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2010. 12. 31. 23:00

출판물 목록   1975~2010                                      
...................................... 이렇게 뭔가를 쓰면서 살아왔네!  
                                       사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 쓰기 위해 읽는 시간을 살아왔네!  
                                       헛살았네!  
   

  

I. 논문

- 석사학위논문:

   R. Musil에 있어서 Ulrich의 “가능성” 문제, 이화여자대학교, 1975, 43쪽.

- 박사학위논문: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 구현된 시대의식, 이화여자대학교, 1986, 167쪽.

 

- 하인리히 뵐의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에 있어서의 순간과 현실에 대한 의미분석,『사대논문집』,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2, 제 8집, 31-51쪽.

- 파울 첼란의 「죽음의 푸가」에 있어서 대위법적 구성의 기능과 효과. 『사대논문집』,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3, 제 9집 41-58쪽.

- Heinrich Böll의 『Gruppenbild mit Dame』: 성취거부의 생활원칙. 『사대논문』,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84, 제 10집, 53-74쪽.

- Peter Weiss의 『Die Verfolgung und Ermordung Jean Paul Marats  dargestellt durch die Schauspielgruppe des Hospizes zu Charenton unter Anleitung des Herrn de Sade』 연구: 시민사회의의 억압하에서 예술의 표현자유를 위한 실험 I.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4, 제 33집, 121-148쪽.

- 동 II.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4, 제 34집, 129-146쪽.

- Heinrich Böll의 『Das Brot der frühen Jahre』에 있어서 “Aussteigen”의 의미.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86, 제 36집, 123-149쪽.

- 페터 슈나이더의 『렌츠』연구 - 개념과 인지의 불일치, 『정천 강희영교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삼영사 1989, 279-313쪽.

- 독일의 전후 상황에서 하인리히 뵐의 작품에 등장하는 부적응의 인물들의 기능,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0, 제 45집, 161-186쪽.

- 기구화된 사회 속에서 원시기독교정신의 회복: 하인리히 뵐의 풍자물 「무르케 박사의 침수집」,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2, 제 49집, 462-485쪽.

- 하인리히 뵐의「흔적없는 사람들」의 사제의 침묵: “소수에 대한 이해”,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4, 제 52집, 197-230쪽.

- 하인리히 뵐의 유토피아의 가능성,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6, 제 60집 (37권 2호), 247-267쪽.

- 하인리히 뵐의 「검은 양들」과 47동인의 정신,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7, 제 64집 (38권 3호), 230-250쪽.

- 하인리히 뵐의 작가 정신: 예술가-시민간의 정체성문제,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1999, 제 71집 (40권 3호), 288-321쪽.

- 에.테.아. 호프만의「모래귀신」의 서술자, 『텍스트언어학』, 한국텍스트언어학회, 2000, 제8집, 103-134쪽.

- "Was ist der Mensch ohne Trauer?" Heinrich Boells Stimme klingt weltweit.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1, 제1집, 21-40쪽.

- 인도주의와 미학의 긴장: 하인리히 뵐의 풍자물에서 본 서술전략, 『독일문학』,서울: 한국독어독문학회 2002, 제 84집 (43권 4호), 214-234쪽.

- 행동으로서의 부적응 - 하인리히 뵐의 『강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이병애(편), 『독일문학의 장면들: 문학, 영화, 음악 속의 여성』, 문학동네, 2003, 361-386쪽.

- 창작과 사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 나타난 언론보도의 문제,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5, 제5집,  169-194쪽.

- 길항작용에서 정체성 추구로 - 하인리히 뵐의 『어느 광대의 견해』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 주는 남자』에서 세대 간의 문제, 『독일문학』, 한국독어독문학회, 2008, 제 108집 (49권 4호), 119-143쪽.

- 「하인리히 뵐과 쾰른」, 『하인리히뵐 Heinrich Boell』, 한국하인리히뵐학회, 2009, 제9집, 13-28쪽.


II. 논저

- 『하인리히 뵐 연구』, 한신문화사 1989, 290쪽.

- 『텍스트 언어학적 분석에 의한 에.테.아. 호프만의 「모래귀신」』, 한국문화사 1999,

                             454쪽. [공저: 브루노 로스바흐]

- 『도이칠란트 • 도이치문학』, 전남대학교출판부 2008, 1198쪽.

                                   * 2008 문화관광체육부 우수도서 선정

- 『창작과 사실』,  전남대학교출판부 2010, 509쪽.

III. 역서 

- 「가난한 시절의 빵」 (원작: 하인리히 뵐), 『언어의 세계』 제 4집, 청하 1985, 255-348쪽: 『닫힌 시절의 사랑』(도서출판 삼문, 1994)으로 재발행.

- 『강풍경을 마주한 여인들』 (원작: 하인리히 뵐), 삼성출판사, 1986, 289쪽.

- 『문둥병』 (원작: 하인리히 뵐), 전남대학교 출판부, 1986, 98쪽.

- 『장벽을 넘는 사람』 (원작: 페터 슈나이더), 도서출판 들불, 1991, 169쪽.

-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카프카의 편지 1900-1924』 (원작: 카프카), 솔출판사 2004,

                      1088쪽.   * 2004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선정


IV. 창작

단행본

- 2001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 도서출판 이유, 272쪽.

- 2004 연작소설집 『희미한 인(생)』, 그림 조윤기, 도서출판 이유, 256쪽.

- 2010 소설집 『반대말 ․ 비슷한말』, 전남대학교출판부, 324쪽.

문학잡지 게제

- 2002 중편 「태양은」, 『소설시대』 4호, 한국작가교수회, 240-282쪽.

                                     * 한국작가교수회 2002년 신인상 수상       

- 2003 단편 「부나비」, 『소설시대』 5호, 한국작가교수회, 65-90쪽.

- 2004 단편 「건들장마」, 『한국소설』 11월호(64호), 한국소설가협회, 150-172쪽.

- 2005 단편 「춤꾼」, 『소설시대』 9호, 한국작가교수회, 174-189쪽.

- 2006 단편 「행복한 수요일 아침」, 『소설시대』 10호, 한국작가교수회, 111-133쪽.

- 2006 단편 「오늘과 이별하다」, 『PEN문학』 가을호(80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185-206쪽.

- 2007 단편 「마리아 막달레나」, 『월간문학』 5월호(459호), 한국문인협회, 166-181쪽.

- 2007 단편 「조사」, 『소설시대』 12호, 한국작가교수회, 190-212쪽.

- 2007 단편 「콩나물」, 『문학저널』 11월호(51호), 문학저널사, 107-124쪽.

