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11. 1. 20. 23:30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글을……

                                                                      
제7회 국제펜클럽광주문학상 수상소감

 

감사합니다.

소설가 경력도 일천한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안겨주신 국제펜클럽광주광역시위원회 선후배 동료 문인들께서는 제가 연구실 떠나서 완전히 손 놓고 게으름 피울까봐서 글 더욱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이 상을 주신 것으로 압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되니까 두 개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 듭니다.

첫째는 왜 소설을 쓰느냐? 둘째는 어떤 소설을 쓰려느냐?

옛날부터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소설책이나 읽고 상상의 시계에 빠져 생산성이 떨어질 것을 경계하는 것이었지요. 21세기 한국사회에서는 아예 언어예술인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습니다. 뭣 하러, 왜 글을 쓰냐고? 저는 말과 글의 생명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선 우리 인간은 진실로 소통을 하지 못합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각각의 자아들은 반드시 충돌하게 마련이니까요. 말에서 충돌은 더욱 심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동을 전하는 시문학이나, 지혜를 전하는 수필문학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겠습니다. 저로서는 어려워서 쓸 수도 없으니까요. (여담이지만, 시를 못 쓰는 사람이 소설 쓴다고 하고, 소설도 못 쓰는 사람이 비평한다 하고, 비평도 못하는 사람이 교수한다고 - 조정래 선생이 저희 대학에 언제 강연 오셔서 그러시더군요.)

그래도 소설 쓰는 변명을 하자면, 소설가는 소설 속에 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소통할 수 있는 소설이라는 장치는 삶의 현장에서 비겁한 저에게 안성맞춤입니다. 소설가가 쓰는 모든 것은 픽션이요 이미지이니까요.

인생은 이미지입니다. 이미지가 아니고서는 숨이 막혀 살아갈 수가 없지요.

그동안 “지식산업의 대열에서 살아남느라 정신에 대한 죄악이라고 홀대했던 이미지에 들려 외치고 싶었습니다. 나는 상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어딘지 산만한듯하면서도 응집력을 지닌 소설쓰기에 몰입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 차례입니다. 어떤 소설을 쓰려느냐? 제가 배운 것이, 아는 것이라고는 독문학 한 조각이니 거기서 인용하겠습니다. 카프카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할 것이야.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것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친구 오스카 폴라크에게)

 

인생은 어찌 보면 깁니다. 무려 7년/10년에 달하는 유충기를 보내고 태어나서 열흘 남짓 살다가 가는 매미들과 굳이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평균연령 80은 29220, 근 3만 번의 낮과 밤을 사는 일이니 참 긴 세월입니다. 그 수많은 낮과 밤을 살아내는 일에서, 우리의 내면을 외면하고 산다면 그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진솔한 내면을 위하여, 내면에게만 토로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가는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을 즐거운 상상의 유희로 데려가건, 뼈저리는 고통의 면모를 들이밀건, 소설가의 선택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하나, 소설이, 문학이, 예술이 세상을 쥐고 흔드는 권력의 시녀가 되는 일은 거부합니다. 

세기의 독재자 히틀러가 말했습니다. 대중에게는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된다고. 풍부한 물질과 매력적인 볼거리만 있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현대의 권력자들도 이것을 이용하고, 대중을 즐겁게 해줄 볼거리는 돈의 위력을 앞세운 연예와 스포츠를 망라합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한 채 즐거움에 빠진 대중은 비판의식이 없어집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상황이 어떠한지도 무관심합니다. 행여 문학이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일만은 삼가야 된다고 믿습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입니다. 저는 시인이건 소설가건 작가가 특별히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문학의 본성이 죽지 않기 위해서 저항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문학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독자를 위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결국은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자신의 내면을 일깨우기 위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문학의 본성입니다. 내면을 일깨운다는 것은 바로 타성의 벽을 허무는 것입니다.
 
타성은 우리로 하여금 다수가 정의라고 믿게 하고 강자가 옳다고 고개 숙이게 하는 무서운 복병입니다. 이 타성의 벽을 깨고 진정 자신과 소통할 때, 문학은 희망하건대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특히 국제펜클럽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는 상호 교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외국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 그 반대 방향의 일 모두가 매우 보람된 일 중의 하나입니다. 누군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류보편의 문화가치를 매개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매개보다는 창작이 생명입니다.

“저는 그동안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면서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쳤습니다.”

그런 순간이면 서툴더라도 제 글을 쓰면서 다시 살아나고자 했습니다. 그저 존재하지 않는 연인, 내 나라 말, 내 글로 쓰는 소설이라는 이름의 추상적인 연인을 향해서 썼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하이에나가 표범이 되기는커녕, 이도 저도 아닌 박쥐신세임을 통감했을 때 “저는 저로서 살기를 망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장 정직한 일이 독문과 교수직을 그만 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수 말고 온이 소설가로서의 첫 해, 이 뜻 깊은 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 자유인으로서의 첫해 농사는 외면상으로는 더할 수 없는 풍작입니다. 내면에서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너는 아직 너의 내면을 일깨워내지도 못했노라고!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글”을 쓰기엔 아직 멀었다고!
   이제 저에게 (겉으로는) 영광이자
(실제로는) 채찍인 이 상을 주신 국제펜클럽광주광역시위원회 선후배 동료 문인들께 부끄럽지 않도록 글 더욱 열심히 쓰며 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1년 1월 20일

서용좌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1. 1. 20. 22:00
국제펜 광주문학상에 서용좌씨
2011년 01월 19일(수) 00:00

국제펜클럽 광주시위원회(회장 김영관)가 주관하는 ‘제7회 국제펜 광주문학상’ 수상자로 서용좌(66·전남대 독문과 명예교수)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12편의 중·단편을 엮은 소설집 ‘반대말 비슷한 말’.

광주 출신인 서씨는 전남여중고와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과 연작소설 ‘희미한 인(생)’등을 발표했고 2004년 ‘이화문학상’을 수상했다.

