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012. 12. 19. 10:24

파도소리

  어머니이, 아버지!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시는 모양이 이른 저녁준비 중이셨나 보다.

  어떻더냐? 그래, 김 서방은 어떻더냐고?

  그게요, 아직 잘 모르죠. 검사다 뭐다.

  웬 검사? 몸이 부실해서 링건가 맞는다며? 은실이 어쩌고 있을꼬!

  그냥, 입원한 김에. 암튼 염려 마세요, 별일 없겠죠.

 

  아버지는 그날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5년째, 아버지는 은퇴생활에도 집에서 느긋하게 쉬시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일을 본격적으로 하시는 것도 아니다.

 

  아버진 어디 가셨나 봐요.

  늘 그러시지. 요사인 부쩍 정문리엘 가시는구나. 차로 가믄 사오십분이면 너끈할 걸 기어코 버스를 타고 가시니. 오산까지 올라갔다가 게서 또 내려가는 길을 왜 우기시는지. 뭔 볼 일은 그리 있으신지.

  아버진 정문리 좋아하시죠. 어머니가 밀양 박 씨인 것도 얼마나 자랑하시는데 그러세요.

  밀양 박은 다 열년가, 네 아부지도 참.

  열녀라서 그러나요, 일단 청주 한 씨와 밀양 박 씨 하면 뭔지 어울리는 건 사실이죠 뭐.

  밀양 박은 빼고, 한 박사나 들어가서 쉬려무나. 아니, 점심은 먹은 거야?

  예, 먹었지요. 시간이 언젠데요.

  그럼 어서 들어 가 쉬어. 네 아부지 오시려면 멀었다.

 

  어려서 ‘아빠 방’이라고 불렀던 건넌방은 언제 보아도 먼지 냄새 느낌이었다. 지금은 내 책상도 거기에 끼어 있다. 한국 떠난 4년 반, 돌아와서 보니 내 물건들이 건넌방 한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내가 프랑스로 떠난 뒤 은실이 결혼을 하게 되자 우리 자매들이 함께 쓰던 부엌 옆 상하방에 자연스레 신혼살림을 차렸으니 그렇게 된 것이다. 또 그 사이 더 큰 변화라면, 막내 옥실이 미국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 바로 위가 우리가 서울 나가 살던 곳 고모이시고, 그 위 셋째 큰아버지가 일찍이 미국에 가서 정착하셨는데, 다 함께 회갑에 초청받아 갔다가 옥실이 거기 남은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설마 하면서 옥실을 남겨두고 오셨다 했다. 큰아버지가 너무도 간절히 원했고, 옥실도 스스럼없이 남겠다고 했더란다. 결국 버티어 냈고.

 

  아차, 그러니까 아버지는 한 해에 딸자식 셋을 다 어딘가로 떠나보내셨구나!

늦은 봄에는 내가 떠났고, 여름엔 옥실을 두고 오시고, 그리고 그 겨울 은실이 결혼을 했으니까. 은실이 결혼해서도 함께 지낸 것이 얼마나 위인이 되셨을까. 새삼스레 제부가 고맙다. 어서 퇴원을 해야 할 텐데.

 

  내 책상은 짐짝처럼 올려진 책들로 빼곡하다. 노트북을 올려놓으면 남는 공간도 없을 지경이다. 그렇다고 질서정연한 아버지의 책장에 얹어둘 수도 없다. 오늘 따라 책장 맨 위, 먼지가 누렇게 깃든 족보로 눈이 간다.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 마을에서 유래한 청주 한 씨 후손들은 양절공파에 속한다던가. 아버지는 은근히 정문리 충렬문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신 편이다. 임진왜란 때 전사한 상주목사 한 씨를 따라 자결로서 정절을 지킨 부인 밀양 박 씨를 기리는 충렬문이다.

 

  난 물론 요즈음엔 자주 집에 오지 않는 편이다. 아버지 보기가 어째도 늘 면목이 없다. 우리 셋 중 하나라도 아들이 되어드리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그렇다. 아버지는 실제로 첫째인 내게 기대를 걸으셨던 것 같다. 더구나 은실이 대학을 포기했고, 옥실인 미국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니까. 초등에서 시작하여 중등으로 옮기시는 동안 힘드신 기억들을 떨치고, 딸애는 보다 확고하고 늠름한 학교에 남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한때는 아버지 은퇴 전에 내가 자리를 잡게 되리라 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런 희망을 아예 접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책상 위에 덜렁 공책 한 권이 놓여있다. 읽다 둔 책처럼 종이가 끼워져 있다. 아버지가 책갈피로 쓰시는 종이들은 다양하다. 약간 두께가 느껴지는 종이들을 버리지 않고 적당히 오려두신다. 이를테면 광고지도 거기에 해당된다. 사용된 봉투들도 마찬가지다. 거기 노란 봉투를 잘라낸 종이가 끼워져 있는 공책. 나는 겨우 노트북을 올려놓았지만, 이상하게 시선이 자꾸 아버지의 공책 쪽으로 간다. 내 책상과의 경계 쪽에 놓여서 열어주기를 재촉하는 듯한 환상에 젖는다. 나는 유혹에 굴하고 만다.

 

*

 

  파도소리는 그때부터였다. 그러니까 은실이 대입에 실패하고 집에 처박힌 겨울을 뒤로하고, 3월엔 다시 기지개를 켜게 하려고 탐색 차 서울에 나갔던 차였다. 은실을 데리고 개학 전에 입시학원 등록도 하고, 아무튼 다시 서울로 나갈 수 있게 하고픈 마음에서였다. 양재동 누님도 은실일 그렇게나 챙기셨다. 서초동까지만 가면 좋은 학원들이 엄청 많다고. 그날 은실인 어디서도 건성만 같아 보였다.

 

  갑자기 새로 완공되어가고 있다는 그 다리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은실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새 다리가 완공되기 전에, 아무튼 잊을 건 잊고 털 것은 털도록. 과거는 과거의 그 자리에 두어야 쉽게 잊힌다 싶었고.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8분경. 제10·11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 48m 붕괴. 우리 아이들이 그보다 15분 쯤 늦게 8시를 막 지나서 그쪽을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10분 15분의 간격은 찰나에 비하면 영겁이지만, 영겁에 비하면 찰나다. 은실인 지각하더라도 언니와 재잘거리며 같이 가려고 늑장을 부린 통에 살아남았다. 꾸물대다가 지각을 자주 했다는 은실이 고맙고 아슬아슬하다. 은실이 지각하지 않게 언니인 네가 함께 서두르라고, 늘 큰애를 다그쳤던 일이 생각나서 바지를 적실 뻔 했다. 녀석은 결국 고등학교 시절 내내, 아니 그 다음에도 울렁증을 극복해 내지 못했다. 아니, 고등학교를 미리 서울로 내보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집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금실인 아무 일 없이 대학엘 들어가지 않았나. 큰애 혼자 내보내느니, 아무리 누님 댁이라지만 둘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 싶었고, 누님도 이상하게 은실이랑 함께 보내라고 극성을 떠셨다. 하긴 뚱하다 싶은 큰애만 보내놓으면 혼자 사시는 누님이 아무 재미도 없으실 것 같기도 했었다. 후회가 무슨 소용, 은실이 고등학교 생활을 망친 건 아무래도 이 애비 탓이렷다.

 

  다시 찾아본 다리, 새 다리는 교하 공간이 넓어서인지 미완성인 그 자체로 광활한 한강수면에 멋진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강물은 여전했다. 아니 여전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었지만, 그날의 피를 삼킨 물은 아닐 터. 무심한 강물.

 

  파도소리는 그 강물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날의 강물이 씻기고 씻기어 내려난 천 날의 시간들. 밤낮으로 우는 탄식 소리가 어디로 흘러들었겠는가. 이제는 먼 바다에 흩어져 먼지만큼도 핏방울을 지니지 못한 채 흩뿌려졌더라도. 핏빛 물소리는 지금도 거슬러 올라와 강가의 아비어미의 귓전을 때리리라. 그날이면 그곳을 찾아 목이 찢어지게 뿜어내는 통곡도 눈이 찢어지게 흘리는 눈물도 다시 강물에 섞이어 뒤따라갈까?

 

  등 뒤로 학원들의 안내장을 힘없이 쥐고 있는 은실이 눈에 들어왔다. 내 딸이, 여기 내 곁에 서있는 내 딸의 모습이. 우리는 뒤돌아서 서둘렀다. 계획으로는 뭔가 맛있는 것이라도 사 먹일 양이었지만, 무엇인가에 쫒기는 듯 집으로 내달았다. 파도소리가 뒤따라왔다. 한강물이 파도쳐 넘실거릴 리가 없는데, 그것은 분명 파도소리였다. 파도소리 사이로 노랫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다.

 

  강남 길로 해남 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바람 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밤새, 그 이튿날도 파도소리가 멎질 않았다. 온 세상이 파도소리로 뒤덮였다. 소리를 막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돌발성난청입니다.

  동네 이비인후과의 나이든 의사의 말이었다.

  보통 한쪽 귀에 이런 일이 오는데, 돌발성난청입니다. 큰 병원에 가셔서, 입원치료를 시작하세요. 응급상황입니다.

  의사는 밀려든 다른 감기환자 치료에 열중하는 것 같았다.

 

  큰 병원에 가는 날엔 두 애들이 다 따라나섰다.

