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학2013. 1. 9. 21:31

손잡이 없는 찻잔의 운명

 

 - 하인리히 뵐

 

  이 순간 나는 창문턱 밖에 서서 천천히 눈으로 뒤덮이고 있다. 지푸라기 대롱은 비눗물 속에 얼어붙어 있고, 참새들은 내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사람들이 흩뿌려준 빵 부스러기를 놓고 싸우는 거친 새들, 나는 내 목숨 걱정에 떨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늘 떨어야 했었지만. 이 살찐 참새들 중의 하나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기라도 한다면, 나는 창턱에서부터 아래의 콘크리트바닥으로 떨어져 - 비눗물은 얼어붙은 타원형 뭔가로 남겠고, 지푸라기는 꺾이고 - 내 조각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저 맥이 빠져서 나는 뿌옇게 변한 창유리를 통해서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들이 가물거리는 것을 보고 있다. 안에서 부르는 노래를 겨우 나직이 듣고 있다. 참새의 야단법석 소리가 모든 소리를 뒤덮고 만다.

 

  물론 안에 있는 저들 누구도 내가 정확하게 스물다섯 해 전에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스물다섯 살이라는 것이 단순한 커피 잔의 나이로는 대단한 나이임도 알지 못한다. 우리들 종족의 피조물들이라 하여도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유리진열장 속에서 그저 가물거리고 있는 놈들은 우리들 수수한 찻잔들보다는 엄청 오래 산다. 아무튼 내가 확신하건대 우리 가계에서는 단 하나도 더 살아남지 못했다. 양친, 형제자매들, 심지어 내 자식들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는데, 그 반면에 나는 함부르크의 창틀위에서 야단법석을 떠는 참새들을 동무삼아 내 스물다섯 살 생일을 보내야 한다.

 

  우리 아버지는 케이크 접시였고 우리 어머니는 귀한 버터 통이었다. 내겐 형제자매가 다섯으로, 찻잔이 둘, 받침접시가 셋이었다. 허나 우리 가족은 겨우 몇 주간 함께 지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찻잔이라는 게 어려서 갑자기 죽는다. 그러다 보니 내 두 형제와 사랑하는 누이 하나는 벌써 두 번째 크리스마스 날 식탁에서 깨져 버렸다. 곧 이어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지와도 헤어져야 했다. 받침접시인 내 누이 조세피네와 함께 어머니를 동반하고서 우리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신문지에 둘둘 말려서 잠옷과 때밀이 수건 사이에서 우리는 로마까지 갔다. 거기서 우리 주인어른의 아들, 고고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아들에게 봉사하게 된 것이다.

이 생애의 시기는 - 나는 나의 로마시절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 내게 흥미진진했다.

 

  우선 율리우스가 - 그 학생의 이름이 율리우스였다. - 날마다 나를 카라칼라욕장, 그러니까 거대한 공중목욕탕의 잔훼로 데리고 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나와 내 주인을 일터로 늘 동반했던 보온병과 곧 친구가 되었다. 그 보온병은 훌다라는 이름이었고, 율리우스가 삽을 들고 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몇 시간이고 풀 속에 함께 누어 있곤 했다. 나는 나중에 훌다와 사랑에 빠져서 로마시절 두 해째에 그녀와 결혼했다. 물론 내가 보온병과 결혼하는 것이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어머니는 참으로 기이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담배통으로 쓰인다는 사실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누이 요제피네가 재떨이로 강등된 것에 대해 극도의 모멸감을 느낀 것과 비슷했다.

 

  나는 아내 훌다와 몇 달을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는 함께 모든 것을 배웠다, 율리우스가 배우는 것들 말이다. 아우구스투스 영묘, 아피아 가도, 포로 로마노 - 그러나 그중 마지막 것은 내게 슬픈 추억으로 남았다. 거기에서 내 사랑하는 아내 훌다가 로마의 불량소년이 던지 돌팔매에 맞아 깨어져버렸기 때문이다. 훌다는 비너스 여신상에서 나온 주먹만 한 돌멩이 조각으로 인해 죽어버렸다.