/김대성기자 bigkim@kwangju.co.kr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1. 1. 20. 22:00
[폄] 제7회 광주펜문학상 시상식
http://blog.naver.com/ohdl/150101707866

오덕렬입니다. 우선 광주문인협회 560여 회원과 함께 제7회 광주펜문학상을 수상 하시는 경랑 서용좌 소설가님께 축하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 이하 위 블로그를 따라가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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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011. 1. 19. 22:30
2011년 01월 18일
‘반대말 비슷한 말’영예 20일 광주 시청자미디어센터서 시상식

제7회 ‘국제펜 광주문학상’에 서용좌씨(전남대 독문과 명예교수·사진)가 ‘반대말 비슷한 말’ 단편소설집으로 영예의 수상을 안았다.
국제펜클럽 광주광역시위원회(회장 김영관)는 제7회 국제펜광주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서용좌씨를 선정 발표했다. 시상식은 오는 20일 광주 서구 금호동 시청자 미디어센터에서 열리는 ‘2011년 펜 한가족의 밤’ 행사와 함께 열린다.
서용좌씨는 “평생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소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소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칠 때마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 내 글을 쓴다” 고 밝혔다.
이번 국제펜광주 문학상 수상 작품집 ‘반대말 비슷한말’은 같은 이름의 표제작을 비롯해 12편의 단편 모음집으로 수록돼 있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김종 시인은 “지역 문인 5~6명이 물망에 올랐으나 전년도 수상자들의 문학 장르를 제외하고 가장 적합한 소설의 서용좌씨를 선정했으며 잘 빚어진 찻잔 같던 19세기 식 단편들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 속에 그의 소설이 놓인다는 것은 한국 문단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고 선정 이유를 들었다.
서용좌씨는 광주 출신으로 이화여대 독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난 2001년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 그림’을 발표와 함께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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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011. 1. 19. 22:00

제7회 국제펜 광주문학상에 소설가 서용좌씨

입력시간 : 2011. 01.18. 00:00
단편소설집 '반대말 비슷한 말'로 영예


서용좌 전남대 독문과 명예교수가 단편소설집 '반대말 비슷한 말'로 제7회 국제펜 광주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제펜클럽 광주시위원회(회장 김영관)는 17일 제7회 국제펜광주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서용좌씨를 확정, 발표했다.

서 교수는 광주 출신으로 지난 2001년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 그림'을 발표, 주목을 받았고 이화여대 독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그동안 전남여고 교사 등을 거쳐 현재 전남대 인문대 독문과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이번 국제펜광주 문학상 수상 작품집인'반대말 비슷한말'은 같은 이름의 표제작을 포함, 12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서평을 쓴 유금호(목포대 명예교수)씨는 "보통 소설들이 작가 메시지를 객관적 서사 속에 용해, 육화시켜 내보여 왔다면 서용좌의 소설에서는 서사의 행간 속 작가의 자유로운 사유와 분석, 예증들이 바슐라르 이상의 상상력을 가지고 풍요롭게 부유한다"고 설명했다.

또 "서용좌 소설은 작가의 독특한 개성이 있어 시험 삼아 작가의 이름을 지워도 서용좌의 소설이라는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라며 "서용좌 소설의 사랑방정식은 출발점에 이미 원초적 비극을 안고 있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평했다.

서용좌 교수는 "평생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소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며 "다른 나라 사람들의 소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칠 때마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 내 글을 쓴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김종 시인은 "잘 빚어진 찻잔 같던 19세기 식 단편들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 속에 그의 소설이 놓인 다는 것은 한국 문단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20일 광주 서구 금호동 시청자 미디어센터에서 열리는 '2011년 펜 한가족의 밤' 행사와 함께 열린다.

최민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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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2011. 1. 18. 23:00

제7회 '국제펜 광주문학상' 소설가 서용좌씨 선정

  • 기사입력 2011.01.16 15:38
  • 최종수정 2011.01.16 16:15

    15면, 서용좌 교수-수상작품집 '반대말 비슷한말'


    국제펜클럽 광주광역시위원회(회장 김영관)는 제7회 국제펜광주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서용좌(전남대 독문학과 명예교수)씨를 선정 발표했다.

    이번 국제펜 광주 문학상 수상 작품집인 '반대말 비슷한말(사진)'은 동명의 표제작을 포함해 12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서평을 쓴 유금호(목포대학교 명예 교수) 씨는 "서용좌의 소설은 서사의 행간 속 작가의 자유로운 사유와 분석, 예증들이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풍요롭게 부유한다"고 썼다.

    또 "서용좌 소설은 작가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며 "서교수 소설의 사랑방정식은 출발점에 이미 원초적 비극을 안고 있는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설쓰기에 몰두하기 위해 안정된 학자의 길을 마다한 작가는 "평생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소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었다"며 "다른 나라 사람들의 소설을 파먹느라 자판을 치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느껴져 소스라쳐 그때 마다 컴퓨터의 '새 글'을 열어 '내글'을 썼다"고 글쓰기의 고충을 밝혔다.

    2001년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 그림'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은 서용좌 교수는 광주 출신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독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남여고, 제일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현재는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독일어문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하고 있다. 2004년 「이화문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제7회 펜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0일(목) 오후 6시부터 금호동 시청자 미디어센터에서 갖게 되며 "2011년 펜 한가족의 밤" 행사도 함께 열리게 된다.

    이날 행사는 시상식에 이어 전임 김 종 회장에 대한 공로패 전달과 시ㆍ수필 등의 장르별 문학작품 낭송회, 국악연주 등의 공연이 함께 펼쳐질 예정이다.
    김정현 기자 boram21@

Posted by 서용좌
자료2010. 12. 31. 23:00

출판물 목록   1975~2010                                      
...................................... 이렇게 뭔가를 쓰면서 살아왔네!  
                                       사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 쓰기 위해 읽는 시간을 살아왔네!  
                                       헛살았네!  
   

  

I. 논문

- 석사학위논문:

   R. Musil에 있어서 Ulrich의 “가능성” 문제, 이화여자대학교, 1975, 43쪽.

- 박사학위논문: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 구현된 시대의식, 이화여자대학교, 1986, 167쪽.

 

-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에 있어서의 순간과 현실에 대한 의미분석,『사대논문집』,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2, 제 8집, 31-51쪽.

