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2. 11. 19. 00:04

 

 

등돌림의 문학

 

 

문학이란 무엇일까 - 늘 있어 왔고 여전히 의심쩍은 이 질문과 더불어 살아가는 숙명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어른들이 말리는 말씀에 속으로 토를 달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어른이 되어 정말 옛 어른들 말씀대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마음만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

 

이 가난하면서도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축제가 있어, 세상 각처에서 모여들어 함께 하는 콩그레스가 9월 우리나라 경주에서 열린다. 이름 하여 ‘제78차 국제 PEN 경주대회’ - 세계 최대 문학축제인 이번 대회는 전 세계 102개국 회원국에서 해외 문인들만 해도 300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이다.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 터키의 오르한 파묵 등 혁혁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들도 참가하여 대회의 위상을 높인다. 더러는 펜은 칼보다 강함을 역설해 낸 사람들이다. 강함에는 부와 명예가 따르고. 이 대회는 이들에게 경주라는 역사적 도시를 배경으로 한국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기회도 될 것이다.

 

경주대회 참가를 앞두고, 개인적으로는 소잉카를 직접 만나는 일에 조금 설렌다. 다는 몰라도 우리는 비아프라의 내전을 기억한다. 한때 누군가가 영양실조에 걸리다시피 마르면 비아프라 사람 같다고들 놀렸다. 그 비아프라 독립전쟁을 막고 싶었던 젊은이, 그 일로 오히려 투옥되고 감시받고……. 그는 늘 급진적인 글들로 나이지리아 정부와 빈번히 충돌하고 옥고를 치렀을 뿐 아니라, 자의적인 사실상 망명 중에 궐석재판에서 반역죄로 사형까지 선고받았다. 독재자가 사망하고서야 귀국이 가능했던 소잉카.

 

그의 경우 흥미로운 것은 종교적 혼재와 상이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라서 서양문학에 정통한 그가 아프리카의 전통과 가치를 어떻게 조화 속에서 지켜내고자 했는가 하는 과정과 답에 있다. 세네갈의 시인 대통령 셍고르로 대표되는 네그리튀드 - 공통의 흑인 전체성 속에서 일치를 발견한 네그리튀드 운동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흑인 유산만이 프랑스의 정치적이며 지능적인 패권과 지배에 반대하는 싸움에 있어 최고의 도구라고 믿었던 문화운동이었다. 그러나 소잉카는 네그리튀드에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아프리카 흑인의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이자 무분별한 찬미일 뿐으로, 근대화의 잠재적 혜택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한민족은 한민족이어야 하되, 가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민족주의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일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소잉카가 “인간의 첫째 조건은 문화이고, 메아리 없는 예술은 독백일 뿐”이라고 말할 때, 문화는 대결이 아니라 그저 인간다움의 본태다. 문화를 빼앗는다는 것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박탈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을 모독하고 인간 이하로 취급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문화 예술의 본질은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 타협보다는 저항할 수 있는 자유에 있다고.

 

예술은 곧 자유다. - 이런 생각은 70년대 국제 PEN 회장이었던 하인리히 뵐의 주장에서도 분명했다. 예술은 자유로움 이전으로, 자유 그 자체이다. “예술은 자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자유이니까.” 그러므로 문학을 예술로서 이해하는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 곧 표현의 자유이다. 어떤 가치를 표현하는가?

 

그러나 세상의 가치들은 부유하는 구름 같기 마련이다. 세상이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늘 변화무쌍해서 종잡을 수 없다.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어떤 것일까? 오늘의 가치들 속에 분명 가난은 퇴물이다. 가난한 아빠는 아빠도 아니기에 『부자 아빠 되기』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부자에게도 인생은 공평하게 덧없다. 아무리 뜨거운 해라도 곧 있어 지평선 너머로 지듯이, 아무리 빛나는 왕후장상의 인생이라도 저물기 마련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히포크라테스의 이 옛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유한한 인간은 의식적으로 무한한 가치를 창조해 내는 예술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한다. 빛과 모양과 소리와 글 등으로 인생을 재창조하는 일에 심취한다. 문학은 우리의 정서와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 말과 글, 곧 언어로서 나타내는 예술이다. 문학을 언어예술이라고 한다면 이 예술은 분명 언어 안에서 시작되고 언어 안에서 끝난다. 그러나 이 언어는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음성적 기호의 체계를 넘어선다. 의사소통의 도구로서 기호체계인 언어를 조직하여 만든 문학은 ‘기호의 기호’라는 특성을 지닌다. 메타언어일 수밖에 없는 이 추상적인 속성은 문학의 이념적ㆍ실천적 기능을 증대시켜 준다. 인류는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을 넘어서 문학이라는 상징의 언어로서 공간과 시대를 넘어 교감하며, 총체적인 문화유산을 집적하는 것이다.