 

  계속해서 내 생각을 따라올 마음이 있는 독자님 - 손잡이 없는 찻잔에게도 고통과 생의 지혜가 있음을 시인해줄 마음이 있는 독자님에게라면 나는 참새들이 벌써 빵부스러기들을 쪼아 먹어 버렸으므로 내게는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음을 말씀드릴 수 있다. 또한 그 사이 뿌옇던 유리창에 스프접시 정도 크기의 매끄러운 부분이 생겨서 내가 방안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분명하게 보고 있고, 또 코를 유리창에 박고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내 친구 발터의 얼굴도 보고 있음을. 발터는 아직 선물을 나누기가 시작되기 전 세 시간 전에 내 몸에다 비눗방울에 쓸 물을 만들었었는데, 이제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고, 그 애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으로는 발터가 선사받은 완전 새로 뽑은 장난감기차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도 발터는 고개를 젓고 있고 - 그리고 창유리에 다시 김이 서리는 동안에 나는 안다, 내가 적어도 반시간 후에는 따뜻한 방안에 있게 되리라고…….

 

  로마시절 향유했던 기쁨은 아내의 죽음뿐 아니라 그보다도 어머니의 괴팍함과 누이의 불만으로 흐려졌다. 둘이는 우리가 장 속에 함께 앉아있는 저녁이면 그들의 사명을 오해받는 데 대해 불평을 하곤 했다. 그러나 내게도 자의식 강한 찻잔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굴욕이 닥쳐왔다. 율리우스가 내 몸으로 화주를 마시다니! 어느 찻잔에 대해 ‘그 찻잔으로 술을 마셨다네!’라고 하는 것은 마치 인간에게라면 ‘그 인간 나쁜 데 출입했다네!’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이젠 엄청 많이 술을 마셔대는 잔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는 굴욕의 시절이었다. 그 시기는 매우 길었고, 마침내 케이크 한 상자와 내 사촌들 중 하나인 달걀 담는 컵과 그 덮개와 더불어 뮌헨에서 로마로 보내졌다. 그날부터는 술은 내 사촌이 담당하게 되었고, 율리우스는 나를 한 여인에게 선사했다. 그녀 또한 율리우스와 같은 목적으로 로마에 온 사람이었다.

 

  내가 삼년 동안 우리의 로마 거실의 창틀을 통해서 아우구스투스 영묘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이제 이사를 했고 나머지 이년 동안은 새로운 거실에서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 교회를 바라다보았다. 이 새로운 삶에서 나는 또 어머니로부터 떨어지긴 했지만, 내 원래의 생의 목적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이제 다시 커피를 마시는 잔이 된 것이다. 나는 하루에 두 번 깨끗이 닦여서 예쁘고 작은 장 속에 서 있곤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역시 굴욕은 모면되지 않았다. 그 예쁘고 작은 장 속에서의 동무는 후르츠였다니! 온 밤을 그리고 많은 낮 시간 동안 - 그리고 그 2년간 내내 - 나는 후르츠와의 동무를 견디어야 했다. 훌레방 종족이고, 그녀의 요람은 휘르체니히의 훌레방 선조대대로의 저택에 있었다. 그리고 아흔 살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아흔 해를 제대로 산 것은 아니었다.

 

