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13. 12. 17. 09:03

 

국제펜광주지역위원회 - 2013년도 총회

 


 

2013년 12월 14일 빛고을국악전수관 공연장,

총회와 국제펜광주문학상 시상에 이어 펜 한가족의 밤 행사가 있었다.

해마다 비슷한 행사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신임 회장에 선출된 것!

 

 

 

 수락 인사말씀 - 오른 쪽에는 2부 펜문학수장자들 오소후 , 전숙

 

 

  국제펜광주지역위원회 회장 수락 인사말씀

 

  오늘 2013년 12월

  광주전남 문단사에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백배나 많은 제가 감히 이 자리에 선출되어 수락인사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국제펜광주광역시위원회는 오늘 『펜광주 11호』 발행이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고, 오늘까지 10회에 걸쳐 14분의 국제펜광주문학상 수상자를 내었고, 또 무엇보다 15회의 영호남문학인교류활동을 추진해오고 있는 등, 명실공히 한국 문단에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단체를 문단 경력도 짧고 사회성도 부족한 제가 한 동안 노를 저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만 앞섭니다.

  돌이켜 보건대 국제펜광주지역위원회는 저에게 글쟁이로서의 글을 안내해주고 격려해준 유일무이의 단체였습니다. 서생으로 살던 제가 제 글쓰기에 홀렸을 때 저는 처음 무작정 국제펜에 가입하고 싶었습니다. 글쓰는 사람이면 당연히 국제펜에 가입해야한다고, 연대의식을 가지고 글을 써서 어떻게든 사회에 작용해야 된다고 믿었습니다. 소원대로 국제펜한국본부와 국제펜광주광역시위원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작품발표는 물론 2012년 가을에는 경주에서 열렸던 국제펜인터내셔널 대회에 일주일간 참석할 수 있었으니, 첫 꿈은 달성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거운 짐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걱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일당백으로 애정을 쏟아내어 국제펜광주를 지켜오신 우리 회원 문우 여러분들, 온갖 정열을 다 바쳐 그 기틀을 잡아 올려놓으신 김종 명예회장님과, 전 작품 한영대역이라는 전무후무한 회지를 발간해 오신 김영관 회장님의 혁혁한 활동들을 어떻게든 이어가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그 어느 것도 장담은커녕. 마치 다음 훌륭한 집행부가 성장 중에 있기 때문에 임시로 수렴청정이나 맡아야하는 기분으로, 어제와 내일을 잇는 딱풀의 기능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겁한 심정으로 여기에 섰습니다. 미래의 집행부가 성숙하면 곧 자리를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비겁함을 이겼기에 감히 이 짐보따리를 맡게 될 모양입니다.

  존경하는 회원님들, 문우 여러분들, 부디 여러분의 국제펜광주지역위원회에 지니신 애정을 속에만 담아두지 마시고 적극 발휘하시어 이 딱풀 집행부가 굳어버리지 않게 감시도 하시고 도와주시면서 내일을 기약하시게요, 고개 숙여 부탁드립니다.

  잊지 마셔요, 오늘의 집행부와 함께 하셔야 여러분의 내일이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2월 서용좌

 

 

펜문학 수상자 전숙 -

전남여고 42회 후배이자 중학교 시절 내가 잠깐 영어 선생님이었으니 제자이기도.

윤숙희, 김미석, 허만진, 황인미, 전숙..... 김상현, 조숙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3. 12. 12. 22:52

 

서용좌 작가 ‘광주문학 올해의 작품상’
광주문인협 내일 시상식

2013년 12월 11일(수) 00:00 광주일보
 

광주문인협회(회장 노창수)가 주최하는 제26회 광주문학상 시상식과

제6회 광주문학올해의작품상 시상식이 12일 오후 6시 용산동

삼영웨딩홀에서 열린다.

광주문학상 수상자는 시 부문 조숙형·이춘배 시인이, 시조 부문 김산중 시인이,

수필 부문에는 탁현수 씨가 선정됐다. 그리고 광주문학올해의작품상 수상자는

서용좌 작가(전남대 독문과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작품은 ‘광주문학’ 66호에

실린 ‘포이동 266번지’.

한편 이날 시상식에는 시낭송 및 광주문학인의 밤 행사도 함께 열린다.

문의 062-227-0811.