 

예술은 학문과 달리 세계를 탐구하고 수용하고 해석하는 방식에서 주관적 감수성을 우위에 두는 것이 특징이다. 이성이, 계산적 머리가 각광받는 이 시대가 살만한가, 우리는 고개를 젓게 된다. 감수성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지켜줄 마지막 보루를 염원할 일이다. 초인간적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적 부족함이 인간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최강 인공지능의 로봇은 나노 수준의 오차로도 작동을 멈춰 버리지만, 다리를 절면서도 집을 향해 걸을 수 있는 내가 인간이다. 인간인 나는 해야 할 일을 못하기도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을 안 할 줄도 안다.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우수한 결심 아닌가.

 

지능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문학 - 문학에서는 픽션일수록 진실하며 진실할수록 픽션이라는 모순이 가능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인간을 현실적 존재에서 초월적 존재로 승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문학의 변용된 세계가 현실의 파괴를 전제로 하지 않고 비판과 개선을 지향하는 한에서 그것은 유희가 아닌 자유정신이다. 반어와 풍자는 인간의 우매함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연민과 사랑이다.

 

더구나 문학텍스트는 혼자말로서 존재하지 않고 ‘누구에겐가 말하려는’ 의지를 갖기 때문에, 형상화 상태로 존재하면서도 독자의 감정이입을 유인하며 심리적 공감을 소망한다. 그러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가치로의 이입을 꿈꾼다. 유의미한 문학은 독자의 인생에 역시 유의미하게 작용한다. 독자는 예술미의 형태로서의 문학 감상과 더불어 현실에 대한 유추를 지닌 간접적이고 상상 가능한 경험을 얻음으로써 문학의 기능을 완성한다. 이 간접경험이 인생에 대한 성숙된 평가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한 청소년의 문학 독서가 그의 인식의 틀을 형성하며 지적인 발달을 돕고, 개인의 정신세계는 사회의 정신세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시대사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인류의 정신사에서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의 혁명적 전향에 문학의 힘이 절대적 역할을 담당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 이상한 힘이 인류의 역사에 작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밥이 없으면 살지 못하지만 밥만으로는 인간답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귀족들은 만찬장에서 음식을 토해내는 도구까지 있었다고 한다, 계속 먹는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해서. 누군가 그렇게 밥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생을 산다고 해서 그에게 조화의 감정까지 지속적이지는 않다. 어떤 행복한 인간도, 어떤 조건에 있는 인간도, 완벽한 평형을 느끼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E. 블로흐가 말했던 “전혀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특질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 불평등, 장애 내지는 결핍을 느끼며, 여기에서 도피하고자 몰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육체적 유형의 결핍보다는 정신적-영적 유형의 결핍에 예민한 것이 인간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그 뚜렷한 증거이다. 이 결핍은 문학의 세계에서 상상력의 힘으로 줄거리를 전개시키는 힘이다. 이 힘은 문학을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나 모사로서가 아니라 그것의 잠재적 비판으로 존재하게 한다. 현실에 개입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매체로서, 나아가서는 현실에서 이탈하는 경험의 매체로 승화시킨다.

 

그러므로 문학은 현실에 등을 돌리는 경우에조차 여전히 현실과의 관계에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등돌림은 강한 반발이며 부정으로서, 가장 강력한 현실비판 중의 하나로 작용할 수 있다. R. 무질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문학은 “다른 상황”에 대한 꿈이다. 그렇지 않다면 문학은 존재이유도 존재할 공간도 없는 것이다.

 

카프카는 이렇게 썼다, 친구에게.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것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언감생심, ‘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을 쓰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렷다. 누구에게나 허용된 시간도 유한하다.

