 인간

 

19세기 말엽에 이르러 기술과 산업은 점점 강하게 생활영역을 침범했다. 과학은 이전에 종교가 행했던 것과 같은 정신적 힘이 되었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종의 기원』(1859)에서 가르쳐준 적자생존의 법칙은 신학적 인간관의 천재지변이었다.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된 개체들은 ‘실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자연적이며 종족적인 도태를 겪는데, 이 도태가 그 종의 생활 능력을 신장한다는 것이었다. 생물로서의 인간도 유용한 것의 선택법칙에 따라 단순한 형태에서 발전해온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제 인간도 물질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음이 추론되었고, 포이어바흐를 거쳐 마르크스에 이르면서 물질주의 철학이 유포되었다. 신적 창조주와 이 세상에 내재하는 정신적 원칙에 대한 믿음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으며, 그 자리에 과학과 물질에 대한 믿음이 등장했다.

 

물질’ 인간은 분석될 대로 분석되는 대상이 되었다. 빈의 심리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의 『히스테리 연구』(1895), 『꿈의 해석』(1900) 같은 저술들은 성적 충동과 공격충동이 모든 인간적인 사유와 행동을 규정하는 기본력이라는 이론을 충격적으로 유포시켰다.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수세기 동안의 개념이 마침내 환상이라고 폭로되면서, 기독교와 인문주의 인간상은 파괴되었다.

 

실증주의

무신론과 더불어서 서유럽에서 형이상학적 사변을 배격하고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강조하는 철학적 경향이 등장했다. 실증주의는 실증적으로 주어진 사실만을 타당하다고 하고, 모든 형이상학적 사변을 거부한다. 실증주의자들이 ‘신’은 무의미한 낱말이라고 선언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실험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대상들 가운데는 이 낱말에 부합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가상의 존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도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험과학들은 순수한 사실의 과학으로 이해되었다.

현실의 모든 것은 물질적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구성물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고 모든 사태가 야기되는 합법칙성들을 찾아내는 것이 과학의 임무다. 유물론 철학은 실증적인 것, 다시 말해서 물질로 주어진 것만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실증주의자들에게 ‘정신적인 것’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 때에만 존재했다.

 

실증주의라는 말은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가였던 생시몽(Comte de Saint-Simon, 1760~1825)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근대 과학이 가져다준 실증적 지식을 인간이 도달한 최고단계의 지식으로서 역사적으로 위치 짓고, 사회현상을 실증적 방법에 의해서 통일적으로 설명했다. 그 구상을 물려받아 실증주의를 사회학으로서 체계적으로 완성시킨 것은 제자 콩트(August Comte, 1798~1857)였다. 콩트는 『실증철학강의』(1830~1842)에서 실증주의의 핵심 내용들을 제시했고, ‘실증적’이라는 말에 현실적인, 유용한, 확실한, 정확한, 건설적인, 상대적인 등과 같은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인간의 인지(지식과 지성)를 동적 발전과정 아래 파악하여 3단계 발전설을 내놓았다. 1) 신학이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신학적 단계’, 2) 회의하는 이성의 ‘형이상학적 단계’, 3) 마침내 ‘실증적 단계’에서는 사물이나 사건의 관찰ㆍ가설ㆍ실험ㆍ추리ㆍ검증 등 근대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참된 과학적ㆍ실증적 지식이 획득된다. 이제 과학이 새로운 종교요 우상이 되었다.

 

환경론

여기에 환경론이 새로이 무게를 갖게 되었다. 인간의 행동이나 역사를 생리적이고 직접적인 환경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생물 및 인간의 구조 내지 행동에서 환경의 영향을 중요하게 보는 학설이 환경론이다. 특히 지리적 환경에 중점을 두고 인간과 역사의 영향을 강조하는 이른바 지리적 환경론의 사고방식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460?~377? BC) 등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하였다. 그것이 중세의 신학적 목적론적인 세계관에 지배되어 일단 자취를 감추었다가 르네상스 이후 합리적 사고의 부흥과 함께 부활하였다.

