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22. 4. 12. 15:51

 침묵과 침묵 사이 

 

[가만보인다. / 산 것들나무들 꽃들 사람들, / 하나같이 햇빛 어딨어빈자리 어딨어목말라 목을 뺄 때 내색 않고 옆에서 태연히 식던 꽃이 누구였더라? / 삶이 뭐냐 따위는 묻지 않고. //
                         
                        황동규 누구였더라?」 중에서

 

 

    침묵이 수다로 바뀌는 일은 가끔은 생각 보다 쉬웠다. 오후 재가요양 ‘어르신’네 집 이야기다. 어떻게 된 게 이 집은 뭔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햇수로는 3년차이지만 속내를 잘 몰라서다. 그런데 여름 들어 이 보호자 할머니가 수다다.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이게 몇 번째 송이인 줄 아세요? 저 가느다란 첫 줄기에서 어쩜, 상상이나 되세요? 이건 확실히 어디서 날아온 꽃씨라니까요. 저쪽 내가 씨 뿌려놓은 나팔꽃은 푸르스름 보라, 애잔하게 몇 송이 피다 말더니. 요놈들은 완전 다른 진분홍, 분명 개량종이죠? 개량종이라 이리 튼실한가!

    이 줄기를 모두 합치면 몇 미터나 될까요? 베란다 천장까지 2미터, 거기서 창틀 위로 건너간 1미터, 또 뻗어나간 줄기는 3미터는 되죠. 그것이 두 줄이다가 한 줄은 다시 돌아왔으니, 10미터는 훨씬 넘죠. 한 줄기에 스무 송이 넘게 피었다니까요. 아니 또 중간에서 돋아난 줄기도 3미터 넘게 뻗었죠. 오고가고 그러다 만나서 이젠 엉클어져 버렸어요. 칠팔십, 아니 백 송이쯤 되나 봐요, 세상에나.

 

    나는 꽃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흘려들을 밖에. 그렇게 혼잣말이 된다. 혼잣말이 되더라도 이 답답한 할머니의 수다는 침묵보다는 낫다. 아니, 말해도 안 들으니 침묵과 뭐가 다른가. 아니, 수다가 훨 낫다. 아무 말 없이 가만있으면 혹시 내게, 요양보호사에게, 불만이 있어 어둡나 살짝 걱정도 된다. 물론 불만을 말한 적은 없다. 신기하게 한 번도 없다.

    아무튼 한두 번도 아니고 여름을 내내 나팔꽃 하나로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꽃이 밥 먹여주나 말이다. 꽃들은 보통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원래 화분 가꾸기를 좋아했었다는 어르신은 베란다로 나가면 닫힌 말문을 열게 하기가 쉬웠다. 어르신도 한번 침묵을 깨면 한참씩은 말을 하신다. 말 대접으로 또는 심부름으로 화분을 사다드리기도 하고, 또 집에서도 한두 개 가져다드리기도 했지만, 그건 나한테는 그냥 인사다.

    어느 날 내가 백장미 화분을 무겁게 사들고 들어갔을 때 보호자는 놀라워했다.

    아니, 무슨 화분이에요? 무겁기도 하겠구만!

    아, 어르신이 사다 달라고 하셨어요.

    예? 화분을 사다 달라고요?

    네, 지난번 산책하다가 동네 화원엘 가자고 하시더니, 거기 백장미가 없다고 낙담하시더라고요.

    백장미를? 백장미를 찾았다고요?

    네, 제일 좋아하시는 꽃이라고. 해서 제가 집 근처 큰 화원에서 사다드릴까 물었더니, 그러라고요. 돈도 주셨어요. 남으면 아무거나 더 사라고요. 이 제라늄도 샀…….

    재밌네. 뜬금없이 백장미라고? 하긴 요즘엔 호·불호가 사뭇 바뀌니까.

    할머니는 다시 혼잣말로 들어갔다, 말을 나누다 말고.

 

    그러고는 여름 내내 어르신은 백장미 화분만 지켜보곤 했다. 겨우 한 두 송이가 피어났을 땐 정말 백장미가 맞다고 좋아하셨다. 어르신에게 다른 화초들은 없었다. 나팔꽃 송이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피어나도 없는 꽃이다. 그러니까 단 두 사람이 살면서 나팔꽃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한 사람은 나팔꽃 보는 일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 다른 한쪽은 나팔꽃이 보이지도 않는지.

    두 분 신기하세요. 한 분은 나팔꽃만, 한 분은 백장미만 보시고!

    …….

    불리할 때 입을 닫는 것은 이 할머니의 특기다.

    두 분, 말씀이 너무 없으세요. 서로 말씀하시는 것 못 봤네요. 두 분만 있을 때도 그러세요?

     …….

    싸우지도 않으세요?

    그런 거죠, 뭐. 그저 길손들이니까.

    네?

    길가다 만난 사람들, 길손 몰라요?

    부부를 어떻게…….

    길손이라 해서 섭해요? 어떤 인연이더라도 서로에게 손님, 함께 걸어가는 길손 맞지요. 삶이 뭐냐 따위는 묻지 않고. 목말라도 그냥.

    갑자기 삶은 무슨 말씀?

    아, 어떤 시 구절.

    무슨 시씩이나! 머쓱해진 내가 입을 닫았다. 그럴 때가 많다.

    할머니는 에코백을 들고 나간다. 어르신은 아까부터 고개를 비뚠 채 잠들어 있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다. 뭔가 모를 답답함에 움직이지 않아도 덥다.

 

 

    여름이라지만 왜 이리 더울까. 참을 수 없는 더위는 없다고, 그리 알고 살았다. 그에 비해서 참을 수 없는 추위는 확실히 안다. 안다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 겨울 허허벌판 서울까지 올라가서는. 그때 구들장 따뜻한 엄마의 방을 그리며 눈물이라도 한 방울 찔끔거리면 더 추웠다. 빌딩의 숲은 추운 여자아이에게는 전혀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바람 쌩한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름이 되면 서러움이 덜했다. 원래 더위를 잘 견디었나 보다. 그런데 이 여름에는 덥다. 다이어트를 못해서 살이 찐 때문일까, 추운 방을 떠나 산 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일까.

 

    바깥세상이 코로나로 어지러운 데 비하면 개인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지냈었다. 그러다가 덜컥 큰 걱정이 생겼다. 지는 알아서 갈 테니께 아프지만 말게 해주셔유, 라고 기도하신다고, 딸도 수녀님인데 내 기도 안들어주시겄어, 라며 여유를 부리시던 어머니! 다른 어머니들처럼 고향에 홀로 살고 계셨다. 당숙의 오랜 친구가 70대인데도 시골에서 개인병원을 열고 있으니까, 어머니는 그 병원에 들락날락하시며 이런저런 영양제도 맞으시면서 큰 불평이 없으셨던 터였다. 4월에 시작된 백신접종도 일 없이 마치셨는데 그런 일이 터졌다니. 어버이날 즈음에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소화가 잘 안되아야, 하시는 말씀 따라서 위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별일 없었다. 연세에 비해서는 깨끗하신 편입니다! - 네, 감사합니다. 다음 날엔 버섯전골 집에도 갔었다. 부드러운 팽이를 골라가며 드셨다.

    그러다가, 막상 그러다가 정말로 큰일이 터졌다. 식사를 점점 못하시고 몸은 이상해진다고, 무엇보다 배가 많이 아프시다고. 암튼 가까이 사는 큰언니가 서둘렀고, 오빠랑 대학병원으로 모셔갔단다. 황달기도 있고, 벌써 복수가 생기기 시작하셨다니. 혹시라도 5월에 뵐 때도 황달기? 기억을 해보려 해도 그건 아니었다. 피부가 가렵다고도, 열감도 말씀이 없으셨다. 무엇보다 위내시경에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다들 안심을 한 터였다. 혼자 사는 노인의 전형적인 스토리다. 어제 괜찮으셨으니 오늘도 괜찮으시리라…… 자녀들이란, 나부터도 전화 목소리로 괜찮으시면 괜찮으시다고 생각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오히려 수년 동안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는 시아버님이 걱정 일 순위였다. 관으로 미음을 드시는데도 몇 년을 버티시는데, 받아놓은 날이려니 했지만 그렇게 지내고 계시는 터다. 시어머님도 함께 요양병원에 계신다. 경증이라서 시아버님 간병도 되고 동무도 되고 그러신다. 거기에 비하면 엄마는 마실도 나다니고, 성당과 병원에 혼자 잘 다니고 계셨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대학병원에서는 깜짝이나 놀랄 결과가 나왔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복부초음파 검사며 씨티며 엠알아이를 하면 뭣하나. 담도조영술이며 종양표지자 검사도 마찬가지. 처음에 씨티만 찍었어도 침윤 정도를 알았을 것을. 담도암이라니! 담도! 담도!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담도를 통해서 십이지장까지 가는데, 어쩌자고 담낭을 지나서 십이지장으로 가는 담도에 암세포가 생긴 것이냐고! 후회막급이지만, 후회란 때 늦어서 후회다. 간호보조사가 가진 의학상식이 별 것일까만, 일단은 의료계통 자격을 가진 자식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담석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담도염을 앓으신 적도 없는데. 평생을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사셨으니 간디스토마 그런 병에 걸리신 적도 없는데.

    그렇게 어머니는 담도암 선고를 받으셨고, 반년은 버티실 것이라는 의사의 예상과 달리 두어 달을 겨우 넘기고 가셨다. 첨에 큰언니가 언니네로 모셔갔는데, 우리 모두가 아무래도 미안해서 요양병원으로 모실 채비를 하려는 찰나였다. 나 거그는 안 갈텨! 하시던 말씀 그대로 요양병원을 알아보려던 중에 일이 터졌다. 그렇게 마지막에 가까울 때까지 자녀들이 몰랐다니. 선고 이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아무 소용없었다. 닥친 일은 닥친 일이고,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었고, 이제 와 철 좀 나니까 어머니가 가셨다.

 

    피를 나누는 것이 무엇일까. 형제자매들이 앉아서 우두커니 장례식장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물게라도 화분들도 도착하고, 또 나가서 조문객을 받고, 옆에서들 감사도 하고……. 놀랍게도 육개장에 밥들도 말아먹었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 맞다. 슬퍼도 배는 고프다. 나도 밥을 먹었다. 먹고 나서 울었다. 울고 나서도 먹었다.

    엄마아, 잉잉.

    우리 어무이는 우덜헌티 잔소리 별로 안하셨어!

    그렸나.

    맞어, 잉잉.

    자 좀 달개라.

    아서 엥간히 울어. 울어싸면 못 올라가신댜!

    근디, 잉잉, 천당 가시겄져?

    암만, 수녀님 어무니신데여.

 

    코로나로 옴짝달싹 못하는 통이라지만, 드물게라도 문상객을 맞이했다. 입관하기 전에는 아직 살아계시는 것으로 치고 절을 한 번만 할 때까진 나았다. 염을 하는 중간에 사촌오빠가 등을 돌리고 서 있더니, 누군가 오빠를 아예 밖으로 내보냈다. 나중에 들으니 무슨 회도살이라나, 어머니는 물론 우리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들인데도, 집안 어른들이 그리 시키시는 것 같았다.

    다음날 발인제를 마치고는 잠깐 집에 들러서 간단한 제사를 드리고 나니 정말 끝이었다. 어머니가 산으로 행했다. 사토제니 위령제니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 어른이 계셨지만 뭐가 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막상 갓 파헤쳐진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앞에서 딸들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울음을 땅 속으로 가시기 전에 실컷 들으시라는 것인지. 어머니는 듣지도 못하시지만, 고만 울어라 달래시지도 못한다. 영원한 침묵에 들어가신 것이다. 삶의 끝은 침묵이었다.

    세거지라서 일가친척들이 대부분인지라 지관도 계시고 해서, 사실 우리들은 하릴없이 울다 쉬다가를 반복하기만 했다. 관장을 할지 탈관을 할지는 벌써 결정했다고 했다. 흠결이라고는 없으신 어머니지만, 아버지 때도 관장을 했다고 그대로 결정했단다. 우리는 괜스레 위안이 되었다. 집을 지닌 채 들어가시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을 서로 슬쩍 나누었다. 그래도 막상 흙을 올리는 때는 정말 무서웠다. 취토 중간 중간에 왜 노래를 부르는지, 왜 빙빙 도는지 의아했지만 가만있을밖에.

    오호 ~ 에헤야, 산이 높아야 물도 깊지 ~

    그러다가 붉은 천이 내려갈 때는 정말 떨렸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은 무엇인가가 뻥 뚫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집에 가도 어머니가 안 계신다고?

 

    문경댁 무르팍 말고는 원체 암말 읎더만 속절없이 갔슈!

    그 구녁으로 간겨? 참말, 독새나 만나지 말어.

    인저 가조로니 누어 잘랑가 물러.

    엥간히 집 배까티 좋아혔으니 인저 원 없겄슈.

    우덜 몸뎅이도 얼매 안 남았제만…….