  내 질문, 왜 그녀는 항상 장 속에 서있는가 하는 것에 그녀는 거만스럽게 대답했다, ‘후르츠로 무언가를 마실 수는 없지 않아!’라고. 후르츠는 아름다웠고, 부드러운 회백색으로, 자잘한 녹색 점들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놀라게 할 때마다 그녀는 창백해져서 녹색 점들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특별한 악의가 없이도 나는 그녀를 자주 놀라게 했다. 우선 프러포즈를 함으로써. 내가 그녀의 가슴과 손을 잡으면 그녀는 너무도 창백해져서 나는 그만 그녀의 생명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녀가 다시 약간의 색깔을 되찾기까지는 몇 분이나 걸렸고, 그러면 그녀는 속삭였다, ‘그런 소릴랑 다시는 하지 말아요. 내 신랑이 에어랑엔에서 유리 진열장 안에 서 있다오, 나를 기다린다오.’ ‘대체 얼마 동안을요?’ 하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이십 년 되었어요. 우리가 1914년 봄에 약혼을 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우린 여태 떨어져 있답니다. 나는 프랑크푸르트의 안전금고에서 전쟁을 살아남았어요. 그는 에어랑엔에 있는 우리 집 지하실에 있었고요. 전쟁 후에 나는 유산상속 논란의 결과 뮌헨의 유리 진열장으로 가게 되었고, 그는 같은 유산상속 논란의 결과 에어랑엔의 유리 진열장으로 가게 되었지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디아나가’ - 그게 우리 주인님 이름이었다. - ‘에어랑엔의 유리 진열장 여주인의 아들 볼프강과 결혼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에어랑엔의 유리 진열장 속에서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된다오.’

 

  나는 그녀를 다시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침묵했다. 왜냐하면 나는 물론 오래 전에 율리우스와 디아나가 서로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디아나는 폼페이 탐사여행 중에 율리우스에게 말했었다, ‘아, 이 보세요, 내게 찻잔이 하나 있는데요, 그걸로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되는 것이랍니다.’

 

  율리우스가 말했어요, ‘아, 제가 그런 곤경에서 당신을 도와드려도 될는지요?’

나중에는 내가 더 이상은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 않았기에 후르츠와 서로 잘 이해하며 지내게 되었다. 우리가 저녁에 함께 장 속에 있을 때면 그녀는 항상 말했다, ‘아, 내게 뭐라도 이야기 해봐요, 하지만 가능하면 너무 평범한 것 말고요.’

 

  내 몸으로 커피, 코코아, 우유, 포도주, 물 등이 마셔진다는 사실을 그녀는 충분히 알아차렸다. 그러나 내가 율리우스가 나를 가지고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다시 발작을 일으키고는 감히 (내 겸손한 의견으로는) 불가한 표현을 하곤 했다, ‘바라건대 디아나가 이런 평범한 녀석에게는 빠지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러나 모든 것은 마치 디아나가 이 평범한 녀석에게 빠져버린 것 같아 보였다. 디아나의 방에 있는 책들은 먼지가 쌓여갔고, 타자기에는 몇 주 동안 단 한 장의 종이가 끼어져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는 겨우 반 쪼가리 문장이 쓰여 있었다, ‘빙켈만이 로마에 갔을 때…….’

 

  나는 너무도 성급히 씻기곤 했고, 심지어 세상일이라곤 어두운 후르츠까지도 예감하기 시작했다, 에어랑엔에 있는 그녀의 약혼자와의 재회가 점점 불가사의한 일이 되고있다는 것을. 왜냐하면 디아나는 에어랑엔으로부터 편지들을 받기는 하지만 이 편지들을 답장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기 때문이었다. 디아나는 이상해졌다. 그녀는 - 이 사실은 사실 머뭇거리면서 기록하는데 - 내 몸으로 포도주를 마셨고, 내가 저녁에 그 이야기를 이 후르츠에게 했더니 그녀는 거의 기절을 하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는 말했다, ‘나는 찻잔으로 포도주를 마시는 짓을 해대는 여성의 소유로 남을 수 없어요.’라고.

 

  그녀는, 착한 후르츠는 자신의 소원이 얼마나 빨리 성취될 수 있을지 모르고 있었다. 후르츠는 전당포업자에게로 넘어갔는데, 디아나는 ‘빙켈만이 로마에 갔을 때…….’라고 시작된 문장이 있는 종이를 타자기에서 빼버리고 볼프강에게 편지를 썼다.

