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5. 12. 27. 23:02

자유를 증오한다

 

 

자유를 동경했다, 동경했었다.

 

1997년 겨울, 세 번째 독일에 갔던 그때만 해도 내게 자유는 아름다운 가치였다. 저 남쪽 어느 대학의 교수를 우연히 만난 것은 일종의 인문학 강좌에서였다. 쾰른에 거주하며 뷔페탈 대학에 오가느라고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코앞의 별다른 과제가 없다 보니 야간의 가벼운 강좌도 기웃거리다 유명한 교수의 이름을 발견하고 갔던 참이었다. 연사였던 그 교수는 자신의 책과 논문들을 읽었다는 이역만리 한국의 시원찮은 독문과 교수를 직접 만난 것이 기분 좋은 일에 속하겠지만, 이상한 질문을 했다. 마치 뭣을 구하러 가정과 애들이 있는 나이 든 여자가 외국에 나와 있는 것이냐, 하는 식으로. 실제로 전문자료를 구하게 위해서 독일에 간다고 하는 것은 그리 의미가 없는 시대였으니까. 또 이미 교수자리에 있는데 - 독일에서는 교수 자리가 대단해서 그랬겠지만 - 뭣 때문에 애써 독문학의 본고장을 쓸쓸히 배회하느냐는 식의 질문이었다. 어차피 독일 사람들처럼 독일 정서에 함몰되어 독문학을 완벽하게 체득할 수도 없으면서? 문학이 뭐라고?

질문의 저 깊은 회의를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은 나는 자유라는 말을 입술에 달고 있었다. 일상으로부터의, 강의로부터의, 가정으로부터의,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어쩌면 생 자체로부터의…… 자유를 위해서. 독일학술교류처의 장학금으로, 혹은 학교당국의 연구비로, 연구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유유자적하는 자유를 어찌 예찬하지 않았겠는가.

 

추상적인 자유는 아름다운 무엇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건배라도 할 일이 있으면 자유를 위하여, 라고 외칠 뻔도 했다. 이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자유시장경제의 혜택을 누리며 성장해온 우리들, 이 아니 자랑스러운가, 라고. 자유시장경제가 자유민주주의와 합심해서 민주주의를 잡아먹고 우리들로부터 온갖 원래적 자유를 침탈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로, 나는 막연히 자유를 예찬하고 있었다.

 

시장경제체제는 사유재산제도에 기초하므로, 다른 말로는 자본주의 또는 자유기업경제다. 기업경제가 자유를 보장받는다. 이 자유는 상대에게 창끝을 겨눈다. 창끝은 가진 자유가 적은 사람의, 창을 든 손은 가진 자유가 넘치는 사람의 몫이다. 기업의 순이익이 상승해도 노동자의 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다. 최악의 경우, 기업이 투자는 미루면서 몇 년 하다가 타산이 안 맞다 하면서 손을 떼어버리면 그만이다. 잘 준비된 시나리오만 있으면, 경영위기를 서류상으로 증명만 하면, 문 닫을 권리가 생긴다. 사람 내쫓는 것도 권리가 된다. 기업의 자유는 노동자들을 단박에 해고할 자유까지를 말한다. 자유가 보장된 세상이 그렇다.

 

이러고서 자유를 예찬해야 하다니. 나는 언젠가부터 자유를 증오한다.

원론적으로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 상태를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상충이 일어난다.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가 일치하기가 쉽지 않다.

 

고도성장의 시대에 우리나라를 기회의 땅이라 했다. 상당 수 자수성가를 꿈꾸던 사람들은 계층 상승을 이루어 냈다. 계층 상승을 이루다 - 이 말 자체가 사회에 상존하는 계층의 구분을 인정하는 씁쓸한 말이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꿈을 준다. 자유 경쟁을 통해서 계층이동이 가능하다는 꿈을. 경쟁할 자유? 그것도 자유인데 경쟁에서 낙오된 것은 낙오된 자의 무능이다, 라고들 한다. 자유 경쟁이란 어불성설이다. 같은 조건이 아닌 자유 경쟁은 자유 경쟁이 아니다.

 

느닷없는 생각. 내가 자유 경쟁으로 대입을 뚫었지만, 딸을 낳으면 꼭 이화여대에 보내겠다는 우리 어머니의 성화와 딸을 무슨 대학공부 시키냐는 다른 어머니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을까. 나는 분명 무심한 어머니의 딸 대신에 대학에 합격했을 것이다.