-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에 있어서 대위법적 구성의 기능과 효과. 『사대논문집』,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3, 제 9집 41-58쪽.

- Heinrich Böll의 『Gruppenbild mit Dame』: 성취거부의 생활원칙. 『사대논문』,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4, 제 10집, 53-74쪽.

- Peter Weiss의 『Die Verfolgung und Ermordung Jean Paul Marats  dargestellt durch die Schauspielgruppe des Hospizes zu Charenton unter Anleitung des Herrn de Sade』 연구: 시민사회의의 억압하에서 예술의 표현자유를 위한 실험 I.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4, 제 33집, 121-148쪽.

- 동 II.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4, 제 34집, 129-146쪽.

- Heinrich Böll의 『Das Brot der frühen Jahre』에 있어서 “Aussteigen”의 의미.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6, 제 36집, 123-149쪽.

- 페터 슈나이더의 『렌츠』연구 - 개념과 인지의 불일치, 『정천 강희영교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삼영사 1989, 279-313쪽.

- 독일의 전후 상황에서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 등장하는 부적응의 인물들의 기능,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0, 제 45집, 161-186쪽.

- 기구화된 사회 속에서 원시기독교정신의 회복: 하인리히 뵐의 풍자물 「무르케 박사의 침수집」,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2, 제 49집, 462-485쪽.

- 하인리히 뵐의「흔적없는 사람들」의 사제의 침묵: “소수에 대한 이해”,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4, 제 52집, 197-230쪽.

- 하인리히 뵐의 유토피아의 가능성,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6, 제 60집 (37권 2호), 247-267쪽.

- 하인리히 뵐의 「검은 양들」과 47동인의 정신,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7, 제 64집 (38권 3호), 230-250쪽.

- 하인리히 뵐의 작가 정신: 예술가-시민간의 정체성문제,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9, 제 71집 (40권 3호), 288-321쪽.

- 에.테.아. 호프만의「모래귀신」의 서술자, 『텍스트언어학』, 한국텍스트언어학회, 2000, 제8집, 103-134쪽.

- "Was ist der Mensch ohne Trauer?" Heinrich Boells Stimme klingt weltweit.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1, 제1집, 21-40쪽.

- 인도주의와 미학의 긴장: 하인리히 뵐의 풍자물에서 본 서술전략, 『독일문학』,서울: 한국독어독문학회 2002, 제 84집 (43권 4호), 214-234쪽.

- 행동으로서의 부적응 - 하인리히 뵐의 『강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이병애(편), 『독일문학의 장면들: 문학, 영화, 음악 속의 여성』, 문학동네, 2003, 361-386쪽.

- 창작과 사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 나타난 언론보도의 문제,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5, 제5집,  169-194쪽.

- 길항작용에서 정체성 추구로 - 하인리히 뵐의 『어느 광대의 견해』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 주는 남자』에서 세대 간의 문제,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2008, 제 108집 (49권 4호), 119-143쪽.

- 「하인리히 뵐과 쾰른」,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9, 제9집, 13-28쪽.


II. 논저

- 『하인리히 뵐 연구』, 한신문화사 1989, 290쪽.

- 『텍스트 언어학적 분석에 의한 에.테.아. 호프만의 「모래귀신」』, 한국문화사 1999,

                             454쪽. [공저: 브루노 로스바흐]

- 『도이칠란트 • 도이치문학』, 전남대학교출판부 2008, 1198쪽.

                                   * 2008 문화관광체육부 우수도서 선정

- 『창작과 사실』,  전남대학교출판부 2010, 509쪽.

III. 역서 

- 「가난한 시절의 빵」 (원작: 하인리히 뵐), 『언어의 세계』 제 4집, 청하 1985, 255-348쪽: 『닫힌 시절의 사랑』(도서출판 삼문, 1994)으로 재발행.

- 『강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원작: 하인리히 뵐), 삼성출판사, 1986, 289쪽.

- 『문둥병』 (원작: 하인리히 뵐), 전남대학교 출판부, 1986, 98쪽.

- 『장벽을 넘는 사람』 (원작: 페터 슈나이더), 도서출판 들불, 1991, 169쪽.

-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카프카의 편지 1900-1924』 (원작: 카프카), 솔출판사 2004,

                      1088쪽.   * 2004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선정


IV. 창작

단행본

- 2001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 도서출판 이유, 272쪽.

- 2004 연작소설집 『희미한 인(생)』, 그림 조윤기, 도서출판 이유, 256쪽.

- 2010 소설집 『반대말 ․ 비슷한말』, 전남대학교출판부, 324쪽.

문학잡지 게제

- 2002 중편 「태양은」, 『소설시대』 4호, 한국작가교수회, 240-282쪽.

                                     * 한국작가교수회 2002년 신인상 수상       

- 2003 단편 「부나비」, 『소설시대』 5호, 한국작가교수회, 65-90쪽.

- 2004 단편 「건들장마」, 『한국소설』 11월호(64호), 한국소설가협회, 150-172쪽.

- 2005 단편 「춤꾼」, 『소설시대』 9호, 한국작가교수회, 174-189쪽.

- 2006 단편 「행복한 수요일 아침」, 『소설시대』 10호, 한국작가교수회, 111-133쪽.

- 2006 단편 「오늘과 이별하다」, 『PEN문학』 가을호(80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185-206쪽.

- 2007 단편 「마리아 막달레나」, 『월간문학』 5월호(459호), 한국문인협회, 166-181쪽.

- 2007 단편 「조사」, 『소설시대』 12호, 한국작가교수회, 190-212쪽.

- 2007 단편 「콩나물」, 『문학저널』 11월호(51호), 문학저널사, 107-124쪽.

- 2008 단편 「네 번째의 죽음」, 『한국소설』 9월호(110호), 한국소설가협회, 230-252쪽.

- 2009 단편 「쪽지 붙였음」, 『PEN문학』 가을호(92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176-196쪽.

- 2010 단편 「정체성」, 『소설시대』 17호, 한국작가교수회, 80-102쪽.

- 2010 단편 「병든 고향」,『흐름 위에 멈춰 선 그늘』 , 한국여성문학인회 6.25 60주년 기념 특집, 246-248쪽.