 

 

등돌림의 문학 - 오늘 그 일을 시작하고프다, 글을 쓰는 것이 숙명이라면. 빛과 그림자가 어울림을 넘어 대결하면 그림자를 향할 일. ‘앞으로 나란히!’ 하고 외치는 경쟁문화가 살인적이라면 뒤돌아서서 살인에 동참하지 않을 일. 또는 강물의 물줄기가 인위적으로 왜곡되면 아무리 더워도 강물에 발을 담그지 않을 일을.

 

................................................................................................

 

 

『컬처 프리즘』 2012 Vol.2, 한국문화원연합회 광주광역시지회, 52-55쪽.

 

 

 

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12. 10. 28. 20:53

재호 하는 일 

             ▼

 

                    http://www.youtube.com/watch?v=ut3HUNZXj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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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소설2012. 9. 15. 12:08

78th국제 PEN 경주대회 (9월 10일~15일)

주제 : 문학, 미디어 그리고 인권

 


 

 

 

 

86개국 문인들이 참석했다. 그 중 38개국 문인들은 초대 손님들이라고. 오르한 파묵이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의 병으로 불참했다고, 아무튼 독일어권 참석자들은 눈에 띠지 않았다. 파묵의 터키는 더러 있었다. 소잉카 덕(?)에 나이지리아 또는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대륙의 참가자들도 많았다. 네팔과, 베트남, 태국, 타이완 등 아시아 사람들도,헝가리, 체코, 드물게 프랑스, 핀란드 등 유럽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정작 가까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최우호국이라는 미국 참가자들은 눈에 뜨게 드물다.

놀라운 것은 많은 해외동포 문인들.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서 많이 참석했다, 소속은 '한국 PEN'인 채로.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이니나 씨도. 외롭게 보였지만.

 

여전히 대회 참석을 위해 출국이 저지된 작가가 있는 세상이다. 중국의 Jiao Guebiao, 중국 PEN보다 더 강력한 ICPC멤버로 출국이 저지되었다 한다. 여전히 벨라루스의 알레스 발야츠키 Ales Byalyatski, 필리핀의 에릭슨 아코스타 Ericson Acosta 등은 구금 중이다.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시 통역사들이 능란해서,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자유로 동시통역되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일본어가 다른 말로 통역되기도 했다. 좋은 세상이다.

 

 

결과부터

                                                                                                                                                                 

* 레바논 센터 가입안 :

* 망명 북한작가 펜 센터' 가입안  :

        86개 참가국 만장일치로 통과.

        국제 PEN : 145개 센터로 확대

* 2013년 개최예정지 :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유네스코에서 정한 문학수호 도시)

 

 

처음으로

 

 환영사 이길원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장

 

 

 

 

                                   

                                            국제펜 회장 존 롤스톤 소울, 월레 소잉카, 르 클레지오, 이길원 이사장

 

 

 개회사 존 롤스톤 소울 John Ralston Saul 국제PEN 회장

- 'PEN은 풀뿌리 단체 grassroots goorganization'

- Our force comes from our existance above politics - indeed below and all around politics. We exist because we belong to ourselves. We are listened to precisely because of our independence. And that independence has always given us and continues to give us the force to face the most difficult of dictatorships and the most complex of situations. 우리의 힘은 정치를 뛰어넘는 우리의 존재에서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의 아래에도 온갖 주변에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속하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바로 우리의 독립성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 독립성이 우리에게 귀기울입니다. 그 독립성이 우리에게 가장 지독한 독재와 가장 복잡한 상황에 맞설 힘을 주어왔고 또 그렇게 계속됩니다.

 

 

 기조강연

이어령 <가장 오래된 미래의 길 The Oldest Road to the Future>

세상사 대조적 현상들을 완벽하게 짜맞춰 준비해오신 명 연설? 특히 '좌-우'에 대한 설명이 좌뇌-우뇌 등을 넘어 끝까지 상대적 대조적 개념으로서 제시되었다. 잠든 곰과 포효하는 호랑이를 비유한 판소리,  '얽어도 장에 가고 굶어도 떡해먹는 사람들' - 한국인의 해학과 여유를 충분히 천착하셨다. 

강연 내내 인터넷 동영상이나 이미지들도 선각자답게 유려하게 사용하시고. 허나 자칫 말 재간으로 비칠까 염려되었다. 나이 때문인지 로버트 푸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를 띄어놓고 마르셀 푸르스트라고 두 번씩 그러셨다. 워낙 완벽하다는 대가의 강연에서는 흠만 보이는가?

