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기고2012. 6. 13. 16:35

 

무거운 책들


  뭘 많이 들고 다니시네요, 무겁게!

  머리가 가벼우면 책이라도 무겁게 들고 다녀야지요.

 

  남보다 느린 걸음으로 늘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오갈 때면 주고받는 인사말이었다. 그런 나날, 겨울이었다. 12월 중순 들어서야 시험지 보퉁이를 끌어안고 연구동 층계를 내려오는 늦은 오후, 해지는 저녁. 나는 그날 퇴근길에, 바로 그 층계참에서부터 퇴직을 결심했다. 아무 쓸모없다는 문학수업을 해놓고서 또 아무 쓸모없을 등급으로 나누는 작업을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아니, 그만 하겠다고.

 

  해방은 이렇게 아주 급격한 염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염증이란 순간에 도를 넘는다. 펌프로 물을 길어 물탱크에 채우는 것을 바라보던 아이. 그렇게 저 만치 아래에서 천천히 조바심 나게 높아지던 물은 찰랑찰랑 가장자리에 차오르는가 하면 어느 순간 밖으로 넘칠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탱크를 넘치게 할 생각이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슬아슬하게 물이 넘치는 순간, 그 순간을 기다리던 심정이 되살아났다.

 

  그렇게 물이 입 속에까지 차올라와 익사당하기 전에 성큼 일어나 물 밖으로 나와 버렸다. 설마 하던 학과 식구들은 평상시 내 분별없는 고집을 떠올렸는지 곧 퇴직을 기정사실화했다. 한 겨울 숨 막히게 애쓴 제자들 중심의 간행위원회에선 내게 두 권의 책을 선물했다. 이름 하여 『창작과 사실. 양심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고찰 1983-2009』라는 논문집과 『반대말 ․ 비슷한말』이란 소설집이다. 여러 의미로 양장도 사양하고 흑백을 고집했더니, 책들은 내용 어슷하게 외형도 왜소하다. 표지만큼은 미술전공의 둘째아들이 많은 시간 공들여 만들어준 예술품이다.

 

  나는 3월 한 달을 그 간행위에 참여한 78인에게 각각 책 두 권에 사인을 해서 보내는 일로 살았다. 이름마다 - 더러 동료도 섞이었지만 - 생각해 보았다, 이 젊은이들을 밥벌이 못하는 무능력자로 키워낼 뿐이라는 오명을 듣는데 지친 우리는 인문학을 송두리째 버려야한단 말인가. 인류의 원천적인 무엇, 시공간을 초월한 원형적이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하리라는 믿음을. 인간을 효용성의 수치로 파악하려는 시대의 어리석음에 그리 쉽게 굴복해버리기에는 청춘이란, 아니, 생이란 너무 아까운 것임을.

 

  책을 나누는 일은 대강 마무리되었지만 새로 서가 정리는 아직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 버리고 온 것 같았는데 널부러진 짐짝인 채로 불어난 서가를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무소유의 가치가 다시 우리를 일깨운 즈음에 더욱. 누군가 신문에 ‘목침용으로도 쓸모 있을 것’이라 평을 한 1296g짜리 번역서나 그 두 배에 육박하는 양으로 써낸 책들이 눈에 들어오면 더욱. 이렇게 별 쓸모도 없이 무거운 책들은 기껏 지나온 세월의 나를 나타내주는 이정표에 불과하리라. 나는 이 시간을 살고 있고, 내일을 살고 싶다. 아직 꿈이 꿈틀대는 내일을. 제대로 교수도 소설가도 아닌 박쥐인생을 이제는 털고 동굴 밖으로 나가고 싶다. 아무튼 박쥐에게도 날개는 있으니까. 마음은 벌써 알 수 없는 자유로움과 환희와도 같은 떨림을 느낀다.

 

- 『아름다운 인연』,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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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학기가 끝났다. 시험지 채점에 성적 처리를 앞두고 책 정리를 시작했다. 성적 시즌이 되면 다른 일을 더 한다. 그만큼 성적 내는 일이 싫다. 내가 이 한국어 수업도 또 그만둔다면 그건 순전히 성적처리 때문이다.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하는 작은 책자에 수필을 썼던 기억이 났다.

수필이 본령이 아니고, 드러나는 '나' 때문에 저어되는 장르이다. 그러나 쓴 글은 쓴 글이다.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2. 6. 13. 16:28

 


채 알기도 전에 떠난 선배소설가

  채 알기도 전에, 첫눈에 소설가 같았던 소설가가 떠났다. 나눈 말을, 한 말과 들은 말 조각들을 다 합쳐도 5분도 채 되지 않은 채로.

