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7. 7. 5. 02:15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부디, 어른들의 나태와 무능·오만까지 끌어안길”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26. 부활
2017년 04월 17일 (월) 11:06:19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어제가 부활절이었다. 올해의 부활절은 세월호 3주기 추모행사에 맞춰 왔다. 세월호의 부활을 의미하는 듯, 마치 하늘이 있어 그들을 다시 살리는 듯, 최후의 그들을 뭍에 올려놓고 왔다. 올 봄 하늘은 ‘지평선이나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대의 넓은 공간’인 물리적 하늘 그 이상으로 느껴진다. 기독교인이 아닌 나에게도 이 부활절은 뭔가 뭉클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부활이란 영원불멸하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끔찍하고 놀랍도록 두려운 죽음에서의 부활이라는 그 비슷한 말이 맴돈다.


 

긴 겨울 동안 사람은 확실히 환경의 동물임을 실감했다. 눈만 뜨면 텔레비전 화면을 켜는 행동에 굴하면서, 아차, 태양열로 반응하는 흔들인형(flip-flap)처럼 인파만 보이면 저절로 손을 흔드는 맹목과 무엇이 다르랴 반성했다. 4월이 되자 나는 일부러 엇박자를 내어 최근의 뉴스지향 습관을 털어내고 일상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절, 나라 안팎의 세상일을 어차피 잘 모르던 그 시절이 차라리 그리웠다.


그래, 내려갈 사람은 내려갔고, 올라올 배는 올라왔으니 됐다! 그리고는 모처럼 평온이 찾아왔다. 이제 그 나머지는 스스로 귀결되리라.

 

   
  ▲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http://blog.naver.com/nabca)  
 

대선을 앞두고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고 되물을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모두가 몰입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담보해내야 한다는 열정이 옳겠다 싶기도 하다. 벌써부터 우려의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또 다시 막강한 배후가 염려된다거나 어제의 재림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선거도 하고 다른 준비도 했다.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할 것이다. 결과는 알 수 없을 일이로되, 설마하니 지난 번 같은 불가해한 샴의 쌍둥이를 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확률적으로 보아도 그런 일은 가까운 장래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 아무래도 지난 몇 해는 온 나라가 판타지나 공상과학영화 속에서 살았나 보다.

 

그렇게 4월이 왔고 부활절이 됐다. 그러자 여전히 가슴을 짓누르는 막연한 죄의식이 다시 일렁였다. ‘우리가 죽인 300여 희생자들에게’(고경일) 바친 만화 한 장, 동생의 무사귀한을 위해 놓아둔 팽목항의 운동화 한 짝, 그 사진을 슬쩍 본 기억은 영원하리라. 신나게 수학여행을 떠나서 돌아올 줄 모르는 자식을 어찌 잊으며, 더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 팽목항에서 보낸 3년의 연옥을 어찌 잊으라 하겠는가. 아침에 눈을 떠도 마음의 달력은 영원히 그날 2014년 4월 16일에 갇혀있을 그들의 삶을 그들 아닌 우리가 이해한다는 말은 감히 하지 말자.

 

‘눈을 뜨면 다시 어제 아침’이라는 모티브의 코미디-판타지 영화가 있었다. 미국영화인데, 다람쥐 비슷한 마멋이 제 그림자를 보면 다시 동면에 들어가 봄이 늦는다고, 그렇게 봄이 오는 것은 점친다는 성촉절 즈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로맨스까지 곁들인 그 영화는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자 어제 아침으로 깨어나는 악몽을 털고 내일을 맞게 된다는 해피엔딩이었지만, 팽목항은 영화가 아니었다. 아직 어둑한 새벽을 뚫고 물 밖으로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1073일, 뭍으로 올라와 안착하기까지 또 숱한 날들, 마음속에 멈춰있는 달력과 함께 정지되어버린 삶을 이승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가족을 잃고 느닷없이 서로 이웃이 되어 살아온 미수습자 가족들이 세월호를 맞으러 목포신항으로 옮길 차비를 하는 장면들을 보게 됐을 때의 부끄러움, 그것은 차라리 쓰라림이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무슨 죄였을까만 그 긴 시간을 그들과 함께 했고,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는 성소를 마련해 그들을 위로했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가족들이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 길을 소형선박에 타고 뒤따른다는 뉴스에는 또 한 번 가슴을 졸여야 했다. 세월호가 오다가 맘 바꿔 다시 돌아가려는 것을 막기라도 하려는 듯, 뒤에서 지키면서 달래려는 듯 조용히 뒤따른 그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감옥에서 탈출시도를 하는 것은 석방이 얼마 남지 않은 죄수들이라던 말이 생각났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 늘 합리적이기만 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자식을 따라 가족을 따라 바닷물에 뛰어들고픈 자포자기의 유혹이 일면 어쩌나. 마침내 뭍에 오른 유령 배, 그 뼈다귀를 넋 없이 바라보며 영원히 자식을 가족을 삼켜버린 바다를 원망하며 이 마지막 순간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있을 그들을, 아픔을 딛고 일어나야 하는 그 찢어진 가슴을 다독이고 싶다. 부활을 믿으세요!

