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03. 4. 19. 22:20
 

어머니가 되세요!


 

<Friends> 2003년 5월호


 

고생 많았소, 아이들 이렇게 자라도록 보살펴 기르고.

그리고 저 ……, 나 또한 불편 없이 살아온 세월이었소.


큰 아이가 결혼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의 어색한 감사 표시다. 함께 부모이면서 감사라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과묵한 남편의 그만한 말은 큰 의미이리라.


‘아이들 이렇게 자라도록’ 살아온 세월이 믿기지 않았다. 이 많은 날들, 사랑이 지속되고 결혼해 있으리라 상상도 하지 못한 결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한 청사진의 미래를 꿈꾸며 결혼한다. 그러나 더러는 크게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서도 결혼을 한다. 절실한 현재 때문일지……. 사람은 생각보다 근시안적이다.


그녀는 후자에 속했다. 아직 통금이 있던 시절, 통금 때문에 헤어지는 연인들은 차라리 결혼을 했다. 상대적 빈곤감이 덜한 시절이라 결혼에 조건은 그리 없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얼떨결에 아기 엄마가 되는 일이다.


그녀는 엄청난 사태 앞에 세워졌다. 만삭에도 걱정은 설마였고 여전히 책방이나 영화관을 쏘다니며 맹렬한 기세를 부렸었건만, 새로 태어난 아기는 경이 그 자체이자 어쩌면 공포였다. 손가락을 차마 만져보기도 두려운 존재, 온전할까 깨어질까 두렵기만한 존재였다. 아기는 어미보다 훨씬 용감했다. 어미와 눈을 맞추기도 전에 가슴을 파고들며 양식을 찾았고, 눈을 맞추게 된 이래로는 모든 것을 어미에게 의탁하고 물어왔다. 20대 어머니가 되는 여자들은 미숙하기 그지없다. 학교를 오래 다닐수록 상대적으로 생을 몰라서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불완전한 인간에게 더 불안한 작은 생명이 의심 없이 다가올 때,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을 움츠렸다. 긴 겨울밤의 몽상도,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잊혀져가고, 봄가을 들판을 헤맬, 혹은 여름 바다의 일렁이는 황혼을 그리겠다는 치기도 사라졌다. ‘네가 찾을 때’ 그 자리에 있자,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내버려두지는 않겠다는 다짐으로.


아기는 목욕시킬 때면 앙앙 울다가도 곧 젖을 물고 새근새근 잠든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만으로도 어미를 행복하게 했다. 쏘옥 삐져나오는 앞니만으로도, 뒤집는 엉덩이만으로도 기쁨을 주었다. 그녀는 아기를 따라서 말을 배웠다, 아기처럼 좋은 말들만 골라서 배웠다. 세상에는 좋은 말들만 있었다. 아장아장 아기 따라 걸음을 배웠다, 위험한 행보가 아닌 가장 안전한 길을 익혔다. 아기가 둘이 되자 둘을 똑같이 사랑하기를 배웠다. 두 아기를 보면서 서로 사랑하기를 배웠다. 세상에서 여럿을 똑같이 사랑하기를 배웠다. 아이들은 날로 새롭게 모든 사물을 향해 호기심에 넘쳤고, 그녀 또한 생에 호기심을 더해갔다. 아이들의 눈을 따라 세상을 보면서 순수한 긍정을 배우고, 아이들의 필요로 살아있는 의미를 느꼈다.


의미가 생기자 그녀는 새삼 생기가 돌고 진정한 의욕이 생겼다. 세상엔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이 많았다. 그것을 왜 몰랐을까, 알 수 없는 불안과 허망과 좌절로 애태우던 날들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토론을 하면 할수록 아득한 안개 속 미궁을 헤맸던 시절이 정말 있었던가?


