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02. 6. 4. 22:36

[전일시론 2002년]              

조국과 모국어 

 

6월 한 달은 어느 때 보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세상이 들끓었다. 여느 해 같으면 분단조국을 뼈저리게 의식하게 되는 6.25도 축구의 열광 속에서 잊고 지냈다. “괴뢰군의 남침으로 인한” 6.25전쟁을 겪으며 자란 대한민국의 건전한 세대는 “거지가 득시글득시글 하는 남조선”에 대한 비방에 어처구니없어 한다. 실로 노숙자가 득시글득시글하는 장면도 뉴스에 나오는 사건처럼 의식되기에 우리의 일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은 건강식 걱정이요 다이어트라서, 배고픔을 걱정하던 시절은 아득한 옛날로 생각된다. 더 많이 생산해서 더 잘 분배하여 더 잘 살아보세... 하는 따위의 구호는 쉰 세대의 열정일 뿐, 신세대는 온통 지구촌의 IT에 집중되어 있다.


새것을 좋아하기는 신세대만이 아니다. 우리는 신사조에 민감한 민족이다. 이데올로기라도 새것일 수록 효과가 좋다. 6.25를 지나서 남쪽에 분류된 우리는 미국식 시장경제 아래에서 열렬한 민주주의자로 성장했다. 적어도 우수한 사람들은 그랬다. 모르긴 몰라도, 6.25를 지나서 우리가 북쪽에 분류되었더라면, 우리는 또 다른 보호세력 아래에서 열렬한 사회주의자로 성장했을 것이다. 적어도 우수한 사람들은 그랬을 것이다. 사회의 중심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신사조를 더나 좋아한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에서 후회를 배운 덕일까? 우리는 열심히 문호를 개방하여 모든 사조가 범람하고 모든 자유가 넘치는 조국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98년 경제위기 이래 많은 젊은이들이 이 좋은 조국에서 모국어로는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대학가는 영어와 컴퓨터가 최고의 가치이고, 실제로 졸업시기가 닥쳐오면 다른 능력은 갑자기 무용지물로 변한다. 다른 능력과 관련된 학업은 갑자기 찬밥신세가 되다 못해 원망의 대상이 된다. 우리 조국을 사수할 모국어조차 마찬가지이다. 모국어는 조국을 사수하지도 못하고, 조국 또한 모국어를 보호하지 못한지 오래이다. [이렇게 조국에 살면서 “모”국어를 강조하는 것도 바른 국어사용은 아님을 안다. 우리나라 말은 그냥 국어이니까.] 


“국어국문학과는 국어국문학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와 교육, 이를 통한 언어 기능 계발 및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과이다. 국어학과 국문학의 학문적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중략] 또한 이와 같은 전공 영역의 연구, 교육과 더불어 국민 일반의 모국어 사용 기능을 높이고, 정서 함양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창달에 기여하게 된다.” 올해로서 만 50세가 되는 한 국문학과 홈에서 학과를 소개하는 글에서 발췌해온 글이다. “국민 일반의 모국어 사용 기능을 높이고 정서함양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창달에 기여하리라”는 계획은 그러나 꿈처럼 아득해져간다. 국민 일반이 모국어에 별 관심이 없는 바에야. 이제는 조국을 모국을 고국을 떠나 살거나 서로 혼동해서 사용하고, 또 그런 것에 마음을 쓰면 좀생이 취급을 당하게 된다.


무엇이건 새것이 좋고, 새로운 사조는 그래서 우리 땅에서 항상 세력을 얻는다. 이차돈의 불교도, 정약용의 실학도 이어서 천주교도, 마침내 개신교도 세력을 얻었다. 신의 위력이기도 하겠지만 수용 자세가 우리처럼 좋은 민족도 드문 것이 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혁명도 크나 작으나 대개 성공한다, 새것이니까. 더불어서 영어도 컴퓨터도... 김치처럼 무슨 인이 박혀서 먹지 않으면 안되는 세대가 아직 남아는 있지만, 김치는 반찬도 아닌 세대가 얼마든지 자라나고 있다. 김치는커녕 밥도 그리워하지 않는다. 학교 캠퍼스에 통치마 한복이라도 입고 근무하면 무슨 날인가 물어오는 것이 요즈음이다. 우리가 우리 옷을 입는 것이 이상한 일이고 잘 해야 특별한 일이 되었다. 좋은 새것 때문에 너무 쉬이 버려버린 옛것들 중에는 꽤 좋은 것들도 있었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새 세대의 특성중 하나이다. 이렇게 몇십 성상을 지나고 보면 조국도 모국어도 잊힐 날이 올까?

