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7. 7. 5. 02:15


“사람들을 나누어 편 가르는 나라 … 사람이 만들어 완벽한 체제는 없다”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29) 둥지를 더럽히는 작가들

2017년 06월 19일 (월) 12:18:43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국제PEN한국본부 울타리 안에서 매년 6월이면 영호남문학인 교류대회가 열린다. 국제PEN부산지부와 국제PEN광주지부가 번갈아 주관하는 행사다. 올해는 여수 1박2일의 일정에 덤으로 향일암 코스가 들어었었다. 향일암, 그곳 일출을 보는 것은 설레는 버킷리스트 중에 넣어야 할 아름다운 곳이다. 그 오르는 계단의 높이와 가파름 때문에 몸의 허락을 받은 영혼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렷다.

 

첫날의 메인 행사 중에는 본격 학술강의는 아니나 특강 형식의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중 ‘둥지를 더럽히는 작가들’이란 강연이 있었다. 중심 내용은 독일 나치시대의 문화 억압과 작가들의 고군분투에 관해서였는데, 문화를 억압하는 정권의 말로에 포커스를 둔 것 같았다.

중세 후기부터 사용된 ‘둥지를 더럽히는 짓’이란 개념은 주로 가족이나 공동체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행위를 지칭했으나, 현대적 의미에서 ‘둥지를 더럽히는 자’라고 할 때는 사회 경제 정치적 시스템을 비판하거나 폐해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실제로 뭔가를 더럽히는 ‘행동’ 그 자체를 지칭했던 말이 그러한 더러운 행동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언동’을 가리키게 됐다니, 말의 변천은 놀랍다.

 

   
 

buecherverbrennung 1933년 5월 10일 베를린. 사진출처= 독일연방자료실

 
 

나치는 가장 우월한 종족인 국민 전체가 나치식 사고를 갖도록 도덕교육을 중시했다. 따라서 나치정권에서 둥지를 더럽히는 사람들은 단연 유대혈통이었다. 또 저항하는 작가들은 ‘퇴폐’의 범주로서 낙인찍혔다. 그때 ‘퇴폐(entartet)’라는 단어는 원래 ‘같은 종족과는 다른’ 혹은 ‘별종’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것이 나치시대에는 엉뚱하게도 정통을 벗어난 현대미술 전반에 대한 공격의 신호탄이 됐고, 음악과 문학 분야에도 적용됐다.

나치로서는 무엇보다 둥지를 더럽히는 퇴폐문학을 불태우는 일이 급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1933년 첫해 4월부터 ‘소각해야할 도서목록’이 신문에 실리더니, 며칠 후에는 공식적인 리스트가 공표됐다. 5월 10일에는 독일 전역에서 유례없던 대규모 분서 의식이 치러졌다. 당일에만 전국의 22개 대학도시에서 같은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일시에 이른바 ‘비독일적인 책들’이 불태워졌다. 민중들의 무계획적인 자연발생의 성격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조종되고 조직적으로 정확히 계획된 캠페인’(한스-알베르트 발터)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도시에서 동시에 유대혈통, 평화주의자, 좌파 또는 나치의 복안에 맞지 않은 작가들의 책들이 불타올랐다. 베를린의 경우에는 약 7만 명이 참여했고, 훔볼트대학 도서관에서 책들을 꺼내서 황소가 끄는 수레로 오페라광장 장작더미로 실어 날랐다. 불타는 책들 속에는 마르크스, 투홀스키 등 소위 불온서적과, 프로이트 등 학문서, 하이네, 하인리히 만 등 순수문학 서적들이 포함됐다. 헤밍웨이, 에밀 졸라, 고리키 등 외국작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일 베를린에서 책이 소각된 작가들은 94명이었다고 한다. 이슬비 내리는 밤 11시의 풍경이었다.