  큰 병원에서도 단 한 가지 검사, 그 흔해 빠진 청력검사 하나를 했을 뿐인데, 약간 애송이로 보이는 초진의사 말도 이 질병은 바로 이비인후과의 응급상황이란다, ‘물론 죽고 사는 일’과는 무관하지만. 이런 증상이 언제부터냐, 혹시 다른 병원에서 대강 치료받은 적이 없냐는 등을 두어 번씩 묻고 다짐받고서 그가 하는 말이 진지했다. 돌발성난청은 거의 대부분 노년과 관계없이 이유 없이 찾아들고, 결국 문제는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높지만 심지어 1/100 쯤은 뇌종양의 가능성도 있고 또……. 이유야 어떻든 간에 치유되는 확률은 발병 일주일 이내에 시작했을 때에도 1/3 수준이라는 것. ‘난청’이란 듣기 좋은 말이고, ‘청력상실’ 그러니까 귀먹을 확률이 더 높은 질병이란다.

 

  질병이란 단어가 내 남은 귀를 의심케 했다. 내 의식을 흠집 냈다. 또 질병이라면서 치료해도 별 소용없을 수 있다는 말도 이상했다. 절대로 죽을병도 아니면서 치료확률이 절반도 안 되는 질병이라니 진짜 웃겼다.

치료방법은 입원해서 일정기간 강도 높은 스테로이드 주입식이 최선, 다음이 통원치료로서 일정 시간에 귓속에 직접 소량의 스테로이드를 주입하는 방식이란다.

  최선은 지금 입원 하시는 방식입니다!

 

  입원? 방학 잘 지내놓고서 신학년도 개학 첫날 입원하겠다는 말이 나올까? 안 된다, 못한다. 또 갑자기 2주일을 쉬게 되면 담임이며 수업은 어떻게 되는가? 요즈음은 고2도 이미 입시 체제다.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학기 초 2주 병가는 마음 무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귓속에 약물을 주입하고서 비뚤게 누웠다. 아마 약물이 잘 들어가도록 하는 조치 같았는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진 느낌이 문제였다.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애들은 입원치료가 마땅한 것이라고 종알거렸다. 은실이 더욱 졸라댔다.

 

  밤이 깊어갈 수록 치료받은 귓속에서 버걱대는 소리는 무서웠다. 파도소리를 넘어 날개달린 벌레가 파닥거리는 소리였다. 바퀴벌레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는가? 겁이 났다. 어색한 미봉책을 다 참고 입원을 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입원하러 가는 환자라지만 멀쩡한 사지육신이라 어딘지 어색했다. 아내 보기도 그렇고. 아무튼 보호자가 필요 없는 환자였으니까.

 

  병실은 식구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남게 되자 오히려 호젓함으로 편안했다. 앞 침대의 환자나 병실에 들락거리는 인력들은 관계가 아니어서 편했을까? 방해받는다는 느낌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그보다는 오른 쪽 세상, 내 귀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 방해였다. 온갖 소리를 섞어서 몇 성부의 음악일는지.

 

  노트북 앞에 앉아 보았다. 학교랑 연결은 되어야지 싶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담임을 떠맡게 된 동료선생님에게도 인사라도 쓰고. 아니, 인터넷이 안 된다. 치료 장비들에 대한 보호라는 미명에 노트북을 쓸 수 없다니. 복도 한 켠 휴게실 구석에 동전 넣고 쓰는 컴퓨터에선 가능하단다. 각종 질병과 환자들로 뒤범벅된 병원에서 공동으로 컴퓨터를 쓰라고? 그래도 이메일 정도는 확인해야겠다 싶어서 컴퓨터 쪽을 기웃거렸더니 두 대 다 젊은이들의 차지였다. 온 세상은 붕붕거리고 머릿속은 혼란하고…….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려 한 시간여를 들락날락하다가 드디어 한 쪽 컴퓨터에 않았지만 웬걸, OO학교를 치려는데 ‘교’자에서 ‘ㅛ’가 들어가지를 않았다. 어찌어찌 홈페이지엔 접속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로그인 이름자에서 ‘ㅗ’자가 먹지를 않았다. 시간은 6분, 7분이 지나는 데도 끄떡없다. 하릴없이 10분이 넘어가자 분통이 터졌다. 사방이 분통 나는 세상이다.

 

  밤이 늦었다 싶었는데 담당의가 간호사실로 불러낸다. 엠아르아이 결과 내 뇌 속은 깨끗하다고 했다. 살았다. 뇌와 혈관이 나이에 비해서 젊다면 젊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는 뇌졸중의 위험은 낮은 사람이다. 혈당이 올라도 혈압은 오르지 않고, 그러니 심근경색으로 죽을 확률도 낮다. 복장이 터져서 복막염 수술을 하게 된다면 몰라도.

 

  치료방식에 관련하여 자세한 설명을 한다. 스테로이드요법이란, 처음 4일간을 하루 한 번 80mg씩 투여하다가 차츰 줄여나가는 방식이란다. 스테로이드? 그건 간혹 욕심내는 운동선수들의 치팅용 약물 아닌가? 듣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이 끄덕이고 있다가 들어오는데 오른 쪽 세상의 소리는 더욱 자지러진다.

 

 

  진단서를 들여다본다. 그 사이 첫날의 패닉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벌써 며칠 째인가. 진단서가 꼭 필요해서 발급받은 것이다. 정식 병가서류에 첨부해 제출해야하는 서류다.

 

  우측돌발성감각신경성난청. 한국질병번호 H91.2 - 뭐? 91.2 메가헤르츠로 들리네.

  상기환자 상기병증으로 1997년 3월 4일부터 3월 14일까지 입원치료 요함.

  의사 아무개. 동그란 도장/싸인. 네모다란 큰 병원 직인.

 

  나는 그러니까 천천히 주로 왼쪽 귀로 찾아오는 노인성 난청이 아닌, 특수한 난청의 습격으로 입원치료를 요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스테로이드를 팍팍 근육주사로 집어넣는 것은 ‘기’를 올리는 방식이란다. 이명과 관련해서는 타마민이라는 약물을 하루 2회 한 앰플 씩 생리식염수에 혼합하여 혈관에 주사한다. 전에는 피검사나 혈관주사를 맞아야할 때 팔의 혈관이 잡히지 않아 무진 애를 썼는데, 요사인 조금 좋아졌나 보다. 팔에서도 곧잘, 또 여러 번 찌르다보면 손등에 바늘이 꼽힌다. 또 타마민을 주사하는 바늘은 아예 팔 어느 한곳에 심어놓는다. 3일 동안은 그대로 바꾸지 않기 때문에 팔을 뚫리는 고통은 훨씬 줄었다.

 

  물론 주사요법이 만능은 아니다. 약물마다 병발하는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이 스테로이드만 해도 평소 혈당이 높은 환자에게서는 혈당이 급격히 높아지는 문제가 병발한단다. 그것을 인슐린주사로 컨트롤해야하기 때문에 입원이 불가피하단다. 또 1/100 확률이긴 하지만 엠아르아이 검사를 해야 했다고. 왜냐고? 뇌 속의 청신경 주변의 작은 종양이 이러한 돌발성난청을 유발하기도 하는 거란다. 무섭다.

 

  하기는 그 어디에 속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입술에 조금 묻힌 만큼만 손상을 입은 것이다. 조금 우습게 보이면 어떠랴. 행동거지가 너무 바보 같다면 정년을 앞당기면 그만이다.

이제 입원 후의 내 몸은 내가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 나는 그저 낮에도 침대에 누운 채 과거의 파편들을 다른 사람 이야기를 읽듯이 되돌아보고 있다. 썩 괜찮은 일들도 많았다.

 

 

  수돗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 있는 것 같은 공동 수돗가였다. 수학여행 중이었다. 화장실은 남녀가 있었지만 세면실은 그렇게 수도꼭지가 앞뒤로 여남은 개 씩 달린 공동수돗가였다. 여중학교에서 남교사들은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그때는 한참 젊을 때였고 교장선생님부터 여자인 교정에서 늘 어색한 기를 못 펴던 때였다. 젊은 수학교사는 담임 우선순위에 들기 때문에 담임을 맡게 되고, 또 담임을 맡다보면 수학여행이 따른다. 그날도 그렇게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입에는 칫솔을 문 채 수돗가 빈자리를 기웃거리던 참이었다. 학생들이 선생님이라고 선뜻 내주지는 않는다. 여학생들은 남선생님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줄줄이 세수를 하는 광경은 어찌 보면 너무 적나라했다. 목이며 발이며를 드러내놓고 문질러대는 장면은 자칫 외설스럽기까지 했다. 가능하면 먼 곳으로 고개를 돌리려다 저 끝 수돗가 여자의 동작에 시선이 빨려갔다. 귀를 씻고 있었다. 귀를, 한참 동안을 귀만 문지르고 있었다. 귓바퀴를 위아래로, 귓바퀴를 앞으로 숙이면서 뒷부분을, 귀 안쪽을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귓속을, 귓가를, 다시 귓바퀴를 위아래로, 귓바퀴를 앞으로 숙이면서 뒷부분을, 귀 안쪽을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귓속을, 귓가를. 나는 나도 모르게 내 귀를 만졌다. 귀로 손이 갔다고 하는 편이 옳았을 것이다. 귀, 귀가 어때서 저리 빡빡 문지르나?

 

  귀가 어때서? 물론 귀도 코만큼은 아니라 해도 돌출부분이니 대충 씻다보면 손에 걸리고 그러면 씻긴다. 하지만 저리 공을 들여서?

 

  귀를 한정 없이 씻던 여자는 얼굴에 비누거품을 내어 박박 문지르기를 한참 하더니 이내 목으로 내려갔다. 가을이라지만 산간의 아침, 추운 공기에 노출되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얄따란 스웨터가 젖어드는지도 모르고 세수에 열중한 여자. 여자의 모습은 난생 처음 보는 깨끗함 그 자체였다.