 

소잉카 <마법의 등불> Wole Soyinka 'The Magic Lantern'

권력자들이 호기심을 누르라고 명했을 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혁명이었다. 변형적인 마음 transformative mind에서 나오는 광범위하고 원초적인 테러를 상상해보라! '나는 창조한다, 고로 존재한다.' - I create, therfore I am.

 

르 클레지오 <커뮤니케이션은 자연이다> Le Clézio 'Communication is nature'

화려한 마야문명은 사원의 화재 이후 책으로 남긴 역사가 없어서 해독을 못한다.

인쇄술은 특권의 종말이요 지식을 분배를 뜻했다. 다만 18세기 계몽주의 시기에도 식민지에서는 성서에조차 접근하지 못하고 채찍아래 사는 노예들로 넘쳤다. 고향 모리스 섬에는 문맹이 30%.

공부도 일도 않는 '니니 nini'들이 생겨났다. 인간의 목소리인 언어만이 추상과 변화와 리듬에 의해 숭고함을 표현한다. 언어로 인해 인간은 완성에 가까워진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책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민중에 접근하리다.

 

 

 Free the World 1

<문학포럼 :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

이문열 : 좌장 역할만 담당한 것이 안되었다. 의견 발표의 기회가 없다니! 

장윤익 : 한국 통일문학의 방향과 북한작가들의 인권문제

임헌영 : 한국, 표현의 자유의 변천사

김영순 : 월북작가 및 북한 문인들의 삶과 현실

도명학 : 북한 문단의 실상

유미리 : 문학 - 자유와 이야기로 통하는 길

  

* 우리나라에서 PEN 국제대회가 세 번째인데, 처음으로 투옥 중인 작가가 없는 상태라 했다.

* 유미리는 머리에 장식까지 완벽한 조선조 의상을 입고 있어서 한국어로 하는 줄 알았다. 시간이 촉박해서인지 급하게 일본말을 읽어내려갔다. 일본문학을 대표한다는 뜻이었을까? 일상 대화는 한국어로 하는 것 같았다.

* 예상대로 북한 망명 문인센터의 PEN 가입의 초석을 다지는 길과도 비슷?

행사 후 뮤지컬 '요덕스토리' 관람이 있었다. 뮤지컬이니 과장되었으리라고..... 애써 그리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김영순 (최승희 제자로, 성혜림과 동기라는 이유로, 성혜림의 사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있다는 이유로 요덕수용소로 보내졌다는 기구한 운명. 탈북 후 스토리 제공) , 도명학 (탈북 작가)의 증언이 무섭기만 했다.  

 

 

 Free the World 2  

<나의 삶, 나의 문학>

좌장 소울 회장의 빨간 양말과 르 클레지오의 하얀 양말이 두드러졌다. 코케시언은 기본적으로 차림새에는 무신경 한 듯. 

 

좌장. 존 롤스톤 소울.

소울 세계회장은 자유언론에 대한 수필과 소설을 쓰는 작가다. 동반자 에들린 클락슨은 전 캐나다 총독. 홍콩 태생으로 캐나다에 망명가서 총독에 이르렀으니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 'Right Honoroble'이라는 경칭을 함께 부른 내게 감동한 눈치. 한국인들은 아무도 아내(?) 따위엔 관심이 없었나 보다. 그냥 나이가 많고 늙어보인다... 그 뿐. 실제로 언론계 출신으로 클락슨은 첫 결혼 때의 성인데, 연하의 소울과 만나서 그렇게 서로를 돕는 동반자다.

 

 

월레 소잉카.

작가와 의례 - Writer and his Rituals

내가 쓰는 것들은 의례와 관련된다. 다양한 경험을 체계화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은 통제하기도 한다. 의례란 별것도 아니면서 일상 속에 면면히 흐른다. 사회 자체의 표현이 의례요, 사회를 확인하는 것이 의례이고, 계절을 찬미하고, 곡식을 심고 수확하는 것도 의례이다. 비합리적이 아니다, 미신적이 아니다, 영적인 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자처하는 사회 속에서도 의례는 존재한다. 의례는 어쩌면 권력과도 통한다. 작가는 의례의 남용을 조사하고 비판하고 반대 의례를 창조하는 힘을 키운다. ( 어려운 말인데 소잉카의 출발이 희곡 장르이고, 희곡 장르는 그리스 고전극의 의례에서 출발하기 때문일까?)