- 2008 단편 「네 번째의 죽음」, 『한국소설』 9월호(110호), 한국소설가협회, 230-252쪽.

- 2009 단편 「쪽지 붙였음」, 『PEN문학』 가을호(92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176-196쪽.

- 2010 단편 「정체성」, 『소설시대』 17호, 한국작가교수회, 80-102쪽.

- 2010 단편 「병든 고향」,『흐름 위에 멈춰 선 그늘』 , 한국여성문학인회 6.25 60주년 기념 특집, 246-248쪽.

- 2010 단편 「쇼」,『광주문학』 겨울호,


에세이 등

- 2002 칼럼  「전일시론」, 『전남일보』,

                          성장  5.27.

                          오~필승 코레아 - 신화와 현실 6.25.

                          노블리스 오블리제 7.22.

                          우리의 골목대장들 8.19.

                          한가위 유감-우리를 스산하게 하는 가을 9.16.

- 2002 에세이 「입시지각생의 운동화 끈」, 『우리 어디에 서있어도』, 이대동창문인회,
210-213쪽.

- 2003 에세이 「어머니가 되세요!」, 『FRIENDS 5월호』, 월간프렌즈, 2003.

- 2003 에세이 「천재와의 만남」, 『꿈꾸던 것들은 아직도 꿈인가』, 이대동창문인회, 

                    95-98쪽.

- 2004 에세이 「오프라인」, 『그대 안의 풍경』, 이대동창문인회, 257-260쪽.

- 2004 탐방 「서정인 선생님 서재 탐방기 - 영어로 글읽기와 한글로 글쓰기」,

                   『소설시대  7호』, 한국작가교수회, 9-20쪽.

- 2005 에세이 「내 딸의 어머니」, 『눈물향기의 어머니』, 이대동창문인회, 253-257쪽.

- 2005 에세이 「교집합과 합집합」, 『문학사상』, 11월호, 284-288쪽.

- 2006 에세이 「내적 자유」, 『만남』, 이대동창문인회, 268-272쪽.

- 2006 에세이 「움직이는 긴 그림자」, 『문학공간』, 9월호(202호), 19-21쪽.

- 2007 에세이 「정신의 귀족」, 『123명이 말한다 정연희 - 미운 오리새끼』, 개미출판사,

                       84-87쪽.

- 2007 에세이 「구멍난 옷」, 『내 청춘에게 보내는 편지』, 이대동창문인회, 211-215쪽.

- 2008 에세이 「눈이 있었던 것」, 『맛, 멋, 그리고 향기』, 232-235쪽.

- 2009 기행 「그림자 도시」, 『소설시대』, 15호, 186-209쪽.

- 2009 에세이 「평행선」, 『사랑은 아무나 한다』, 이대동창문인회, 181-184쪽.

- 2010 에세이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사랑에 세든 사람』, 이대동창문인회,

                       200-203쪽. - 2010 에세이 「도마뱀」, 『문학공간』 12월호(253호), 40-42쪽.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0. 12. 31. 16:46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남자는 첫사랑이지만 여자는 마지막 사랑이라고 - 그렇게 남자들이 말해놓고서 여자들의 망각의 묘기를 비웃곤 합니다. 망각은 양심을 접는 것과 같은 의미일 때가 많아서, 여자들은 양심이 덜한 족속으로 폄하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바닷물 한 움큼만큼,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라 해도 파도가 밀려오다 빠져 나가듯이 어느 때는 코앞에 다가와 눈을 떠도 감아도 그 자리에 있다가는, 또 언젠가는 슬며시 핏속으로 숨어드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내가 잊을 수 없는 것들은 당신에겐 아무렇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도 걸러내는 기억들은 제 나름일 테니 말입니다. 고운 차 거르는 체 마냥 촘촘하며 일정한 그물망이라 해도 우리의 기억을 통제하지는 못합니다.

누가 들으면 웃을까. 늘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이를테면 아무렇지도 않은 산자락 성긴 돌 틈으로 삐져나온 연초록 풀들 같은 하찮은 것들입니다. 또는 여름이 시작되고 2층 창밖으로 짙푸른 나뭇잎들이 무성해지는 이맘때면, 바로 이맘때 만났던 새 새끼들이 되살아납니다. 정확하게 큰 아이가 약혼식을 위해 잠시 집에 머물었다가 간 다음날이었습니다. 무심코 아이들 방 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발견한 것인데, 날렵한 동작으로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이상한 일이었죠. 어느 결에 둥지를 튼 놈들은 놀랍게도 알을 낳았던 것입니다. 아파트 나뭇가지에. 스무날? 한 달 정도? 유난히 맑은 여름날을 뒤 베란다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그놈들 사는 양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새보다는 큰 것이 그래도 참새 모양이라 참새목 되새과 혹은 멧새과 쯤에 드는 새이리라 추측했답니다. 그렇게 흔한 새이지만 아무도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뒤적여보았던 백과사전에서 일러준 대로라면 3~5개의 알을 낳는다더니만 정말 딱 4개의 알을 낳았더이다. 그 다음은 누군가 정성들여 관찰해서 TV에 올려주는 그런 과정들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그것을 덜 화려한 색깔로지만 프레임이 없는 실 공간으로 바라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침조석(!)으로 뒤 베란다 나가기를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는 재미라니, 방안 퉁소 서생으로 살던 터에 쏠쏠한 재미였습니다. 사람들은 앉은 자리 뭉개지도록 눌러 앉아있기만 하던 사람이 왼 종일 촐랑대던 일로 즐거워했고, 더러는 놀렸답니다. 하여 그 여름은 더위라거나 짜증 같은 아름답지 않은 단어는 우리 집에서 사라졌더랍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아름다울 수는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정말 상쾌하리만치 서늘한 날 아침 밥상. 밥상이라야 가볍게 풀 썰어놓고 빵 뜯어먹고 그랬을까요? 아님 그날따라 젓가락을 들었던 감촉이 살아납니다. 밖에서 자지러질 듯 하는 새 소리 사이로 알 수 없는 요란한 소리들이 날아와서 우리 모두는 기겁을 했습니다. 후다닥 튀어 일어나서 뒤 베란다로 내달은 나는 정말 기절할 것 같은 광경에 시간이 정지했다고 느꼈습니다. 저쪽 새둥지에서 두 나무 째를 건너온 바로 코앞이 전쟁터였던 것입니다. 그 네 마리 새끼들이 첫 비행을 하면서 그것이 곧 둥지를 떠나는 날인 줄 그때서야 눈치를 챘습니다. 누가 예전에 야생의 새를 키워보기나 했어야 말이지요. 그런데 한 마리씩 한 가지씩 날아오르려는 새끼 새들에게 저승사자가 나타난 것 때문에 어미아비 새들이 단말마의 울음을 울었던 것입니다. 주차된 차량들 사이를, 더러는 벌써 움직이는 차바퀴도 겁내지 않고 기식하던 주인 없는 고양이가 곧 영양식을 발견한 것이지요. 새끼들의 추락을 기다리는, 아니 소리로서 겁을 주어 추락을 유도하려는 고양이와 어미아비 새의 대결장이었습니다.