 

 

 


제26회 광주문학상 수상자 선정

2013년 12월 11일(수) 무등일보



 

 

 

 

 

 

 

 

 

 

 

 


 

 

 

 

 

 

 

          조숙형·이춘배·탁현수·김산중·서용좌씨

조숙형·이춘배 시인이 제26회 광주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선정·발표됐다.

광주문인협회(회장 노창수)는 10일 올해 광주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두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조숙형 시인의 시집 '붉은 카펫', 이춘배 시인의

시집 '하얀 강 푸른 별이다.
또 수필 부문에 탁현수 수필가의 '조화를 위한 조율', 시조 부문에 김산중

시인의 '무돌길 따라'가 수상작으로 확정됐다.
올해의 작품상에는 소설가 서용좌씨의 '포이동 266번지'로 결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2일 오후 열린다.

 

 

 

 

 

 

 

 

 

 

 

 

 

 

 

 

 

 

 

 

  수상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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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문학 올해의 작품상 수상 인사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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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늦어서 죄송합니다. 피치 못한 사정이 하필 오늘에 중복되어 이제야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못 오는 것은 정말로 예가 아니다 사료되어 불참대신 지각을 무릅썼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오늘 2013년 12월 12일, 오로지 글쓰는 일에 전념해 오신 동지 여러분들 앞에서 부끄럽게도 가르치기와 글쓰기라는 이중 얼치기 생활을 해왔던 제가 감히 이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되어 어리둥절하면서도 한껏 기쁩니다.

  이 상은 아마도 제 글쓰기에 대한 상이 아니라 꼭 써야 할 것을 썼기에 주시는 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주문학 2013년 봄호, 통권 66호』에 기고했던 「포이동 266번지」는 사실 저로서는 혼신을 더욱 기울인 작품이었습니다. 포이동 266번지, 지금은 공식적으로 개포4동 1266번지, 속칭 재건마을을 아십니까. 이곳이 주목을 받은 것은 2011년 6월 그곳의 화재 때문이었습니다.

  1981년, 자활근로대란 이름의 45명을 이주시켜 경찰을 지도관으로 두어 통제하던 곳, 나중에는 베트남 참전 상이용사들, 양재천 주변의 넝마주이들을 이주시키면서, 매번 “이곳이 당신들이 살 터전이다.”라고 약속했던 정부와 강남구청은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을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재건마을에 화재가 나서 총 95가구 중 75가구가 전소했지만, 화재 후 몇 달 씩 수거물을 방치해둔 채 임대주택으로 이전을 종용한답니다만, 지금도 마찬가지, 임시로 보증금 300에 월세 6만원을 낼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 누가 어떻게 무슨 돈으로 신축하련다는 임대주택으로 이주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떠올렸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대로 문학의 스승격인 독일 작가 고 하인리히 뵐의 외침을 기억해냈습니다. “문학은 분명코 사회에 의해 쓰레기로, 경멸적이라 선언된 것만을 그 대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던 경구를 잊지 말자고. 사회에 의해 쓰레기로 선언된 것, 또는 경멸적으로 간주된 것을 그 고결성에서 규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작가의 글쓰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그러니 오늘 이 상의 의미는 포이동 266번지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 회원들께서 스치고 읽지 않으셨던 포이동 266번지」를 이 상을 계기로 다시 찾아 읽어주신다면, 그것으로 이 상의 의미는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정신하겠습니다.

 

                                                                             2012년 12월 서용좌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3. 12. 9. 00:49

 

 

 

 

 

 

이 작품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제목의 '스파르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테르모필레 전투를 연관지어 보는 사람도 없다.

번역 손을 놓았다가......의무감에서. 

 

 

 

 

 


 

 

 

 

 

길손이시여, 혹여 스파(르타)에 가시거든……

 

하인리히 뵐 원작

 

 

  차가 정지했을 때 모터는 잠시 더 돌아갔다. 바깥 어딘가에서 문이 와락 열렸다. 깨진 창유리를 통해 빛이 차 안으로 떨어졌다. 이제 보니 천장의 전구가 찢겨나갔다. 전등의 나사선만 나사입구에 붙어있었다. 유리 파편이 붙어있는 가물거리는 철사 줄 몇 올에 불과했다. 그러다 모터가 멈췄다. 바깥에선 누군가 고함 소리가 들린다. “사망자는 이쪽으로, 사망자들 데려온 거요?”