그로서는 살아가는 것이 곧 글쓰는 일이라고 했다. 식민지 시대의 교육을 체험했지만, 그 단선적 교육이란 금기사항 뿐이었다고, 그러나 창조성이란 영원한 것이라고.

My life is writing. Creavity is eternal.

소잉카는 나이지리아의 자유를 몸소 대변한다. 흑인중심주의 네글리튀드에는 동참하지 않고, 독재 정권 하에서는 자발적 망명을 선택하는 지성인. 그에 대한 기대는 그를 혹사하는 일정에 시들고 말았다. 첫날 엘레베이터에서 만났을 때 1986년 첫 번역 책을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눈을 반짝이던 그가 막상 북사인회장에서는 25분을 늦게 나타나더니 받을 사람 이며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쓰지도 않았다. 오전 중 인터뷰가 세 건이었다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짜증스레 말하고 나서 시작한 북사인회였으니까. 물론 그 헌책 '해설자들'에도 사인을 해주기는 했다, 이번엔 정확한 이름으로.

 

르 클레지오.

갈망이 글을 쓰게 한다 - Desire as a motivation for writing

손으로 씨를 뿌리고 눈으로 수확한다'는 이 말은 고향 모리스 섬의 크레올 말인데, 책을 쓰고 읽는다는 말이란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고독 Solitude를 느끼는데, 영-불 사이 부모를 두고 프랑스령 태어나서 2차대전 상황에서 8살에야 영국군 의사인 아버지를 만났던 기억, 영어를 원한 아버지 ... 그는 따뜻한 옛것을 향한 그리움으로 시를 썼고, 나중에는 오케스트라에 심취하다가 코믹을 썼는데 자신의 선생님을 등장시켰다고. 작가가 되려는 의도가 아니라, 몹시 더운 여름날 차일을 내리로 들어박혀서 쓰고 출판하고 상타고 작가가 되어 있었단다. 이어서 많은 여행 속에서 작가는 인류학자라고 느꼈단다. 미국 인디언과 3년 정도 살면서 느낀 것, 문학은 글로 쓰지 않더라도 이미 존재한다는 것.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예술은 경이, 놀라움이다. 마음은 늘 다른 책들에 사로잡혀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상황에 대한 갈망이다. 꿈꿀 수 없는 것에 대한 꿈, 다른 상황에 대한 열망,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현실을 떠남이다?

desire to be another situation, dream the undreamable, longing for another situation,

be someone else...... 한국어로 들었으면 정확히는 들었겠지만, 그의 목소리도 그가 사용하는 단어도 중요했기에 영어로 들었다가 낭패다.  

르 클레지오는 지한파라서 참석했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의 발언은 무척 솔직하여 감동적이었다. 글쓰기는 그는 자신에게 집중하기라고 말했다. 생각하지 못했던 감동에서 첫 출판 '조서'를 사인 받았다, 북사인회가 아니라 어느 저녁식사 후에.

 

고은.

르 클레지오와는 정 반대로 의도적으로 포장된 선한 의지만을 외우고 있었다. 하필 그 다음이 르 클레지오였다. '푸른 산'과 '흰 구름'에 기대어, 노벨상 수상자들은 손님으로서의 흰 구름에, 자신은 주인으로서의 푸른 산에 빗대면서 동질성 또는 동격임을 스스로 입증하고자 했다.

'관계가 의미를 만든다' - 자신은 실존주의가 아닌 구조주의에 가깝다고, 실존주의를 부정했다. 그러면서 '...에 있다.' 즉 존재한다는 의미를 언제 어디에 두기 때문에, 우연의 생명체로서의 보편을 믿지 않고, 필연의 존재, 즉 특수성을 믿는다 했다. 시간과 공간과 인간은 함께 존재하느니.

[속으로 반론] 보편이 없으면 특수라는 개념이 생기는가? 보편을 향하지 않으면 특수 이익집단을 생각하는 것 아닌가? 준비된 노벨수상후보자 앞에서 조용해야지!?

