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22. 7. 27. 17:50

    새순이 움트려나 보다. 텅 빈 나뭇가지들 끝에서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렇게 움틀 때를 알고 움을 틔울 준비를 할까 신기하다. 이 아파트에는 나무들이 꽤 많다. 옛날 아파트라서 동 사이가 넓다. 지상뿐인 주차 공간은 많지 않아 라인에서 먼 데다 차를 세운다. 그것도 그대로 좋은 것이, 낮 시간에는 그리 춥지도 않고 마스크 사이로 살짝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는 몇 미터가 시원하기까지 하다. 고층아파트 사이의 공기가 무에 대단할까만, 공기는 공기다. 공기가 그립다니.

    요즈음은 격리가 남의 일 아닌 것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죽 같다. 엊그제 설날 아침에 18,000명이던 확진자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다. 곧바로 20,000, 그리고 22,000을 훌쩍, 오늘 아침에는 27,000을 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대로 2주를 더 연장해서 사적 모임은 6인까지다. 거리두기 때문에 자영업자만 죽는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수당을 받는 우리 요양보호사들에게도 생계형 문제가 닥치고 있다. 우선 우리들이 확진되거나 밀접접촉자가 되어 일을 쉰다. 감염 위험 때문에 방문요양서비스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는 더 낭패다. 수급자들이 기저질환이 많다 보니 불안해서 그런다. 그렇다고 방문요양을 중단하면, 중단할 수 있다는 말은, 평소에도 반드시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는 말인가. 혼자서 외출을 할 수 있는 수급자들도 있긴 하다. 몸은 좀 불편해도 정신은 말짱한 경우도 있다. 이런 할머니들은 시시콜콜 감독성 멘트를 날려서 힘들다. 우리 센터는 규모가 큰 편이고 시영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보니, 수급자 할머니들이랑 뭔가 한 동아리로 돌아간다. 일정한 수급자 숫자를 유지해야 하는 센터가 저자세이고, 수급자들의 투정도 각가지다. 따쑨 물 쓰지 말어, 한 데도 아니고 아파트 안에서. 이 정도는 기본이다. 심한 경우는 화장실도 막는단다. 여서 물 쓰고 휴지 쓰고 할 일 있당가, 얼릉 코앞에 복지관 갔다 올 일이제. 그런 묘안이 어디에서 나올까.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서 이런 요령이랄까 꼼수만 남은 것일까.

    센터의 어려움도 확실해 보인다. 방문요양을 끊는 집이 늘다 보니 현실적인 문제가 생긴다. 사회복지사가 월 2회 상황을 점검하러 다니는 일도 월 1회로 바뀌었다. 모든 부분에서 감축이다. 어찌 되었건 나는 평상심을 유지하고 잘 살아간다. 이 상쾌한 공기를 느끼는 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따뜻한 밥 냄새도 좋다. 나를 위해 짓는 밥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지은 밥 같기도 하다. 들어서는 순간 준비되어있는 갓 지은 밥이라니! 훈훈한 냄새를 기대하며 계단을 오른다.

 

    어? 대문에 새 종이가 붙어있다. 오늘이 입춘인가 보다. 입춘대길은 알겠는데 다른 복잡한 한자가 왼쪽으로 붙어있다. 작년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번엔 무슨 글자인가 물어봐야지.

    우선 밥부터 먹고! 그런데 난데없는 달래무침이다. 통새우와 동그랑땡을 야채들과 볶아서 내놓는 이름 없는 이 접시는 어르신이 좋아하는 메뉴인데, 상치가 아니라 달래를 곁들여? 보호자 할머니한테 듣고 보니, 입춘에 영순위로 먹는 채소가 달래란다. 저녁에는 부추전을 부칠 거란다. 향 진한 채소가 입춘 음식이라고, 별것을 다 챙긴다. 하긴 노년의 일상이 밥 먹는 것 말고, 아니 약 먹는 것까지 해서 먹는 것 말고 더 있을까. 수급자 어르신이 식사하시는 것을 도와드리면서 함께 먹는 일이 이젠 일상 같이 느껴진다. 내가 아직 학생 때 돌아가셔서 내 먼 기억 속에 훨씬 젊게 남은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우리 아버지는 이 어르신처럼 완전히 흰머리가 되어보신 적이 없다. 흰머리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내 머리카락이 아버지를 닮아서 살짝 곱슬이라는데, 아직은 검고 윤기 나는 이 건강한 머리카락도 하얗게 변할까, 변하겠지. 아버지에게서 보지 못했던 하얀 곱슬머리는 어떤 느낌일까.

    보호자 할머니는 누룽지까지 내오고서야 자리에 앉는다. 누룽지도 어르신 몫이다. 할머니는 사실 대충 먹는 느낌인데, 점심 후에는 큰 잔으로 커피를 마신다. 나도 커피 잔을 들고 마주 앉는다.

 

    아, 대문에 쓰인 한자를 물어야지. 입춘대길 옆엔 무슨 말이에요? 건양다경이라고 한다. 세울 건, 햇볕 양, 많을 다, 경사 경이니, 맑은 날 많고, 좋은 일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는 뜻이란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도 경사죠. 다른 말들도 있는데,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라고 써 붙이기도 해요.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이라는 뜻인데, 노인들 집에는 욕심 사나워 보이죠.

    노인들이라고…….

    이제 창문을 자주 열고 해를 들여야죠! 겨우내 유리창 햇볕이라도 길게 들어와서 다행이었죠. 할머니는 말 돌리기 선수다. 말을 하면 그렇다.

    기다리는 마음에서나 말에서나 봄은 시늉이라도 오고 있다. 아니, 아파트 거실 안은 겨우내 봄이다. 어르신은 거실에 들인 화분들 중에서 좋아하는 딱 두 개만을 베란다 유리창 쪽으로 옮겨 놓는다. 둘은 오늘도 그렇게 해를 바라고 있다. 나무들은 흙에 심겨서 물을 받아먹으며 가끔 해를 맞는 것만으로도 새순을 낸다. 나는 화분들에 별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닌데, 덩굴 식물들을 보면 신기하다.

이 덩굴에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쁜지, 별사탕들을 한 움큼 쏟아놓은 것 같아요! 할머니는 은근 꽃을 기다리는 눈치인데, 내가 온 이후로 2년여, 꽃이 핀 것을 본 적이 없다. 상상이 가지 않는 꽃 모양에 슬그머니 폰에서 인터넷을 열어본다. 이름이 호야? 이렇게 엉뚱하게 예쁜 꽃이 덩굴 사이에서? 정말 꽃이 피어봤음 좋겠다.

 

 

    점심 후면 으레 소파에 앉아있는 어르신이 비스듬히 스르르 눈을 감고 낮잠에 빠진다. 딱히 할 일이 없다. 유난히 밝아진 베란다에 나가보니 대청소가 되어있다. 벽에 말라붙어 있던 팥죽 흔적도 말끔히 사라졌다. 팥죽은 지난번 동짓날 사건이었다. 베란다에 내어놓았던 죽을 거두어 오면서 벽에다 뿌렸다 했다. 정월 보름에 장독대나 대문 밖에 차려진 오곡밥을 먹으러 동네를 누빈 기억이 아스라했다. 밥은 집마다 달랐고 아이들은 그것을 재미있어 했다. 아파트 성냥갑 안에서 21세기에도? 웃긴다. 더구나 하얀 내벽에다 뿌릴 것까지야.

    그냥 재미죠. 할머니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변명처럼 말했다. 그냥 괜찮은 습속이었다 싶어요. 팥이 귀신을 쫓는단다, 동지죽을 밖에다 퍼다 내어놓고 복을 빌어라! 그러니까 복을 비는 마음으로 죽을 내다 놓았겠지요. 죽을 내다 놓아야 먹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고. 요즘에야 밥이 귀하지 않으니까 미신으로 보이는 거라.

    하긴 누구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야 뭐 미신인들 어떠랴 싶었다. 이 시시콜콜 구식 할머니는 그때 동짓날 말이 옛날엔 동지를 새해의 시작이라고 했단다.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마음 든다는 것이니, 땅 밑에서 움트려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네요.

    아니, 푸성귀들이 꿈틀거려요? 겨울잠 자던 동물들도 아닌데?

    동물처럼 꿈틀거리기야 하겠어요, 어차피 붙박이들인데. 하지만 움직이는 다리가 없다고 해서 풀들을, 식물들을, 무시할 일은 아녜요, 뒤틀든 꼼지락거리든 움직임을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씨앗도 껍질을 깨뜨려야 싹이든 움이든 틀 것 아니겠어요. 제 몸을 깨뜨리는 움직임을 시작해야 자라나죠. 가만있음 어떻게 살아나느냐고요. 봐요, 나뭇잎들. 이 시시한 덩굴들. 볕을 못 보면서도 날마다 자라잖아요. 초겨울 들여올 때는 고무나무 잎들도 텔레비전을 이렇게나 가리진 않았었는데.

    맞아요, 이거 작년 겨울에 비해서 엄청 자랐어요. 지난 봄 베란다에 내놓을 때는 몰랐었는데 이번 봄에는 못 나가요, 보세요, 두 팔 다 벌려도 모자라는데 베란다에 못 들어가요. 가지들 잘라야죠.

    우리가 훨씬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든가.

하하, 봄 되기 전에 이사를 가요? 이사 같은 건 완전 접었다 하시더니만. 이제 와 고무나무 내놓을 넓은 베란다를 찾아서 이사를 가시게요?

    말이라도, 자르기 아까우니까 말이라도 그냥 그렇게.

 

 

    이사 말을 꺼낸 건 살짝 놀라웠다. 노인들에게 이사란 쉬운 일이 아닌, 어쩌면 금기다. 십여 년 전엔가는 이분들도 이사 맘을 먹은 적이 있었더란다. 어르신 은퇴 후 무료한 도시생활에 염증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다들 그런다. 요즘엔 은퇴 후 농막을 갖는 것이 로망이라고들 한다. 일찌감치 농가주택을 가진 우리를 부러워하는 이웃들이 참 많다. 남편은 생각이 앞서는 사람 같다. 아무튼 어르신네는 새 환경에서 적응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어 차일피일, 그러다가 기회는 아예 사라졌단다. 할아버지한테 갑자기 인지문제가 생길 것을 예감이나 했을까. 이미 크고 작은 혼동을 겪게 된 노인들이 언감생심 무슨 이사인가.

    이 할머니는 안전안내 문자가 오면 실종신고만 본단다. 나는 수급자 어르신들 집에 가면 습관적인 인사처럼 확진자 숫자를 말해준다. 근년 들어 그게 뉴스 일 순위다. 좀 보세요, 광주 오늘 800명을 넘었어요, 829명이라고요, 라고 해도 이 할머니는 신청도 안 한다. 설날만 해도 500명이던 것이 하루에 100명씩도 더 넘게 계속 계속 올라간다니까요, 금방 두 배예요, 라고 해도, 전염성을 어쩌겠어요, 그러고 만다. 대신 실종신고 문자를 보면 숨이 멎는단다.

    여기 보세요! 경찰청 안내, 서구에서 실종된 김oo씨(여, 79세)를 찾습니다. 157cm, 57kg, 분홍색 내복, 꽃무늬 조끼, 검정바지. 그러니까 이 겨울에 겉옷도 잠바도 안 입었네! 여기 또, 북구에서 실종된 이oo(남, 82세)를 찾습니다. 162cm, 53kg, 파랑색 잠바, 검정 바지. 뭐야, 남자가 키도 작네, 마르기도 하고……. 지 선샘, 정말 내가 왜 이럴까. 실종신고를 계속 계속 모아두거든요, 찾았다는 후속 소식이 올라올까 싶어서. 그게 꼭 한 번, 일 년 내내 두고 보아도 찾았다는 소식은 단 한 번뿐이었어요. 다들 어디로 사라져서 어떻게 끝나는 걸까.

    실은 온 나라가 마스크를 배급처럼 요일별로 사러 다니던 시절, 그때는 내가 이 댁에 다닐 때가 아니었다. 이분들이야 외출할 일들이 별로 없으니까 몇 번은 요일을 지나치다가, 할머니가 큰맘을 먹고 약국에 가려다가 진짜 난리가 났었단다. 아파트 마당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관리실 쪽에서 큰 소란이 나서 돌아다보았더니, 경비아저씨가 바로 이 어르신을 붙잡고 있었단다. 어르신이 비틀 걸음으로 뒤따라 나왔던 모양인데, 외투도 안 걸친 모습을 경비아저씨가 곧바로 보고 붙들었으니 망정이지……. 사고는 순간에 일어난다. 대문 안쪽에는 ‘집에서 기다리세요!’라는 문구와 예쁜 집 그림이 붙어있다.

 

    이거 좀 보세요, 여기! 할머니는 여전히 실종신고에 가 있다. 광주경찰청, 광산구에서 실종된 김oo씨(여, 91세)를 찾습니다. 150cm, 45kg, 티셔츠, 몸배바지, 밤색 슬리퍼. 이 정도면 그냥 울고 싶어. 추운 겨울이에요. 입춘이라 해도 밤엔 영하의 날씨가 며칠째 계속인데. 밤을 잘 이겨낼까? 어려서, 우리가 아주 어려서는 거의 아버지 혼자서 신문을 보셨지요. 밥상에서 한마디씩 하시는데, 어느 겨울날, 저런 저런,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하시는가, 어젯밤에도 다리 밑에서 행려병자가……. 우리는 그다음 말을 듣지 않았지요. 잽싸게 자리에서 피해버리거나, 그러지 못하면 머리를 쥐가 날 만큼 경직시켜요. 그럼 아무 소리도 안 들리죠. 그렇게 소리를 듣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기술은 학교에서도 써먹기 좋았어요. 듣기 싫은 수업 시간 있잖아요. 가끔이지만 어떤 싫은 말들, 애들이 조른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들도 있었어요. 그럴 땐 머리를 쥐가 나도록 웅크리는 거예요. 그럼 소리들을 안 듣고 지나가죠. 그냥 멀쩡하게 앉아서요. 나중에는 책에 쓰여 있는 것을 대충 그대로 말해주는 선생님 앞에서도 귀를 닫았죠. 심심해서요. 대신 다른 나라에 가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라니. 이 할머니는 가끔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귀를 닫고 소리를 일부러 안 듣는다고? 소리라는 게 저절로 들리는 것인데 그걸 안 들을 수도 있다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흘려듣는 학생들이야 많지만, 일부러 안 듣는다고? 그건 말도 안 된다고 내가 우긴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를 어떻게 닫느냐고. 할머니는 웃고 만다.