 

● 모든 인간은 종족, 역사 그리고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

콩트의 실증주의적 방법을 써서 과학적으로 환경론적 입장에서 문학을 연구한 것이 Hippolyte Taine(1828~1893)이다. 그의 환경론에 의하면 인간은 환경과 인종 내지는 유전 소양이나 (나중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사회적 여러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이다. ‘인간의 개체란 사회 속에 그리고 사회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모든 인간은 종족, 역사 그리고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 때문에 도덕적으로 완전히 책임이 있지는 않다.’

 

인간은 유전과 환경에 촉발되어 움직이는 기계

19세기 문학에 있어서도 실증주의는 절대적인 세력을 떨쳤다. 졸라 Émile Zola(1840~1902)는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의 『실험의학서설』(1865)을 본보기로 하여 『실험소설론』(1879)을 썼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실험적 방법은 ‘선천적으로 […] 어떤 개념을 실험적 연구를 근거로 성립된 해석으로 후천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를 갖는다. 졸라는 같은 의미에서 소설작가는 실험실의 박물학자와 같은 정확한 관찰과 엄밀한 실험에 의해 문예작품을 제작 할 것을 선언했다. 그는 인간을 가리켜 ‘유전과 환경에 촉발되어 움직이는 기계’라 했고, 소설가란 ‘인간이란 기계’를 환경 조건 밑에서 작동시키기 위하여 그것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실험가일 뿐이었다. 이제 ‘형이상학적 인간’이 ‘동물적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졸라는 텐의 『영국문화사』(1864)의 서문에 쓰인 ‘악덕과 미덕은 다 같이 황산이나 설탕처럼 화합물이다.’라는 구절을 소설 『테레즈 라켕』(1867)의 서문에서 인용했다. 정부와 공모한 남편 살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며, 일단 소설적 성공을 거둔 그는 적나라한 인생의 해부라는 방침 하에 『루공-마카르 총서』(1871~1893)를 썼다.

 

과학적 사회주의

기독교 교리가 휴머니즘적 가치를 갖출 때만 존재 의의가 있다고 선언된 이후, 그 뒤에 남은 것은 철학에서는 유물론이었다. 포이어바흐의 기치 아래 모인 세력은 사회적 혁신세력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간학이나 도덕에 기초하여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을 ‘공상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이 도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이론의 발견이 자신들의 사회주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흡수했다.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이되, ‘신의 이성’도 ‘인간의 맹목적 의지’도 아닌, ‘물질적 상태’가 인간을 인도하며, 그러므로 역사란 일련의 계급투쟁일 뿐이다.(변증법적 유물론)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물질세계 곧 경제적 상황이 본질적이며, 바로 그것이 한 시대의 사유와 이념을 규정짓는다는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에서는 사회의 물질적 생산관계와 생산력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임을 규명하고, 이데올로기나 정치는 물질적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는 (역)사적 유물론을 제시했다. 물질은 곧 정신이다. 이제 관념론뿐 아니라 포이어바흐의 사회의식 없는 유물론적 휴머니즘까지도 청산하고 새로운 세계관으로 옮아갔으며, 그것이 엥겔스와 쓴 『공산당 선언』(1848) -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그리고 『자본론』(1867, 1885, 1894) 등에 담겨 있다.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 변증법적 및 사적 유물론의 창시자이자 국제노동자계급운동의 지도자였던 엥겔(Friedrich Engels, 1820∼1895)는 베를린 체류 중에 청년헤겔학파의 일원이 되었고, 셸링의 신비적 철학과 헤겔의 보수적 결론, 그 관념론적 변증법의 모순을 비판했다.

엥겔스가 영국의 노동계층의 실태에 대해서 서술한 것을 보면, 탄갱과 철광산에는 4살, 5살의 어린아이들이 일했고, 노동시간은 열 시간을 훨씬 넘었다. 모든 노동자들이 24시간에서 심지어 36시간을 연속적으로 땅 밑에 있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이것은 중부유럽의 임금노동자에게도 해당했다. 공장주와 자본가에게는 산업과 기술이 부의 원천이 되었지만, 반대로 급격하게 팽창하는 노동자와 무산자의 집단에게 그것은 여러 모로 빈곤과 곤궁의 원인이었다.