아아 안 된다, 아가 힘 내거라, 어서.

이 몹쓸 도둑고양이, 악마! 사라지지 않음 내가 쪼아 줄 테다.

네롱~ 하면서 달콤한 먹이를 향해 불을 뿜는 고양이도 질 기세는 아니었지요. 글로 쓰자니 여러 줄이지만 사건은 불과 몇 초였을까요? 어쩌자고 나는 젓가락을 든 채로 아파트 계단을 내달렸습니다. 아무 신이나 끌고 화단에 내려서선 고양이를 내쫒았지요. 평소라면 기분이나 나빠할 뿐 눈도 주지 않으려했던 그 고양이놈을. 상황이 너무도 아슬아슬했지만, 얕은 가지로 출렁이던 새끼와 뛰어 오르려던 고양이의 서커스가 원안대로 끝나고 상황이 종료되자, 난 그만 털썩 주저 않았지요. 흙에 앉아서 올려다보니까, 마지막 한 놈이 맨 윗가지를 정말로 날아오르더니 저만치 떨어진 큰 나뭇가지로 옮겨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한없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젓가락 한 짝만 들고 계단을 기어올라 들어온 나를 식구들은 더욱 놀려댔습니다. 내가 뛰어나간 뒤로는 내 소리까지 가세해서 정말 한판 굿이었다는군요. 새 소리 고양이 소리야 비록 생사의 투쟁이었다고 하지만 자연의 소리였겠죠. 그러면 내 목소리는? 그렇지 않아도 소프라노로 분류되는 목소리로 정말 무진 악을 다 썼더랍니다. 교양? 평소에 목소리 크다는 이야길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다 새침이었던 게지요. 급하니까 정신이 없더랍니다. 알 수 없는 나라 말로 새 새끼들에게 주문을 거는가, 했더랍니다.

그런데 이 새란 놈들은 진정 그들이 태어난 자리를 기억할까요? 그해 여름 어느 날엔 뜬금없이 앞 베란다의 가녀린 창살에 한 놈이 턱 앉아 있었다는 일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그 놈이 그놈일 거라고 수선을 떨며 좋아했답니다. 그런데 저만치 담장 쪽에 앉은 놈들도 꼭 우리 집 쪽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기색이었단 말입니다. 더구나 이듬해에도 때로는 해를 걸러서도 심심치 않게 그 예쁘지도 않은 소리로 찌이찌이 울어대는 새들이 우리 집 주변을 날아와 앉곤 한답니다. 창살 안쪽의 꽃잎을 한참 동안이나 쪼고 있을 때도 있답니다. 그러니 그놈들을 잊을 새가 있겠냐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억을 새록새록 불러내주지 않더라도 물론 잊지 못할 일들이 늘 있지요. “언어란 꿀이 빠져버린 벌집처럼 거죽뿐인 줄을 알면서도 그 안에 어느 한 순간의 제 마음이라도 담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렵니다.” (오자 포함, 어느 작품의 인용입니다) 같은 쪽지 글을, 아니면 지구 속 마그마로 녹아들고 싶다는 마성적인 언어를. 아니,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요 진실은 언어 이상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던 순간들을. 순간들은 부서지기도 녹기도 하지만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순간들을 잠시 버릴 뿐입니다.

......................................

「온 바닷물을 다 켜야 맛인가요」, 『사랑에 세든 사람』, 이대동창문인회, 2010, 200-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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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독문학2010. 12. 30. 23:30

내가 정녕 독문학 교수이기를 멈췄는가.
나는 여전히 도이치의 느낌과 글의 마력에 빠져있다.
10권의 전집 중 단 4쪽 분량의 이 단편을 보라. 글쓰는 이,
소위 작가라는 정체성을 지닌 모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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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인리히 뵐 1954 -



   내 친구는 묘한 직업을 가졌다. 그는 자신을 작가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가 정서법의 몇 잠재적 지식을 소유하고, 문장론의 몇 규칙들을 막연하게 마스터하고, 이제 타이프 한장 한장을 문체의 연습들로 점유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런 한 뭉치를 만들자마자 그것을 그는 원고라고 부른다.

그는 수년 간 이 문화의 황야에서 예술의 마른 풀만을 겨우 뜯어먹고 살았다가 마침내 출판사를 찾아냈다. 그의 책이 출판된 뒤에, 나는 최고로 낙담해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 기가 꺾일 만했다. 출판사의 정산에 따르면, 반년 내에 350권이 비평을 부탁하려고 무값으로 배포되었고, 몇 우호적인 비평도 나왔고, 13권의 책이 실제 팔렸단다. 그로써 내 친구에게는 5,46마르크의 대변이 발생했단다. 그런데 그는 800마르크를 선지급 받았기 때문에, 같은 비율로 셈하자면 이 선지급금은 대략 150년이 되어야 상쇄될 수 있는 것이란다.

이제 문제는 한 인간의 수명이라는 것이 평균적으로 그만 못하다는 점이다. 그게 대략 몇몇 거의 전설적이다 싶은 터키인들을 제외하고 말하자면 한 70을 본다. 더러 우리 잃어버린 세대의 기념비적인 신고를 생각할 때 위안적으로 한 십년을 더 칠 수도 있다.

나는 친구에게 두 번째 책을 쓰라고 충고했다. 그 책이 출판되자 전문가 권에서는 기쁘게 환대를 받았다. 비평용 샘플은 400권으로 급등했고, 반년이 지났을 때 판매고는 29권. 나는 친구에게 담배 두 개비를 말아주고는 어깨를 도닥거리며 제안했다, 이제 세 번째 책을 쓰라고. 그런데 친구는 그 말을 아이러니로 이해하고는 모욕을 당한 듯이 물러서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그는 “투명작가 비트”라고 문학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에 관한 평전 한 권이 나오자 평전이 그의 작품들 전체보다 더 많이 팔렸다.

