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17. 7. 11. 23:54


‘글쓰기’ 절실해 떠난 강단 … “오늘 가능한 일에 몰두할 뿐”

 

퇴임교수가 사는 법_ 장편소설 『흐릿한 하늘의 해』 출간한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

2017년 07월 10일 (월) 15:44:18 김홍근 기자 mong@kyosu.net

 

   
     
 

때로는 한 국가의 지식인으로서 냉철하고도 날카롭게, 때로는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이 나라, 이 사회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교수가 있다. 현재 <교수신문>에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을 연재하고 있는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다.

독문학자이지만 우리말로 글을 쓰고 소설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는 서 명예교수는 어느 날 강단에서 내려왔다. 이유는 ‘소설가’로서 좀 더 매진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2001년 『열하나 조각그림』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 첫 발을 내딛은 후 이화문학상(2004년), 제6회 광주문학올해의작품상(2013년), 제30회 PEN문학상 문학활동상(2014년) 등 다양한 수상경력 또한 갖고 있다.

“왜 소설을 쓰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 교수는 본인의 소설 작품 끝에 실었던 ‘작가의 말’ 한 구절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평생을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에 파묻혀 살다보면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두려울 때가 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손가락들이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하고, 꼬리에 수북이 털이 돋는 느낌에 소스라친다. 그런 순간이면 '새글'을 열어서 내 글을 쓴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퇴임 이후 소설가로서 새 삶을 살고 있는 서용좌 명예교수를 서면으로 만나봤다.

 

 

△중학생 때 교지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소설가를 꿈꾼 배경이나 계기가 궁금하다.

 

“소설가? 소설가가 되기로 작정을 했다기보다는, 우연한 기회에 그리됐다. 2001년 얼결에 『열하나 조각그림』이라는 장편을 발표한 것이 문단에 디딘 첫 발이었다. 독문과 졸업한 제자들 가운데 출판사를 차렸다고, 글 좀 내자고, 수필이라도 출판하자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비밀이 터져나와버렸다. 수필은 말고, 소설이라면 끼적거리고 있노라고. ‘막고 품는다’는 말을 아는지 모르겠다. 둑을 막고 물을 모조리 퍼내면 고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기에 쓰는 말이다. 옛날에는 부족한 실력으로 교수가 되고 했으니, 무조건 뿌리째 또는 송두리째, 중요성의 경중을 따지기 이전에 모조리 공부하는 방식이라서 시간을 많이 써야 했다. 전공이 독일소설이었는데, 공부를 하다하다 지치면 나도 모르게 ‘소설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소설쓰기가 무엇인지 배워 본 적도 없이. 무엇보다 외국어에 매달려 살면서 그 반작용으로 우리말로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제목에서와 같이 다소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흐릿한 하늘의 해』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했나.

 

“꿈을 꾸는 한, 인생은 늘 불발이다. 유토피아란 아무데도 없는 곳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더구나 오늘 이 땅의 삶이 점점 녹록치가 않다. 국민총생산이니 하는 지표의 성장과는 무관하다. 한 겨울에도 집이 따뜻하다 못해 반쯤 벗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라고는 하나, 우리들 마음속 어디에도 온기라고는 없다. 사회라는 궤도에 들어가기 위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뇌세포는 주판알 굴리는 상처로 피범벅이다. 특히 지식을 환전하지 못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애달파 하다 보니, 그들을 위해 글을 쓰게 됐다. 우리는 다 같이 아프다, 아픔을 보듬고 살아간다. 그런 것들을 확인하면서 막연하게나마 동료애, 인류애 같은 것을 되살려 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유명한 시인의 시구이지만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는 담쟁이넝쿨의 이미지를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있다.”


 

△퇴임 이후의 삶은 어떤가. 강단에 있을 때와는 여러모로 달라졌을 듯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퇴임’이란 단어는 생소하다. 곧 다가올 정년을 기다리지 못하고‘명퇴’를 한 것은 충동이자 절실한 선택이었다. 강의하던 것을 정리해서 『도이칠란트. 도이치 문학』으로 내놓고는 회의가 깊어졌었다. 평생 공부한 것이 이 부끄러운 수준이구나, 해도 해도 잘 안 되는 것 그만 하자, 교수라면 객관적으로 책임이 막중하지만 글 쓰는 일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겠지……. 그래서 교단을 떠났다. 소설로 등단은 했었지만 여전히 무명이었고, 그건 지금도 그렇고, 그래도 무작정 한 가지 일에 몰입하련다는 심정이었다. 그때로서는 내 소설에 독자를 얻을 일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쓸 일이 절실했었다. 또 다른 고통이 밀려올 것을 예감하지 못한 채로. 선택, 그러니까 앞서 말 한대로 하이에나처럼 사는 일을 그만두고서, 그럼 만족하느냐? 최소한 문학작품에 관해서가 아니라 그 일차적 작품을 쓰는 일이 그리 좋으냐?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우리글로 살고 있다는 점에서 뭔지 모를 행복감을 느낀다. 소설가로서의 불발은 행복한 고민에 속할 것이다.”