그녀는 아이들 따라서 사람이 해서 즐겁고 좋을 일들을 골라서 하는 법을 배웠다. 온통 세상을 다시 배웠다. 마치 처음 배우듯이 조심조심 배워 나갔다. 이번엔 훨씬 신중하고 안전한 선택들이었다. 그 모든 일은 아이들이 그녀를 인도하는 그대로였다. 아이들이 고개 들어 쳐다보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어머니가 되고 싶었다. 아니 최소한의 능력으로나마 그저 어머니이고자 했다.


고생이라구요? 아니지요. 어미가 아이들을 키운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어미를 살게 했지요. 아이들이 있어 진정 웃음을, 행복을 알았고, 아이들이 있어 건강한 나날을 꿈꾸어 왔지요. 아이들 아니었음, 무엇이 생에 이만큼 나를 매어놓을 가치가 있었겠어요?


그렇게 대답하려던 그녀는 남편에게 아무 말 없이 미소만 보낸다. 남편은 어쩌다 술이 거나해진 날이면 차갑고 참을성 없어 보인다는 그녀가 살아온 방식을 슬쩍 건드려보곤 했었다. 예상보다 나았다는 의미인지, 그러나 믿기지 않는다는 투를 감추지 않았다. 오늘 같은 표현을 하리라고는 조금 의외다.


정체성? 그녀는 순간 생각한다. 정체성은 불변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가 그 본질은 변치 않더라도, 누구이어야 하는가를 포함시키면 조금 변화가 생긴다. 어머니인 사람은 ‘어머니’가 큰 비중이 된다. ‘비중’이라고 하는 말에서 나이 따라 점점 무거워진다는 여자들의 희화적 상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었다. 남편은 감사 표시에 웃음기를 흘리는 그녀가 의아스럽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모처럼의 덕담이 쑥스러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말한다, 그냥 다른 말인데, 웃으세요. 아내 칭찬일랑 마시구려, 여자들은 나이 들어가면서 너무 무거워진다는군요. 늘어나는 체중에다, 머리는 석두요, 얼굴은 철판이 아줌마 상이랍디다. 그러게 올려주려 해도 무거워서 절로 가라앉는답니다.


사람 참. 그렇게 자조적이라면 여자들이 상당히 지적 유머에 능하구려.


되려 적나라한 말이지요 뭐. 아무튼 우리 애들은 당신을 더 닮아 참을성도 어미보다 낫고, 내차기도 덜하니 다행 아닌가요.


그렇게 대꾸하면서 오늘따라 어색한 표정의 남편 곁을 슬쩍 일어난다. 그녀는 속으로 되뇐다, 다음 생에서는 그럼 당신도 어머니가 되어 보세요!                                        (2003. 4. 19.)

Posted by 서용좌
낙서2002. 12. 5. 23:30

bestmail 2002, 아니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기쁨!
                        


Subject: 예비 03이 인사드립니다.
     Date: Thu, 05 Dec 2002 21:33:31 +0900 (KST)
     From:
                 

  안녕 하십니까.
  저는 수시모집에 합격한 예비 03학번이된 000 입니다.
  예전부터 교수님 홈피에 자주 들러서 독문학도의 꿈을 키워 왔는데,
  이제 저도 당당히 교수님 밑에서 공부할 수 있다니 몹시 기쁩니다.

  이렇게 저같은 새내기가 교수님께 메일을 보낸다는 것이 조금은
  건방지게 비쳐질것이 두렵지만서도 하루라도 빨리 독문학을 배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실은 제가 독문학을 하겠다고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선언했을 때
  다들 힘들고 외로운길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이런말을 꺼내서 송구스럽습니다만 인문학, 특히 독문학은 위기의 과목이고
  사양과목이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수님 홈피에
  자주 들러 자칫 흔들릴 뻔한 저의 결심을 굳혀나갔습니다. 결국 저는
  수시 면접에 참가를 했고 이렇게 당당히 독문학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수능 성적상 흔히 서울에 괜찮다는 학교의 학과를 지원하고픈 욕망이
  끓었던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교수님 홈피에 독문학강의란을 읽어보면서 느꼈던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런말이 떠오르더군요. '위기는 곧 좋은 기회가 될수 있다'
  분명 한국 사회는 미국, 일본 문화의 영향이 주류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 주류의 문화는 결국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 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통해서 유럽문화, 특히 독일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많이 소개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펼쳐질 유럽과의 육로 직교역시대에 앞장서고 싶습니다.
  다시말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제가 두서가 없는 말은 너무 많이 늘어 놓은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p.s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겨울방학기간 교수님께서 권장하고
        싶으신 독일문학 도서를 추천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또 제가 정말 부족하지만 허락해 주신다면 앞으로 교수님과 자주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하고 싶습니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이란 하나의 착오일 것이다 - 니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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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2. 11. 20. 22:21