 

    어르신은 미동도 없다. 깨워야 할 시간이다. 다 같이 거실로 자리를 옮긴다. 텔레비전은 거의 소리가 없는 채로 늘 켜져 있다. 오늘은 어제의 대선후보들 토론에 관한 이야기로 뒤범벅이다. 앗, 속보다. 화재다. 내 고향 충청도다! ‘충’자만 봐도 고향 생각인가, 아니, 화재란 이곳 현장이 공포다.

    생활 쓰레기 처리장이니 주택 동네보담 훨 낫네요. 나는 안심해서 말한다.

    그러네. 새벽이라 사람도 안 다쳤고! 불이 꼭 나야 한다면 참 다행이네요! 아니, ‘꼭 나야 한다면’이란 말 참 우습네. 오늘은 죽는 뉴스가 아니어서 넘 고맙네요. 아침에 일하러 나갔다가 일터에서 죽어 돌아오는 젊은이들, 아, 그런 뉴스 나오면 안타깝지, 거의 살해당한 거니까 정말 원통하지. 어디서더라, 일 년이면 일터에서 죽는 사람이 몇이라 했는데. 하루에도 다섯 여섯 사람이 죽는다던가. 일터에서 죽어 퇴근을 무덤으로. 지 선샘, 인터넷 한번 찾아봐요!

    뭣 하러요, 맘 아프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가만히 네이버를 열어본다. 2021년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숫자…… 아, 설마, 설마가 사람 죽인다더니, 설마 2,146명이다. 사람으로 200을 넘으면 상상이 안 가는 숫자다. 학교 운동장을 가득 채운 숫자?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죽는다. 병도 아니고 그냥 사고로, 교통사고도 아니고 일터에서 일하다가. 추락사만 305건이라고 나온다. 날마다 한 사람이 추락하여 죽는다. 아뿔싸! 이 숫자를 말해? 말해서 뭐 해? 모르는 척하자.

    휴우, 그나마 산재사고에는 보상금이 있긴 하다. 그래봤자 보상금도 차별이 너무 심한 나라다. 하지만 케이 팝, 케이 문화에 케이 방역까지. 수출도 잘 되고, 심지어 수출 강국 운운하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맞잖아. 모르겠다.

 

    어르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니까 상황이 바뀐다. 산책 나가실까요? 오늘 바람 안 불어요. 그리 춥지도 않고요, 네? 어르신은 살짝 웃을까 말까 하는 표정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낸다. 이런 순간에는 말보다 표정이 더 중요한 소통이 되는 것 같다. 잘 듣지 못하면 말 대신 표정이 발달하나? 일단 산책이다. 할머니로부터 도망가자. 오늘은 입춘대길 좋은 날이라면서 계속 우울한 이야기에 빠져있다.

 

 

   에는 언제나처럼 몇 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나란히 앉아있기도 걷고 있기도 하다.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이 할아버지는 무관심이다. 우선 청력이 안 되신다. 천천히 걷는 걸음을 함께 걷다 보니 온갖 것이 눈에 들어온다. 새순들이 정말 보인다. 망울들이다. 어떻게 공기 중의 온도를 알고 반응을 할까. 나는 아직 추운데, 내가 추위를 좀 타는 편이긴 하다. 더러는 오래된 나무들인데, 나무껍질로 보아서는 죽어 보이는 나무들에게서조차 새순들이, 새순의 징후들이 보인다. 금목서는 늘푸른잎을 지니고 있지만 오히려 푸석해져 있고 봄 준비가 늦다. 눈비가 적어서인지 지난해 직박구리가 깃들어 살며 배설해놓았던 흔적들까지 말라붙어 있다. 황홀한 향기를 주던 꽃을 피우던 시절이 아득하다. 하지만 곧 변화를 탈 것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일는지.

    그러다 보면 할아버지는 집 쪽을 향한다. 산책은 시늉이다. 시늉도 다행이다. 바깥옷을 챙겨 입는 것도 운동이고, 덧입는 순서가 문제랴. 장갑이며 마스크는 물론, 머플러며 모자까지도 둘렀다 벗었다 그 자체도 운동이다. 노인들에게는 움직임이 그대로 운동이다.

 

    텔레비전도 꺼져있는 거실에 할머니가 그대로 앉아있다. 시장에라도 나갔나 싶었는데 아니다.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손을 꼼꼼히 씻고 옷을 다시 갈아입고는 그대로 방에서 쉬겠다고 침대에 눕는다. 간식은 좀 있다 챙기기로 하고 다시 거실로 나간다. 오늘 살짝 좀 많이 걸으셨는지 방에서 쉬겠다시네요. 근데 뭐 하셨어요? 티비도 안 보시고, 그렇게 그냥.

    또 들어왔어요. 안전 문자! 영하에 티셔츠 바람으로 사라지는 노인들 너무 불쌍해요. 사망은 사망인 줄 알기나 하죠.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사라지느냐 말이에요. 근데 60대도 있었어요. 60대에도 치매가 있나? 집에 혼자 있다가 사라지는 거겠죠? 어떻게 살던 동네에서도 길을 잃나.

    다시 또 걱정은 길 잃는 노인들로 옮아간다. 과민할 정도이다. 어떻게 달랠까. 하긴 이 할머니는 수급자가 아니라 수급자의 보호자일 뿐이다. 내 소관이 아니다. 내게 좀 친절한 할머니라고 해서 내가 어쩔 도리도 의무도 없다. 아니다, 걱정을 좀 덜어주자는 묘안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노인들은 어쨌거나 집에서 사라지는 것이니까, 요양원에 보내져서 갇혀있는 노인들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말해줄까 보다. 남편 친구들만 봐도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 경우가 꽤 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근무하는 동료들 말을 들어보면, 판검사도 심지어 의사도 부모를 시설에 의탁한단다. 누구라도 자신의 일상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데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볼 수 있는가 말이다. 요양원에 있으면 적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저녁에는 잘 재운다는 말도 있다. 코로나 시절이 되어서 요양원은 출입금지 시설이니까 감옥 그대로다. 오래 사는 것이 감옥 갈 일이다. 감옥 갈 일이면 죄다. 무기수. 먹을 것이 있고 깨끗한 잠자리가 있는 것만 다를 뿐, 고려장이다. 산속에 버려져 빨리 끝나는 것이 나았을까?

    아니다. 요양원 이야기는 상황을 더 나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이 할머니는 요양원 노인들까지 걱정할 것이니까. 하등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들, 산재사고며 아무튼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에까지 목을 맨다. 실질적인, 뭔가 해결 가능한 염려가 아니다. 걱정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걱정을 해도 올 것은 오고, 걱정을 안 해도 올 것은 온다. 평을 하긴 좀 그렇지만, 굳이 말하자면 뭔가 생산적인 것이라곤 없다. 아파트 생활 몇 십 년에 그대로 주저앉아서 살고 있으니 재테크도 꽝이었겠고. 이제 와서는 온전치 않은 남편에 대한 배려 때문에 이 낡은 집을 고수한다니.

    아무튼 재테크는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해둔다는 것이 남편과 나의 원칙이다. 그래서 기어코 건물주가 되었고, 편한 아파트 대신 3층 한편에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또 집에서 3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농가주택은 너른 밭이 주무기이다. 처음 그 밭에 서 있던 감격, 감격이라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코와 눈은 정직한 기억을 알고 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대한 실망감보다 더한 것은 축사가 있었던 자리에서 넘실대는 지독한 냄새였다. 냄새만이 아니었다. 발아래 땅은, 그 흙은 짐승들의 배설물 흔적으로 뒤범벅이었다. 환경에 익숙해져 가는 것이 사람이라, 이제는 곧 감자 도랑을 골라주고, 계란껍질이며 좋다는 것 다 가져다 쌓아둔 비료도 흩뿌려야 할 때임을 안다. 멋대로 자란 봄동이라도 캐오면 이집 저집 나누어서 좋다. 집은 며칠 잠을 자도 좋을 만큼 보수되었고, 무엇보다 큰길에서 멀지 않은 지리적 조건은 언젠가는 크건 작건 복덩이가 될 것이 확실하다. 지금이야 불편한 것이 많지만, 참자, 견디자. 아직은 베이스를 넓히는 데에 몰두하는 거다! 최소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노인이 어떻게 살든 흉볼 일은 아니다. 나도 우리도 노인들이 되어가는 것을 어쩌지는 못한다. 노인이 되어 죽는다, 그것이 진리다. 그것도 다행스러운 코스일까. 갑자기 닥치는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일 것이다. 간호사의 남편도 또는 부모님도, 의사의 아내도 또는 부모님도 코로나를 이기지 못하고, 더러는 의사 자신도 세상을 뜬다. 엄마의 담도암도 엄마나 우리들 탓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미리 절망을 말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라는 철학자의 이 말은 여러 선생님들한테서 들었다. 특히 고2 때 담임 선생님 말로는 ‘종말이 온다 해도’ 안 올 수도 있으니까 계속된다고 믿고 사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고! 이익! 종말을 믿고 탕진해버리면 종말이 오지 않았을 때 어떡하느냐고! 수긍이 가는 말씀이었고, 우리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그리 알고 살아간다. 그런데 최근에 잠깐 그 해석이 너무 시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익이란 결과를 말하는데, 어쩐지 이 격언은 태도를 말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튼 멋있는 철학적 문장이 세속적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명언은 명언이지만.

    게다가 그 사과나무 명언은 낭패감을 불러온 적이 있다. 내가 언젠가, 무슨 경우였더라? 아무튼 내가 좀 아는 척을 하고 싶었을 때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슬쩍 말했다가 딱 걸렸다. 이 집 할머니가 다른 말을 했다. 그게 스피노자가 아니라 루터의 말일걸요. - 루터요? - 예, 그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가톨릭에서 파문당한 사제요!

   아는 것이 병이다! 이 할머니는 가끔 그것을, 아는 것이 병임을 상기시켜 준다. 사과나무가 스피노자의 말이면 어떻고 루터면 어떤가. 가톨릭 신자인 나에게 루터라는 이름을 콕 짚어서 알려줘야 했는가 말이다. 나는 순간 반박할 말을 찾았다. 사과나무를 루터가 말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누가 말했거나 좋은 말은 좋은 말이죠. 하지만 루터는……. 얼른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계속했다. 그래요, 누구면 어떤가. 루터가 직접 그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도 없잖아요. 다만 고향에, 독일 어디 시골 ‘루터의 집’에 그리 새겨져 있다고 하니까. 애초에 엄청 인기 있던 신부였잖아요. 성서 강독 교수로서도 완벽했었고, 무엇보다 어려운 라틴어 대신 쉬운 독일어로, 우리나라 같으면 한문이나 영어를 안 쓰고 순 우리말로 설교를 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신부님이 어찌 결혼을 하고, 그것도 파계한 수녀님과…….

    결혼, 그거야 나중 일이었죠. 세속의 아버지에게 손자들을 안겨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대요. 파계했더라도, 파계했으니까, 수녀들도 인간적 권리는 있는 것이고. 어쨌거나 루터가 하느님의 구원을 의심한 적은 없었으니까. 임종 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되뇌었다는 성경 구절 아세요? 하느님께서 세상에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으리라, 그런 비슷한 구절인데, 난 잘은 모르잖아요.

    네, 그거 있어요, 요한복음에요.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그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다, 비슷하게라도 어떻게 아세요? 신자도 아니라면서요.

    성경 공부야 젊었을 때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기억에 남은 구절도 있는 것이고.

    맞아요,  신자 다 되셨네여.

    말을 하다 보니 부끄러워졌다. 내가 신자라서, 신자라고, 이 할머니를 좀 아래로 보며 말한 것 같았다. 고백하지만 나는 C학점도 받기 어려운 신자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나도 모르게 성호가 그어지곤 했다. 늘 반성의 마음은 있다. 수녀님의 형제자매이면서 게을러터졌음에 부끄럽다. 알면 무엇 하는가.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을 때, 돌아가셨을 때, 그런 때나 기도에 매달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도 작은언니가 수녀님이니까 기도를 잘하실 테지, 하는 의타심이 컸다. 그러다가 곧이어 막상 우리 수녀님이 아팠을 때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늘 실천이 부족하다. 밥을 먹을 때,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정도다.

    습관적으로 판에 박은 기도문이 튀어나온다고 해서 내가 그리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흔한 보통 사람, 현실적인 사람이다. 스스로 현실적이라고 말하다 보면 삭막한 느낌도 든다. 현실의 반대는 꿈인데, 꿈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내 꿈은 현실적이었던가. 남편에게 홀렸을 때 무엇보다 그의 무한 생활력을 보고 매력이라 느꼈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웃기도 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한에서 현실적으로 유불리를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 그것이 어때서. 그런데 남이 말하면 이기적이라고 흉보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말은 어렵다. 말의 뜻은 말하기에 따라 듣기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때문에 느닷없이 가벼운 다툼도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설 며칠 전이었다. 남편이 저녁에 늦는대서 게으름을 부리고 뭐 적당히 사 먹고 말지 싶어 편의점에 갔다가 세탁소 언니를 만났다. 웬일로 안쪽 한편의 옹색한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서 누구랑 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있더니만, 핫바만 들고나오려던 나를 불러 앉혔다. 웬 맥주, 추운데, 하면서도 나도 의자를 당겨 앉았다.

    동네 사람이 아닌지, 처음 보는 아줌마는 이런 시절에 화장기가 좀 과했다. 그런데 그 빨간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라는 게 가관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지 그럼. 세상사 안 그래? 당근 제 식구들 감싸게 되는 거지! 아무려나, 집값이 고공행진이야. 세금 폭탄은 어쩌구…….