근 반년동안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는 다시 고독한 천재성의 영역에서 내닫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내게 와서는 후회막급하다고, 그래 아무튼 세 번째 책을 쓰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에게 이번에는 헥토그래프 등사본으로 30에서 50부쯤을 출판사에 넘겨주라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선지급금을 받았다. 그의 둘째 아이가 태중에 있었고, 그는 말하자면 몇몇 식자공과 인쇄업자, 포장이나 발송담당 여직원들의 실직에 협조하는 죄를 짓기는 싫었노라는 주장을 폈다. (그의 사회적인 감각은 항상 정말 강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에 관한 근 100편 정도의 호의적인 비평이 나왔고, 두 권을 합친 판매부수는 90권을 넘었다. 출판사는 스스로  “독자 구하기”라 명명한 작전에 돌입했다. 곧 각 서점마다 쪽지가 발송되었는데, 내용인즉, 비트-구매자를 확보해놓고 곧 출판사에 알려달라고, 그러면 작가와 독자 간의 소통을 개시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작전의 결과는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시작해서 4주 만에 저 위쪽 북부에서 한 남성이 나타나 내 친구의 책에 대해서 묻고 그것을 사고 돈을 지불했음에 틀림없었다. 서점 주인은 곧 전보를 보내왔다. “비트-구매자 출현 - 다음 지침은?” 그러는 사이에 서점주인은 구매자를 대화로 붙잡아 놓고 커피를 따라주고 담뱃갑을 권하고 그랬다. 이 모든 행동들이 구매자를 놀라게 했지만, 그는 조용히 그러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러자 번개처럼 빨리 출판사의 답변이 왔다. “구매자 이쪽으로 보낼 것 - 전 비용 이쪽 부담.” 다행하게도 구매자는 교사였고 마침 방학이어서 남독으로의 공짜여행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는 첫날은 쾰른까지 갔고 그곳에서 하루저녁 좋은 호텔에서 묵고, 이튿날 아름다운 라인 강변을 따라서 남쪽으로 향하며 여행을 즐겼다.

이틀째 오후 4시경에 그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역에서 출판사까지 택시로 이동했고, 출판사에까지 가서는 출판업자의 매력적인 부인과 더불어 좀 흥분된 시간을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면서 보냈다. 그러고 나서 새로 여행경비를 받아 챙겨서 다시 역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2등 열차로 내 친구가 뮤즈에 봉사하고 있는 그 소도시로 갔다. 그곳엔 그 사이 둘 째 아이가 태어난 지 한참이 되었고, 친구 아내는 영화관엘 가고 없었다. - 작가들의 아내들에게라면 어떤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불허해서는 아니 되는 휴식 아닌가. 구매자는 그러니까 내 친구를 마침 그가 아이들에게 저녁우유를 데워서 그들을 달래려고 막 노래를 부르고 있던 참에 만나게 되었다. 그 노래란 게 하찮은 어휘들로 구성되었을 밖에. 아무튼 이 말이 최근 도이치문학에 언짢은 빛을 던졌으니…….

내 친구는 자신의 독자에게 감동어린 인사를 하고서 대뜸 그의 손에다 커피갈이를 밀어주고는 재빨리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이행했다. 곧 커피 물이 끓었고, 이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다 수줍은 사람들이어서 서로 묵묵히 감탄하면서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 동안을. 그러다가 마침내 내 친구가 외침소리를 토해냈다.

“선생은 천재이시오 - 제대로 자라난 천재이시란 말이외다!”

“아, 아닙니다,” 손님은 유하게 말했다, “제 생각으로는 작가선생이 그렇소.”

“틀린 말씀,”  내 친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침내 커피를 따랐다, “천재의 주요 특징은 그 희귀성에 있지요, 그리고 선생이야말로 저보다 더 희귀한 인간계층에 속합니다.”

방문객은 겸손한 이의를 달려고 했지만 혹독한 방식으로 훈시를 받고 말았다. “거 말 마쇼.” 내 친구는 말했다. “책을 쓰는 일은 그게 만들어지는 일에 비해 그저 반쯤 나쁜 일이오, 출판사를 발견하기란 유희이외다. 그러나 책을 산다는 것 - 그것을 저는 천재적 행위라 하는 것입니다. - 그나저나 우유와 설탕을 치시지요.”

그 남자는 우유와 설탕을 치더니만, 수줍어하면서 외투 오른 쪽 안주머니에서 그가 저 위 북쪽 지방에서 샀었던 책을 내밀며 헌정 사인을 부탁했다.

“단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내 친구는 단호하게 말했다, “단 한 가지, 선생이 제 원고에다 헌정 사인을 해주는 조건이오!”

그는 서가에서 바인더를 꺼내더니 거기서 빼곡히 쓴 원고뭉치를 꺼내더니 손님의 커피 잔 옆에 놓고는 말했다. “부디 저에게 기쁨을 주시오!”

손님은 혼란스러워 만년필을 덜덜 떨면서 원고뭉치 마지막 장 맨 아래 여백에다 머뭇머뭇 썼다. “진정한 존경심을 담아서 - 귄터 슐레겔!”

그러나 내 친구가 잉크를 말리기 위해서 그 원고를 난로위에서 흔들고 있던 한 30초쯤이 지나서 손님은 이번에는 외투 왼쪽 안주머니에서 타이프가 되어있는 종이 다발을 꺼내더니 내 친구에게 청했다, 그가 최근 도이치문학에 대한 기여라고 간주한 이 결과물을 출판사에 감정 의뢰해달라고.

내 친구는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자기는 실망감에서 몇 분간 말을 잃고 있었노라고. 이 남자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 그를 깊은 비통에 빠지게 했었노라고.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시 몇 분간은 묵묵히 건네다 보고 앉아있었다. 마침내 내 친구가 나직이 말했다. “제발 간청하건대 그만 두십시오 - 선생의 독창성을 잃는 일이외다!”

손님은 고집스레 침묵하고 있더니 자기의 원고를 쓸어 모았다.

“선생께선 여행경비를 받으실 수 없겠습니다,” 내 친구는 말했다, “생크림케이크가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요. 출판자의 부인은 찡그린 낯빛을 할 것이구먼요. 선생을 위해서 간청 드리는 것이니, 제발 그만 두시지요!”

그러나 손님은 찡그린 채 고개를 갸웃 둥했고, 내 친구는 한 인간을 구한다는 뜨거운 노력으로 출판사의 정산서를 가져오는 일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슐레겔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여기에서 내 친구는 이야기를 중단하고자 했지만, 나는 그가 방문객과 그만 드잡이를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어쨌거나 여기에서 휴지부가 발생했고, 그 동안 내 친구는 불끈 쥔 주먹을 생각 깊게 내려다보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저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들은 것은 슐레겔이 짤막한 인사와 함께 떠났다는 것이고, 그의 원고는 놓아두고 갔었더란다.