 

물론 부활이나 영생은 호모 파버의 과학하는 두뇌로는 믿기 어려운 함수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는 간단하기도 하다. 우리가 부모님의 산소를 찾으면 거기 앉아서는 누구나 마음속으로 대화를 한다. 돌아내려오는 길에는 소통의 후련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살아있으면 부활이요, 영생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꽃다운 나이에 꿈에 부푼 시절에 스러진 영혼들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갑자기 나는 그간의 무작정 독서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플라톤의 프시케(Psyche)를 이제야 설핏 이해할 것 같다. 프시케는 사람에게서 가장 중요한 영혼이라는 의미이며, 죽음에 의해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된 이 영혼은 오히려 강한 존재가 된다. 육체를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사색이 가능해지므로, 영혼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보다 좋은 상태로 상승한다. 어쩌면 신의 영역 가까이로. 그 비슷한 이해를 이 봄에 함께 부활했을 젊은 넋들의 존재에서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담쟁이처럼 손에 손을 잡고 다 같이 함께 부활했을 너희들의 넋!

 

너희들의 넋은 이 땅에서 영원하리라. 어른들의 나태와 무능과 나아가서 오만까지를 해맑은 가슴으로 끌어안고, 세상의 온갖 나약함과 비겁함을 어루만지며, 더는 그러한 비극은 없을 것이라고 오히려 위로하면서. 너희는 아마 늘 헤매는 우리의 나침반이 되려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7. 7. 5. 02:14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 친구란 무엇일까?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25. 친구
2017년 04월 03일 (월) 13:18:18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요즈음 한국에서 뉴스 채널을 외면하고 살기는 면벽수도를 실행하고 있는 이가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 같다. 엄청난 뉴스들이 토네이도처럼 솟구쳐 오르니 피할 도리가 없다. 무엇보다 세월호가 올라와서다. 1073일 만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는 다시 한 번 텔레비전 화면에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고정시키고 있다. 제발 무사히 이제라도 무사히 오너라, 와서 비밀을 열자! 

그 사이사이 탄핵으로 파면돼 마침내 구속되기에 이른 전직 대통령 관련 소식들과 새 대통령직을 향한 열기들이 점멸한다. 무엇인가 먼저 해야 할 숙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소심한 사람인지라, 내 머리는 아직 벌건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어제로 향한다. 세월호의 아픔과 반비례 곡선으로 우리를 잠식하고 있는 또 하나 비선이라는 이름의 ‘40년 지기’ 관계가 그것이다.

 

계산하지 않았던 그 시절 친구 사이

 

친구가 뭘까. 근묵자흑이려니, 친구를 사귀려면 너보다 뭐라도 더 나은 사람을 사귀어라! 옛날 우리가 어려서 듣던 충고다. 나는 좀 괴팍했는지, 어린 심보에도 반항을 했다. 누구나 다 더 나은 친구들을 사귀고자 해 화살표가 계속 한쪽으로만 가면 어떻게 마주보며 손뼉을 치는 친구를 만나겠는가, 라고. 큐피드의 화살은 상호 조응하기는 아주 어려운 일방통행으로 쏘아댄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예외인 셈이다.