    먼 말이 그래? 집값 올라서 누가 싫어하간디? 가만 안거서 5억이 10억 돼서 나쁘달 사람 누구여? 집값은 올라라 올라라, 세금은 아깝다, 건 아닌겨. 세금 덕에 늘그막에 가용돈 걱정 줄잖여. 기초 받는 노인들 은근 많더만. 우리도 곧 노인이여! 세탁소는 지원금을 편들었다.

    어느새 내가 끼어들고 있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거라니, 좀 어폐가 있소. 힘 가진 사람덜이 팔이 굽는 대로 즈그 편 부자덜만 감싸불먼 된다요? 힘없는 가난뱅이덜은 어짜라고! 긍께 우덜은 부정식품이라도 묵어야제이. 여그 편의점에 부정식품 싼 놈으로 조까 없으까?

    3층, 왜 그래, 그만 혀! 가난하도 안한 사람이 왜 흥분혀! 세탁소가 달랬다. 둘 다 놀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바 아줌마도 힐끗거렸다. 머쓱해진 나는 냉큼 일어났다.

 

    한 블록도 안 되는 거리, 바깥바람이 찼다. 그나저나 내가 세탁소와 편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순 전라도 말이 튀어나온 것이 신기했다. 사람들은 말 때문에 나를 서울 출신으로 아는데 웬일이었을까. 이제 서울 가면 순 전라도 아짐씨라 하게 생겼다.

    보도의 돌멩이가 발끝에 걸렸다. 엄지발가락이 아팠다. 구르는 돌멩이 같은 인생, 밑바닥 인생이 최근의 화두였다. 극빈에다 못 배운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르고 그런 게 필요한지 그조차 모른다고, 티비에서 그런 말 때문에 한 며칠 술렁였다. 어쩐지 불편했다. 고졸 간호조무사로 사회 첫발을 내딛던 시절, 못 배운 채 극빈했던 나는 자유를 알았을까. 24시간 돌봄 놀이방에 백일 된 아기를 맡기고 출근하던 가난한 엄마는 자유를 알았나. 중간에 야간이라도 대학을 다녔고 경차라도 내 차를 끌고 다니는 지금은 자유를 알까. 자유가 뭘까. 아리송했다. 가난한 자는 모르는 자유! 맞다, 이것이 명언이다. 밤중에 무지개 타령을 말자. 애꿎은 보도블록을 쿡쿡 찼다. 쓸쓸한 마음으로 집에 올라오니 빈 방이 유난히 텅 비어있었다.

 

    남편은 그리 늦지는 않았고, 오도카니 앉아있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왜 저녁도 안 먹은 폼으로 그러고 있어, 좋아하는 티비도 안 보고? 그리 묻는 남편이 그날따라 맹맹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여보 당신은 자유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뜬금없이 대놓고 물을 수도 없었다.

    우리는 둘이 함께 일했던 병원의 원장이 큰 병원으로 들어가는 통에 순간 실직을 맞았었다. 첫 직장에서 그리 쉽게 실직이라니, 엄청 충격이었다. 곧 다른 병원에 취직을 했지만, 남편은 투잡 대신 저녁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해냈다. 철밥통으로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니까 자유로울까. 직장에는 사다리가 있잖은가. 남편은 기껏 집에서 채널 독점이나 하면서 자유를 누리는지도 몰랐다. 퇴근할 때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 프로라도 보고 있으면 남편은 화들짝 채널을 바꾸곤 했다. 그런 델 왜 보냐고! 신문 방송이란 대중이 비판적 생각을 못 하도록 서커스를, 예능이다 트로트 같은 것들을 보여주는 거라고 했다. 입만 열면 ‘정치에, 공공의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고, 더 악한 놈들한테 지배당한다고’, 누구랬더라, 난 참 외국사람들 이름에 약하다, 암튼 고대부터 내려온 불변의 진리라고 했다. 둘이 사는 집안에서도 자유는 구겨지기 십상이었다. 남편은 이런 내 기분을 모르는 거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모른다. 밖에서고 안에서고 구겨진 밤이었다.

 

 

    오늘따라 세 시간이 좀 지루하다. 잠깐의 산책이 움직임의 전부였다. 땅 위를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연둣빛 기운들을 바라본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새순이 꿈틀거리는 봄날들엔 일단 대문을 열어야 한다. 나야 정해진 시간이 되면 훌쩍 일어서서 나가면 끝이다. 몸조심하세여! 낼 봬요! 아님, 담 주에 봬요! 그다음은 정적일 것이다. 집안에 활기라곤 없는 노년. 보도 듣도 않는 텔레비전이나 틀어져 있는 답답함을 어쩌고 살까. 코로나도 일상이 되어가면서 무디어지고 있고, 무디어진 만큼 무서움이 덜해간다. 무서워져 가는 것은 정치판 뉴스들이다.

    요즘 참 어지럽네. 하늘 높은 거드럭거림에 업신여김에 이런 저런 분노에. 하지만 이것은 내 생각인데요, 분노는 힘이 되지 못해요. 자조에 빠지게 되거든. 지금 머릿속에서 맴도는 시, 옛날 시인데, 눈이 컸던 김수영, 들어볼래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이 할머니는 심심하면(?) 시다. 눈 큰 옛 시인을 내가 어찌 알아. 근데 시가 뭐 이러나. 왕궁, 왕궁의 음탕함? 난데없이 왕궁?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는다. 아까처럼 길 잃은 노인들 걱정이 백번 낫겠다. 할머니에게 들킬세라 속으로 기도문을 왼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하느님은 우리를 유혹과 악에서 지켜주실지 모르나, 뉴스는 구덩이로 도배된다. 단순한 불운으로 무너지는 건물 아래에, 아님 필연적인 일, 밥벌이를 하던 중에 느닷없이 펄펄 끓는 용액 속으로, 기계의 소용돌이 속으로. 뉴스를 바꿀 수 있는 기도가 있다면 좋겠다. ‘야훼여, 모르는 체 마소서. 나의 힘이여, 빨리 도와주소서.’

    그렇게 억울하게 속절없이 사라진 자리에는 저절로 여물어 내린 토지에서와는 딴판으로 양분이 없어요. 울분만 쌓여있을 걸요.

    울분만 쌓여있는 땅이라고? 그럼 어떻게 새순이 나랴. 가슴이 덜커덩, 이내 의기소침해짐을 느낄밖에. 이건 내가 아니다. 어려움을 참고 노력하면 분명히 대가는 온다고 믿으며, 단순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내가 왜 흔들리는지. 나는 현실에 뿌리내린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으라는 가르침은…… 이제는 무용지물인가.

    아냐, 울분보다는 분뇨, 그래 소똥이 쌓인 게 백 번 천 번 낫다. 올봄엔 우리 소똥 밭에 사과나무를 심자고 해야지. 웬 사과나무? 남편이 물으면, 아침마다 사과를 따먹는 상상이 즐거워, 라고 말해야겠다. 산림조합에 사과나무 묘목이 나올까. 옥천 묘목시장까지 가야 하려나.

 

    드디어 태그 시간이다. 몸조심하세여! 담 주에 봬요! - 주말 잘 지내요, 지 선샘!

아, 이 신선한 바깥 공기. 차로 바로 가지 않고 큰 나무 둥치에 기대어 본다. 나무 아래는 달콤한 수액의 향기가 섞여 코끝이 촉촉해진다. 눈이 사르르 감기며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온통 연두다. 이 봄에 우리 농막에는 새 식구들이 늘 것이다. 사과나무 묘목은 두서너 그루 흙 많이 붙은 분달이로 사다가 돋아놓을 테다. 덩달아 고목나무에서도 새순이 날 것이다. 죽은 나무에서는 어떤 순도 움틀 수 없다는 너무 확실한 사실을 비껴가는 달콤함. 그래, 그 달콤함에 기대어 살아가는 거야. 누가 뭐래도 봄에는 새순이 움트는 것이다. 어느 순간 백목련은 우아한 자태로 시선을 모을 것이고, 개불알꽃들은 그 푸르스름 작은 몸으로 여럿이 함께 마른 풀잎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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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 『월간문학』 641호 (2022년 7월호), 183~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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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2. 6. 14. 11:17

 

 

놀이터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 신광철 사람

 

    

    놀이터가 쓸쓸하다. 그려놓은 것처럼 정적인 것이, 그네 줄에 미세한 흔들림도 없다. 바람도 없나 보다. 11월은 무엇이든 쓸쓸해 보이는가. 하긴 평상시에도 놀이터는 옛날 같지 않더라. 그네를 좀 타 보고 싶었지만 세력 좋은 언니들이 오빠들이 좀처럼 틈을 내어주지 않던 어린 시절이 아스라하다. 동네 앞 공터에 색색 미끄럼틀이 생기고 시소가 생기고 나서야 여기저기 조금 놀 수 있는 구멍들이 늘었다. 그래도 그네 아래에는 늘 줄이 길었다. 손을 입에 넣고 빨다가 집에 들어오면 얼굴이 먼지투성이라고 핀잔을 듣곤 했었다. 세월이 마냥 속절없이 흘러버린 지금, 아이들 숫자가 엄청 줄고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민지세대라나, - 왜 하필 민지야? 그냥 엠제트라고 해도 알아들을 터인데, 엠지든가, 일 없이 남의 딸 이름을 거기다 부르냐고! - 암튼 신세대 아이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해도 애들을 낳지 않을 거라고 한다니까 놀이터가 점점 텅 빌밖에. 코로나도 덧붙여 이유가 된다. 전에는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한쪽에 노인들이 있곤 했다. 놀이터 옆에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고, 거기서 노인들이 뭔가를 해보거나 더러는 그냥 앉아있기도 했었다. 이제 그 노인들도 주눅이 들어서 집에 꼼꼼 숨은 것이리라. 숨어야지 그럼, 살고 봐야지.

 

    그런 어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고발을 당했다. 우리 동네는 아니지만 어디가 대순가. 그 자체로 충격스러운 뉴스다.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웃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을…….’ 그런데 채널이 슬쩍 지나가고 만다. 오전 재가요양돌봄 할머니 어르신 집에서다. 오전 할머니는 뉴스를 잘 틀지 않는다. 바로 다른 채널로 돌려버린다.

    네이버를 뒤져보고 싶었지만, 할머니 어르신은 좀처럼 틈을 주지 않는다. 내가 출근하면 대부분은 교회에 가시는 날이 많고, 집만 아무렇게나 나를 맞는다. 잠깐, 어떤 때에는 의아하다. 혼자서 교회를 다니실 정도면 요양등급에서 흔히 말하는 경도인지장애 정도일까. 그건 치매 전 단계를 말한다. 그래도 거동이 되시는데 돌봄 서비스라고? 물론 혈액암을 앓고 있는 환자이시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 과정은 실제로 돌봄일을 하는 우리들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재가요양돌봄 등급이 나왔으니까 서비스를 받는다. 아직은 경증이라서 출입이 가능하시겠지.

    대문을 열면 첫 냄새는 고기냄새다. 치료를 위해서 고기를 드셔야한다. 일단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방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는 빨랫감인지 구분이 가지 않으니까 일단 치워놓고 나중에 물어봐야 한다. 청소가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교회에서 돌아온 할머니의 눈초리는 매섭다. 당신이 없는 사이 뭔가 말끔하게 치워져 있기를 바란다. 오늘따라 더 이것저것을 살핀다. 느닷없이 청소를 의심하는지 말소리가 뾰쪽해진다.

    오늘은 청소도 안 했네이. 멋 했데.

    어르신, 저 오자마자 청소부터 하는걸요.

    아니, 걸레도 쩌렇게 물도 안 묻었구만, 먼 청소를 했다근데.

    아차, 내 실수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서 보니까 별로 닦을 것이 없어서 냉장고 앞과 싱크대 밑만 물티슈로 닦았는데, 이도 저도 큰일이다. 이제 와서 걸레질을 안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청소했다고 했으니 거짓말이 되니까. 그렇다고 물티슈로 닦았다는 말은 더더욱 큰일 날 소리다. 설거지할 때 온수를 틀어 쓰는 지 그것도 염려하는 할머니 앞에서 물티슈를 쑥쑥 뽑아서 바닥을 닦았다고 하면 이해를 하겠는가.

    아, 이런 민망함은 생각도 하기 싫다. 사실 이 할머니가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기 전에, 그러니까 작년까지는 치매안심센터에서 물티슈를 충분히 나누어 주었다. 치매환자들에게는 한 달 치라면 모자라기는 해도 일정 양의 기저귀도 제공했다. 그렇다 보니 요양보호사들 입장에서는 사실 집에서는 그리 쑥쑥 뽑아 쓰지 않던 물티슈를 척척 쓰는 습관들이 생겼다. 물티슈가 썩지도 않아서 지구를 망친다거나 몸에도 해롭다느니 그런 것은 호사가들의 말이고, 일선에서야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말이다. 아기용이라고 특별히 따로 나온다고는 하지만, 엄마들이 제 아기들 엉덩이도 닦아주는 것이 물티슈인데. 암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할 수 없어서 우물쭈물 넘기고 점심 준비를 하려는데, 이번엔 밥도 먹기 싫다고 하신다.

    솥에 밥 없으까. 새로는 허지 마. 홍시감 쩌렇게 나두고 어째쓰가. 묵어부러야제. 이빨 없다고 홍시만 묵가니, 꼭 요런 것들만 보냉께는.

    자녀분들이 일단 어머니가 임플란트하시느라 고생하시니까 일부러…….

    그런 줄은 알제만, 고기로는 국물이 없간디. 어째 속이 허한 것이.

    그럼 더더욱 밥을 드셔야죠, 홍시는 너무 달아서.

    그람 고구마를 찌제. 고구마도 썩어나간디.

    네, 그러시게요. 홍시도 고구마도 넘쳐나니까 복 받으신 거죠.

    복은 무신…….

 

    아뿔싸, 엎친 데 덮친다더니, 고구마 냄비에서 탄 냄새가 난다.

    아니, 먼 냄시랑가. 냄비 다 태와묵는갑네이.

    아아뇨, 별로 안 탔어요. 살짝 좀 눌었어요.

    머시 그래, 다 타부렀구만.