그러는 사이 슐레겔의 장편 『슬프도다, 페넬로페여!』가 귀향소설로서 전문가 권에서 상당한 주목을 이끌어냈다. 슐레겔은 교사직을 떠났고, 그러니까 제대로 된 직업을 떠났는데, 말하자면 다른 직에 종사하기 위해서다. 나로서는 여전히 직업도 아니라고 간주하는 그런 직에 종사한답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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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구하기 Die Suche nach dem Leser」:

하인리히 뵐 (1954), 함부르크의 ≪일요신문 Sonntagsblatt≫에 게재된 단편.

여기에서는 Böll, Heinrich: Romane und Erzählungen 2. Hrsg. von Bernd Balzer, Köln 1977 본을 번역했다. 

 

국제PEN 광주 2010년, 214-218쪽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0. 12. 21. 22:09

•• 믿거나 말거나, 참 뜻밖의 소식 -
   
무슨 문학상을 받게 되는 것이란다. 2010년도 OOO문학상.

12월 21일, 아침 일찍 운전석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나로서는 이른 시각에.
의례적인 검사이기는 하지만 병원행이었다. 병원행이라 일찍 나선 길이었다.
두번 연속 울린 전화가 미안한 맘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OOO 회장으로 있는 K교수님의 전언이었다.

아무튼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에 대해서.
아무튼 하이에나 짓 멈추기 위해 첫소설 내느라 미쳤던 것이 꼭 10년 전 그 겨울날이다.••
차가운 땅 속의 아버지, 병원의 어머니! 고집덩이 딸이 이젠 소설장이 맞나 봅니다.
상이든 질책이든 소설가로서 취급됨을 전제로 하니 기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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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0. 12. 9. 23:56

 

 



 

거울 앞에서 입 꼬리에 힘을 주어 웃음기를 흘려 본다. 몸과 맘이 수고로울 일을 앞에 두면, 집을 나서기 전에 꼭 거울을 본다. 아직 쓸쓸한 봄, 할아버님의 기제사가 마침 주말에 걸리다보니 여느 때보다는 맘 편하게 집을 나선다. 형님네 대문은 빼곡히 열려있고, 부엌 쪽에서는 벌써 생선 익어가는 냄새가 먼저 내달아와 코를 맞는다.


잘 계셨어요, 숙모님. 일찍 나선다는 것이 늘 늦고 마네요, 형님.

어서 손 씻고 와 앉소. 자네 형님만 뭔 죈가.

형님이 대꾸할 틈도 안 주시고 가닥을 잡으실 양이니, 오늘도 숙모님이 주인공이시다.


동서, 빨리 왔구먼. 오늘은 시간 넉넉하겠어.

고구마 색이 곱네요.

채반에 노랗게 익어있는 얇은 고구마 조각들이 내 손을 기다린다. 뒤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 젖혀놓아도 수건 사이로 머리카락 올올이 기름 냄새로 범벅이 될 하루가 시작된다.


어디 쓰겄는가, 밀가루를 되직하게 하소, 뽀얗게 색 내려며는. 고구만가 호박인가 너무 노랗잖은가.

소생이 없어 늘 외로우신 숙모님은 사람들이 모이는 이런 날이면 더 외로움을 타신다. 다행히 음식 솜씨며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단정한 맵시로 젊은 여자들을 누르신다. 형님의 입장에서는 어머님이 안계시고 보니 숙모님께 상의도 하고 도움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은 둘이서 조금 엇박자 느낌이 든다. 숙모님은 이말 저말을 섞어 하시고 형님은 그저 시늉만 대꾸를 한다.

식혜 솥 열어볼 때 되었네. 밥풀 서너 개 떴는가.

예.

이 꼬막은 씻은 건가 아닌가. 뻘이 그냥 붙어있네.

예.

그런데 참 늦네. 몇 시야, 지금. 여섯시가 되가는데 왜들 안 와?

이번엔 내가 놀란다. 아니 웬 여섯시 말씀을. 여기 아직 육전도 안 끝났습니다. 고추전쯤 마치고 점심 상 보잖아요. 아직 점심도 안 드시고 여섯시라뇨!

박실이는 또 안 오겄지? 숙모님은 엉뚱한 말씀으로 둘러대며 자리를 뜨신다.


형님, 오늘따라 왜 저러셔요? 이 제사 때면 애기씬 시어르신 일이 겹쳐서 언제나 시골에 가잖아요. 설마 다 아시면서.

아마 기다리는 사람 생각에 시계를 헛보신 게지.


그렇게 점심상을 차리고 치운다. 다시 번철이 열을 낸다. 벌써 두부 조각들이 기름에 지글거리고 있다. 점심 후로는 숙모님이 속이 불편하시다고 소파에 누워 계시니 우리만의 부엌에 능률이 더 나는 느낌이다. 실제로 거들어주는 손이 빠졌는데도.


갑작스레 집안에 활기가 차며 숙모님이 몸으로도 부산해지신다. 드디어 서울 사는 시동생 내외가 들어선 까닭이다. 오매, 우리 원장님 오느라 애썼네. 차는 안 막혔나? 답은 거의 듣지 않으시고 바쁘시다. 술참 때가 겨웠으니 시간이 애매하지만 일단 밥상이다. 오래 서울 물 먹다보면 냄새가 너무 진하다고 할 진짜 굴비하며, 홍어, 토속적 음식이 든 접시들로 손이 바쁘다. 부엌은 이제부터는 완전히 조용할 터다. 원장조카 턱 앞에서 음식 먹이는 맛에 푹 빠지신 동안. 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진설 시간이 될 때까지다. 해마다 기제사 때 되풀이 되는 훈계가 시작되면, 할 말은 아니지만 숙모님 입엔 작은 게거품이 돋는다. 게거품은 싸울 때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안다. 신바람이 나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완벽한 진설을 위해서, 심지어 상에 올리는 순서까지 정하시는데 어쩌랴. 그것이 이 근년에는 순서가 조금씩 섞이는데, 그걸 종잡을 수가 없다. 좀 있으면 핀잔의 시선이 전자빔처럼 따갑게 공간을 가를 것이다.