- 2010 단편 「쇼」,『광주문학』 겨울호,


에세이 등

- 2002 칼럼  「전일시론」, 『전남일보』,

                          성장  5.27.

                          오~필승 코레아 - 신화와 현실 6.25.

                          노블리스 오블리제 7.22.

                          우리의 골목대장들 8.19.

                          한가위 유감-우리를 스산하게 하는 가을 9.16.

- 2002 에세이 「입시지각생의 운동화 끈」, 『우리 어디에 서있어도』, 이대동창문인회,
210-213쪽.

- 2003 에세이 「어머니가 되세요!」, 『FRIENDS 5월호』, 월간프렌즈, 2003.

- 2003 에세이 「천재와의 만남」, 『꿈꾸던 것들은 아직도 꿈인가』, 이대동창문인회, 

                    95-98쪽.

- 2004 에세이 「오프라인」, 『그대 안의 풍경』, 이대동창문인회, 257-260쪽.

- 2004 탐방 「서정인 선생님 서재 탐방기 - 영어로 글읽기와 한글로 글쓰기」,

                   『소설시대  7호』, 한국작가교수회, 9-20쪽.

- 2005 에세이 「내 딸의 어머니」, 『눈물향기의 어머니』, 이대동창문인회, 253-257쪽.

- 2005 에세이 「교집합과 합집합」, 『문학사상』, 11월호, 284-288쪽.

- 2006 에세이 「내적 자유」, 『만남』, 이대동창문인회, 268-272쪽.

- 2006 에세이 「움직이는 긴 그림자」, 『문학공간』, 9월호(202호), 19-21쪽.

- 2007 에세이 「정신의 귀족」, 『123명이 말한다 정연희 - 미운 오리새끼』, 개미출판사,

                       84-87쪽.

- 2007 에세이 「구멍난 옷」, 『내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 이대동창문인회, 211-215쪽.

- 2008 에세이 「눈이 있었던 것」, 『맛, 멋, 그리고 향기』, 232-235쪽.

- 2009 기행 「그림자 도시」, 『소설시대』, 15호, 186-209쪽.

- 2009 에세이 「평행선」, 『사랑은 아무나 한다』, 이대동창문인회, 181-184쪽.

- 2010 에세이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사랑에 세든 사람』, 이대동창문인회,

                       200-203쪽. - 2010 에세이 「도마뱀」, 『문학공간』 12월호(253호), 40-42쪽.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0. 12. 31. 16:46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남자는 첫사랑이지만 여자는 마지막 사랑이라고 - 그렇게 남자들이 말해놓고서 여자들의 망각의 묘기를 비웃곤 합니다. 망각은 양심을 접는 것과 같은 의미일 때가 많아서, 여자들은 양심이 덜한 족속으로 폄하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바닷물 한 움큼만큼,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라 해도 파도가 밀려오다 빠져 나가듯이 어느 때는 코앞에 다가와 눈을 떠도 감아도 그 자리에 있다가는, 또 언젠가는 슬며시 핏속으로 숨어드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내가 잊을 수 없는 것들은 당신에겐 아무렇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도 걸러내는 기억들은 제 나름일 테니 말입니다. 고운 차 거르는 체 마냥 촘촘하며 일정한 그물망이라 해도 우리의 기억을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누가 들으면 웃을까. 늘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이를테면 아무렇지도 않은 산자락 성긴 돌 틈으로 삐져나온 연초록 풀들 같은 하찮은 것들입니다. 또는 여름이 시작되고 2층 창밖으로 짙푸른 나뭇잎들이 무성해지는 이맘때면, 바로 이맘때 만났던 새 새끼들이 되살아납니다. 정확하게 큰 아이가 약혼식을 위해 잠시 집에 머물었다가 간 다음날이었습니다. 무심코 아이들 방 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발견한 것인데, 날렵한 동작으로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이상한 일이었죠. 어느 결에 둥지를 튼 놈들은 놀랍게도 알을 낳았던 것입니다. 아파트 나뭇가지에. 스무날? 한 달 정도? 유난히 맑은 여름날을 뒤 베란다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그놈들 사는 양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새보다는 큰 것이 그래도 참새 모양이라 참새목 되새과 혹은 멧새과 쯤에 드는 새이리라 추측했답니다. 그렇게 흔한 새이지만 아무도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뒤적여보았던 백과사전에서 일러준 대로라면 3~5개의 알을 낳는다더니만 정말 딱 4개의 알을 낳았더이다. 그 다음은 누군가 정성들여 관찰해서 TV에 올려주는 그런 과정들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그것을 덜 화려한 색깔로지만 프레임이 없는 실 공간으로 바라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침조석(!)으로 뒤 베란다 나가기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는 재미라니, 방안 퉁소 서생으로 살던 터에 쏠쏠한 재미였습니다. 사람들은 앉은 자리 뭉개지도록 눌러 앉아있기만 하던 사람이 왼 종일 촐랑대던 일로 즐거워했고, 더러는 놀렸답니다. 하여 그 여름은 더위라거나 짜증 같은 아름답지 않은 단어는 우리 집에서 사라졌더랍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아름다울 수는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정말 상쾌하리만치 서늘한 날 아침 밥상. 밥상이라야 가볍게 풀 썰어놓고 빵 뜯어먹고 그랬을까요? 아님 그날따라 젓가락을 들었던 감촉이 살아납니다. 밖에서 자지러질 듯 하는 새 소리 사이로 알 수 없는 요란한 소리들이 날아와서 우리 모두는 기겁을 했습니다. 후다닥 튀어 일어나서 뒤 베란다로 내달은 나는 정말 기절할 것 같은 광경에 시간이 정지했다고 느꼈습니다. 저쪽 새둥지에서 두 나무 째를 건너온 바로 코앞이 전쟁터였던 것입니다. 그 네 마리 새끼들이 첫 비행을 하면서 그것이 곧 둥지를 떠나는 날인 줄 그때서야 눈치를 챘습니다. 누가 예전에 야생의 새를 키워보기나 했어야 말이지요. 그런데 한 마리씩 한 가지씩 날아오르려는 새끼 새들에게 저승사자가 나타난 것 때문에 어미아비 새들이 단말마의 울음을 울었던 것입니다. 주차된 차량들 사이를, 더러는 벌써 움직이는 차바퀴도 겁내지 않고 기식하던 주인 없는 고양이가 곧 영양식을 발견한 것이지요. 새끼들의 추락을 기다리는, 아니 소리로서 겁을 주어 추락을 유도하려는 고양이와 어미아비 새의 대결장이었습니다.