 

  나중에 볼프강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디아나는 내 몸으로 유유를 마시면서 아침을 먹는 중에 편지를 읽었다. 나는 그녀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에겐 내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단지 저 얼빠진 후르츠가 문제였어.’ 나는 그녀가 『고고학 입문』이라는 책에서 전당포영수증을 꺼내어 그것을 봉투 안에 넣는 것을 보았다 - 그래서 나는 그 착한 후르츠가 그 사이 에어랑엔에서 신랑과 합쳐져서 유리 진열장 안에 서있게 됨을 예견해도 좋았다. 그리고 나는 볼프강이 품위있는 아내를 발견했으리라 확신한다.

 

  나에게는 묘한 해들이 이어졌다. 나는 율리우스와 디아나와 함께 독일로 돌아왔다. 그들은 둘 다 돈이 한 푼도 없었고, 나는 그들에게는 값진 소유물로 간주되었다. 나를 가지고 물을 마실 수도 있었으니, 사람들이 기차역의 샘에서 마실 수 있을 그런 맑고 깨끗한 물말이다. 우리는 에어랑엔으로도 프랑크푸르트로도 가지 않았고 함부르크로 갔는데, 그곳에서 율리우스는 은행에 일자리를 얻었다.

 

  디아나는 더 아름다워졌다, 율리우스는 창백했다. - 그러나 나는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맙소사 약간 더 만족스러워 했다. 내 어머니는 우리가 저녁에 부뚜막에 서로 나란히 서있을 때면 말하고 했다, ‘그래 뭐, 어쨌거나 마가린이니까……,’ 그리고 누이는 심지어 약간 교만해졌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시지 접시로 사용되었으니까. 그러나 내 사촌 계란 컵은 계란 컵에게는 드물게 마련된 것 같은 이력을 쌓아갔다. 그는 화분으로 사용된 것이다. 데이지꽃, 민들레, 꼬마 마가렛들에게 그는 잠깐 체류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디아나와 율리우스가 계란을 먹을 때면 그들은 계란을 받침접시 가장자리에 놓아두곤 했다.

 

  율리우스는 점점 말이 줄었고, 디아나는 어머니가 되었다 - 전쟁이 닥쳤다. 그리고 나는 가끔 지금쯤 다시 은행의 안전금고에 들어가 있을 후르츠를 생각하곤 했다, 비록 그녀가 내게 가끔씩 모욕을 주긴 했을지라도, 나는 그녀가 안전금고 안에서라도 그녀의 약혼자와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디아나와 함께 또 가장 큰 아이 요한나와 함께 나는 전쟁을 뤼네부르거 하이데에서 보냈다. 나는 율리우스가 휴가차 왔다가 내 몸을 오랫동안 젓고 있을 동안이면 그의 사색적인 얼굴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다. 디아나는 율리우스가 커피를 그리 오래도록 젓고 있는 것을 보고서 가끔 놀라기도 했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뭘 하는 거예요 - 당신 지금 몇 시간 째 커피를 젓고 있잖아요.’

 

  디아나도 율리우스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 했는지를 망각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참 묘한 일이었다. 그들이 나를 여기 이렇게 밖에서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고양이 때문에 위협을 받으면서 꽁꽁 얼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니 - 반면에 발터는 나 때문에 울고 있는데. 발터는 나를 좋아했다. 그 애는 내게 이름까지 붙여주며, ‘이반처럼 마시기’라고 불렀다 - 나는 그 애에게 비눗방울 만드는 통이 되고, 그 애의 동물들을 위해서 먹이그릇이 되고, 꼬마 목각인형들의 욕조가 되어준다. 나는 그에게 물감이나 풀을 섞는 그릇이 되고…… 나는 그가 지금 선사받은 새 기차로 나를 실어 나르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발터는 격하게 운다. 나는 그 애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날 저녁 그들에게 보장해주고 싶었던 가정 평화가 걱정이다. - 그렇지만 인간이란 얼마나 빨리 늙어버리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율리우스는 손잡이 없는 찻잔 하나가 갓 나온 장난감기차보다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그는 망각했다. 그는 완고하게 발터에게 나를 다시 꺼내라고 말린다. - 나는 그가 야단치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발터만이 아니라 디아나까지 우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디아나가 우는 것은 내게 편치 않다. 나는 디아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내게서 손잡이를 깨뜨린 것이 바로 그녀였다. 뤼네부르거 하이데에서 함부르크로 이사하려고 나를 포장할 때 그녀는 그만 내 몸을 두껍게 싸는 것을 잊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손잡이를 잃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값어치가 있었다. 당시에는 손잡이 없는 찻잔 하나도 여전히 값어치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살 만한 찻잔들이 널리게 되었을 때 나를 버리려고 했던 것은 율리우스였다. 그러나 디아나가 말했다, ‘율리우스, 당신 정말로 이 찻잔을 버리려고 - 이 찻잔을?’