 

  그를 처음 보게 된 자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용감하게 단 한 사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소설가들을 보는 자리였다. 내가 찾아본 한 분도 이메일이라는 통신 수단으로 두어 번 연락이 있었을 뿐인, 그러나 매우 고마운 분이었다. 소설책을 내어 펜 사인회를 하는, (초짜가 생각하기론) 정말 대단한 사건의 뒤풀이 자리. 난 그때 소설가라는 신분의 사람들과는 대면한 적이 없었던 진짜 새내기였다. 그것도 늦깎이.

 

  나는 소설 같은 황당한 세계보다는 교양 있어 보이는 학문의 세계를 탐했다. 어린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선 어린 나이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 물론 반전과 돌발을 시행하는 천재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세대의 여자들에게 반전이나 돌발, 더구나 천재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다 참다 참다 못해 글도 되도 않은 글을 들고 소설가들의 세계를 기웃거렸을 때.

 

  나는 지금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여름, 아니 벌써 몇 해 전 여름이었나, 아무튼 어떤 여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여름 날. 여러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조금 어색한 채로 그와 둘이서 사진을 찍었다. 옛 성벽을 바탕으로. 50㎝쯤 서로 떨어져서 50㎝쯤 엉거주춤, 붉은 셔츠에 어두운 등산조끼는 그의 얼굴을 더 검게 했나보다. 하필 여학생처럼 하얀 반소매의 버튼다운 와이셔츠를 입은 내 꼴은 얼굴과는 부조화로 어려보이기만 한다. 어린, 그러니까 어리석은.

 

  어리석게도, 왜 부끄러운 줄 몰랐을까? 왜 둘이서 사진을 찍으라 했을까? 그건 아마 소설가들의 행사에 잘 참석하지 못하는 내가 언젠가 영민하고 내게 참 친절한 후배 소설가에게 “그를 만나면 안부를 전해달라고!” 깜짝 놀랄 부탁을 한 일 때문이었나 싶다. 그 사이 소문이라도? 설마. 소문날 건더기가 있어야 말이지. “만나보고 싶은 사람 없어요?”라고 짓궂게 묻는 친절한 말에 그만 덥석.

 

  부끄러울 일은 없다. 평생 다해서 3, 4분쯤 말을 나누고 무엇이 부끄러울까.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부끄럽다. 처음 그렇게 여럿이서 이름도 성도 모르게 이렇게 저렇게 끼어서 만났던 그날 이후, 뜻밖에 상, 하권짜리 정말 무게있는 그의 소설작품이 내게 우송되었다. 신분을 뛰어 넘는, 격동기의 사랑이랄 수도 없는 사랑. 어설픈 한 주인공의 내면의 이야기나 겨우 끄적거리기 시작한 내게 무등산보다 더 크게 짓눌러오던 그 작품의 무게. 기억하건대 작품보다는 훨씬 가벼운 몸무게. 길고 마르고 어두운 얼굴. 옆에 있으면 소설 쓰는 비법이라도 전달될 것 같았던……. 그런 말은 내색해볼 기회도 숫기도 없었던 몇 해. 그 비겁함이 부끄럽다.

 

  비겁한 나는 더는 누구에게도 그의 안부를 묻지 않았고, 굳이 말하자면 나는 평생 성취원칙의 노예가 되어 일중독에 들려 있었다. 난 일을 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아니라고는 말 못한다. 누군가에게 나를, 내 미미한 능력을 증거해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일에 파묻혀 잘 지낸다는 역설을 증거하기 위해서.

 

  나는 온전하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감성보다는 이성을, 이성보다는 양심을 키우며 살아가는 지성인이고자 하는 자기암시에 들린. 인문학이 학문의 중심이고, 모든 분야에 영향한다는 믿음으로. 오랫동안 뭔가를 쌓아올려야 했지만, 세계수준은커녕 국내수준에도 못 미쳤다. 타인의 눈으로 그 나름대로 모든 것을 이룬 어떤 물리학자가 “더 이상 목표를 믿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 속에 개미가 있는 것처럼 계속 일만 하는 것은 모종의 비극이다.”라고 외쳤던 말이 떠오른다. 개미처럼, 아니면 땅을 파는 두더지처럼 일만하면서, 나는 그가 깊은 병으로 앓고 있었던 줄도 모른 채로, 그를 채 알기도 전에 잃었다. 앓고 있음을 알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병문안을 가서 가장 존경하는 소설가라고 말했을까? 그것이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그에게 눈곱만치의 위안이 되었을까? 어림없다. 설사 존경을 더해 흠모하는 소설가 상이라고 했더라도 그에게 티끌만치의 위안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엇갈림이 운명의 실체다.

  나는 이렇게 그의 뒤통수도 볼 수 없는 지금 책상에 앉아서 비겁하게도 뒷북을 치고 있다.

 

- 『아름다운 인연』, 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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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
사사로이2012. 4. 29. 14:15

우빈이의 피아노 2 - 2012.4.29. : Muzio Clementi Op.36. No.4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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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