아아 안 된다, 아가 힘 내거라, 어서.

이 몹쓸 도둑고양이, 악마! 사라지지 않음 내가 쪼아 줄 테다.

네롱~ 하면서 달콤한 먹이를 향해 불을 뿜는 고양이도 질 기세는 아니었지요. 글로 쓰자니 여러 줄이지만 사건은 불과 몇 초였을까요? 어쩌자고 나는 젓가락을 든 채로 아파트 계단을 내달렸습니다. 아무 신이나 끌고 화단에 내려서선 고양이를 내쫒았지요. 평소라면 기분이나 나빠할 뿐 눈도 주지 않으려했던 그 고양이놈을. 상황이 너무도 아슬아슬했지만, 얕은 가지로 출렁이던 새끼와 뛰어 오르려던 고양이의 서커스가 원안대로 끝나고 상황이 종료되자, 난 그만 털썩 주저 않았지요. 흙에 앉아서 올려다보니까, 마지막 한 놈이 맨 윗가지를 정말로 날아오르더니 저만치 떨어진 큰 나뭇가지로 옮겨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없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젓가락 한 짝만 들고 계단을 기어올라 들어온 나를 식구들은 더욱 놀려댔습니다. 내가 뛰어나간 뒤로는 내 소리까지 가세해서 정말 한판 굿이었다는군요. 새 소리 고양이 소리야 비록 생사의 투쟁이었다고 하지만 자연의 소리였겠죠. 그러면 내 목소리는? 그렇지 않아도 소프라노로 분류되는 목소리로 정말 무진 악을 다 썼더랍니다. 교양? 평소에 목소리 크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다 새침이었던 게지요. 급하니까 정신이 없더랍니다. 알 수 없는 나라 말로 새 새끼들에게 주문을 거는가, 했더랍니다.

그런데 이 새란 놈들은 진정 그들이 태어난 자리를 기억할까요? 그해 여름 어느 날엔 뜬금없이 앞 베란다의 가녀린 창살에 한 놈이 턱 앉아 있었다는 일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그 놈이 그놈일 거라고 수선을 떨며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저만치 담장 쪽에 앉은 놈들도 꼭 우리 집 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기색이었단 말입니다. 더구나 이듬해에도 때로는 해를 걸러서도 심심치 않게 그 예쁘지도 않은 소리로 찌이찌이 울어대는 새들이 우리 집 주변을 날아와 앉곤 한답니다. 창살 안쪽의 꽃잎을 한참 동안이나 쪼고 있을 때도 있답니다. 그러니 그놈들을 잊을 새가 있겠냐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을 새록새록 불러내주지 않더라도 물론 잊지 못할 일들이 늘 있지요. “언어란 꿀이 빠져버린 벌집처럼 거죽뿐인 줄을 알면서도 그 안에 어느 한 순간의 제 마음이라도 담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렵니다.” (오자 포함, 어느 작품의 인용입니다) 같은 쪽지 글을, 아니면 지구 속 마그마로 녹아들고 싶다는 마성적인 언어를. 아니,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요 진실은 언어 이상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던 순간들을. 순간들은 부서지기도 녹기도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순간들을 잠시 버릴 뿐입니다.

......................................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사랑에 세든 사람』, 이대동창문인회, 2010, 200-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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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0. 12. 21. 22:09

•• 믿거나 말거나, 참 뜻밖의 소식 -
   
무슨 문학상을 받게 되는 것이란다. 2010년도 OOO문학상.

12월 21일, 아침 일찍 운전석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나로서는 이른 시각에.
의례적인 검사이기는 하지만 병원행이었다. 병원행이라 일찍 나선 길이었다.
두번 연속 울린 전화가 미안한 맘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OOO 회장으로 있는 K교수님의 전언이었다.

아무튼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에 대해서.
아무튼 하이에나 짓 멈추기 위해 첫소설 내느라 미쳤던 것이 꼭 10년 전 그 겨울날이다.••
차가운 땅 속의 아버지, 병원의 어머니! 고집덩이 딸이 이젠 소설장이 맞나 봅니다.
상이든 질책이든 소설가로서 취급됨을 전제로 하니 기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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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0. 12. 9. 23:56

 

 



 

거울 앞에서 입 꼬리에 힘을 주어 웃음기를 흘려 본다. 몸과 맘이 수고로울 일을 앞에 두면, 집을 나서기 전에 꼭 거울을 본다. 아직 쓸쓸한 봄, 할아버님의 기제사가 마침 주말에 걸리다보니 여느 때보다는 맘 편하게 집을 나선다. 형님네 대문은 빼곡히 열려있고, 부엌 쪽에서는 벌써 생선 익어가는 냄새가 먼저 내달아와 코를 맞는다.


잘 계셨어요, 숙모님. 일찍 나선다는 것이 늘 늦고 마네요, 형님.

어서 손 씻고 와 앉소. 자네 형님만 뭔 죈가.

형님이 대꾸할 틈도 안 주시고 가닥을 잡으실 양이니, 오늘도 숙모님이 주인공이시다.


동서, 빨리 왔구먼. 오늘은 시간 넉넉하겠어.

고구마 색이 곱네요.

채반에 노랗게 익어있는 얇은 고구마 조각들이 내 손을 기다린다. 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 젖혀놓아도 수건 사이로 머리카락 올올이 기름 냄새로 범벅이 될 하루가 시작된다.


어디 쓰겄는가, 밀가루를 되직하게 하소, 뽀얗게 색 내려며는. 고구만가 호박인가 너무 노랗잖은가.