 

  율리우스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미안!’ - 그렇게 해서 나는 살아날 수 있었고 씁쓸한 여러 해를 면도용 비누통으로서 봉사하게 되었다. 우리 찻잔들은 면도용 비누통으로 낙착되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나중에 도자기로 된 머리핀 그릇과 재혼을 하게 되었다. 이 두 번 째 아내는 게르트루트였는데, 그녀는 내게 친절했고 현명했으며, 우리는 꼬박 2년 동안 욕실 유리선반 위에 나란히 서있었다.

 

  날이 어두워졌다, 아주 갑자기. 안에서는 여전히 발터가 울고 있고, 나는 율리우스가 감사할 줄 모르는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듣는다. - 나는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다. 이 인간들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곳 바깥은 고요하다. 눈이 내리고 - 고양이는 진작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깜짝 놀란다. 창문이 열리더니 율리우스가 나를 집어 든다. 나는 그 손의 악력에서 그나 얼마나 화가 났는지 느낀다. 나를 깨부수려는가?

 

  그런 순간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누구나 찻잔이 되어보아야 한다. 자신이 벽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을 예감하는 순간이 어떤지를. 그러나 디아나가 마지막 순간에 나를 구했다. 그녀는 나를 율리우스의 손에서 빼앗아 들고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 이 찻잔을 당신은…….’ 그러자 율리우스는 갑자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미안, 나는 그만 너무도 흥분해서…….’

 

  발터는 진작 울음을 그쳤다. 율리우스는 진작 신문을 들고 난롯가에 가 앉았다. 발터는 율리우스의 무릎에 앉아서 내 몸에서 아까 얼었었던 비눗물이 다시 녹는 것을 보고 있었다. 빨대는 벌써 꺼냈다. - 그리고 나는 손잡이도 없이 얼룩투성이에 낡아빠진 채로 수많은 갓 새로운 물건들 틈에 서있다. 나는 평화를 다시 가져온 장본인이 나라는 사실에 자부심에 휩싸인다. 비록 그것을 방해했었던 존재가 나였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지만, 그렇지만 그게 내 탓이란 말인가, 발터가 새 기차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

 

  나는 일 년 전에 죽은 게르트루트가 아직 살아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아 보이는 율리우스의 저 얼굴을 그녀가 봐야만 했을 것을…….

 

...................................................................

원저 : Schiksal einer henkelosen Tasse (1952), Heinrich Böll: Werke in 10 Bänden. Hrsg. v. Bernd Balzer. Köln 1977/78. (Romane 2: S. 57-63)

Posted by 서용좌
영어2012. 12. 31. 16:42

Fear of Speaking in Public

 Sep. 6. 2012

Today I'll uncover one of my secrets, my weaknesses. - Can you imagine what the top fears of most people are? People fear snakes, spiders, heights, disease and death. One of such dreadful fears might be fear of giving a speech. Yes, some people fear speaking in public, in academic term glossophobia. The Greek word glossa means tongue and phobos means fear or dread. Many people only have this fear, while others may also have social phobia or social anxiety disorder. It is characterized by intense fear in social situations causing considerable distress and impaired ability to function in at least some parts of daily life.

Now you'll laugh at me, if I would say I belong to those people, because some of you know my former profession. But not only in the childhood but also during almost thirty years of my life as a teacher, I still have had glossophobia. Is it then some sort of mental illness? I doubt it, because I'm still alive. When did such symptoms begin and is it cured? To answer those questions would be a long story.

