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이2015. 10. 27. 00:30

일요일.
광주극장에 5시에 《토리노의 말》을 보러갈 마음을 먹었다. 천변을 산책해서 15분 거리에 있으니 산책도 하고 영화도 보리라.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두드러기 때문에 먹는 약으로 종일 졸면서 그대로 5시가 지나버렸다.

 

저녁 준비에도 늦은 시간.
“밥상 차리고, 밥상 치우고, 설거지하고, 장보고, 반찬 만들고, 밥상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한다. 저녁엔 무얼 먹지? 일년에 365번 질문한다. 저녁엔 무얼 먹지?” 이것은 1977년에 어느 유복한 젊은 여자를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주인공과 ‘비슷한’ 생을 살았던 작가는 브리기테 슈바이거(1949~2010)로, 또 다른 여주인공처럼 “안온함(Geborgenheit)”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차갑다고 느꼈던 빈에서 도나우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안온함의 실체는? 차봉희 명예교수가 번역한 『아름다운 불빛』에 방대한 부록이 달려있다. 읽어도 못 찾는 안온함의 실체가 무엇일까?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정평난 단어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서 정의하기 어렵기도 하고, 세상에 있을지 그것도 알 수 없는 단어이다.

 

밥을 먹는 일, 먹어야 사는 법칙이 곤곤할 때가 있다.
그러면 병석에서도 ‘조실이는 가서 공부해라, 너는 공부를 해야지...’ 라고 하시며 나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정의해주신 아버지를 떠올린다. ‘공부를 잘 하려면, 밥 잘 먹고 몸부터 강해야 한다....’

 

30년보다 더 오래도록 떠나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게 하는 단초 - 금강석이다. 오래도록 변치 않는다는 금강석의 상징처럼 오래도록 자라지도 않고 그대로 있는 금강석.
아버지의 정원에는 꽤 많은 화초들이 잘 자랐었다. 맨드라미의 붉은 덩어리는 무서우리만치 싱싱했었고, 꼬마 채송화는 물론, 분꽃도 백일홍도, 무엇보다도 나팔꽃이 감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넝쿨들로는 여자도 수세미도 있었고, 무화과나 대추나무 같은 유실수도 있었다.
왜 이런 왜소하고 눈에 띄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는 선인장을 주고 떠나셨는지, 우리 아파트의 작은 공간을 위해서 고르셨을 게다. 새끼를 쳐보려는 두어 번의 실패 이후 최근의 새끼다. [사진: 손가락 길이다.]
사랑을 나누어 가기라도 하려는 듯이 한쪽을 떼어간 여동생에게서는 잘 자라고 있는지,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은 그저 연두색을 품고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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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5. 10. 27. 00:28

 

한자 섞어쓰자면서 ‘치맥’은 잘도 쓰는군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④ 나라말 한글
2015년 10월 14일 (수) 17:18:18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 일러스트 돈기성  
 

한글날이 지났다. 훈민정음 8회갑을 기념해 제정된 ‘가갸날’이 한글날이 돼 지금까지 이어오지만, 정작 한글은 부침을 겪어 왔다. 공교육에서 한글이 통째로 사라졌던 암흑기가 지나고, 우리의 해방은 한글의 해방과도 같은 말이었다. [계속]

 

 

넷, 나라말 한글

 

한글날이 지났다. 훈민정음 8회갑을 기념하여 제정된 ‘가갸날’이 한글날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지만, 정작 한글은 부침을 겪어 왔다. 공교육에서 한글이 통째로 사라졌던 암흑기가 지나고, 우리의 해방은 한글의 해방과도 같은 말이었다.

해방 직후에는 법원에서는 판검사들이 ‘가갸거겨’를 낭송하면서 한글공부를 했다는 일화가 있었듯, 일제 때 최현배 선생이 국어의 문법 체계를 집대성한 『우리말본』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듬해는 최남선의 『신판 조선역사』, 이어서 『큰사전』 첫째 권이 간행되기 시작했다. 1차교육과정기(1959~1963)만 해도 국어공부라면 『우리말본』에 입각해서 쓴 교과서로 임자씨다 풀이씨다 꾸밈씨다 해서 낱말의 갈래부터 배웠다. 하지만 한자옹호론자들의 반론도 드세어서, 학교를 배움집, 비행기를 날틀로 해야 하느냐는 공격이 빗발쳤다고 한다. 정작 배우는 우리들은 전화를 번개딸딸이라고 말하는 상상만으로도 재미만 있었다. 오늘날 동아리나 새내기 같은 단어들을 만들어내어 정착시키는 언어감각으로 미루어, 말본 시대가 흔들림 없이 갔었더라면 순 한글의 정착이 더 빨랐지 않을까.