(2002년 6월 4일?)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02. 5. 27. 22:39

[전일시론 2002년]               성장

 

오월이 무르익었다. 며칠이면 여름에 자리를 내준다. 나무들은 새 잎을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껏 자랐다. 이젠 그 그늘로 우리를 덮을 태세다. 


사람은 봄마다 새로 자라나는 나무만 같지 못하다. 연륜은 체험과 비례하지 않는다. 지식과는 더더욱 아니다. 더구나 다매체의 홍수 속에서 장님 코끼리 보기만큼도 세상을 알지 못하고 죽는다. 이 주눅든 말을 하필 성장의 대명사인 신록의 계절 끝자락에서 내뱉어야 하는지, 그것 또한 기이한 일이다. 생각해 보니 바로 자연의 놀라운 성장 때문에 우리의 성장을 생각하게 되는가 싶다.


한껏 자라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괴테의 『시와 진실』이라는 상당한 양의 글은 작가의 자서전쯤 되는데, 그중 한 단원에 “나무는 하늘만큼 자라지 않게 되어있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나무들이 제각기 제 키를 제 양을 자랑하면서 자라나지만, 하늘을 찔러 스스로 부러질만큼 자라는 나무는 정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수명 또한 그렇고 우리의 능력 또한 그렇다. 어느 새 우리는 나무의 키를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하늘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고층건물은 얼마나 높이 가능할까? 사람은 얼마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창세기의 바벨탑 교훈을 들어야 할까? 노아의 자손들이 다음 홍수를 피하기 위하여 하늘까지 닿는 돌탑을 쌓으므로, 여호와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이들의 통솔력을 중지시키시므로 이름을 바벨이라 했다(창11:1-9). 고대 바빌로니아 또는 그리스의 기록에 의해 추정되는 이 건축물의 높이는 210m 이상이라고 한다. 현대의 층 개념으로 환산해도 70층 정도는 된다. 그러니까 고대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룩했다는 니므롯이 시날평지에 성읍을 세우고 탑을 구축하려 했을 때, 성장은 그곳에서 멈춘 것이다. 성서적 해석으로는,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인 인간들이 경영하는 일을 금지하고자 했던 신의 의지로 풀이되겠지만, 자연 속에서는 더 쉬운 말로 ‘하늘까지 자라는 나무는 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수천년이 흐른 오늘도 지구촌 어디에도 바벨탑 보다 더 높은 건축물은 드물고, 또 위태롭기까지 하지 않은가. 자연은 스스로 성장을 통제한다. 사람들은 고층 하늘 속에 사는 대신, 나무의 키를 넘지 않게 만큼 땅에 붙어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회 또한 거대한 생명체이다. 경제학자들의 의미있는 주장, “성장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라는 명제도 영원불멸한 명제는 아닐 것이다. 사회의 건강성을 재는 척도가 성장률뿐이겠는가. 우리 사회의 건강함이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타격을 주지도 타격을 받지도 않는 자연스러운 상태라야 할 것이다. 우주같은 거창한 단어를 회피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다만 자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평형상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욕심 아닌 현 상태에서의 조화 같은 무엇. 이름하기 어려운, 찾기 어려운 어떤 평정상태를.