 

  상대적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의 세계는 더러웠단 말인가! 그랬다, 나는 귓바퀴를 잘 씻지 않고 아내와 함께 잠들었을 나날들이 부끄러워졌다. 그 수학여행 이래로 나는 정말 잘 씻기 시작했다. 귓바퀴만이 아니라 온 얼굴에서 후미진 곳을 찾았다. 팔다리로 나오면 팔꿈치 안쪽, 팔목, 손등, 손가락들 사이, 발가락들 사이, 발가락과 발바닥이 붙는 곳, 발뒤꿈치, 발바닥 움푹한 자리, 복숭아 뼈 아래, 몸속에도 움푹하거나 으슥한 곳을 찾아 나섰다.

 

  어느 날 갑자기 온 몸을 후벼 씻는 내가 아내에겐 이상했었는지도 모른다. 바람피우고 들어온 남편들이 집에 들어가서는 늘 씻어댄다는, 그런 속설? 아내는 의심을 키워 갔을까? 의심이 100% 틀린 것만도 아니었다. 내가 욕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산간 수도꼭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교무실에서는 오른 쪽 비껴 옆으로만 보이는 그녀의 자리를 향하느라 고개가 삘 지경이었고, 운동장 조회시간이면 어떻게든 그녀가 서는 자리가 잘 보이는 곳으로 내 자리를 잡았다.

 

  그 동안에는 왜 한 번도 그녀가 눈에 띄지 않았을까? 미녀도 아닐뿐더러 젊지도 않았고, 여자냄새 없는 그냥 보통 사람 같은, 조금 깐깐해 보이는 것 이상으로는 별다른 특징 없는 아줌마교사. 그녀가 내 눈에 띄었을 리가 없다. 결국 평상시에 단 한 번도 따로는 쳐다보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은 그날 새벽 산간의 수도꼭지 아래에서 내 망막에 입력되고 말았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떨림과 불안과 환희로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동 학년을 맡은 ‘우리’는 가끔 가까이 만날 기회가 생겼다. 교무실 내에서의 무심한 접촉 하나에도 전기가 일 줄을 누가 알랴. 무신경해보였던 그녀에게서 감춰진 섬세한 감각을 발견하고서는 얼마나 떨렸던가. 담임들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예정이 발표된 그날부터 막혀오는 숨을 고르기가 고통스러웠다. 고통은 이상한 행복을 수반했다. 방향이 달라서 택시도 한번 함께 탈 수 없었던 나날들. 무슨 일이었는지, 학기말 성찬이 끝나고 동료들이 하나 둘 술이 취해서 흩어진 어느 날 밤. 추운 겨울 밤. 어려서 한 방에 들 수 없었던 오누이마냥, 어디 한 데 참새구이 집으로 유인한 나를 따라나서 준 그녀. 내 평생 알고 있는 멋진 위인들 인용을 죄다 끌어내어 멋있어 보이고자 했던 처절한 짧은 시간. 그녀는 그렇게 함께 택시를 타고 오고간 시간만을 허락했다. 그녀의 집께 이르러 따라 내리려는 나를 말리며 잠시 내 손등에 얹어준 그녀의 손가락, 다섯 아닌 넷. 아니 짧아서 미처 못 닿은 새끼손가락 빼고 셋. 겨울이어서 차가왔을까? 오싹하리만치 얼어붙어서 꼼짝할 수 없었던 순간. 차가운 그 손가락을 마주잡지 못한 나. 그때부터 나는 내 오른 손 등을 철저히 씻어야할 몸에 넣을 것인지 아닌지 혼란 속에 살게 되었다. 나는 어느 새 오른 손을 덜 쓰는 양손잡이로 변해가고 있었다. 앙상한 손. 밖으로 뻗친 너무 짧은 새끼손가락. 완벽한 샤워. 비누칠이 아까운 오른 손 손등.

 

  그것은 참 길고도 오랜 어쩌면 영원한 이야기가 되었다. 생애에서 어떤 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 영원으로 변해있다고 깨닫게 되면서 나는 가끔씩 감정의 발작을 경험했다. 그해 겨울을 나면서 지독한 열감기에 시달리다 못해 봄방학에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녀가 타교로 전출되던 시기였다.

 

 

  소문은 멀리 빙빙 돌아서야 내게 이르렀다.

  수돗가 선생님이 다른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난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설악산 모퉁이에 이은 참새구이집 기억에 사로잡힌 내가 세상 물정과 담을 쌓고 멍하니 집과 학교를 오가던 시절, 학교는 진정한 진통의 시절로 들어가고 있었다. 교원이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지 못한, 대부분 타성에 젖었던 우리와 달리 앞서 나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첫 단추에 끼이지 못했고, 조금은 미안한 느낌과 죄스런 마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고칠 것이 기본적으로 산재해 있다는 진단 부분에는 동감했지만, 그것이 노조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했다. 세상천지가 그러거늘,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그런 우리는 그 조그만 생활안정으로 마치 기득권 세력에 속한 양, 꼭 그런 붙박이형은 아니라 해도 세상을 뒤바꿀 꿈 따위를 꾸어본 적이 없었던 셈이었다. 좀 더 열심히 좀 더 양심적으로 잘 가르쳐 보자는 것. 입시위주 공부만이 아닌 무엇인가를 더 심어주어야 하리라는 막연한 생각. 어쨌든 최선을 다해보자는 정도. 무엇 보다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대한다면! 그런 변명으로 안이해져 버린 세월이었다.

 

  비겁했다. 그 동안 교육현장이 들끓고 있었던 것을 몰랐다면 나는 비겁했다. 처음 전교조 결성 과정의 파장에 이어 이듬해 가을에는 조합원 교사들이 천 여 명씩 해직되었다. 그때도 가슴 아픈 한 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외면 한 것이 사실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몇 번씩 오고 가는 동안, 학교 한번 이동하고 거기에 적응하고 하다보면 생이라거나 교육이라거나 원래의 의미 같은 것에 골몰할 시간도 틈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이듬해, 해직교사 거의 전원의 복직신청 뉴스와 물려서 누군가가 그녀의 이야기를 흘렸다, 나의 그녀인 것을 아무도 모르는 채로.

 

  그 새침데기 선생도 복귀했다는군요!

  누가, 그 새침데기 선생이 언제 해직되었더랬소?

  그걸 몰랐어요, 열성당원이었다던데?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 그 꽁한 성격으로 어찌!

  성격하고 전교조하고 무슨 상관이요! 외려 꽁한 사람들이 거기 많으면 많았지.

  하기는.

  그러니까 삼년을 넘게 해직?

  그랬대요, 그게 공동운명체 아뇨!

  아니, 가정과에서 따로 무슨 참교육을 한다고!

  하기는.

  하기는 말고는 뭔 말이 없소? 아, 고로켄가 카스텔란가 그런 것 안 만들고 이밥에 쇠고깃국 맛있게 끓이는 법 가르치면 안 되겠소!

  이 양반들이, 빈정대기는. 하기는 여자가 시집가믄 밥 맛 좋게 짓는 것이 제일로 중하제요.

  아 거기선 어디 여자더러만 밥을 지으라 하는가요! 남녀평등하고 역할구분도 안하려 드니까 문제지.

  밥이 꼭 역할구분과 관련은 안 되지요, 전 혼자서 밥 잘 짓습니다.

  노총각 박샘이사 욕심에서 그리된 것뿐이고.

  욕심요?

  각시 벌어 먹이자믄 아까워서 혼자 살고.

  그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그 일로 이혼까지 갔다니까 그렇죠.

  누가? 아까 그 새침선생말여요?

  암튼, 그것도 시작하면 신앙이 될 거요.

  아무리 그것이 이혼사유가 될까요?

  것도 어찌 보면 이데올로기인데.

  그래요, 살을 섞어도 머리를 섞지 못하면 비극인거라…….

  맘 다른 사람하고 이혼 하지 않고 살면 뭐 하겠소. 더 끔찍하지.

  거 무섭네요.

  그만들 둡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가지고.

 

  1990년대 만해도 이혼율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으니 이혼이 화제감은 되었다. 그 여자가 이혼을 했다고? 이혼을 했구나! 그럼 더구나 복직이 되어야 했겠구나. 그제야 나는 전교조 관련 뉴스를 귀담아 듣기 시작했다. 이렇게 터무니없이 이기적인 이유에서. 대개 학교마다에 전교조 가입교사들이 있었으니, 조금 관심을 가지면 열성 노조원인 그 여자의 소식을 대강은 알 수 있었다. 전교조 탈퇴확인서를 쓰라는 정부에 맞서 위원장은 공무원법 준수 각서로 대체하는 조건에서 정부의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단안을 내렸고, 교사들은 돌아왔다, 물론 나의 그녀도 함께.

 

  그러나 다시 한 번 같은 학교에서 근무 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았다. 내가 우선 여학교 발령을 원칙적으로 선호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수돗가 사건 이후 그녀가 먼저 전근했고, 한 해를 더 근무하고 내가 전근신청을 할 시기부터는 단연 남학교를 택했다. 남자에게 편한 성은 역시 남성임을 절감하면서. 녀석들하고는 수학여행을 떠나도 수돗가에서 서성거리지 않아도 되고, 경이로운 어떤 장면들을 보게 될 일도 없으니 편했다. 삶이 무엇인가, 편한 것이 편한 삶이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이제 다시 그녀의 해직과 복직이 화두로 떠돌 때에 이르러서야 잠복성 바이러스가 다시 활동기에 들어갔다. 또 다시 열심히 박박 문질러 씻기가 도졌다. 난 늘 그 수돗물 소리를 듣는다.