 

 

공리주의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독일에서는 교수가 학자이고,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교수였지만, 영국에서는 의사나 법률가 등 일반직의 대표적 학자들이 있었다. 제임스 밀(James Mill, 1773~1836)과 친구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저명한 학자였고, 제임스 밀은 아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을 학자로 키웠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은 벤담의 제창이었다. 벤담의 저술들이 공리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정립하고 이를 법률에 적용시키기 위한 의도였다면, 윤리이론과 관련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1863)는 공리주의의 개념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다. 이들의 사회이론은 전통적 종교관을 경시하고 합리적인 가치관을 강조했다. 문제는 행복의 질적 양적 측량이었다. 밀은 벤담의 양적 행복에 이의를 달고, 질적 공리주의로 응수했다.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낫고, 만족한 바보천치보다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취하고 불행은 피하고 싶어 하므로 대다수가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호 계약을 맺은 그런 사회를 꾸려보자는 주장이면서, 밀은 경제적 이익 뿐 아니라, 복지, 자유, 평등, 개성, 정치적 권리, 마음의 습관과 도덕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취해질 것을 주문했다. 또한 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어떤 선을 베풀기 보다는 오히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불완전한 권리’를 주장하여, ‘소극적 정의론’을 폈다. 이러한 공리주의는 정치와 사회, 그리고 윤리적 방향설정에 기여했다. 정치에 있어서 의회민주주의, 경제에 있어서 복지체제로의 길을 마련했다.

 

실용주의

여기에 비해서 미국은 영국의 보수적인 지도와 체제를 개척적이며 창의적 방향으로 발전시켜 아메리카 정신을 창안해냈다고 볼 수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가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인간의 지적인 활동이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의심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설을 생각해 내고, 그 가설을 실제로 검증해 봄으로써 문제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실천적 과정을 거쳐 문제가 해결되고 전보다 더 나은 상황을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지식이 가지고 있는 실천적 유용성을 중시하는 철학적 태도이다. 이처럼 영미의 정신사적 전통은 경험주의 - 공리주의 - 실증주의의 과정을 밟아왔다.

생물학 등을 연구하던 퍼스(Charles Sandes Peirce, 1839~1914)는 현실에 입각한 논리를 추구하다가 개념의 경험성, 현실성, 실용적 가치를 물었다. 그에 대해 미국적 철학적 해답을 내린 이가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였다.

제임스는 관념주의 철학이나 형이상학적 과제들은 무의미한 공론에 불과하다고 배척했다. 우리에게 경험되는 현상적 사실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보며, 합리론은 순수하기는 하나 비현실적이라고 보았다. 주지주의적 합리적 사고는 삶을 바꿀 수 없고, 일원론, 유심론, 유물론 등은 망상이며 현실적 실재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은 현실에 입각한 경험에서 과제를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진리는 논리적인 이론 체계가 아니다. 열매가 곧 진리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값있는 무엇, 태환권이다. 생활에서 현금 구실을 할 수 있는 지식이 진리다. 철학자라면 ‘실천적 경험에 있어 그 신념의 현금가치는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했을 때, ‘실천적’이나 ‘현금가치’와 같은 용어들은 제임스를 유물론과 과학의 옹호자로 보이게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에 실용주의를 도입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지나치게 유물론적이며 과학적이라고 그가 간주했던 시대에 오히려 신에 대한 믿음의 창문을 열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신의 존재가 과연 증명될 수 있을지 여부는 물을 필요가 없다. 단지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차이를 초래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 인간의 본질은 행위에 있다.