아니, 그런데 큰 변형이 생긴다. 오늘따라 진설 시간이 되어서도 원장조카 시선만 붙잡고 계시는 것이 이상 일이다. 제기들이 죄 닦이어 줄을 서 있어도 소용이 없다. 고개는 아예 비뚜름히 고정되어 있다. ‘한 시 오 분 전’이란 별명의 여학교 때 선생님 생각이 난다. 다른 점이라면 그 선생님은 ‘한 시 오 분’과 ‘오 분 전’을 가끔 바꾸셨던 것이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조카 쪽으로 굳은 고개. 주름만 빼면 표정이랑은 영락없이 연인을 바라보는 드라마 주인공의 모습이다. 숙모님이 오 분 전이면 조카는 계속 오 분을 유지해야 서로를 보게 되는 것이라 그것이 썩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뉴스 시간이라도 되면 좋겠다 싶다. 


형님이 그냥 알아서 하세요. 조금 아까부터 부엌으로 섞인 막내동서가 조바심을 낸다.

숙모니임, 저희들이 대충 올려 보아요? 기다리다 못해 형님이 묻는다.

대충이 무에야. 자네들 할아버님 들으실라. 시간이 이르잖아.


서너 시간 서울사람 곁에 앉아계시더니만 신기하게도 서울 말씨에 가까운 억양이 나오신다. 심지어 모음들이 바뀐다. ‘이거 묵어보소’ 라고 할 계제면 ‘요거 먹어 봐’가 된다. 입술을 동그랗게 하면 나이 불구하고 조금 더 귀엽다. ‘응’ 할 자리에는 ‘잉’이라 하시며 웃음기를 흘린다. 원순모음과 평순모음이 둘 다 귀여운데 사용되니 이상하다. 이 말은 순전히 내 직업병에서 온다. 국어선생 기질이 어디 가랴.


신기하셔. 형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들으시려고요.

하긴. 귀도 참 밝으시니 조심하자.

형님 그런데 요즈음 좀 힘드신 일 있어요?

뭐 그냥. 사는 것이 쇼 같아서.

아무 일 없어 보이는 안정감을 특징으로 하는 형님의 입에서 조금 놀라운 단어가 튀어 나온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왠지 조금 뜨끔하다.

아니 내 말은 누구나. 조금은 억지로 참기도 하고.

그럼 속내 다 내놓고서야 어떻게 매끄럽나요? 기름칠을 좀 하는 거죠. 입가에 다시 한 번 힘을 준다. 여기는 시댁이다. 불편해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 사이.

그 정도가 아니라 내 말은. 숙모님 어제 오셨잖은가. 여전히 사뿐 걸음이시긴 한데, 뭔가 조금. 뭐라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암튼 근년 들어 느닷없이 가리는 음식들 땜에 옆에서 손을 못 쓰니 참.

거야, 티비가 범인이죠 뭐. 소가 농약 묻은 풀을 뜯어 먹는다니 우유 못 마셔, 허리둘레를 줄여야, 탄수화물을 줄여야 장수한다는 뉴스에 떡도 뭣도 못 먹고. 막내는 범인을 따로 정한다.

하긴, 내가 괜한 걱정이네. 총하시니까 뉴스 따라 사시지.


찜솥이다 냄비들이다 번철 가에서 눈을 들어 잠시 숨을 쉰다는 게 어째 말들이 샌다. 숙모님 쪽에선 반응이 없다. 막무가내로 당신 조카만 올려다보고 계신다. 살짝 미소 짓다가 조금 찡그리다가. 몇 미터 거리에서, 식당과 거실 사이 커튼 사이로 건너다보니 표정일랑은 그대로 영화다. 디카든 셀카든 등장해야할 판이다.


평소에도 저러세요?

동서는 새삼. 당신 감정에 솔직하신 거지. 지난번엔 며칠 화장실 출입 못한다고 자네한테 전화하셨다며?

거야 내 차로 움직이실까 해서……. 

그래도 오밤중에는 심하시지.

겁을 내셨더라고요, 응급실 가야하는가 싶어서. 가진 않았고요.

겁이란 것이 무서움일까 욕심일까? 암튼 오늘은 우리끼리 그냥 해보세.


사실 이상한 일이다. 우리가 조율시이로 시작해 첫째 줄을 다 놓아도 여전히 꼼작 않고 조카만 쳐다보시다니. 시동생의 입장에선 숨이 막힐 지경이라. 손을 끌로 내려와서 진설을 도와달라고 하자 숙모님은 갑자기 깨어나신 듯하다.


감이 곶감이제 뭣들 하는가?

요즘 세상엔 시절이 좋아 감과 곶감이 늘 함께 있다 보니 문제다. 평상시에 숙모는 감이 있어도 곶감자리 다음에 반드시 배를 올려 ‘법에 맞게’ 하라던 분이다. 그런데 오늘은 곶감 다음이 나란히 감이라신다.

어머나, 생선 배들이 왜 이쪽인가? 거 산적이 빠졌구먼, 마저 좀 하지. 어머나, 꼬막 색은 왜 이래, 새꼬막을 샀던가?

산적은 닭찜이 있다고 말라시고, 꼬막 껍질은 덜 깨끗하다고 몇 번을 물리셨잖아요.

어머나, 오늘 내가 그랬어? 내가 요새 이러네. 통 기억이 읎어서는.

거야 저희들도 그럽니다. 숙모님 건강 염려는 마세요. 아까 보니 손도 따뜻하시고, 혈색도 아주 좋으시고요.


혈색 - 그것은 하나의 신호였다. 시동생의 입에서 의사의 전문용어로 혈색이란 말이 튀어 나오자 그것이 울타리를 넘는 신호였나 보다.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키시다 말고 숙모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눈을 이상스레 치뜨시는 듯, 새침해져 말없이 작은 방으로 들어가신다. 우리는 또 어린양이 시작되셨나 보다 하는 생각에 별 신경을 안 쓴다. 무엇보다 나머지 진설을 마쳐야 하고, 우선이라도 부엌 정리를 하고 또 저녁 밥상 차릴 준비를 해야 하니까. 우리 집은 제사 중에 진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다 진설해놓고 진찬 때는 메만 올린다. 그리고 초헌 절차가 끝나면 그대로 음식을 드시리라는 여유 시간에 자손들도 저녁을 먹는다.


진지 드시지요.

식사들 하세요.

거실에 큰상 펴고 남정네들이, 부엌 식탁에는 여자들이 이런저런 의자들 보태서 둘러 끼어 앉는다. 숙모님은 어른대접으로 거실 상에 자리한다. 늘 시동생 옆자리다. 아니면 반찬 얹어주시느라 다른 사람들이 수저질하기가 불편할 정도가 되니까. 요거 맛있어, 요거도. 그런데 안 나오신다.


자네가 좀.