 

 

  강박증이 나를 삼켰다. 갑자기 내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나 않을까 겁이 났다. 가슴통증 때문에 순환기내과를 찾았을 때, 내과의사는 정신신경과를 권했다.

 

  나에게는 어떤 더러운 것에 대한 억압된 생각, 감정 또는 충동이 내 의사와 관계없이 끈덕지게 되풀이하여 의식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경우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책상서랍에 열쇠를 채우고 퇴근하는 길인지 몰라서 다시 교무실에 들르곤 했다는 고백은 나를 강박신경증적 소질이 있는 소심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강박관념에 불안이나 공포가 따르는 것은 병은 아니라는 전제에서도, 나의 경우 남자가 살갗이 벗겨질 정도까지 씻어댄다면 분명 어떤 지우고 싶은, 잊고 싶은 불편한 기억의 방해라는 진단이었다.

 

  천만의 말씀. 나는 사실 내 몸이 청결하지 못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녀와 비교해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녀와 비교해서. 상상 속의 그녀와 비교해서. 의사의 말로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고민에 빠지게 되는 지적 강박증보다는 순한 놈이라고, 다만 나의 경우는 보통 손을 깨끗이 씻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신경증과는 달리 온 몸을 씻어대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느냐고. 육신으로 태어난 인간은 완전한 청결을 유지할 수 없다는 대 전제를 나에게 인식시키고자 오랜 정기적인 상담을 권했다.

 

  그런 주인공들을 문학작품들에서 볼 수 있으셨겠지요?

  무슨?

  강박신경증적 행동의 주인공들 말입니다. 손을 너무 자주 씻는 사람, 또는 문은 제대로 잠갔는지 물은 잘 잠갔는지 나가다가 다시 들어가서 보고 또 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강박신경증 때문에 신경정신과에서 예컨대 그로민을 아침엔 25mg, 저녁엔 60mg 정도는 처방받아 복용중인 사람 말입니다.

  약물처방만 빼고는 제가 바로 그런데요. 남이 봤을 땐 우스워 보이지만 저로선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인도를 걷다보면 제가 무심코 빗금 선을 밟지 않으려고 한다거나,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으니.

  이런 행동들이 본인 스스로도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이라고 인지하면서도 그런 행동을 중지하려고 하면 심한 불안감을 경험하게 되신다는 거죠!

  예, 제 스스로는 제어할 수 없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초조해지기 때문에…….

  네, 그렇습니다. 그 정도가 생활에 장애가 된다고 느끼셔서 진료상담을 받으러 오신 게지요. 본인 스스로 인지한 것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이 비이성적이라고 판단하시는 건가요?

  당연하죠, 비이성적, 그래요, 비이성적 행동인 줄을 알기에 이렇게.

  그렇다면 그런 비이성적 행동을 무시하는 연습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조금 쉽게 해보는 방법으로, 머릿속으로 자신의 다른 자아를 설정해놓고, 이 다른 자아를 진정한 자아라고 간주하시고, 원래의 자아를 별개의 자아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비이성적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너는 참 이성적인, 비합리적인 녀석이다.”라고 큰소리로 외쳐보는 것입니다. “이런 멍청이야, 너 지금 뭘 하고 있어!” 이렇게 욕을 해보시거나.

  예, 바보 멍청이죠. (단 한 순간도 이 떨림을 말해보지 않은 너. 꿈에도 생각도 해보지 않은 너. 가슴앓이는 당연지사라고 믿고, 뭔가 낌새를 들키는 짓일랑 대한민국 남아로 태어나서 가장 못난 짓, 몹쓸 짓이라 규정해버린 너. 거짓 평화가 최선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는 너…….)

  더 심한 모욕도 좋습니다. 만일 효과가 있으려면…….

  네? 꿈의 효과요?

  꿈이라뇨! 꿈 이야기는 드린 적이 없는데요. 선생께선 꿈속에서 불안감이 가중되시는 건가요?

  (아니, 꿈이라면……. 나의 꿈은 무엇이련가!)

  일반인들 가운데 유병률은 2~3%나 되니까 극히 드문 장애는 아니십니다.

  그건 그리 위안이 되는 말씀이 아닌데요.

  아니 위안이란 이 경우 본인 스스로……. 그보다 발병 시기가 보통의 경우에 비해서 좀 늦게 나타나신 경우인데…….

  어른들이 걸리는 확률이 낮다 말씀이십니까? 확률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제가 만일 강박신경증 환자군에 분류된다면 그건 1/2 확률이지요, 이다, 아니다.

  사실 이 경우 환자들은 대개 학력이나 지능이 높은 수준일 때가 더 많지요.

  지능이 높아서 걸리다니요? 지능을 감별하는 바이러스라?

  선생님도. 바이러스 감염이 아닌 것은 잘 아시면서. 차라리 유전성이라거나 가족성 발병 경향이 높은 셈이죠. 그러니까 가족력으로 미루어 우울증이나 대인공포증 등과 같은 정신과적인 질병이 공존하든가?…….

  그러면 저는…….

  선생께선 안정된 직장이 있으시고, 교사라는 직업 상 아무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실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문제에 대한 통찰력이 있으신 것으로 보아서 분석정신치료로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습니다. 환경 여건에서 오는 자신의 증세 악화를 인정하면서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으신 것으로 보아서. 참 그런데 감정표현은 잘 하시는 편인가요?

  실은 그것이…….

  감정 표현을 스스로 억제하려는 것, 전형적으로 가부장제 하의 가장증후군입니다.

  가장증후군요?

  하하 농담입니다. 출세지향형이 아니라 해도, 이 시대 가장들께서 흔히 붙들려 계시는 군자삼락 말입니다.

  삼락? 우선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라지만, 어디 양친도 형제도 마음대로…….

  그것도 실은 자괴감을 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불효로 돌아가신 것만 같고, 우애를 다하지 못함도 불효인 것만 같고. 그런데 이 시대에 효다 우애다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니지요.

  예? 우애요? (아차, 내겐 유난히 나를 따르던 사촌이 있었지. 친 동기간은 아니라 해도 유일한 동생. 밭둑을 지나다가 무도 쓰윽 뽑아 그냥 옷에다 쓱싹 문지르고 먹던 녀석.)

  남자들이 터놓고 말을 못해 그렇지, 가부장제는 안팎으로 협공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그것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근거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고. 게다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자니 힘에 부치는 것 아닌가요? 물론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마지막 즐거움은 저절로 누리시겠지만.

  무엇인가 전도된 느낌이었다. 소위 정신과의사 자신이 자신을 치료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라 할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정신과의사나 상담치료사는 자신이 말하기보다는 환자의 입을 마음을 열게 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의사는 내가 사내 살갗이 닳도록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 병을 고쳐줄 뜻이 없어 보였다.

  다른 강박적 행동들을 수반하지 않고, 다만 강박적 씻기라면 중년남자들에게서는 흔치 않습니다. 능욕을 당한 처녀들에게서나 흔히 보이는 과민반응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에게서는 병적 증후와 연관될 트라우마가 발견되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숨겨진 원인이 이렇듯 애매하다면…….

  숨겨진 원인이 꼭 있어야 합니까?

  원인이 될 수 있을 심적 타격 등을 상정하지 않고서는 대응기제를 찾아가기가 어렵다고나 할까요. 선생님께서는 혹시 마음속에 멀리…….

 

  중년남자가 혹시 ‘몸을 더럽힌’ 기억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 눈빛에는 이상하게도 어스름 물기가 아닌 붉은 기름기가 번져 나오는 듯 했다. ‘마음이 더럽게’ 흔들렸으되 몸을 더럽힌 적이 없는 남자는 이곳에서 치유될 수가 없다고 판단되었다. 남자의 마음 흔들림을 상상하지 못하는 남자 의사라!

 

  선생께선 반복적인 손 씻기 이외에도 강박적 행동이 발견되시는지. 예컨대 물건 정돈은 어떠십니까? 정리정돈에 억매이시나요? 대문을 닫고서 의심하고 다시 올라간다거나, 아니, 책의 읽은 부분을 다시 읽고 확인하려는 것, 것보다 과거에는 어떠셨습니까? 학생 시절 시험답안지 같은 것을 제출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확인 또 확인해야…….

  지난 시절에까지 거슬러서요?

  아니, 뭐. 청소년 시절 손톱 물어뜯기 등도 강박행동에 속합니다만. 앞날에 대한 지나친 걱정, 걱정을 이미 걱정하신다거나?

  저는 그러니까 뭐랄까 다른 증상은, 아니 저는 실상 고민이 될 일이……. 그러니까 말씀드릴만한 일이. 해서 이만…….

  아니, 치료를 거부하실 의향이시라면…….

  아니, 제가 급한 다른 일이 생각이 나서. 그럼…….

 

 

 아차, 그럼 그 파도소리는 서러운 강물의 울음이 아니라 귀를 씻는 수돗물 소리였을까? 아니다, 지금은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는 대신에 내일을 생각하려고 한다. 나에게는 어쨌거나 내일이 있다. 아직은 병원에서 맞을 아침이겠지만. 언젠가는 새소리도 들려올 것이다. 어쩌면 벌레소리도.

 

  아침 식사가 끝난 후 복도 끝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커피봉지를 쏟아놓고 앉은 참이었다. 어느 녀석이 전화라도 하려나? 휴대전화를 살아있는 귀 쪽으로 옮겨 놓았다. 그런데 미미한 삐이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이명이거니 했다. 기다리자, 어제 오늘은 이명도 가만히 참고 있으면 더 빨리 잦아든다. 아니? 청각검사실에서 들려준 쇳소리인데 착각인가? 아니다. 그 미세한 불규칙한 것은 쇳소리가 아니라 분명 벌레 우는 소리였다. 살아있어서 불규칙하다. 아직 추운 3월 어느 아침, 내가 아직 벌레소리를 듣는다! 경이에 가까웠다. 1/6 확률을 뚫고 내 귀가 회복되어간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저 벌레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이 뛸 듯이 기뻤다.