소생이 없어 늘 외로우신 숙모님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런 날이면 더 외로움을 타신다. 다행히 음식 솜씨며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단정한 맵시로 젊은 여자들을 누르신다. 형님의 입장에서는 어머님이 안계시고 보니 숙모님께 상의도 하고 도움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둘이서 조금 엇박자 느낌이 든다. 숙모님은 이말 저말을 섞어 하시고 형님은 그저 시늉만 대꾸를 한다.

식혜 솥 열어볼 때 되었네. 밥풀 서너 개 떴는가.

예.

이 꼬막은 씻은 건가 아닌가. 뻘이 그냥 붙어있네.

예.

그런데 참 늦네. 몇 시야, 지금. 여섯시가 되가는데 왜들 안 와?

이번엔 내가 놀란다. 아니 웬 여섯시 말씀을. 여기 아직 육전도 안 끝났습니다. 고추전쯤 마치고 점심 상 보잖아요. 아직 점심도 안 드시고 여섯시라뇨!

박실이는 또 안 오겄지? 숙모님은 엉뚱한 말씀으로 둘러대며 자리를 뜨신다.


형님, 오늘따라 왜 저러셔요? 이 제사 때면 애기씬 시어르신 일이 겹쳐서 언제나 시골에 가잖아요. 설마 다 아시면서.

아마 기다리는 사람 생각에 시계를 헛보신 게지.


그렇게 점심상을 차리고 치운다. 다시 번철이 열을 낸다. 벌써 두부 조각들이 기름에 지글거리고 있다. 점심 후로는 숙모님이 속이 불편하시다고 소파에 누워 계시니 우리만의 부엌에 능률이 더 나는 느낌이다. 실제로 거들어주는 손이 빠졌는데도.


갑작스레 집안에 활기가 차며 숙모님이 몸으로도 부산해지신다. 드디어 서울 사는 시동생 내외가 들어선 까닭이다. 오매, 우리 원장님 오느라 애썼네. 차는 안 막혔나? 답은 거의 듣지 않으시고 바쁘시다. 술참 때가 겨웠으니 시간이 애매하지만 일단 밥상이다. 오래 서울 물 먹다보면 냄새가 너무 진하다고 할 진짜 굴비하며, 홍어, 토속적 음식이 든 접시들로 손이 바쁘다. 부엌은 이제부터는 완전히 조용할 터다. 원장조카 턱 앞에서 음식 먹이는 맛에 푹 빠지신 동안. 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진설 시간이 될 때까지다. 해마다 기제사 때 되풀이 되는 훈계가 시작되면, 할 말은 아니지만 숙모님 입엔 작은 게거품이 돋는다. 게거품은 싸울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안다. 신바람이 나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진설을 위해서, 심지어 상에 올리는 순서까지 정하시는데 어쩌랴. 그것이 이 근년에는 순서가 조금씩 섞이는데, 그걸 종잡을 수가 없다. 좀 있으면 핀잔의 시선이 전자빔처럼 따갑게 공간을 가를 것이다.


아니, 그런데 큰 변형이 생긴다. 오늘따라 진설 시간이 되어서도 원장조카 시선만 붙잡고 계시는 것이 이상 일이다. 제기들이 죄 닦이어 줄을 서 있어도 소용이 없다. 고개는 아예 비뚜름히 고정되어 있다. ‘한 시 오 분 전’이란 별명의 여학교 때 선생님 생각이 난다. 다른 점이라면 그 선생님은 ‘한 시 오 분’과 ‘오 분 전’을 가끔 바꾸셨던 것이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조카 쪽으로 굳은 고개. 주름만 빼면 표정이랑은 영락없이 연인을 바라보는 드라마 주인공의 모습이다. 숙모님이 오 분 전이면 조카는 계속 오 분을 유지해야 서로를 보게 되는 것이라 그것이 썩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뉴스 시간이라도 되면 좋겠다 싶다. 


형님이 그냥 알아서 하세요. 조금 아까부터 부엌으로 섞인 막내동서가 조바심을 낸다.

숙모니임, 저희들이 대충 올려 보아요? 기다리다 못해 형님이 묻는다.

대충이 무에야. 자네들 할아버님 들으실라. 시간이 이르잖아.


서너 시간 서울사람 곁에 앉아계시더니만 신기하게도 서울 말씨에 가까운 억양이 나오신다. 심지어 모음들이 바뀐다. ‘이거 묵어보소’ 라고 할 계제면 ‘요거 먹어 봐’가 된다. 입술을 동그랗게 하면 나이 불구하고 조금 더 귀엽다. ‘응’ 할 자리에는 ‘잉’이라 하시며 웃음기를 흘린다. 원순모음과 평순모음이 둘 다 귀여운데 사용되니 이상하다. 이 말은 순전히 내 직업병에서 온다. 국어선생 기질이 어디 가랴.


신기하셔. 형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들으시려고요.

하긴. 귀도 참 밝으시니 조심하자.

형님 그런데 요즈음 좀 힘드신 일 있어요?

뭐 그냥. 사는 것이 쇼 같아서.

아무 일 없어 보이는 안정감을 특징으로 하는 형님의 입에서 조금 놀라운 단어가 튀어 나온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왠지 조금 뜨끔하다.

아니 내 말은 누구나. 조금은 억지로 참기도 하고.

그럼 속내 다 내놓고서야 어떻게 매끄럽나요? 기름칠을 좀 하는 거죠. 입가에 다시 한 번 힘을 준다. 여기는 시댁이다. 불편해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 사이.

그 정도가 아니라 내 말은. 숙모님 어제 오셨잖은가. 여전히 사뿐 걸음이시긴 한데, 뭔가 조금. 뭐라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암튼 근년 들어 느닷없이 가리는 음식들 땜에 옆에서 손을 못 쓰니 참.

거야, 티비가 범인이죠 뭐. 소가 농약 묻은 풀을 뜯어 먹는다니 우유 못 마셔, 허리둘레를 줄여야, 탄수화물을 줄여야 장수한다는 뉴스에 떡도 뭣도 못 먹고. 막내는 범인을 따로 정한다.

하긴, 내가 괜한 걱정이네. 총하시니까 뉴스 따라 사시지.