한국전 3년간 청년 1/3이 삶을 중단했다. 그 결과로서 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중단된 삶이 내 삶의 의미이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문학을 한다. 내 시의 본질은 애도의 문학이다. 우와! 자신의 문학의 본질을 알아야 노벨상후보자 쯤이 되니보다. (애도에는 100% 공감. 6만년전 어린아이 미라 옆에 히아신스 화석이! - ) 장례문화는 곤충에게도 있다. 5천년 이래의 과거가 오늘의 시가 된다, 시인들은 단명, 요절, 옥사, 자살, 형장의 이슬.... 겨우 30편 쓰고 죽은 시인이 나의 뮤즈, 나의 뮤즈는 과거에 헌신. 발언 자체가 서사시다.  

질문에 답할 때 이웃이 피해를 입을지라도 개인적으로 태풍을, 폭풍을 좋아한다고 - 어쩌나, 인간성의 강한(악한) 면이 폭로되었다.

 

 Free the World 3

<인각사 관광, 패션쇼 '삼국유사', 뮤지컬 '삼국유사' - 군위군>

 

 

 공연들  

* 뮤지털 <요덕스토리>

   탈북작가 김영순의 자전적인 수용소 체험

* 국악뮤지컬 <미소 II - 신국의 땅 신라>

   천신이 세운 신국 신라. 그 신화와 환상의 세계

* 천년지고무

   두드락(타악연주팀) + 정상급 무용수들의 타악 퍼포먼스  

* 퓨전국악

* 가야금

* 대금연주

* 소프라노 (조경화) - 바리톤 (조원용)

 

전체적으로 마이크가 너무 컸다는 느낌. 특히 국악의 경우에 큰 소리는 생경했다. 신라의 공격적 전투적 음악이라 그랬을지, 문외한으로서 그저 큰 소리에 적응이 어려웠다는 말이다. 북한의 실상도 그 잔인함에서 비록 무대라고는 하나 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고 가슴만 너무 아팠다. 예술로의 승화? 조금 더 우회의 길을 가야하지 않을지.

 

가장 큰 수확

<문학포럼 : 시조>

시조가 우리문학의 원조임을 확인.

하버드 대학에서 한국문학 특히 '시조'의 매력에 빠진 대비드 맥캔 교수.'청산리~ 벽계수야~  '를 작은 만돌린 연주와 함께 읊었다. 90세 아버지에게도 영어로 시조를 짓게 권한다는 교수는 한국어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첫날 아침 식탁 문제로 앤(맥캔 교수 부인)의 작은 실수가 친교의 장으로 발전했고, '광주펜'(한영발행)을 전달할 수 있었다. 꼭 읽겠다는 확언과 함께.

 

 

특별한 체험. 시낭송회

 

감동적인 외국 시인들 : 잠비아 PEN 회장 Nicholas Kawinga 'Ourselves'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타이페이 PEN의 I-Chih Chen은 'Children of Myanmar'를 읊어 PEN 작가들의 본래의 소명을 일깨웠다. 물론  트리에스트 회장 Antonio Della Rocca의 'Not Yet' 같은 수준 높은 관조의 시도....

 

한국 : 원래 한/영문으로 시를 집필하여 제출하면 PEN대회 때 발행되는 책자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먼저였다. 공문을 이메일로 받았을 때는 우선 시를 쓸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인도 아니고.

그러나 패널로 참가할 것은 언감생심, 유일한 참가 가능성이 시를 제출하는 일이었다.  

영어로도 써야한다면 영어로 먼저 써야 '운각'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후 이번에는 '영어로' 낭송회가 있다는 전갈이 왔다. 무지가 용맹 - 그렇게 참가가 결정되었다.

 

 

 

경주 현대호텔 B1 다이아몬드 홀

 

 

* 낭송회가 끝나고 김양식 시인(이대 영문, 80세)  임채문(불문 동기), 서승석(불문 후배) 등과 해후.

  임채문은 예정에 없던 아버지 임학수의 '조선의 소녀' 대독했다. 난 채문을 몰라 보았다. 

  서승석 시인은 프랑스 통으로 안면도 없었는데, 그리 칭찬을 하며 좋아해줘서 얼떨떨!

  함께 몇번 씩 찍은 사진은 어떻게 보내주려나? 연락처도 받지 않고 헤어졌다.

 

알다가도 모를 일.