To make it shorter I'll begin with the relationship with my siblings. Just imagine! My late mother bought us, me and my younger sister, 2 different hair ribbons, one was red and the other shocking pink. My sister chose the red one first, and then I didn't say anything and took the rest, the pink one. Next day my sister changed her mind and said: “I'll have that hot pink!” Even then I didn't say anything, because I couldn't find any suitable words against her. Among siblings or among peers later in the school my remarks were always a bit awkward, inarticulate. Every time when I tried to find the right word at the right moment, it worked not so perfect as I expected.

To return to my subject "my anxiety of speaking in public" - it's symptoms peaked in the middle school, when I began to learn English, it was a kind of nightmare to pronounce strange sounds like 'f', 'v' or 'th' etc. Hence I entirely refused to read English books aloud in the classroom. I just couldn't do it and made it difficult for English teachers.

Then I became a teacher, ironically. It was my job to speak in front of people! Furthermore, stage fright may be a symptom of glossophobia. I was frightened on the stage in front of audience. So I had to prepare my lectures carefully and I spent much more time than anyone could imagine. I usually wrote the whole contents beforehand, so my lectures were already dead when I gave lectures the next day. But I did it.

Coming back to what I was trying to explain, people can manage on their own with some vulnerable points. So don't try to overcome your weaknesses but try to accept them. You can live though them! They will make you more humane and also unique. Humans are not robots designed with ideal skills and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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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2. 12. 19. 10:25

 

 

 

  만일 여러분이 기자가 된다면 누구를 인터뷰하고 싶나요? 인터뷰할 대상을 정한 후 질문 목록을 작성해보는 것이 오늘의 숙제입니다. 왜 그 사람을 대상으로 정했는지 그 이유도 함께 적어서 보내세요, 이메일로!

 

  사실 이메일 숙제는 편한 작업은 아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외국인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말하기’는 물론 ‘쓰기’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때문이다. 일일이 고쳐줘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다. 무심코 쓰던 문장이었다가도 학생들의 표현에서는 갑자기 자신이 흔들려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는다. 그 버릇은 간단한 글을 쓸 때도 여전해서 이젠 마음 놓고 글 한줄 쓰기가 어려워진다. 그도 그럴 것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라고 열심히 외웠던 ‘뿌리 깊은’ 기억과 아무 상관없이 이제와 표준어는 ‘나라말’이라니 말이다.

 

  그동안 표준어는 ‘만날’인데 입에서는 맨날 맨날이라고 움찔거리다가, 어느 날엔가는 그것 또한 표준어란다. 이런 조변석개를 두고 반갑다고 해야 할지, 요새 아이들 말로 ‘멘붕’이다. 국적이 불명한 멘탈붕괴의 약자로, 말 그대로 정신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이란다. 어떤 상황이나 말에 의해 평정심을 잃고 ‘정신이 나갔다’, ‘자포자기’ 또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식의 뜻이란다. 누리꾼들의 장난이다.

 

  - 어땠어? 쌔끈?

  - 말도 마. 폭탄이었어! 얼큰이었다고.

  소개팅에 나가서 섹시하고 멋있는 - ‘쌔끈’ - 상대를 만났냐는 질문에, 소개받은 사람이 외모나 성격 등이 마음에 안들 때 쓰는 ‘폭탄’이란 답을 보낸다. ‘얼굴이 큰 사람’이었다고!

 

  은어를 피하면 돌아오는 것은 ‘은따’ - 은근한 따돌림이다. ‘리하이’라는 예법을 몰라도 당근 은따. 대화방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을 때 인사는 그냥 ‘하이’면 부족하다. ‘re-’를 붙여야 예의(?)란다.

 

  음절 줄이기는 귀여운 부류에 속한다. 게임은 ‘겜’, 서울은 ‘설’, 애인은 ‘앤’, 어서 오세요는 ‘어솨요’로 줄인다. ‘아뒤’를 멋진 프랑스식 인사말인줄 알고 대꾸했다가는 혼난다, 곧 ‘강추’다. 그것은 강력 추천일 때도 있으나 강력 추방으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아뒤’는 누리꾼들에게는 아이디의 준말이다.