  “빌어먹을, 여긴 등화관제도 이젠 안하나?” 운전수가 되받았다.

  “등화관제가 뭔 소용이여, 온 도시가 횃불처럼 불타고 있는데.” 그 낯선 목소리가 악을 쓴다. “사망자 있냐고? 묻고 있잖아?”

  “모르오.”

  “사망자는 이쪽으로, 듣고 있소? 다른 자들은 층계 위쪽으로 미술실로, 알겠소?”

  “예, 예.”

  하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나는 다른 자들에 속했고, 사람들은 나를 층계 위로 데려갔다. 처음에는 희미한 불빛의 긴 복도로 갔는데, 벽에는 녹색 칠이 되어 있었다. 구부러진 검은 색의 옷걸이 못들이 벽에 붙어 있었고, 6에이, 6비라고 쓰인 에나멜 팻말이 붙은 문들이 있었고, 이 문들 사이에 검은 테두리의 유리액자 안에 포이어바흐의 메데이아가 걸려있는데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은 5에이, 5비라고 쓰인 문들, 그 사이에는 가시 뽑는 소년의 상이 신비한, 불그스레 빛나는 사진이 갈색 액자에 들어 있었다.

  층계 입구 앞 중앙에 있는 큰 기둥도 거기 있었고 그 뒤에는 길고 좁게, 기이하게 만들어진 석고로 된 파르테논프리즈 모형이 누렇게 빛을 내고 있었다, 진짜로, 고풍스럽게. 그리고 모든 것은 사필귀정, 고대 그리스의 중장병이 나왔다. 화려하고 위험스럽게, 깃털장식으로 수탁처럼 보였다. 그리고 계단부 까지도, 이젠 노란 칠이 되어있는 벽에 모두가 순서대로 걸려있었다. 대 선제후들부터 히틀러까지…….

  그리고 거기 좁고 작은 발걸음 중에, 내가 마침내 다시 한두 발짝 들것에 그대로 누워있게 되었을 때, 거기에는 특히나 아름다운 특히나 위대한 특히나 화려한 노 프리츠의 사진이 있었다. 담청색 제복을 입고, 빛나는 눈과 크고 황금으로 번쩍이는 가슴에 달린 별모양도.

  다시금 나는 비스듬히 들것에 누운 채 인류의 초상들 사이로 실려 지나갔다. 거기에는 북구의 함장이 독수리눈과 멍한 입을 하고 있었고, 모젤 강 서안의, 약간 마르고 예리한 여인, 양파모양 코를 한 동방의 찡그린 얼굴, 키가 크고 목젖이 튀어나온 산골 배경 영화 프로필, 그 다음엔 다시 복도가 나왔고, 나는 몇 걸음을 다시 들것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운반병들이 두 번째 층계로 오르기 전에 큰 황금 철십자훈장을 위에 붙이고 돌로 된 월계관을 쓴 전몰장병기념비가 보였다.

  모든 것이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무겁지 않았고, 운반병들은 서둘렀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이 착각일 수도 있었다, 나는 열이 높았고, 온 군데가 아팠다. 머리도, 두 팔도, 두 다리도, 그리고 심장은 미친 것처럼 뛰었다. 이런 열 속에서 무엇을 본다는 말인가!

  그러나 우리가 다시 인류의 초상들을 지나쳐갈 때 이번엔 모든 다른 것들이 나왔다. 카이사르와 키케로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흉상 셋이 얌전하게 나란히 놓여있었는데, 신기한 모조품으로, 완전히 노랗고 진짜처럼, 고대 풍에다 위엄을 갖추고 벽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가 모퉁이를 돌 때에는 헤르메스 기둥도 나왔다. 복도 맨 뒤쪽에는 - 복도는 이 부분에서는 장밋빛 빨강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 아주 맨 뒤쪽에는 제우스의 찌푸린 얼굴이 미술실 입구 위쪽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제우스 상은 아직 멀었다. 오른 쪽으로는 창문 너머로 불빛이 보였다. 하늘을 온통 붉었다. 검고 두터운 연기구름이 장엄하게 흘러갔다……

  나는 다시 왼쪽을 보아야 했다, 오1에이와 오1비 문들 위쪽의 현판들을 보았고, 갈색의 곰팡내 나는 문들 사이에서는 황금색 액자에 담긴 니체의 코밑수염과 코끝만을 보았다. 그럴 것이 그림의 나머지 반은 쪽지로 가려져 있었는데, “경상 외과”라고 쓰인 쪽지가……