 

나의 자유는 많은 사람들의 부자유를 담보로 하기가 십상이다. 내가 마시는 물과 먹는 쌀은 누군가의 부자유의 대가이다. 쉬고 싶어도 하기 싫어도 물과 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쏟은 노력과 그 일의 결과다. 그들이 내게 물과 쌀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과 가족의 생계비를 벌고자 했을 뿐이더라도, 나는 그들의 자유를 대가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퍼 쓴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의 대가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내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다.

 

반대의 경우는 더 심해진다. 내 자유를 담보로 나와 가족의 생활비를 버는 노력이 그 생활비를 충족하지 못할 때, 나는 내 자유를 다 내어 주고도 먹고 입고 사람답게 살 자유 - 인격을 유지하면서 살 자유 - 를 건지지 못한다. 내 자유는 저당잡힌다, 이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이 자유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자유를 증오한다. 증오해야만 자유를 누릴 심보를 줄이게 된다.

자유를 누리고픈 심보가 문제다. 나의 감정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는 상대를 보면, 나도 자유롭게 말하고 싶다, 상대의 감정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은커녕 말도 자유롭게 못할게 뭔가, 하지만.

 

내가 자유를 느낄 때 그 자유가 온전히 내 몫인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온 것은 아닐까. 내가 덜 자유로울 때 나 아닌 타인들의 자유가 덜 침해받으리라는 것이 공식이니까. 지구상에 자유의 부피와 무게는 일정한데, 내가 덜 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 누리는 자유만 해도 73억분의 1, 그 만큼의 자유로 만족하려면 아예 자유를 외면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지구는 온통 인간들의 소유물만도 아니다. 셀 수 없는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의 자유는 인간들의 자유의 희생이 되고 있다. 땅과 물 또한 인간들의 자유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태고의 숲은 더 이상 숲이 아니라 인간들의 미식의 자유를 위해 커피재배 단지로 변하고, 사육동물들의 죽음의 수용소로 변해간다.

 

자유라는 가치를 생각하다보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래서 나는 증오한다, 자유를. 원래는 꿈꾸었던 아름다운 가치, 자유를.(15.3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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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0. 『바람으로 별빛으로 또 가슴으로』, 이화동창문인회, 개미, 230-233쪽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5. 12. 27. 23:01

더불어 살기

 

오랜만에 강의를 준비했다. 독문학 강의 몇 십 년을 늘 낯설어하며 결국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왔었는데. 그 뒤 외국인대학생들에게 교양과목 한국어강의를 몇 학기 했었지만 그건 말하자면 강의는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만나는 인문학 - 스무 개의 강의로 이루어진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인문학 강좌라 했다. 그 중 두 강좌를 맡게 되어 제목을 결정하기에 앞서 내가 어느 속성에 속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나는 무명이지만 소설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강의를 할 수 있는 소설가로는 어림없다고 느껴졌다. 어쨌거나 독문학 분야에서라면 너스레를 떨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망설여졌다. 인문학이 쓸모없다고 홀대 받으니까 권장하는 이런 (억지)강의에서 - 물론 자발적인 수강생들의 숫자는 예상 보다 많아서 흐뭇하기까지 했다 - 전문적인 독문학 강의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인류의 지적 진화와 사회의 발전 단계’라는 주제로 1)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2) 인간에게서 물질에게로 라는 강의 제목을 잡았다. 마음으로는 두 번째 강의에 역점을 두기로 하면서, 물질이, 물질의 풍요가 어떻게 인간을 ‘삼켜버리게’ 되었는가를 역설하고 싶었다. 초봄의 일이었다, 강의 계획은.

 

그리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시가 현실이 되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그 정도면 얼마나 좋았을까.

강의는 6월이었지만 말하면서 속으로는 울었다. 물질을, 돈을 숭배하는 우리의 가치관이, 교황님의 말씀처럼 ‘돈이라는 새로운 우상 숭배’가 몰고 온 참극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슨 인문학 강의가, 무슨 소설이, 무슨 시가…….

 

우리는 먹고 사는 일부터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고 강의를 끝냈다. 아프리카 최빈국 에티오피아는 커피를 수출한다. 하지만 커피 농장 노동자의 하루 평균임금이 1달러도 안 된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무리 높게 잡더라도 소비자 가격의 1%도 되지 않는다. 유엔식량기구의 발표대로라면 오늘날의 농업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일일 성인 기준 2,200칼로리로 계산해서 120억 인구가 먹고살 수 있는 양이다. 현재 세계 인구는 71억5,500만 명이다. 그러니까 식량이 절반 가까이 남아도는데, 매일 기아로 5만7000명이 죽고 8억4,200만 명이 기아상태라고 한다. 기아로 죽는 사람은 암살당하는 것이고, 살인자는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적인 ‘글로벌’ 경제 질서다.