형님의 말 따라 숙모님 모시러 들어가 보니 그만 말이 안 나온다. 당신의 빨간 색 바바리를 내려놓고 - 원래 놀라운 옷 치례를 하신다. - 웬 잔잔한 꽃무늬치마에 발을 꿰려는 몸짓으로 버둥거리고 계시니. 형님이 오늘 무색으로 갈아입느라고 벗어 둔 모양인데.


형님, 아니 원장님 좀 와보세요.

급히 물러난 나는 우선 시동생을 불렀고, 밥상에 막 앉아있던 사람들이 방으로 내달으려 하자 시숙이 말렸다. 뭐 별일이시겠나. 다들 저녁을 먹어야 마저 제사를 지내지. 원장도 식사나 하고 들어가 보소.


숙모님은 완전히 정신을 놓으신 것 같다.

이그, 이그 내 농이 어디 간 거야? 난데없이 애들 옷장을 보며 탓을 하신다. 앉은걸음으로 농을 미는 시늉을 하니 겁이 날밖에.

숙모님 농이라뇨. 여기 애들 오면 쓰는 방이잖아요. 숙모님 댁 아니고, 저희 집.

자네네? 내가 그럼 왜 왔어?

할아버님 기일에 오셨잖아요.

그랬어? 그런데 왜 안와? 우리 김 원장 왜 안와?

다시 또 시작이시다. 거의 성화다. 그렇게 몇 번씩을 묻는데 시동생이 들어와 우릴 내보낸다.

걱정 마시고 우선 식사들…….


그렇게 성급해진 마음으로 저녁을 해치우는 동안 귀는 거실로 쏠린다. 물소리 그릇들 소리 사이로 남정네들 이야기가 심상찮게 건너온다. 시동생이 서둘러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고 일어서는 모양새를 보니 일단 응급실로 가야한다고 결정하나보다. 하필 제삿날 숙모님이 이러셔서 좀 뭣하지만 별 수 있나, 뭐 그런 논리인가 보다. 그리고 산 사람이 우선인 것은 맞다. 숙모님 입장으로는 시아버님 기일에 무슨 동티인가. 어쨌거나 산 며느리가 우선이다. 시동생이 숙모님을 모시고 응급실 행이다. 이곳 의대 출신이라 병원이야 훤하겠지만, 노인 모시고 혼자서는 힘들 것이니 부부동반이다.


크게 도움이 안 되기는 동서가 나보다 더하다. 설거지는 늘 내 차례다. 막내동서가 서열 잘 안 지키는 데 대해서는 숙모님이 이상하게 너그러우시다. 여전히 부엌에서 물소리 그릇소리로 실제인가 이명인가 혼동하고 있을 때 전화소리가 크게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라 더 크게 들리는가. 시숙이 전화 받는 음성만 들어도 일이 예상보다 안 좋은 것 같았다.


거 병원 상황이 썩 안 좋다네. 엠알아이도 해야 할 거라요. 원장 네는 오늘 못 올라가려나 보오.

그건 잘 되었네요. 한 밤중에 차 몰고 가느니.

당신도 참. 시동생 걱정하길 이녁 애들 걱정 같소.

거야 누구라도 밤운전은 좀.


자시에 시작한다는 제사지만, 어머님 살아계실 때 벌써 일찍 차리기 시작한 내력이다. 숭늉이 올라간 지도 한참이고 자정이 되기 전에 벌써 철상이다. 사실 시동생이 의사로서 의심하는 대로 심각한 그 증세의 초기라면 큰일이다. 요조숙녀의 경우에 치매 가능성이 더 많다던 설이 맞나? 그런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함부로 내던져지는 그릇들만 불쌍타. 수저 젓가락이며 국자 등 쇠붙이들을 따로 걷어 내다말고, 컵이나 잔들은 왼쪽으로, 오른 쪽은 사기그릇이라는 규칙도 오늘따라 우왕좌왕이다.


저 여보, 그런대로 일단 퇴원하실 것 같다는 군요. 그러니까…….

다시 시숙의 전갈에 형님은 시동생 내외까지 재울 잠자리 준비에 정신이 없고, 나는 한없는 그릇과 씨름한다. 손아래 동서는 이 대단원이 끝날 즈음에나 숙모님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나머지는 나중에 형님에게 들은 대로다. 밤이 늦었다고 형님이 자꾸 밀어내는 바람에 병원 간 사람들을 채 기다리지 않고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밤으로 일단 퇴원은 하셨단다. 입원실이 마땅찮고, 또 응급상황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분명 뇌파에 뭔가는 있더란다. 그래서 숙모님은 김 원장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서 요양병원에 가시게 되는 거란다. 형님은 마리오네트마냥 김 원장이 김 원장 친구에게 가라는 대로, 김 원장 친구가 또 어디로 가라는 대로 여차 여차 날을 받아서 숙모님을 모시고 가면 되는 거란다.


*


숙모님이 나흘 밤을 요양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그곳을 찾을 시간이 절대로 없었다. 금요일엔 잠시 시간이 났지만 숙모님 핸드폰 구입을 내가 맡아서 그 일로 시간이 빠듯했다. 토요일이 되어서야 면회시간 맞춰 찾아간 나에게 환자의 첫마디는 완강하시다.


이 바보들, 더러운 것들과 여기서 못 지내.

그렇게 까진 예상을 못했던 터라 말문이 막힌다.

자네들 귀찮게 안할 것이니 나 여기서 나가게 해줘. 내나 같이 말하다가 ‘당신 누구요’ 그러는 바보가 없나, 밥 먹다 토하고, 기저귀에…….


우선 나는 핸드폰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시동생과 통화하시라고 핸드폰을 건넨다. 1번 하나만 누르시면 시숙, 2번은…….

그러는 순간 내 핸드폰이 울리더니 시동생이다. 여기 숙모님, 마침 김 원장이네요.


전화를 바꿔드리고 나니 머리가 어지럽다. 목소리를 금세 바꿔서 저리 나긋나긋 통화하는 숙모님은 멀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쩌면 이것도 내 의무일까. 시동생이기 전에 의사인데, 의사에겐 그러니까 실상을 말해주어야 한다. 숙모님은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첫째, 너무도 깔끔하시다. 둘째, 우리들 모두 생활에 균형이 무너진다. 요 며칠 사이 형님은 숙모님이 평소에 드시던 약 갖다드리랴, 다음날은 성당의 월보 갖다드리랴 정신없었을 것이다. 왜 한꺼번에 부탁을 하지 않았는지 우리는 어렴풋이 안다. 그것이 숙모님의 방식이다. 이태 전에도 어지럽고 몸이 가라앉는다고 요양병원에 한 스무날 계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날마다 무슨 핑계로 사람들 오게 하시고, 병실 내에서 공주다 각시다 하는 별명을 들어가며 사뿐 걸음으로 병원생활을 즐기셨다. 누군가 해온 음식을 다음 찾아온 누군가에게 자랑하시며 나누어 드시면서. 그러니까 장기입원으로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풀죽어있는 다른 할머니들을 더 풀죽이면서 숙모님은 기세가 살아나셨다.