  만일 지금, 나는 스치듯이 생각했다…… 만일 지금…… 그러나 또 토고의 그림도 있었다. 화려하고 커다란, 오래된 상처처럼 납작한, 화려한 복제품이, 앞쪽으로 식민관사들 앞에 흑인들과 무의미하게 총검을 들고 있는 병사 앞에, 무엇보다도 완전히 자연에 충실하게 그려진 바나나 더미들이 있었다. 왼쪽으로 한 더미가, 오른 쪽으로도 한 더미가, 그리고 오른 쪽 더미의 중간 크기 바나나 위에 거기 뭔가 새겨져 있었는데, 내가 직접 거기에 뭔가를 끄적거려 넣었던 게 틀림없는데……

  그러나 이제 미술실의 문이 확 열리고, 나는 제우스 흉상아래에서 흔들거리며 두 눈을 감았다. 난 더 이상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미술실은 요오드며 오물 냄새에 두더지와 담배 냄새가 났다. 그리고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나를 내려놓았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담배 한 대 입에 물려주세요, 왼쪽 주머니에 있어요.”

나는 어떤 누군가가 내 호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성냥개비에 불을 붙였고, 타들어 가는 담배를 입에 물렸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증거는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결국 모든 고등학교마다 미술실이 있는 것이고, 초록색과 노란 색으로 칠해진 벽들에 휘어진 낡은 옷걸이 못들이 있는 현관들이 있는 것이다. 결국 내가 우리 학교에 와 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메데이아가 4에이와 4비 사이에 걸려있다고 해도, 니체의 코밑수염이 오1에이와 오1비 사이에 있다고 해도. 틀림없이 어떤 규정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그것이 걸려있어야 된다고 지정해 놓은 훈령이. 프로이센 인문계 고등학교를 위한 경영지침이. 즉 메데이아는 4에이와 4비 사이에, 가시 뽑는 소년은 그 자리에,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리고 키케로는 복도에, 니체는 저 위 학생들이 철학을 배우는 그곳에 붙여놓으라고. 파르테논 프리즈, 토고에서 온 현란한 그림도. 가시 뽑는 소년과 파르테논 프리즈는 마침내 훌륭하면서도 낡은, 수 세대를 지나오면서 간직된 학교의 필수소장품이 되었다. 그리고 바나나 그림 위에다 낙서를 하려는 발상을 가졌던 것이 비단 나 하나뿐일 리도 없었다. 토고여 영원하라! 라고. 사람들이 학교에서 하는 농담들은 늘 같은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열이 있다는 것, 내가 꿈을 꾸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통증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차 속에서까지는 그게 아직 심했었다. 차가 작게 패인 도로들을 지날 때다마 나는 소리를 질러댔었다. 큰 분화구는 더 나았다. 차는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마치 배가 파도 사이 물고랑을 타듯이 그랬다. 그러나 사람들이 깜깜한 곳 어디에선가 내 팔에 들이밀었던 주사가 이제는 듣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바늘이 어떻게 내 피부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지, 저 아래 다리까지 어떻게 뜨겁게 변하는지를 느꼈었다.

  그게 그럴 수는 없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거리를 차가 달려왔을 리가 없다, 거의 30킬로미터를. 무엇보다도 너는 느끼지 못하잖아, 어떤 감정도 네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잖아, 다만 눈이 그럴 뿐, 어떤 감정도 네게 말을 해주지 않잖아, 네가 너희네 학교에 와 있다고, 네가 겨우 석 달 전에 떠났었던 그 학교에 와 있다고. 8년이란 세월은 사소한 게 아니야, 8년을 지내고서 그 모든 것을 겨우 눈으로만 알아보게 되느냐고?

감긴 눈까풀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마치 영화 같았다. 아래 층 복도, 녹색 칠, 층계 올라와서, 노란 칠, 전몰장병기념비, 복도, 층계 올라와서, 카이사르, 키케로, 마르쿠스 아우렐……, 헤르메스, 니체의 코밑수염, 토고, 제우스 흉상……

  나는 담배를 내뱉고 고함을 쳤다. 고함을 지르는 건 늘 좋았다. 그냥 큰 소리로 외치면 되었다. 외침은 장관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누군가가 내 위로 몸을 굽혔을 때도 나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낯선 숨소리가 느껴졌다, 따뜻하고 그래도 역하게 여송연과 양파 냄새를 풍겼다. 어떤 목소리가 조용히 물었다, “왜 그래, 뭐야?”

