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이2012. 6. 21. 10:01

 

 

만 세살이 되는 형빈은 한국식으로 네개의 촛불을 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케이트로 생일을 지나려나, 그저 케이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일주일 내내? 

 

이건 그냥 "어머님 연구실"에 아이들 데려가고 싶다던 며늘애의 제안으로 들른 것.

이 사진이 연구실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될 것을, 그땐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음 가을학기가 끝난 12월 어느날, 벼락같이 명퇴를 작심하고 실행할 줄을....

 

이 아이들이 다시 모이게 되는 올 여름 이 사진을 꺼내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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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2. 6. 13. 16:35

 

무거운 책들


  뭘 많이 들고 다니시네요, 무겁게!

  머리가 가벼우면 책이라도 무겁게 들고 다녀야지요.

 

  남보다 느린 걸음으로 늘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오갈 때면 주고받는 인사말이었다. 그런 나날, 겨울이었다. 12월 중순 들어서야 시험지 보퉁이를 끌어안고 연구동 층계를 내려오는 늦은 오후, 해지는 저녁. 나는 그날 퇴근길에, 바로 그 층계참에서부터 퇴직을 결심했다. 아무 쓸모없다는 문학수업을 해놓고서 또 아무 쓸모없을 등급으로 나누는 작업을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아니, 그만 하겠다고.

 

  해방은 이렇게 아주 급격한 염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염증이란 순간에 도를 넘는다. 펌프로 물을 길어 물탱크에 채우는 것을 바라보던 아이. 그렇게 저 만치 아래에서 천천히 조바심 나게 높아지던 물은 찰랑찰랑 가장자리에 차오르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밖으로 넘칠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탱크를 넘치게 할 생각이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슬아슬하게 물이 넘치는 순간, 그 순간을 기다리던 심정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물이 입 속에까지 차올라와 익사당하기 전에 성큼 일어나 물 밖으로 나와 버렸다. 설마 하던 학과 식구들은 평상시 내 분별없는 고집을 떠올렸는지 곧 퇴직을 기정사실화했다. 한 겨울 숨 막히게 애쓴 제자들 중심의 간행위원회에선 내게 두 권의 책을 선물했다. 이름 하여 『창작과 사실. 양심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 1983-2009』라는 논문집과 『반대말 ․ 비슷한말』이란 소설집이다. 여러 의미로 양장도 사양하고 흑백을 고집했더니, 책들은 내용 어슷하게 외형도 왜소하다. 표지만큼은 미술전공의 둘째아들이 많은 시간 공들여 만들어준 예술품이다.

 

  나는 3월 한 달을 그 간행위에 참여한 78인에게 각각 책 두 권에 사인을 해서 보내는 일로 살았다. 이름마다 - 더러 동료도 섞이었지만 - 생각해 보았다, 이 젊은이들을 밥벌이 못하는 무능력자로 키워낼 뿐이라는 오명을 듣는데 지친 우리는 인문학을 송두리째 버려야한단 말인가. 인류의 원천적인 무엇, 시공간을 초월한 원형적이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하리라는 믿음을. 인간을 효용성의 수치로 파악하려는 시대의 어리석음에 그리 쉽게 굴복해버리기에는 청춘이란, 아니, 생이란 너무 아까운 것임을.

 

  책을 나누는 일은 대강 마무리되었지만 새로 서가 정리는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 버리고 온 것 같았는데 널부러진 짐짝인 채로 불어난 서가를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무소유의 가치가 다시 우리를 일깨운 즈음에 더욱. 누군가 신문에 ‘목침용으로도 쓸모 있을 것’이라 평을 한 1296g짜리 번역서나 그 두 배에 육박하는 양으로 써낸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 더욱. 이렇게 별 쓸모도 없이 무거운 책들은 기껏 지나온 세월의 나를 나타내주는 이정표에 불과하리라. 나는 이 시간을 살고 있고, 내일을 살고 싶다. 아직 꿈이 꿈틀대는 내일을. 제대로 교수도 소설가도 아닌 박쥐인생을 이제는 털고 동굴 밖으로 나가고 싶다. 아무튼 박쥐에게도 날개는 있으니까. 마음은 벌써 알 수 없는 자유로움과 환희와도 같은 떨림을 느낀다.

 

- 『아름다운 인연』,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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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학기가 끝났다. 시험지 채점에 성적 처리를 앞두고 책 정리를 시작했다. 성적 시즌이 되면 다른 일을 더 한다. 그만큼 성적 내는 일이 싫다. 내가 이 한국어 수업도 또 그만둔다면 그건 순전히 성적처리 때문이다.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하는 작은 책자에 수필을 썼던 기억이 났다.

수필이 본령이 아니고, 드러나는 '나' 때문에 저어되는 장르이다. 그러나 쓴 글은 쓴 글이다.

 

 

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