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2000. 4. 16. 23:30
유쾌한 편지 하나:

    

 
    Subject: Wie eine Schoene Frau sind Sie.
    Date: Sun, 16 Apr 2000 13:37:50 +0900 (KST)
    From:
    To:

    선생님 초면에 실례를 용서하십시요......... 저는 ..........ooo
    입니다. 저는 평소에 선생님의 글을 많이 읽어 왔으므로 선생님
    께서 나이가 좀 드신 평범한 인상의 그러나 도수 높은 안경을
    쓰신 분으로 상상하였습니다. 오늘 선생님께 부탁이 있어 작은
    편지 한 장을 써놓고는 학교주소를 알까 하고 여기에 들어왔다가
    선생님의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참으로 아름다움을 풍기는 분이십니다.
    내내 아름다우십시요.
    다름이 아니고 부족하지만 저도 ........
    
    끝으로 한가지 선생님의 인터넷실력 대단하시므로 존경합니다.
    오늘 멋진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나니 참 유쾌하네요.
    2000년 4월 16일  ooo 드립니다.
 


           가슴 깊고 깊은 곳에 묻어 둘 추억 하나를
                     수소풍선 잡았던 끈을 놓아 버리듯 날려 보낸 듯
                     요란한 바람이 참 서럽기만 하던 봄 날
                     움트는 싹들이 생경하기만 하던 봄 날
                     애써 "위스키~~~"하고 미소짓던 봄 날
                    "쏠"음으로 말하려고 입을 깨물던 봄 날
                     참으로 유쾌한 편지 하나가 위로가 되었소.
                                

    답장은 차마 이리 하지 못했다.
    그랬더라면 너무 놀랐을 터이니 당연히 못했고. 
    우선 그/그녀는 미지의 사람이니까.
    이 메일 이전에는 존재 자체를 전혀 모르던 그런 아무도 아닌 사이.
    사실 이러한 불특정 누군가에게서 오는 여러 메일에
    그들 중의 이 하나에 이만한 의미를 두는 것도 호들갑이다.
      

    그러나  편지가 어떠하면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지
    아이들도 아니지만 따뜻한 말에 감탄하게 되는 것을
    아이들도 아니지만 따뜻한 말을 그리워했기에 그러는지
    누군가에게라도 말하고 싶어서 여기 쓰려나 보다.....
    그리고 그/그녀가 원하던 내 변변찮은 책 한 권을 보냈다.

                                      
  

 그래서 일까?
         며칠 뒤 정말 위로가 되는
메일이 왔다,

                               "꽃피는 봄사월 돌아오면..."
                                     망향을 듣다가
                                     문득 ... 생각이나서....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곳을 스쳐갔을 리 없는 누군가에게서.
         어느 날 오후 해는 저물어 가고
         그런 시간에 보낸 짧은 터치.
         사람이 위로받는 것은 순간이다.
         절망도 그처럼 순간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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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낙서2000. 4. 7. 23:30
  2000년 봄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도 거의 끝나는데........
       그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메일을 공개합니다.
       이름만은 저작권 허락을 받지 않았으므로 생략, 나머지는 전문 그대로입니다.

 

  
   Subject: 따뜻한 봄날에...
   Date: Fri, 07 Apr 2000 21:08:48 KST
   From: ??
   To: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고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그대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그대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

    교수님, 학교를 휴학한 상태이지만 그래도 졸업 한 동기들 보다는 가까이
    있으면서 교수님의 제자 노릇 제대로 하지 못 한 것 같네요.
    저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밖으로 튕겨나지 않음은
    같이 커났던 동기들과 저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에 대한 애착으로 살아 가고자 합니다.
    천상병 시인은 신문사에 있는 친구가 막걸리 사 먹으라며
    쥐어 준 돈 몇천원을 받아 쥐고 따뜻한 봄볕 아래 서서
    한 없이 즐거워 웃었답니다.
    교수님 밝게 한번 웃어 보는게 어떻습니까?
    봄이니까! 믿음직한 제자들이 있으니까!!
    이상 00학번 000 였습니다.......꾸벅!

 

 

     이 얼마나 다정한 글인가!
      같이 커난 친구들에 대한 애착으로 살아가리라는 다짐.
      이런 말 한 마디면 혹여 서러웠던 기억도 사라지리라.
      이런 말 한 마디면 다가올 재난(?)도 두렵지 않으리라.
      <신 지식인> 개념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인문대 사람들아!
      어디 어떻게 숨어들어 옴짝도 하지 않을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이 오아시스같은 글을 삼키자. 아까워 단숨에 들이키지 말고,
      생명수처럼
       - 아니다 이 말은 취소한다. 아주 사적인 이유로 -
[아래 주석]
          아니 새벽 이슬처럼 신선하게 간직하자.