한글다운 한글의 사용은 이제 한국 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 달 경주에서 열린 ‘세계한글작가대회’는 세계 각처에서 한글로 글을 쓰는 작가들의 대회였다. 해외라면 주로 교포들의 한글문학을 지칭한다. 대회에서는 한글문학/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보급과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도 주목을 끌었다. 훈민정음의 상형과 가획의 원리는 소름이 돋을 만큼 정교함을 갖추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한글문학의 세계화는 별자리만큼씩이나 서로 떨어진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인류의 보편문법이 내재된 글을 다듬어 쓰는 일, 더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쓰는가, 철학이 관건일 것이다. 아무튼 경주 대회는 궁극적으로 한글문학의 세계적인 수용을 꿈꾸는 잔치였다.

그러나 국내 한글의 현실에서는 초등 한자교육을 지금도 거론하는 퇴행에 가까운 행보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퇴행이라면 단기 3779년 이전으로 물러간다는 말이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서’ 백성을 위해 새로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든 그때를 저버리고, 왜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4348년 오늘, 다시 특권계급의 전유물인 특종 어휘들 때문에 나라말이 계급화되어 간다. 한글은 이미 영어단어 혼용의 시대를 살고 있다. 높은 양반들은 의제는 시시하니 어젠다를 논하시고, 학계에서도 이펙트를 위해 어떤 어프로치가 좋을지 초이스를 따지는 것이 노멀한 일이 되었다. 낮은 양반들은 건강이야 어찌되었건 치맥만 있어도 행복한데, ‘치’는 꿩이나 닭이 아닌 치킨의 ‘치’자다. 영어에서 소외된 그냥 백성은 키친타월을 치킨타올이라 말해서 비웃음 사기 십상이다. 처음 그 물건 만들어 팔 때 종이행주라고 했음 좀 좋아, 이렇게 말하면 속 좁은 늙은이의 속 없는 불평으로 치부된다. 영어를 섞어야 튀고, 튀어야 팔리는데 무슨 소리!

이 스타일리시한 그레이 톤의 아이템을 입어 줘야 폼이……. 머리 좀 쉴까 하고, 산책처럼 운동화라도 꿰 신어야 하는 것 말고 간단히 좀 쉬려고 텔레비전을 틀면, 한글은 토씨뿐일 때도 있다. 영어단어로도 모자라 한자교육에다 중국어단어 혼용까지 나올 참이라. 어쩐다? 우린 우리 식으로 우리 말 좀 하고 살 수 없는지. 지금 사회에서는 어쨌거나 보수층이 대세라는데, 옛 것 좋아하는 대세가 세종의 옛 정신 좀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민주적 의미를 지닌 훈민정음은 물론, 공법(貢法) 제정을 위해 겪어낸 지난했던 민주적 과정을, 그 아래 깔린 민주적 사상의 바탕도 함께 배웠으면 싶다.

사족 한 마디. 누군가는 이 글에서 ‘단기’가 튀어 나와서 보는 눈을 어지럽힌다고 나무랄까. 언젠가 공적인 지면에 단기를 꼭 써보고 싶었다. 오늘 날 무엇인가 병기를 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한글과 한자 병기가 아니라 단기와 서기의 병기다. 우리 하던 대로라면 ‘단기(서기)’로, 세계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서기(단기)’로, 최소한 새 달력에라도 단기 표기가 있었으면 한다. 육십갑자를 표기할 정도로 전통과 옛것을 존중하면서 단기를 망각하다니,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는 우리가 아직 멀었나 보다.

<교수신문> 2015.10.12.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5. 10. 2. 15:52

 

무엇이 우리를 빌어먹게 만들었을까?
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③ 밥 이야기
2015년 09월 25일 (금) 11:40:14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editor@kyosu.net

밥이 제일 풍성한 한가위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살고, 그것도 붙박이 교수가 되면 어째도 밥은 먹는다. 20년을 그렇게 살고 나면 노후연금도 받을 수 있으니 철밥통 하나를 꿰찬 셈이 된다. 그래서 비아냥의 대상이 돼도 밥을 먹으니 어쩔 수 없다.

   
  ▲ 일러스트 돈기성  
 

노동 시간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수에게 비호감을 갖는다. 일주일에 아홉 열 시간 강의를 하고 그 월급을 받다니! 가끔 천재적으로 아이큐가 높고 공부 효율성이 좋아서(?) 골프나 여행 같은 시간 많이 드는 취미를 가진 몇몇 교수들 때문에 더더욱 그런 누명을 쓴다.

그건 누명이 맞다. 우선 연구재단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 흘리는 땀을 몰라서다. 등재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기에도 의무 탈락률이 ...

