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이2017. 10. 7. 01:19

2017. 9.19.

국제도서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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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직 서먹한 한 페친의 담벼락 -

 

“국제도서주간입니다.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의 책을 집어 들고, 52페이지를 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문장을 '상태 업데이트'에 포스팅합니다. 책 제목은 알리지 마시고 이 규칙도 당신의 상태 업데이트의 일부로 옮겨 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는 아주 어려운 책의 한 구절이 올라와 있었다. 조르주 아감벤의....

 

 

                                             *

 

나는 이제 가장 가까운, 그러니까 읽고 있던 책의 52페이지를 편다.

“걷는 것과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이렇다 할 차이가 없었다.”

이 무슨 애매한 말이런가.

 

이 책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마 나는 다음 구절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이런 계기를 얻었다고 확신한다. 다른 페이지의 글.

“책이 너무 짧고 뒤죽박죽이고 거슬리네요, 샘.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원래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늘 그렇습니다. 새만 빼면.

그런데 새는 뭐라고 할까요? 대학살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지배배뱃?” 같은 것뿐입니다.”

 

                                                  *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라니...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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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17. 10. 7. 01:15

2017. 9.17.

‘부정한 미녀’(질 메나주) - 한글문학 세계화의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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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여자와 비슷하다. 정숙하면 볼품이 없고 아름다우면 부정하다.’라는 르네상스 이래의 여성혐오성 격언(?)에도 불구하고, 번역문제에서는 형용사에만 집중해서 말하자.

“한국시의 걸작들”이 세계화를 위해서는 번역이 되어야 하는데, 이들 “규범”적인 작품들은 국가주의적인 가치나 학생들이 본받아야 할 아름다움과 인간의 가치를 담아냈다고 간주되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이 예컨대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한국스러움을 강조하고 한국어처럼 들리기를 고집하면, 시를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보는 미국에서 청중이나 독자들이 전혀 유머를 접하지 못해서 반응이 거의 없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한 마디로 감상적인 목소리로 말을 거는 한국시는 미국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한다고. (이 단락은 2017 세계한글작가대회,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의 발표 발췌.)

 

어찌할꼬. 문학의 세계화가 입에 올릴 수 있는 간단한 개념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상당한 경험과 능력을 겸비한 전문가의 입으로 번역의 딜레마에 관해 들으면서 느낀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국 시인들은 자신의 시가 정직한 추녀가 되더라도 꼼꼼히 충실히 번역되기를 원하는데, 정작 시를 들어줄 사람들은 부정한 미녀를 원한다니! 세계화는 무리인가, 정말 필요한가. 서양 사람들의 이해 구미에 맞는 번역을, 또는 아예 번역되기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한글문학의 세계화는 한글문학의 부분적 변화 또는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서양 사람들의 의식주 따라잡기에 급급한 한국인들의 의식에 더해, 문화 예술 차원에서까지 세계화를 위해 서양 흉내내기에 나서야 하는 것인지. 당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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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7. 10. 7. 01:11

2017. 9.8.

 

창작 노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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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쓴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나의 심장에서 이웃들의 심장에서 일렁이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왜 우리는 저 혼자서 제 삶을 생경해하는 것일까. 가을 비 차갑게 내리면 더욱.

 

                                              

                                                  *

 

아침에 서평/논문에 대한 페친의 글을 읽다가 글쓰기와 서평/논문의 관계가 생각나서 옛날에 썼던 글을 올린다. 2004년 『한국소설』 11월호(64호)에 단편 「건들장마」를 발표할 때 함께 쓴 글이다. 그때는 ‘창작 노트’를 따로 써달라고 했다.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몇 해 안 되는 때로, 만나는 사람마다 안정된 교수직에서 왜 느닷없는 소설 쓰기로 곁눈질인가 하는 질문을, 최소한 그런 눈초리를 보내던 때였다. 나는 분명 다른 사람들의 소설 파먹고 사는 일에 지쳐 있었다. 결국 정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강단을 떠났다.

지금은 그럼 행복하냐고? 또 그런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슬쩍 비웃으면서. 왜냐하면 여태 완전 무명이니까.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에서 완전 무명이라는 것을 참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상황이 오니까 그렇다고 죽을 것 같지는 않다.

내리는 비는 맞는다는 것, 오명만도 못한 무명의 비라 할지라도 내리면 맞는 것이다. 또 영영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려니.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