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5. 10. 2. 15:52

 

무엇이 우리를 빌어먹게 만들었을까?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③ 밥 이야기
2015년 09월 25일 (금) 11:40:14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밥이 제일 풍성한 한가위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살고, 그것도 붙박이 교수가 되면 어째도 밥은 먹는다. 20년을 그렇게 살고 나면 노후연금도 받을 수 있으니 철밥통 하나를 꿰찬 셈이 된다. 그래서 비아냥의 대상이 돼도 밥을 먹으니 어쩔 수 없다.

   
  ▲ 일러스트 돈기성  
 

노동 시간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수에게 비호감을 갖는다. 일주일에 아홉 열 시간 강의를 하고 그 월급을 받다니! 가끔 천재적으로 아이큐가 높고 공부 효율성이 좋아서(?) 골프나 여행 같은 시간 많이 드는 취미를 가진 몇몇 교수들 때문에 더더욱 그런 누명을 쓴다.

그건 누명이 맞다. 우선 연구재단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 흘리는 땀을 몰라서다. 등재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기에도 의무 탈락률이 ...

셋, 밥 이야기

밥이 제일 풍성한 한가위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살고, 그것도 붙박이 교수가 되면 어째도 밥은 먹는다. 20년을 그렇게 살고 나면 노후연금도 받을 수 있으니 철밥통 하나를 꿰찬 셈이 된다. 그래서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도 밥을 먹으니 어쩔 수 없다.

노동 시간과 관련해서 생각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수에 비호감이 된다. 일주일에 아홉 열 시간 강의를 하고 그 월급을 받다니! 가끔 천재적으로 아이큐가 높고 공부효율성이 좋아서 골프나 여행 같은 시간 많이 드는 취미를 가진 몇몇 교수들 때문에 더더욱 그런 누명을 쓴다.

그건 누명이 맞다. 우선 학진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 흘리는 땀을 몰라서다. 등재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기에도 의무 탈락률이 있고 보면, 2000쪽 독서를 하고 초벌 200쪽을 썼다가 예닐곱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서 20쪽으로 촘촘하게 써낸 논문도 탈락의 수치를 겪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위 밥을 먹는다. 자유시장경제 사회에서 - 나는 신문의 경제면 이해도가 엉망인 약점이 있으므로 비슷한 뜻으로 읽어주기 바라며 - 태환권을 획득하는 일은 성스럽고도 소중한 일이다. 인간적 굴욕을 가족이나 돌봐야 할 사람들의 밥을 위해서 감내하는 것이야 말로 위대한 일 중 하나다. 상사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것은 애교요, 구둣발에 정강이가 까이는 일까지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과거에는. 대학사회라고 아주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에는. 군인들 세상일 때 어딘가 끌려가서 각목을 낀 채 무릎을 꿇리고서 피눈물을 흘렸다는, 지금은 고인이 된 교수도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라는 압박이나 출석부까지를 감사 대상으로 해서 교수를 모욕하는 일 정도는 그것으로 밥을 먹으니 참아야할 일이라고?

미안한 말이다. 밥이 없으면 죽지만 밥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유럽연합 골칫거리가 된 그리스의 자살률은 100위권을 훨씬 넘고 10대 수출국 중 하나라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2위라니 무슨 말인가. 밥과 자살률은 크게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빵과 서커스로 통치할 수 있다는 정치권의 유구한 지배논리에도 밥 아닌 뭔가를 안겨주려는 꼼수가 들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배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그 두 번째 무엇을 고려했다니! 어떤 변이로서 말해도 물질 아닌 정신적 무엇이다.

