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이2020. 3. 20. 11:04

아이들은 - 이제 아이들이 아닌데 나는 여전히 그리 쓴다 - 어머니 아버지의 결혼이 50년 지속되었음을 감탄하는 마음인가 보다. 반세기를 낡은 손에 낡은 반지 대신 새 의미로 반지를 목걸이를 마련해 준다. 참 늙은 손들이다. 얼굴은 더하다. 외출은 아마 공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기차를 타고 혼자서 반지를 가져온 우빈도 언니 못 따라온 성빈도 대견하고 예쁘고,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글로 축하메시지를 쓰는 아이들도 대견하고 예쁘다. 결혼에 의미를 두는 것이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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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20. 3. 20. 10:47

내가 만일, 그것은 안치환이 다 말해버렸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 그보다 더 멋지게 ‘내가 만일’을 노래할 수 있을까. 한번은 그 목소리를 음미하기 위해서 눈을 감고 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안치환이 동료가수의 30주년 콘서트에 왔을 때, 그를 가까이에서 보고는 조금은 놀랐다. 핼쑥해진 것은 건강 때문이었을까, 스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노래는 더욱 가슴으로 들어왔다.

시가, 노래가 없었다면 세상이 얼마나 더 삭막했을까. 하나마나 한 소리를 지금 내가 하고 있다. 내가 만일 ‘내가 만일’이라고 노래하련다면, 내 시는 어디쯤에서 시작해야 될까. 내가 만일 남자로, 내가 만일 일본인으로, 혹은 술탄의 나라에서……, 그렇게 엉뚱한 상상을 하기에는 내 상상력은 날개가 부실하다. 현실감각도 없으면서 환상의 능력은 더더욱 꽝이다. 해서 기껏 ‘내가 만일 고분고분한 학생이었다면……’으로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들으면 특별한 문제아거나 혹여 천재적 발상으로 눈에 띄는 청소년이었구나, 그쯤을 상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답은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물론 어떤 아이가 처음부터 고집스럽게 자라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긴긴 간헐적 결석에도 별 문제 없는 학교생활을 하던 나에게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약간의 불운이 시작되었다. 어떤 특정 이유로 교사들의 불편한 관심을 받던 차에, 당시 서슬이 퍼렇던 대통령의 행사에 화동으로 뽑혀 나갔던 사건, 정확하게 말하자면 행사장에서의 졸도사건으로 또 한 번 눈에 띈 일이 화근이었다. 그 이후의 학생 인생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불편한 것이 되어버린 탓이다.

관심은 짐이었다.

넌 수채화보다는 유화가 맞겠다! - 예.

지하 미술실에서 세계명화집을 베끼는, 요새 같으면 성경 필사와 조금 비슷한 도제식 그림 수업이 시작되었다. 위트릴로의〈코탱의 골목〉이나 〈클리냥쿠르의 교회〉를 펼쳐 놓고 하늘빛을 모사한다. - 아, 나는 아니구나. 그러면 이상한 고집이 발동해서 정말 아무렇게나 그렸다. 농업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어서 우리 반 아이들이 학교의 토끼장 관리를 해야 했을 때에는 기꺼이 토끼장 관리에 손을 들고 끼었다. 토끼를 풀숲에 놓아버리고 종일 찾노라면 미술실을 피하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피아노는 계속해라, 손가락이 참 길구나! - 예.

강당의 그랜드피아노에서 고등학생 김oo 선배가 치는 소리는 내 소리랑은 급만 다른 것이 아니라 질이 달랐다. 하늘땅만큼 달랐다. 그러면 고집스레 정말 아무렇게나 쳤다. 참, 그 선배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이던가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돌아와서는 서울의 어느 대학 음대 교수가 되었다. 피아노학회장으로도 활동하더라.

체육시간엔 그냥 쉬어라! - 예.

할 일 없이 양호실이나 도서실을 어슬렁거리면서 심심하면 책들을 읽었다. 그러기를 몇 년, 시와 소설들에서는 읽을 책도 없었다. 『순수이성비판』이라고? 옳지, 이런 어려운 책은 읽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려 좋겠다. 어림없는 소리! 한글과 한자병기라서 읽을 수는 있었다.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한 페이지도 더 이상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희한한 책이었다.

내가 만일 - 내가 만일 독서도 다른 것들처럼 괜한 고집으로 던져 버렸더라면! 책이란 읽을 것이 못되네, 하고서 책들을 외면해버렸었더라면! 확신하건대 나는 더 건강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또 다른 산뜻한 무엇인가가 나를 기다려 줬을 것이고, 나는 나비처럼 가볍게 삶을 살아내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의 생각의 흔적들을 읽어내는 지난한 바보짓 보다는 더 환한 일들에 묻혀서.

왜 그랬을까. 그때 나는 등을 돌리지 않았다. 아, 책 읽는 것도 할 짓이 아냐! 그러고 돌아섰을 것 같은데, 그랬어야 했는데, 그 참엔 와락 화가 났다. 사람이 쓴 책을 사람이 읽지 못하다니! 까짓것, 이게 독일어가 원문이란 말이지, 독일어를 배워서 독일어로 읽자, 뭐!