이러한 실용주의 철학을 가장 미국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킨 철학자는 듀이(John Dewey, 1859~1952)였다. 특히 실용주의 교육사상은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는 지식은 진리이기를 바라며, 진리로서의 지식은 그 자체가 목적인 듯 생각해왔었다. 듀이는 전통을 뒤집었다. 인간의 본질은 행위에 있다. 알기보다 행하는 것이 숨김없는 삶의 본성이다. 행동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삶이다. 보다 나은 행동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묻는다. 그 과정에서 지식이 필요할 뿐이다.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과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듀이의 철학을 도구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의 지식은 도구다. 모든 도구가 그러하듯이 그 가치는 도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의 능력, 즉 사용된 결과에 있어서 나타나는 유효성에 있는 것이다.’ - 지식은 의도하고 소망했던 목적에 접근할 때 가치를 인정받고, 그렇지 못하면 유효성과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미국의 정치와 경제, 심지어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이러한 행동주의 원칙이 크게 기여했다.

 

 

3. ‘상품’ 인간

 

자유주의 - 신자유주의

인간이 기본적으로 갈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이다. 자유란 다름 아닌 개인의 자유를 지칭한다. 이때 개인이란 개체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개인 주체의 개념이 없는 곳에서 자유 개념은 형성될 수 없다. 오늘날 개인은 개체로서의 인간이자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이다.

영국 유물론의 창시자인 베이컨의 유물론 철학을 계승하여 체계화시킨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는 ‘보다 더 다양한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만큼 더 자유롭다.’는 생각에서 인간이 신체적 존재자인 한 그가 시민이든 노예이든 단지 그의 자유로움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홉스의 생각을 잇는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감성적인, 정념적인 존재자로 파악하고,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음’이라고 이해했다. 오늘날 자유는 ‘무엇인가부터 벗어남’이라는 소극적 의미 외에 ‘스스로에서 비롯함’이라는 적극적인 뜻 아래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함’이라는 의미와 함께 ‘자신이 세운 법칙에 자신을 종속시킴, 곧 자율적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자유주의

자유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봉건적 공동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사상 및 운동인 한에서 인간의 최고의 지향점이 된다. 자유주의의 원리는 1) 보편적 인권의 원리 - 정신적·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원리이다. 2) 보편적 시민권의 원리 - 시민적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정치제도와 정책과 기관을 비판하고,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인정하는 원리이다. 로크(John Locke, 1632~1704)에게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 시민의 자유를 극대화하자는 것이었다.