 

△이번 소설에는 “나는 글을 쓴다. 그러므로 살아있다”라고 선언한 크리스타 볼프의 말이 등장한다. 소설가로서 생각하는 어떤 ‘신조’ 같은 건가?

 

“‘…… 그러므로 살아있다’라는 명구에는 숱한 변형들이 있다. 글 쓰는 사람들의 경우 누구에게나, 글을 쓰느라고 살아있다는 말은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살아있음을 느끼는 밀도가 강하리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도 신조 같은 것은 정립해놓고 살지는 못했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모르는 것이기에 오늘 가능한 일에 몰두하는 것, 그것으로도 벅차다. 오늘 살 수 있다면 공들여 살 것이고, 오늘 쓸 수 있다면 정성들여 쓰는 것뿐이다.”

 

   
  ▲ 1997년 10월 추월산에서  
 

△후배 교수들에게, 혹은 학문후속세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후배 교수들, 특히 인문학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뭔가 말해도 된다면, 자긍심을 가지고 현실을 버티자는 것이다. 늦게라도 다른 현실이 필연코 닥친다. 학자들에게는 그렇게 만들 책임도 있다. 문학과 문학연구를 포함해서 인문학은 사람에 관한 학문이라는 사실은 불변이다. 사람의 도구에 관한 학문들이 사람에 관한 학문을 추월하여 학계를 주도하고 ‘자본주의의 돈’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이 현실이 영원할 리는 없다. 진자운동을 생각한다. 인류의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진자운동 같아서, 감성과 이성이 주도하는 시대상이 번갈아 나타난다. 합리적 계산의 과학이 그네의 최고점에 다다르면 그만 내려오고, 그네는 다시 우아하게 다른 쪽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틀림없이 멋진 호의 곡선을 그리며.”

 

김홍근 기자 mong@kyosu.net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7. 7. 11. 23:32

상대를 혐오하는 말과 글들의 폭포수 … 
                                   할 말 다하는 자유에 ‘갸우뚱’하는 이유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30. 신념
2017년 07월 07일 (금) 19:36:13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믿음은 믿는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무엇인가에 대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의 심리가 믿음이다. 그것이 정치나 사회 또는 철학적 가치와 관련될 때는 신념이라고 주로 한자어로 쓰게 되며, 뭔가 객관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된다. 그러나 믿음이건 신념이건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다. 벤-오일러의 다이어그램에 따르면 진실과 신념의 교집합은 그래서 ‘형편없이 당연시 된 참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 ‘형편없이 당연시 된 참 신념’ 중에 조건이 확실한 경우에 겨우 ‘참 신념’이 가능하고, 거기에서 비로소 우리가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무한대의 우주! 이런 신념에도 오래 전에 클레임이 걸렸다. 우주를 모래알로 채운다면 10의 63승보다 작을 것이라는 아르키메데스의 신념!

 

사실 그 옛날에는 고교 수학책에 집합이라는 단원이 없었다면 놀랄 것이다. 수학에서의 집합을 모르는 채로 졸업을 했던 나는 유난히 집합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동생의 수학 책에서 독학으로 집합 단원을 공부했을 때의 신기함이라니!

 

물론 오늘은 집합 예찬이 아니라, 신념이라는 것의 정체를 생각하면서 깊은 회의가 드는 일을 말하고자 함이다. 다 같이 신 또는 신들을 믿으면서도, 다같이 신앙인이면서도 그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증오와 박해를 일삼아 온 종교적 반목이 그 첫째요. 다같이 이념들을 신앙하면서도 그 이념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반목의 극치를 달리는 정치가 그 둘이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목격자가 둘이면 그 증언은 두 가지라고 한다. 한 쪽이 거짓일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기억이 두 가지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투표권을 가진 인구수가 4천235만7천906명(19대 대선)이라니, 사람들의 각양각색은 4천만 가지 이상이리라. 정당으로 크게 나누어 말하더라도 여러 신념들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팩트로 드러난 사건을 두고서도 전혀 다른 신념에 입각해서 말을 한다면, 몰라서일까 알고서도 당략 때문일까.

 

말의 진정성은 무엇으로 가늠해야 할까. 예컨대 ‘지겟작대기’는 긍정적인 표현일까 그 반대일까. ‘선거 때는 지겟작대기도 필요하다’라고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지겟작대기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필요로 해준다니 고마울까, 그렇게 무가치하다는 표현에 분노할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고마워하리라고 예상하고 말했을까, 분노하라고 말했을까, 그도 저도 아닌 시선끌기 용이었을까, 아님 또 다른 고단수의….

노련한 정치가가 아닌 평범한 대중들은 그 높은 뜻을 읽지 못하니 답답하다. 다만 최근에 방송에 나오는 말들은 많이 거칠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신념이 다르면 상대를 혐오스런 곤충에 빗대기도 하니, 인간에 대한 미미한 존중도 없다.