입시지각생의 운동화 끈

                                                         『우리 어디에 서 있어도』2002 (이화에세이)          


해마다 겨울이 오고 수능이든 입학시험이든 결정적인 시험이 있는 날은 대개 날씨가 혹독한 것 같다. 실제로 그러한지 모두들 마음이 얼어붙어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기억들이다.


오전의 논술과 오후의 면접, 그만하면 교수에게나 입시생에게나 긴장된 하루가 틀림없다. 차가 밀렸다가는 큰 일이므로 학생들이 움직이기 아예 전에 서둘러야 마음놓고 학교에 이른다. 신체리듬에 따라 참새형과 올빼미형이 있다지만, 나는 새벽같이 출근할 날이면 아무리 마음을 풀어도 짜증을 이기지 못한다. 입실 시간이 지나고도 빈자리가 꽤 있었다. 입시가 여러번의 지원기회가 있어서, 첫 시간에 지각하는 학생은 예상대로 대개 결시로 이어질 것이다. 시험시작 종이 울리고, 우리는 서서히 원서대조에 들어갔다. 삐그덕 교실 문이 열리고, 놀라서 고개를 든 학생들 앞에 울상으로 지각생이 나타났다. 시계를 보니 10분 정도 지나 있었다. 규정대로 라면 입실이 거부될 상황이었다. 새벽부터의 짜증까지 겹치면 지각생이 불리하다. 중요한 결정을 앞에 두고, 상념은 불현듯 아득한 옛날로 돌아간다.

수십년 전 어느 이른 봄, 선배도 없는 외로운 대학시절은 신설독문과 신입생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자라서 처음 외지로 나간 지방도시 출신에게는 대도시의 낯설음까지 더했다. 낯설기야 어디 그 봄부터였었나? 입학시험을 치르던 꽁꽁 언 겨울, 백설공주가 숨어사는 산만큼이나 오르락내리락 미로를 거쳐가는 캠퍼스는 주눅들게 하기 알맞았다. 오늘날에 보아서는 그저 아기자기한 정도라 해도, 당시의 시골소녀의 눈에는 그랜드 캐년 다름없었다. 약간 비뚜름히 오른쪽으로 산을 오르다가 어디에선가 왼쪽으로 굽어 내려가다 보면 오른 쪽 아래로 펼쳐지는 거대한 건축물, 보기는 무맛이었고 우중충한 색조마저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데... 거기서도 어렵게 몇 고개를 올라 드디어 시험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김치 다름없었다. 종일 7과목을 필기과목으로 치르는 입시에 겁도 났고, 하루 종일은 그 자체로서 부담이었다. 어떻게든 숨을 돌릴 수 있는 점심시간은 축복이었다. 어머니는 시골어머니답게 따뜻한 맛있는 점심을 자꾸 더 뜨게 했고, 가물거리는 눈...