찜솥이다 냄비들이다 번철 가에서 눈을 들어 잠시 숨을 쉰다는 게 어째 말들이 샌다. 숙모님 쪽에선 반응이 없다. 막무가내로 당신 조카만 올려다보고 계신다. 살짝 미소 짓다가 조금 찡그리다가. 몇 미터 거리에서, 식당과 거실 사이 커튼 사이로 건너다보니 표정일랑은 그대로 영화다. 디카든 셀카든 등장해야할 판이다.


평소에도 저러세요?

동서는 새삼. 당신 감정에 솔직하신 거지. 지난번엔 며칠 화장실 출입 못한다고 자네한테 전화하셨다며?

거야 내 차로 움직이실까 해서……. 

그래도 오밤중에는 심하시지.

겁을 내셨더라고요, 응급실 가야하는가 싶어서. 가진 않았고요.

겁이란 것이 무서움일까 욕심일까? 암튼 오늘은 우리끼리 그냥 해보세.


사실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조율시이로 시작해 첫째 줄을 다 놓아도 여전히 꼼작 않고 조카만 쳐다보시다니. 시동생의 입장에선 숨이 막힐 지경이라. 손을 끌로 내려와서 진설을 도와달라고 하자 숙모님은 갑자기 깨어나신 듯하다.


감이 곶감이제 뭣들 하는가?

요즘 세상엔 시절이 좋아 감과 곶감이 늘 함께 있다 보니 문제다. 평상시에 숙모는 감이 있어도 곶감자리 다음에 반드시 배를 올려 ‘법에 맞게’ 하라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곶감 다음이 나란히 감이라신다.

어머나, 생선 배들이 왜 이쪽인가? 거 산적이 빠졌구먼, 마저 좀 하지. 어머나, 꼬막 색은 왜 이래, 새꼬막을 샀던가?

산적은 닭찜이 있다고 말라시고, 꼬막 껍질은 덜 깨끗하다고 몇 번을 물리셨잖아요.

어머나, 오늘 내가 그랬어? 내가 요새 이러네. 통 기억이 읎어서는.

거야 저희들도 그럽니다. 숙모님 건강 염려는 마세요. 아까 보니 손도 따뜻하시고, 혈색도 아주 좋으시고요.


혈색 - 그것은 하나의 신호였다. 시동생의 입에서 의사의 전문용어로 혈색이란 말이 튀어 나오자 그것이 울타리를 넘는 신호였나 보다.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키시다 말고 숙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눈을 이상스레 치뜨시는 듯, 새침해져 말없이 작은 방으로 들어가신다. 우리는 또 어린양이 시작되셨나 보다 하는 생각에 별 신경을 안 쓴다. 무엇보다 나머지 진설을 마쳐야 하고, 우선이라도 부엌 정리를 하고 또 저녁 밥상 차릴 준비를 해야 하니까. 우리 집은 제사 중에 진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다 진설해놓고 진찬 때는 메만 올린다. 그리고 초헌 절차가 끝나면 그대로 음식을 드시리라는 여유 시간에 자손들도 저녁을 먹는다.


진지 드시지요.

식사들 하세요.

거실에 큰상 펴고 남정네들이, 부엌 식탁에는 여자들이 이런저런 의자들 보태서 둘러 끼어 앉는다. 숙모님은 어른대접으로 거실 상에 자리한다. 늘 시동생 옆자리다. 아니면 반찬 얹어주시느라 다른 사람들이 수저질하기가 불편할 정도가 되니까. 요거 맛있어, 요거도. 그런데 안 나오신다.


자네가 좀.

형님의 말 따라 숙모님 모시러 들어가 보니 그만 말이 안 나온다. 당신의 빨간 색 바바리를 내려놓고 - 원래 놀라운 옷 치례를 하신다. - 웬 잔잔한 꽃무늬치마에 발을 꿰려는 몸짓으로 버둥거리고 계시니. 형님이 오늘 무색으로 갈아입느라고 벗어 둔 모양인데.


형님, 아니 원장님 좀 와보세요.

급히 물러난 나는 우선 시동생을 불렀고, 밥상에 막 앉아있던 사람들이 방으로 내달으려 하자 시숙이 말렸다. 뭐 별일이시겠나. 다들 저녁을 먹어야 마저 제사를 지내지. 원장도 식사나 하고 들어가 보소.


숙모님은 완전히 정신을 놓으신 것 같다.

이그, 이그 내 농이 어디 간 거야? 난데없이 애들 옷장을 보며 탓을 하신다. 앉은걸음으로 농을 미는 시늉을 하니 겁이 날밖에.

숙모님 농이라뇨. 여기 애들 오면 쓰는 방이잖아요. 숙모님 댁 아니고, 저희 집.

자네네? 내가 그럼 왜 왔어?

할아버님 기일에 오셨잖아요.

그랬어? 그런데 왜 안와? 우리 김 원장 왜 안와?

다시 또 시작이시다. 거의 성화다. 그렇게 몇 번씩을 묻는데 시동생이 들어와 우릴 내보낸다.

걱정 마시고 우선 식사들…….


그렇게 성급해진 마음으로 저녁을 해치우는 동안 귀는 거실로 쏠린다. 물소리 그릇들 소리 사이로 남정네들 이야기가 심상찮게 건너온다. 시동생이 서둘러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일어서는 모양새를 보니 일단 응급실로 가야한다고 결정하나보다. 하필 제삿날 숙모님이 이러셔서 좀 뭣하지만 별 수 있나, 뭐 그런 논리인가 보다. 그리고 산 사람이 우선인 것은 맞다. 숙모님 입장으로는 시아버님 기일에 무슨 동티인가. 어쨌거나 산 며느리가 우선이다. 시동생이 숙모님을 모시고 응급실 행이다. 이곳 의대 출신이라 병원이야 훤하겠지만, 노인 모시고 혼자서는 힘들 것이니 부부동반이다.


크게 도움이 안 되기는 동서가 나보다 더하다. 설거지는 늘 내 차례다. 막내동서가 서열 잘 안 지키는 데 대해서는 숙모님이 이상하게 너그러우시다. 여전히 부엌에서 물소리 그릇소리로 실제인가 이명인가 혼동하고 있을 때 전화소리가 크게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라 더 크게 들리는가. 시숙이 전화 받는 음성만 들어도 일이 예상보다 안 좋은 것 같았다.


