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이2017. 10. 7. 01:25

2017. 9. 23.

철 이른 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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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랄 바 없이 맑은 하늘과 알맞게 따뜻한 햇살에도 소용없다.

빼꼼히 열린 창문 - 다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하는 마음에,

핑계처럼, 어떤 책의 52쪽 5째 문장이 카프카적인 의미에서 ‘내 두개골을 깬다.’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경구는 늘 우리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올 여름도 실패였다. 더 낫게 실패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시도하려면 일찍 동면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겨울을 기다릴 필요 없이 철 이른 동면이라고 못할 바 없지 않겠는가. 아니, 벌써 며칠 째 잠들고 있었다.


* 이로써 페북을 잠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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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17. 10. 7. 01:22

2017. 9.21.

그림의 떡, 그림에도 없는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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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뜬다.

언니, 여기는 THE ANANTI COVE

 

아난티 코브? 애꿎은 네이버: 부산 끝 시랑리, 부산 시민들도 잘 찾지 않았다는 한적한 어촌 마을이 300실 규모의 힐튼호텔과 100실 가까운 아난티 펜트하우스 그리고 100채가 넘은 프라이빗 레지던스를 갖춘 관광 명소가 되었단다.

 

그래, 지친 도시인들을 위한 도심 가까운 명소 필요하겠지. 쉬고 싶고 돈이 되면 명소에 가서 쉬어야 마땅하지. 7, 8천 그루의 교목과 관목을 자랑한다는 아난티 정원 - 낙원이겠다. 힐튼 호텔 앞 쪽에는 장흥의 시골마을에서 300년 넘은 은목서를 옮겨 심었다고. 대단하다....

 

10층 로비의 전경은 지상낙원? 어, 남해바다를 내려다 보다 미치면 어찌할꼬.

하긴 바다를 보고 미칠 인간이면 아난티 코브 힐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위인이 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의 합리적 이성으로 완벽한 무장을 한 그들이 바다에 뛰어내릴 염려는 1도 없다.

 

몸 말고 맘도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500평에 달하는 대형서점은 ‘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라는 이름으로 여행, 인문, 철학, 예술 등을 주제로 한 2만여 권의 책을 비치해 놓았단다. 여행, 인문, 철학, 예술이 돈의 소유임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쯤에선 돈이 모자라면 영영 이삭줍기 인생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내 문자: 그래, 300년도 넘었다는 장흥 산 은목서는 안녕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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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17. 10. 7. 01:19

2017. 9.19.

국제도서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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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직 서먹한 한 페친의 담벼락 -

 

“국제도서주간입니다.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의 책을 집어 들고, 52페이지를 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문장을 '상태 업데이트'에 포스팅합니다. 책 제목은 알리지 마시고 이 규칙도 당신의 상태 업데이트의 일부로 옮겨 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는 아주 어려운 책의 한 구절이 올라와 있었다. 조르주 아감벤의....

 

 

                                             *

 

나는 이제 가장 가까운, 그러니까 읽고 있던 책의 52페이지를 편다.

“걷는 것과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이렇다 할 차이가 없었다.”

이 무슨 애매한 말이런가.

 

이 책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마 나는 다음 구절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이런 계기를 얻었다고 확신한다. 다른 페이지의 글.

“책이 너무 짧고 뒤죽박죽이고 거슬리네요, 샘.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원래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늘 그렇습니다. 새만 빼면.

그런데 새는 뭐라고 할까요? 대학살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지배배뱃?” 같은 것뿐입니다.”

 

                                                  *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라니...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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