  “마실 것을 좀, 그리고 담배 한 대 더, 위에 호주머니에 있어요.”라고 나는 말했다.

다시 누군가가 호주머니를 더듬거렸다. 다시 성냥을 켰다. 누군가가 타들어가는 담배를 내 입 속에 넣어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내가 물었다.

  “벤도르프.”

  “감사합니다.” 내가 말하고는 담배를 빨았다.

  어쨌거나 나는 정말로 벤도르프에 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고향에 말이다. 그리고 내가 전무후무한 고열에 들뜬 것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어떤 인문계 고등학교 건물에 와 있는 것은 확실했다. 분명 이곳은 학교였다. 저기 아래 목소리가 소리치지 않았던가 말이다, “다른 자들은 미술실로 옮겨!”라고? 나는 다른 자였다. 나는 살아 있었다, 살아있는 자들은 아무래도 다른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미술실이 여기에 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라면 내가 왜 잘 못 본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렇다면 내가 카이사르와 키케로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알아보았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것은 오직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이런 분들을 다른 종류의 학교 복도에 벽에 세워둘 거라고는 생각할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가 내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다시금 여송연과 양파 냄새가 났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는 채로 두 눈을 떴다. 거기엔 지치고 늙은,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이 소방대원 제복 위로 나와 있었다. 늙은 목소리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마시게, 전우여!”

  나는 마셨다. 물이었다. 그러나 물이 훌륭하진 못했다. 나는 내 입술 끝에서 냄비의 쇠 냄새를 느꼈다.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들이마시게 될까 느끼는 것은 참 좋았다. 그러나 소방대원은 내 입술에서 냄비를 빼앗더니 가 버렸다. 나는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지친 듯이 어깨만 으쓱하더니 그대로 더 가 버렸다. 내 옆에 누어있던 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 “소리 질러대 봤자 소용없어. 물이 더는 없거든. 도시가 불타고 있어, 보고 있잖은가.”

  “도시 이름이 뭔데요?” 나는 내 옆에 누어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벤도르프.” 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아주 똑바로 내 앞을 보며 창문들을 응시했고 여러 번 천정을 보았다. 천정은 아직 말짱했다. 하얗고 매끄러운 것이, 고전주의 모방으로 석고 테두리를 두른 채로. 그러나 모든 학교의 미술실에는 고전주의 모방으로 석고 테두리를 두른 천장을 둔다, 적어도 양질의 유서 깊은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다 그렇다. 그건 아무튼 분명하다.

  이제 나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 내가 벤도르프에 있는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의 미술실 안에 누어있다는 사실을. 벤도르프에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셋 있다. “프리드리히 대왕” 학교, 알베르투스-학교 - 그리고 이 말을 꼭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 마지막 것, 세 번째 학교가 아돌프-히틀러-학교였다. “프리드리히 대왕” 학교에는 노 프리츠의 상이 특별히 화려하고 특별히 아름답게 특별히 크게 층계참에 걸리지 않았을까? 나는 이 학교에 다녔다, 8년 동안을. 하지만 다른 학교들이라고 해서 이 상이 똑같은 자리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첫 번째 층계를 오르면 그렇게나 똑똑히 눈에 띠어서 시선을 붙잡으리만치 그렇게?

  밖에서는 무거운 대포를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 말고는 조용했다. 다만 섬광의 침식이 밀려닥칠 뿐이었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합각머리벽이 무너져 내렸다. 대포는 조용히 규칙적으로 쏘아댔다. 나는 생각했다, 참 좋은 대포로군!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저 그런 놈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렇게 생각했다. 맙소사, 대포라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 것인지, 얼마나 기분 좋은 것인지. 어둡고 거칠게, 그러나 부드럽고, 거의 섬세한 오르간 연주였다. 여하튼 품격 있는 연주. 나는 대포라는 것이 뭔가 품격 있는 요소를 지녔다고 느낀다, 쏘아 올라가더라도. 너무도 품위 있는 인상을 준다, 그림책에서는 정확하게 전쟁을 가리키면서…… 그러다가 나는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전몰장병기념비에 등재될 것인지를 생각해보았다. 더 큰 황금 철십자를 장식하고 더 큰 돌로 만든 월계관을 씌워서 또 다시 기념비 낙성식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갑자기 나는 알게 되었다, 만일 내가 정말로 우리학교에 와 있는 것이라면, 내 이름도 돌 속에 새겨져서 거기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학교 달력에는 내 이름 뒤에 쓰일 것이리라 - “학교에서 전선으로 징집되어 ……를 위하여 전사했노라고……”