자유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단면에 걸쳐 자유와 윤리,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 사이의 팽팽한 대립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해방’이거나, ‘자유=강제의 배제’라는 입장은 자유를 중요 관점으로 내세우지만, 자유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자유에 대한 이해가 그 말을 쓰는 사람 각자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1859)에서 ‘다수의 횡포’에 의한 ‘비주류 소수’에 대해 무자비한 탄압을 경고했다. 다수는 소수에게 여론과 관습을 내세워 ‘대세에 순종’할 것을 강요한다.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도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 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사회는 이런 방법을 통해 모든 사람의 성격과 개성을 사회의 어떤 한 표준에 맞게 획일화하려 한다. 자유에 관한 매우 간단명료한 하나의 원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절대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영향을 주는 행위에 한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민, 즉, 신흥 중산계급인 부르주아를 위한 것으로, 토지귀족이나 왕권에 반대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상을 이상화했지만, 무교육의 빈곤한 계층의 이해와는 무관했다. 노동자에게 있어서 경제적 자유는 부자유의 강제일 뿐, 그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하에서도 일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도를 제약하고 소득의 평등화, 약자 구제, 노동자의 권리(단결권), 의무교육제도 등을 요구했다. 자유를 인격의 전면적 발전이라는 점에서 옹호하고 그것을 위한 경제적 조건을 계획경제와 복지정책에서 찾고자 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가들은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1946)의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였는데, -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는 1914년 8월에 끝났다.’(1919) - 그 요체는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소득평준화와 완전고용을 이룸으로써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신자유주의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불황이 다가오면서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이론이 대두되었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세계 경제가 자본주의로 통합되면서 국제적 경쟁은 가열되었고, 많은 복지국가에서 시장경제의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복지정책을 점차 감소시키는 경제 현상이 대두했다. 신자유주의는 비대화한 정부조직의 재정적자에 대한 비판으로 정부권력의 축소를 요구한다. 대표주자는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이며, 철저한 자유주의시장경제 옹호자로서 『자본주의와 자유』(1962)에서 정치적·사회적 자유의 창조의 수단으로 자유시장 내에서 정부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고 했다. 프리드먼은 케인즈가 주장했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정부지출 확대)으로 인하여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통화정책(중앙은행의 통화량 감소정책)을 촉구했다. 소비분석, 통화의 이론과 역사 그리고 안정화 정책의 복잡성에 관한 논증 등의 업적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1976)했다. 그러나 생산성, 경제적 효율성이 감소하여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30년대 영국에서 경제침체 원인과 극복 방안을 놓고 케인즈와 대결했던 하이에크(Frei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는 사회계약론에 반대하여 비계약논리를 내세우며, 외부의 힘으로 창조된 ‘인공적 질서’에 맞서서 스스로 성장한 ‘자생적 질서’를 옹호했다. 사람들의 목적이 다수이며, 그 모두가 원리상 양립할 수 없다면 갈등이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선택(자유)은 불가피한 조건이다. 이처럼 비계약적 의지론에서 자유원리는 사회진보를 성취하는데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본 것이다. 자생적 질서가 보호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인류의 번영을 약속하는 지식의 분업을 지속적으로 활성화시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역기능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재산권을 중시한다.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은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하며, 소극적인 통화정책과 국제금융의 자유화를 통하여 안정된 경제성장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공복지 제도의 확대는 정부의 재정을 팽창시키고, 근로의욕을 감퇴시키는 소위 ‘복지병’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부 선진국에서 복지의 역기능을 줄이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지만[닉슨 행정부의 경제정책,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리즘은 공기업 등 일부 기업의 효율화라는 부분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약한 성장률 속에 기업 도산과 실업률을 높였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유럽 각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 부여와 근로 조건 악화를 무릅썼다. 대기업의 합병, 기업의 해외 이전 가속화와 외국인 노동자 증가는 기업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지만,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이라는 이른바 세계화나 자유화라는 용어를 동원하여 세계무역기구(WTO)나 우루과이라운드(UR) 같은 다자간 협상을 통한 시장개방의 압력이 커졌다. 결과적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갈등을 초래했고, 빈부 격차는 무한대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무한대의 경쟁, 정글의 법칙에 내던져진 것이다.

통계를 보자.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는 <2013 세계 부 보고서>에서 상위 1% 부자들이 전 세계 부의 46%를, 상위 10% 부자들이 86%를 보유하는 등, 부의 집중 현상이 뚜렷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1%인 50만 명이 전체 토지의 55.2%를 소유하고 있다.(국토교통부 2013) 국제구호단체 옥스팸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세계 최상위 부자 85명이 소유한 부가 소득 하위 절반에 달하는 35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다. 세계 부자 상위 1%의 재산은 전 세계 최빈층 절반의 재산을 더한 것보다 무려 65배나 많은 규모다.

오늘날 세계화의 추세는 국가 간 상호 의존과 협력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국민국가의 자율성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국가 내부에서도 다원화와 지방자치, 분권화 경향은 주권의 대내적 최고성에 대한 의미의 재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올림픽의 후발 주자로서 선발 주자들의 성공을 과신하고 실패를 외면하면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 일단 내가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보니……

  ‘일단 내가 우리 회사의 주력 상품이다 보니 평소 과잉보호가 있어서 나도 사실 신경이 많이 쓰였었고…….’(동아, 2014.3.28)

 