    부엌으로 쫓아와서 들여다본 할머니는 성화다 성화. 염려마시라, 잘 닦아 놓겠다를 연발하며 고구마를 식탁에 챙겨드리고는 나도 모르게 핸폰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 동작을 보셨는지, 또 뭐라고 그러신다.

    오매, 커피 좀 타 봐, 물이라도 조까 떠 줘보던지. 그냥이사 묵겄어, 목 맥혀서 원. 요리 와서 좀 묵제.

    커피 가루를 컵에 털어 넣고 물 끓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커피가 땡긴다. 참는다. 첨엔 내가 사다놓고 같이 타 마셨는데, 이번에 할머니가 사다놓고는 달라졌다. 이렇게 먹으믄 금세 다 먹어불겄네,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통에 아차 싶었다. 오후에 가서 마시자. 그 집에선 내가 첫날 갔을 때 가져간 보온병의 커피를 보고, 집에 온 손님이 커피를 싸들고 다니면 어떻게 되느냐고 깜짝 말렸다. 그래서 커피는 내가 알아서 마시지만, 가까운 손님이나 친척이 된 기분이다. 주인네가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믹스커피는 손님용, 아니, 아예 나를 위해서 사다놓는 것 같다. 나는 특이한 취미가 없는 것이 편하다. 커피도 아무거나 다 마시지만, 특히 믹스가 땡길 때가 있다. 우리 집이 아닌데 나를 위한 커피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빨리 가자. 그렇게 오전 시영아파트 할머니 집을 나선다.

 

 

    차에 앉아서 시동을 켜고 보니, 서둘러 나와서인지 오후 출근시간까지 시간이 널널하다. 아차, 그 놀이터 뉴스, 기막힌 뉴스를 찾아보자. 다시 시동을 끈다. 놀이터, 아이들, 고소 그렇게 치자 바로 뉴스가 뜬다. 인천 어디, 어디면 어떠랴, 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다른 아파트 어린이들이 고발조치 되었다는 뉴스다. 그러기도 하는가, 초등학생 아이들을? 뉴스라지만 무지막지했다. 아이들을 고발한 사람은 아파트 관리소장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의 의견을 따라야 관리소장 직이 유지되는 사정을 생각하면, 고발자는 아파트 입주민들이다. 아니, 입주민 대표자 회장이란 사람이 시켰단다. 시작은 이랬다. 입주민 대표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고는 대뜸 혼을 냈다. 너희들 어디 사냐? - oo에요. - 아니, oo 살면서 남의 아파트 놀이터에 오면 도둑인 거 몰라? 그러고는 가방들을 다 빼앗고 관리실에 억류하라고 데려왔단다. 기물 파손죄로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과 함께. 이웃 놀이터에 가면 도둑? 도둑? 세상에 아이들을! 초등학교 애들을!

    이런 것이 ‘그릇된 정의’인가? 지난번에 조선 천주교 박해 때 이야기를 예를 들어서, 그릇된 정의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를 낳았다던 말이 떠올랐다. 오후 보호자 할머니가 했던 말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애매했던 그릇된 정의라고 하는 말의 뜻이 이 순간 갑자기 분명히 다가온다. 남의 땅에 들어왔으니 도둑이다, 그러니 고발한다? 아, 이런 것이 바로 그릇된 정의야. 이런 것뿐일까. 권력형 비리 죄목으로 수사하다가 안 되면 사기죄로, 그것도 안 되면 자녀 입시비리로, 아니면 또……. 아무튼 나쁜 놈이 분명하니까 반드시 잡아넣을 테다. 이런 것, 최근에 남편이 속 터져하는 검찰 발 뉴스들도 생각해보니 정의는 허울이다. 남편한테 ‘그릇된 정의’라는 말을 해보고 싶다. 남편은 어떤 사건은 공소시효가 임박했으니까 수사를 안 한다던 뉴스에도 싸늘하게 화를 냈었다. 지난 것도 아니고 임박했다고? 나에게는 별로 화를 내는 적이 없지만, 티브이를 보면서 화를 낼 때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화를 내서 무서울 때가 있다. 누군가가 차갑게 화를 내는 것은 정말 무섭다. 열을 내면서 화를 내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열이 식으면 화도 식으니까. 그래, 세상엔 그릇된 정의가 판치고 있어…… 라고 말해 보자. 내가 이런 어려운 말을 하면 놀라겠지, 아마. 뭐야, 이러다가 늦겠네.

 

 

    오후의 아파트에 들어서면서도 당연히 놀이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싸늘하기는 이곳도 매한가지다. 저렇게 텅 빈 놀이터에 이웃 아이들이 와서 논다고 경찰을 불러? 아직도 그 뉴스가 따라다닌다. 아이들이 없어서 텅 비어있고, 아이들을 오지 못하게 해서 텅 비어 있다. 요즈음은 할아버지 어르신도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신다. 전에는 산책을 나오신 날이면 놀이터 옆 운동기구에서 어깨돌리기와 다리 폈다 오므리기 정도는 하시곤 했는데, 올해 들어서 여름부터는 산책을 아예 기피하신다. 어쩌다가 산책을 나오셔도 놀이터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신다.

 

    내 출근이 살짝 늦었는지, 점심 식탁은 다 차려져 있다. 작은 그릇들에 감자샐러드가 각각 담겨있는 것이 아침 식탁에서 남았나 보다. 어쩌다 그렇게 조금씩 먹으면 맛있다. 내가 집에서 절대로 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고 직장 일을 했으니 손 가는 음식은 꽝이다. 재빠르게 차려 먹고 설거지는 남편이 거의 맡는다. 새로 만든 상치 겉절이에는 흰 깨가, 메밀묵 무침에는 검은 깨가 뿌려져 있다. 요새 두고 먹는 연근조림에는 잣도 듬뿍 들어있다. 간장에 졸여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언젠가, 전라도 사람들은 깨나 잣을 많이 쓰는 것에 내가 놀랐다는 말을 했더니, 그것도 식재료라고 생각하고 일단 무엇이든 많이만 먹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큰 냄비에는 국이, 작은 냄비에는 맹물이 끓고 있다. 밥을 차리고 나서 누룽지를 끓일 물이다. 달걀 물에 파가 송송 썰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북엇국일 것이다. 나를 보더니 그제야 국에 달걀 물을 푼다. 역시 북엇국이다. 기본 영순위인 물김치만 시원하게 내오고 밥을 차리면 된다. 요즈음엔 나도 새로 지은 밥이 더 맛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이어트는 저녁에 하면 된다. 점심 후 설거지는 내 당번이다. 그리고 커피 타임. 오늘따라 오전부터 마시고 싶었던 커피가 달달하고 맛있다. 핸드폰 소리다.

 

 

    딸아이다. 아이는 아니지, 임신 6개월인 딸아이가 아이는 아니다. 이 시간이면 근무 중일 텐데 웬 전화일까. 엄마가 일하고 있는 것도 모르지 않을 텐데. 애가 전화를 하는 시간이 아니다. 방정맞게 염려가 먼저 스친다.

    엄마는 방정맞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염려가 사실이 된다. 딸애가 점심을 먹고 다시 근무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병원으로 가는 중이란다. 병원으로, 임신 6개월 된 임산부가! 어쩌면 좋을까. 임신 6개월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기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는 시기다. 열이 나거나 두통이 아니라 배가 아프다고? 다른 방법이 없다. 무조건 딸애를 보러 가야한다. 오후 돌봄 집에 들어오면서 출근 태그를 찍은 것이 겨우 한 시간 남짓이다. 지금 찍고 나가면 오후 근무 전체가 무효다. 그렇다고 시간을 다 채우고 갈만큼 내가 배짱이 있는 엄마가 아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먼저 한다. 식탁에 함께 있던 할머니는 뭔가 다 알아들었겠다.

    운전 조심해서 먼저 내려가요. 근무 끝나고 나도 곧바로 갈게. 남편은 언제나 정답을 말한다. 전화를 끊기가 바쁘게 할머니를 쳐다본다. 할머니도 나를 보고 있다. 말이 필요없다. 알았어요. 지 선샘, 놀라지는 말고 어서 가 봐요. 운전은 천천히…….

 

    유산은 자궁 내막이며 내벽을 상하게 할 수 있어서 문제다. 더구나 6개월 이럴 때 라면 출산과 똑같이 관절이며 자율신경 균형이며 모든 것이 깨질 거다. 간호조무사 생활 첫 시작이 바로 산부인과였다. 나는 아무 탈 없이 임신 9개월을 보냈고, 원장도 산후 2개월이나 쉬도록 해주었다. 역시 산부인과였다. 내 딸은 그런데……, 태동도 한참 전에 느꼈다는데……. 말도 안 돼, 첫 유산은 다음을 장담할 수 없기도 하다. 조기 출산이어도 애매하다. 생존 가능성이 너무 낮다. 잘 해야 25퍼 정도. 몸무게가 2.0은 되어야 한다. 무조건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한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럴 리가 없다. 딸애는 건강한 편이니까…….

    집에 가서 뭐라도 챙겨가야 하나 하는 마음과 곧장 딸애에게 가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 집에 다녀간다는 말은 거의 한 시간 차이를 낸다 싶어서 그냥 맨몸으로 고속도로로 향한다. 얼굴을 일단 보자, 그래, 만나 보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고, 운전 중엔 어떤 전화도 받지 않는 원칙 같은 것도 아무 소용없다. 사위 번호가 뜨자, 정신없이 받는다. 어떤가, 나 지금 내려가고…….

    아, 장모님, 어머님, 민지 괜찮아요. 일단 누워서 안정 찾고 있어요. 천천히 오…….

차의 속도 때문에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전화기는 하필 시트 어딘가로 빠져버린다. 하느님 맙소사. 아니,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가 그동안 하느님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지 않았었는지 어색한 느낌이 들 정도로 큰 소리로 불렀다. 주님, 온 마음으로 기도하오니 또 하나의 생명을 지켜주시옵소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위대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셨음을 압니다. 하찮은 저를, 저의 딸과 그 딸애를 가엽게 여기시어……. 눈물이 쏟아져서 갓길로 차를 댄다. 숨을 고르며 찻길을 보니, 말이 고속도로이지 이른 오후 시간이어서인지 차들의 왕래가 번잡하지는 않다. 내가 겁이 많은가. 좀처럼 다시 노선으로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은 마음 부서진 이를 고쳐 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

    별들의 수를 정하시고

    낱낱이 그 이름 지어주시듯

    헤아릴 길 없는 권능과 자애로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바닥까지 낮추시는 분.

 

    언젠가 들었던 신부님의 기도 소리가 귀를 울린다. 마음 부서진 이를 고쳐 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 그래 꼭 구해주실 것이다. 별들에게 이름 지어주시듯……. 맞아, 우리 아기 이름도 지어주시고. 가난한 이를 일으키시고 악인을……. 엉? 가난한 우리를 일으키시고, 그런데 악인을? 가난하지 않으면 악인? 반지하에서 신혼을 보냈던 나는 충분히 가난했지만, 지금은 임대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받고서 살아간다. 세 든 사람들이 가난하면 나는 그럼 악인? 이런 내용이 이해가 안 된 채로 걸려있었나 보다. 그렇다고 대놓고 묻지도 못한다. 나는 시원찮은 신자니까. 나는 가끔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 문제다. 신부님의 기도들을 100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 새삼 이 어려운 기도를 되새김할 때인가. 어서 가자.

 

 

    병원에 도착해서도 민지를 만나기는 수월치 않았다. 코로나 검사를 해놓고 근처 분식집에 앉아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오후 늦게야 애 얼굴을 보았다. 지금은 웬만한 상태로 회복되어서 링거액을 꼽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는데, 지금은 아이마냥 배시시 웃기까지 한다. 태중의 제 아이를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웃음기를 돌게 하나 보다. 이삼일 외근이 좀 있었다는데, 그 피로가 쌓여서 그리 된 것 같다고.

    임신부가 웬 외근인가 싶지만, 몸도 마음도 건강한 민지는 평소에 사회생활에서도 여물기까지 하다. 대학을 일류대학 일류학과로 진학한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하자마자 꽤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과 더불어는 사표를 냈다. 엄마로서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사표를 내는 것이 생활을 남편 직장 있는 지방으로 합치는 것이라서 실업수당을 받았다나? 실업수당이라니…… 참 좋은 나라다. 그러더니 어느 기간 후에는 다시 임시직이지만 비교적 안정된, 정직으로 전환되어도 좋을 직장엘 들어갔다. 기본적으로는 사무직이지만 가끔 외근이 있다고 했다. 허니문 베이비까지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해도,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들인데 아기 소식이 없는 것만 살짝 걱정이었다. 그러다 기다림에 지치기 직전에 임신이 되었으니 그 또한 마음대로 되는 듯 했다. 계획도 다 서 있는지, 출산 직전에 그만 둘 예정이란다. 그러면 또 실업수당을 받는 것인지. 아직 나이도 어린데 매사에 믿음성 있게 처신한다. 나는 그 나이에 엄마가 되었었지만, 세상 물정은 잘 몰랐다. 남편에게 처음부터 의존적으로 살았다. 무조건 절약만 하면 되는 줄 알았었다.

    딸애도 혜택을 누렸지만, 그래서 좋은 것이라 느끼지만, 실업수당 제도는 좀 묘한 데가 있다. 요즘엔 간호조무사들만 해도 1년 미만 퇴직금과 거기에 더해서 1년 미만 연차 수당을 받고 퇴직한 다음에, 이제 6개월인가 실업급여 챙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했다.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 몰라도, 규정에 맞춰 설계를 한대나? 요즘 젊은 아이들 똑똑한 것이 바보 같은 내 눈으로는 살짝 무섭기도 하다. 나 젊었을 때는, 스무 살 나이로 간호조무사 노릇을 시작했을 때는, 그 일은 병원에선 바닥을 기는 일이었다. 내가 없음 간호사들이 힘들다, 의사들도 힘들어진다. 결국 환자들에게 처음 필요한 사람은 나다. 얼마나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지나온 시절이었나. 요즘 아이들은 똑똑하다. 똑똑해도 불운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민지는 이번에 태아를 지켜냈다.