문무대왕릉, 감은사 석탑, 기림사,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 관광이 있고 소잉카와 르 클레지오 등 노벨상 수상자들과 후보에 거론되곤 하는 시인 고은의 '나의 삶, 나의 문학' 프로그램이 진행될 순간이었다. 몇몇 참가자들이 마이크를 향해 돌진해서 설왕설래 위기촉발 장면이 연출되었다. 개인적으로 관광을 포기한 나로서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은 일이었다. 옆자리 리투아니아 작가에게 물었더니, 바로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관람에 대한 항의를 정식으로 할 셈이었단다. 하필이면 일본의 쓰나미 이후 많은 작가들이 원전에 반대하는 입장인데 한국은 원전의 안전을 자랑하는 듯한 관광으로 분노했단다. 그에게 '이해는 하고 또 한편 동감이지만, 항의를 할 적당한 때는 아닌 것 같군요.'라고 얼버무리면서도 속으로는 주최측의 고민을 이해해야 했다. 행사지원금을 받은 터에 어쩔 수 없었다는 후문. 행사 지원금이라는 것이 늘 말썽이다. 순수한 지원이 드물다.

 

 

알다가도 모를 일 하나 더.

군위군의 일각사 관광과 이어서 그곳 만찬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단다. 민속줄타기(무형문화재)의 공연, 패션쇼 '삼국유사', 뮤지컬 '삼국유사' 등 공연도 준비되었다. 저녁도 포기하고 불참한 나는 몰랐었지만, 소중한 일주일 중 4시부터 온 저녁을 할애하기에는 그 가치가 의심스러웠다는 후문이다. 물론 우리 이사장님은 다음날 정식으로 '우리는 누군가 손님을 초대하면 온 동네가 다 나서서 도와주는데, 물론 미흡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손님 가서 불평은 안하는 것이 예의'라고 일침을 놓으셨다, 총회장에서. 분명 부족한 점에 대한 항의가 많았던 모양이다. 서양 사람들의 직선적 표현 때문이려나? 실제로 가치가 적은 곳에 초대한 다른 저의는 제발 없었기를 바란다.

 

 

귀한 만남들  

문단의 늦깎이가 만난 문단 선배들......... 멀다가 가까워진 사람들......... 더해서.

미주 등지에 나가서 안정된 이후 취미활동의 연장으로 시인 또는 수필가가 된 경우 - 개인적으로 성공한 인생이다. 캐나다의 송-손 장로님 부부 등 한국에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삶 자체에 긍정적인, 아름다운 여생(?)을 본 것 같다.

 

 

꼴불견?

물론 게중에는 관광 겸해서 몰려다니며 요란한 20% 선글라스에 보석 장식으로 휘젓고 다니는 품새. 총회장에도 시낭송회에도 모습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한 여자. 분홍색 바지에 분홍색 꽃무늬의 재킷을 입고 - 자못 갖춰입은 모양새. 로비 근처 복도에서 양치질을 해대면서 화장실로 향한다. 아침을 먹고 나오다가 그 꼴을 마주친 나는 구역질을 할 뻔했다. 화장실에서는 옆사람 의식 않고 물기를 뿌리더니, 정작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어쩌나 - 끙끙 소리까지 낸다. 그런 은밀한 일을 위해 제각기 객실이 있지 않은가. 100% 한국여자다. - 맞다. 정작 시낭송회에서 요란하게 카메라와 아이패드를 들고 설친다.

 

 

진짜 꼴불견.

내용은 모르지만 총체적으로 부실해보이는 한/영-영/한 시집을 자비로 출판해서 배포하는 모습들. 더러는 88년 PEN 서울대회 때의 사진을 표지에 넣어 현재의 시인과 동일인인가 의심스러운 시집도 있어 ㅋㅋ. 의례적으로 받아든 사람들이 떠날 때는 호텔방에다 버리고 간다는 풍문도 아는지 모르는지. 

 

 

어려움.

룸메이트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서로 최소한의 피해를 염두에 두며 공간을 나누어 쓰는 일 아닌가. 다르면 다른대로 매력이, 비슷하면 비슷한대로 동질성의 연민으로 며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 예상을 뒤엎기도 한다. 생전 처음 보게 다르면 대처 방법을 모른다. 상대가 지금도 온 세상이 주목해주고 사랑해줄 것이라는 환상과 꿈에 젖은 철부지 노년이라면 도닥여주면 될 것이다? 아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나도 벌써 인내심이 줄어든 노년이다. 

겨우 며칠에 '보고 싶다'는 남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하루 오후 스케줄을 무시하고 갑자기 짐을 쌌다. 배터리도 꼬마 '잭'도 끼워둔 충전기도 놔둔 채로.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