 

예로부터 신언서판이라고, 그것이 비단 관리 등용의 기준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신체가 미남미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듯이, 특히 말은 ‘비단 혀’가 아니라 그 뜻을 지칭하는 것이고, 글 또한 미려한 서체가 아니라 문필력을 지칭한다. 말(言)과 글(書)은 판단력(判)으로 모아지니, 말과 글의 이치가 우아하고 뛰어난 것을 높이 산다는 뜻이었다. 말과 글이 요즈음처럼 폭포수로 쏟아지면서 게다가 거의 경박한 수준으로 타락하고서야 어찌 바른 판단력을 기대할까. 자신의 판단과 주장만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신념은, 그런 마음의 상태는 참이 아닐밖에.

 

신념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사르트르가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 했던 체 게바라가 떠오른다. 흔히 신념을 실천한 휴머니스트라 불리는 그에게 신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여행은 산 경험들을, 꾸준한 독서는 죽은 경험들을 넣어주었고, 그것들을 통해서 사상과 신념이 정립됐고, 그러한 신념에 실천이 따랐다고 평전은 말한다. 그렇다면 성공한 혁명의 열매를 누리는 대신 미련 없이 다시 떠나는 신념, 그것은 또 어떻게 생긴 것일까. 그것은 혁명 후 쿠바사회에 대한 회의였을 것이다. 혁명의 높은 완성도를 위해 부활된 사형제도 등 다른 신념을 박해해야 하는 과업이 회의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혁명이 아니라 해도,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서라 해도, 이념이 전과 다른 정치체제가 됐을 때는 그런 회의가 병행돼야 하지 않을까.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사에 관해서는 물론 일반 정치에도 문외한인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말과 글이 경박해진 이 시대를 사는 때문이라고 변명이 될는지.

 

사실 반세기 전만 해도 할 말하고 사는 사람이 적었었다. 개인의 신념은 사치이고, 가치는 주어진 것들을 신봉하면 되었다. 그래서 말과 글로 다툼도 적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할 말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자유를 누리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그러나 그 신념이 문제다. 어떤 신념에서 어떤 식으로 말을 하더라도, 논리적 정당성까지는 못 갖추더라도, 말로서 누군가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상처가 되지나 않을까 최소한 그런 염려는 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신념에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이 누군가를 해치거나 불행에 빠뜨리게 되지나 않을까 최소한 그런 배려는 해야 할 것 같다.

 

예컨대 로미오와 줄리엣 버금가는 두 앙숙 집안이 있었다고 치자. 옛날이라면 산 넘어 두 집안 간에 만석꾼인가 천석꾼인가를 다투었다고 치자. 두 집안에 공교롭게도 자식이 귀하더니, 어느 한 집안에서 옥동자가 태어났겠다. 그럼 다른 집안은 그 자식농사를 무척이나 부러워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걸음발도 떼기 전부터 걷지도 못할 아이라고 저주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이요 정서였었다.

 

강보에 쌓여있을 때부터 새 정부를 옭아매면 어떻게 할지, 이제 첫걸음을 내딛는 상대에게는 일단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적이라 할지라도 세워놓고 맞싸워야 떳떳한 것 아닌가.

 

신념이 표현되는 말이라고 해서 사회적 함의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심지어 옳건 그르건 신념조차 수반되지 않은 허구도 남발하는 오늘날, 할말 다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자유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 같다.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7. 7. 6. 10:31
서용좌 3년 만의 장편 ‘흐릿한 하늘의 해’  

2017년 07월 06일(목) 00:00

 

 

 

 

 

 

소설가 서용좌(전남대 독문과 명예교수·사진) 교수가 신작 장편 ‘흐릿한 하늘의 해’(푸른 사상)를 펴냈다.

2014년 ‘표현형’ 출간 이후 3년 만에 펴낸 작품에서 작가는 우리사회 대표적인 비정규직 중 하나인 시간강사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설은 공부를 잘해 외국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현실은 ‘지방시’(지방대학 시간강사)를 전전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주인공이 저자의 전작 ‘표현형’의 서술자 한금실이라는 점이다.

이번 작품 ‘흐릿한 하늘의 해’에선 한금실의 의식이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그녀의 삶은 비루하기 짝이 없다. 가진 것은 없고 시간은 넘쳐나는 비정규직 강사의 현실은 막막하고 고달프다.

어느 순간 한금실은 일상의 순간들을 천착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등장인물이자 서술자로서, 자신과 이웃의 사소한 사건들을 언어화한다. 소설 전편에는 소외되고 배제된 이웃들에 대한 애잔한 시선이 깔려 있다.

저자는 한금실이라는 서술자의 목소리를 빌려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그렇게 어설프게 해석하는 것에 불과하리라”면서 “그러므로 나의 이야기는 다만 근저에 놓인 사건들의 주관적 변형에 불과한 것임을 안다”고 밝혔다.

/박성천기자 skypark@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