 

  어라? 벌레소리를 따라 무심코 따라간 눈. 그곳엔 수풀도 동산도 아닌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시멘트벽사이에 난 나무문. 그 너머엔 길고긴 복도밖에 없는 병실건물. 벌레소리를 따라 병원복도로 향한 내 엉뚱함은 코미디였다. 청각 따라 방향감각을 잃게 되는가. 더 또 무엇을 잃어갈까.

 

  정말이었다. 내 고개는 창밖이 아닌 복도 쪽 닫힌 문을 향하고 있었다. 오른 쪽 귀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창밖의 나무는 오른 쪽인데, 벌레는 그냥 왼쪽 귀에서 울고 있었다. 내 세상은 이제 모두 왼편이다. 오른 쪽에 몸담고 왼쪽을 동경해온 삶의 귀결이런가. 내 오른 쪽 귀는 더 이상은 오른 쪽 말을 듣지 말라한다. 새가 울어도 벌레가 울어도 그것은 왼쪽 세상이라 한다. 왼쪽 온 세상. 반쪽 온 세상.

 

*

 

  아버지의 공책은 거기서부터는 하얀 여백으로 멈춰 있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남은 귀 하나로 무서움을 타시는 구나. 회갑이란 그런 것인가. 정년이란 그런 것인가. 늙으신 아버지에게 변변한 자식도 없으니…….

 

  드르륵, 어머니가 방문을 여신다.

  어둡지 않아? 불이나 켜고 있지. 아버진 아예 늦으신단다. 건너 온, 저녁 먹자.

  승연이 승주는요?

  빨리도 챙긴다. 아까 승연이가 방문을 열어도 모르고 있더니. 애들은 벌써 먹였지, 시간이 몇 신데.

 

  밥상은 늘 소박하다.

  엄마, 아버진 정문리 가심 맨날 늦으세요?

  낸들 알아. 윤달 앞두고 뭘 궁리하시는지. 느닷없이 부산삼촌 이야길 하시질 않나, 원.

  부산삼촌요?

  그래, 그 왜 부산에서……. 관둬라, 너흰 잘 모른다.

  어머닌 그 이야기를 접으신다. 그리고는 관심의 화살을 내게로 정조준하신다.

  그런데 넌 여태도 달랑 혼자서…….

  엄마, 엄마 나물들 언제나 맛있어요. 나물 맛이 어쩜…….

  나는 부지런히 밥을 먹는 척, 엄마의 화살을 피해보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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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국제펜광주』 제10호, 2012, 238-260쪽.

Posted by 서용좌
수필-기고2012. 12. 7. 22:56

 

마지막 책

 

 

  오래 살았다, 라고 말해야 옳다. 그러면서도 지난 세월의 무게가 두께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시간은 늘 지나가기 때문일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일이 무엇일까. 과거를 반추하는 일을 시작해보려 해도 화면은 현재에 멈추어 있다. 너무 아득해서일까. 믿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한 기억이라해도 너무 멀리 와서는 희미하다. 내 머리는 아마 현재밖에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녹슬었는지도 모른다.

 

  청춘은 아름다워라, 라고 누가 그랬던가.

  헤르만 헤세가 중년의 대작들인 『데미안』과 『싯다르타』 그리고 『황야의 이리』를 쓰기에 앞서 쓴, 어찌 보면 가벼운 단편 제목이 그것이다. 「청춘은 아름다워라」를 내었을 때가 40을 바라보는 나이. 이미 청년이 아니었다. 부친의 사망, 갓 세 살 난 막내아들의 뇌수막염, 아내와의 파경이 드러나던 무렵이다. 아내의 정신병은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했고, 그 자신도 청소년기에 정신요양원 신세를 진 경험이 있었다. 기숙신학교를 탈출해 짝사랑의 절망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결과였다. 일반 김나지움으로 옮겨서도 학교는 망쳤다. 그의 청춘은 일상에서의 탈출로 점철된 ‘찢긴’ 상처투성이였다. 자전적인 『황야의 이리』에서도 주인공의 우울과 분열의 원인은 청소년의 ‘의지의 분쇄’를 기본으로 하는 교육 탓이다. 작품마다 아팠던 청춘에 대한 그리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청춘에 대한 그리움은 원초적 인간본능의 하나일까.

 

  현대문명은, 물론 교육을 포함하여, 자연과 유리될수록 성공적이라 간주되고 있다. 개인은 거대 문명의 주변인으로 밀려나서 소외는 점정에 이르렀다. 어찌 제정신으로 살랴. 멘붕의 시대 - 우울과 정신적 불안 속에서 청춘은 아름답다고 외치면서도 헤세는 놀랍게도 노년에 이르는 삶을 누렸다. 생애 후반에 더욱 빛나는 책들을 썼고, 충분히 인식되고.

 

  왼손에 책을 펼쳐든 채로 고꾸라진 그의 마지막 모습은 경이롭다 못해 섬뜩하다. 그래서 잊지 못하는 것 목록에 든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많은 책 가운데에서도 하필 『고백록』이라니. ‘이는, 우리가 당신을 향하여 살도록, 당신이 우리를 창조하신 까닭이오니, 우리 심령은 당신 안에서 쉼을 얻을 때까지 평안할 수 없나이다.’ - 이 구절 때문에? 평생 달아나고자 했던 신앙으로? 아이러니다.

 

  책으로 지새운 수많은 밤들. 우연히 마지막 밤을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할애했을까. 헤세에게 가장 잊지 못할 사람이 아우구스티누스였다고 가정한다면, 나에게는 누구일까, 어떤 책이 될까, 마지막으로 읽게 될 것이. 혹은 쓰게 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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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그가 있다』, 한국여성문학인회, 2012, 책만드는집, 196-197쪽.

Posted by 서용좌
소설2012. 12. 4. 01:55

 

편지

 

 

                                     베케트의 <행복한 나날들> 중에서 :

“사람이 말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밖에 없어요.

그런데 다 말해버리지요. 할 수 있는 전부를.

그러니 진실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죠.”

가을은 은행잎으로 가을입니다.

비가 오거나 아니 오거나.

연구실은 춥지 않으신가요.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가을에. 이런 편지를 엿보게 된 나는 궁금증에 참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대 밖에서 진부하게라도 이야기를 꾸며봅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자신의 말 대신 명작의 인용 뒤로 숨습니다. 가을이 되어 날이 춥지 않은지 가벼운 안부가 전부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당신은 연구실이 있는 사람이며, 연구실이 추울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은 당신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 사람이며, 그래서 당신을 잃었고, 그래도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또 한 가지 사실도 있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편지는 아니며 흔히 지금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메일 형식입니다. 그러므로 당신과 그 사람은 이메일주소를 아직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실이 두 사람에게 남아있을 뭔가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연구실이 있는 사람의 이메일주소라면 그것은 감추고자 하더라도 감춰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의 이메일주소 노출 정도가 관계의 정도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관계?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면 정정하렵니다. 그러나 얼마나 먼 관계인가, 얼마나 사무적인 관계인가, 그런 말을 하고자 할 때도 써야 하는 단어가 ‘관계’인 점을 강조하렵니다. 그러면 오해는 풀릴 것입니다.

   당신은 이런 편지에 답을 할까 말까 망설입니다.

   아니, 더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 봅시다. 당신은 이런 편지를 곧 바로 지워버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답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아니, 더 처음부터 시작하지요. 어쩌면 당신은 이런 편지를 아예 열어보려고도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보낸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그랬을 것입니다. 당신은 지난 일들에 대해서 돌아보는 진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런 편지의 성격 상 열려버리기도 합니다, 사소한 잘못으로. 여러 개의 편지들 중에서 하필 하나만 남겨져 있다가 우연히 방심한 순간에 마우스의 작동으로 열려버리는 경우 말입니다.

   이 편지는 그래서 열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열고 보니 당신의 가슴이 조금 찡합니다. 평상시의 당신의 태도로 보아서 당신이 답을 쓸 리 없음을 아는 사람이 이런 편지를 쓰다니.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묻어나는 편지를 쓰다니. 한 순간, 아주 짧은 한 순간 마음이 닿았더라도, 스쳤더라도, 만남은 만남인 것을. 당신은 그것마저 부인할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세상의 모든 만남은 순간이며, 특히 괘도가 다른 직선의 만남은 순간 중의 순간일 뿐임을 누군들 부정합니까? 그래서 아름다운 순간이 정지하기를 바라는 것이 동서고금 남녀노소의 일입니다. 만일 아름다운 순간이 허락된다면 말입니다. 그래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당신과 같이 이성적이고, 많이 이성적이고, 최고로 이성적인 사람으로서는.