    뒷산이라서 함께 올라왔던 동네 분들이 한마디씩 탄식을 하셨다. 우리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삼우까지 지낸 다음날에는 다들 흩어졌다.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엄청 허전했다. 어머니랑 함께 살던 집이 아닌데도 집이 쓸쓸했다. 고향집에 간다…… 는 생각에 어머니가 안 계실 것이라는 상상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주 5일 근무는 요일만 세다 보면 금세 지난다. 아직도 숨 막히게 덥다. 세상은 어머니를 잃은 다섯 형제들과 무관하게 여전하다. 여름이라서 덥고, 더워도 날마다 뉴스다. 어디선가는 무슨 일인가 터진다. 무더위 못지않게 숨 막히는 뉴스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이 열리자 세상의 눈들은 그리로 향했다. 양궁 하나만 해도 사람들을 들뜨게 하기 족했다. 이 고장에서 양궁 천재가 나왔으니 더했다. 한참 더울 때 선수들을 향한 애정으로 더욱 달아오른 시간들, 그 시간도 곧 지나갔다.

    그 사이 미얀마 쿠데타가 군부의 과도정부 수립으로 막을 내렸다고, 그 뉴스는 오후 보호자의 입으로 들었다. 거기도 전**이 정권을 잡았네요. 군인들이 그렇지 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최근엔 보통 그랬다.

    거실에 어르신과 둘만 남는다. 어르신은 늘 그렇듯 말이 없다. 못 들어서 말을 안 하시는 것인지, 당연히 대답도 없다. 지난겨울 인지검사 때도 – 등급 조정을 위한 의무적인 검사다 - 결과 수치는 더 낮아졌다. 가끔의 환시와 환각을 제외하면 실제로 심각한 증상들은 없어 보이는데. 건망증도 나이 따라서 다들 그런 정도이고. 하기야 하루 세 시간을 보는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

    날마다 텔레비전은 작은 소리로 돌아가고 있다. 어르신이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도, 살짝 잠이 들 때도 그대로 켜져 있다. 올림픽이 끝난 뒤로는 코로나 뉴스가 다시 화면을 독차지한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서 1차는 40%를 넘었고 2차까지도 20% 가까이 되는데도, 아침마다 불어나는 확진자는 계속 4자리 숫자이고, 누계가 20만 명이라니 놀랄밖에. 거리두기는 수도권은 4단계, 여기도 3단계가 계속된다고. 아니, 이제 이런 발표는 뉴스가 아니고 일상인가 싶다.

 

    어느 날, 재벌 1위 삼성 소유자가 광복절에 사면될 것이라는 뉴스가 떴다. 또 찬반이 엇갈릴 것이고, 양쪽 다 옳은 말이겠지.

    기업이 돌아가야죠, 뭐?

    내가 다른 할 말도 없고 해서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할머니에게 한 마디 했다.

    들은 체 만 체다.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뜬금없었나? 그래도 했던 말인데 뭐라고 대꾸하는지 들어보고 싶어서 재차 말했다.

    다들 경제가 안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삼성, 그래서 내 주려나 봐요!

    …….

    광복절에는 어차피 사면도 있으니까요.

    아, 지 선샘, 나 정치 경제 어쩌고 하면 정말 잘 모르는데. 누구라도 감옥 나오면 좋겠지만, 누구라도 가벼운 처벌을 받으면 좋겠지만, 거 형평성도 문제요.

    형평성이요?

    무슨 형평성 말일까. 나는 왜 이리 생각이 왔다 갔다 할까. 말을 걸어놓고는 이을 말이 없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계속했다.

    그냥,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누구에게라도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 그거 저 절대 찬성이에요. 짧은 인생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죠.

    어라? 인생 어쩌고 말을 해놓고는 참 쑥스러웠다. 난 이분들에 비하면 애들 아닌가. 크게 거슬리진 않았는지, 할머니가 대꾸를 했다.

    맞아요, 남에게 도움은 되지 못해도 해는 되지 말자, 그런 정도. 그게 좋은 거죠. 하지만 뉴스를 보다 보면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이 문제지요. 남을 해치는 바이러스들, 해치면서도 그걸 느끼지도 못하는 중증 바이러스들…….

    아차, 괜히 말을 잘못 시작했나? 이 할머니가 또 이상한 수다를 시작하면 어쩌나 싶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또 사람이 아니라 책처럼 어려운 말들을 시작했다.

    사는 차이도 너무 나서 그 이질감은 더욱 벌어질 테고.

    이질감이요?

    설이라고 추석이라고 1,000만원을 주는 할아버지가 있다잖아요. 유치원도 안 간 아이가 주택 스무 채를 가진 세상이라니. 뼛속까지 다르게 태어나서 그렇게 다르게 자라니까 함께 살기가 점점 더 어려운 세상이 될까 무서워요.

    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전체가 훨 잘 사는데 뭐가 문제인가. 우리나라 경제가 50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세계가 대충 60배 성장 할 때 우리나라는 400배나 성장했다고, 남편이 으쓱 말해준 적이 있다. 나도 할 말이 있다. 해야겠다 싶었다.

    저 있잖아요, 우리나라 전체 성장률이 높으면 좋은 것 아녜요? 50년 동안에요, 세계가 60배 성장할 동안에 우리나란 400배 넘게 성장했다고. 작년엔가 그랬다던데요. 미국은 30배, 일본은 100배인가 대충.

     …….

    뭐야, 왜 또 대답이 없어? 이런 성장 발전이 대단한 것 아냐? 전체가 잘 살게 되어서 뭐가 나쁜데? 그러니 엊그젠가 아이돌 가수가 130억 아파트를 샀다는 뉴스도 있었지. 그 청담동 아파트니 펜트하우스니 하는 집들은 집값이 상상도 못할 정도다. 150평 복층 펜트하우스는 300억, 그러니까 평당 2억이라 했다. 내 소유 건물 따위는 건물도 아니다. 이 할머니는 무감각인가?

    우리나라 수준 엄청나다구요. 저, 어떤 아이돌 가수가 최근에 산 아파트가 130억이라고, 혹시 들으셨어요?

    아이돌도 모르고 아파트도 모르요.

    아**라고, 눈 예쁜 여자애, 서른 안 됐을걸요. 십대부터 엄청 잘 나가는 가수죠. 거기 청담동에는 평당 2억 가는 펜트하우스도 있대요, 150평이라니까 300억.

    무슨? 달나라 이야기에요?

    아니, 우리나라요, 서울요.

    평당 2억이라니, 그게 가능이나 하나?

    그게요, 30가구 이상만 안 지으면 분양가 상한제 그런 것 안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29가구만 지으면 집값을 마음대로.

    상한선 없이 마음대로?

    네, 상한선 없이 마음대로!

    별나라네. 별난 나라네.

    맞아요. 차이가 넘 벌어지져? 세상 요지경이에요. 도쿄에는 평당 3억이 훨씬 넘는 600억짜리도 있대요, 홍콩은 6억이 넘는 아파트도 있고, 평당.

    지 선샘은 역시 건물주답다. 건물들을 쫙 꿰고 있네요.

    세계 최고급 아파트는 2,200억이라고 하는 뉴스도 봤어요. 2,200만원이 아니라 2,200억.

    고만, 고만! 어디에나 최고는 있겠지요. 모든 노력과 운과, 암튼 그런 성공들에 박수를 쳐 줄 일인지.

    당연하죠. 성공이 미덕이라고 하잖아요.

    미덕…….

    미덕이 그런 것은 아니죠! 라고 말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내뱉은 말은 더 썰렁했다.

    헌데, 집은 그냥 집이죠. 작은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크고 넓은 집에서 잠 못 드는 사람도 있겠지요. 둘 다 죽을 것이고.

    죽는 이야기는 왜요.

 

    나는 토라지고 말았다. 이 할머니 밉다. 하필 여기에서 죽는 이야기라니.

    나는 근무 시간인데 아무 것도 않고 가만 앉아있기 뭣해서, 뭔가, 정말 그냥 한 말이었다. 아무리 아이돌이라 해도 애들이 100억도 넘는 아파트에 산다고 하는 것이 뉴스 아니면 뭐가 뉴스인가. 터무니없이 잘 사는 데에 눈이 뒤집혀서 한 말도 아니고.

    나도 살만큼은 산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남편은 공무원이고 퇴직하면 연금을 받을 것이고, 나는 국민연금 제대로 들어있고 내 건물 있으니 기본은 되고 남을 터. 농가주택은 어떤가. 일단 기분 좋은 뜰이고 밭이다.

    어머나, 애호박이 저절로 벌어져 버렸네!

    아무리, 설마.

    설마라고 말하며 다가오던 남편이 놀란다.

    정말이네. 넘 더워서 그런가. 이런 건 첨 보는데? 애호박이 쩍 벌어지다니. 온난화 문제인가…….

    저 그런데, 올해도 까만 나비 날아올까?

    남편이 지구 어쩌고 할까 봐서 나는 얼른 말을 바꾼다. 머리 아픈 건 정말 싫다.

    아녀. 더 있다가 저쪽 방아꽃이 필 때야 날아올 걸. 왜 하필…….

    나는 냉큼 넝쿨콩 쪽으로 향한다. 도망치는 것이다. 남편은 연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방아꽃은 맥문동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게 계속할지도 모른다. 말도 잘 하지만, 실은 훤칠하고 잘 생겨서 예능에도 어울릴 것이다.

아무튼 비타민 넘친다는 풋고추는 여름 내내, 상치, 깻잎, 오이 뿐인가. 양파, 감자, 고구마, 깨, 김장 배추……        남편은 귀한 초석잠이나 마도 심는다. 부지런한 사람이랑 함께 살면 좋기도 나쁘기도 하지만, 일단 마트 갈 일도 줄이는 것이 남편의 살림이다. 물론 김장까지는 좀 심하다고 느끼지만, 어쩌랴. 보람도 있다. 여기저기 퍼 나르면 다들 고마워한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다. 시댁에서 반찬 싸주면 가다가 버린다는 젊은 며느리들 이야기는 말로는 들어보았지만, 내 주변에는 없는 것 같다. 내 땅에서 나는 것들, 이 모두가 평생 노력한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좋다. 그래, 조금만 더 열심히 인내하고 모으자. 내 이름은 지은이, 요양보호사!

    예쁜 배우가 요양보호사 공익광고에도 나왔다. 복지센터 이름이 적힌 앞치마를 입고 근무하는 우리들 실정을 모르는지, 빨간 투피스에 긴 긴 머리를 휘날리는 것이 우습기는 했다. 어쨌거나 ‘아줌마 아니에요. 요양보호사예요.’ 라는 문구로 사기를 북돋아준다. 좋은 나라다. 요양보호사에게도 좋은 나라.

 

 

    요양보호사가 실제로 병원과 싸워서 이기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그러니까 큰 병원들의 꼼수를 요양보호사들이 이겨낸 일이 있었다. 이른 봄이었다. 요양보호사 4명이 병원 상대로 임금체불 소송에서 이겼다는 뉴스에 센터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문제된 요양병원은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근무방식이라 했다. 깨어서 24시간을? 말도 안 되는 조건이지만 그런 3교대제도 실은 많다. 그 24시간 근무 중에 명색 야간 휴게시간이 5시간 있었다 했다. 하지만 실상으로는 비상상황에 대응하려고 병실 근처에 있었다고 하니까, 그게 무슨 휴게시간이냐고! 야간 휴게시간이란 임금에서 5시간씩을 제하는 꼼수였다고 판결난 것이란다.

    휴우, 간호조무사 3교대 시절 생각이 새삼스럽다. 일일 8시간 교대도 힘든데,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근무방식은 살인적 아닐까. 어떻게 24시간을 버틴단 말인가. 나는 확실히 그건 못한다. 더구나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는 계급으로 말하면, 계층인가, 아무튼 바닥이다. 나는 간호보조원 시절부터 사다리가 너무 뚜렷하게 심장에 박혀서인지, 무슨 위치를 설명하려면 사다리가 먼저 떠오른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당연히 맨 아랫자리다. 더구나 ‘선생님’ 아닌 ‘여사님’이라 불린다. 특히 간호사들이 꼭 ‘여사니~임’ 하고 부른다. 그렇다고 내가 뭐 ‘지 여사님’ 보다 ‘지 선생님’ 소리를 듣고자 요양병원 근무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들처럼 집으로 서비스 나가는 재가방문요양의 경우는 내 생각에는 자유가 있다. 수급자 측에서 우리를 ‘자를’ 수도 있지만, 우리도 불편한 수급자의 경우 서비스를 거절할 수 있다. 나도 지난번 오전 고엽제 어르신을 곧 그만두겠다고 센터에다 말했고, 그만 두었다.

    물론 수입 면에서는 약하다. 그러니까 요양병원 근무와 재가방문요양 또는 주간보호센터 근무 등을 우리가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다. 알아서 하는 것은 작은 일이라도 기분이 좋다. 나는 간호조무사 평생 직업을 마치고 일을 쉬기로 결정했을 때도, 아니, 얼마큼 쉰 뒤에 다시 이 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순전한 자유 결정이었다. 그래서 맘 편하다. 그리고 간호조무사 때처럼 전문학원에서가 아니라,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야간이었지만 대학에서 딴 탓에 스스로 뿌듯하기까지 하다. 사회복지과에서 이론강의, 실습연습, 현장실습 각 40시간의 정식 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크다. 문제는 그래보았자 근년 들어 간단히 자격증을 딴 사람이건 누구건 임금이나 대우에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또 이상한 것은 5년 차인 나와 신입의 시급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전히 알바 개념인 것이다.

    아무튼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요양보호사들의 결기가 대단했다. 4명이 한 뜻으로 뭉쳐서 가능했겠지. 나 같으면 뭉치자 해도 피했을 것이다. 나는 불평보다는 침묵으로 삭히는 쪽,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식이다. 제도나 현상을 굳이 고치려 힘 빼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그냥 내가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일을 찾는다.