이것은 최근 어느 날 스타 OOO의 반성문 중에서 옮긴 말이다. 데뷔 5년 째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탤런트인 그(녀)가 공항에서 선물을 들이미는 팬에게 서운한 대접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서 공식 팬카페에 반성문을 올렸다. 다행이다. 문제는 자신을 ‘회사의 주력 상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성공을 해보았자 값나가는 상품에 불과하다. 성공하지 못하면 불량 상품에 그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임금노동자를 옥죄는 ‘보이지 않은 수갑’이 되어버렸다.(패럴먼 Michael Perelman) 개인은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사회적 이익과 경제적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국부론』(1776)에서의 주장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막강 이론으로 자본주의를 지원해왔다. 이제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시장에서 선한 보이지 않은 손은 없다. 노동과 노동자는 상품에 과정으로 참여해있는 부품에 불과하고, 그가 임금을 소비하는 소비자일 때만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상품이면서 상품을 소비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4. 미래의 길

 

● 새로운 돈의 우상숭배에 반대함

프란체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2013)에서 새로운 돈의 우상숭배에 반대함을 역설했다. ‘이러한 상황의 한 가지 원인은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게나 사회에 미치는 돈의 지배를 조용히 받아들인 이래 우리가 돈에 대해 지니고 있는 관계에서 엿볼 수 있다. 현재의 재정위기는 기 제기된 인간 위기 - 인간 인격의 최고성의 부인이라고 하는 - 안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게 한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창조했다. 태고의 금송아지 숭배(출애굽기 32:1-35)는 진실로 인간적인 목적을 결여한 돈의 우상숭배와 비인간적인 경제의 독재에서 새롭고 무자비한 외형으로 돌아왔다. 재정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범세계적인 위기는 순전히 그것들의 불균형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를 위한 관심의 결여에 있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필요, 소비의 단위로 축소되었다.’

‘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반면에 그 행복한 소수가 누리는 번영으로부터 다수를 가르는 격차는 마찬가지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이 불균형은 시장과 재정 투기의 절대적 자주권을 방어하는 이데올로기의 결과이다. […] 새로운 독재가 그렇게 탄생했다, 보이지 않게 때로는 보이게, 일방적으로 가차없이 자신의 법과 규칙을 도입하여 시행하는 독재가. 빚과 이익의 누적은 각 나라들로 하여금 자신들 고유의 경제의 잠재성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고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진정한 구매력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치유는 가능한가.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한가. 교황은 ‘교회는 야전병원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부상자들을 돌보는 것이다. 피 흘리는 사람에게 콜레스테롤 수치를 묻지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타임, 2013.12.23.)

 

공정무역

지구상 어느 한 곳에서 콜레스테롤 수치에 연연하고, 한국에서처럼 성형수술이라는 ‘미의 열풍에 휘몰린’(BBC, 2005.2.3.) 동안, 다른 여러 곳에서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노동자들이 숨져간다. 방글라데시에서는 2012년 11월에 의류 공장 화재로 112명이 사망했고, 이어 2013년 4월에는 8층짜리 의류공장 건물이 무너져 1,129명이 사망했다. 다국적 의류업체들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도 협의했고, 상당수 유럽계 의류업체들은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월마트, 시어스, 칠드런스 플레이스 등 미국계 업체들은 지원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연합뉴스, 2013.11.24.)

이런 것을 구하자는 운동이 공정무역 운동이다. 국가 간에 이뤄지는 무역에서 불공정무역행위를 규제하여 상호 간에 동등한 입장에서 교역을 한다는 것이 공정무역의 기본원칙이다. 다국적기업들이 정작 커피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등을 제3세계와 같은 저개발국가들에게서 제공받지만,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낮은 임금만을 지급하고 있(었)다. 공정무역은 직접 제품 생산에 기여한 이들이 가져야 할 몫을 다국적기업들이 가로채고 있다는 인식이 나타난 195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커피ㆍ초콜릿ㆍ설탕ㆍ수공예품 등이 대표적인데, 공정무역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기회 제공, 투명성 및 신뢰 확보, 공정한 가격 지불, 성 평등, 건강한 노동환경 제공, 친환경 등을 원칙으로 한다. 2000년대에 시작된 우리나라의 공정무역 운동은 아름다운가게, 에코생활협동조합, 두레생활협동조합, 한국YMCA, iCOOP생협연합회,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등 1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윤리적(착한) 소비’소비라는 개념은 공정무역운동을 포함한 소비자운동의 일환으로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자연환경에 해를 끼치는 상품은 사지 않고, 공정무역에 의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을 뜻한다.