 

   그러므로 당신은 회신이라는 간단한 장치를 뚫어지게 봅니다. 절대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답을 쓸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읽지도 않고 지우는 무례를 범하지 않았음에 스스로 뿌듯해할지도 모릅니다. 이성적인 동안에도 매정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충분히 이성적입니다. 이 편지를 더 이상 거기 아이티 세상에 살려두지 않을 만큼 이성적입니다. 간단합니다.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서 편지는 휴지통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 전에 어쩌다가 우연히 나의 편지함으로 ‘전달’되어버린 것을. 방해꾼은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휴지통에 쌓인 수많은 쓰레기들 중에 섞여 얼마를 더 연명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원래의 자리에 복원되어 당신의 눈앞에 다시 존재하게 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꿈을 꾸는 것은 자유일 것입니다. 편지는 게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꿀 것입니다. 편지를 쓴 사람이 잠 못 이루고 당신을 생각하는 동안에는. 그러나 아무 소용없습니다. 편지를 쓴 사람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끝나지 않아도 희망은 끝납니다. 어느 날엔가는 당신이 휴지통을 말끔히 청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당신과 편지를 쓴 사람과는 참 무관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잊었습니다. 당신에게도 비이성적인 순간이 있었음을. 하늘과 바다가 맞닿고 해와 달이 동시에 떠있는 절해의 고도. 상상의 자리에서는 당신도 마그마처럼 끓었던 순간이 있었음을. 당신이 이성적인 것은 지나간 순간을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자연의 섭리를 깨달아서입니다. 깨닫지 못했더라도 승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훌륭하게도 이성적입니다.

   만일, 만일에 훌륭하게도 이성적인 당신이 조금 흐트러질, 조금이라도 흐트러질 시간이 올까요? 아무리 이성적인 당신도 사람이고, 사람이면 조금 흐트러지는 때가 왜 없을까요? 그래서 당신도 아주 드물게라도 흐트러질 수 있다고 해 봅시다. 물론 이 편지와 관련해서는 이미 편지는 죽어버렸을 때입니다. 그저 전혀 다른 계기로 당신의 몸속에 알코올 성분이 많아졌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매우 인위적으로 이성의 자리를 감성이 꿰찬 겁니다. 아니, 감성이 당신을 송두리째 꿰찼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안한 일이지 싶습니다. 당신에게는 조금 상스럽게 들릴 테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고쳐봅시다, 감성이 우위를 점한 때.

   당신에게서 감성이 우위를 점할 때는 드문 일입니다. 그래도 가능한 일입니다. 당신도 사람이니까요. 원래도 감성을 이성으로 누른, 실은 감성과 이성을 겸비한 사람이고 보니, 어느 날엔가는 감성이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니까요.

 

   그럼 이제 한번 편지를 쓴 사람을 떠올려 보시지요.

   그(녀)는 - 이렇게 굳이 괄호 속에 (녀)를 쓰는 이유는 누구의 성별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소심 때문이니, 당신도 또는 독자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 어떤 순간에 당신에게로 왔습니까? 이 표현은 다시 수정해야겠는데, 그(녀)가 왔다는 말은 옳지 않겠지요? 어디까지나 당신이 주체로, 당신이 그(녀)를 오게 한 것이겠지요. 당신의 의지가 없었을 때 그(녀)가 당신에게로 왔을 리가 없는 이유는 압니다. 당신은 누군가가 오는 것을 그냥 허용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혹은 그 순간, 당신이 찰나에 감상적이 된 때문이었겠지요?

   어쩌다가? 어쩌다가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아무래도 어떤 외부적인 힘이 작용했겠지요? 말하자면 있었던 것을 있었던 것으로 하고야 마는 자연 법칙 같은 것. 우리가 잊거나 잊으려 한다고 해도 한번 태어난 것은 사라지지 않지요. 우리가, 생명체가 한번 태어나면 그것이 죽어 사라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성분은 어떤 형태든 모양이든 찌그러들 대로 찌그러들어도 썩어서도 어딘가에 남아있게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예컨대 한 겨울 바닷가의 눈물 같은 것도 볼의 열기 때문에, 닦아준 손수건에 적셔져서, 또는 덮어버린 입술에 묻혀서, 아무튼 어떻게든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일지라도 거기에 녹아들어 남게 되지요.

 

   나는 이제 말을 꺼내야 합니다.

   그(녀)가 갔습니다. 떠났다는 말입니다. 겨울은 떠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하더니, 그때 정말 겨울에 떠났습니다. 유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겠죠. 물론 지병으로 죽음을 예감하는 사람들이 아닌 바에야 누가 얼마나 유언을 남기나요? 어쨌거나 어느 출판사에서 기획한 책자에 <미리 쓰는 묘비명> 비슷한 코너에 보낸 글이 남았습니다. 물론 보낸 것 보다 더 길게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었답니다. 연습이었는지 모르지만, 여기에 마저 그 편지의 계속이라고 치부하고 읽어보겠습니다.

 

 

 

   마그마를 향하여

 

   은행잎 우수수 지는 어느 늦은 오후.

   파리하고 조금은 세상사가 번거롭고 권태로워 보이는 그대 - 라는 문자를 보내 왔다. 선배 문우께서.

   아, 그런 오후이면 잠들기 좋은 시간 아닌가.

   비가 내린다면 빗물에 젖은 은행잎 따라 흘러가기 좋을 것이다.

   발길에 찢기어도 여전히 노란 은행잎 부스러기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흘러들기 좋을 것이다.

   그들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아래로 아래로 어디까지 가는가.

   우리는 지표를 뚫고 아래로 아래로 스며들 것이다.

   몸과 맘 모든 속성들을 끌고 아래로 아래로 간다.

   속성들은 원자와 분자가 되어 밀고 당기고 마그마에 섞일 것이다.

   불덩이보다 더 뜨거운 마그마 속에 한데 섞이어

   몸도 맘도 초월한 마그마가 되어 흐를 것이다.

 

 

   마그마 - 얼마나 뜨거우면 돌덩이가 녹을까.

   얼마나 녹아서 ‘돌물’이 되어 흐를까.

   지각 바로 아래 외핵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암석층 맨틀에 이르기는 할까.

   아니, 맨틀 최상부의 섭씨 100도를 견디기나 할까.

   맨틀의 대류는 혼돈 과정. 내핵은 고체이고, 외핵은 액체이며, 맨틀은 가소성 고체라.

   지구 표면에서는 낮은 온도로 고체이던 광물질들이 마그마에 이르면 소용없다.

   암석 농축액 마그마, 그 속에 섞인 은행잎 부스러기들은 설마 불순물일까.

   마그마에 섞여 녹으면 지표면의 일들을 기억이나 할까.

   몸을 기억하지 못해도 맘도 잊을까.

   몸은 형체가 사라진다.

   맘은 무엇이 사라질까.

 

 

   몸은 실존의 현장이었다, 인간이면 예외 없이.

   겨울의 나무 - 길고 부실한 몸은 용적에 비해 품질이 떨어졌다.

   첫아이라서 아이는 버리고 태만 주어다 길렀나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자라났다.

   좋아하는 움직임,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것들…… 있었을까?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탐한 적이 있었을까?

 

 

   단연 아니었다.

   손을 뻗치면 무엇이건 다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바보같이.

   준비성 만점의 (외)할머니는 욕구의 싹이 자랄 틈을 내주시지 않았나 보다.

   할머니가 엄마였다. 어머니는 우리랑 함께 할머니의 딸이었다.

   할머니는 어린 나를 일찍 학교에 보냈다.

   네 살 때 벌써 문전옥답 값으로 가죽 란도셀 가방과 호랑이(?) 모피코트를 준비해놓으셨다 했다.

   그것들을 맸거나 입었던 기억은 없어도 작은 모피코트가 아직도 남아있다.

   내가 천리 길 먼데 대학생이 되어서도, 내가 부모자리가 되었을 때까지도 여전히 할머니의 아기였다.

 

 

   맘은 늘 아기는 아니었다.

   물병자리 B형. 천성적으로 집단과 강요에 약한 고립적 고집적 마음의 소유자.

   체육시간 내내 벤치에 머물며, 소외되어, 마음은 오히려 일찍 성장했다.

   성장? 한껏 조숙하여 개똥철학에 기울었다.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시를 썼다. 첫 발표는 「무제」.

   가소롭게도 인생은 주제가 없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목표도 없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건방짐이 오래 갔다.

  

 

   농축된 시를 쓸 수 없다고, 재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유트릴로의 하늘을 따라 그릴 수 없다고, 재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절대음감으로 피아노를 두드릴 수 없다고, 재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책 속에 정신이 있다고 믿었다. 재능과 달리 읽으면 되는 것이 책이라고.

   책이 유일무이한 벗이었다.

   책들은 희노애락 감정이 없이 거기에 존재했고, 나는 희노애락 감정이 없이 그들과 노닐었다.

   단조로움 속에 단정한 삶이 있다고 믿었다.

   희로애락은 장신구일 터였다.

   장신구는 있어 좋기도 하고 있으면 불편하기도 한 존재가 아닌가.

 

 

   정신에 집중하기를 소망했다.

   육신과 정신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그 둘이 똑같은 비율로 섞이지 않을 것이므로.

   더 정신으로 뭉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니까.

   정신은 날개 없이도 한없이 날 수 있을 것이니까.

   어디로? 목적은 없었다.

   목적을 초월할 수 있음을 우수한 자질이라고 믿게 되었다.

   구체적 목적에 들린 삶을 조금은 저열하다고 간주했다.

   목표지향적 삶을, 욕망이 많은 삶을 저열하다고 간주했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조금 안쓰러워했다. 건방지게.

 

 

   내 맘은 내 정신은 강했다고 믿었다.

   내 맘은 내 정신은 상처입지 않았다고 믿었다.

   내 상처를 두려워하여 행여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겁을 먹었다.

   겁 때문에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겁 때문에 결국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었구나.

 

 

   예 - 참 어려운 단어였다.

   함께 가자 하면, 예 하고 서두르지 못했다.

   확신이 안 선다는 생각에 더듬거리기만 했다.

   효, 우애, 우정과 사랑의 이름으로도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지도 못했으니, 애국애족은 언감생심.

   두 개의 마음을 더하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엉터리 산수를 믿지 않았다.

   두 개의 마음을 더하면 둘이 정직한 답이다.

   아니 넷일 수 있다는 상상을 더 신뢰했다.