    그런데 어디에나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눈꼴사나운 일도 보게 된다. 누구나 다 꼼수를 쓰기 때문이다. 편의점 등 알바들에게도 주인들의 꼼수가 애를 먹인다. 내 첫 알바의 경험은 - 참 옛날 일이다 - 기억 속에서라도 되돌리기 싫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그때는 확실히 옛날이었다. 친척집이라는 어정쩡한 관계는 정확하게 시간 수당을 따질 처지도 안 되었고, 그냥 주는 대로 용돈만 받은 셈이었다. 그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두 번째 알바부터 혹은 그 다음 어떤 직장에 들어갈 때도 일단 조건부터 분명히 따지고 확인하고 그러기 전에는 일을 시작을 안했다. 그런데 몇 십 년을 지나도 꼼수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간호보조사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일을 쉬었을 때, 그러니까 전업주부가 되려는 찰나, 그때도 한 두주 쉬고는 왠지 좀이 쑤셔서 일단 간단한 알바라도 해보자 했었다. 그때 나는 동네 편의점에서 12시부터 4시라는 점심시간대를 부탁받고, 잠시니까 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4시에 교대하는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로, 자기는 4시부터 11시까지, 그 다음 대학생이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그리고 이른 아침 세 시간을 주인이 직접 챙기고 다시 9시부터 4시까지 다른 여자가 7시간 그렇게 돌아갔었더란다. 그러다가 웬일인지 주인이 오전시간을 더 하고 오후 네 시간만 남겨 놓은 거라고.

    아니, 세 사람 쓰면서 각 8시간이 아니고 7시간씩? 복잡하네요.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저녁시간 여자는 내게 알바 한다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시선을 던졌다. 시급 계산에서 복잡해지는 풀타임 8시간은 절대로 주지 않는 것을 모르냐고! 모든 편의점이며 그 비슷한 알바들이 다 그렇다는 것. 그게 주인들의 꼼수라고. 모르면 바보고.

    옛날에는 꼼수를 쓴다고 하면 일단 쩨쩨하게 군다는 형편없는 뜻이었는데, 이제는 애교 정도인가 보다. 살려면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말에 비해서, 살려면 꼼수도 알아야지, 라고 하면 훨씬 낫지 않은가. 마치 사회생활에서 줄다리기나 숨바꼭질 같은 것, 죄를 짓는 건 아니고도 잘하면 이득을 볼 수 있는 행동들을 꼼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묘수 같은 셈이다. 그런데 대형 병원들조차? 내가 편의점 주인이 된다면? 모르겠다. 어느 만큼의 꼼수부터 죄가 되는지 세상엔 모르는 일 천지다.

 

 

    세상이 어떠하든 나는 열심히 잘 지낸다. 어머니는 청주에 계시다가 하늘나라에 계신다. 아니 지금도 청주에 계신다. 톡 프사에 올려놓고 영상 통화하듯 들여다본다. 소리만 없다. 침묵의 영상통화.

우리 은이는 잘 웃어서 이뻐. 어여, 웃어봐. 이빨도 가조로니 얼마나 이뻐. 노상 그러고 살어. - 주문처럼 어머니의 말이 들린다. 침묵의 말이다.

 

    요즘에는 오전 일도 다시 시작했다. ‘고엽제 어르신’ 집을 그만 둔 한참 뒤부터다. 혼자 계시는 이 까칠한 ‘할머니 어르신’은 까칠한 성격 좀 참아주면 된다. 이 할머니도 그러고 보니 암환자였다. 항암치료 중이었는데, 암 전문병원에 가는 날은 딸이 모셔가므로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저절로 쉰다. 받아온 주사약을 가지고 중간급 병원에 맞으러 갈 때는 내가 모시고 가는데, 택시비 때문에는 매번 불편하다. 택시 값이 들쭉날쭉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기사에게 불평을 늘어놓으신다. 그러면 젊은 내가 무안해지는 것이다. 이럴 땐 수급자를 차에 태워 다니지 않는 내 원칙이 조금 흔들린다. 하지만 아니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같은 센터 요양보호사들의 경우 수급자를 태우고 다니다가 접촉사고도 내고 그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수리비나 합의금은 누가 주어야 맞는가. 그런 복잡한 일을 왜 하는지 모를 일이다. 매번 기름 값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데 또 이해 못할 일이 있다. 이 오전 할머니는 따뜻한 물도 못 쓰게 할 만큼 절약형인데, 미장원에 가서 염색도 하고 오고, 은근히 이런저런 물건들도 사들인다. 나이로 보면 오전 ‘수급자 할머니’가 오후 ‘보호자 할머니’보다 좀 많아 보인다. 아니, 상당히. 그런데 오후 보호자는 거의 아무 것도 사지 않는다. 나도 웬만하면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지 않는 편인데, 나보다도 더한 것 같다. 근처 시장이나 슈퍼 갈 때도 입던 그대로 겉에만 아무 거나 걸치고 나간다. 마스크를 쓰기 때문이겠지만 화장도 없다. 하루에 두 집을 다니니까 나도 모르게 비교가 된다.

 

    오후 ‘할아버지 어르신’은 지금 독서에 열중해 있다. 독서는 그 자체로서는 뇌 활동에 좋지만, 더더욱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다. 거실이 너무 조용해서인지 보호자가 나온다.

    오늘은 어르신이 책이 재미있으신가 봐요.

    그래도 뭔가 말을 하도록 해야…….

    입 닫으시면 어려워요.

    알아요, 내가 더 잘 알죠. 우린 서로 하는 말이 별로 없어요. 오래 함께 살다 보니까 할 말을 다 해버렸나, 뭐 그런 것. 우물을 다 퍼내서 말라버린……. 그보다, 말 해도 모르는 것은 모르고, 안 해도 아는 것은 알고.

    뭐예요? 말을 해야 알죠. 나팔꽃 이야기를 나한테만 하시니까, 어르신은 완전 모르시잖아요.

    알고도 말 안할 수도 있어요. 말을 꼭 해야 하나요?

    말도 그리 안 하시면, 하루 종일 뭘 하세요, 그럼? 제가 와 있는 시간에나 좀 나가시고 그러세요. 산책이라도 다녀오시고.

    맨날 시장 가잖아요, 병원도 다니고.

    아니, 먹거리 시장 말고요. 산책하신다 하고 시장 줄줄이 상점들 구경이라도.

    살 일이 있어야 말이죠. 지금 있는 것들, 글쎄, 못 다 쓰고 죽을 걸요.

    에이, 또 죽는다는 소리!

    어느 순간 돌아보니까 버릴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오래 살았고 많이 샀다 싶네요. 옷이며 뭐며, 이게 다 쓰레기인데.

    옷은 따로 버리잖아요, 관급봉투 안 쓰고. 무슨 걱정이세요!

    봉툿값 그 말이 아니라. 길어지는데.

    길어도 괜찮아요, 듣고 싶어요. 다들 새 옷을 좀 사잖아요, 요즘은 비싸지도 않고.

    그러게요.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연간 68벌을 산다는 통계도 있던걸요. 그 중 10퍼센트 이상을 입어 보지도 않고 버린다고.

    설마요, 저는 6벌도 안 사는데…….

    알지요, 그래서 내가 ‘이쁜 지 선샘’이라 그러죠. 들어보세요, 재미있는 이야기.

    뭘요?

    동생네 딸 말인데요, 웃지 마세요! 그러니까 조카딸이 엄마랑 쇼핑을 갔는데, 제 엄마가 자잘한 것들 재미로 사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엄마, 또 예쁜 쓰레기 사려고? 그랬다네요. 살 때는 가볍게 사니까 과잉소비라고 생각 안하죠. 하지만 별로 쓰지도 않고 또 한철 지나면 버리고, 그러니까 예쁜 물건이기는 해도 결국은 쓰레기를 사는 셈이라는 거죠.

    예쁜 쓰레기?

    맞아요. 우리가 재활용수거함에 옷들을 버리면 다 누가 재사용하는 줄 알지요? 그런데 5퍼센트 겨우 쓰고, 나머지는 수출이라네요. 인도나 캄보디아 등 그런 데로, 아프리카로도. 가나라던가, 거기 어디 이야기를 봤는데요. 인구 3,000만에 일주일에 1,500만 벌이 들어오면 절반은 쓰레기고, 처리만 곤란하다고. 70억 명 사람들이 지구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옷을,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 내게요?

    상상이…….

    상상 안 갈 걸요. 일 년이면 만드는 옷이 1,000억 벌이래요. 시간 당 1,000만 벌을 생산하고 그 중 300만 벌은 버려진다네요. 연 330억 벌을 버린다고요.

    설마요.

    나 이 숫자 잘 외웠는지, 뭐 틀릴 수도 있겠지만, 암튼 엄청난 숫자의 옷들이 생산되고 버려지고, 지구는 그 쓰레기를 감당할 수가 없고…….

 

    핸폰이 울린다. 넘 다행이다. 머리 복잡해지는 이야기에서 구해준다. 침묵이 답답해서 말을 시키면 이 할머니는 엉뚱하게 해골 아픈 이야기를 하곤 한다. 침묵이 나으려나. 모르겠다.

    퇴근 후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 출발했나 채근하는 친구가 꼭 있다. 사회복지학과 시절 친구들은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야간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나이도 서로 다르지만, 몇몇은 계속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 모두들 열심히 사는 일에서라면 우승컵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다. 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친한, 사랑하는 남편과가 아니라, 이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면 왜 그리 즐거울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말들, 말들.

    어서 가 보세요!

    네, 뭐! 지금 가면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아직…….

    그러게요, 조금 일찍 나갈 수가 없다면서요.

    네, 태그 찍는 것, 칼이에요.

    앞치마를 벗어 두고 핸드폰을 챙긴다. 마지막 3분 4분이 엄청 길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몸조심하세요! - 이런 인사말은 노인들에게 환자들에게 알맞은 말 같다. 나로서는 습관이다. 한번은 이 할머니가, 예, 밤새 몸조심할게요! 라고 대답해서 조금 이상했다. 하루 사이 몸조심 할 일은 아닌가? 얼핏 놀리는 것 같았지만 알게 뭐냐. 몸조심보다 좋은 인사말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우렁차게, 두 번은 어떠랴.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예, 내일 봐요.

    판에 박은 인사말을 들으며 계단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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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침묵 사이」, 『국제PEN광주』 19호 2021.12. 168~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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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2. 2. 18. 22:43

먼지 

 

     먼지라니, 사람을. 사람이 다 먼지인가…….

읽던 책을 덮고 일어나면서 보호자가 뭐라고 중얼거린다. 오후 재가요양돌봄 ‘어르신’의 보호자 말이다. 이 시간, 보통 때 같으면 당근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고 있었을 텐데 웬일일까. 책을 읽다가 밥시간을 놓치다니, 드문 일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더 쉬고 월요일에 출근했을 때다. 밥은 준비 되어 있었고, 차리는 일만 남아서 조금 서둘러 상을 차린다. 내가 오전 집에서 오후 집으로 바로 이동하는데, 점심은 오후 집에서 어르신을 돌보면서 함께 먹는다. 점심 후에는 보호자랑 둘이서 커피를 마신다. 보호자는 할아버지랑 이야기하고 놀아달라고 한다. 너무 많이 자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니 깨워보란다. 할아버지는, 어르신은, 점심을 드시자마자 그새 또 잠 속에 빠진 자세다. 이 어르신은 요즘 들어서 밥숟가락을 빼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잠에 빠진다. 내가 청소기를 돌려도, 청소기 소리가 시끄러워도 개의치 않는다. 보호자는 별로 어질러 놓은 것도 없으니 청소는 하루 걸러서 하란다. 실제로 청소기 먼지 통에 올라오는 것도 별로 없다. 그렇다 해도 내게도 3시간 일의 리듬은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그보다 궁금한 말이 입에서 맴돈다. 사람을 먼지라 어쩌고 중얼거린 것, 무슨 말이었을까. 물론 말은 추석 연휴부터 꺼낸다.

추석 연휴 힘드셨지요? 근데 아까 먼지 어쩌고 하신 말씀은 뭐예요?

힘들 것까지야. 지 선샘은 잘 쉬었어요?

     먼지 이야기는 잊었나, 그냥 흘려버린다. 나도 그냥 딸네가 왔다 간 이야기, 사위가 오니 확실히 음식 신경이 쓰이더라는 이야기로 대꾸할밖에. 보성 시댁에서 동서들이랑 모였던 이야기도 덧붙인다. 내가 모이자고, 딱 네 집만, 여덟 명 거리두기 숫자는 지켜서 모였었다고. 말을 하다 보니 눈물이 난다. 명절이면 꼭 찾았던 친정집이 하늘이라는 사실, 아니면 땅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판다.