 

    사돈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녁 때 두 분이서 함께 다녀가셨다. 맏며느리가 첫 임신 중 입원했다는 소식에 얼마나들 놀라셨을지, 다행이다, 다행이고말고. 뭔 일 있겄냐. 시어머니가 애를 붙들고 하도 설레발을 치니까 시아버지가 말릴 지경이었다. 사돈이 저녁을 사셨으니 내일은 점심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올라가야겠다.

    사돈네는 들어가시라 하고 다시 병실에 올라왔더니, 안정을 찾은 민지 얼굴과 대조로 외려 사위 얼굴은 파란 채로다. 저녁도 아직 못 먹고. 해서, 낼 출근할 사람은 좀 쉬라고 집에 들여보냈다. 병실엔 어차피 보호자 1인으로 제한이다. 남편은 내려오지 않기로 했다. 딸이 안정된 후 사위가 곧장 장인어른에게 안심하시라는 전화를 했더란다. 나는 오전 수급자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 하루 쉬어야 한다고 말해두었다. 오후 집은 헐레벌떡 떠나올 때 벌써 아셨으니까 일 없다.

 

 

    엄마 나 괜찮아, 잠깐 지나간 일이니까 조금도 걱정 마셔! 엄마도 가서 좀 쉬시지.

    언제 왔다고 쉬러 가냐. 아직 괜찮다. 그나 백이 아빠가 많이 놀랐겠다.

    엄만 동백이보다 백이가 더 예쁘게 들려?

    동백 필 때 첫 나들이 가자고 동백이랬다며? 그렇다고 꼭 동백 동백 해야 되냐? 너도 민지 보다는 민아 민아 해버릇해서 민이라고 먼저 나와. 것보다, 너희 입주 예정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잘 꾸며져 있겠지?

    엄마는 무슨 놀이터 걱정을 벌써 하셔.

    아니, 애는 낳기만 하면 금세 자란단다. 내가 너를 낳아서 이 세월이 흘렀다고? 안 믿겨. 넌 돌도 되기 전에 걸음마를 했어. 말도 빠르고. 어린이집엘 오래 다녔지, 엄마가 일했으니까. 건 미안해. 유치원, 초등학교……. 놀이터에선 어땠을지.

    그만 하셔. 엄마가 일하는 애들 많았어. 그렇다고 아직 애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놀이터 걱정이세여? 방안에서 가지고 놀 장난감 걱정부터 해주셩!

    얘가 어리광은! 다 나았나 보네. 장난감이야 엄마 아빠가 오죽 잘 준비하겠어. 할머니는 애기이불부터 해줄게. 애기이불이라고 말하면서 조각이불이 떠올랐다. 오후 돌봄집 할머니가 손바느질로 만들고 있는 조각이불 말이다. 최근에 얼핏 보아도 100조각도 넘어 보이는 조각들을 잇고 있었다. 대학에 간, 그래서 기숙사로 독립한 손녀딸에게 보내줄 조각이불이란다. 난 바느질은 절대로 못한다. 생각만 해도 미리 온 몸이 쑤실 듯 아프다. 할 일 없이 그런 걸 꿰매고 있는 할머니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얼핏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서라, 부러워할 걸 부러워해라. 모처럼 마트 말고 백화점 신생아코너에 가서 예쁜 아기이불을 사면된다.

    엄마, 그럼 장난감은 안 사줄 거야? 내가 멍하고 있었는지, 딸애가 다시 묻는다.

    사주고말고!

    그러니 놀이터 걱정은 말아요! 아파트 입주하고 나서 아기 나오니까 좋잖아. 입주하면 예쁜 놀이터는 당근 따라오는 것이니까요.

    그래, 그렇구나.

    엄마, 난 아이들 더 가질 거야. 놀이터에서 혼자는 외로워. 외로웠어. 이웃 애들은 언니든 오빠든 동생이든 누구라도 있었어. 나만 혼자였지 뭐야. 애들 여럿 함께 놀이터 가서 소리 지르고…….

    어머나, 이 이이가 외로웠구나. 언니 동생들 사이에서 자랐던 나로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이다. 나도 남편도 적지 않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5분의 1, 7분의 1의 혜택만으로, 오히려 무엇인가에 굶주린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나랑 남편은, 빠듯한 살림 일구면서 올인해서 기를 수 있으려면 자녀는 하나면 된다고, 하나라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딸 하나에 최대한 지원하기, 대학까지 아무 걱정 없게 쭈욱! 그런 것이면 최고일 줄 알았다. 대체 무엇이 좋은 조건이란 말인가!

    애를 여럿 갖겠다고?

    그래 엄마, 나 실은……. 나 초등 2학년 때 같은 반 수희 기억나? 같은 동 살던 정수진.

    수진이는 뜬금없이.

    걔네 민수 오빠 있었잖아. 오빤 상급반이라 놀이터에서 마주치진 않았지만 아침 학교 갈 때는 다들 함께 나가곤 했었지. 그런데 놀이터 애들은 수진이가 아니라 내가 민수 오빠 동생인 줄 알았었나 봐. 이름 땜에. 그걸 수진이가 알고서는 화가 났었는지 날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고! 내가 그런 말 한 적 절대 없는데! 요샛말로 그때 왕따였어. 애들은 나만 보면 ‘민지는 민수 오빠 동생 아냐!’ 이렇게 떼창을 했다니까.

    아니, 그런 일이. 근데 왜 엄마아빠한테 암말 안했어?

    오빠를 어떻게 낳아주나. 지나가버렸는데.

    지나가?

    오빠는 차례가 지나가버렸잖아. 민수 오빤 수진이 오빠가 맞고.

    없는 오빠 타령을 여태 품다니. 많이 외로웠구나 싶다. 애들 여럿 낳아서 놀이터에서 언니오빠동생 있다고 자랑하게 한다? 어린 시절의 아픔은 작은 것이라도 오래 가는구나. 또래들 중에는 결혼이고 육아고 다 필요 없다는 말도 서슴찮는데. 화제를 돌린다.

    너 일은 안 하려고?

    아니, 해야지. 애 낳는 건 맘먹기야. 출산지원금부터 시작해서 육아휴직이다 뭐다, 아빠들도 그게 가능하거든. 다자녀 혜택으로 분양아파트 청약도 유리할 것이고.

    다행이다. 이렇게 미래를 설계하는 신혼이 예쁘기만 하다. 이웃 놀이터에서 놀다가 쫓겨나고 도둑이라고 고발된 아이들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냉정하다 못해 야비하고 잔인한 뉴스는 태교에 절대로 좋지 않다.

    엄마, 애들 놀이터는 진짜 염려 마세요. 우리 들어갈 아파트 말고도요, 순천 기적의 놀이터 안 들어보셨어요? 엉뚱방뚱이라던가, 엉뚱발뚱이라던가, 그런 놀이터인데, 그 흔한 미끄럼틀이며 그네며 시소 같은 것이 전혀 없대요. 그저 넓은 모래밭과 잔디 언덕에 고목나무들만 늘어선 곳에 개울도 있대요. 『놀이터는 위험해야 안전하다』 그 비슷한 책들을 펴낸 아동전문가가 기획한 것이라고, 벌써 유명해요. 아,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놀이터’ 그런 것도 있대요. 시-가-모-노! 그런 곳에 애 걸음마 잘 하면 데리고 가서…….

    그래 알았다. 엄마가 김칫국부터 마시며 안심하마. 애들 다 데리고 가자꾸나.

    엄마는, 김치도 안 좋아하면서.

    그래, 그래. 엄마가 나가도 너무 나갔구나. 어서 눈 좀 붙여.

 

    아예 하루를 꼬박 더 보내고 집에 돌아온 것은 늦은 오후였다. 퇴근 시간되기 전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반나절하고도 하루내 쉬고 나니까 공기가 좀 변한 것 같다. 엷어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숨을 크게 크게 쉬어본다. 곤하다.

    퇴근한 남편은 민지 민지 어떠냐를 연발 하더니, 한참 후에야 고생했다며 저녁을 나가서 먹자고 한다. 하지만 이미 씻은 뒤라서 외출이 귀찮을밖에. 대충 시켜먹자고 하고는 아이들처럼 치킨을 시켜서 치맥을 한다. 몇 끼 대충 먹었더니, 배가 불러도 맛이 있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인데, 아침에 얼굴이 붓게 생겼다.

 

 

    아침이 그리 쉽게 오지는 않는다. 꽤 늦은 시간 젓가락언니의 전화가 밤을 흔든다. 동네 언니다. 최근 들어서는 시절이 시절이라서 잘 만나지 않았고, 잘 만나지 않으면 할 말도 별로 없는데, 언니는 평소의 헤실 거리는 웃음기 대신 목이 멘 소리로 말한다.

    희선이가, 희선이가 잡혀갔어야.

    잡혀가다니! 언니, 그래, 무슨 일인데?

    어즈께 낮에, 사람들이 오더니 잡아갔단다. 애기들만 놔두고, 세상에 그럴 수도 있다냐, 애기들만 놔두고.

    무슨 말이야? 왜 그런 거냐고!

    갸 신랑이 아프잖냐. 저번에 민지 엄마한텐 말 했잖어, 신랑이 심각하게 아프다고, 사구체가 뭐여, 암튼 신장이 어쯔고 돼서 투석을 시작한다고. 이 속없는 가시나가 지가 나서서 그새 이식 어쩌고 하면서 적합도랑가 멋인가 검사하러 갔잖어, 즈그 둘이서 지난주에 서울을. 애기들은 즈그 시엄니가 올라와서 봐주고. 근디 그 유명 병원에서도 방역이 뚫리다니 먼 그런 일이 난다냐. oo대 병원있잖어, 여그는 병원이 없가니, 거까지 가 갖고는. 암튼 간에 보호자 한 명은 병실에 들어갈 수 있응께, 보호자도 당근 코 쑤시고 나서야 들어갔었겄제. 근디 내려 와서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는 거야, 금욜날 잡힌 추가 검사가 취소된 것은 물론이고. 아예 식구대로 다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말만 듣고도 무서웠겄제. 그래도 실실 웃더라고, 갸는 2차까지 다 맞었응께, 나도 큰 걱정 안 했제. 근디 글쎄, 식구대로 다 받었는디 가시나 저만 양성 나왔다고. 저만 나온 것은 다행이지만 애기들 놔두고 어쩌냐고, 그냥 펑펑 울더라고. 신랑이나 성한 사람이어야 말이지. 우물쭈물 그러고 있는데, 낮에 사람들이 와서 데려가 부렀다네. 애기들 앞에서, 애기들만 놔두고. 애기들만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서 얼마나 무섭겄어. 외할매라고 가 볼 수도 없는 일이고, 전화통에만 매달려 있제. 애들이라 속이 없긴 하네, 할무니 머 먹고 싶다고 그런 소릴 하고 있응께. 부랴부랴 멋 쫌 만들어서 들고 갔더니만, 아차 싶어서 문도 못 열어보고 문 앞에다 놓고 내려와서 전화를 하는디, 눈물 안 나고 베겨? 대문 밖에서 전화하면 애기들이 문 열고 나와불까 봐서 내려와부렀제. 짠해서 나도 모르게 안아불고 그럴 것인게. 울고불고 난리일 꺼 아니겄어.

    어쩌냐, 언니. 그래도 언니가 정신 차려요. 누군가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이런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나 보다. 뉴스에서 백신 접종률이 80퍼에 육박하지만 총 누적확진자는 40만에 다다른다고 해도, 우린 모두 설마 하며 뉴스는 뉴스일 것이라고, 남의 일일 것이라 하는데 그게 아니다. 그러니까 40만 가정에 날벼락이 떨어지다 보니 어느 날 어느 집에도 일이 닥친다. 코로나는 사람들을 가른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언니가 안쓰럽다.

 

    속수무책이면서 엉뚱하게도 그 언니가 젓가락언니로 불리게 된 이야기가 떠오른다. 젓가락이나 빼빼로처럼 말라서가 아니라, 좀 마른 편이긴 하지만, 젓가락으로 밥 먹다가 날벼락이었단다. 결혼 몇 년 안되었을 때 이야기라지만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이 동네에서 살며 만났을 때다.

    복달임한다고 동네 아줌마들 여럿이서 닭죽을 먹던 때였다. 젓가락언니는 못 말리겄소이, 하고 누군가가 이 언니를 놀렸다. 이 언니가 젓가락으로 살코기를 집어먹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모두 깔깔대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줌마들은 우스개 섞어가면서 그 이야기를 서로 해댔지만, 나는 귀를 의심했다. 몇 십 년 전이라면,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다시피 하고 있는 며느리가 예쁠 리 없는 시어머니가 한말 할 수 있었겠다. 그렇게 젓가락으로 밥을 묵으면 복 달아난다. 숟가락으로 푹푹 좀 떠묵어라. 그러면 며느리의 정답은 하나뿐이다. 네, 네. 그러고서 숟가락을 드는 것이다. 그런데 철부지 언니는, 대박, 오답을 터뜨렸더란다. 그럼,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푹푹 드시니까 이렇게 잘 사시는 거예요? 이 무슨 망발. 너무 순진하다고도 너무 버릇없다고도 어딘가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을 노릇이었다. 내 벌어진 턱은 굳어버릴 뻔했다.

    암튼 그 이야기의 결말은 최악에 가까웠다. 그 길로 시댁에서는 친정어머니 오시라 해서, 친정어머니가 시댁에 가셨고, 시어머니 말씀은 단 하나, 딸 데리고 가시쇼! 물론 나중에나중에 남편이랑 알콩달콩 살면서 들려준 이야기이니까 어디만큼 사실인가는 가늠할 길이 없다. 일단 친정어머니를 따라서 친정으로 갔다가, 여차여차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시댁으로 들어갔고, 어느 시간이 흘러 독립했고, 뭐 그런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아는 동네 아줌마들은 그 언니한테 젓가락여사님이라고 놀리곤 한단다. 아이큐에 관한한 정말 나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왜냐하면 언니가 인간관계에서 1퍼도 이익을 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퍼다 먹이기를 좋아하고, 양념을 아끼지 않아서인지 음식들이 맛도 좋다. 암튼 실제보다, 실제를 모르기는 하지만, 아낌없이 퍼주는 스타일이다. 전혀 되받을 길 없는 상황에서도 그리 잘 하니까, 당근, 누구나가 다 좋아한다. 그런데 사는 일은 그리 잘 풀리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일도 그렇고, 언니 자신도 돈벌이라거나 뭔가 그런 쪽으로 생산성은 꽝으로 보인다. 얼마나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고 있을까. 민지 때문에 잠시라도 애 탔던 뒤끝이라서, 엄마 마음이 더 절실히 느껴진다. 젊은 아이들이니까 별 일 없을 게다, 제발.