  [주석] 우스운 주석: 난 개인적으로 "생명수"라는 단어를 더 이상 쓸 수 없다.
            특정한 날의 특정한 물을 생명수라 했던 까닭이다.
            그 특정한 순간에 대해서는 그러나 세상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 특정한 순간을 함께 한 누군가도 이미 잊어 버린 물!
            그 물 때문에 더는 생명수란 말을 쓸 수가 없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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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낙서2000. 3. 15. 23:30
  ■  도구적 학문 vs 목적적 학문

    이야기의 발단은 대화 상대자들의 신분에 맞는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관한 관심이었다. 대화 상대자는 인문대학

    소속의 교수님, 주로 실용노선을 지지하는 소위 "신지식인" 개념에 동참하시는 분. 편의상 "가"와 "나"로 쓴다.
 

가: 요즈음에는 인문대 자연대 등에서 도전적인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 대신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경향입니다.
      학문할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당연하다고 봅니다.

나: 당연하달 수는 없지요. 확실한 직업적인 미래를 선택했다면 나무랄 수 없는 현명한 판단이겠지만, 문제는
     그 선택의 시금석이 주로 사회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사회적 동물이 사회적 필요에 의한
     선택으로 사회적 성공을 보장받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내적 필요를 무시한 데서
     처음부터 문제를 내포합니다. 개인의 내적 욕구가 고려되지 않은, 외부요인에 의한 선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혹은 사회적 성취가 이루어진 이후에라도 - 본질적 회의를 수반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한 선택으로 살아가는 삶은 결국은 타인의 삶이 아닐까요?

가: 그러나 졸업 후의 진로가 우선시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나: 그러니까 졸업 직후냐 훨씬 더 멀리를 보느냐 차이 아닐까요?

가: 우선 사회에 좋은 조건으로 편입된 이후에 다른 생각을 할 수 밖에요. 여건이 성숙된 이후에 자신의 필요를
     고려하자는 현실적 사고가 현명한 선택을 낳는다고 보는데요.

나: 섣불리 결정을 하고 나서 갈등하거나 다시 진로를 바꾼다면 더욱 힘들게 되는 것은 아닐지요....
      아무리 사회의
구에 의한 삶에서 라도 자신의 내적 욕구가 어느 정도는 합치되어야만 진정 의미있는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대화는 끝이 없다. 마치 종교에 관한 설왕설래와 마찬가지가 된다.  

하여, 나의 주장보다는 존경할만한 분의 권위적 견해를 예로 들고자 한다.

多夕 유영모 선생님은『老子』20장 시작의 "絶學無愚"를 한글로 풀어 쓰시기를

"써먹기부터  하련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을 것이오라" 라고 하셨다.

[물론 "하련"은 아래 아를 사용하셨고, 그 한글의 매력은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이다.]

아주 젊지는 않았을 때, 그래도 젊었을 때, 『늙은이』로 풀어쓰신 그 글을 공부했다. 실용적 필요는 아예 없던 터였다.

소위 좋은 환경에서 - 평범하므로 좋은 - 자라나서, 괜찮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적당한 직장경험, 그러다 우연히

사랑에 빠진 듯 결혼했고 이른 어머니가 되어있었던 시절, 그래도 한 가지, 필요에 의하지 않고 오직 즐거움 때문에

공부하는 버릇만은 지녔었지만, 그때는 그 취미마저도 부르주아적인 것이라 스스로 경멸하여 대학원 진학을

완강히 거부했었던 반항기를 잊지는 못하고 있던 터였다.

해서, 그 서늘한 충격 - 공부가 죄는 아니구나, 써먹을 생각에서가 아니라면....- 그것이 나를 다소 해방시켰었다.

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실용적 학문이 못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실용적 필요에 굴하는(?) - 참으로

미안한 표현이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이 고집을 지켜갈 방책이 없기 때문임을 용서 바란다 -

다른 동시대인들을 다만 다르게, 존경하지도 멸시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선택에 의한 삶을 서로 존중하기로 했다.

오늘은 물론 상황이 매우 다르다. 이제도 "도구적 이성" 운운하면 유행 한물간 이론에 매인 현학이라 오해된다.

오해뿐이 아니라 이제는 시대착오라고 멸시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있다. 대다수의 유능한 사람들이 실용적-도구적 학문에 경도하여 이루어낸 문명문화의 혜택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면, 소수의 다른 사람들- 즉 우리는, 인문학 따위에 매어있는 우리는 - 은 그래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마찬가지로 사회에 기여하여 잉여인간이 되지는 말지어다. 그러나 그 기여는 바로 성취사회가 가져다 주는 그림자,

그 그늘과 그림자를 찾아 최소한의 광명을 선사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런 상념에 잠시 눌어붙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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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