 

     이 보호자는 나에게 잘 대해주는 편이다. 꼬박 ‘지 선샘’이라 부르고, 딱히 요구사항도 없다. 나더러 곧잘 ‘이쁜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번에도 맏이도 아니라면서 식구들 불러 밥 먹이고 그랬다고 칭찬이다. 이 보호자 할머니도 추석 연휴에 힘들었을 것이다. 명절이면 인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사실 환자 어르신은 연휴 지나고 더 밝아진 느낌이다. 아까도 꽂히는 음식이 있어 잘 드셨다. 그때그때 어떤 특정한 반찬에 집중하시는데, 그걸 예측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어르신이 연휴기간에 컨디션은 괜찮았고, 산소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놀랍다. 물론 함께 부축할 요량으로 사람들 여럿이 모시고 갔겠지만, 산소에 가는 것은 큰 외출인데. 이 할머니야 사람들 밥 챙겨주느라고 꼼짝도 못했을 것이다. 밥이 중한 집이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할머니가 베란다로 나간다. 그동안 물주는 걸 잊고 있었다고 놀라면서. 나도 할 일이 없어서 따라 나간다.

 

     나팔꽃 다 치우셨네요, 어머나!

     예, 영원한 것이 있나요.

     뭐야, 갑자기 철학은! 하긴 이 할머니한테는 나팔꽃이 구원 같았다. 그러기도 한다. 여름 내내 그것을 보았다. 나팔꽃은 저절로 자라고 꽃을 피우는데, 열, 스물, 꽃송이를 세는 할머니는 당황스레 좋아했다. 이제는 허전하리만치 깨끗하게 비워진 공간이 쓸쓸하다 못해 이상하다. 저쪽 넝쿨장미들은 잎들이 여전하다. 할 말이 없어서 장미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어르신이 백장미를 젤 좋아하신 게 아니었다고요? 근데 왜 그걸 사오라 하셨을까요?

     예, 느닷없어서 놀랐다 그랬잖아요. 평생 저 붉은 넝쿨장미를 끼고 살더니만, 어쩌다가 백장미 생각을 했을지. 저것들이 죽다 살다 했지만 수십 년 전에 본가 앞마당에서 가져온 것이거든요. 서너 번 이사할 때마다 들고 다녔고.

     애지중지하시던 넝쿨장미를 잊으셨다고요? 수십 년 된 걸요?

     예. 우리 집에 있는 것들은 거의 다 그러죠. 낡을 대로 낡은, 늙을 대로 늙은.

     아, 맞다! 지난해 꽃 피었던 선인장도!

     에이, 놀리지 마요! 그건 내 엉뚱한 착각이었구만. 말도 꺼내지 마요!

 

 

     말도 꺼내지 말라는 그 이야기는 싱겁기는 하다. 작년, 가을이 깊은 때였다. 점심 후 밥상을 널어놓은 채로 이 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거실로 들여놓은 화분들이 있는 쪽이었다. 꽃기린, 문주란, 산세베리아 그리고 선인장 종류들을 먼저 들여놓은 참이었다. 거기 뭉툭한 선인장 하나를 가리키면서 더듬거렸다. 키가 다 해도 10~15센티쯤 되는 작은 선인장인데, 침들만 무성하지 볼품도 없는 모양새였다.

     여기 꽃 좀 보세요! 이 작은 미세한 꽃, 꽃잎, 보이죠?

     꽃잎이라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돋보기를 꺼내서 쓰고 들여다보았다. 이런 게 무슨 꽃이라고, 꽃인들 이런 보이지도 않는 작은 꽃이 뭐라고! 그런데 꽃이었다.

     어, 어라? 정말 꽃이네요. 작은 꽃잎이 넷이네. 어떻게 딱 한 송이가 이런 가시들 사이에서 핀 걸까요? 근데 이게 왜요?

     그러니까 꽃 맞는 거죠? 꽃이죠? 이게 그러니까 40년 된 선인장이라서.

     아무리, 설마요.

     맞아요. 울 아부지.

      …….

     아부지가, 우리가 처음으로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 그때 1980년 가을에 가만히 들고 오셨어요. 이게 잘 안 큰다. 그래서 금강석이라 그러지, 변함이 없다고. 오래는 가니까 잘 키워 봐라! 그러시고는…….

     그러시고는? 괜스레 조바심이 나서 나도 모르게 채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거든요. 선인장으로 남은…….

     뒷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재빨리 부엌으로 향했다. 40년 전이라 해도 어른이었네, 뭐. 아직 중학생일 때 아버지를 여읜 나하고는 비교도 안 되잖아. 이 할머니, 이런 나이에도 감상에 젖나! 아버지 이야기라니! 하긴 나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버지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은이 니가 아부지 젤로 좋아혀서 그랴. 아니라고 내숭 뵈지 말어야. 자석이 아부지 좋아혀서 나쁘가니.

     청소기를 돌리면서 다른 상념들은 곧 잊었다. 그쪽으로 청소기를 밀고 갔을 때까지도 할머니는 여전히 선인장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해서 또 할 수 없이 듣는 시늉을 했다.

     여기저기 몇 시간째 찾아보았는데, 아부지가 말한 금강석이라는 선인장은 없더라고요. 바른 이름은 ‘금강산 선인장’이래요. 군산에선가 60대 누군가가 식물원에 금강산 선인장을 기부했다는 사진이 있더라고요. 여기 캡처, 이것 보세요. 비슷하죠? 이게 아기 세살 때부터 37년간 키운 것이라고 했어요. 암튼 이 종류 선인장이 30년, 40년을 문제없이 살아 있는 거예요. 인터넷 판매도 하는데, 10센티 그 정도. 또 다른 이름들은 암석주, 암석사자…….

     할머니는 두서없는 말들을 암기 숙제하듯 내뱉고 있었다.

     이제 좀 일어나세요, 여기 청소기 밀게요.

     사라져버릴까 걱정 돼서요. 이것 꽃 정말 맞지요? 앗, 지 선샘, 이리 와 보세요. 여기 이쪽엔 두 송이가 피었네요. 너무 작아서 안 보였나봐. 오늘 해가 안 나니까 실내가 어둡네. 이쪽은 두 송이니까 꽃이 분명해. 휴, 살았다. 착각인가, 환시인가, 은근 걱정했거든요. 환시가 무엇인지 알죠,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오늘따라 저이는 내가 들락날락거려도 신청도 안 하네요. 어제 오후에 내 커피를 반쯤이나 슬쩍 마시더니 밤새 잠을 전혀 못 잤다고, 아침부터 아예 누워만 있더니. 지 선샘, 여기 좀 봐요. 이쪽은 두 송이라니까요.

     좀 솔깃했다. 세상에 저렇게나 작은 꽃도 있으려나. 그런데 있었다. 어떻게 이리도 작은 꽃이 이쪽 하나 저쪽 둘, 자리도 예쁘게 어울리게 피어났을까.

     정말 그러네요. 정말 꽃이에요. 아깐 훅 불어 보려다가 혹시나 해서 못했는데, 이젠 불어볼까요?

     에이, 뭣하게 불어요.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40년 동안 한 번도 피지 않았던 꽃이 오늘 피어 나냐고요.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으신 것 아녜요?

     무슨 따로 좋은 일이 있겠어요. 좋은 일이라면 어제? 저녁에 외출했던 일, 일이 있었으니까. 근데 어제 우리 할아버지 정말 웃겼지요?

     둘이는 그 생각에 깔깔 웃었다.

 

     보호자 할머니가 전날 저녁 외출을 했었다. 어쩌다 그럴 때면 내가 그냥 단순 시간 알바로 베이비(?)시터 노릇을 한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일단 안방 이부자리를 살펴주고 있는데, 어르신이 아이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보호해 줘야 하는데, 내가 남자인데 혼자 집에 못 있는다고 지 선생 붙잡아 놓고, 여자는 밤늦게 돌아다니고! 그 순간 마침 들어온 할머니랑 다 같이 깔깔 웃었다. 밤늦게 아니라고, 일찍 오신 거라고, 내가 대신 변명을 했다.

     환갑이 넘으면 남자도 여자도 남자 여자가 아닌 거예요. 그냥 사람이죠.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젊은이가 덜 젊은 사람을 보호해야지요.

     할머니가 늙었다는 말을 빼려고 어렵게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또 웃음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그대로 따라서 하다가 늙었다는 말에 이르고 말았다. 내가 덜 젊다는 말이냐, 그러다가 그게 더 늙었다는 말인 걸 알아차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는, 보호를 해야 하는 쪽이 더 젊은 쪽이니 보호를 받는 덜 젊은 쪽이 낫다는, 할머니의 이상한 우김질로 끝났다.

     할머니가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또 선인장 꽃이 피어나서 설레고 있었다. 나도 따라 설렐 일은 아니지만, 워낙 함박웃음 없던 할머니가 확 밝아진 얼굴하고 있으니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어떤 일은 너무 쉽게 무너져버린다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이튿날 만난 할머니는 유난히 퍼렇게 얼어 있었다. 집 안에서도 꽁꽁. 그러니까 꽃이 꽃이 아님을 알았더란다.

     잠깐 착각으로 천국과 지옥이네요. 어제는 종일 내가 혼쭐이 나갔었나. 저녁 먹고 나서는 전등불이 밝은데도 것도 모자라 가까이 랜턴까지 들고 가서 들여다보았어요. 또 확인하려고. 그런데 불빛에 자세히 보았더니, 세상에나, 사방에 조금 큰 꽃가루 같은 것들이 널려있는 거예요. 금목서 마른 꽃들이 흩어져서요. 그 지난 주 금목서 가지들을 여기 꽃아 놓았었잖아요. 뒷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놈들 한두 가지 잘라다가. 그때 마르면서 흩날렸던 것을. 그 깨알같이 작은 낱송이 하나만 보고서 전체로 풍성한 금목서 꽃을 상상도 못했지.

     네? 꽃이 아니라고요?

     꽃은 꽃이죠, 말랐어도, 부분이라도. 그게 선인장꽃이 아니란 거죠. 그 전날 외출했을 때요, 내가 나름 중요한 일을 마무리 짓고 왔었거든요. 이래저래 맘이 들떴었나 봐요, 헛것이 보이게.

     헛것이라뇨, 그저 착각을 좀.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아니, 그냥 시시한 일. 것보다 문제는 그 여파죠. 어제 주책을 떨었단 말예요. 근년에 친구가 된 젊은이한테 선인장꽃 이야기를 떠벌렸죠. 톡으로 구구절절, 사진까지 보냈으니. 그리 방정을 떤 것이 넘 부끄럽단 말이에요. 나잇값도 못하고.

     나는 차마 말을 섞을 수 없었다. 그래도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 했다.

     나쁜 의도로 거짓말 한 게 아닌데요, 뭐.

     그런데 그 친구 하는 말이요 – 나이는 딸과 손녀의 중간쯤인데 - 적당한 비유는 아니지만 「마지막 잎새」도 가짜였지만 진짜였잖냐고! 그러니 진짜인 거래요. 가짜라도 진짜라고! 정말 위로가 되는 말이었어요. 위로 받고 싶었었는지.

     그러네요, 마지막 잎새!

     어제 아침엔 눈물까지 찔끔거리다가, 온종일 들떠서 40년의 절반은 젊어진 느낌이었는데. 얼어 죽을까 노심초사 겨울도 오기 전에 들여놓고를 40년을 반복했지만 키도 그리도 안 자라더만, 언감생심 꽃은.

     알았어요, 자, 이제 안심하시고! 추억만으로도 감사, 캄사! 또 누가 아나요? 언젠가는 정말로 꽃이 필지.

 

     그렇게 극적인 선인장꽃 에피소드는 애석한 사연을 지닌 채로 짧게 끝났다. 그런데 올여름 어르신의 백장미 사랑은 그 반전의 전개를 알 길이 없다. 빨간 넝쿨장미에 대한 평생의 사랑이 어떻게 잊혔을까. 보호자는 아예 영문을 몰라 하고, 어르신에게서 긴 줄거리를 기대할 수는 없다. 노인들을 보면 과거는 곧잘 끊기기도 한다.

 

 

     입은 채 그대로 보호자가 나간다. 슈퍼나 코 앞 시장에 나가나 보다. 나는 어르신을 깨우려고 소파로 가 본다. 어르신은 여름 내내 산책이라면 고개를 가로 젓고, 소파에서도 늘 이렇게 누운 자세다. 요즘에는 그래도 재미있는(!) 책을 읽느라고 반쯤 기대어 있는 날도 있다. 깨어나면 책을 읽을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책을 좀 읽고 싶다고 하시니까, 보호자가 들지도 못하게 생긴 아주 두꺼운 책 하나와 그 반쯤 되어 보이는 책을 내왔다. 이집에 책들은 많다. 노인들 집인데 엄청 많다. 처음에 읽기 시작한 것은 더 얇은 쪽이었는데 제목이 엄청 길었다. 『천 년을 함께 있어도 한 번의 이별은 있다』 - 그러고 보니, 어머니 상을 마치고 처음 왔을 때 보호자가 했던 말이 이 책의 제목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별 연습 책인가? 어르신은 그 책을 곧 치우고는 더 두꺼운 쪽을 시작했는데 열심이시다. 제목은 우습기까지 하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그 비슷하다. 책에 너무도 관심이 없는 나는 제목을 금방 잊곤 한다.

     어르신은 내가 탁자 위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꿈쩍도 안 하신다. 너무도 깊이 잠들어 계신다. 낮잠도 이렇게 깊을 수가. 탁자에 덮여있던 책이 눈에 들어온다. 제목이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글씨라 오히려 궁금해져서 읽어보고 싶다. 정말 작은 글씨다. (먼지의 말)이라니, 괄호 속에 쓰인 제목은 정말 먼지 같은 글자로 쓰여 있다. 어르신은 눈을 뜨고서도 움직이지도 않고 대꾸도 없다. 가만히 책을 들어본다. (없지 않은 존재들의 목소리) 라고도 표지에 쓰여 있다. 차례를 펼쳐 보니 ‘이상한 점’, ‘죽었다 아니 죽였다’ 등 조금 무서운 말들이 들어있다. ‘돌연사’, ‘우리들의 죽음’ 그런 제목도 있다. 이렇게 작은 글자들에 너무 엄청난 이야기들이 들어있나 보다. 두 번째 페이지를 넘기려니 손이 떨린다. 서둘러 책을 덮는데 보호자가 들어온다.