거 병원 상황이 썩 안 좋다네. 엠알아이도 해야 할 거라요. 원장 네는 오늘 못 올라가려나 보오.

그건 잘 되었네요. 한 밤중에 차 몰고 가느니.

당신도 참. 시동생 걱정하길 이녁 애들 걱정 같소.

거야 누구라도 밤운전은 좀.


자시에 시작한다는 제사지만, 어머님 살아계실 때 벌써 일찍 차리기 시작한 내력이다. 숭늉이 올라간 지도 한참이고 자정이 되기 전에 벌써 철상이다. 사실 시동생이 의사로서 의심하는 대로 심각한 그 증세의 초기라면 큰일이다. 요조숙녀의 경우에 치매 가능성이 더 많다던 설이 맞나? 그런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함부로 내던져지는 그릇들만 불쌍타. 수저 젓가락이며 국자 등 쇠붙이들을 따로 걷어 내다말고, 컵이나 잔들은 왼쪽으로, 오른 쪽은 사기그릇이라는 규칙도 오늘따라 우왕좌왕이다.


저 여보, 그런대로 일단 퇴원하실 것 같다는 군요. 그러니까…….

다시 시숙의 전갈에 형님은 시동생 내외까지 재울 잠자리 준비에 정신이 없고, 나는 한없는 그릇과 씨름한다. 손아래 동서는 이 대단원이 끝날 즈음에나 숙모님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나머지는 나중에 형님에게 들은 대로다. 밤이 늦었다고 형님이 자꾸 밀어내는 바람에 병원 간 사람들을 채 기다리지 않고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밤으로 일단 퇴원은 하셨단다. 입원실이 마땅찮고, 또 응급상황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분명 뇌파에 뭔가는 있더란다. 그래서 숙모님은 김 원장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서 요양병원에 가시게 되는 거란다. 형님은 마리오네트마냥 김 원장이 김 원장 친구에게 가라는 대로, 김 원장 친구가 또 어디로 가라는 대로 여차 여차 날을 받아서 숙모님을 모시고 가면 되는 거란다.


*


숙모님이 나흘 밤을 요양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그곳을 찾을 시간이 절대로 없었다. 금요일엔 잠시 시간이 났지만 숙모님 핸드폰 구입을 내가 맡아서 그 일로 시간이 빠듯했다. 토요일이 되어서야 면회시간 맞춰 찾아간 나에게 환자의 첫마디는 완강하시다.


이 바보들, 더러운 것들과 여기서 못 지내.

그렇게 까진 예상을 못했던 터라 말문이 막힌다.

자네들 귀찮게 안할 것이니 나 여기서 나가게 해줘. 내나 같이 말하다가 ‘당신 누구요’ 그러는 바보가 없나, 밥 먹다 토하고, 기저귀에…….


우선 나는 핸드폰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시동생과 통화하시라고 핸드폰을 건넨다. 1번 하나만 누르시면 시숙, 2번은…….

그러는 순간 내 핸드폰이 울리더니 시동생이다. 여기 숙모님, 마침 김 원장이네요.


전화를 바꿔드리고 나니 머리가 어지럽다. 목소리를 금세 바꿔서 저리 나긋나긋 통화하는 숙모님은 멀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쩌면 이것도 내 의무일까. 시동생이기 전에 의사인데, 의사에겐 그러니까 실상을 말해주어야 한다. 숙모님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첫째, 너무도 깔끔하시다. 둘째, 우리들 모두 생활에 균형이 무너진다. 요 며칠 사이 형님은 숙모님이 평소에 드시던 약 갖다드리랴, 다음날은 성당의 월보 갖다드리랴 정신없었을 것이다. 왜 한꺼번에 부탁을 하지 않았는지 우리는 어렴풋이 안다. 그것이 숙모님의 방식이다. 이태 전에도 어지럽고 몸이 가라앉는다고 요양병원에 한 스무날 계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날마다 무슨 핑계로 사람들 오게 하시고, 병실 내에서 공주다 각시다 하는 별명을 들어가며 사뿐 걸음으로 병원생활을 즐기셨다. 누군가 해온 음식을 다음 찾아온 누군가에게 자랑하시며 나누어 드시면서. 그러니까 장기입원으로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풀죽어있는 다른 할머니들을 더 풀죽이면서 숙모님은 기세가 살아나셨다.


세상의 기운은 온이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에겐 모자라다. 기운을 돈이나 권력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에겐 모자라다. 욕심 중에 기운 욕심이 제일 큰 욕심 같기도 하다. 호주에선가 인류의 수명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수명에도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고 하더니. 하지만 퇴원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비겁하게도 의무를 접는다. 아예 둘째네 의견은 없는 편이 낫다. 애들 아버지가 일 년이면 파견근무 나간 날이 더 길기 때문이다. 또 집안 장손과 의사의 결정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몇 달이 흐른 지금 이 유난한 더위 속에서 숙모님은 어떻게 사시는가. 심기증이라고 하는, 쉬운 말로 건강염려증이라는 병 때문만으로 저리 되신 양반. 병이 아니기에 약도 없는, 아프지 않기 때문에 낫지도 않는 병, 마음의 병. 거식증에 가깝게 몸을 말려가며 어린양이 조금 과했던 숙모님. 십여 년 전과 비교하면 20 킬로그램은 족히 줄었을 몸무게가 더 줄었을까 무섭다.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진짜 의사들에게 ‘걸려서’ 환자복을 입고 지내노라면, 옷맵시도 음식 솜씨도 다 무슨 소용인가. 그 ‘더러운’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되면 숙모님의 어린양은 과녁을 빗맞힌 셈이다.


다 저녁에 전화다.

낼 숙모님 모시고 나와서 계곡에나 잠깐 가볼까 하는데 자네 시간이…….

예, 그러죠. 아직 방학이니까요. 수박이나 미리…….

준비는 되었고. 쇼는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녀.

수더분하기만 한 형님이 전화기를 놓으며 흘리는 말에 흠칫 놀란다.


광주문학 2010겨울호, 186-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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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