 

   
 

한때는 피검사로 처음 알게 된 혈액형에 관심들이 많았다. A형은 돌다리도 두드리지만 답답하고, B형은 진취적이나 흔들리고, AB형은 천재형이라지만 가볍고, O형은 진중하지만 속내를 모르고…. 이 모든 멋대로 얻어들은 허튼 정보들을 가지고서 모이고 흩어지고를 되풀이하곤 했다. 물론 그 시절 우정에도 요즈음 말로 썸타기와 밀당이 있었다.

마음이 가는 친구 앞에서 부러 토라지거나, 며칠간 말도 걸지 않는다. 주의를 끌려는, 유치하지만 애교 있는 행동들이었다.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친구 사이 유불리를 따지는 계산들은 없었다.

 

친구라고 하면 가슴 아프게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떠오른다.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런던과 파리를 오가면서 서술된 다른 명문들은 차치하고,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대신해 목숨을 내던진다는 뭉클한 이야기였다.

 

프랑스 귀족 청년 다네이는 폭풍의 파리를 떠나 이제는 루시와 결혼한 몸으로 런던에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운명적으로 다시 파리의 감옥에 갇힌다. 루시를 혼자서 흠모하던 영국인 변호사가 그녀를 위해 다네이를 구출해 내고자 파리로 간다. 그는 마침 닮은 몸을 빌미로 죄수와 자신을 바꿔치기에 성공한다. 다네이는 술에 떡이 된 채로 감옥 밖에서 정신을 차린다. 친구 일행의 무사 탈출을 확인하면서 단두대에 설 수 있는 용기와 사랑, 그 비장감에 떨었던 기억이 새롭다. 고등학생이 소화하기에는 벅찬 내용이었지만, 작은 도서관에는 책들이 많지 않았고, 소설책들은 무턱대고 읽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난 겨울부터 이 봄까지 우리의 일상을 앗아가다시피 한 저 두 사람(박근혜·최순실) 40년 지기는 어떤 사이일까. 그들의 엄청난 계획과 추진력과 성과물(?)들을 보면 팀워크가 아주 빼어난 공동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그들의 행위의 적법성이 문제가 되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러 ‘시녀 같은’ 사람이라 규정했으니, 자신은 여왕이라는 전제였을까. 그 말처럼 단순하게 여왕과 시녀 사이인지, 실은 시녀 역이 제작 감독하고 여왕 역은 다만 주연을 맡은 연극인지 누가 알랴. 어떻게도 이해가 되지 않은 끈적끈적한 관계다. 오죽하면 ‘피보다 진한 물’이라고 표현됐을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관계 자체를 넘어서 재판에 임하는 태도다. ‘시녀 같은’ 사람은 무례하다시피 항변하면서 자신과 여왕을 지키고 있는 것 같은데, 여왕은 시치미를 떼고서 시녀에게 그 모든 잘못의 책임을 미루는 분위기다. 물론 일심동체란 말은 부부사이에도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다. 하물며 여왕과 시녀 사이에야. 하긴 또 어딘가에 복병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돈과 몸을 가진, 그러니까 엄청난 부자이면서도 머리도 체력도 우수한 그들이다. 일단 여왕역이 살아남아서 곧 다시 권력을 쥐고, 곧 시녀역을 구한다는 시나리오일까? 시녀께서 그 동안 쓴 시나리오는 상상을 절하니까, 다음 속편을 누가 짐작하랴. 

 

재미없다. 여왕이 스스로 내뱉은 단어라서 사용해보았지만, ‘시녀’ 버전은 여왕의 비인간성마저 드러내는 마중물에 가깝다. 공공의 장에서 직간접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은 어렵다 못해 위험한 과제다.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이 무심코 던지는 돌멩이가 돼 애꿎은 개구리를 맞추지나 않을까 사려야 한다. 탄핵 전후로 멀쩡한 학벌에 빛나는 지위에 있지만 골 빈 사람들이 내뱉는 사극 버전들은 또 어떻게 이해할까. 세상을 통째로 이해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괴롭다.