 

     아, 지 선샘, 책 보려고요?

     아아뇨, 저 책 별로 안 읽어요. 그냥 제목이 궁금, 잘 안 보이니까.

     먼지라니 놀랬죠? 거기 쓰여 있잖아요, 없지 않은 존재들, 그것이 먼지 같은 인생들 말인가 봐요. 먼지 취급당하는, 그렇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 말이죠. 약자들에게도 목소리가 있다고, 더 작은 목소리들을 대신해서, 먼지 같은 목소리라도 말 하련다고.

     그러니까 아까 먼지 어쩌고 하신 말씀이 이 책에? 왜 하필 먼지라고?

사람을, 약자를 먼지 취급하니까, 먼지만도 못한 없는 존재로 아니까. 해서, 먼지 같은 존재도 ‘없지 않은 존재’라고 항변하는 거요.

    없지 않은 거면, 있는, 있는 존재네요.

    예, 없는 존재들도 말을 하네요. 작가가 대중들한테 민주주의 강의를 하다가 ‘부자가 왜 나쁜가요?’ 물었더니, 어떤 할머니가 스스럼없이 그랬다네요. ‘나쁜 짓을 안하몬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모은대.’ 누구라도 터무니없이 많이 돈을 모았다면, 필시 남한테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했을 것이라는 거죠. 그 할머니 생각으로.

네?

     그런 큰돈이 나온 곳에서라면 다른 누군가는 필시 울고 있다는 말. 평생 살아보고 깨우친 이치가 그렇다는 거죠. 이 사람, 저자 채oo 선생도 해고당한 인문학자고요.

     인문학자요?

     대학강사 말이죠. 언제부터인가 교육이 완전 실용주의가 되어갔으니 인문학자는 발붙일 자리가 없는 거죠. 인문학은 교수도 인원을 줄이는 판에, 강사들 자리는 풍전등화니까.

     대학강사면 그래도, 우린 다 교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야간대학 다녔을 때 말예요, 우리보다 젊은 강사님들, 얼마나 부러워했었는데요.

     지식이 돈이 안 되면 쓸모없다고 말하는 거죠. 쓸모없다고 해고된 강사가 ‘먼지로서 먼지에게’, ‘마음이 견디지 못해, 가슴에서 돌멩이 하나를 빼내듯이’ 썼다네요.

     고약한 책이다. 대꾸할 엄두도 나지 않고, 가슴만 무거워진다.

     고전 철학 때부터 ‘정의란 강자의 이익’이라는 견해가 있었지요. 정확히는 ‘강자의 우위일 뿐’이라고. 소크라테스의 상대 편, 트라시마코스라고. 이름이야 뭐든.

     네, 저 외국 이름들 엄청 약해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 핑계를 두리번거린다.

     잠깐만요! 어르신 눈 뜨신 건가?

 

     어르신 쪽으로 가서 살펴보고 있는 동안에도 보호자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지 선샘, 우리 천주교 신자님! 천주교의 정의를 봐요! 초기 천주교 박해 때요, 죽음을 감수한 사람도 죽이는 사람도 정의의 이름이었죠. 칼 든 쪽 정의가 정의인 거죠, 나쁜 정의였지만. 그릇된 바름이 문제죠, 하물며 신앙까지도, 미안!

     나쁜 정의, 그릇된 바름, 그런 말이 어딨어요. 더러운 순백색 그런 말이 어딨냐고요! 그렇게 반박하고 싶지만 말이 짧으니 가만있을밖에. 도망칠 기회를 기다리자. 속도 모르는 할머니는 진지하게 말한다.

     저 책 『잠들면……』 은 기독교 정의를 실천하러 아마존에 들어간 선교사가 쓴 거예요. 가서 보니까 원주민들은 이미 평화로운 정의 속에서 사는 거예요. 그걸 감탄하게 되었으니 선교는 그냥 손들고 말았다는 이야기예요.

…….

     선교가 잘 먹힌 것이 우리나라 천주교였지만, 처음 피해는 엄청났죠. 내가 공자 앞에서 문자 쓰나? 천주교 박해니 그런 말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목숨까진 아니라도, 불이익, 느닷없이 해고되고 그런 사람들 숱하게 봤겠죠.

우리가 결혼 초에 근무하던 병원이 급히 문을 닫게 되었던 그때 일이 떠올랐지만 가만있기로 한다. 나는 곧 다른 병원을 찾았지만, 남편은 밤에 알바로 뛰던 병원에만 나갔고, 곧바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던 기억이 새롭다.

     책 거기 스티커 꼽아진 데 펴보세요. 해고된 톨게이트 노동자 1,500명, 강사법 시행에 해고된 대학강사가 거기 ……

     아 네, 7,834명이라고. 도살된 돼지 4,700마리와 다를 바 없다네요. 왜 하필 돼지에다 비교를…….

     다른 책에 보면요, 신문이었나, 출근 했다가 죽는 노동자가 매일 10명이래요. 이런 현실은 총알 없는 전쟁이라고. 실습 나간 고등학생도 죽었잖아요. 여기 보면, 5년간 건설현장에서만 사망자 숫자가 3,400. 먹고 살려고 일하러 가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죽다니요. 돈 만들어 내는 구조가 죽인 거잖아요.

     돈 만드는 구조라고? 점점, 불편한 말들이 속사포로 쏟아진다. ‘죽었다 아니 죽였다’에 쓰여 있는 말인가 보다. 말을 좀 돌리고 싶어진다.

     죽인 게 아니라 안전불감증 땜에 그런 거잖아요. 저번 주택재개발사업 현장에서 5층 건물이 길 쪽으로 붕괴된 그런 사고 말이에요. 조심을 안 해서.

     바로 그 안전불감증이 범인이라니까요. 하도급 또 또 하도급을 왜 주는데요. 경비 절감이잖아요. 이 책에서는 ‘노동을 갈아 넣고 주식이 버는 돈, 자본의 탐욕이 범인’이라고 하네요. 또 망각이 공범이죠, 무서운 공범들.

공범?

     김용균 죽으면 잠시 화들짝 눈물짓다가 돌아서면서 잊어버리죠. 수많은 사람들이, 기계가 아닌 사람들이 지뢰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꼴이죠. ‘누가 돈을 가져가느냐?’ 사람들이 그것을 묻기 시작했다고. 여기 그렇게. 시작은 희망이겠지요. 무엇인가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먼지 같은 존재들도 알고는 있다고.

     저, 그런데, 이런 책들을 왜 읽으세요? 사망 그런 것 뉴스에 다 나오는데?

     뭐, 다 읽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이런 책을 일단 사는 것이 그저 응원 같아서.

     응원요? 읽지 않을 책을 산다고요? 그래서 집에 책들이 많은 거예요?

     우스운가요? 입지 않을 옷을, 먹지 않을 음식물을 사는 것 보단 낫지 않나. 어렵거나 맘 불편해서 못 읽는다 해도, 그 글 쓴 사람들에…….

     이 집에 있는 책들이, 그러니까 읽지 않은, 읽지 않을 책들도 있어요?

     어느 정도는, 예.

     어의상실! 이런 할머니가, 병원비다 뭐다 돈이 남아돌아갈 리가 없는 노인이 읽지도 않을 책들을 산다고?

     책은요, 책을 쓴 사람 생각으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나. 어차피 누구나 진리를 쓰진 못할 것이고. 결과물이 미흡해도 오류는 사람의 것! 하지만 뭔가 애쓴 노력이, 그 진지함이.

     그래도요. 버릴 거면 뭐 하러 책을 사나요. 책도 공해란 말 있잖아요, 카세트처럼.

     버려진들 책은 크게 나쁜 쓰레기도 아니네 뭐. 흔적 없이 썩으니까.

     오늘은 어째 나쁜 것 이야기를 많이 하시네요.

     쓰레기도…….

 

     띵똥 – 엄청 반가운 문 소리다. 또 ‘이쁜 쓰레기’ 이야기를 하려나 머리가 아프던 순간에 알맞은 방해다. 어? 부엌 환기통 청소를 하란다. 비대면 시대에 이런 방문도 있나? 하긴 일감이 없으니 방문 청소라도 하러 다니는가 보다. 이집은 청소 전문인걸요, 완전 새것처럼 얼룩 하나 없네요. 안녕히 가세요! 어수룩한 청소업자를 돌려보내고는 서둘러 부엌을 향한다. 일단 도망이다.

 

 

     먼지의 목소리, 먼지의 이야기, 이 책은 안 버리겠네요. 우리가 다 먼지인데. 먼지에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가는 인생…….

     보호자는 여태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저 불신자의 버릇이 또 나온다. 신을 믿지 않으니까 죽네 사네를 저리 함부로 말한다. 아니, 잠깐만.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바로 창세기에 그런 구절도 있지 않은가. 내가 젤 좋아하는 재의 수요일 미사 때 신부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 순간 신부님의 목소리는 성당의 높은 천장을 넘어 하늘까지 퍼져나가고, 나는 땅에 묻혀 먼지로 돌아가리라는 깨달음을 새기곤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다시 보호자 쪽으로 향한다.

     저, 그런데 흙은 먼지가 되는 거지요?

     무슨 말이에요? 갑자기 여기서 흙이 왜?

     아니,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하시고.

못 말리는 우리 지 선샘. 맞아요, 흙으로 빚어졌으니 망가지고 부서지면 먼지가 되겠지요. 하지만 걱정 마요. 지 선샘은 영혼을 믿는 신자니까 영혼이 하늘나라로, 해서, 먼지가 될 일은 없겠네요. 안 믿는 나는 아마도 흙이나 먼지가 되고 말겠지만. 괜찮아요, 세상 만물이 다 먼지가 되는 것이니까요.

     무섭게 그러지 마세요.

     무섭다니요! 무엇이든 받아들이면 무서울 것이 없답니다. 가난도 병도 받아들이면 덜 무서워요.

     가난하지도 병든 것도 아니면서, 무슨. 이 말도 당근 속으로만 했다. 이상한 말을 잘하는 할머니랑 말씨름 할 일이 뭔가. 하지만 세상에는 살아서도 먼지 같은 인생이 많다는, 탁자 위의 저 글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가만, 떠돌아다니는 카톡에 좋은 말도 많더라. 자기 집 있고, 밥 든든히 먹을 수 있고, 깨끗한 물 마시고, 휴대전화며 인터넷을 하면, 그럼 극소수 특권층이라고! 옳다, 이것이다. 이것으로 대꾸해 보자.

     저 그런데요, 집 있고, 밥 배불리 먹고, 깨끗한 물 마시고, 또 뭐더라, 핸드폰 그런 것 쓰면 특권층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세계인구 7퍼 이내.

     그런가, 그 정도라는 말 맞겠지요. 근데 7퍼센트 안에 들면 뭐요?

     당근 기쁘죠, 그 정도로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죠.

     아니, 100명에 70명 정도가 행복하다면 몰라도 겨우 7명 빼고 나머지 대부분은 어렵다는 말인데. 7명 속에 들었다고 맘 편하게 행복하나. 먹고 사는 걱정은 누구라도 안 해야죠. 누구라도 기본 의식주는 되는 세상, 비굴하지 않게 사람답게 살 정도는 되는 세상, 나는 그래야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영생의 하느님 나라 말고, 여기 땅에서 천국.

     다 같이 잘 사는 나라? 그런 말 하면 공산주의자인데. 물론 이 말도 속으로만 했다. 이 할머니가 무슨 정당 그런 데 소속일까. 설마, 이렇게 집 안에만 박혀 있는 사람이 무슨. 아니, 이 전에 이 할아버지가 건강할 때, 할머니 활동이 자유로웠을 때?

     저 그런데, 젊어서는 일 하셨지요? 무슨 일을 하셨어요?

      …….

     직장 그런 것.

     배운 만큼 일 못했고, 결혼은 그냥 했고, 그것이 삶이니까 살았지요. 따로 뭘 했겠어요. 우리 세대는, 물론 좀 앞서간 친구들도 있었긴 해도, 그냥 거기 있는 삶을 살았지요. 공부를 조금 더 할 수는 있었는데, 잘 써먹을 만큼은 아니었고. 상황도 좋지 않았고요.

     어르신처럼 선생님 하셨더랬어요?

     아아뇨. 결혼 전 쬐금 하다가 말았고, 나중에는……. 암튼 불발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기회가 없었던 것이 필연이었다 싶어요.

     필연?

     어차피 쓸모없는 공부였으니까, 쓸 데가.

     네?

     청년실업이라 하면 우선 인문대 졸업생이죠! 그러니 대학들이 앞 다투어 인문대 구조 조정들 했고요. 취업 안 되는, 돈이 안 되는 쓸모없는 학문이라는 거죠.

     아, 그럼 인문학 공부를?

