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이2017. 10. 7. 00:26

2017. 8.8. 페북

일, 작업

......................

 

생각보다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없다. 없음을 한탄한다. 시를 읽어서 그 뜻을 영어 원어민에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 악역을 맡아달라고 부탁할 사람을 모른다. 정말 문제는 시를 잘 읽을 수 없어서다. 주술 관계가 보이지 않는 문장들을 주술관계를 상상하며 읽으려하는 내 경직된 이해력으로 어찌 시들을 읽어내려고! 무려 40편의 시를. 무더위 보다 무서운 것이 무능력이다, 지금 며칠간은. 앞으로 얼마간은.

 

또 하나 문제.

혹시 알았더라도 부탁의 혀를 움직이지 못하고 내 손을 먼저 움직였으리라. 작은 일도 입보다 손이 쉽다. 말이 일보다 쉽다는 이야기는 상상이 안 간다. 부탁은 상대가 관련되지만, 일은 나만 있으면 되니 얼마나 간단하냐, 이것이 내 생각이다. 나를 답답해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내가 답답한 줄 안다. 결국 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일도 잘 될지 노심초사.

 

이 부질없는 작업은 내 글쓰기를 방해한다고 시간을 좀 먹는다고 변명하고 싶은 것이라? 애당초 잘 쓰지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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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7. 8. 8. 00:19

서술자 한금실 사소한 사건들 언어화

서용좌 장편 ‘흐릿한 하늘의 해’ 나와

 

광남일보 http://www.gwangnam.co.kr/

2017. 08.02(수) 16:26 확대축소

독문학자이며 소설가인 서용좌의 장편소설 ‘흐릿한 하늘의 해’가 푸른사상 소설선 14번째 권으로 출간됐다.

지방대학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서술자 한금실을 통해 그녀가 만나는 우울한 군상과 암울한 일상, 그 속에서도 숨은 해를 찾아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이번 이야기는 장편 ‘표현형’에서 나 한금실이 ‘동반자를 구한다’는 남자를 만나러 바닷가 마을을 찾아가다가 거의 마지막 장소와 마지막 순간에 물에 빠졌던 이야기에서 이어진다.

‘표현형’에서 세계 도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 유전자의 표현형을 추구하던 그녀는 말미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쫓아 물에 빠져 익사 지경의 모습으로 사라졌었다. ‘흐릿한 하늘의 해’는 한금실이 의식이 돌아오면서 더 깊었던 물에 대한 기억으로 다시 생의 갈피를 잡아내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의식 저 아래 깊이 가라앉았던 백두산 천지의 기억과 더불어 멀고 가까운 과거가 불려나오고, 그로 인해 오늘을 있게 하고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여전히 돈은 없으나 시간은 넉넉한 비정규직 강사로서 현실을 살고 있다. 하여 단조로운 일상은 삶의 순간들을 천착하는 계기가 된다.

한금실은 등장인물이자 서술자로서, 자신과 이웃의 삶에서 드러나는 사소한 사건들을 언어화하고 있다.

서용좌씨는 광주 출생으로 독문학자를 거쳐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했다. 장편소설 ‘열하나 조각그림’, 연작소설 ‘희미한 인(생)’,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펴냈다. 이화문학상과 광주문학상, 국제PEN문학활동상 등을 수상했으며 전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7. 7. 22. 01:44

제목: 대단원을 지나서 다시 한글

 

                                        이글은 192015년 9월 세계한글작가대회에 맞춰 발간된 

                                        문집에 있었고, 이제 생각이 나서 올려둔다.

 

 

다행스럽게도 일제 치하가 아닌 세상에서 이 땅에 태어난 나는 한글전용 의식이 팽배했던 시대에 학교 교육을 받았다. 지금 쓰는 용어인 문법은 말본이었고, 실제로 교과서 제목이 그랬다. 심지어는 전화를 번개딸딸이라고 해야 한다거나 모교는 배꽃큰애기배움터라야 한다고까지 한글 사랑에 목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글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말 우리글은 공부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식도 없었다. 모차르트의 멜로디로 동요를 배우면서 자랐기에 우리 음악도 당연히 7음계라 믿어버렸다, 제법 어른이 될 때까지도. 그러니 우리 것은 모두 그냥 저절로 있는 것이고, 뭔가 낯설고 어려운 것이 학문의 대상이리라는 사대주의 사상으로 자라났다. 그렇게 일생을 살았다, 살았을 뻔 했다. 외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연구논문을 쓰면서 오직 갈수록 멀어지는 그것들을 쫓았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어느 순간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른나라다른사람들의소설들을파먹느라자판위를달리는손가락들이하이에나의발가락처럼넷씩으로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그런 순간이면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쓴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이런고백과함께나는소설을쓰기시작했다.

하지만 소설 쓰기는 녹록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제야 내 글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기 시작하려니 내가 소설은커녕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글쓰기를 배워 본 적도 없이 논문이라는 이름의 글들을 써 댔다니. 머리가 터질 듯 했다.

번갯불에 콩 볶는 심정으로 남은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와서 처음 한 일은 한글을 공부하는 일이었다. 누가 보면, 다 살고서 무슨 짓이람, 이라고 핀잔할 지경인데도.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아도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계속 외국어만 파던 대학의 언어교육원 어딘가에서 한국어교사양성과정이 눈에 들어왔다. 새삼스레 교사가 된다는 상상은 어색했지만, 분명 국어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때까지도 국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따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국어는 다만 나라말인 것을, 한국어라야 고유의 우리 언어를 국제적으로 지칭한다는 것을 알아가며 부끄러움 속에서 단기간이나마 (한)국어를 배웠다. 내친 김에 시험공부를 하면서 그룹 스터디도 하고 혼자 날밤도 샜다. 과락은 면했던지 2차 시험을 보러 갔을 때에는 한참 젊은 면접관들 앞에서 얼얼했지만, 막상 자격증을 손에 쥐자 부끄러움이 더 컸다. 이것은 최소한의 조건일진대, 무턱대고 평생 써댄 글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무게로 치면 어떤 것은 1킬로그램을 어떤 것은 2킬로그램을 넘는 것들이었으니 이들을 어쩐다?

기억을 왜곡하기로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러고는 새로운 한글로, 내게는 새로운 한글로 글을 쓴다. 새로 쓰는 글들이 많아지면 잘 못 썼던 글들이 덮이기라도 하는 양. 덮는다고 사라질 것이 아님을 알지만 모른 체하기로 한다. 어차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밖에 하지 못하니까, 라고 위로를 한다. 나의, 우리의 한글로 글을 쓰면서 외국어 공부할 때만큼 사전을 찾는다. 글의 맞춤법 검사에도 넣어보고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의 맞춤법검사에도 넣어서 살핀다. 잘은 아니더라도 틀리지는 말자고, 잘 쓰는 건 타고나거나 어떤 은총의 문제이려니 틀리게 쓰는 일이나 말자고 애를 쓴다. 물론 세상 일이 애 쓴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님을 알만큼은 살았다. 그래도 다른 묘수가 없다. 다만 한글을 다시 배우게 된 것이 기쁠 뿐이다. 내 말을, 우리의 말을 늦게라도 다시 찾은 것이 의미라면 의미다. 한편의 연극일 인생의 대단원을 지난 오늘에서 굳이 그 의미를 생각한다면. 아니, 의미를 떠나 나는 그냥 한글에 파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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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학을 노래하다, 세계한글작가대회 기념문집 - 산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2015.9.7.

238~240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