 

손상된 자아가 잉태한 비극

 

원론적으로 회의가 든다. 친구란 무엇인가. 진정한 친구에게라면 내 생각을 지배하게 내버려둘 수 있는가. 아니, 친구란 그저 함께 걷는 동행일 뿐이다. 함께 걸어서 좋은 동행이다. 오늘 이 순간을 늘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좋은 동행을 만나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허용되지는 않기에 행운이라 부르고 싶다. 

 

다만 자본집중이 가속화되는 이 경쟁사회에서 사람들이 타인과 맺는 관계는 우리가 어려서 철없이 지냈던, 유불리를 모르던 시절만 못하게 됐다. 마르틴 부버는 그것을 ‘나와 너’의 관계와 ‘나와 그것’의 관계로 구분했는데, 친구를 ‘그것’ 즉 객체화한 이용가치로서 대한다면 진정한 인격적으로 대등한 관계에서 멀어질 따름이다. 

 

우리가 부지중에 바라게 되는 지고지순의 친구, 염화시중의 관계라 하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는 완전한 평등을 전제로 해야 하리라. 진정한 ‘나와 너’의 관계란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건 지배 또는 의존관계가 시작되면 자아는 손상을 입게 되고, 손상된 자아는 비극을 잉태한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이 작은 개념, 형체도 없는 것 하나, 왜소한 자아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일 것이다. 

 

비록 세상살이에 거치적거리더라도 그것만큼은 내어줄 수 없는 마지막의 것, 자아를. 하여 두 건강한 자아가 만나진다면, 비로소 그때 서로를 친구라 부를 수 있으리라. 마음을 나눌 친구 하나를 얻는다는 것은 세상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타인들의 존재를 믿는 첫걸음이 되리라.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7. 7. 5. 02:14

 

 

“서로에게 ‘사과’ 를 한 알 내밀자”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24. 사과 같은 사과
2017년 03월 20일 (월) 11:22:50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겨울을 지나 봄을 맞는 일은 늘 어렵다. 새싹이 돋으려면 얼마나 무진 애를 써서 무거운 흙의 틈새를, 마른 가지의 껍질을 뚫어야 하는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우리에게 허가해 준 봄날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그 일’을 보도했고 또 알고서 분노했던 많은 국민들을 엄벌하고 말았을 것을, 이번에는 ‘그 일’을 책임져야 할 주역이 파면됐다. 

당위성이 현실적 어려움을 이겨냈음이다. 물론 국론의 양분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100명 중 92명이 정당한 판결이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고 절대다수가 극소수를 폄하할 수도 없다. 생뚱맞은 말 같지만, 우리 서로에게 사과를 한 알 내밀자! 

 

 

아버지가 사다주신 紅玉

   
 


 

말장난도 가끔은 쓸모가 있다. 사과를 해야 마땅하지만 어색할 때, 상큼한 사과를 내민다는 것이다. 나도 실제로 사과로 사과를 한 일이 있었다. 지난 신록의 계절 5월 끝자락에 사소한 일로 선배에게 밴댕이 속을 내비쳤었던 일이 있었는데, 평소에 친밀감을 느끼던 사이라서 가슴 아팠다. 그래 놓고 연말을 맞으니 해묵힐 일은 아니다 싶어졌다. 심성 넉넉한 친구가 선배와의 만남을 주선했을 때 슬쩍 사과상자를 들고 찾아갔다. 명절 돌아오니까요…… 우물쭈물…… 지난 일에 관해서는 한마디 없는 채로 끊어졌던 연줄이 이어졌다. 사과는, 사과의 효력이란 신기하다.

 

하고많은 과일들 중에서도 보통 사과를 으뜸으로 친다. 사과가 제일 맛있었던 기억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늦은 저녁에 사 들고 오시는 빨간 홍옥의 맛이었다. 할머니가 대청에 쌓아둔 국광과는 비교도 안 되게 상큼한 빨간 사과를 베어 물고서, 상기된 우리는 백설공주가 깨문 사과에 독이 빨간 쪽 푸른 쪽 어디에 숨겨졌을까 서로 우기며 재잘거렸다.