 

기아 근절

공정무역은 절대적 기아를 구하자는 운동이기도 하다. 말리는 면화를, 세네갈은 땅콩을 수출하고, 아프리카 최빈국 에티오피아는 커피를 수출한다. 하지만 커피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하루 평균임금이 1달러도 안 된다. 커피농장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무리 높게 잡더라도 소비자 가격의 1%도 되지 않는다. 한국은 식량주권을 획득한 나라이지만, 유엔 194개 주권국 가운데 121개국은 식량주권이 없다고 한다. 지글러(Jean Ziegler) 제네바대학 교수는 오늘날의 기아를 일상적 대량학살이라 했고, 이 문제의 핵심이 초국가적 기업들 간의 경쟁에 있다고 집어냈다. 유엔식량기구(FAO) 발표에 의하면 오늘날의 농업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일일 성인 기준 2200칼로리로 계산해서 120억 인구가 먹고살 수 있는 양인데 - 식량이 남아도는데 - 매일 기아로 5만7000명이 죽고 세계 71억 인구 중에서 8억4200만 명이 기아상태라고 한다. 기아로 죽는 사람은 암살당하는 것이고, 살인자는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적인 세계 질서다.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결코 문명이 없어서, 열등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농부였고 가정을 책임져온 부모들이었다. 다국적기업에 의해 산업화된 농토에서는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고 비싸게 수입된 식량을 구할 돈이 없는 것이다. 기아는 인간의 탐욕이 만든 시스템의 희생자일 뿐이다.

 

미래?

식량주권이 확보되었다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행복도는 높지 않다. 유럽 신경제재단(NEF)의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43개국 중 68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2년 36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행복지수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하위권인 24위를 차지했다. 세계적 자유방임시장경제의 틀 안에 갇혀있는 한,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한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것은 삶의 ‘희소성(인위적 결핍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와 욕망의 경계를 망각한 인식의 오류와 가치의 혼돈에 있다.(식량이 남아도는데 아사자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는 공부를 경쟁적으로 많이 한다. 유용한 지식을 얻기 위함이라고 착각한다. 미국의 문명평론가 토플러(Alvin Toffler, 1928~ )는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된 형태의 정보화 사회를 일컬어 ‘제3의 물결’이라고 정의 내렸다. 『제3의 물결』(1980)에서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은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되었고,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은 300년 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제3의 물결인 정보화혁명은 20~30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 우리는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는 『부의 미래』(2006) 에서 부와 혁명을 촉발하는 세 핵심적 원동력으로 시간, 공간과 더불어 지식을 말했다. 그러나 지식은 어느 시점에서 ‘쓸모없는 지식(obsoledge)’이 된다. 제4의 물결인 지식혁명에 미래를 건다. 토플러의 미래 프랙토피아(practopia)는 적극적이고 도달 가능한 세계이다. 변화의 속도를 따르되, 무용지식을 버려야 도달할 수 있는 세계이다.

 

우리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긴 수준이다. 스위스의 노동시간이 1,636시간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다. 노동시간은 삶을 위한 정도로 규제되어 마땅하다. 생명과 안전 그리고 환경 관련 규제는 강화되어도 모자라다. 필립 제닝스 국제사무직노조연합(UNI) 사무총장은 ‘규제완화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올드 버전이며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친다. […] 규제 완화가 아니라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봉건 피라미드 위에 신 대신 돈이 자리한 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은 절대빈곤 못지않게 사람을 절망하게 한다. 인구 10만 명 당 33명,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연속 8년간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 -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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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도서:

- 레슬리 스티븐슨 외, 박중서 옮김,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갈라파고스 2006.

- 빌헬름 바이셰델, 안인희 옮김, 『철학의 에스프레소』, 프라하 2011.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정명진 옮김, 청미래 2011.

- 이와타 야오스, 서주지 옮김, 『유럽사상사 산책』, 옥당 2014.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