 

  제일 따라가기 어려운 말들은 모음 비틀기다. ‘다덜, 모냐, 알쥐, 안뇽, 안냥하세엽, 화났나여? 넵’은 ‘다들, 뭐냐, 알지, 안녕, 안녕하세요, 화났나요? 네’의 비틀기다. 비트는 데 시간이 더 걸려도 비튼다. 왜? 모른다.

 

  ‘절친’에게서 문자가 날아온다.

  - 열공중? 반반무, 반반무마니 시켜노코 ㄱㄷ!

  - ‘베프, 방가방가. 냉무 아니쥐?’

 

  베프는 물론 베스트 프렌드의 준말이다. 영어도 막 줄인다. 한국어가 재미가 쏠쏠해 보인다. 그러나 신세대 누리꾼들이 아니고서는 불행하다.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야? ‘후라이드 치킨 반 마리, 양념 치킨 반 마리, 무 많이’ 시켜놓고 기다릴게! - 이것을 알아듣는 ‘사오정’이 몇이나 있을까. 실세(?)에서 물러난 것은 기정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가상세계에서는 아예 출입금지다. 어디에 살꼬?

 

  본론을 잊고 있었다. 이메일을 열어 숙제를 점검해야 한다.

이들이 인터뷰하고 싶은 대상이 누구일까? 에임 하이! 그렇게 권장 받으며 자란 대학생들임이 드러난다. 중국 학생이 버락 오바마를, 안젤리나 졸리를 인터뷰하고 싶단다. 셀레브리티에겐 이미 국경은 없다.

 

  독특한 것은 중국의 성전환 무용가가 여러 학생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진성 - 중국식 발음이 그러하지만 조선족이니 김성이라 불러도 되겠다. 1968년 조선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가족의 뜻과는 달리 인민해방군에 합류하여 무용과 군사훈련을 받고 청소년 무용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곧 현대무용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이어서 로마에서는 무용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세계적 무용수가 26세에 고국으로 돌아가 28세가 되던 1996년에 ‘성확정’ 수술을 받았단다. 그러니까 본래 여성적이었던 그가 그녀가 되었다, 용감하게도. 세상은 그녀를 더욱 반겼고, 2004년의 <상해 탱고>는 유럽 순회공연에서 “우리의 현대무용이 어디로 발전할지 망설일 때 동방에서 온 무용예술가가 우리에게 방향을 잡아주었다.”라는 찬사를 들었을 정도. 이미 아들을 입양했던 그녀는 38세가 되던 2005년에 독일인 남성과 결혼하여 현재 3명의 입양아와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산단다. 무용의 열정은 더해서, 지난해 2월에도 이탈리아의 로마공원극장에서 <제일 가까운 것과 제일 먼 것>을 공연하여 극찬을 받았다고.

 

  내가 왜 이리 긴 이력을 말하는가. 그냥 놀라워서다. 말로는 다 못할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람이 말로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일까. 말로서 표현한 것은 진실인가. 말은 진실을 다 표현할 수 없다. 혹은.

 

  학생들이 뽑은 인터뷰 상대가 점점 놀랍다. 터키에서 온 여학생은 신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단다. “왜 세상은 힘들고, 왜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 행복하지 않고, 세계를(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주(시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물론 서툰 표현이다.

 

  갑자기 전혀 다른 유창한 말이 떠오른다.

  정말 결혼을 잘 한 것 같아요! - 30년 넘은 결혼 생활 후에 남편의 면전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말. 다른 남편들이 모두들 감탄했다고 한다.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믿지 않는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줄 모른다, 라는 생각에 압도되며.

 

  발이 시린 여름밤이 깊어간다.

  발이 시리면 맘도, 맘이 시리면 말도 시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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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빛깔』, 이화동창문인회 2012, 142-145.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