한번은 아버지가 제 아들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사과를 쏘아 맞춰야 하는 벌을 받은 명사수 이야기도 함께 해주셨다. 우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귀를 기울였는데, 대부분의 옛날이야기가 그렇듯 해피엔딩이었다. 명사수는 한 치의 착오 없이 사과를 쏘았고, 만일의 경우를 위해 감춰둔 두 번째 화살로 결국 폭군을 끌어내린다는 줄거리였다. 다 자라서야 독일문학의 고전기 프리드리히 실러가 쓴 『빌헬름 텔』에서 그것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 스위스 지방에서 내려오는 전설임을 알게 되었다. 전설에서도 압제자는 결국 내려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역사에 태초부터 사과가 등장한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5) 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자 있으랴. 금기의 사과를 따먹은 인간이 신에 버금가는 지혜를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이브의 덕이다.


먼 옛날 트로이 전쟁도 황금사과 한 알이 시작이었다. 브레드가 <만일 If>에서 노래하는 ‘수천의 배를 진수시킬 수 있는 얼굴’은 파리스 왕자가 황금사과 한 알로 얻은 헬레나이자, 그녀가 불러들인 그리스 연합함대를 말한다. 사과는 그리스로마신화의 단골 메뉴다. 달리기의 명수 아탈란테 이야기의 전환점도 사과다. 아름다운 이 처녀를 얻고자 달리기시합에 참가한 많은 청년들이 죽어나가자 마침내 심판 멜라니온(또는 히포마네스)가 직접 시합에 나섰고, 아프로디테 여신에게서 받은 사과들을 던지며 그때마다 흠칫 흠칫 머뭇거리던 아탈란테를 겨우 이겼다고 하니까.

 

그렇게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사과는 과일의 중심이었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심겠다는 나무가 사과나무였다. 왜 하필 사과나무였을까. 이 무한 긍정, 삶은 다만 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인식은 합리적 이성의 방식이다. 그뿐인가. 뉴턴의 사과 한 알은 만유인력에 대한 깨달음을 선물하지 않았는가. 사과의 덕택으로 지혜를 얻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멍청한 감성으로 전쟁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합리적인 이성에 더해 첨예한 과학을 하는 뇌까지를 지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태초에 사과 이야기는 없는 듯하다. 자생하는 능금에 관한 이야기가 ‘계림유사’(1103년)에 등장하며, 조선에 이르러서는 종묘제사용으로 사용하였다고도 한다. 본격적으로는 광무10년(1906년)에 뚝섬에 원예모범장을 설치하고 여러 나라에서 과수의 품종들을 도입할 때 사과나무도 들어왔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1978년에는 대덕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원에 바로 그 영국에 있던 ‘뉴턴의 사과나무’ 3대손이 이식되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턴이 그 아래에서 명상을 했다던 ‘사과가 떨어진 나무’는 표지를 세워놓았지만 애석하게도 죽어버렸는데, 덜 죽은 곁가지 하나가 과수연구소로 보내져 생명을 회복했고, 후손들이 세계로 널리 퍼져나가는 중에 그예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옛날엔, 내가 어렸던 시절엔, 사과는 달걀꾸러미 또는 겨드랑이에 끼고 오는 토종닭 한 마리와 함께 정을 나누는 선물의 대명사였다. 지금은 퍼덕거리는 닭을 보자기에 싸 들고 다니는 사람도 없고, 짚으로 엮은 달걀꾸러미도 사라졌지만, 사과는 여전히 제수용 배와 더불어 명절 선물로 꼽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과궤짝이 더러운 지폐의 이동수단이 되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치 흑역사의 상징적 장면이었던 2002년 대선의 ‘차떼기 사건’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무려 150억 원이 숨겨진 사과상자들이 트럭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OO당에게 전달된 장면은 첩보영화에서나 봄 직한 장면이었다.

 

모든 오명과 변칙에도 불구하고 사과는 상큼하고 맛있는 과일의 으뜸이다. 게다가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사과 한 알로 가능하니 얼마나 유용한가. 스스로 잘못이 느껴질 때도 사과를 한입 베어 물자. 이 봄에도 어김없이 사과 꽃들이 필 것이다. 사시사철 신선도를 유지한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대다수 국민들의 뜻과 헌법재판소의 법이 일치하는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다.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