 

나치정권의 블랙리스트 대상을 정리하자면 ①공산주의 서적 ②전선 병사 체험을 저속하게 그리는 작품 ③민족의 도덕적 종교적 근간을 파괴하는 작품 ④바이마르공화국을 찬미하는 서적 ⑤민족진영의 정당한 자의식을 훼손하는 서적이었다고 한다. 다만 불태울 책의 목록, 블랙리스트를 나치정권의 민족계몽선전부에서 직접 작성했다는 기록은 없고, 오히려 전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생조합(학생회) 주축으로 작성됐다고 한다. 

 

그 수량은 어떠했을까. 첫 분서대상 리스트는 순수문학, 역사서, 정치 및 국가학 등에 국한됐고, 총 299명이 이에 해당했다. 종교, 철학, 교육학 서적은 첫 분서 때에는 아직 작성되지 않았다. 또 하나 중요한 금서목록인 ‘헤르만 문서’는 확신에 찬 나치 사서들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도서대출 금지 목록인데, 모든 도서관과 서점에서 추방해야할 작가들을 망라한 ‘수치스럽고 달갑지 않은 작가명단’은 149명 1만2천400종의 서적에 이르렀다. 다른 출처에 보면 나치시대 블랙리스트는 최종적으로 267명을 기록한다고 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치의 그 악명에 비추어 고작 300명도 안 되는 블랙리스트? 그래서인지 정말 신랄한 일화가 있다. 2월말 국회의사당 화재 이후 무차별 체포를 피해 잠적한 작가들이 숱했다. 오스트리아로 피신해 있던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는 5월 10일의 분서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없자 그에 반발해서, 이틀 후 빈의 <노동자신문>에 공개서한을 실었다. ‘나를불태우라! 나의 삶 전부와 나의 저술활동 전부에 의거해서 나는 권리가 있다. 내책들을 장작더미의 순정한 불길에 넘기라고 요구할 권리, 갈색 살인도당의 피에 젖은 손과 썩은 두뇌에 바치지 말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라고. 

 

갈색은 잘 알려지다시피 나치스 돌격대의 제복이었다. 이어지는 분서 리스트에는 그라프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이듬해 뮌헨대학 교정에서는 그의 요청(?)대로 성대한 분서식이 있었고, 독일 내 완전 출판금지며 국적 박탈이 이어졌다. 브레히트의 시 「분서」는 그라프의 서한에 근거한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나치의 블랙리스트가 300명을 넘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인류 역사에서 악의 최정상을 실현했다고 하는 나치시대에도 ‘고작’ 그 숫자였다니. 실제로 사람들까지 불태웠던 정권치고는 그들 판단에 ‘극도로 위험한’ 최소정예만 골라서 금지시킨 것이다. 

우리는 그에 비하면 상상을 절하는 블랙리스트의 나라다. 당시 청와대가 문화체육관광부에 내려 보냈다는 A4용지 100장 이상의 그 문건에는 놀랍게도 문화예술계 인사 9천473명이 기재됐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444건의 지원배제가 있었다는 보도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이제 와서 화이트리스트로 둔갑한다면 그 역시 못 믿을 사회가 되는 것이리라. 

 

사람들을 나누어 편 가르는 나라라면 여전히 불안한 나라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사람이 만들어서 완벽한 체제란 없다. 둥지를 더럽히는 작가들은 사회의 균형으로서 늘 있어야 한다. 오른발이 너무 나가서 미끄러지는 순간 뇌진탕을 막아주는 것은 왼손이고, 왼발이면 오른손이다. 우습게도 그날 강연자는 왼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7. 7. 5. 02:15

 

자멸의 길 앞당기는 비이성적 반목 … 무차별 테러 속 인간의 미래는?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28. 테러에 갇힌 호모 사피엔스
2017년 06월 05일 (월) 13:48:09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여전히 아름다운 신록의 푸르름도 슬픔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이렇게 좋은 계절, 아직 인류에게 온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지구상에서 무차별 살인이 난무하고 있다. 맨체스터 팝 공연장 테러는 무해한 청소년들을 겨냥했고, 카블 외교단지는 라마단인데도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는 외침으로 피로 물들었다.