 

 

    이상한 일이다. 오늘 출근길에는 오전부터 마음이 편하다. 놀람 속 힘든 상황들을 지난 안도감 때문일까. 삶이 힘들고 아슬아슬한 시간들임을 새삼 느낀 뒤라서 그럴까. 까다로운 오전 할머니 그냥 봐 드리자. 평생 아랫사람 없다가 내가 만만해서 까탈 부리는 노인이니 봐주자. 나이에 맞지 않게 미장원 가서 염색하는 돈은 아깝지 않아도, 온수라면 벌벌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하자. 평생 습관인 것을 할 말 없지 않은가. 물티슈는 정말 아껴 쓰자. 걸레를 한 번 쓰고 버리다니! 그 할머니 세대의 기준으로 말이 되는가! 아니 썩지 않는 쓰레기니까 내 아이의 기준으로 미래의 기준으로 아끼자! 오후에 커피 한 잔이면 오전 피로는 싹 가실 것이다.

    오후 보호자 할머니는 보자마자 딸애의 상황을 묻는다. 물론 그날 병원 도착해서 바로 전화로 안심이라고 알렸다, 유산기인가 걱정하실 것이 뻔하니까. 그래도 만나자마자 또 걱정을 하니까 또 안심을 시켜드린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순천에는 놀이터가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이 들며 내려앉은, 전혀 동그랗지 않은 눈이 정말 동그래진다. 자연스럽게 나는 말을 이어간다. 애들이 분양 받아 들어갈 아파트 이야기인데요, 애를 키우려면 놀이터가 좋아야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근교에 아주 멋진 놀이터들도 있다고 하네요. 할머니는 그 말에도 고개를 갸웃 기울이더니 금방 웃음기를 흘린다. 지 선샘, 엊그제 그 놀이터 뉴스 때문에 그러는구나. 그러면서 염려 말란다. 그 뉴스의 후속은 아파트 주민들이 사과하고 대표를 경질하고 그런 쪽으로, 바람직한 쪽으로 흘러간다고.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머쓱해지면서도 안심이 된다. 그래도 들킨 김에 계속한다. 말이 너무 끔찍했어요. 그건 너무 심했어요. 이웃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더러 도둑이라뇨! 이웃인데!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한다. 흥분한 탓에 동네 아는 언니네가 코로나에 습격당했다는 이야기도 나와 버린다. 애들이라 해도 밀접접촉자가 되어 격리에 들어가면 놀이터에도 못 나간다고. 그대로 감옥이라고. 아니, 할머니고 외할머니고 음식을 만들어 가도 대문도 못 열고 문 앞에 두고와야 한다고. 이 할머니하고 무슨 상관이길래 이야기를 꺼내는가. 그 집은요, 먼저 딸애가, 제 남편 투석을 시작했는데, 이식 문제에 나서서 같이 적합성 검사받으러 갔다가 서울 유명 병원 병실에서 걸려왔다더라고. 투석 환자도 양성이 나오면 어떡하느냐고. 아, 아이들만 남은 집, 상상도 안 되는 아이들의 무서움을, 시시콜콜, 아니 울먹울먹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더니 혼잣말처럼, 아니 시를 읊는 것처럼 말한다.

    사람을 바라보면 눈물이 난다. / 사람으로 살아보니 그랬다.

    뭐예요? 또 시예요?

    예, 또 시예요. 크게는 이름 없는 노 시인의.

    이름 없는 시인들까지 읽나. 시가 밥 먹여 주나요? 라고 묻고 싶다. 아니, 순간 물었나 보다.

    예, 시가 밥 먹여줘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밥을요?

    그러면서 생각한다. 사람이 눈물로 사는구나. 눈물로 사는 것을 알면, 울면서도 밥을 먹는 것이구나. 시가 밥을 먹여주는구나.

 

    언제나처럼 칼퇴근이다. 문을 나서면 바로 계단이다. 계단으로 들어서는데,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할머니가 힘들게 입구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거운 유리대문은 겨우내 미끄럼 방지라고 써붙여놓고 한쪽 문만 열어두고 있다. 둘 다 열어두면 두 배로 더 미끄러운가? 바깥공기는 아직 차갑다. 퍼덕이는 비둘기 떼도 외면한 놀이터를 돌아보며 저만치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한다.

 
------------------

「놀이터」, 『전남여고문학 』 8호, 2022.5. 241~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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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22. 4. 12. 15:51

 침묵과 침묵 사이 

 

[가만보인다. / 산 것들나무들 꽃들 사람들, / 하나같이 햇빛 어딨어빈자리 어딨어목말라 목을 뺄 때 내색 않고 옆에서 태연히 식던 꽃이 누구였더라? / 삶이 뭐냐 따위는 묻지 않고. //
                         
                        황동규 누구였더라?」 중에서

 

 

    침묵이 수다로 바뀌는 일은 가끔은 생각 보다 쉬웠다. 오후 재가요양 ‘어르신’네 집 이야기다. 어떻게 된 게 이 집은 뭔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햇수로는 3년차이지만 속내를 잘 몰라서다. 그런데 여름 들어 이 보호자 할머니가 수다다. 대꾸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이게 몇 번째 송이인 줄 아세요? 저 가느다란 첫 줄기에서 어쩜, 상상이나 되세요? 이건 확실히 어디서 날아온 꽃씨라니까요. 저쪽 내가 씨 뿌려놓은 나팔꽃은 푸르스름 보라, 애잔하게 몇 송이 피다 말더니. 요놈들은 완전 다른 진분홍, 분명 개량종이죠? 개량종이라 이리 튼실한가!

    이 줄기를 모두 합치면 몇 미터나 될까요? 베란다 천장까지 2미터, 거기서 창틀 위로 건너간 1미터, 또 뻗어나간 줄기는 3미터는 되죠. 그것이 두 줄이다가 한 줄은 다시 돌아왔으니, 10미터는 훨씬 넘죠. 한 줄기에 스무 송이 넘게 피었다니까요. 아니 또 중간에서 돋아난 줄기도 3미터 넘게 뻗었죠. 오고가고 그러다 만나서 이젠 엉클어져 버렸어요. 칠팔십, 아니 백 송이쯤 되나 봐요, 세상에나.

 

    나는 꽃에는 그리 관심이 없다. 흘려들을 밖에. 그렇게 혼잣말이 된다. 혼잣말이 되더라도 이 답답한 할머니의 수다는 침묵보다는 낫다. 아니, 말해도 안 들으니 침묵과 뭐가 다른가. 아니, 수다가 훨 낫다. 아무 말 없이 가만있으면 혹시 내게, 요양보호사에게, 불만이 있어 어둡나 살짝 걱정도 된다. 물론 불만을 말한 적은 없다. 신기하게 한 번도 없다.

    아무튼 한두 번도 아니고 여름을 내내 나팔꽃 하나로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꽃이 밥 먹여주나 말이다. 꽃들은 보통 환자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원래 화분 가꾸기를 좋아했었다는 어르신은 베란다로 나가면 닫힌 말문을 열게 하기가 쉬웠다. 어르신도 한번 침묵을 깨면 한참씩은 말을 하신다. 말 대접으로 또는 심부름으로 화분을 사다드리기도 하고, 또 집에서도 한두 개 가져다드리기도 했지만, 그건 나한테는 그냥 인사다.

    어느 날 내가 백장미 화분을 무겁게 사들고 들어갔을 때 보호자는 놀라워했다.

    아니, 무슨 화분이에요? 무겁기도 하겠구만!

    아, 어르신이 사다 달라고 하셨어요.

    예? 화분을 사다 달라고요?

    네, 지난번 산책하다가 동네 화원엘 가자고 하시더니, 거기 백장미가 없다고 낙담하시더라고요.

    백장미를? 백장미를 찾았다고요?

    네, 제일 좋아하시는 꽃이라고. 해서 제가 집 근처 큰 화원에서 사다드릴까 물었더니, 그러라고요. 돈도 주셨어요. 남으면 아무거나 더 사라고요. 이 제라늄도 샀…….

    재밌네. 뜬금없이 백장미라고? 하긴 요즘엔 호·불호가 사뭇 바뀌니까.

    할머니는 다시 혼잣말로 들어갔다, 말을 나누다 말고.

 

    그러고는 여름 내내 어르신은 백장미 화분만 지켜보곤 했다. 겨우 한 두 송이가 피어났을 땐 정말 백장미가 맞다고 좋아하셨다. 어르신에게 다른 화초들은 없었다. 나팔꽃 송이들이 아무리 화려하게 피어나도 없는 꽃이다. 그러니까 단 두 사람이 살면서 나팔꽃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한 사람은 나팔꽃 보는 일로 살아가는 것 같은데, 다른 한쪽은 나팔꽃이 보이지도 않는지.

    두 분 신기하세요. 한 분은 나팔꽃만, 한 분은 백장미만 보시고!

    …….

    불리할 때 입을 닫는 것은 이 할머니의 특기다.

    두 분, 말씀이 너무 없으세요. 서로 말씀하시는 것 못 봤네요. 두 분만 있을 때도 그러세요?

     …….

    싸우지도 않으세요?

    그런 거죠, 뭐. 그저 길손들이니까.

    네?

    길가다 만난 사람들, 길손 몰라요?

    부부를 어떻게…….

    길손이라 해서 섭해요? 어떤 인연이더라도 서로에게 손님, 함께 걸어가는 길손 맞지요. 삶이 뭐냐 따위는 묻지 않고. 목말라도 그냥.

    갑자기 삶은 무슨 말씀?

    아, 어떤 시 구절.

    무슨 시씩이나! 머쓱해진 내가 입을 닫았다. 그럴 때가 많다.

    할머니는 에코백을 들고 나간다. 어르신은 아까부터 고개를 비뚠 채 잠들어 있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다. 뭔가 모를 답답함에 움직이지 않아도 덥다.

 

 

    여름이라지만 왜 이리 더울까. 참을 수 없는 더위는 없다고, 그리 알고 살았다. 그에 비해서 참을 수 없는 추위는 확실히 안다. 안다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 겨울 허허벌판 서울까지 올라가서는. 그때 구들장 따뜻한 엄마의 방을 그리며 눈물이라도 한 방울 찔끔거리면 더 추웠다. 빌딩의 숲은 추운 여자아이에게는 전혀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바람 쌩한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인지 여름이 되면 서러움이 덜했다. 원래 더위를 잘 견디었나 보다. 그런데 이 여름에는 덥다. 다이어트를 못해서 살이 찐 때문일까, 추운 방을 떠나 산 지 오랜 세월이 흘러서일까.

 

    바깥세상이 코로나로 어지러운 데 비하면 개인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지냈었다. 그러다가 덜컥 큰 걱정이 생겼다. 지는 알아서 갈 테니께 아프지만 말게 해주셔유, 라고 기도하신다고, 딸도 수녀님인데 내 기도 안들어주시겄어, 라며 여유를 부리시던 어머니! 다른 어머니들처럼 고향에 홀로 살고 계셨다. 당숙의 오랜 친구가 70대인데도 시골에서 개인병원을 열고 있으니까, 어머니는 그 병원에 들락날락하시며 이런저런 영양제도 맞으시면서 큰 불평이 없으셨던 터였다. 4월에 시작된 백신접종도 일 없이 마치셨는데 그런 일이 터졌다니. 어버이날 즈음에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소화가 잘 안되아야, 하시는 말씀 따라서 위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별일 없었다. 연세에 비해서는 깨끗하신 편입니다! - 네, 감사합니다. 다음 날엔 버섯전골 집에도 갔었다. 부드러운 팽이를 골라가며 드셨다.

    그러다가, 막상 그러다가 정말로 큰일이 터졌다. 식사를 점점 못하시고 몸은 이상해진다고, 무엇보다 배가 많이 아프시다고. 암튼 가까이 사는 큰언니가 서둘렀고, 오빠랑 대학병원으로 모셔갔단다. 황달기도 있고, 벌써 복수가 생기기 시작하셨다니. 혹시라도 5월에 뵐 때도 황달기? 기억을 해보려 해도 그건 아니었다. 피부가 가렵다고도, 열감도 말씀이 없으셨다. 무엇보다 위내시경에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다들 안심을 한 터였다. 혼자 사는 노인의 전형적인 스토리다. 어제 괜찮으셨으니 오늘도 괜찮으시리라…… 자녀들이란, 나부터도 전화 목소리로 괜찮으시면 괜찮으시다고 생각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오히려 수년 동안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는 시아버님이 걱정 일 순위였다. 관으로 미음을 드시는데도 몇 년을 버티시는데, 받아놓은 날이려니 했지만 그렇게 지내고 계시는 터다. 시어머님도 함께 요양병원에 계신다. 경증이라서 시아버님 간병도 되고 동무도 되고 그러신다. 거기에 비하면 엄마는 마실도 나다니고, 성당과 병원에 혼자 잘 다니고 계셨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대학병원에서는 깜짝이나 놀랄 결과가 나왔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복부초음파 검사며 씨티며 엠알아이를 하면 뭣하나. 담도조영술이며 종양표지자 검사도 마찬가지. 처음에 씨티만 찍었어도 침윤 정도를 알았을 것을. 담도암이라니! 담도! 담도!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담도를 통해서 십이지장까지 가는데, 어쩌자고 담낭을 지나서 십이지장으로 가는 담도에 암세포가 생긴 것이냐고! 후회막급이지만, 후회란 때 늦어서 후회다. 간호보조사가 가진 의학상식이 별 것일까만, 일단은 의료계통 자격을 가진 자식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담석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담도염을 앓으신 적도 없는데. 평생을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사셨으니 간디스토마 그런 병에 걸리신 적도 없는데.