 

이 경쟁에서 질 새라 우리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심한 수준이다. 스위스의 1,636시간과 비교하면 엄청나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시민계급은 사유와 학문이나 하고 노동은 노예들의 몫이었다. 개신교에서 노동은 ‘신의 소명’이 되었다. 인문주의 시대에는 인간은 주체요 자연은 객체로서 정복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과학 기술이 전권을 쥐더니 인간노동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추출하는 (귀)신이 되었다. 우리는 컨베이어벨트의 리듬이 명령하는 대로 정확히 인간노동을 제공해야한다. 그러므로 인간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라 저열한 것이다.

 

노동은 소득과 비례하지도 않는다. 미국 CEO의 연봉이 일반 사원 평균 보다 331배라고 한다. 1983년에는 46배였었는데. 우리나라도 어느 그룹 회장은 301억 원, 다른 어느 그룹 회장도 140억 원을 급여로 받으셨다고 한다. 대기업 일반 직원들 평균 연봉의 500배, 200배에 해당한단다. 월드컵 첫 골의 주인공 이근호의 연봉이 178만8000원으로 이번 월드컵 출전 선수 700여 명 중 최하라고 했을 때 우리는 (군인이라서 당연한 일인데도) 다 놀랐다. 선수들 중 최고 연봉 742억 원은 4만 배, 우리나라 선수 최고 연봉 40억 원도 2천 배가 넘는다니 ‘살인적인’ 격차다. 군인들 상호간도 예외가 아니다. 창군 당시 이등병과 대장의 월급 차이는 30배였지만, 지금은 200배라고 한다.

 

노동시간은 삶을 위한 필요 정도로 규제되어 마땅하다. 생명과 안전 그리고 환경 관련 규제는 강화되어도 모자라다. 필립 제닝스 국제사무직노조연합 사무총장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규제완화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올드 버전이며,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친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대도 우리 코끝엔 ‘474목표’라는 홍당무가 걸려있다. 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말이다. 지금 국민소득 2만 5천 달러라 해도 대부분의 4인 가족 가정이 연 1억을 전혀 체감하지 못한다. 4만 달러 소득은 어느 계층 소수에게만 집중될 것인지? 허무한 꿈이다.

 

우리는 경쟁이 성공의 열쇠라고 교육받았고 또 우리의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열매 많은 것이 곧 진리라는 생각, 인간이 원하는 것은 값있는 무엇, 태환권이라는 생각, 생활에서 현금 구실을 할 수 있는 지식이 진리라는 생각이 미국에서 들어와 우리나라 초창기 교육자들의 정신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행복한가? 이럴 때엔 노자의 ‘절학무우’가 떠오른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그 구절을 순 한글로 번역하시면서 ‘써먹기부터 하련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을 것이오라.’라고 쓰셨다.

 

독일어에서는 경쟁사회를 ‘팔꿈치사회’라는 단어로 말한다. 동료를 친구를 심지어 형제를 팔꿈치로 젖히고서야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 - 결국 승자가 누리는 모든 것은 승자의 팔꿈치에 밀려 떨어져나간 많은 패자들이 함께 누렸어야할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구상의 자원도 재화도 한정되어 있으므로.

 

봉건 피라미드 위에 ‘신 대신 돈이 자리한’ 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은 절대빈곤 못지않게 사람을 절망하게 한다. 인구 10만 명 당 33명,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연속 8년간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 - 우리는 어떻게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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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20. 「더불어 살기」, 『어디쯤일까』, 이화동창문인회, 개미, 128-131쪽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5. 12. 26. 23:32
내눈엔 은혜, 남눈에는 특혜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⑨ 평가의 계절
2015년 12월 23일 (수) 13:08:01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12월’은 12월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살아온 한 해를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12월은 살벌하다. 한 학기의 긍정적 열매가 아니라, 지옥문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성적평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들의 입장에서도 평가란 피를 말리는 주제다.

 

그해 가을학기는 악몽으로 시작됐다. 개강 전날 오른쪽 귀가 먹통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찾은 이비인후과에서는 그것을 응급상황이라고 했다. ‘우측돌발성감각신경성난청’(한국질병번호 H91.2) 그 병은 학교를 탈출(!)하는 일로 이어졌다. 2주 입원하고 2주 순연하면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 막상 학기말이 되니까 숨이 막혔다. 

성적제출 기한이 임박해서야 기말시험을 치렀고 그날, 세 과목의 답안지 봉투를 모아들고 어둑해진 3층 복도를 빠져나오는 동안 갑자기 방망이 하나가 내 머리를 쳤다. 무슨 쓸모 있는 강의를 했다고 이 학생들을 줄세워 평가해서 그들 인생에 복과 화를 더하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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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