 

역사책에서 ‘테러’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프랑스대혁명의 ‘공포’정치였던 것 같다. 혁명이 9월의 학살과 더불어 폭력으로 치달았을 때, 이 국가적 테러에 직면해서 혁명에 대한 유럽의 전반적인 공감대는 수그러들었다고 배웠다.

 

일반적으로 테러는 특정 목적을 지니고 특정 목표인물에 한정돼 왔다. 기원 후 1세기 유대인 저항집단은 로마군의 주둔에 반발해 대제사장 요나단을 암살하는 등 단검 공격을 자행했고, 그래서 시카리(shikari)라고 불렸다. ‘자객’이라는 뜻이다. 중세 페르시아 지방의 이슬람 종교단체들은 ‘암살자’를 고용해 종교적 목적달성을 꾀했으니, 테러는 중동지역의 정치적 종교적 혼란 속에서 오랜 역사를 지녀왔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정치사회적으로 혁명적 변화의 효과적 달성을 위해 유력 정치인을 암살하는 방식이었고, 예컨대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 암살은 제1차 세계대전을 유발했다.

 

   
  ▲ 멘체스터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문객이 든 글귀가 인상적이다. 출처: www.hindustantimes.com  
 

 

테러는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그 범위를 놓고 의미심장한 논쟁이 있었다. 사르트르와 카뮈의 결별이 5막극 『정의의 사람들 Les justes』(1949) 때문이었다. 카뮈는 이 작품에서 1905년 러시아 사회혁명당 소속 테러단에 의한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 암살사건을 다루었다. 볼쇼이극장 앞에 내리는 목표물의 마차에 폭탄을 투척하는 계획은 실패한다. 행동대원 칼리아예프가 순간 망설임으로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아니, 대공비와 어린 조카들이 마차에 함께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계획을 거둔 것이다.

 

작품의 의미내용은 ‘망설임’에 있었다. 카뮈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혁명가들과는 달리 폭군을 암살하는 경우에도 아이들과 같은 죄 없는 사람이 말려들 위험이 있으면 그 행동을 단념하는 망설임을 변호했다. 사르트르 측은 ‘반항적 태도’란 자기기만이며 소극적인 것이라고 비판했고, 카뮈는 정치철학적 에세이 『반항인 L’ Homme revolte』(1951)에서 사르트르의 ‘혁명적 인간’과 대립되는 ‘반항적 인간’을 제시함으로써 10년 가까운 우정에 파탄이 갔다. 카뮈가 옹호하는 것은 혁명적인 행동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을 지향하는 반항이었다. 극좌와 극우의 절대주의에 굴하지 않고, 폭력을 부정하며 중용을 터득한 수단을 사용하는 끈질긴 저항 말이다. 카뮈에게는 내일의 정의를 위해서 오늘의 불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한편 자본주의의 억압성과 폐해가 확인되면서 마르쿠제나 사르트르의 입장은 제3세계에서 민중의 저항을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한 폭력’이라는 의미로 정당화하는 쪽이었다. 화약고는 여전히 중동지역이었고, 서구 열강의 책임을 지적하는 논리도 있었다. 중세 십자군의 부활과도 같이 산업혁명을 통해 강력해진 서구 열강들이 중동지역을 분할 지배하는 구조가 갈등의 발단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격화는 6일전쟁·6월전쟁의 충격적 결과로 이어졌고, 고향땅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어쩌면 테러행위 뿐이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은 뒤에도 반목과 테러는 확산 일로에 있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테러는 인간성의 ‘ㅇ’자도 언급할 수 없을 악의 수준에 달했다. 아니, 오늘의 종교적 정치적 반목은 전면전도 불사하는 양태로 발전돼, 테러는 대리전쟁 또는 보이지 않는 전쟁 수준으로 변모했으니, 미증유의 9·11 테러사건은 전쟁 그 자체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운집하는 비정치적 공간에 무차별 테러를 감행해 무엇을 노릴까. 무슨 이득을 얻어낼까. 성서와 코란의 가르침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우위를 점령하라 이르는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탈바꿈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용도 폐기 직전으로 몰락했고, 인간은 더 이상 신의 총아가 아닌 듯 했다. 다행하게도 인간에게 남은 인지능력으로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났고, 인간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효용성을 증명해 보였다. 인간이 신의 가장 특별한 창조물이로서의 자부심을 가까스로 지닐 수 있었던 동안, 성서와 코란은 위안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라는 전대미문의 기술은 인간의 인지능력마저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내동댕이쳤다. 최근 불패의 기록으로 은퇴한 알파고를 보라.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앞지르고 있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닥터 왓슨(Watson for Oncology)’은 미국 유명 암센터 전문의가 진료한 1천명의 환자 기록을 분석해 30%의 환자에서 의사들이 놓친 치료방법을 찾아냈다고 알려져 있다. 날마다 업데이트 되는 닥터왓슨의 정보량을 어떤 인간의사가 따라가겠는가. 정보라면 그 범위는 무한대다. 어떤 펀드매니저가 인공지능을 추월한 금융지식을 갖겠는가.