  그런데 나는 점선 안에 들어갈 그 무엇을 위해서였나를 알지 못했고, 또 내가 지금 내가 다녔던 학교에 와 있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했다. 그 일을 나는 기필코 알아내고자 했다. 전몰장병기념비에도 특별한 무엇은 없었고, 눈에 띄는 것도 없었다. 그것은 어디에나 다 있는 그런 것이었다. 마치 기성복 같은 전물장병기념비였다, 그래, 어딘가 중앙에서 받아다 놓은 것일 테니……

  나는 미술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림들은 다 치워버렸고, 구석에 쌓아놓은 의자들만 몇 개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여러 개가 나란히 있는 높고 좁다란 창문들에는 빛이 엄청 쏟아져 들어왔는데, 마치 그런 것이 미술실에 소속된 것 마냥? 내 가슴은 내게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만일 이 방에 있었더라면 무엇인가가 내게 말을 해줄 법 아니던가, 팔 년 동안 꽃병을 그렸고 서체를 연습했었던 방이라면? 미술선생님이 앞에 받침대 위에다 세워 놓은 좁장하고 섬세한 신비롭게 모방한 로마식 유리병을 그렸고, 모든 종류의 서체를, 고서체, 로마서체, 이탤릭, 장식체 등을 연습했던 곳이라면? 나는 그 시간을 학교생활을 통틀어 가장 싫어했었다. 시간 내내 지루함을 짓씹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제대로 꽃병을 그리거나 서체를 그려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답답한 칠의 지루한 벽들을 마주하고서 나의 저주 나의 증오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내 속에는 어느 것도 말해주는 것이 없었다. 나는 멍하니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지웠고, 연필을 깎았고, 지웠고…… 그 뿐 ……

  나는 어떻게 부상을 입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팔들을 움직일 수 없었고, 오른 쪽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다리만 겨우 움직였다. 나는 사람들이 내 팔들을 몸뚱이에 묶어놓았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꽊 묶어서 절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두 번째의 담배도 뱉어냈다. 밀짚자루들 사이의 통로에다가. 그리고는 팔들을 움직여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게 너무도 아파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계속 소리쳤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언제고 좋았다. 팔들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화도 났다.

  그러다가 의사가 내 앞에 왔다. 안경을 벗어들고는 내게 눈짓을 보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의사 뒤로 내게 물을 가져다주었던 소방대원이 서 있었다. 그가 의사의 귀에다 대고 무어라 소곤거렸다. 의사는 안경을 다시 썼다. 나는 두꺼운 안경유리 너머로 그의 큰 회색의 눈을, 가볍게 떨리는 동공을 분명히 보았다. 그는 나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너무도 오래 동안이라서 나는 그만 눈을 돌리고 말았다. 그는 나직이 말했다, “잠시 만요, 곧 당신 차례가 ……”

  그리고서 그들은 내 옆에 누어있던 병사를 들어 올리더니 칠판 뒤로 데려갔다. 나는 그들이 가는 쪽을 따라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칠판을 떼어서 비스듬히 놓아두었는데, 벽과 칠판 사이에 침대보가 걸려 있었다. 그 뒤에는 밝은 불빛이 타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천이 다시 옆으로 젖혀지고 아까 내 옆에 누어있던 병사가 다시 실려 나왔다. 운반병들은 지치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문으로 끌고나갔다.

  나는 다시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넌 알아내야해, 어떤 부상을 당했는지, 지금 너희네 학교에 와 있는 것인지를.