현대 사회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이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위(無爲) 예찬이라도 필요하리라. 무위는 자연법칙에 따라 행위하고 인위적인 작위를 하지 않음을 말한다. 목적 추구의 의식적 행위인 유위(有爲)를 인간의 후천적인 위선 혹은 미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무위에서야말로 완성이 있다’는 역설은 성장 일변도의 오늘날 우리 가치표준에 시사하는 바 크다 할 것이다. 푸르른 오월, 한껏 푸르되 자랄 수 있을 때까지만 자라는 나무들을 보자. 자랄만큼만 자란 다음 그 그늘로 한 여름 우리를 식히고 그 열매로 가을 겨울 우리를 살찌우는 나무들을. (2002년 5월 27일)

Posted by 서용좌
낙서2002. 5. 15. 14:18
설레는  (옛)

 

안녕하세요, 교수님.

1학기때 수업을 한 번 들어보았던 독문과 학생입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학생인지라
이름을 밝히기도 부끄럽네요.
과생활을 하지 않아 교수님들은 물론,
다른 학생들도 잘 알지 못하는 마당에
이름을 밝히고 안 밝히고의 차이도 없겠지만..
그래서 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익명을 고수하겠습니다.

이렇게 교수님 홈페이지까지 들어오게 된건,
전대 홈페이지에서 교수님이 '태양은'이라는 중편 소설로
등단하셨다는 소식을 읽어서였어요.

'등단'

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답니다.
교수님께서 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음은 물론,
관심에 있어서도 다른 독문과 교수님들과 또 다르다는 걸 조금은
느끼고 있었지만, 글쓰기를 하시는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터라
가까운 곳에 계시는 분이 소설가로서 등단했다는 소식은
참 반갑고도 기쁜 일이었어요.
특히 서용좌 교수님이셔서 더욱.....
얘기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지만
꼭..축하의 말을 드리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왔지요.

때가 늦은 건 아니겠지요?
서용좌 교수님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드릴게요.

교수님의 등단 소식을 보고,
제 자신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등단 소식이 더욱 깊이 와 닿았는지도 모릅니다.

국문학을 특히 좋아하던 저인지라..
고교 3년 내내 국문과만 바라보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대학 입시때 단 한번의 실수로, 성적이 떨어져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르고 골라 하향지원한 곳이 바로 전대 독문과였지요.
전대 국문과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혹시나..하는 생각에
안정적인 하향지원으로...
전혀 흥미나 관심도 없던 독문과를 지원했지요.
예상대로 합격하긴 했지만 전혀 생각하지도 않던 학과를 다닌 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마음속에는 국문과..국문과...미련이 남아있어서 말이지요.
다시 대학 입시를 치를까, 학교를 그만 둘까,
여러 생각에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소설가가 되어야지 하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국문학이란..제겐 정말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은 학문이었나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수전공도 있고, 편입도 있고...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길도 많은데
왜 꼭 그것만을 고집했는지..

방황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학교는
처음 입학했을때보다 더 낯설었습니다.
다시 배우는 독어는 고교때 2외국어로 배우던 시절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지요.
그나마 나았던건 독문학 수업때문이었답니다.
독어를 잘 몰라도 되니까요.
그리고 좋아하는 문학분야이니까요.
그래서 서용좌 교수님이 더욱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문학을 전공하시고
소설가로 등단하시는 교수님을 보면서,
독문과를 다니며 암담해 했던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워졌습니다.
학사경고만 면하려고 학교에 겨우겨우 출석만 하러 왔다갔다 했던
제 자신이 말이지요.

현재의 제 처지가 너무나 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생각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고교시절에 비해,
대학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생각에 잠기는 일을 꺼려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 비참해 지는 것 같아서,
현실에서 도피해보고 싶은 마음에 말이지요.
저는 스스로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을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고정관념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어도 공부하면서 문학도 공부하는,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교수님 덕에 왠지 새로운 희망이 피어오르는 듯 합니다.
완전히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보니 아닌 듯 합니다.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다시 제가 원하는 곳을 향해 방향을 바꿀 수 있겠지요.
교수님의 등단이 제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교수님께서도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열정을 잃지 않고 쉼 없이 달리는
교수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교수님, 다시 한번 등단하신 것 축하드릴게요.

 200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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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