그 길로 독일어는 수단이자 목적이 되었다. 그 간단한 이유로 독일어를, 독일어만을 공부했다. 고1때부터 학원에 가면 독일어문법을 수강했다. 독일어문법은 학원 통틀어 단 한 사람의 선생님이 강의했고, 상급과 하급 두 강의 뿐이었다. 계속 들었다. 책도 단 한 종류뿐이었다. 나중에 심심해지면 단편소설 읽는 반에도 등록했다. 물론 독일어 단편이다. 참 옛날이었다. 그런 교실에는 대학생들이 주로 왔다. 독일에 유학 가기 전에 독일어를 공부한다는 음대생 등이 왔고, 무슨 고시 준비를 한다는 어른 같은 학생들도 왔다. 두세 편을 반복해서 들었다.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일고의 여지없이 독문과에 진학했다. 우스운 일은 그 『순수이성비판』을 독일어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에 읽고 싶은, 읽어야할 소설들이 많았다. 나는 철학책보다는 소설책이 더 좋았다. 소설들은 해마나 달마나 날마다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 의심도 없이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가서는 허무해졌다. 정말로 허무했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남의 글로 쓴 소설들을 읽고 그 것을 해석하고 소개하는 일 - 그렇게 평생을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억울했다. 그때서야 억울했다.

내가 만일 - 여기에서 또 한 번 ‘내가 만일’이 나올 차례다. 내가 만일 - 내가 만일 억울함을 좀 더 빨리 느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내 서툰 글을 더 빨리 시작했지 않을까. 어중간하게 시작한 새 일로, 엉성한 글쓰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자긍심을 지니지 못한 채 그냥 늙은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너는 소설가야! 그렇게 말하는 대신, 여름 이부자리며 모시 등지게 준비에 푸새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시골할머니가 되어 있다.

사는 일은 하인도 한다! 프랑스 어느 시인이 한 말이다. 충격적인 발언인데, 그 이름을 잊다니! 고고한 침묵 속의 알프레드 드 비니(Alfred de Vigny)였을까. 아무튼 하인을 두고 인간적으로 폄하한 발언일 리는 없다. 사는 일은 누구나 한다, 라고 읽어야 하리라. 누구나 하는 ‘그냥 살기’ 그것을 하지 않겠다던 그 시인은 귀족 신분도 헛일, 가난 속의 상아탑에서 초라하게 죽어갔다던 것 같다. 어쩌면 하인 보다 못하게. 그러나 나는 그의 발언을 늘 기억한다. 그러면서도 어중간하게 살아간다. 고슬고슬 먹고 고슬고슬 자는 일이 제일 소중한, 단세포적인 인생관으로 늙어가는 나는 이제는 ‘내가 만일’이라는 상상도 꿈도 작동하지 않을 만큼 외길로 좁아져버린 인생을 살고 있다. 하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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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0. 「내가 만일」,『그때 그 방울은 어디로 갔을까』, 이대동창문인회, 한아름, 101~105쪽.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20. 3. 20. 10:44

산불이다. 유명 시인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4월은 유난히 산불을 불러와 태고의 숲들을 불사른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뉴스를 바라보고 있으면 사이사이 미담이 터져 나온다. 소방관이야 직업적 성실성과 의무감이 투철한 것으로 설명된다지만, 시민들의 희생을 무릅쓴 적극적인 도움을 어떻게 설명할까. 희생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철로에 뛰어든 사람을 구하고 대신 스러져간 극단적인 이타적 행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처럼 수많은 재난 속에서의 미담들을 대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선의와 희생정신을 칭송한다.

하지만 나는 살짝 날이 넘었을까. 애국애족이란 단어를 들으면 늘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려서야 물론 유관순언니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통째로 떨리고 했었지만, 자라면서는 이타적 행위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기적 유전자의 덩어리인 인간이, 크게 보아서 동물이, 그 이기적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철저하게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개체임이 분명하다. 그런 내가 눈곱만치라도 이타적 사고와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교육, 즉 사회화 과정의 세뇌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느새 한껏 넓어져 있다. 나와 몸과 피를 나눈 가족이 나이며, 내 친구가 내 이웃이, 나아가서 내가 속한 집단이 내가 되어 있다. 나 혼자서만 잘 살아도 불편하고, 그래서 이웃이, 크게는 겨레가 잘 살아야 편하고 행복감이 더해진다. 무의식적 불편함 때문에 이웃을 외면할 수 없는 이 집단의식이 각각의 개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뭇 이타적으로 보일 뿐이다.

내가 좀생인가 아닌가는 나의 경계가 결정한다. 내 유전자의 확실한 보존만을 위한, 나의 이익만을 의식하는 나는 평범 그 자체이다. 그런 개체로서의 나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인간, 그들이 우량종이다. 넓게 넘을수록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 경계이다. 내가 죽어 우리를 구하는 데 기여할 때, ‘우리’가 어디까지냐 그것이 문제이다. 나를 희생하더라도 내 가족의 이익에 집중하면 이타적인가, 혹시 가족이기주의는 아닌가. 나의 애향심은 다른 지역에 대한 경계심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동포애는 타민족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지는 않은가. 나의 인류애는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에 대한 우월감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물며 동물들도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서 다툼과 협력의 필요성을 안다고 한다. 식물들마저 협력과 다툼의 계기를 알고서 행동한다. 인간도 다름 아니다. 애국애족의 거룩한 행위도 나를 버림으로써 (나는 없더라도) 우리가 흥성함을 기대하고 믿는, 더 큰 이기심의 발로에서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그 본성에서 이기적 존재이니까. 물론 그렇더라도 나를 버리고 우리를 택하는 정신이 월등하게 우월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자발적이건, 세뇌되어서건. 결론적으로 이타적 존재에게 박수를 보내며, 좁은 나의 경계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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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0. 「나의 경계」,『더불어 봄꽃울 볼 수 있다면』, 한국여성문한인회, 도서출판 소소리, 188~192쪽.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