다시 시험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아침보다 더 무겁기만 했다. 시간은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잡았지만, 들어갈 때는 오르막이라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처음 오르막길에서 운동화 끈 한쪽이 풀렸다. 끈은 걸기적거리며 안팎으로 덜렁거렸다. 당연히 몸을 굽혀서 끈을 매어야 했겠지만, 미욱한 성정에 몸을 굽힐 시간이 없기도 했고, 몸을 굽혀서 버릴 1,2분과 끈이 풀려서 방해받을 1,2분 사이를 계산하는 머리는 실타래같이 얽히기만 했다. 누구도 실험을 해 보지 않은 두 가지 경우를 두고서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한다? 그것이 터무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생각은 그 둘 사이를 헤맸고, 걸기적거리는 발은 자동적으로 옮겨 떼고 있었다. 시험장 건물이 눈에 들어왔을 때는 흘끗 바라본 시계로 이미 시작 시간이 지나있었다. 이 길로 시험에 응시하지 못한다면 어머니의 소원으로 지원대학을 바꾼 분풀이로서 도중하차했다는 누명을 쓸 게 뻔했다. 이제는 지각을 해도 일단 고사장에 갈 것인가 아닌가의 투쟁이었다. 계단에 이르러 넘어진 것은 꼭 풀린 끈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르막만 나타나도 피를 품어내기에 지쳐버리는 심장이 진짜 범인이었을 것이다. 고사장 문 앞에 이르렀을 때에는 5분도 더 지난 상태... 아 이렇게 두 학교를 다 놓지는 구나. 층계를 올라온 가슴은 콩콩 뛰다 못해 겨울 두터운 옷 위까지 벌렁거리고 있었고, 시계는 째각거렸다. 이 벽 너머, 바로 벽에 밀착된 책상 하나에 응시학생이 없구나...


우연이었을까? 시커먼 문이 열리고 하얀 단정한 얼굴이 나타났다. “봐요, 학생, 여언가요?”


아니 다시 쓰자. 나는 문을 붙잡았다. 숨을 몰아쉬고, 시간이 흘렀다. 눈을 떴다. 문을 조금 열었다. 시커먼 문이 열리고 하얀 단정한 얼굴이 나타났다. “봐요, 학생, 여언가요?”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빈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와서 문이 안에서 열렸는지, 밖에서 열렸는지는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많은 세월 동안 그 순간을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버전으로 쓰이던 그 장면이 원본을 잊어버린 것이다. 분명한 것은 손수 그 빈 책상을 가리키시며, 나를 앉게 하신 교수님의 엉거주춤한 행동이었다. 덮혀있던 시험지를 뒤집어 글자를 올려놓으시기까지 했다. 까만 것은 글자고 흰 것은 종이구나... 나는 까막눈 비슷했다. 놀람의 눈물인지 감동의 눈물인지, 시험지는 뿌옇게 변해갔다. 그렇게 치른 5교시 과목은 공교롭게도 전공이었다, 독문과 학생들을 위한 <독일어>.


그렇게 해서 나는 지각생을 내치시지 않은 교수님 덕으로 이화식구가 되었다. 60년대 학부, 70년대 대학원, 80년대 박사과정을 이화에서 공부하면서, 그 시발점에는 지각생을 내치시지 않은 교수님이 계신 것을 상기하곤 했다. 오늘 이렇게 입시에 늦는 학생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 꼭 선생님을 본받으려는 생각에서는 아니겠지만, 지각생에겐 언제나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은 내가 교단에 선 이래 결석생을 결코 홀대하지 않는 숨은 이유 또한 선생님께서는 짐작도 못하실 비밀로 남아 있다.


지난 학기에는 모교의 학위논문 심사에 합류해서 감시회로까지 갖춘 현대식 교수실을 드나들며, 그 옛날 칸막이 교수실의 사랑 반만이라도 나의 제자들에게 돌려주고 있는지 새삼 코끝이 찡했다. 아슬아슬한 입학 후 여전히 지각 결석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믿어주시던 강희영교수님, 김영호교수님도 이화 역사에 많은 기여를 하시고 정년하신지 오래이다. 너무 오랜 동안 배워서 다 베껴먹은(?) 이병애교수님마저 이제 곧 교정을 떠나시게 된다니, 내년 이맘때의 모교가 얼마나 썰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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