세상의 기운은 온이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에겐 모자라다. 기운을 돈이나 권력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많이 가지면 누군가에겐 모자라다. 욕심 중에 기운 욕심이 제일 큰 욕심 같기도 하다. 호주에선가 인류의 수명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수명에도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고 하더니. 하지만 퇴원 문제와 관련하여 나는 비겁하게도 의무를 접는다. 아예 둘째네 의견은 없는 편이 낫다. 애들 아버지가 일 년이면 파견근무 나간 날이 더 길기 때문이다. 또 집안 장손과 의사의 결정이 중요하니까.


그리고 몇 달이 흐른 지금 이 유난한 더위 속에서 숙모님은 어떻게 사시는가. 심기증이라고 하는, 쉬운 말로 건강염려증이라는 병 때문만으로 저리 되신 양반. 병이 아니기에 약도 없는, 아프지 않기 때문에 낫지도 않는 병, 마음의 병. 거식증에 가깝게 몸을 말려가며 어린양이 조금 과했던 숙모님. 십여 년 전과 비교하면 20 킬로그램은 족히 줄었을 몸무게가 더 줄었을까 무섭다.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진짜 의사들에게 ‘걸려서’ 환자복을 입고 지내노라면, 옷맵시도 음식 솜씨도 다 무슨 소용인가. 그 ‘더러운’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되면 숙모님의 어린양은 과녁을 빗맞힌 셈이다.


다 저녁에 전화다.

낼 숙모님 모시고 나와서 계곡에나 잠깐 가볼까 하는데 자네 시간이…….

예, 그러죠. 아직 방학이니까요. 수박이나 미리…….

준비는 되었고. 쇼는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녀.

수더분하기만 한 형님이 전화기를 놓으며 흘리는 말에 흠칫 놀란다.


광주문학 2010겨울호, 186-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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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10. 12. 6. 20:02

미국에서 태어난 손녀 수빈의 초청장은 "사랑하는 할머니 발이 미구와 세요!"

첨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 그래, 빨리 미국에 가마!

유성음과 무성음의 대립이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 말을 모국어로 쓰는 아이라 그럴 밖에.

다른 때 영어를 섞어 쓰면 꽤 유식한 소리도 쓴다.  아래 서명은 수빈/Chelsea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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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0. 12. 1. 23:30

도마뱀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입니다.

작가가, 소설가가 작품을 쓰는 일은 일종의 도마뱀 꼬리자르기라고, 한 덜떨어진 소설가가 내게 말했다.

뭡니까?

절체절명의 순간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 도마뱀은 그 피투성이 기록으로 작품을 남기는 것입니다. 몸통을 살려낸 도마뱀은 꼬리만을 물고 허탈해하는 독사에 대해 승리감을 가질 것이고. 꼬리를 자른 선택에 관해서 의미부여를 하며.

도마뱀에게라면 위기 탈출이 절대적 선택이겠지만.

겠지만? 그 이상입니다. 천적을 만났을 때 꼬리를 자르고 도망칠 수 있는 건 분명 비장의 무기이고, 예컨대 살모사가 아직 꿈틀거리는 도마뱀의 꼬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틈을 타 도마뱀은 목숨을 건질 수 있으면 되었지요. 이제 거기에 그 경험을 잘 다듬어서.

다듬어요? 죽다가 살아온 경험을 쓰면 문학작품이라는 말씀이오?

일단 꼬리 잘린 도마뱀은 특별한 경험을 했고, 그런 처절한 경험이 없는 다른 도마뱀들에 비해. 더구나 잘라진 꼬리는 나중에 다시 돋아난다고 하니까요.

그건 좀 다른 문젭니다, 제 생각엔.

다른?

도마뱀을 노리는 적이 주변에 많을수록 꼬리를 재빨리 자르고 도망치는 개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 되었지 뭐 또. 게다가 그것을 가공하여.

그래도 꼬리를 자르는 건 도마뱀에게 큰 부담입니다. 꼬리가 없는 동안에는, 그러니까 그 험한 경험을 작품으로 가공할 수 있다 해도 일단 잡아먹힐 위험이 커집니다. 새 꼬리를 만드는 동안에는 몸통 자체도 자라지 못합니다. 동작도 굼떠지고, 심지어 동료들 사이에서 지위도 떨어집니다. 어차피 소설가의 지위야 꼬리 잘린 도마뱀 수준이지만요. 더구나 이제 그 새 꼬리라는 놈은 더 이상 자를 수가 없답니다.

뭐요? 도마뱀 박사가 따로 없으시군요.

게다가 새로 돋아나는 꼬리는 척추가 아닌 연골조직으로 되어 있어서 다시는 자르지 못한답니다. 소설 한 권 떴다가도 평생 타작만 내놓는 소설가와 다름없지요. 도마뱀으로서도 평생 꼬리 잘라먹은 놈이라는 꼬리표를 함께 달고 사는 것이겠지요. 새 꼬리는 원래 것보다 색깔도 안 예쁘답니다.

예쁘고 안 예쁘고가 중요 하겠습니까? 소설작품은 취소하고라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하니까 저는 꼬리 자르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그렇겠지요. 꼬리를 조금만 물려도 그게 독사라면 금방 독이 퍼져 죽을 것이니 잘라야겠지요, 싹둑.

아니 작가님, 뭐 싹둑 잘라낼 원망 같은 것이라도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저 따라서 해보는 소립니다. 무엇인가를 끊어내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아닌지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그냥 그 독으로 죽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일부를, 이를테면 마음, 심장, 가슴 뭐 그렇게 불리는 어떤 것을 잘라내고도 살 수 있을지, 그것을 가공하여 작품화하는 강심장을 가질 수 있을지, 그건 꽤 어려운 선택입니다. 아니 선택이기 이전에 운명입니다.

그냥 죽거나 그것을 쓰거나?

예, 실존과 방법의 갈림길입니다. 삶의 내용인가 글쓰기인가 하는 갈림길.

도마뱀과 갈림길이라. 우린 오늘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군요.

그와 내가 구동성으로 말했다. 그와 나는 늘 하나이면서 둘인, 둘이면서 하나인 도마뱀이다. 왜 쓰지도 안 쓰지도 못하는지 언제나 답을 모른다. (문학공간 2010.12월호 통권 253호 4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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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