   왜? 원래 하나의 마음도 늘 하나가 아니니까, 적어도 둘씩이니까.

  

   마음은 늘 갈래였다. 누구의 마음인들 그러지 않았을까. 동시에 둘을 원하기는 오히려 어려웠다. 직장을 쉬이 갈아 치운 것만 보아도 드러난다.

   한번은 다 놓고 소설만을 쓰겠다고 작정하기도 했다.

   그랬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다른 문학작품들을 파먹고 산 세월 동안, 손가락이 하이에나의 그것들처럼 넷으로 변하고 꼬리가 돋는 기분에 소스라쳐서 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게 여러 주제를 섞어 담은 장편 출판을 계기로 어정쩡 소설가가 되었다. 시를 쓰는 젊은 선배는 소설 다섯 편을 쓸 이야기를 한 데 엮어 넣었다고 ‘비경제성’을 탓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여전히 무명이었다.

 

 

   그렇게, 오랜 동안, 적어도 한참 동안 무엇인가로 쏠렸다. 다른 것들을 다 잊었다. 그러다 식었다. 다른 무엇인가로 한참동안 쏠렸다. 그러다 식었다. 오래 식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식을 것이다. 아니, 이제는 시간이 없다.

 

 

   아니오 - 참 어려운 단어였다.

   비가 내리면, 아니오 하고 우산을 쓰거나 집안으로 뛰어들 만큼 신속하지 못했다. 비는 내리면 맞는 법. 사람의 마음도 어쩔 수 없다. 오는 색으로 맞는 법. 비도, 사람의 마음도, 자연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자연을 신앙했다. 삶과 죽음이 하나의 사실이라는 것을 안다.

 

   아래로 아래로 간다.

   마그마를 향하여 간다.

   뜨거운 돌물은 나의 레테의 강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남아 있던 글입니다.

   ‘미리 쓰는 묘비명’ 원고청탁은 그(녀)에게 독특한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죽음이 생경한 것은 아니었으니, 죽음은 삶의 동반자. 살아오는 동안 그놈 또한 늘 뒤를 옆을 맴돌고 있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다만 묘비명이란 단어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터, 무명 소설가에게는 사치스러운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인간적으로 문학적으로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문자를 받았더랍니다.

 

   파리하고 조금은 세상사가 번거롭고 권태로워 보이는 그대 - 결정적인 묘비명 한 줄이 하늘로부터 온 셈이었답니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 나무의 속성으로 태어났다는 그(녀)는 왠지 가을을 마감으로 느낀다고 했습니다. 다시 생명의 겨울이 오기 전에 막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게 느껴진다고. 그(녀)는 ‘너절한 연습’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어느 가을날 유난히 빗물에 젖어 쌓이는 쌓이다가 찢기는 은행잎들의 미래가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고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뿔뿔이 흩어지는 작은 알갱이. 더 작아지면 먼지가, 액체가 되거나, 기화해서 우주를 떠돌 것이다. 우리가 죽어서라도 만날 수 있는, 만나고 싶은 마음들이라면, 대기 속 보다는 땅속을 꿈꾸는 것이 소박할 것이라고. 지표를 뚫고 들어가 마그마가 되어 한데 엉켜 흐를 수도, 다만 스치기라도. 하늘보다는 땅의 그런 이미지가 우리의 미래(?)에 어울린다.

 

 

   마지막 인터뷰

 

   어떻습니까? 이 묘비명의 어딘가에 편지처럼 당신에게로 뻗는 촉수가 있다고 느껴지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조금은 부담이 되시려는지요? 아니, 그거야 모를 일입니다. 책임이 없다면 누구는 어떤 일에서든 자유로울 수 있는 법입니다. 꿈을 꾸는 건 꿈꾸는 사람의 자유이겠지만, 꿈의 대상은 억울할까요? 예, 좀 억울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억울할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당신이 아는 한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언뜻 무뚝뚝했습니다.

   - 어떤 때에는 타협이 어려웠고요.

   - 많이 정직한 편이었어요.

   - 보기보다 순진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수식어를 줄이고 말해봅시다.

   - 무뚝뚝했습니다.

   - 타협이 어려웠고요.

   - 정직한 편이었어요.

   - 순진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당신은 덧붙일 말이 떠오르겠지요?

   - 괴팍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 타고난 조급함으로 일을 그르치곤 했습니다.

 

   정말 그뿐입니까?

   - 순수? 바보처럼 늘 뭔가에 골몰했던 것 같아요. 그만 하시죠.

 

   아니, 하나만 더. 미안합니다. 제가 좀이 쑤셔서 그만. 골몰했다 하시면 집착 같은 것입니까?

   - 표현에 따라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굳이 말하면 긍정적인 집착, 적어도 타인에게는 긍정적인 집착으로 나타났지요. 그게 자신에게는 부정적인 편이었지요. 자신의 잘못, 부족함 등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매달렸으니까요. 상대가 무슨 말을 못했지요.

 

   마지막으로, 당신과 그(녀)의 벤다이어그램을 상정한다면 어떤 형식이었나요?

   - 벤다이어그램? 참 이상한 걸 물으시네요. 집합이라, 합집합의 크기가 커지려면 교집합은 작을수록, 아니, 합집합을 생각할 게제는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교집합을 키웠나? 그것은 더욱 어불성설, 두 개의 자아 중 하나가 죽지 않고서야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의 세계인 것을. 참을 수 없는 교집합의 가벼움! 아니, 나는 참을 수 없는 교집합의 가벼움을 잘 참을 뿐 아니라 오히려 희망했습니다. 그(녀)가 상대적으로 너무 무거웠던 것입니다. 왜들 가벼움을 탓하나요? 이 지상의 억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존재가 왜 무거워야 합니까? 가벼울수록, 깃털처럼 가벼울수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부유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당신이 그렇게 느끼고 있음을 당신의 위트와 유머와 센스와 아이러니와 패러디와 리듬과 심지어 즐겨 쓰시는 모순어법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느꼈습니다. 지금도 느낍니다. 수사학에서 탁월한 당신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셰익스피어를 인용하여 ‘달콤한 이별’이라 하시렵니까? 아예 오비디우스를 빗대어 ‘이 충만이 나를 가난케 하였도다!’라고 응수하시는 것입니까? 무엇인가 감정이 충만하다고 느꼈을 때, 그것은 이성의 가난이었나요?

 

   당신 : 바람 불면 은행잎 우수수 져서

   그(녀) : 당신이 스틱스 강을 말할 때에도

   당신 : 어딘 가로 씻겨 내려갈 것 아니오?

   그(녀) : 나는 그것을 암호로 듣지는 않았습니다.

   당신 : 내려가다 썩든가

   그(녀) : 나는 차라리 레테의 강을 믿습니다.

   당신 : 썩은 물이 어딘 가로 흘러 들어가

   그(녀) : 많은 것은 잊히는 것이라고.

   당신 : 스며들어가

   그(녀) :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들이

   당신 : 지구 복판의 마그마가 끓고 있는 곳에서

   그(녀) : 무엇인가가 지나면

   당신 : 한 조각 성분이 되어서라도

   그(녀) : 그 끝이 좋았던 고통스러웠던

   당신 : 그렇게라도 만날 것 아니오?

   그(녀) : 언젠가는 거의 잊혀진다고.

 

 

   벌써 끝나가는 이야기이군요. 당신은 당신의 말을 하고 그(녀)는 그(녀)의 말을 했습니다그려. 늘 그랬습니까?

   -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습니다. 아니,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제 말만을 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정말 그랬습니다.

 

 

 

   당신은 추억에 잠깁니다. 어느 바닷가에서 밤을 지새우던 때를 불러봅니다.

   어느 바닷가. 둥지 틀고 사는 곳에서 260km 또는 450km 쯤 움직인 곳.

   싸구려 불빛에 드러난 군상. 따닥따닥 붙어있는 횟집과 손님을 불러대는 아주머니의 앞치마. 부엌의 행주치마가 아닌 돈주머니. 돈주머니들은 제법 불룩하다. 임신하기에는 늙은 여자들의 부풀어 오른 배 위에서 더 부풀러 보이는 돈주머니 앞치마. 앞서 지나간 손님들의 때 묻는 돈, 그 때 묻은 돈에서 옮겨간 인생의 때로 뒤범벅되어 갑옷처럼 무장된 돈 통.

   일행은 예닐곱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이야기들만 한다. 중요하지도 않은 말들만. 중요하지 않은 말들이 중요하다. 적당한 간격의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시간을 죽이려고 할 때.

   왜 시간을 죽여야 하는가. 공적인 일들이 끝나면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 푹푹 씻고 건강한 잠을 자면 그만인 것을. 그 편이 다음날의 진행에도 합당하다. 그런데 왜 바닷가를 서성이며 시간을 죽이려드는가. 할 말도 없으니 말을 못하고, 할 말이 있어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아무 말이나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오해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누구도 누구에게서라도 오해받고 싶지는 않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바닷가 부둣가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내가 이전에 여기 유명한 어시장을 갔더랬어요. 어부인이 워낙 생선을 좋아하니까 사가지고 갈까 했었지요. 아니, 아예 돌아오는 길에 어시장엘 다녀오라는 엄명이 떨어졌지요. 해서 시장을 갔었죠. 그런데 아짐씨들이 앉아서 영락없이 붓칠을 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예 노란 페인트칠을, 생선에다가. 멍하니 서서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그 아짐씨 말이 뭐랬는지 참.

   뭘 보냐고 퉁이나 맞으셨지요?