    그렇게 어머니는 담도암 선고를 받으셨고, 반년은 버티실 것이라는 의사의 예상과 달리 두어 달을 겨우 넘기고 가셨다. 첨에 큰언니가 언니네로 모셔갔는데, 우리 모두가 아무래도 미안해서 요양병원으로 모실 채비를 하려는 찰나였다. 나 거그는 안 갈텨! 하시던 말씀 그대로 요양병원을 알아보려던 중에 일이 터졌다. 그렇게 마지막에 가까울 때까지 자녀들이 몰랐다니. 선고 이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아무 소용없었다. 닥친 일은 닥친 일이고,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사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었고, 이제 와 철 좀 나니까 어머니가 가셨다.

 

    피를 나누는 것이 무엇일까. 형제자매들이 앉아서 우두커니 장례식장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물게라도 화분들도 도착하고, 또 나가서 조문객을 받고, 옆에서들 감사도 하고……. 놀랍게도 육개장에 밥들도 말아먹었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는 말이 맞다. 슬퍼도 배는 고프다. 나도 밥을 먹었다. 먹고 나서 울었다. 울고 나서도 먹었다.

    엄마아, 잉잉.

    우리 어무이는 우덜헌티 잔소리 별로 안하셨어!

    그렸나.

    맞어, 잉잉.

    자 좀 달개라.

    아서 엥간히 울어. 울어싸면 못 올라가신댜!

    근디, 잉잉, 천당 가시겄져?

    암만, 수녀님 어무니신데여.

 

    코로나로 옴짝달싹 못하는 통이라지만, 드물게라도 문상객을 맞이했다. 입관하기 전에는 아직 살아계시는 것으로 치고 절을 한 번만 할 때까진 나았다. 염을 하는 중간에 사촌오빠가 등을 돌리고 서 있더니, 누군가 오빠를 아예 밖으로 내보냈다. 나중에 들으니 무슨 회도살이라나, 어머니는 물론 우리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들인데도, 집안 어른들이 그리 시키시는 것 같았다.

    다음날 발인제를 마치고는 잠깐 집에 들러서 간단한 제사를 드리고 나니 정말 끝이었다. 어머니가 산으로 행했다. 사토제니 위령제니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 어른이 계셨지만 뭐가 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막상 갓 파헤쳐진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앞에서 딸들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울음을 땅 속으로 가시기 전에 실컷 들으시라는 것인지. 어머니는 듣지도 못하시지만, 고만 울어라 달래시지도 못한다. 영원한 침묵에 들어가신 것이다. 삶의 끝은 침묵이었다.

    세거지라서 일가친척들이 대부분인지라 지관도 계시고 해서, 사실 우리들은 하릴없이 울다 쉬다가를 반복하기만 했다. 관장을 할지 탈관을 할지는 벌써 결정했다고 했다. 흠결이라고는 없으신 어머니지만, 아버지 때도 관장을 했다고 그대로 결정했단다. 우리는 괜스레 위안이 되었다. 집을 지닌 채 들어가시는 것 같아서, 그런 말을 서로 슬쩍 나누었다. 그래도 막상 흙을 올리는 때는 정말 무서웠다. 취토 중간 중간에 왜 노래를 부르는지, 왜 빙빙 도는지 의아했지만 가만있을밖에.

    오호 ~ 에헤야, 산이 높아야 물도 깊지 ~

    그러다가 붉은 천이 내려갈 때는 정말 떨렸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은 무엇인가가 뻥 뚫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집에 가도 어머니가 안 계신다고?

 

    문경댁 무르팍 말고는 원체 암말 읎더만 속절없이 갔슈!

    그 구녁으로 간겨? 참말, 독새나 만나지 말어.

    인저 가조로니 누어 잘랑가 물러.

    엥간히 집 배까티 좋아혔으니 인저 원 없겄슈.

    우덜 몸뎅이도 얼매 안 남았제만…….

    뒷산이라서 함께 올라왔던 동네 분들이 한마디씩 탄식을 하셨다. 우리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삼우까지 지낸 다음날에는 다들 흩어졌다.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엄청 허전했다. 어머니랑 함께 살던 집이 아닌데도 집이 쓸쓸했다. 고향집에 간다…… 는 생각에 어머니가 안 계실 것이라는 상상이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주 5일 근무는 요일만 세다 보면 금세 지난다. 아직도 숨 막히게 덥다. 세상은 어머니를 잃은 다섯 형제들과 무관하게 여전하다. 여름이라서 덥고, 더워도 날마다 뉴스다. 어디선가는 무슨 일인가 터진다. 무더위 못지않게 숨 막히는 뉴스들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이 열리자 세상의 눈들은 그리로 향했다. 양궁 하나만 해도 사람들을 들뜨게 하기 족했다. 이 고장에서 양궁 천재가 나왔으니 더했다. 한참 더울 때 선수들을 향한 애정으로 더욱 달아오른 시간들, 그 시간도 곧 지나갔다.

    그 사이 미얀마 쿠데타가 군부의 과도정부 수립으로 막을 내렸다고, 그 뉴스는 오후 보호자의 입으로 들었다. 거기도 전**이 정권을 잡았네요. 군인들이 그렇지 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최근엔 보통 그랬다.

    거실에 어르신과 둘만 남는다. 어르신은 늘 그렇듯 말이 없다. 못 들어서 말을 안 하시는 것인지, 당연히 대답도 없다. 지난겨울 인지검사 때도 – 등급 조정을 위한 의무적인 검사다 - 결과 수치는 더 낮아졌다. 가끔의 환시와 환각을 제외하면 실제로 심각한 증상들은 없어 보이는데. 건망증도 나이 따라서 다들 그런 정도이고. 하기야 하루 세 시간을 보는 내가 다 알 수는 없겠지.

    날마다 텔레비전은 작은 소리로 돌아가고 있다. 어르신이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도, 살짝 잠이 들 때도 그대로 켜져 있다. 올림픽이 끝난 뒤로는 코로나 뉴스가 다시 화면을 독차지한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서 1차는 40%를 넘었고 2차까지도 20% 가까이 되는데도, 아침마다 불어나는 확진자는 계속 4자리 숫자이고, 누계가 20만 명이라니 놀랄밖에. 거리두기는 수도권은 4단계, 여기도 3단계가 계속된다고. 아니, 이제 이런 발표는 뉴스가 아니고 일상인가 싶다.

 

    어느 날, 재벌 1위 삼성 소유자가 광복절에 사면될 것이라는 뉴스가 떴다. 또 찬반이 엇갈릴 것이고, 양쪽 다 옳은 말이겠지.

    기업이 돌아가야죠, 뭐?

    내가 다른 할 말도 없고 해서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할머니에게 한 마디 했다.

    들은 체 만 체다. 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뜬금없었나? 그래도 했던 말인데 뭐라고 대꾸하는지 들어보고 싶어서 재차 말했다.

    다들 경제가 안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삼성, 그래서 내 주려나 봐요!

    …….

    광복절에는 어차피 사면도 있으니까요.

    아, 지 선샘, 나 정치 경제 어쩌고 하면 정말 잘 모르는데. 누구라도 감옥 나오면 좋겠지만, 누구라도 가벼운 처벌을 받으면 좋겠지만, 거 형평성도 문제요.

    형평성이요?

    무슨 형평성 말일까. 나는 왜 이리 생각이 왔다 갔다 할까. 말을 걸어놓고는 이을 말이 없었다. 다행히 할머니가 계속했다.

    그냥, 이쪽저쪽 할 것 없이 누구에게라도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 그거 저 절대 찬성이에요. 짧은 인생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죠.

    어라? 인생 어쩌고 말을 해놓고는 참 쑥스러웠다. 난 이분들에 비하면 애들 아닌가. 크게 거슬리진 않았는지, 할머니가 대꾸를 했다.

    맞아요, 남에게 도움은 되지 못해도 해는 되지 말자, 그런 정도. 그게 좋은 거죠. 하지만 뉴스를 보다 보면요,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이 문제지요. 남을 해치는 바이러스들, 해치면서도 그걸 느끼지도 못하는 중증 바이러스들…….

    아차, 괜히 말을 잘못 시작했나? 이 할머니가 또 이상한 수다를 시작하면 어쩌나 싶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또 사람이 아니라 책처럼 어려운 말들을 시작했다.

    사는 차이도 너무 나서 그 이질감은 더욱 벌어질 테고.

    이질감이요?

    설이라고 추석이라고 1,000만원을 주는 할아버지가 있다잖아요. 유치원도 안 간 아이가 주택 스무 채를 가진 세상이라니. 뼛속까지 다르게 태어나서 그렇게 다르게 자라니까 함께 살기가 점점 더 어려운 세상이 될까 무서워요.

    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전체가 훨 잘 사는데 뭐가 문제인가. 우리나라 경제가 50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세계가 대충 60배 성장 할 때 우리나라는 400배나 성장했다고, 남편이 으쓱 말해준 적이 있다. 나도 할 말이 있다. 해야겠다 싶었다.

    저 있잖아요, 우리나라 전체 성장률이 높으면 좋은 것 아녜요? 50년 동안에요, 세계가 60배 성장할 동안에 우리나란 400배 넘게 성장했다고. 작년엔가 그랬다던데요. 미국은 30배, 일본은 100배인가 대충.

     …….

    뭐야, 왜 또 대답이 없어? 이런 성장 발전이 대단한 것 아냐? 전체가 잘 살게 되어서 뭐가 나쁜데? 그러니 엊그젠가 아이돌 가수가 130억 아파트를 샀다는 뉴스도 있었지. 그 청담동 아파트니 펜트하우스니 하는 집들은 집값이 상상도 못할 정도다. 150평 복층 펜트하우스는 300억, 그러니까 평당 2억이라 했다. 내 소유 건물 따위는 건물도 아니다. 이 할머니는 무감각인가?

    우리나라 수준 엄청나다구요. 저, 어떤 아이돌 가수가 최근에 산 아파트가 130억이라고, 혹시 들으셨어요?

    아이돌도 모르고 아파트도 모르요.

    아**라고, 눈 예쁜 여자애, 서른 안 됐을걸요. 십대부터 엄청 잘 나가는 가수죠. 거기 청담동에는 평당 2억 가는 펜트하우스도 있대요, 150평이라니까 300억.

    무슨? 달나라 이야기에요?

    아니, 우리나라요, 서울요.

    평당 2억이라니, 그게 가능이나 하나?

    그게요, 30가구 이상만 안 지으면 분양가 상한제 그런 것 안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29가구만 지으면 집값을 마음대로.

    상한선 없이 마음대로?

    네, 상한선 없이 마음대로!

    별나라네. 별난 나라네.

    맞아요. 차이가 넘 벌어지져? 세상 요지경이에요. 도쿄에는 평당 3억이 훨씬 넘는 600억짜리도 있대요, 홍콩은 6억이 넘는 아파트도 있고, 평당.

    지 선샘은 역시 건물주답다. 건물들을 쫙 꿰고 있네요.

    세계 최고급 아파트는 2,200억이라고 하는 뉴스도 봤어요. 2,200만원이 아니라 2,200억.

    고만, 고만! 어디에나 최고는 있겠지요. 모든 노력과 운과, 암튼 그런 성공들에 박수를 쳐 줄 일인지.

    당연하죠. 성공이 미덕이라고 하잖아요.

    미덕…….

    미덕이 그런 것은 아니죠! 라고 말할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내뱉은 말은 더 썰렁했다.

    헌데, 집은 그냥 집이죠. 작은 집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크고 넓은 집에서 잠 못 드는 사람도 있겠지요. 둘 다 죽을 것이고.

    죽는 이야기는 왜요.

 

    나는 토라지고 말았다. 이 할머니 밉다. 하필 여기에서 죽는 이야기라니.

    나는 근무 시간인데 아무 것도 않고 가만 앉아있기 뭣해서, 뭔가, 정말 그냥 한 말이었다. 아무리 아이돌이라 해도 애들이 100억도 넘는 아파트에 산다고 하는 것이 뉴스 아니면 뭐가 뉴스인가. 터무니없이 잘 사는 데에 눈이 뒤집혀서 한 말도 아니고.

    나도 살만큼은 산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남편은 공무원이고 퇴직하면 연금을 받을 것이고, 나는 국민연금 제대로 들어있고 내 건물 있으니 기본은 되고 남을 터. 농가주택은 어떤가. 일단 기분 좋은 뜰이고 밭이다.

    어머나, 애호박이 저절로 벌어져 버렸네!

    아무리, 설마.

    설마라고 말하며 다가오던 남편이 놀란다.

    정말이네. 넘 더워서 그런가. 이런 건 첨 보는데? 애호박이 쩍 벌어지다니. 온난화 문제인가…….

    저 그런데, 올해도 까만 나비 날아올까?

    남편이 지구 어쩌고 할까 봐서 나는 얼른 말을 바꾼다. 머리 아픈 건 정말 싫다.

    아녀. 더 있다가 저쪽 방아꽃이 필 때야 날아올 걸. 왜 하필…….

    나는 냉큼 넝쿨콩 쪽으로 향한다. 도망치는 것이다. 남편은 연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방아꽃은 맥문동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렇게 계속할지도 모른다. 말도 잘 하지만, 실은 훤칠하고 잘 생겨서 예능에도 어울릴 것이다.

아무튼 비타민 넘친다는 풋고추는 여름 내내, 상치, 깻잎, 오이 뿐인가. 양파, 감자, 고구마, 깨, 김장 배추……        남편은 귀한 초석잠이나 마도 심는다. 부지런한 사람이랑 함께 살면 좋기도 나쁘기도 하지만, 일단 마트 갈 일도 줄이는 것이 남편의 살림이다. 물론 김장까지는 좀 심하다고 느끼지만, 어쩌랴. 보람도 있다. 여기저기 퍼 나르면 다들 고마워한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그렇다. 시댁에서 반찬 싸주면 가다가 버린다는 젊은 며느리들 이야기는 말로는 들어보았지만, 내 주변에는 없는 것 같다. 내 땅에서 나는 것들, 이 모두가 평생 노력한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좋다. 그래, 조금만 더 열심히 인내하고 모으자. 내 이름은 지은이, 요양보호사!