  모든 것이 참 냉랭하고 무감각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나를 죽음의 도시의 박물관으로 끌어다 놓은 것처럼. 내 눈이 알아보았지만, 오직 내 눈만이 알아보았지만, 무감각하고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던 세상을 지나서. 내가 석 달 전까지 이곳에 앉아있었다는 것, 꽃병을 그리고 서체를 그려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쉬는 시간에 잼과 버터 바른 빵을 들고 내려가, 니체, 헤르메스, 토고, 카이사르, 키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지나서, 메데이아가 걸려있는 아래층 복도를 천천히 지나서, 그리고는 우유를 마시러, 아무리 금지가 되었다 해도 담배를 피우는 모험을 할 수도 있었던 어스름한 작은 방에서 우유를 마시러 관리인에게로, 비르겔러 씨에게로 갔던 것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분명히 내 옆에 누어있었던 그를 아래로 데려갔다, 사망자들이 누어있는 곳으로. 아마도 사망자들은 비르겔러의 잿빛 작은 방에 누어있을 것이었다. 따뜻한 우유 냄새가 나는 곳, 먼지 냄새며 비르겔러의 싸구려 여송연 냄새가 나는……

마침내 운반병들이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나른 들어 올리더니 칠판 뒤로 데려갔다. 나는 다시 둥둥 떠갔다, 이번에는 문 곁을 지나서. 둥둥 떠 지나가면서 나는 그것마저 일치한다는 것을 보았다. 문 위에는 한 때, 그러니까 아직 학교가 토마스-학교라 불릴 때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은 십자가를 떼어냈는데, 거기에는 새로이 어두운 노란색 흠집이 생겨났다. 십자가 모양으로 단단하고 분명하게, 그건 마치 그들이 떼어낸, 낡고 희미한 작은 십자가 자체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보였다. 십자가의 흔적은 벽의 퇴색한 도료 위에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남아있었다. 그들은 화가 나서 벽 전체를 새로이 칠을 했는데,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칠쟁이가 색조를 정확하게 맞추지 못했고, 십자가는 갈색조로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런데 벽 전체는 장밋빛이었다. 그들은 투덜대었지만 소용없었다. 십자가는 벽의 장밋빛 위에서 갈색으로 분명하게 남아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들의 페인트 예산이 소진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으리라. 그 십자가가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잘 들여다보면, 수년 간 회양목 가지들이 걸려있었던 오른 쪽 발코니 위에 분명한 대각선 흔적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직 학교에 십자가를 걸어놓는 것이 허용되었을 때 관리인 비르겔러 씨가 그 뒤에다 걸어놓았던 것인데……

  그 모든 것은 내가 문을 지나서 칠판 뒤로, 눈부신 불빛이 타고 있는 곳으로 들려가는 순식간에 떠올랐다.

  나는 수술대 위에 누어서 내 몸을 아주 분명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주 조그맣고, 오그라든 모습으로, 머리 위 조그맣고 하얀 전구의 맑은 유리 안에는 가느다란 두더지 색 꾸러미가 마치 특이하고 섬세한 태아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저 위에 있는 그것이 바로 나였다.

  의사는 나를 등으로 돌려놓더니, 탁자 옆에 서서 거기서 기구들을 헤집어 찾고 있었다. 소방대원은 널찍하고 늙은 모습으로 칠판 앞에 서 있었고 나에게 미소를 건넸다. 그는 피곤하고 서글프게 미소를 지었고, 수염 더부룩한 그의 더러운 얼굴은 잠자고 있는 사람의 얼굴 같았다. 그의 어깨 너머로 칠판의 끈적끈적한 이면에서 난 뭔가를 보았다. 내가 이 죽음의 집에 온 이래 처음으로 내 심장을 느끼게 한 무엇이었다. 내 심장 속 어딘가 비밀스런 방에서 나는 깊이 끔찍하게 놀랐고, 심장은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칠판에는 내 글씨가 있었던 것이다. 위쪽 맨 위 줄들이. 나는 내 서체를 안다. 그건 마치 우리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 마냥 더 나빴다, 훨씬 더 분명했다. 그리고 내 서체의 일치성을 의심할만한 어떤 가능성도 없었다. 모든 다른 것은 증거가 아니었다, 메데이아도 니체도 디나르 시골 배경 영화 프로필도 아니었고, 토고의 바나나 그림도 아니었다. 문 위에 걸린 십자가도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 모든 것은 어느 학교에서나 다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학교들에서 내 서체로 칠판에 글을 쓸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거기 그것이, 당시에 우리가 써야만했던 그 명구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 저주 받은 생에서 겨우 석 달 전으로 되돌아가서 그때. 길손이여, 혹여 스파(르타)에 가시거든……