정신을 저당 잡히고 - 그렇게는 못 산다. 살더라도 사는 것이 아니다. 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가장 비굴한 자세 가운데도 변명의 숨구멍이 있어야 산다. ‘나라’가 창조경제로 만들어준 밥을 먹고 살지라도, 굴종할 필요는 없다. 밥은 원래 있어야 할 것이었으므로 땅위에 살아가는 사람의 일종의 권리다. 밥에 접근권한이 줄어들어 빌어먹는 기분이라면 권한이 줄어든 과정에 문제가 있다. 거꾸로 말하면, 너무 많은 밥을 제 것으로 갖는 것이 좋은 - 여기서는 ‘선한’ -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있다. 세계 71억 인구 중 8억 이상이 기아상태라는데, 유엔식량기구에 의하면 오늘날의 농업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총 식량은 120억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란다.(장 지글러, 2014) 식량이 거의 절반이나 넘쳐나는데 굶어죽는 사람들이라니! 이해가 안 되기는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창군 1954년도에 불과 30배 차이였던 일병과 4성 장군의 봉급 차이가 50년 지난 오늘날엔 무려 279배로 높아졌단다.(임종인, 2004) 발전되어온 사회라는 표현이 맞는가.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노동수탈이 국가가 경영하는 군대 내에서도 자행된다,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교수는 교육이라는 밥값을 해야 한다. 인간은 교육받으려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잘’ 살자는 취지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교육할 필요가 생겼으니까. 그러나 교수는 밥 눈치 보느라 권력자와 자본의 입맛에 맞춰 학생들을 마구 휘어지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돈에 의해서 평가 될 것을 알고서 세상에 태어난 것은 정말 아니니까.

사회는 최고의 가치를 그 구성원인 우리가 선택하도록 열려있는데, 깃발에 새겨진 글자 ‘돈’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펄럭거린다. 밥에 저당 잡혀서 깃발에 다른 바람직한 가치를 적어 넣는 일을 저어하고 있기 때문이다.(끝)

 

 

교수신문 9.25.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5. 9. 22. 22:13

보따리 꽁꽁 봉해버리고 ‘고려장’ 택했다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② 보따리장수
2015년 09월 15일 (화) 13:24:53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최근 대학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의실이 ‘취업준비반’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평가지표들이 강의실을 꽁꽁 옭아맨 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강의현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원로급 교수의 생생했던 강의실 풍경을 재조명해 고등교육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평가와 경쟁 속에 대학이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돌아본다.

 

   
  ▲ 일러스트 돈기성  
 

여름의 정점에서 산업수요에 맞게 학사구조를 조정하는 대학에 정부가 많게는 300억원까지 지원하겠다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 나왔다. 무슨 종합선물세트도 아니고, 명실공히 대학은 취업준비과정이 될 모양이다. ....[계속]

둘, 보따리장수

 

 

여름의 정점에서 산업수요에 맞게 학사구조를 조정하는 대학에 정부가 많게는 300억 원까지를 지원하겠다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 나왔다. 무슨 종합선물세트도 아닌 것이, 명실 공히 대학은 취업준비과정이 될 모양이다. 대학생은 취준생의 다른 이름이다. 대학과 교수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기준이란 곧 취준생의 취업률이다.

오늘날 합리적이라는 개념은 같은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일컫게 되었다. 강의라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강사는 필히 교수가 되어야 한다. 같은 교수로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필히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 성과급에는 돈만이 아니라 자긍심도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저자 문제나 표절 논란이 필히 따른다. 합리적인 교수라면 각각 하나씩 논문이 아니라 둘이서 두 개의 공동논문을 제출하는 것이 좋음 - 원래는 ‘선함’인데 여기서는 ‘유리함’이다 - 을 안다. 보직 또한 이타심과 봉사점수라는 두 개의 염기서열이 ‘창조’해낸 가치 중의 하나다.

그래 보았자 그 성공은 표면적 평가요, 잠정적인 판가름일 뿐이다. 강단에 서는 사람들 마음속 저 깊은 곳에는 허무의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교수란 기껏 보따리장수임을 확인한다. 유용한 첨단지식을 파는 경우라 해도, 토플러의 말마따나 그것들은 어느 시점에서 ‘무용 지식(obsoledge)’이 된다. ‘검색’은 살인적 권위로 지식사회를 뭉개고 말았다. 와중에 문학사나 강의하다 보면 이 낡은 물건짝을 팔러 다니는 신세가 처량해지곤 한다. 그걸로 밥을 먹으니 조용해야 하는가, 그건 다른 문제다.