     하다 그만 둔 공부가 뭐면 뭐겠어요. 학생들 스스로도 교수들에게 뭔가 쓸 모 있는 것을 달라고, 둥지 안의 새끼 새들이 ‘엄마, 나 쓸모 있는 것! 취업되는 것!’ 하고 입을 벌리는 상상을 해 봐요. 그런 공부를 뭐에 쓰겠어요. 나쁜 공부지.

     에이, 아까 그 나쁜 짓과는 다르네요.

     무엇이 나쁜 짓인지 모른다는 게 문제죠. 쓸모없어서 식구들 밥을 굶기는 아버지가 나쁜가. 너무 쓸모 있어서 다 쓰지도 못할 산더미 돈을 쓸어가는 인간이 나쁜가.

     엥? 나는 정말 머리가 나쁜가 보다. 이 순간 나는 확실하게 어리둥절해졌다. 쓸모없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러니까 쓸모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무능한 아버지가 나쁘다. 그런데 돈 갈퀴질이 더 나쁜가? 무엇인가 기준이 혼란스럽다.

     지 선샘, 이거 리포트 주제 아녜요. 잊어버리세요. 성실하고 예쁘게 사는 우리 지 선샘, 건물주이면서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지 선샘! 충분히 쓸모 있는 사람이면서 충분히 좋은 사람! 남편한테 평생 가슴 설렌다는 사랑스러운 사람!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게 아니라, 모범생 맞죠. 일 밖에 모르고, 일 하면 돈을 벌고, 돈 버느라 놀 시간 없고, 시간 없으니 돈 쓸 시간 없고. 얼마나 좋아요. 다만…….

     다만 뭐요?

     다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쓸모없어도 보면 어떨지요.

     쓸모없는 짓을? 아니, 왜요?

     그건 숙제네요, 후훗.

     뭔가 찜찜한 채로 그렇게 오후 일이 끝난다. 대문을 나오는데 숙제 같은 화두가 그림자처럼 길게 따라 나온  다. 차에 앉아서도 냉큼 시동을 걸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말도 안 돼. 쓸모없는 일로 시간을 버리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왜 생각해야 하는데? 쓸모없어 보라는 헛소리, 뭐라는 거야. 생각할 가치가 어딨어! 하지만 어찌 들으면 ‘나쁜’ 짓은 쓸모 있는 사람들을 빗대는 것 같단 말이야. 그래도 그렇지, 쓸모 있는 누구나가, 모두가, 나쁜 짓을 했다는 말은 말이 안 돼. 헛갈린다. 헛갈리지 말자. 머리를 쓰고 계획을 세우고 어렵더라도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먼지가 될 순 없잖아, 살아서는. 먼지로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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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문학 2022.1,2월호 vol.165  168~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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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1. 9. 7. 02:17

 

낮꿈

 

 

 

 

인간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때문에’ 산다……

-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중에서

낮꿈이란 기이한 말을 처음 들은 것은 그리 덥지도 않은 어느 여름날이었다. 생소한 이름의 병균으로 뒤덮여버린 봄날 하루하루가 초록 빛 냄새도 없이 어물쩍 지나가더니, 여름이라 해도 따가운 햇살이 주는 순간의 행복감도 없이 웬 장마만 내내 찔끔거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마스크 속에 얼굴을 묻고 사는 이 요상한 일상은 기온 따라 더 답답하기만 할 때였다.

서기 2020년 - 팬데믹 세상을 지배하는 신의 이름은 불신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비단 확진자 관련뿐만 아니라 온갖 뉴스들이 참으로 믿기 어려운 공포이거나 난해함 그 자체였다. 사건들은 누가 작성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서로 진실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내가 썩 괜찮은 부류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지금처럼 내가 바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다. 누구는 나 바보에게 이 말을 주입시키고, 다른 누구는 나 바보에게 저 말을 주입시키려는 것 같았다. 환자와, 정확히는 재가요양보호 수급자를 대하는 직업상의 만남 외에는 다른 모임들이 아예 없으니까, 평소처럼 수다 속에서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해 나갈 기회도 줄고 있었다. 아, 그리운 수다! 일 할 때 일하고, 간단히 모여서 먹고 떠들고 다이어트 산책을 즐기고……, 이런 단순무식한 행복감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느낌이었다.

 

여름에 들면서 다행히 확진자 수는 줄고 있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서 그럴까. 전쟁 같았던 분위기는 잠시 주춤, 해외에서 들어오는 환자를 빼면 하루 여남은 명 정도에 그쳐서 조금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때맞춘 듯 돌발사건이 터졌다. 의협이 파업을 선언하며 ‘의료 4대악’ 철폐를 주장하자, 나 같은 사람, 간호보조사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조금은 의아했다. 의료계 밖의 보통 사람들은 더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날도 재가요양보호 서비스를 나가는 날이었다. 점심이 끝나고 식탁에서 막 커피 잔을 들 때 보호자가 말을 꺼냈다.

지 선생님, 의대 정원 확대를 4대악의 하나라고 하네요. 의사 정원 늘리려는 것이 악이다! 공공 의대 증설도 악법이라! 믿을 수 없는 표현이요. 이 불안 불안한 나날, 언제 또 환자수가 폭발할지 모르는 판에, 의사 인력이 많아지면 수월해질 거 아니요!

글쎄요. 그게 아주 간단한 문제는 아닐 거예요. 일단 의사 숫자가 갑자기 많이 늘게 되면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나중엔 수입도 보장할 수 없고. 나는 나도 모르게 의료계 편이 된다.

나중이라뇨? 물론 나야 잘은 모르지요, 병원 근무에 관해서는 꽝이니! 근데 기득권자가 신규 의사면허 막는 것은 횡포로 밖에 안 보이네.

어찌 보면 나중 생각해서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긴 하죠. 경쟁사회니까 어쩌겠어요. 꿈을 이루었는데 명예와 혜택을 나누라고 하니까. 의사면허는 꿈의 상징이죠.

꿈…….

병원 세계에서 봐요, 아, 무서운 사다리예요. 저 같은 간호보조사 입장에서 보면 의사란 못 올라갈 나무였죠. 그래봤자 의사 위에 판검사, 판검사 위에 장사라지만요!

예? 천하장사 그런 것?

아아뇨! 세상을 돈이, 장사들이 좌지우지하잖아요. 유전무죄!

어, 그러네, 기업이 결국 장사니까. 사농공상 – 봉건시대 서열 순서가 완전 뒤집혔네요, 서열이란 아예 없어져야할 것이지만.

맞아요, 서열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새로 생겨나요. 암튼 의사는 큰 꿈 중의 하나죠!

그렇겠네요. 그런데 그런 건 꿈이 아니고, 꿈나라 꿈이 꿈이죠. 의사되기 이런 건 낮꿈이라고요, 낮꿈.

거기에서 낮꿈이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낮꿈? 낮꿈이라니요? 무슨 꿈이…….

 

그때 이 할머니가 소리 없이 자리를 떴다. 말없이 사라지는 것, 특기다. 낮꿈이라는 말, 무슨 말인가?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와있는 동안 외출이 일상인데 나가버리려나? 다행히 이번에는 외출이 아니었다. 어르신이 안방에 그대로 누운 것을 확인하더니 거실로 나가 앉는다. 마른 빨래를 걷어들고 따라갔다. 빨래는 당근 어르신 것만 내가 한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저 그런데, 낮꿈이 뭔데요? 그런 말 첨 들어봤는데요.

낮에 꾸는 꿈요!

낮잠 자다 꾸는 꿈요? 밤잠이건 낮잠이건 꿈은 꿈이죠!

다르죠. 내가 만든 말 아니고요, 독서죠. 아이 참, 옛날에 읽은 책 이야기를 꼭 하게 만드네. 『희망의 원리』 라는, 많이 어려운 책이요. 다는 못 읽고 시작하다 말았지요, 것도 옛날에.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을 낮꿈이라 했을 때, 그땐 감탄 그 자체였어요. 낮꿈 없이는 어느 누구도 살아갈 수 없고, 오직 낮꿈을 통해서만 냉정한 시각을 소유하고, 직접 삶에 뛰어들게 한다고. 자아의 보존을 넘어서 우리의 저열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개혁의 희망이 들어있다고.

뭐야, 개혁이라니, 설마 운동권 같은 소릴 하네! 말투도 변한다. 이 할머닌 대체 무슨, 뭘 하던 사람일까. 사적인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아서, 큰애 둘째라고 하는 아들, 그리고 대화 중에 여자애 이름도 있으니까 딸 하나 있는 정도 외에는 아는 건 없다. 사실 이런 한시적인 일자리에서 가족정보가 필요하지도 않다.

젊었을 때니까 감동도 컸죠. 하지만 그건 옛날이야기라니까요, 지금은 완전히 변질되었죠. 사회적 희망 보다는 개인의 욕망만 하늘을 찌르는 세상. 우르르 몰려가서 서열 정하고, 이긴 쪽은 우쭐하고 진 쪽은 주눅 들고……. 이런 세상에서 낮꿈 꿀 필요가 있나요?

그래도 삶의 목표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꿈요? 글쎄 그건 욕망이라니까요. 내 삶과 세상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담겼던 원래의 희망과는 전혀 다른. 암튼 낮꿈 보다는 밤꿈이 꿈이죠. 자연스럽게 꿈을 꾸는 것이니까. 참, 밤중에 꿈 잘 꾸나요? 혹시 돌아가신 분을 꿈에 본다거나.

아주 가끔, 슬쩍요.

 

아버지가 어른거렸다. 내가 그리워하는 꿈이라면 딱 한 가지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던 형제자매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나 혼자서 뎅그러니 서 있고, 아버지가 멀리에 서 계시는데 얼굴이 안개에 쌓인 듯 희미하다. 얼굴이 안 보인다. 그래도 아버지인가. 그래도 아버지이다. 놀라서 깨면 꿈이다. 가끔 그 비슷한 꿈을 꾼다.

큰언니는 내가 임종을 못해서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라고, 아버지 돌아가신 것이 언제인데, 그만 잊고 털어버리라 하신다. 어머니도 내 꿈 이야기를 언니한테서 들으셨는지, 은이 니가 아부지 젤로 좋아혀서 그랴, 그러신다. 아니라고 내숭 뵈지 말어야. 자석이 아부지 좋아혀서 나쁘가니.

 

 

밤꿈은 갈망의 표현이라지만 허무맹랑하죠, 때론 놀라운 일도.

내가 다른 생각으로 도망간 뒤에도 보호자는 꿈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말을 시작하니까 엄청 잘 한다.

난데없이 돌아가신 은사님이 꿈속에 나타나셨어요. 넘 이상한 모양으로. 그래서 꿈이죠, 그냥 꿈.

…….

늦가을이면 겉이 단단하게 익은 늙은 호박 알아요? 보통은 껍질이 누런 색깔인데 이건 어두운 진초록색이라. 그런 호박 속을 파내고 그 껍질로 베트남 사람처럼 큰 모자를 쓴 모습이라니. 깨어나서는 웬일일까 싶었지만,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 말았어요.

엥? 호박껍질 모자요? 무슨 동화 속 나라예요?

그러게요. 암튼 다음날 아침에도 눈을 뜨면서 그 꿈이 어른거렸고, 그래, 돌아가신 분 생각하느니 살아계신 분 안부나 묻자 싶었죠. 오랫동안 언니 비슷 친구처럼 지내는 선생님이에요, 톡도 하고. 전화를 거니까 깜짝 반가워하시며, 어머나, 나도 전화를 해볼까 했어, 난데없는 꿈 땜에, 그러시는 거예요.

텔레파시?

아니, 그게 믿기지도 않았어요. 내가 꿈에 본 그 은사님 꿈을 꾸셨다니 말이 되요? 두 분은 남녀에 나이 차이도 있으시고, 그냥 냉랭한 동료였을 뿐인데. 암튼, 전화를 끊고도 넘 이상했어요. 제자에게 동료에게 꿈에 나타나시다니, 웬일일까.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10주기라, 딱 그 달에. 내가 떠난 지 10년이다, 기억하거라, 그런 메시지잖아요.

그런 꿈이, 말도 안 되는 게 진짜 꿈이라는 거군요.

그러죠. 내 인생의 계획과는 아무 상관없는, 내 의지와도 아무 상관 없는 것. 헌데, 꿈 땜에 돌아가신 날을 기억해 냈으니, 그건 어찌된 건가! 과학적으로는, 뭐 정신의학적으로는 떠나실 때 못 가뵌 것이 마음에 눌려 있다가 10주기에 무의식이 튀어나온 것이라고 하려나.

그렇게 마음에 남은 분이면 장례식엔 왜 못 가셨는데요?

내가 오늘 따라 오지랖이다. 수급자 일이 아닌 보호자의 일에 시시콜콜 뭘 묻고말고. 하긴 어르신이 낮잠을 자면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이야기나 하는 거다.

그게 울 어머니 49재중이었어요. 죄인이라 다른 초상집엔 못 가죠.

어머나, 그러는 거예요?

종교도 모르면서 부처님 오신 날 지장전에 영가등을 켜드렸어요. 어머니 등 켜러 가서.

뭐예요? 불교신자세요?

아아뇨. 어머닌 맞아, 열심 신자였어요. 등은 그냥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그러고 보니 내가 고아가 됐을 때 은사님도 떠나셨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말했어도, 아, 그래, 하셨을, 무작정 믿어주셨던 분인데. 내가 어떤 안 이쁜 짓을 해도 미워하지 않을 사람, 부모님 안 계시면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는 거요.