    예쁜 배우가 요양보호사 공익광고에도 나왔다. 복지센터 이름이 적힌 앞치마를 입고 근무하는 우리들 실정을 모르는지, 빨간 투피스에 긴 긴 머리를 휘날리는 것이 우습기는 했다. 어쨌거나 ‘아줌마 아니에요. 요양보호사예요.’ 라는 문구로 사기를 북돋아준다. 좋은 나라다. 요양보호사에게도 좋은 나라.

 

 

    요양보호사가 실제로 병원과 싸워서 이기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그러니까 큰 병원들의 꼼수를 요양보호사들이 이겨낸 일이 있었다. 이른 봄이었다. 요양보호사 4명이 병원 상대로 임금체불 소송에서 이겼다는 뉴스에 센터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문제된 요양병원은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근무방식이라 했다. 깨어서 24시간을? 말도 안 되는 조건이지만 그런 3교대제도 실은 많다. 그 24시간 근무 중에 명색 야간 휴게시간이 5시간 있었다 했다. 하지만 실상으로는 비상상황에 대응하려고 병실 근처에 있었다고 하니까, 그게 무슨 휴게시간이냐고! 야간 휴게시간이란 임금에서 5시간씩을 제하는 꼼수였다고 판결난 것이란다.

    휴우, 간호조무사 3교대 시절 생각이 새삼스럽다. 일일 8시간 교대도 힘든데,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는 근무방식은 살인적 아닐까. 어떻게 24시간을 버틴단 말인가. 나는 확실히 그건 못한다. 더구나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는 계급으로 말하면, 계층인가, 아무튼 바닥이다. 나는 간호보조원 시절부터 사다리가 너무 뚜렷하게 심장에 박혀서인지, 무슨 위치를 설명하려면 사다리가 먼저 떠오른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당연히 맨 아랫자리다. 더구나 ‘선생님’ 아닌 ‘여사님’이라 불린다. 특히 간호사들이 꼭 ‘여사니~임’ 하고 부른다. 그렇다고 내가 뭐 ‘지 여사님’ 보다 ‘지 선생님’ 소리를 듣고자 요양병원 근무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들처럼 집으로 서비스 나가는 재가방문요양의 경우는 내 생각에는 자유가 있다. 수급자 측에서 우리를 ‘자를’ 수도 있지만, 우리도 불편한 수급자의 경우 서비스를 거절할 수 있다. 나도 지난번 오전 고엽제 어르신을 곧 그만두겠다고 센터에다 말했고, 그만 두었다.

    물론 수입 면에서는 약하다. 그러니까 요양병원 근무와 재가방문요양 또는 주간보호센터 근무 등을 우리가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다. 알아서 하는 것은 작은 일이라도 기분이 좋다. 나는 간호조무사 평생 직업을 마치고 일을 쉬기로 결정했을 때도, 아니, 얼마큼 쉰 뒤에 다시 이 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순전한 자유 결정이었다. 그래서 맘 편하다. 그리고 간호조무사 때처럼 전문학원에서가 아니라,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야간이었지만 대학에서 딴 탓에 스스로 뿌듯하기까지 하다. 사회복지과에서 이론강의, 실습연습, 현장실습 각 40시간의 정식 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이 크다. 문제는 그래보았자 근년 들어 간단히 자격증을 딴 사람이건 누구건 임금이나 대우에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또 이상한 것은 5년 차인 나와 신입의 시급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전히 알바 개념인 것이다.

    아무튼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요양보호사들의 결기가 대단했다. 4명이 한 뜻으로 뭉쳐서 가능했겠지. 나 같으면 뭉치자 해도 피했을 것이다. 나는 불평보다는 침묵으로 삭히는 쪽,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식이다. 제도나 현상을 굳이 고치려 힘 빼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그냥 내가 그만두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일을 찾는다.

    그런데 어디에나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눈꼴사나운 일도 보게 된다. 누구나 다 꼼수를 쓰기 때문이다. 편의점 등 알바들에게도 주인들의 꼼수가 애를 먹인다. 내 첫 알바의 경험은 - 참 옛날 일이다 - 기억 속에서라도 되돌리기 싫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그때는 확실히 옛날이었다. 친척집이라는 어정쩡한 관계는 정확하게 시간 수당을 따질 처지도 안 되었고, 그냥 주는 대로 용돈만 받은 셈이었다. 그것은 좋은 경험이 되었다. 두 번째 알바부터 혹은 그 다음 어떤 직장에 들어갈 때도 일단 조건부터 분명히 따지고 확인하고 그러기 전에는 일을 시작을 안했다. 그런데 몇 십 년을 지나도 꼼수들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간호보조사 일을 그만두기로 하고 일을 쉬었을 때, 그러니까 전업주부가 되려는 찰나, 그때도 한 두주 쉬고는 왠지 좀이 쑤셔서 일단 간단한 알바라도 해보자 했었다. 그때 나는 동네 편의점에서 12시부터 4시라는 점심시간대를 부탁받고, 잠시니까 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4시에 교대하는 여자에게 들은 이야기로, 자기는 4시부터 11시까지, 그 다음 대학생이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그리고 이른 아침 세 시간을 주인이 직접 챙기고 다시 9시부터 4시까지 다른 여자가 7시간 그렇게 돌아갔었더란다. 그러다가 웬일인지 주인이 오전시간을 더 하고 오후 네 시간만 남겨 놓은 거라고.

    아니, 세 사람 쓰면서 각 8시간이 아니고 7시간씩? 복잡하네요.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저녁시간 여자는 내게 알바 한다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시선을 던졌다. 시급 계산에서 복잡해지는 풀타임 8시간은 절대로 주지 않는 것을 모르냐고! 모든 편의점이며 그 비슷한 알바들이 다 그렇다는 것. 그게 주인들의 꼼수라고. 모르면 바보고.

    옛날에는 꼼수를 쓴다고 하면 일단 쩨쩨하게 군다는 형편없는 뜻이었는데, 이제는 애교 정도인가 보다. 살려면 거짓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말에 비해서, 살려면 꼼수도 알아야지, 라고 하면 훨씬 낫지 않은가. 마치 사회생활에서 줄다리기나 숨바꼭질 같은 것, 죄를 짓는 건 아니고도 잘하면 이득을 볼 수 있는 행동들을 꼼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묘수 같은 셈이다. 그런데 대형 병원들조차? 내가 편의점 주인이 된다면? 모르겠다. 어느 만큼의 꼼수부터 죄가 되는지 세상엔 모르는 일 천지다.

 

 

    세상이 어떠하든 나는 열심히 잘 지낸다. 어머니는 청주에 계시다가 하늘나라에 계신다. 아니 지금도 청주에 계신다. 톡 프사에 올려놓고 영상 통화하듯 들여다본다. 소리만 없다. 침묵의 영상통화.

우리 은이는 잘 웃어서 이뻐. 어여, 웃어봐. 이빨도 가조로니 얼마나 이뻐. 노상 그러고 살어. - 주문처럼 어머니의 말이 들린다. 침묵의 말이다.

 

    요즘에는 오전 일도 다시 시작했다. ‘고엽제 어르신’ 집을 그만 둔 한참 뒤부터다. 혼자 계시는 이 까칠한 ‘할머니 어르신’은 까칠한 성격 좀 참아주면 된다. 이 할머니도 그러고 보니 암환자였다. 항암치료 중이었는데, 암 전문병원에 가는 날은 딸이 모셔가므로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저절로 쉰다. 받아온 주사약을 가지고 중간급 병원에 맞으러 갈 때는 내가 모시고 가는데, 택시비 때문에는 매번 불편하다. 택시 값이 들쭉날쭉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기사에게 불평을 늘어놓으신다. 그러면 젊은 내가 무안해지는 것이다. 이럴 땐 수급자를 차에 태워 다니지 않는 내 원칙이 조금 흔들린다. 하지만 아니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같은 센터 요양보호사들의 경우 수급자를 태우고 다니다가 접촉사고도 내고 그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 수리비나 합의금은 누가 주어야 맞는가. 그런 복잡한 일을 왜 하는지 모를 일이다. 매번 기름 값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런데 또 이해 못할 일이 있다. 이 오전 할머니는 따뜻한 물도 못 쓰게 할 만큼 절약형인데, 미장원에 가서 염색도 하고 오고, 은근히 이런저런 물건들도 사들인다. 나이로 보면 오전 ‘수급자 할머니’가 오후 ‘보호자 할머니’보다 좀 많아 보인다. 아니, 상당히. 그런데 오후 보호자는 거의 아무 것도 사지 않는다. 나도 웬만하면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지 않는 편인데, 나보다도 더한 것 같다. 근처 시장이나 슈퍼 갈 때도 입던 그대로 겉에만 아무 거나 걸치고 나간다. 마스크를 쓰기 때문이겠지만 화장도 없다. 하루에 두 집을 다니니까 나도 모르게 비교가 된다.

 

    오후 ‘할아버지 어르신’은 지금 독서에 열중해 있다. 독서는 그 자체로서는 뇌 활동에 좋지만, 더더욱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다. 거실이 너무 조용해서인지 보호자가 나온다.

    오늘은 어르신이 책이 재미있으신가 봐요.

    그래도 뭔가 말을 하도록 해야…….

    입 닫으시면 어려워요.

    알아요, 내가 더 잘 알죠. 우린 서로 하는 말이 별로 없어요. 오래 함께 살다 보니까 할 말을 다 해버렸나, 뭐 그런 것. 우물을 다 퍼내서 말라버린……. 그보다, 말 해도 모르는 것은 모르고, 안 해도 아는 것은 알고.

    뭐예요? 말을 해야 알죠. 나팔꽃 이야기를 나한테만 하시니까, 어르신은 완전 모르시잖아요.

    알고도 말 안할 수도 있어요. 말을 꼭 해야 하나요?

    말도 그리 안 하시면, 하루 종일 뭘 하세요, 그럼? 제가 와 있는 시간에나 좀 나가시고 그러세요. 산책이라도 다녀오시고.

    맨날 시장 가잖아요, 병원도 다니고.

    아니, 먹거리 시장 말고요. 산책하신다 하고 시장 줄줄이 상점들 구경이라도.

    살 일이 있어야 말이죠. 지금 있는 것들, 글쎄, 못 다 쓰고 죽을 걸요.

    에이, 또 죽는다는 소리!

    어느 순간 돌아보니까 버릴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오래 살았고 많이 샀다 싶네요. 옷이며 뭐며, 이게 다 쓰레기인데.

    옷은 따로 버리잖아요, 관급봉투 안 쓰고. 무슨 걱정이세요!

    봉툿값 그 말이 아니라. 길어지는데.

    길어도 괜찮아요, 듣고 싶어요. 다들 새 옷을 좀 사잖아요, 요즘은 비싸지도 않고.

    그러게요.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연간 68벌을 산다는 통계도 있던걸요. 그 중 10퍼센트 이상을 입어 보지도 않고 버린다고.

    설마요, 저는 6벌도 안 사는데…….

    알지요, 그래서 내가 ‘이쁜 지 선샘’이라 그러죠. 들어보세요, 재미있는 이야기.

    뭘요?

    동생네 딸 말인데요, 웃지 마세요! 그러니까 조카딸이 엄마랑 쇼핑을 갔는데, 제 엄마가 자잘한 것들 재미로 사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엄마, 또 예쁜 쓰레기 사려고? 그랬다네요. 살 때는 가볍게 사니까 과잉소비라고 생각 안하죠. 하지만 별로 쓰지도 않고 또 한철 지나면 버리고, 그러니까 예쁜 물건이기는 해도 결국은 쓰레기를 사는 셈이라는 거죠.

    예쁜 쓰레기?

    맞아요. 우리가 재활용수거함에 옷들을 버리면 다 누가 재사용하는 줄 알지요? 그런데 5퍼센트 겨우 쓰고, 나머지는 수출이라네요. 인도나 캄보디아 등 그런 데로, 아프리카로도. 가나라던가, 거기 어디 이야기를 봤는데요. 인구 3,000만에 일주일에 1,500만 벌이 들어오면 절반은 쓰레기고, 처리만 곤란하다고. 70억 명 사람들이 지구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옷을,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 내게요?

    상상이…….

    상상 안 갈 걸요. 일 년이면 만드는 옷이 1,000억 벌이래요. 시간 당 1,000만 벌을 생산하고 그 중 300만 벌은 버려진다네요. 연 330억 벌을 버린다고요.

    설마요.

    나 이 숫자 잘 외웠는지, 뭐 틀릴 수도 있겠지만, 암튼 엄청난 숫자의 옷들이 생산되고 버려지고, 지구는 그 쓰레기를 감당할 수가 없고…….

 

    핸폰이 울린다. 넘 다행이다. 머리 복잡해지는 이야기에서 구해준다. 침묵이 답답해서 말을 시키면 이 할머니는 엉뚱하게 해골 아픈 이야기를 하곤 한다. 침묵이 나으려나. 모르겠다.

    퇴근 후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 출발했나 채근하는 친구가 꼭 있다. 사회복지학과 시절 친구들은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야간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나이도 서로 다르지만, 몇몇은 계속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 모두들 열심히 사는 일에서라면 우승컵을 받을만한 사람들이다. 수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친한, 사랑하는 남편과가 아니라, 이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면 왜 그리 즐거울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말들, 말들.

    어서 가 보세요!

    네, 뭐! 지금 가면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아직…….

    그러게요, 조금 일찍 나갈 수가 없다면서요.

    네, 태그 찍는 것, 칼이에요.

    앞치마를 벗어 두고 핸드폰을 챙긴다. 마지막 3분 4분이 엄청 길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몸조심하세요! - 이런 인사말은 노인들에게 환자들에게 알맞은 말 같다. 나로서는 습관이다. 한번은 이 할머니가, 예, 밤새 몸조심할게요! 라고 대답해서 조금 이상했다. 하루 사이 몸조심 할 일은 아닌가? 얼핏 놀리는 것 같았지만 알게 뭐냐. 몸조심보다 좋은 인사말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우렁차게, 두 번은 어떠랴.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예, 내일 봐요.

    판에 박은 인사말을 들으며 계단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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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침묵 사이」, 『국제PEN광주』 19호 2021.12. 168~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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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