   퉁만 맞은 게 아니라 혼이 났지요. 아자씨, 집에 아지메는 화장 안하나? 야들도 화장을 곱게 해야 시집을 잘 가는 기지, 이러는 겁니다. 노오란 물색으로 맛있어 보이는 조기가 화장발이라니. 그 다음부터는 조기매운탕 맛이 확 가버리더군요.

   참 섬세하시기는. 그게 어디 오늘 하루 이틀 일이던가요.

   조기 장사는 조기를 속이고, 고춧가루 장사는 고춧가루를 속이지요. 일가 형님이 시골서 그대로 터 잡고 사는데, 글쎄 고추 다듬고 밭두둑에 아무렇게나 버려둔 고추꼭지를 밤 새 실어 가버린다고 합디다. 그걸 어디에다 쓸 것이요, 참. 그러니 누가 고춧가루를 믿고 사 먹을 수 있나요. 그러다 중국물건이 싸고 이문이 난다 싶으니까, 깨 있지요? 야무진 주부들이 시골에 가서 깨를 사가지고 와서 의기양양 하는 것도 다 헛것이라.

   직접 시골에 가서 사도?

   그러니까 깨를 털기 전에, 깨를 터는 것이 무엇인지나 아시오? 깨를 털기 전에 아예 덕석 에다 중국산을 쫘악 깔아놓고 그 위에서 깻대를 턴다는데 말 다했지요. 온 동네가, 다시 말하면 온 나라가 그러는데, 혼자서 순수히 자기 밭에서 난 깨만 팔고 있으면 바보 되는 느낌이라서 별 수 없다지 않소. 불 보듯 뻔한 손해인데다가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농촌 사람 야단 못하지요. 서로 속이고 속는 것인데. 요즈음엔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흔치 않다가 가을걷이할 때나 더러 드나든다는군요, 쌀도 실어가고 뭐 그런 정도. 헌데 시골 노인들이 다른 집 자식들을 알고 지내지 않으니까 문제가 생긴다더라고요. 옛날엔 뉘 집 자식 할 것 없이 누가 하나라도 오면 온 동네가 다 나서서 반겼고, 또 젊은이들도 으레 동네 인사 할 줄 알고 그랬는데. 아무튼 형님네 시골에 하루는 어떤 젊은이가 나타나서는 가을걷이해서 쌓아둔 나락가마니를 통째로 실어 가버렸다지 뭐요. 저쪽에 젊은이가 차 대놓고 나락가마니 싣는 것을 노인정에 앉아서 먼발치로 본 노인이 있었다지만, 그 노인 생각으로 저리 천연스럽게 차 대놓고 나락가마니를 실어내니까 그 집 자식이나 되나보다 그랬다지 뭡니까.

   아무리 그런다고 참 노인네도! 어르신이라요, 할머니라요?

물어보나 마나지요. 할머니들이 혼자 노인정에 앉아있기를 하나요? 잔손가는 일이든 어디로든 몰려다니지. 칠십 줄 안 넘은 할아버지가 그랬답니다. 아파서, 병중이라 시들시들하기도 했더래요. 요즘 시골에도 암환자들이 많은 걸 보면 공기 좋은 시골이 별 노릇을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시골도 음식들이 개화되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지요. 아니,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지요. 한번은 사라질.

 

 

   그렇게 당신은 그 밤의 대화에 끼었습니다.

   한번은 사라질.

   마치 생사의 암투에서 해방된 초연한 느낌을 주며 좌중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좌중이라야 어느새 대여섯으로 줄었습니다만. 이제 모두들 당신의 입만 쳐다봅니다. 당신의 개입으로 진부한 어시장 놀음이나 가을걷이 도둑 이야기에서 삶과 죽음으로 이야기의 차원이 바뀌었으니까요. 당신은 처음엔 모르는 척 입을 다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실은 언제나 철학을 시작하곤 하는 당신을 알아보고 있었으니까요. 해서 당신은 그날 밤의 강연(?)을 하게 됩니다.

 

 

   오늘 그것을 되풀이하실 의향은 없으신 거지요? 간략하게라도?

   - 그럼요. 기억도 못합니다. 강연이라니, 그저 알코올 기운에 떠들어댄 개똥철학이었겠지요.

   그렇지만 그날 밤의 강연(?)에서 당신의 영혼과 그(녀) 그것이 불꽃 튀는 접속을…….

   - 그만, 그만 하시죠. 순간은 되풀이 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늘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때는 순간은 영원이 되어버린다고도 했고. 늘 말이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매 순간의 영원성 운운하면, 헤세가 쓴 『싯달타』에서도 나왔던 말 같습니다만. 삶마다의 불멸성과 더불어.

   - 예,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완전히 새 말을 합니까? 세상 어디에 새로운 주제가 있답니까? 쪽지 한 장에 매달리시는 댁은…….

   죄송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제가 하는 쪽이라서. 제 역할이 질문 쪽이라서…….

   - 예, 뭐. 그렇다고 제가 답변을 해야 하는 이유라도?

   죄송하지만 처음 주제에 한해서만큼은.

   - 주제가 있었나요? 도대체 인생에 주제가…….

   자 그럼, 그(녀)는 어떤 순간에 당신에게서 떠났습니까? 이 표현은 정말로 수정해야겠는데, 그(녀)가 떠났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당신이 주체로, 당신이 그(녀)를 버렸습니다.

   - (침묵)

   그럼 당신은 왜 그(녀)를 단호하게 자르셨습니까?

   - (침묵)

   당신이 침묵하더라도, 몇 백 년을 침묵하더라도 알 것도 같습니다. 그(녀)가 이 편지에 쓴 대로, 사람이 말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밖에 없는데 할 수 있는 전부를 다 말해버렸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진실이라고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물론 당신의 침묵이 그(녀)를 질식시켜서 스스로 단념했다고 말해도 되겠습니까?

   - (침묵)

   하긴 다시 이런 편지를 보냈다면 그 단념이라는 것도 참으로 한심하군요.

   - (침묵)

   예, 이 편지의 답이 침묵인 것을 알았습니다. 진즉에 알고서도 궁금했습니다. 가펑클의 노래를 들어 ‘침묵의 소리’를 실현하시는 군요.

 

 

 

   여기까지입니다. 우연히 엿보게 된 이 편지와 관련해서 뭔가 의미심장한 주제를 끌어내볼까 혹했던 나는 여기서 단념했습니다. 그러면서 침묵이 얼마나 위대한 무기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더구나 마음을 조금이라도 빼앗겼거나, 아니 조금이라도 설레었거나 하는 정도만으로도 마음 졸이는 상대였다면 그런 무기가 치명상을 입히고도 남았으리라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편지의 수인인은 참으로 말을 아끼는 수준 높은 인격자였습니다. 그것이 내가 알아낸 전부입니다.

   고백하건대, 이야기를 창작하는 대신 누군가에게서 뭔가 실마리를 얻어내려고 했던 것이 애초에 틀렸습니다. 편지 한 마디를 실마리로 하여 쉽게 정신적 투쟁의 흔적 같은 것을 꺼내보려고 했으니. 본격적인 글쟁이가 되려면 아직 멀었음을 느낍니다.

   대신에 조금이나마 배운 것도 있습니다. 물론 사전적으로야 ‘이성’은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으로 정의되고,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 되어 있더이다. 거기까진 통상 알고 있는 것이지만, 유독 그것을 가리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라할 때 늘 고개가 기웃거려졌지요. 그 의심을 이제 확신해도 될 듯합니다. ‘감성’이 ‘이성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외계의 대상을 오관으로 감각하고 지각하여 표상을 형성하는 인간의 인식 능력’이라고 정의되면, 처음 것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그러니 감성과 이성의 대응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립개념이 아니라 충돌개념이라는 것. 두 단어를 함께 쓰는 일에는 뭐랄까 물리적 이항이 아니라 화학적인 얽힘으로 폭발성이 내재되어 있으리라는 것. 비슷하게 감성과 이성을 나누어 가졌을 두 사람의 경우에도 어떤 쏠림 현상 때문에 한 사람은 폭발해 버릴 수도, 다른 한 사람은 건재할 수 있으리라는 것. 미션이 가득한 영화에서, 폭발 직전 몇 초를 남기고 뇌관이 제거되는 폭약처럼. 그러니까 폭발 여부는 순전히 에이전트의 활약 덕택입니다. 이 때 에이전트의 이름은 언제나 이성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최후의 보루는 이성이다? 그러한가 봅니다. 그런 것을 배웠습니다.

 

   아차, 덧붙일 말이 생각났습니다. 두 사람은 우연히도 ‘이성의 자기반성 능력’을 강조한 책을 공유합니다. 아까 당신이라고 지칭된 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 서가를 슬쩍 훔쳐보았거든요. 그리고 편지를 쓴 그(녀)의 다른 노트에서 ‘이성의 자기반성 능력이란 지적 정체성과 변화의 요구를 통일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메모를 본 적이 있었답니다. 그 책이 출간되었던 1996년에 - 아니, 훨씬 이후라야 되겠지요, 여태껏 그런 마음이 지속될 리는 없을 테니까요 - 누군가 누군가에게 그 책을 선물했음직하다. 어쩌면 ‘당신’ 쪽이. 간접적 이별의 통고로서. 감성 따위를 극복하련다는 통고 같은 것. 그런 경우 이성은 잔인성의 비슷한말이 되겠습니다그려. 호모 사피엔스의 독재. 물론, ‘당신’ 쪽의 철학에 얼마만큼 동조할 것인지는 좀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편지가 영영 사라져버린 데 대한 쓸쓸함을 반추할 길은 없으면서 여전히 자꾸 그쪽으로 내 마음이 적시어지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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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세계』 통권 221호, 도서출판 천우, 2012.12.1. 211-226쪽

Posted by 서용좌