아니, 남편이랑 가정이…….

우리 이쁜 지선생님, 순진무구하셔라! 남편이란 내가 잘하는 동안, 이쁜 짓을 하는 동안에만 날 이쁘다고 생각하는 존재랍니다.

……?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시장에라도 나갈 폼이다.

피잇, 30년을 넘게도 지금도 설레는 부부간의 사랑을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이런 말은 물론 삼킨다. 하기야 칠팔십 대 부부의 삶이라는 것이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 모를 일, 우리도 나이 들면 저리 될까?

낮꿈이란 이상한 단어가 신경이 거슬리는 채로 안방에 들어가 보니 어르신은 새록새록 꿈나라였다. 낮에도 꿈나라다. 웬 잠을 저리 주무실까? 간밤에 꿈꾸느라 못 주무셨나? 아이들도 아닌데 무서운 꿈을 왜 꾸실까?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갔다.

 

여름 내내 지독한 태풍에 늘 반복되는 수재, 수재민들 뉴스다. 어딘가는 둑이 터지고 도심까지 잠겼다. 섬진강 쪽으로 집지어 갔던 아는 언니는 울상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한옥 마루가 아슬아슬, 댓돌은 보이지도 않게 물에 잠겼다. 황룡강 변에 선산이 있다는 이 댁도 전화 통화로 난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자연환경까지 반란이 났고, 역병의 어려움은 극에 달했다. 봉쇄가 무엇인지 거리두기가 무엇인지 학습할 사이도 없이 낯선 환경들이 밀려닥쳤고, 격리라는 엄청난 단어도 일상이 되었다. 자고 나면 다시 오늘이 되는 영화에서처럼, 판에 박은 일상이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그래도 달은 차면 기울고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이 날리며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겨울이 성큼 닥친 것이다. 정지되었나 했지만 삶은 계속되었나 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요? 365일 노랑 옷 팬데믹에 절망들만 묻혀있네. 지 선생님은 젊으니 좀 나은가?

어느 날 보호자의 한탄스런 말투에 갑자기 나를 돌아다보았다. 집 관리, 세입자 관리, 수급자 서비스, 주말 농부, 이런 것들이 내가 사는 일일까. 그러고 보니 일 년 내내 노랑 옷들이 티비 화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가능성이 없으니 그게 유일한 대면이었고, 그것도 남편이 들어오면 채널은 뉴스로 한정되었다. 가깝고 먼 곳곳에서 드러나는 더 참혹한 죽음들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학교에서의 수업 내용 때문에 참수를 당하기도, 다만 얼굴색이 달라서 총에 맞기도, 그런 일들이 선진 문명국가라는 곳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안전사고 소식에는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일터는 지뢰밭이고, 웃음을 잃지 않고 일터에 가는 것이 어려운 시험 같은 시절이었다.

 

우리 은이는 잘 웃어서 이뻐. 어여, 웃어봐. 이빨도 가조로니 얼마나 이뻐. 노상 그러고 살어.

주문처럼 어머니의 말을 외우며 집을 나서곤 한다. 참 어려운 나날이었다. 내가 필요해서 일하는 지금, 이만하면 안정된 조건이다. 입술을 당기자, 씨익. 그래도 겨울은 정말 싫다. 춥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싫다. 아, 다행! 입구 가까이에 주차 라인이 비어있다. 서두르면 2분 안에 따뜻한 아파트에 들어간다.

 

 

몸 파는 스무 살이라고, 들어 봤어요? 머리가 아파요.

밑도 끝도 없이 내뱉는 주인의 말에 흠칫 놀란다. 알아서 대문을 열고 태그를 찍고 들어온 요양보호사에게 내뱉을 첫 말은 아니다. 보호자라면, 어서 오세요! 주말 잘 지냈어요? 이 이는 별 탈 없었답니다. 그런 말이 먼저 나와야 정상이다. 게다가 나로서는 이 집 출근 만 일 년이 되는 특별한 날인데.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일주년은 일주년 아닌가.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르신은 좀 어땠나요? 감기 드신 건 아니구요? 오늘 검사 가실 컨디션 되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환자 관련이 아니라면 보호자의 말은 천천히 들어도 된다. 화장실 입구에 가방을 내려놓은 채로 소독젤로 손을 씻고는 어르신에게로 향한다. 거실 소파의 지정석이다.

어르신, 주말 잘 지내셨어요? 오늘 병원 가시는 것 아시지요?

대답 대신 오른 손을 들어올린다. 반가움의 인사다. 그러면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일단, 어서 식사요! 식사 차려 놓아도 지 선샘이 와야 건너오시네. 이제 완전히 습관이 되었나 봐.

부엌에서 보호자가 채근이다.

네에, 갑니다. - 어르신 식사, 식사하시게요. 손 씻으시고!

바쁘다, 바빠. 양쪽으로 답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보호자는 개인적인 요청 사항은 거의 없다. 밥상 앞에서 나는 열심히 어르신을 챙긴다. 잠깐 오전 일을 했을 때는 여기 와서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된다. 보호자는 누룽지까지 챙겨오고서 자리에 앉으면 늘 그러듯이 가만히 앉아서 허공을 본다. 어서 드세요! 왜 안 드세요! 그렇게 채근하면, 반찬 준비하면서 코로 이미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식욕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은 20분이면 포만감을 느낀다고. 다이어트를 하려면 천천히 먹는 것이 해결책이겠네여, 라고 말하려다가 참곤 한다. 이 집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대신 오늘은 병원 함께 가시려면 좀 잘 드셔야죠! 하고 만다.

 

인지검사가 있는 날에는 보호자 2인이 함께 병원에 가야한다. 코로나 방역으로 보호자를 줄이지만, 인지검사를 마치고 보호자도 따로 상담을 해야하니까 그 잠깐이라도 환자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검사 시간 동안 속절없이 기다려야 한다. 처음 얼마간은 커피숍에 가 있자고 해서 같이 내려갔다가 놀랐다. 폐쇄된 것이다. 하긴 병원 내에서는 음료수도 마시지 말라고 종이에 써 붙여 놓았다. 검사실 밖 의자에 한 칸을 떼고 앉았다. 그래도 말은 하고 싶었다.

저, 아까 집에서 말씀 하신 몸 파는 스무 살 어쩌고…….

아, 미안해요. 오전에 읽은 기사가 계속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서요.

그러니까 젊은 애들이 일자리는 없고 성매매에…….

아니, 몸 판다고 하니까 그렇게 들렸나 보네. 그런 건 곳곳에 곪아 터져 있으니 이젠 놀라지도 않아요. 오늘 읽은 신문기사에 헤드라인이 ‘몸 파는 스무 살……’ 그러더라고요.

뭔데요?

…….

말을 잇지 않던 보호자는 어르신 이야기로 옮겨가버린다.

어제, 그러니까 그젯밤에는 자리에 누워서 오늘 뭘 하고 지냈나 생각이 잘 안 난다고 그러잖아요. 아들애가 왔다 간 것을 잊다니, 이해가 안 되네, 어쩌면 애들 이름을 잊기도 하고. 검사를 잘 할지 모르겠네. 청력 때문에도 고생일 걸, 검사하는 분도.

한 두 번 해 보셨잖아요. 잘 하시겠지요. 건망증인지 뭔지는 참 이해가 안 가는 일 많아요. 저도 요즘 완전 웃겨요, 핸드폰 안 가지고 나와서 시동 걸다가 다시 들어가고, 그런 건 일상이에요. 마스크도 차 안에 몇 장씩 넣어둬야 하구요.

건망증이 뭔지, 사람들을 위로하려다 보면 나도 이미 심각하다 싶어 오싹해진다. 하지만 오늘 나는 ‘몸 파는 스무 살’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자꾸 말을 걸게 된다.

 

그런데 아까 집에서요, 그 스무 살은 무슨 말이세요?

아, 참,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네요, 뉴스 땜에. 뉴스니까 거짓은 아닐 테고. 자꾸 걸려서. <8일에 127만원, 하루 18번 바늘꽂는 20대> 그런 기사요. 직장이 폐업하거나 웬만한 알바 자리들 탈락하다보니까, ‘몸 팔러왔다’는 자조로 실험대상이 되는 거 말예요.

아, 마루타 알바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뭣인들 못 참나요? 복제약 만들려면 임상실험이야 늘 있는 거죠. 옛날에도 계속 그랬어요.

나야 그런 일들이 그리 뉴스거리도 아닌데, 이 할머니는 많이 놀랐나 보다.

그 아이 입에서 ‘여긴 자본주의의 끝’이란 단어가 나왔어요. 꿈은 놔두고 우선 생계를 위해서 몸을 파는, 피를 뽑는 20대라니. 삶의 극이야.

극?

예, 극값!

생동성 실험, 그거 안전하게 관리할 텐데요. 죽지는 않아요.

알바하다가 죽는 이야기는 뭣 하러!

말을 꺼냈던 보호자가 외려 외면하고 일어서버린다. 괜히 검사실 문앞으로 가서 안쪽에 귀를 대는 시늉을 한다. 죽는다는 말은 내가 심했나?

 

 

알바 나갔다가 죽는다? 머쓱해진 기분이 되어 생각해 본다. 모처럼 알바 구해서, 아님 늘 하던 대로 아침에 일터에 나갔다가 죽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 일인가. 계산의 시작은 아무래도 본인 몫이다. 감당할만한 일인가. 따져본 다음에 시작해야 한다. ‘아무 기술이 없이 별 고생도 않고’ 라는 조건의 광고라면 다른 보이지 않는 위험을 상상했어야지. 그러니까 수당이 올라도 고민이라던가……. 그러고보니 쿠팡인지 어딘지 등등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다는 뉴스를 올해 들어 열 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택배아저씨들은 어떤 기분일까. 아니나다를까 엊그제 또 다시 뉴스였다. 올해 들어 열여섯 번째 죽음, 이번에는 34살 젊은이다. 7월부터 일했다고 하니까 택배 반년에 목숨을 잃었다. 새벽 6시 출근해서 밤 9시나 10시에 퇴근했단다.

이 아파트에도 늘 보는 택배 아저씨가 있는데, 실은 최근 2주 3주 보이질 않는다는 생각이 났다. 이 집에서는 띵똥 소리가 나면 가끔 음료도 건네고 추석엔 참기름도 짜주는 걸 보면 임의롭게 지내는 사이 같다. 한번은 더운 여름이었는데, 이모, 이러다 죽으먼 어쩌까요, 돈 다 벌어서 언제 쓰까이! 그러더란다. 올 봄 이후 하루 300개를 주더니 점점 400개로, 어떤 날은 500개 가까이 물건을 싣는단다. 크고 작고 가리지 않고 개당 750원이면 일당이 30만원이 넘는 날도 있단다. 수입이야 짭짤하다. 그런데 그 배달을 다 마치기 위해서는 점심을 거의 못 먹는단다. 굶어가면서 일당 올리는 건 아니라고 일러 줘도 소용없단다.

그 말을 들은 후로는 괜스레 편치 않았다. 아 참, 이 보호자를 택배 아저씨는 ‘이모’라 부르나 보다. 일년을 매일 보는데도 나랑은 덜 친한가? 이렇게 저렇게 부르라는 말이 없다. 직접 부를 일은 없으니까 우물쭈물 지내지만, 가리켜 말하려면 ‘주인, 보호자, 할머니’를 왔다갔다 하게 된다.

암튼 어르신이랑 산책을 하는 시간에 택배 아저씨랑 마주치면 내가 말을 건다. 점심은 드셨어요? 잘 드셔야죠! 먹으려고 사는데요! 내가 그러면 씨익 웃기만 한다. 처음 볼 때보다 더 말랐다.

 

보호자가 다시 의자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내가 택배아저씨 말을 꺼냈다.

저 그런데요. 요즘 아파트 택배 아저씨 안보이던데요. 무슨 일 없겠죠?

왜요, 갑자기?

이삼 주 넘었어요. 전화 한번 해 보실래요, 괜스레 궁금하네요.

어, 그래요? 문 앞에 잘 놓고가니까 그냥 별일 없는가 그러는데. 설마 무슨 일이사…….

물론 설마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괜히 불안했다.

나중에요, 지금 한창 배달할 시간이겠네. 아, 문자나 남겨 놓을까. 사실 요즈음엔 누구라도 밥을 벌기 무지 힘들지. 여자들은 좀 나은가? 노동 강도가 세지 않아서…….

아무래도. 여차하면 취집이면 되니까요. 얼굴 되는 애들은 그게 상책이랬지요.

뭐요? 취집?

예, 취직하거나 시집가거나. 시집을 잘 가면 취직할 필요 없고. 우리들 병원 근무 때 보면요, 간호사들 대부분이 의사한테 시집가는 꿈을 꾸죠. 물론 그때도 이미 의사들은 간호사 차지가 안 되었죠. 아는 언니가요…….

아는 언니도 참 많아! 인정 많게 잘 사나 봐요!

그건 아니구요. 서울서 병원 다닐 때요. 그때도 누구 하나 의사한테 시집가면 로또랬지요. 연애는 해요, 희망적으로다가. 하지만 결혼은 안 되더라고요. 그 남자는, 그 의사는 의과대학도 이름 있는 대학 출신이었는데, 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수간호사 언니랑 서로 의지하며 지냈대요. 보드 딸 때 마지막엔 언니가 남자 집에까지도 도움을 주고 그랬대요. 하지만 곧바로 병원집에서 픽업, 집게로 인형 뽑듯 쫘악 집어가 버렸어요. 결혼 시켜서 바로 미국 유학, 크게 배워와서 병원 운영하라, 뭐 그런 식이었대요. 별반 화제 거리도 안 되고, 올 것이 왔다 그 정도였죠. 그러니까 돈 문제가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건 한참 되었어요. 어제오늘 일이 아녀요.