셋, 밥 이야기

밥이 제일 풍성한 한가위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살고, 그것도 붙박이 교수가 되면 어째도 밥은 먹는다. 20년을 그렇게 살고 나면 노후연금도 받을 수 있으니 철밥통 하나를 꿰찬 셈이 된다. 그래서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도 밥을 먹으니 어쩔 수 없다.

노동 시간과 관련해서 생각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교수에 비호감이 된다. 일주일에 아홉 열 시간 강의를 하고 그 월급을 받다니! 가끔 천재적으로 아이큐가 높고 공부효율성이 좋아서 골프나 여행 같은 시간 많이 드는 취미를 가진 몇몇 교수들 때문에 더더욱 그런 누명을 쓴다.

그건 누명이 맞다. 우선 학진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 흘리는 땀을 몰라서다. 등재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기에도 의무 탈락률이 있고 보면, 2000쪽 독서를 하고 초벌 200쪽을 썼다가 예닐곱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서 20쪽으로 촘촘하게 써낸 논문도 탈락의 수치를 겪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위 밥을 먹는다. 자유시장경제 사회에서 - 나는 신문의 경제면 이해도가 엉망인 약점이 있으므로 비슷한 뜻으로 읽어주기 바라며 - 태환권을 획득하는 일은 성스럽고도 소중한 일이다. 인간적 굴욕을 가족이나 돌봐야 할 사람들의 밥을 위해서 감내하는 것이야 말로 위대한 일 중 하나다. 상사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것은 애교요, 구둣발에 정강이가 까이는 일까지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과거에는. 대학사회라고 아주 예외는 아니었다, 과거에는. 군인들 세상일 때 어딘가 끌려가서 각목을 낀 채 무릎을 꿇리고서 피눈물을 흘렸다는, 지금은 고인이 된 교수도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라는 압박이나 출석부까지를 감사 대상으로 해서 교수를 모욕하는 일 정도는 그것으로 밥을 먹으니 참아야할 일이라고?

미안한 말이다. 밥이 없으면 죽지만 밥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유럽연합 골칫거리가 된 그리스의 자살률은 100위권을 훨씬 넘고 10대 수출국 중 하나라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2위라니 무슨 말인가. 밥과 자살률은 크게 상관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빵과 서커스로 통치할 수 있다는 정치권의 유구한 지배논리에도 밥 아닌 뭔가를 안겨주려는 꼼수가 들어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배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그 두 번째 무엇을 고려했다니! 어떤 변이로서 말해도 물질 아닌 정신적 무엇이다.

정신을 저당 잡히고 - 그렇게는 못 산다. 살더라도 사는 것이 아니다. 밥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가장 비굴한 자세 가운데도 변명의 숨구멍이 있어야 산다. ‘나라’가 창조경제로 만들어준 밥을 먹고 살지라도, 굴종할 필요는 없다. 밥은 원래 있어야 할 것이었으므로 땅위에 살아가는 사람의 일종의 권리다. 밥에 접근권한이 줄어들어 빌어먹는 기분이라면 권한이 줄어든 과정에 문제가 있다. 거꾸로 말하면, 너무 많은 밥을 제 것으로 갖는 것이 좋은 - 여기서는 ‘선한’ -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있다. 세계 71억 인구 중 8억 이상이 기아상태라는데, 유엔식량기구에 의하면 오늘날의 농업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총 식량은 120억 인구가 먹고 살 수 있는 양이란다.(장 지글러, 2014) 식량이 거의 절반이나 넘쳐나는데 굶어죽는 사람들이라니! 이해가 안 되기는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창군 1954년도에 불과 30배 차이였던 일병과 4성 장군의 봉급 차이가 50년 지난 오늘날엔 무려 279배로 높아졌단다.(임종인, 2004) 발전되어온 사회라는 표현이 맞는가.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노동수탈이 국가가 경영하는 군대 내에서도 자행된다,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교수는 교육이라는 밥값을 해야 한다. 인간은 교육받으려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잘’ 살자는 취지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교육할 필요가 생겼으니까. 그러나 교수는 밥 눈치 보느라 권력자와 자본의 입맛에 맞춰 학생들을 마구 휘어지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돈에 의해서 평가 될 것을 알고서 세상에 태어난 것은 정말 아니니까.

사회는 최고의 가치를 그 구성원인 우리가 선택하도록 열려있는데, 깃발에 새겨진 글자 ‘돈’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펄럭거린다. 밥에 저당 잡혀서 깃발에 다른 바람직한 가치를 적어 넣는 일을 저어하고 있기 때문이다.(끝)

 

 

교수신문 9.25.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