 

그래도 예술의 영역을 말하겠는가. 그것도 희망사항일 뿐이다. 완벽한 연주는 물론 특정 생물학적 패턴과 수학적 패턴의 조합이면 작곡이 가능하며, 주제어의 입력만으로 미문을 만들어 낼 알고리즘이 탄생되고 있다.

유발 노아 하라리의 최신작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에는 ‘신과는 별 관계없고 기술과 관계있는,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나고 있는 용감한 신흥종교… 데이터敎’가 등장한다. 인지능력을 추월당한 호모 사피엔스를 용도폐기할지 말지, 이 새로운 신이 심판할 것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이건 이슬람 원리주의이건 또 무엇이건 우리가 가진 모든 가치와 모든 능력을 동원해 합심해서 총력으로 대비해도 유기체로서의 인간은 새로운 신에 맞서지 못한다. 주어진 현상을 논리적으로 질서 짓는 자연 인식을 넘어 의미-인식(Sinn-Erkenntniß)이 가능했던 ‘멋진’ 호모 사피엔스는 이쯤해서 끝이 날 모양이다. 닥터 왓슨도 우리의 분노를 치유하지는 못할 텐데, 인간은 비이성적 반목과 불특정 테러 속에서 스스로 자멸의 길을 앞당기고 있다.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7. 7. 5. 02:15

 

 

개인의 절망적 상황이 해소되는 ‘기회의 평등’을 기대하고 싶다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27.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2017년 05월 22일 (월) 11:27:51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장미가 피어나고, 장미대선도 치렀다. 마침내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이 왔다. 누가 신록의 5월을 사랑하지 않으랴. 긴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의 현란한 꽃잎들 앞에서 마음 흔들리지 않을 사람 있으랴. 풀 속의 낮달맞이꽃 앞에서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으랴. 병꽃나무의 늘어진 꽃송이들은 과거급제한 이의 모자에 꽂힌 화려한 어사화 다름 아니지.

 

5월을 노래한 시인들은 너무도 많다. 「로렐라이」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도 5월을 감탄해 마지않은 시인들 중 하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김광규 역)

 

 

 

 
     
 

 

그가 젊어서 발표한 『노래의 책』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랑의 시들을 배웠을 때, 그러니까 옛날에 내가 아직 대학 초년생일 때, 사랑 같은 것을 폄하했던 건방진 나는 하이네를 지나치기로 작정해 버렸다. 어렴풋이 자유 같은 개념에 취한 풋내기 문학도에게 문학은 사랑 따위가 아니라 막연하게나마 무엇인가 저항적인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서 이른바 ‘열공(열심히 공부함)’을 할 때서야 하이네가 쓴 많은 다른 시들은 전혀 다른 성격임을 알게 됐다.