맞아요, 일찍 알았네요. 돈이 지배하는 세상.

누구든 부~자 되고픈 꿈을 꾸죠. 부~자라야…….

그런 꿈은 낮꿈이라 해야 맞다니까요. 자면서 꾸는 그런 꿈이 아니니까.

아, 네, 그 낮꿈! 언제도 꼭 그렇게 말 하시더니……

그래요, 더 잘 살아보자는 낮꿈요. 낮꿈이 뭐라고 매달려요? 부질 없죠. 게다가 욕망이란 끝간 데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이 목표에 꽂히면 내일 땜에 오늘을 망치기도 하고요.

낮꿈이, 희망이, 욕망이, 뭐든 간에 그런 것이 오늘을 망쳐요?

내일만 바라보고 걷다보면 오늘을 사는 건 아니잖아요. 내일이 없을 수도 있고. 그러니 선택의 문제예요. 오늘 사는 쪽으로 또는 내일을 희망하는 쪽으로.

선택…….

그러다가 짓궂게 내가 물었다. 왜 그랬을까.

아니, 어떻게 꿈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어요? 꿈이 좌절된 적 있으세요?

무리한 희망을 갖다가 좌절할 틈이 어딨어요. 피 터지는 경쟁밖에 아닐 텐데, 미리 안 갖는다니까요! 봐요, 내일을 위한 희망을 계획을 가지고 거기 매달린다 칩시다. 그래요, 올인! 그게 자칫 오늘을 좀먹는 거요. 오늘 굶주리면서 죽은 뒤에야 받을 보험을 드는 일, 그게 뭐냐고! 오늘을 충분히 살아야지요. 오늘이라도 찬찬히 충분히.

오늘을 잘 살라고? 내일을 꿈 꿀 나이도 아니구만, 치, 나는 속으로만 틱틱거렸다. 이 할머니의 말은 어느 부분부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꿈을 꾸고 가꾸고 노력하는 일들을 내일에 대한 욕심이라고 하질 않나. 신앙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러겠지만, 내일을 믿기는커녕 기대도 하지 않는다니 좀 심했다. 내일이라는 희망으로 계획도 세우고, 계획에 맞춰서 사는 내 삶에 대해서 뭘 안다고 저러는가. 이 세상에 재테크는 기본이고, 건물주라는 기본 꿈을 이룬 지금도 그 다음 꿈을 향해서 나가는 내가 나는 자랑스럽다. 서로 그렇게 채근하며 동행하는 남편이 믿음직하다.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남편 친구네 하나는 경매물건 전문으로 꽤 잘 나간다. 여자가 더 잘한다고도 그런다. 내가 그 친구네 이야길 슬며서 했더니, 이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흉년에 논 사는 것 아니다, 그런 말 괜한 말 아녀요! 상대가 안쓰러운 경우에 이득 봐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죠. - 경매는 다를 걸요, 직접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어차피……. 그쯤에서 말을 끊었다. 말이 잘 안 통한다.

 

 

소통이 잘 될 사이는 아니다. 70대와 50대, 아예 모녀 사이도 아니고. 그러다가 무엇인가 전혀 예상밖의 말을 듣게 되는 재미도 있다. 언젠가 들은 은행계좌 이야기도 그 하나였다. 어르신이 통장이며 카드며 사용 실적이 없다고 은행에서 연락이 왔을 때였다. 주거래은행이 아닌 곳이라나. 그렇다면 그쪽은 그대로 정리를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라고 내가 참견을 했다. 그런 일은 내가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 웃기는 일이었다 - 내가 건물주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통장을 가지고 얼마나 알뜰하게 저축을 했었는가 좀 자랑삼아 이야기를 했다. 빨래 줄이려고 하얀색 티셔츠는 입어보지도 않았다는 그 말도 또 곁들여서. 그랬더니 나더러 참 예쁘게 산다고 하면서, 남녀차별 없는 은행계좌는 한국인의 특권이라는 말을 해서 너무 놀랐다. 친구 큰언닌가 하는 누군가가 서독 간호원 파견 때 독일에 가서 보고 너무 놀랐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내가 더 놀랐다. 그때가 60년대 초였는데, 현지 독일인 간호사들의 사회적 형편이 상상도 안 가는 수준이었다고. 여자가 은행계좌를 만들 수 있던 것이 1958년인가 59년인가. 그 전까지는 여자들은 은행계좌가 없으니, 친정서 결혼 때 가져온 지참금도 남편계좌로 들어가고 당연히 남편이 관리했고. 여자는 직장에 노동계약서 쓸 때도 남편의 승낙이 먼저였다니. 그러고도 서양일까. 우리는 서양은 여성상위쯤으로 알았는데.

시대가 달라졌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보면 숨죽이고 사는 여자들은 별로 없다. 다들 돈도 벌고, 남편보다 더 잘 버는 아내들도 꽤 있다. 돈을 벌지 않으면서도 돈 버는 남편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들 산다. 전에 옆집 살던 아주머니는, 나보다 한참 위였는데, 중학교에선가 아무튼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밥은 이제 당신이 해요, 라고 밥솥을 넘겨버렸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 했다. 평생 밥 해줬으니 이제 당신이 할 차례라고 했단다. 그렇다면 이제 여자가 나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인가. 그건 또 아니랬다, 후훗. 우린 그때 놀라면서도 배웠다, 저리 살자!

 

 

멀리 복도 끝 창밖을 보니 눈발이 날린다. 첫눈인가 싶다.

첫눈 오는 날 약속……, 지 선샘, 그런 것 없나요? 올해도 눈이 많이 오려나? 겨울이 더 어렵겠지요? 당장 생활비 걱정으로 머리 아픈 젊은이들 말예요. 몸을 팔다 보면, 이제 곧 영혼을 파는 알바도 나올 것이니.

영혼을 팔아요?

하긴 영혼이 있나, 있어야 팔지.

뭐예요, 영혼을 믿지 않으시나 봐요.

영혼을 믿는다는 일, 그거 쉬운 일인가요, 어디.

영끌이 있잖아요, 영혼까지 끌어다가 집 산다고! 영혼이 있으니까 끌어다가 쓴다는 것인데…….

예, 있다고 해둡시다. 영혼이 있어야 팔 테니까, 있는 쪽으로다가.

우리 맘대로요?

아니 좋은 쪽으로. 무엇이든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요. 영혼을 판 이야기는 엄청 유명한 것 있어요! 이보시오, 살아생전에 하고 싶은 것 다 들어줄 테니, 다시 이팔청춘으로 돌려줄 테니 멋대로 살고, 죽어서는 영혼을 내게 다오 – 뭐 그런 악마의 유혹.

아, 메피스토! 알아요! 남편 친구가 두고 쓰는 말인데요! 너희들 오늘 저녁엔 영혼 내게 팔아, 내 멋지게 살게 해주마! 그냥 재밌게 놀자고 설치는 말인데, 그이 십팔번이예요! 어쨌거나 영혼이 있다는 전제네요!

어, 그런 재미있는 친구가 있어요? 스스로를 악마라고?

그냥 웃자고 그래요!

메피스토펠레스라, 악마이건 뭐건 세계적인 세기적인 인물이네.

네? 메피스토는 그럼 줄인 이름인 거네요. 하긴, 소크라테스 보다 테스형이 완전 유명하잖아요!

그런가. 근데 테스형은 좀 웃겼지. 메피스토펠레스를 메피스토라 줄이지 레스라고 하나? 끝자를 따서 테스라 하다니.

끝자?

봐요, 아킬레우스, 오르페우스, 프로메테우스……, 그런 이름들은 모두 우스라 줄이나? 우스, 테스 그런 건 그냥 끝소리라니까요!

그냥 끝소리라뇨? 우리 순이, 금이, 은이처럼?

지순이, 금이, 은이 – 우리는 자매들은 거의 외자 이름이나 같다. 순아, 금아, 은아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 어쩔 땐 은! 그러기만 한다. 그러니까 테스는 뜻 없는 ‘이’나 같다니 맥이 풀린다. 가수는 좀 그래도 ‘테스형’ 노래는 꽤 인기였는데! 하긴 인기 트롯 프로그램도 남편이 끔직해하는 채널에서 해서 거의 못 본다. 고향이 여기라서 그런지 확실히 편파적이다. 직접 대놓고는 그런 말은 삼간다. 여기 사람들은 건드리면 안되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시간 참 지루하다. 검사가 한 시간 반이라더니 두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지 선생님, 그런데 결과가 더 나쁘진 않겠죠? 걱정 한 가지, 저이가 요즘엔 잠을 너무 자는 것 같아서. 낮에도 산책은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잠만 자려고 하잖아요.

보호자 머릿속에는 어르신 뿐인가 보다.

추우니까 그러시겠죠. 그럼 밤에 잘 안주무세요?

밤에도 자는 편이예요. 하루로 치면 너무 많이 자니까 불안하기도 해요. 계속 잠을 자면 언제 사느냐고요.

사는 것 되게 중요시 하세요!

그럼 사람이 사는 것이 사는 것이지. 살아야 살아있는 것 아닌가.

네, 다들 열심히 살 잖아요, 꿈을 가지고 노력하고! 젊은 시절 그렇게 사셨을 거 아녜요.

무지개가 피었습니다~ 하고서 다 같은 무지개를 쫒아 살면 다 같이 도달하남? 다른 곳으로, 더러는 반대로 향하는 것이 사는 거란 말이라.

꿈의 반대로요? 뭐가 되려고요?

반대가 아니라, 뭐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꼭 그런 힘든 외사다리로 몰려야 하냐고. 성공해서 인정받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가면서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건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바보짓’이라고. 것도 어디서 읽은 말이요.

하지만 가치라는 게 대부분…….

대부분 말고요. 남들의 꿈을 따라가면서 어차피 뒤쳐지는 사람들은 우수수 얼마나 불행할지.

그래도. 시작이라도.

남들 따라 같이 할 건 없다니까요. 나는 나죠. 누군가 나를 무시해도 나는 나이고, 누군가 나를 칭찬해도 나는 나이고.

넘 냉정하세요!

냉정? 냉냉, 쌀쌀맞아 죄송하요!

그러고는 일어서더니 복도 끝 창쪽으로 걸어간다. 앉아있기도 힘이 들다면 힘들다. 실은 나도 좀이 쑤신지 한참 되었다.

 

그건 그렇고, 왜 이리 불편한가. 이 할머니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무언가 편치 않을 때가 있다. ‘몸 파는 스무 살’ 이야기 때문에 어두운 상념들이 사방팔방에서 밀려왔다. 아까도 알바하다 죽는 이야기를 꺼낸 건 자동적이었다. 맨날 듣는 뉴스가 그러다보니 온갖 사고사들까지 한꺼번에 되살아나서 살이 아파왔다. 전동차 스크린에 끼어서, 들여다 본 기계에 빨려 들어가서, 크레인에서 떨어져서, 비계 위에서 함께 떨어져서 아래에서 깔려서, 크레인 기사라 해도 소용없고, 비계 기능사라 해도 그렇다. 자격증들이 무슨 소용! 어라, 자격증들이 죽음으로 이끄는가. 낼 잘 살려고 오늘 죽는다? 그 비슷한 말, 내일을 위해 오늘 죽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저 불편한 말이 맞는 것일까. 어쩌나, 이 동네 말라깽이 택배 아저씨는…… 무사하겠지. 괜한 걱정에 볼에서 열감이 느껴진다.

아니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사는 것이 그런 것이다. 도처에 사건도 있고 사고도 있다. 그런 것에 흔들려서 절망하고 그러면 안 된다. 무심하게, 정직하게만 살면 된다. 명사가 못 될 바에야 오직 재테크만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최소한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팔아야 하는 세상, ‘몸 파는 스무 살’ 이야기가 어때서. 가슴이야 좀 아프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영혼을 끌어냈으므로 가난에서 탈출했다. 누군들 영끌이 필수인 것을 어쩌라고.

그런데 어딘가에 지뢰가 묻혀있다. 허기 말이다. 잘 살아왔다고 믿었었는데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허기란 놈이 으르렁거린다. 오늘을 살았다는 기억이 없이 내일을 위해서 달려왔다는 말이 맞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이 허기의 대가로 노후는 충만할 거야…… 설마. 안락한 노후는 계속 유혹의 손길에 가려져 있는가. 혹시 노후 준비가, 노후 걱정이 낮꿈이란 말인가? 그럼 당연히 낮꿈을 꾸어야 한다. 아니, 노후 준비란 오히려 낮꿈 없애기일까, 손바닥을 펴고…….

 

아, 드디어 검사실 문이 열린다. 어르신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다. 힘드셨을 것이다. 인지검사의 질문이라는 것이 예상되는 말이 아니니까 청력장애면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괜찮았어요? 다가온 보호자가 미처 말을 시작도 하기 전에, 안에서 보호자를 부른다. 잠시 또 어르신과 둘이 되어서 진료실 복도에 앉는다. 낮꿈은 잠시 접어 두고.(8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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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작가교수세계 - 한국작가교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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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