보따리장수라 하더라도 제 물건이 무엇인가는 알려야 할 것 아닌가. 내 고민은 내가 파는 물건이 외국문학이라는 데 있었다. 문학작품은 인류의 최고의 자산들 중의 하나이고 거기에 시대와 국경은 없습니다. 옳다, 그렇게 강의할 수 있었을 동안은. 시금석이란 변한다고, 학생들이 대들면, 시금석은 불변이므로 시금석이라고 우겼다. 학생들은 점점 (독일)문학이 주는 양분을 흡수하지 못했다. 훌륭한 ‘스펙’을 위해 집어 삼킨 유용한 지식들로 영양과잉 상태에 이른 뒤로는, 문학 같은 것은 ‘갈아 먹여도’ 못 먹었다. 독일문학 작품들을 갈아 먹인다는 말은 번역본으로 읽는 것, 정신만 읽어도 되니까. 한국작품을 전채요리로 맛보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다가 또 꼬인다.

“일본이 그렇게 일찍 망할 줄 몰랐었다”라니, 그게 변명이 됩니까? 영원할 줄 알고 충성했다니, 더 기가 막히죠!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하사 우리의 자랑.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깼다”고 칭송을 바쳐요? 가미카제가 되어 승천하라니! 이런 정신 나간 사람이 생명파라뇨! 생명이 뭔데요? 그렇게 대드는 학생으로 강의는 그만 삼천포로 빠진다. 그래도 교수를 당황하게 하는 학생들은 훨씬 나았다.

보따리 풀기 사정은 악화일로였다. 1919년 베를린에서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결성 된 이래 ‘프롤레타리아극장’은 노동자의 의식고취를 목적으로 놓고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폴크스뷔네(민중무대)’과 경쟁을 벌였지요. 그 무렵 우리나라에선 ‘카프’라는 약자로 ……. 한국인 독문과 학생들이 카프와 카프카의 구별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은 어떤 정보에도 무감각을 드러냈다. 교수가 풀어놓는 보따리 내용물은 오직 기말고사 답안지 작성에 필요할 뿐임을 그 눈빛들을 보면 안다. 아예 눈빛을 볼 수 없는 시기가 닥쳐왔다. 어떤 보따리를 풀어도 그들의 관심을 돌릴 길이 없었다. “너의 머리는 어느 덧 파아란 하늘”이 아니라, 턱없는 환상에 젖어있다. 높은 학점, 최고의 스펙, 빠른 취업이 가져다 줄 무한행복에 목을 맸다. 더러는 ‘열공’한답시고 강의를 녹음하는 강도짓도 서슴지 않았다. 세계가 한 뭉텅이로 글로벌스탠더드에 입각해서 글로벌경제로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나는 그들의 경제마인드를 어찌할 길이 없었다.

결론은 스스로 보따리 싸는 일, 자발적인 고려장이었다. 사형집행일을 앞둔 사형수들에게도 기어코 ‘미리’ 자살하려는 강한 욕망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많은 자살자들은 사회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느낌 때문에 자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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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14.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5. 9. 22. 21:50

 

교수신문에 2주에 한 번 연재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가 아니라

늙은 날의 허망을 시작하게 되었다.

 


교수를 향한 조소 속에도 고민… ‘나는 왜 강단에 서나’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①하이에나
2015년 09월 01일 (화) 11:32:10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최근 대학구조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의실이 ‘취업준비반’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평가지표들이 강의실을 꽁꽁 옭아맨 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강의현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원로급 교수의 생생했던 강의실 풍경을 재조명해 고등교육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평가와 경쟁 속에 대학이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돌아본다.

 

   
     

 

 

하나, 하이에나 이야기

 

장례식은 누구의 장례식이거나 슬프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가장 잔인하게 짝을 버리는 방식은 죽음으로써 버림이라 하는가. 죽음 앞에서 사람은 진지해진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라도 살아있던 때를 그린다. 그렇게 한 교수의 죽음이 내게 거의 죽어있던 그때 그 대학시절을 떠올려 준다는 건 인생의 흔한 아이러니의 하나일까.