 

침침한 두 눈엔 눈물조차 말랐구나/ 베틀에 앉아서 이빨을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너의 수의를 짜노라/ 우리는 그 안에 세 겹의 저주를 짜 넣으리/ 우리는 베를 짠다, 베를 짠다! (필자 역)

 

「슐레지엔의 직조공들」의 첫번째 연이다. 이어서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신에게 또 한 겹의 저주를, 가난한 자들을 도외시하고 오직 부자들의 권익만을 보호하는 왕에게 또 한 겹의 저주를, 그리하여 오욕과 치욕만이 번성하는 조국에다 또 한 겹의 저주를 퍼붓는다. 젊은이의 가슴에 불타는 순수한 사랑을 노래했던 그 시인이 절절한 마음으로 노동자의 봉기에 참여하는 독설가로 변모한 것이다.

 

실제로 1844년 슐레지엔 지방에서는 직조공들의 봉기가 있었다.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자 기계화로 값싼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공장주들은 수많은 직조공들을 해고했고, 배고픈 직조공들은 공장주들에게 몰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 진압과정을 설명해서 무엇하리. 위정자들을 공격하기는커녕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문재인 대통령 격려사) 일어섰을 뿐임에도 무자비하게 총칼에 짓밟힌 광주의 5월을 겪은 우리가.

 

무엇이 이 시인을 서정시를 버리고 참여시를 쓰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 때문 아니었겠는가. 시인이 시를 쓸 수 없게 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독일은 연방으로 탄생했지만 개개 왕국과 공국이 유지되었고, 프랑스는 물론 나폴리와 에스파냐가 옛 왕가의 복위를 맞았을 정도로 유럽은 반동보수의 시대로 들어갔다. 1848년 프랑스의 2월혁명을 도화선으로 다시 유럽에 혁명의 기운이 살아나기까지, 문화는 다시 왕궁의 시녀역할에 머물게 되었다. 새 시대를 요청하는 젊은 목소리들은 탄압됐고, 하이네 또한 당국의 분서처분 대상자들에 포함됐던 것이다. ‘책들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에는 인간들도 불태우는 법이다.’(1821)라던 그는 망명 아닌 망명으로 나머지 평생을 파리에 가서 살면서 짝사랑 조국애로 애태우는 시들을 노래해야 했다.

 

우리나라에도 문화 예술을 탄압하는 블랙리스트의 시대가 저물었다. 시인은 마음 놓고 사랑의 시를 읊어도 될 것이라 믿는다. 실제로 시민들은 원하는 노래를 원하는 장소에서 불러도 된다는 것을 이제야 확인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말이다. 물론 그것이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하는 일이었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분개하지만, 최소한 더 이상은 제나라의 군인들이 총칼로 시민들을 짓밟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권력자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영화를 만들 수도 있는 나라가 된 것이라 믿는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련다는 19대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이다. 기회의 평등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존 스튜워트 밀이 주장한 자유경쟁원리는 ‘기회는 평등하게 주되 결과마저 평등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는 복잡 애매한 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실천적 개혁프로그램에 있어 기회평등을 이루어 내는 일은 개인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해소하는 일이 전제돼야만 한다.

 

개인의 절망적인 상황 해소란 결코 녹록치 않은 과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개인보다는 전체에, 특히 힘 있는 다수에 방점이 찍히다 보니, 힘없는 소수는 보호는커녕 백안시 된다. 과거의 왕족과 양반 대신에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서열과 계급이 생겨난다. 여전히 그러하다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이 왔더라도 사랑 노래만을 부르기는 어려우리라.

 

마침 아파트가 새 단장을 하려고 아름다운 페인트 색칠을 준비 중이다. 출입구마다 푸르스름 계열과 누르스름 계열의 두 가지 최종 안을 이미지로 올려두고 찬성 쪽에 꼬마 스티커를 붙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외벽에는 벌써 스파이더맨 여럿이 물줄기를 쏘아대며 줄에 매달려 있다. 페인트칠에 앞서 먼저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척’이라는 공정이란다. 나라도 새 단장을 하려면 오염된 구석부터 씻어내야 하리라. 기회에서부터 평등을 저해해왔던 개인의 절망적 상황을 해소하는 그 일을 새 정부에 기대한다.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이다.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