  아, 나는 안다, 칠판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미술선생님은 화를 내셨다. 나더러 제대로 분할을 못했다고, 서체를 너무 크게 잡았다고. 그래놓고서는 선생님 자신도 고개를 갸웃둥거리시며 그 아래에다 똑같은 크기로 따라 적으셨다, 길손이여, 혹여 스파(르타)에 가시거든……

  모두 해서 일곱 번 거기 그렇게, 내 서체가 남아있었다. 고서체, 프락투어, 이탤릭체, 로마서체, 이탈리아 서체, 장식체. 그렇게 일곱 번 분명하게 또 가차 없이. 길손이여, 혹여 스파(르타)에 가시거든……

  소방대원은 이제 의사의 가벼운 부름에 따라 옆으로 비켜섰다. 그래서 이젠 내가 그때 서체를 너무 큰 것으로, 구두점은 너무 많이 택했기 때문에 약간 훼손된 경구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좌측 상박에 동통을 느꼈을 때 나는 솟구쳐 경련했다. 기대어 억제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내 몸을 온통 감았는데, 내겐 팔들이 더 이상 붙어있지 않았다. 오른 쪽 다리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레 뒤로 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스스로 기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함을 질렀다. 의사와 소방대원은 나를 얼이 빠져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만 주사기의 플라스크를 눌렀다. 플라스크는 천천히 조용히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다시 한 번 칠판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소방대원이 내 곁에 바짝 다가서서 그것을 가렸다. 그는 내 어깨를 꽊 붙잡았다. 나는 헤진 그의 제복의 탄내 나는 더러운 냄새를 맡았고 그의 지치고 슬픈 얼굴을 보았을 뿐이다. 그제서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비르겔러였다.

  ‘우유를’이라고 나는 나직이 말했다.

 

주석 ------------------------

1) 메데이아: 안젤름 포이어바흐의 그림(1870). 메데이아가 두 아들을 안고서 남편 이아손의 배신에 갈등하고 있는 그림. 원본은 뮌헨의 노이에 피나테크 소장.

2) 가시를 뽑는 소년: 로마에서 발견된 73㎝의 브론즈 상으로, 고대의 유물로 간주됨. 원본은 런던의 영국박물관 소장.

3) 프리즈: 건축물에서 보는 띠 모양의 장식.

4) 선제후: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선출하는 선거인단: 황제 선거는 1198년부터 1806년까지 행해졌다. 마인츠 대주교, 쾰른 대주교, 트리어 대주교, 라인 궁중백, 작센 공,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보헤미아 국왕의 7인.

5) 노 프리츠: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재위 1740~1786)의 애칭. 국민의 행복 증진을 우선한 계몽전제군주로 평가된다.

6) 헤르메스 기둥: 4세기경의 유물로, 86㎝ 석회암 난간모서리 장식. 원본은 파리의 루루브르 박물관 소장.

7) 벤도르프: 라인란트-팔츠 주의 작은 도시, 작품이 발표된 1951년 당시 주민은 13,000명 정도, 현재에도 16,538명이 25㎢ 안에서 거주하는 소도시. (광주 면적의 1/20, 인구는 1/90)

8) 인문계 고등학교 셋: 이것은 허구로, 현재에도 김나지움은 한 곳 뿐.

9) 디나르 족: 유럽 동남부, 발칸 산지 아드리아 해 주변에 거주하는 인종.

10) 제목: 시모니데스의 「테르모필레의 전몰용사의 비」에서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죽어가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외친다. “길손이여. 그대 스파르타에 가시거든 게서 말해주오, 법이 명했던 바대로 우리 여기 쓰러져 있음을 보았노라고. Wanderer, kommst du nach Sparta, erzähle dorten; du habest uns hier liegengesehen, wie das Gesetz es befahl.” 히틀러의 독일이 법의 이름으로 소년들을 징집하고 그 법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가를 외치기 위해 작가 뵐은 레오니다스를 인용했다. 뵐은 그의 작품에서 “전몰, 전사 gafallen : 떨어져 죽다”라는 우회적 표현을 거부하고 기필코 “살해당했다 getötet”는 표현을 고집한다.

11) 프락투어: 옛 독일어 고유의 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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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출처: Heinrich Böll: Wanderer, kommst du nach Spa……(195), in: Romane und Erzählungen 1, Hrsg. v. Bernd Balzer. Köln 1977, S. 195~202.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