총장직선제 문제가 정말 문제가 되었다. 한 교수가, 시인이 목숨을 내놓고 지키고자 한 것이 어디 그것뿐이었을까 만은 그것이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들 한다. 그가 지키고자 한 가치는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란 원래의 이름으로 숨은 쉴 수 있을 풍토였을 것이다.

300의 대학들에서 이루어지는 기껏 “대중교육”(이해찬)을 위해 취미생활은커녕 마음 편히 밤잠을 자보는 것이 소원일 대부분의 교수들은 거대 자본의 무한권위 밑에서 어떤 정체성을 지닐까. 학사는 난 이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석사는 공부를 더 해보니 모르는 게 조금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 박사는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교수는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내가 얘기하니까 학생들이 다 믿더라는 위인이라고 놀리는 글이 교수들의 코앞에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밖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교수의 생명은 첫째가 공부다. 차원 높은 공부를 위해 연구비를 지원 받는 것은 돈 뿐 아니라 명성의 문제이므로 어떤 재단의 연구비이건 가릴 겨를이 없다. 아니, 만에 하나 의심스러워도 외면할 수밖에 없다, 학문과 재단은 무관하다는 성스러운 원칙을 고수하면 된다 라고. 더구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인문학 전공자들은 연구비 지원에서 밀리고 따라서 명성에서 밀리고, 그렇게 주눅이 들었다. 기업들이 세운 종합대학들의 ‘총장’과 실력자들은 곧 효율성 제고의 이름으로 효용성 낮은 학과들의 통폐합을 추진했다.

해방 후 대학이 설 때에는 쏟아져 들어온 서양문물의 범람 속에서 외국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은 매우 보람된 일로 여겨졌었다. 누군가는 인류보편의 문화가치를 매개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숭배의 대상은 물질로 한정되어갔고, 부의 축적과 무관해 보이는 학문은 차츰 계륵이 되어갔다. 인문학이란, 독문학은 더더욱, 합리적인 판단 기준들에 위축되었지만 모르는 척,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뿐인 나는 그것에 매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하이에나로 변해가는 환상에 몸서리를 쳤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소설들을 파먹느라 자판 위를 달리는 내 손가락들은 하이에나의 발가락처럼 넷씩으로 변했다. 꼬리가 있음직한 자리에 정말 꼬리가 자라나고 수북이 털마저 돋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순간 의자를 튕겨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울었다. 그렇게 미쳐갈 수도 있다는 공포에 떨며 물을 틀어놓고 울었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숨 쉴 수 있기 위해서 나는 <새 글>을 열어서 내 글을 썼다. 갑자기, 아주 서툴게. 다시 한 방울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낄 때까지 꼬리 걱정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서 살아남는 일, 행동이 아닌 비겁한 도망이었다.

행동은 다른 형태다. 말을 해도 말이 아니거나 소통 부재로 숨 막히는 오늘, 명색이 지식인 사회의 본산이자 원점인 대학을 관리 통제하려는 국가(실은 정부)의 권력에 맞선 고 고현철 교수는 행동으로 저항했다. “대학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지키는 ‘주역’이어야 할 교수집단을 무력화하는 과정”(김명환, 창비)에 죽음으로 맞선, 그런 것이 행동이다. 그의 영결식엔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나는 심각한 의혹에 빠진다. 내 글을 쓴다고 해서, 손가락 다섯이 분명하고 꼬리도 없으니까 안심해도 될까. 학문에서 문학으로 내 식탐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아, 그 ‘표절 사태’ 이후엔 행여 그 생채기에서 흘러나오는 뭔가 부산물 찌꺼기라도 즙이라도 기대하며 침을 흘리는 나는 여전히 하이에나다.

첫사랑 독문학에 꽂혔던 그 하이에나 시절이 오히려 그리운 밤이다. 인간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는 하이에나 짓거리도 일순간 멈추고 함께 세상을 고민했던 그때가 그립다. 공동의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었던 ‘촌스런’ 그 시간들엔 하이에나들도 제법 사람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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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31.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